2013년. 세계는 경악했다. 모두가 무시했던 작은 나라. 거대한 중국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등장한 하나의 게임. 그것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그동안 무시당했던 것을 갚으려는 듯, 거대한 파문을 가지고,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게임이 발달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부터 꿈으로만 느껴지던 가상현실! 모든 이들의 상상에서만 등장하던 가상현실이 조그만 나라에서 현실로 이루어졌기에 모든 세계는 그것을 만들어낸 나라와 기업, 그리고 사람에 시선을 집중했다. 「싸울아비」 최초로 등장한 가상현실 게임이 그들의 상상을 채워줄 것인지가 전 세계의 관심사였다. "씨발!" 퍽! "큭!?" 갑자기 달려드는 한 소년에 의해 갑자기 얼굴을 얻어맞은 또 다른 소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때린 소년을 바라보았다. "병신새끼야! 수비면 수비답게 안에서 깝칠것이지. 왜 나와서 지랄했어! 앙!?" "닥쳐, 씨발새꺄. 아현이가 막판에 전부 공격하자는건 못들었냐?" "이 씨발새끼가!!" 탁! 조용조용 말하는 소년의 목소리 때문에 더욱 화가 난 것인지 처음 주먹을 날렸던 소년이 다시한번 강하게 휘둘렀지만 그의 주먹은 허무하게 튕겨졌고,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마, 말려야 하는거 아냐?" "어라? 찬승이가 화났네?" 같은 반의 여학생인 듯한 소녀들은 남학생들이 싸움을 말리기 바랬지만 체육시간이 끝나고 천천히 들어오던 아이들은 그 둘의 싸움을 보며,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하! 이 병신새끼가 꼴에 막네?" '칠까? 하지만 죽을 수도 있을텐데?' "씨발새꺄 네가 막으면 어쩔건데?" 찬승이가 자신을 바라보며 욕을 하던지 말던지 상관하지 않던 그는 찬승을 바라보며 그를 칠까말까를 고민했다. 그 자신이 보기에 찬승이의 곳곳에 때릴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에 그가 움직이기만 한다면 주먹질 몇 번으로 찬승이의 무릎을 꿇릴 자신이 있었지만 찬승이가 심하게 다칠것이 걱정되어 쉽사리 주먹을 뻗을수가 없었다. "닥쳐, 시발새꺄." "이런 개새끼가!!!" 퍽!퍽! 조용히 말하는 그의 말에 더욱 화가난 찬승이 먼저 몸을 움직였고, 그의 움직임에 맞추어 같이 움직이기 시작한 그는 몇 번 손을 휘두르긴 했으나 맞출 생각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헛주먹이었기에 빈공간만을 휘둘렀고, 그와는 반대로 찬승의 주먹은 그의 몸 곳곳을 두들겼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 "야! 종쳤다!! 이제 말려!!" 종이 치고 움직이기 시작한 반의 남학생들은 붙어있는 둘을 때어내어 각자의 자리에 앉히고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젠장!!" 야자(야간자율학습)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침의 일이 생각난 그는 그때 찬승을 치지 못한 것이 분해서 자꾸만 욕이 나왔다. '그곳을 치면 이길 수도 있었는데.....' 잡다한 소설들을 많이 읽었던 그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곳을 몇군데 알고 있었다. 찰칵! 찬승이와 싸웠을 경우 어떻게 할지를 상상하던 그는 어느순간 도착한 자신이 집 앞에서 상상을 접은 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현민이 왔니?" "다녀왔니?" "네." 짧게 대답을 한 현민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키고, 아침에 있었던 싸움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이미 지나간 과거따위는 무시하자........" 하지만 현민의 머리와는 다르게 그의 마음속에서는 아침의 싸움에 대한 후회가 계속 되었다. 딸칵. 딸칵, 딸칵. 그나마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지운 현민은 컴퓨터의 모니터에 나오는 게임에 생각을 집중했다. 「싸울아비」 "가상현실이라......"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 「싸울아비」는 당연, 현민 또래뿐만 아니라 모든 게이머들과 소설가 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게임의 1순위였다. "이제 얼마 안남았네..." 현민이 바라본 모니터의 시계는 10시 43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현민이 기다리는 시간까지는 1시간 17분이 남은 상태였다. 현민이 기다리는 12시, 정각은 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싸울아비」의 오픈베타 신청 시간이었다. 「싸울아비」는 클로즈베타도 하지 않은 채, 오픈베타를 시작했으나, 첫 모집 인원을 만명으로 잡고, 추첨된 사람에게는 게임을 위한 특별한 제품까지 무료로 배송해 주는 거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될까?" 당첨자 발표는 신청을 시작하고 6시간 뒤인 오전 6시. 너무 빠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싸울아비」를 만든 가우리에서는 자신이 넘치는지 6시간안에 모든 것을 끝낸다고 발표를 했다. 문제는 신청자 수.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이다 보니 세상의 모든 시선이 「싸울아비」의 오픈베타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 신청자의 수가 예상으로만 10억이 넘어가는 숫자였다. 물론, 가우리에서 각 나라마다 정확한 비율을 두고 그 인원 만큼만 뽑는다고 했으나, 일반적인 확률은 약 1/10000. 어찌보면 적다고 가능성 있는 숫자였으나 나라마다 비율을 따지나고 생각했을 때, 당첨이 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제발 되기를......." 12시가 되자마자 신청을 마치고 당첨자를 발표하기까지 밤을 새워가며 기다렸지만 현민의 바람은 전날의 불행이 이어졌는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귀하는 안타깝게도 저희 「싸울아비」의 오픈베타 테스터로 당첨되지 못하셨습니다. 「싸울아비」에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한달뒤에 있을 오픈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껏 밤을 새웠지만 기대하던 결과가 안 나온 현민은 오늘 학교에 가서 찬승을 죽도록 패버릴까 생각했다. "하아......... 한달." 용기가 없는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현민은 찬승을 팰 상상을 정리하고 「싸울아비」가 오픈할 한달 뒤를 기다리고 했다. 「싸울아비」가 오픈하기 7일 전. "아버지, 제발 사주세요." "안돼." "제발요!!" "안돼!" 현민은 평소에 대화도 나누지 않던 아버지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며 애원했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번 성적 전교 50등 안에 들게요." "정말이냐?" 현민의 질긴 부탁에도 반응이 없던 그의 아버지가 현민의 성적 이야기가 나오자 곧바로 반응을 바꾸었다. "그나마 점수가 나오는 3개 과목을 빼고는 바닥을 기어다니는 네가 50등을 하겠다고?" "50등 안에 들게요. 그럼 사주실건가요?" "흠....... 알았다." 현민이 이렇게 그의 아버지에게 사정한 이유는 「싸울아비」를 하기위한 게임기의 값 때문이었다. 처음, 가격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컴퓨터보다 약간 비쌀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3일전에 홈페이지에 올라온 게임기의 가격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가격이었다. "세상에 800만원이라니..... 무슨놈의 게임기가 그렇게 비싼거지?" "그러게요..."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낸 현민은 곧장 방으로 들어가 앞으로 한달 뒤에 있을 기말고사를 미리 준비했다. -------------------------------------------------------------------------------- "하아......" 「싸울아비」가 시작된지 22일이 지난 지금, 현민은 마지막 시험을 마친 상황에서 앞으로 자신이 키워갈 캐릭터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떤걸 위주로 키울까?' 비록 「싸울아비」가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이지만 그 시스템만은 일반 어느 게임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다. 「싸울아비」는 하나의 직업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레벨과 스탯만 존재하는 게임이었다. 직업에는 크게 두 개로 나누어지는데 판타지쪽은 마법사, 기사, 성직자, 네크로맨서, 궁수, 정령사, 테이머, 도둑, 사기꾼, 언령사, 현술사, 등 수많은 직업들이 있고, 무협쪽에는 주술사, 검사, 권사, 창술사, 현술사, 등 무협지에 많이 나왔던 모든 직업들이 존재했다. 그밖에도 양쪽에는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직업이 있었는데, 「싸울아비」의 이름 그대로 싸울아비란 직업이 하나 있었고, 다른 하나는 무당이란 특이한 직업이었다. 물론, 이밖에도 다양한 직업이 있었으나,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직업이였기에 가우리의 「싸울아비」홈페이지에서도 그 내용을 모두 다루어 주지는 않았다. "야!야!야! 너 그거 알아?" "응?" 시험이 끝나고 모두가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 떨어져 있던 현민은 한명의 학생을 중심으로 모이는 아이들의 말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이번에 S대랑 K대를 시작으로 모든 대학이 결정했대." "뭐를?" "아~!! 나, 그거 알아! 너 마법사 직업 말하려는거지?" "응?" "그게 뭔데?" "에헴! 내가 말해주지. 마법사란 직업이 뭐냐? 자연을 연구하고 다루던 집단이 발전한 하나의 직업이잖아? 그것을 토대로 만들어진게 「싸울아비」의 마법사인데, 이거 키우기가 장난이 아닌가봐. 4서클만 되어도 우리나라 일류대학의 수준이라던걸? 그것을 대학에서도 인정해가지고, 만약 고등학생중에 최소 4서클의 유저가 있다면. 어느 대학에서나 그를 입학시키기로 했대. 그가 원하는 학교에." "우와!! 대단하다! 나도 마법이나 배워볼까?" "장난마라. 네 머리로? 지금 오픈베타 때부터 시작한 사람 중에 마법만을 배운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에 천재들만이 이제야 4서클에 들어섰댄다." "장난 아니네......." "근데 50일인가? 그정도에 4서클이라면 우리도 될것같은데? 한 일년 잡고서." "노노노. 장난이 아니라 이 말이지. 천재들이 수학하고 과학을 푸는것이 뭐가 어렵겠냐? 그밖에 다른 이유가 있으니깐 50일이 지난 지금이서야 4서클에 들어선게 아니겠어?" "그러네......" 그들의 대화를 다 들은 현민의 입에서는 가볍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마법이라......크큭.' "정했어." 마음을 정한 현민은 그 직업을 중심으로 모든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적표가 나오는 방학식날 모든 학생들이 짜증나는 표정으로 학교를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녔다. "이현민, 가져가라." 교탁에 서계신 담임선생님이 반학생들에게 일일이 성적표를 나누어 주셨고, 현민의 성적표를 잠시 바라보신 뒤, 말없이 현민에게 성적표를 건내주셨다. '51등......... 젠장!!' 기말고사를 확실히 잘 보긴 했으나 중간고사를 중간 정도로밖에 못 받은 현민은 중간과 기말이 합쳐서 51등이 나온 성적표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다. 중간때 조금만 더했어도 50등 안이 가능한 성적을 보며 대충대충했던 그 당시의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51등이라는 등수 때문인지 일찍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현민의 얼굴은 평소와는 다르게 지쳐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성적표 받았니?" "하아..... 여기요." 현민의 어머니도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 현민을 재촉했고, 현민은 자신의 성적을 어머니에게 드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버렸다. "중간때 잘할걸........ 젠장!!"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는지 현민은 그렇게 잠에 빠져 들어갔다. "형. 일어나래." "하아...." 어느새 하루가 지났는지 햇살이 들어오는 자신의 창문을 바라본 현민은 자신의 옷을 보고, 동생이 서있던 문가를 쳐다본 후,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후우...." "현민아." "네?" "아버지가 비록 약속은 못지켰지만 성적이 마음에 드신다고 게임기는 사주신다더라." "네? 정말요?!" "그럼." 비록 현민이 표현을 못했지만 그는 날아갈 만큼의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신청해도 돼죠?" "음..... 일단 사주신다고 하셨으니 상관은 없겠지."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민은 먹던 밥도 남긴 채, 방안으로 들어가 재빨리 게임기를 신청했다. "이제 드디어 하는구나......." 현민의 얼굴은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전날의 우울한 표정이 모두 사라져 있었고, 그의 입에는 계속 미소가 흘러나왔다. 띵동띵동. "누구시죠?" "가우리에서 왔습니다." 기계는 신청을 하고 난 다음날 바로 도착했다. "빠르네요?" "우리나라를 우선으로 판매하다보니 이렇게 빠르다고 하더라구요." "좋네요." 배달원이 가져온 「싸울아비」 전용 게임기는 전체 크기가 침대 정도로 거대했다. "어디에 설치할까요?" "이쪽으로....." 현민은 그런 게임기를 자신의 방에 설치하기를 원했고, 그의 방에 있던 침대도 이미 동생의 방으로 옮겨 놓은 상태였다. "휴... 다됐습니다. 기본적인 사용법은 아시겠죠?" "네. 관심이 많았으니까요." "후후후, 게임은 적당히 하시면서 공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게임기를 빨리 배달해준 배달원이 고마웠는지 현민은 엘리베이터까지 그를 마중나가 주었다. "지금부터 사용해도 되는건가요?"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마침내 배달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고, 현민은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방에 설치된 게임기를 보았다. "멋지다....." 그의 방에 설치되어 있는 게임기는 SF영화에 많이 나오는 캡슐과 닮아 있었고, 검은색의 매끄러운 곡선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딸칵! "설명서네?" 그가 캡슐의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교과서 두께의 설명서가 들어있었고, 현민은 뚜껑이 열린 캡슐에 걸터앉아 간단히나마 설명서를 훑어보았다. "컴퓨터기능도 있었네?" 비싼 만큼의 가치를 보여주는지 거대한 캠슐에는 다양한 기능이 많이 담겨 있었다. 일반 컴퓨터의 기능과 TV, DVD, 그리고 몇몇 게임등 모든 것이 가능했고, 캡슐 내부의 공간은 사람이 오랜 시간 누워있을 수 있도록 인체공학까지 포함되어있었다. -------------------------------------------------------------------------------- "비싼 이유가 있었구나......." 30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모든 대충이나마 설명서를 훑어본 현민은 게임기 속으로 들어가 헤드셋을 끼고, 내부에 있는 캡슐의 뚜껑 스위치를 눌렀다. 위이이이잉........ "큭!" 캡슐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잠시동안 그의 귓가를 울린 후, 그는 마치 번개에 맞은듯 무언가가 온몸을 통과하는 짜릿함을 느꼈다. 저희 가우리에서 만든 「싸울아비」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저희 가우리에서는 처음 접속하시는 유저분에게는 한달동안을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는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이벤트는 9월 27일까지 이어지고, 그 안에 접속하신 유저분들에게 한해서 한달이라는 시간만 무료로 제공하오니 한달이란 시간이 지나신 유저분께서는 저희 홈페이지에서 요금결제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안보이는 어두운 공간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퍼지듯 들려오며 그의 머리를 울리게 했다. -접속하기 -신체검사 -종료 그의 눈앞이라고 여겨지는 공간에 3줄의 글자가 나타났고, 그는 그것을 보며 가만히 기다렸다. 접속하기란 게임에 들어가는 것으로 계정을 생성/삭제 하실 수 있습니다. 캐릭터는 하나밖에 생성되지 않으니 만약 다른 캐릭터를 키우시고 싶으시다면 계정을 삭제하신다음 다시 생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체검사란 조금전 게임기를 사용하셨을 때의 충격입니다. 신체에 무해한 신호를 보내 그 반응 속도를 읽어 계정을 생성당시 적용하기 위한 기본 수치입니다. 계정 생성 이후에도 신체검사는 가능하며, 계정 생성 이후에 신체검사를 하셨을 경우에는 기존에 가지고 계신 캐릭터의 기본 스탯이 변할 수 있습니다. 원하시는 것을 누르시기 바랍니다. "눌러?" 캡슐 내부의 공간이 사람 두명은 누울 수 있을 만한 넓이기에 팔 또한 자유럽게 움직일 수 있다지만 현민은 허공에 있는 글자를 누른다고 그것이 입력될지가 궁금했다. "흠..." 일단 속는셈치고 손가락을 '접속하기'에 가져간 현민은 손가락이 '접속하기'란 글자를 통과하자마자 눈앞이 빠르게 바뀌는 것을 느꼈다. [처음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캐릭터의 모습은 앞에 보이는 거울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게임 속에서 힘을 올리신다면 지금의 모습이 근육질로 변하고, 민첩을 올리신다면 날렵한 모습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점도 유의하시고 캐릭터를 키우시기 바랍니다. 기본으로 바꾸실 수 있는 것은 머리카락 길이, 색깔, 모양과 눈동자의 색깔, 그리고 피부색입니다.] 또다시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의 설명에 따라 거울 앞으로 '다가간' 현민은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움직여?" 거울속의 자신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이 '걸어서' 거울 앞까지 다가갔다는 것을 깨달은 현민은 가우리에서 만든 가상현실을 보고 감탄했다. "대단하네! 이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이다니. 설마 캡슐에서 발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풋!" 캡슐에서 열심히 손, 다리를 움직이는 자신을 생각한 현민은 가볍게 웃은 후, 거울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뚱뚱하네....." 자신의 몸을 감상한 현민은 머리카락과 눈을 보며, 어떻게 바꾸어야 그나마 어울릴지를 생각했다. "음......... 머리카락은 순수한 검은색, 오른쪽 눈동자는 빨강, 왼쪽 눈동자는 파랑으로 해줘." 그가 말하는 모습 그대로 거울에 있는 현민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바뀌었으나 그것이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역시 외모가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네..... 그냥 검은색으로 해줘." 거울속에 보이는 현민의 모습은 순수한 검은색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제 다 된거지? 생성." [이름을 설정해 주십시오.] "맞다! 이름이 없었네? 음........" 현민은 자신의 직업을 생각하며 앞으로 자신이 사용할 멋진 이름을 생각하려 노력했다. "현자." [현재 사용중인 이름입니다.] "philosopher(현자)." [현재 사용중인 이름입니다.] "카르시안." [현재 사용중인 이름입니다.] "아인아샤." [현재 사용중인 이름입니다.] "아인." [현재 사용중인 이름입니다.] "이누야샤." [현재 사용중인 이름입니다.] "다들 개성이 없는건가?" [현재 사용중인 이름입니다.] "하아." [사용 가능하신 이름입니다. 생성하시겠습니까?] [YES/NO] "아니!" [이름을 지정해 주십시오.] "룬!!!" [사용 가능하신 이름입니다. 생성하시겠습니까?] [YES/NO] "아싸!!" [생성하시겠습니까?] [YES/NO] "응!" [생성되었습니다. 캐릭터 룬 Lv.1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룬이라는 이름을 현민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초반에 현민과 같이 마법사로 키우려던 사람이 마법사의 어려움을 알고 중간에 포기하며 캐릭터를 지워 룬이라는 이름의 사용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운좋게 현민이 먼저 그 이름을 말했던 것이었다. 물론 현민이 성까지 만들었으면 더욱 쉽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현민이 그것을 몰랐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현민은 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싸울아비」의 속으로 들어갔다.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는 외치시거나 생각하시면 나타납니다. 장비창을 보시고 싶으시면 '장비창'을 부르시고, 상태창을 보시고 싶으시면 '상태창'을 부르시고, 스킬창을 보시고 싶으시면 '스킬창'을 부르시면 됩니다. 기본적으로 장비창은 레벨 X 2의 아이템을 넣으실 수 있습니다. 만약 레벨이 10이라면 20개의 장비칸이 주어집니다. "재밌네. 장비창." 마을 한가운데에 서서 혼자 중얼거리는 현민의 모습이 어딘가 낯설었지만 그 마을에 있는 유저들은 현민의 모습이 익숙한지 현민의 모습을 한번 본 후, 다시 자신의 길을 향했다. 현민이 '장비창'을 부르자 그의 앞에는 반투명한 무언가가 나타났고, 그 안에는 목검과 3실버, 그리고 알약 두 개가 있었다. "어떻게 꺼내는거지?" 혼자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현민은 장비창에 손을 넣자 목검이 보이는 위치에서 무언가가 잡히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가?" 현민은 목검이 그려져 있는 부분에 넣어진 손을 꺼냈고, 그의 예상대로 그의 손에는 목검이 들려져 있었다. "이건 정보가 없나?" 그러나 현민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그가 쥐고 있는 목검에서 푸른색의 글씨가 떠오르며 목검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 그러나 현민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그가 쥐고 있는 목검에서 푸른색의 글씨가 떠오르며 목검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목검. 공격력 : 3 -5 "흠..... 초반에는 쓸만한건가? 상태창." ------------- 이름 : 룬. Lv : 1 힘 : (13) 민첩 : (9) 건강 : (11) 반사신경 : (15) 지능 : (15) 정신 : (17) 공격력 : 29 -31 마법력 : 0 방어력 : 45 생명력 : 69 정신력 : 175 -------------- 현민의 힘과 건강은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민첩은 다른 사람에 낮았지만 반사신경, 지능, 정신력은 다른 사람보다 기본수치가 월등히 높았다. "어디보자... 마법사길드부터 가야하나?" 주위를 둘러보던 현민은 자신이 서있는 분수대 옆에서 안내게시판에 있는 지도를 보고, 목검을 휘두르며 마법사의 길드로 향했다. "이리와서 이것좀 보고가세요!! 초반용 아템이 다 있습니다!!" "주사위 게임 한번 하고 가세요~~~" "테이밍한 몬스터 팝니다. 애완용으로 좋습니다~~!!" 그가 가는 골목길이 장사골목인지 많은 유저들이 초반용 아이템을 사고팔고 있었고, 현민은 그들의 모습과 경치를 구경하며 연신 감탄의 음성을 내뱉었다.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정말 존경스럽네......." 딸랑딸랑! "어서오세요~~." "아, 안녕하세요?" "네, 마법을 배우러 오셨나요?" "예...." 현민은 마법사 길드에 들어가자마자 무언가 산뜻한 느낌이 드는 것을 느꼈다. "잘오셨어요. 처음이신가요?" "예." 현민은 마법사 길드의 안내책상에 앉아있는 사람이 NPC(Non Player Character)인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에 오히려 그 자신이 얼굴을 붉혔다. "1서클 마법서만 드릴까요?" "마법서는 얼마나 하나요?" 현민의 이미지가 좋아서인지 마법사길드의 미녀 안내원은 싱긋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하나에 10원이에요." "예?" "아! 처음이시죠? 그럼 화폐 단위를 모르시겠네요. 제가 서비스로 설명해 드릴게요. 최하위 화폐 단위는 원이에요. 그리고 원이 100개가 모이면 1실버이죠. 그리고 실버가 100개 모이면 그게 골드에요. 골드가 100개 모이면 그것은 강이라고 하고요. 아시겠죠?" "하, 하하.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10원이라니..... 말이 이상하잖아. 10원!!' 어쨌든 중요한 것은 마법서 이기에 현민은 자신의 앞에있는 그녀에게 또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1서클은 총 몇 개이죠?" "마법은 숫자가 정해지지 않았어요. 누군가가 새로운 마법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 새롭게 바꿨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본적인 마법의 숫자라면 9개정도일거에요. 라이트, 매직미사일, 파이어, 실드, 힐, 홀드, 클리어, 인탱글. 아쿠아 이렇게요." "다 주세요." "잠시만요~." 현민이 주문한 책을 찾는지 안내데스크에 앉아있던 그녀는 허리를 숙이고 그녀의 발밑을 뒤적였고, 현민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에구.... 여깄습니다. 90원이네요." '역시 익숙치 않아. 90원이라니.....' "여기요." "혹시 공부할 장소가 필요하지 않으세요?" "장소요?" 현민의 반응을 기다렸다는듯이 그녀는 눈빛을 빛내며, 현민을 향해 찬란히 말했다. "저희 마법사길드에서는 전문적인 후임 양성을 위해서 싼.값.에 방을 대여하고 있어요. 방안에는 기본적인 생활도구와 마법공부에 필요한 물건들이 전부 있죠." "어, 얼만데요?" "한달에 1실버랍니다~." 싱긋! 이미 현민이 넘어왔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그녀는 더욱 환하게 웃으며 현민이 꺼내는 1실버를 가로채갔다. "2층으로 올라가셔서 11호실을 사용하시면 될거에요. 방안은 완벽한 방.음.이고 전설의 마법이 날아와도 부서지지 않으니 심심하면 마법을 갈기셔도 상관없으실 거에요." "하, 하하. 감사합니다." 그녀에게서 열쇠를 받아든 현민은 9권의 책을 들고 안내데스크 옆에 있는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와~~."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현민이 들어선 방은 원룸과 모양이 똑같았다. "싸긴 싸네....." 현민은 만족한 미소를 지은 채, 책상에 앉아 라이트라고 적혀있는 첫 번째 마법서를 펼쳤다. 라이트 소모 정신력 : 5 능력 : 주위에 빛을 밝힌다. 현재 단계 : 0 주문 : 없음. "이, 이걸 어떻게 배우는거지?" 첫장에서의 간단한 설명에 다음장을 넘긴 현민은 책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 어의가 없어졌다. "정말 수학이야?" 321584 + 2154813 = 2005123018 + 1218521 = . . . . "자, 장난 아니네......" 비록 그것이 단순한 덧셈일 지라도 그 양과 숫자가 그를 질리도록 만들었다. 덧셈의 중간 부터는 자릿수가 가뿐히 20자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덧셈이니깐 문제는 없지만...... 에휴." 책상을 뒤적이다 찾아낸 팬을 든 현민은 연습장을 찾으려고 했으나, 방안에 연습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하라고. 하아...." 연습장 없이는, 너무 힘들게 느껴진 현민은 밑에 있는 안내데스크에서 연습장을 구입하려는 생각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저기........." "네?" "연습장 있나요?" "아차!!" 현민의 물음을 듣고서야 잊고 있던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그녀는 예쁜얼굴을 찡그리면서 자신을 탓했다. "죄송해요. 처음인데 제가 깜빡했네요." "아, 아니에요. 주실 수 있나요?" "그것을 깜빡했다는 거에요." "예?" 어딘지 앞뒤가 안 맞는 그녀의 말에 이번에는 현민이 얼굴을 찡그렸다. "마법서에 있는 문제는 그 안에서만 풀어야 해요. 만약, 빈 공간이 없다면 그것은 암산으로 끝내야 하는 문제란 거에요. 만약 밖에다 풀면 그동안 풀었던 문제가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니 조심하세요. 아셨죠?" '지, 지랄같다....' "하아....."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현민은 한숨만을 내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탁! 방문을 닫은 현민은 힘없이 책상으로 가서 다시 한번 책을 펼쳤다. "목표는 이뤄야지?" 그렇게 현민의 노가다는 시작되었다. 3시간 후....... "크아아아악!!!!! 후우, 후우, 후우....." 갑자기 비명을 지른 현민은 책상 위로 몸을 눞혔고, 자신이 풀었던 책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기다란 문장을 살펴보았다. 인탱글(Entangle) 소모 정신력 : 20 능력 : 로프나 줄 같은 물체(나무뿌리, 덩굴, 가죽 끈, 밪줄 등등)를 조종해서 부릴 수 있다. 조종 가능한 로프의 굵기는 1.5cm 기본에 마법의 단계당 1cm를 더하고, 길이는 5m 기본에 마법의 단계당 10m를 더한다. 로프에 내릴 수 있는 명령은 휘감기, 묶기, 올가미 등이 가능하며 반대로 사용해서 묶인 것을 풀 수도 있다. 묶기나 휘감기를 하기 위해서는 목표물 주변 단계 X 10m 이내에 있어야 한다. 현재 단계 : 1 주문 : 자연에 존재하고 자연으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물건들이여............. "이것도 이러네... 장난하나?" 3시간동안 그는 9종류의 마법을 모두 1단계씩 배울 수 있었고, 그 마법들도 그의 마음에 쏙! 들었지만 그 마법들의 주문을 보니 왜 마법이 사람들에게 미움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씨발,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현민이 아니다!" 불타오른 현민은 차곡차곡 싸여있던 마법서들 중에 이번에도 라이트 마법서를 먼저 펼쳤다. 스윽.. "이번에는 뺄셈이냐?" 덧셈 다음에 나오는 뺄셈에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아..... 이번에도 한번 해볼까?" 자꾸만 포기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다잡고, 팬을 들고 문제를 풀어나갔으나 중간에 갑자기 문제가 사라지면서 현민은 자신의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하악, 하악, 하악......" 완벽한 방음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제, 젠장......... 틀려도 문제가 바뀌나? 이런건 진작에 알려줘야지~~~~~~~!!!!!!!!" "응? 누가 내 얘기하나?" 현민의 목소리는 거대했으나 정말로 완벽한 방음이었는지 안내데스크에 있는 그녀는 현민의 처절한 비명을 듣지 못했다. "후우....." 한바탕 난리를 떨고 마음을 다잡은 현민은 다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갔고, 어느 순간부터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간단히 숫자를 읽는것만으로도 뺄셈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띵!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한번의 깨달음을 얻어 현민이 올라간 레벨은 총 11. 한번에 11의 레벨이 올라간 현민은 레벨이 12가 되었고, 그가 얻은 보너스 스탯의 숫자는 55이었다. "우와! 대단한대?! 한번에 이렇게 오르다니. 이거 광렙이잖아." 현민의 생각대로 광렙이 맞았으나 깨달음이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현민의 경우는 우연히 복권당첨이 된 경우와 같은 것이었다. "일단 스탯은 모아놓아야지. 나중에 어떻게 할지 모르니깐. 상태창." ------------- 이름 : 룬. Lv : 12 힘 : (13) 민첩 : (9) 건강 : (11) 반사신경 : (15) 지능 : 3(15) 정신 : 5(17) 공격력 : 29 -31 마법력 : 0 방어력 : 45 생명력 : 102 정신력 : 280 보너스 스탯 : 55 -------------- "음..... 생명력은 36올랐고, 정신력이 105나 올랐네? 어라? 지능하고 정신도 올랐잖아?" 상태창의 변화는 그에게 정말 좋은 것이었다. 현민은 문제만 풀어나갔을 경우 무난히 고렙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좋았어!! 이렇게 문제만 풀어도 렙업이 된다면, 광렙이 가능하다. 아자!!" 그렇게 분발하고 10분정도가 지난후, 현민은 덧셈의 경우와는 다르게, 정말로 깨달음을 얻었는지 엄청 빠른시간만에 한권의 수학을 풀 수 있었다. "어디 한번 볼까?" 현민이 문제를 전부 풀자마자 현민이 풀었던 글자는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글자가 현민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라이트 소모 정신력 : 5 능력 : 주위에 빛을 밝힌다. 현재 단계 : 2 주문 : 찬란한 햇빛이 어둠을 뚫고................... "어라?" 현민의 눈앞에 나온 정보는 1단계와 변한것이 거의 없었지만 하나만은 확실히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주문이 줄었다!!!" 현민이 그토록 바라던 긴 주문이 몇 줄이나마 줄어든 것이었다. 1단계에서 50줄을 가뿐히 넘어 주문을 외우는데 2분이란 시간이 소요된 것에 비해, 2단계에서는 주문 몇 줄이 줄어들어 주문을 외우는 시간 또한 20초 정도 줄어들 수 있었다. "만약 10단계까지 간다면?! 아자! 아자! 가자!" 일단 목표를 잡은 현민은 깨달음을 토대로 나머지 7권의 뺄셈도 재빨리 끝마쳤다. 마법서의 단계가 같다면 문제의 내용만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같은 수준의 문제를 푸는 현민의 머리는 어느때보다도 빠르게 돌아갔다. "크윽! 너무 오래 했나?" 평소에 공부와 친하지가 않던 현민이 오랜시간 앉아 있어서였는지 현민은 4단계의 문제까지 풀고 일어나면서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우히히히히." .......정신적으로 심히 의심이 가는 웃음을 웃는 현민의 모습은 미친놈들에게 어떻게 미쳐야 가장 잘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미친놈의 모습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현민이 좋아하는 이유는 1서클을 4단계까지 만들면서 얻은 부수익 때문이었다. -------------------------------------------------------------------------------- "상태창." ------------- 이름 : 룬. Lv : 18 힘 : (13) 민첩 : (9) 건강 : (11) 반사신경 : (15) 지능 : 9(15) 정신 : 11(17) 공격력 : 29 -31 마법력 : 0 방어력 : 45 생명력 : 120 정신력 : 370 보너스 스탯 : 85 -------------- "우히히히. 스탯까지 찍으면 엄청 올라가겠지?" 혼자서 실실 웃고 있던 현민의 시선이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보는 순간 180° 바뀌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처절한 얼굴이 되었다. "여, 여, 열다섯시간이나 했잖아!!! 종료!!" [종료하시겠습니까?] "응!" 위이이잉.... 눈앞에 어둠이 몰려오고 기계음이 들린다고 느꼈을 때, 현민은 이미 현실세계로 돌아와 있었다. "몇시지? 어라?" 현민이 게임기 밖으로 나와 바라본 시계는 현민이 들어가고 나서 4시간도 지나지 않아 있었다. "아차!!! 현실의 1시간이 가상의 4시간인걸 깜빡했네..... 조금 더 하고 나올 수 있었는데." 어쨌든 게임기 밖으로 나온 김에 현민은 무언가를 간단히 먹고 난 후, 다시 게임을 하기로 했다. "용케 식사 시간에 나왔구나. 쩝쩝." 거실에서 간단히 반찬 몇 개와 밥을 놓고 먹던 현민은, 채널을 마구 돌리다 우연히 TV에서 나오는 「싸울아비」를 보게 되었다. "뭐지?" -네. 김은찬 기자가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군요. 다음은 무엇이죠? -네~. 이번에 보실 화면은 「싸울아비」 최초로 5서클에 들어선 마법사입니다. -정말인가요?! 현민이 얼굴은 많이 보았으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여성MC의 말에 남성MC는 많이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현민도 마법사를 지원하기에 밥먹는 것도 잊은 채, 화면에 집중했다. -마법사의 공격력이 최강인건 다들 아시죠? 이번 화면에서는 그동안 자세히 알지 못했던 마법의 공격력과 종류, 그리고 마법사의 능력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보시죠. 여성MC의 말이 끝나자 화면이 바뀌며 20대 초반의 외국여성 모습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국말을 잘 하시네요? -후후, 「싸울아비」가 한국에서 만들어진것이니 그것을 더 잘하려면 당연히 배워야 했죠. -와아~. 열정이 대단하시군요. -아니요. 저희 현자길드의 모든 이들이 기본적으로 한국어는 배웠답니다. 저도 그중에 하나일 뿐이구요. -아~. 채리플랑씨가 현자길드의 일원이셨다는 것을 깜빡했네요. "예쁘네..." 현민은 TV에 나온 여성을 보고 자신의 감상을 짧게 말했다. 그러나 현민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기 때문인지 그 이상의 관심은 가지지 않았다. "그보다 현자길드라......" 현민이 새롭게 들은 현자길드는 「싸울아비」 내에서 마법사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길드였다. 마법사의 인원이 점점 줄어들면서 몇몇 마법사가 모이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에는 거의 모든 마법사가 그들 현자길드에 가입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이쯤에서 모두가 기대하는 마법의 시범을 보겠습니다. 가능하겠죠? -물론이죠. -이번을 위해서 「싸울아비」를 만든 가우리에서 특별히 몇몇 몬스터들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후훗. 상큼한 미소를 보여준 채리플랑은 앞으로 나서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언어를 기억하라. 메모라이즈. -하늘을 나르는 창공의 날개여..............플라이. 대기에 흩어져 있는 빛의 힘이여.........인비지빌리티. -준비 되셨나요? -네. -그럼, 소환하겠습니다. 여성기자의 말과 함께 등장한 것은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미노타우로스 4마리와 오우거 6마리였다. -몸속에 잠자고 있던 힘이여 깨어나라. 스트랭스! -시간의 흐름이여 나를 비켜가라. 헤이스트! -화염의 불꽃. 파이어볼! 파이어볼! 파이어볼! 파이어볼! 그녀에게서 쏘아져 나간 4개의 파이어볼이 미노타우로스의 얼굴에 맞았으나 그들은 잠깐 멈칫했을뿐 그녀를 향해서 계속 돌진했다.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라. 미러이미지! 그녀의 주문에 그녀의 몸이 두 개로 나뉘어져 각기 반대방향으로 튀어나갔다. -바람의 칼날이여, 나의 적을 베어라. 윈드커터! 스팟! "음메에에에!!!!" 수많은 바람의 칼날이 미노타우로스의 곳곳을 훑고 지나갔고, 4마리 미노타우로스는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더욱 광포하게 울부짓었다. 쾅쾅!! 한편, 오우거를 유인하며 반대쪽으로 사라진 그녀의 분신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고, 갑자기 목표를 잃어버린 오우거들도 더욱 분노하며 그녀를 향해 돌진해 왔다. -인비지빌리티! "크릉?" "쿠어?" "음머?" 10마리의 몬스터들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서 사라져버린 그녀를 찾지못하여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코를 벌렁거렸다. "크아아앙!!!" 후우우웅!!! -플라이! 힘하나는 최강으로 인정하는 오우거의 몽둥이가 채리플랑을 향해서 무식하게 휘둘러 졌으나 그녀는 이미 공중으로 날아오른 뒤였다. -이제 끝을 내볼까? 워터볼! 워터볼! 워터볼! 워터볼! 워터볼! 워터볼! 워터볼! 촤아아아악! 몬스터들의 위로 거대한 물덩어리가 쏘다졌고, 그들은 물에빠진 쥐새끼처럼 변하여 공중에 떠있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훙!!훙! 오우거중에 몇몇은 화를 참을 수 없는지 주위에 있는 바위와 나무를 마구 던졌으나 그녀가 너무 높이 있었기 때문에 맞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후후훗, 약간 짜릿할거야. 하늘에서 내려준 심판의 창이여 내 손에 하나되어......... 그녀의 주문은 잠시동안 계속되었고, 밑에서 더욱 화가난 몬스터들은 미노타우로스까지 포함해서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던지고 있었다. -------------------------------------------------------------------------------- -자자, 다 끝났단다. 라이트닝~~~~~~. 파직! 파지직!! 씽긋. 그녀의 주문이 끝나고 마지막 발동을 남겨놓은 채, 머리위로 들려진 손에 거대한 전기의 창이 생겨났고, 그녀는 그것을 보며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스피어!!!! 휘이이이!!! 쫘아악!! 찌지지지지직! 대기를 찟으며 날카롭게 날아간 라이트닝 스피어는 바위를 던지려하는 오우거의 머리에 정확히 꽂혔고, 그 오우거를 중심으로 생겨난 전기가 그들의 몸과 땅에 있는 물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와우. 정말 멋지군요. 어라? 한 마리가 도망가는데요? 라이트닝 스트라이크에서 그나마 충격을 덜 받은 미노타우로스가 있었는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열심히 도망가고 있었다. -그러네요. 어느새 공중에서 내려온 그녀는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미노타우로스를 가리키고 또 다른 주문을 외웠다. -바닥의 마찰력이여, 너의 본질을 무시하고 사라져라! 그리스! 쾅당! "음머어~~" 흙바닥에서 미끄러진 미노타우로스는 쉽사리 일어서지를 못한 채 계속 바둥거렸고, 그런 미노타우로스를 보면서 그녀는 또 다른 주문을 외웠다. -솟아나라 나의 의지를 따르는 줄들이여. 인탱글!! 쉬리릭! 길게 솟아난 나무줄기들이 바닥에 넘어져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감쌌고, 미노타우로스는 그동안 받은 충격 때문인지 나무줄기를 끊지 못한 채 발버둥만 쳤다. -마지막이네. 잘가. 솟아나라, 대지의 창이여. 어스 스피어! 푹! 푹! 푹! 땅에서 솟아난 여섯 개의 토창은 미노타우로스의 몸을 뚫고 밖으로 모습을 들어내었다. -대단하군요. 5서클의 마법사가 이렇게 강하다니 말이죠. 만약 전사라면 웬만한 고렙이 아니고서는 상대도 할 수 없는 오우거와 미노타우로스를 이렇게 쉽게 잡다니. 역시 극악의 마법사에게도 뛰어난 장점은 있네요. 그렇죠? -마법사가 키우기 어려울지는 몰라도 한방에 몬스터를 잡는것에서 더욱 많은 재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죠. 저희 현자길드에서는 뛰어난 마법사가 많이 나오도록 다양한 도움을 제공하니 마법사가 되시고 싶으신 분들은 저희 현자길드에 가입해 주세요. -네, 여기까지 김은영이었습니다. "휴우...... 멋지네." 채리플랑의 마법을 감상한 현민은 자신도 어서 5서클이 되고 싶었다. "빨리 해야겠어." 잠시 쉬었다고 생각한 현민은 먹은것을 치우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게임기 속으로 들어갔다. -접속하기 두 번째로 접속하는 것이어서인지 현민은 좀전보다 조금 더 익숙하게 게임에 접속했다. [캐릭터 룬 Lv.18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현민은 눈앞이 밝게 변한다고 느끼고 있을 때, 어느순간 자신이 종료했던 자신의 방에서 눈을 뜬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신기하네...." 꼬르륵. "어라?" 분명히 밥을 먹었기 때문에 현민의 배에서 소리가 들리면 안돼지만 현민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의 배에서는 다시한번 소리가 들렸다. 꼬르륵. "흠..... 물어봐야겠지?" 1층으로 내려온 현민은 안내데스크에서 예쁘게 졸고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깨우려다가 너무나 편히 자는 모습때문에 그냥 밖에 나갈것을 결정했다. '너무 편히자니깐 깨울수가 없잖아.......' 그러나 처음 와본 현민이 생각 못한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현민이 처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잠깐 울린적이 있는 방울소리였다. 딸랑딸랑. "네, 어서오세요~~~." 곤히 자고있는 모습에서 너무나 빠르게 바뀌는 그녀의 태도에 현민은 문만 열고 나가지도 못한 채, 당황한 표정으로 서성거렸다. "저, 저기......" "죄송해요. 잠자는데 깨웠죠?" "아, 아뇨. 괜찮아요. 그런데 어디가세요? 설마, 벌써 포기하신건가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밥을 먹고 접속했는데 뱃속에서 소리가 들려서요." "그거 때문에 나가시는 건가요?" "네." 현민의 말을 들은 그녀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1층의 한쪽을 가르켰다. "저쪽으로 가시면 식당이 있을거에요. 방 열쇠를 보여주시면 무료로 식사를 드리니 열쇠를 가지고 다니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1서클을 몇 단계까지 올리셨나요?" "전부 4단계에요." "빠르시네요. 레벨도 오르신거 같고..... 중간에 깨달으셨군요?" "네."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이 현민은 보기가 좋다고 느껴졌다. "흠... 그럼 말씀드려야겠네요." "뭘요?" 그녀의 말에 현민은 식당으로 옮기던 발걸음을 돌려 그녀가 있는 안내데스크로 다가갔다. "음.. 마법이 서클로 나뉘어 진건 아시죠?" "물론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게 한가지가 있어요. 그건, 1서클의 6단계가 2서클의 1단계와 똑같은 수준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깐, 1서클의 10단계는 2서클의 5단계와 같다는 얘기에요. 물론 2서클의 6단계는 3서클의 1단계와 같은 수준이고요." "그 공식은 모든 서클에 적용되는 것인가요?" "물론 그것은 아니에요. 마법이 깨달음의 학문이라서 일정 수준에서는 커다란 깨달음을 필요로 해요. 그래서 마법이 어려운 것이죠." "저기, 음.. 뭐라 불러야하죠?"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했으나 현민은 그녀의 이름을 몰랐기에 말을 열 수가 없었다. "샤이나에요. 그냥 샨이라고 불러주세요." "아네, 저는 혀....니 아니라 룬이에요." "와~ 이름이 멋지네요." "샨씨도 이름이 예쁜데요 뭘." 평소에 칭찬이라고는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현민이어서 그런지 샨의 말에 그는 얼굴까지 붉혔다. "고마워요. 그런데 마법서는 어떻게 하실거죠?" "흠... 일단 한번에 사야겠는데요. 얼마에요?" "2서클은 약간 비싸요. 하나에 50원이죠." "50원이요?" 현민의 전재산이 1실버 10원인 것을 생각하면 그가 살 수 있는 책의 숫자는 겨우 두권이었다. "네, 비싸죠? 하지만 2서클 부터는 공격이 가능한 마법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그만큼 가치를 하는거죠." "모두 몇 개인가요?" "음..... 하나, 둘, 셋, 넷……열. 열 개네요. 종류도 말해드릴까요?" "아뇨, 일단 돈부터 벌어야겠어요." "네, 그전에 식사부터 하세요. 아까부터 자꾸 소리가 나네요. 풋." "하, 하하하." 꼬르륵. 그녀의 말대로 현민의 뱃속에서는 오래전부터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현민은 식당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평소의 심한 편식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깨끗이 식판을 비웠다. "마법사 길드에는 나밖에 없는건가?" 밥을 먹고 밖으로 나온 현민은 자신이 식사를 하는 동안 썰렁했던 식당의 모습을 기억했다. 그가 시간을 잘못 맞춘 것인지 아니면 원래 사람이 적은 것인지 현민은 혼자서 식당을 차지하고 밥을 먹었다. "일단, 초보자 사냥터가 좋겠지?" 현민은 주위의 유저들와 NPC에게 물어보면서 초보자 사냥터를 찾아갔다. 초보자 사냥터가 직 저렙인 유저들을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 확실한지 그 사냥터는 마을 바로 밖의 성벽 근처였고, 그곳에는 수많은 토끼들과 노루 그리고 몇몇 두더지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흠.... 경비가 바로 옆에 있으니깐 위험하면 도와줄수도 있는건가? 뭐, 위험도 없지만." 현민이 생각하기에 초보자 사냥터에는 커다란 위험이 없어보였기에 사람이 없고 경비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것은 현민이 엄청난 착각을 한 것이었다. "일단 마법사니 마법을 사용해야겠지? 스킬창." 현민의 앞에는 반투명한 스킬창이 모습을 들어냈고, 현민은 그중에 초반에도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을 찾아보았다. "매직미사일, 인탱글, 홀드, 파이어라......풋, 쉽잖아." 무슨 생각인지 가볍게 미소를 지은 현민은 반투명으로 떠있는 스킬창에서 인탱글을 찾았다. "여깄다." 인탱글(Entangle) 소모 정신력 : 20 능력 : 로프나 줄 같은 물체(나무뿌리, 덩굴, 가죽 끈, 밪줄 등등)를 조종해서 부릴 수 있다. 조종 가능한 로프의 굵기 : 5.5cm 조종 가능한 로프의 길이 : 45m 조종 가능한 거리 : 40m 현재 단계 : 4 주문 : 자연에 존재하고 자연으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물건들이여............. "자연에 존재하고 자연으로 만들어지 가느다란 물건들이여............." 1분 정도가 지나고 현민은 주문을 끝마칠 수가 있었다. "역시, 주문이 많이 짧아졌네. 이제 마지막 말만 하면 돼는건가? 흠......" 현민은 발걸음을 옮겨 커다란 노루의 앞까지 다가갔다. 초보자 사냥터에 있는 몬스터라 그런지 모든 몹들이 비선공이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순진하고 맑은 눈망울로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쳐다보지마. 미안해지잖아."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현민의 모습은 먹이를 앞에둔 육식동물 같았다. "자~~. 그럼, 시작할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친절하다고 느끼면서 현민은 손을 들어올려 거대한 노루를 가르켰다. "인탱글!" 쉬리릭! 현민의 마지막 주문에, 노루의 발밑에서는 기다란 나무줄기가 솟아나와 노루를 감싸 묶었고, 현민은 발버둥치는 노루를 보며 잠시 고민했으나, 다시한번 스킬창을 뒤적여 다음 마법을 찾았다. "여깄다." 현민이 인탱글 마법주문을 발동 시킨후, 다음으로 찾은것은 파이어 마법이었다. 파이어(fire) 소모 정신력 : 3 능력 : 조그만한 불씨를 만들어 나뭇잎이나 나뭇가지에 간단히 불을 붙일 수 있다. 현재 단계 : 4 주문 : 대기에 흩어져 있는 뜨거운 기운들이여, 나 그대들의 힘을 빌려.............. "대기에 흩어져 있는 뜨거운 기운들이여, 나 그대들의 힘을 빌려........" 현민은 스킬창에 길게 쓰여진 주문들을 그대로 읽었고, 파이어 역시 1분정도가 되었을 때, 전부 읽을 수 있었다. "마법이 너무 길어." 주문을 다 읽은 현민은 마지막 시동어를 남겨놓은 채 묶인 상태에서 자신의 피부가 상하도록 발버둥치는 노루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파이어." 화르륵. "끼익! 끼이이익!!" 자신을 감싼 나무줄기가 타들어가면서 고통을 느낀 노루가 비명을 질렀지만 현민은 그런 노루를 쳐다보지 않은 채, 고개를 돌리고 노루의 비명소리가 없어지기를 기다렸다. "하아.........게임일 뿐인데 왠지 모르게 미안하네." 잠시 후, 노루의 비명은 완벽히 사라졌고, 현민은 고개를 돌려 노루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고기가 됐네......" 현민은 통째로 익어버린 노루를 보며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했다. 보통 게임에서는 몬스터를 죽일 경우 아이템을 떨구고 사라지기에 가상현실인 「싸울아비」도 그럴것이라 여겼지만 현민이 만든 노루고기는 그런것도 없는지 현민에게 계속 자신을 강조했다. "일단 들고 갈까? 그런데 어떻게?" 현민이 가져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그것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가 않았다. "하아..... 맞다!!!" 깊은 한숨을 내쉬던 현민은 무엇이 생각났는지 스킬창을 열었고, 하나의 마법을 찾아 주문을 외웠다. 실드(shield) 소모 정신력 : 12 +분당 3의 마나 소모 능력 : 직경 1m, 두깨 4cm인 반투명의 구를 생성하고 대상을 보호한다. 현재 단계 : 4 주문 : 대기에 흩어져있는 바람의 힘이여, 내 앞에 뭉쳐.............. "대기에 흩어져있는 바람의 힘이여, 내 앞에 뭉쳐.........." 노루를 보며 한번 웃은 현민은 노루를 가르키며 주문을 외웠다. "실드!" 둥글게 만들어진 실드는 노루를 감쌌고, 현민은 그런 실드를 굴리며 마을을 향해 쉽게 움직였다. 그그긍. 그그긍. 그그긍. 동그란 무언가를 열심히 굴려가며 안으로 들어가는 현민의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한지 초보자 필드에서 사냥을 하고 있던 모든 유저들이 자신의 사냥도 잊은 채 현민의 모습만을 구경했다. 몇몇은 현민의 모습이 너무 재미있는지 열심히 스샷(스크린샷)을 찍기도 했다. "자, 잠깐!" "응?" 현민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문 옆에 서있던 경비병이 그를 잡았고, 현민은 그런 경비에게 잡혀 실드와 함께 성벽의 구석 어디론가 끌려갔다. "저, 저기......" "네?" 현민이 끌려간 장소에는 5,6명의 경비병들이 모여있었고, 현민과 실드는 그런 경비병들에게 둘러싸여 의미심장한 눈초리를 받았다. "저 노루고기 우리에게 팔지 않겠나? 우리가 돈도 주고, 뼈도 골라주겠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기여서 그런데 고기만 팔지 않겠나?" 그들의 말에서 현민은 그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들의 말에도 불만이 없었기에 현민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놓을까요?" "아, 아니. 잠깐만 기다리게." 어디론가 달려간 경비병은 커다란 돗자리를 가져와 바닥에 깔았고, 현민은 그 위로 실드를 옮긴 후에 실드를 해제 시켰다. 털썩! "음......" "흐음....." "오....." 노루고기를 감싸고 있던 실드가 풀리면서 그 안에 있던 노루고기가 돗자리 위로 떨어졌고, 노루고기의 맛있는 냄새가 그들의 코를 간지럽혔다. -------------------------------------------------------------------------------- "어서 고르게." "잠시만 기다려." 재촉하는 경비들의 말에 현민을 끌고 온 경비병이 작은 칼을 들고 노루고기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오~~. 엄청 잘 익었군." "정말 그렇군. 불타는밤의 드웰 아저씨도 이렇게 잘 익히지는 못했는데 말야." "하하하, 그 얘기 오랜만에 듣는군." "하하, 그걸 잊을 수는 없지." "자네 정말 실력자군." 현민에게 가까이 다가온 경비병 한명이 현민의 어깨를 두들기며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자, 다 됐군." 어느새 해체가 끝났는지 노루고기를 손질하던 경비는 익은 고기를 그릇에 옮긴 채, 현민에게 뼈와 돈을 건내주었다. "이거는 약속했던 것일세. 이런 노루고기의 크기와 상태로 봐서는 10실버를 줘야겠지만 우리도 마누라에게 눈치보면서 먹는것이니 7실버만 받아주게. 괜찮겠나?" "물론이죠. 저도 처리가 곤란했거든요." "하하, 마음에 드는 친구군. 자네도 조금 먹고 갈텐가?" "아뇨, 아쉽지만 밥을 먹고나와서요. 저는 먼저 가볼게요. 편히 드세요." "고맙네. 다음에도 부탁해." "네~~." "그대로 직진하면 광장에 도착할걸세!!!" 빠르게 뛰어가는 현민이 걱정되서인지 아니면 정말 마음에 들어서인지 현민이 사라지는 마지막까지 경비들은 현민에게 친절히 대해주었다. "이건 장비창에 들어가겠지? 장비창." 현민은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보자기를 비어있는 장비창에 넣은 후, 손을 빼었다. 띵! 현민이 손을 넣었다 뺀 자리에서 뼈 모양의 그림이 생겼고, 그 옆에는 보자기 모양의 그림이 생겼다. "같이 넣어도 종류가 달라서 그런지 따로 들어가네." 현민은 두 개로 나뉘어진 장비창의 아이템을 보면서 익숙한 길을 따라 마법사 길드를 찾아갔다. 딸랑딸랑. "어서오세요~. 룬씨 네요?" "네, 마법서 살게요. 돈좀 벌었거든요." "어머? 어렇게 빨리요?" "네." 그녀는 1시간도 안돼어서 돈을 벌어온 현민이 신기한지 연신 놀라워하는 눈초리로 처다보았다. "여기 10권입니다. 종류는 매직애로우, 워터볼, 그리스, 큐어 포이즌, 염력, 워터브레스, 포이즌, 메모라이즈, 디그, 아이스예요." "샨씨의 말대로 공격마법이 몇 개 있네요." "그렇죠? 하지만 진짜 마법사는 3서클 부터에요." "네, 그럼 저는 올라가볼게요." 책을 받아든 현민은 10권의 책을 들고 2층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열심히 하세요." 올라가는 현민을 보며 샨은 들릴듯말듯한 목소리로 현민을 응원했다. 탁! 방으로 들어서 발로 방문을 닫은 현민은 2서클의 마법서를 빈 책꽂이에 꽂아 놓고, 책상에 펼쳐진 1서클의 마법서를 봤다. "흐음........ 5단계는 진짜 수학이라고 할만 하네." 5단계부터는 복잡한 사칙연산이 아닌 일반적인 수학이 나와 현민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5단계의 문제가 그렇게 어려운것은 아니었으나, 초등학교%26#8228:중학교 수준의 복잡한 문제였기 때문에 고생했을뿐, 현민은 5단계 역시 그럭저럭 풀어나갈 수 있었다. "끝났다~~~!!!" 현민은 라이트와 매직미사일 마법의 5단계를 얻은 후,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단 두 개의 마법서를 전부 풀었을 뿐이었는데 시간은 이미 18시간이 넘어있었고, 밖에서는 해가 뜨고 있었다. "뭐지? 해가 지는것도 느끼지를 못했는데, 해가 뜨고 있다니...........어?"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천장에 마법등불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현민은 그것이 빛의 양을 변화없이 조절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거 때문에 낮인지 밤인지도 몰랐던 건가 보네." "하아아암!!! 갑자기 졸리네. 종료!" [종료하시겠습니까?] "응!" 현민은 한차례 기지개를 핀 후, 접속 종료를 하고 게임기에서 몸을 일으켰다. "으으으으!!!!" 거의 다섯 시간을 누워있어서인지 현민은 허리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통증에 신음을 내뱉었다. "역시 운동좀 해야하긴 하는데......." 가볍게 허리를 움직인 현민은 시계를 한번 본 후, 자신의 책꽂이에 꽂혀있는 문제집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제 11시 반이니깐...... 조금 있다 자야지." 한참을 뒤적거리던 현민은 맨 밑의 구석에서 무언가를 찾아 꺼내고는 그것을 살펴보았다. "휴우.... 다시 공부하니 귀찮네. 하지말까?" 현민은 중학교 책을 훑어보다 관둘지 말지를 고민했지만 결국에는 보기로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끝까지 보았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다 보았을 때는 현실에서도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는 새벽 5시였다. "하암, 오늘은 해뜨는것을 두 번이나 보네. 이제는 정말 자야지." 현민은 잠시 누울곳을 살펴보더니 이불을 들고 게임기 내부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이렇게 누우니 편하네......." 방학을 했기에 두려운 것이 없는 현민은 등교를 걱정하지 않고, 편히 잠에 빠져들었다. -------------------------------------------------------------------------------- "형, 밥먹어." 자신이 늦게 잔 것을 숨기기 위해서 현민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하암..... 잘먹겠습니다." 현민은 떠지지 않는 눈으로 아침밥을 먹으며 계속 졸았고, 현민의 아버지는 그런 현민이 못마땅 한지 불편한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현민아, 방학 때 계속 집에만 있을 생각이냐?" "..." 현민의 아버지는 대답이 없는 현민이 익숙한지 현민의 대답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했다. "학원가라." "혼자 할거에요." "집에서 노는 것밖에 못 봤는데 언제 하겠다는 거냐?" "이번 성적도 올렸잖아요." "겨우 51등 해놓고 말이 나오는거냐?" "..." 아버지의 말에 이번에도 현민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런 가족 분위기에서 현민의 남동생과 현민의 어머니는 그들의 대화를 못들은 듯 조용히 식사만 하였다. "학원이나 과외를 알아볼테니 다녀라." "아뇨. 혼자하겠어요." "너 따위가 혼자 뭘 하겠다는거냐!!" "....잘 먹었습니다." "그래." 아버지의 외침에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현민의 아버지가 읽고있던 신문으로 현민을 때렸으나 현민은 가만히 맞을뿐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여보, 이번에는 말이 심했어요." "저 자식이 저따위 말을 하는데 뭐가 심해! 저따위 말이나 하니깐 겨우 51등밖에 못 하는거 아냐! 내 친구들의 자식은 전부 1,2등 하는데 내 자식만 51등이야! 51등!" "그렇지만......" "잘 먹었습니다." 현민의 동생도 식탁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갔고, 식탁에 남은 현민의 부모님은 현민을 두고 계속 소리쳤다. 그러나 나중에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현민의 아버지가 하시는 소리나 어머니가 하시는 소리 모두 현민의 욕이었다. "..." 방안까지 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현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초점 없는 눈동자로 게임기에 걸터앉아 한동안을 그렇게 있었다. 털썩! 게임기에 힘없이 누워버린 현민은 헤드셋을 끼고 게임기의 문을 닫은 후, 「싸울아비」속으로 들어갔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18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서서히 보이는 눈앞의 책상으로 다가간 현민은 조용히 팬을 들고 세 번째 마법서를 열었다. 스슥. 스스슥. 방 안에서는 현민이 문제를 푸는 소리만 들렸고, 현민은 조용히 문제만을 풀어나갔다. 스스슥. 스슥. 탁! 평소보다 훨씬 짧은 시간만에 문제를 풀어버린 현민은 다음 책을 펼치고 계속해서 문제를 풀어나갔다. 스스슥...... 스슥. 탁! 스스슥..... 탁! 거의 14시간동안 마치 로봇이 문제를 푸는 것처럼 손만을 움직이던 현민이 변화를 보인것은 마지막 마법서를 풀고 나서였다. 툭! 한방울의 눈물이 조용한 방 때문인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현민은 자신의 눈에서 나온 눈물을 잠시 바라보다가 머리를 뒤로 저치고 눈을 감아버렸다. 툭!툭! "왜? 왜? 왜? 왜?……"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현민은 계속 같은 말만을 내뱉었고, 그의 말에는 높낮이가 전혀 없었다. 똑똑! 흠칫! "룬씨? 룬씨 계세요?" "아, 아, 네...." 재빨리 일어난 현민은 목을 가다듬고 눈물을 닦은 후, 방문을 살짝 열었다. "배고프실것 같아서 먹을것좀 가지고 왔어요. 괜찮으신거죠?" "감사합니다...." "조금은 쉬어가시면서 하세요. 목소리가 약간 가라앉은게 많이 피곤하신 것 같아요. 눈도 빨갛고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샨은 자신이 들고있던 식판을 현민에게 건내준 뒤에 재빨리 밑으로 내려갔다. "하아....."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잠시 쳐다본 현민은 문 옆에 기대어 서서 또 다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하아, 하아..... 룬씨 이거 좀 드시고 하세요." ".....?" "음.... 피로회복제 비슷한거에요. 효과는 더욱 좋고요." "....고마워요." "열심히 하세요. 모르시는것은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내려오시고요." "네, 고마워요." 자신에게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주는 샨에게 약간이나마 억지로 미소를 지어준 현민은 방문을 닫고 그녀에게서 받은 식판과 음료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 뭐하는걸까?" 툭! 투툭! 현민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현민은 24시간이 지나면 울리기 시작하는 경고음이 들릴 때까지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 현민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어느새 게임기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아?" 몸을 일으킨 현민은 말을 하려했으나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현민은 그런 자신의 목을 잠시 만졌을 뿐, 말이 나오지 않는것에 대해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지 다시 게임기에 누워 접속을 했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28 접속하시겠습니까?] 끄덕끄덕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다시 접속을 한 현민의 앞에는 샨이 가져다 준 음식과 음료가 놓여 있었고, 현민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아아...... 상태창." 말이 나오는지를 확인한 현민은 스탯창을 불렀고, 그의 앞에 반투명한 스탯창이 나타났다. ------------- 이름 : 룬. Lv : 28 힘 : (13) 민첩 : (9) 건강 : (11) 반사신경 : (15) 지능 : 14(15) 정신 : 21(17) 공격력 : 29 -31 마법력 : 0 방어력 : 45 생명력 : 150 정신력 : 420 보너스 스텟 : 135 -------------- "올랐네? 왜? 깨달음도 없었고, 아무것도 메시지도 없었는데?" 그러나 가우리에서 만든 「싸울아비」에는 현민이 모르는 숨겨진 또 다른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아지경. 아무런 생각이 없이 1시간 이상을 있으면 레벨이 오르는 특별한 시스템인데 가우리에서 이것을 만들 당시 아무도 못할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넣은 것을 현민이 해낸것이었다. "버그인가? 운영자는 어떻게 부르지?" 자신이 버그에 걸렸다 생각한 현민은 주저없이 운영자를 부르려 하였고, 현민의 말이 운영자를 불렀는지 그의 앞에 공간이 생기면서 한명의 운영자가 모습을 들어내었다. "부르셨나요?" "......" "저기....." 자심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운영자를 한동안 쳐다보던 현민은 고개를 돌렸다. "하아....." "무슨 의미죠?" "갑자기 레벨 10이 올랐습니다. 버그인거 같아 연락하려 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시는군요." 현민은 자신의 앞에 있는 여성운영자의 말을 무시한 채, 운영자를 부른 이유를 말했다. "아이디가 뭐죠?" "룬." "잠시만요. 상태창. 아이디 룬." 스윽. 스윽. 현민의 앞에 있는 그녀는 현민의 정보를 살펴보는 듯 허공에서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고, 현민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멀뚱히 서있었다. "놀랍네요!! 10시간동안 무아지경을 이루셨다니....." "무아지경?" "아네, 무아지경은 가우리에서 「싸울아비」를 만들 때, 장난삼아 넣은 건데요. 무아지경 한시간에 레벨이 1 올라가는 시스템이에요. 무아지경이라는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건데 일분도 지속하기 어려운 거잖아요? 그래서 걱정없이 넣은거죠. 그런데 그것을 10시간이나 하셨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거에요." "....버그는 아니란 소리군요." "당연하죠! 「싸울아비」가 수십년을 투자해서 만든 게임은 아니지만 사람의 뇌파를 읽어들이고 신호를 보내는 게임이기 때문에 버그는 절대로 있어서 안돼는 게임이죠. 그런 게임에 버그가 있으면 심각한 일도 일어날 수 있잖아요?. 그럼 저는 가볼게요. 나중에 인연이 있으면 다시 뵈요." "안녕히."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모든 내용을 들은 현민은 운영자와 인사를 나누었고, 운영자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공간을 만들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스륵. 탁! 현민은 운영자가 사라진 공간을 잠시 바라본 뒤,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1서클의 6단계 마법서와 2서클 마법서의 처음을 풀기 시작했다. "하아....... 아프네." 1서클 마법서를 모두 풀어버리고 2서클 마법서를 펼친 현민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집중을 하려했으나 자꾸만 찾아오는 고통 때문에 쉽게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털썩! "하아......" 어쩔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더운 공기를 환기할 겸 창문을 열고 잠시간 밖을 바라본 뒤, 침대위에 몸을 뉘었다. "게임이지만 왠지 졸린 것 같아........" [수면모드로 변환됩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누운 것이었지만 어느순간 현민은 정말 잠이 들어버렸고, 게임 내부의 설정도 수면모드로 바뀌어 버렸다. 똑똑! "룬씨?" 그가 잠에 빠지자마자 샨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으나 너무 깊이 잠이든 현민은 그녀가 찾아온 것도 모른 채, 계속 잠만잤다. 스으윽. "룬씨?" 안에서 대답이 없는 현민이 걱정스러웠던 건지 샨은 문을 살짝 열은 채 현민의 방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응?" 현민이 웃옷을 벗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확인한 샨은, 얼굴을 붉히며 안으로 들어가 현민에게 조심스레 이불을 덮어주고 잠시간 현민을 바라본 뒤, 문을 닫고 나갔다. "응?" 공포영화처럼 한순간에 눈을 뜬 현민은 잠자기 전과 다른 상황을 잠시 생각하다가 잠결에 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처음 주는 천옷을 다시 입었다. "얼마나 오래 잔거지?" 잠깐 잤다고 느낀 현민은, 진짜로 자신이 잔 시간이 5시간을 넘은 것을 보고 이유모를 억울함을 느꼈다. "짜증나네..... 종료." [종료하시겠습니까?] "응...." 위이이이잉 게임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킨 현민은 잠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11시.....라, 하루종일 한건가?" 현민은 아무도 없는 집을 잠시 바라본 뒤, 주방으로 가서 간단한 밥상을 차렸다. 딸그락. 딸그락. 조용한 집안에 현민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움직이는 소리만 울려 퍼졌고, 현민은 그것이 익숙한지 아무런 말도 없이 밥만 먹었다. 벌컥벌컥! 밥 먹은 것을 깨끗이 치우고 냉장고에 있는 물을 거칠게 마신 현민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28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하아........" 단 삼일만에 게임에 익숙해진 현민은 조용히 책상으로 다가가 2서클의 첫 번째 마법서를 열었다. "정말로 다른것은 없네?" 스슥. 스스슥. 이미 1서클의 6단계를 전부 마친 현민은 2서클의 1단계도 익숙하고 빠르게 풀어나갔다. 뿌드득"으으윽!!!" 장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었던 현민은 2서클의 1단계도 전부 풀어버린 후, 가볍게 몸을 풀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그를 반기는 것은 비명을 지르는 허리였다. "주, 죽겠다." 한동안 일어선 것도 그렇다고 앉은 것도 아닌 묘한 자세로 서있던 현민은 허리의 고통이 줄어드는지 점점 허리를 폈고, 잠시 후에는 똑바로 설 수 있었다. "이제부터 고등학교 수준인가?" 이제는 1서클의 7단계를 풀어야 하는 현민은 2서클의 수준이 현재 자신이 배우는 고등학교 수준인 것을 보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2서클의 2단계가 고등학교 수준이면 5서클은 얼마나 높은 경지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자! 기운내고 마스터를 목표로 간다!!" 우울한 생각을 떨쳐내려는 것인지 힘껏 고함을 지른 현민은 몇 번 더 몸을 움직이다가 자리에 앉아 다시금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 "최근에 배우던거라 풀기가 쉽네....." 1서클의 7단계와 2서클의 2단계는 현민이 배운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내용들이라서 그런지 현민은 문제를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다. "흠.... 이제 1서클 주문도 엄청 짧아 졌는데 사냥이나 갈까?" 현민은 이제 한줄 정도로 짧아진 주문을 보며 잠시 고민했으나 이제 풀기 시작한 2서클의 매력에 2서클도 올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좋아! 2서클도 8단계까지 한 다음에 조금만 사냥을 해야지." 각오는 했으나 그것이 이루어질지는 역시 미지수였다. "음, 접속시간이...... 25시간이라. 앞으로 5시간 남았네?" 꼬르륵. "밥 먹고 종료해야겠다." 7단계의 문제도 전부 푼 현민은 그냥 종료하려 했으나 뱃속에서 들리는 원초적인 소리 때문에 종료하려던 생각을 멈추고 1층으로 내려가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어머! 이제 내려오세요?" "네." 자신에게 너무나 잘해주는 샨이 어색한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선을 두고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조금은 쉬어가면서 하세요. 그러다가 병 나겠어요." "남들도 저만큼은 하는걸요, 뭐. 그럼." 현민은 자신을 걱정하는 샨에게 약간은 차가운 대답을 해주고는 식당으로 들어가 밥을 먹었다. 탁. "응?"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던 샨은 어느새 식당으로 들어왔는지 현민이 먹고 있는 것과 똑같은 메뉴의 식판을 들고 현민의 맞은편에 앉았다. "같이 먹어도 돼죠?" "네." 현민은 짧게 대답했고, 그녀는 현민의 짧은 대답이 상관없는지 현민의 앞에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저기....." "네?" "왜 그리 마법을 열심히 하시는거죠?" ".....글쎄요." 그녀의 갑작스런 질문에 현민은 그녀에게 들려줄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처음의 1순위 목적이라면 대학, 그리고 아무도 안하는 것을 한다는 모험심이었지만 지금은 그 두가지 이유가 아닌 정말로 마법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 "배우는게 재미있어서요." 현민은 자신의 입에 넣으려던 숟가락을 잠시 멈춘 후, 그녀에게 자신의 현재 마음을 말했고, 현민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기분좋은 얼굴을 하고 현민을 바라보았다. "저도.... 마법이 좋았어요. 배우는것이 너무 좋고, 나의 손에서 무언가가 생긴다는 것이 너무 좋았죠." "...." "하지만, 겨우 3서클의 실력으로는 어느 곳에서도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모험을 하고 싶어도 겨우 3서클의 실력으로는 너무 위험했죠." "하지만..." "마법사의 3서클은 기사로 치면 겨우 견습 수준이에요. 저에게는 더 이상의 재능도 발견되지 않아 길드에서도 점점 잊혀져갔죠." 과거를 기억하는 샨의 눈에는 어느새 두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당신의 말은 틀렸어요." "?!" 어떻게 보면 샨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현민의 말에 샨은 어찌보면 화를 내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1서클로도 몹을 잡았죠. 아무런 공격력도 없는 1서클 마법으로 알고있지만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거에요. 마법에 종류는 많다고 샨씨가 그러셨죠? 다양한 마법이 생긴것은 다양한 일에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가벼운 마법도 꼭 있어야 하는 장소가 있는 것처럼 모든 마법은 없어서는 안되는 장소가 존재하고 있어요. 우리 마법사라는 존재는 그것을 잘 활용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가요?" 현민의 말을 듣고서 그동안 자신의 생각에 많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샨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또 있어요." "또?" "샨씨는 자신을 너무 낮게 보고있어요. 3서클에 오래 머물고 계시다고요?" "네...." "지금 샨씨의 나이가 30살을 안넘은것을 생각했을 때, 샨씨는 아주 어려서부터 마법을 배워오셨을거에요. 그런 샨씨가 3서클에서 멈추어 계신건 샨씨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정해놓고 있다는 것과 같은거죠. 물론, 인간에게 한계가 없다는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한계가 적어도 자신이 정해놓은 한계보다는 엄청나게 높은곳에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죠. 한계를 없애세요. 그러면 한단계 더 나아가실 수 있으실거에요. 그럼 이만."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말을 많이 한 현민은 가만히 앉아서 울고있는 샨을 내버려 둔 채 자심의 방으로 돌아갔다. 툭. 투툭. "고마워요.....룬." 현민이 올라가고도, 오랜 시간을 눈물만 흘리며 앉아있었다. "하아......." 현실로 돌아온 현민은 게임기에서 일어나 샨에게 했던 자신의 말을 기억했다. "내 자신도 조절하지 못하는 병신이 남에게 충고를 하다니........크, 크크큭." 어딘지 모르게 슬픈듯한 현민의 말이 빈 집에 울려퍼졌고, 현민은 현실에서도 신호를 보내는 배를 체우기 위해 간단히 식사를 했다. "나도 이제 폐인이군." 밥을 다 먹고 잠시 볼일을 본 현민은, 거울을 통해서 약간은 푸석하게 변한 자신의 보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건 나의 선택." 자리를 벗어난 현민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 후, 게임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28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싸울아비」로 돌아온 현민은 다시 책상에 앉아 다음 단계의 마법서를 펼쳤다. 녹는점이 낮고 물러서 가공하기 쉬우므로 땜납 등의 원료나 자동차에 사용하는 축전지의 전극 등에 사용되며, 중독되면 중추 신경 장애, 지능 저하 등의 피해를 입히는 중금속을 쓰시오. "과학? 이게 문제야?" 1서클의 8단계에서는 여직껏 풀던 수학문제가 아닌 과학문제가 나왔고, 현민은 나머지 17개 중 몇몇의 문제가 과학문제인 것을 발견했다. "흠..... 쉬워야 하는데." 현민은 앞으로 자신이 풀어갈 문제들을 걱정하며 일단 자신의 앞에 있는 문제부터 풀기 시작했다. "음...... 이게 수은이었나?" "음...... 납인거 같기도 하고......" 한참을 고민하던 현민은 어차피 첫문제인데 틀리고 다시할 생각으로 편한 마음을 가졌다. "납땜을 하는데 수은으로 하면 위험하겠지?" 납. 다행이 현민의 선택이 맞았는지 마법서에는 다음 문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휴..... 수학만 하다가 과학이 나와서 그런지 어색하네." 한숨을 내쉰 현민은 그때부터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갔다. -------------------------------------------------------------------------------- "어머? 룬씨 오랜만에 내려오시네요. 푸훗." "아, 네." 룬이 1서클 8단계와 2서클 3단계를 풀기시작한지 현실로 6일이 지난 지금 현민의 몰골은 길거리의 거지를 연상시켰다. 게임으로 거의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마법서를 가지고 끙끙거린 현민은 샨이 문앞에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어가며 방에서만 생활했기에 그런 모습이 된 것이었다. "정말 힘드네요." "후훗, 좀 씻으셔야 겠어요." "네, 그러네요." 현민은 식당으로 들어가서 대충 밥을 먹고 나왔고, 샨은 그런 현민을 바라보면서 계속 웃음을 흘렸다. "2층 욕실은 제가 쓸게요." "네, 아무도 없을거에요." "그럼." 현민은 2층 복도 맨 끝에 있는 욕실로 들어가서 옷을 벗고 물속에 몸을 담갔다. 첨벙. 스윽...... 찰랑. "이게 게임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 평소와는 다른 일이 있을 때마다 현민은 이것을 만든 사람 얼굴이 꼭 보고싶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모든 것을 배우고 싶었다. "엄청난 시련이 있었겠지?" 찰랑. 가우리의 사장이 겪었을 시련을 생각한 현민은 자신의 삶과 가상의 그를 비교해보며 물속에 몸을 깊이 담근 후, 생각해 보았다. 똑똑. "룬씨?" 첨벙! "네, 네!?" 현민이 몸을 담고있는 욕실의 문 앞에서 현민을 부른 샨은 현민의 대답을 듣고 미안한 기색을 흘렸다. "죄, 죄송해요. 너무 오래 계시는 것 같아서 혹시 주무시나 와본 거예요. 그럼 가볼게요." 욕실의 문앞에서 느껴지던 샨의 인기척이 점점 사라져갔고, 현민은 샨이 있었을 문의 맞은편을 잠시 생각했다. "이제 나가야겠네.... 정화!" 현민의 시동에 현민이 몸을 담궜던 물이 다시 처음의 상태로 돌아갔고, 현민은 수건으로 몸을 닦은 후, 밖에 있었던 옷을 주워입었다. "이제야 사람 같아요." "그런가요? 아참! 3서클 마법서는 얼마나 하죠?" "3서클 마법서는 개당 1실버 50원이고요, 개수는 11개 이네요." "그럼 16실버 50원인가요?" "그렇죠." 샨의 말을 들은 현민은 자신의 장비창에 있을 돈을 생각했다. 자신이 벌었던 10실버에서 1서클 마법서 90원과 2서클 마법서 5실버, 그리고 방값을 개산해서 현재 그의 자금은 3실버 10원으로 총 13실버 40원이 모자랐다. 게다가 다음달 방값도 지불할 생각을 하면 14실버 40원이 부족한 현민이었다. "저 잠시좀 나갔다 올게요." "사냥하실 생각인가요?" "네. 잠시 다녀오려구요." "저도 같이 갈래요." "네?" 현민이 나간다는 말에 몸을 일으킨 샨은 현민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현민의 앞에 섰다. "괜찮아요? 저랑 나가도." "어차피 올사람도 없는걸요, 뭐. 우리 바람이나 쐐요." 현민은 샨과 함께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마땅히 그녀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딸랑딸랑. "가요." 밖으로 나와 마법사길드의 문을 잠가버린 샨은 현민의 옆에 마주서서 현민이 앞장서기를 기다렸다. '하아...' 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현민은 거리를 걸어나갔다. "오랜만에 나오네요." "잘 안 나오시나 봐요?" "네, 이 마을의 마법사 길드사람은 저 혼자니까요." "네..." 수군수군. 현민과 샨이 거리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쳐다보는 많은 시선에 현민은 부담을 느꼈다. 샨이 NPC이지만 그녀의 미모에 모든 유저들과 NPC들은 샨 몰래 그녀를 힐끔거렸고, 자연스레 그녀의 옆에 있는 현민을 보며 모두가 수군거렸는데, 현민은 그것이 자신을 욕을 하는것 같아서 자꾸 얼굴이 내려갔다. "룬씨 같이가요."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걸어가고 있었던 현민은 사람들의 시선을 참을 수 없어 약간의 속력을 냈는데, 그의 발걸음을 쫓아가지 못한 샨이 현민의 옆에 바짝 붙어버리며 현민과 샨 사이의 거리는 더욱 좁아졌다. "샨씨." "네?" 길을 걸어가던 현민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고, 샨 역시 그의 옆에 발을 멈추었다. "레벨 28에는 보통 무엇을 잡죠?" "음.... 늑대정도가 적당할 걸요? 여러마리라면 무리지만 한 마리 정도라면 충분할 거에요." "이 근처에 오크는 없나요?" "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한두마리는 나올거에요. 하지만 오크 레벨은 70~80사이고 보스같은 경우 오우거랑 비슷한 수준이라 힘들거에요." "우리 그쪽으로 가요." "하지만 공격마법도 마땅히 없는 우리들로는 무리일텐데." "아뇨. 저희들도 충분히 강한 마법사에요." 현민은 샨을 설득해서 오크가 나오는 지역을 향해 갔다. 물론, 현민은 샨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걸어나갔다. 부스럭. 흠칫. 어느새 숲에 도착한 현민과 샨은 몬스터들과의 첫 싸움이기에 많이 긴장했는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근처에서 나오나요?" "네." 오크가 나오는 깊은 숲까지 들어온 현민은 주위를 둘러보며 숨을 곳을 찾았다. "여기에 숨어있죠." "숨어요?" "일단 이리로 오세요." 쿵! "취이익!" 그들이 길게 자란 수풀 사이에 숨자마자 저 멀리서 오크 한 마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크의 키는 일반 사람정도였으나 그들의 몸에는 단단해 보이는 근육이 있었고, 손에는 뭉툭한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워터 볼을 캐스팅해주시겠어요?" "네." 현민의 부탁에 샨은 아무런 것도 묻지 않고 2서클 마법인 워터 볼을 캐스팅 했고, 그녀가 워터 볼을 캐스팅 하는 동안 현민은 염력을 캐스팅했다. -------------------------------------------------------------------------------- 염력(念力) 소모 정신력 : 초당 4 능력 : 정신의 집중으로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초능력 현재 단계 : 3 주문 : 모든 것은 의지로 이루어지니 나 여기서 나의 의지로..... "모든 것은 의지로 이루어지니...." "워터 볼!" 현민이 캐스팅을 거의 끝마칠 무렵 옆에서 워터 볼을 캐스팅한 샨이 자신의 워터 볼을 오크를 향해 날렸고, 그 모습을 본 현민은 다급히 주문을 외워 그녀가 날린 워터 볼을 염력으로 간신히 붙들 수 있었다. "휴우...." "왜?" "워터 볼에 포이즌을 걸어주시겠어요?" "대지에 퍼져있는 작은 독들이여 강대한 힘으로 나의적을 중독시켜라. 포이즌!" 푸른색으로 찰랑거리던 워터 볼이 초록색에서 점점 진해지며 검정색 가깝게 변했고, 현민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것을 붙들고 있었다. 1서클 마법에도 아쿠아라는 물계열의 마법이 있었지만 이것은 현민의 주먹정도의 물이기에 현민이 샨에게 워터 볼 마법을 부탁한 것이었다. "잘봐요." 슈우욱. 현민이 조종하고 있는 그녀의 워터 볼은 오크의 머리위에 둥둥 떠다니다가 어느순간 오크의 머리를 감쌌다. 뽀글뽀글 쾅!쾅! 퍽! 워터 볼 때문에 숨을 못 쉬던 오크는 조금씩 물을 들이켰고, 몽둥이로 주위를 부수며 괴로워했다. 크게 효과를 볼수는 없는 포이즌이지만 물에 석여 있었고, 물이 뱃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폐로 들어간 것이었기에 오크는 심각한 데미지를 입고 몸을 누울 수밖에 없었다. "아......" 적당한 조합과 사용으로 마법의 능력을 한단계 더 상승시키는 현민의 능력은 샨에게 마법에 대한 새로움과 현민의 실력에 대한 놀라움을 주었다. 샨은 오크의 상태를 보고 현민의 전투를 본받고자 현민의 전투방식을 외워나갔다. "대단해요!" 오크가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한 현민은 샨과 함께 죽은 오크에게 다가갔고, 오크의 시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죽은것이 분명함에도 오크의 몸에서 아이템이 나오지 않자 아무런 정보도 없는 현민은 샨에게 물어보았고, 샨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표정으로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아이템은 어떻게 얻죠?" "시체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시체를 봤을 때, 반짝거리는 부분에 습득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을 거에요." "그렇군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아인은 오크의 허리춤에서 나오는 하나의 빛을 발견했고, 그곳에 손을 가져갔다. 스윽. "응?" 현민이 오크의 품에서 꺼낸 것은 조그만한 주머니였다. "돈주머니네요?" "음...." 몬스터에서 나온 돈주머니에는 많은 양의 돈 대신에 동전 몇 개만 들어있었다. "1실버 16원이라......" "이정도면 괜찮은것 같은데요?" "그래요? 그럼 여기서 조금만 더 하죠." 샨의 말을 들은 현민은 또다시 근처에 숨어 다음 몬스터를 기다렸다. "저기....." "아까랑 똑같이 해주세요." 이미 한번 해봤던 것이라 그런지 두 번째 사냥에서는 샨과 현민의 호흡이 그럭저럭 잘 맞았다. "왠지 사냥이 너무 쉬운데요?" "그래요?" "조심!!" "꺄아악!" 퍽! "큭!" 현민과 샨이 몬스터의 시체에서 아이템을 주우려 할 때, 근처에 또 다른 오크가 있었는지 현민과 샨에게 소리없이 다가와 샨을 치려했으나, 오크의 몽둥이가 샨을 때리기 직전, 현민이 몸을 날려 오크의 몽둥이를 오른팔로 막을 수 있었다. "도망가요!!" NPC인 샨이 걱정이 된 현민은 어떻게 해서든 샨만은 도망치게 만들려 했으나 다리가 풀렸는지 아니면 현민이 걱정되어서인지 샨은 도망을 가지 않았다. "하아..." "취이이익!" 샨이 어쩔 줄을 몰라하는 상황에서, 현민과 오크는 멀리 떨어져 서로 노려보았다. "덤벼, 후우우....." "크아아아!!" 현민의 말에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화가난 오크는 현민을 향해 이리저리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달려갔다. "쿠어어!" 퍽! "꺄악." 현민 역시 그 오크에게 달려가 몽둥이를 왼팔로 막았고, 오크의 몽둥이가 잠깐 뒤로 튕겨져 다시 현민을 때리려 하는 순간 현민이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며 오크의 눈을 오른손으로 후려쳤다. "꾸에엑!!" 오크가 현민의 주먹에 당황하며 뒷걸음질 칠 때, 현민이 다시 한걸음 다가서며 반대쪽 눈을 다시한번 쳤고, 오크는 양쪽 눈이 안보이는지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며 현민을 경계했다. "후우우..... 잘가렴."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오크의 등이 현민에게 보이는 순간, 오크의 등으로 빠르게 다가간 현민은 왼손으로 오크의 오른쪽 어깨를 잡고, 오른손으로 오크의 턱을 잡은 채 턱과 어깨를 잡은 양손을 강하게 뺐다. 우두둑! 털썩! 레벨이 올랐습니다. 현민의 공격에 목이 돌아간 오크는 다시는 걸어다닐 수 없게 되었고, 현민은 그 오크를 바라보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오크를 물리친 현민의 상태는 피가 간당간당했지만 너무나 지친마음에 확인을 하지는 않았다. 레벨 70을 넘어가는 오크를 잡고도 레벨이 겨우 1오른 이유는 한 마리가 줄 수 있는 최대 경험치가 33.3333......% 이상을 넘을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폭렙을 방지하려는 가우리의 의도였다. "괜찮아요? 안 다치셨어요?" "하아.. 괜찮아요. 샨은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샨은 자신을 걱정하는 현민의 말보다 자신 때문에 현민이 다쳤다는 것을 미안해했다. "아이템이나 주어서 돌아갈까요?" "네....." "어라?" 현민이 잡은 두 마리의 오크는 처음 잡은 오크보다 부자였는지 그들의 몸에서 빛나는 곳이 몇군데 더 있었다. "목, 허리, 가슴, 허리." "와... 네 개나 돼요?" 아무일 없는듯 행동하는 현민의 태도에 어느정도 미안한 마음이 사라진 샨은 현민의 말에 놀란듯 소리쳤다. 두 번째로 잡은 오크에게서는 목걸이 한 개와, 단도, 돈주머니를 얻을 수 있었고, 현민이 싸움으로 잡은 세 번째 오크에서는 돈주머니 하나만 나왔다. "목걸이는 뭐에요?" "글쎄요?" -------------------------------------------------------------------------------- 생각의 목걸이(여성용) 지능 +5 정신 +5 스킬 사용시 정신력 10% 감소. "좋은건데요? 이거는 샨씨가 갖으세요." "네?" "여성용이거든요." "고, 고마워요." 오크에게서 나온 목걸이는 예쁜 모습에 걸맞게 남성은 착용불가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딱히 남성용이라도 착용하고픈 생각이 없었던 현민이 그것을 선뜻 샨에게 넘긴 것이었다. 단검. 공격력 : 10 -15 "목검보다는 좋은데요?" 현민은 단검을 장비창에 넣으며 말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돈주머니 두 개를 얼어보았다. "어라?" "와..." 하나의 돈주머니에서는 처음과 비슷한 정도의 돈이 나왔으나 두 번째에서 나온 것은 손톱정도의 빨간 돌이었다. "이거 보석 맞죠?" "네. 루비인가? 저도 보석은 처음 봐서 잘 모르겠어요." 샨의 말에 현민은 기분이 좋아졌다. 보석이란 것은 어느 세상에서나 희귀하기 때문에 비쌀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어디에 팔아야 하죠?" "마을에 보석상이 있으니 거기로 가면 될거에요." "돈도 벌었으니 이만 가요." 그럭저럭 대박이 나온 현민은 레벨이 오른것도 모른 채 마을로 다시 돌아갔다. "아참!" "네?" "초보자 사냥터에 잠시 들릴까요?" "왜요?" "가보면 알아요." 마을로 들어가려하는 순간 마을의 경비병들이 생각난 현민은 초보자 마을에서 노루 한 마리를 잡아주기로 했다. "솟아나라 나의 의지를 따르는 줄들이여. 인탱글!" 쉬리릭! "끼이익!" 땅에서 솟아오른 나무줄기들이 노루를 감쌌고, 현민은 예전과 같이 파이어 주문을 외웠다. "대지에 흩어진 불의 기운들이어 나의 의지아래 작은 불꽃을 만들어라. 파이어!" 화르륵! "끼이익!!" "와아! 멋진 조합이에요. 인탱글과 파이어만으로도 몹을 잡을 수 있다니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에요." 현민은 샨의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마지막으로 실드 마법을 준비했다. "대지에 흩어진 바람의 기운이여......" "실드!" "응?" 현민이 실드의 주문을 외우고 있는 사이 현민의 옆에 서있던 샨이 현민을 대신하여 노루에게 실드를 걸었고, 노루를 중심으로 작은 실드 하나가 모습을 들어냈다. "실드 쓰시려고 하신거 맞죠?" "네, 맞아요." "어떻게 하려구요?" 샨의 질문에 현민은 대답을 하기보다는 실드를 굴리며 몸으로 말해주었다. "경비병들이 노루를 사줄거에요. 아저씨들~~." 마을 입구에 있는 경비병들이 보이자 현민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 그르릉. 그르릉. "자네, 또 왔구만?!" "네.. 선물 드리려구요." "하하, 안주가 없는걸 어떻게 알고 왔나~~?" 경비병들은 현민을 향해 넉살좋게 웃으면서 현민이 끌고 오는 노루를 저번에 가져갔던 안쪽으로 옮겨갔다. "우리 사정은 알지?" "마누라한테 뜯기는거요?" "하하, 역시 아는군!" "5실버만 주세요. 오늘 사냥에서 대박이 나왔거든요." "오~. 우리야 싸게 주면 좋지~~!!" "하하하하." 현민과 경비병들이 웃으며 거래를 하고있는 동안 샨은 뒤에서 조용히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잘가게~~!!" "수고하세요~!" 현민은 옆에 샨을 대리고 광장으로 향했고, 샨은 그동안 현민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왜요?" "네?" "아까부터 쳐다보셨잖아요." "제가 아는 모습하고 많이 다르셔서요." "다른건 없어요." "네?" 샨의 물음에 현민은 앞으로 걸어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사람과 지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에요. 그가 나에게 다가오면 나도 그에게 다가가는 것이고, 남이 나에게 거리를 두면 나도 남에게 거리를 두는거죠. 저는 이렇게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내요." 현민의 말을 들은 샨은 자신과 현민 사이의 거리를 한번 바라본 뒤, 현민을 향해 한걸음 다가섰다. "지금의 거리가 우리 둘의 거리인가요?" 샨이 다가오고 현민이 한걸음 멀어져 다시 처음의 거리가 된 그들의 사이를 바라보며 현민은 입을 열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로 나란히 길을 걸어가던 그들은 광장을 지나 근처에 있는 잡화점을 먼저 찾아갔다. "어서오세요~." "노루 뼈를 팔려고요." "올려놓으시겠어요?" 현민은 잡화점 아가씨의 말에 장비창에서 두 마리의 노루 뼈를 꺼내었다. "와~. 솜씨가 좋으신가봐요. 노루뼈를 가져오시는 분은 처음이세요." "독특한 방법이 있을 뿐인걸요." "음.... 처음이고 하시니 비싸게 5실버 드릴게요." "고마워요." "다음에 또 오세요~~." 현민과 샨은 물건을 팔고 보석점을 향해 걸어갔다. "보석이 얼마나 할까요?" "글쎄요...." 샨의 질문에 현민역시 아는것이 없는지라 무어라 말을 해줄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세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현민은 나름대로의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딸랑. "어서오세요." "루비를 보고 싶습니다. 손톱정도의 루비가 얼마나 하죠?" "어디에 사용하실거죠?" "마법에 쓰려고 합니다. 가공되지 않은 보석이 어느정도 팔리는지 알고 싶네요." "음.... 가공되지 않은게 싸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5골드면 구하실 수 있을거에요." "그런가요? 그럼 이정도의 크기는 얼마나 팔릴까요?" 어느정도 대답을 들었다 싶은 현민은 자신의 장비창에서 작은 루비하나를 꺼내 보석점의 아가씨에게 보여주었고, 그녀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현민에게 대답하기를 꺼려했다. "그, 글쎄요.... 한 4,5골드 받지 않을까요?" "흠..... 이거보다 작고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 5골드인데, 이것이 4,5골드라고요?" "손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현민과 대화를 나누던 아가씨는 직원이었는지 근사하게 차려입은 아저씨가 현민에게 다가왔다. "보석을 팔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정도의 보석이 얼마정도나 할까요?" "흠..... 이정도라면 저희가 5골드에 구입을 하겠습니다." -------------------------------------------------------------------------------- 현민이 가져온 보석이 가공을 거칠 경우 10골드 이상으로 팔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 주인은 타협을 위해 반정도의 가격을 불렀고, 어느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던 현민은 뒤 에서 구경하고 있는 샨이 놀랄정도의 상술을 보여주었다. "5골드에 사시겠다고 하시는 것을 보니, 실제 가격은 7골드정도 하겠군요. 물론 가공을 거친다면야 더욱 비쌀 수도 있겠지만 제가 파는 것은 가공이 안돼있는 것이니 그만큼의 비용을 뺀다 하셔도 7골드는 주셔야 하겠는데요?" "흐음! 7골드까지 받으신다면 저희도 손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희도 이익을 어느정도는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6골드 50실버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도 조금 비싼듯 싶은데요?" "솔직히 말해보시죠? 저한테서 루비를 사셔서 가공을 거친다 하여도 가공비가 2골드를 넘지는 않을것입니다. 하지만 가공되어 팔리는 물건들을 보니 10골드는 가뿐히 넘더군요." "흠! 6골드 50실버에 드리겠습니다." 현민의 말에 주인이 백기를 들었고, 현민과 샨은 밝은 얼굴로 보석점을 나왔다. "자요!" 현민은 자신이 받은 돈의 반을 샨에게 넘겨주었다. "네? 아뇨. 전 필요없어요. 아무것도 한게 없잖아요. 오히려 방해만 되고." "오늘 하루종일 저랑 돌아다니셨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도움이 되었어요." 현민의 말에 샨은 당황하며 아무런 말도 못했고, 현민은 그런 샨에게 억지로 3골드 30실버를 건내주었다. "오랜만의 산책도 끝냈으니 이제는 마법을 배우러 가야겠네요." "저도 오늘 룬씨에게 많은것을 배웠어요." "다행이네요." "오늘 고마워요." "일찍 들어가죠. 너무 늦었어요." 하루종일 사냥만 하고 다니는 다른 유저들에 비해 달랑 몹 4마리만 잡은 현민이었지만 그것조차도 피곤한 하루였다. "먼저 들어갈게요." "네, 열심히 해요, 우리." 현민의 마법응용력이 샨에게도 도움이 되었는지 샨은 그동안 풀지 않았던 마법서를 가지고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하겠어...." 한편, 2층에 도착한 현민은 침대에 누워 상태창을 보고 있었다. ------------- 이름 : 룬. Lv : 29 힘 : 2(13) 민첩 : 3(9) 건강 : 1(11) 반사신경 : 5(15) 지능 : 19(15) 정신 : 32(17) 공격력 : 33 -35 마법력 : 0 방어력 : 51 생명력 : 159 정신력 : 535 보너스 스텟 : 140 -------------- 상태창을 열은 현민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동안 상태창만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부르셨나요?" "네." 현민이 허리를 일으켜 세우자마자 현민의 앞으로 저번에 왔던 운영자가 다시 찾아왔고, 현민은 운영자에게 자신이 생각한 것을 부탁했다. "지능과 정신력을 제외한 나머지가 오르지 않도록 할 수 있나요?" "예?" "게임내에서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해도 스텟이 오르지 않도록 해주실수 있나요?" "마땅히 이익을 추구하는것이 아니라서 가능하지만.... 왜 그러시려고 하시는 거죠?" "이유는 없습니다. 순수하게 지능과 정신력만 올리고 싶었거든요. 최대한 빠르게 해주실수 있나요?" "일단, 물어보겠습니다. 잠시만요." 현민이 요구한 것이 현민에게 딱히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긴 가우리의 운영자들은 현민의 요구를 찬성했고, 그의 스텟은 지능과 정신력을 빼고는 모두 사라졌다. ------------- 이름 : 룬. Lv : 29 힘 : (13) 민첩 : (9) 건강 : (11) 반사신경 : (15) 지능 : 19(15) 정신 : 32(17) 공격력 : 29 -31 마법력 : 0 방어력 : 45 생명력 : 153 정신력 : 535 보너스 스텟 : 140 -------------- "스텟은 지우는것이 가능하지만 신체정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남아있을거에요. 더 이상의 문제는 없나요?" "네, 고마워요." "그럼, 재미있게 즐기세요." 현민의 부탁을 들어준 운영자는 다른 일이 있는지, 즉시 사라져 버렸고, 현민도 자신의 상태창을 다시 한 번 보고, 종료를 했다. 위이이잉"후우우...." 뿌드득 게임기에서 일어난 현민은 가볍게 몸을 움직여줬고, 그의 몸에서 수많은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윽. 스윽. 게임기에 걸터앉은 현민은 자신의 오른손을 보며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게임에서 나온 현민은 게임속의 전투때문인지 아직도 가슴이 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거기서 다르게 움직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게임속에서 이루어진 단한번의 전투는 그동안 맺혀있던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만큼의 거대한 흥분을 현민의 가슴속에 남겼다. 좀전의 싸움을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게임에서 오크가 달려오는 동작을 그리며 다음에 할 동작을 미리 떠올려 보았다. "만약 여기서 옆으로 움직였다면?" 현민은 방안에서 빠르게 옆으로 움직였으나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게임속의 오크는 현민보다 배는 빠르고 강했기 때문에 쉽게 피할 수 있을것 같았다. 자신보다 배는 강한 존재를 현민이 게임속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머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본능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높은 수치의 반사신경이 현민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었다. "오크의 능력이라면 더 빨라." 현민은 자신이 생각하는 오크의 몽둥이를 옆으로 피했으나 현민이 만들어낸 가상의 오크는 조금더 빠르게 현민의 몸에 몽둥이를 휘둘렀다. "여기서 앞으로 튀어간다면? 여기서 몸을 약간 숙이면 확실히 안맞겠지? 몽둥이가 움직인 곳이 가슴부분이었으나." 쿵! "이크!" 현민은 상상의 오크를 피해 빠르게 움직였으나 자신의 발걸음에 쉽게 울리는 바닥소리에 화들짝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아무리 마른 성인남자라도 집안에서 뛰면 바닥이 울리는데 마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현민의 몸이 집을 울리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실례했네... 나갈까?"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약간씩 어둠이 사라지는 듯한 느김이 드는 새벽 4시에 가볍게 옷을 입은 현민은 10분정도 거리의 근처 약수터 공원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어두운 밤거리 아무도 없는 길가를 걷는 것이어서 무서울 수도 있었지만 오크와의 싸움으로 머릿속이 가득찬 현민에게는 주위의 환경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아무도 없겠지?" 공원의 넓은 한쪽에 자리를 잡은 현민은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사람이 없는것을 확인하고는 어둠속에서 자신이 싸웠던 오크를 그려나갔다. "하아아...." 스윽. 현민이 몸이 한순간 앞으로 튀어나갔고, 이내 그의 왼손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움켜잡으며 현민의 몸이 전체적으로 틀어졌고, 그의 오른손이 어느 한곳을 스치며 바닥으로 내려갔다. "후우후우..... 오크가 가만히 있었을까?" 현민은 자신의 주먹이 나가던 속도를 생각한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빠르게." 현민은 다시한번 상상속의 오크를 만들고 빠르게 달려나갔다. '일단 오크가 몽둥이를 휘두르면 고개를 숙여서 피해고.' 현민은 상상속의 오크가 휘두른 몽둥이를 낮은자세로 피한뒤에 몸을 바로잡고 자신을 스쳐지나간 몽둥이를 잡았다. '여기서 왼손을.' 휘익! 현민이 휘두른 왼손은 현민이 생각한 것보다 느린 속도로 뻣어갔고, 상상속의 오크는 그런 현민의 주먹을 가볍게 피한 채 현민이 잡고있던 몽둥이를 빼서 현민을 향해 다시한번 휘두르고 있었다. 팍! '이크!' 현민은 갑자기 몸을 낮췄다 일어났고, 오른손으로 오크의 턱을 갈겼다. '맞았다. 하지만 버틸 수 있을거야.' 현민의 상상속 오크는 현민의 주먹을 맞고 더욱 거칠게 움직였으며 현민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런 오크의 몽둥이를 피했다. '이때!' 몽둥이가 스쳐지나갔다고 확신한 순간 현민은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가며 손바닥으로 따귀를 때리듯 오크의 귀를 강하게 쳤다. 현민의 손에 맞은 오크는 귀에서 피를 흘리며 주저앉았고, 현민은 자신의 허리쯤에 온 오크의 머리를 보았다. '왼발을 축으로 하고, 몸을 강하게 돌린 다음에 일직선으로!' 팍! 현민의 발이 오크의 코를 정확히 때렸고, 현민은 다시 한바퀴를 돌았다. '다시한번!' 이번에는 오른발을 곧게 뻗은 것이 아니라 강하게 휘둘러 오크의 턱을 후려쳤다. 스르르륵. 현민이 만들어낸 가상의 오크는 현민의 한방에 몸을 바닥에 눕혔고, 현민은 많이 밝아진 하늘을 보았다. "풋, 누가 보았으면 영락없는 미친놈인가?" 자신이 어떠한 자세로 허공에 손짓, 발짓을 했는지 아는 현민은 아직까지 아무도 없는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자신이 움직였던 모습을 다시한번 상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으음...." 부스스. 오전에야 잠이든 현민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조용히 눈을 떴고, 조용히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3시? 하아암." 털썩! 시간을 확인한 현민은 다시 침대위로 몸을 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멀쩡해진 눈으로 일어나 습관처럼 욕실로 들어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현민이 현민이 샤워하는 소리만 들렸다. "밥먹고 해볼까?"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현민은 주방을 한참 뒤지더니 결국 김치 한 접시와 밥 한 공기만을 쟁반에 담아 거실로 가져왔다. 쟁반을 무릎위에 놓고, 쇼파에 편히 않은 현민은 바로 옆에 있는 리모콘을 들어 TV를 켰다. 삑. "어라? 재방송이네?" 현민이 밥을 먹으며 TV채널을 돌리고 있을 때, 어느 한 위성채널에서 「싸울아비」에 대한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이고, 그 게임이 우수하다보니 「싸울아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채널도 있었지만, 하루 종일 게임기 속에서 살고있던 현민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를 못했다. -드디어 첫 싸울아비가 등장했다더군요? -네, 「싸울아비」란 게임 이름에서 알다시피 가장 중심이 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싸울아비란 직업은 과거 우리나라의 전통무사를 바탕으로 재현한 것이기에 게임내에서 싸울아비란 직업은 모든 무기를 다루고, 모든 것으로 전투가 가능한 최강의 직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 유저들도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지 않나요? 그것과 다른점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물론, 일반 유저들도 다양하게 배울 수는 있으나 싸울아비란 직업의 특징은 모든 무기의 숙력도가 100%라는 것이죠. 일반 궁수들이 스킬을 사용하여 특수능력을 사용한다면 싸울아비란 직업은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특수스킬 비슷하게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약간 이해가 안가는데요? -예를 들어 설명해 드리죠. 궁수직업에는 관통이라는 스킬과 여러개의 화살을 동시에 쏘는 스킬이 있습니다. 하지만 싸울아비란 직업은 이러한 스킬이 없어도 활을 훌륭히 다룸으로써 여러개의 화살을 동시에 쏘아 맞출수도 있고, 어떠한 대상을 관통시킬 수도 있는 것이죠. -스킬과 특별한 차이가 있나요? -스킬이라는 것은 마나가 필요하고 발동되는 시간이 필요하고 명령어가 필요하지만 싸울아비의 기술은 숙련된 기술자가 자신의 노하우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것이죠. 거기에다가 만약 스킬을 익힌다면 그것은 일반 궁수직업이 사용하는 스킬보다 더욱 강력하고 화려하다는 것이죠. -멋지네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첫 번째 싸울아비가 우리나라의 여고생이라는 것이에요. -여고생이요? "여고생?" TV에서 하는 소리에 현민은 먹던 밥까지 내려놓고 TV의 볼륨을 높였다. -자세한 개인정보는 허락을 하지 않았지만 간단한 스크린샷을 준비했으니 보여드릴게요.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TV화면의 일부분이 바뀌더니 예쁜 여성이 길이가 자신의 키만한 도를 들고 싸우는 모습을 스크린샷 했는지 화면의 모습은 사진과 비슷하게 보였다. -대단하군요. 첫 싸울아비가 우리나라의 여고생이라니. 왠지 자랑스러운데요? -첫 싸울아비인 만큼 모든 이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앞으로 한 달 뒤에 있을 토너먼트에 출전을 한다고 했으니 그곳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으실거에요. -앞으로 한달 뒤의 토너먼트가 기다려지는데요? 그럼 이번에는 토너먼트에 대해서 말해... TV를 중간에 꺼버린 현민은 약간 남은 밥을 서둘러 먹고 게임기 안으로 들어갔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29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서둘러 「싸울아비」에 접속한 현민은 나머지 마법서를 펼치고 서둘러 풀기 시작했다. "재방송에서 한달이라고 했으니 3주정도 남았을거야." 현민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고, 기한내에 최대한의 단계를 올리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 -------------------------------------------------------------------------------- 현실로 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현민은 완벽한 폐인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단계 를 완벽히 올려 2서클 5단계를 마스터 했다. 2서클 6단계와 3서클도 배우려 하긴 했으 나 그것은 현민의 실력으로는 절대 못 푸는 문제였기에 건들지도 못하고 포기해 버렸 다. "그래도 1서클은 마스터 했네...." 부스스한 몰골에 눈 밑에는 다크서클을 만들고, 온몸은 창백하게 질린 현민은 욕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고 피식 웃었다. "사진이라도 찍을까? 크큭." 진정한 폐인이란 무엇인가를 자세히 알려주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현민은 이내 웃음을 멈추고 다음단계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대학수준일거야. 어떻게 풀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도 알지 못하는 현민은 머릿속만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아.... 맞다!" 한참을 고민하며 거울을 보고있던 현민은 자신의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한명의 여성을 볼 수 있었다. "도와줄 수 있겠지?" 그녀가 자신에게 도움을 줄지 알지 못했던 현민은 서둘러 게임기 속으로 들어가 가상현실의 또다른 자신인 룬으로 접속했다. "샨씨?" 2층에서 서둘러 내려온 현민은 샨이 안내데스크에서 마법서를 열심히 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꺄아아~~. 끝냈다!" "축하해요." "어머!"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큰소리로 외친 샨은 현민이 뒤에서 건내는 축하인사에 깜짝 놀라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그를 보고 있을 때, 잠깐 덮어진 마법책의 제목을 살핀 현민은 그녀가 자신을 가르칠 만한 실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룬씨였군요? 언제 오셨어요?" "샨씨가 4서클 마법서를 전부 풀어갈 때요. 4서클 마법사가 된 것을 축하해요." "고마워요." 샨은 현민의 말에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저에게 3서클을 가르쳐 주실수 있나요?" "네?" "샨씨가 알고있는 것을 저에게 가르쳐 주실수 있으신가요?" 현민의 말에 샨은 이해를 할 수가 없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민만을 바라보았다. "2서클 6단계부터 제가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풀 수가 없어요. 저에게 가르쳐 주실수 있으신가요?" "무, 물론이죠!" 현민이 자세한 설명에 샨은 흥분된 표정으로 크게 외쳤고, 그때부터 둘의 공부는 시작되었다. 이미 4서클에 들어선 그녀에게 2서클의 문제 정도는 가벼운 수준이었다. "6단계의 수학도 별로 다른 것은 없어요. 어떻게 활용되는가와 어떤 공식이 사용되냐가 약간 다를뿐이죠...." 샨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고, 평소 공부를 해본적 없던 현민은 그런 샨의 말을 하나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 집중해서 듣고, 가끔은 질문도 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인만큼 조용한 장소를 찾아야 하겠지만 샨의 직업이 마법사길드의 관리인인 만큼 자리를 떠날 수가 없어서 현민이 안내데스크에서 샨에게 직접 수학과 과학에 대한 강의를 들어야했다. 둘의 수업은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열정적이어서 그런지 빠르게 나갔고, 현민은 처음 배우는 어려운 수학이었지만 막힘이 없이 빠르게 익혀 나갈 수 있었다. "처음은 어려울 거에요. 하지만 끝까지 노력하신다면 저처럼 4서클에 도달하실 수 있으실 거에요. 룬씨가 저에게 4서클의 꿈을 이루도록 도와준 것처럼 이번에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 둘은 언제나 같이 공부했고, 그렇기 때문인지 가르치는 샨과 배우는 현민의 마법 수준은 빠르게 나아갔다. "으으윽!!" 게임기에서 일어난 현민은 달력의 날짜를 보고 핸드폰의 시간을 본 다음 다시 게임기에 걸터 앉았다. "이제 2단계네...." 2주가 지나서야 2서클의 7단계와 3서클의 2단계를 마스터한 현민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을 이루었는지 제대로 알지를 못했다. 2주(게임상 8주)동안 겨우 2단계를 올린것만 생각한다면 현민의 실력이 별볼일없이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그가 풀었던 마법서에 그가 알지 못했던 수식과 문제가 나왔던 것을 생각하고 그 수준들이 대학교 2학년정도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의 발전단계는 기적에 가까운 정도였다. "풋, 이제는 정말 친구네." 2주동안 발전한 것은 그의 마법 수준뿐만이 아니라 샨과 현민의 관계도 였다. 현실로 2주. 게임으로는 8주라는 시간을 내내 붙어서 생활한 그들은 언제나 붙어다녀서인지 서로 꺼리는 것이 없어졌고, 서로에 대한 비밀도 많이 알고있는 사이였다. "샨이 기다리겠는데?" 약간의 시간을 더 보낸 현민은 어느사이엔가 다 먹은 밥을 치우고 게임기 속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29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띵! "어라?" 평소와는 다른 상황에 잠시 놀란 현민은 자신의 앞에 생긴 종이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공지] 게임시간으로 2주일 뒤, 카이시아 왕국의 수도에서 제 1회 토너먼트를 실시하겠습니다. 이번 토너먼트는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서로가 검토할 수 있는 무대로서...... 1등 3000만골드, 2등 1000만골드, 3등 800만골드를 드립니다. "샨! 샨! 샨!" "응? 왜?" "읽어봐." "어디....." 현민은 자신이 받은 종이를 샨에게 보여주었고, 샨은 종이를 현민의 팔과 함께 가져와 빠르게 읽어보았다. "3000만?!" "대단하지? 3등만 해도 800만이야!" "나갈려고?" "당연하지! 샨은 어때? 우리 같이가자. 응?" "아니, 나는 못가." "왜?!" 콩! "아야!" "일해야지 먹고살지. 어서 공부나 하자." "에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샨의 반응에 실망했으나 현민은 혼자서라도 그곳에 나갈 생각을 했다. 물론, 현민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들의 공부가 안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길수는 있겠어?" "응?" "시합말야." 어느새 펜을 놓은 샨은 딴생각을 하고 있는 현민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당연하지! 내 마법실력 너도 알잖아?" "하긴 네 JQ(잔머리)를 누가 따라잡을까?" "칭찬으로 들을게." 샨의 의도는 칭찬이 아니었으나 좋은쪽으로만 생각하는 현민이었다. "응원해줄게. 열심히 해." "오오~~.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를 응원한다는데 당연히 1등이지!!" "풋." 예전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현민의 말투와 행동이 많이 익숙해 졌는지 샨은 현민의 말에 익숙하게 반응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만약 1등하면 뽀뽀해줄게." "윽! 그건 아니다." "이게!" 그날의 수업은 물건너 갔고, 그 둘은 공부보다 서로에게 장난을 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 "샨." "응?" "데이트 하러갈까?" "이번에는 오우거 차례인가?" 장난스럽게 말하는 현민의 말에, 그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고 있던 샨은 자신도 지루했던지 환한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샨과 현민이 서로 친해지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가 어느정도 가까워지자 그 둘은 오랫동안을 같이 지내온 소꿉친구와 같이 편한 사이로 보였다. 그동안 현민과 샨은 같이 사냥을 다니면서 더욱 친해졌고, 그들의 마법 실력과 응용력 등은 더욱 발전해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은 3, 4서클이라는 어설픈 실력으로도 어떤 몬스터든 잡을 수 있는 실력이 되었고, 그들의 사냥터는 수준을 가리지 않았다. "앞으로 4일 남았으니 열심히 해야지." "차라리 마법공부를 하는건 어때? 나같이 뛰어난 선생님이 가르친다면 충분히 3단계까지 갈 수 있는데, 응?" "선생님이 뛰어난게 아니라 제자가 뛰어난 거겠지요, 선.생.님?" "푸후훗, 네가?" "왠지 기분나쁜 웃음인데?" 많이 달라진 둘의 모습이었으나 그들의 변화된 모습에서 나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현민의 모습이 NPC처럼 느껴져 마을을 돌아다니던 일반 유저들도 그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가자." "응." 어차피 마법사라 마땅히 준비를 할 것이 없었던 둘은 대충 준비를 끝내고 마법사 길드를 나와 중급 수준의 사냥터가 있는 곳까지 걸어나갔다. 마법사의 길드가 마을의 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수많은 유저들이 장사를 하고 있는 도로를 구경하며 사이좋게 걸어갔고, 언제나 만나던 경비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사냥가는건가?" "네~." "네~." "올때는 아이라도 하나 만들어 오게~~." "저희는 쌍둥이에요~~." "저희는 쌍둥이에요~~." 경비아저씨들의 짓궂은 말이었으나 샨과 현민은 재치 있게 말하며, 오히려 경비들의 표정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하하하. 나는 저들이 정말 좋아." "그건 다들 같은 마음 아닌가? 저들이 나올 때를 기다리기까지 하니깐 말야." "맞아, 맞아. 그보다 이제는 부부 같이 보이는 걸? 동시에 서로 같은 말을 하는것도 그렇고. 저 정도면 완전히 일심동체 아닌가?" "정말 쌍둥이라도 만들어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하하하." "그럼 좋겠지?" 경비들이, 밖으로 나가는 두 명의 남녀를 보며 꺼낸 말은 오랫동안이나 지속됐다. "으음..... 이번에는 계곡쪽으로 갈까?" "어떤곳인데?" "네가 딱 좋아하는 곳. 근데 괜찮아? 저번에 늑대인간 이기지 못했잖아." 그동안의 현민은 마법으로 어느정도 사냥을 한 후에 마지막 한 마리는 꼭 싸워서 죽였다. 하지만 많은 사냥을 다니지 않는 그들이 잡은 것은 오크, 트롤, 늑대인간 뿐이었다. 오크부터 시작한 싸움은 점점 상대가 강해져 갔고, 저번의 사냥에서는 늑대인간과 1:1의 승부였으나 늑대인간의 빠른 스피드에 적절히 반응을 하지 못한 현민의 패배였다. "메~! 너 잠잘 때 이겼네요~." "너어어! 치사하게 혼자나간거야?!" 현민이 몰래 나간것이 억울한지 샨은 현민을 몰아붙였고, 현민과 샨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계곡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갔다. 몰래 나간 현민이 늑대인간과 다시 싸운것은 맞지만 그가 이겼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약간의 지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왠만한 전사들을 능가하는 스피드를 가진 늑대인간을 현민이 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샨 역시 현민의 거짓말을 알고는 있지만 모른척 넘어가 주었다. "특별히 위험한 곳이 있어?" "절벽에 붙어서 이동하면 특별한 위험은 없을거야." "너..... 저번에도 자신있게 말했었지?" "그, 그때는 예외라구!!" 현민이 말한 저번이란 것은 그들이 트롤을 사냥하러 갔을 때였다. 그 당시에 샨의 말을 믿고 당당히 사냥을 하러간 현민은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오크부족 때문에 죽음의 위험에서 간신히 벗어났었다. "이번에는 확실해! 내 입술을 걸고!!" "줘도 사양할게......" "무슨 의미야?" 사냥의 긴장감이 없는 것인지 현민과 샨은 정말로 데이트를 하듯 절벽에 붙어 걸어나갔다. "자~ 한 마리 보이고!" "워터 볼." "염력." "포이즌~." 스르륵. "크아~~뽀글뽀글." 쾅! 콰쾅!! 털썩! "빙고~." "빙고~." 너무나 간단히 오우거 한 마리를 죽인 둘은 서둘러 오우거에게 달려가 아이템을 회수했다. "이번에 뭐나왔어?" "음.... 겨우 돈주머닌데?" "에게... 가난하잖아. 그보다 좀더 재밌는 사냥방법 없어? 나 심심하단말야~~." "히에에엑~~." 현민의 팔에 매달린 샨은 애교를 부리며 현민에게 물었으나,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샨의 모습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성인 샨이 달라붙어서인지 기겁을 하며 떨어져 나와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네가 그럴때 가장 무서워." "한번만 더 말하면 덮쳐주지." "히끅!"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별이 안가는 샨의 말에 현민은 서둘러 입을 다물었으나 샨의 말에 너무 놀랐는지 아니면 연기인지 그의 입에서 쉼 없이 딸꾹질이 흘러나왔다. "다른거, 히끅, 하자..." 샨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현민의 의도인지, 한동안 거리를 두고 피해있던 현민이 오히려 샨에게 붙으며 그녀의 감정에 맞추어 주었고, 그런 그들의 모습은 멀리서 보았을 때, 연인이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찾았다! 잘봐~. 새로운 거니깐." "응!" 어느새 현민의 딸꾹질은 멈춰져 있었고, 자신에게 애교까지 부리는 현민의 태도에 마음이 풀린 것인지 샨 또한 밝은 얼굴로 현민에게 대답을 했다. "실드!" "응?" 현민이 사용한 실드마법은 그들을 감싼 것이 아니라 오우거를 감쌌고, 그런 현민의 마법에 샨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쾅!쾅!! "크아아앙!!" "어떻게 하려구?" "잘 보라고. 일단은 실드! 실드! 실드!......." 자신을 감싸는 투명한 무언가에 짜증이 났는지 오우거는 연신 실드를 때렸고, 오우거의 무식한 주먹질에 실드의 벽은 조금씨 금이 생겼다. 한겹의 실드로는 오우거를 가두지 못한다는 것을 파악한 현민은 연이어 실드를 펼쳤고, 여러장이 겹친 실드는 안쪽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여러개의 실드가 모여있어서인지 쉽사리 깨지지는 않았다. "자~~.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환상의 마법! 아쿠아! 아쿠아! 아쿠아! 아쿠아! ......." "엥?" 실드에 가까이 다가간 현민은 조심스럽게 실드에 손을 대고 실드의 안쪽에 아쿠아 마법을 사용했다. 현민이 사용한 아쿠아는 계속해서 실드의 안에 싸여갔고, 오우거는 자신의 발부터 차오르는 물을 보며 실드를 더욱 두드렸으나 실드는 결코 깨지지 않았다. "서, 설마...." 샨의 설마가 맞은 듯, 계속해서 시전한 현민의 아쿠아는 점점 차올랐고, 결국에 실드 안에는 오우거와 물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꼬르르륵!! 툭! 툭! 물 때문에 제대로 된 힘이 나오지 않는지, 오우거는 물을 들어마시고 괴로워하면서, 연신 실드를 쳤으나 건드리는 소리밖에는 나오지가 않았다. ".....익사." "우히히히히, 재밌지?" "하아.... 마나(정신력)가 남아돌아?" "뭐어때? 재밌잖아? 다른것도 보여줄게." 한참을 기달려서 오우거를 익사시킨 현민은 익사한 오우거의 시체에서 아이템을 빼내고 다음 목표를 찾아 두리번 거렸다. 샨에게서 자신이 생각한 반응이 안 나와서 그런것인지 현민의 눈은 불타올랐고, 현민은 타오르는 눈으로 다음 목표의 오우거를 찾아다녔다. -------------------------------------------------------------------------------- 한참을 기달려서 오우거를 익사시킨 현민은 익사한 오우거의 시체에서 아이템을 빼내 고 다음 목표를 찾아 두리번 거렸다. 샨에게서 자신이 생각한 반응이 안 나와서 그런 것인지 현민의 눈은 불타올랐고, 현민은 타오르는 눈으로 다음 목표의 오우거를 찾아 다녔다. "빙고~. 잘봐." 툭, 투두둑. "헤이스트 메모라이즈 해놓은것 있지?" "응." "저~~기. 오우거 주변의 땅에 헤이스트 걸어줄래?" "땅?" 오우거의 주변으로 무언가를 던진 현민은 오우거가 알아차리기 전에 재빨리 숨어 오우거의 주변에 자신이 던진 것이 골고루 뿌려졌나를 확인했다. 그의 솜씨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운이 좋아서인지 대충 던져진 무엇들의 사이로 오우거가 걸어왔고, 현민은 그틈에 재빨리 샨에게 부탁을 했다. "헤이스트!" "크릉?" 스으으윽"와!" 샨의 헤이스트 주문에 오우거의 주변에서 갑자기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고, 오우거는 갑자기 자라나는 나무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주위를 경계했다. "이제 어떻게 하려고? 더 이상은 안자라잖아?" "Growth of Plants!" "식물 거대화?!" 뿌드득! 크득! 콰자자자작! 현민의 주문에 오우거를 감싸고 있던 나무는 거침없이 자라났고, 오우거는 나무들의 틈에 끼어 바둥거리더니 어느순간 행동을 멈추고 연신 고통에 떨어댔다. "끄으으으....." 푸아아악! 촤자작! 촤작! "더러워." "그, 그러게...." 현민도 마지막은 예상은 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말을 내보였다. 주위를 감싼 나무들 사이에 낀 오우거의 몸에서 뼈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 싶더니 계속해서 자라나는 나무들 사이의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오우거의 몸도 터져버린 것이었다. "아이템은 어쩌지?" "너는 저기에서 줍고 싶어?" ".....아니." 샨에게 구박만 받은 현민은 샨에게 이끌려 그 자리를 벗어나 다른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라?" "왜?" "무슨 소리가 들려." "뭐?" "이쪽!" "같이가~~." 길을 잘 걷고 있던 현민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갑자기 발걸음을 세우고 집중을 하더니 어느 한곳으로 달려 나갔고, 샨은 이유도 말하지 않고 달려나가는 현민을 욕하며 그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끼이이익." "들린다!" "어?!" 샨과 현민이 도착한 곳은 절벽 바로 밑의 돌 틈이었는데 그곳에는 아직 어린 하피 한마리가 숨어서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하피잖아!" "응, 게다가 다친것 같아." "어떻게 하게?" "치료." "캬아아악!" 현민이 하피의 다친곳을 치료해 주려 했으나 하피는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현민의 접근을 쉽게 허용해주지 않았다. "자, 자. 착하지?" 덮썩! "끼아아아악!!" 재빠르게 몸을 날린 현민은 하피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고, 현민의 손길을 벗어나려던 하피는 가슴과 다리에 난 상처가 벌어졌는지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어서 이걸먹어." 현민은 연신 비명을 지르는 하피의 입에 서둘러서 알약 하나를 넣어주었고, 그걸로도 걱정이 되었는지 하나를 더 넣어주었다. 치이익. "끼이이...." 하피의 상처에서 하얀 연기가 나오며 급속도로 치유되기 시작했고, 현민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듯 하피를 놓아주었다. "그거 처음에 주는 초보자용 치료제지?" "알아?" "당연하지! 판매금지! 즉시회복! 처음 하면서 주어지는 아이템인데도 불구하고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아무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아." "....몰랐어." 그러나 이미 두개를 사용해 버린 현민은 샨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어린 하피만을 바라보았다. "변태. 언제까지 쳐다 볼거야?" "응?" 샨의 말에 고개를 돌린 현민은 샨의 손이 가르키는 곳을 바라보았고, 샨이 한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풋, 질투?" "착각은 자유." "그래?" 몹의 특성상 옷을 걸치지 않는 하피이기 때문에 어린 하피역시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고, 비록 몹이라지만 인간형이기에 그 어린체형에도 있을 건 있었다. "일단 깨끗이 씻겨야지? 아쿠아." "아푸!" 현민이 만들어낸 아쿠아는 현민의 의지에 맞게 얆은 쟁반모양으로 변하여 어린 하피의 몸을 여러 차례 지나간 후에 사라졌고, 그것만으로도 어린하피의 몸은 상당히 깨끗해져 있었다. "자~." 어린 하피의 깨끗해진 모습에 환하게 웃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천 옷을 벗어 하피에게 강제로 입혀주었다. "끼익?" "불편해도 참아, 알았지?" 처음 입는 옷이 불편한지 어린하피는 자꾸 몸을 움직였으나 현민은 그런 어린 하피를 안아 달래주었다. "오~. 룬! 몸매가 볼만한데?" "이제 알았냐?" "그럼 뭐해, 딱 평범한 수준인걸." "큭." 어느정도 살을 가지고 있던 현민의 몸은 한달 가까이 한 폐인생활과 새벽마다 한 운동 때문인지 좋은 몸매는 아니지만 다이어트에는 성공해서 일반인정도의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자~. 꼬마아가씨. 집은 어디야?" "끼익?" 현민은 어린 하피의 겨드랑이에 손을 껴 어린하피를 들어올리며 부드럽게 말했지만 어린하피는 현민의 말을 모르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민의 얼굴만 살폈다. -------------------------------------------------------------------------------- "하아... 룬. "응?" "위에." 끼익!! "많네....." "끼익!!!!" 너무나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샨이 가르킨, 현민의 머리 위에는 수많은 하피들이 날아다니고 있었고, 현민의 손에 들려져 있던 어린하피도 그것을 보았는지 목청높여 울었다. 파닥파닥. "푸훗, 귀여워~~." 작은 날개를 흔들면서 날려고 하는 어린하피의 움직임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현민은 자신의 품을 벗어나려는 어린하피를 오히려 꼭 안아주었다. 바둥바둥"끼익!" "룬, 어서 보내줘." "알았어, 알았다고. 실드! 염력!" "끼익!" 현민의 실드에 감싸여진 어린하피가 천천히 떠올랐고, 현민은 그런 어린하피를 보면서 정신을 더욱 집중시켰다. "도와줘?" "아니." 염력이라는 것이 현민의 수준에서는 상당한 정신력을 잡아먹는 것이고, 그 대상이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보니 현민의 집중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탁! "빙고~." "수고했어." 현민이 들어올린 실드가 절벽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지고 현민은 실드를 없애 하피가 나올 수 있게 해주었다. "에구.... 샨 오늘은 일찍 가자. 많이 졸리네." "아쉽지만... 스트레스는 풀었으니깐." "오우거랑 싸워야 하지만 너무 힘들어." "돌아가자." 하지만 그들의 뜻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현민과 샨의 앞에는 어느새 날아온 하피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탁, 탁탁. "어라?" 현민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한 마리의 하피는 현민에게 무엇인가를 내밀었고, 그것은 현민이 좀전 절벽위로 올려준 어린하피였다. "끼익!!" 흠칫! 갑작스런 하피의 울음소리에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샨과 현민은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마법들을 떠올렸으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다가온 존재가 어린하피여서 함부로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탁, 탁탁. "왜 그러니?" 현민의 앞에 다가온 어린하피는 현민을 향해 폴짝폴짝 뛰었으나 현민은 그런 어린하피의 뜻을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힐끔. "안아달라는거 아냐?" "....이렇게?" 덮썩. 샨의 말에 현민은 자신의 앞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는 어린 하피를 안아주었고, 현민의 품에 안긴 어린하피는 그의 품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며 현민의 목덜미를 물어버렸다. "큭!" "룬!" 갑작스러운 어린하피의 행동에 샨은 깜짝 놀라 마법을 사용하려 했으나 자신을 제지하는 현민의 손짓에 마법을 멈추고 현민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모기 물린 정도?" "장난하지마!" 어느새 현민의 품에서 벗어난 어린하피도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갔고, 어린 하피와 어린 하피가 숨어 있는 하피를 제외한 나머지 하피들은 날아가 버렸다. 스으으윽. "뭐지?" 왼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감각에 현민은 왼쪽 어깨를 바라보았다. 현민의 왼쪽 어깨에서는 검은 선들이 생겨나고 있었는데,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 검은 선들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하며 하나의 문신을 만들어 내었다. "이건......... 멋있잖아." 딱! "이 상황에서도 장난이냐?" 샨에게 꿀밤을 맞은 현민의, 왼쪽 어깨에 생긴 것은 한쌍의 날개가 날카로워 보이는 송곳니를 감싸고 있는 문신이었다. -그건 우리 하피의 표시. 당신이 우리들의 친구가 되어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것을 약속하는 약속의 징표. 강제도 아니고 일방적인 것도 아니다. 그 표식은 내 아이가 자랄 때까지 계속된다. "어라?" 푸득. 어린하피의 앞에 서있던 하피는 현민에게 '의지'를 전하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샨....." "응?" "하피도 말해?" "하피는 인간형 몬스터이지만 지능이 낮고, 도구를 사용하지 못해, 그래서 머리가 나쁘다고 정의되어 있어." 현민의 물음에 한참을 생각하던 샨은 자신이 알고있는 지식을 현민에게 알려주었고, 현민의 입가에서는 기묘한 뜻의 웃음이 생겨났다. "그거....." "?" "거짓말이네. 나 하피가 말하는거 들었거든." 씨익. 그러나 샨은 현민의 웃음을 좋게 해석하지 않았다. "룬..... 변태같아." "큭!" -------------------------------------------------------------------------------- "다녀올게." "잘하고 와. 너무 긴장하지 말고." "풋, 아직도 나를 몰라?" "아니, 보통 이렇게 한다기에 흉내낸거야." "큭!" 현민은 마법사 길드안에서 샨과 이별인사를 나눴다. 토너먼트를 시작하는 장소는 제국의 수도였기에 일반적으로 간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샨에게 한 장의 텔레포트주문서가 있었기에 현민은 남들보다 여유있게 출발하는 것이었다. 찌이익 "이동!" 한 장의 종이를 찢은 현민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그곳에 남은 샨은 현민이 남아있던 빈 자리를 쳐다보았다. "잘 하고 와야하는데." 슈욱! "윽!" 이동을 한 현민은 순간의 강렬한 빛 때문에 이동하자마자 눈을 뜰 수 없었다. 하지만 몇초의 시간이 지나자 현민의 눈은 금방 회복되었고, 현민은 자신이 있는 곳을 살펴볼수가 있었다. "옥상?" 주위를 둘러본 현민의 눈에 보이는 것은 푸른하늘 뿐이었고, 처음 이동을 한 현민은 주위를 경계하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어디로 이동한거지? 제대로 온것은 맞나?" 현민은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와 주변을 살폈고, 건물의 구조가 샨이 있는 마법사길드와 똑같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응? 어디서 오시는 거죠?" "텔레포트주문서로 이동을 했는데 건물 옥상으로 이동이 되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처음이라 아직 아무것도 몰라서 실수했네요." "아하! 이동하신 분이시군요? 아마, 토너먼트 때문에 급히 오신것 같은데 그럼 제대로 오신거에요. 제국의 수도 아스틸란에 오신걸 환영해요." 현민이 있던 길드와는 다르게 소수의 사람이 있는 가운데, 안내인은 얼굴하나 바꾸지 않고 현민에게 가이드 같은 인사를 건냈다. "토너먼트 접수는 어디죠?" "바로 앞이에요. 여기서도 가능하고요." "여기서요?" "네, 여기 작성만 하시면 돼요." 안내인은 현민에게 한 장의 종이와 볼펜을 주었고, 현민은 그곳에 대충 적었다. "그런데 양식이 너무 간단한것 같은데요?" 현민의 말대로 신청서는 너무나 간단했다. 신청서에는 호칭, 직업, 능력이라고 달랑 세가지 밖에 없었고 그 모두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생길 문제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만든 방식이에요. 이름을 적으셔도 되고, 별명이나,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명을 쓰셔도 가능하죠. 또한 직업도 숨기거나 감출 수 있고, 능력도 마음대로 적으실 수 있어요." "흐음...." 안내인의 말을 들은 현민은 달랑 세줄이지만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아참! 접수비는 5골드에요." "네? 5골드요?!" "레벨이 낮으신 분들이 많이 참여하실것 같아 제한을 둔거에요." 하지만 안내인의 설명을 듣는 현민의 표정은 쉽게 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비싼것 같은데요? 참가 인원수를 예상한다면 수억골드가 모일 수도 있는 것 같던데...." "하지만 예선전만 통과하면 10골드를 받으실 수 있을거에요. 공지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예선에 뽑히면 10골드, 본선에 나가면 50골드, 그리고 나머지는 아시죠?" "네." 안내인의 말대로라면 자신있는 사람만 출전할 것이고 확실히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이었다. "여기있습니다." "네, 잠시만요~." 안내인은 현민이 건네준 돈과 신청서를 들고 어디론가 향했고, 잠시후 하나의 번호표를 현민에게 건네주었다. "호칭이 재미있는데요? 음... 참가번호는 1120563번입니다." "100만단위인가요?" "네, 첫 토너먼트이고, 현재 모든 유저들의 수가 몇 십억이니 이정도의 숫자가 나오는거죠." 안내인의 설명을 들은 현민은 「싸울아비」를 만든 가우리 기업이 존경스러워 졌다. "예선전은 내일 오후 2시입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더 이상 길드 안에 있을 이유가 없었던 현민은 밖으로 나왔고,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콜로세움과 인파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응?" 자신을 한번씩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정신을 차린 현민은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는 얼굴을 숙이고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후아. 내가 시골 촌놈인건가?" 한참을 달려왔지만 현민의 뒤에는 아직도 콜로세움의 모습이 보이고 있을 정도로 콜로세움의 크기는 아주 거대했다. 그런 콜로세움의 모습을 다시한번 훑어본 현민은 다시한번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기 전에 고개를 돌리고 거대한 대로에서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 장사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나도 뭔가 준비를 해야하나?" 자신의 옷을 한번 바라본 현민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착용할만한 것을 구경했으나 그가 마땅히 살만한 것은 존재하지가 않았다. "하아.... 장비를 사자니 능력이 안돼고, 착용할 수 있는것을 사자니 돈이 안돼고. 하아..." 오랜 시간을 둘러보고 다리가 아플정도로 돌아다닌 현민은 근처에 있는 벤치에서 잠시 쉬면서 앞으로 준비할 것을 차근히 정리해 나갔다. "좋아! 가볼까?" 다리의 피곤이 풀릴정도로 적당히 쉰 현민은 해가 지기전에 서둘러 움직일 생각을 했고, 길 가장자리에서 유저들이 팔고있는 무기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현민은 방금 구입한 하나의 단도를 장비창에 넣고, 좀더 쓸만한 무기가 있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번만 더 훑어보고 가야지."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현민은 자신이 왔던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다시한번 상점들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고, 여직껏 보지못하던 상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응? 저건." 현민이 발견한 상점은 엄청난 수의 유저들이 앞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인형가게였다. "저, 잠시만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뭐하는 짓이야!!" "밀지마!" "........닥쳐라, 씨발새끼들아." 엄연히 가게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고 있는 것이었으나 오히려 그들이, 가게로 들어가려는 현민에게 욕을 했다. 물론, 현민 역시 착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런 그들에게 욕을 해주었고, 싸움이 일어날 분위기였으나 주변의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살벌한 현민의 목소리 때문인지 자리에 앉아있던 그들이 도망을 가며 시시하게 끝났다. 끼이익! "실례합니다." "콜록! 어서오시구려." 잘 안열어지는 문을 열고 현민이 들어간 가게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가진 인형들이 이곳저곳에 놓여져 있었고, 안쪽 깊숙한 곳에서 노파가 걸어나왔다. "저 가면을 사고 싶어서요." "으응?" 현민은 창가쪽에 있는 하나의 가면을 손으로 가르켰고, 현민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노파는 현민이 가르킨 곳에서 오래된 피에로 가면을 볼 수 있었다. "자네, 광대인가? 콜록, 아니면 무희?" "아뇨, 그런건 아니지만 저 가면이 마음에 들어서요." "콜록! 콜록! 자네 취향이 참 독특하구먼." 노파는 현민이 가르킨 가면을 힘들게 내려 현민에게 건네주었고, 현민은 가면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한번 자세히 보았다. "콜록! 물건이라 버리지는 못했네만. 무슨놈의 가면이 그리 슬퍼보이는지...... 콜록!" 현민이 들고 있는 가면은 일반 피에로의 얼굴과 같이 웃는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각각의 눈에는 별과 달 모양이 있었지만 분위기만은 다른 가면들과 다르게 약간 슬픈 느낌이 들었다. "얼마에요, 할머니?" "1실버만 줘." "너무 싼거 같은데요?" "흘흘흘, 1실버도 비싸게 받는거니 걱정말게." "여기요, 감사합니다." "잠깐." 할머니에게 돈을 건넨 현민은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으나 그런 현민을 할머니가 붙잡았다. "자네......" "??" "혹시, 인형술사가 될 생각은 없나?" 할머니의 말을 들은 현민의 귀가 쫑긋했다. 많은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아직도 나오지 않은 직업중의 하나가 인형술사인 것을 아는 현민은 최초로 직업을 가져 남들에게 뽐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인형술사를 했을 경우 마법을 소홀히 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할머니. 제가 마법사라 인형술을 배울수는 없을것 같아요." "클클클, 마법과 인형술은 서로에게 도움을주는 관계란다. 콜록! 나정도의 실력자가 마법을 배웠다면 인형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을 테고, 골렘보다 뛰어난 물건도 만들 수 있겠지." "으음..... 하지만." "힘들다면 하지 않아도 된단다. 콜록! 다음에 오는 아이에게 물어봐도 돼." "죄송합니다, 할머니." "콜록! 콜록! 미안하이, 괜히 부담을 준 것 같구먼." 이미 현민의 마음을 알아차리셨는지 할머니는 쉽게 현민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끝내 할머니는 현민을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가셨고, 할머니가 현민의 앞에 다시 모습을 들어내셨을 때, 할머니의 손에는 하나의 책이 들려있었다. "간단한 인형술이란다. 콜록! 전부는 아니지만 이 정도라도 인형술은 끊기지 않겠지." "감사히 받을게요, 할머니." 우연히 들어온 가게에서 너무나 과분한 친절을 베푸시는 할머니의 태도에 현민은 자꾸만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정한 현민은 할머니가 주신 책을 받아들였을 뿐, 할머니에게서 인형술을 배우는것은 끝까지 거절했다. "내일 있을 토너먼트 예선전에 나갈거에요. 구경오세요." "클클클, 그 가면은 내일 쓸 모양이구나." "네, 재미있으실 거에요." "오냐." 너무나 많은 것을 주신 할머니에게 죄송스런 마음을 가지며 현민은 가게를 빠져나왔다. "인형술이라......" 밖으로 나온 현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을 한번 바라본 뒤, 장비창의 마지막 칸에 책을 넣어두었다. "이제 잠잘곳을 찾아야 하는데....." 하지만 너무 늦게 온 탓인지 현민은 수도 곳곳을 돌아다녀도 싸구려 여관하나 찾아내지를 못했다. 결국, 노숙밖에 할 수 없었던 현민은 그나마 괜찮을듯 싶은 곳으로 마법사길드를 정했고, 마법사 길드의 관리에게 부탁해 옥상에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털썩! 잠을 잘 생각으로 옥상 한가운데 누운 현민은 자신의 눈으로 쏫아질듯 보이는 별을 본 후, 잠잘 생각을 접고 현실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멋진 하늘을 구경했다. 현민이 누워있는 옥상은 시원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고 있었고, 저녁이라 주위도 조용했다. "아름답네......." 현민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밤하늘의 별을 구경하였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별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 게임시간으로 오후 2시가 되기 5분전, 현민 차례의 토너먼트 예선전이 시작될 시간이 되어 대기실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참가자 중 한명인 현민 역시 아침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모두 조용히 해주십시오!!!!" 100만단위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대기실에 있는 숫자도 장난이 아니었기에 모든사람들이 소근대는 소리도 조금씩 모여 거대한 소리로 울려퍼졌고, 안내자는 그런 유저들을 제한하기 위해 마이크를 사용했는지 벽이 울릴정도의 소리로 사람들에게 말을 전했다. "지금부터 예선전이 시작됩니다!! 1차 예선전에서는 제한시간 10분 안에 오우거 10마리를 없애는 시합입니다. 무기! 포션! 스크롤! 그밖에 모든 방법으로 잡으셔도 가능합니다. 또한 한번에 여러마리를 잡으셔도 상관없으며, 한번에 한 마리씩 사냥도 하실 수 있습니다. 텔레포트로 이동되실 경우 10마리의 오우거가 얼린 상태로 있을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오우거도 움직이지 못하고, 유저도 공격이 불가능합니다." 안내인의 말이 계속될수록 사람들의 입은 점점 다물어졌고, 그의 말을 빼놓지 않으려는 듯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사냥하실 오우거를 가리키며 '해동'이라고 말하시면 오우거를 감싸고 있던 얼음이 녹으며 오우거가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럼, 많은 유저분들이 예선전 통과하기를 기대하며, 1차 예선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우웅!! 우웅!!! 우우웅!!! 안내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웅웅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모든 유저들의 발밑에 마법진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마법진들은 유저 하나하나를 삼키기 시작했고, 현민도 마법진에 흡수되듯 새로운 장소로 이동되었다. "어라?" 너무나 밝은 빛에 잠깐 눈을 깜빡인 현민은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주위의 광경을 한번 훑어보았다. 현민의 발밑에 하나의 마법진이 있을 뿐, 주위의 모든 공간이 깨끗한 흰색으로 되어있어서 어디가 벽이고 어디가 바닥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었다. "흐음..... 시간제라더니 한 마리를 해동하면 시작하는건가?" 일렬로 서있는 10마리의 오우거를 살펴본 현민은 무리하지 않고 한번에 한 마리씩 잡기로 했다. 스윽. "그럼 시작해볼까? 모든 곳을 흐르는 물이여 강인한 힘을 보여라, 워터 볼. 세상을 지배하는 작은 힘이여 이곳에 모여라, 포이즌. 나의 의지에 나의 뜻에 따라 움직여라, 염력." 현민은 워터 볼을 위쪽으로 날려보냈고, 워터 볼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포이즌 마법과 염력마법을 걸었다. "준비끝~~. 해동." 가면을 고쳐쓴 현민은 10마리의 오우거중 가장 마지막에 있는 오우거를 해동시켰다. 오우거를 감싸고 있던 얼음이 부서져 내렸고, 잠에서 깨어난 오우거는 잠시 주위를 살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현민을 보고는 거침없이 돌진해 왔다. 스으윽.... "크아아...꼬르르륵!!" 비명을 지르며 현민을 향해 다가오던 오우거는 현민의 워터 볼에 숨을 쉬지 못했고, 물도 약간 들이켰는지 온몸을 떨며 현민의 마법을 벗어나려 노력했다. 하지만 현민도 빨리 끝내려는 듯 그런 오우거를 놓아주지는 않았다. "크르르르륵......." 쿵! "한마리는 끝냈고. 해동." 한 마리를 잡자마자 머리위에 있는 시간을 확인한 현민은 쉬지 않고 다음 오우거를 해동시켰다. 현민이 해동시킨 두 번째 오우거 역시 첫 번째 오우거랑 마찬가지로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현민을 발견하고는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크아앙!!" 쾅! "배고프냐? 이거나 먹어라!!" 현민이 던진 작은 무언가가 가까운 거리라서 그런지 포효를 하던 오우거의 입에 바로 들어갔고, 현민의 입에는 짙은 미소가 생겨났다. 물론, 쓰고 있는 가면 때문에 현민의 표정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쿵! 쿵! "이크!" 오우거는 현민을 때리기 위해 커다란 몽둥이를 이리저리 흔들었고, 현민은 그런 오우거의 몽둥이를 피해 잽싸게 도망다녔다. "잘가렴. 식물거대화!" "크릉?!" 울룩불룩. "크아아악!!" 자신의 뱃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느꼈는지 오우거는 처음에 약간 이상한 표정을 짓다가 울룩불룩해진 자신의 배를 보며 현민을 쫓기보다는 바닥을 뒹굴어 다녔다. "잘가, 실드." 펑! 거의 한계에 도달했는지 현민의 말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오우거의 몸은 크게 부풀어 오르다 순간 펑하고 터져버렸다. 이미 예상을 했는지 현민을 감싼 실드는 오우거의 살덩어리들을 막아주었고, 주위가 처참한 광경속에서도 현민은 피한방울 묻어있지 않는 광경이었다. "자~. 다음은 어떻게 죽일까요? 해동." 다시한번 가면을 고쳐쓴 현민은 세 번째 오우거를 해동시키며 즉시 실드마법을 시전했다. 샨과 같이 사냥할 때 처럼, 수십개의 실드로 오우거를 감싼 현민은 연속해서 아쿠아 마법을 사용했다. "다음으로 가볼까? 해동." 아직 세 번째 오우거가 죽지 않았으나 현민은 네 번째 오우거를 해동시키고 두 번째 오우거를 잡았던 방법을 사용하여 4,5,6,7번째 오우거를 순식간에 죽여버렸다. 너무나 빨리 처리해서 그런지 10분의 시간중에 7마리를 사냥하고서도 아직 죽지않은 3번째 오우거를 포함해 4마리 남은 상황에서 5분의 여유나 있었다. -------------------------------------------------------------------------------- "시간도 많은데 천천히 가볼까? 아쿠아. 나의 의지에 나의 뜻으로 움직여라, 염력. 해동." 주먹만한 아쿠아를 생성한 현민은 염력으로 아쿠아를 붙잡았고, 8번째 오우거를 해동시켰다. "조금 고통스러울 거야." 자신의 마법에 죽어버릴 8번째 오우거를 생각하는지 현민은 위로의 한마디와 함께 아쿠아를 오우거의 눈으로 던져버렸다. "크륵!!" 현민이 사용한 아쿠아에 눈을 맞은 오우거는 달려오는 걸음을 주춤하며 한손으로 눈을 비볐으나 현민이 사용한 아쿠아는 떨어져 나가지 않고, 오우거의 눈을 통해 파고들어갔다. "크아아앙!!!" 너무나 커다란 고통에 오우거는 울부짖었고, 가면속의 현민은 식은땀을 흘렸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기운으로 차갑게 얼어붙어라, 아이스......" 쿵!! 현민의 마법에 오우거의 내부에 들어간 아쿠아는 얼음으로 변해버렸고, 내부에 갑자기 얼음이 생긴 오우거는 크리티컬 데미지로 즉사해버렸다. "휴.... 엄청 피곤하네." 잠깐 한숨을 돌린 현민은 곧바로 9번째 오우거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게 처리해줄까?" 현민의 밝은 목소리와 슬픈표정으로 웃고있는 가면은 상당히 괴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민은 자신의 모습을 모르는 듯 장비창을 열어 특수한 모양의 철사를 두 묶음 꺼냈다. 현민이 꺼낸 철사는 한겹의 철사가 아니라 현민이 직접 제작을 한 것인지 수십 개의 철사가 밧줄처럼 꼬여져 있었다. "남은시간 4분이라....." 현민이 말하자마자 시간이 바뀌며 3분으로 넘어갔지만 현민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9번째 오우거를 해동시켰다. "크아앙!!!" "인탱글." 쿵! "크아아앙!!" 현민의 마법에 바닥에 풀어져 있던 철사중 하나가 오우거의 전신을 강하게 묶었고, 중심을 못잡아 바닥에 누워버린 오우거는 철사를 끊기 위해 발버둥쳤다. 하지만 일반 밧줄보다도 두껍고 강한 철사를 오우거라도 쉽게 끊지는 못했다. "나의 의지에 나의 뜻으로 움직여라, 염력." 또 다른 철사에 염력을 사용한 현민은 철사의 끝부분을 움직이며 오우거가 감싸고 있는 철사를 풀려고 노력할 때, 오우거의 특정부위를 대충대충 감아놓았다. 챙! 마침내 오우거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던 굵은 철사가 끊어져 버렸고, 끊어진 철사에 이어 현민의 마법으로 오우거의 몸에 대충 감겼던 철사마저 오우거의 몸에서 빠지려고 하는 순간 현민의 입이 열렸다. "인탱글." 오우거의 몸에 대충감겨있던 철사가 현민의 마법에 강하게 조여졌고, 상당히 전문적(?)으로 묶은 철사이기에 오우거는 처음의 철사처럼 쉽사리 풀지를 못했다. "미안하지만, 절대 안 풀려. 풀 수가 없는 거니깐." 자신에게 다가오는 현민을 죽이기 위해 온몸을 흔들며 발버둥을 쳤으나 현민의 철사묶은 솜씨가 전문가(?) 수준이었는지 현민의 말대로 절대 풀리지가 않았다. "잘가렴." 거대한 오우거의 가슴에 올라선 현민은 50cm정도의 송곳처럼 보이는 무기를 들고 오우거의 심장이 있는 오른쪽 부분을 수직으로 강하게 찍어 눌렀다. 부욱!! "컥! 크아앙!!!" 콸콸콸!! 오우거의 가죽이 일반 무기로는 상처 낼 수 없을 정도로 강했지만 무기가 송곳같이 생긴것이었고, 수직으로 세웠기 때문인지 오우거의 피부를 쉽게 손상내며 현민의 무기가 오우거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마지막이네..." 현민의 머리위에 있는 시계는 아직도 3분을 남기고 있었다. 9번째 오우거는 직접 처리해서인지 상당량의 피가 나왔지만 현민의 기술이 좋은것인지 아니면 운인지 현민의 몸에는 피 한방울 묻어있지가 않았다. "하아...... 지쳤다." 9번째 오우거를 잡고있는 동안 3번째 오우거도 죽었는지 반응이 없어져 있었고, 결국에는 마지막 오우거만 남아있었다. 마지막 오우거를 바라보는 현민은 9마리의 오우거를 상대해서 그런지 상당히 피곤한 눈빛이었다. "마지막은 간단히. 해동." "크아앙!!!" 마지막 오우거도 같은 방법으로 현민을 향해 달려들었고, 현민은 그런 오우거의 입에 작은 나무토막을 집어던졌다. "잘가렴. Growth of Plants!!" 정신력이 부족합니다. "뭐?!" 쾅!! 그동안 너무나 많은 마법을 사용해서인지 현민의 마지막 마법을 발동되지 않았고, 당황을 한 현민은 자신에게 다가온 오우거의 주위에서 멀리 떨어졌다. "젠장!!" 스윽. 현재의 안좋은 상황에서 현민은 막 1분 42초를 지나는 시계를 한번 바라보았다. "마지막은 목숨걸고 하네." 자신을 경계하는 오우거를 보며 현민은 처음과 반대로 오우거를 행해 달려들어갔고, 재빨리 장비창에서 하나의 단검을 꺼내 왼손으로 역검을 쥐었다. 깡!! 강하게 휘둘러진 오우거의 몽둥이를 왼손의 역검으로 막은 현민은 몽둥이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을 참으며 다시한번 휘둘러지는 몽둥으를 피해 오우거의 다리사이를 통과하여 뒤로 돌아갔다. 푹!! "크아앙!!!" 현민의 오른손에 있던 송곳같은 무기가 오우거 오른쪽다리의 뼈와 뼈 사이를 정확히 찔렀고, 오우거는 오른쪽다리에서 오는 고통 때문인지 오른쪽 다리를 접고 뒤에있는 현민을 향해서 강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푹!퍽! "크아악!!" 오우거의 몽둥이가 자신에게 날아오자 재빨리 등으로 붙은 현민은 오우거의 팔꿈치 부분이 도착할 곳에 송곳을 세우고 두손으로 강하게 잡았고, 현민의 예상이 맞았는지 송곳은 정확히 오우거팔의 뼈사이를 파고들어갔다. 하지만 너무나 강하게 휘둘러진 팔이었는지 현민 역시 오우거의 힘에 밀려 멀리 날아갔고, 현민의 오른손에 있던 송곳은 오우거의 팔에 매달려 다녔다. "크으.... 마지막이야." 시계를 한번보고 가면을 치켜세운 현민은 장비창에서 또 하나의 기다란 단검을 꺼내어 오른손에 쥐었고, 움직이지 못하는 오우거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끝이다!!" 어설프게 휘둘러지는 오우거의 주먹을 피하며 현민의 왼손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오우거의 가슴을 찔렀고, 오른손은 머리위에 있는 오우거의 목을 강하게 찔렀다. 왼손에 쥐고 있던 칼은 힘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오우거의 가죽이 질겨서인지 들어가지 않았지만 오른손에 쥐고 있던 칼은 그나마 연약한, 오우거의 목을 뚫어버렸다. 둘 중의 하나지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현민은 오우거의 앞에서 빠르게 물러났고, 그가 있던 자리에 녹색의 피가 흘러내리며 오우거의 상체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휴......" 현민은 거친 움직임을 해서 약간 삐딱해진 가면을 바로 쓰며 시계를 바라보았고, 시계는 14초를 남겨놓고 있었다. 우우우웅!! 마지막 오우거가 죽었는지 현민의 발밑에서 새로운 마법진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의 몸은 다시한번 어디론가 이동되어졌다. "와아아아아!!!!!" "네! 탈락자를 제외한 마지막 한분까지 모두 나오신듯 하군요!"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토너먼트가 열릴 경기장 아래에 서있었으나 현민을 포함한 약 160명의 인물들은 경기장 위로 이동되어 있었다. -------------------------------------------------------------------------------- "뭐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현민을 본것인지 아니면 그것에 대해 말해줄 차례였는지 현민의 궁금증을 사회자가 풀어주었다. "여기 경기장 위에 계신 154분의 유저들이 여러분들이 뽑아주신 베스트 중의 베스트입니다, 이번 예선전에서는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마법사 17분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시며 합격을 하셨습니다." "와아아아아!!!!" 17명의 마법사중 한명인 현민은 다른 마법사들이 누군지 찾아보았지만 모두가 행색이 말이 아니라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있다는 것을 느낀 현민은 눈을 돌렸고, 그곳에서 기다란 칼을 들고 깨끗한 모습으로 서있는 여자 한명을 보았다. "..." "..." 빤히 쳐다보면 둘 중 하나는 무안해서 고개를 돌릴만도 하건만 둘은 눈싸움을 하듯이 서로가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느정도 바라보다 장난기가 생긴 현민은 장난기어린 미소를 지으며 영화에 많이 나오는 귀족인사를 했다. 스윽. 하지만 그녀는 눈을 돌리지 않았고, 그녀의 반응에 재미가 없어진 현민은 다른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첫날의 1차전 예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자, 잠깐만...." 흠칫! 탁! 누군가의 부름에 돌아서는 순간 빠르게 다가오는 무언가를 느낀 현민은 순간적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그에게 다가온 무언가는 기어이 현민의 가면에 닿아 현민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겼다. "뭐죠?" "아, 저기....." 갑작스런 공격 때문인지, 가면을 건드려서인지 현민의 목소리에는 불쾌감이 묻어있었다. 그런 현민 때문인지 현민을 불러세웠던 그녀는 현민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쉽게 말을 건네지 못했고, 현민은 당황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본 후, 바닥에 떨어진 가면을 들어 얼굴에 쓰고 몸을 돌렸다. 스윽. "자, 잠깐!" 터벅터벅. 현민의 뒤에서 다시한번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이미 기분이 상한 현민은 그녀의 부름을 무시하고 자신이 가던길을 계속 걸어나갔다. 뒤에서 그녀가 그를 쫓아왔으나 그것도 잠시였을뿐, 현민이 대로를 따라 걸어다니자 현민을 놓쳤는지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를 않았다. "....기분이 나쁘잖아." 마땅히 할 준비가 없었던 현민은 오우거와의 전투에 쓴 물건들을 다시 구입하고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장비창." 그가 열은 장비창에는 다양한 아이템들이 있었는데 가장 흔히 보이는 아이템은 여러 모양의 단검들이었다. 그리고 다른쪽에는 이상한 물건들이 잔뜩 있어 상당히 정리가 안 된 모습이었다. "상태창." ------------- 이름 : 룬. Lv : 74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33(18) 정신 : 56(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0 방어력 : 52 생명력 : 306 정신력 : 1130 보너스 스텟 : 365-------------- 그의 운동 능력수준은 건강한 일반인의 수준보다 약간 높은 정도였지만 반사신경, 지능, 정신은 일반인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의 반사신경은 짐승(?) 수준이었고, 정신력 또한 누구하나 쉽게 넘기지 못했던 19를 넘겨 20을 찍었으니 현민은 가우리에서도 그는 예상밖의 존재였다. "스텟을 사용해야하나?" 엄청나게 싸여있는 스텟을 본 현민은 오우거와 싸웠을 때 부족했던 정신력이 마음에 걸렸다. "장기전만 안하면 되겠지." 심심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냥을 다니지 않는 현민은 마음편히 생각하고 스탯을 올리지 않기로 정했다. 어차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면 나중에 필요할 경우 올리는 것도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밥이나 먹어야 겠군." 대충 모든 것을 정리한 현민은 시간을 계산하고 로그아웃을 했다. -------------------------------------------------------------------------------- 라면으로 밥을 대신한 현민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땀을 식힌 뒤에 게임기 속으로 들어갔다. 게임기 내부에도 에어컨과 공기정화기능이 달려있어 한여름에 하기에 무리는 없었지만 게임을 하는 동안은 가만히 누워만 있는 것이기에 한차례 씻은 것이었다. 웅성웅성 역시 연이은 축제 탓인지 도시 전체가 밝은 기운으로 웅성대고 있었고, 사람들 또한 도시의 기운에 맞추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장사를 하는 소리, 다른 사람을 찾는 소리, 뛰어디니는 소리, 그리고 구별할 수 없는 몇몇 소리를 포함한 모든 소리가 웅성거리며 현민이 누워있는 옥상에까지 들려왔다. 띵! [안내] 금일 오전12시에 시합이 있으니 오전12시 이전에 16번 대기실에 와주시기 바랍니다. 현민의 눈앞에 공지와 비슷한 모양의 용지를 읽으며 서서히 이동을 준비했다. "오늘은 뭐가 필요할까?......" 2서클과 3서클을 살펴보던 현민은 메모라이즈 할 7개의 마법을 차근차근 골라나갔다. "내 주변을 떠도는 자연의 힘이여 그대의 힘을 빌려 내 몸에 또 하나의 기억을 각인하라. 메모라이즈!" 슬립(sleep) 소모 정신력 : 40 능력 : 자신보다 지능이 낮은 대상을 일정확률로 잠재운다. 현재 단계 : 2 주문 : 부드럽게 춤을 추는 자연의 정령들이여...... "부드럽게 춤을 추는 자연의 정령들이여 그대의 가루로 어둠속에 편안한 안식을 가지지 못하는..............." 식물 거대화(Growth of Plants) 소모 정신력 : 30 +α 능력 : 특정 식물을 거대화 시킨다.(소모 마력으로 크기 조절이 가능) 현재 단계 : 2 주문 : 자연으로 태어나 자연을 구성하는 순수한 존재여..........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을 구성하는 순수한 존재여, 나의 힘을 거름으로 삼아 자연의 힘과 함께 무한한 성장을................" 워터 볼(water ball) 소모 정신력 : 15 능력 : 대지에 작게 흩어진 물들을 모아 하나의 공을 만든다. 현재 단계 : 7 주문 : 모든 곳을 흐르는 물이여 강인한 힘을 보여라. "모든 곳을 흐르는 물이여 강인한 힘을 보여라." 염력(念力) 소모 정신력 : 초당 4 능력 : 정신의 집중으로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초능력. 현재 단계 : 7 주문 : 나의 의지로 나의 뜻에 따라 움직여라. "나의 의지에 나의 뜻에 따라 움직여라." 포이즌(poison) 소모 정신력 : 15 능력 : 대지에 흩어진 미생물들과 작게 흩어진 독성물질을 한곳에 모으는 마법. 현재 단계 : 7 주문 : 세상을 지배하는 작은 힘이여 이곳에 모여라. "세상을 지배하는 작은 힘이여 이곳에 모여라." 아이스(ice) 소모 정신력 : 15 능력 : 원하는 것의 열을 빼앗아 온도를 낮추는 마법. 현재 단계 : 7 주문 :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기운으로 차갑게 얼어붙어라.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기운으로 차갑게 얼어붙어라." 디그(dig) 소모 정신력 : 13 능력 : 지름=현재 단계(7) * 0.5m, 깊이=현재 단계(7) * 1m의 땅을 판다. 현재 단계 : 7 주문 : 땅이여 나의 힘을 대가로 잠시만 무너져다오. "땅이여 나의 힘을 대가로 잠시만 무너져다오." 7개의 주문을 모두 준비한 현민은 마법사 길드를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콜로세움으로 여유롭게 걸어갔다. "콜록, 콜록! 이보게!!" "응?" 자신이 들어갈 16번 대기실을 찾아 돌아다니던 현민은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인형가게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인형가게 할머니는 현민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현민을 불렀다. "클클클, 어제 경기 멋지더구나. 이건 선물이란다....." 할머니가 현민에게 건네준 것은 두 개의 끝부분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지는 모자였다. 연보랏빛에 금실로 멋들어진 선이 만들어져 있었고, 양쪽으로 휘어진 각각의 끝에는 작고 예쁘게 생긴 방울이 달려있었다. 모자의 앞부분은 M자 모양처럼 생겨서 양쪽의 끝에 작은 별과 달이 매달려 있었고, 뒤쪽은 V모양으로 되어있어 끝부분에 또 하나의 방울이 달려있었다. "콜록! 자네에게 잘 어울릴것 같아서 만들어 왔지. 콜록! 한번 써보게...." 자신을 바라보며 정답게 말씀하시는 할머니에게 감동받은 현민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사람들이 보건말건 신경 쓰지 않고 모자를 썼다. 모자를 쓰고 가면을 착용한 현민은 어제처럼 어설픈 모습이 아닌 정말 어릿광대같은 모습이었다. "클클클, 자네 명칭에 꼭 맞지 않나? 콜록!" "고...맙습니다." 딸랑딸랑 현민의 기억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것이었기에 현민은 정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보고 몰려있는 사람들 때문에 절을 하지 못한 현민은 허리를 접어 90°로 인사했다. 현민의 인사에 할머니의 얼굴에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생겨났고, 할머니는 현민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스윽. 딸랑. 할머니가 사라지고 나서야 고개를 들은 현민은 자신의 머리에 쓰여진 모자의 끝부분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이미 가면을 썼기에 표정을 알 수 없는 현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발걸음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구경꾼들도 다시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두 번째 예선전은 첫 번째보다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 사냥하실 몬스터는 여러분들이 초반에 많이 잡으셨던 노루, 토끼, 슬라임입니다. 다만 그냥 했을 경우 너무 시시하기 때문에 각각 몹들의 레벨을 딱! 오우거 수준인 140으로 맞추어 놓았으니 방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선이 펼쳐지는 장소는 예전과 같은 장소이니 그곳에서도 해동을 하시면 사냥이 가능합니다. 그럼, 모두 열심히 해주세요!!" 위이이잉. 첫 번째 예선전과 같이 현민의 발밑에 마법진이 생겼고, 현민은 어제 겪었던 약간 사이코적인(?) 장소로 이동되었다. 오우거가 있던 자리에는 3마리의 초보용 동물들이 얼려져 있었고, 머리위에 있던 시간제한은 사라져 있었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거지?" 딸랑.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 초보용 몬스터는 맞았으나 사회자의 경고로 인해 약간 긴장감이 생긴 현민은 어차피 시간도 많은 것 확실히 준비하고 시작하기로 했다. "으음....." 현민은 레벨이 높은 초보몬스터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생각은 불필요하다고 느끼고 레벨 높은 초보몬스터들을 직접 느껴보기로 했다. 초보 사냥터에서의 수준을 본다면 토끼가 가장 낮은 몬스터이고, 슬라임이 두 번째, 노루가 세 번째 이기에 현민은 그 순서에 맞추어 몬스터를 잡기로 결정했다. "해동." 스으윽. 쫑긋쫑긋. 얼음에서 풀려난 토끼는 축 쳐져있는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현민과 눈이 마주쳤다. 씨익. '헉!!' 가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이 들어나지는 않았지만 순간 놀란 현민의 숨결은, 현민을 바라보고 있던 토끼도 들을 수 있었다. 현민의 놀란듯한 소리를 들은 토끼는 정말로 웃으며 두발로 서서 짧은 팔을 품속으로 가져갔다. 스윽. 무언가 나올거라 기대한 현민의 예상과는 다르게 작은 토끼의 복슬복슬한 털에서 나온것은 담배와 라이터, 그리고 작고 귀여운 선글라스였다. 세가지 물건을 꺼낸 토끼는 의외로 잘 어울리는 선글라스를 착용한 다음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뭐하자는 거지?' 까딱까딱. 딸랑딸랑. 작은 앞발을 까딱이는 토끼를 보는 현민의 몸이 심하게 떨렸고, 현민의 몸과 함께 그의 머리에 달린 방울이 같이 떨리며 소리를 냈다. 스윽. ".........파이어." 토끼를 향해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린 현민은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현민이 사용한 마법이 1서클의 마법이기 때문에 10단계까지 마스터한 현민에게는 아무런 주문도 필요없었고, 마법은 즉시 발동되어 토끼의 몸에 불을 질렀다. "끼이익!!!" 자신의 몸에 불이 붙어 깜짝 놀란 토끼는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그 속도가 현민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토끼의 몸에 불이 남아 불꽃이 같이 휘날렸는데도 토끼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가 않았다. 씨익, 씨익, 씨익. "음...." 너무나 빠른 움직임으로 불꽃을 털어버린 토끼는 약간 그슬린 털을 보며 현민을 향해 강한 적의를 들어냈다. 토끼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는 현민의 마법에 약간 녹아 이상한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퍽. "큭!" 어느순간 자신의 몸을 치고 지나간 토끼의 작은 주먹에 현민은 늑대인간에게 맞았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빠른속도로 움직이는 만큼 커다란 힘을 가지는 토끼의 주먹은 정말 얕볼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챙. 자신을 노려보는 토끼에게 대항하기 위해 현민은 장비창에서 두 개의 나이프를 꺼내어 양손에 쥐었고, 토끼는 그런 현민을 비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여기다!' 무언가가 다가온다는 느낌에 현민은 다급히 칼을 자신의 앞으로 모았고, 그곳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뛰어다니는 토끼가 도착할 지점이었다. 하지만 토끼의 능력은 빠른 스피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순간적으로 공중에서 정지하여 우측으로 돌아 현민의 뒤를 공격했다. 퍽! '젠장!' 그 뒤로도 몇 번 토끼가 도착할 장소를 현민이 예측했으나 토기는 현민을 놀리듯 계속해서 현민의 칼 앞에서 멈추고 현민의 뒤를 공격했다. 한동안 그런 대치가 계속되고 현민은 자신의 줄어드는 피를 힐로 채워가며 시간을 끌었다. "이번에는 안 당해." 딸랑. 왼손의 소도로 토끼를 가리킨 현민은 토끼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팟! 스팟! "끼익!!" 같은 방법으로만 공격을 하던 토끼는 현민의 등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칼에 반응을 못하고 옆구리를 가로질러 꼬치가 되어 버렸다. 왼손에 들고있던 소도의 끝으로 토끼의 시선을 끌었던 현민은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토끼가 자신의 소도 앞에서 자신있게 웃음을 흘리자 오른손에 역으로 쥐고있던 단검을 뒤로 휘둘렀고 그것이 토끼의 옆구리에 정확히 박힌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였기에 일반적으로 불가능 했으나 토끼의 지능이 낮은 이유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토끼여서 그런지 같은 방법으로만 공격을 했기에, 현민이 쉽게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아.... 망할놈의 새끼가 건방떨더니." "끼익! 끼익!!" 현민의 칼에 옆구리가 뚤린 토끼는 현민의 칼에 끼어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현민은 토끼가 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칼끝을 땅에다 박아버렸다. 토끼는 어떻게든 몸에서 칼을 뽑으려 했으나 그럴수록 토끼의 고통만 커져갔다. "잘가라. 파이어." 토끼의 몸에 다시한번 불이 붙었고, 현민은 발버둥치는 토끼 때문에 칼이 빠지지 않도록 칼의 손잡이를 밟았다. 자신의 몸에 붙은 불 때문에 커다란 고통을 받던 토끼는 연신 비명을 질렀고, 마침내 발버둥 치는 것을 포기하고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진작 칼을 꺼냈으면 죽일 수 있었는데. 큭." 푹! 전혀 예상치 못하게 죽기직전 말을 한 토끼는 오른손 앞발에 쥐어진 이쑤시개 같은 작은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했다. 너무나 황당한 토끼 때문에 말을 잃어버린 현민은 자신의 발 아래에 있는 토끼가 이미 숨을 거두었는데도 칼을 뽑지 않고 밟고 있었다. "허! 기분 더럽네......" 처음부터 끝까지 짜증나게 행동하는 토끼 때문에 현민은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민의 칼에 꽂혀있던 토끼는 바로 사라져 버렸고, 현민은 나머지 두 마리를 보며 앞으로 싸울 녀석들에 해한 짜증이 밀려왔다. "해동." 스으윽. 꾸물꾸물. 빨리빨리 처리하고 돌아갈 생각에 현민은 슬라임을 해동시켰다. 슬라임 이전의 토끼 공격수준 때문에 해동된 슬라임의 공격을 대비했지만 현민이 기대하던 슬라임의 공격은 오지 않았다. 부글부글. 천천히 주변을 돌아다니던 슬라임이 심하게 꿈틀거리면서 내부에 기포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한 마리의 슬라임은 천천히 갈라지더니 두 마리가 되어버렸다. 또한 두 마리로 갈라진 슬라임은 크기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간 커졌는데, 너무나 조금 커진 것이어서 현민도 자세히 관찰하고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서, 설마 무한 분열?!" 부글부글. 두 마리로 갈라진 슬라임이 다시 4마리로 늘어나 버렸고, 그중에 한 마리만 현민에게 슬금슬금 다가온 채 나머지 3마리의 슬라임들은 또다시 분열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아지는 숫자에 현민은 빨리 결정을 해야만 했다. "디그!" 쿠드드드득. 현민이 생각한 장소에 깊은 구멍이 생겨났고, 현민에게 다가오던 슬라임까지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단, 넓은 공간에 갇혀버린 슬라임들은 꾸물거리면서 분열하기만 할뿐 현민을 향해서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를 못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슬라임은 액체니깐 불속성이면 충분하겠지만 공격력도 생각해야하고.... 얼릴까? 안되겠군. 액체처럼 보여도 저놈은 여러 가지 물질이 섞인 존재니 어는점이 훨씬 낮을꺼야..." 현민이 디그로 파놓은 공간에서 슬라임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고, 현민은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이 배운 마법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생각했다. 딸랑딸랑. "풋, 쉽게 가볼까?" 머리를 흔들며 고민하는 현민의 귀에 이제는 익숙해진 방울소리가 들렸고, 현민은 자신의 모습에 맞추어 쉽게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의 실력으로 무리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드, 아쿠아, 아쿠아, 아쿠아, 아쿠아............." 첫 번째, 토끼와의 싸움에서 파이어를 제외한 마법은 하나도 쓴 것이 없기에 현민의 정신력은 꽉 채워져 있었고, 현민은 그동안 갈고닦은 암산실력으로 자신이 가진 정신력을 나누어 적당한 숫자의 아쿠아 마법을 사용했다. 그가 만든 동그란 실드 마법에 물이 가득 고였고, 현민은 아침에 준비해 뒀던 마법을 사용하였다. "염력!" 염력으로 실드 안에 있는 물덩어리들을 붙잡은 순간 현민은 실드를 풀어버렸고, 거대한 물덩어리들이 현민의 생각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렁. "아이스!!" 염력으로 거대한 물을 불록렌즈 모양으로 만든 현민은 그것을 얼려 거대한 크기의 돋보기를 만들었고, 그것을 슬라임들이 갇혀있는 구멍위로 올려놓았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한 현민은 얼음 돋보기 사이로 보이는 수많은 슬라임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처음사용하는 마법, 영광으로 생각해라." 현민은 스킬창을 열어 자신에게 필요한 마법을 찾았다. 라이트(Light) 소모 정신력 : 5 능력 : 주변을 밝게 비출 하나의 구술을 생성한다. 현재 단계 : 10(master) ▲▼ 주문 : ??? 라이트의 주문을 찾은 현민은 '현재 단계' 옆에 있는 위쪽 화살표를 눌러 단계를 올려 나갔다. 단계 옆에 생긴 화살표는 현민이 1서클을 마스터 할때 생긴 화살표로 마스터한 마법에만 생기는 특수능력이었다. 라이트(Light) 소모 정신력 : 15 + (정신력 추가 가능) 능력 : 주변을 밝게 비출 하나의 구술을 생성한다. 현재 단계 : 20(master) ▼ 주문 : 대지를 밝게 하는 빛의 정령이여, 어두운 곳에도 존재하는 밝은 존재들이여, 여기 어둠에 갇혀 길을 읽어버린..................... "대지를 밝게 하는 빛의 정령이여........." 화살표를 모두 올려버린 라이트 마법의 단계는 20이었고, 10단계를 이루며 사라졌던 주문이 다시 생겨나 있었다. 20단계에서 생겨났던 그 주문은 현민이 1서클 1단계를 이루었을 때의 마법주문이었다. 결론은 10단계를 마스터하고 각각 단계의 주문을 외울 때, 마법의 능력이 추가로 강해지는 것이었다. 1,2분 정도를 투자하여 긴 글을 전부 읽은 현민은 녹으려 하는 돋보기 위에 서둘러 라이트 마법을 준비했다. 차오르는 슬라임들의 수를 정확히 셀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깊은 땅속의 반 이상을 체우고 있었다. "라이트!!" 현민은 주문을 외우면서 약간씩 차오르던 정신력도 포함하여, 남은 모든 정신력을 라이트 마법에 투자하였다. 구멍을 덮고 있던 돋보기 위에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밝은 빛이 퍼져 나갔고, 너무나 밝은 빛에 예상하지를 못했던 현민은 순간 시력을 잃어버렸다. 한순간의 밝은 빛으로 현민이 예선전을 치루고 있던 공간에는 정적이 흘렀고, 현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 조용한 정적 속에서 현민은 라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필라민트 전구가 빛과 열을 함께 발하듯 현민이 만든 라이트도 눈을 가릴 정도의 빛과 함께 뜨거운 열을 내뿜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현민은 모든 것을 포기한듯 바닥에 누워버렸다. "어차피 시간제한도 없는거 죽었다면 내가 살고, 안 죽었다면 내가 죽겠지, 뭐." 하지만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도 자신을 덮지는 슬라임은 없었고, 현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 다 죽였나? 근데 언제쯤 보이려나....." 상당한 시간이 흐른 상태에서도 현민의 눈은 쉽게 보이지가 않았고, 현민은 마지막 남은 몬스터와의 싸움을 구상했다. 딸랑. "역시 빠르겠지? 치사하지만 어쩔수 없지. 크크." 무슨 생각을 하는것인지 현민의 입에서는 약간 음침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라이트를 실현하고 10분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 현민의 눈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현민은 슬라임을 가둬뒀던 구멍을 살폈다. "하, 하하..... 이건 실패라고 해야하나, 성공이라고 해야하나." 돋보기처럼 만든 얼음으로 빛을 모아 슬라임들을 태워죽이려던 현민의 마법이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서 모든 슬라임들을 죽였고, 이것이 현민을 약간 황당하게 만들었다. 구멍을 가득 메우고 있던 슬라임들은 뚜껑처럼 덮고 있던 얼음이 라이트 마법에서 나온 열에 녹아버렸는지 구멍속으로 들어가버렸고, 상당한 크기의 얼음이 가지고 있는 무게 때문에 구멍을 메우고 있던 슬라임들은 얼음에 눌려 터져버리거나 짓이겨져서 벽과 얼음의 가장자리 부분으로 즙처럼 흐르고 있는, 더러운 모습이었다. "어쨌든 처리는 했으니 마지막인가?" 고개를 돌린 현민은 자신의 옆에서 얼어버린채로 앞만을 바라보고 있는 노루를 향했다. 노루의 크기는 과거 현민이 처음으로 잡았던 노루의 3배를 가볍게 넘어가는 수준으로 거대했고, 비교하자면 말과 비슷한 정도의 크기였다. "웃차." 딸랑. 얼어있는 노루의 등 위로 올라간 현민은 노루의 뿔을 잡고 안정적인 자세를 취했다. -------------------------------------------------------------------------------- "해동." 스으윽. 팟! "우, 우왓!!" 노루는 다른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얼음에서 녹자마자 빠른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노루의 목에 앉아있던 현민은 순간적인 속도에 반응하지 못하고 넘어질 뻔 했다. 하지만 거의 짐승수준(?)의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는 현민은 다행이 노루의 뿔을 움켜 잡을 수 있었고, 탈락을 하지는 않았다. 탓탓탓. 90°턴, 180°턴에 공중 회전을 포함한 고공점프 등 노루는 등에 앉아있는 현민을 떨구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현민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심장이 벌렁거리는 놀이기구를 타지 않는 현민에게 노루의 스피드는 사망 이상의 공포였기에 절대 손을 노칠 수 없었다. 탓. "스, 슬립!" 스르륵. 노루의 등에서 노루와 함께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현민은 간신히 하나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고, 노루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었다. 그 기회를 노치지 않은 현민은 서둘러서 노루의 등을 내려왔고, 노루도 때마침 앞발을 구부렸다. "하아, 하아..." 노루가 슬립을 저항했습니다. "뭐, 뭐?!" 쾅!! 순간 들려오는 메시지와 함께 현민의 앞에서 비실대로 있던 노루가 갑자기 튀어오르며 현민을 공격해 왔고, 현민은 운이 좋았는지 노루의 공격을 스치듯 피할 수 있었다. "노루가 나보다 지능이 높다는 거야?!" 딸랑. 하지만 현재의 현민에게 말하는 것은 사치였다. 그 증거로 한번 박자를 놓친 현민은 노루의 빠른 움직임에 쉽사리 대응을 하지 못했고, 스치는 것만으로도 서서히 피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힐, 힐, 힐, 힐......." 일단 힐로 응급처치를 한 현민은 서둘러 머리를 굴려야 했다. 깨어났을 때부터 등에 타고있던 현민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노루는 쉴틈을 주지않고 현민을 공격해 왔다. 순식간에 앞뒤로 이동하며 공격하는 노루를 보며 현민은 운영자들이 제한시간을 없앤 것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피드를 이용한 공격이기에 모든 공격이 직선이라는 것이었다. "간다!!" 딸랑. "장비창!" 상태창을 열은 현민은 빠르게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던지기 시작했고, 노루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던졌다. 이내 현민의 주변에는 현민이 던진 무언가로 가득차기 시작했고, 그것은 가끔가다 노루뿐만 아니라 현민에게도 걸리적 거리는 방해물이 되었으나 현민은 장비창에 있는 모든 것을 던질때까지 주변을 빼곡이 하며 멈추지 않았다. 씨익. 탓. 가면속에서 웃는 현민의 얼굴이었으나 무언가를 느낀듯 노루는 현민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노루의 움직임은 정작 자신의 목을 움켜잡는 행동이었다. "그리스." 하지만 노루는 현민의 마법앞에서 방향을 바꾸며 현민의 마법을 쉽사리 피했다. 하지만 그런 노루를 바라보는 현민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가면에 가려져 있었지만. 딸랑. "덤비렴." 까딱. 현민의 도발에 더욱더 화가난 노루는 더욱 빠른 속도로 현민을 이리저리 공격했고, 현민의 몸에 생기는 상처는 더욱 많아지고 있었다. 미끌. 차좌좌좌좍!! 갑자기 잘 달려오던 노루가 무언가에 미끄러지듯 급히 네 다리를 접으며 앞으로 미끄러졌고, 현민은 그런 노루를 예상했는지 재빨리 옆으로 비켜서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다 넘어져서인지 노루는 쉽게 일어서지 못한 채 현민이 던진 무언가에 온몸을 긁히며 먼곳까지 미끄러져갔다. 끄으응.... 스윽. 과연 오우거 수준의 레벨인 노루는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현민을 향해 엄청난 적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아직 끝난게 아냐. Growth of Plants!!" 현민의 외침에 노루의 주변에 있던 나무조각들이 노루를 둘러싸며 커지기 시작했고, 노루는 자신을 감싸는 나무들을 피해 나무들을 디디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걸.렸.어." 회심의 미소를 지은 현민은 장비창에서 미리 준비해놓은 무언가를 꺼내며 공중으로 던져올렸고, 그물처럼 생긴 그것은 노루를 정확히 감쌌다. "잘가렴, Growth of Plants!!" 끼익! 끼이이익!!!!! 쿠드득!쿠득! 노루는 자신의 몸을 조이며 점점 커지는 그물을 끊고 도망가려고 했으나 그물에 박힌 무언가가 노루의 몸을 파고들 뿐, 그물은 끊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서 무언가가 점점 커져가는 것과 그물이 자신을 조이는 것을 느끼며 노루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가시나무를 엮은 그물이야. 어제 사냥꾼한테 샀지." 동그랗게 변한 그물속에서 처참히 으깨진 노루는 비록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물 사이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는 이미 노루가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이동인가?" 딸랑. 현민의 말과 방울소리를 마지막으로 현민은 첫 번째 예선전과 마찬가지로 시합이 끝나자마자 경기장으로 이동되었다. -------------------------------------------------------------------------------- 현민이 이동된 곳은 하얀 블록이 깔려있는 넓은 경기장이었다. 그곳에는 현민보다 먼저 온 사람이 수십 있었고, 그들은 현민을 한번 훑어 봤을 뿐 깊은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딸랑 "흐음~."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장 곳곳에 빛의 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그 빛기둥 사이로 예선전을 완료한 참가자들이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100명의 선수들이 모였으니 두 번째 예선전을 실행하겠습니다!!! 두 번째 예선은 단순히 생존게임으로서 참가자들 중 마지막까지 남는 한명의 선수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시작해 주세요!!!!!"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각각의 참가자들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몇몇의 참가자들은 경기장의 가장자리로 물러나 조용히 숨어들기 시작했다. "소비했던 장비나 물품은 시합을 시작하기 전과 동일하니 최적의 상황에서 전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장자리로 몸을 피하고 있던 현민은 사회자의 말에 장비창을 열어 이전에 사용했던 물건들이 원래대로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좋은데?" 딸랑"죽엇!" "하압!!" "일검!" 스슥 쾅! 콰콰쾅!! 가로세로가 거의 100m는 되어 보이는 경기장의 한가운데에서는 폭발음이 쉼 없이 흘러나왔고, 경기장의 하늘에 있던 100이라는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실드" "어? 뭐, 뭐야?!" 툭. "실드" 깡! "어라?" 데굴데굴데굴... 툭. "실드"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구경을 하고 있던 현민은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가장자리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실드 마법으로 상대를 감싼 후 조용히 밀어 상대를 떨어트림으로써 현민의 싸움(?)은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진행되었다. 28 그들의 머리위에 있던 숫자가 어느덧 28로 바뀌었고, 그들의 시선은 한곳으로 모여졌다. 쿵! ...... 조용한 정적 속에 울려퍼진 하나의 광음은 현민이 만든 실드속에 갇힌 하나의 유저가 경기장 밖의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소리였다. 딸랑"하, 하하..... 어서들 싸우시죠?" 조용한 가운데 들리는 현민의 목소리에 남아있는 유저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뜻을 모았고, 이내 현민을 향해서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크!!! 실드" 빠르게 다가온 검을 피한 현민은 자신에게 공격한 유저를 실드로 감싸버렸다. 첫 번째인 검사형 유저를 시작으로 다양한 직업의 유저들이 현민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현민의 주위에는 어느덧 십여개의 실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64번 경기장에서 닉네임 '어릿광대'님이 굉장한 방법으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현민의 어이없는 싸움을 발견한 사회자도 현민을 중심으로 사회를 하기 시작했고, 멀리서 싸우고 있던 몇몇의 유저들 마저도 현민을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스" 깡! 깡! 깡! 깡! 깡! 깡....!! 멀리서 유저들이 다가오자 바닥을 미끄럽게 만든 현민은 달려오는 유저들을 향해 실드를 굴려보냈고, 빠르게 다가오는 실드를 가볍게 피한 그들은 현민을 둘러쌌다. 딸랑딸랑"설마, 저같이 하찮은 마법사를 여러명이 상대하진 않으시겠죠?" "흥! 너같이 비열한 놈은 다구리 좀 맞아야 해." "미안하지만 내 친구가 복수를 해달라는데?" 현민을 감싼 유저들은 8명으로 그중에는 몇몇 없다는 마법사도 보이고 정령사도 있었으며, 흔한 직업에 속하는 궁수와 전사계열의 유저들도 있었다. "하, 하하" 딸랑~"네~!!! 8명의 유저들이 '어릿광대'님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과연 '어릿광대'님은 어떠한 싸움을 할지가 기대되는 군요!!!" 하늘위에서 이상한 구슬을 타고 날아다니는 사회자는 망원경을 가지고 현민의 싸움을 관찰하며 생중계를 했다. 퉁 쉬익! 빠르게 날아온 화살이 현민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현민을 감싼 8명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압!!" "공격!" "일점사!" "인탱글" 땅에서 솟아나온 나무뿌리에 현민의 발이 묶이고 전사와 궁수의 공격이 현민에게 집중되었으나 발화마법인 파이어로 재빨리 나무뿌리를 태워버린 현민은 뒤로 몸을 굴려 화살과 검을 피해냈다. 바닥을 구르고 있는 현민의 몸 위로 정령의 마법이 떨어져 내렸고, 현민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딸랑 현민이 간신히 몸을 일으킨 장소는 경기장의 가장자리 부분이었다. "휴우..... 저 같은건 마지막에 죽이시고 먼저 대결을 하시는게 어떠시련지?" "너를 죽이면 자연스럽게 적이 될터니 넌 신경쓰지말고 얌전히 죽어!!!" 캉! 흠칫 어떤 유저의 칼질에 현민의 몸이 옆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의도되로 베어지지는 않았다. 어느샌가 뽑힌 하나의 단검이 현민과 그의 검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탱글. 파이어." 땅에서 솟아오른 나무뿌리에 현민의 앞에 있던 검사의 몸이 묶여버렸고, 이어진 현민의 마법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싸울아비」의 모든 장비에는 내성이란 것이 있어서 고통이 반감 되었지만 자신의 몸이 불타오른다는 사실에 놀란 전사는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니다가 현민의 한방에 장외로 탈락해 버렸다. "7명.." 딸랑"저, 저 자식이!!" "재수없는 가면을 벗겨주마!!!" '이게 내 몸인가? 지금 움직이고 있는게.... 나?' 자신을 둘러싼 유저들의 공격을 피하던 현민은 어느순간 붕 뜨는 듯한 느낌과 함께 자신의 몸이 타인처럼 느껴졌다. 현민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현민의 몸은 빠르게 지나가는 칼과 화살 마법들을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고, 어느순간 가장자리가 아닌 중앙으로 이동해 있었다. "대, 대단하군요! 설마 듀얼클레스의 마검사라는 직업일까요? '어릿광대'님의 움직임은 마법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대단한 움직임이네요!!" 딸랑"아?!" 사회자의 말때문인지 방울 소리 때문인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몸을 확인한 현민은 좀전에 자신이 겪은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뭐, 뭐야 저새끼." "신들린 것 같네......" "하압, 일섬!" 모두가 현민의 움직임에 감탄하는 순간 창을 쓰는 유저가 현민을 공격했다. 몽환적인 느낌에서 현실로 돌아온 현민은 갑자기 나타난 하나의 창을 피하기 위해 급히 옆으로 몸을 틀었다. 하지만 특별한 스킬도 가지고 있지 않은 현민으로써는 다가오는 창을 완벽히 피해낼 수가 없었다. 툭. "아아아아악!!" 딸랑딸랑딸랑"이제 한방일 뿐이야" 바닥에 떨어진 것은 조금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붙어있었던 현민의 팔이었다. 현민의 체력은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현민은 커다란 고통에 울부짖으며 팔을 감싸안고 뒤로 물러났다. "크으으으..." 「싸울아비」의 시스템 중 하나인 고통 시스템은 사용자의 순수 정신에 비례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정신이 높은 현민은 모든 고통을 현실과 비슷한 정도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더 이상 떨어지는 체력을 막기위해 현민은 어쩔 수 없이 파이어 마법을 사용하여 잘려진 팔 부분을 그대로 태워버렸다. "끄아아악!!! 하아.... 하아...." "미, 미친놈....." 아무리 가상현실이라지만 현민의 행동은 쉽사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비틀 딸랑딸랑 일정치 이하로 깎인 체력 때문에 움직일 힘조차 없는 현민은 간신히 서서 남아있는 7명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제 너를 죽이고 우리중에 한명만 남으면 되는건가?" "아니요. 지금부터 저도 저분의 편이니 저도 죽여야만 할거에요." "응?" "어라?" "미안했어요." 그들과 같이 현민을 공격하고 있던 7명 가운데 활을 들고 있던 한명이 현민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 현민의 앞에 섰다. "...뒤로" 자신의 앞에선 여자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현민은 하나 남은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뒤로 보냈다. "후우... 후우... 항복하세요." 딸랑 떨어진 체력 때문에 말조차 하기 힘든 현민은 호흡을 가다듬고서야 겨우 몇 마디의 말을 할 수 있었다. "너 정도의 허접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하지만 이제는 끝이다!!" "하압!!" "죽어!" 간신히 서있는 현민을 보고 용기를 얻은 6명의 유저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현민을 죽이려 했다. 긴장된 순간이라서 그런지 사회자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은 채 현민과 6명의 유저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스윽.... "죽이기는 싫었는데..... 인탱글,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가면을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 현민은 뒤로 돌면서 조용히 속삭였고, 현민의 발 아래서부터 솟아난 나무뿌리들은 빠르게 번저나가며 6명의 유저들을 감싸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마법에 거대하게 변한 나무뿌리들은 그들을 감싸안았다. "꺄아아악!!" "으아악!" "컥!" 자신들을 감싸는 나무뿌리의 힘이 점점 강해지자 그들의 몸은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하고 한부분, 한부분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나무뿌리가 거목만큼 두꺼워졌을 때 그들이 있을 만한 공간은 없었고, 그들의 몸은 과거 숲에서 오우거가 죽었을 때처럼 조각조각 터져서 흩어졌다. 너무나 잔인한 광경이었지만 그들의 시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먼지로 변해 사라졌고, 경기장 위에는 현민과 마지막에 현민을 편들어 줬던 여궁수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사, 사회자 아저씨?" "네, 넵!?" "기....권이요." 털썩 마지막 한명인 여궁수를 남겨놓은 채, 현민은 바닥에 주저앉아 기권을 선언했다. "어, 어째서?" 현민의 뒤에서 가만히 서있던 여궁수는 현민의 기권에 깜짝 놀랐다. 좀 전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면 자신은 분명 현민의 마법에 죽었을 것이고, 오히려 자신을 협박함으로서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 낳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힘들거든요...." 딸랑 사실 현민의 마법 조합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다른 유저들처럼 좋은 아이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히든잡을 가지고 있는 캐릭도 아닌 현민이 단순히 마법 하나만을 가지고 본선의 문턱까지 다다른 것은 그가 엄청난 머리(JQ)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릿광대'님의 기권으로 64번 경기장의 승자는 '로벨리아'님이 되셨습니다!" 사회자의 말과 함께 경기장 위에 남아있던 여궁수는 마지막 말을 하지 못한 채 어디론가 이동되었고, 경기장위에는 현민만 혼자 남게 되었다. 딸랑 방울이 달린 모자에 피에로 가면 하나, 그 외에 있는 장비라고는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옷밖에 없는 현민은 떨어져 버린 한쪽 팔을 들고 경기장 밖에 있는 의료진에게로 갔다. "치료해 주시겠어요?" "아, 예!!"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현민의 움직임과 행동을 본 치료사는 현민이 건내주는 팔이 마치 현실속의 팔처럼 느껴지는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현민의 팔을 치료했다. "고맙습니다" "훌쩍, 으아아앙" 현민의 한마디에 그녀는 주저앉아 울어버렸고, 현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왔다. "흐음.... 아쉽긴 하지만." 꾸욱 다시 달라붙은 오른팔을 몇 번 쥐었다 핀 현민은 자신의 뜻에 따라 잘 움직이는 팔을 보며 가상현실의 뛰어남을 다시한번 느꼈다. "하아... 너무 피곤해." 비록 아깝게 예선전에서 탈락했지만 너무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멋진 싸움이었기에 피곤함을 제외한 모든 것이 마음에 든 현민이었다. "돌아가 볼까?" 딸랑딸랑 경기장 한쪽에 있는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현민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비록 50골드를 눈앞에서 놓쳤지만 예선전까지는 올라갔기 때문에 10골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 딸랑~ "어서오세요~~~" 맑게 울리는(?) 방울소리는 현민의 모자에서 들려온 것이 아니라 문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어머, 벌써 오셨네요? 이런~ 역시 마법사란 직업이 최소 4서클을 넘어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 정말 안타까워요.... 저희 길드에서 몇 안돼는 참가자여서 기대했는데 역시 마지막에서 안돼나봐요." "하, 하하.... 그러네요." 마법사 길드에서 참가한 인원이 몇 안 되고 그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온 유저가 현민이기에 많은 기대를 했던 것인지 그녀의 입에서는 많은 말이 쏟아져 나왔지만 현민은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해버렸다. "휴.... 잠깐 나갔다 들어와야지. 종료." [종료하시겠습니까?] "응." 위이이이잉 어두워지는 시야와 모터 돌아가는 소리를 느끼며 현민은 현실의 세계로 돌아왔다. 우드득"으자자자자!!!" 우득, 우드드드득! 현민의 몸에서는 뼈의 마찰음이 심하게 울렸고, 현민은 한동안 스트레칭을 했다. "휴우..... 지금 시간이?" 방의 한쪽에 달린 시계를 확인한 현민은 저녁 10시를 가르키는 숫자를 볼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했네...... 킁킁! 좀 씻어야겠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시작한 「싸울아비」가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기에 하루 종일 현민이 한 것이라고는 누워있는 것밖에 없었다. "시원하다~" 모두가 놀러갔는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누워있던 현민은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점점 눈이 감겨옴을 느꼈다. "으음, 밥 먹어야...하는데" 쿨..... 너무나 시원한 바람에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거실바닥에 누운 채로 잠에 빠졌다. "으응... 에취!"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눈을 뜬 현민은 자신이 상반신 누드(?)로 바닥에 누워있었다는 알았다. 감기는 눈을 비벼서 시계를 확인한 현민은 현재 시간이 4시를 약간 넘었다는 것을 보고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정말 졸리지만, 운동은 해야지. 끙~~차!" 이상한 구호와 함께 몸을 튕기듯이 세운 현민은 방으로 비틀비틀 들어가 검은색의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점점 해가 빨리 뜨네." 4시에 집을 나섰지만 5시 20분을 넘기면서 점점 밝아오자 현민은 다시 집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남에게 운동하는 것을 보이기 싫어하는 현민은 운동을 하기위해서 좀 더 일찍 일어나기로 생각했다. "어디보자~. 먹을게 뭐가 있으려나."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깨끗이 하고 주방으로 향한 현민은 냉장고를 열어 아침식자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냉장고에는 김치만 가득찼을 뿐, 특별한 반찬도, 맛있어 보이는 반찬도 보이지 않았다. "깍두기나 먹어야겠네." 그나마(?) 김치의 종류가 다양했는지 깍두기 통을 꺼낸 현민은 밥과 함께 쟁반에 담아 거실로 갔다. "어디보자." 현재시간 7시. 별로 한 것도 없었지만 집에 들어오고 난 이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TV에서는 「싸울아비」전문 방송을 해주고 있었다. "본방송이네?" 평소에는 재방송만 보던 현민은 처음으로 본방송이 몇 시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신문이나 인터넷 등을 사용함으로서 손쉽게 알 수도 있었지만 자주 보는 TV도 아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싸울아비」의 아침방송 시간입니다. 어제 저녁 모든 예선전이 끝나고, 오늘 아침 9시부터 본선전이 시작되는군요. -네, 많은 분들이 지금 휴식을 취하고 본선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다들 최적의 상태로 전투를 할 수 있겠네요. 아참,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엄청난 유저가 많이 나왔다면서요? -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예선전의 하이라이트 장면과 공개된 유저들의 레벨, 그리고 우승후보에 대한 예상입니다. 물론, 자신의 실력을 숨긴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예상이기 때문에 의외의 사람이 나와도 욕을 하지는 마세요~. -하이라이트 장면부터 빨리 보면 안돼요? 저도 어제는 예선전에 참가하느라 보지를 못해서 그러는데.... -그럼 혜정양께서 바라시는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실까요? 1위의 장면은 「싸울아비」내에서 유일한 존재인 싸울아비의 전투장면입니다. TV속의 화면이 바뀌면서 거대한 검을 들고 있는 한명의 여인이 10마리의 오우거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크아아앙!! 스윽..... 한 마리의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순간 바닥을 향해있던 검끝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내 검을 들고 있는 그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아아..... 털썩 부드럽게 움직이는 칼날은 달려드는 오우거의 오른팔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며 잘라버렸고, 이내 돌아가는 몸과 함께 같이 움직인 칼끝에는 오우거의 목이 걸려있었다. 단 한번의 회전. 단 두번의 칼질로 한 마리의 오우거를 죽인 그녀의 검에는 단 한 방울의 피도 묻어 있지 않았다. "오렴.." 오우거의 시체 앞에서 광오하게 내뱉는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나머지 9마리의 오우거가 일제히 덤벼들었고,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아아아..... 바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리는 그녀의 움직임은 크지 않았지만 그녀의 칼이 지나가는 부분에는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가 가로막으면 그것을 가르고 갔으며, 무언가가 다가오면 뒤쪽으로 흘려보냈다. 그녀의 환상적인 움직임이 끝났을 때, 그녀의 주위에 있는 것은 10마리의 오우거였다. "멋...지다." TV를 보고있던 현민은 처음으로 두근거린다는게 어떻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TV속에 화면이 다시한번 바뀌면서 그녀의 모습은 경기장 한가운데로 이동해 있었다. 사회자의 외침 속에 예선전이 시작되었고, 모든 유저들이 그녀를 알아본 듯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춤이 시작되었다. 머리 위로 올라가는 검의 손잡이. 검끝이 아래로 내려온 상태에서 왼손으로 검신을 잡고 있던 그녀는 천천히 검을 들어올리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반 바퀴. 가장 가까이에서 공격을 하고 있던 전사의 가슴이 갈라지면서 먼지로 변해 사라졌고, 한 바퀴 돌고 있을 때에는 다시 하늘로 올라간 검끝이 땅으로 내려오며 두 번째 유저를 지나, 세 번째 유저를 가르고 있었다. 부드럽게 뒤로 돌아가는 검끝에 네 번째 유저의 목이 꽂혀 있었고, 무릎을 굽히고 돌아서는 그녀의 칼에 4명의 유저들이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그녀의 칼에 날아오던 마법과 화살이 동시에 갈라졌고, 그녀의 움직임도 차츰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아......"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그녀.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는 그녀의 몸과 함께 휘날리고 있었고, 그녀의 몸은 검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의 춤을 보는듯한 그녀의 움직임에 TV를 보고 있던 현민은 무협지에서 글로만 보던 검무를 실제로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쁘다." 현민은 밥먹는 것도 잊은 채, TV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이 멈췄을 때, 그녀의 주위에 존재하는 유저는 없었다. -와!!! -우와!!! 정말 엄청난 실력이네요. 정말 여고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데요? -정말로 춤을 보는듯한 움직임이었어요. 저 정도의 실력에 노래도 잘부르면 가수로 나서도 되겠는걸요? -얼굴도 예뻐서 이미 팬도 많다고 하던데요? -정말 부럽네요. -두 번째로 뽑힌 하이라이트를 보면 용기가 생길거에요. -네? 두 번째 하이라이트는 뭔데요? -후후, 일단 한번 보시죠. TV의 화면이 흐려지면서 또 다른 유저의 플레이가 방송되었다. -------------------------------------------------------------------------------- "어라?" -어라? TV속에 나오는 누군가의 모습은 현민에게도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다. 바로 그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흐음..... 시간제라더니 한 마리를 해동하면 시작하는건가? -그럼 시작해볼까? 모든 곳을 흐르는 물이여 강인한 힘을 보여라, 워터 볼. 세상을 지배하는 작은 힘이여 이곳에 모여라, 포이즌. 나의 의지에 나의 뜻에 따라 움직여라, 염력. -준비끝~~. 해동." 피에로 가면을 쓰고, 혼자 말하는 현민의 모습은 정말로 어릿광대 같았다. -크아아...꼬르르륵!! 너무나 허무할 정도로 한 마리의 오우거가 죽었고, 화면속의 현민은 또 한 마리의 오우거를 처리하고 있었다. 현민이 던진 것을 먹어버린 오우거는 이내 터져버렸고, 화면속의 현민은 네 번째 오우거를 실드에 가둔 채, 익사시키고 있었다. 약간 위험했지만 화면속의 현민은 마지막 오우거까지 처리했고, 화면이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와우! 이분도 정말 멋지네요. 도대체 저런 생각을 어떻게 하는거죠? 오우거를 익사시키고, 터트리고, 묶어서 죽이고, 오우거와 1:1의 싸움이라니!! -지금 저분의 실력은 3서클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다음에 나오는 화면을 보신다면 마법사에 대한 최악의 평가가 얼마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거에요. 당장에 직업을 바꾸고 싶을 수도 있을껄요? -도대체 어떤 싸움인지 궁금한데요? 잠깐의 대화를 끝으로 다시 화면이 바뀌기 시작했고, 그곳에는 모자를 쓰고 있는 현민이 있었다. 딸랑 방울소리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현민은 가장자리에 있는 유저들 하나하나를 실드로 감싸 밀어버리고 있었다. 대략, 30여명의 유저들을 밀어넘기자 모두의 시선이 현민에게로 모여져 있었고, 그때부터 현민의 환상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딸랑.... 가장자리에 몰린 상태에서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는 화면 속 현민의 모습에, 당사자인 현민 그 자신은, 스스로도 모르게 입을 벌려버렸다. 딸랑딸랑 물이 흐르는 듯. 바람이 스쳐가는 듯. 직선이 아닌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현민의 모습은 현민 이전에 나왔던 싸울아비의 움직임과 비슷하거나 더욱 멋져보였다. 수없이 쏟아지는 스킬과 공격 속에서도 단 하나의 스침도 없이 움직이는 현민은 어느새 중앙으로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내가.... 저렇게 움직였나?" 분명히 스스로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엄청난 움직임에 당사자인 자신도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다. 이어진 창 유저의 공격. 화면 속에는 팔을 잃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과 그곳을 마법으로 지져버리는 현민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정말 미친놈이네....." 자신이 한 짓이지만 자신이 봐도 미친놈이기에 현민은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지 않았다. ".....끝" 몸을 돌리고 고개를 숙인 현민의 뒤로, 바닥에서 솟아오른 나무뿌리들이 6명의 유저들을 감싸안았고, 이내 그들의 몸이 터져버렸다. 고개를 돌리고 있는 현민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화면이 바뀌었다. -아아....... -.....저는 리허설 때 한번 지금 한번해서 두 번 보는 것이지만 정말 환상적이지 않나요? -정말 환상적이네요. 마법의 사용도 그렇고, 움직임도 그렇고, 이건 마법사라기보다는 마전사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저분은 순수한 마법사라고 이미 조사되었다는군요. 정말 대단한 실력이에요.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천재들의 모임이라는 현자길드에서도 난리가 났을 듯한데. -아까 보셨죠? 혼란스러운 틈을 타 상대를 실드로 감싸고 밀어버리는 거... 실드 마법으로 방어가 아닌 저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분이 또 하나의 천재라고 생각하게 만드네요....... 정말로 제 직업을 바꾸고 싶은데요? 아니다, 그보다는 저분에게 데이트신청이라도 해서 전부 배우고 싶어요. -혜영양이 데이트신청하신다면 전부 가르쳐 드릴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들이 화면속에서 떠들고 있는 동안에 현민은 먹다만 밥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내가 왜? 우물우물" 한동안 현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그들은 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 하이라이트를 차례로 보여주었다. 물론, 현민은 밥을 먹고 난 후, 바로 일어났기 때문에 세 번째 이하로는 보지를 않았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74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밥을 먹고 다시 게임을 시작한 현민은 마지막으로 종료한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보내주는 것도 공짠가?" 자신이 시작한 마을이 변두리에 있는 것을 아는 현민으로서는 나라의 중심에 있는 수도에서 그곳까지 걸어갈 것이 막막했다. "저...기" "어머, 아직도 안 가셨어요?" "하, 하하. 제가 올때 마법으로 와....." "아하~. 가시는 방법을 모르셨나보네요. 호호호. 이리와서 손을 주시겠어요?" "아, 예!" 무엇이 그리 바쁜것인지 쉼 없이 쏟아지는 그녀의 말에 현민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가 하는 말을 따라하세요. '황홀한 첫날밤에 그대의 입술에 한 맹세를 증명하기 위해, 나 여기서 다시한번 당신에게 입을 맞춥니다.'" 그녀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말을 하며 현민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고, 현민은 거부감 때문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윽! 설마 정말 해야 하나요?" "물론이죠!! 이 주문은 제 반지에 담겨진 마법의 발동주문인걸요? 아참, 반지에 입을 맞춰야 하는건 기.본.이랍니다." "으윽!!" 심하게 구겨지는 현민의 얼굴을 멋대로 해석한 그녀는 현민의 속을 뒤집어 놓을만한 말을 계속하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반지는 한사람을 거칠 때마다 소독마법으로 깨끗이 청소하니까요." "화, 화, 황홀한 첫날밤에 그대의 입술에 한 맹세를 즈, 증명하기 위해, 나 여기서 다시한번 당신에게............ 입... 을 맞춥니다." 쪽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만큼 붉어진 얼굴로 말을 한 현민이 반지에 입을 맞추는 순간, 현민의 모습은 정말로 사라져 버렸다. "휴.... 다행이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네." 현민이 나타난 장소는 현민이 출발했던 마법사 길드의 앞 이었다. 너무나 창피한 마법주문에 npc의 장난을 생각한 현민이지만 정말 이동한 자신을 보고는 npc에게 속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하는 표정으로 빨갛게 익은 얼굴을 식혔다. 한편,"푸, 푸후후훗." "크크크크큭." "이런, 이런. 불쌍한 마법사가 다시하나 탄생했구만........." 현민이 사라지고난 후, 마법사 길드의 빈공간이 일렁거리며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흠, 이번에는 주문이 너무 야한거 아냐?" "맞아, 맞아. 다 늙어 주책이라고 나이 많.은. 자네가 그 청년을 노리면 안 되지~~." 나이를 들먹이는 마법사들을 향해 발끈한 그녀는 두 주먹 불끈 쥐고 당당히 외쳤다. "나이가 많다니요!!! 아직 서른도 안 넘었는데!" "어라? 올해 서른 아닌가?" "흥! 여자의 나이는 '만'으로 따지는 거라구요!" 다시 한번 나올지는 모르지만 너무나 꿋꿋한 그녀였다. -------------------------------------------------------------------------------- "샨, 나왔어~." "누구?" "어레? 누구세....요?" 안으로 들어간 마법사 길드에서 현민을 반기는 것은 샨이 아닌 처음보는 남자였다. "저기... 여기서 일하던 샨은 어디 갔나요?" "혹시, 샨이라는 분이 샤이나님 인가요?" "아, 예." 오랜만에 들어보는 샨의 본명이 현민에게는 무척 낯설었다. "룬님이신가요?" "제가 룬인데..." "샤이나 님은 숨겨진 마탑으로 가셨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30살도 되지 않았는데 4서클을 뛰어넘고 벌써 5서클을 바라보신다니 말이에요. 한동안의 정체기도 있었다고 하셨는데, 이런 오지에서 그것을 극복하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무, 물론이죠. 하하" "이거, 그분이 전해달라고 했어요." 뛰어난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 선생님은 공부하러 가마. "풋." 편지에 써져있는 내용은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던 현민의 마음을 일순간에 무너뜨려 주었다. 한동안 편지를 잡고 웃고 있던 현민은 밝아진 얼굴로 샨을 대신하는 남자에게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흠...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흐음....." 길의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현민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아는 것이 없는 현민이 3서클을 혼자서 익히는 것은 불가능했고, 혼자서 사냥을 하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흠.... 또 다른 선생님을 찾아야 하나?" 샨에게 마법을 배움으로써 한분의 선생님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종료." [종료하시겠습니까?] "응." 위이이이잉 「싸울아비」를 종료한 현민은 캡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검색. 싸울아비, 마법, 종족." 싸울아비 => 23,412,532건 마법 => 634,856건 종족 => 132,158,632건 싸울아비, 마법... 싸울아비, 마법, 종족 => 1,659건 또 하나의 공간이 열리고 그곳에는 현민이 검색한 단어를 포함하는 싸이트가 나열되어 있었고, 현민은 세 단어가 전부 들어간 것들만 따로 뽑아 내었다. "어디보자... 찾았다!" 검색한 단어와 내용을 찾아본 현민은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쉽게 발견했다. 「싸울아비」에서 가장 조심해야하는 것은 마법을 사용하는 종족이나 몬스터이다. 「싸울아비」내에서 마법을 익히는 것은 아주 힘들기 때문에 파티에 제대로 된 마법사를 영입하기란 정말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어떤것을 피해야하는 알려주겠다. 1순위로 뽑히는 것은 당연히 드래곤이다. 드래곤은 아직까지 발견되었다는 유저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판타지라는 배경을 그대로 그려낸 「싸울아비」 속에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위험한 종족은 마계의 종족들이다. 마계의 종족들은 특수한 이벤트나 퀘스트 중에만 만날 수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엄청난 내용을 순식간에 읽어 내려간 현민은 자신의 목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정도로 찾기 쉬운곳을 놔두고 다른곳에 갈 필요는 없겠지.... 약간 위험하긴 하지만."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74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저벅저벅... "설마 안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를 마음먹은 현민은 그동안 친했던 마을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떠날 준비를 했다. 그동안 NPC들과의 친분이 많이 있었기 때문인지 길을 떠나는 현민은 그들에게서 많은 여행용품들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자~ 가자!!" "네, 2골드입니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현민이 간 곳은 어이없게도 워프게이트였다. 걸어서 20일정도 걸리는 곳이기에 2골드라는 거금이 쓰였지만 그정도의 비용으로 시간을 아낀다면 충분히 저렴하다는 것이 현민의 생각이었다. "수고하세요~" "즐거운 여행되시기를....." 슈우우웅! 빛기둥과 함께 현민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고, 그곳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여긴가?" 워프게이트를 통해 현민이 도착한 곳은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였다. 보통의 숲이라면 워프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현민이 밟고 있는 숲이 고레벨 유저들의 사냥터이기 때문에 특별히 워프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고레벨 유저들의 사냥터라지만 몹의 리젠도 느리고 경험치도 적었기 때문에 인기는 없는 곳이었다. "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거지?" 워프게이트를 제외한 모든 곳이 커다란 나무로 둘러 싸여 있었고, 숲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어둠이 깔려 있었다. 쾅! 푸드득 멀리서 거대한 연기와 함께 폭음이 울렸고, 현민은 얼굴이 활짝 펴졌다. 씨익. 폭발음이 메아리치며 들려왔기 때문에 정확한 방향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지만 중간에 폭발음이 다시한번 들려왔기에 크게 무리는 없었다. "으.... 죽겠다." 폭발음이 들려온 곳을 향해서 발을 옮기는 현민은 죽을 것 같았다. 이 숲 자체가 고레벨 사냥터이기 때문인지 가장 약한 몬스터가 오우거였고,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게 오우거 한 마리를 가볍게 먹어버리는 쉐도우 늑대였다. "윽! 늑대." 쉐도우 늑대의 몸 형태는 뚜렷한 모양이 없이 뭉쳐진 그림자 같았다. 돌아다닐 때에는 강아지 정도의 크기였지만 사냥을 하는 순간에는 5m이상으로 커지면서 상대를 공격하고, 쉐도우 늑대의 몸 자체가 '입'이었기에 그것의 몸에 닿는 모든 것이 잘려나가는 몬스터였다. 숲에 오자마자 쉐도우 늑대를 처음봤던 현민이 작은 모습에 심심풀이로 사냥을 하려 했으나 갑자기 불어나는 그의 몸과 닿는 모든 것을 잘라버리는 '입'에 도망을 친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도망치다 죽을뻔 했지만..... 겨우 도망치는 것에 성공한 현민이 그 뒤로 쉐도우 늑대를 피해 다녔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콰콰콰쾅!!!! 조용히 숨어 있던 현민의 앞쪽에서 엄청난 광음이 울려퍼졌고, 현민은 자신이 찾던 곳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늑대 때문에 쉽사리 움직이지는 못했다. -------------------------------------------------------------------------------- "거의 다 왔다!" 쉐도우 늑대가 사라지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낸 현민은 좀전에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꺄아아악!! 어, 언니~. 죄송해요. 아악!" "이런, 씁!! 뭘 잘했다고 큰소리고!!" 거대한 나무들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잠깐전만 하더라도 동화속에나 나올법한 오두막집이 모여있.었.을. 군락이었다. "헉!" 로브를 뒤집어쓴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두명의 여성은 현민에게 상당히 커다란 심리적 부담(?)을 주었다. 빨강머리의 화끈한 여성이 검은머리의 미녀 머리를 무식하게 잡고 흔드는 모습이었다. "대체 문 실험 한기고?! 우찌 했으마 마붑진이 다 날아가노?!" "아야! 어, 언니 실수한 것뿐이에요~." "니! 내가 좀 전에 경고 했나? 안했나?!" "해, 했수요....." "했으면 말을 들어야 할기 아이가!" 현민의 귀로 점점 욕이 난무하는 사투리가 들려왔고, 현민의 얼굴은 점점 난처하게 변해갔다.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지에 대해서 심각히 생각해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 언니야... 쪼~~기. 손.님.오셨는데예?" "응?!" 실컷 끌려다니던 그녀가 우연찮게 현민을 발견했는지 현민을 손가락으로 가르켰고, 현민은 순식간에 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흠흠, 외지인인가요?" 흠칫! 순박한(?) 사투리가 오고가는 현장을 분명히 목격했건만 지금 현민의 눈앞에 있는 여성은 그것을 완전히 무시한 채, '난 순진해요....'라는 얼굴로 현민을 보며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손에 머리를 잡혀있던 여성 또한 언제 머리를 만졌는지 이리저리 휘날리던 사자머리(...)가 금방한 셋팅파마처럼 단정히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곳까지 무슨일로 오신거죠? 기운을 보아하니 이곳을 여행할만한 실력은 아닌것 같은데..." "마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흠칫! 현민의 단호한 말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놀란 듯이 어깨를 떨었다. "그 말은 우리가 누군지 알고 찾아왔다는 것인가요?" "저는 마.녀.를 찾아왔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찾아 왔나요?" "흠! 당신은 정확히 찾아왔어요. 근데 어째서 우리죠?" 좀전까지만 해도 장난스러웠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고, 그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현민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녀의 마법. 신비와 환상, 이상을 다루는 마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녀의 눈이 가늘어 지며 한층 더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냈다. 그녀의 기운이 날카로워질수록 현민의 눈동자 역시 '나 거짓말 안해요~'라고 말하듯 반짝반짝 빛났다. "흐음.... 일단 며칠만 지켜보겠어요." "휴우...." "린, 네가 책임지렴." "에엑! 언니!!!" 끼기기기긱, 치잉~ 경악을 하는 그녀의 얼굴에 현민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이었다. 현민의 표정이 바뀌는 순간에 금발의 마녀 목에서는 기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뻣뻣이 돌아갔고, 그녀의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올듯 순간 번뜩였다. "마법진.... 네가 그리고 싶니?" "히익!" '죄를 미워하데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지만 어쩌리요.... 그 죄를 지은 것이 한명의 마녀인것을...... 린이란 마녀는 알아서 꿇어야 했다. "저 꼬마를 따라가세요." "아, 네...." 그녀를 따라간 현민이 도착한 곳은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작은 크레이터가 생긴 곳이었다. "일어서라. 기억하라. 네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모습을......" 작은 크레이터 앞에서 손을 들어올린 린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하나의 기호를 만들어 나갔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조그만한 기호는 이내 팔 전체를 사용하며 그려졌고,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인 곳을 따라 붉은 선이 허공에 새겨졌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라!" 쿠드드득 그녀의 마법진과 주문이 동시에 완료되면서 하나의 집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땅이 차오르고, 기둥이 만들어지면서, 벽이 생겨나고, 지붕이 생겨났다. 그것을 바라보는 현민의 입은 벌어져 있었고,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들어와. 참고로 말하는데 네가 지낼 수 있는 곳은 1층뿐이야. 방이 필요하다면 왼쪽에 있는 방을 쓰도록 하고, 2층은 내가 사용하는 곳이니 절대! 올라오지마." "저기, 마법은.....?" 집안으로 들어가던 린은 발걸음을 멈추고 현민을 돌아보았다. "너 몇 서클인데?" "이제 3서클 2단계까지 했습니다." "하아.... 일단 언니가 시켰으니 가르쳐 줄게. 공부 시간은 하루에 2시간. 그 이상은 할 생각 없으니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그 2시간동안 최대한 집중해야 할거야."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고, 현민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채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으윽!" 청소란 것을 하는 것인지가 의심 갈 정도로 집안은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고, 이곳저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참, 앞으로 청소는 네가 해줄 수 있지? 공짜로 무언가를 배울 생각은 안 하는게 좋을거야. 우리 마녀들은 자급자족하다보니 공짜란 것이 없거든." "....네." 그녀가 2층으로 올라가자 홀로 집 중앙에 서있던 현민은 한쪽에 세워줘있는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마녀에게 마법을 배우기로 각오하고 접속한 첫 번째 날은 청소란 것을 하며 마무리 되었다. -패치로 인해서 서버가 종료됩니다. 안전한 곳에서 로그아웃 해주시기 바랍니다. "어?!" 청소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의 귓속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현민의 눈앞에 60:00이라는 시간이 생겨났다. 접속종료까지 60분의 시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현민은 서둘러 게임을 종료했다. -싸울아비 홈페이지, 패치. 현민의 눈앞에 싸울아비의 홈페이지가 펼쳐지고, 또 하나의 창이 열리면서 현민이 알고자 했던 패치내용을 보여주었다. [공지] 이번 제1회 토너먼트 결과 부족한 것이 많다고 여긴 저희 「가우리」는 좀 더 재미있고 활발한 게임을 만들기 위하여 패치를 준비하였습니다. 현실성을 위해서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직업이 추가적으로 생길 예정이며, 「싸울아비」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레벨을 조정할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 토너먼트에서 어떤 마법사분의 마법을 검토한 결과 일정 마법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 저의 「가우리」에서는 유저분들에 한해서 마법의 일부를 제한할 예정입니다. 대신, [분석, 조합, 창조]라는 스킬을 사용하여 현재 있는 마법을 개량, 창조하실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 패치 중 마법사분들을 위하여 인벤토리에 있는 마법서를 현실에서도 수련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매직보드(magic-board)를 판매할 예정이오니 많은 이용 바랍니다. 그밖에도......... 「가우리」에서 한 패치가 마법사란 직업을 죽이기 위한 패치라는 것은 누가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현민의 시합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현민이라는 마법사를 죽이기 위해서 패치를 했다고 생각할정도로 심각한 패치의 내용이었다. "하, 하하...... 어이가 없네. 내가 그렇게 큰 짓을 했나?" 아무리 자신이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다지만 「가우리」에서 패치한 내용이 자신을 겨냥하여 했다는 것에 현민은 화가났다. "씨팔, 일단 4서클까지만 노가다 까고 보자. 네들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든 복수해주마......." 「가우리」를 상대로 복수한다는게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화가 풀리지 않는 현민이었다. -------------------------------------------------------------------------------- "게다가 일주일이나 패치라니....." 방학이 끝나기 직전 시작한 토너먼트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패치는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진행되었기에 패치의 기간중에는 길고긴 방학이 끝나는 개학식이 끼어져 있었다. 아직까지 학생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현민으로서는 안갈 수가 없는 곳이었다. "벌써 학교라니....." 학교를 다닐 생각에 이런저런 고민이 생기는 현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고민도 잠시. 그동안 밀려있던 숙제가 생각난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JQ가 높다지만 평범한(?) 생활을 하는 현민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개학날이 지나고 「싸울아비」의 서버 개통일이 다가왔다. 방학동안에는 시험성적과 운이 좋아서 보충학습을 제외할 수 있었으나 개학한 이후 시작하는 야간자율학습은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었다. '자율학습이 10시에 끝나니깐 집에 들어가면 10시 반, 내일 학교 갈 준비하고 잠 잘 준비하면 11시.... 학교 가는 시간을 7시로 한 다음에 잠자는 시간을 두 시간으로 계산하면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이 6시간이니깐 게임 시간으로는 딱 하루인가? 아니다, 운동도 해야하니깐 4시간. 게임시간으로는 16시간이군.....'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현민은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생활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현민은 자신의 계획대로 행한다음 「싸울아비」속으로 접속했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26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익숙한 느낌과 함께 밤하늘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고, 아인은 자신의 눈앞에 생긴 공지를 읽어 내려갔다. [공지] 몬스터와 유저들의 레벨을 조정하는 결과 유저분들의 레벨이 상당부분 줄어드는 경우가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패치 이전보다 몬스터들의 훨씬 강해졌으니 이전과 같은 사냥보다는 과거보다 낮은 사냥터에서 사냥하시기를 권합니다. 이번 패치 이후 다양한 직업을 구함으로써 좀 더 많은 부가능력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직업은 반대로 심각한 패널티를 가져올 수 있으니 직업을 얻으실 때에는 신중히 생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밖에도............. 공지에는 다양한 내용이 나왔으나 현민에게 유리한 내용은 단 하나도 없었다. "허! 정말 욕 나오네...." 모든 패치의 내용이 자신을 겨냥한 것처럼 하나의 이익도 없는 가운데 현민의 인상은 자연히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나를 막을 수 없어." 돌아서며 말하는 현민의 눈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너희들이 그렇게 나온다면야. 크크크" 밖을 서성거리던 현민은 자신에게 배정받은 집으로 들어가 자신을 가르쳐 줄 마녀를 찾았다. "죄송하지만 나흘에 한번 8시간씩 가르쳐 주시면 안돼나요?" "흐음....." 하루에 2시간씩이나 나흘에 8시간이나 자신이 투자하는 시간은 같았지만 한번에 투자한다는 것이 더욱 낳을 것이라 생각한 그녀는 현민의 부탁을 승낙하였다. "좋아, 지금부터 하자."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민은 즉시 공부할 준비를 마쳤고, 그녀도 현민을 가르칠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일단 3서클 2단계부 4서클까지 필요한 공식들과 응용될 공식들, 그리고 그 공식들이 가지는 의미와 중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해 줄게." 한쪽에 마녀의 상징인 모자를 벗어놓은 그녀는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현민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기초적인 것을 시작으로 세세한 것 하나까지 그에게 알려주었다. 두 사람은 공부가 시작되고부터 한 치의 이동도 없었고,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에만 집중했다. 둘 중에 한사람이라도 지칠만 하건만 그들의 공부는 멈추지 않았고, 그들이 3서클 3단계를 마무리 했을때에는 이미 공부를 시작한지 10시간이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마녀인 린 자신도 이렇게 시간이 금방 갈 줄은 생각 못했는지 인상을 찌뿌리고 있었다. "다행히 한 단계를 전부 가르쳐 줬으니 지금부터는 혼자서 할 수 있는거지?" "예." 3단계를 마무리하면서 집중이 풀려버린 현민은 조금씩 잊혀지는 내용에 인상을 쓰며 서둘러 자신이 배운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현민을 바라보던 린은 조용히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사각사각 두 사람의 대화로 시끄러웠던 1층이 조용해졌고, 그곳에서는 현민이 잡고 있는 연필 굴러가는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다시한번 정리한 것을 보면서 공부하고 있던 현민은 귓속에 울리는 알람음 소리에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슬슬 가야겠네."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집중한 현민은 아직 끝내지 못한 공부에 아쉬워하는 자신을 느끼며, 움직임을 멈췄다. '내가 공부를 마치는데 아쉬워 해?' 약간의 섬뜩함. 자신의 평소 행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기에 현민이 느끼는 섬뜩함은 한층 더 했다. "요즘들어 자꾸 이상한 것 같아....." 띠리리리, 띠리리리 이상한 느낌때문인지 마음속에 망설임이 생겼지만 귓가를 울리는 알람음 때문에 기분을 가라앉히고 접속을 종료했다. 이미 잘 준비를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접속을 종료한 현민은 캡슐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버렸다. 잠시 후, 다시한번 울리는 요란한 알람에 조용히 눈을 뜬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간편한 옷을 입고 운동을 하러 나갔다. 어젯저녁 세운 계획에 최대한 맞추어 움직이는 현민이었다. 물론, 잠을 두 시간 밖에 안 잔 현민은 학교에서 틈틈이 졸 수 밖에 없었다. 드르르륵. 크게 울리는 소리는 아니였고, 현민만 느낄 수 있는 진동이 바지호주머니에서 느껴졌고, 선생님 몰래 문자를 확인한 현민의 얼굴에서는 졸음이 전부 달아나 있었다. [가우리] -귀하가 주문하신 물품이 배송완료 되었습니다. 그것은 패치가 시작된 다음날 주문한 물건, 매직보드가 현민의 집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는 문자였다. 그리고 정규수업을 마치고 찾아온 저녁시간에 저녁조차 먹지않고 몰래 빠져나온 현민은 집으로 뛰어가 소포를 확인하였다. 소포만 받아놓고 나갔는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요란을 떨던 현민은 설명서와 매직보드만 주워들고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 노트정도의 두께밖에 되지 않고, 현민의 자리도 매우 구석진 자리여서 담임이 있건 없건 현민이 걸릴 이유는 없었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 하지만 매직보드를 사용할 틈도 없이 야자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렸고, 현민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현민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모든 준비를 끝낸 후, 캡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응? 이제야 일어난거야?" "아, 네..." "자, 그럼 오늘 진도를 나가볼까?" "아, 저기! 오늘은 마법을 익히고 중간에 모르는 걸 질문하면 안돼나요?" "응?" 현민의 말에, 린은 나흘전(게임속) 현민이 분명 자신의 진도를 따라오기는 했으나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현민의 수준도 확인할 겸 현민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좋아. 하지만 8시간을 가르쳐 준다는 약속도 있기도 하니, 옆에서 제대로 하나 지켜봐 줄게." 그녀의 시선에 엄청난 부담이 가는 현민이었으나 어차피 중간중간 찾아가서 질문하는 것 보다는 옆에서 지켜보다가 자신이 주로 틀리는 부분을 알려주는게 낳다고 여겼다. -------------------------------------------------------------------------------- "뭐, 좋아. 하지만 8시간을 가르쳐 준다는 약속도 있기도 하니, 옆에서 제대로 하나 지켜봐 줄게." 그녀의 시선에 엄청난 부담이 가는 현민이었으나 어차피 중간중간 찾아가서 질문하는 것 보다는 옆에서 지켜보다가 자신이 주로 틀리는 부분을 알려주는게 낳다고 여겼다. 사각사각 두 사람이 탁자에 앉아 있었지만 들리는 것이라고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현민의 연필소리밖에 없었다. "잠깐, 그 부분은 그렇게 해야하는게 아니라....." 중간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지만 그녀가 끼어들지 않아도 자신의 어설픈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현민은 마법책에 있던 문제가 바뀌던 말던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알려줌으로써 다음 문제를 더 안 틀리게 되었고, 더욱 많은 문제를 풀어보며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야! 야! 너 사냥터 가봤냐?" 4교시의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시작되자 이곳저곳의 아이들이 끼리끼리 모여들기 시작했고, 현민은 매직보드를 꺼냈다. "왜? 아직 야자 때문에 하지 않았는데." "아, 졸라 X같아. 어제 저녁에 잠깐 접속했는데 레벨 50이나 떨어진 거 알아?!"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남학생도 레벨이 50이나 떨어졌다는 친구의 말에 놀랐는지 눈이 커져있었다. "이제 겨우 오우거 잡나 했는데, 오우거는커녕 오크한테 되졌다. 씨팔!" "너 지금 렙이 몇인데 오크한테 되져?!" "72이던가 하던 것 같던데?" "하?!" 예전 오크의 레벨이 70정도였던 걸 생각한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레벨이었다. 어느 게임이던지 유저의 아이템이 좋다면 1:1로 싸울 때 10레벨까지는 커버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패치는 그런 일반적인 생각을 무시해버렸다. '이제 조금만 더 올리면.......' 이미 3서클 2단계까지 올라와 있는 현민은 앞으로 남은 4단계(3서클 6단계=4서클 1단계) 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졌다. '아무도 안 볼때....' 모두가 교실에서 밥 먹는 틈을 타 창고로 올라간 현민은 창고 뒤편으로 있는 옥상문을 살짝 열었다. "하아~~!" 현민의 학교 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에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옥상문을 잠궈놓지만 현민이 들어온 이 문은 문 앞이 책상과 의자, 기타 잡동사니로 쌓여있기 때문에 옥상문이 존재하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잠궈놓지 않은것이었다. 털썩! 유일하게 옥상의 그림자가 비추는 곳으로 들어간 현민은 자리에 주저앉아 매직보드를 꺼내어 마법서를 풀기 시작했다. 밥조차 먹지 않고 올라온 현민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한시간 넘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덜컹 "응?" "응?"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문제를 풀고있던 현민의 귀에 들려서는 안돼는 소리가 들려왔고, 현민의 시선이 문쪽으로 돌아가는 순간. 현민은 그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학생을 볼 수 있었다. 저벅저벅 서로가 얼굴을 확인한 순간 현민은 다시 매직보드의 문제를 풀어나갔고,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는 그림자가 비치는 현민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탁!탁! "후우....." 담배란 것이 최소한 학교에서만은 피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녀는 그것조차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편하게 담배를 폈다. 슥슥슥. 옆에 현민을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치마를 입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는지 매우 편한자세로 앉아서 담배를 피던 그녀는 현민이 무얼 하나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슥슥. 현민의 매직보드가 약간 기울어졌고, 그 각도 때문에 보이지 않는지 여학생의 신형이 점점 현민의 곁으로 붙기 시작했다. 슥, 슥슥. 현민의 손에 들린 터치 펜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녀의 몸은 현민의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스윽. 펜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을 한번 마주친 후, 그녀가 처음에 앉아 있던 그림자로 발을 옮겨 주저앉았다. "훗." 자신을 멀리 피하는 현민을 바라보던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게 웃었고, 품속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어 물었다. 탁! "후우~." 시간이 흘러 그녀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가 꺼졌고,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탁! 저벅저벅 나갈 듯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난 그녀는 현민의 앞으로 다가갔다. 현민의 앞에 서있던 그녀는 현민을 내려봤으나, 현민은 그녀가 자신을 보던말던 신경쓰지 않은 채, 매직보드에 있는 문제만을 열심히 풀어나갔다. 슥! 움찔! 그녀가 갑자기 허리를 숙여버렸고,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머리에서 샴푸냄새가 맡아지자 움찔한 현민은 풀고 있던 문제도 포기한 채 재빨리 고개를 뒤로 뺐다. 쾅! "으윽!" 뒤에 벽이 없었으면 괜찮았겠지만 햇빛을 피해 그림자속으로 들어온 현민의 등 뒤에 벽이 없다는 건 말도 안돼는 것이었다. 현민이 재빨리 머리를 뒤로 뺐기에 그가 느끼는 고통은 엄청 컸으나 바로 앞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에 아픔조차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쿠쿡!" 비록 아무런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웃기게만 느껴졌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현민의 인상이 조금더 찌그러졌고, 그제서야 그녀는 허리를 바로 세웠다. "3√6.45√2.62534......‱:~ 먼저 가볼게요. 선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내려가는 그녀를 바라보던 현민은 다급히 자신이 풀고 있던 문제를 바라보았다. "젠장!!" 그녀가 했던 말은 방금 전 자신이 풀면서 적으려 했던 답이었고, 그녀가 먼저 말한 결과 그의 매직보드에 있던 문제들이 깔금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것을 풀고 마무리를 지어가는 단계에서 그녀가 끼어듬으로써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버렸다. "하아....." 누군가가 도와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매직보드만의 독특한 기능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제한시간'인데 이것은 누군가가 풀고, 그것을 배끼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고, 두 번재는 '공식'으로써 스스로가 공부하는지를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마지막 세 번째가 '음성입력'이었는데, 매직보드 주위에서 누군가가 우연히 정답을 말했을 때, 그것을 받아 적어 틀리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능이었다. 현민이 걸린 것은 그중에서도 세 번째, 음성입력이었다. 하지만, 이제 고1인 현민은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이 있고, 수준도 4단계밖에 안 남았기에 문제를 푸는 것에는 많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 하루 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순간이었다. "젠장, 그렇게 늙어 보이나? 선배라고 하게........" 방학전과 비교하여 그나마 평범한 외모가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었나 생각하는 현민이었다. 모든 것이 평범한 현민이 그녀가 대학교 수준의 문제를 풀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 "룬, 이제 어떻게 할거야?" "글쎄....요." 슥슥. 세 달... 현실에서 세 달이란 시간이 흐르고, 게임속에서 1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현민은 4서클의 돌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삼 개월 전의 레벨 변화 문제의 심각함도 이제는 많이 줄어들었고, 「싸울아비」란 게임은 다시 안정적인 게임으로 변해있었다. 탁! "끝이야?!" 현민이 쓰고 있던 펜이 움직임을 멈추었고, 린은 기쁜 얼굴로 일어났다. "응." "와~. 해방이다!!" "휴우...." 린은 크게 소리치며 어디론가 달려갔고, 집안에 남은 현민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했다. "예상보다 빠르니깐..." 게임을 시작한지 5개월 정도가 지나서 4서클 유저가 된 현민이지만 현민 스스로는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임을 시작한지 2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고등학생 중 4서클 유저가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난 것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어 지금은 53명이나 4서클 유저들이 S.K.Y.에 들어갔다. "룬~. 마녀들이 축하한다고 선물줬어." "응?" 마녀들에게 룬(현민)의 소식을 전하러 나갔던 린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양손 가득에는 마녀들이 현민에게 주는 선물이 가득 있었다. "으음~. 킁킁, 이건 '강력탈취제'고. 이거는~ 킁킁! 윽! 몬스터 페로몬이당!" 린은 자신이 받아온 수 많은 물약들의 냄새를 하나하나 맡아가며 현민에게 종류를 알려주었다. "와! 이건 정령의 돌이네?!" "음?" 많고 많은 선물 중 유난히 소란을 떠는 린 때문에 현민도 자연히 고개가 돌아갔다. "룬, 룬. 이게 바로 정령의 돌이라는 건데, 마력의 돌에 속성이 생긴 돌을 말하는 거야." "그거 좋은거야?" 초보마을의 잡화상점에서도 파는 것이 마력의 돌이기에 그것이 변한 정령의 돌이 어느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를 못하는 현민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현민 뿐만이 아니었다. 마녀의 마을에서도 단 하나밖에 없는 이 돌은, 처음 현민이 마을에 왔을 때, 린의 머리를 잡고 있던 마을의 촌장 유로시아가 가지고 있던 돌이었다. 유로시아도 창고를 청소하다 우연히 발견한 물건이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니고 있자 그것을 따로 보관해 놓은 것 뿐이었다. "능력이 뭔데요?" "쿠쿠쿡. 속성친화력!" 음침하게 웃는 린의 눈이 반짝거렸다. "응?"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 다르게 현민은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다. "정말 몰라?" "예." "하아....." 정말 모른다는 현민의 반응에 린은 일단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현민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일반적인 인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친화력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없어. 물론, 이것은 유전되는 것도 아니기에 혈통을 보호할 수도 없지. 이와는 반대로 자연의 요정이라는 엘프는 모든 속성친화력이 존재하는 상태로 태어나는데, 이것은 종족에 상관없이 다크엘프도 마찬가지래.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얘기였고, 이제부터 너희들이 속성친화력을 어떻게 올리는지 말해주지. 너희들은 속성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는 존재라 하더라고? 하지만 너희들은 후천적으로 올릴 수 있도록 되어있대. 다만, 방법이 엄청 무식해서 그렇지.... 물의 속성을 올리려면 물속에서 1년 이상을 지내야 하고, 불의 속성을 올리려면 불속에서 1년 이상을 지내야 하고, 땅은." "땅속에서 지내야 하겠지." "물론, 하지만 바람의 속성은 조금 미친짓이지만 1년 동안 높은곳에서 떨어져야만 올릴 수 있다던데? 아, 물론, 처음부터 속성을 지닌 존재도 가끔은 있다고 하더라구. 아주 가끔이지만..." 그들의 대화는 점점 깊어졌다. "그래서 저것의 능력은 뭔데?" 도저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현민은 린의 손에 있는 정령의 돌을 가르키며 말했다. "음.... 정령의 돌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생긴다는 것." 린의 말을 듣는 현민의 눈이 매우 반짝였고, 입가에는 작은 미소도 지어져 있었다. "좋아, 한동안 그것을 연구해 봐야겠어요." "뭐,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연구를 하면서 머리를 식히는 것도 괜찮겠지. 그보다 이제 그만 말 놔. 벌서 1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내가 어려워?" "언젠가는 말 놓겠지만 지금은 섞어서 할게요." 3개월이나 지났지만 현민은 좀처럼 린과 친해지지 못했다. 샨의 경우 짧은 기간동안 친해질 수 있었지만 그것은 우연이었을 뿐, 그 우연이 린에게서도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마법진은 어때? 익숙해 졌어?" 입으로 말해서 발현하는 마법과 다르게 손으로 진을 맺어 마법을 실행하는 마법진은 입으로 구현하는 마법보다 조합도 더욱 다양하고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현민이 3개월에 걸쳐서 4서클에 진입한것도 마법을 푸는 도중에 마법진의 수련도 같이 했기 때문이었다. 슥, 스스슥, "아이스." 뽀드드득! 허공에서 현민의 팔목이 움직이고 작게 그려진 마법진에서 한기가 흘러나와 현민의 앞에 있던 물컵을 열려버렸다. "흠....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괜찮네." "아니." 슥! 스슷, 스스슥! "파이어, 아이스" 화르륵, 뽀득! 챙그랑!! 현민의 양손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고, 현민의 양손 끝은 서로 다른 두개의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호오? 더블이네?" 처음 보여주었던 능력에서는 미소만 지었던 린이 지금 이루어진 마법진에 대해서는 감탄을 했다. "린, 이건 너에게만 보여주는거야." 슥, 스슥...... 현민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빛이 원을 그리고, 기호를 그리면서 하나의 마법진을 만들어 냈고, 현민은 손을 펼쳐 그 마법진을 붙들었다. 스스슥, 팟! "아!" 현민의 손에 쥐어진 마법진에서 흘러나온 빛이 허공위에 또 하나의 마법진을 그려내었고, 그 마법진이 완성되었을 때, 작은 불기둥이 현민의 손에서 빠르게 돌고 있었다. "뭐, 뭐야?! 방금건!!!" 그동안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마법진에 린은 매우 놀랐다. 두 개의 팔을 움직여 두개의 마법진을 만들어 내던 것은 마녀들 사이에서는 매우 흔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하나의 마법진을 이용하여 다른 마법진을 또 하나 그림으로써 두 가지의 능력이 모두 나타나는 방식을 구현한 마녀는 아무도 없었다. 린의 앞에 있던 현민은 마녀조차 하지 못했던 생각으로 엄청난 발견을 한 것이었다. 과연 JQ 천재..... "신기하지?" "대, 대단해! 나도 가르쳐 줄거지? 응? 응?" 현민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린은 몸을 피하는 현민의 얼굴을 붙잡아 버렸다. "누아주(놔줘)." "대.답?" 끄덕끄덕 씨익~ -------------------------------------------------------------------------------- "하아.... 상태창." ------------- 이름 : 룬. Lv : 36 직업 : 마법사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89(18) 정신 : 124(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0 방어력 : 52 생명력 : 186 정신력 : 1620 보너스 스텟 : 165 -------------- "그보다 잠시만..." 잠시 상태창을 열어본 현민은 정령의 돌을 들어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정령의 돌 속성 : 물 능령 : 사용자에게 속성친화력 1을 부여한다. 설명 : 마력의 돌에 속성이 생기며 변화한 돌. 요정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간식(?) "호오? 사용." 팟! 현민의 손에 들린 정령의 돌이 가루로 변하며 현민의 전신으로 흡수되었고, 커다란 눈망울로 현민을 바라보고 있던 린의 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상태창" ------------- 이름 : 룬. Lv : 36 직업 : 마법사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89(18) 정신 : 124(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0 방어력 : 52 생명력 : 186 정신력 : 1620 물 속성 친화력 : 1 보너스 스텟 : 165 -------------- 현민의 눈앞에 생긴 상태창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친화력이 생겨나 있었고, 현민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친화력을 0에서 1로 만드는 것은 사람의 성격을 실험한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지 1에서 2가 되는 것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정령과 오랜시간을 함께 할 경우 친화력이 올라갔고, 스텟을 올림으로써도 친화력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소수의 정령사들은 자신의 능력을 올리기보다는 정령과의 친화력이나 정령의 공격력을 올렸다. "린, 친화력이라는 것 어떤 능력이 있어?" "글세... 워낙에 정령사가 희귀해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 같던데?" 정령사란 직업이 워낙 희귀하고, 그나마 있는 정령사 유저들도 친화력보다는 공격력을 올리기 때문에 친화력에 대한 정보는 어느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속성 친화력도 생겼으니 이제 계약이나 해볼까?" 정령과의 계약조건을 가지고 있는 현민은 정령이란 존재에 대한 궁금함과 동심어린 마음으로 자신의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있는 린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덮썩! "으, 으악!!!" 정령과 계약하려던 현민의 앞으로 갑자기 다가온 린이 다시한번 현민의 얼굴을 붙잡았고, 린은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정말로 코가 서로 닿은 상태에서 현민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법.진!" 그녀가 말 할때마다 뜨거운 입김이 현민의 입술에 느껴졌고, 현민의 체온은 급격히 상승했다. 서로의 입이 거의 붙어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입을 열거나 숨을 쉰다면 혹시나 자신의 숨결이 그녀에게 닿을까봐 현민은 숨조차 멈추고 있었다. "마.법.진!" 다시 한번 따스한 입김이 현민의 입술에 느껴졌고, 더 이상 참지못한 현민은 다급히 그녀를 밀쳐냈다. "아얏!" 무언가가 불쾌한 것인지 그녀의 비명 때문인지 현민의 미간에는 내 천(川)자가 생겨있었다. "마녀는 조신해야 해요. 지금부터 가르쳐 드릴테니 앞으로 이런 것은 하지마세요." 씨익! 현민의 말에 그녀의 입꼬리가 양쪽으로 올라갔다. "마법진에도 수학이 있는 것은 알고 계시죠?" "응!" "마법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의 공식과 법칙이 모여서 하나로 만들어 지는 건 아시죠? 마법진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의 도형과 순서, 그리고 마법어가 하나로 만들어 지는 거에요. 이것을 생각해 볼 때, 마법진과 마법진의 도형과 모양이 일치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을 서로 연결해서 두개의 마법진을 동시에 그릴 수도 있는거에요. 쉽게 설명하면 수직으로 세워진 마법진과 수평으로 세워진 마법진의 만나는 곳이 서로 같다면 두개의 마법진을 같이 그릴 수도 있다는 거죠." 잠시 숨을 돌린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에 간단한 손짓을 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마법진은 상당히 복잡하고, 동작도 어려우니깐 비추(비추천)고요. 이것보다 쉬운 방법으로, 좀 전에 제가 했던 마법진으로 마법진을 그리는 거에요. 이렇게 할 경우 나의 사용이 능숙하다면 무한에 가까이 사용할 수 있거든요." 현민은 설명과 동시에 시범을 보이 듯, 하나의 마법진으로 또 다른 마법진을 그리고, 그것으로 또 하나의 마법진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이것을 사용할 경우 마법진의 딜레이 때문에 마법이 실행되지 않고 그냥 사라지더군요." 현민의 손이 그려낸 마법진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허공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니 이것을 완벽히 하기 위해서는 빠른 완성과 딜레이를 계산하여 마법진을 순서대로 그리는 방법이에요." 그날 운동도 포기한 현민은 학교를 가기 이전까지 린에게 자신이 사용하는 마법진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어야 했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하암......" 현민은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린 때문에 잠자는 운동하는 시간도 포기하고, 잠자는 시간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력만은 높은 현민이었지만 그의 의지와 다르게 몸은 그것을 버티지 못해냈다. 터벌터벌.... 졸린 눈을 비비며 매직보드를 꺼낸 현민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암... 졸려." 이미 학교 옥상은 현민의 장소가 되어 있었다. 창고에 있던 장판을 몰래 옮겨와 옥상에 깔아 놓았고, 조그마한 쿠션도 가져다 놓아 언제든 쉴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나른한 햇살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마저 살랑거리니 현민으로는 잠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덜컹! 옥상의 문이 열리고 현민의 고개가 돌아가는 듯 했으나, 현민은 팔을 들어올려 햇빛을 가릴 뿐, 들어온 사람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털썩! "아~ 좋다." 현민의 옆에 누워버린 사람은 과거에 현민이 풀고 있던 문제의, 답을 말하고 현민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여학생이었다. 그 날이 있은 이후, 그녀는 가끔가다 찾아왔지만 현민은 그녀가 오던지 말던지 상관하지 않았다. -------------------------------------------------------------------------------- 털썩! "아~ 좋다." 현민의 옆에 누워버린 사람은 과거에 현민이 풀고 있던 문제의, 답을 말하고 현민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여학생이었다. 그 날이 있은 이후, 그녀는 가끔가다 찾아왔지만 현민은 그녀가 오던지 말던지 상관하지 않았다. 쿵! "큭!" 여전히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누워있던 현민을 바라보던 그녀는 현민이 베고 있던 쿠션을 뽑아버렸다. "어이~, 어이~. 사람이 말하면 좀 들으시죠?" "윽!" 강제로 현민의 손을 내린 그녀는 현민의 얼굴 가까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고, 현민은 황급히 얼굴을 옆으로 뺐다. 현민의 옆에서 현민에게 얼굴을 들이댔던 그녀는 현민의 반응을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너, 사람하고 접촉하는게 싫어? 아님, 결벽증있어?" "하아...." 처음의 만남에서는 선배로 착각하여 존대해 주었으나 그 다음의 만남부터는 현민에게 말을 놓고 있는 그녀였다. 현민은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한쪽에 있는 그늘로 들어갔다. 삑. 스스슥... "에이, 재미없다. 또, 문제푸는거야?" 현민의 반응을 즐기듯 그녀는 현민의 옆에 바짝 붙어서 현민이 하는 것을 지켜봤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나 있는 듯 현민은 익숙하게 몸을 한쪽으로 빼어 그녀의 접촉을 피해버렸다. "최.현.민." 움찔! "호오~?"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그녀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서인지, 현민은 눈에 띄게 어깨를 움찔거렸다. "최현민, 최현민, 최현민?" 움찔! 움찔! 움찔! "킥킥킥." "하아....." 자신의 반응을 즐기는 듯 한 그녀 때문에 현민은 풀기 시작한 문제를 내려놓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냥, 내 이름이 지혜라고 윤.지.혜." "응." ..... 그것을 끝으로 그들은 말이 없었다.....는 아니고, 잠시간의 침묵이 흘러갔다. 슥, 슥슥슥... 서로 마주한 상황에서 아무런 말도 없자, 괜스레 무안해진 현민이 다시 문제를 풀기 시작했고, 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말할 때는 몰랐는데 그와 대화를 하려고 하니 갑자기 말이 안 나온 것이었다. 탁! "후우....." 그녀 또한 무안했는지 현민의 옆에서 얌전히 담배를 피웠다. "현민아." "응?"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현민은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했다. "그거, 162.234다." 삐-- 그녀의 말이 있자마자 현민이 풀고있던 문제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현민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현민아..." "......왜?" 두 번째 부르는 그녀의 부름에 현민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담배 피우는 여자는 싫어?" "...???" 화낼 기회만 잡고있던 현민은 갑작스런 그녀의 질문에 자신이 무슨말을 해야하는지 잊어버렸다. "사람은 말야....." 움찔! '어떤질문을 했고, 의도가 뭐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현민은 지혜의 갑작스런 말에 또다시 생각이 끊어졌다.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 같아. 그게 좋은 영향이던 나쁜 영향이던지 말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글세, 인연(因緣)을 말하는 거야?" "음.... 그렇네. 나는 사람의 운명이라는게 인연이란 실들이 뭉쳐진 실타래라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운명이라는 것 말야." 아무리 얼굴을 자주 봤다지만 이러한 질문을 하는 지혜를 현민은 쉽사리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이런 질문은 왜?" "후훗" 현민의 물음에 그녀는 웃으며 담배를 껐을 뿐, 현민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는 않았다. "내 질문이 먼저 아냐?" "....운명이란 것, 순번같은게 아닐까?" "순번?" "응, 나란 존재가 '태어날까, 태어나지 않을까'를 시작으로,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냐는 모든 가능성을 갖고, 어떻게 사느냐가 결정되는 경우 중에 하나. 말이 좀 복잡한가? 어떻게 설명해 줘야하나......" "평행우주론을 말하는 거구나?" 현민이 생각하는 그것은 모든 경우의 수가 하나의 우주로 갈라진다는 평행우주론을 말하고 있었다. "응, 맞아. 그리고 그 중에 나란 존재가 가지는 경우의 순서가 바로 운명이라는 거지." "어찌보면, 네 말이 가장 타당하다. 운명이 있다는 것과 운명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둘 다 만족하니깐." 그녀는 현민의 대답에 자신이 몰랐던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반응은 잠시였을 뿐, 이내 반짝이는 눈으로 현민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런 낭만없는 말을 나같이 예쁜 여자 앞에서 하고 있냐?!" "웃! 무, 무슨 짓이야!" 어제 저녁 린이 했던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현민의 얼굴을 꽉! 잡고 자신의 얼굴 바로 앞으로 가져갔던 것이었다. 물론, 현민의 반응 역시 이전밤과 마찬가지로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내가 무섭니? 엄청 빨리도 피하네..." "미안..." 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이 현민이 보기에는 쓸쓸해 보였지만 정면에서 보는 그녀의 모습은 하나의 악마였다. 두 눈이 초승달을 그리고 있었고, 오른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갈게. 앞으로는 아는채도 좀 해주라, 응?" "...." "아직 아무도 모르는건데, 나 6서클 마법사니깐 혹시나 모르는 것 있으면 마음껏 물어봐." 현민이 대답도 하기전에 그녀는 잽싸게 옥상의 문을 열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6서클? 천재?" 마법사란 직업이 어떤 직업인지는 그것을 하고 있는 현민이 가장 잘 알고 있었고, 6서클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도 쉽게 알 수 있었다. 4서클만으로도 왠만한 대학을 들어가는 상황에서 6서클이라니. 현민은 그녀가 얼마나 천재인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그런 천재가 왜 자신에게 이렇게 친근히 대하는지는 쉽게 몰랐지만 말이다. -------------------------------------------------------------------------------- "린~~." 평소와 마찬가지로 접속했지만 린은 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쾅!! "흠... 이제 4서클도 만들었으니 마법이나 조합해볼까?" 패치가 이루어진지 3개월이 흘러간 지금. 숨어있던 마법사들과 현자길드의 마법사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조합한 마법을 책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중이었다. 약간 뒤늦은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현민도 그들의 뒤를 쫓아 자신에게 필요한 새로운 마법을 만들기로 했다. "어디보자, 스킬창." 3개월이란 시간동안서클 올리기에만 열중한 현민은 패치 이후로 단 한차례의 마법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0서클 -분석 -조합 -창조 1서클 -라이트 -10 -매직미사일 -10 -파이어 -10 -실드 -10 -힐 -10 -인탱글 -10 -홀드 -10 -클리어 -10 -아쿠아 -10 2서클 -매직애로우 -10 -워터 볼 -10 -디그 -10 -그리스 -10 -큐어포이즌 -10 -염력 -10 -수중호흡 -10 -포이즌 -10 -메모라이즈 -10 -아이스 -10 3서클 -파이어볼 -6 -아이스볼 -6 -워터애로우 -6 -슬로우 -6 -윈드커터 -6 -라이트닝 애로우 -6 -슬립 -6 -언락 -6 -미러이미지 -6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6 -커스 -6 4서클 -스트랭스 -1 -헤이스트 -1 -어스 스피어 -1 -라이트닝 볼 -1 -복화술 -1 -디택트 마나 -1 -투시 -1 -매혹 -1 -혼돈 -1 -아이스 월 -1 -파이워 월 -1 -리무브 커스 -1 현민은 자신의 스킬창을 가득 체우고 있는 마법을 본 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42개나 되네.. 흐흐." 하지만 마법의 능력을 봤을 때, 현민의 표정은 180도로 뒤바뀌어 있었다. "이런, 씨팔!!!" 현민이 주된 공격으로 쓰던 식물거대화 마법의 제한조건이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식물에 한해서 라고 바뀌어 있었고, 실드 같은경우에는 내부의 공격역시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공격만을 막아주는 반구의 모양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탱글 같은 경우에는 주위 50m 안에 나무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제한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밖에도 아쿠아 같은 경우 물한컵 정도의 양밖에 나오지 않았고, 필요한 마나의 양도 늘어나 있었다. "후우......" 현민은 머리가 갑자기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탁자에 주저앉았다. 유저들의 반발도 있기에 어느 정도의 선에서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패치가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정말로 '자신'만을 겨냥하고 있었다. 현민이란 마법사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욕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가우리의 운영자들의 생각이 현민의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이제부터는 도전이라고 받아들이겠어......" 현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모든 경우의 방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마법과 마녀의 마법진을 배운 현민이었기에 이것을 잘만 활용하면 그는 충분히 운영자들을 엿 먹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인벤토리에는 인형술이 적혀져 있는 스킬북도 존재하고 있었다. "조합, 설명." -조합하고자 하는 두 개의 스킬을 선택하여, 하나의 새로운 스킬을 만듭니다. 성공확률이 존재하며, 실패했을 경우, 렌덤으로 레벨이 감소하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두 개의 마법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마나를 줄이고 사용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실패했을 경우, 레벨이 감소한다는 것은 모든 유저들에게 살벌한 말이었다. "분석, 설명." -마법이 가지는 공식과 방법을 풀이합니다. 너무나 간단한 설명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창조, 설명." -특정한 공간속에서 원하는 이미지의 원하는 스킬이나 마법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법칙에 순응하지 않거나 올바르지 아니한 마법이나 스킬은 생성되지 않으니 깊이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흠...." 조합, 분석, 창조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현민은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분석." -분석하고자 하는 마법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라이트." 현민이 라이트 마법을 선택하자 스킬창에서 라이트 마법이 살짝 빛나는 듯 하더니 그의 앞에 하나의 종이가 생겨났다. "호?"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현민은 종이에 적혀있는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흠~, 이거 재미있어 졌는데?" 현민이 바라보고 있는 종이 위에는 몇 개의 공식이 적혀있었다. 탁탁탁. "빛을 만드는 방법의 공식이라.... 생각보다 엄청 복잡하군." 1서클의 가장 간단한 마법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으나 그런 현민을 비웃듯 라이트를 분석하여 나온 공식들은 현민의 수준에 간당간당한 정도였다. "분석, 파이어, 매직미사일..... 아쿠아." 1서클의 전부를 분석해 버린 현민의 앞에 수십 장의 종이가 나타났다. 처음보다는 익숙한 모습으로 종이를 하나하나 넘기던 현민은 같은 1서클이라도 생성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이어 마법은 4개의 공식으로 되어있다라..." 1서클 마법 중에 서로 비슷한 공식도 존재했지만 그렇지 못한 공식이 더욱 많았다. "룬, 뭐해?" 자신의 앞에 공식을 쌓아 놓고 고민하는 중 들려오는 린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현민은 꼬질꼬질한 몰골로 눈곱조차 때지 않은 린이 하품을 하며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아.... 좀 씻어요." "귀찮아. 그보다 뭐 하는 중?" 현민의 반대쪽에 앉으며 대충 눈곱을 때어낸 린이 완전히 떠진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이미 만들어진 마법을 분석해서 새로운 마법을 만들려고 하는데 어떤 공식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흐음....... 하긴, 마법이란것이 자신이 만든것이 아니고서는 어디에 사용되는 공식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긴 하지." 현민의 말에 자신도 이해를 한다는 듯, 린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좀 무식한 방법이긴 한데, 공식을 하나씩 빼버리거나 숫자를 바꿔서 실험하면 그 공식이 어디에 사용되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껄? 뭐, 목숨이 위험하긴 하지만 마녀가 그 정도의 위험도 감수하지 않고 될 수 있는 직업은 아니잖아?" 가장 단순한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린의 가르침에 현민은 자신이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 같았으면 생각 같은 것은 하지도 않고 바로 했을 실험을 지금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 나름대로 충격이 되긴 했다. "고마워, 린. 그보다 내가 가르쳐준 것은 어때?" "흐흐흐..." "윽!" 현민이 감사할 때도 듣는듯 마는듯 했던 린이 마법진 얘기가 나오자 마녀같은(?) 미소를 흘리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보여줄까?" 슥, 스스슥, 스르륵, 스슥!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양손이 각각 하나의 마법진을 만들었고, 두 개의 손에서 만들어진 마법진들의 움직임이 다시 하나의 마법진을 만들어 내었다. 팟! 마법이 실현되고, 린의 손 위에는 네 개의 작은 회오리가 춤을 추듯 놀고 있었다. "벌써 그 정도로 하다니....." 두 개의 마법진을 그린다는 것은, 하나의 마법진을 그린다음 그것의 마나를 '잡은' 채 또 하나의 마법진이 그려져야 하는 곳에 일정히 빠져 나오는 마나의 흔적을 남기며 모양을 만들어야지만 하는 상당히 컨트롤하기 힘든 방법이었다. "그럼, 나는 올라가서 마저 잘게. 열심히 공부해~~." 현민을 향해서 마법을 자랑한 린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는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혼자 남은 현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 "나도 시작해 볼까?" 린의 힌트로 방법을 알아낸 현민은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창조." 현민의 주위가 어둠으로 변하며 사라지기 시작했고, 서서히 넓게 퍼지며 주위의 배경을 먹어 버렸다. 이내, 현민의 몸을 제외한 어떤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빛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컴컴하게 변해버렸다. "흠, 일단 이 공식을 빼내고... 발현, 파이어." 피식! 현민이 하나의 공식을 빼내자 바람새는 소리와 함께 마법이 사라져버렸고, 현민은 고민에 들어갔다. "파이어, 파이어, 파이어........" 현민은 수십번의 파이어 마법을 실행하였고, 다양하게 나오는 반응들을 살피며 일일이 분석하였다. "흠, 숫자를 약간 바꿔볼까?" 몇몇의 공식은 너무나 쉽게 알수 있었기에 확인하는 의미에서 숫자를 바꿔 해 보았고,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야 하나 찾은건가....." 중간에 폭발하거나 발현되지 않는 등 많은 종류의 마법을 만들어 보면서 연습을 하던 현민은 드디어 파이어 마법을 완벽히 분석할 수 있었다. "발화점까지의 열을 발생시킬 공식, 먼지를 모으는 공식, 산소를 모으는 공식, 매개체에 불을 붙이는 공식........이라. 앞으로 더 재미있어 지겠는데?" 자신의 실력에 스스로 자신하는 현민이었다. 현민의, 상상 이상으로 JQ가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모르지만 파이어 마법을 완벽히 분석한 현민의 얼굴은 장난끼 가득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모두가 한번쯤은 해봤던 노가다를 아직까지도 해보지 못한 현민은 그동안 못했던 것을 한번에 몰아서 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창조'로 생긴 공간이라서 마나의 소모는 없었지만 그 자신의 정신력이 지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다양한 종류의 42개의 마법이 현민에게 반드시 좋은쪽으로 작용한 것만은 아님이 분명했다. "....이제 끝났네." 1개월이나 분석에만 파고든 현민은 기말고사를 얼마 안 남기고 42개의 마법을 전부 분석해 낼 수 있었다. 어찌보면 많고, 어찌보면 적은 42개의 마법이었지만 그것의 분석만으로도 2주일이란 시간이나 소모되었다. 평일에는 16시간을 주말에는 하루에서 나흘가량을 게임속에서 보냈기에 게임속의 시간만으로 계산한다면 상당한 시간이 흘러갔음이었다. "룬~." "으악!!" 끝이 길고 옷의 무늬가 화려하여 멋있어 보이는 로브를 걸쳐입은 그녀는 현민의 등에 매달려 은근슬쩍 귀에다 바람을 불어 넣었다. 어떻게 해서든 린의 품을 벗어나려 하는 현민이었으나 린은 그런 현민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좀 놔~~!!!" "자!" 현민의 발악이 점점더 심해지자 린은 주저없이 양손을 놓아버렸고, 현민은 빠르게 물러났다. "하아..... 또 왜?" 현민은 옷을 매만지며 린을 향해 물었다. "너도 이제 정식으로 마녀가 돼야하지 않아?" "마녀? 내가?" 그녀의 말에 현민은 뜻하지 않게 치마를 입고 챙이 넓은 마녀전용모자를 쓴 채,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신을 상상해 버렸다. "우욱!" "어? 왜 그래?" 갑자기 얼굴이 굳어버리는 현민을 보며 걱정이 된 린이 가까이 왔으나 현민이 다시 한걸음 물러났다. "그, 그보다 남자도 마녀(魔女)가 될 수 있어?" "글쎄다... 뭐, 알아서 하겠지." "하아...." 린은 현민이 마녀가 된다는 것만 중요하다는 듯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린이 그렇게 뛰고 있을 때, 현민은 거세까지 당하며 마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심각히 생각하고 있었다. "자, 이게 네 옷이니깐 잃어버리면 안돼, 알았지?" 린은 앞일을 걱정하는 현민에게 잘 개어진 옷을 주었다. "네가 시간이 없는 것 같아서 1시간 뒤에 시작하기로 했으니깐 옷 입고 나와, 마녀의 화장도 해야하니깐 서둘러야 할거야." 펼쳐본 옷이 바지가 아니라 치마이자 미간에 내 천(川) 생긴 현민의 얼굴이 화장이란 단어에는 원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구겨졌다. "룬~~." "응?"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던 현민은 자신을 부르는 린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 보았고, 린이 양손에 불꽃을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망가면 척.살.~♡ 내 맘 알지?" 여직 느껴본 적 없었던 살기라는 것이 느껴지면서 자신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끄....덕... 그동안 같이 지낸 만큼 린의 마법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고 있는 현민은 캐릭터의 삭제가 아니라 자신이 게임을 접지 않는 한, 그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와우~" 방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현민은 옷과 상당히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나, 이상하지 않아?" "아니! 절~대, 아니! 굉장히 예뻐(?)" 직접적인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은 현민이었으나 린의 말대로 그에게 옷은 정말 잘 어울렸다. 마녀의 옷이 상당히 여성스러운 옷이었으나 그것을 남자인 현민이 입자 약간 나돌아 다니는(?) 사제의 사제복처럼 느껴졌다. "자 여기 앉아봐. 눈 감고." 현민이 입고 있는 옷은 상하의 일체형의 원피스였고, 팔꿈치와 어깨 사이쯤에서 끈으로 연결된 소매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위에 남색의 가디건을 걸친 현민은 린의 말대로 정말 잘 어울렸다. 금색의 실로 장식된 무늬가 한층 더 고귀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자, 이제 눈떠." "어라?" 린이 들어준 거울을 들여다 본 현민은 화장한 자신의 모습이 전혀 어색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의외의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그새 익숙해 졌는지 현민은, 자신이, 현재의 여장한 모습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역시나 눈치가 빠른 린은 현민의 상황을 정확히 맞추었다. "뭐, 그거야 네 취미니 상관없겠지.... 가자." 순식간에 현민을 변태로 만들어버린 그녀는 공허한 눈빛으로 앉아있는 현민을 놓아둔 채, 집을 나갔다. "안 와?!" "아, 가, 갈게."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외치는 린의 말에 정신이 든 현민은 탁자위에 놓여진 모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와...." 도대체 언제 준비가 된 것인지 밖으로 나온 마녀의 마을은 한참 축제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저들 모두 가족이 되는 너를 축하해 주는 거니깐 저들이 부탁하는 것은 왠만하면 거절하지 마, 알았지?" "응." 그들 둘은 마을을 감싸주는 마법진의 핵이 존재하는 마을의 중앙으로 걸어갔고, 많은 마녀들이 현민을 축하해 주었다. "이제 왔네?" 마을의 중앙에는 현민이 처음온날 린과 싸우고 있었던 마녀가 서 있었다. "나 로벨리아나의 이름으로 마녀의 의식을 시작한다!!" 팍! 팟!! 현민이 자신의 앞으로 오자마자 로벨리아나(이후로는 로벨)는 크게 소리쳤고, 그녀의 목소리가 마을에 울려퍼지자 시끌벅적했던 마을의 움직임이 완벽히 멈춰버렸다. 그녀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꽂았고, 바닥에서 올라온 두 줄기의 빛은 서로 엉키며 올라와 지팡이의 끝에 도달했을 때, 산산이 부서지며 널리 퍼져갔다. "새롭게 마녀의 길에 들어선 룬에게 [루나]라는 마녀의 이름을 부여한다!" 이번에는 현민의 발밑에서 시작된 빛이 현민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고, 현민은 자신의 손과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빛무리를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빛이 현민의 가슴과 머리로 하나씩 들어가 버렸다. "루나여, 앞으로 너를 의미하는 상징은 어떤 것을 할 것이냐." 자신을 바라보는 로벨의 시선이 무언가 이상하단 것을 깨달은 현민은 그제야 로벨의 이마에 또 하나의 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의 눈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현민은 자신의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말해버렸다. ".......장미꽃으로 장식된 뒤집힌 붉은 십자가." 로벨의 세 번째 눈이 반짝이고, 현민의 가디건 중앙에 하나의 그림이 새겨졌다. 그것은 현민이 말했던 장미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역십자가였다. "마녀의 이름과 상징을 받은 [루나]를 마녀로 인정한다!!" 그녀의 외침에 모든 마녀들에게서 뿜어져나온 마나가 현민에게로 엉켜들어갔고, 현민의 오른쪽 어깨에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냈다. 하늘을 날고 있는 마녀가 현민의 어깨에서 희미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것만 같았다. 어찌보면 상당히 억지스럽게 마녀가 되어버린 현민이었으나 마녀가 되어도 별다른 것이 없기 때문인지 스스로가 처한 상황에 나름대로의 만족감을 느끼는 현민이었다. -------------------------------------------------------------------------------- "축하해, 루나야." "축하해요, 루나." "루나, 축하해." ...... 이제는 마녀의 이름을 받았기 때문인지 그동안 '룬'이라고 부르던 마녀들이 현민의 마녀명을 불렀다. 마녀들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여성스러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입고 있는 옷이 여성적이어서인지 현민은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루나야, 축하공연 안해?" 현민이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뒤에 다가온 린이 그에게 화려한 마법을 부탁했고, 현민은 잠시 고민에서 벗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화려한 마법을 생각해 보았다. "음..... 될지 모르겠네." 너무나 심각히 고민하는 현민의 주위로 하나둘 마녀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들 모두는 현민이 보여줄 마법을 기대하고 있었다. 삭! 사삭! 슥! 스스슥. 하나의 오망성을 그린 현민의 왼손이 더욱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각가지의 도형과 글을 오망성 주위와 안쪽에 새겨 넣기 시작했다. "호오? 대충 능력을 보니 정신력을 증폭시키는 마법진 같은데? 흠.... 우리가 사용하는 모양에서 실용성만을 중점으로 만든것 같네. 기존의 마법진보다 훨씬 빠른시간에 완성시킨걸 보니 말야." 현민의 왼손에 하나의 마법진이 만들어지고, 드디어 현민만의 기술인 이중마법진이 펼쳐졌다. 거기다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한 오른손도 하나의 마법진을 그려내고 있었다. 사삭! 스슥, 슥. 팟! 스슥! "뭐, 뭐야!" "세상에!!" 린을 제외한 나머지 마녀들은 현민이 그리는 마법진에, 전부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모여라, 자연의 정기여." 쿠르릉.... "내 손에 나의 의지를 붙잡고, 하나로 모여 나의 뜻에 움직여라!" 현민이 마법진을 그리며 주문을 외우는 사이 하늘에 작은 먹구름이 생겨났다. "낙뢰!!" 파지직!!! 쿠아아앙!!! 작은 벼락이 사람이 없는 공터를 향해 무작정 쏟아지기 시작했고, 현민은 이어서 오른손의 마법진을 완성시켰다. "나의 뜻에 움직여라, 컨트롤!" 팍! 활짝 펼쳐진 현민의 손이 점점 쥐어졌고, 넓게 흩어져 쏟아지던 번개들이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파지직! 파직! 거대해진 번개가 반항이라도 하듯 거칠어졌고, 현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힐러내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던 현민이 이내 주먹을 쥐었고, 하나로 모여서 반발을 일으키던 번개가 손가락정도로 가늘어져서 한곳에 내리치고 있었다. 슥! 스슥! 꾸욱! 현민의 오른손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끝임없이 내리치던 번개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공터에 하나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하아, 하아, 하아....." 아무리 마법진으로 정신력을 증폭시켰다지만 렙도 낮고, 특별한 아이템도 없는 현민이 오랫동안 버틸수는 없었다. "꺄아아아~~. 오빠!!" "휘이익~~!" "루나 최고!!" 바닥에는 현민의 상징인 장미로 장식된 역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이로써 현민은 '마녀'라는 존재로 다른 마녀들에게 확실히 인정받을 수 있었다. 탁! 타닥! 슥! 팟! "어? 휴...." 뒤로 다가온 로벨이 현민을 향해 마법진을 그렸고, 현민은 지끈거리던 머리가 차츰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멋지던데? 린의 추천 때문에 '마녀'로 받아줬지만 지금 보니 완벽한 '마녀'였구나?" 마녀들의 대표격인 로벨조차도 현민을 인정해 주었다. 앞으로의 고생길이 약간이나마 줄어든 현민이었다. "그보다 정령과의 계약은 어떻게 해야해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아예 정령과의 계약마저 끝내버릴려는 현민이었다. "오망성을 그리면서, '나 그대와 계약하고 싶다.'라고 하면 돼." 로벨의 가르침에 현민은 즉시 실행하였다. 슥!슥!슥!슥!슥! "나 그대와 계약하고 싶다." 말이 끝나자 현민은 자신의 앞에 문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문이 생겼을거야. 그렇지?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령계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너와 계약을 맺고 싶어하는 존재와 계약을 하면 돼." 로벨은 현민의 앞에 있는 문이 보이지 않는지 현민을 바라보며 설명만 해주었다. "정령이란 존재는 까다로워서 쉽게 허락하는 존재도 있고, 절대 안해주는 정령도 있으니 참고해." 로벨의 말을 끝으로 현민은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린을 잠시 바라본 후, 문을 열고 정령계로 들어가 버렸다. "로벨 언니, 루나가 얼마나 걸릴까?" "글쎄다..... 빠르면 일주일쯤 걸리겠지?" 정령이란 존재와 계약을 맺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가 걸릴지는 순전히 운에 달려있는 것이기에 그녀들은 현민이 빠른 시간 안에 정령과 계약하기를 빌었다. "자! 마시자!!!" "예!!" 축제의 주인공인 현민이 사라졌지만 마녀들의 술자리는 끝나지 않고 다음날 저녁까지 이어졌다. 강철의 위를 가진 그녀들이었다. -------------------------------------------------------------------------------- 마녀들이 현민을 위해서(?) 술을 마시고 놀고 있을 때, 우리의 현민은.... "우아아아아아악!!!!!!" .....땅이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아아악!!! 아, 진짜. 이젠 목이 아프네." 한참을 비명지르던 현민은 무리한 비명탓에 목도 아프고, 아직도 바닥이 보이지 않자, 마음을 편히 갖고 여유롭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정도에서 떨어지면 바로 사망일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마법진을 그려, 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확한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 불가능했고,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민이 택한 것이라고는 그냥 떨어지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현민의 뒤(?)로 바닥으로 추정되는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고, 고개를 돌린 현민은 밑이 보이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나는 자유인이다~~~!!!!" 몸을 모아 공기의 저항을 최대한 줄인 현민은 이제껏 내려오던 속도의 배는 빠르게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현민의 얼굴이 바람에 의해 처참히 일그러졌고, 눈도 뜨지 못하는지 현민의 두 눈이 지끈 감겨있었다. "물? 바다?!! 으아아아악!!!" 바닥으로 생각되던 것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눈으로 확인한 현민은 고함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마법으로 낙하속도를 줄인다 하여도 그 다음에 있을, 물속으로의 잠수는 헤엄을 치지 못하는 현민이 살아남을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어 버렸다. "아아악~~~!!" 우뚝!! 찰랑.... 바다에 떨어지기 직전. 잠잠한 바닷물이 현민의 코에 살짝 맞닿았고, 현민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뭐, 뭐야.' "꺄르르르." "너무 재밌는 인간이네. 깔깔깔." '바람의 정령?!' 현민을 보고 말하는 듯한 누군가의 말에, 그는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그의 몸은 전혀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어? 어?" 현민의 몸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고, 3m정도 떠오른 현민의 몸이 다시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젠장, 수영 못하는데.......' 풍덩!! 현민의 몸이 물속으로 떨어졌고, 현민은 산채로 수장당하는 경험을 무료로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콰과과과과곽!!! 정령들이 현민의 몸에 어떤 장난을 걸었는지 그의 몸은 바닷속에 들어가서도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워터브레스(수중호흡)!' 뽀글뽀글뽀글..... 현민의 입이 벌어지면서 물이 가득 들어왔으나 그 고통은 잠시였을 뿐, 현민은 더 이상 자신의 입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민의 몸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도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고, 현민은 다시 한번 마법을 사용했다. "실드!" 워터브레스로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현민이 무서워할 것은 더 이상 없었다. 현민의 발밑에 반구형의 실드가 생겨났고, 현민은 그것을 이용해 몸의 낙하속도를 줄였다. "휴우......" 몸을 완전히 멈춘 현민이 주위를 둘러봤을 때, 현민이 있는 장소는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심해의 깊숙한 곳이었다. "어째서 압력이 없지?" 수압이라는 것이 상당히 위험한 것이기에 그 정도의 깊이면 자신의 연약한 몸 정도는 산산이 으스러져야 하지만 현민의 예상과 다르게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욱이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이상한 것은 또 하나 있었다. "이곳은 대기층이 얼마나 높은거다냐....." 땅이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자신이 숨을 쉴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현민은 기가 막혔다. "일단, 올라가야지.... 응?" 어둠속에서 무언가 빛난다 싶더니 현민은 자신의 몸이 빠르게 위로 올라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속에서 방향을 찾는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지만 떨어지던 곳의 반대쪽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현민은 자신의 몸이 무언가에 이끌려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푸하!!"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현민의 예상대로 물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살펴본 현민은 자신을 물 위로 올려준 존재가 상당히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기.. 고마워." 자신을 구한 존재는 5~6살 정도로 어려보이는 꼬마였다. 너무나 귀여운 모습이, 보는 사람의 입에서 미소를 만들어 낼 정도였다. 꼬마는 약간 거리를 두고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고, 현민은 그 꼬마가 가만히 있으니 자신역시 가만히 있었다. 방긋, 방긋. 그 아이를 보는 현민의 입에서는 미소가 끊어지지를 않았고, 그 꼬마는 물속과 현민을 번갈아보다가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 정말로 이상하게 생겼나 봐......." 과거 지혜에게 선배로 오해를 받은 것에 이어서 꼬마까지 자신을 회피해 버리자 그나마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얼굴에 자신감이 없어지는 현민이었다. 한동안, 자리를 지키던 현민은 실드를 만들고 올라탔다. 반구형의 실드이기에 잠시 동안 배를 대신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아아......" 실드위에 올라온 현민은 치마를 걷어서 물기를 짰고, 가디건도 벗어버렸다. 가디건이 있을 때는 몰랐지만 가디건을 벗어버린 현민의 모습은 상당히 변태적(?)이었다. 툭! "응?" 현민의 머리에 무엇인가가 떨어졌고, 그것을 확인한 현민은 그것이 자신의 모자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가?" 실드위에 누워버린 현민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어떻게 어떤 정령과 계약을 맺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쿠오오오오!!! 꺄하하하 나른한 햇살과 시원한 바다. 그리고 흔들리는 실드 위에서 잠에 빠져들 뻔한 현민은 귓가를 울리는 소리들에 살짝 눈을 들었다. 파핫! 출렁!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동양의 용이 몸을 드러내면서 이동하고 있었고, 작은 요정들이 수다를 떨며 놀고 있었다. 그리고, 바닷속에서는 반인반어의 모양을 한 정령들이 술래잡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전부다 물의 정령인가?" 정령들이 서로 놀고 있는 가운데 현민은 자신과 계약을 맺을만한 정령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봐." "응?"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현민은 엄청 예쁜 여성 정령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요?" "하아.... 내 딸하고 계약 좀 해줄래?" "네?" 현민이 당황한 이유는 아름다워 보이는 그녀가 아줌마라는 사실보다는 좀 전 자신을 구해줬던 귀여운 꼬마가 어느새 나타나 자신의 치마를 잡은 채,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약은 어떻게 해야하는데요?" "그냥 서로간에 동의하면 끝나." 딸이 졸라서 어쩔 수 없이 나오기는 했지만 초보정령에 초보정령사라는 것을 보니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는 그녀였다. 하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딸을 내보낼 수밖에 없는 그녀였다. "나랑 같이갈래?" 끄덕끄덕 현민의 물음에 기분이 좋은듯한 꼬마는 치마에 얼굴을 부볐고, 그 아이의 엄마정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름이나 정해줘. 소환할 때, 부를 이름정도는 있어야 될 것 아냐." 초보들 때문에 속이 상하는 엄마정령이었다. "네 이름은 묘야, 넓은 물이라는 의미를 묘. 어때? 좋아?" 현민이 지어준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묘는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아이의 엄마도 현민이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잘가." "담에뵈요....빠." 갑작스런 인사에 얼굴 가득 물음표를 띄우던 현민은 자신의 몸이 뒤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귀여운 꼬마의 말에 현민은, 바로 소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털썩! 어디론가 빨려들어갔던 현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이 마녀의 마을로 돌아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헉! 린! 린! 일어나 봐!" 마을의 모든 마녀들이 땅에 이리저리 쓰러져 있었다. 어떠한 외상도 보이지 않는 그녀들은 창백한 얼굴로 거의 숨을 쉬지 않은 채 얌전히 누워있자 현민은 겁이 났다. 현민은 근처에 있던 린에게 다가가 다급히 그녀를 흔들었다. "으........" "린! 정신들어?!" "루, 루나야..." 살짝 눈을 뜨던 린은 현민을 불렀고, 현민은 너무나 작아 잘 들리지 앟는 그녀의 말을 듣기위해 고개를 숙였다. "우엑!!!" ....... 걸죽한 무언가가 현민의 얼굴에 쏟아져 버렸고, 현민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휘이이잉~~"으음... 추워." "이불..." "우욱!" 차가운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자 그동안 반응이 없던 마녀들이 약간씩 움직임을 보였고, 현민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하아....... 아쿠아" 허공에 소환한 물로 얼굴을 씻어낸 현민은 염력으로 린을 들어올렸다. "소환, 묘." -정령과의 경험치 설정은 '설정'을 통하여 하실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설정하지 않으시면 5:5로 맞춰집니다. 슈우욱! 알림이 끝나고 허공에서 소환된 묘는 현민에게 안겨들었고, 현민은 묘를 안아들며, 린을 그녀의 방으로 옮겼다. 린을 시작으로 마을의 마녀들을 하나, 둘 옮기기 시작했고, 마을을 마녀를 전부 옮긴 후에는 청소하기 시작했다. "휴우, 고마워." 현민이 마법으로 청소를 하고있는 동안에 묘가 이리저리 현민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모든 청소를 끝내고, 앉아서 쉬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왼쪽 어깨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뭐, 뭐야?" 현민이 뜨거워지는 오른팔에 손을 가져갔을 때, 현민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마녀의 마을에서 사라져버렸다. "응?" 마녀의 마을이 아닌 엉뚱한 숲으로 온 현민은 자신이 싸움의 한가운데로 이동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정면에 20명 정도의 유저들이 무기를 꺼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민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많이 헤어진 옷으로 몸을 가리고 있는 하피를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하피의 뒤로 많은 하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현민의 눈에는 맨 앞에 있는 하피만 보일 뿐이었다. "끼이익!" 물기 젖은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고 있던 하피가 현민을 껴안아 버렸고, 그곳에 있던 유저와 하피가 모두 놀랐다. 현민의 품에 안겨있던 묘는 볼을 부풀리며 현민의 등에 매달렸다. "짱아, 저 새끼 몹이냐? 유저냐?" "그, 글쎄." 마녀의 복장을 하고 나온 현민의 모습 때문인지 그들은 현민의 정체를 쉽게 알 수 없었다. "젠장, 아마 이벤트인가보다. 저 하피 년을 기르는 마녀같은데?" 자신의 품에 현민을 안은 하피는 유저들을 노려보았고, 현민은 여성체인 하프의 몸이 부담스러워 재빨리 품을 벗어났다. 모자를 눌러쓴 현민은 하피의 앞에 서며, 모든 유저들의 시선을 모았다. "이정도만...." 흠칫! 말을 하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목소리가 바뀌어 있다는 것에 놀랐고, 현민과 마주하고 있던 유저들은 현민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매력에 깜짝 놀라버렸다. "흠, 흠흠.... 하고 물러난다면 용서해주겠다." 목을 가다듬었지만 현민의 본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현민은 애써 무시한 채,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흥! 어떤 년인지 얼굴이나 봐야겠다!!!" 유저들이 현민을 향해 빠르게 공격해왔고, 현민은 뒤로 물러나며 양손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너, 이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게 뭔지 아니?" "내 공격이나 받아!!!" 하지만 현민은 계속해서 손으로 마법진을 그리며 말했다. "하나가 두 개 되고, 두개가 네 개 되고, 네 개가 여덟 개로 계속해서 부풀어나는 거다!!" 어느새 허공에는 8개의 마법진이 만들어져 있었고, 현민은 오른손을 앞으로 내뻗으며 주문을 외웠다. "모여라, 자연의 불꽃이여. 내 손에서 타올라 적들을 불태워라!" "변화시켜라, 바꾸어라. 그대가 하나를 받아들였으면, 두개를 내보내고, 두개를 받아들였으면, 네 개를 내보내어. 그대의 마음을 알려줘라!!" 팟!팟!팟!팟!팟!팟!팟!팟! 현민의 손에서 쏘아진 마법이 처음의 마법진을 지났을 때는 두개의 마법이 되어 있었고, 두 번재의 마법진을 지나갔을 때는 네 개의 마법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여덟 번재 마법진을 지났을 때는 256개로 숫자가 불어나 있었다. 마법진을 그리며 계속 뒤로 물러났기 때문에 현민을 쫓고 있던 전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현민의 불꽃속으로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끄아아악!!!" "아악!!" "꺄아악!!!" "하늘아!! 제, 젠장!!!" 뒤에서 흘러나오는 화광(火光)과 비명소리에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마녀(?)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잘가,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현민의 주문에 짱아라는 유저를 감싸고 있던 나무들이 일제히 커지기 시작하더니 과거의 오우거처럼 그 유저를 처참히 터트려 버렸다. "하아.... 카오가 없는게 다행이라니깐." 「싸울아비」내에서는 살인을 많이 한다고 해서 무작정 카오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선량한 npc들을 죽였을 때에만 카오틱 숫자가 올라갔으며, 유저들 간의 살인은 당한사람만 구별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하피들을 따라 걸음을 옮긴 현민은 그제서야 자신의 품에서 묘를 꺼내었다. "괜찮아?" "흑, 흐아아앙!!!" 살벌한 분위기에 많이 놀랬던 것인지 묘는 현민의 품에서 큰소리로 울었다. "자, 자, 착하지?" 현민이 울고있는 묘를 달래주는 사이, 그들은 둥지에 도착할 수 있었고, 현민은 옷을 입고 있는 하피에게 이끌려 위로 올라갔다. "우웅..." 울다지친 묘는 현민의 품에서 잠들어버렸고, 현민은 그런 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묘를 유지시키는 동안 현민의 마나가 계속 빠져나갔지만 마법을 잘 사용하지 않는 현민으로써는 빠져나가는 마법보다는 차오르는 마나가 더 많을 정도였다. "와아...." 현민이 앉아있는 곳은 높은 절벽의 끝이었기에 현민이 좋아할만한 멋진 절경이 펼쳐저 있었다. -룬! 보고 싶었어. 가까이 다가온 하피가 현민을 껴안아 버렸고, 노출이 심한 하피의 차림새 때문에 현민은 자신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룬, 룬, 룬.... 하지만, 헤어진 애인을 만난 듯 하피는 현민을 놓아주지 않았다. "자, 이제 괜찮으니깐 이것 좀 놔줄래?" 그녀는 끌어안고 있던 현민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묘를 밀어버린 후, 그의 품안으로 파고들어버렸다. 어느새 일어나 볼이 잔뜩 부분 묘는 난처해하는 현민의 목에 매달렸다. 정령이란 존재가 무게가 없었기에 다행이지 묘가 무거웠다면 현민은 버틸 수 없었을 것이었다. -나 룬 좋아해. 그동안 계속 좋아해. 룬, 나 좋아? 날개로 이루어진 팔을 빼고는 인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하피에게 고백을 받은 현민의 얼굴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갛게 변해 있었다. -나, 좋아. 나, 룬 많이 좋아. 룬, 룬, 룬... 여성의 모습이기에 거칠게 대할 수 없었던 현민은 피하지도 떨어지지도 못한 채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안을까? 어차피 게임이니 한번쯤은 상관없지 않아?' 내려다보이는 가슴계곡과 예쁜 목선에 자꾸 시선이 갔고,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붉은 입술이 탐났다. '한번.... 해볼까?' 현민의 고개가 살며시 내려가며 하피의 얼굴과 가까워졌고, 현민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하피와 눈이 마주쳤다. 하피의 눈이 살며시 감겼고, 현민 역시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느꼈다. "그만." 흠칫! 좋은 분위기에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현민은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라 생각했던 그것이 싸움이 끝난 이후 정상적으로 돌아온 자신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룬? "미, 미안!" 자신을 바라보는 하피의 얼굴에 화들짝 놀란 현민은 다급히 그녀로부터 거리를 만들었다. -룬? 갑작스런 현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지 하피는 현민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가 다가오는 만큼 현민은 뒤로 물러나며 그녀를 피했고, 그녀와 현민이 자리를 옮기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녀의 눈에는 물기가 많아졌다. -룬, 나 싫어? 나, 룬 많이 좋아, 나 정말 많이 좋아. 흑. 그녀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현민은 도망가지도, 다가가지도 못한 채, 허둥거렸다. 그녀는 무릎을 모으고 손을 대신해 날개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윽! 보일 것 같은데....' '변태냐? 여자가 울고 있는데 감싸줄지 알아야지.'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현민은 그녀의 흰 살결에 자꾸 눈이 돌아가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질책하는 또 하나의 자신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윽... "괜찮아, 울지마. 나도 좋아해. 너를 많이 좋아해. 아주 많이." -흑. 울고 있는 하피를 껴안아 달래주고 있는 사이, 현민은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과거, 유저들의 공격을 피할 때처럼 몸이 공중으로 뜨는 느낌과 함께 눈으로는 보고 있으나 모든 감각이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게 맞나?' 마치 제 삼자가 말하는 것처럼 현민은 자신이 말하는 내용이 타인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는 듯 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말할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몸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 착하지? 이제 울지마. 응?" -룬, 룬.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하피의 옷이 벌어지면서 그녀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현민의 고개가 숙여져 있기에 현민의 눈동자가 향하는 방향은 그녀의 속이었으나, 다시 감각을 되찾은 현민은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현민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옆에서 하피가 껴안고 있었으며, 자신의 배 위에서 묘가 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올려다 보이는 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고, 현민은 지금까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했나 생각해 보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이지.......?'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이 무엇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난 현민이었다. "하아...." '건망증도 아니고 왜 이리 깜빡하는지.' 그동안의 기억에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현민은 하늘에 아름답게 빛나는 별을 보며 잠으로 빠져들어갔다. '시간이 많으니, 한숨 자도.....' [수면 모드로 전환합니다.] 귓가에 알림이 들려왔으나 이미 잠에 빠져든 현민이 들릴리 없었다. -야!! 벌떡!! 데굴데굴~. -우웅?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익숙한 고함소리에 깜짝 놀란 현민은 벌떡 일어났고, 현민의 배에서 자고 있던 묘는 데굴데굴 굴렀다. 현민을 껴안고 기분 좋게 자고 있던 하피도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누가 부르지 않았나?" 완전히 잠에서 깬 하피는 현민의 품에 안겨들었고, 묘는 현민의 팔에 매달렸다. -세상에, 마을에서 사라졌기에 어디갔나 했더니 이런 숲속에서 하피랑 짝짜꿍(?)하고 있었냐?! 그제서야 현민은 자신의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검은고양이가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야, 린이야? 하암.... 아침부터 왜 이리 시끄러워? 술은 깼고?" 현민의 말에 린의 페밀리어인 검은고양이가 온몸의 털을 세우며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너, 너!!! 내가 잠자고 있는 사이에 도대체 나한테 뭔 짓을 한거야?! 서, 설마, 나한테도 하피랑 한 것과 같은걸 한거야?! 그녀의 대화를 얌전히 듣고 있던 현민의 JQ가 빠르게 동작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녀와 자신의 주제가 약간 어긋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정하고 네 상황이나 설명해 봐요." -내 옷을 갈갈이 찢어놓고 나한테 설명을 하라고?! 린의 말을 듣고 있던 현민의 고개가 자연스레 한쪽팔에 매달려 있는 묘에게로 향했다. 옮겨놓은 것은 자신이 했지만 그녀들을 씻어주는 것은 전부 묘에게 맡겨놓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묘에게 씻기는 것을 부탁하지 않은 마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현민은 좋게 잠자고 일어나 머리가 아픈것을 느꼈다. "하아.... 미안. 하지만 너만 그런건 아닌것 같다." "캬아악!!" 현민의 말에 높이 뛰어오른 고양이가 발톱을 마구 휘둘렀고, 현민은 그 고양이를 잽싸게 잡았다. -서, 설마 술취한 우리들을 전부 건드린거야? "......내가 변강쇠냐?" 상식이 있다면 한두명도 아닌 백명이 넘는 여자들과 관계를 같는다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만도 하것만, 순진한 처녀 린은 여자들의 틈에서만 자라서인지 그런것도 모르고 있는것 같았다. 점점 더 머리만 아파오는 현민이었다. -------------------------------------------------------------------------------- "헤에?" 툭, 툭툭. -뭐, 뭐야?! 고양이란 동물을 처음 보는 묘는 고양이가 귀여운지 린의 페밀리어를 이리저리 찌르다 품에 안아버렸다. 린의 페밀리어는 물을 싫어하는지 묘의 품에서 빠져나갈려고 애를 썼으나, 한번 마음에 든 것은 절대 놓지 않는 어린애답게 묘도 고양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꺄아악! 놔! 루나가 싫어하잖아!! "흥! 메~." "나? 난 괜찮아."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인지 현민은 루나라는 이름을 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가 부른 '루나'는 현민이 아닌 묘의 품에 안겨있는 고양이었다. "자, 자. 우리 착한 묘는 작은 동물 괴롭히면 안돼, 알았지?" 토닥토닥 묘의 품에서 고양이를 풀어준 현민은 묘를 끌어안고 토닥여줬다. 자신의 품을 벗어난 고양이가 아쉬운 듯, 한동안 고양이만을 바라봤으나 고양이 보다는 현민의 품이 좋은지 잠시 후에는 현민의 가디건 속으로 파고 들어가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찾은거야?" 상황이 정리되자 현민은 고양이를 향해 물었고, 고양이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후훗... 네가 내 손을 벗어날 수 있어? "하아...." 방법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을 찾는 것을 귀신같이 하는 린의 마법은 현민도 진작에 두 손 들고 있었다. -그보다 밤이 외로웠냐? 하피까지 찾아가 몸보신하게? "윽!" 낯부끄러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은 린 때문에 현민의 표정이 일그러저 버렸다. 하지만 하피는 그런 현민이 걱정되는지 더욱 달라붙었고, 고양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전에 만났었던 하피야. 내 왼팔에 새겨진 문신의 주인이고." -룬 내꺼야. 변명을 하고 있는 현민에게서 본능적인 위험을 느낀 것인지 하피는 현민을 껴안고, 린의 페밀리어를 노려보았다. 울컥! 부들부들.... 껴안고 있는 하피를 피하지 않는 현민과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하피 때문에 린은 속에서 '분노'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너! 당장 이리와!!! -메.....롱 -캬아아악!!! 자신 때문에 두 명의 여성이 싸우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진 현민은 그녀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한 채 난처한 얼굴로 구경만 했다. -너! 거기서 움직이지마! "응?" 고양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 멀리서 무언가 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보였고, 현민은 그것이 린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챘다. 끼이익!! 하피들의 영토에 침입한 린 때문인지 모든 하피가 날아올라 린을 공격하려 했으나 현민의 옆에 있던 하피의 울음에 모든 동작을 멈추고 자신들의 둥지로 돌아가 버렸다. "빨리왔네?" "흥! 내가 뒷동산 오는 길도 잃어버리는 바보인 줄 아냐?!" 린의 말을 듣고서야 현민은 자신이 있는 곳이 평소 마을에서 보이던 하나의, 언덕 넘어 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법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장소인 만큼 사냥이나 산책 같은 것을 단 한 차례도 해본적이 없는 현민이 뒷동산을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번에 계약한 물의정령 묘야. 내가 잘못된 부탁을 하는 바람에 네들 옷이 사라졌나봐." 하피와 눈싸움을 벌이고 있던 린의 손가락이 약간씩 움직이기 시작하자, 현민은 다급히 자신의 품에 들어가 있는 묘를 꺼내 린에게 보여주었다. "흐음.... 하필 어린 정령이네." "왜?" 귀여운 묘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린은 얼굴을 구기고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 어린 정령은 동급의 정령보다 훨씬 약해. 그 이유가 자신의 힘에 대한 정의가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더욱이 아무리 정령이라지만 아이이다 보니 잔인한 것은 시킬수도 없다고.... 키운다면 모를까." 정령에 대해 알고 있는 린이 그렇게까지 말했으나 현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난 별로 상관없어. 이미 목표는 이루었으니 앞으로는 즐길 뿐이거든." "풋. 그래그래, 실험이나 하러 가자." 변함없는 현민의 태도에 마음이 풀린 것인지, 커다란 빗자루를 꺼내든 린은 그것에 올라타며 날아올랐고, 현민에게 하나의 빗자루를 던져주었다. "하피 데리고 오면 혼난다!" "하아...." 현민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그녀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현민은 홀로 남아 한숨을 내쉬었다. -룬, 가지마. "하아...." 애처롭게 안기는 하피 때문에 한숨을 내쉰 현민은 밑에서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는 묘를 보고 다시한번 한숨을 내뱉었다. '가상현실에서라도 이렇게 여자가 많으니 다행인건가?.....'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기에 현민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언제나 만날 수 있을거야. 몇일 더 참아줄 수 있지?" -흐윽.... 현민의 말에 하피는 대답보다 눈물을 먼저 흘렸고, 그녀의 눈물에 현민도 당황해 버렸다. "그, 그만 울어, 선물 줄게. 응?" -흐윽? 인번토리를 열은 현민은 몇일 전까지 입고 있던 초보용 옷을 꺼내어 하피에게 건내주었다. 현민의 옷을 받아든 하피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것을 살펴보았다. "예전에 준 옷은 다 낡았으니깐." 쑤욱! 하피에게 다가간 현민은 그녀의 머리에 옷을 넣어주었고, 팔 부분으로 날개가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상의를 입힌 현민은 하의도 입혀주려 했으나 하피는 하의를 입으려 하지 않아, 어쩔 수가 없었다. "하긴, 손이 없으니 하의까지 입는것은 불편하겠지?" 체격이 있는 현민이었기에 상의만으로도 하피의 몸 전체를 충분히 가릴 수 있었다. -나, 룬 좋아해. 빨리와. 팔이 있는 부분에 날개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예쁜 그녀의 모습에 현민은 키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드러울까? 달콤할까?......' ''나' 자신만을 위해서 움직인다면....... 죽.어.버릴거야' 섬뜩!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분명이 자신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과 함께 심장에 칼을 박아 넣고, 동맥을 끊어버리는 상상에 현민은 과연 자신이 정말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고민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억제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한 말일 수도 있었지만 말 속에서 정말로 죽어버릴 것이라는 '스스로의' 의지까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룬? 룬? "아?" -룬, 아파? "아, 아니. 괜찮아. 알았지? 조금만 있으면 매일 볼 수 있으니깐 좀 더 참아줘." 기말고사가 있은 이후 바로 하는 방학을 생각한 현민은 방학동안의 생활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응. 밝은 얼굴로 대답하는 하피의 말을 들은 현민은 빗자루를 타고 날아올라갔다. 마녀가 된 이후로 생긴 패시브 스킬 [빗자루 타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현민에게서 마녀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린다면 누구나 착각할 만한 멋진(?) 장면이었다. -------------------------------------------------------------------------------- "현민아, 시험공부 해?" "응." 현민에게 가까이 다가온 지혜는 현민을 신기하단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부담스러운 지혜의 눈에 집중을 하지 못한 현민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를 하기보다는 지혜를 먼저 상대해 주었다. "보통 4서클이면 똑똑한 쪽에 속하는 거잖아? 그런 사람이 공부를 한다니 신기해서." 지혜의 말에 현민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4서클에 이제 막 도달했을 뿐이지만 지혜는 6서클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단계가 낮아도 6서클 자체에 올랐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재인 너는 공부를 안해?" "나야 머...." 현민의 물음에 얼버무렸으나 그 의미가 이미 끝냈다는 의미인 것을 현민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천재는 좋겠네. 잠깐의 시간으로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으니 말이야." "호오?" 더 이상 상대하는 것을 포기한 현민은 놓고 있던 책을 집어 들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혜는 웃는 표정으로 그런 현민을 바라보았다. "천재가 어디있는데? 현민이 네가 스스로 칭찬하는거야?" 그녀의 말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현민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화를 냈다. "너는 천재라서 일반인은 생각도 안해주는거냐! 천재인 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좀 생각해 봐!!" 지혜에게 화를 낸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의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지혜의 목소리만 없었다면. "난 천재가 아냐." "하! 6서클이 천재가 아니다?! 그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보라는 소리냐!!" 현민의 말이 격해지고 거칠어 졌지만 그런 현민과 대화를 하는 지혜의 목소리는 침착하기만 했다. "누가 나를 천재라고 했지? 누가 나를 인정해 줬지? 나의 무엇을 봤다는 거지?" 자리에서 일어난 지혜는 현민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며 현민에게 질문을 했다. "부모? 형제? 친구? 타인? 아무도 나에 대한 것을 몰라. 집에서는 평범한 딸이고, 동생이며, 학교에서는 친한 친구일 뿐인걸. 성적, 성격, 대인관계, 마음씨. 그 모든게 중.간." 뒷짐을 진 지혜는 어느새 현민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평소와 같으면 피했을 현민이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눈을 마주보고 있을 뿐, 뒤로 움직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한테도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어. 그래서 아무도 나에 대해 모르지. 그런 나를 누가 천재라고 생각해 줄까? 네가 말한다면 믿어줄까?" 현민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듣기만 하고 있었다. "'너'처럼 자신을 감추고 있는데, 누가 나를 천재라고 생각할까?" "난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어." "그런가? 그럼, 넌 스스로 자각이 없는거구나? 자신이 천재란 것에 대해서." "쿡! 내가 천재? 세상 망하는 소리일 뿐이야." 지혜의 말에 현민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아.니. 넌 천재야. 내가 관심을 보일 정도의 천.재." "그만해. 너와 장난치고 싶지 않아." 마음을 가라앉힌 것인지 현민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변해 있었고, 날카로웠던 눈도 풀어져 있었다. 현민은 지혜를 무시한 채, 몸을 돌려 옥상의 손잡이를 돌렸다. "응?" 털썩 하지만 문을 열기만 했을 뿐, 현민은 발을 옮겨 밖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지혜가 현민의 목덜미를 잡고 뒤로 땡겼기 때문이었다. "이봐요. 당신은 천재라구." "난 평범할 뿐이야." 지혜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아 일어나지 못한 현민은 그녀를 피하려 했으나 지혜는 현민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넌 천재야. '나'만의 천재라고." 화르륵! 고백을 하는 듯한 지혜의 말에 현민은 얼굴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스스로 착각 했다고 생각한 현민은 얼굴이 빨개졌다는 것을 들키기 싫어 다급히 그녀를 피했다. "그리고 난 '너'만의 천재이고." 또 다시 들려오는 말에, 현민은 그녀가 정말로 고백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고백 비슷한 말이 싫지는 않은지 그의 심장은 빠르게 움직였다. "호오? 어디로 도망가려고? 설마 떨어지게?" 유일하게 열려있는 옥상의 문 앞에 서있던 지혜는 자신을 피해 달아나려는 현민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입구를 막고 있는 이상 현민이 도망갈 수 있는 곳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민아,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어?" "하아.... 글쎄." 갑자기 말을 돌리는 지혜 때문에 현민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해?" "몰라." "네 생각을 말해봐." 현민은 한동안 지혜의 대답을 피했으나 지혜 또한 끈질기게 물었다. 점심시간이 시작한지 30분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그들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비웃지마. 내 생각일 뿐이니깐. "후훗. 어서 말해줘." 어느새 다가온 지혜는 현민의 옆에 앉아 현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람은 죽은 후에 아무것도 없는 어둠. 그런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해." "저승?" "아니, 말 그대로 어둠. 빛도 공간도 시간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속에서 얼마만큼 지났는지도 모를 시간을 보낸 후에 환생하겠지." "에엑~!!" 현민의 말에 지혜는 정말로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 환생을 믿어?" "물론. 아무런 증거도 없는 가설이지만 나는 영혼이란 것이 일정한 숫자만큼만 있다고 믿어. 그래서 그 영혼들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면서 하나의 세계를 이뤄나가는 거지." "흐음...." 현민의 말을 듣고 지혜는 무슨 생각을 하는 듯 했으나 그녀가 그러던지 말던지 현민은 자신의 생각을 계속 말해나갔다. "살아나가는 영혼의 수도, 어둠속에서 환생을 기다리는 영혼의 수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게 아닐까?" "풋, 그러면 태초의 탄생이랑 빙하기는 어떻게 된건데?" 현민의 말이 어이없다는 듯이 지혜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현민은 마냥 진중하기만 했다. "그때는 모든 영혼이 하나가 된 게 아닐까? 신이라는 존재로 말이야." ".....신이란 것 인간이 만든 마음의 도피처에 지나지 않아." 현민의 신중해지는 말투에 지혜의 얼굴역시 신중하게 변해 있었다. "아니, 신은 존재한다는게 내 생각이야. 정말로 영혼이 있다면 말이지. 하나의 거대한 의지이자 영혼인 신이 여럿으로 나눠지고 우주가 만들어진다. 나눠진 영혼, 즉 신들이 또 다른 영혼을 만들기 위해 나눠지고 나눠지면서 수많은 영혼들이 생겨난다. 그 영혼들이 무엇인가를 느끼도록 만든 것이 물(物 : 만물 물)이고 말이야." "엉~터리." 현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혜가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 현민은 그녀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넌 역시 '나'만의 천재야." 와락! "으악!!" 갑자기 자신을 껴안으려 하는 그녀를 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아~? 결벽증도 아니면서 왜 항상 피하는거야? 이렇게 예쁜 여성이 안아준다면 즐기는 게 당연(?)하잖아?" "하아...." 뻔뻔스럽게 말하는 지혜를 보고 있는 현민은 말을 하기보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난 먼저 갈게~." 종이 울리자마자 지혜는 재빨리 사라졌고, 혼자 남은 현민은 지친듯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녀를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현민은 그녀가 왜 자신에게 다가오려고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하아.... 왜 하필 나지?" -------------------------------------------------------------------------------- "다녀왔습니다." "어서오렴. 시험은 잘 봤고?" "88.26점" 시험이 끝나자마자 방학이 시작되었고, 현민은 밥도 먹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36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현민이 로그인 된 곳은 마녀의 마을에서 배정받은 현민의 방이었다. 창문으로는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고 깔끔히 정돈되어 있는 방에는 책상과 침대만 있었다. 책상과 마주하고 있는 벽에는 수많은 종이가 적혀 있었고, 현민은 책상에 앉은 채였다. "아자!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벽에 붙어있던 모든 종이를 때어낸 현민은 차곡차곡 정리한 후, 가볍게 기합을 내뱉었다. "마법사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 방어계열이니깐. 방어계열부터 만들어볼까?" 즉흥적으로 생각한 현민은 엄청난 두깨로 모여진 종이뭉치를 한 장, 한 장 살펴보았다. "아참, 묘 소환. 상태창" 현민의 외침에 허공에서 나타난 묘가 현민에게 안겨들었고, 현민은 그런 묘를 머리위에 올려주었다. ------------- 이름 : 룬. Lv : 36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102(18) 정신 : 184(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0 방어력 : 52 생명력 : 186 정신력 : 2220 물 속성 친화력 : 124 정령력 : 1 물 Lv 1 보너스 스텟 : 75 -------------- 현민은 그동안 놀고 있었던 100스텟을 친화력에 전부 투자해 버렸다. 앞으로 근거리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특별히 스텟을 늘릴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투자한 것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모를 패치에 대비하여 75의 여유스텟을 남겨놓았다. "일단 예전 모양의 실드를 만들어 볼까?" 지금은 반구형태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완전한 구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던 실드를 생각한 현민은 그때의 유용함을 이용하기 위해 지금의 실드를 그때의 모양으로 하나 만들기로 정했다. "여기에 필요한 공식이.... 일단 마나를 구 형태로 잡아줘야겠고, 마나의 모양은 가능하면 다이아몬드의 분자구조와 같으면 단단해서 좋을 테지? 다이아몬드와 같지는 않겠지만 마나의 성질을 탄소로 바꾸어주면 충분한 강도가 나올 수도 있을거야.... 음." 두꺼운 종이뭉치 이곳저곳을 뒤지며 여러개의 공식을 옮겨적은 현민은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마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마법을 만들기 위한 기초가 법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공식을 배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공간을 두어 충격을 흡수하면 더 좋겠지? 흠.... 중간에 공간을 넣을려면 마나의 구조가 2층으로 되야 하니깐 이 공식이 필요하겠고, 최소한 공기는 통해야 하니깐 이 공식도 필요하겠지? 어디보자 또 뭐가 필요하려나." 하나의 마법을 만들기 위해 현민은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며, 여러 가지의 공식을 모아나갔고, 현민의 머리위에 있는 묘는 현민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치며 놀았다. "최대한 많은 충격을 흡수하려면 많은 틈이 있어야겠으니 마나를 압축하는 공식도 넣어야겠지? 실드의 두께가 1m를 넘어가면 안되니깐 말야, 크크크. 음..... 또, 무언가 빠진 것 같은데..... 아!" 자신이 썼던 방법을 생각하던 현민은 방어를 위한 실드가 밀려나면 안된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흠... 이럴때 그라비티 마법이 있으면 좋을텐데, 이건 아직 배우지를 않았으니 뭘 알아야지." 잠시 고민모드로 바뀐 현민은 그라비티 마법을 대신하여 실드를 무겁게 할만한 마법의 조합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홀드, 디그, 그리스....라" 주위의 마나에 대상의 마나를 묶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홀드마법과 땅을 파는 디그마법, 그리고 마찰계수를 0으로 만드는 그리스 마법을 생각한 현민은 세 가지의 방법을 놓고 고민하다 결국에는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일단 홀드의 공식 전부를 추가해서 실드를 주위에 묶어야겠고, 홀드마법이 1서클이니 마나를 좀더 많이 넣어야겠지? 흠... 하지만 이럴 경우 실드마법 자체에 상당한 마나가 필요할텐데.... 그래! 여기다가 사용되는 마나를 줄이는 공식을 추가해 넣으면 충분할거야! 그리고, 그래비티에 비해서 약하긴 하지만 디그를 쓸 때 생기는 중력의 힘을 응용해서 실드를 땅으로 잡아 끌드록 해야지. 여기다가 마찰계수를 0으로 하는 그리스의 공식을 반대로 해서 마찰계수를 ∞(무한대)까지 올리도록 계산하면 퍼팩트!!!! 푸하하하하." "꺄르르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실드마법을 완벽히 구상한 현민은 크게 웃었고, 그런 현민을 따라 머리위에서 놀고 있던 묘도 기쁜듯이 웃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웃음도 잠시였을뿐, 현민에게는 아직 진정한 노가다가 남아있었다. "창조." 우우웅.... 주위의 공간이 어둠으로 변해갔고, 현민은 완성된 공식을 적어놓은 종이 한 장만을 가진 채, 묘와 함께 어두운 공간속에 있었다. "생성." -생성하고자 하는 서클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공식에 비례, 서클수에 반비례하여 마법을 생성할 문제의 숫자가 결정됩니다. 만약 도중에 서클을 바꾸실 경우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3서클." 현재 4서클인 현민은 실용성을 위해 2서클과 3서클 사이에서 고민하다, 한 단계의 차이가 엄청난 문제의 양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3서클로 정해버렸다. 비록 한 서클 차이일지라도 마법을 만들기 위해서 푸는 문제의 양은 최소2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 차이가 날 수도 있었다. 쿵! 현민이 서클을 정하자 20cm정도 되어보이는 거대한 책이 허공에서 떨어졌고, 현민은 그 책을 보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싸울아비」에 접속할 때부터 각오하고 있었으나 이정도의 두께는 현민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충분할 정도였다. "기왕 시작한 것 최강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잡은 현민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고, 귀여운 묘는 현민이 문제를 푸는 동안 낮잠을 청했다. 현민으로서는 때려주고 싶을만큼 귀여운 묘였다. 스슥, 스스슥.... 새근새근..... 어두운 공간에서는 현민이 문제를 푸는 소리와 묘가 잠자면서 내는 숨소리밖에 나지 않아 몹시 적막했다.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기에 답답할 만도 하건만 현민이 문제를 푸는 손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1시간... 2시간... 4시간... 8시간... 벅벅.. 마치 문제를 풀기위해 만들어진 기계처럼, 현민은 8시간 이상을 일체의 움직임 없이 문제만 풀고 있었다. "으음?....." 8시간이나 잠을 잔 묘가 충분히 잠을 잔 탓인지 눈을 비비며 일어났고, 현민은 그런 묘 때문에 연필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 쉬다가 할까?" "응!" 현민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묘는 큰소리로 대답했고, 현민은 그런 묘의 모습에 살포시 미소지으며 묘를 끌어안았다. "저장. 작업종료." 현민의 말에 책갈피가 생기며 현민이 풀고 있던 페이지에 붙어버렸고, 현민을 감싸고 있던 어두운 공간이 사라져버렸다. 저장이란 명령어는 창조의 공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마법사의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마법서의 성질 때문에 저장이란 명령어가 생겨 그들이 하던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었다. "오빠 밥 먹고 올 테니 잠시만 정령계 가서 놀고 있어, 알았지?" "응!" 너무나 귀여운 묘의 행동에 절로 미소가 나오는 현민은 끝까지 인사하는 묘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비켜보았다. "종료." [종료하시겠습니까?] "응." 「싸울아비」를 종료한 후, 캡슐을 열고 나온 현민은 주방으로 향했다. "현민아, 저번처럼 노력하면 충분히 잘나올 수 있는 성적인데 왜 안하는거야? 성적을 보면 머리가 나쁜것 같지는 않은데 도대체 할 마음은 있는거니?" 조용히 밥을 먹고 있는 현민을 보며, 그의 어머니는 이런저런 말을 했다. "이번에 아빠 친구 아들은 또 1등을 했단다, 저번에 말했지? 반장하고 있다는 그 아들 말이야." '마음껏 말하세요. 어차피 내가 0.01점의 오차도 없이 일부러 만든 점수니깐 말이죠.' 우물우물.... 현민은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흘려보내서 홀로 생각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신이 아닌 이상은 그의 생각을 읽지 못하니 말이다. "이런 성적이면 아빠가 게임비 안준다고 하니 조심하렴, 하아." 학교를 다니는 현민이 그동안 「싸울아비」를 해 올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부모님이 대준 돈으로 였다. 하지만 이번 패치로 인해 마법사들에게 제공된 3개월 무료 이용권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현민으로는 부모님이 당장 안해준다고 해도 특별한 불이익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잘먹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에 기분이 상한듯한 현민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고, 게임기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36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현민이 로그인 된 장소는 좀 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방이었다. "소환 묘. 창조." 바로 묘를 소환한 현민은 허공에서 달려드는 묘를 안아들고, 창조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어둠으로 물든 창조의 공간에서 현민의 앞에는 조금전 저장했던 책이 어느샌가 나타나 있었다. "미안해, 묘. 오늘은 오빠가 늦게까지 할 것 같으니깐 힘들면 정령계로 돌아가렴, 알았지?" 끄덕끄덕 현민의 말에 말 잘 듣는 꼬마처럼 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민은 그런 묘가 귀여운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두꺼운 책의 책깔피가 꺼져있는 부분을 펼쳤다. 스슥. 그리고 현민은 다시한번 문제 푸는 기계가 되었다. -------------------------------------------------------------------------------- 툭툭 "그래그래. 이제 마지막이니 잠시만 참아줄래?" "뿌~." 현실에서 이틀, 게임상 8일이라는 시간동안 문제를 풀기만 했던 현민에게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문제를 남기고 지루해 하는 묘를 달랜 현민은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풀어나갔다. "끝났다!!" "꺄아아~." 이틀이란 시간을 소비해서 하나의 마법을 만들어낸 현민은 그동안의 피로가 한번에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업종료." "헤헤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현민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만들었어?" "응." 1층의 거실에는 린이 먼저 나와 현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현민의 가슴에 안겨있는 묘에게 인사를 하며, 현민에게 음식을 건네주었다. "성능은?" "아직, 이제 해보려고." 현민의 말에 린은 반짝이는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예상은?" "오우거 기본." "와우~~." 마녀들의 마법진으로도 오우거 정도는 막을 수 있지만 그러한 마법진은 최소 세 개의 마법진이 서로 연개되어야만 했었다. "내가 오우거 준비해 놀게~." 탁탁탁탁. 현민의 말에 린은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녀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현민이었기에 그녀가 오우거에게 당하는 것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우리도 가자." "응~." 목마를 탄 묘는 현민의 머리를 잡았다. 묘가 떨어지지 않게 잡아준 현민은 먹은 자리를 정리한 후, 린이 있음직한 장소로 몸을 옮겼다. "루나, 마법 만들었다면서? 나한테도 공식 알려줘야 해~." "나도, 나도." "네, 전부 알려드릴게요." 자신을 축하해주는 마녀들에게 웃음을 짓던 현민은 린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한 마리의 오우거가 린이 그린듯한 마법진에 갇혀 울부짓고 있었다. "바로?" "응." 현민에게는 마법진의 영향이 없는지, 현민은 오우거가 갇혀있는 마법진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절대방어 소모 정신력 : 1000 능력 : 실드의 강화형으로 거의 모든 것을 막아낸다. 현재 단계 : 6 주문 : 내 곁에 존재하는 무한한 힘이......... "내 곁에 존재하는 무한한 힘을 빌려 이곳에 모든 것을 막아내는 진실한 방어를........" 크오오오!!!!! 일정한 구역에 갇혀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먹이로 보이는 현민이 들어오자 성질 급한 오우거는 현민에게 무조건 돌진해버렸다. ".....막아라, 절대방어." 쾅!! 어마어마한 힘과 속도를 가지고 내려오던 오우거의 몽둥이가 적절한 순간에 발현된 마법과 부딪혔고, 커다란 소리를 퍼트리며 먼지가 솟아올랐다. "흐음...." "루나야 어때?" 마법진의 밖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마녀들은 현민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그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다. "충격하나 없네. 조금 더 해봤으면 하는데 오우거한테 스트랭스랑 헤이스트 좀 걸어주시겠어요?" 현민의 부탁에 몇몇 마법사들이 오우거에게 다양한 보조마법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오우거의 몽둥이가 푸른색의 마나에 감싸였고, 싸늘한 냉기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무기를 날카롭게 하는 마법인 샤프니스와 인첸트 마법중 하나인 인첸트 아이스가 걸려있었다. 또한, 어떠한 마법을 걸었는지 안그래도 거대한 오우거의 몸집이 1.5배나 커져 7m는 되어 보였다. "루나야, 약간 위험할 것 같은데?" "흠....." 생각보다 너무나 강해진 오우거 때문에 현민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오우거의 몽둥이가 실드를 부셔버린다면 자신이 살아있을 가능은 없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 넘처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던 오우거는 기쁜듯한 고함과 함께 현민을 감싸고 있는 마법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콰콰쾅!!! 이번보다 더욱 거대한 소리가 마녀의 마을에 울려퍼졌고, 모두가 먼지에 가려진 현민이 모습을 드러내기 기다렸다. "휴우... 긴장했네." 크아아앙!!! 직경 5m정도 되어 보이는 크레이터가 생겼지만 현민의 실드에는 금조차 가있지 않았다. 쿵!쿵! 마법진이 부서진 탓에 오우거가 이리저리 날뛰었고, 마녀들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꾸와아아악!! 꿀꺽! "꺼어억!!" 오우거의 앞에서 거대한 해바라기가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고, 그 해바라기는 7m를 넘는 오우거를 한입에 먹.어.버렸다. '왠지 내 마법보다는 저 꽃이 더 대단한거 같아.......' 오우거의 공격을 막은 자신의 마법보다는 그런 오우거를 한입에 먹어버리고 땅으로 사라지는 해바라기가 더욱 탐이나는 현민이었다. "루나야 마법공격도 실험해 봐야 하는거 아냐?" "으, 으음. 물론 해야하지만." "그거, 우리가 해줄게. 응? 응? 응?" 현민에게 다가간 몇몇 마녀들이 무슨 생각들인지 현민에게 졸랐고, 현민은 곧 다가올 무서움도 모른 채, 얼떨결에 승낙해 버리고 말았다. "자리 옮기자!!" "와~~!!" 현민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신이난 마녀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기 시작했고, 숲의 어느 한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홀로 남은 현민도 잠시 그녀들을 바라보았을 뿐, 이내 자신의 빗자루를 꺼내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그녀들을 따라갔다. 탁! 마녀들의 가운데 현민이 내려왔고, 모든 마녀들이 현민을 포위한 모양이 되었다. "자, 우리도 준비할테니깐 루나 너도 단단히 각오해야 할거야." 모든 마녀들이 일제히 주문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현민은 자신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곁에 존재하는 무한한 힘을 빌려 이곳에 모든 것을 막아내는 진실한 방어를........" 현민의 주문이 아까보다 빨라져 있었고, 그의 표정에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절대방어!!" "가랏!!!!" "꺄하하하하!!! 죽어! 죽어! 죽어버리는 거야!!! 깔깔깔." "쓰러져라! 날아가라! 뒈저버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진정한 마녀(?)들의 모습이 잠시 보였고, 이내 자신을 향해 수많은 종류의 마법들이 일제히 날아오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조, 조금 위험할지도.....' 쾅쾅쾅쾅쾅!!!! 거대한 마법들이 현민의 실드에 부딪히기 시작했고, 현민은 정말로 죽을 것만 같은 위험을 느꼈다. 현민이 절대방어 마법 속에서 주위만을 살피고 있을 때, 마법과 실드가 부딪히는 굉음을 뚫고, 낭랑히 울려퍼지는 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쏟아져라 파멸의 힘이여, 여기 이곳에 나의 적을 흔적도 없이 불태워버려라!!! 기가 라이트닝!!!!" 번쩍! 콰콰콰쾅!!! "꺄아앗!" "아악!" 모든 마법들의 소리를 잠재울만큼 거대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고, 현민을 포위하고 있었던 마녀들은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붙잡기 바빴다. "휘유~. 개운하다." "아앙~, 황홀해." 린의 마법진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자 마녀들은 한결같이 분홍빛이 감도는 얼굴로 몸을 비비꼬고 있었다. 먼지로 가려져서 현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나, 그녀들은 현민을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다. "콜록! 콜록! 정말 너무하네...." 먼지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현민의 목소리였다. 모든 먼지가 사라졌을 때, 그녀들은 볼이 잔뜩 부풀어 오른 묘와 먼지로 인해 옷이 더러워진 현민을 볼 수 있었다. "깨진거야?" "아니, 최강이다. 크크크." 먼지로 뒤덮힌 현민의 얼굴이었으나 그녀들은 그의 얼굴에서 만족한 현민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뾰로퉁한 묘를 제외하고는 마녀도 현민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그런 하루였다. -------------------------------------------------------------------------------- "그런데 약간 수정해야 할 것 같아." "왜? 무슨 문제있어?" 기가 라이트닝의 흔적으로 남은 거대한 구멍에서 올라오던 현민은 절대방어 마법에서 발견된 단점들을 린에게 말해 주었다. "실드의 성질을 다이아몬드와 비슷하게 해서 그런지 빛의 굴절이 일반 실드에 비해 너무 강해, 실드 외부의 모습이 흐릿하고 초점도 맞지 않더라고, 그리고 정신력(마나)의 소모가 너무 커서 나 같은 경우에는 두 번이 끝이야. 내부에 있는 공기도 순환이 안돼서 시간이 지나니깐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말야." "흐음.... 보기보다 문제점이 많은데? 하지만 3서클의 마법이잖아? 그정도는 감수해야지." 린의 말에 현민은 어림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마법이 3서클인 이유는 내가 서클을 낮추기 위해 그만큼 노력한 결과야. 정신력만 따지자면 6서클을 약간 넘는 정도고, 공식이나 마법으로만 따지자면 5서클은 충분히 먹고 들어갈 정도일걸? 그정도의 마법이니 너의 무식한 공격을 막은거잖아." "우윽!" 현민의 말에 린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기가 라이트닝은 6서클의 마법을 몇 배로 강화시킨 린만의 기술로 어떻게 보면 그녀만의 필살기였다. 그런 기술을 버텨낸 현민의 마법이 최소 5서클이라는 것은 당연한 소리였다. "아참! 그리고, 나 아무래도 5서클까지 가야할 것 같아. 지금의 마법공식으로는 부족한게 너무 많거든." "하아.... 도대체 어떤 마법을 만들려고 그러는건지." "최강의 기술만 만들어야지." 기왕 즐기는 것 누구도 흉내낼수 없을 만큼 강력한 기술을 갖기 원하는 현민이었다. "앞으로 바빠질 것 같아." "응." 린의 말대로 짧지만 긴 방학기간동안 현민은 5서클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가 어디까지 받아줄지 모르지만 최대한 노력은 해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종료." [종료하시겠습니까?] "응." 마법을 시험했던 숲을 정리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현민은 묘를 보내고, 자신도 로그아웃했다. "하아....." 앞으로 남은 3개월의 시간동안 5서클을 올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최대한 욕심을 부리는 현민이었다. 오전 6시 기상 오전 7시까지 아침식사 및 씻기 오후 6시까지「싸울아비」 오후 6시30분까지 저녁식사 아침 2시까지「싸울아비」 아침 4시까지 운동 어찌보면 간단한 시간표였으나 하루에 잠을 두 시간만 자고 점심식사도 거르면서 버티는 것은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이것은 현실에서의 시간표였고, 게임속의 시간표는 더욱 힘들어 보였다. 하루 1시간 하피와의 만남. 식사시간은 10분이하. 나머지는 린과의 공부. 달랑 세 줄이었으나 공부 이외의 시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게임속의 마법이란 놀라운 힘은 그동안 공부를 하지 않았던 현민을 스스로 공부하게 만들었다. 현실에서의 3개월, 게임속의 1년이라는 시간동안 계획된 현민의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루나야, 마력의 돌이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 잠시만 쉬자, 응?" 스슥. "나 지금 바뻐." "아잉~. 깨달음 때문에 5서클도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응?" 너무나 심한 마법사의 하향 패치 때문에 유저들 중의 마법사 수가 낮아지기 시작했고, 아직 초반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춰야 했던 「가우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깨달음이라는 시스템으로 경험치가 올라가는 것 이외에도 마법이 한 단계 올라가도록 설정해 버렸다. 그러나 1서클부터 낮은 깨달음으로 마법을 배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최소 4서클부터 깨달음을 통해 단계가 올라가도록 했고, 때마침 운이 좋았던 현민이 한 단계를 거져 올려버린 것이었다. "안돼, 중간에 억지로 올라간 것 때문에 진도가 맞지 않는단 말야." 원래는 8서클(7서클 6단계)부터가 깨달음으로 마법을 올리도록 설정되어 있고, 그 이전의 마법은 공식으로 올리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패치로 인해 그 이하의 서클에서 단계가 올라가도록 되어버렸기 때문에 중간에 단계가 올라가는 경우 그 단계에서의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음 단계로의 진입이 힘들어지는 짜증나는 경우가 발생된 것이었다. '병신같은 새끼들이 마법사를 죽이려고 환장하나 자꾸 미친짓만 하네.' 이 같은 짜증이 한계를 넘어선 현민이 드디어 엄청난 일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싸울아비」내에서 정령석을 만들어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마녀란 직업의 특성상 특이한 연구를 많이 하는 현민 역시 정령석이란 것이 만들어진 환경을 조사하여 그것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아직 실험 단계에 있지만 방학이 끝나기 전에는 결과가 보이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령석을 시중에 내다 팔 경우 현민에게는 아이템의 특수성 때문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싸울아비」내에서 정령사들이 많이 생기기에 「가우리」의 운영자들이 할 고생 또한 당연한 것이었다. "됐다!!" "으음? 와!!" "야호~!! 루나야 이쪽도 됐어." 드디어 마법서의 마지막 장이 넘어갔고, 현민은 기쁜 음성으로 만세를 불렀다. 현민의 무릎에서 졸고 있던 묘도 현민과 같이 만세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여기." 커다란 건틀렛을 끼고 있는 린이 엄지손가락 정도의 수정을 현민에게 보여줬다. 린의 손에서 수정을 들은 현민은 햇빛에 비추며 수정의 완성도를 보았다. "멋져." "예쁘다." "나도, 나도! 헤~." 반짝이는 것이 예뻐보이는지 묘는 현민에게 때를 썼고, 현민은 묘의 손에 수정을 쥐어주었다. "린,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난거야?" "음... 대충 계산해보니깐 10년 약간 넘은 것으로 나왔어." "10년이라...." 정령석을 만드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속성이 담긴 각각의 마법속에서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마법에 영향을 받아야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때, 마력의 돌이 마법에 파괴되면 안되기에 적당한 마법의 세기로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어야만 했다. 현민은 여러 가지의 실험을 하면서 마침내 정령석을 제조할 수 있었고, 작지만 거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그보다 마법진은 안정적이야?" "흠... 마나의 흡수율이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보다 낮아지긴 하지만 포션을 계속 보충해주니 그럭저럭 버티긴 하는 것 같아." 사냥을 많이 다닌 것도 아니고, 좋은 아이템이 있는 것도 아닌 현민은 이 집, 저 집의 마녀들에게 빚을 지며 돈을 빌렸고, 그렇게 모은 돈의 전부를 투자하여 마력의 돌과, 정신의 포션을 구입하였다. 현민과 린이 5일을 투자하여 하나의 마법진을 만들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15배의 시간가속 마법진은 마을 한곳에 그려졌다. 이때 시간의 가속으로 인해 발생하는 마나의 진공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마법진의 선을 따라 포션이 흐르도록 길을 팠다. 그리고 각각의 속성 마법이 일정한 쌔기로 나올 수 있게 조정하고, 마법진이 포션에 있는 마나를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이렇게 그려진 마법진에 구입한 마력의 돌(이하 마돌)을 올려놓고 현실로 50일 정도가 경과한 지금, 드디어 첫 번째 성과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정보." 정령의 돌 속성 : 바람 능령 : 사용자에게 속성친화력 1을 부여한다. 설명 : 마력의 돌에 속성이 생기며 변화한 돌. 요정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간식(?) "흠.... 정말 제대로 만들어졌는데? 린도 하나 사용해볼래?" "어? 나도 할 수 있어?" "글쎄다...." 정령의 돌이라는 것이 유저들은 단순히 '사용'이라는 말로 가능하지만 npc들이 사용 가능할지는 그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뭐, 포션도 사용가능하니 이것도 사용가능하겠지. 린, 먹어봐." 마녀와 어울리며 상당히 마녀(?)다워진 현민은 반짝이는 눈으로 서슴없이 린의 입에 정령의 돌을 넣으려 했다. "야! 기다려! 그만해! 내가 오크냐! 돌을 먹게?!" "아참, 갈아줄게." 그녀의 입에 넣으려 하던 정령의 돌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간 현민은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그것을 곱게 갈아서 가져나왔다. -------------------------------------------------------------------------------- 그녀의 입에 넣으려 하던 정령의 돌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간 현민은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그것을 곱게 갈아서 가져나왔다. 가루가 되어버린 정령의 돌을 보고 실망한 묘는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울고 있었다. "묘? 이리와. 물 좀 주겠니?" "흥!" 아무리 곱게 갈았어도 먹기에는 불편한 정령의 돌이기에 물의 정령인 묘의 도움을 받으려 했으나 묘는 현민에게 화가난 듯, 평소와는 다르게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빠가 물의 정령석으로 하나 줄게, 응?" "헤~." 현민의 한마디에 묘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밝은 얼굴로 현민에게 안겨들었다. "루나, 어, 꼬르르륵?" 주르륵 현민에게 말을 걸려고 하던 린의 입에 물이 가득찼고, 갑자기 넘어간 물이 걸렸는지 그녀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꿀~꺽. "흐흑, 콜록!" 톡톡톡. 때마침 넣어준 가루와 함께 그녀의 입에 가득 고여 있던 물이 넘어가버렸다. 묘의 장난 때문에 괴로운 린은 연신 기침을 했고, 현민은 어쩔수 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줬다. "괜찮아?" "으응, 바나나맛..." "?" 기침을 심하게 하던 린은 숨이 진정되자 입맛을 다시며 입가에 묻어있는 정령석을 핥았다. 그녀의 반응을 살피던 현민은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의 눈빛을 알아차린 린은 바로 정령과 계약하기 위해 정령계의 문을 열어보았다. 슥!슥!슥!슥!슥! "나 그대와 계약하고 싶다." "어?" 린의 모습이 흐려진다 싶더니 그의 앞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현민의 입에 미소가 생기기 시작했다. "성공했다~!!!" "와~~!!!" 정령석의 제조가 완벽히 이루어진 것에 기쁜 현민은 만세를 외쳤고, 묘는 그런 현민과 함께 집안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소리질렀다. "자, 우리 묘한테도 정령석 줘야지겠지?" "응! 응!" 현민은 린이 차고있던 건틀렛을 끼고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디보자, 잘 익은(?) 정령석이 어디있나?" "나, 조거! 조거!" 묘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곳에는 푸른색이 예쁘게 빛나는 정령석이 있었다. "이거?" "응! 꺄아아~~." 현민이 꺼내준 정령석을 쥐고 좋아하던 묘는 그 정령석을 그대로 입에 넣어버렸다. "으악! 묘, 뱉어!" "헤~. 포도맛 좋아." "?" 묘가 왕사탕만큼 커다란 정령석을 입에 넣자, 깜짝 놀란 현민이 그녀의 입을 벌려 정령석을 꺼내려 했으나, 그런 현민의 손길을 피한 묘는 입속에 있는 정령석을 쪽쪽 빨며 정령석의 맛(?)을 즐겼다. "괜찮아?" "응! 오빠도 먹어 봐. 엄~청 맛있다!" 현민의 품으로 안겨들어간 묘는 행복한 표정으로 부비적거렸고, 현민은 그녀를 치켜 안으며, 완성되어가고 있는 정령석 몇 개를 꺼내었다. "일단 성공한 것 같으니 마녀들에게도 나눠줘야지." 크게 잘 여문(?) 정령석만 고르고 고른 현민은 묘를 끌어안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마녀들이 원하는 속성의 정령석을 나눠주었다. 대체적으로 마법진을 다루는 마녀들은 땅과 바람의 정령석을 가져갔고, 저주를 다루는 마녀는 불과 바람을, 약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마녀는 물의 정령석을 가져갔다. "일단 전부 완성되면 기대해도 좋을거야, 크크크." 자신으로 인해 고생을 할지 자신할 순 없지만 그들이 고생하기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 현민이었다. "그전에 나도 준비는 해야겠지." 어떠한 준비를 할지는 모르겠으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긴 현민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대략 2달이 지난 지금 현민은 4서클 3단계를 이루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한달, 게임속으로 4개월동안 현민이 어느정도까지 수준이 올라갈지는 그의 노력에 달려있었다. 게임속 1주일이 지난 뒤, 마녀의 마을은 평소와 다르게 시끌벅적해져 있었다. 현민이 준 정령의 돌을 사용하고, 각자 계약에 들어간 마녀들이 3일이 지나서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1주일이 지난 지금에서는 전부 정령과 계약하고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린, 혹시 인첸트를 전문으로 하는 마녀는 없어?" "글쎄, 아마 로벨 언니가 저주계열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걸?" "흐음, 그래?" 그녀의 말을 들은 현민은 품에서 자고 있는 묘를 조심스레 안아들고, 로벨을 찾아나섰다. "루나야! 나 바람의 정령석 하나만 가져가도 되지?" "하나만이다!" "응~♡" 현민의 허락에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앉아있는 작은 용을 쓰다듬으며, 재빨리 노란색의 정령석을 마법진에서 빼갔다. "맛있니?" "큐~~." "꺄아앙, 너무 귀여워." 바람의 정령과 놀고 있는 린을 외면한 현민은 로벨의 집으로 발을 옮겼다. "로벨? 들어가도 돼요?" "응? 응." 방으로 들어간 현민은 로벨이 활활 타오르는 커다란 늑대를 껴안고 바닥을 뒹굴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 피피 선물은 가져온거야?" 날카로운 눈매의 늑대가 뭐가 좋은지 그녀는 잠시도 자신의 품에서 불의 정령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와 피피라는 불의 정령이 놀고 있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현민은 주머니에서 불의 정령석을 꺼내 로벨에게 던져주었다. "자, 피피야. 간식먹자~." 피피라 불린 불의 정령은 정령석과 함게 로벨의 손까지 물었으나, 로벨은 그런 피피가 귀여운지 머리부터 꼬리까지 쓰다듬고만 있었다. '무, 무섭군....' 너무나 독특(?)하게 놀고 있는 마녀와 정령을 보며, 현민과 묘는 그들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껴버렸다. "무슨일로 온 거야, 루나야?" "아참, 인첸트하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인첸트?" 현민의 말에 로벨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보답은?" "정령석 하나에 몇 천골드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만?" "으윽!!" 물론, 현민이 만든 것이기에 현민의 마음에 따라 바뀌는 정령석의 가격이었을 뿐이다. "네가 원하는 물건에 마법진을 그리면 돼." "끝?" "물건이 평면이 아니니깐 약간 힘들걸?" 씨익! 방긋! 그녀의 의미심장한 웃음에 현민 또한 방긋 웃어주었다. 현민의 품에 안겨있던 묘는 어느새 잠에서 깨어나 현민과 같이 덤으로 웃어주고 있었다. "재미있게 노세요." 필요한 정보를 얻은 현민이 문을 닫고 나가버렸고, 로벨은 피피를 끌어안으며 문쪽을 바라보았다. "고생 좀 해봐라." -------------------------------------------------------------------------------- "으아아악!!!! 왜! 왜! 왜! 안돼는건데~~~!!!"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피에로의 가면을 꺼내어 시험에 들어간 현민은 가면에 마법진을 그려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루나, 마법진에 마나가 없잖아. 꺄악! 그만해~♡" 바람의 정령(이름 큐)과 놀던 린은 고함지르는 현민이 불쌍한지, 방문에서 얼굴만 살짝 드러낸 상태로 현민에게 말해줬다. 그 이후 사라진 린은 큐와 무엇을 하는지 연신 하트가 달려있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 린을 뒤로하고, 마법진이 왜 반응하지 않는지를 파악한 현민은 마법진에 마나를 흡수하는 공식을 넣어, 마법진 자체가 주위의 마나를 사용하여 반응하도록 하였다. -피에로 가면에 일시적으로 능력이 추가되었습니다. "쿡, 쿡쿡쿡. 이제 다 죽었어!" 피에로 가면을 바라보는 현민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근데 일시적?" 성공한 이후 들려온 메시지를 기억해본 현민은 왜 그러한 말이 나왔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분명히 마법진의 마나는 끊임없이 공급될 텐데 어째서 일시적이지? 무슨 문.." "묘! 안돼!!" "?. 풋, 푸하하하하." "호?" 현민의 품에 얌전히 있던 묘가 호기심을 참지 못했는지 순식간에 피에로 가면을 자신의 얼굴에 써버렸고, 묘를 말리려던 현민은 커다란 가면을 쓰고 힘들어하는 묘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자, 자. 오빠물건 가지고 장난하면 혼나요~." "네~." "응?" 묘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기던 현민은 가면에 새겨진 마법진이 지워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다시한번 가면을 바라본 현민은 어째서 자신의 인첸트가 일시적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묘가 쓰고 난 가면은 묘의 물기가 닿아서인지 엉망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을.... 만들어야 해." 가만히 피에로 가면을 쳐다보고 있던 현민은 앞으로 자신에게 필요할 마법을 또 하나 떠올릴 수 있었다. "묘, 미안하지만 밖에 나가서 린 언니랑 큐하고 놀지 않을래?""네~." 크게 대답한 묘는 거실로 나가버렸고, 혼자남은 현민은 마법이 정리되어 있는 종이뭉치를 다시한번 펼쳤다. "이것하고, 이것도 필요하고, 이거랑, 또 이 마법..........." 개학을 한달 남기고 현민은 새로운 마법 만들기에 들어갔다. 운영자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인 정령석은 완성되었지만 그것을 판매할 그 자신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얼마가 걸릴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방학전에는 일을 벌이려고 하는 현민이었다. "어? 일찍 나왔네? 마법은 완성됐어?" 약간 커진 큐가 묘를 태우고 집안을 날아다니고 있었고, 린은 그들의 모습을 영상기억수정으로 찍고 있었다. "하아, 힘들다." 털썩! "에휴, 바보같이." 방에서 나온 현민이 쇼파 위에 누워버렸고, 그런 현민을 바라보는 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때?" "만족~." "와~, 오빠다!" 큐와 놀고 있던 묘가 현민의 등에 뛰어내렸고, 현민은 몸을 돌려 묘를 껴안았다. "응? 묘, 너 이렇게 컸니?" "헤?" 언제나 한품에 쏙 들어오던 묘였으나 오랜만에 묘를 안았을 때, 현민은 자신의 품에 묘가 들어오기에는 약간 벅찬 느낌을 받았다. "헉! 너, 너, 너!!" 쿠쿠쿵!! 묘에게서 무엇인가를 발견한 현민은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했다. "어? 왜?" "턱, 턱이......." 현민은 4일 만에 바라본 묘의 턱이 없.어.졌다는 것을 보고는 고개가 서서히 린쪽으로 돌아갔다. "아, 나, 난 잘못 없어!" 하지만 현민의 눈이 약간 더 돌아가면서 린의 뒤쪽에 숨은 비만도마뱀 큐에게로 옮겨갔다. "하, 하하.... 루나야 내 얼굴봐서 봐주면 안될까?" 빠직! 현민의 입에서 심각한 소리가 울렸고, 묘와 큐, 그리고 린의 머리에 커다란 땀방울이 생겼다. "정령석 금.지." "에에엑!!!" "뀨~!!!!" "헉!" 현민의 정령석 금지령에 정령석 중독증(?)을 가지고 있던 묘와 큐가 비명을 질렀다. 큐를 위해 어떻게든 막아보려했던 린이었으나 단 4일만에 뚱뚱해진 묘와 큐의 모습에 린도 현민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린, 근처에 드워프 있어?" "흑, 흑흑. 절벽 너머 북서쪽으로 43m....." "뀨~." 큐를 안고 울고 있는 린은 현민에게 점수를 따려는 생각 때문인지 착실히 대답해줬다. "묘! 오빠도 이러기는 싫었는데 다이어트 좀 해야겠구나." "히잉....." 묘가 애교를 부리고 때도 썼지만 과거 뚱뚱한 몸을 가지고 있었던 현민은 자신의 고생이 생각나는지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 "4일이나 못 갔으니 걱정하겠는데?" 왼쪽 어깨를 어루만진 현민은 빗자루를 타고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펄럭! -룬!!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현민을 발견했는지, 하피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현민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 펄럭! -룬!!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현민을 발견햇는지, 하피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현민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드워프 마을에 가는 중인데 누가 빨리가나 시합할까? -이기면 뽀뽀해줄 거야? 현민의 입술을 노리고 있는 그녀는 현민의 입술을 빼앗기(?) 위해 수없이 도전했지만 현민은 아직까지 입술을 지키며 그녀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글세..." -나 이기면 룬 입술 가질래!! 선포하듯 말한 하피는 드워프의 마을이 있음직한 장소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현민은 그녀의 뒤를 쫓아 어쩔 수 없이 날아갔다. 비록, 현민이 늦게 출발했으나 순식간에 하피를 따라잡았고, 하피 역시 자신의 뒤를 바짝 쫓아오는 현민을 피해, 더욱 빠르게 날아갔다. "저기인가?" -내가 이길거야!! 그들의 목적지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고, 하피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겼.... "오빠 빨리와!!" 현민보다 먼저 내려가기 시작한 그녀의 몸이 바닥에 닿으려 하는 순간, 언제 내려가 있었는지 그들이 도착하려 하는 곳에는 현민의 품에 안겨있던 묘가 먼저 내려가 있었다. -으윽.... "휴..." 입술을 빼앗길뻔 한 상황에서 묘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현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현민의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챙! 후웅! "네놈들은 뭐냐?!" 현민과 하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잔뜩 긴장한 드워프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고 뛰어나와 현민을 향해 겨누었다. "마녀의 마을에서 찾아온, 마녀 루나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저의 친구인 하피입니다." 현민은 자신의 목에 창이 겨누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드워프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냈다. 하지만 옆에 서있던 하피와, 어느새 현민의 품에 안겨있는 묘는 자신들에게 무기를 겨누는 드워프를 노려보며 경계했다. "남자가 어째서 마녀인지 묻지는 않겠지만, 마녀가 우리 마을에는 왜 온 것인가?" 현민의 정중함에 처음 고함을 친 드워프도 태도를 바꾸어 정중한 태도로 물어보았다. "제가 가능한 일을 도와드리고 약간의 보답을 받기 바랍니다." 찌릿! "힘으로 우릴 약탈하겠다는 건가!!" 현민의 말을 오해한 드워프들이 일제히 살기를 들어내며 현민을 압박했고, 그들의 기운에 하피도 같이 자신의 기운을 내뿜었다. "제 말을 오해하셨네요. 저는 마녀(魔女). 당신들이 필요할만한 마법진을 그려주고, 하찮은 장신구를 받아가기 원하는 것뿐이에요." "음?" 현민의 말에 그를 제압하고 있는 몇몇의 드워프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드워프들은 일제히 몸을 돌려 서로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일단, 그대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긍정적으로 나오는 드워프들의 물음에 현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4서클의 마법사이며, 왠만한 마법진은 전부 제작 가능합니다." "흠!" 현민의 대답을 들은 드워프들이 다시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고,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현민을 제압하고 있었던 드워프들이 무기를 내리고 현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에게는 순수하고 온도가 높은 불이 필요하다네. 그런 불을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음....." 드워프들의 부탁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던 현민은 그들의 부탁이 생각보다 쉬운것을 알고는 밝은 표정을 지었다. "어렵지는 않을 것 같네요. 하지만 그런 불꽃을 견딜만한 판이 있어야 합니다. 얼마만한 불꽃을 원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판의 크기만큼의 불을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옵션으로 불꽃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호오." "으음." 현민의 옵션이 마음에 드는지 몇몇 드워프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따라오게." 현민의 조건을 허락했는지 그들은 현민과 하피를 어디론가 안내했다. "여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지하로 들어가는 듯한 작은 입구였다. 현민을 입구에 세워둔 드워프들은 지하로 들어가 거대한 무언가를 꺼내오기 시작했다. "잠시만 기다리게나." "에취!" -콜록! 카펫처럼 말린 무엇인가를 들고 나온 드워프가 그것을 펼쳤고, 현민은 수많은 먼지와 매끈함을 자랑하는 무언가에 감탄했다. "이게 뭐죠?" "드래곤에게 받은 비늘일세." 드워프의 말을 들은 현민의 눈이 순간 반짝거렸다. 드워프가 만진 무기들도 몇천골드를 하는 판국에 드래곤의 비늘이 얼마나 나갈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만든 갑옷이 억단위까지 나갈 수 있을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바로 해드리고 보답을 받았으면 합니다만.." "우리도 빨리 해준다면 환영일세." 드워프들의 말에 현민은 자신이 그릴 마법진을 이미지 해 보았다. 1서클의 마법인 파이어를 기본으로 하고, 그 외의 필요구성은 다른 마법진에서 이리저리 빌렸다. 시험마법진과 함께 현민의 구상이 완벽히 끝난 후, 그는 마법을 실행할 준비를 했다. "잠시만 물러나 주세요." 모든 드워프들을 물러나게 한 현민은 레드드래곤의 비늘로 추정되는 그것의 위에 올라가서 마법진을 그렸다. 비늘의 한쪽 길이가 5m를 넘을 정도로 거대했으니 현민은 허리를 쪼그리고 그려야만 했다. "됐다." 현민의 손에 따라 그려진 선에 의하여 마법진이 완벽히 그려졌고, 현민은 자신의 스킬창을 열어 새로 만든 스킬을 찾았다. 각인(刻印)(4서클) 소모 정신력 : 2000 능력 : 사물에 원하는 모양을 세길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마법.(1단계 음각, 2단계 압축) 현재 단계 : 1 주문 : 내 손끝에서 나온 하나의 길이 그 끝을 모르......... "내 손끝에서 나온 하나의 길이 그 끝을 모르고...." 전투용이 아니기에 자신이 쓸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놓은 새로운 마법 각인은 현민의 모든 정신력을 쏟아부어야만 하는 거대한 마법이었다. 그런 어마어마한 정신력 때문인지 항마력이 있는 물건이 아니고서는 왠만한 것은 전부 세겨버리는 마법이 그의 마법이었다. "각인(刻印), 2단계!!" 현민의 입에서 기다란 문장이 전부 나왔고, 현민의 손끝을 따라 그려졌던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 하지만 현민이 예상했던 반응과는 전혀 다르게 드래곤의 비늘은 아무런 변화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어라? 왜 이러지?" "저기, 이보게. 자네가 마녀라길래 아무말 안했네만, 혹시 비늘에 마법저항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 옆에서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던 드워프 할아버지가 현민에게 말해주었고, 현민은 그제서야 자신이 드래곤 비늘을 다른 물건들과 같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 하하.... 아무래도 마을 좀 다녀와야 할 것 같네요."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했으나 지금 아무런 도구도 없는 현민에게 더 이상은 무리였다. 마을에 있는 마녀들 중에 항마력을 일시적으로 없애는 가루가 있으니 그것을 드래곤 비늘에 사용한다면 마법이 발현될 것은 확실했다. "흠! 혹시, 항마력을 없애기 위한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라면 우리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네." "하, 하하....."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실수를 드워프 마을에서만 연발하고 있었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허허, 우리것을 만들어 준다는데 기꺼이 줘야지." 한명의 드워프가 집으로 들어갔고, 그 드워프가 다시 나왔을 때, 그의 손에는 커다란 병이 들려 있었다. 샤라락 병을 가지고 나온 드워프가 드래곤의 비늘에 가루를 뿌렸고, 가루가 골고루 묻은 드래곤의 비늘이 형광물질을 발라놓은듯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그럼, 다시한번..." 다시한번 스칼창을 열어 각인 마법을 찾은 현민은 이전에 실패한 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신중히 마법진을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내 손끝에서 나온 하나의 길이 그 끝을 모르고...." 현민의 주문이 완성되었고, 현민은 반짝이는 빛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마법을 외쳤다. "각인(刻印), 2단계!!" 우득, 우드득... 초반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마법진이 그려졌던 자리가 약간씩 들어가기 시작했고, 두께의 절반정도 들어갔을 때,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줄어들었다. -레드드래곤의 비늘에 능력이 추가되었습니다. "휴..... 성공이네." 현민의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가 현민의 귓가에 들려왔고, 현민은 드워프들을 향해서 웃음을 보여주었다. "여기 보시면 동그라미 세 개가 보이실 거예요." 드래곤 비늘의 가장자리 쪽을 손으로 가르킨 현민은 드워프들을 향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첫 번째 동그라미를 누르시면 불이 생길거예요. 두 번째 동그라미는 불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고, 세 번째 동그라미는 불의 온도를 높이는 것이에요. 첫 번째 동그라미를 한번 더 누르시면 불이 꺼지니 평소에 사용을 하지 않으실 때 꺼 놓으셔도 될거에요." "오오오!!!"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물건을 만들어준 현민을 향해 드워프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최, 최대치는 어느 정도인가?" "최대치는 저도 모르지만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비늘이 견딜 수 있는 온도까지는 괜찮을 거예요." "와아아!!!" 용암에서 헤엄치고 돌아다닌다는 드래곤의 비늘이 견디는 불꽃정도면 왠만한 금속은 전부 녹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뜻밖에도 이렇게 좋은 물건을 만들어 주었으니 우리도 그에 합당한 보답을 해드리겠네. 혹시 바라는 것이 있나?" 너무나 기뻐하는 드워프들의 반응에 현민은 부담없이 자신이 필요한 물건들을 말했다. "능력이나 기능은 상관없고, 단면이 깨끗한 반지와 고리로 되어있는 발찌와 팔찌, 그리고 귀걸이도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잘 부서지지 않는 무기와 가면을 하나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할부지, 우리 오빠 많이 줘야돼~."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드워프들에게 너무나 많은 부탁을 하는 현민인지라 스스로를 많이 낮추었다. 하지만, 작고 귀여운 묘는 드워프들에게 애교를 보이며 편안한 모습을 만들었다. "나머지는 당장에라도 줄 수 있는 것이지만 가면과 무기는 조금 걸릴 것 같군. 어떤 모양을 원하는 것인가." 드워프 할아버지는 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현민이 원하는 모양을 물어보았고, 현민은 그동안 틈틈이 그려오던 그림뭉치를 드워프 할아버지에게 건내주었다. "쿡쿡, 전형적인 마녀의 얼굴을 가면으로 만들어 달라라....." 현민이 건네준 종이를 차근차근 넘겨보던 드워프 할아버지는 첫 장에 시작되는 그림을 보며 웃었다. 첫 장에는 옛날이야기에 항상 등장하는, 기다린 매부리코와 얍삽해 보이는 초승달 눈을 가지고 있는 마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스슥... "훗, 자네는 상당히 재미있는 것들만 원하는 군." 그림의 중반 부분에서는 무기에 대해 그려져 있었는데, 드워프 할아버지는 그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며 현민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아마 몇 일 걸릴테니 시간이 생길 때 찾아오면 만들어 놓겠네." "감사합니다." 현민의 인사를 들은 드워프들이 일제히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어마어마한 양의 장신구를 가지고 나왔다. "저, 저기.... 좀 많은 것 같은데." "하하하, 우리 드워프들이 손이 좀 크다네, 사람이던 드워프던 크게 놀아야 한몫 잡을 수 있는 것이거든!" "하, 하하..." "와~." 드워프들의 말에 현민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드워프들의 호감과 함께 다양한 장신구를 얻으면서 그가 걸어가는 복수의 길은 한걸음 가까워졌다.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하지만 그의 JQ가 어떠한 일을 벌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꾸벅. 처음에는 드워프들을 경계했으나 바로 풀어진 묘는, 헤어질 때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를 하는 착한 정령이었다. "다행이 들어가네." 물건별로 나눠져 들어갈 것을 예상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장신구 자루는 통째로 인벤토리 한 칸을 차지할 뿐이었다. 장비창에 모든 장신구 자루를 챙긴 현민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올랐고, 그의 뒤를 따라 하피도 날아올랐다. 그들은 처음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땅 위에 남은 드워프들은 사라진 그들을 바라보다가 현민이 만들어놓은 마법렌지(?)에 눈을 돌렸다. "이제 우리 마을은 최강의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우오오오!!!!" 활기찬 분위기를 풍기는 드워프들이 마법렌지를 들고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수하고 강한 불이 생긴 그들에게 더 이상의 쓸데없는 말은 필요가 없었다. 한편, 하피와 헤어지고 마을로 돌아온 현민은 린이 보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들어와 자신의 방 한쪽 구석에 장신구들을 모아 놓았다. "앞으로 얼마가 걸릴지 모르지만 모든 수를 써서라도 만들고 말겠어." 책상에 앉은 현민은 가늘고 긴 바늘과 하나의 장신구를 꺼내어 씨름하기 시작했다. "으자자자자!!" 투두두둑!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현민이 몸을 일으켰고, 그의 움직임에 잔득 싸여 있던 장신구의 산이 무너져 버렸다. "하아...." 무너져버린 장신구의 밑에는 이전에 무너져 내린게 분명해 보이는 여러 가지 장신구들이 한발먼저 굴러다니고 있었다. "어차피 쓸모없는 물건인데, 마녀들을 줄까? 팔아버릴까?" 며칠 동안 노가다 작업을 하여 수십개의 장신구들에게 마법을 새겼으나 현민이 원하는 정도의 물건은 세 개밖에 만들어 지지 않았다. 그 세 개도 현민이 각오를 하고, 몇 시간을 투자하여 겨우 만든 그런 작품 중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최고의 장비였다. "정보." 마나 반지 설명 :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반지. 정신력을 높여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3000 (1분에 1의 마나 소모.) 제작자 : 룬. 치유의 반지 설명 : 드워프들이 미스릴로 만든 아름다운 반지. 생명력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분당 50의 생명력 회복. (1분에 5의 마나 소모.) 제작자 : 룬. 회복의 반지 설명 : 어린 드워프가 만든 시험용 장신구. 정신력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분당 100의 정신력 회복. (1분에 20의 생명력 소모.) 제작자 : 룬. 현민에게 맞추어 만들어진 만큼 그가 만든 세 개의 성공적인 장신구는 최강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대단한 마법물품이었다. 그 증거로 그가 만든 세 개의 반지에는 겉에서부터 안쪽까지 마법진이 그려지지 않은 곳이 없었고, 자세히 바라보면 여러개의 마법진이 일정한 순서로 겹쳐져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가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상태창." ------------- 이름 : 룬. Lv : 38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102(18) 정신 : 184(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0 방어력 : 52 생명력 : 192 정신력 : 5230(+3000) 물 속성 친화력 : 156 불 속성 친화력 : 1 땅 속성 친화력 : 1 바람 속성 친화력 : 1 정령력 : 1 물 Lv 1 보너스 스텟 : 75 -------------- 완성된 세 개의 반지 중 두개는 오른손 약지에, 그리고 하나는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에 낀 현민의 능력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으나 대단했다. 각인마법이 2000의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가 몇 시간을 투자하여 하나의 물건에 마법진을 그리면 그전에 사용했던 정신력은 이미 회복되어 완전히 차있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의 정신력을 3천이나 올려주는 아이템도 있으니 이제는 한번이 아니라 두 번도 연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단 이곳 좀 정리하고, 다시 해야지." 이제는 염력마법을 간단히 사용하는 현민은 한차례 시험했던 장신구들을 자루에 담아 방의 밖으로 나갔다. "오빠~~!!" 덮석! 거대한 장신구를 들고 있는 상황에서 묘가 있는 힘껏 달려와, 한순간 휘청하긴 했지만 다행이 넘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텅!텅! "으쌰! 우리 묘 그동안 잘 놀았어?" "응! 헤헤.... 나 정령석도 쪼금만 먹었다!" 자랑하듯 말하는 묘를 다시한번 안아준 현민은 묘의 몸집이 예전과 같이 한품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윽!" 현민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고, 그곳에는 저번보다 더욱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큐와 그런 큐를 가려주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린의 모습이 있었다. "린...." "으응...." "내가 정령석 금.지.라고 하지 않았어?" 주륵, 주륵. 린과 큐의 머리에?땀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그들 둘은 현민과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귀여운 큐가 먹고 싶다는데 어떻게 안 줄 수가 있어?!" "뀨~~." 크게 소리친 린과 큐는 서로 포옹했고, 현민은 그들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아.... 큐, 너 그러다 날지도 못한다. 그리고 린, 큐가 성인병(?) 걸려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쿵!쿵! 정령한테도 성인병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민의 말을 들은 한명의 마녀와 한명의 정령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는지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오빠, 언니랑 쟤 왜 저래?" "앞날을 상상하며 충격받은거란다. 우리 묘는 저러면 안돼, 알았지?" "응!" -------------------------------------------------------------------------------- 린과 큐를 침몰(?)시킨 현민은 한품에는 묘를 안고, 한손으로는 자루를 끌며 마을의 촌장인 로벨의 집을 찾아갔다. "로벨~." "들어와."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순간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내딛고 있는 발을 멈춰버렸다. "컹! 컹! 깨갱!!" 박박박. "무슨 일이야?" 붉은색의 아름다운 털을 자랑하던 피피의 털이 파마를 한 듯 복슬복슬하게 말려 있었고, 목에는 귀여운 개목걸이(?)를 차고 있었으며, 노란색의 원피스를 입은 채, 꼬리와 귀 부분에는 커다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게다가 현민과 묘를 보고 도망을 치려했으나 로벨에게 꼬리를 잡혀 탈출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녀들에게 장신구 좀 싸게 팔려고요." "흐음~? 예쁜거야?" 마녀도 여자라는 것을 강조하듯 로벨이 반짝이는 눈으로 처다보았고, 현민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대답해줬다. "뭐, 일단은 드워프들이 만든 것이니까요. 헉!" 쌩!! 반짝반짝! 현민의 말을 들은 로벨이 피피의 꼬리를 놓아버렸고, 피피는 그 틈을 타 집안의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그리고 현민에게는 운이없지만 피피를 괴롭히며 놀고 있던 로벨의 눈이 현민을 향해 돌아가버렸다. "가격은?" "최저." "물건은?" "상." "거래 성립." 그녀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옷을 정리하고 모자를 쓴 뒤, 한손에는 빗자루를 들었다. "피피!" "컹!" 어디론가 도망갔던 피피가 모습을 바로한 채 그녀의 옆에 섰고, 그녀의 모습은 순식간에 마녀로 변해있었다. "따라와." 그녀는 현민을 이끌고, 마을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녀를 따라온 현민이 자루를 가운데에 놓았고, 그녀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녀의 마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보는 로벨의 마법진은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샤라락, 스륵. 붉은색의 선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고, 머릿카락이 하늘거리며 그녀의 몸을 따라 춤을 추었다. 그녀의 옆에 서있던 피피는 조용히 움직이며 그녀를 따랐고, 그녀의 마법진도 점점 더 완성되어 갔다. "후우....." 아무런 주문이 없이 마법진만 그린 로벨이었으나 그녀의 마법진은 주문이 없어도 발동되어 그녀가 그린 마법진의 지면을 바꾸어버렸다. 슥, 스슥. 샤라락. "떠올라라, 위치하라. 서로에게 맞는 모습을 찾아 그대들과 어울리는 것을 찾아, 그대들이 있어야 할 곳에 모여 존재하라!" 퍽!팟! 마법진을 그린 그녀가 빗자루의 끝으로 땅을 내리찍었고, 그녀의 빗자루에서 나온 두 줄기의 빛이 퍼지며, 자루 속에 있던 장신구들이 하나둘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멋지다." "어때? 예쁘지 않니?" 땅에서 솟아오른 바위들 위에 보석들이 서로 어울리는 짝을 맞춰 정리되기 시작했다. 어떤 것들은 세트를 이루었고, 어떠한 것들은 몇몇 개씩 짝을 지어 놓여져 있었다. "이런 마법진도 있었다니 신기한데요?" "뭐, 이래서 마녀가 강한거지." 그녀가 모든 장식구들을 전시해 놓자, 소란스러움 때문인지 바깥으로 거의 나오지 않는 마녀들이 정령을 옆에 끼고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드워프제 장신구 루나가 판매중이니깐 적당히 몇 개 집어가고, 루나한테 물건값 확실히 지불해라, 알겠지?" "예~~!!!!" 평소 꾸미는 것과 거리가 먼 마녀들이었으나 눈앞에 있는 장신구까지 외면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현재 나와있는 장신구 전부가 현민이 인첸트 실험을 하며 만든 것이니 제각각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로벨님, 제 대신해서 물건들 좀 받아주세요. 저번에 주문한 것 좀 찾아와야 하거든요." "나한테 떨어지는 건 없어? 공짜로는 안돼는데..."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에게 현민은 드워프에게 따로 장신구를 구해다 준다는 약속을 했다. 손이 큰(?) 드워프들이 장신구를 안 줄리 없으니 자신에게는 싸게 먹히는 것이었다. "다녀와~."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날아오른 현민은 저번에 주문해 놓았던 물건을 찾으러 갔다. "아저씨!!" 탁! 현민의 품에 안겨있던 묘가 먼저 땅으로 내려섰고, 뒤이어 내려온 현민이 드워프들을 불렀다. 그리고 현민이 오늘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듯이 처음에 만난 촌장할아버지가 거대한 물건을 천으로 감싸고 현민에게 다가왔다. "자네가 주문한데로 만들긴 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하지만 우리 드워프들 전부가 달려들어 만들었으니 다른 무기들에 비해 나쁘지는 않을거야." 촌장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천을 풀은 현민은 너무나 아름답고 날카로워 보이는 한 자루의 낫을 볼 수 있었다. "멋지네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낫은 날카로움을 보여주었고, 2m정도 되어보이는 자루는 S자의 곡선을 만들어 무기를 신비하게 보이도록 해주었다. 낫과 자루가 이어지는 부분에는 현민 특유의 장미로 장식된 역십자가 모양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정보." 마녀의 지팡이(?) 설명 : 마녀 루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지팡이. 드워프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져 특히 강한 공격력과 내구력을 가지고 있다. 공격력 : 850 -920 내구력 : 1500 조건 : 마녀 루나만 사용 가능. 거래 불가. 현재 최상급이라고 나와있는 무기들의 공격력이 500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현재 현민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아직 나와서는 안돼는 사기급 아이템이었다. "정말, 최강의 무기에요.... 너무 과분한것 같은데." "하하하, 걱정말게. 순수한 불꽃을 얻은 우리들이 자네를 위해 시험삼아 만들어 본 무기일 뿐이니 부담같지 않아도 될거야." 촌장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고, 현민과 묘를 보기위해 나와있던 몇몇 드워프들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보다, 내 마녀들이 빗자루 타고 다닌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낫을 타고 다닌다는 것은 처음 들었다네, 허허허." "하하, 마녀도 무기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충분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현민이란 마녀가 워낙에 독특하고 생각을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드워프들은 모두가 웃어주었다. -------------------------------------------------------------------------------- "그보다 자네가 원했던 가면도 이제야 만들었다네. 신경써서 만드는 것이라 약간 오래걸렸군." "아니에요, 제가 너무 많은 부탁을 드렸는걸요...." 너무나 많은 것을 주고도 더 이상 못주어서 미안해하는 드워프 때문에 난감한 것은 현민이었다. 자신이 만들어준 것이 대단한 것도 아니기에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드워프들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이 생겨났다. '언제한번 드워프들을 위한 물건을 만들어야겠어...' 은원에 관해서는 확실히 선을 그어놓고 사는 현민인지라 자신이 받은만큼 돌려주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손에는 마녀의 지팡이(...이하 낫)을 들고, 한손에는 가면을 든 현민은 드워프들이 만들어준 가면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가 들고 있는 가면은 자신이 그림으로 그린 것보다 더욱 훌륭하게 만들어져 마녀의 익살스러운 초승달모양의 눈과 길게 튀어나온 코, 그리고 방정맞게 웃고있는 입과 통통히 올라온 볼살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었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피에로의 가면과 맞먹을 정도로 익살스러워 보여 마음에 드는 가면이었다. "그보다 시험비행 한번 해보지 않아도 되는건가?" 새롭게 받은 마녀의 낫을 들기만 하고 있을 뿐, 단 한번도 타보지 않자 약간은 걱정이 된 드워프들이 현민에게 말을 걸었고, 현민도 자신이 빗자루가 아닌 낫을 탈 수 있을지 시험해 보기로 생각했다. 툭. S자 중간부분의 평형한 부분에 엉덩이를 걸쳐 앉은 현민은 조심스럽게 빗자루를 탄다는 느낌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뿐... 다행이 현민의 생각이 맞았는지 마녀의 낫이 성공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묘를 비롯한 많은 드워프들이 아름답게(?)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는 현민을 보며 환호했다. "하하하, 자네라면 우리들의 물건을 더욱 빛낼 수 있을 것이라 믿네." "이렇게 좋은 물건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이 받은 선물에 다시한번 인사를 받은 현민은 드워프들에게 줄 선물을 빨리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폐만 끼치고 가네요. 묘, 가자." "우리에게 폐랄게 뭐 있나? 놀다 가면 그만인데. 그보다 다음에 또 놀러오게." "네, 반드시 올게요." 의도하지 않게 또 하나의 인연을 만든 현민은 가상현실에서의 경험이지만 자신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인연을 잘 만들지 않는 현민에게는 가상현실이라지만 하나하나의 인연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착! "묘, 오빠 예뻐?" "꺄하하, 오빠 웃겨." 익살스러운 마녀의 가면이 웃겨서인지 현민의 품안에 안겨있는 묘는 현민의 얼굴을 보고는 귀여운 웃음을 터트렸다.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달님을 보며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현민의 얼굴은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가면 속에서 이지만. "형?" "왜?" "아, 아니...." 이제 개학을 10일도 안 남겨놓은 상황에서 현민은 잠시동안 게임을 접속하지 않고,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3개월 동안 방에만 박혀 있었고, 식사도 하루에 두 끼밖에 먹지 않아서 평소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던 현민의 동생은 너무나 달라져 있는 형의 모습을 한순간 알아보지 못했는지 놀란듯한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많....이 바뀌었네." "응." 형제의 대화라 하기엔 많이 어색했지만 그들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나버렸다. "이제 복수다." 세 자루의 장신구 중에서 한 자루를 마녀의 마을에 팔고 남은 두 자루를 따로 챙겨놓고 있었던 현민은 모든 준비를 끝나치고 마지막을 점검하고 있었다. 하늘도 자신을 도와주는지 「싸울아비」의 운영자들이 개학을 맞이하여 새로운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의지가 되어있는 현민이었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38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물론이지, 크크크." 「싸울아비」속으로 들어간 현민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마녀의 마을에 있는 한명의 마녀가 되어 있었다. "네들이 나를 사냥하러 했다하지만, 그 정도의 얕은 공격으로는 나를 화나게만 할 뿐이야."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핀 현민이 품에서 가면을 꺼내 쓰고, 마녀의 모자를 썼다. "변화." 현민이 쓰고 있는 가면에서 약간의 빛이 흘러나왔고, 현민의 짧은 머리가 순식간에 허리까지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아." 더욱이 변화는 머리카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목소리에도 있었는지 그의 목에서는 이전의 남자답고 굵은 목소리가 아닌, 가늘고 매력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씨익! 딸랑, 챙! 현민이 손을 흔들릴 때마다 그의 팔찌와 발찌들이 각각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고, 현민은 익숙한 소리를 들으며 오른손을 들어 귀를 살짝 어루만졌다. 샤르릉.... 엄청난 아픔(?)까지 참아가며 귀걸이를 한 현민은 그때의 고통을 생각하며 운영자들에게의 복수를 향해 분노를 불태웠다. "이제는 가야겠지? 소환, 묘." 언제나 처럼 허공에서 생겨난 묘가 현민의 품에 안겨들었고, 그의 품속이 좋은지 얼굴을 비비며, 들어갔다. "이번 일만 끝나면 다른 정령들과도 계약할테니 심심해도 조금만 참아, 알았지?" "응." 묘를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준비한 현민이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고, 그곳에는 린이 '도구'들을 대기시키고 있었다. "저번에 받은것 중에 무한의 주머니가 있어서 하나 꺼내 썼어. 사용법은 알지?" "응." "조심해서 다녀와." "응." 씽긋. 무한의 주머니를 받아든 현민은 자신을 걱정하는 린에게 가볍게 웃어주면서 마녀의 낫을 타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돈 많이 벌어오고, 올 때 마녀들 선물 사오는 것 잊지 마~~~!!!!" 허공을 날아가고 있던 현민의 신형이 갑자기 떨어져 내렸으나 다행이 지팡이에 매달렸는지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숲을 벗어난 현민이 향하는 곳은 예전 현민이 마지막으로 들렸던 마을이었다. "여긴 여전하네." 빗자루 타기라는 특수한 스킬이 있는 현민이었기에 걸어서 20일이 걸리는 거리를 단 하루만에 돌파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 그는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워프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어서.....오세요. 어디로 가실건가요?" "수도 아스틸란으로요." "네 35골드입니다." 여전히 비싼 가격을 받고 있는 곳이었으나, 마녀들에게 장신구를 팔아 약간의 돈이 있는 현민으로는 부담되지는 않는 금액이었다. "즐거운 여행되세요." "그대도 행복한 삶을 사시길...." 거대한 낫을 들고, 이상한 가면을 쓰고, 이상한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는 현민이었기에 워프게이트의 안내인은 현민에게서 단 한차례의 시선도 때지 않으며 그를 보내주었다. 물론, 이런 반응이 그녀에게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 「싸울아비」내에서는 이벤트 중이기에 거의 모든 유저들은 수도에 모여있는 상황이었다. -------------------------------------------------------------------------------- 현민이 오랜만에 도착한 수도 아스틸란은 이벤트 때문인지 저번의 토너먼트 때보다 훨씬 많은 유저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유저들 사이에서도 독특한 의상과 모습 때문인지 현민의 모습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중이었다. "어디보자, 내가 말한 장소가 이 근처쯤이었나?" 모든 사람이 시끌벅적하게 돌아다니는 가운데 대놓고 하늘로 날아오른 현민은 마법진을 이용하여 허공에 거대한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속성친화력을 올려주는 정령석 팝니다. 운영자가 허공에 글자를 넣는다 생각하던 유저들의 눈이 일제히 반짝거리기 시작했고, 안그래도 시끄럽던 시장바닥이 더욱 어지러워지면서, 몇몇 사람이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떴다! 저 사람이 아마 광고한 그 유저인가봐!!!" "설마, 정말로 말도 안돼는 아이템을 판다는 건가?!!!" 수도 아스틸란에 오기 몇 일전 현민은 「싸울아비」관련 홈페이지들을 전부 돌아다니며 오늘 날짜 이 시간쯤에 몇몇 물건들을 판다며 이리저리 광고를 해놓았었다. 물론, 현민의 광고에 몇몇 유저들은 말도 되지 않는 아이템을 판다며 사기로 몰아쳤지만 그 속에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지며, 구경을 하러 모인 유저들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아아,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잠시 뒤, 어마어마한 인원들이 현민이 날고있는 하늘을 중심으로하여 모여들었고, 수도의 넓은 광장이 꽉찬것도 모자라서 몇몇은 허공과 옥상에서 현민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광장에 현민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일제히 조용해졌고, 현민은 분위기가 만들어진 상황에서 경매를 시작했다. "오늘 제가 팔 물건들은 오로지 저만 만들 수 있는 물건들입니다. 누군가가 연구를 해서 만든다면 모르지만 아마도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군요." 현민의 오만한 말에 여러 유저들이 분노했으나 현민은 그런 그들을 전부 무시해버렸다. "정령석은 설명했던 것 그대로 속성 친화력을 올려주는 것입니다. 「싸울아비」를 좋아하시고 많은 정보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속성 친화력이 1만 있어도 정령과의 계약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계실거에요." 현민의 말에 몇몇 유저들이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너무나 넓은 범위에 현민의 목소리는 골고루 퍼지고 있는 중이었다. "제가 현재 팔려고 하는 정령석은 물, 불, 바람, 땅의 4가지 기본 정령석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특수한 정령석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것들은 저에게도 몇 개 없는 특수한 것이니 가격으로 맺을 수는 없지요." "사려는 생각은 하지 않을테니 어떤 것인지만 알려주실 순 없습니까?" 수많은 사람들 중에 목소리 큰 사람이 있었는지 어딘지 모르게 울려퍼지는 소리는 현민의 귀에 까지 들려왔다. 씨익... 자신의 예상대로 반응하는 유저들을 보며 현민은 가면속으로 짙은 미소를 지었다. "나무, 번개, 어둠, 빛, 생명, 치유, 죽음 등이 있는데 현재 기억나는 것은 7개밖에 없네요." 정말 운이 좋은 사람만 걸린다는 정령사란 직업들이 전부 기본정령인 상황에서, 현민이 말한 7가지의 정령들은 말도 안돼는 동시에 「싸울아비」내에서 최강이라는 이름을 가져다 줄 엄청난 물건들이었다. "일반 정령석은 몇 개나 파시죠?" 웅성거리는 관중들 사이로 누군가의 커다란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현민은 누군가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각 속성별로 5개씩 현재 20개를 판매할 예정입니다. 가격은 모든 정령석을 동일하게 하여 최대로 불린 가격에 팔 생각입니다. 물론, 같은 속성을 사가시려는 분이 계시면 그분들은 따로 경매를 해야겠지만요." 거만하게 느껴지는 현민의 말이었으나 그의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것과 그만이 유일하게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유저들은 반발을 할 수가 없었다. 우웅..... "어? 뭐지?" 모두가 현민의 물건을 사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들은 허공에 생겨나는 마법진과 공기를 울리는 듯한 소리를 듣고, 고개를 하늘로 돌렸다. "드디어 나왔나?" 현민 역시 허공에 그려지고 있는 마법진을 본 후, 빠르게 양손을 움직이며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헉! 운영자다!!!" NPC의 운영자들은 순식간에 나타나지만 신계를 들렸다가 와야만 하는 현실의 운영자들은 나타날 때마다 기묘한 소리를 내는 마법진을 타고 등장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사실인지 어떤 유저가 알아보고는 허공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팟! "안녕..." "봉인!" "컥!" "헉!" "세, 세상에!!!" 마법진이 완성되고 허공에서 생겨난 운영자가 인사를 하는 순간 현민의 마법이 운영자를 향했고, 운영자는 허공에서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어 버렸다. 이러한 것을 지켜보고 있던 유저들은 운영자를 잡아(?)버리는 현민의 행동과 실력에 경악어린 소리를 내뱉었다. "흐음~. 안녕하세요? 아참, 봉인을 당해서 말을 못 하시는구나...." 정말로 안쓰럽다는 듯이 말하는 현민의 태도에 허공에서 봉인당한 운영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바둥거리지 마요. 어차피 안 풀어 줄 생각이니깐." 우웅.... 현민이 운영자를 대리고 장난치고 있을 때, 또 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며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현민의 손 역시 다시한번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봉인~." 두 번째로 나타난 운영자는 마법진이 익숙하지 않은지 어정쩡한 상태에서 현민에게 봉인을 당해 상당히 추한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명의 운영자들이 단 한명의 유저에게 잡혀버리자, 운영자들의 얼굴은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고, 유저들의 웅성거림은 좀전보다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자~, 손님도 오셨으니 경매를 시작할까요? 최소 가격은 1골드입니다." "100골드!" "200골드!" "300!!" ..... 현민이 경매를 시작하는 순간, 현민이 운영자들을 잡은 방법이 정령때문이라고 생각한 유저들은 어마어마한 가격을 부르며 현민의 정령석을 사려고 노력했다. "11강(1100골드)!!" 1골드가 만원에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 11강은 천백만원을 의미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거래는 끝나지 않고 있었다. "50강!!!" "헉!!!" "세, 세상에!!" 계속 올라가기 시작한 정령석의 가격이 개당 5천만원을 가르키기 시작했고, 너무나 거대한 돈을 만지기 시작한 현민의 얼굴에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 때문인지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 다행히 50강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높은가격은 나오지 않았으나 현민은 자신이 벌어드리는 돈에 대해서 작은 두려움이 생겨났다. 현재 하나의 가격이 5천만원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20개의 정령석이 모두 팔릴 경우 그의 손에 들어오는 돈은 10억이었다. "어떤 속성으로 몇 개를 사실거죠?" "각각의 속성을 하나씩 사겠소." 마지막 가격을 내뱉은 사람은 어떤 숙녀의 뒤에서 중세시대 기사의 갑옷을 입은 채, 지키고 서있는 신사분이었다. "현재 4개가 팔리고, 16개가 남아있네요. 여기서 마지막 가격을 부른 저분에게 먼저 거래를 한 후, 정령석을 계속 팔도록 하겠습니다." 허공에 두 명의 운영자를 남겨놓은 채, 땅으로 내려온 현민은 아가씨와 기사의 앞으로 다가갔다. "거래하시겠습니까?" "예." 아가씨와 현민의 사이에 하나의 공간이 생겼고, 현민은 그곳에 각각의 속성이 담겨진 4개의 정령석을 올려두었다. 반대쪽에 있는 아가씨역시 돈으로 추정되는 자루를 자신의 앞에 올려놓고 기다렸다. "확인해 보세요." 현민의 말에 돈주머니를 올려놓았던 아가씨가 정령석의 하나하나에 손을 올려보기 시작했고, 4개의 속성석을 전부 확인한 뒤에는 밝은 얼굴로 웃었다. 그녀가 그렇게 웃고 있는 동안에 현민은 반대쪽에서 열심히 동그라미를 세고 있는 중이었다. "확인했습니다." "확인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확인했다는 말이 나온 후, 그들의 인벤토리에는 서로의 물건이 교환되어 있었다. -------------------------------------------------------------------------------- 그들의 입에서 확인했다는 말이 나온 후, 그들의 인벤토리에는 서로의 물건이 교환되어 있었다.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상태창." 허공에서 손을 흔들던 그녀가 정령석을 사용하듯 네 번의 사용을 말했고, 그녀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 꼼꼼히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시나 하지만 확실한 서비스를 위해 가르쳐 드리죠. 정령과의 계약을 위해서는 허공에 오망성을 그리면서 '나 그대와 계약하고 싶다.'라고 말하면 된답니다." 슥!슥!슥!슥!슥! "나 그대와 계약.." 현민의 말에 바로 오망성을 그리고 계약하려는 그녀를, 현민이 제지했다. "정령이란 존재는 제각각이기에 정령과의 계약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더욱이 정령이란 존재가 장난이 많기 때문에 치마를 입고 들어가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는 곳이죠. 후훗." 현민의 미소를 바라본 그녀가 뒤에 서있는 기사를 바라보았고, 기사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가씨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 그럼, 한분은 팔았고, 나머지 정령석을 계속 팔아볼까요?" 신나는 목소리로 말을 한 현민이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두 번째로 정령석을 구입할 사람을 구했다. "50강에 정령석을 사실분 없으신가요?" "나도 각각의 속성을 하나씩 사지!" "네~, 낙찰!" 커다란 돈을 만지기에 연신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현민은 밝은 목소리를 만들며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속였다. "지금 하는 장사를 당장 멈추세요!!!!" "응?" 현민의 근처에서 등장할 경우 현민의 마법에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운영자가 이번에는 멀리서 등장하여 날아오고 있었다. 더욱이 여자가 여자(?)를 더욱 잘 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번에 등장하는 운영자는 어여쁜 여성 운영자였다. "쿡쿡쿡, 내 곁에 존재하는 무한한 힘을 빌려 이곳에 모든 것을 막아내는 진실한 방어를........ 절대방어." "당장 멈추, 꺄악!!" "으아악!!!" "헉!!" 쿵! 허공을 날아오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자신을 감싸는 실드를 보고 커다란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여자의 감은 언제나 적중(?)하듯이 그녀를 감싼 실드는 빠른 속도로 땅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봉인." 너무나 무거운 실드에 의해, 강하게 떨어진 그녀가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이미 마법을 완성한 현민이 다른 운영자들과는 다르게 그녀의 몸에만 봉인을 걸었다. "자~, 이제 12개 남았네요." 또 한명의 남자에게 4개의 정령석이 팔려나가고, 현민의 수중에 있는 정령석의 숫자는 12개로 줄어들었다. "난 운영자에요! 당장에 풀어요!! 이봐요, 내말 안들려요!!!" 탁! 스윽!! "죽여드릴까요?" 땅으로 내려선 현민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운영자의 앞으로 다가가 거대한 낫의 안쪽으로 그녀의 목을 감싸 살짝 힘을 주었다. 드워프들이 만들어준 이유 탓에 어마어마한 공격력과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는 현민의 지팡이(지팡이다...::)는 그녀의 목에 살짝 닿았을 뿐이지만 이미 살을 갈라놓았는지 미약한 피를 흘러내리게 하고 있었다. "히끅!!" 한명의 유저에게 벌써 세 명의 운영자들이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민을 말리기 위해 나서는 존재는 단 한명도 없었다. "자! 이제 12개 남았군요." "나머지는 내가 전부 사지." "헉! 데스나이트다!!" "데스나이트 길드!!!" "와~ 멋져!!" 50명은 되어 보이는 듯한 유저들이 검은색의 멋들어진 갑옷을 입고 거대한 검을 옆에 찬 채, 현민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600강은 있으세요?" 아무리 길드라지만 하나의 단체가 사기에도 600강은 너무나 거대한 돈이었다. 600강을 돈으로 바꾸면 6억이라는 가격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돈은 충분히 있다. 그보다 운영자들을 풀어주지 않겠나?" "흐응~~. 실력 것 해보세요. 아무짓도 안할 테니." 여직껏 오만하게 행동했던 현민이 할만한 소리는 아니지만, 그는 자신에게 오만한 소리를 내뱉는 흑기사가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록 사냥을 다니지 않아 데스나이트 길드가 어떤 존재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유명세가 거만함을 낳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였다. 챙! "참(斬)!" 후우웅!! 멋있게 칼을 꺼내고 화려한 스킬을 써서 칼을 휘둘렀으나 결과는 허무였다. "꺄르르르." "깔깔깔깔..." 현민의 품에 있던 묘도 그의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어느사이에 나와서 웃고 있었고, 현민도 그런 묘와 같이 재미난 것을 구경한 듯이 크게 웃고 있었다. "흠!!" "일단, 거래 먼저 하시죠? 거래를 하고 상황이 정리되면 저들을 풀어줄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붉어진 얼굴에 말하는 현민 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더욱 붉어져 있었다. "조, 좋다, 일단 거래하지." 12개의 정령석이 모두 올라가고, 현민은 한번에 600강이라는 거금을 받아들였다. 이것으로 현민의 첫 번째 목표인 정령석이 전부 팔려버렸다. 하지만 현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능력2." 현민이 쓰고 있던 가면에서 다시한번 빛이 뿜어져 나왔고, 현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여성 운영자에게 다가갔다. "뭐, 뭐죠? 가, 가까이 오지 말고 거기서 얘기하세요!!" 무언가 위기를 느낀 듯,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현민을 제지하며 소리쳤지만 현민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고, 주위에서도 현민의 강함과 어마어마한 재력(10억) 때문에 가까지 다가가지를 않았다. 속닥속닥... "꺄아아악!!!! 벼, 변태!! 꺄악!! 보지마!!!!!!"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현민이 그녀의 귀에 대고 무엇인가를 얘기했고, 그의 얘기를 들은 운영자의 얼굴이 빨갛게 변한다 싶더니 현민의 눈길이 자신을 향할 때마다 발작을 하듯이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소리쳤다. "푸훗." 고개를 돌린 현민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을 때, 그의 뒤에 봉인당한 여성 운영자는 현민을 죽이고 싶어 미치는 마음이었다. '위에는 그렇다 치지만, 곰돌이가 그려진 속옷을 입고 다니시다니.... 취향 독특하시네요.' 현민이 가면에 새긴 '능력2'라는 것은 물체의 옷이나 능력을 꿰뚫어보는 투시능력이었다. 물론, 이 능력의 본 목적은 적의 아이템이나 상태창을 훔쳐보는 것이었으나 그러한 대단한 능력이 아닌 변태같은 능력이 나온 황당한 경우였다. "오늘은 장난만 치고 물러나지만 앞으로 다시한번 나를 건들면 어떻게 나올지 몰라요." "응?" 현민의 말에 의아한 얼굴을 한 유저들과 운영자들이 일제히 쳐다보았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내가 누구인지?" 현민은 자신을 못 알아보는 운영자들을 보며,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밸런스를 맞춘다는 이유로 자신의 마법을 약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 존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체인지." 딸랑~. 현민의 얼굴에 쓰여져 있던 마녀의 가면이 피에로의 가면으로 바뀌었고, 그의 머리에 쓰여있던 마녀의 모자가 양갈래로 갈라진 모자로 바뀌어 있었다. "아!!!" "설마!!" 익숙하게 울려 퍼지는 방울소리를 들은 운영자와 유저들은 작년 여름에 있었던 토너먼트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 설마!!" "맞아요, 작년에는 아마 '어릿광대'라는 이름으로 찾아뵙던 것 같군요." 현민의 목소리는 아름다운 미성이 아니라 그의 본래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장난스러움은 그의 목소리가 바뀌어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아~. 저는 슬퍼요. 그렇게 심한 패치를 하고도 저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우웅~. 나도 슬퍼요." 현민의 말을 묘가 귀엽게 따라했으나 무거운 분위기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뭐, 오늘은 장난삼아 나온 것이니 크게 긴장하지 마세요. 물론, 장난속에는 저를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한 복수라는 이름도 담겨있지만 말이에요." 현민의 모습이 지금과 같았다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싸울아비와 그밖에 몇몇 직업들을 '주'로 한 「싸울아비」내에서 '부'의 하나인 마법사가 자신들조차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많은 유저들을 상대할 때, 그들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맛보고 있었었다. 그러한 맛(?)을 기억하고 있는 그녀가 현민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은 순전히 현민의 모습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뭐, 장사도 끝냈으니 오늘은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에요." "우, 우리는?" "당연히 풀어드려야죠." 싱긋! 다시 마녀의 가면으로 바꾼 현민이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손가락을 튕기자 그들을 감싸고 있던 마법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이익!! 내가 짤리는 한이 있어도 너만은 삭제시킨다!!!" "아참, 여러분의 모습은 이미 저장해 놨으니 매장당하기 싫으시다면 얌전히 계세요." 현민의 말에 밑에서 올라오던 여성운영자는 움직임을 멈추었으나 허공에서 날아오던 두명의 운영자는 현민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듯 계속해서 거친 공격을 일삼았다. 하지만 이미 현민은 자신의 감싸는 마법을 이미 만들어놓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안돼!!" 그나마 상황을 파악한 여성운영자가 두 명의 운영자에게 무언가를 말했고, 그녀의 말을 들은 운영자들의 얼굴이 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했습니다, 그럼 이만." 다급히 현민에게 인사를 건낸 세명의 운영자들이 도망치듯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고, 혼자남은 현민은 수많은 유저들의 환호를 받으며 허공을 날아다녔다. "푸훗, 이걸로 화는 풀어주지. 크크큭" 엉뚱한 마법으로 좋은 구경(?)을 한 탓인지 기분이 좋은 현민과 그를 따라 같이 기분이 좋은 묘였다. 엉뚱한 마법으로 좋은 구경(?)을 한 탓인지 기분이 좋은 현민과 그를 따라 같이 기분이 좋은 묘였다. "놀러갈까?" "응!! 나, 구경하고 싶어." 허공을 날아다니던 현민은 사람들이 없는 어두운 곳으로 내려와 장비를 해체하고 초보용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저번에 상의를 하피에게 주었기 때문인지 그의 인벤토리에는 상의란 것이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미치겠네." "오빠 미쳐?" 너무나 순진하고 귀여운 묘 때문에 제대로 화도 못내는 현민은 웃통을 벗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매끈.... 어마어마한 근육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기 좋을 정도로 말라있는 그의 몸은 벗고 다니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더욱이 무투가란 직업들 대부분이 상의를 벗고 다니기 때문에 거리에서 그의 모습은 어찌보면 평범한 것에 속했다. "가자." 팔찌와, 발찌, 귀걸이, 목걸이, 반지를 전부 인벤토리에 넣어버린 현민은 꾀나 초라한 모습으로 묘를 안은 채 했빛이 비치고 있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앞에 옷을 벗고 돌아다닌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부끄러운 현민이었으나, 현민과는 반대로 현민의 부드럽고 따뜻한 맨살이 마냥 좋기만 한 묘였다. "무기 사세요~!! 튼튼한 무기를 저렴하게 팝니다!!" "예쁜 악세사리 사세요~!!" 웅성웅성 수도 아스틸란은 축제의 분위기로 소란스러웠고, 군데군데 들리는 소리는 조금전까지 마녀였던 현민의 이야기뿐이었다. "어디보자.... 일단 얼굴먼저 가려야겠지."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현민은 갑옷을 파는 커다란 상점을 찾을 수 있었다. 워낙에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수도여서 그런지 이런저런 상점이 죄다 모여있었다. "어서오세요~. 무엇을 찾으시죠?" 수많은 종류의 장식된 갑옷을 구경하던 현민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판매원을 볼 수 있었다. "초보 어쌔신용 장비를 사려고 왔습니다. 레벨1도 착용이 가능하고, 직업이 없어도 착용가능한 그런 종류의 장비를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얼굴을 가리고 다닐 두건도 있으면 좋습니다." 현민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뒤에 보이는 통로로 들어갔고, 잠시 뒤에 하나의 상자를 들고 나왔다. "휴~. 잘 안 팔리는 물건이라 들여놨었는데, 다행이네요." 쓰레기로 전략할 뻔한 옷이 현민에게로 팔려나가는 것이 기쁜것인지 그녀는 좀 전보다 더욱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어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초반에 쓸모있다는 점에서 이 장비를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얼마죠?" "2실버 40원입니다." 초반용 장비치고는 약간 비싼 가격이었으나 어차피 이제는 남아나는 것이 돈인 현민이기에 그는 돈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전혀 뜻하지 않은 물건으로 돈을 벌었다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좋은 그녀는 환한 열굴로 가게를 나가는 현민을 배웅해 주었다. "착용." 장갑, 신발, 하의, 상의 얼굴을 완전히 감싸는 두건까지 모든 것이 전부 검은색인 장비를 입은 현민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자료를 더듬으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묘, 잠시만 정령계에 돌아갈래? 오빠가 일 끝나는대로 부를게. 알았지?" "으응....." 현민의 품에 안겨서 곤히 잠을 자고 있던 묘는 잠결에 대답을 하며 정령계로 돌아가 버렸다. 품안에 있던 묘가 사라지고, 좀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 현민은 천천히 입구로 다가갔다. "판매입니까? 구입입니까?" "판매." 낮게 깔린 목소리가 현민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현민의 대답을 들은 경기병은 그의 목소리와 차림새에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안쪽을 들여다 보았다. "오른쪽으로 가십시오." 저벅저벅. 현민은 경비병의 안내에 따라 오른쪽의 통로로 들어가버렸다. 통로의 끝에는 한명의 노인이 졸고 있었는데, 현민은 잠시동안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았다. "하암~. 왔으면 깨워야지 왜 보고있나?" "...." "참, 답답하게 생긴 친구구먼, 무엇을 팔러 왔나?" 노인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현민은 품에서 두자루의 장신구를 꺼내 노인의 앞에 올려놓았다. "전부, 옵션(능력)이 있는 장신구들." 흠칫! 노인은 너무나 차가운 말에 한번 놀라고, 두 개의 커다란 자루가 전부 아티펙트란 말에 두 번째이나 놀라버렸다. 꿀꺽! "저, 정말로 전부 아티펙트인가?!" 끄덕. 현민의 고갯짓이 건방지련도 하건만 노인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자루안에 담겨있는 장신구들만 감정하고 있었다. "전부다 최상은 아니지만 확실히 훌륭한 물건들이 많군. 물건은 현금인가? 게임머니인가?" 노인이 하고 있는 말은 현민이 조사한 것과 단 한치의 거짓 없이 들어맞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말하고 있는 노인이 유저들이 게임을 즐기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일종의 npc운영자라는 것이었다. "현금, XX은행 XXX-XXXXX-XXX-XXXXXX" "알았네, 팔리는 즉시 자네의 계좌에 넣어주지. 하지만 10%는 중개료로 우리가 갇는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네. 나중에 딴소리하면 우리로서는 정말 죽.여.버리고 싶거든." 약간의 협박이 들어가 있는 말이었으나 현민은 그의 말을 들은채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버렸다. "잠깐, 그보다 룬이라는 존재는 누구인가? 여기 보니 이 아이템들 전부가 룬이라는 존재가 만든 것인 것 같던데...." "비밀."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정령석에 비해 가벼운 마음으로 건내버린 장신구들이었으나 이것들은 나중에 현민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주는 물건들이었다. -------------------------------------------------------------------------------- "으윽!" 「싸울아비」내에 커다란 바람을 만든 현민은 현실로 돌아와 굳어있는 몸을 잠시 움직여줬다. 우드득! 우득! "휴우...." 한차례의 스트레칭으로 굳은 몸을 풀어준 현민은 오랜만에 자신의 방에서 나와 라면을 끓일 물을 올려놓았다. "형, 나도 먹을래." "응." 현민이 물 올리는 것을 들었는지 TV를 보고 있던 현웅이 자신의 것도 부탁했고, 현민은 아무런 생각없이 라면을 하나 더 준비했다. "지금 형이 하는 게임이 「싸울아비」지?" "응." "지금 모든 채널에서 어떤 유저를 방송해 주고 있는데, 형도 알아?" "응?" 물이 끓이는 것을 조용히 보고 있던 현민은 동생의 소리에 라면의 불을 끄고 거실로 달려나갔다. -한명의 유저가 만든 아이템이 현가 10억원에 거래되면서 「가우리」내의 모든 운영자들에게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 유저가 판 물건은 총 20개로 개당 5천만원이라는 가격에 팔려나갔고, 20개의 물건들 외에도 몇 개의 아이템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그 유저의 아이템을 사지 못한 다른 유저들은 계속해서 높은 가격을 부르며 그 유저를 찾아다니고 있으며, 그 유저의 아이템을 구입한 곳의 사람들도 현재 모습을 감추고 있는 중입니다. 이상 KSS의 이모양 이었습니다. "뉴스 말고 다른 곳에서도 이 얘기 밖에 안나와." 현민의 동생이 이리저리 TV를 돌렸고, 그의 말대로 모든 방송에서 현민의 얘기밖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외국 방송 채널에서도 현민의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엄청난 사람인가 봐. 20개의 아이템을 팔아서 10억을 벌고, 게다가 운영자들도 잡아버렸잖아." "어떠한 정보도 없나보지?" 자기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대하는 현민의 물음에 현웅은 너무나 많이 나와 자세히 알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직업은 마녀로 추측, 직업 때문에 성별은 여성으로 생각되나 어디까지나 추측, 나이는 20대쯤으로 추측, 체격은 마른편으로 추측. 뭐, 대부분이 다 추측이지만. 다른 방송에서도 이렇게 말하더라고." "그래."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은 자신의 정보를 들으며, 현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 저사람, 지금 상당히 재미있는 상황이야." "응?" 현민이 끓이려던 라면을 대신 끓일 생각인지 현웅은 말을 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남자팬들은 그 사람이 여자라고 생각하고, 여성팬들은 그 사람이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서로 싸우기까지 하던데? 남자들은 여자들 전부가 레즈라고 하고, 여자들은 남자들 전부가 호모라고 하고. 아무튼 엄청 재미있는 상황이야. 그 유저의 성별이 양성이 아닌 이상 둘 중에 한 집단은 변태집단이 되는 거니깐. 형도 웃기지?" 현웅의 말에 현민은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계속해서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 TV만을 바라보았다. "먹자." 주방에 있던 현민이, 어느새 라면을 끓였는지 그릇에 담아 거실로 가져오고 있었다. "아참, 형 핸드폰 엄청 울리던데, 확인해 봤어?" "아직." 그 후로도 잠시동안 TV만을 바라보았으나 다행이 현민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나온 방송은 없었다. "형, 너무 게임만 하지마. 전기세도 많이 나오고, 공부도 안한다고 엄청 화내더라." "글쎄..." 방으로 들어간 현민은 습관처럼 캡슐의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응?" 캡슐의 뚜껑이 닫히기 직전 현민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고, 현민은 게임기에 들어가는 것을 잠시 멈추고 핸드폰을 열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 01X-XXXX-XXXX "누구지? 여보세요?" 잘못걸린 전화일 경우 끊어버리면 그만이기에 현민은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현민이 핸드폰 맞나요? "제가 현민인데 누구시죠? -내가 누구~게? 뚜-, 뚜-, 뚜-, 뚜- 탁!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현민은 가차없이 핸드폰의 종료버튼을 눌러버렸고, 현민의 핸드폰에서는 통화가 종료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여보세요?" -야! 왜 전화를 끊어?! "누구시죠?" -나 지혜다, 왜!! 다시한번 핸드폰을 끄려고 했던 현민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지혜인 것을 알고는 종료버튼의 위에 노여져 있던 손을 내렸다. "어떻게?" -다 아는 수가 있지. "스토커....?" -날씨도 좋은데 데이트나 하자고. "미안, 나 지금 바빠서." 특별히 친한 것도 아니고 일방적인 의견에 끌려가기 싫었던 현민은 게임이나 할 생각으로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녀는 현민을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돈 좀 벌었으며 한턱 쏴야하지 않아? "뭐? 무슨 소리야? 그 누구에게도 말한적이 없기에 아무도 알아서는 안돼는 내용이 지혜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현민은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혹시라도 핸드폰에 울려퍼질까하는 생각에 한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은 현민은 시치미를 때며 그녀의 말을 모른척 했다. -저번에는 광대더니, 이번에는 마녀더라? 학교와 가상현실의 성격이 다른가 봐? 흠칫! 지혜의 말은 현밀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민, 그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절대 실수 같은 것을 한 적이 없었다. "어디야?" -흐응~. 학교앞 분식점으로 나와. 알았지? "지금 가마." 캡슐에 들어가려던 현민은 급히 일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지혜에게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옷장을 열고 이 옷, 저 옷을 꺼내보았지만 전에 비해 살이 너무 빠져서인지 제대로 맞는 옷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급할수록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우는 현민은 심호흡을 한 후,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쩔수 없지." 커다란 바지중 하나를 대충 입은 현민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했다. 상의야 흘러내려도 상관없으니 대충 걸쳐입은 현민은 두꺼운 외투를 꺼내어 몸에 둘렀다. "나 나갔다 오마." "어? 형, 밖에 눈 오는데?" 동생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현민은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만 했을 뿐, 옷을 갈아입지는 않았다. "후....." 차가운 공기에 현민이 만들어낸 입김이 넓게 흩어졌고, 현민은 자꾸만 벌어지는 외투를 모으며, 지혜가 말한 학교앞의 분식점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현민의 옷이 상당히 헐렁거려서인지 그의 모습은 매우 추워보였다. -------------------------------------------------------------------------------- "늦었네?" "어떻게 알았지?" 현민이 분식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먼저 나온 지혜가 현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혜에게 다가간 현민이 날카로운 눈으로 지혜를 보며 물어봤으나 지혜는 미소지을 뿐 말해주지는 않았다. "오늘 하루 놀아주면 말해줄게." "후우...." 물어볼 것이 있는 현민으로서는 그녀의 조건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벌써 2시네? 현민아, 빨리가자." 스윽. 툭. "어디가는데?" 다급히 어디를 향하는 지혜가 현민의 손을 잡고 이끌려 했으나 현민은 자신의 손을 빼내며 제자리에 멈추었다. "영화보러. 요즘 재미있는 영화가 개봉했거든." "천천히 가도 늦지 않을거야." 학교 있는 곳에서 빠른 걸음으로 10분정도면 도착할 정도로 멀지 않은 곳이기에 현민은 뛰어가려는 지혜를 말리며 발걸음만 빨리했다. 보폭이 큰 현민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보폭도 작고, 걸음도 느린 지혜는 현민에게 매달리다시피 붙으며 뛰었다. "휴... 다행이 늦지 않았네. 사람도 없고." 어느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지혜였지만 두꺼운 외투 때문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현민은 약간 거리만 둘 뿐 그녀의 행동을 특별히 제지하지는 않았다. "왕비의 여자, 중앙 커플석으로 주세요." 그녀가 지갑을 열고 돈을 꺼내려 했으나, 현민이 그녀보다 먼저 돈을 꺼내어 매표소의 직원에게 건내주고 있었다. "중앙 일반으로 두자리요." "언니, 커플석으로요!" 영화야 아무것이나 봐도 상관이 없다지만 그녀와 커플석에 앉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은 현민은 일반으로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옆에 있던 지혜는 절대로 안된다는 듯이 강한 어조로 커플석을 외치고 있었다. "왕비의 여자, 10열 B10, B11석입니다. 재미있게 보세요." 싱긋 현민과 지혜의 상황이 재미있어서인지, 아니면 판매용인지 모를 미소를 지은 그녀는 한 장의 티켓을 그들에게 건내주었다. 두개의 좌석으로 나누어진 것을 본 현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지혜는 표를 바꾸려는지 현민에게서 표를 뺏으려 했다. "커플석에 앉자니깐!" "그냥 봐." "엄마, 엄마. 저 언니가 오빠한테 매달리는거 맞지? 응?" 현민과 지혜의 소란이 컸던 것인지, 그들을 보는 시선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제서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눈치 챈 현민과 지혜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고, 그들은 서둘러 상영관으로 자리를 피했다. "앞으로 큰소리 내지 말아줘." "응...." 상영관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붉어진 얼굴을 들지 못했던 지혜가 현민의 부탁에 조용히 대답했다. "10열 B10, 11이라...?" 상영관에 들어서서 열심히 자신들의 자리를 찾던 현민은 표에 있는 좌석들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끝에 물음표가 생겨버렸다. "어? 언니가 커플석으로 줬다?" 현민의 의도와는 다르게 커플석에 앉게 된 것이 좋은지 재빨리 자리에 앉은 지혜가 옆자리를 두들기며, 현민에게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아...." 이미 표를 끊고 상영관에 들어온 이상, 자리를 바꿀 수는 없는 현민으로서는 얌전히 그녀의 옆에 앉는 방법밖에 없었다. -영화를 관람하기 전에는 핸드폰이나 디지털카메라, 캠코더를 꺼주시기 바랍니다. 상영관의 조명이 꺼지면서 내부가 어두어지기 시작했고, 안내인의 방송과 함께 스크린에 영상이 비추기 시작했다. 툭툭. "?"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기에 옆을 돌아본 현민은 지혜가 자신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는 듯이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현민의 고개가 지혜쪽으로 기울어졌고, 지혜는 그의 귀에 입을 가져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다리정도는 만져도 아무말 안할게." 벌떡! "이봐요, 영화 혼자보는 것 아니잖아요." 그녀의 노골적인 말에 현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고, 주위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현민에게 이런저런 소리를 늘어놓았다. "죄, 죄송합니다." 왜 자꾸 자신을 시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을 시험하는 지혜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현민이었다. 중앙에 앉았기에 양쪽으로는 사람이 앉아 있어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현민은 어쩔수 없이 다시 앉아야만 했다. 잠시 뒤, 영화가 시작되었으나 옆에 앉아있는 지혜가 신경쓰인 현민은 좀처럼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아~ 재미있다, 그치?" "하아...." 옆에 앉아있는 지혜를 신경쓰느라 힐끔힐끔 쳐다보니 어느순간 영화가 끝나있었다. 현민은 커플석에 붙어 앉은 것 빼고는 특별한 일이 없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영화가 끝나자 한숨을 내쉬었다. "현민아, 나 살것 있는데 백화점 가자." "으윽." 현민이 지혜와 나란히 극장의 밖으로 나왔을 때, 지혜는 다시한번 현민을 끌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현민아, 이것 어때? 어울려?" 백화점 내부에서 이런저런 가발을 써보는 지혜의 얼굴은 방긋방긋이었다. 아무런 물건도 사지않은 채, 2시간이나 구경만 하고 다닌 현민은 엄청 지루했으나 최소한의 예의를 생각하며 자리를 지켜주었다. "언니 이거 얼마에요?" "응?" 여직껏 구경만 하고 하나도 사지 않았던, 지혜가 처음으로 물건을 사려했고, 현민은 드디어 끝나는 쇼핑에 마음이 들뜨고 있는 것을 느꼈다. "지금 들고 계신 건 4만원이고, 옆에 있는 가발은 5만3천원입니다." "이걸로 주세요." 2시간을 소비해서 허리까지 오는 가발을 하나 구입한 지혜는 그 가발이 마음에 드는지 시험착용 후, 계속 쓰고 다녔다. "현민아 이제 저기 가보자." "하아...." 아직 끝나지 않은 지혜의 쇼핑에 몸이 피곤해진 현민이었으나 도망칠 곳이 없으니 그녀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어? 피에로 가면이네?" "응?" 가면점의 앞을 지나고 있던 둘은 「싸울아비」내에서 현민이 쓰고 다니던 가면과 상당히 닮은 가면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언니, 저 가면 파는 거에요?" "아, 저 가면은 「싸울아비」에서 유명한 사람이 쓰고 있는 가면이라고 하는데, 오전에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주문하시기에 특별제작하고 있는 가면입니다. 지금 이것은 모형을 전시해 놓은 것이고, 예약을 하시면 일주일 안에 배달해 드리는 중입니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지혜가 현민을 쳐다보았고, 현민은 그녀의 시선에 움찔거렸으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한번 착용해봐도 되죠?" "물론이죠." 허락을 받은 지혜는 가면을 때어 현민에게 건내주었으나 현민은 자신에게 건내지는 가면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착용하지는 않았다. "착용해 봐." "왜?" "본래 쓰던 사람이 써..읍" 너무나 큰소리로 말하고 있는 지혜의 입을 다급히 막아버린 현민은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이상하게 처다보는 것을 보고는 조용히 손을 내렸다. "함부로 말하지 마." 스윽. 가면을 들어올린 현민은 얼굴에 가면을 덮은 후, 손을 뒤로 하여 가면에 달려있는 끈을 묶어 가면을 고정했다. "와! 역시 .....이 쓰니 더욱 어울리네." 가면을 쓰고 있는 현민에게서 게임속의 룬이 풍기는 분위기가 흘러나왔고, 지혜는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현민을 보며 감탄했다. "아쉽다, 모자가 있었으면 더 멋질텐데." 가면을 쓰고 있는 현민을 보며, 무슨 이벤트라도 하는 중인가하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어 있었고, 그들의 시선을 피해 몸을 돌려 가면을 벗으려 했다. "자, 잠깐만...." "응?" 툭!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현민은 빠르게 다가오는 무언가를 느끼고, 재빨리 몸을 뒤로 뺏으나 빠르게 다가온 무언가는 현민의 가면을 건들여 버렸고, 현민은 자신의 가면이 벗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머야?" "아, 저기...." 흠칫! 어디선가 겪은 듯한, 너무나 익숙한 상황에 현민은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한명의 여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야 기억났어?" 현민이 자신을 기억한 것을 느꼈는지, 그녀는 현민에게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으나 현민은 자신의 몸을 뒤로 빼어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버렸다. "유일하게 내 얼굴을 본 사람.... 그게 너였어?" 과거 토너먼트가 열렸던 대회장의 복도에서 마주친 불쾌한 느낌의 여성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지혜였다는 것을 안 현민은 세상이 정말 좁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보다 마녀 가면은 없나? 마녀가면을 쓰고 있는 현민도 보고싶었는데." 계속 딴소리를 하는 지혜를 보는 현민의 눈이 감겼다 떠졌을 때, 현민의 눈은 불안과 초조, 호기심이 아니라, 안도와 인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현민아 이리와서 주소 좀 적어봐." 판매장의 직원과 대화를 나누던 지혜가 가면을 들고 서있는 현민을 불렀고, 현민은 그곳에서 장부 비슷한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오늘 하루, 정말 즐거웠으니깐 주는 선물." "난 괜찮아." "아니, 아니. 내가 하나 사주고 싶어서 그런거야. 오늘 하루종일 나한테 사주기만 했잖아." 현민은 끝까지 거절하려 했으나, 결국에는 반드시 사줘야겠다는 그녀의 의지에 밀려 자신의 주소를 적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바꿀 수 있는 10억이라는 돈이 있으니 편한 마음으로 여직 돈을 낸 것이었으나 그것이 지혜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웠던 것 같았다. "가자." "응." 현민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었는지 가면점을 마지막으로 지혜는 현민을 이끌고 백화점에서 나왔다. "집이 어디야?" "조금만 걸어가면 돼." "대려다 줄게." "헤에~? 정말?" 자신을 대려다 준다는 현민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지혜는 현민에게 다시한번 물어보았고, 현민은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다시한번 해주었다. "대려다 줄게." "역시 네가 제일 좋아!" "놔, 놔!!" 아무리 두꺼운 옷을 입어서 느껴지지 않는다지만 주위에서 보는 시선은 그것이 아니었으니, 현민은 기겁을 하며 자신에게 달라붙은 지혜를 밀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 중에서는 꼴사납다는 표정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지나쳤다. "학교에서 나한테 친근히 대한 이유도 익숙한 얼굴이기 때문이야?" 조용한 밤길을 걷고 있던 현민이 지혜를 향해서 물어보았고, 지혜는 그런 현민의 질문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몰랐고, 두 번째에 알았다고 할까?" 처음 지혜가 옥상에 올라온 그날, 지혜는 한쪽에 앉아 문제를 풀고 있는 현민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어디가 잘난것도, 몸매가 좋은것도 아니었지만 자신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며 햇살을 받고 있는 현민을 보니 그녀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이었다. 너무나 낯선 감정에 이런저런 그를 관찰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으나 그를 만날수록 그에게 반하는 자신을 느끼고 깜짝 놀라버린 지혜였다. "잠깐만 나 담배좀..." 중간에 멈춰버린 지혜는 부끄러운 마음때문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담배가 생각나서인지, 주머니를 뒤지며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툭! "어?" "피우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하루에 한 개비만 피면 안 돼?" 자신의 입에 물린 담배를 현민에게 빼앗긴 지혜는 자신에게 꾸중하는 현민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피식! "가자..." 고개를 숙인 지혜가 조용히 현민의 팔을 껴안았고, 현민은 자연스레 팔을 빼려했으나 지혜는 그의 팔을 부여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이대로 가줘...." 그녀의 목소리가 약간 가라앉아 있었고, 그것을 느낀 현민은 그녀에게 안겨있는 팔을 더 이상 빼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예쁘지 않아?" "응?"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가운데 부끄러워서인지, 아니면 어색한 분위기를 날려버리기 위한 것인지, 현민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눈 말야, 이렇게 예쁘게 내린적은 없었잖아." "그러게...." 현민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 챈 지혜는 현민의 팔쪽으로 몸을 붙이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하늘에서는 아름다운 눈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바람조차 불지 않았기에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들은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다왔네." "여기야?" "응." 허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걷고 있던 그들은 순식간에 도착해 버렸고, 지혜는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스윽! "......뽀뽀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깐 잠시만 이대로 있어줘." 외투의 안쪽으로 들어온 지혜의 손이 현민의 몸을 감싸안았고, 몸을 빼려던 현민의 움직임이 멈추어버렸다. '또?' 현민은 자신의 몸이 허공에 떠오른다는 느낌을 받았고, 자신과 지혜가 포옹을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용히 내려가 있던 현민의 두 팔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의 몸을 감싸 안고 있었고, 그런 현민의 두 팔에 놀랐는지 지혜의 몸이 움찔거리며 작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네가 힘들면 내가 옆에 있을게." "...으응...."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오는 말을 들은 현민은, 자신이 제삼자가 되어 한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느낌도 잠시일 뿐, 울고 있는 듯한 지혜를 느꼈다 생각한 순간 현민의 몸은 어느새 감각을 되찾아 있었고, 그녀의 몸이 떨리지 않게 강한힘으로 안아주고 있었다. "누구 만났어?" "응. 친구."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현민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캡슐에 누워버렸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를 안아준 것은 분명 자신이었으나, 그런 부끄러운 짓을 어떻게 한것인지 도저히 생각이 안나는 현민이었다. --------------------------------------------------------------------------------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38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현민이 로그인 된 장소는 어둡고 지저분한 골목길이었다. "나도 이벤트나 구경할까?" 비록 중간에 자신이 엄청난 짓을 하긴 했지만 이벤트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현민은 밝은 골목으로 나와 잠시 생각했으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이벤트의 구경을 다음으로 미루었다. "여기인가?" 양쪽에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는 길을 지나, 여러차례 골목을 돌은 현민은 그제서야 자신이 찾던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딸랑~. "어서오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마력의돌 전부하고, 미스릴 실, 미노타우루스의 뿔, 강철, 잘 만들어진 목검, 목궁, 동물가죽 8장, 수은, 납..... 일단 이렇게 주세요," "저, 소, 손님....." 현민의 주문에 상점의 주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도 사용하지 않기에 싸여있는 마력의 돌이 10만개를 넘어가고 있으며, 미스릴 실 같은 것은 엘프들만이 제작 가능한 것이었기에 구할 수가 없는 것이며, 오우거의 맞먹는다는 미노타우루스의 뿔을 그가 무슨 수로 구할 수 있겠는가. 강철, 목검, 목궁, 동물가죽은 그나마 구해줄 수 있다지만 수은하고 납은 연금술사들이 다루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그에게서 찾는 것인지 뒷목이 뻐근한 상점주인이었다. "죄송하지만 지금 드릴 수 있는 것은 마력의 돌 10만개 정도와 강철, 목검, 목궁, 동물가죽정도밖에 없습니다. 미스릴실은 엘프들이 다루는 것이라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고, 미노타우루스의 뿔 역시 미노타우루스가 너무나 강하기에 쉽사리 구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은하고 납은 연금술사 길드나 마법사 길드에 가시면 구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흐음...." 명색이 수도의 잡화상점이기에 좀 더 다양한 물건을 구하기 바란 현민이었으나 그가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은 다른곳과 마찬가지였다. "일단 그것들만이라도 주시겠습니까?" "저기.... 마력의 돌이 10만개인데 어떻게 가져가실지....?" 마력의 돌의 부피와 무게를 걱정한 상점주인이 현민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고, 현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한의 주머니를 꺼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여기에 담을 거니 전부 가져와 주세요." 툭! "안녕히 가십시오!!!" 아무도 사가지 않았던 마력의 돌을 현민이 전부 구매해 가면서, 잡화상점의 주인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었다. 물론, 현민이 번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도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사냥을 다녀야 하나?"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를 모으기 위해 사냥을 다녀야 했지만, 자신의 마법 실력을 잘 알고 있는 현민으로는 쉽사리 결정을 내릴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가 모아야 하는 물건들은 좀처럼 쉽게 구하지 못할 것들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포기해?" 현민이 재료를 모으기 위해 고민하는 이유는 새로운 마법과 아이템의 개발을 위한 것이었다. 다양하고 능력이 좋은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 다른 마녀들이 연구한 것을 살펴보던 현민은 아이템에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 약간이지만 결과가 바뀐다는 것이 적힌 연구일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구하기 힘든 재료에 포기할까 생각한 현민이었지만 연구일지에 적힌 내용은 현민에게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어차피 해야한다면 지금 빨리 끝내는 것이 낳겠지." 연구일지의 내용과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앞으로 만들어질 마법과 아이템은 기존의 서클이나 무기에 비하여 2배 이상의 능력을 만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더욱이, 자신이 친 사고로 인하여 운영자들이 패치를 할 것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현민으로는 이벤트가 끝나기 직전까지 최대한 준비를 해야만 했다. 한동안 거리를 돌아다니며 마녀들에게 줄 선물을 구입한 현민은 선물을 구입한 후,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머지는 드워프분들에게 부탁해야겠어." 마녀의 옷으로 갈아입은 현민은 가면을 착용하고, 지팡이를 꺼내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싸긴 하지만 지금은 돈도 생겼으니.... 귀환!" 커다란 돈은 아니지만 예전이었으면 생각하지도 못할 돈을 주고 구입한 귀환주문서를 찢어버린 현민은 자신의 부활포인트가 등록되어 있는 마녀의 마을로 이동되었다. "소환, 묘. 린, 나왔어~." 집안에 묘를 소환한 현민은 바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현민의 방은 떠나기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고, 현민은 책상위에 정리되어 있는 두꺼운 종이뭉치를 들어올렸다. "인쇄." -삑, 465페이지가 인쇄중입니다. 어마어마한 페이지였으나 이미 프린터에 1000장의 용지를 넣고 온 현민에게는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그동안 인쇄기능에 대해 알지를 못했으나 우연한 기회에 들어간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숨겨진 기능이었다. "루나야~, 선물은?" 현민보다는 선물에 관심이 많은 린은 선물을 먼저 찾았고, 현민은 그녀에게 준비해 두웠던 선물을 꺼내주었다. "와!!" "마녀들도 여자이니 가끔은 이런것도 좋겠지?" 현민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수백벌이 넘어보이는 드레스였다. 옷 속에 파묻힌 린은 여전히 통통한 큐와 뒹굴거렸고, 현민은 그런 그들을 내버려둔 채 같이 뒹굴고 있는 묘만 안아들고 집을 빠져나왔다. "히잉~, 나 놀고있으면 안돼?" 한참 재미있게 놀고 있어서인지 현민의 품보다 노는 것을 택한 묘를 보며 현민은 어쩔수 없이 묘를 다시 내려주었다. "다치지 않게 놀아야 한다?" "응!"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 묘는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버렸고, 현민은 품속에 있는 종이를 확인하며 드워프의 마을로 향했다. "허허, 루나 아닌가?" "촌장님." 현민 전용 레이더라도 달았는지 드워프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현민을 마중 나와 있었다. "저번의 선물이 너무 고마워서 마법진을 만들어 왔어요." "허허허." 현민의 마법진을 몸으로 체험하며 감탄을 하고 있던 드워프들은, 이번에 가져온 마법진에 대해서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모두가 반짝이는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모루는 공용을 쓰시나요? 아니면 개인?" "작업장이 따로 있으니 공용이라 할 수도 있고 개인이라 할 수도 있지." "어디있죠?" 그동안 현민을 보아왔기 때문에 현민이란 존재가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드워프들은 현민을 자신들의 작업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작업장에 대해서는 철저한 생각을 가진 드워프들이었지만 현민만은 인정했는지 아무런 고민도 없이 쉽사리 보여주었다. "후아, 덥네요." 가운데에는 저번에 현민이 만들어 준 드래곤의 비늘에서 불이 나오고 있었고, 그것을 여러개의 모루가 둘러싸고 있었다. "어떤 마녀의 연구일지에서 발견한 건데요, 어떠한 도구를 만들 때, 그것에 마나가 곁들여지고, 만드는 사람의 정신이 들어가면 에고가 태어난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이론상이니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무구에 마나가 들어가면서 훨씬 좋은것이 탄생하는 것은 올바른 말인것 같더라구요." "마녀란 존재는 참으로 신기하군. 단순히 사악한지 알았더니 그런 훌륭한 이론도 알고 있고 말야." 장인의 정신이 들어가면서 에고가 탄생한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여러명의 드워프들은 마녀를 높이 쳐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마나를 만.들.어.내는 마법진을 만들어 봤어요." "헉!!" "만들어?!" 기존에 있는 모든 마법진이 마나를 모아 사용하는 것에 비해, 현민이 새롭게 만든 이 마법진은 자체적으로 마나를 만들어 내는 마법진이었다. 하지만 너무 뛰어난 능력때문인지 이 마법진에는 다른 것과는 다르게 엄청난 단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것이 정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단점이 있지만 쓰시는데 지장은 없을 거에요." 현민의 말에 감동을 받은 드워프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장인의 꿈이라 불리는 에고의 창조에 한걸음 다가간 그들에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제가 많이 부족해서 마법진이 충전식으로 만들어졌거든요. 그래서인지 낮에는 태양열로 충전을 해줘야 해요." "응?" 충전식 마법진이라는 말에 드워프들은 멍한 얼굴을 했다. 그들로서는 충전식 마법진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태양열이라니..... "허, 허허... 역시 자네는 대단하구먼." "나중에 제 부탁하나만 들어주세요." "물론이지, 허허허." 모루에 태양열을 충전하는데는 지붕이라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까짓 지붕이야 무너뜨려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로써 앞으로 탄생될 대단한 물건을 만들어 줄 존재가 결정되었다. "나중에 재료가 모아지면 다시 올게요." "잘가게." 현민이 개조해준 모루를 사용해 보고 싶은 것인지 모두가 근질근질한 표정으로 현민과 모루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 그러한 드워프들을 보며 미소지은 현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짤랑, 툭, 툭 3개의 발찌, 4개의 팔찌, 4개의 반지, 하나의 목걸이, 1쌍의 귀걸이를 풀은 현민은 자신이 만든 결과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신의 발찌 설명 : 아름다운 여신이 새겨져 있는 발찌 하루에 세 번, 기억된 마법을 발현 할 수 있다. 능력 : 절대방어마법 3회 사용가능. (정신력 소모 없음) 제작자 : 룬. 마녀의 발찌 설명 : 자세히 보면 달 아래의 아름다운 마녀가 바라보고 있는 발찌 정신력을 높여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5000 (1분에 5의 정신력 소모) (세트 착용시 정신력 +3000) 제작자 : 룬. 증폭의 장신구 세트(발찌) 설명 :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순백의 색깔이 아름다운 발찌. 정신력을 증폭시켜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120% (세트 착용시 정신력 300%) 제작자 : 룬. 천사의 팔찌 설명 : 천사가 새겨진 아름다운 팔찌. 착용자의 생명력을 높여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생명력 +500 (분당 3의 정신력 소모) 제작자 : 룬. 생명의 팔찌 설명 : 마법이 새겨진 평범한 팔찌. 착용자의 생명력을 높여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생명력 +800 (분당 4의 정신력 소모) 마녀의 팔찌 설명 : 자세히 보면 달 아래의 아름다운 마녀가 바라보고 있는 팔찌 정신력을 높여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5000 (1분에 5의 정신력 소모) (세트 착용시 정신력 +3000) 증폭의 장신구 세트(팔찌) 설명 :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순백의 색깔이 아름다운 팔찌. 정신력을 증폭시켜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120% (세트 착용시 정신력 300%) 제작자 : 룬. 마나 반지 설명 :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반지. 정신력을 높여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3000 (1분에 1의 정신력 소모.) 제작자 : 룬. 치유의 반지 설명 : 드워프들이 미스릴로 만든 아름다운 반지. 생명력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분당 50의 생명력 회복. (1분에 5의 정신력 소모.) 제작자 : 룬. 회복의 반지 설명 : 어린 드워프가 만든 시험용 장신구. 정신력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분당 100의 정신력 회복. (1분에 20의 생명력 소모.) 제작자 : 룬. 증폭의 장신구 세트(반지) 설명 :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순백의 색깔이 아름다운 반지. 정신력을 증폭시켜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120% (세트 착용시 정신력 300%) 제작자 : 룬. 회복의 목걸이 설명 : 드워프들이 미스릴로 만든 아름다운 목걸이. '생명'을 상징으로 하고 있다. 생명력과 정신력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분당 100의 생명력 회복. (1분에 10의 정신력 소모.) 분당 150의 정신력 회복. (1분에 30의 생명력 소모.) 제작자 : 룬. 생명의 귀걸이 설명 : 한 쌍의 아름다운 귀걸이. 귀걸이의 장식이 부딪힐 때,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착용자의 생명력을 높여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생명력 +1000 (분당 10의 정신력 소모) "분당 회복되는 정신력이 250이고 소비되는 정신력이 43이라.... 생명력은 분당 150의 회복에 50의 소모라.... 결국 207의 정신력 회복이고, 100의 생명회복이잖아." 정신력과 생명력을 회복해주는 마법물품을 만들었으나 다른 아이템의 소모가 크기에 그다지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했다. "더 이상 추가를 하기도 힘들고 이 이상의 물건을 만들기도 힘드니.... 하아." 전부다 운이 좋아 만들어 진 만큼 다시 한번 만든다 했을 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 확률은 0에 가까웠다. 탁, 짤랑, 스윽. 샤르릉... "상태창." ------------- 이름 : 룬. Lv : 38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102(18) 정신 : 184(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0 방어력 : 52 생명력 : 2492(+2300) 정신력 : 54690((+16000)*3) 물 속성 친화력 : 156 불 속성 친화력 : 1 땅 속성 친화력 : 1 바람 속성 친화력 : 1 정령력 : 1 물 Lv 1 보너스 스텟 : 75 -------------- 13개의 아이템을 착용한 현민은 자신이 만든 엄청난 아이템 때문에 생명력과 정신력이 몇 배 이상 뛰어있었고, 다른 것은 모르지만 생명력과 정신력은 왠만한 전사나 법사들과 비교 될 만 했다. "나중에 가면이나 추가해야겠네." 마녀의 가면. 설명 : 마녀의 얼굴을 묘사하고 있는 익살스러운 가면. 다양한 마법이 담겨있는 신비한 가면. 능력 : 착용자의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오도록 만들어준다. 투시마법이 담겨있어 사물을 꽤둟어 볼 수 있다. 착용자의 목소리를 여성의 목소리로 바꾸어준다. 달이 뜨지 않은 밤에도 대낮처럼 볼 수 있다. 슥, 슥, 슥, 슥, 슥. "나 그대와 계약하고 싶다." 최대한 서둘러야 하는 현민은 그동안 미루어 왔던 정령과의 계약을 하기 위해 허공에 오망성을 그리며 주문을 외웠다. 달칵! 현민의 앞에 익숙한 모양의 문이 생기고, 현민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동으로 닫힌 문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허공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싸울아비-룬] 3권 가위 게임 판타지 소설 ===================== "야호~~~." 이미 겪어본 적이 있는 현민은 소리까지 지르며 현재의 상황을 즐겼다. "아~ 심심해." 즐길만큼 즐긴(?) 현민은 더 이상 추락하는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바닥에 도착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허공에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에 마냥 지루하기만 했다. "뭐해요? "응?" 신나게 떨어지고 있는 그의 주위에서 들릴리 없는 말소리가 들렸고, 현민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옆으로 돌아갔다. "바람의 정령이구나?" "네, 오빠는 누구죠?" 꼬마정령의 물음에 현민은 볼을 긁적거렸다. "일단은 마녀라고 해야하나?" "응? 마녀는 가슴달리고 꼬추없는 사람만 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뭐?" 깜찍한 얼굴로 끔찍한 말을 하는 꼬마정령은 떨어지고 있는 현민의 몸에 올라타버렸다. "뭐, 뭐야?" "확인." 툭, 툭. 쩌엉!! 당황하는 현민을 무시해버린 꼬마정령은 자신의 양손을 현민의 가슴과 사타구니에 턱하니 올려버렸다. "야, 야!!" 아무리 가상현실이고, 눈앞에 있는 존재가 꼬마정령이라지만 만져서는 안되는 곳에 손을 올려놓으니 현민은 최대한 꼬마의 손길을 피하지 않으면 안됐다. "흐응?" "이녀석!!" 현민은 꼬마를 때어내려고 했으나 꼬마는 현민의 허리를 다리로 감싸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자꾸 더듬거리는(?) 손을 피하기 위해 현민은 꼬마정령의 손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인간 중에서도 '남자'아닌가요? '남자'에게 계집 녀(女)자가 들어갈리 없는데. 흐응?" "좀 떨어져라!!" 아무리 꼬마라지만 여자아이가 만졌기(?)때문인지 현민의 얼굴은 빨갛게 익어 있었다. "오라버니, 저랑 계약해 주세요." "뭐?" 갑자기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꼬마정령이 현민의 눈을 뚜렷이 바라보았다. "오라버니랑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요. 저랑 계약해 주세요." 현민의 나이 18세, 정령의 나이 7세로 추정. 아무리 좋게 받아들이려 해도 외모상 10살이 차이나는 그들의 모습은 원조교제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아...." 아무리 눈을 감았다 떠도,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꼬마정령이 그대로이자 어쩔 수 없이 괴로운 현실을 인정해야만한 현민이었다. "흐응..... 따뜻해." "하아." 도대체 누구한테 배운 버릇인지 말할 때 마다 콧소리가 들어가는 발직한 꼬마정령이었다. 사악! 강제로 계약된 꼬마정령 때문에 한숨을 내쉰 현민은 인벤토리에서 마녀의 지팡이(낫)을 꺼내어 허공에 몸을 띄웠다. 억지이긴 하지만 바람의 정령과 계약도 했고, 더 이상 떨어지는 것도 질렸으니 기왕이면 목표를 정해 빠르게 날아가는 것을 택한 것이었다. "불의 정령은 어디있지?" "조기요." 현민의 품안에서 잠시도 얼굴을 빼내지 않는 꼬마정령은 손으로 현민의 뒤쪽을 가르키며 말해주었다. 꼬마가 가르키는 손가락의 끝을 따라간 현민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는 하나의 산을 볼 수가 있었다. "불의 정령은 착해야 할텐데....."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변태 정령과 마녀의 마을에서 놀고 있을 장난꾸러기 묘를 생각하니 자신의 앞날이 걱정되기 시작한 현민이었다. 탁! "응? 왔다! 왔어!!" "어머! 정말?!" "응?" 따스한 느낌을 풍기는 불을 보며 땅에 내려선 현민은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수십의 정령을 볼 수 있었다. "뭐, 뭐야?" "우응~." "야!!" 시끄러운 상황속에서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꼬마정령이 현민의 몸을 쓰다듬었고, 깜짝놀란 현민은 재빨리 꼬마의 손을 꺼내버렸다. 현민과 꼬마정령이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멀리서 달려오던 정령들은 이미 현민을 포위하고 있는 중이었다. "총각, 계약하러 왔지? 내 딸하고 계약하는 건 어때? 응? 우리 딸,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엄청 똑똑하고, 예쁘다니깐!" "학생, 그집 아이보다는 우리집 아이는 어때? 우리집 아니는 엄청 얌전해서 학생이 일하는 동안 조용할 거야." "아냐아냐, 정령이라면 당연히 힘이지 안그런가? 우리딸이 말야, 나를 닮아서 엄청 힘이 쌔다네. 내 딸이 지금 골목대장이라니깐." "아, 저기...." 쫑알쫑알... "아응~." "야!!" 현미을 둘러싼 아름다운 아줌마(?)들이 자기의 딸을 현민과 계약시키려 했고, 그런 복잡한 상황속에서 꼬마정령의 손은 다시금 현민의 맨살(?)을 더듬고 있었다. "모두 그만!!!!" 흠칫! 현민을 둘러싸고 있는 정령들의 수다 때문에 시끄러운 상황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한번에 잠재운 커다란 소리가 현민의 귀를 멍하게 만들었다. "계약은 그대들의 딸에게만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불의 정령에게 있는것이니 그대들은 모두 흩어져라!!" "네...." 전설상의 피닉스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불새의 외침에 현민을 감싸고 있던 아줌마 정령들은 현민에게 묘한 눈빛을 보내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떤 정령을 선택할지는 모르지만, 이미 자네의 소문을 들었으니 잘 대해주리라 믿네." 말을 마친 피닉스가 하늘로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졌고, 현민은 한동안 멍한 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품에 손을 넣고 있는 꼬마정령과 실랑이를 벌였다. "너, 이름은 뭐야?" 멍멍했던 귀가 정상으로 돌아온 현민은 자신의 품에 안긴 건방진 꼬마정령을 부를만한 이름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바로 물어보았으나 묘와 마찬가지로 그녀역시 이름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오라버니가 지어주셔야죠." "으음...." 현민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정령에게 맞는 이름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그냥 여성스럽게 '윈디아'어때?" "황홀(?)해요." "하아....." 도대체 누구한테 가정교육을 받았는지 부모의 정체가 궁금한 현민이었다. "응?" 치마가 팽팽해지는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본 현민은 윈디아만한 꼬마가 손가락을 빨며 자신의 치마를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길을 잃어버린 거니?" 도리도리"그럼, 엄마를 잃어버렸니?" 도리도리 품안에 있는 윈디아를 제대로 안은 현민은 무릎을 꿇고, 또 다른 꼬마정령과 눈을 마주했다. "자, 착하지? 오빠한테 왜 그러는지 말해줄래?" 글썽글썽.... "으윽." 훌쩍! 분명히 부드러운 목소리였건만 현민과 눈을 마주하고 있던 꼬마정령은 눈망울이 촉촉해지더니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흐응~, 오라버니가 울렸으니 책.임. 지셔야겠네요." 더듬더듬. "제발, 그만좀 하렴....." 이제는 지쳐버린 현민의 목소리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꼬마야, 오빠가 맛있는거 줄게, 뚝!" 인벤토리에서 불의 정령석을 꺼낸 현민은 울고있는 정령의 입에 조심스럽게 넣어주었다. "으음?!" "맛있지?" 끄덕끄덕 현민이 넣어준 불의 정령석이 너무 맛있었던지 한번에 눈물을 그친 불의정령은 볼을 볼록하게 만든 채, 현민이 넣어준 정령석을 이리저리 굴리며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나는 안줘요? 후우~." "으윽!!!" 현민의 귀에 뱀처럼 기어올라온 윈디아는 현민의 귀를 살짝 깨물고 바람을 불어넣으며, 현민을 곤란하게 했다. 툭! "응?" "뭐야?" 글썽글썽..... 무언가가 자신을 건들기에 뒤를 돌아본 윈디아는 불의 꼬마정령이 볼록한 볼을 만들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주먹을 보니, 자신을 건든것은 아무래도 꼬마정령의 주먹인것 같았다. "이게!" 콰당! "흐앙!!" 나른한 목소리로 현민에게 엉겨붙던 윈디아의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고, 꼬마정령을 쌔게 밀어버렸다. 그녀의 공격에 맥없이 쓰러진 불의정령은 크게 울었고, 꼬마의 울음소리에 맞춰 주위에는 불꽃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뚝! 자, 착하지? 오빠가 하나 더 줄게 그만 울어 알았지?" "흥!" 현민이 불의 정령만 토닥이자 윈디아는 잔뜩 삐졌는지 현민과 얼굴도 마주하지 않으려 했다. "우리 예쁜 윈디아도 이리 와서 정령석 먹어야지?" "정말?" 가까이 다가온 현민이 껴안아주자 금세 마음이 풀린 윈디아는 다시 현민의 품에 엉겨붙었다. "하아....." 툭, 툭. "응?" 한숨을 내쉬고 있던 현민은 다시금 당겨지는 치마에 아래를 내려다 보았고, 양쪽볼이 볼록한 꼬마정령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혹시.... 오빠랑 계약하고 싶어서 그런거니?" 끄덕. "후훗, 이름이 뭐야?" 도리도리 "없어?" 끄덕끄덕. 모든 정령이 어릴 때는 이름이 없는 것인지, 현민의 앞에 있는 불의 꼬마정령도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민은 꼬마의 이름을 짓기 위해 다시금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염화(炎花) 어때?" 발그레.... 현민의 물음에 염화란 이름을 가진 불의 정령은 얼굴을 숙이며 몸을 베베 꼬았다. 행동으로 보아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민이 만들어준 이름이 상당히 마음에 든 눈치였다. "이제 땅의 정령하고만 계약하면 되네...." 툭, 툭. "응?" 자신의 치마를 당기는 염화의 손길을 따라 고개를 돌린 현민은 그녀가 무엇을 가르키는지 확인 할 수 있었다. 슈루룩, 쏙! 슥슥. "오빠, 오빠. 나랑 계약하자, 헤...." 차마 여자에게, 그것도 조그마한 꼬마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현민에게 당당히 말하고 있는 꼬마숙녀는 상당히 지저분해 보였다. "나 힘도 쌔고, 일도 잘해. 나랑 계약해주라, 응?" "하아....." 음란한 정령과 소심한 정령에 이어 지저분한 정령을 받아들이게 생긴 현민은 자신의 운에 한숨만 흘러나왔다. "헤헤.... 나도 이름지어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땅의 정령에 현민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넌....... 담비다, 담비." "와~, 내 이름도 예쁘다." 억장이 무너진 자신의 마음을 담아, 무너질 담(坍), 무너질 비(비). 땅의 정령 담비의 이름은 그렇게 지어졌다. -------------------------------------------------------------------------------- "나왔어...." 정령계에서 돌아오는 현민의 목소리에는 하나의 힘도 담겨있지 않았다. "자, 많~이 먹어~~." "큐~~." 물컹 흠칫! 쩌억! 현민이 문을 열고 방을 나왔을 때, 그는 동글동글 공같이 생긴 무엇이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뭐지?" "뀨우....." "서, 설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고,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현민은 도끼에 발등이 잘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리인!!!!!" 부들부들.... "루, 루나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것인지 분노하는 현민의 앞에서 린과 큐는 서로의 몸을 감싸안은 채 현민의 선처만 바라고 있었지만, 정령계의 피곤함으로 인내심이 바닥나 있던 현민에게 그들의 가련한(?) 몸짓은 눈이 보이지도 않았다. "나 여기서 광호하게 내뱉는다, 천지에 하나가 되어 진정한 파괴를 이끌어내니...." "히익!!!" 위이이잉....... 현민의 양손이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면서 대기의 흐름이 현민에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현민의 주위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두려운듯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이로써 나 여기에 그대를 부르니......" "루나야!! 참아! 내가 잘못했어, 제발!!" 우당탕!! 완성되어가는 마법진과 주문에 기겁을 한 린이 현민을 말리기 위해 육탄공격을 했고, 현민은 그녀의 어마어마한(?) 공격에 마법진과 주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놔! 비켜!! 저 비만 정령 죽여버릴꺼야!!!!" "뀨우!!!!" 와직! 현민에게서 생명의 위험을 느낀 큐는 거대한 덩치로 문을 부수고 밖으로 도망갔.....으면 좋겠지만, 너무나 거대한 덩치와 짧은 발 때문에 문틈에 끼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오빠~, 나 졸려." "후우......" 실컷 놀았기 때문인지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묘가 현민에게 달려왔고, 현민은 묘의 얼굴을 보는 순간 화났던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들어가서 자자." 린을 밀치고 일어선 현민은 묘를 안아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루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현민은 린이 화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까짓 정령석 좀 먹었다고 이렇게까지 짜증낼 필요는 없잖아!!" 린의 말이 끝났을 때, 현민의 눈은 차갑게 변해 있었고, 분위기도 평소와는 어딘가 달라있었다. "......앞으로 제 물건에 손대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싫으시다면 나가드리죠." 쾅!! 현민의 입에서는 평소와 같이 친근한 말이 아니라, 처음 봤을 때 자주하던 존댓말이 나오고 있었다. 갑작스런 현민의 말투와 행동의 변화에 크게 상처를 받은 린은 물기가 고이고 있는 눈을 질끈 감으며,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쾅!! "우웅, 오빠?" "자렴." "으음...." 현민이 문을 닫으며 난, 거대한 소리에 잠을 깨버린 묘가 현민을 불렀으나 자신을 꼬옥 안아주는 현민의 손길에 다시 숨이 고르게 바뀌었고,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린과의 다툼이 있은 직후, 그들의 사이는 가까워지지 않았고, 처음의 거리보다 더욱 멀어진 듯, 둘 사이의 대화도 거의 없었다. 린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입으로 말할 뿐이었고, 현민은 린의 입에서 나온 설명들을 외울 뿐이었다. "현민아, 뭐해?" "문제." 언제나처럼 현민이 옥상에서 문제를 풀고 있으면, 어느새 그의 곁으로 지혜가 다가와 앉았다. "아직 멀었어?" "조금...." 현민은 짧게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나갔고, 잠시 뒤에 손에서 펜을 놓았다. "끝난거지? 그치? 응?" "하아... 응." "몇 서클 몇 단계야?" 현민의 서클이 궁금했던지, 지혜는 눈을 반짝이며 현민에게 붙어댔고, 지혜와의 신체가 접촉이 부담스러웠던 현민은 조금씩 그녀의 손을 빠져나갔다. "5서클 1단계." "저, 정말?!!!" 2개월이란 시간을 소비해서 3단계를 완성했던 현민은 린과의 다툼이 있은 후, 순식간에 3단계를 올려, 5서클까지 돌입해 버리는 말도 안 돼는 짓을 해버렸다. "도, 도대체 어떻게?" 비록 남한테 알리지는 않았지만 스스로도 천재에 속하긴 한다고 믿었던 지혜는 현민의 말도 안 돼는 실력에 말이 안 나온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실제로 느껴볼 수 있었다. "글쎄....." 자신의 주먹을 바라본 현민은 확실히는 아니지만 어렴풋이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 날, 린에게 화를 낸 직후, 짜증이 솟아난 현민의 마음은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현민의 머리 역시 냉정해지기 시작했다. 화를 풀만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현민의 시선이 돌아간 곳에는 마법서가 있었고, 머리가 차가워진 현민의 손에 마법서는 거침없이 풀린 것이었다. "정말로 천재였어?" "난 평범할 뿐이야, 4서클이라고 해봤자, 일반 공식의 사용이 조금 더 복잡해 지는 거잖아?" 현민의 말에 지혜는 말도 안된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야이 바보야! 그렇게 따지면 모든 공식이 가감승제로 이루어졌는데 초등학생이 못푸는 문제가 어디있냐?!!" 현민의 말도 어찌보면 타당한 것이었으나 현민의 말보다는 지혜의 말이 더욱 옳은 것이었다. 모든 공식이 가감승제로 이루어진 상황에 그것을 못 푸는 중, 고등학생들은 전부 바보란 말인가. 간단한 공식으로 이루어지는 수학이지만 그 공식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에서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 수학이란 것이었다. "지혜야, 나 피곤해." 한참을 현민의 옆에서 쫑알거리던 지혜는 피곤하다는 현민의 말에 입을 다물고, 얌전히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스윽... "응?" "야!" 자신의 머리를 쓰러뜨려 다리에 올려놓는 지혜의 행동에 깜짝놀란 현민은 상체를 일으키려 했으나 지혜가 그의 머리를 눌러 현민이 일어나는 것을 방해했다. 꾸욱 "내가 저번에 운명이란거 말했지? 운명이란 인연이란 이름의 실이 뭉친 하나의 실타래라고." "하지마." 지혜의 손을 치운 현민은 그녀의 무릎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혜는 그런 현민을 놓아주지 않은 채, 현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의 앞으로 가져갔다. "인연이란 것은 커다란 것이 아니야, 무조건 살아있는 것도 아니야.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너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면, 그것은 너와 인연이 있는거야. 좋은 인연이던지, 나쁜 인연이던지 말야." 현민에게 설명하듯 말하는 그녀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니깐 어떠한 인연이던지 소중히 생각해야만 하는거야." "응...."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민은 지혜가 해준 말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38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익숙한 느낌과 함께 현민의 눈앞에 마녀의 방이 나타났고, 현민은 4명의 꼬마정령들을 소환했다. "소환, 묘, 염화, 윈디아, 담비." "오빠~" "......" "아잉~." "헤에....." 4명의 꼬마정령을 모아놓고 보니 그나마 묘가 가장 정상적으로 보였다. 현민이 움직이려 하자 윈디아는 현민의 가슴에 매달렸고, 묘는 현민의 머리를 잡고, 목에 앉았다. 현민의 왼손은 염화가 붙잡고 있었고, 오른손은 담비가 붙잡고 있었다. 달칵 "오늘은 공간에 대해서 알려줄게, 공간이라는 것은 평면에 하나의 축이 더해져..." "린." 흠칫! 현민이 방에서 나오자 연습장에 하나의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시작하려던 린은 거의 한달(현실에서 1주일)동안 듣지 못했던 자신의 이름을 듣고는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고개를 들어 올린 린이 현민을 마주봤고, 현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 현민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린은 현민의 갑작스런 사과에 순간적으로 사고가 마비되어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어 허둥거렸다. "나, 난.... 저기......" "미안." 린에게 고개를 숙인 현민이 다시한번 사과했고, 다시한번 들리는 현민의 사과에 린의 허둥거리던 행동이 멈춰버렸고, 그녀의 눈에서는 한방울의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아, 아니... 훌쩍! 내가 잘못했는걸. 흑." 린의 눈에서 점점 쏟아지는 눈물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그녀를 걱정한 듯한 큐가 애처로운 울음으로 그녀를 달래주었다.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현민은 사과를 하고, 린이 울고만 있자 4명의 꼬마정령들은 현민에게서 떨어져 조용히 앉아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현민과, 눈물을 흘리고 있던 린은, 시간이 지나며 어느새 예전처럼 돌아가 있었다. "이제 5서클이니 당분간은 새로운 마법을 만들거야." "도와줄까?" 마법에 관해서는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린이 자신을 도와준다면 훨씬 쉽게 마법을 조합할 수 있을테지만 그것은 그 자신만의 마법이라 할 수 없기에 현민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힘든게 있다면 모르지만 왠만해서는 내 힘으로 만들고 싶어." "알았어..." "그보다 아이들 좀 부탁할게." 현민의 머리가 한쪽으로 천천히 돌아갔고, 그곳에는 4명(염화제외)의 꼬마정령들이 소란스럽게 놀고 있었다. "응." 자신의 모든 정령들을 린에게 부탁한 현민은 방으로 들어가 창조의 공간을 열었다. "분석, 라이트닝." 현민의 앞에 한 장의 종이가 생겨났고, 현민은 천천히 그 종이에 적혀있는 공식들을 훑어보았다. "흠..... 대부분은 공통된 것이고, 새롭게 추가 된 것은 몇 개 없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하는 일이기에 한번에 마음잡은 현민은 다시금 모든 스킬의 분석에 시간을 투자했다. 아직 5서클 1단계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마법을 만들고 있는 그에게 5서클의 마법은 가장 좋은 도구였다. "루나야, 잘 되가?" 중간중간 야자도 빼먹고, 학교에서 잠자며, 최대한 시간을 활용한 현민은 1주일 하고 3일이 지난 후에야 5서클의 마법을 전부 확인 할 수 있었다. 4서클 까지의 공통되는 식이 많이 존재했지만 그 밖에도 새롭게 등장한 공식들은 2중, 3중으로 되어있어 찾는것이 쉽지 않았다. "응, 이제 만들기 시작하려고. 상당히 재미있는 마법이 나올것 같아." 마법을 분석하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의 마법을 생각한 현민은 앞으로 나올 마법들을 사람들이 구경했을 때, 어떠한 표정으로 바뀔지가 상당히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것들이기에?" "비~밀." 자신에게 달라붙는 정령들을 내버려둔 현민은 정리된 노트를 가지고 창조의 공간으로 들어가 버렸다. "필요없는 공식을 지우고, 소모되는 마나의 양을 최대치로 늘린 후, 마나를 인도하는 '길'을 만들어 정확도를 높인다음......" 현민의 입에서는 마법을 이루는 공식들이 끓임없이 흘러나왔고, 그의 손도 바삐 움직이면서 마법의 공식들을 하나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15분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최상의 마법으로 정리한 현민은 마법을 창조하기전 시험삼아 마법을 발현해 보았다. "발현." 우르르릉...... 번쩍! 콰콰콰콰쾅!!!!! 천천히 생겨나는 뭉게구름 사이로 방전되는 듯한 스파크가 보이며 뇌성이 흘러나왔고, 뇌성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빛과 함께, 커다란 소리와 바람이 현민을 강타했다. "아, 아........"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은 했지만, 현민의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구멍은 마법을 만들어낸 현민의 입조차 벌어지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예상정보....." 이름 : 무(無) 서클 : 8(최하), 7서클(상) 어마어마한 파괴력 때문인지 현민이 만든 마법은 기본이 8서클로 잡혀 있었고, 이제야 5서클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현민이, 절대 못 쓰는 마법이었다. 쿵! "컥!" 하나의 마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제를 풀어야만 했고, 그런 현민의 앞에 침대만한 크기를 가지고, 책상만큼의 높이를 가진 거대한 책이 나타났다. 싱글침대라고 해도 가로, 세로가 1m, 2m는 되었고, 책상의 높이가 기본 1m이니 이건 책이라 부를수도 없는 경지였다. "미친....." 현민의 심정이 가장 잘 담겨있는 한마디였다. -------------------------------------------------------------------------------- 거대한 책이 생긴 덕분에 현민의 일상이 아주 조금 변했다. 우득! 우드득 "으아아....." 게임을 종료하고 캡슐에서 일어난 현민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운동 나갈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간단한 추리닝에 모자를 쓰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7서클의 마법을 만들면서 현민의 오른손에는 언제나 매직보드가 들려있었다. 툭, 툭.. 달칵! 문을 열고 나온 현민은 가벼운 몸 풀기 겸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갔다. 어두컴컴한 계단이라 조금 무서울만도 하지만 매직보드에서는 환한 빛이 나오고 있었고, 현민의 눈과 손은 매직보드에 나와 있는 문제에 있기 때문에 현민은 공포에 대해서 별로 느끼지를 못하고 있었다. 탁, 탁, 탁, 탁! 문제를 풀고 있는 상태로 가볍게 몸을 움직이던 현민이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로 달리는 것이 쉬운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민의 몸은 흔들림이 없었고, 속도도 앞으로 달리는 것과 약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후우..... 후우..... 후우....." 문제를 풀며 뒤로 달리고 있는 현민의 입에서 규칙적인 호흡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현민의 몸에서도 약간의 땀이 나기 시작했다. '....logx를 대입해서 y좌표의 위치를 구하고, 여기에 이 공식을 사용하여 공간에 대한 범위를 좁힌다음, 이 범위에서 공간의 점이 있을 만한 확률을 대입하고......' "후우..... 후우..... 후우....." 도대체 어떤 식을 구하는 것인지 현민은 뒤로 달리면서도 복잡한 문제의 풀이과정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딸랑딸랑. '여기에 z의 범위를 대입하여 y를 구하고, 다시 처음의 공식을 대입하면....' 신문을 배달하는 자전거가 뒤로 달리고 있는 현민을 발견했는지 벨을 울렸지만 문제를 풀고 있는 현민은 그 종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으, 으악!!" 끼이익! 점점 가까워지는 현민과 부딪히는 것을 막기 위해 자전거를 몰던 배달원아저씨는 핸들을 급히 꺾으며 브레이크를 잡았으나 길이 좁은 관계로 현민과 부딪히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사뿐. 밑으로 구르기 시작한 자전거가 현민의 다리를 치려는 순간, 현민의 몸이 허공으로 뛰어올랐고, 그의 몸 밑으로 자전거가 미끄러저 지나갔다. 탁. "괜찮으세요?" 달리기를 멈춰선 현민은 아저씨의 넘어진 자전거를 세워드렸고, 떨어진 신문들도 하나하나 줒어주었다. 그 모든 행동을 하는 동안에도 현민의 손은 매직보드를 떠나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은 주변에 떨어진 신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고, 매직보드를 잡고 있는 엄지와 검지를 제외한 그의 왼손은 위치를 파악한 신문을 주어 아저씨에게 건내주고 있었다. "수고하세요." 단 한번도 쳐다보지 않은 현민이 기분나빠 한소리 할만도 하련만, 사람이 착해서인지 아니면 뒤로 달리면서도 피해버린 현민이 신기해서인지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은 채 현민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만 보고 있었다. "후우..... 후우..... 후우....." 한 차례의 소동으로 잠시 달리는 것이 중단되었으나 상황이 정리된 현민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헉, 헉, 헉, 헉." 운동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선 현민의 모습은 처음에 집을 나갈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의 호흡은 거칠어져 있었고, 그의 온몸에는 땀으로 젖어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양의 수분을 배출해서인지 비틀거리며 약간의 탈수증상도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현민의 눈은 매직보드를 향해 있었고, 현민은 떨리는 손으로 매직보드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었다. 털썩! "새근.... 새근....." 샤워하기 직전에서야 매직보드를 끈 현민은, 샤워를 끝마치자 곧바로 캡슐에 누워버렸다. 무리한 운동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나 많은 문제들 때문인지 눕자마자 곤히 잠들어버리는 현민이었다. "형, 일어나." 번쩍! "으응......" 동생이 부르는 소리에 번쩍 눈을 뜬 현민은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고, 잠을 깨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하암....." 현민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그의 모습은 들어가기 전과 달리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하품을 하긴 했지만 졸린 표정은 사라져 있었다. 아침밥도 먹지 않은 현민은, 씻자마자 교복을 입고 학교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한손에 매직보드를 든 현민은 문제를 풀면서 등교했다. 매직보드에 있는 문제만 바라보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 만도 하건만 현민은 타인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갔기에 부딪히는 일은 절대 없었다. 드르륵..... 한손으로는 매직보드를 잡고 있고, 다른 한손으로는 문제를 풀고있기에, 손대신 발을 사용하여 문을 연 현민은 교실로 들어가 조용히 교실의 문을 닫았다. 대인공포증은 아니지만 사람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 현민은, 남들이 등교하는 시간보다 일찍 출발하여 다른 아이들과의 부딪힘을 최대한 피했다. 슥, 슥슥슥.... 시끌시끌! 현민은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문제만 풀어나갔고, 혼자서 앉아있던 조용한 교실은 어느새 여러명의 학생들로 시끄럽게 떠드는 장소가 되어있었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링~♪♬ 우당탕탕 오전보충수업을 시작하는 종소리가 울리고, 이곳저곳 흩어져서 수다를 떨고 있던 아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움직였다. 기본대로라면 수업을 나가야 했지만,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가는 과정에 있는 그들이 수업을 들을리 없었고, 이것을 아는 선생님도 그들에게 자율학습만 시킬뿐 특별한 것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학교에서는 수업대신 하루종일 자습만 시켰고, 아이들은 그 시간을 틈타 「싸울아비」 게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현민은 구석에 앉아 조용히 문제만 풀며 하루를 보냈다. 눈치 보지 않고 문제를 풀 수 있기에 쉽게 집중할 수 있었다. 덜컹! 아직 저녁시간과 야간자율학습이 남아있었지만 1학년이 끝나가는 무렵이고, 선생님이 물렁했기 때문에 반의 절반은 도망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한손에 매직보드를 들고있는 현민도 포함되어 있었다. 터벅, 터벅, 터벅. "꺄하하, 그래서 말야...." 가방을 둘러메고 계단을 내려가는 현민의 앞에는, 세 명의 여학생이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현민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있었다. "얘가 장난도!" "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가운데 있는 여성이 쑥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왼쪽에 있는 여학생을 툭 건드렸다. 살짝 건드린 것이기에 절대 넘어질 일이 없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균형을 잃어버린 그 여학생은 당황한 음성을 내뱉으며 손을 흔들었으나 그녀의 손에 잡힐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뭐야? 나 여기서 넘어지는 거야? 크게 다칠텐데.....?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겠지?' 계단의 중간부분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뒤에는 상당한 계단이 있는 상태였고, 그런 상황에서 넘어진다면 운 좋아야 골절이고, 최악의 경우 사망이었다. 그녀의 몸이 천천히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몸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낀 그녀는 심각함을 모르고 엉뚱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툭! "잡아!!" '응?' 천천히 움직이고 있던 사물들이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녀는 자신의 앞으로 한명의 남학생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절반 이상이 넘어지고 있었고, 그의 손을 잡는다 하여도 늦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뭐야?' 계단으로 떨어지기 직전 무언가가 자신을 감싼다고 느낀 그녀는 자신의 몸이 허공을 날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 떨어지는 건가?' 쾅!!!! "크아악!!" "꺄아아악!!" "아악!!" 첫 번째 비명은 땅에 떨어진 남학생의 입에서 나왔고, 두 번째의 비명은 그의 품에 안긴 여학생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들을 보고 있던 수많은 학생들이 지른 것이었다. 앞에서 자리를 비켜주기를 기다리면서 조용히 문제를 풀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앞에 있던 여학생이 갑자기 넘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손에 들린 동전을 본다고 해서 손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닌 것처럼 언제나 문제를 풀고 다니는 현민의 눈은 매직보드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그의 눈에 비치는 영상이 매직보드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툭! 현민의 가방이 거칠게 떨어졌고, 기울어진 현민의 발을 타고 미끄러진 매직보드가 작은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잡아!!" 한걸음 다가선 현민이 기울어진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그녀는 현민의 손을 잡지 않고,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팟! 쾅!!!!!! 계단의 꼭대기에서 뛰어버린 현민이 그녀의 몸을 감싸안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몸은 계단을 지나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크아악!!" "꺄아아악!!" "아악!!" 등에서 느껴지는 충격과 가슴에서 느껴지는 여학생의 무게에 엄청난 고통을 받은 현민은, 주위의 시끄러운 비명을 들으면서 자신의 의식이 잠들때처럼 점점 흐려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 "아.... 현민아!! 야!!" "으응?" 누군가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현민은 지혜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 위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괜찮아? 병원갈까?" "괜찮니?" 상체를 일으킨 현민은 수많은 학생들이 가방을 메고(?) 자신을 둘러싼 것을 볼 수 있었다. "나, 얼마나 기절한거야?" "한 1분쯤?" 현민이 기절한 1분동안 복도는 말도 아니었다. 작은 소리도 울리는 복도의 특성상, 현민과 여학생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하나의 층에만 들린 것이 아니라 윗층과 아래층에도 울려퍼졌고,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과 교실에 있던 학생들을 전부 모이게 만들었다. "여자애는?" "저기." 현민의 고개가 지혜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고, 그곳에는 자신이 구했던 여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일어설 수 있어?" 지혜와 여러 선생님들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자신의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 앰뷸런스 왔어요!!" 현민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연락을 했는지 학교의 밖에서는 앰뷸런스가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혹시 모르는 내부의 상처를 위해 주위의 선생님들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기 원했으나 시간이 아까운 현민은 구급요원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주위의 선생님들에게 사정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허락받았다. "가자." "응? 야자 안해?" 현민의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 지혜가 서 있었고, 그녀는 허리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현민을 부축해주려고 했으나 현민이 그녀의 손을 거부했다. 몇몇 선생님들이 복도의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고, 복도에는 현민과 지혜를 감싸고 있는 선생님들과 현민이 감싸주었던 여학생만 남아있게 되었다. "저, 고마워." "아니, 괜찮아." 현민이 감싸주었던 여학생이 미안한 얼굴로 사과를 하자 현민은 별일 없다는 듯이 몸을 바로 세우고,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이 몸에 많은 부담을 주었는지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생겨나고 있었다. "언니, 나 먼저 가 있을게." "응....." "응?" 가까이 있었기에 현민이 힘들어한 것을 눈치챈 지혜가 현민을 이끌며 나가려고 할 때, 지혜가 여학생을 향해 인사를 건냈고, 그녀들의 인사에 현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는 사이야?" "우리 언니야." 학교를 벗어난 현민은 상체가 심하게 욱신거렸지만 뼈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될만한 특별한 아픔은 느끼지 못했다. 현민이 느끼고 있는 고통은 대부분이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했을 때 느끼는 근육통 정도였다. "말했잖아, 집에서는 평범한 동생이라고...." "응."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현민은 자신이 어째서 그녀를 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었다지만 여성과의 접촉을 꺼리는 자신은 만약 넘어진 존재가 상관없는 여학생이었다면 절대 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그녀를 구한 것은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이 지혜와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너 야한 생각했지?" "....응?"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느낌과 지혜의 느낌을 떠올려보던 현민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물어보는 지혜의 말을 듣지 못했다. "너 우리 언니 몸매랑 내 몸매 비교하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 "나랑 언니 둘 다 안아봤잖아, 우리 언니 안아보니깐 어때?" 옆에서 하는 그녀의 끈질긴 질문에 현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넘어지고 있는 그녀를 안은 후,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닥에 떨어져 기절한 자신이 어떻게 그녀의 몸매를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말 몰라?" "응."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도중 지혜에게서 매직보드를 받은 현민은 매직보드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문제를 풀어나갔다. 이제 겨우 3장을 넘긴 현민에게는 아직도 풀어야 할 문제가 태산같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종이 한 장의 두께를 0.1mm로 계산했을 때, 1m의 두께를 가진 책에 사용된 종이의 수는 대략 만장이었고, 2만 페이지에 가득 들어있는 문제의 양은 세는 것이 귀찮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현민아~~, 나랑 얘기 좀 하자, 응?" 조용히, 문제만 풀며 걸어가는 현민 때문에 오붓한(?) 대화를 하지 못한 지혜는 현민에게 매달리려 했으나 현민은 문제를 풀어가는 와중에도 지혜의 공격(?)을 피해버렸다. "도대체 무슨 문제이길래 열심히 하는거야?" "창조." "응?" 현민의 입에서 처음으로 말이 나오자 지혜의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더욱 호기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몇서클? 어떤마법인데?" "7서클, 뇌계열의 공격마법." "문제 많아?" 마지막으로 들려온 지혜의 말에 현민은 창조의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는 책(?)의 이미지를 생각해 버렸다.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나오는 것은 한숨과 욕밖에 없었다. "왜 그래? 도와줄까?" 일반 마법을 배우는 것과 다르게 마법의 창조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가능했다. 마법의 경우야 스스로의 지식을 쌓는다는 의미로 다른 사람이 도와주면 안 된 것이지만, 창조라는 것은 혼자서 해도 되지만 둘이서 해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도리도리. "왜?" 하지만 현민은 그녀의 도움을 거절했고, 그녀의 질문에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동안 아이템을 제작해온 현민은 현실에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게임 속에서 만큼은, 욕심많고, 하나의 마법을 만드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완벽한 마법사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어느새 집까지 도착한 현민은 지혜에게서 가방을 건내 받아 어깨에 걸쳐 메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현민이네의 문앞까지 쫓아간 지혜는 현민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나서야 몸을 돌렸다. 달칵! "어? 형 일찍왔네?" 분명히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어떤 꽁수를 부렸는지 그의 동생은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야, 파스 좀 붙여줘." "응? 응...." 들어오자마자 파스를 붙여달라는 형의 말에 대답을 하긴 했지만, 현웅은 자신의 형이 왜 저러는지에 대해서 추측할 수가 없었다. 슥, 털썩! 상의를 전부 벗어버린 현민이 바닥에 누웠고, 그런 현민의 곁으로 파스를 가져온 현웅은 그의 등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형!!!" "왜?" 자신을 부르는 현웅의 목소리에 현민은 자신의 상태가 심각한 것을 알고도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현민의 등은 점박이처럼 이곳저곳에 주먹만한 멍이 들어있었고, 등짝의 색깔도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해서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누구한테 맞았어? 아니면 교통사고?" "조용히 하고, 등짝에 전부 붙여." 현민이 동생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이자, 현웅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등에 빈틈없이 파스만 붙였다. "정말 괜찮은거야?" "그래...." 하지만 대답을 하는 그의 얼굴은 잔뜩 찡그려져 있었다. 팔다리를 움직일 때도, 말을 할 때도, 심지어 숨을 쉬면서 자연스럽게 등과 가슴이 움직이는 것도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 "고마워." 현민의 등짝에 파스가 빈틈없이 붙여지자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털썩! 다친 상처 때문인지 그동안의 피곤이 한번에 몰려온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풀어야할 문제들이 잔뜩 남아있었다. 만약 책에 있는 문제들이 지금의 그는 풀 수 없는 것처럼 아주 어려운 것이라면 모르지만 5서클 미만의 공식만 가지고 창조된 마법이기에 그것들의 문제는 현민이 풀기에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다만 한 문제, 한 문제 푸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간 많을 뿐이었다. -접속하기 캡슐에서 몸을 바로 누운 현민은 등과 가슴이 짓눌리는 듯한 압박을 느꼈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캐릭터 룬 Lv. 39 접속하시겠습니까?] "으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음주, 임신, 부상당한 자는 게임 속으로의 접속이 차단되지만 현민은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속으로의 접속이 가능했다. "휴우.... 게임속까지 고통은 안느껴지는 모양이네." 현실에서는 숨쉬는 것도 힘들었었지만 게임속에서는 건강했을 때의 몸상태가 기억되어 있어서인지 숨쉬는 것 뿐만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것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물론, 현민의 이러한 움직임이 현실에 있는 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소환, 묘, 염화, 윈디아, 담비." "오빠 안녕." "안녕하세요...." "보고싶었어요, 오라버니.... 으흥~." "헤헤, 안녕." 네 명의 정령들이 현민이게 안겨왔고, 현민은 자신의 품에 안기는 꼬마정령들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만들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에 의한 계약이었지만 이제는 네 명의 정령들을 보고 있는 것이 현민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오빠는 공부하고 있을게, 다들 사이좋게 놀아야 한다?" "네~." 많은 시간을 함께해서인지 아니면 공통된 목표(?)가 있어서인지, 소심한 염화까지 합세한 네 명의 꼬마정령들은 어딜가나 함께 다니고, 같이 놀았다. "창조." 네 명의 꼬마정령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현민은 창조의 공간을 열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책을 찾아갔다. 위쪽의 몇장이 넘어간 지금 거대한 책은 싱글침대에서 더블침대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슥, 슥슥슥........ 현실에서는 아픈 몸이지만 가상현실에서는 멀쩡하기 때문인지 현민은 자신이 무리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움직이지도 않고 문제만 풀어나갔다. '하나의 문제를 푸는데 20분으로 잡으면, 하룻동안 쉬는시간 4시간을 제외하고 20시간이니깐 겨우 60개의 문제를 풀 수 있는건가?' 현재 현민의 목표로 잡혀있는 것은 최대한의 정확도를 보이며, 단시간에 빨리 푸는 것이었다. 20시간동안 열심히 풀어봤자 한 페이지도 못 풀기 때문에 그는 60을 기본으로 잡고 그보다 많이 풀어야만 했다. "후우....." 다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은 채 문제만 푼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었다. 조용한 공간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어둠의 공간은 인간에게 끝없는 공포심을 만들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민에게 그러한 것은 적용되지 않은 듯, 그는 문제만 보고 문제만 생각하며, 문제만 풀어나갔다. "저장, 창조종료." 한참 문제를 풀고 있던 현민이 책에서(?) 일어났을 때, 게임 속에서의 시간은 20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다행이 오늘은 64개인가?" "오빠~." "오라버니!" "....." "헤헤헤." 현민이 공간에서 나온것을 느꼈는지 네 명의 꼬마정령들이 문을 박차며 달려들었고, 현민은 꼬마정령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들 놀았지?" "응!" "네!" 끄덕끄덕"헤헤..." 지저분한 묘의 옷(?)을 털어주고, 단정하지 못한(?) 윈디아의 옷을 바로 잡아 준 후, 염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담비의 코를 닦아준 현민은 네명의 꼬마정령들을 정령계로 돌려보내고, 자신도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쉬면서 하는게 어때?" "괜찮아, 정령들을 보니 힘이 생기는걸?" "큐~." "그래그래." 현민과 린의 냉전분위기 속에서 눈치만 살피고 다니던 큐는, 냉전이 끝난 이후, 가끔가다 현민에게 달려와 애교를 부리며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고 다녔다. 둘 사이의 다툼이 있은 후에는 큐 스스로가 절제를 하며 몸매관리에 들어갔고, 몇 달(게임속으로)이 지난 지금에서는 처음보다 성장한 모습의 큐를 볼 수 있었다. 꿀꺽꿀꺽! "하아. 고마워." "어쩔 수 없는걸...." 화해를 한 이후, 그녀는 현민에게 매일마다 영양제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안먹으면 사망이라는 시스템 때문에 먹긴 먹어야 하지만 먹는 시간도 아까운 현민을 생각하며 린이 만든 특제 마녀표 영양제였다. "좀있다 봐." "응." "종료." [종료하시겠습니까?] "응." 위이잉........ "잠깐 식사를...... 크아아아악!!!!!!!" 모터가 꺼지는 소리를 확인하며 캡슐의 뚜껑을 연 현민은 식사를 하기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등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집이 떠나라 비명만 지를뿐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왜그래?" "형!" "무슨일이니?" 갑작스런 비명에 깜짝 놀란 가족들이 현민의 방으로 들어왔고, 그들은 캡슐에 누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현민에게 다가갔다. "크으윽......" 너무나 커다란 고통때문인지 현민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현민은 고통을 참으며 일어나려 애썼다. "911!!!" "엄마, 119!!!" 당황한 어머니가 엉뚱한 번호를 누르자 재빨리 전화기를 뺏어든 현웅이 침착하게 119에 전화를 걸었고, 현민의 아버지는 현민과 대화를 하며, 현민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애애앵~ 아파트 밖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고, 현웅은 집밖으로 나가 구급대원들을 현민의 방으로 대려왔다. "우리 애가 움직이질 못하고 있어요. 흑흑.." 당황한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고, 현민의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안방으로 모셔갔다. "학생, 우리좀 도와주겠어?" "네." 두 명의 구급대원으로는 현민을 안전하게 들어올리지 못했기에 그들은 현웅에게 도움을 부탁했고, 현웅은 현민의 옆으로 들어가 구급대원들이 현민을 드는 것을 도와주었다. "세상에, 이러니 움직이질 못하지!!!" "헉!!" "크으윽........" 구급대원의 말에 현민의 등을 살핀 현웅은 깜짝 놀라버렸다. 자신이 파스를 붙여준 그의 등은 기존의 배 이상 부풀어 있었고, 색깔도 검푸른 색으로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우득! "후웁!!!!!!" 현민의 꽉 다문 입 속에서 이빨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현민이 크게 숨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후우............ 매직보드도 같이." 천처히 길게 숨을 내뱉은 현민의 표정에서 잠시 고통이 사라진 듯 보였으나, 한마디를 내뱉은 현민의 얼굴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통에 가득 차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좁던데 가능할까?" 구급대원들의 예상대로 엘리베이터에는 누워있는 현민이 들어갈 수 없었다. 계단으로 내려가자니 그것도 불가능하고, 설사 헬기가 날아온다 하더라도 한밤중인 지금 그것 역시 불가능한 것이었다. "자, 잠시....." 도착한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려선 현민은 구부정한 몸으로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갔고, 구급대원들은 그의 행동에 경악했다. 엄청 심한 상태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서......." 현민의 음성은 끊겨 있었고, 당황한 구급대원들과 현민의 아버지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하아.... 하아..... 하아....." "괜찮니? 도대체 어쩌다 심하게 다친거야? 응?!" 고통스러워 하는 아들을 보는 것이 괴로운 것인지 현민의 가쁜 호흡소리에 현민의 아버지도 아픈 표정으로 현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띵~ 털썩!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달하자마자 구급대원들에게 몸을 맡기고 있던 현민이 주저앉아 버렸고, 구급대원들은 그런 현민을 서둘러 구급차로 옮겼다.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도 몇 주의 입원은 확정된 현민이었다. -------------------------------------------------------------------------------- 병원으로 실려온 현민은 이곳저곳 끌려다니며 많은 검사를 치뤘고, 지금은 병실에 누워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괜찮은 건가요?" "네, 예상보다 큰 부상은 아닙니다." 현민의 아버지는 담당의사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으며 주저앉았다. 한밤중에 갑작스런 일이라 그런지 엄청난 피곤도 함께 몰려오는 듯 했다.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등 쪽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환자분이 어떤 운동을 하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뼈가 부러질만한 충격들을 모두 근육이 흡수한 듯 보이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등 쪽의 근육이 많이 손상되었고, 지금과 같은 상태이지만 말입니다." "운동을 했습니까?" 현민의 아버지 물음에 노련해보이는 의사가 무언가를 보여주려 했으나 전문용어로 되어 있어서인지 간단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근육이라는 것은 사용하는 부분만 발달하는 것이라서 저희 같은 의사들은 근육을 통해서 환자의 직업을 맞추기도 한답니다. 저분 같은 경우에는 다리 안쪽의 근육과 발의 근육, 어깨와 등, 그리고 허리쪽의 근육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권투같은 격투기를 배운 것 같더군요. 학생들 같은 경우 부모님 몰래 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의사의 말을 하고 있는 동안 현민의 아버지는 현민이 하는 것에 대해서 눈치채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아무리 아들이 자신과 거리를 벌이려 한다지만 자신은 부모이기에 관심을 가져야만 했다고. "등 부분의 근육이 많이 파손되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움직이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환자가 움직일 수 있다면 퇴원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 엄청 말을 늘어놓았지만 결국에는 멍이 들어 못 움직이니 멍이 사라지면 퇴원하라는 소리였다. "아버지..... 퇴원." 밖에서 하는 대화를 모두 들은 현민은 지금 당장 퇴원하기를 원했다. 단순히 멍이 든 것이라면 병원에서 비싼 입원비 내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밥만 먹어도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좀 쉬거라..." "차라....리 집에서.." 매직보드를 가져오기야 했지만 몸이 불편해서인지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커다란 고통이었고, 현실에서의 한시간이면 게임속에서는 4시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현민은 어서 빨리 게임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크으윽...."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볼록하게 부워 있는 등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천천히 심호흡하며, 자신을 말리는 아버지를 무시했다. "후우..... 후우..... 후우......" 방금 도착한 어머니와 동생 현웅이까지 가족 전부가 현민을 말렸지만 현민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가족 모두가 현민의 오기에 져버렸고, 아직은 움직이면 안된다는 의사의 말도 무시하고, 입원한지 하루만에 퇴원해 버렸다. "하악... 하악... 하악..." 부풀어 오른 근육이 폐를 압박해서인지 호흡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현민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온 현민은 가족의 눈치를 보며 캡슐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가족 모두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일의 아침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잠이라도 청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39 접속하시겠습니까?] "크윽.." [캐릭터 룬 Lv. 39 접속하시겠습니까?] "으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등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현민은 자신이 게임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휴우...." 주위의 사물이 보이고,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현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에서 고통을 느끼며 생활하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고통 없이 게임을 즐기는 것이 좀 더 낳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수업도 안하는 학교이지만 이것으로 안가도 되는 이유마저 얻은 현민은 마음 편히 문제를 풀 생각을 했다. '의사도 몇주라고 했으니 2학년이 시작할 때쯤 찾아가면 될거야....' "소환, 묘, 염화, 윈디아, 담비." 비록 현실에서 커다란 부상을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게임속에서 지내는 현민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자, 시작할까!" 단단히 기합을 넣은 현민은 다시금 창조의 공간에서 문제를 풀어나갔다. 앞으로 있을 몇 주, 게임속의 몇 달동안 최대한의 결과를 얻어내야만 했다. "크하하하하하!!!!!!!!!!!!!!" 부상을 당하고 2주일이 지난 지금 현민은 엄청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2주(게임속 8주) 동안 수천, 수만 개의 문제를 풀어나가던 현민은 자신이 풀고 있는 문제들에서 일정한 공식을 발견했고, 그것을 적용하자 한 문제를 푸는 것에 5분이란 시간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증명하실 경우, 새로운 공식으로 등록됩니다.] "크크큭...." 현실적으로 절대 말이 안돼는 일이었다. 천재 수학자들도 만드는 것이 힘든 공식을 평범하다고 하는 현민이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실력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눈앞에 있는 결과는 현실이었다. "하하하!!!!" 숫자와 계산의 순서만 다를 뿐, 거의가 비슷한 문제이기에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현민에게 새로운 공식의 발견으로 인한 계산은 호랑이의 등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었다. 다른것에 관해서는 모르지만 적어도 공간의 문제와 미적분의 문제에서만큼은 암산으로도 계산이 가능해지는 현민이었다. "야?!!!" "응?" 한참을 웃으며 좋아하던 현민은 그제서야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린을 볼 수 있었다. "공식하나 발견한게 그렇게 좋냐?" "하, 하하......." 평범한 그가 공식을 발견했을 리가 만무..... 새로운 공식을 발견한 이유는 순전히 그의 앞에 있는 린의 도움이 컸다. 집구석에 처박혀서 문제를 풀어나가던 현민은 아무리 풀어도 하루에 한 페이지를 풀지 못하자 점점 흥미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19990페이지가 남았다는 것을 생각하자 포기하고픈 마음까지 생겨났다. 이때 그에게 도움을 준 것이 린이었다. 마녀들 사이에서도 천재로 통하는 린이 현민과 함께 문제를 풀자 하루에 한 페이지가 아니라 몇 장이라는 진도를 나가버린 것이었다. 물론, 현민이 푸는 페이지는 한 장도 되지 않은것이 당연했다. "어서 풀어, 우.연.히. 새로운 공식도 발견했으니 더 빨리 풀 수 있지?" "응....." 공식을 발견하기 이전에는 현민이 20분 린이 5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의 현민은 한 문제를 푸는데 5분이란 시간이 걸렸다. 물론, 같은 공식을 사용하고 있는 린은 한 문제를 푸는데 1분을 약간 넘는 정도의 시간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얍!!" "꺄하하하." "큐~."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가운데 현민과 린은 책 위에서(?) 문제만 풀었다. 꼬마정령들도 현민과 린이 공부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그들의 근처로는 다가오지를 않았다. 슥, 슥슥... 사사삭... 사삭. 아직도 어마어마한 두께가 남았지만 지금 정도의 빠르기라면 게임속으로 한달이란 시간이면 충분할 정도였다. 물론, 현민이 푸는 문제는 아주 적을테지만 말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렴." 현민의 상태는 2주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좋아져 있었다. 등에 있는 붓기는 아직 빠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혼자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나아져 있었다. 슥, 슥슥... 오랜만에 가는 학교이지만 현민의 손에는 언제나처럼 매직보드가 들려 있었다. 하나의 공식을 발견하니 푸는 속도가 달라지면서 이제는 책(?)의 반 이상을 넘기고 완성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공식에 익숙해진 린이 한시간에 한 장을 풀고 있는 중이었고, 자신도 3시간 정도에 한페이지는 풀 정도로 실력이 엄청나게 늘어있는 상태였다. "현민아!" "안녕." 이른 아침 문제를 풀고 있는 현민을 발견한 지혜가 현민에게 달라붙었으나 우리의 현민은 지혜의 공격을 익숙하게 피해버렸다. "너 몇 반이야?" 현민이 집에서 요양을 하는 동안 시간은 지나갔고, 어느새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11반." "아깝다!! 난 10반인데." "당연하지, 네 다음 등수가 난데." 현민의 2학기 시험 성적이 88.26점 이었고, 지혜의 시험 성적은 88.27점이었다. 반의 평균화를 위해 성적의 순서대로 배치하는 것이 당연한 만큼 0.01점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절대로 같은 반이 될 수 없었다. "자주 놀러갈게." "오지마." 아무도 없는 시간이기에 지혜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지, 만약 학교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면 지혜와의 대화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현민이었다. 스스로가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것은 아직도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스스슥..... "와, 열심히다." "푸하하하, 어제 내가 엄청난 것을 먹었다니깐...." 시끌시끌. 모두가 처음 만나는 것이기에 어색할 만도 하건만 서로간의 공통된 주제가 있기 때문인지 여러명의 아이들은 군데군데 모여서 「싸울아비」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 드르륵"안녕하세요, 2학년 11반의 담임을 맡게 된 김아영이라고 합니다. 담당 과목은 수학이에요." "와!!!!!!" 수업종이 치고,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인사를 하자 반 아이들 전부가 환호성을 질렀다. 현민이 있는 2학년 11반의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이번에 새로 오신 여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웃는 얼굴이 예뻐 보였고, 나이도 젊어서인지 누나나 언니같은 선생님이었다. "어차피 오늘은 수업이 없으니깐 서로 대화나 하면서 보낼까요?" "네~!!!" 너무나 시끄러운 상황이기에 문제를 풀지 못하는 현민도 매직보드를 종료하고 선생님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시끄러운 상황이 아니더라도 첫날부터 찍혀서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 가벼운 조사부터. 현재 「싸울아비」를 하시는 학생은 손 좀 들어주시겠어요?" 스륵 선생님의 말씀에 반 아이들 전부가 손을 들었고, 그 중에는 현민도 포함되어 있었다. "혹시, 이중에 마법사를 직업으로 하는 학생 있나요?" 스륵.... 모든 학생들이 손을 든 상황에서 미소 띤 얼굴로 주위를 살핀 선생님은 종이에 무엇인가를 적은 후, 다음 질문을 했다. 두 번째 질문에서 거의 모든 학생이 손을 내렸고, 단 세명의 아이들만이 손을 들고 있어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앞에 있는 학생부터, 아이디랑 서클, 그리고 레벨을 말해 줄래요?" 세 명의 아이들 중에 현민이 가장 뒤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실력을 저들에게 맞추기로 생각했다. "아이디는 '검을들고'이고요, 레벨은 95이고, 현재 2서클이에요. 본직(본래 직업)은 이도류 계열의 전사고요." 첫 번째로 말한 남학생은 마법사의 능력을 보조 개념으로 사용하는 유저였다. "다음 학생은요?" 남학생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선생님은 남학생의 손을 내리게 한 후, 중간자리에 앉아 있는 여학생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아이디는 '하늘마음'이고요, 2서클 3단계에요. 레벨은 87이고, 본직은 아처에요." 두 번째로 말한 여학생 역시 본직을 따로 가지고 있었고, 마법사란 직업은 한순간의 재미로 하는 것 같았다. 2서클이라고 해봤자 간단한 문제들이니 크게 시간을 소비하지 않아도 배울 수 있고, 쓸모있는 능력도 있으니 손해보는 것은 아니었다. "으음.... 다들 부잡(job)으로 마법사를 하고 있나 보네요, 다음?" 두 번째로 말했던 여학생의 손이 내려가고, 모두의 눈은 마지막으로 손을 들고 있는 현민에게로 향했다. "아이디는......"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현민은 자신의 아이디와 서클에 대해서 솔직히 말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자신의 아이디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어마어마한 분량의 아티펙트를 만들어 처분한 지금 왠만한 유저들은 자신의 아이디를 알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유치해서 말하기 부끄럽고, 레벨은 39, 서클은 3서클입니다." "와, 3서클 몇 단계이죠?" 현민의 대답에 선생님은 눈을 밝혔다. 3서클 5단계를 넘어서는 순간 인생이 바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변의 대우가 바뀌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제 2학년이 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3서클이라면 학교를 졸업하기 이전에 4서클이 될 가능성은 엄청 크기 때문이었다. "이제 1단계에요." 현민의 담임선생님은 현민을 높게 생각했지만, 반 아이들은 현민을 얕잡아 보았다. 게임이 등장하고 1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레벨이 39밖에 안 됐다는 것은 아무리 3서클이라지만 정말 멍청하다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은 선생님도 「싸울아비」란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싸울아비에서의 직업은 마법사이고, 현재 5서클 1단계이랍니다." "우와!!!!!" 「싸울아비」란 게임 속에서 마법사의 직업은 극악한 난이도 때문에 전체 유저의 3%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3%의 속으로 들어갔을 때, 3%에 속한 유저들의 60%는 한국 사람이었으며 한국에 얼마나 폐인이 많은지를 보여주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들 60%의 한국 사람들 중, 높은 서클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10%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나라에 비하면 이것도 높은 것이지만, 최고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경우 아무리 상위가 많아도 최상위가 없는 한국은 별 볼일 없는 나라였다. 전세계가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상위에 속하는 한사람이 자신의 선생님이시자 모두들은 거대한 함성을 내뱉었다. "일단 종이를 나누어 줄테니, 「싸울아비」속에서의 아이디랑 레벨 등을 자세히 적어주세요. 안적어도 상관은 없지만 저희반은 이번 봄 소풍을 캡슐방으로 갈까도 생각중이니 만약 캡슐방에 가고싶다면 저한테 잘 보이셔야 될거에요." "와아아아!!!!!!" 새 학년을 시작하면서 떠나는 봄소풍을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그들에게 선생님의 캡슐방 소풍건은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표한 학생은 잠깐 면담 좀 할까요?" 움찔! 아무런 잘못도 없었지만 학생이란 신분을 가지고 있는 현민은 '면담'이란 한마디에 마음이 불안해 지는 것을 느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선생님의 뒤를 따라 상담실로 들어갔고, 선생님이 가르키는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푸훗, 긴장하지 마. 네가 마법사라고 해서 부른거니깐." "네...." 현민이 자리에 앉아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자 가볍게 웃은 담임선생님은 현민의 반대편에 앉아 본격적인 질문을 했다. "지금 3서클 1단계라고 했지?" "네." "아까도 말했듯이 선생님도 마법사거든..... 그래서 그런지 같은 마법사를 하고 있는 너한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서 말야." 현민을 앞에 앉혀둔 선생님은 현민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고, 현민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혹시 학원 다니니?" "아니요, 아직 다니지는 않는데요." "시간이 모자르지는 않아? 아무리 현실에서 매직보드로 푼다고는 하지만 게임에서 하는 것보다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잖아?" 이번에 담임을 맡게 된 선생님은 젊어서 그런지 현민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고 있었다. "확실히 야자 5시간이면 게임속의 20시간이니 훨씬 많은 문제를 풀 수 있겠죠." "네가 야자시간에 게임 속에서 서클만 올린다고 한다면 내가 야자정도는 빼줄 수도 있지." "정말요?!" 계속해서 숙여져 있던 현민의 고개가 번쩍 들려지며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그런 현민의 태도에 미소지었다. "일단 한달만 빼줄게. 아직 초반이고, 너에 대한 것을 모르니깐.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지?" "감사합니다!!" 그녀를 향해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숙인 현민의 입은 활짝 웃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시간이 부족한데 쓸데없는 야자시간을 빼준다면 현민은 15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었다. "대신, 수업은 열심히 받아야 해, 알았지?" "네!!" 학교에서는 눈치를 봐가면서 풀어야 하기에, 그로서는 수업을 받고 야자를 빠지는 것이 훨씬 이익이었다. -------------------------------------------------------------------------------- 덜컹! "현민아~." 현민이 옥상에서 문제를 풀고 있을 때, 언제나처럼 지혜가 찾아왔다. "어이, 어이. 나 좀 보지?" "으응." 스스슥.... 하지만 바쁘게 문제를 풀고 있는 현민은 반사적인 대답을 했을 뿐, 지혜를 향해서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몸은 괜찮아 진거야?" "으응." "문제 풀고 있어?" "으응." "아직도 많이 남았나봐?" "으응." 계속해서 말을 던졌지만 현민의 응답은 전부 같았다. 계속해서 무성의한 대답을 듣고 있던 지혜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 "으응." 지혜가 어떻게 하던지 말던지 대답은 착실히 해주는 현민이었다. 스윽. 툭, 툭.... "현민아 나 어때?" 마의와 조끼를 벗고, 상의의 단추 2개를 푸르자 지혜의 가슴이 아슬아슬하게 보였으나 현민의 관심은 매직보드 밖에 없었다. "으응...." "야!!" "응." 현민의 태도에 화가난 지혜가 강하게 소리치자, 현민도 끝을 끌지않고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겨우 이것이 끝이었다. 이런 현민의 반응에 지혜는 헛웃음도 나지 않았다. "현민아~." 현민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지혜는 달콤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현민에게 붙으려 했으나 현민이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옆으로 옮기기가 무섭게 자리를 일어나 버리는 현민 때문에 속이타는 지혜였다. "현민아 우리 키스하자, 딥키스 어때?" "으응."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관심없는 현민은 대답만 착실히 했고, 그의 대답을 들은 지혜의 입에는 사악한 미소가 생겼다. 스슥, 슥.... 와락! "으음..?!" "뭐하는거야?" 문제를 풀고 있는 현민을 잽싸게 껴안아버린 지혜가 현민에게 입을 맞추려 했으나 지혜보다 빠르게 올라온 현민의 손이 지혜와 그의 입술 사이를 가로막으며, 지혜의 기습을 막아내었다. "그보다 떨어져주지 않을래?" 지혜가 벗은 옷은 아무렇게 바닥에 떨어져 있고, 상의의 단추는 두개나 풀어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둘이 붙어있으니 만약 누가 본다면 현행범으로 연행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현민이었다. "칫!" "옷도 단정히 입어. 누가 보면 어떡해?" "......욕심쟁이." "윽!!" 남들이 오해할것이 걱정되어 옷을 입으라고 한 것인데, 지혜는 그런 현민의 생각을 엉뚱하게 해석해 버렸다. "오늘이 마지막이란 말야." "정말?" 야자를 빼주신 친절한 담임선생님 덕분에 현민은 새 학년 시작 후 2주를 넘기지 않아서, 거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것은 20장 정도였고, 이정도라면 오늘 하루 투자해서 충분히 가능한 양이었다. "와!! 정말 많이 풀었네?" "그, 그렇지....." 침대만한 책의, 높이를 100%로 치고 계산을 하면 이중에 현민이 푼 것은 20%정도였다. 이것도 많이 잡아서 이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15~17%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당연히 나머지의 모든 문제들은 게임속에서 린이 열심히 풀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린이 도와주었기에, 혼자서 풀면 1년이 걸릴 것을, 단 2개월만에 끝내버릴 수 있었던 현민이었다. "그럼 이제는 뭐 할 거야?" "마법창조, 너는 안 만들어?" "나도 필요한건 만들고 있어." "그래?" 현민의 물음에 지혜는 웃음을 흘리며 두 주먹을 불끈 지었다. "당연하지, 호호." 지혜의 성격과 능력상 하찮은 마법은 아닐 것이고, 도대체 어떠한 마법인지 내심 궁금한 현민이었다. 하지만 지혜가 대답을 해줄 리가 없기에 현민은 자신의 질문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나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7서클의 마법 하나에 매달려서 고생을 했지만 현민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수많은 종류의 마법이 담겨 있었다. 학교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현민은 곧장 「싸울아비」속으로 들어갔고, 문제를 풀고 있는 린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상태창." ------------- 이름 : 룬. Lv : 39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212(18) 정신 : 284(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0 방어력 : 52 생명력 : 2495(+2300) 정신력 : 57705 ((+16000)*3) 물 속성 친화력 : 195 불 속성 친화력 : 62 땅 속성 친화력 : 62 바람 속성 친화력 : 62 정령력 : 1 물 Lv 1 바람 Lv 1 불 Lv 1 땅 Lv 1 보너스 스텟 : 0 -------------- 말도 안돼는 생명력과 정신력이었지만 이번의 패치로 현민의 상황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번 패치로 마녀라는 직업의 마법사용시 촉매가 필요하도록 설정하였습니다. 촉매의 기준은 마나가 담겨있는 것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또한, 아이템에 등급이란 것을 추가했습니다. 가장 낮은 E급부터 S급, 신급까지 있으니 아이템을 구매하실 때 참고하십시오. 몬스터와 유저들의 마법속성저항력을 기존보다 약간 높였습니다. 추가로 그동안 적용되지 않았던 지능의 기능이 추가됩니다.(마법공격력 상승)]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번의 패치는 마녀의 마법진을 겨냥하여 한 패치일 뿐이라 아티펙트의 제작까지는 걸리지는 않았다. 마지막의 속성저항력이 걸리기는 했지만 어차피 현민이 사용하는 마법들은 속성이 필요없는 독특한 것들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다, 다했다......" "큐~." "끝!" "오빠~." "오라버니~." "...." "헤헤...." 네명의 꼬마정령들이 한번에 안겨왔고, 현민은 피곤한 얼굴로 그들을 안아주었다. 자신은 아직 사용이 불가능한 마법이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린은 사용할 수 있었고, 자신도 6서클만 된다면 한서클정도야 마법진으로 극복이 가능했다. 비록 사용할 수 없는 7서클의 마법이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고, 나머지는 시간과 노력이 해결해 주니 크게 문제될 것도 없었다. 이제부터 그가 해야 할 것은 7서클의 마법같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 가능한 마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천벌(7서클) 소모 정신력 : 500 능력 : 하늘에 있는 모든 벼락을 모아 한곳에 내리게 한다. 현재 단계 : 0 주문 :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하늘의 눈으로 대지를 바라보............... -------------------------------------------------------------------------------- "차렷! 선생님께 경례!" "감사합니다~." "모두들 내일 소풍갈 돈 챙겨오는 것 잊지마세요~." "네!!!" 초반에 말했던 내용 그대로 이번에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캡슐방을 소풍장소로 잡는 대담함을 보여주었다. 교장선생님과 단독 면담을 가졌다는 말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이었다. "현민이는 내일 만나서 검사받을 거니깐 열심히 해야한다." "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가방을 둘러맨 현민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집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그의 손에는 매직보드가 들려있었다. '이제 3개......' 천벌이란 마법을 완성한 현민은 그동안 구상하고 있었던 마법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다. 과거의 무식한 마법책을 보다보니 백과사전정도(...)의 책은 이제 간에 기별도 안가는 현민이었다. 인탱글(Entangle)(2서클) 소모 정신력 : 30 능력 : 나무의 뿌리를 소환하여 대상을 묶는다. 현재 단계 : 10 주문 : ??? 기존에 있던 인탱글 마법을 강화시킨 현민만의 인탱글 마법은 주변에 나무가 있던 없던 사용할 수 있었고,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오우거의 움직임을 멈출 정도로 강해진 마법이었다. 수중감옥(3서클) 소모 정신력 : 160 능력 : 끈적거림과 독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물을 소환하여 대상을 가둔다. 현재단계 : 10 주문 : ??? 현민이 두 번째로 만든 마법은 예전의 방식을 생각하여 만든 마법이었다. 실드의 마법공식에서 외형을 이루는 마나의 공식과 아쿠아의 물을 소환하는 마법을 합성하고, 이것에다 물의 성질을 바꾸는 인첸트 마법 공식을 추가하여 상대가 물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도록 만든 마법이었다. 거기에 독을 추가하여 살아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리무브 소울(5서클) 소모정신력 : 500 능력 : 상대방의 정신력을 모두 소모시켜 일시적으로 행동불능 상태를 만든다. 현재단계 : 1 주문 : 그대의 영혼에 담긴 강인한 힘이 자연의 의지에 따라 흩어지니........ 세 번째 마법은 리무브 커스의 변형마법으로 저주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정신력을 없애버리는 마법이었다. 정신력을 사용하는 특정 직업들에게 현민의 이 기술은 상당한 타격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었다. "어서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이밖에도 다양한 마법의 구성들을 가지고 있는 현민이었지만 시간이 부족한 이유로 아직까지 만들지는 못하는 중이었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39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아직까지 눕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누워서 해야하는 캡슐의 특성상 고통을 참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르니 준비를 해야지." 이번에 현민이 생각하는 것은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마법의 개량이었다. 식물계열 쪽의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현민을 제한하기 위해 운영자들이 많은 제약을 걸어왔고,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마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클을 늘린다 하여도 예전보다는 강하게 만들거야.' 어차피 과거에도 단번에 사용하던 마법은 아니기에 서클이 올라가도 상관은 없었다. 서클보다는 능력이 훨씬 우선적이기 때문이었다. "소환, 묘, 염화, 윈디아, 담비. 나가서 놀고 있을래?" "네~." "히잉~." 현민의 말에 윈디아가 많이 아쉬워했지만 현민이 마법을 만들기 때문인 것을 알고 있기에 특별히 매달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스스슥....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이 소풍을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현재 사용가능한 공격법이 없는 현민으로서는 최대한 예전의 마법들을 살려야만 했다. "아참, 윈디아~, 린 좀 불러줄래?" "네~." 현민의 부름에 순식간에 나타난 윈디아가 문을 열고, 문 앞에 있는 린을 불렀다. "언니~, 놀다가요." "....." 업소용 맨트를 날리는 윈디아 때문에 잠시 정적이 있었지만 정신을 차린 현민이 그런 윈디아의 머리를 가볍게 때려주고, 린에게 수십장의 마법진을 건내주었다. "응? 이게 뭐야?" "현재 구상중인 마법진들인데, 확인 좀 해줄래? 너도 알다시피 내가 구상은 하는데 실현에서 좀 약하잖아. 아직 모르는 마법진의 구성도 많고." "응, 알았어." 현민에게 마법진을 받은 린은 마녀의 호기심이 동했는지 현민의 마법진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가끔가다 만드는 현민의 마법진은 약간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에는 감히 누구도 그의 마법진을 무시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휴우....." "오라버니, 나 무릎베개." 반쯤 감긴 눈으로 말하는 윈디아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윈디아를 안아 침대에 눕힌 후, 무릎배게를 해주었다. "흐응~." 부비부비. 현민의 품이 좋은것인지 정령들은 언제나 어리광을 부렸고, 현민도 그런 정령들의 어리광을 웃으며 받아주었다. 슥, 슥슥..... 염력으로 허공에 책을 띄우고 한손으로 문제를 풀었고, 놀고있는 왼손은 윈디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스윽.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현민의 손길을 느끼고 있던 윈디아는 천천히 잠에 빠졌다. "새근.... 새근...." 스슥, 슥... 이제는 한 문제에 1분도 걸리지 않는 실력으로 발전한 현민은 빠르게 문제를 풀어나갔고, 부드러운 바람이 방안을 훑고 지나갔다. 현민은 게임을 즐기기 보다는 이런 편안한 삶을 겪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즐거움을 느꼈다. "휴우... 끝났다." "우웅.... 오라버니?" 현민의 말소리에 잠이 깼는지 윈디아가 눈을 비비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어?" 눈을 비비고, 현민의 무릎에서 일어난 윈디아는 현민에게 누워있는 것이 자신만이 아닌것을 볼 수 있었다. 언제 온 것인지 현민의 주위에는 묘, 염화, 담비도 있었고, 각자 한자리씩 맡아 잠을 자고 있었다. "오랜만에 오빠랑 산책갈까?" "응!" 현민의 물음에 윈디아가 밝은 얼굴로 대답했고, 윈디아의 대답소리에 나머지 정령들도 하나둘 일어나고 있었다. "가볼까?" "네~." "예!" "...." "웅~." 4명의 꼬마정령이 현민에게 매달렸고, 현민은 모자를 잡은 채, 숲을 날아다녔다. "응?" 숲을 날아다니던 도중 하나의 무리를 발견한 현민은 정령들에게 신호를 보낸 후, 조용히 그들의 머리위로 날아갔다. "야, 야. 레벨을 조금 더 올리고 오자니깐?" "레벨 100짜리가 이렇게 많이 있는데 마녀하나 못잡겠냐?!" 그들은 과거 하피를 괴롭히다 현민에게 죽음을 당한 일련의 무리들이었다. "그래서 화속성 100%방어라는 쓰레기 방패도 샀잖아!!!" 일반 유저들은 속성이 담겨있는 아이템을 쓰레기라고 칭했다.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들도 적고, 유저들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속성방어력을 맞추고 사냥 다니는 것은 바보나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우거의 속성이 불이라고 해서 불속성방어력을 맞춘다고, 맞아서 죽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얘들아, 눈감아." 스윽. 아이들의 눈을 감게 하고, 윈디아에게 소리까지 차단시킨 현민은 인벤토리에서 마녀의 가면을 꺼내어 썼다. "수중감옥, 수중감옥, 수중감옥.........." 젤리같은 느낌의 물덩어리가 그들을 감쌌고, 그들은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지 괴로운 표정으로 발버둥쳤다. 하지만 하늘을 날고 있는 현민은 그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는듯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탁. 메모라이즈 해놓은 5서클의 블링크로 그들 앞에 나타난 현민은 다시한번 그들에게 잔인한 경고를 해주었다. "한번만 더 찾아온다면 죽지도, 살지도, 도망가지도 못하게 만들어주마." 뽀글뽀글..... 수많은 준비를 하고 온 것 같았지만 현민의 마법 한방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들 모두는 천천히 죽어갔다. 수중감옥은 상대가 완전히 죽고 나서야 사라졌고, 현민은 자신이 만든 마법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만들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어차피 가상현실, 저들은 유저이니 죽어도 죽는게 아닐테지....... 현민아 마음 편히 가지자.' 살아있는 생명을 죽인다는 것에 부담을 가지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이지만 현민은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 "얘들아 가볼까?" "응." 현민의 말을 듣는 착한 아이이기 때문에 보지도 듣지도 않은 꼬마정령들에게는 아직도 순진함이 묻어있었다.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 현민은 원래의 목적지인 드워프의 마을로 향했다. 접속종료를 하기 이전에 반드시 부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허허, 오랜만일세." "죄송하지만 부탁이 있어서요." 언제나 부탁이 있을 때만 찾아오는 자신을 발견한 현민은 드워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끔가다 실용성있는 마법진을 가지고 오긴 하지만 그때도 역시 부탁이 있기에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신경쓰지 말고, 말해보게. 그대가 만들어준 불꽃은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 말일세." 드워프 할아버지의 말은 현민이 만들어준 불꽃이 꺼지지 않는 이상 당당하게 찾아와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여성의 골격을 만들어 주실 수 있으세요? 인형을 만들 생각이거든요." "흠? 여성의 골격이라...... 자네 정도의 크기를 말하는 건가?" 이상하게 쳐다보는 드워프할아버지의 의미를 깨달은 현민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는 변태가 아니에요. 그냥 작은 인형을 만들려고 하는 거에요." "작은 인형이라......" 아직도 미심적은 눈초리가 남아있었기에 현민은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제가 하나의 인형술을 얻었는데, 그것을 기초로 해서 골렘을 만들려고요. 마법진을 그려야 하니 크기가 크면 편하긴 하지만 작아도 문제가 되는 것은 없어요. 그리고 지금 만들려고 하는 골격의 크기는 50cm정도면 될 듯하네요. 그정도의 크기가 안고 다니기에도 편할 것 같고, 모습도 귀여울 것 같구요." "호오~. 그렇게 대단한걸 만든다는데 우리 드워프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내 완벽한 여성의 골격을 축소해서 만들어 주겠네." "감사합니다." 하루의 예정된 일과를 마친 현민은 밝은 얼굴로 마녀의 마을을 향해 날아갔다. 게임속에서 어떤 소풍을 보낼지 모르지만 내심 기대가 되는 현민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한손에 매직보드를 챙겨든 현민은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향했다. 소풍가는 날이기에 가방도 없었지만 현민의 왼손에는 언제나 매직보드가 들려있었다. "어? 안녕." "응. 안녕." 언제나 이른아침 똑같은 시간에 등교를 하는 현민이기에 그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반에는 자신말고 일찍 와있던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풍가는 날이라서 그런지 몇몇의 학생들이 오늘의 캡슐방 소풍을 기대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슥슥, 슥슥슥..... "정말 열심히 하네? 저번에 3서클이라고 했지? 몇 단계야?" "이제 2단계야..." "와!! 조금만 있으면 S대네?" "으응...." 2서클 2단계부터 2서클 5단계까지가 고등학교 수준의 과정이고 2서클 6단계부터가 대학교 수준의 문제들이었다. 서클의 수준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기 때문에 4서클 1단계(3서클 6단계)의 수준이 대학교의 졸업자 수준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실력을 갖춘 고등학생들을 자신의 학교에 넣어준다고 말하는 대학교들은, 알고보면 너무 뻔뻔한 것이었다. 빌고 빌어도 그학교에 들어갈까말까한데 실력이 되니 일단은 받아준다고 설치는 것을 보면 생각이 단순하거나 모자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시끌시끌.... 현민에게 관심을 가졌던 여학생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교실은 학생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드르륵... 우당탕탕 "모두들 돈은 넉넉하게 가져왔죠~?" "네!!!!" "이 근처에서 지존 캡슐방이 가장 좋다고 해서 예약하고 왔으니 가볼까요?" "와아!!!" 모두가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담임선생님은 정말로 캡슐방을 소풍의 장소로 잡고 있었다. 게다가 근처에서 서비스가 가장 좋아 사람이 많은 지존 캡슐방을 잡은것을 보면 몇 일전부터 예약했다는 말이었다. "모두가 모일 장소는 '천상의 계곡'이라는 곳이에요. 만약 안오는 사람이 있을 경우, 안오는 사람은 결석 처리할 테니 알아서 하세요. 만약, 돈이 없다면 선생님한테 귓말하세요. 아이디는 '달의마녀'이니까요." "넵!!" 현민을 포함한 아이들 모두는 힘차게 대답했고, 서둘러 캡슐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담임선생님이 돈을 걷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39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어? 루나야, 오늘은 일찍왔네?" 아직 올 시간이 아닌 현민이 그의 방에서 나오자 린은 깜짝 놀란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린, 나 잠깐 나갔다 올게. 한동안 정령좀 봐줘." "알았어." 말썽을 피는 것도 아니고 현민을 닮아(?) 귀여운 정령들이기에 린으로서는 그들을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소환, 묘, 염화, 윈디아, 담비. 언니말 잘듣고 사이좋게 놀아야 한다? 오빠는 잠깐 나갔다 올게." "히잉~, 나도 갈래." "흐응~, 오라버니...." 울먹울먹.... "흐에에엥~." 현민의 말에 소심한 염화는 제대로 울지도 못한 채 눈물만 글썽거렸고, 담비는 우렁차게 울음을 터트렸다. "담비,아~." "으아앙~, 아~." 말 잘 듣는 담비는 울면서도 현민을 따라했고, 현민은 담비의 입에 정령석 하나를 넣어주었다. "너희들도 하나씩." 우물우물~ 쏙. "응? 윈디아는 안먹어?" 재빨리 정령석을 받은 묘가 커다란 정령석으로 볼을 부풀렸고, 염화도 조그만한 입을 커다랗게 만들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윈디아만은 현민이들고 있는 정령석을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한번 빨아주시면 안돼요?" 콩! "아얏!" "그냥 드세요~." "히잉~." 윈디아의 머리에 알밤을 놓아준 현민은 그녀의 입에 바람의 정령석을 넣어주었다. 쪽! "다녀올게." 발그레... 윈디아의 얼굴을 잡은 현민이 윈디아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어 주었고, 그것을 목격한 나머지 3명의 정령은 경악을 내뱉었다. "오빠, 나도! 나도!!" 물끄럼..... "나! 나! 나!" 안길려고 하는 묘와 부담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염화, 그리고 폴짝거리는 담비까지 모두에게 뽀뽀해준 현민은 마녀의 지팡이(낫)을 꺼내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천상의 계곡'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천상의 계곡으로 이동시켜 주세요." "22골드입니다." "크......." 상당한 돈이 나갔지만 시간에 늦지 않는게 더 중요하기에 현민은 과속비행(?)에 텔레포트까지 이용하며 소풍의 장소로 향했다. 물론, 그곳에 가기 전에 초보용 아이템으로 바꾸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슈웅. "음?" "어머? 일찍왔네." 현민이 천상의 계곡으로 텔레포트 했을 때, 그 장소에는 현민의 담임선생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아무도 안 왔나요?" "응. 저기 오네. 직업이 테이머인가봐?"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현민은 반장이 그리폰을 타고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장의 등 뒤에 누군가도 타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아참, 현민이 너 마법 검사해야지?" 선생님의 말에 시선을 돌린 현민은 라이트 마법을 시전했다. "라이트." "와~, 정말이네?" 3서클 1단계인 경우 1서클 마스터인 것은 당연하기에 현민이 시동어만으로 마법을 사용하자 담임선생님은 밝은 얼굴을 했다. 선생님에게 마법을 검사받고 시간이 흐르자 하나둘 소풍의 장소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직업이 많이 있네요." 선생님의 말대로 현재 모여있는 학생들은 다양한 직업들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 그보다 옷 좀..... 노출이 너무 심해요." "어머? 이게 마법사의 기본인데?" 담임선생님은 현실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화려한 문신과 노출도가 심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여기 로브요." "오, 땡스." 보다못한 반장이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로브를 꺼내 선생님에게 건내주었고, 남학생들은 아쉬운 눈길을 하며 로브를 건내준 반장을 째려보았다. 끼이익!! 남학생들의 시선이 불쾌했는지 그리폰이 커다란 울음을 내뱉었고, 남자들은 바로 꼬리를 말았다. "자자, 다들 조용!!" 선생님의 한마디에 웅성거림이 사라져버렸다. "일단, 가볍게 사냥을 할 생각이고, 사냥을 한 이후, 계곡에서 캠프를 할 예정이에요." "선생님!! 여기 오우거랑 트롤 같은 몹이 나오는 곳인데 위험하지 않아요?" 과거라면 우습게 사냥하는 오우거였지만 패치 이후의 오우거는 소설속에 등장하는 공포의 존재로 돌아가 있었다. "다굴에는 장사없답니다, 호호." 꿀꺽! 그동안의 경험으로는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겠지만 왠지 모르는 한기 때문에 몸을 떠는 모두였다. "자, 파티도 맺었으니 출발!!" 그녀를 선두로 36명이 뒤따르자 엄청난 대군이 되어버렸다. 몇몇의 학생들은 직업이 테이머인지 몬스터를 타고 따라왔으며, 어떤 학생은 기사처럼 말을 타고 쫓아왔다. "선생님 제가 몰이해 올까요?" "응? 그래 주면 좋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선생님의 걱정어린 말에 그 남학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마세요, 그보다 몇 마리나 몰아올까요?" "흠..... 일단 세 마리 잡아볼까?" 주위를 한번 둘러본 선생님은 학생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나 보였기에 일단 세 마리를 잡아보기로 했다. 스윽. "응?" "와!" 남학생이 꺼내는 무기를 본 모두는 설마하는 생각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삐리리~♪♬ "피리부는 사나이...." 정말 말도 안돼는 직업이고 능력이었다.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은색의 아름다운 피리를 꺼내든 남학생은 피리를 입으로 가져가 아름다운 곡을 연주했고, 그가 연주하는 곡은 숲에 울려퍼졌다. 크오오!!! "왔다!!" 어디선가 몬스터의 울부짖음이 들려왔고, 모두들 각자의 무기를 꺼내며 곧 시작할 전투를 준비했다. 쾅쾅쾅!!! 주변의 나무를 부수며 세 마리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마리의 오우거와 한 마리의 트롤은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며, 눈앞에 있는 2학년 11반을 맛있는 먹이처럼 바라보았다. "어차피 경험치는 같으니깐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싸우세요~." "넵!!" 전사계열의 아이들이 오우거와 트롤을 둘러쌌고, 나머지들은 멀리서 그들을 보조해주었다. "축복! 힐! 힐! 힐!" "치료!" 역시 다굴에는 장사가 없는 듯, 무식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자랑하는 오우거들도 아이들의 공격에 바로 누워버렸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선생님은 그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고, 현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7명씩 짝을 만들기로 하죠. 사람이 너무 많으니 복잡한 것 같네요. 일단 힐러계열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7명씩 맞춰서 모이세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서로의 직업을 생각하며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직업이 마법사인 현민은 어느곳에도 끼지 못한 채 선생님의 곁에서 멀뚱히 서있어야만 했다. "응? 현민이 너는 안끼니?" "저야, 저렙이고 마법사인걸요." 현민은 본래의 실력을 숨긴 채 시무룩하게 말했고, 선생님은 그런 현민을 바라보았다. "마법이라는 것은 신기한 거야, 아무리 낮은 서클의 마법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가 나오거든. 그래서 마법사를 한거고 말야. 너도 마법사이니깐 '어릿광대'를 알지? 그 사람이 처음 토너먼트에 나왔을 때가 아마 3서클인가 4서클일거야. 너도 알다시피 3서클부터 공격마법이 있는데, 그 사람은 2서클의 마법만 가지고 모든 유저들을 물리쳤어, 지금은 얼마나 대단한 마법을 만들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가 한다면 너도 할 수 있는거야."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던 현민은 웃음이 났다. 한명의 학생을 걱정해서 이런 말을 해주는 선생님을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모르겠지만 여직껏 현민의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들 중에서는 그런 선생님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걸 잘 봐. 3서클까지의 마법만 사용할 테니." "네." 자신에게 어떠한 것을 보여주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현민은 선생님의 실력이 궁금했기에 조용히 그녀의 마법만 기다렸다. "선생님 이번에는 여섯 마리에요." 삐리리~♪♬ 다시한번 숲에 그의 피리소리가 울려퍼졌고, 이어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쿵! "왔다! 한 마리는 내꺼다!!" 큰 목소리로 외친 선생님은 마법지팡이를 꺼내어 한 마리의 오우거를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슬로우! 디그!" 선생님의 마법에 달려오던 오우거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고, 이내 땅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홀드! 인탱글! 인탱글!" 하반신이 땅속으로 들어가자 당황한 듯한 오우거가 기어나오려고 했으나 선생님의 마법에 움직임을 멈추어 버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그런 오우거를 거대한 나무뿌리로 묶어 버렸다. 주위에 있는 것이 커다란 나무라 그런지 오우거를 묶고 있는 것은 엄청 컸다. "라이트! 홀드!" 순식간에 오우거를 꽁꽁 묶어 버린 선생님은 오우거의 머리로 다가갔고, 오우거의 눈앞에 라이트를 시전해버렸다. 눈앞에서 터진 강한 빛에 시력을 잃어버린 오우거가 괴성을 질렀지만 다시 이어진 선생님의 마법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어 버렸다. 콰직! 크아아앙!!! 눈이 안보이자 더욱 포악해진 오우거가 두꺼운 나무뿌리를 부셔버렸고, 선생님은 그런 오우거에게 다시한번 마법을 걸었다. "디그! 홀드! 인탱글!" 하반신만 땅속에 있던 오우거가 상반신마저 땅속으로 들어가버렸고, 잠시 움직임을 멈춘 오우거의 목과 얼굴을 거대한 나무뿌리가 감싸버렸다.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마지막으로 현민의 주특기인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가 실현되었고, 오우거의 목을 감싸고 있던 가느다란 나무뿌리와 얼굴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나무뿌리가 순식간에 커지더니 오우거의 목을 부셔버렸다. 마지막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오우거에게 홀드를 걸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홀드를 걸지 않았으면 그녀의 마법은 산산히 부서졌을 것이었다. "와!!!!!!" "멋져요!!!" 이미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선생님들 구경하고 있던 학생들은 선생님의 마법으로 오우거 한 마리가 쓰러져 버리자 환호성을 내뱉으며 좋아했다. "어때?" "대단해요." 현민의 입장에서는 필요없는 마법을 난발한 선생님이었지만 현민은 선생님의 실력을 높이 보았다. 패치가 된 이후, 오우거란 존재에게 거의 모든 마법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실력이면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 "자~, 적당히 놀았으니 계곡에 가볼까요?" 상황을 정리한 담임선생님은 원래의 예정장소인 계곡을 향해 발을 옮겼다.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있는 현실에서는 물놀이가 이른감이 있었지만 특정한 지역이 아닌 이상 언제나 따뜻한 날씨인 가상현실에서는 어떤것이던지 상관없었다. 터벅터벅. "응? 선생님!!!" 모두가 계곡을 향해 길을 만들며 걸어가고 있을 때, 한명의 학생이 선생님을 향해 다급한 음성을 내뱉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선생님이 움직임을 멈추자 모두의 시선이 선생님을 부른 학생에게로 모아졌다. "몬스터에요!! 최대 보스급!!!" 흠칫!! 거짓인지 진실인지 모르는, 학생의 말이었지만 그의 말을 믿어서 손해보는 것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천상의 계곡'에 있는 몬스터의 목록이 천천히 떠올랐고, 그중 마지막에 있는 보스급 몬스터를 기억해 냈다. "제길, 자이언트 오우거......" '오우거 킹'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자이언트 오우거는, 일반오우거의 크기가 3m~5m인 것으로 계산할 때, 그의 5배에 해당하는 덩치와 세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쾅! 푸드득! 거대한 광음과 함께 숲속에서 쉬고 있던 새들이 깜짝 놀라 하늘로 날아올랐고, 지진같은 땅울림에 36명의 학생과 선생님은 잔뜩 긴장했다. "소풍날 보스몹을 잡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겠는데요? 쿠쿡." "푸훗."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한 선생님의 농담에 현민이 먼저 웃음을 흘렸고, 반 아이들은 현민을 따라 웃음을 흘리며 긴장을 풀었다. 쾅!! "왔다!!" 아직도 멀리 있었지만 나무보다 거대한 키를 가진 오우거는 쉽게 눈에 띄었고, 모두는 각자의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삐리~♪♬"와이번 소환!" "여신의 축복이 그대와 함께하기를! 블레싱!" "마갑(馬鉀)착용!!" "죽음의 신으로부터 영광이! 버서커!!" .... 피리부는 사나이의 피리소리에 쥐를 비롯하여 쥐와 관련있는 다람쥐와 두더쥐 수백마리가 모습을 들어냈고, 그들의 뒤로 어디선가 나타난 렛맨들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폰을 소환하고 있던 반장은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의 뒤를 따라 와이번라이더가 하늘로 날아올랐으며, 기사처럼 차려입고 있던 학생의 말은 묵빛의 멋있는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 성직자들의 다양한 보조마법이 이어졌고, 아처계열들도 화살과 스킬을 정비했다. 크아아아앙!!!!!!!!! "꺄아악!!" "크억!" "윽!" 거대한 울부짖음에 피어 스킬이 있었는지 몇몇의 학생들은 스턴에 걸린듯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임이 가능한 학생들도 전부다 귀를 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현민아! 움직일 수 있어?!" "........네." 레벨이 낮은 현민의 경우 피어만으로도 사망이 가능하기에 담임선생님은 레벨이 낮은 현민의 앞에서 온갖 방법으로 피어를 막고 있었다. '나서야 하나?' 약간 무모하긴 하지만 현민이 모든 실력을 보일 경우 저 정도의 몬스터야 가볍게 잡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반에 있는 아이들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현민은 쉽사리 나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처들은 눈을 노리고 나머지는 각자 공격!!" "하압! 소드댄싱!!" "타겟 온! 파워샷!!" "타겟 온! 헤드샷!!" "슬로우! 월보!" "차지!!" "파워 붐!!" 하늘을 날고 있는 와이번과 그리폰이 불꽃을 쏘아대며 자이언트 오우거를 공격했고, 밑에 있는 아이들이 자이언트 오우거의 다리를 공격했으나 그들의 공격에 오우거는 상처하나 나지 않았다. "시팔!! 나 오늘 끝까지 간다!!! 특수스킬 '암흑의 검' 사용!" "여신이여, 그대의 힘으로 내 앞의 적을 저주하소서!!" "특수스킬 '검기' 사용! 난무!!" "이도류 비전!! 귀안!!" 수십번의 칼질로도 상처하나 나지 않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특수스킬부터 시작하여 그동안 숨겨왔던 다양한 기술들을 전부 펼쳐냈고, 그들의 기술은 하나하나가 대단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술을 맞고 있는 오우거는 무식한 방어력 때문인지 작은 상처밖에는 나지 않았다.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모두가 싸우고 있는 가운데 조용히 뒤로 빠진 현민은 주위에서 가장 거대해 보이는 나무로 다가가 3서클 마법을 사용하여, 나무의 크기를 오우거 이상으로 만들었다. "응?" "어라?" 갑작스레 솟아난 나무에 깜짝 놀란 반장과 와이번라이더가 잠시 시선을 돌렸고, 순간의 방심에 오우거가 휘두른 나무에 맞을 뻔 했다. "인탱글, 인탱글, 인탱글, 인탱글, 인탱글......" 쉬리릭, 쉬리릭, 쉬리릭.......... 수십번의 인탱글에 거대해진 나무의 끝이 조금씩 땅으로 내려왔고, 거대한 나무는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며 허리의 건강함(?)을 널리 알렸다. "흠...." 나무의 끝부분이 살짝 땅으로 내려와 나무의 모양이 n자가 되었고, 현민은 그런 나무를 잠시 바라본 뒤, 아직도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아처들은 나머지 한쪽의 눈을 계속 겨냥하고, 전사계열들은 나무위로 올라가 상체와 얼굴들을 공격해!!" 세 개의 얼굴 중 가운데의 얼굴에 있는 하나의 눈에는 누군가가 쏘았을 강철화살이 박혀 있었고, 그의 오른쪽 다리에는 강력한 턱을 가진 쥐들이 갉아먹고 있었다. 왼쪽다리에는 수많은 스킬이 난무한 탓인지 이곳저곳의 가느다란 실선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쏟아지는 안개속의 순간적인 밝음으로......" "응? 이런!! 실드! 실드! 실드! 실드! 실드!" 무언가 주문을 외우는 선생님의 곁으로 다가간 현민은 그녀가 외우는 주문이 5서클의 라이트닝인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실드를 밟아 허공으로 솟구쳤다. "반장!!!!" 끼이익!!! 반장을 부르는 현민의 음성에 무엇인가를 느낀것인지 그리폰이 빠르게 날아와 그를 반장의 뒤에 태웠고, 순식간에 그리폰의 등에 올라탄 현민은 반장에게 부탁을 하여 오우거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아쿠아, 아쿠아, 아쿠아, 아쿠아......" 선생님이 주문을 외우는 동안 현민은 자이언트 오우거를 향해 수십발의 아쿠아를 쏘았다. "아이스!!" 오우거의 몸에 묻어있던 물기와 허공에 떠있는 물기들이 얼으면서 주변에 서리가 생기기 시작했고, 현민은 반장과 와이번 라이더에게 다급히 말했다. "오우거의 등을 향해 브레스!!!" 푸오오오!!! 푸화확!! 크아아아앙!!! 와이번과 그리폰의 화염브레스가 등 한부분을 가격하면서 고통을 느낀 자이언트 오우거가 본능적으로 불길을 피해 앞으로 걸어나갔고, 현민이 설치해 둔 덫의 앞까지 갔다. "아쿠아! 아이스! 아쿠아! 아이스! 아쿠아! 아이스!!........" 현민이 설치해 놓은 덫과 선생님의 마법이 발동하기 직전까지 현민은 자이언트 오우거의 주변에 끊임없이 얼음먼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르니 강림하라!!" "윈드커터!!" 팍! 선생님의 마법이 발동하기 직전, 선생님보다 먼저 발동한 현민의 마법이 거대한 나무를 묶고 있던 여러개의 나무뿌리를 끊어버렸고, 갑자기 솟아오른 나무에 정통으로 턱을 맞아버린 자이언트 오우거는 거대한 덩치가 무색하게 두발이 땅을 벗어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라이트닝~!!" 허공을 날고 있는 오우거를 향해 하늘에서 한줄기의 벼락이 정통으로 내려왔고, 오우거의 주변에 번개가 내려온 순간 어마어마한 빛과 함께 번개가 이곳저곳으로 난사되었다. 크어어엉!!!! 쿵!! "어, 어......" 현민을 뒤에 태우고 현민이 하는 것을 모두 지켜본 반장은 너무나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이 정리되어 버리자 정신이 없었다. "휴우....." 선생님의 마법에 기절을 한 것인지 상태이상에 걸린것인지 오우거의 움직임은 멈춰 있었고, 이틈을 탄 학생들이 오우거의 이곳저곳을 난도질해 버렸다. "와!! 대박이다!!!!" 37명이서 보스몹을 잡아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으나 그 중에 5서클의 마법사가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이지만 5서클을 넘어가는 순간 그 존재는 다른 히든클래스나 스킬들과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니는 것이 마법사였다. "선생님 이것들은 어떻게 해요? 네?" "선생님 멋있었어요!!!" 모두의 눈이 엄청난 마법을 사용한 선생님에게 향해 있었지만 선생님의 눈은 반장의 뒤에서 그리폰을 타고 있는 현민에게로 향해 있었다. -------------------------------------------------------------------------------- 저도 정말 힘들답니다..... 6시간 동안 작업한 일을 분명 저장하고, 메세지도 확인했는데, 나중에 열어보니 아무런 파일도 없더군요....ㅜ.ㅜ 게다가 무슨 악운이 겹쳤는지 일하는 곳의 컴퓨터까지 고장나 버려서 9시까지 고치다 왔답니다..... 그나마 컴퓨터를 만지는게 저뿐이라는 최악의 상황 ㅋ 끝까지 기다리시는 분들을 위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올립니다. 이런 상황을 위해서라도 약간의 비축분을 만들어야 겠네요....ㅜ.ㅜ _(__)_ 안녕히....... 끼이익! 크오오!! 펄럭펄럭! 하늘을 날고 있던 와이번과 그리폰이 더 이상의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땅으로 내려왔고, 선생님의 곁으로 다가갔다. "선생님 아이템은 어떻게 할 거에요?" 가장 연장자이고, 선생님의 마법덕분에 자이언트 오우거를 쓰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수많은 아이템을 눈앞에 두고도 손을 대지 않았다. "음... 선생님이 두개 가져도 돼지?" "두개로 되요? 절반쯤 가져가야되지 않아요?" 몇 십개는 되어 보이는 아이템 중에 달랑 두개만 가져간다고 하니, 학생들 모두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아이템이 적어지긴 하지만 선생님의 공로는 그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난 두개로 됐어, 그리고 나머지는 물건을 판 다음 돈으로 나누자. 우리반에서 상인하는 사람 있지 않아?" "저요." "저여." 두 명의 여학생이 선생님의 앞으로 다가왔고, 선생님은 그 두 아이에게 나머지 아이템 전부를 건내주었다. "상인이니깐 좀 더 비싸게 팔 수 있지? 너희만 믿을게 예지야, 혜연아." "걱정마세요!" "비싸게 팔게요!!" 자신의 인벤토리가 가득찰 정도로 많은 아이템을 넣은 두 여학생의 입은 활짝 웃고 있었다. "자~, 모두 조심하면서 계곡을 향해 Go!!" "Go~!!!" 모두가 선생님의 뒤를 따라 계곡을 향했고, 현민은 그들의 틈에서 조용히 발을 옮겼다. 몇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짭짤한 돈을 만지고 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맑은 물이 흐르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자!! 모두 정숙하고, 여기에 자리를 만들테니 저한테 와서 야영석을 받아가세요~." 야영석이라는 것은 장거리 여행하는 유저들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일정한 조건이 만족했을 때, 주위의 몬스터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는 특수한 돌이었다. "우하핫! 받아라~!!" "꺄아~, 변태!!" 첨벙첨벙!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근 아이들은 현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놀이를 하며 남녀가 어울려 놀았다. "우리의 마법사씨는 여기서 뭐해?" "아, 선생님..."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계곡의 위쪽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현민을 발견한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 그의 옆에 앉았다. "현민아.... 너 진짜 3서클이니?" "네?" "아까의 마법들.... 생각했던거니?" 두 개의 짧은 질문들이었지만 그 속에는 너무나 많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저는 평범한 아이인걸요. 3서클도 겨우 올라왔고요." "하지만 아까 아이스 마법을 시동어만으로 하지 않았어? 2서클을 시동어로만 사용하려면 최소 4서클인데." "그때 사용한 아이스는 마법이 아니라 스킬이었어요. 모두가 하나씩의 비밀은 가지고 있잖아요?" 현민의 말도 안되는 변명이었지만 현민이 이렇게 까지 말하기에 선생님은 더 이상 그것에 대해 할말은 없었다. 현민이 말하기에 변명처럼 보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했다면 옳은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때 아쿠아랑 아이스 마법을 사용한 이유는 뭐야? 자이언트 오우거의 주위에 얼음결정을 만든 이유말이야." "추우면 몸이 움츠러드니 주위를 차갑게해서 둔하게 만들려고요." 이번에도 말이 안되는 변명이었다.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려는 이유로 아쿠아와 아이스를 사용했다면, 3서클의 슬로우 마법을 사용하는게 시간과 마나에 이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때맞춰 오우거를 허공에 띄운것도 우연이니?" "예, 남들도 하는 공격을 저만 안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현민의 대답에 선생님은 더 이상 못믿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최현민. 선생님은 너를 믿었는데 너는 거짓말만 하는거니?" 움찔! "모두가 공격하고 있는 가운데 내가 주문을 외우자 급히 움직이기 시작한 너는 자이언트 오우거의 주위에 얼음결정을 만들었어. 그리고 내가 마법을 쏘는 순간 너는 이미 설치해 놓은 덫을 사용해서 오우거를 공중에 띄웠고 말야." 자신의 눈을 피해버린 현민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린 선생님은 현민에게 못다한 말을 계속했다. "정말 우연이었니? 내가 사용한 라이트닝 마법이 땅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우거의 주변에서 맴돈게 말이야. 선생님을 속이려 하지마. 라이트닝 마법을 사용할 때, 상대가 허공에 있으면 체내를 흐른 전류가 빠져나가지 못해 상대가 죽는다는건 나도 알고 있어. 그리고 주위에 있던 얼음결정이 전류의 흐름을 활발하게 도운것도 알고 말야." 말을 마친 선생님은 현민의 반응을 살피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민만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저희들 먹을거리 좀 사올........?" 선생님을 찾아 위쪽으로 올라온 반장이 현민과 선생님 사이의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중간에 말을 멈춘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참, 깜빡하고 먹을 것을 안 사왔네... 미안하지만 반장, 식사좀 부탁해도 될까?" "아, 예....." "저도 도와줄게요." 반장이 등을 돌리고 내려가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현민이 반장의 뒤를 쫓아 내려가려 했다. "현민아!!" 멈칫! 자신을 부르는 선생님을 무시하지 못한 현민이 발걸음을 멈췄고, 그런 현민을 바라보는 선생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일단, 다녀와서 얘기하자." ".....네" 반장의 뒤를 쫓아 현민이 사라지자, 혼자남은 담임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넌....... 뭐지?" 하지만 계곡에서는 바람소리와 물흐르는 소리, 그리고 아이들이 놀고있는 소리만 들릴 뿐 선생님이 원하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반장!" "응?" "나도 갈게." "뭐... 나야 고맙지."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반장은 자신과 같이 가고 싶다는 현민의 말에 그를 자신의 뒤에 태워 주었다. "여기서 마을까지 얼마나 걸려?" "글쎄, 공중형 몬스터가 없다면 한 10분쯤?" "그래?"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과 바람을 느끼고 있던 현민은, 그리폰의 등을 잡고 있던 양손을 놓고, 마법을 사용했다. "분석, 라이트. 염력, 파이어, 실드." "응? 뭐해?" "그냥, 심심해서." 현민이 자신의 뒤에 앉아 있기에 그가 무엇을 하는지 보지 못하는 반장은 내심 궁금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반장이 현민의 행동에 궁금해 하고 있을 때, 현민은 네 가지의 마법을 분석하여 새로운 마법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옵션, 창조공간 off' 스스슥, 스슥.... 인벤토리에서 볼펜을 꺼낸 현민은 종이의 뒷면에 여러 개의 공식을 조합했고, 앞에 있는 반장이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창조란 명령어를 말했다. 팟! 허공에서 생겨난 작은 책이 현민의 손에 정확히 붙들렸고, 현민은 몇 장 되지 않는 문제를 보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현민아, 너 등뒤에서 이상한 짓 하는건 아니지?" 뒤를 돌아보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뒤에 남자가 있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반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봤고, 현민은 그녀의 물음에 크게 웃어버렸다. "크크큭!! 걱정마, 아무일 없으니깐." 현민이 웃으며 말을 했지만, 한번 시작된 생각은 꼬리를 이으며 늘어갔고, 반장은 금세라도 현민의 손이 자신의 몸을 더듬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반장이 불안에 떨고 있는 동안 현민은 등뒤에서 열심히 마법을 만들어갔다. 낮은 서클의 마법을 조합하였고 조합된 마법도 1서클이기에, 문제도 어렵지 않고, 양도 많지가 않아 마을에서 물건을 사고 다시 계곡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이미 모든 문제가 풀려, 하나의 마법이 만들어져 있었다. "와~, 밥이다!!" "밥먹고 2차전이다!!" 현민과 반장의 인벤토리에서 수많은 음식들이 나왔고, 아이들은 음식을 둘러싸고 앉아 즐겁게 떠들며 식사를 했다. "밥 먹고 캠프파이어를 할 거니깐 모두들 준비해요~." "넵! 우물우물" 현민도 빈자리에 들어가 음식들을 집어먹었고, 현민의 양옆으로 들어간 선생님과 반장도 주위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분위기로 식사를 하였다. "윈드커터." "선생님 제가 할게요, 특수스킬 '검기' 사용! 합!!" 굵은 나무는 선생님의 마법에도 쓰러지지 않았고, 그것을 본 한명의 학생이 스킬을 사용해가며 나무를 잘랐다. "파이어!" "와~!!" 1시간을 투자하여 준비한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었고, 모두는 즐거운 마음으로 어울리며 자신의 끼를 자랑했다. 둥! 둥! 두두둥! 피리부는 사나이가 피리를 이용하여 댄스음악을 연주하는 신기를 보여주었고, 모두는 그의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찰랑~." "어?!!!" "반장!!!" "헤헤... 선생님~~, 허락해 주시면 안돼요? 게임에서만 취하는 건데." "선~ 생~ 님~~." 반장의 애교를 시작으로 반 전체가 선생님에게 애교를 부렸고, 선생님은 난처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아.... 마셔라." "와아아!!!!!!!!" 선생님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즐기기 위해 마시는 술이기에 넓은 마음으로 특별히 허락해 주었다. 반장이 나서서 저러는 것이 괘씸했지만 반 전체가 자신에게 귀엽게 애교를 떠니 허락을 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팟! "댄싱 라이트." 피이잉~, 펑! 퍼펑! 펑!! "댄싱 라이트." 피이잉~ 퍼퍼퍼퍼펑!! 현민의 손끝에서 시작된 불빛이 하늘로 올라가며 여러 가지의 모양과 색을 만들어 내었고, 술을 마시며 즐기던 모두의 시선이 아름다운 밤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불꽃에 집중되었다. "예뻐...." 피잉~ 펑! 모두가 입을 벌리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때, 하늘을 장식하던 불꽃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모두들은 황홀한 밤을 수놓았던 불꽃에 대한 아쉬움을 가졌다. "마지막, 댄싱 라이트." 스으윽..... 마지막으로 발현된 현민의 마법은 손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허공에서 시작되었다. -2학년 11반, 5서클 마법사인 최강의 선생님에게....... 허공에 새겨지던 말을 따라 읽던 반 아이들은 중간에서 끊어진 글씨에 호기심을 느끼며 현민이 어서 빨리 마지막 말을 장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마지막 말을 적어주었다. -빌붙어버리자! "푸웁!!!" "큭!!" "크큭!" "하하하하." 맥주를 마시며 마지막 말을 기다리고 있던 선생님은 마시던 맥주를 허공으로 돌려보냈고, 반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만을 바라보았다. 타닥타닥! 이제는 작은 불만 남긴 모닥불의 주위로 놀다 지친 아이들이 잠들어 있었고, 현민은 그들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부스럭"잠이 안오세요?" "난줄 알았어?" "네." 현민은 하늘에서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고, 선생님은 신기하단 표정으로 현민의 옆에 걸터 앉았다. 그제서야 선생님을 돌아본 현민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선생님을 대신하여 먼저 입을 열었다. "만약 다른 애들 이었다면 소리를 내기전에 제 이름을 부르면서 아는 척을 했을거에요. 하지만 선생님은 굳이 저를 부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걸어왔죠." "그렇네...." 성생님의 대답으로 둘 사이의 대화가 끊어져 버렸고, 현민은 한동안 기다리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현민아, 나한테만 실력을 말해줄 수 없니?" "어떤 실력을 말씀하시는거에요?" 너무나 추상적인 선생님의 질문에 현민이 물어보자, 그녀는 막상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녀도 현민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뿐, 그가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저도 궁금하긴 해요. '내 모든 실력을 보이면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하고 말이죠." 마치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듯한 현민의 말에, 잔뜩 기대를 한 선생님은 현민의 입에서 다음 말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실력이라 부를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아요. 대학을 가기위한 수단으로 마법을 공부하고 지금에 와서야 3서클이란 단계에 올라온 것이니까요." 끝까지 자신을 감추는 현민의 말에 실망한 선생님은 처음과는 대조되는 얼굴로 현민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보지 말아주세요. 언젠가 제게 실력이란게 존재하게 된다면, 선생님에게 가장 먼저 알려드릴게요." 현민을 말을 계속 듣고 있으니,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틀린 것인가 하는 의심이 생겼다. 이정도로 부정을 하는 현민의 말에서는 자신을 속인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마법이 완성되는 그날, 저는 가장 먼저 선생님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종류의 마법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단호히 내뱉는 현민의 말에 넘어가버린 선생님은, 최종적으로 현민이 실력을 감추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모든 마법이란 만들어지는 마법이 아니라 만들어진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겨우 4서클까지의..... "그래,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네가 그렇게 말하면 스승은 믿어줘야겠지?" 뜨끔! 그래도 한조각의 양심은 있는 현민이기에, 그는 선생님의 말에 자신의 가슴이 뜨끔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서 주무세요. 다른 애들보다 먼저 일어나셔야 하잖아요." "너는?" 흔들흔들 선생님의 말에 현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야영석을 보여주었다. 특수한 조건을 만족했을 때만 발동하는 야영석의 한 가지 조건이 깨어있는 존재. 즉, 불침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 말고도 또 한가지는 모닥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길 위가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알고 있었나 보네..... 아무도 모르는지 알았는데." 야영석이라는 것은 유명하지만 그만큼 사용하는 존재가 적었다. 게임속에서는 밤낮이란 구별이 필요없이 무조건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몬스터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사냥을 하다 잠들 것도 아닌 그들이 굳이 야영석을 들고 다닐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먼저 주무세요, 중간에 깨워드릴게요." "알았어. 혹시나 무리할 생각 말고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깨워줘." "네." 현민의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현민은 다시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에는 하나의 커다란 달과 그 달의 위성인 작은 달이 떠 있었고, 수많은 별들이 흐르며 하늘위에 아름다운 강을 만들고 있었다. "한번 날아보고 싶은데..... 역시 안돼겠지?" 너무나 아름다운 밤이어서 그런지, 지팡이(낫)를 타고 하늘을 날고 싶었지만, 능력을 숨겨야 하는 자신의 상황 때문에 정작 하늘을 날지는 못했다. "아쉽다, 조금이라도 하늘에 다가가면 좋을텐데...." 하늘을 잡으려는 듯 높이 손을 뻗은 현민은 자신의 손 넘어로 보이는 별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별이지만 가상현실이란 곳에서는 하늘의 별이란 것이 당연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현민이?" "응?" 소풍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우연인지, 그의 옆에 있던 선생님이 자리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현민을 부르며 다가왔다. "반장?" 자신에게 다가오는 존재의 뒤로 달이 떠있기 때문에 얼굴의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다가오는 존재의 목소리는 평소 많이 들었던 반장의 목소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뭐하는거야? 안자?" "하늘이 너무 좋아서...." 현민의 대답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린 그녀는 현민의 말대로 구름한점 없이 맑은 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이 촘촘히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묘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하늘은 그녀의 잠을 빼앗아 버렸고, 그녀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예..쁘다." "그치? 나는 저런 하늘을 볼 때마다 '이것이 현실이라면...'이라고 생각한다니깐?" "쿡쿡." 현민의 독특한 말투에 웃긴 했지만 그녀도 현실의 하늘이 이런 모습이면 정말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늘이라는 것을 좋아해서 테이머가 됐어. 그리폰이나 와이번같은 비행몬스터를 타고 하늘을 날아보고 싶었거든." "하늘?" "응, 네가 바라보는 하늘 말고, 그냥 단순히 높은 곳 말야." 갑자기 시작된 그녀의 말이었지만 현민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아름다운 밤하늘은 사람들에게 마법을 걸어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하늘을 날았을 때, 모든 것을 가진 듯 정말 기분이 좋았어, 그래서 날고있는 도중에 떨어져 버렸지만, 큭큭." "푸훗!" 머릿속에 그려지는 반장과 그리폰의 당황한 표정에 현민은 웃음을 흘렸다. 툭툭. "아아. 미안, 미안." 어느새 다가왔는지 그들의 뒤에는 반장의 그리폰이 웃음을 흘리는 현민의 머리를 툭툭 치고 있었다. 현민의 사과를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눈치를 주는 반장 때문이었는지 그리폰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몸을 말아 자리에 누웠다. "그래도 좋았어, 떨어지고 있는 도중에 이 아이가 잡아주었거든." 그때를 생각하는 듯 반장은 그리폰의 목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이제 시작한지 1년밖에 안된 게임이지만 게임속에서는 4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인지 이 게임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느낌도 들었다. "음?" 새근... 새근... "하아....." 점점 조용해진다 싶었더니, 그리폰을 쓰다듬고 있던 반장의 눈은 감겨있었고, 그녀의 호흡이 귀엽게 들려오고 있었다. "모포를..... 그러냐?" 밤바람을 맞으며 자는 반장을 위해 모포를 덮어주려던 현민은 자신을 바라보며 날개를 들어올리는 그리폰을 보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는 둘이었고, 존재하는 장소가 달랐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별이 안됐기 때문이었다. "아름답다....." 언제나 바라보는 밤하늘이기에 질릴만도 하건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의 눈동자는 더 이상 하늘을 벗어나지 않았다. 달이 기울고, 모든 별이 사라지며 해가 뜨는 아침이 되어서야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을 깨우러 움직였다. 부스럭... "우음....." 남이 잠자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실례였지만, 현민은 잠자고 있는 선생님의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되어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계속 얼굴을 보고 있자니, 볼을 한번 땡겨보고 싶은 욕망(?)이 무럭무럭 솟아났지만 차마 나이가 있고, 직위가 있기에 현민은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씨이익.... "댄싱라이트." 왠지 사악한 미소를 지은 현민은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선생님의 얼굴로 가져갔다. 장난꾸러기라면 절대로 빼먹지 않는 낙서를 지금부터 시작하려 한 것이다. 현민에게 먹이(?)는 많았다. 이른 아침이기에 아이들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응......?"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 비몽사몽으로 품안에 따뜻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낀 선생님은, '일어나서 확인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잘 것인가'로 잠시 고민하였지만 시끄러운 주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을 택했다. "조용, 조용...." "응?" 무엇인가가 자신의 앞에 있기에 자세히 바라보려 했으나 자고 일어난 탓인지 초점이 잘 맞지 않아 무엇인지 바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서서히 눈의 초점이 자신의 품에 있는 것으로 모아졌고, 선생님은 가장먼저 비명을 질렀다. 빠각! "꺄아악!!" "컥!" 정정...... 비명보다 먼저 나간 선생님의 머리가, 앞에서 선생님을 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던 현민의 머리를 강타해버렸다. "세, 세상에!!" "어머! 소리 들었어?" "둘 중 하나는 죽었겠다...." "응?" 현민을 응징한 선생님은 그제서야 자신의 주변으로 많은 학생들이 몰려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제자들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여서인지 선생님의 얼굴을 빨갛게 익어 있었다. "우우...." "선생님, 너무해요~." "맞아요."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학생들은 선생님보다는 현민을 걱정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시간을 돌려서 10분전.... 씨이익... 현민은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선생님에게 먼저 하려 했으나 연장자에 대한 대우(?) 때문에 아이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눈을 돌린 아이들의 얼굴에 군데군데 살을 태워버린 현민은 웃기게 변한 아이들을 보며 실실 거렸다. 눈 부위나 입같은 특정 부분만 살의 색깔이 시커먼 경우 상당히 웃겼기 때문이었다. "응?"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현민의 기척을 느꼈는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현민은 시간의 부족으로 반 아이들의 절반밖에 낙서를 하지 못했다. 현민이 만들어 놓은 재미있는 낙서에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고, 한동안 놀던 그들의 시선은 아직도 잠자고 있는 선생님에게로 향했다. "쉿~."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시키는대로, 선생님의 얼굴에 낙서를 하러 가는 현민은 혹시나도 발걸음소리에 선생님이 깨어나실까, 최대한 소리를 줄이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스윽.... "응?" "헉!" "서, 설마?" 조용히 잠자고 있던 선생님이 갑자기 일어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주위로 학생들이 둘러쌓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감이 없지도 않을텐데,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앞에 있는 현민을 바라보았다. 꿀꺽! 비몽사몽인 듯 약간 풀려있는 선생님의 눈동자에 현민은 침을 삼켰다. 덮석! 털썩! 평소에 인형을 껴안고 자는 선생님은 현민을 인형으로 착각했는지 현민을 안으려 했고, 현민은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선생님을 피하지 못한 채, 그녀와 같이 뒤로 넘어져 버렸다. 넘어지면서 아플만도 하건만 잠자는 사람에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닌지 그녀는 자신의 품에 있는 현민을 안고, 기분좋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히이익!!" "어머, 어머!" "대형사고다...." 자신을 꽉 껴안고 있기에 몸을 빼지도 못하는 현민은 주위의 아이들에게 도와달란 눈빛을 빛냈지만 주위의 아이들은 현민의 묘한 상황에 재미있어 할뿐,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선생님이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할 행동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으음...." 상당히 마음에 드는 인형(?)인지 선생님은 껴안고 있는 현민에게 볼을 부비는 등 다양한(?) 잠버릇을 보여주었다. 당황해 하는 현민과 그것을 무시한 채 즐겁게 잠을 자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입에서는 연신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그것은 선생님이 일어나기 전까지 잠시동안 계속되었다. "으응......?" "조용, 조용...." 선생님이 일어나려는 반응을 보이자 그것을 눈치챈 아이들이 서로에게 조용하자고 말했고, 앞으로 이어질 선생님의 행동에 반짝이는 눈으로 살펴보았다. "응?" 빠각! "꺄아악!!" "컥!" 현민을 확인한 듯, 선생님의 입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나왔고, 그것을 보고 있던 모두는 비명보다 먼저 머리가 나가버리는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세, 세상에!!" "어머! 소리 들었어?" "둘 중 하나는 죽었겠다...." 너무나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란 아이들이 현민을 걱정했고, 자신이 현민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것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응?" "우우...." "선생님, 너무해요~." "맞아요." 약간의 무식해 보이던 선생님의 공격에,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던 아이들이 일제히 선생님에게 소리쳤지만 선생님은 아직도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지 현민을 감싸고 있는 손을 풀지 않았다. 움직이지 못하는 현민만 비 맞은 강아지마냥 연신 신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현민아, 미안해. 괜찮아?" "아, 옝..." 선생님의 강타에 쌍코피가 터져버린 현민은 현재 양쪽의 콧구멍에 천을 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선생님 왜 안깨웠니? 중간에 깨우라고 했잖아." "너무나 아름다워서 계속 보고싶었거든요...." 두서없는 말이었지만 선생님은 현민이 얘기하고 있는 것이 밤하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현민에 대해 그녀가 파악한 것은 밤하늘을 좋아한다는 것과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이제, 멈췄니?" "네." 성직자의 치료마법이었다면 금방 치료할 수 있었지만 마법사인 그들이 그것을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민과 같이 일어난 선생님은 현민을 이끌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우드득. "아우~ 재밌다. 그치?" "응! 우리가 선생님을 정말 잘 만난것 같아, 헤헤." 웅성웅성 한번에 40명에 가까운 숫자가 캡슐에서 나오자 캡슐방은 평소와 다르게 많이 소란스러웠다. "자자, 모두들 재미있게 놀았으니 집에가서 푹! 쉬고, 내일 지각하지 말아요~." "넵!!" "네~." 시간당 5천원을 받고 있는 캡슐방에서 8시간을 했으니 4만원을 내야했으나 선생님과 주인간에 합의가 되어 있었는지 아이들은 3만원을 내며 캡슐방을 나섰다. 그들의 모습은 들어오기 전과 다르게 모두가 하나되어 있었다. -------------------------------------------------------------------------------- 소풍이 끝난 후, 현민의 일상은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밖으로 나갈 때, 현민의 왼손에는 매직보드가 들려있었고, 「싸울아비」에 접속하면 언제나 새로운 마법을 만들었다. "린~." "아앙?!" "큐우?!" "푸훗!" 너무나 닮아가는 마녀와 정령을 보자 이제는 웃음이 나오는 현민이었다. 정령들은 주인에게 영향을 받는지 아니면 주인들이 정령에게 영향을 받는지 마을에 있는 마녀들 모두가 지금의 린과 큐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저번에 줬던 마법진 살펴봤어?" "우웅.... 고리고 탁자 위엥, 꿀꺽! 탁자위에 하피가 가져온 물건 올려놨어." 린의 말에 현민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소환, 묘, 염화, 윈디아, 담비. 밖에 나가서 놀고 있으렴." 정령을 소환하고 방으로 들어간 현민은 무엇인가를 만드는시 시끄러운 시끌벅적 요란한 소리를 냈다. 큐와 함께 식사를 끝마친 린은 현민의 문앞에서 현민이 만들 '물건'을 상상하며 앞으로의 일을 기대했다. 쾅!!! "꺄악!!" "콜록! 콜록! 실팬가?" 무수한 연기를 뚫고, 현민이 걸어나왔다. 현민의 옷은 지저분해져 있었고, 얼굴에는 검은색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루나야, 괜찮아?" "으응." 단 한번도 이런 폭발이 일어난 적이 없었기에 린은 현민을 걱정했다. 그녀가 걱정하는 가운데도 현민의 시선은 손에 들려 있는 생명의 정령석에만 가 있었다. 이것이 완성되어야 앞으로 만들 현민만의 골렘이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그거, 생명의 정령석 아냐?" "응, 지금 이것을 가지고 실험하는 중인데 잘 안돼네...." "뭘 만들려고?" 마력의 돌에서 한번 변화하여 탄생된 생명의 정령석이 다시한번 바뀐다면 어떻게 될 지 궁금한 린의 물음에 현민은 자신의 생각을 차근차근 말해 주었다. 그것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으며,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확실히 이론상으론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정말 그게 될까?" "그래서 실험중이잖아." "흐음..." 그녀가 예상할 때, 현민이 만들고 있는 것이 완성된다면, 이것은 마녀에게도 상당한 이익이 돌아갈만한 물건이었다. "이 실험, 내가 할게." 린은 현민에게 이론을 들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방법을 추가해서 연구한다면 현민이 만들려고 하는 것을 충분히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품들은 이미 마녀들에게 얻어났으니, 린이 만드는 것만 완성되면 되는데....." 도대체 어떤 것을 만드는지 현민은 재료를 꼭꼭 숨겨놓고 있었다. "일어서라. 기억하라. 네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모습을......" 현민의 손에서 예전에 봤던 익숙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 당시에는 린의 손에서 펼쳐졌던 것이지만 지금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현민의 손에서 다시한번 펼쳐지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라!" 그 스스로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의 마녀로서 마법진을 자유롭게 다루는 현민은 이미 또 다른 경지에 올라있었다. "어디보자.... 디그의 땅 파는 공식하고 어스퀘이크(earthquake)의 땅 엎어버리는 공식도 필요하고, 인탱글의 묶는 공식도 필요할것 같고.... 순간적인 마비를 시킬까? 홀드도 넣어야지. 그리고....... 워터브레스의 속성을 반대로 해서, 산소를 없애버리고...... 또 뭐가 있을까?" 하나하나의 마법을 만들어나가는 현민은 대상이 도저히 살아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의 마법만을 고르고 골라 조합했다. 물론, 이런 현민이 만드는 마법이기에 최강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뽀글뽀글뽀글... 슥슥.... 린은 연구에 빠져버리고, 현민은 마법창조에 빠져있으니, 큐와 4명의 꼬마정령들은 한동안 다른 집으로 놀러다닐 수밖에 없었다. 귀여운 모습을 가진 그들은 어느곳이나 환영받는 손님이기에 그들이 갈 곳은 많이 있었다. 정령들이 빠져나갔기에 조용해진 집에서 현민과 린은 각자의 일에 빠져들어갔다. "현민아, 담임이 상담실로 오래." 언제나와 같이 매직보드를 풀고 있는 현민의 곁으로 반장이 다가와 말을 전했고, 현민은 담임선생님이 자신을 부른다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이 잘못한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며, 상담실로 걸어갔다. 드르륵. "뭐해? 앉아." 두 번째로 들어오는 상담실의 중앙에는 멋들어진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지만, 벽에 중간중간 세워져 있는 것은 피 묻은(?) 몽둥이들이었다. "이번 중간고사,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 "네?" 4월 말에 있는 중간고사 얘기를 왜 벌써 꺼내는 것인지 현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2주 뒤면 시험이잖아, 공부는 하고 있어?" "그, 글쎄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는지, 현민은 2주 뒤가 시험이라는 소리에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요놈, 이 선생님이 너한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는데, '글쎄요...'냐?" "죄, 죄숭요.." 양쪽 볼을 잡고 있는 선생님의 손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뜻은 전달되었는지 선생님은 현민의 볼을 잡고 있는 손을 놓아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얼마나 쌔게 잡았는지 현민의 볼에는 선생님의 손가락 자국이 빨갛게 남아 있었다. "다른건 모르겠는데, 이번 수학만은 반드시 100점 맞아야 해, 알았지?" "예?" "우리 현민이 엄~청 똑똑하지? 그치? 선생님은 현민이 너만 믿을테니깐 절~~대, 틀리면 안된다~." "예." 선생님께서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현민은 그녀의 부탁대로 대답을 했다. 수학을 잘보고 다른것을 못본다면 성적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험 당일에도 현민이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쓱쓱... 다른 남자애들에 비해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선생님보다는 키가 컸기 때문에 선생님은 현민의 아래에서 현민을 올려다보며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자, 가봐." "네." 선생님과의 상담을 마친 현민은 그녀가 왜 그러는지 몰랐다. "안녕하세요." "응, 그래." 흔들흔들... 끄덕 맞은편에서 오는 과학 선생님을 발견한 현민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과학을 맡으신 선생님도 이번에 현민의 담임선생님과 같이 새롭게 오신 선생님이었고, 두분은 나이도 동갑이라고 하셨었다. 그런 과학 선생님의 뒤로 따라가는 지혜가 현민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현민은 자신을 보고 있는 선생님 때문에 손까지 흔들어주지는 못했고, 대신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드르륵. 반으로 들어간 현민은 다음 수업시간을 준비했고, 그날 하루도 평소와 같이 흘러갔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동안 구상해오던 마법 전부를 빨리 완성하는 것이었다. --------------------------------------------------------------------------------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40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시간은 흐르고, 시험 바로 전날이지만 현민의 생활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현민은 「싸울아비」로 접속하여 또 하나의 마법을 만들 생각만 했다. "루나야~!!!!" "으악!!" 털썩! 서서히 바뀌고 있는 시야에 린의 얼굴이 들어왔고, 현민은 갑자기 달려드는 린과 함께 침대 위로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게임속에서 한번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서, 남자치고는 상당히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현민의 머리카락은 침대에 휘날렸고,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도 뒤로 넘어가 있었다. ".......너 상당히 섹시하다?" "으악! 으악!!" 자신의 위에 올라타버린 린이 머리부터 시작하여 입술까지 쓰다듬으며 말을 하자 현민은 한밤중에 공동묘지에서 눈감고 걷는 듯한(엄청 무섭다...) 공포가 느껴지며 등에 소름이 마구 돋았다. "하악, 하악, 하악..." "남자가 섹시하게 느껴진다는게 이런 거구나..." 자신을 피해 도망간 현민을 보며 침대에 걸터앉은 린은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얼굴이 별로라도 섹시하게 보이다니.... 신기하네." 울컥!! 딱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을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일이야?!" "아참, 나, 나, 드디어 완성했어!!!!" "응?" 무엇을 완성했는지 모르지만 현민의 앞에 있는 린은 엄청 흥분하여 다시한번 현민을 덮칠듯한 태세였다. "서, 설마?!" "꺄하하하, 이 천재 마녀님께서 생명의 물을 만드셨단 말씀!!" 현민이 예상대로 그녀가 완성했다는 것은 생명의 정령석을 변형하여 만든 생명의 물이었다. 이것은 앞으로 만들어질 현민의 골렘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중 하나였는데, 이것이 완성되지 않아서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아하하하!!" 현민이 유치원시절. 그의 꿈은 과학자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아이가 과학자라고 말한 이유는 그의 꿈이 로봇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 할지라도 로봇을 만드는 것은 과학자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민의 손에서 로봇이라고 불릴만한 골렘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전부 모여졌다. "마법은 많이 만들었어?" "응. 아직은 모자르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최강이야." 다소의 엉뚱함도 가지고 있는 현민의 마법들은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당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 마법들 중에는 마법사를 상대로 하는 전문 마법도 있었기에 현민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최강이 될 것이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골렘은 언제부터 만들거야?" "2주 뒤." 3일동안 시험보는 것을 계산한 현민은 게임속으로 12일이 지난 2주 뒤부터 만들 예정을 잡아버렸다. 이미 5서클을 진입한 현민에게 시험이란 것은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을 속이는 하나의 방법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라버니!!" "오빠~." "흑, 흑흑...." "히잉...." 린과 현민이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정령계의 문이 열리더니 4명의 꼬마정령들이 현민에게 달려들었다. 서러워 보이는 그들의 표정을 보니, 아마도 오자마자 자신들을 부르지 않은게 불만인 것처럼 보였다. "미안, 미안.... 상태창." ------------- 이름 : 룬. Lv : 40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322(18) 정신 : 364(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680 방어력 : 52 생명력 : 2498 (+2300) 정신력 : 60120 ((+16000)*3) 물 속성 친화력 : 251 불 속성 친화력 : 132 땅 속성 친화력 : 132 바람 속성 친화력 : 132 정령력 : 1 물 Lv 1 바람 Lv 1 불 Lv 1 땅 Lv 1 보너스 스텟 : 0 -------------- 현민이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에 의하여 현민의 정신력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최강이 되었다. 6만이라는 숫자가 나오려면 대략 1100레벨이 모든 스텟을 정신에다 쏟아부어야 할 정도이기 때문이었다.(정신력 = 정신*10 + 레벨*5)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라 정령들의 친화력이 100이 넘어가면서부터 그들이 현민을 느끼고 정령계를 자유자제로 드나든다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계약을 맺은 묘와의 친화력은 200을 넘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아직도 130대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번 시험만 끝나고 놀러다니자, 알았지?" "응!" "네." 끄덕끄덕"헤헤...." 역시 아이들이라 그런지 현민의 말 한마디에 울적한 표정은 사라져 버렸고,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루나야, 나중에 골렘 만들 때 불러줘야 해, 알았지? 난 큐랑 놀아야지." 린은 정령들과 놀고있는 현민을 보고는 어딘가에서 놀고 있을 큐를 찾아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못 놀아준 것이 아쉬운 정령들이 현민에게 계속 달라붙었고, 결국 현민은 마법을 포기하고 접속종료 할때까지 그들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지옥같았던 시험기간도 끝이 보이고, 현민은 마지막날인 오늘의 시험점수를 예상해 보았다. '일단 수학은 100점 맞아야겠고, 문제는 과학하고 한문인데.... 둘 다 80점만 맞을까? 뭐, 평균 80점만 넘으면 상관없겠지...'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 드르륵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한분의 선생님이 시험지와 답안지를 가지고 들어왔고, 모든 아이들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하필 저 깐깐한 선생님이라니......' 어느 학교에나 한분씩 존재하는 최악의 선생님이 현민의 반에 들어온 것이었다. 저런 분은 답안지도 잘 바꾸어 주지않고 시간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실수라는 것을 해서는 안돼었다. "자자, 모두 정숙하고 책상위 깔끔히 치워, 그리고 가방은 전부 사물함에 갔다 놓는다, 실시!" 선생님의 말을 듣는 아이들의 표정은 전부 구겨져 있었다. "시험 시작 5분, 끝나기 5분 전에는 답안지 교환이 없으니 알아서 하도록." 현민의 눈앞에 한문 시험지가 도착했고, 남아있는 시험지를 뒤로 넘긴 현민은 재빨리 문제를 풀어나갔다. '어차피 예상점수 80점이니, 어려운 것은 전부 지우고 확실한 것만 풀자.' 어렵다 생각하거나 복잡하다 생각하는 문제들은 작게 표시해 놓은 현민이 쉬운 문제들을 풀어나갔고, 쉬운문제들 만으로도 80점이 나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나온다면 어려운 문제인 경우 대충 찍어도 상관없기 때문이었다. '2, 3, 5, 5, 1, 2..........' 시험종료시간을 10분정도 남긴 현민은 시험지에 적어놓은 답들을 답안지로 옮기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응?' 한참 마킹을 하고 있던 현민은 어느순간 답안지와 시험지의 번호가 하나씩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 시험지에 검게 칠해진 답들만 보다보니 답을 밀려적은 것이었다. 다행이 30문제 중 20번째에서 발견했고, 시간도 넉넉하기 때문에 현민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안돼! 딱 5분 남은 관계로 더 이상의 교체는 없다!!" "에엑!! 선생님 그런게 어딨어요?!!" "말도안돼!!" "조용!!!!" 모든 아이들이 소리치며 따졌으나 선생님의 고함한방에 모두들 입을 다물어버렸다. '젠장!!' 다행이 겹치는 답이 있었기에 20문제의 예상 점수는 34점... 앞으로 남은 10문제를 모두 맞추면 60점이 되고, 과학을 100점 맞는다면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다. '어려운 문제는 모두 3개...... 하나씩 하는 거다.' 목표를 정했기에 그것에 다가가야 하는 현민은 이를 악물고 3개의 문제를 풀었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 탁!! "모두 펜 놓고 머리에 손 올려!!" 교탁을 친 선생님은 아이들이 전부 머리에 손을 올리자 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답안지를 걷어오도록 했다. 드르륵.... "으악!! 망했다~." "젠장! 컨닝 하나도 못했어." "하아......" 앞으로 수학과 과학시험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현민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두 시험만큼은 어떠한 문제가 나와도 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실수를 하면 안돼.....' 현민이 걱정하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남들이 그의 얘기를 들었다면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 드르륵. "와아아아!!!!" 첫 번째 시험과는 다르게 두 번째 시험의 선생님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두 번째 시험의 감독으로 들어오신 선생님이 그들의 담임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다. 찡긋. 다른 아이들이 봤는지 모르지만 현민은 자신을 향해 눈을 깜빡이는 선생님을 정확히 봤다. "자, 모두 조용~. 앞으로 두과목 남았으니깐 열심히 해요." 이전 시험과 마찬가지로 시험지가 나뉘었고, 현민은 재빨리 뒤로 시험지를 넘긴 뒤, 문제를 보았다. '휴....' 현민이 풀고 있는 문제들보다 쉬워서 인지, 시험지에 있는 문제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듯 보였다. 슥, 스스슥.... 조용한 교실에 펜이 굴러가는 소리만 들렸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시험지의 문제를 풀어나갔다. 또각또각"잘해...." 현민에게 다가온 선생님이 현민에게 다가와 작게 귓속말을 했고, 현민의 얼굴은 빨갛게 변했다. 선생님과 현민의 반응에 몇몇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문제에 비해 시험시간은 부족했으므로 깊은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팔랑... 움찔! 첫 장의 시험지를 모두 푼 현민이 다음 시험지를 훑어보는 중, 그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추었다. -------------------------------------------------------------------------------- 힐끔 현민이 바라보는 문제는 간단한 도형문제처럼 보였지만 문제 속에는 이중삼중의 함정이 정답을 헷갈리게 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생각을 보기 위해서 힐끔 눈을 돌린 현민은 선생님이 미소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시험인가?' 약간 어렵기는 해도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문제의 수준은 2학년 1학기에 현민은 자신이 풀어도 의심을 받을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스슥, 슥, 슥슥슥.... 바쁘게 움직이는 현민의 손에서 여러개의 공식이 생겨났다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공식은 현민에게 정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빙고.' 시간까지 적당히 생각하며 문제를 푼 현민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나머지 문제들을 풀어나갔다. 지금 배우고 있는 문제들보다 수준이 낮아서인지 몇몇 문제는 암산으로도 나올 정도였다. 물론, 정확하다고 장담은 못했지만 말이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자, 모두 걷어오세요~." 아직 마킹을 끝내지 못한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답안지를 제출했고, 수학시험의 답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얘기하는 주제는 시험의 어려움과 마지막 문제의 애매함이었다. "룰루루~." "어째 담임이 기분좋은거 같은데?" "그러게, 그보다 너 30번 답은 뭐라고 했어?" "나는...." 웅성웅성 여러명의 아이들이 떠들고 있는 가운데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앉아 있던 현민은 그 시간에도 매직보드를 꺼내어 문제를 풀어나갔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 드르륵. "자, 마지막이니 모두 열심히 하고, 집에가서 푹 쉬어라!!" "네~!!" 마지막으로 들어오신 분은 현민의 1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 헐렁한 성격 때문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으신 분이었다. 팔랑. 수학시험지와 마찬가지로 과학시험지도 이미 배운 것들이기에 현민에게는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 사삭, 사사삭. 이런저런 법칙을 적어가며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과 비교하던 현민은 이번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의 문제에서 눈길이 멈추어 버렸다. '이, 이따위 문제를.......' 수학시험과 마찬가지로 그것역시 배운것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었지만 이정도로 꼬아놓았다면 보통은 못 푸는 것이 당연한 문제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들이지?' 동갑이고 같은 여자이다 보니, 서로 친한 수학과 과학선생님께서 무슨 작당을 하셨는지 과학 시험역시 마지막 문제가 상당히 꼬여있었다. 연속되는 시험의 마지막 문제가 이렇게 꼬여있는 것을 눈치챈 현민이 그녀들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두 개다 맞아서 의심을 받는것 보다는 이번 것을 틀리고 2학기에 잘보는 게 낮겠군...' 어이없는 실수를 만회하여야 하는 현민이었지만 왠지 무언가가 있는 듯한 느낌에 마지막 문제를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스윽. 또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답안지와 시험지를 꼼꼼히 비교한 현민은 답안지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리에 누워버렸다. 시험을 다 푼 상태라고 해서,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보다가는 컨닝으로 의심받기 때문이었다. "자~, 5분 남았다." 마지막 5분을 남기고 허리를 세운 현민은 어서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제는 끝을 보이고 있는 마법의 창조를 서두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리~♪♬"답안지 제출하고, 모두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험이 끝난다는 것은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모두에게 좋은것인지 모두의 얼굴은 시험전에 비해 많이 밝아져 있었다. 종례를 하기 위해 들어오신 담임선생님은 기분이 좋아보으신지 반 아이들 전부의 야자를 빼주셨다. 토요일의 마지막에 엄청난 행운(?)을 손에 쥔 아이들은 그동안 놀지 못한것을 보상받기 위해 캡슐방으로 향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현민이는 잠깐만 상담 좀 하고 갈래?" "네..." 모두가 좋아하는 가운데 혼자만 남아야 했던 현민은 시무룩해졌고, 반 아이들은 혼자남는 현민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안녕히계세요!!" 청소와 함께 모든 것이 종료되면서, 반 아이들은 캡슐방을 향해 달려갔고, 현민은 선생님의 뒤를 따라 상담실로 걸어갔다. "현민아, 뭐 먹고싶은거 있니? 선생님이 한턱 쏠게! 호호." ".....선생님 기분좋은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너무나 들 떠 있는 선생님의 표정에 현민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선생님께서, 11반 선생님과의 내기에서 이겼거든." "과학선생님이요?" "응." 어떤 것으로 내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의 반응으로 보아, 내기에는 자신이 관련있었고, 내기에 걸린 것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예상했다. "저기..... 무슨 내기였어요?" "응? 아유~ 귀여워." 혼자서 방실방실 웃고 있던 선생님이 현민의 볼을 잡아당겼고, 현민은 학생이란 신분상 그녀의 손을 피할 수가 없었다. "수학이랑 과학 중에 어떤게 더 어려웠니?" "......30번 문제들 말씀하시는 거에요?" "응." "일단은 수학이....... 과학보다 쉬웠어요." 선생님의 반응을 살피며 대답하던 현민은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지는 기미가 보이자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헤헤, 역시 그렇지?" 현민의 대답이 맞았는지 선생님의 얼굴은 활짝 피어 있었다. 쾅! "어머? 어서 주실까?" 탁! 드르륵. 거세게 문을 열고 들어온 과학선생님은 현민을 보고 흠칫했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현민의 담임선생님 앞에 봉투 한 장을 놓고 나가버렸다. "도대체 무슨 내기이기에....?" "30번 문제, 과학선생님이 수학문제를 냈고, 내가 과학문제를 냈어. 누가 학생들을 더 잘 가르쳤는지를 내기했거든. 결과는 수학만점자가 둘~, 과학은 하나~. 이 이쁜 선생님이 이겼단 말이지." 선생님의 대답을 들은 현민은 현기증이 났다. 내신에 영향을 끼치는 시험성적을 이런 내기에 사용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성적이 내신에 들어가는데 이런거로....." "물론, 선생님들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지. 수행평가의 점수를 높여주는 것으로 말야." "하지만 높여주어도 100점은 안나올텐데........" 현민의 말을 들은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민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네들은 절대가 아닌 상대평가잖니? 모두가 같은 조건이라면 아무런 차별이 없는 것이거든." 그녀의 말대로 모든 학생의 점수가 떨어진 것이기에 등수에는 커다란 차이가 보이지 않을 것이었고, 그것은 상대평가를 하는 것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소리와 같았다. "그건 뭐에요?" "이거? 콘서트 티켓." "예?" 대화를 돌리기 위해 선생님의 앞에 있는 봉투를 물어본 현민은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는지 의심이 갔다. "요즘 인기그룹인 꼬마여우의 콘서트 티켓이라고." "아, 예...." 게임속에서 살고 있는 현민은 꼬마여우란 그룹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이 좋아하시니 일단 아는 척을 하며 넘어갔다. 현민 덕에 공짜 티켓을 얻어서인지 선생님은 현민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고, 현민은 남들이 다 가는 그 시간까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어야만 했다. --------------------------------------------------------------------------------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40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현민의 접속에 맞추어 꼬마정령들이 달라붙었고, 현민은 그들에게 인사하며, 거실로 나갔다. "린, 나 사냥 좀 다녀올게." "응?" 한동안 계속 마법 창조만 할 것 같았던 현민이 나간다고 하자, 린은 그의 말뜻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재료를 모으려고. 최강의 아이템을 만들어야 되잖아." "아아...." 다양한 것을 구상하고 있는 지금, 여직껏처럼 다른 마녀들의 재료를 빌리기에는 양이 너무도 부족하여 그가 직접 사냥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내가 도와줄 일은?" "없어, 이제부터는 정령들도 경험을 쌓아야 할 것 같거든...." 현민의 말에 잠자고 있는 큐를 쓰다듬던 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민의 앞에 섰다. "빨리 돌아와야 해, 내 사랑 루나." "쿡쿡, 물론이지. 난 마녀잖아?" 그녀의 말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알기 때문인지 현민은 그녀의 말에 부끄럽거나 당황해하지 않았다. 대신에 처음으로 그가 린을 살포시 안아주었다. "다녀올게." "응." 잔뜩 볼을 부풀린 4명의 꼬마정령과 함께 빗자루에 올라탄 현민은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졌고, 현민이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린은 현민을 믿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는 오우거 밭이라고 불리는 오우거의 숲으로 가 볼까?" 남들보다 사냥을 늦게 시작하는 현민이었기에 사냥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아는 것이 적었다. 단지 어디에 어느 몬스터가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것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웅성웅성"파티하실 분~~ 공격력 300이상, 레벨 100이상 환영이요!!" "힐러분 모십니다!! 몸빵 확실해요!!" 마을의 텔레포트를 이용해 다른 마을로 이동한 현민은 사냥터로 향하는 길목에서 수많은 유저들이 파티를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유저들은 전사같은 물리적 공격이 가능한 존재들만 자신의 파티로 초대할 뿐, 마법사같은 직업은 받아주지도 않고 있었다. "저기, 마법사인데 낄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마법사는 안돼서요...." "3서클 유저인데 낄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안하고 경험치만 먹는 마법사는 껴줄수 없어." 좋은 유저들은 정중한 사양을 했고, 비매너의 유저들은 욕을 퍼부었다. 이곳저곳에 보이는 마법사들이 이렇게 사정하고 다니는 것을 본 현민은 조용히 혼자서 발을 옮겼다. 다른 파티에 매달리지 않아도 자신정도라면 몇 십 몇백마리의 모우거든 전부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봐요! 당신 레벨이 몇인데 혼자서 그쪽으로 가는 거에요?!" "응?" 자신의 발을 세우는 여성유저 때문에 자리에 멈춘 현민은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자신 또대의 금발 여자아이가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다. 피부색이나 약간의 얼굴형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현민은 그녀가 어느나라 사람인지 쉽사리 구별할 수가 없었다. "사제인가요? ......마법사??" 가까이 와서 바라본 현민의 묘한 복장에 여성유저는 현민이 사제란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알았다. 하지만 사제들이 입는 옷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이상하였고, 그래서 다시 물은 것이 마법사였다. "마법사에요." "히엑!! 세상에 마법사가 혼자서 달랑 들어가겠다는 거에요?!" 시끌시끌 현민의 말에 놀란듯이 그녀가 비명을 질렀지만 시끄러운 주변의 상황 때문에 그녀의 비명을 들은 것은 현민밖에 없는 듯 했다. "저희 파티라도 오실래요? 어차피 아이템 모을려고 하는 사냥이라 겸치 드셔도 상관 안하는데...." 도리도리"아뇨, 괜찮아요. 제의는 감사합니다." 여자를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거리는 네명의 꼬마정령 때문에 현민은 그녀에게 정중히 사양을 했다. 현민의 그런 태도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한 그녀는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자신의 파티가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검사, 힐러, 궁수에 방금 다가온 여자는 별도의 직업인가?" 그녀가 달려간 파티에는 여러명의 유저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차림세로 직업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세명밖에 없었다. "오빠오빠, 사냥가자." "응." 자꾸 자신을 보채는 묘 때문에 고개를 돌린 현민은 길을 따라 정식 명칭 '뭐뭐의 숲(?)'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크아앙!! "야! 잡아!!" "모두 준비해!!" 군데군데 자리를 잡은 유저들은 오우거가 리젠 되기를 기다리며 한 마리씩 사냥하고 있었다. 크아앙!! 흠칫! "대지의 족쇄! 대지의...." 쾅!! "왜 스틸하고 지랄이야?!!" 갑자기 나타난 오우거에 깜짝 놀란 현민이 대지의 족쇄로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다음 마법으로 오우거를 공격하려는 순간 뒤에서 나타난 전사계열의 남자가 욕을 하며 오우거를 베어버렸다. "오우거가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시팔놈아 네 새낀 매너도 없냐? 오우거가 나왔으면 돌아야지 치긴 왜 쳐! 썅!!" '둘........' 현민의 사정이 어떤지 상관하지 않는 그는 부상을 입은 오우거를 공격하고 있었고, 어느새 달려온 그의 파티원들이 오우거를 사냥해버렸다. "아, 시팔! 좆같은 새끼 때문에 경험치도 못 받았잖아!!" "뭐 저따위 새끼가 있어?" '셋.......' "오라버니, 저런 놈들 날려버릴게요!" "오빠.... 내가 묻어버릴게." 현민의 마음슥에서 세 번의 외침이 있었고, 상황이 정리된 상태에서, 화를 내는 정령들을 달래며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크아앙!! 흠칫, 팟! 걸음을 옮기려는 현민의 앞에 또 한마리의 오우거가 나타났고, 이번에는 공격하는 대신 그들이 몹을 잡도록 주위를 돌아주었다. "어? 벌써 나왔네?" "낄낄! 저 미친새끼 고생 좀 하라고 해." 그들의 주위를 돌며, 그들이 사냥하기만을 기다리던 현민은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는 순간 더 이상 참을 까닭을 알지 못했다. "장비창, 착용." 딸랑~. 오랜만에 들리는 익숙한 소리에 현민은 기분이 좋아졌고, 유저들의 표정은 굳어버렸다. 크아아아앙!!!!!! "대지의 족쇄," 대지의 족쇄(3서클) 소모 정신력 : 50 능력 : 심연의 대지에서 올라온 강인한 쇠사슬이 대상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현재 단계 : 10 주문 : ??? 땅에서 솟아오른 쇠사슬들이 오우거의 팔과 다리를 감싸았고, 오우거는 자신을 제한시키는 쇠사슬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대지의 손." 대지의 손(3서클) 소모 정신력 : 50 + ?? 능력 : 대지에서 일어난 손이 사용자의 손과 일체되어 공격한다. 사용자의 정신력에 따라 크기와 강도가 달라진다. 현재 단계 : 10 주문 : 대지에서 일어난 나의 손이......... 현민의 또 다른 주문에 땅에서 오우거보다 커다란 손이 올라왔고, 현민의 주먹을 쥐자, 거대한 대지의 손도 주먹을 말아 쥐었다. "흡!" 퍽! 쾅! 콰직! 한순간 호흡을 멈춘 현민이 양손의 두 주먹을 강하게 부딪혔고, 현민의 손모양과 똑같이 움직인 대지의 손이 엄청난 소리와 함께 오우거를 양쪽에서 눌러버렸다. 쇠사슬에서 벗어났다면야 손쉽게 막아버리거나 피할 수 있었지만 대지의 족쇄가 쉽게 풀리지 않았기에 오우거는 얌전히 현민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야 했다. 툭, 투투툭! "꺄아아악!!" "으아아악!!" 터져버린 오우거의 조각들이 비처럼 내렸고, 끔찍한 모습에 기겁을 한 유저들이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했다. "대지의 족쇄..." 딸랑. 방울 소리와 함께 울리는 현민의 마법에 도망을 치던 유저들의 움직임이 멈추어 버렸고, 현민은 천천히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누군지 아시죠?" "어, 어, 어릿....광대!!!" 욕을 하던 유저의 얼굴이 공포로 가득찼고, 현민은 그와 나머지 유저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인탱글." "으악!!" "꺄아악!!" "사, 살려줘!!" 겨우 인탱글 마법일 뿐이었지만 현민이 사용하는 마법을 아는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며 주위에서 사냥할 유저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구원의 손길조차 오지 않았다.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현민의 시동어가 유저들을 향했고, 유저들을 감싸고 있던 나무뿌리가 서서히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꺄아아......" 콰직! "으, 으아....." 퍽! ........ 나무의 뿌리에 으깨져서 죽은 유저도 있었고, 순식간에 터져버린 유저도 있었다. 너무나 잔인한 장면이기 때문인지 유저들의 몸조각들은 회색의 가루로 변하며 사라져버렸고, 이제 그 장소에 남은 것은 현민에게 욕을 했던 전사밖에 없었다. "으으... 사, 살려줘. 제발....." 딸랑딸랑~. 현민의 고개짓에 따라 울리는 방울소리에 남자의 얼굴은 공포로 물들었다. "....수중감옥." 뽀글뽀글.... 단지 조그마한 물덩어리이기에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으나, 끈쩍거리는 느낌의 물은 그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꼬르륵! 결국, 수중감옥 안에 있던 유저도 눈을 뒤집으며 죽어버렸고, 그 유저의 몸도 회색의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탁! 모든 상황을 정리한 후, 원래의 장비를 착용한 현민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꼬마정령들을 찾았다. "응? 이리와." "오라버니?" "오빠?" 부들부들.... "오...빠?" 소심한 염화는 몸을 벌벌떨며 현민을 바라보지도 못했고, 평소에 적극적이던 윈디아도 거리를 둔채 현민에게 다가오려하지를 않았다. -------------------------------------------------------------------------------- "괜찮아, 이제 다 끝났잖아." 아이템을 해제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현민은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양팔을 벌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현민에게 쉽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이렇게 안할게, 이리오렴." "흑, 흑흑. 오라버니!!" "으아아앙!!!" 윈디아를 시작으로 나머지 3명의 꼬마정령들도 현민에게 안겨들어갔고, 현민은 그런 아이들의 행동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토닥여주었다. "미안, 미안. 오빠가 많이 무서웠지?" "훌쩍, 아니." 유난히 많은 콧물을 흘리는 담비가 현민의 팔에 얼굴을 문지르며 대답해주었다. "우리 착한 꼬마정령들, 그만 울으렴. 앞으로는 깔끔하게(?) 죽일테니깐....." "우웅....." 무사히 꼬마정령들과 관계를 복귀한 현민은 남몰래 사냥하기 위해서 숲속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한편,"팀장님! 현재 S-42번 구역에서 코드네임 '어릿광대'가 모습을 나타냈답니다!!" "D-112번 구역을 감시하던 카메라를 모두 S-42번 구역으로 전환해서 이전과 같이 조사하세요!" 어두운 공간에 수많은 컴퓨터가 빛을 대신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니터를 확인하며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들의 중앙에 앉아 있는 한명의 여성은 수십대의 모니터에 둘러싸여 여러명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지시하고 있었다. "팀장님! 모든 유저들이 S-42번 구역으로 진입하기 위해 S-0지점에 모이고 있습니다!!" "제길!!! 현재 모든 운영자들을 호출하고, 저번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부터 다가가도록 명령하세요! 그리고 이번에 새로 만든 아이템을 반드시 착용하도록 전달하고요!" "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중심에 앉아 있던 그녀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여러대의 모니터에서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으득! 코드네임 '어릿광대'가 처음으로 발견된 지역의 이미지를 로딩시키시고, 시간의 비율을 1:1로 바꿔보세요." "현재, 청솔모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미지를 확인중! 모든 화면에 재생시키겠습니다!!" 타타닥! 탁! 타다다닥!! 키보드 눌리는 소리가 바쁘게 들려오면서 밀실 안에 있던 모든 화면들이 현민의 영상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정말 '어릿광대'라니!!" 수많은 허위 정보 때문에 고생을 했던 운영진들은 그동안의 노력에 보상이라도 받는 듯한 일에 기쁜 표정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대지의 족쇄. 촤르르륵!! 화면속의 현민이 주문을 외우자 땅에서 솟아오른 쇠사슬이 오우거의 몸을 고정시켰고, 청설모의 시선이 약간씩 떨리기 시작했다. "흔들림을 줄이고, 영상의 화질을 한단계 올려주세요!" "네!!" 청솔모의 흔들림에 맞추어 움직이던 영상의 떨림이 사라지고, 현민과 오우거의 대결이 좀더 선명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대지의 손. 콰드득 땅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손이 현민의 손동작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민이 양손을 주먹지자, 거대한 땅의 손도 주먹을 쥐어 현민의 손동작과 같이 벌어져 오우거를 사이에 두고 팽팽히 당겨졌다. "무, 무슨짓을?!" "설마!!" -크어엉!! 무언가의 공포를 느낀 오우거가 울부짖었고, 오우거를 사이에 두고 팽팽히 당겨졌던 거대한 손이 빠르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퍽! 쾅!!! 현민의 양 주먹이 강하게 부딪히자, 그의 손동작에 맞추어 대지의 손도 엄청난 소리를 내며 부딪혔고, 그 주먹의 가운데에 존재하던 오우거는 단발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조각으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후둑, 후두둑! 부들부들..... 한차례 떨림을 조정했지만 이번의 두려움은 더욱 컸는지 한계치까지 올려도 화면의 떨림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청솔모의 동공이 확대되고, 그의 눈은 현민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우욱!!" "우엑!!!!" 비위가 안 좋은 몇몇 여성직원들은 입을 가리고 밖으로 뛰어나갔으며, 가운데에서 현민을 바라보고 있던 팀장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웃.....고 있어." "아, 아아....." 밀실의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은 현재 현민을 비추고 있는 정지영상에 집중되어 있었다. 수많은 육편들이 떨어지는 가운데 확대된 현민의 얼굴은 분명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눈과 입이 웃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이야, 창의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면 그만이었지만 그가 보여주는 잔인함은 일반인이 만들어낼 수준이 아니었다. "팀장님! 현재 대기중인 운영진 121명이 현장을 중심으로 3km의 거리에서 대기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보고를 위해 냉정히 말한다고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은은한 떨림을 담고 있었다. 아무리 가상현실이라지만 현민이 보여준 잔인함은 그들의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가 않았다. "모두...... 대기하라고 하세요.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팀장님! 현재 수백의 유저들이 S-42번 구역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수는 현재 파악중! 의도는 코드네임 '어릿광대'의 또 다른 이름인 '보석의 마녀'란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점점..." 중간에 마녀의 모습으로 등장한 현민이 엄청난 가격으로 정령석을 팔아서인지 수많은 유저들이 현민이 죽을 때 떨어뜨릴 아이템에 눈이 멀어 그에게 탐욕을 품고 있었다.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낸 현민은 이번에도 운영자들에게 엄청난 시련을 주고 있었다. "제가 책임질테니 코드네임 '어릿광대'의 주변에 결계를 생성하세요." "팀장님, 현재 '어릿광대'의 주변에 다량의 몬스터 확인! 공격태세이기 때문에 비상결계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운영진, 유리아. A급 아이템 사용! 특수 아이템을 장착한 후, 게임으로 접속하겠습니다." 주위의 보고를 듣고 있던 그녀는 다급히 수화기를 들고 어딘가에 연락을 취했고, 그곳에서 허락이 떨어졌는지 한 장의 카드를 들고 한쪽에 있는 캡슐로 들어갔다. "모두 서포트 확실히 해주세요!" "네!" 수백의 유저가 사망하는 비상사태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는 한달 야근과 월급 삭감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고 A급 아이템을 전부 사용했다. 퐁~. "오빠, 그거 뭐야?" 품속에서 작은 향수병을 꺼낸 현민이 뚜껑을 열었고, 병에서 퍼지는 달콤한 냄새에 반응한 담비가 입가에 침을 흘리며 현민에게 달라붙었다. "먹는것 아니니깐 얌전히 있으렴." 현민의 말에도 자꾸만 달라붙는 담비 때문에 약병을 들고 있을 수 없자 현민은 어쩔 수 없이 담비를 잠시 때어놓았다. 크아아앙!!! "왔다!!" "오, 오라버니?" "오빠!!" 사방에서 울리는 몬스터들의 울부짖음에 잔뜩 긴장한 정령들이 현민의 곁으로 모여들었고, 현민은 자신의 몸에 향수의 약간을 묻힌 뒤, 병의 뚜껑을 닫아 품안에 넣었다. "제길!!" 땅의 울림을 들었을 때, 주변에 모여있는 몬스터의 수는 현민이 예상보다 몇 배는 많았다. 주변의 몇 마리 정도만을 유인할 것이라 생각했던 향수의, 확산속도가 생각보다 컸는지 숲의 모든 몬스터가 모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정한 환상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지의 상실이니, 그 시작을 지금 이곳에서........" 아무리 공격마법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현민이라도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 그는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메모라이즈라도 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공격만을 생각하고 숲으로 들어온 현민이 그런 것을 했을 리가 만무했다. 크아앙!! "오빠!!" "오라버니!!" "오빠!" "헉!!" "....엇갈린다, 진실된 거짓!!" 진실된 거짓(5서클) 소모 정신력 : 200 + ?? 능력 : 시간마저 속일 수 있는 듯한 강력한 환상마법. 믿음이 부족하고 정신력이 약한 존재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거짓속에서 영원을 헤맨다. 사용자의 정신력에 따라 마법의 범위와 지속시간이 달라진다. 현재 단계 : 1 주문 : 진정한 환상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지의 상실이니, 그 시작을 지금 이곳에서........ 촤아악!! "큭!!" 아슬아슬하게 마법을 완성한 현민은 샤벨타이거의 공격을 피해 아이들을 감싸고 땅에 엎드렸다. 하지만 그의 동작이 약간 늦어서인지 샤벨타이거의 발톱이 현민의 등을 찢었고, 현민은 서둘러 일어나 다음 공격을 방어했다. "캬아악!! 캬악!!" "응? 휴우....." 하지만 현민의 예상과 다르게 샤벨타이거는 안 보이는 무엇인가를 피해 연신 주변을 돌고 있었다. "우우웅.... 오빠 괜찮아?" "오라버니, 안아프세요?" 울먹울먹"아프겠당...." 점점 많은 수의 몬스터가 주변을 돌고 있었지만 그들이 현민 일행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고, 자신들이 안전한 것을 파악한 정령들은 다음 문제인 현민의 부상에 눈을 돌렸다. "오빠가 안보여서 그런데, 피 많이 나?" "응." "네." 끄덕. "응!" 자신의 부상에도 천진난만한 정령들 때문에 이상한 표정을 지은 현민은 일단 힐로 출혈을 막을 생각이었다. "오빠, 내가 침 발라 줄게." 퉤! 착! 슥슥슥. "윽!!" 마법을 사용하기도 전에 현민의 귀에 묘의 말이 들렸다. 이내 그의 등에서 조그만 손이 느껴졌고, 잔뜩 긴장한 현민은 묘의 작은 손에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등에서는 그가 생각하는 고통이 아니라 시원함만 느껴졌다. "정령손은 약손~, 오빠 등은 바~보♪. 묘~손은 약손~, 오빠 등은 멍청~이♬." 슥슥슥 묘는 주문이라도 외우듯이 노래를 부르며 현민의 등에 난 상처 주위를 문질러 주었다. 찰싹! "됐다!" "와!!" 물끄럼.... "묘, 나도나도!!" 묘의 손이 현민의 등에서 떨어지고, 현민은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알았다. 묘의 새로운 능력에 놀란 윈디아는 감탄했고, 염화는 자신의 손과 현민의 등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담비는 편안한 표정의 현민이 부러웠는지 묘에게 자신도 해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진실된 거짓'마법의 지속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5서클의 마법치고는 과도할 정도의 마나를 퍼부었기에 마법진의 시간은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5분정도가 남아있었다. "웃차! 상처도 없으니 사냥해 볼까나?" 묘의 능력으로 상처가 사라진 현민은 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기합을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의 주변으로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빈틈없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현민을 중심으로 거대한 공터를 만들고 있었다. "대지의 손." 콰드득"오빠, 깔끔히!!" "오라버니, 깨끗이 죽여주세요." "히잉~." 이전과 같은 마법을 발현하자 염화는 벌써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윈디아와 묘는 현민을 말렸다. "캔슬." 현민의 말에 땅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손이 사라져 버렸고, 현민은 정령들이 원하는 깨끗한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죽여야 깔끔하다는 거지?' 딱!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손가락을 튕긴 현민은 다급히 스킬창을 뒤적였다. 수영장(4서클) 소모 정신력 : 부피만큼의 마나(m단위) 능력 : 사각형 모양의 공간에 물을 가득 소환한다. 지속시간인 2분 동안은 물의 양이 줄어들지 않는다. 현재 단계 : 6 주문 : 대지에서 솟아난 물과, 자연에 퍼져있는 물과, 바다에 담겨있는 물을 모아......... "대지에서 솟아난 물과, 자연에 퍼져있는 물과, 바다에 담겨있는 물을 모아, 이곳에 불러오......." ['거짓된 진실'마법의 지속시간이 3분 남았습니다.] 현민이 주문을 외우고 있는 동안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고, 현민의 무식한 정신력도 벌써 절반이나 줄어있었다. "....가두어라, 수영장." 우우우웅!!! 콰콰콰콱!! 땅과 대기에서 기이한 울림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욕조에 물을 담듯이 허공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네모반듯하게 차오르는 마법은 그 일대의 주변을 전부 덮을 정도였고, 넓게 퍼져있던 몬스터들도 전부 감싸고 있었다. "5m정도면 어떤 몬스터도 올라오지 못하겠지?" 가로, 세로의 길이가 50m이고, 높이가 5m인 수영장을 만든 현민의 정신력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짧은 시간동안 소모된 현민의 정신력은 7500이나 되었다. 소모된 정신력만 가지고 서클을 계산했을 경우, 현민의 마법은 8서클과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정신력을 소모한 것이었다. 찰랑~. "와! 물이다~~." 물의 정령인 묘가 현민의 마법을 가장 좋아했고, 염화는 이미 현민의 등에 올라타 있었다. 현민이 있던 곳은 이미 물에 차 버렸고, 현재 현민은 물 '위'에 서있는 중이었다. "오라버니, 저 예쁘죠? 네?" "응." 슥슥. 자신의 발밑을 대주고 있는 것이 윈디아인 것을 아는 현민은 자신에게 안기는 윈디아를 쓰다듬어 주었다. ['진실된 거짓'마법의 지속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수영장'마법의 지속시간이 1분 30초 남았습니다.] "'모든 것을 만족하는 것'조차 견디지 못한 차가움으로 나 그대를 대하니, 그대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진실한 차가움에 한걸음 나아가.........." ['진실된 거짓'마법의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스윽.... "..... 모든 것을 얼려버려라! 아이스!!" 아이스(4서클) 소모 정신력 : 범위의 제곱. 능력 : 기본마법인 아이스의 강화형. 주위의 온도를 급속히 낮추어 모든 것을 얼려버린다. 현재 단계 : 6 주문 : '모든 것을 만족하는 것'조차 견디지 못한 차가움으로 나 그대를 대하니, 그대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진실한 차가움에.......... 가로세로 50m인 공간을 얼리기 위해서는 50√2를 지름으로 가지는 범위를 얼려야 하는데 이것의 면적을 계산하면 1250∏이 나온다. 이것을 수치로 바꾸어 소모되는 정신력을 계산하면 대략 3930이 소모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력이 남아도는 현민이기에 이런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지 일반 마법사들의 경우에는 절대 불가능한 마법이었다. ['수영장'마법의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울리는 메시지를 들으며, 현민은 자신이 이루어낸 말도 안돼는 일을 둘러보았다. -------------------------------------------------------------------------------- "후우...... 전부 잡았네." 현민의 발밑으로 200마리는 가뿐히 넘어보이는 몬스터들이 얼음속에 갇혀있었다. 얼음위에서 미끄러지는 것이 재미있던지 묘와 윈디아, 그리고 염화는 넓은 수영장의 이곳저곳을 미끄러지며 놀고 있었다. "우웅~. 춥겠당." 모두가 얼음위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 동안, 우리의 마음씨 착한 담비만은 얼음속에 갇혀 있는 몬스터들을 걱정해 주고 있었다. "내가 꺼내줄게~~." 너무나 착한(?) 우리의 담비는 현민의 눈을 피해 작디작은 주먹을 말아 쥐었고, 얼음을 향해 힘차게 내려쳤다. 콩!! "히잉~. 아퍼." "담비야? 혼자 있지 말고 이리오렴." "네~~." 현민의 부름에 대답을 한 담비는 이전까지 했던 일을 잊어버린 채, 현민이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달려나갔다. 쩌저적!! "응?" 멀리서 혼자놀고 있던 담비를 부른 현민은 불안한 마음에 담비가 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현민의 그런 마음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서, 설마?!" 파칭!! 쨍!! 챠아앙~. 혹시가 역시되고, 설마가 사람 잡듯이 현민의 예상도 정확히 들어맞아 그들이 놀고 있던 얼음이 순식간에 깨져버리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언 얼음이기 때문에 조금씩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버렸고, 현민과 정령들은 한순간 허공에 떠버렸다. "윈디아!!" 후우웅~. 현민의 부름에 맞추어 윈디아의 바람이 일행을 공중에 띄워주었고, 현민은 다행히도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묘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윈디아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염화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담비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묘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윈디아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바닥으로 내려서는 현민의 귀에는 시끄러운 메시지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제 40가 된 현민이 120~140대의 몬스터를 잡았으니 한 마리당의 경험치는 당연히 33.33333......%였고, 3마리당 1업을 할 수 있었기에 이정도의 폭렙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나마 4명의 꼬마정령과 경험치를 나눠서 그렇지, 만약 현민 혼자서 잡았다면 가볍게 130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와아~, 오빠! 오빠! 나 엄청 기분좋아~!!!" "오라버니, 황홀해~~." 발그레.... "와! 와! 와!!" 정령들의 레벨이 오르면서 무엇인가가 좋아진 것인지 그들은 몸을 베베꼬거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휘이잉~. 부서졌던 얼음 가루가 바람에 휘날리며 사라졌고, 현민은 주변에 위험이 있는지 살핀 후,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 이름 : 룬. Lv : 87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322(18) 정신 : 364(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680 방어력 : 52 생명력 : 2639 (+2300) 정신력 : 60825 ((+16000)*3) 물 속성 친화력 : 251 불 속성 친화력 : 132 땅 속성 친화력 : 132 바람 속성 친화력 : 132 정령력 : 1 물 Lv 79 스텟 : 234 바람 Lv 79 스텟 : 234 불Lv 79 스텟 : 234 땅 Lv 79 스텟 : 234 보너스 스텟 : 235 -------------- 현민의 레벨은 47이 올라있었고, 정령들의 레벨은 78이나 올라있었다. 어마어마한 폭렙 때문인지 현민의 상태창에는 이전과 같이 엄청난 스텟이 놀고 있었고, 현민은 곧 있으면 찾아올 운영자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불 속성 친화력에 78, 땅 속성 친화력에 79, 바람 속성 친화력에 78." ------------- 이름 : 룬. Lv : 87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322(18) 정신 : 364(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680 방어력 : 52 생명력 : 2639 (+2300) 정신력 : 60825 ((+16000)*3) 물 속성 친화력 : 251 불 속성 친화력 : 210 땅 속성 친화력 : 211 바람 속성 친화력 : 210 정령력 : 1 물 Lv 79 스텟 : 234 바람 Lv 79 스텟 : 234 불Lv 79 스텟 : 234 땅 Lv 79 스텟 : 234 보너스 스텟 : 0 -------------- "와!!! 오빠가 나한테 하나 더 줬다~~." 폴짝폴짝! 조금이나마 나이졌으면 하는 마음에 담비에 관한 친화력을 1 더 올렸으나, 담비의 행동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크게 없었다. 묘는 하나도 올려주지 않은 것 때문에 잔뜩 삐져있었고, 담비한테 패배(?)한 윈디아는 담비를 째려보고 있었다. 소심한 염화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다. "자~, 모두 조용!!" "히잉~." 현민의 한마디에 4명의 꼬마정령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현민은 아무런 말없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스텟에 대해 살펴보고 있었다. [정령의 스텟. 유저와 마찬가지로 친화력과 정령력을 올리는데 사용된다.] "흐음...." "오빠, 왜? 왜?" '그래서 내 스텟으로는 정령력을 올리지 못한건가?' 담비가 열심히 말을 걸었지만 깊이 생각하고 있던 현민은 담비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지 못했고, 혼자서 지쳐버린 담비는 염화의 옆에서 시무룩 모드로 전환했다. "상태창, 각 정령들의 스텟을 1:2로 정령력과 친화력에 분배." ------------- 이름 : 룬. Lv : 87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322(18) 정신 : 364(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680 방어력 : 52 생명력 : 2639 (+2300) 정신력 : 60825 ((+16000)*3) 물 속성 친화력 : 407 불 속성 친화력 : 366 땅 속성 친화력 : 367 바람 속성 친화력 : 366 정령력 : 313 물 Lv 79 바람 Lv 79 불 Lv 79 땅 Lv 79 보너스 스텟 : 0 -------------- 일반유저들은 키우기 힘든 정령들을 네 명이나 키우기 때문인지 1:2의 비율로 투자한 정령력도 가볍게 300을 넘어버렸고, 친화력도 다른 존재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높음을 유지했다. 하나의 정령을 키우는 유저가 정령의 모든 스텟을 정령력에 투자한다고 해도, 현민의 정령력과 같아지려면 적어도 105의 레벨은 되어야 했으니 현민의 경우는 말도 안돼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존재들이 현민과 같이 4대 정령들을 키운다고 한다면 그들도 현민 정도의 스텟은 나올 수 있겠지만 그만큼의 경험치를 그들이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팟! "큭!!" 올린 스텟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현민에게 하나의 화살이 날아왔고, 갑자기 날아온 화살을 피하지 못한 현민은 상처가 난 팔을 감싸며 무릎을 꿇었다. "오빠!!" 옆에 있던 묘가 현민의 팔을 감쌌고, 현민은 그녀의 손에서 나오는 차가운 기운에 의해 자신의 상처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건?" "헤헤, 나 예쁘지?" 수많은 화살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주위의 상황과 상관없이, 현민에게 머리를 들이민 묘는 현민이 쓰다듬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살에 의해 스친 상처가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장비창에서 가면을 꺼내어 썼다. 딸랑... 슥슥슥. 팍! 파팍! 팍! 고개를 숙이고 눈을 올려 자신만을 바라보는 묘를 거부할 수 없었던 현민은 어쩔 수 없이 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현민이 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사이에도 수많은 화살들이 현민의 주위에 박히고 있었다. 하나의 화살도 맞지 않자 의아한 현민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이번에는 윈디아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현민을 향해 가슴을(?) 내밀고 있었다. "오라버니, 저도요." "하아......." 너무나 개성이 강한 정령들 때문에 곤란한 현민은 정령들만으로 머리가 복잡해 주변을 신경쓰지는 않았다. "오라버니~." "하아...." 도대체 8살 정도의 꼬마가 뭐 보여줄게 있다고 자꾸 달라붙는지, 윈디아는 현민이 자신의 가슴(있는지 모르지만...)을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리며 꿋꿋이 내밀고 있었다. -------------------------------------------------------------------------------- "오라버니~." "하아...." 도대체 8살 정도의 꼬마가 뭐 보여줄게 있다고 자꾸 달라붙는지, 윈디아는 현민이 자신의 가슴(있는지 모르지만...)을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리며 꿋꿋이 내밀고 있었다. 그들의 장난스런 모습에 화가 난 유저들은 현민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시작해 버렸다. "죽어랏!!!" "죽음의 그림자가 적을 처단한다! 쉐도우!!" 순식간에 현민의 앞으로 다가온 한명의 전사가 현민의 전신을 단도질해 버렸고, 동시에 들려온 누군가의 주문에 현민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현민의 몸을 할퀴고 지나가 버렸다. 팟! 슈리릭! 현민의 몸위로 지나간 두 유저의 공격이 현민을 갈가리 찢어버린 것같이 보였기에 현민을 감싸고 있던 유저들은 현민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죽음을 당연히 여기고 현민의 시체에서 얻을 아이템을 기대하고 있었다. "깔깔깔깔!!!" 흠칫! "어, 어디?!!!"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현민의 모습이 눈에서 사라지는 동시에, 그들의 귓가로 마녀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유저들은 당황하며 사방을 살피며, 현민의 공격을 경계했다. "모두들 저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네요, 쿠쿠쿡. 하지만 저는 시간이 없는 관계로 모두를 상대해 줄 수가 없답니다." 블링크로 공중에 몸을 띄운 채, 마녀의 지팡이를 타고 있는 현민을 발견한 유저들은 현민의 공격이 오기 전에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현민이 가지고 있는 직업이 마법을 다루기 때문에 광범위 공격을 사용하는 그의 직업상 여럿이 흩어지는게 피해가 가장 적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짜악!!! 주륵... 개 때처럼 이리저리 흩어지는 유저들을 공중에서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양손을 활짝 펼치고, 팔을 강하게 휘둘렀다. 현민의 양 손바닥이 찰싹 달라붙으면서 듣기만 해도 따가운 소리가 울려퍼졌고, 정확히 붙어있는 양손의 손가락 끝에서 작은 핏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출혈(패시브) 능력 : 바늘로 딴 듯 손끝에 약간의 상처를 만들어 핏방울이 고이는 마법. 양손의 손가락이 딱 들어맞으면 발동. 슥, 스스슥... 슥, 스슥. "증폭하라, 마법의 힘이여. 늘어나라, 마법의 숫자여. 내 피에 담긴 힘을 받아, 언어가 만들어내는 힘을 받아, 진정한 마녀가 흘리는 핏속에서 경쾌하게 춤을 추며, 모든 것을 변화시켜라......" 우우우웅......... 현민의 양손이 허공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현민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핏물들이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허공에 그려졌다. 마법진이 완성되어 가는 동안 강한 진동을 내뿜는 피는 현민이 마법진을 빨리 만들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웅! 우웅! 우웅!...... 고동소리처럼 들리는 마법진의 울음과 함께 붉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가면 속 현민의 입에서 짓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스윽..... "대지의 족쇄." "우와....." "와!" "아....." "멋지다...." 완전히 이루어져 핏빛을 내뿜고 있는 마법진의 위로 현민의 손이 올려졌고, 현민의 입에서 마법의 시동어가 흘러나왔다. 현민이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동안 약간 떨어져 있던 정령들은 현민이 발현하는 마법이 너무나 화려하여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크아아악!!" "으악!!" "꺄아아악!!!" "크헉!!" 위에서 감탄하는 정령들과 다르게 땅에서 현민의 마법에 당하고 있는 유저들은 연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현민의 마법진과 마법이 만나자, 땅에서 솟아나온 대지의 족쇄가 뱀처럼 엉켜들며 넓은 범위의 유저들을 감쌌고,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강하게 끌어당겼다. 특별한 공격력이 있는 마법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벗어나지 못하도록 강한 힘으로 졸랐기에 현민의 마법에 당한 유저들이 비명을 지른 것이었다. "'어릿광대'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응?" 더 이상 공격하는 유저들이 없자, 조용히 자리를 벗어나려던 현민은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부르자 이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 현민의 앞으로 다가온 존재는 은색의 매끄러운 곡선을 자랑하는 갑옷을 입고 있었고, 등에는 멋들어진 3쌍의 날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양손에는 한눈에 봐도 특별해 보이는 검과 방패가 하나씩 들려있어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운영자?" 너무나 뛰어난 장비와 화려한 모습에 자신의 앞에 나타난 존재가 운영자인 것을 눈치 챈 현민이 잽싸게 도망가려 했으나 현민의 앞에 나타난 운영자는 현민의 길을 막으며 현민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견재했다. "영자님!! 저 새끼 버그캐릭이니깐 당장 지워주세요!!!" "저 새끼 버그에요!!" 화려한 갑옷을 입고 등장한 존재가 운영자인 것을 알아차린 유저들이 현민을 비난하며 난리치기 시작했고, 그들의 아우성에 현민의 표정은 점점 싸늘하게 변해갔다. "운영자님?" "네?" "날 막아보세요. 쿠쿡!" 마녀의 가면과 복장을 하고 있던 현민이 지상으로 급격히 하강하면서 어릿광대의 복장으로 갈아입었고, 현민의 행동에 당황한 운영자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현민을 막기 위해 그의 곁으로 내려갔다. 딸랑딸랑~. 스윽.. "여신의 발걸음...... 그래비티." 쿠득. 한쪽 발을 들고 있던 현민이 자신을 향해 중력을 조절하는 그래비티 마법을 사용하였다. 몸을 내리 누르는 압력에 현민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한쪽 발이 바닥에 자국을 남겼고, 현민은 몸을 누르는 압력에 이를 악물고 중심을 잡았다. "무, 무슨????" 귓가를 자극하는 방울소리에 불안감을 느낀 운영자가 떨어지는 속도를 한층 더 높였고, 빠르게 내려오는 운영자를 보고 있던 현민은 들어 올린 발을 내려 지면을 밟았다. 콰직. 콰콰콰콰쾅!!!!!!!! 들어올려진 현민의 발이 중력과 현민의 힘에 의해 지면에 박혀 들었고, 현민의 발에 맞추어 공중에서 떨어져 내린 무엇인가가 현민의 주위에 있는 유저들 모두를 짓눌러 버렸다. 펄럭!! "아, 아......." 이미 벌어진 마법에 내려가는 것을 멈춘 그녀는 숲의 한가운데에 생긴 거대한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여신의 발걸음(3서클) 소모 정신력 : 50 + ?? 능력 : 하늘에서 생겨난 거대한 압력이 사용자의 발과 일체되어 상대를 공격한다. 사용자의 정신력에 따라 크기와 압력의 쌔기가 달라진다. 현재 단계 : 10 주문 : ??? -------------------------------------------------------------------------------- "늦었어요...." 현민의 말에 정신을 차린 운영자는 바닥에 눌려버린 유저들의 모습을 보며, 할말을 잃어버렸다. '대지의 족쇄'라는 마법으로 움직임이 구속되어있었기 때문인지 모든 유저들이 현민의 한걸음에 기이한 형태로 바닥에 눌려있었다. "무슨일로 오신거죠?" 펄럭펄럭! 자신을 올려다보는 현민의 말에 화들짝 놀란 운영자는, 현민이 한 일이 생각나서인지 화난 표정으로 현민의 앞까지 날아가 조용히 땅에 내려섰다. "도대체 왜! 저들을 죽인거죠?!!" "공격은 저드....컥!!!" 우득! "개 같은 새끼!!" "꺅!!" "악!"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운영자에게 말을 하고 있던 현민은 갑자기 자신의 목을 잡는 거친 손길에 뒤의 말을 하지 못한 채, 허공에 들어 올려졌다. 그의 뒤에는 심하게 구겨진 갑옷을 입고있는 유저가 서 있었는데, 그의 상태로 보아 현민의 공격에 처참히 당했던 유저중 하나로 생각되었다. "누, 누구?!" 현민의 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던 운영자도 갑자기 현민을 들어올리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현민의 뒤를 바라보았다. 운영자의 시선이 현민의 뒤에있는 유저에게로 꽂혔고, 그녀는 그곳에서 한 마리의 짐승으로 변화하고 있는 특이한 유저를 볼 수 있었다. 온몸에 털이 나고, 몸집이 거대해 지면서 그 유저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왔고, 그 기운에 놀란 운영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피해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네가 어떤 새끼인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야.... 크르릉." 갑작스레 공격당한 현민이 적의 손에 붙들려 버리자, 경험이 없는 4명의 꼬마정령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현민의 목을 잡고 있는 유저를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느......늑대인간?" 완벽히 모습을 바 꾼 그 유저는 70, 80년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늑대인간이었다. 그의 몸은 2m를 가뿐히 넘어 보였고, 그의 몸은 털에 가려져 있었지만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도 모르게 현민을 잡고 있는 존재에 대해서 말을 꺼낸 운영자였지만, 갑작스레 시작된 그들의 싸움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떠...떨어져!" "크르르릉..." 우득! "컥!!" 현민의 말을 들은 늑대인간이 왼손을 들어올려 현민의 어깨를 잡았고, 현민의 어깨에서는 최소한 뼈가 엇갈리는 정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펄럭!! '그가 한 말은 나한테 였어!' 현민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 그의 눈동자가 자신의 눈을 향하고 있는 것을 봤기에, 운영자는 현민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날개를 펼치면서 하늘로 날아올랐고, 현민은 그녀가 날아오르자 다행스럽다는 표정으로 정령들을 돌아보았다. "떨어져!!" 흠칫!!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현민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았기에 그가 한 말이 자신에게 한 것이라 생각한 늑대인간은 현민의 몸을 더욱 높이 들어올렸고, 현민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는 한 층 더 높아졌다. 현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동안 늑대인간의 눈을 피하고 있던 정령들은 현민의 말에 따라 멀리 이동하기 시작했고, 현민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스(2서클)." 쭉! 현민의 마법이 발동되면서 현민의 목을 잡고 있던 늑대인간의 손이 미끄러져 버렸고, 현민은 재빨리 그의 품을 벗어나 다음 마법을 사용하였다. "절대방어! 대지의 족쇄!" 단단해 보이는 하나의 구체가 현민을 감싸며 보호하였고, 땅에서 솟아나온 여러개의 족쇄가 늑대인간을 노리고 뱀처럼 덤벼들었다. "두 번은 안 당해!!!" 하지만 이미 당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늑대인간은 현민의 마법을 피해 빠르게 움직였고, 늑대인간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한 대지의 족쇄는 시간이 지나자 다시 땅으로 사라져 버렸다. 깡! 깡! 깡! 빠른 스피드로 움직이는 늑대인간이 현민을 감싸고 있는 '절대방어'마법을 공격하는지 마법의 주위에서는 날카로운 소리가 쉴 틈 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까짓 꺼! 흐아아아압!!!!!!" 멀찍이 물러서선 늑대인간 유저가 손톱을 길게 늘어트리자 그의 송곳니에서 진득한 느낌을 가진 어두운 기운이 넘실거리며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현민의 방어를 뚫기 위해 힘을 모으는 듯 한 그의 행동에 현민도 조용히 방어를 거두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아무리 강해도.... 당신이 아무리 빨라도....." "아랑아(餓狼牙 : 굶주린 늑대의 이빨)!!" 그가 쉴틈없이 공격하여서인지 현민을 감싸고 있던 마법은 어느새 숲이 있는 곳까지 이동해 있었고, 현민의 위치는 어떠한 마법을 사용하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였다. "......여왕의 거미줄은 벗어날 수 없어요.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여왕의 거미줄(5서클) 소모 정신력 : 100 능력 : '진실한' 여왕의 거미줄과, 같은 능력을 지닌, 마나의 거미줄이, 감싸않은 먹이를 놓아주지 않고 움직임을 봉쇄한다. 주위에 거미줄을 지탱해줄 무언가가 있을 경우 발현된다. 현재 단계 : 1 주문 : '진실한' 여왕의 거미줄이 내 주위에 퍼져 나의 먹이를 기다리............ 오우거를 사냥하기 위해서 메모瓚訣?해놨던 마법이 엉뚱한데 사용되기는 했지만 현재의 상황을 쉽게 벗어날 수 없던 현민은 그 이외의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크아앙!!!" '아랑아'라는 기술을 쓰는 그 자세 그대로 거미줄에 걸려버린 불쌍한 늑대인간은 연신 비명만 지를 뿐, 거미줄을 끓고 도망치지를 못했다. 오히려, 그의 움직임으로 인해, 주변에 있던 거미줄마저 그에게 달라붙어 그의 행동을 방해했다. ".....소용없어요." "하아, 하아, 하아...." 자꾸만 엉켜드는 거미줄을 벗어나지 못한 유저는 결국 지쳐버렸고, 현민은 그런 유저의 앞으로 걸어가 유저의 눈을 마주보았다. 늑대 특유의 냄새와 살기가 현민을 자극했지만 현민은 자신의 마법을 믿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큭, 크크큭! 크하하하하하!!!" "왜 웃죠?" 가까이 다가온 현민을 바라보던 늑대인간이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고, 그것에 호기심을 느낀 현민이 물어보았다. 이때, 공중에 있던 운영자와 주변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정령들은 정리되어 가는 상황에 현민의 곁에 다가갈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히든 클래스에 속하는 것 중에 하나가 늑대인간이다. 하물며, 하찮은 마법사도 이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숨겨진 직업(직업인가?)중의 하나인 늑대인간이 겨우 이정도 일 것 같아?!!! 늑대의 울부짖음은 광기를 불러오고, 늑대의 발톱은 잔인한 피의 강을 흐르게 한다!!!!" 우득! 우드득!! 늑대인간의 몸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고, 현민은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이는 늑대인간에게서 한걸음 물러섰다. 늑대인간은 제 2차 변이를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몸이 한 층 더 커지면서 대략 4m를 넘어가고 있었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광기와 살기는 현민과 운영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크아아아앙!!!!" 그의 몸이 거대해지든지 말든지 거미줄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거미줄만의(?) 생각이었는지 거미줄을 지탱해주고 있던 나무와 돌은 땅에서 뿌리 뽑혀 맥없이 떨어졌다. "죽...여 버리겠다." "아뇨, 나는 죽지 않아요. 당신만 죽을뿐........ 그 누구도 나를 건들지는 못해." "크아아앙!!!" 현민의 도발에 넘어간 늑대인간이 순식간에 거리를 0으로 만들며 현민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이 현민을 스치고 있을 때, 현민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있었고, 늑대인간 유저는 현민이 있을 곳으로 예상되는 곳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여 모습을 들어내고 있는 현민을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아쉽지만, 놀이는 여기까지." 딸랑딸랑.... 선언하는 듯한 현민의 말에,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방울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고, 현민의 분위기에 눌린 운영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잡으며, 발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싸움을 지켜보았다. "크아아앙!!!!" ".....대지의 심판." 푹! 푸푸푹!! 푹! 콰직! 푹!! 콰드득! 우직! 우득!.......... "끄, 끄어어......." "꺄아아아아악!!" 대지의 심판(5서클) 소모 정신력 : 320 능력 : 땅에서 솟아나온 단단한 창이 가시나무처럼 뻣어나며 주위에 있는 모든 적을 공격한다. 현재 단계 : 1 주문 : 대지에서 솟아나온 강인한 창이 그대를 뚫고........ 현민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수 백 개의 뾰족한 창이 솟아올라왔고, 그중의 몇 개가 늑대인간의 유저를 정확히 공격하고 있었다. 늑대인간 유저를 공격한 창은 각각 오른발, 왼쪽어깨, 복부 상단, 왼쪽옆구리를 관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넓은 장소에 솟아난 창들의 중간 부분에서 다시한번 날카로운 창이 이곳저곳으로 뻗어나갔고, 그곳에서 뻗어난 창들의 중간에서 또 다시 창이 뻗어나가며, 대지에서 솟아난 창들은 거대한 나무와 같은 모습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늑대인간 유저는 그러한 창에 정확히 꽤뚫렸기에 온몸에서 창이 솟아나온 처참한 모습이었다. "아, 아......" 높게 뻗어나가는 현민의 마법은 멀리서 볼 때에는 단순히 수 백 그루의 나무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에서 확인 할 경우 상당한 예기를 뿜어내는 창들이 살벌해 보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주, 죽여버리....." "아직도 안 죽었네요?" 현민의 마법에 당한 늑대인간은 엄청난 회복력 때문인지 온몸이 걸레가 된 상태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그럼, 확실히 보내드릴게요. 지옥의 문." 지옥의 문(5서클) 소모 정신력 : 230 능력 : 땅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며 대상을 집어삼킨다. 대지에 생겨난 구멍에서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현재 단계 : 1 주문 : 모든 영혼은 땅으로 돌아가니, 지금 그 사자(死者)의 문을 열어 살아있는 존재를 돌려보내............. 현민의 마법이 발현되면서 늑대인간의 발밑에 짙은 어둠으로 감싸여진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고, 그 구멍은 천천히 자신의 위에 존재하고 있는 늑대인간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부디 편안히 죽을 수 있기를......." '지옥의 문'이라는 마법은 상대를 땅으로 끌어당기는 단순한 마법이었지만 현민의 잔인함이 가장 잘 들어나는 마법이기도 했다. '지옥의 문'을 통해 땅으로 들어간 유저는 '지옥의 문'이 가지고 있는 환상을 보면서 엄청난 공포를 느끼며 땅의 압박감과 산소부족으로 인한 생명력의 감소로 죽음에 이르는 잔인한 마법이었다. "오라버니~." "오빠!!" 늑대인간을 마지막으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자 그의 주변으로 정령과 운영자가 다가왔고, 현민은 고개를 돌려 운영자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유저들의 싸움에 관여하는 거죠?" 현민은 자신을 막으려 했던 운영자의 행동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어보았고, 그녀는 현민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가장 적당한 답을 생각했다. "......내가 당신을 말린 것은 운영자로서가 아닌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에요." "운영자로서는?" 자신의 생각이라 말하는 그녀이기에 더 이상 따질 이유가 없었던 현민은 그녀가 찾아온 또 다른 이유를 물어보았다. "몰이 사냥에 대한 자제와, 정령석의 판매 금지를 부탁하기 위해서에요." 운영자의 말을 듣던 현민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그것을 눈치 챈 정령들이 사나운 표정으로 운영자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노려보는 정령을 보지도 못했고, 가면으로 가려진 현민의 얼굴도 보지를 못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둘 다 거절하죠." "!!!" 그녀가 예상한 현민의 대답은 두 가지 중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이었으나, 현민은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두 가지 전부를 거절해버렸고, 다급한 운영자는 재빨리 보상을 말해주었다. "6개월의 무료사용과, 제가 현재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소유권, 그리고 이벤트와 패치에 대한 정보의 우선권을 드릴게요. 이 정도면 동등한 가치가 있겠죠?" "허!!" 그녀는 나름대로 생각한다고 해서 말한 것인것 같았지만 현민이 듣기에는 기가차서 말이 안나왔다. "오빠." 현민의 불쾌함이 한계를 넘어가려 하자, 평소에 말이 없던 염화가 현민을 부르며 손을 붙잡았고, 현민은 그런 염화의 태도에 마음을 식히며, 운영자를 바라보았다. "정령석 하나가 얼마인지 아시죠?" ".......50강." "저만 만들 수 있는 물건이기에 그 상품의 희귀성은 아주 높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템의 가격도 높은 것이지요. 그런 물건 하나만 팔아도 수백의 돈이 들어오는데, 겨우 그 정도의 조건을 내걸면서 나보고 정령석을 팔지 말라고요? 당신은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현민의 말대로 엄청난 돈을 벌게 할 수 있는 정령석을 팔지 말라고 강제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현재 현민이 알기에 게임에 존재해선 안 돼는 수 만 가지의 아이템이 만들어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단 한번의 운영자 제지가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물건을 강제한다는 것은 절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저희가 걱정하는 것은 당신이 그 물건의 희귀성을 가지고 게임과 현실사이에 존재하는 화폐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에요. 당신이 말했듯이 희귀성이 큰 물건인만큼 사람들의 욕심도 많고, 나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그것을 사려는 사람도 많이 있을 거에요. 그런 이들에게 당신이 정령석을 판다면 갑부가 되겠지만 그것은 게임에서일 뿐, 절대 현실에서 되면 안돼는 것이에요." "이해가 안 되는군요. 게임과 현실의 화폐를 교환해 주는 것은 '가우리'이면서 나보고 팔지도, 사지도, 바꾸지도 말라? 만약, 당신들처럼 현실에 존재하는 화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그런 것은 피해야하지 않았나요?" 서로의 생각을 말하는 그들은, 전혀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둘의 생각 모두가 타당하기에 어느것 하나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나서지 않음으로써 최악의 경우, 어떠한 기업이 시장을 독점해 버릴 수도 있죠. 우리는 그런 것을 막기 위해서 가장 적정한 정도의 양을 기준으로 잡고 현금화 해드리고 있는 것일 뿐이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죠."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현민의 표정은 절대로 좋은게 아니었다. ".....당신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아나요?" 현민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모른다는 행동을 했다. "당신은 나의 성별을 아나요?" 또 다시 이어지는 현민의 질문에 다시한번 그녀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고, 현민은 그런 그녀를 향해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나의 이름을 아나요? 당신의 나의 성격을 아나요? 당신은........." 계속해서 이어진 현민의 질문에 운영자의 고개는 좌우로만 움직일 뿐, 단 한번의 긍정도 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당신은 나의 무엇을 아는거죠?" 현민의 마지막 질문역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런 것도 모르는 당신은 어째서 나를 막아서는 거죠? 여직 했던 패치들 전부 저를 겨냥해서 한 것 아닌가요? 내가 그렇게 바보로 보였나? 그.따.위.로 행동하면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딸랑딸랑... 거칠어진 현민의 말과 행동에 따라 그의 모자에 있던 방울이 심하게 흔들렸고, 그를 마주하고 있는 운영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흠칫! 펄럭!! 무엇인가를 느낀 운영자가 날개를 펼치면서 하늘로 날아올랐고, 현민은 그녀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전에 서둘러 마법을 사용하였다. "대지의 족쇄." 촤르르르륵. 뱀처럼 튀어나온 여러개의 족쇄들이 운영자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운영자는 대지의 족쇄에 끌려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캔슬!" 시동어 만으로 현민의 마법을 없애버린 운영자는 다시한번 날개짓을 시작하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현민의 갑자기 사라진 마법을 대신해 또 다른 마법을 사용하였다.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허공을 뒤덮는 거대한 거미줄을 피하지 못한 운영자는 맥없이 붙들려 버렸고, 현민은 그녀가 도망가기 전에 서둘러 공격마법을 사용했다. "여신의 발걸음!" 쉬이익!! "캔슬!" 팍! 무겁게 내려오던 대기의 움직임이 운영자의 한마디에 맥없이 사라져버렸고, 좀 전 과는 다르게 현민의 발소리만 작게 들려왔다. "과거의 영광속에 태어난 불의 검이여, 숨겨진 너의 모습을 해제하고, 여기 이 자리에 진실한 불빛을 밝혀라!!" 화르륵!! 허리에서 검을 뽑아올린 운영자가 하나의 멋진 주문을 외우자 그녀가 들고 있던 검에서 어마어마한 열기와 불꽃이 피어올랐고,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불꽃이 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저는 대화를 원할 뿐이에요! 이 이상 공격하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화려한 검을 들고 하늘을 날고 있는 운영자의 모습은 영화속에서 나오는 듯한 멋진 모습이었지만 현민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마법을 취소시키는 '권한'이 있나보죠? 아니면 '아이템'이던지 말이에요." 한순간의 분노로 무차별하게 마법을 날렸던 현민은 계속해서 사라지는 자신의 마법 때문에 이성이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그의 이성은 운영자의 숨겨진 '카드'가 무엇인지를 추측했다. "...." "뭐, 상관없어요. 당신이 마법을 취소시켜도 방법이 없는것은 아니니깐. 쿠쿡...." 현민의 물음에 운영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현민은 그런 운영자를 바라보며 차갑게 웃고 있었다. "수중감옥." "꼬르륵.." 뽀글뽀글.... 갑작스런 현민의 선재공격에 운영자는 맥없이 당해버렸고, 현민의 마법에 갖혀 물을 들이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그녀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고, 그녀를 감싸고 있던 현민의 마법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대지의 족쇄." 촤르륵! 현민의 수중감옥을 없애고 숨을 들이쉬며, 몸을 추수리던 그녀는 이어지는 현민의 공격에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려고 했다. "헤이스트." 하지만 이어지는 현민의 마법에, 갑자기 빨라진 쇠사슬이 운영자를 땅으로 끌고 내려왔고, 운영자는 '캔슬'을 말하기도 전에 땅에 떨어지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쾅! "컥!!" "대지의 심판." 조금 전 늑대인간을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지게 했던 마법이 다시한번 발현되려 했으나, 현민의 마법보다 먼저 실행된 운영자의 캔슬이 현민의 마법을 발현도 되기 전에 모두 없애버렸다. "합!" 반쯤 몸을 일으킨 운영자가 현민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안좋은 느낌과 운영자의 무기에서 위험함을 느낀 현민은 막을 생각을 하기 보다는 몸을 허공으로 띄우며, 피할 생각부터 했다. 화르륵! 다행이 현민의 예상이 맞아떨어졌고, 그녀의 검이 지나간 궤적에는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오르며 숲을 파괴시키고 있었다. 잠시 뒤, 허공을 가르던 불이 사라져 버렸고, 현민은 불길이 솟았던 그 곳에서 단 한그루의 나무도 볼 수가 없었다. "피닉스!!" 끼이익!!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내려오는 검의 끝에서 거대한 날개를 가진 '불의 새'가 현민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고, 현민은 불새의 열기가 몸에 느껴질 쯤 아이스 마법을 실행했다. "아이스!" 뜨거움과 반대되는 차가운 기운이었기에 현민의 마법과 운영자의 공격이 만난 부근에서는 심한 안개가 피어올랐고, 현민은 운영자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노리고 자리를 이동했다. "거기냐?!!" 팟! 가려진 시야와 상관없이 한순간 느껴진 현민의 기척을 읽은 운영자가 한쪽 방향을 향해 칼을 휘둘렀고, 그녀의 칼이 스쳐지나간 궤적의 모든 것이 파멸되었다. 하지만 그 속에 있던 현민의 기척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고, 그녀가 현민의 기척을 느끼기 위해 사방으로 집중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뒤에 현민이 있다는 동료들의 다급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인탱글.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앱솔루트 실드!" "캔슬!" 순식간에 운영자의 몸을 감싼 나무뿌리가 빠른 속도로 두꺼워졌고, 모두가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의, 마법이 운영자를 보호하고 있었다. "착한 운영자를 괴롭히는 것 보다는 같은 마법사끼리 싸우는게 어때요?" 흠칫!! 어떠한 기척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현민은 다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고,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든 전형적인 마법사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자 길드?" 순식간에 나타난 그녀의 차림새를 살피던 현민은 그녀의 로브에서 책과 지팡이가 그려진 그림을 발견하였고, 그것이 뜻하는 유명한 길드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나름대로 유명한데 저를 본적이 없나봐요?" 자신이 알고 있는 현자길드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현민의 앞에 나타난 그녀가 현민에게 자신에 대한 하나의 힌트를 주었고,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현자길드의 구성원중 가장 유명한 한 명이 떠올랐다. "......채리플랑." "정답~." 시작한지 몇 달만에 5서클을 이룩하며, 세계적인 천재로 이름을 알렸던 그녀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자,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갔고, 그녀의 움직임에 하나하나 반응하게 되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마세요. 심한 긴장은 몸의 움직임과 생각에 영향을 주니깐요." 끄덕. 딸랑딸랑....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생각한 현민은 호흡을 조절하며 몸의 긴장을 이완시켰다. "운영자 언니는 멀리 피해주시겠어요? 상당히 과격한 싸움이 될 것 같거든요." 비록 운영자에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현민의 눈에서 떨어지질 않고 있었다. 그만큼 현민의 실력을 인정하고,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펄럭! "이제 방해꾼도 사라졌는데, 한번 해 볼까요?" 채리플랑의 말에 운영자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잠깐 운영자를 곁눈질한 그녀는 현민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7서클의 마스터, 채리플랑이 '어릿광대'님에게 도.전. 하겠습니다." "받아들인다." 그녀의 도전과 현민의 승낙이 이루어 지면서, 현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녀보다 먼저 선재공격을 시도했다. "대지의 족쇄!" 촤르르륵!! "대지의 손!" 콰콰쾅!!! 그녀와의 엄청난 차이를 느낀 현민은 처음부터 인정사정없이 그녀를 공격하였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마법을 보며, 첫 번째 공격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르륵! 거대한 불꽃이 현민이 있던 자리를 불태워버렸고, 현민은 다급히 몸을 움직이며,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휘이잉... "수중감옥!" 현민의 공격으로 두껍게 피어오른 먼지 속에서 그녀의 그림자를 확인한 현민이 그녀가 있음직한 곳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으나, 먼지가 사라지고 들어난 것은 아무것도 갖혀 있지 않은 현민의 마법 뿐이었다. 흠칫! "아이스 에로우!" 핑! "큭!!" 빠르게 날아온 그녀의 공격을 간신히 피한 현민의 몸이 이상한 모양으로 변해버렸고, 중심을 잡을 수 없는 현민의 자세를 눈치 챈, 그녀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현민을 향해 또 하나의 마법을 사용했다. "Boom!!" 펑!! "크억!" 그녀의 마법에, 땅에 떨어지려는 현민의 등 뒤에서, 압축된 공기가 터져버렸고, 갑자기 팽창된 공기에 얻어맞은 현민의 몸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스트랭스! 그래비티! 여신의 발걸음!!" 현민의 몸이 허공에 높이 올라간 순간, 현민은 세 개의 마법을 연달아 사용했고, 떨어지는 그의 속도와 함께 엄청난 기운이 현민의 발밑에 있는 채리플랑을 향하고 있었다. "깨어나라, 대지의 거인이여. 일어나서 나를 보호하라! 자이언트!" 콰콰쾅! 그녀의 마법이 실현되면서, 그녀를 둘러싼 땅이 높이 솟아올랐고, 그녀가 있는 자리만 남겨놓은 채, 주변의 모든 것을 막아버렸다. 빠르게 낙하하는 상태에서 사용한 '여신의 발걸음'이기에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녀를 감싸고 있던 땅 역시 엄청난 압력을 가지고 있기에 현민의 마법에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인탱글! 어스 스피어!!" 쉬리릭! 팍!! "큭!" 땅에서 솟아난 나무뿌리가 현민의 발목을 잡아챘고, 그것과 함께 솟아난 대지의 창이 현민을 공격했으나, 현민은 이미 블링크로 자리를 피했기 때문에 그것은 허공만 찌르고 사라져버렸다. "인탱글!" 쉬리릭!!" 채리플랑의 뒤로 몸을 피한 현민이 자신의 오른손을 향해 인탱글 마법을 실현하였고, 현민의 오른손 팔목부터 시작된 나무뿌리는 현민의 손을 감고도 길게 늘어져 하나의 채찍이 되어 있었다. 쫘악!! "염력!" 팟! 파팟! 팟! 현민의 오른손에서 염력과 함께 휘둘러지는 채찍은 허공에서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내며, 허공을 수놓았고, 현민의 공격을 받고있던 그녀 역시 현민과 비슷한 마법을 사용하며 현민의 공격을 막아냈다. "a whip of water!!" 슈앙! 그녀의 손에서 가늘게 모아진 물줄기가 현민의 채찍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주위를 움직이며, 현민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슈아악!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허공에서 빠르게 내려오는 채찍에 마법을 사용하자 현민의 채찍 끝부분이 거대해 지면서 그녀를 내리 누르게 되었고, 다급히 허공으로 채찍을 올린 그녀도 현민의 공격을 막을만한 마법을 실현했다. "버블!!" 퐁~. 장난스러운 소리와 함께 거대해진 채찍의 앞에 거대한 크기의 비눗방울이 생겨났고, 그 비눗방울은 현민의 공격을 간단히 튕겨내버렸다. "대지의 심판!" "어스 퀘이크!!" 현민의 마법이 발현된면서 엄청난 숫자의 창이 솟아오르려 했으나, 곧바로 이어지는 그녀의 마법에 흔들려버린 엉망이 되어진 채, 현민의 마법을 실현시키지 않았다. "워터 해머!!" 쾅!! 현민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고, 현민의 오른손에 있던 인탱글이 사라져 버리자 이번에는 채리플랑이 현민과 같은 방법으로 공격하였고, 허공에서 빠르게 내려오는 물줄기가 거대한 망치로 변하면서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였다. "절대방어!" 적절한 순간 실현된 현민의 마법이 그녀의 공격을 막아버렸으나 그녀는 현민의 마법을 예상했는지 다음 공격을 하고 있었다. "포그! 일렉트릭 쇼크!!" 파지지직!! "대지의 손!!" 현민의 주위에서 생겨난 촉촉한 안개가 현민을 완전히 감싸자 이어진 그녀의 마법이 강인한 스파크를 튀겼다. 하지만 그녀가 안개 마법을 실현하고, 일렉트릭 이란 말을 하고 있을 때, 이미 현민은 그녀의 마법을 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녀의 마법이 실행되는 순간, 그 자신의 마법으로 자신의 모든 곳을 감싸 안고 있었다. "미러 이미지! 플라이! 파이어 볼 퍼레이드!!!" 화륵! 화르륵! 화륵!! 휘이이이잉!!!! 그녀의 주위로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불덩어리들이 순식간에 엄청난 숫자로 불어나 있었고, 그 모든 불꽃이 엄청난 속도로 현민을 감싼 채 돌고 있었다. "미러 이미지! 플라이! 파이어 볼 퍼레이드!!!" "타겟 온!" 슝! 슝! 두 명으로 갈라진 그녀는 손을 들어 현민을 가르켰고, 그와 동시에 현민을 둘러싼 채, 빠르게 돌고 있던 수많은 파이어 볼 들이 현민을 향해 날아들었다. "대지의 심판!" 펑! 퍼퍼퍼퍼펑!!! 현민에게 그녀의 공격이 적중하기 직전, 현민의 마법에 솟아오른 대지의 창들이 거대한 벽을 만들었고, 직선적인 움직으로 날아오던 파이어 볼들과 충돌하며 그녀의 마법을 없애버렸다. 그녀와 현민의 마법충돌은 엄청난 광음과 먼지를 만들어내었고, 그들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윽!" 수북이 피어오른 먼지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현민의 마법이 실현되었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그녀는 현민의 마법에 걸려버렸다. "파이어!" "대지의 심판! 헤이스트!" 모든 먼지가 바람에 날아간 상황에서 두 명의 채리플랑이 파이어 마법으로 거미줄을 불태우며 자유를 찾아가는 것을 발견한 현민은 지체없이 그녀를 묶어버릴 다음 마법을 사용했다. 현민의 마법이 헤이스트로 인해 더욱 빨라지며 하늘에 있는 그녀의 팔다리를 잡아버렸고, 이내, 어마어마한 속도로 잡아당기는 대지의 족쇄에 갇힌 그녀는 빠른 속도로 낙하해 버렸다. "그리스!" "인탱글! 염력!" 촤아아악!! 현민이 사용한 것과 똑같이 마찰력을 없애 대지의 족쇄를 빠져나간 그녀는 서둘러 자세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다시한번 인탱글로, 나무뿌리를 손목에 감아 채찍처럼 사용한 현민의 마법에 허리가 붙잡혀 떨어져 내렸다. "버블!! Boom!!"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던 그녀의 등 뒤로 이전에 보았던 비눗방울이 생겨났고, 그 밑에서 일어난 충격에 현민의 인탱글이 풀리며, 그녀의 몸은 다시한번 하늘로 날아올랐다. "포그! 아이스!" 허공으로 날아오른 그녀는 현민의 주위에 얼음결정을 만들었고, 현민은 다음에 이어질 공격에 대비하여 미리 방어마법을 준비했다. "절대방어!" "라이트!!" "큭!!" 전혀 예상하지 못한 라이트가 실현되며, 현민은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어버렸다. 현민을 둘러싸고 있는 얼음결정들이 빛을 반사시키면서 일순간 엄청난 빛의 양을 보아버린 것이었다. "절대방어! 절대방어! 절대방어!" '앞으로 남은 마법의 숫자는 7!!' 현재 20개의 메모라이즈 중 13개의 마법을 사용한 현민은 앞으로 7개의 마법이 남아있었고, 7개의 마법을 전부 사용하기 전에는 반드시 결판을 내어야만 했다. "타오르는 불꽃이여, 대기에 숨죽이는 작디작은 힘이여!........" 흠칫!! 앞이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채리플랑이 외우고 있는 주문을 들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그녀가 외우고 있는 주문이 아주 위험한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중얼중얼....." 어차피 앞도 보이지 않기에 눈을 감아버린 현민은 일차적으로 세 개의 방어막을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그녀의 마법에 대응할만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그동안의 마법으로 황폐해진 숲의 중간에서는 두 명의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는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지옥에서 올라와 모든 것을 태워버려라!!! 헬 파이어!!!" 헬 파이어(7서클) 소모 정신력 : 200 능력 : 시전자를 중심으로 거대한 원을 그리며 넓게 퍼져나가는 지옥의 불꽃. 지옥의 최하층에서 소환되어온 불꽃이 1km까지 퍼져나가기에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현재 단계 : 1 주문 : 타오르는 불꽃이여, 대기에 숨죽이는 작디작은 힘이여........ 파앗! 하얗게 타오르는 멋진 불꽃이 원을 그리며 퍼지기 시작했고, 그 중 일부분은 현민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실현하라. 마법의 공간! 리무브 소울!" 마법의 공간(5서클) 소모정신력 : 100 능력 : 범위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경우 이 공간안에서만 발현되며, 단일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경우 이 공간 전체에서 발현된다. 현재단계 : 1 주문 : 새롭게 이어진 하나의 공간에서............ 리무브 소울(5서클) 소모정신력 : 500 능력 : 상대방의 정신력을 모두 소모시켜 일시적으로 행동불능 상태를 만든다. 현재단계 : 1 주문 : 그대의 영혼에 담긴 강인한 힘이 자연의 의지에 따라 흩어지니........ 네모반듯한 정사각형의 투명한 막이 현민의 발 앞에서 시작되어, 채리플랑과 그녀의 마법을 감싸버렸고, 이내 어떠한 일도 발생한적 없다는 듯이 사라져버렸다.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그녀가 허공에서 떨어지기 시작했고, 현민은 마법을 사용해 그녀를 잡아주었다. 사뿐히 올라와 그녀에게 다가가는 현민의 모습이 거미줄에 걸려든 나비를 먹기(?)위해 다가가는 한 마리의 거미같았다. 스윽..... "체크메이트..." 칼을 꺼내 그녀의 목에 들이댄 현민이 싸움의 끝을 말했고, 현민의 마법에 걸려있던 채리플랑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과...거의 영광." "설마?!!!" 현민의 예상이 맞은 듯, 그녀의 왼손에 껴져있던 반지가 깨지면서 엄청난 빛이 쏟아 나왔고, 현민의 앞에 있던 그녀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하필이면....." "'과거의 영광'이란 아이템이에요. 모든 능력을 사용자의 10초 전으로 되돌려 주죠." 과거의 영광(A급) 설명 : 드워프들의 내기로 인해 탄생한 반지. 과거의 능력을 되살리는 기능이 있지만 단 한번만 사용이 가능하다. 능력 : 모든 능력을 10초 전의 상태로 되돌려 준다. 제작자 : 룬. 등급이 나오기 이전에는 지금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것보다 수준이 낮다고 생각했던 아이템이었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등급은 지금 현민이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들과 동급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했던 하나의 실수가 현재 전혀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었다. "이런걸 멍군이라고 해야하나요?" 이전과는 반대로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윈드커터가 현민의 목을 겨누고 있었고, 현민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블라인드." 스윽! 팟!!! 현민과 그녀를 감싸는 어두운 공간이 생겨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민의 신형이 어둠을 뚫고 빠르게 튀어나왔다. 딸랑~. "승리의 대가에요." 어둠 속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지만 현민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그녀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어둠 속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지만 현민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그녀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펄럭! 현민과 채리플랑의 싸움이 종결되자, 하늘에 떠있던 운영자가 현민의 앞으로 다가왔다. 꾸벅! "죄송했습니다." "?" "응?" 현민의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현민에게 사과했고, 갑작스럽게 사과를 받은 현민은 그녀가 왜 자신에게 사과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희 사장님께서 이번의 일로 '어릿광대' 유저님의 감정이 많이 상하셨다는 것을 보고는 정중한 사과와 함께 좀 전 제가 제시한 모든 것을 들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 딸랑딸랑~. 조용한 정적 속에서 현민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현민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운영자는 현민이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듯 고개를 들지 않았다. "뭐, 어차피 처음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상관없어요. 나도 더 이상 설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요... 천재와의 싸움에서 이길 뻔했다는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푸훗." 어릿광대의 복장을 벗어버리고, 마녀의 복장을 착용한 현민은 좀 전과는 다른 미소를 띄우며 부드럽게 얘기하고 있었다. 현민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채리플랑과 운영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현민은 그녀들을 바라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마녀란 존재는 변덕이 심해요. 나는 그런 마녀 중 하나고요. 아참, 그리고 채리플랑씨, 당신이 본 내 얼굴을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저는 이것을 전 세계에 뿌리겠습니다. 유명하신 당신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는게 알려지면 상당히 큰 타격이겠죠?" 한 장의 종이를 손에 쥔 현민이 그 종이를 채리플랑에게 건내주었고,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버렸다. "운영자분은 알고 계시죠? 제 가면에 어떠한 기능이 있는지 말이에요." "....투시." "정답~." 운영자의 말을 들은 현민은 좀 전까지 화를 내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명랑했다. "승자에 대한 조건으로 순순히 얼굴을 보여줬지만 그 이상은 없답니다." 채리플랑에게 경고를 한 현민은 지팡이(?)를 타고 날아올랐고, 정령들을 불러모았다. "잠시만요! 이번에 있던 두 분의 대결을 저희 광고로 사용하고 싶은데 그것에 대해선 괜찮은지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두 분에게 광고비도 추가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흐음~." 운영자의 말에 현민은 날아가는 것을 멈추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6개월의 사용권만 주시면 동의하겠습니다." 현민의 말에 채리플랑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고, 이내 현민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조건을 허락했다. "오늘 만남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다음에 만난다면 좋게 만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현민은 정령들을 안고 사라져버렸고, 그곳에는 채리플랑과 운영자만 남겨져 있었다. 팔랑~. 그녀들이 현민이 사라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하늘에서 한 장의 종이가 운영자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녀는 자신의 앞에 떨어지는 종이를 잡아 읽어내려갔다. -곰돌이에서 레이스로 바꾸다니 상당히 변화가 심한데요? 화르륵!!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익어버렸고, 이내 자신과 같은 화면을 동료들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 그녀는 허공을 향해 크게 고함쳤다. "당장꺼!!!" 하지만 이미 볼 것 다본 동료들이었다. ------------------------------------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하아.... 피곤해." 오랜만에 나온 한번의 사냥인데 왜 이리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민이었다. "그보다 아이템은 하나도 못챙겼네..." 사냥의 이유였던 아이템을 단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한 현민은 우울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오빠, 오빠. 담비가 오빠 꺼 전부 챙겼다~!!" "그래? 우리 담비 착하네~." 작디작은 손으로 얼마나 챙겼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하나는 건졌다는 생각에 현민은 담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자신의 보금자리인 마녀의 마을로 돌아갔다. 채리플랑과의 싸움 때문인지 샨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 현민은 나중을 기약하며 날아갔다. "후우....." 우드득! 채리플랑과의 싸움을 끝으로 마녀의 마을로 귀환한 현민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바로 로그아웃했다. "요즘들어 이상해......" 현민은 스스로가 점점 이상해져가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에 대해서 특별한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변해가고 있는 자신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은 어색함이 아닌 또 다른 익숙함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냥하기 보다는 유저들에게 구입하는게 낫겠군..." 자신이 사냥하면서 얼마나 많은 일이 발생하는지를 직접 경험한 현민은 앞으로 있을 그런 일들을 피하기 위해 유저들에게 구입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레벨업은 못하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레벨업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특별한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툭!툭!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현민의 일상은 언제나와 같이 흐르고 있었다... ------------------------------ 또각또각 화려하게 장식된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멋진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방이 모습을 들어냈다. 흰색의 깔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방의 한 면은 유리로 되어 있었고, 화려한 조명이 흘러나오며 방 안의 분위기를 멋들어지게 만들어 주었다. 또각또각 넓디넓은 방이었지만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의 책상밖에 없었고,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가 찾고자 하는 존재는 그 책상에 앉아 하나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사장님..."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고개를 들은 중년여성의 눈에는 마르지 않은 물기가 고여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울고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됐죠?" "현재 '어릿광대'란 명칭으로 불리는 그 유저의 상황과 능력을 분석한 결과 이전의 패치를 극복하고 한 단계 올랐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녀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그녀는 언제 울고 있었냐는 듯,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누가 보더라도 상대를 걱정하는 따뜻함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미소였다. "이번에 상당히 재미있는 아이템을 만들었다면서요?" "네, 그의 물건을 구입하여 정보를 확인한 결과,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량으로 판매될 경우 자칫, 현실세계의 경제가 무너질 수도....." "됐어요, 내 생각이 맞다면 그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니깐...." ".......네." 그녀의 보고를 듣고 있던 중년여성의 눈이 다시 사진으로 향했고, 보고를 하고 있던 여성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돌아가며 사진으로 향해졌다. "그 아이는 내 아들이 만든 세계를 완벽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 아직 완성되지 못한 모든 부분까지 그가 완성시켜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 그녀가 말하는 아들이 사진속의 아이인지 그녀는 말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사진을 쓰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아드님이 만든 세계가 의도와는 다르게 바뀔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게임을 만든 존재가 사진속의 아이라는 것이 알려진다면 세계가 경악할 것은 분명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사진속에는 이제야 중, 고등학생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중년여성의 품에 안겨 활짝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세계가 완벽해 지길 바라고 있었어요." "....하지만."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보고를 하고 있던 여성이 입을 열었으나, 그녀의 말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모든것이 가능한 마법사를 꿈꿨던 그 아이가 「싸울아비」를 만든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강의 존재를 꺾어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후훗. 마치 모든 것을 조롱하는 '어릿광대'처럼 말이죠...." "사장님...." 사장님이라 불린 여성의 얼굴에서 슬픔을 발견한 그녀는 아무런 위로의 말도 건낼 수 없었다. "괜찮아요. 그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떠나갔으니까요..... 남편과는 다르게 말이죠." "하지만 부군께서도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아이를 위해서 희생하고, 잠시동안이지만 아이를 신으로 만들어줄 수 있었던 기계를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그보다 이제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죠, 다음 보고를 하세요." "네, 이번에 패치를 함으로써......." 더 이상의 슬픈 기억을 떠올리기 싫었는지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숨긴채 사무적인 어투로 바꾸며, 업무에 관계된 일을 시작했다. 늦은 밤, 화려한 밤거리가 보이는 건물 안에서 그녀들은 늦게까지 일을 하며, 앞으로의 일을 계획해 나갔다. 스르르륵. "하아...." 사장님에게 보고를 마치고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는 그녀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불쌍하신 분...." 이제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가우리'를 책임지고 있는 그녀의 사장님은 어떠한 존재가 바라보더라도 상당히 외로워 보이는 분이셨다. "지금 이 순간 사장님이 원하는 것이 그의 성장이라면, 나는 그분의 뜻을 따라 최고로 만들어 주겠어." 띵! 그녀가 다짐했을 때, 엘리베이터의 도착음이 들리며 문이 열렀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발걸음은 이전과 같이 정확하고 힘이 넘쳤다. "모든 팀장들을 집합시키세요! 앞으로 15분 뒤에 회의 들어갑니다." "네!" "후우...."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그녀는 앞으로 진행될 일과 그의 행동을 예상하며,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 "여보세요? 네?!!!" 털썩! -어서 빨리....... 여보세요? 여보세요?!! 평소와 같은 일상 속에서 곧 있으면 집에 들어올 아이와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한명의 어머니는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내용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꿈이야, 꿈 일거야.... 꿈이어야 돼. 안돼! 이럴 순 없어!!!" 고함을 지르며 몸을 일으킨 그녀는 다급히 외투를 걸치고 서둘러 전화가 걸려온 XX병원으로 달려갔다. 현실이 아니길 바라며, 자신이 들은 것이 잘못된 것이기를 바라며 달려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힘들고 안쓰러워 보였다. "내 아들! 여보!! 의사선생님, 제 아들 어딨죠? 제 아들하고 남편 어딨죠? 좀 전에 실려왔다고 전화왔다고요.... 장난하신건가요? 그런거죠? 제발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말해주세요, 네?!!" 근처를 지나가던 의사를 붙잡은 그녀는 다급히 자신의 가족에 대해 물어보았고,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그녀가 찾고 있던 가족이 방금전에 들어온 환자라는 것을 눈치 챈, 의사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한명의 간호사를 불러주었다. "죄송합니다. 아드님은 살릴수 있었지만 남편분은 이미....." 조용히 말해주는 간호사의 말에 그녀의 모든 사고가 정지해 버렸고, 그녀는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으음...."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흰색의 침대위에서 팔에 바늘을 꼽고 누워 있었다. 스윽...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자신이 쓰러지기 직전의 일들을 차근차근 기억해내기 시작했고, 모든 것이 떠오르는 순간, 다시한번 주위의 의사를 붙잡으며 자신의 아들이 있는 곳을 물어보았다. "진하야! 진하야!!" 아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 그녀는 하얀 침대 위에서 얌전히 누워있는 그녀의 아들을 볼 수 있었다. 교통사고가 났다는 의사의 말과는 다르게 그녀의 아들은 전체적으로 말끔한 편이었고, 심하게 다친 곳이 없어보였다. "아이는 괜찮습니다. 현재는 잠시 정신을 잃은 것 뿐이에요." "나, 남편은 어딨죠? 크게 다친것은 아니죠?!" 이미 남편에 대한 얘기를 들었으나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 듯, 다시한번 남편에 대해 묻고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께서 아이를 감쌌기 때문에 아이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왜, 왜? 도대체 왜?!!!!" 도무지 현실을 믿을 수 없는지,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 버렸고, 그녀의 슬픈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흑흑, 어째서 교통사고가 난거죠? 그이는 술을 안마시고, 신호도 잘 지키는데, 도대체 왜? 흑."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트럭기사가 음주운전을 했습니다....." "아? 아?" 트럭기사에 대해 분노해야 할까? 남편의 희생에 슬퍼해야할까? 아들의 생존에 감사해야할까?..... 그녀의 마음속에서 여러 개의 감정이 동시에 떠올랐고, 그 감정의 소용돌이로 인해 그녀는 한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듯 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의사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아이를 검사하던 도중 이상을 발견했습니다." "무, 무슨? 위험한 건가요? 네?!"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더 이상 바라보지 못했던 의사는 고개를 돌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해주었다. "....위암 입니다." "!!!" "아쉽게도 너무 진행되어 있어서 수술로도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쿵! 의사의 말을 듣고 있던 여성은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세게 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한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신이시여! 어째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간신히 살아난 아들마저 시한부 인생이란 소리를 듣자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지 어째서 모든 불행이 한번에 몰아오는 것인지 그녀는 신이란 작자를 불러서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엄마, 부탁드려요...." 너무나 소중한 나의 아기, 너무나 사랑스러운 나의 아기....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마지막 부탁까지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면 바로 불러야 돼, 알았지?" "네." 판타지나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그의 아이는 언제나 환상속의 세계를 꿈꾸었고, 그녀는 그런 아들을 위해 그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그런 기계를 만지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죽기 직전까지 만들고 있던 이 기계는, 과거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이어주는 다리였고, 2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옛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기계를 손보고 있는 중이었다. "조심하렴...." 거대한 캡슐에 들어가 있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었다. "아, 아아......." 캡슐 속에 있는 아이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고, 그녀는 그런 아이에게 이상이 생길까 눈을 돌리지 못했다. 푸슈우욱!! 위이이잉....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천천히 사라지고, 캡슐 속에 들어가 있던 아이가 걸어나오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으며, 아들을 향해 달려갔다. "엄마! 나, '신(神)'이었어! 땅도 만들고, 나무도 만들었어!" 그녀에게 자랑하는 그녀의 아들은 흥분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입가에 생겨난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행복해 하는 아이의 표정에 만족한 그녀는 아무런 것도 묻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하루... 이틀.... ..... 6개월.... 1년.... 그날을 시작으로 그는 매일같이 그녀와 함께 캡슐을 작동시켰다. 하늘을 만들고, 해와 달을 만들고, 그곳에 살아가는 '존재'를 만들어가면서 그의 생명력은 점점 꺼져갔지만 또 하나의 세상속에 살아가는 존재들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콜록! 콜록!! 어, 엄마....." 의사들이 예상한 날짜를 지난 상태였기에 언제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아들이었으나 언제나 웃고 지냈기 때문인지 그는 몇 개월을 더 산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인듯 그의 눈동자는 점점 흐려져갔고,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르지를 않았다. "조, 좀더..... 완벽하게.. 하고싶었는데." "걱정마... 내일 또 하면 되잖아? 흑흑. 내일은 엄마도 도와줄게 같이 하자, 응?" "나, 나....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 헤헤...... 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법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엄마한테 신기한 거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고, 그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던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 채, 입을 막고 오열했다.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이제는 하나밖에 없는 아이마저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그 어떠한 것으로도 표현을 할 수가 없는 커다란 슬픔이었다. "엄마, 나........."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이었을까.... 자식의 손을 잡고 오열하는 그녀에게 말을 하던 아이는 말을 끝까지 잊지 못한 채, 천천히 눈을 감아버렸다. "흐아아아앙!!!" 남편에 이어 아들마저 떠나보내는 그녀는 큰소리로 울었고, 주변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조용히 눈을 가렸다. '엄마 아들인게 자랑스러워요.....' ------------------------------------- [외전] 그녀의 이야기 "킥킥..." 성숙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은 학생인 모양인지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은 앞에서 수업하고 있는 선생님을 무시한 채, 교실의 뒷자리에서 무엇인가를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또 보고 있는 거야?" "정말 멋지지 않아?" 미친x처럼 실실거리는 자신의 짝꿍이 안스러웠던 것인지 고개를 흔드는 또 한명의 여성은 언제나 보고 있을 그 화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대단해.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상당히 독특한 방법이지만 마법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리고 있어." "그래, 그래..."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작은 화면에는 인터넷상에 돌아다니고 있는 현민의 엄청난 모습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채리플랑. 나와서 이것 좀 풀어보렴." "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활발한 목소리로 대답한 그녀는 칠판으로 나가 분필을 하나 들어올렸다. 톡톡... 탁! 타타탁! 탁! 문제를 보며 가볍게 칠판을 두드린 그녀는 이내 거침없이 적어나가기 시작했고, 그녀가 적어가는 공식을 하나하나 보고 있던 선생님은 그녀가 모든 공식을 적자 만족스런 얼굴로 바라보았다. "잘했다." 선생님의 칭찬을 듣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채리플랑은 정지해 놓았던 영상을 다시 바라보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실실 웃고 있었다. 따다단~ 딴딴~ 따라라라란~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려퍼지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옆에 있는 짝꿍과 함께 준비해온 점심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와락! "누군지 모르지만 부러운데? 세계적인 천재 채리플랑의 열렬한 사랑을 받으시고 말야? 크큭." "에에~,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그 사람한테 약간 흥미가 있는 것 뿐이야. 좋아하는 건 아니라구~!" 팔짱을 끼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자신의 친구에게 그녀는 변명을 했으나 그녀의 짝꿍은 그녀의 볼을 쿡쿡 찌를뿐 믿어주는 눈치가 아니었다. "좀 믿어라! 난 단순히 그와 대결해 보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알아알아, 모두들 말하기를 처음엔 호기심이었데." "야!" 현민이란 사람을 주제로 그녀들은 많은 말을 주고받았고, 그녀들의 대화는 점심시간이 끝날때까지 계속되었다. -몇 일 후... "세, 세상에! 이정도면 '어릿광대'의 모든 공격을 막는 거잖아!!" 예정되어 있었던 패치였지만, 마법사 유저들은 그 패치가 '어릿광대'의 말도 안돼는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채리플랑도 마찬가지였다.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당장 따져야겠어!!" "좀 참아라! 네 일도 아닌데 왜 그리 화네? 게다가 국제전화 비용이 얼마나 비싼데 그걸 학교 전화로 하려고?! 너 우리 담임이 얼마나 짠돌인지 몰라?" 그녀의 말을 듣고 호흡을 가라앉힌 그녀는 자신의 짝꿍을 향해 다시한번 소리쳤다. "하지만! 이정도의 패치면 마법사의 숫자가 더 줄어들거 아냐! 우리 길드가 아무리 천재들만 모였어도 이정도면 누군가 하나쯤은 떠날거라고!!" "채리야, 넌 우리 길드사람도 못 믿어? 이정도 패치로 떠날 사람이라면 내가 받아들이지도 않았어." "그치만...." 자시의 짝꿍이자 현자길드의 수장인 자신의 친구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그녀도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하아..... 사랑에 눈먼 여자는 바보가 되는 것인가?" "안 좋아 한다니깐!!!" "그래그래... 말하기는 부끄럽지." "야!!" 그녀들의 대화는 저녁까지 계속되었고, 그녀는 채리플랑이 잠들기 전까지 그녀를 계속 놀려댔다. "음냐음냐.... 단순히 대결해보고 싶어서야... 우응." "풋!" 하나의 게임으로 인해 세계적인 천재라 알려진 자신의 친구가 이러한 모습으로 생활한다는 것을 알리면 어떠할까 생각해 본 그녀는 조용히 웃음을 흘리며 잠에 빠져들어갔다. 몇 개월 후.... "나 오늘 수업 안가!!" "응?" 수업은 모르지만 등교만은 착실히 하고 있는 그녀가 아침부터 등교거부를 외치자 의문이 생긴 그녀는 채리플랑에게 다가가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문자를 보았다. -오우거 숲, 어릿광대 등장! 관심있음 접속~. "이번엔 진짜야?" 거의 광적인 집착으로 이곳저곳을 찾아 헤맸지만 단 한번도 발견하지 못했던 '어릿광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서둘러 캡슐 속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거짓일 수 있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 믿음직한 사람이 알려준 것이기에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던 그녀는 아이돌 스타를 만나는 듯한 두근거림을 가지고 게임속으로 들어갔다. "하아..." 자신의 물음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사라지자 조용히 한숨을 내뱉은 그녀는 그녀의 사정을 적당히 둘러대기 위해서 '오늘 아침은 교무실부터 찾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3권 끝=== [싸울아비-룬] 4권 가위 게임 판타지 소설 ===================== 게임속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현실에서의 일상은 어제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등교를 하고, 수업을 받다보니 시간은 벌써 점심을 가르키고 있었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 덜컹! 종이 치자마자 옥상으로 올라온 현민은 따뜻한 햇살 아래서 문제를 풀어나갔고, 그런 현민의 뒤를 쫓아 지혜가 들어와 현민의 옆에 털썩 주저않았다. "현민아~." "응." "나좀 봐봐." 현민의 옆에 달라붙은 지혜는 현민의 관심을 끌기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사용했으나 현민은 그녀의 부름에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도대체 넌 꿈이 뭐야?" 슥. 탁. 어떠한 말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현민이 이번 질문은 심각히 받아들였는지 잡고 있던 펜을 놓고 지혜를 돌아보았다. "너는?" "나? 나는 나처럼 똑똑한 남자한테 시집가는거, 그리고 그 남자랑 아이를 잔뜩 낳고 행복하게 사는거." "하아...." 말을하며 자신을 껴안는 지혜를 보며, 현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를 대해본적이 거의 없는 현민으로서는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민이 네 꿈은 뭔데?" "나?" '내 꿈이 뭐였지? 나한테 꿈이 있었던가?......' 다시한번 물어보는 지혜의 질문에 현민은 자신에 대해서 심각히 생각해 보았다.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처럼 하루하루의 일상을 변화없이 보내고 있는 자신에게 과연 꿈이 있을까? 어쩌면 내 꿈은 이런 일상을 벗어나는게 아닐까?... 현민의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질문들이 울려퍼졌고, 그 모든 것은 그동안 현민이 생각해 보던 작은 조각들이었다. "네가 저번에 말했었지? 운명이란 것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야. 내 꿈은 어서 빨리 운명을 마치고 죽는거야. 고통없이, 아픔없이, 아무런 생각조차 필요없는 어둠의 공간에서 다음 생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잊어나가는 것이 내 꿈이야..." "야!" 퍽(?)! 현민의 말을 듣고 있던 지혜는 현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버렸다. "무슨 놈의 꿈이 그 모양이야?! 너는 죽기위해 살아가냐? 응?! 그렇게 꿈이 없으면 나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살아보던가!" "...넌 나를 좋아하는 거야?" 끄덕 직접적인 현민의 질문에 지혜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으나 그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왜 날 좋아해? 정말로 내가 좋아? 어디가? 무엇이? 어떤 점이? 도대체 어떤게 좋아한다는 거야? 정말 좋아하는 감정이 있긴 한거야?" 현민의 눈은 몽롱해 졌고, 미친놈처럼 주절거리고 있었다. 그런 현민을 바라보던 지혜는 현민의 얼굴을 잡고,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넌 추상적인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어? 지금 네 마음이 외치는 소리를 말로 표현해 낼 수 있어?" 그녀의 행동과 말에 몽롱하게 풀려있던 현민의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네가 좋아하는 감정을 모른다면, 내가 알려줄게. 평생을 네 곁에 머물면서 나를 좋아하도록 만들어줄게. 언제나 나만 바라보고, 나만 생각하며, 나만을 원하도록 만들어줄게... 그러니 죽는단 소린 하지마." "....." 그녀의 눈동자는 촉촉이 젖어있었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의 눈동자는 그런 그녀와는 반대로 차갑게 변해 있었다. "넌 예쁘게 생겼어. 그리고 머리도 좋고. 그렇기에 넌 나를 좋아하면 안돼." 차갑게 말한 현민은 그녀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물건을 주워들었다. "운명이란 것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했지? 나 같은 '것'을 만나는 것도 운명일 뿐이야. 남들과는 생각이 다르고 독특하기에 넌 '착각'을 하는 것뿐이야. 한순간의 인연을 운명이라고 착각할 뿐이라고." 현민의 말을 들은 그녀는 울먹이기 시작했고, 옥상을 내려가려는 현민의 등을 껴안았다. "나, 정말 좋아해. 네가 없으면 울고 싶을 만큼 정말 좋아해. 그래도 안돼? 정말 안돼?" 자신의 등이 촉촉이 젖어가는 것을 느낀 현민은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것을 표현할 순 없었다. '나 같은 놈에게 너 같은 아이는 어울리지 않는걸.....' 부담스러움. 그것이 지혜에게 느끼는 현민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현민이 했던 말 중에 거짓말은 없었다. 현민은 정말로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일은 웃으면서 얘기하자." "흑, 흑흑..." 그녀의 손을 풀은 현민은 이른 시간이지만 교실로 돌아가 버렸고, 옥상에 혼자남은 지혜는 자리에 주저않아 울기만 했다. -------------------------------------------------------------------------------- 띠리 띠리 띠리리리~♪♬ 덜컹 평소와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현민은 옥상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현민의 눈에는 평소에 보아왔던 익숙한 장소가 들어왔고, 현민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털썩 주저앉았다. 슥, 슥슥슥... 평소와 다름이 없는 현민의 행동이었지만, 그 행동은 잠시였을 뿐, 현민은 쥐고 있던 펜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현민이 바라본 하늘은 비가 온 뒤라 그런지 평소에 흔치 않았던 맑은 하늘이었다. "하아.... 벌써 삼일이네." 평소 같았으면 오던지말던지 신경도 쓰지 않았을테지만 마지막으로 헤어질때 했던 자신의 행동 때문에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지혜가 너무나 걱정되는 현민이었다. 벌떡! 방금 올라온 옥상이었지만 현민은 매직보드를 챙겨들고 다시 자신의 교실로 돌아갔다. 웅성웅성 벌써 밥을 먹었는지, 아니면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인지 복도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떠들면서 돌아다녔다. 자신의 교실을 향해 걷고 있던 현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의 교실 앞을 그냥 지나쳐 버렸고, 다음 교실이 나오고서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응?" 열려진 문틈사이로 안을 들어다 본 현민은 지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자신도 모르게 들어가 버렸다. "누구 찾아?" 다른 반의 애가 분명한 현민이 자신의 반으로 들어오자 호기심을 느낀 여학생이 현민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지혜는 어디갔어?" "무슨 사고라도 났는지 벌써 삼일째 결석이야..." "아, 그래? 고마워." 삼일째 결석이라는 여학생의 말에 현민은 가슴 한편이 뜨끔했다. 자신과 싸운 이후에 우는 모습을 보고 나왔으니,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것만 같았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시간도 끝나고, 저녁시간이 찾아오자 현민은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언제나 가던 길을 걸어가던 현민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집을 향해 가는 길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현민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계속 고민했고, 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자신이 원했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단, 물어볼까?' 아파트와 호 수만 알지 층 수를 모르는 현민은 입구에 앉아 있는 경비실을 두드려 자고 있는 아저씨를 깨웠다. "아저씨, 죄송한데요. 지혜란 이름의 제 또래 여학생이 몇층에 살아요?" "여.. 흠흠! 여자친구냐?" 자고 일어났기에 목소리가 잠겨있던 경비아저씨는 헛기침을 한 후,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같은 반인데요, 며칠 동안 결석하니 걱정되서요." "오호~, 짝사랑도 괜찮지." "하, 하하....." 현민을 놀리는게 재미있었는지 경비아저씨는 한동안 현민이 난처할만한 질문을 했지만 현민의 인상이 마음에 들어서인지 마지막에는 지혜가 사는곳을 가르쳐 주었다. "1302호." 띵동~. 문 앞에 슨 현민은 다시한번 확인을 한 후, 천천히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인터폰을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현민은 인터폰 쪽으로 얼굴을 가져가며, 자신이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지혜 친구인데, 걱정되서 찾아왔어요." 철컥. 현민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활짝 열린 문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지혜가 뛰쳐나왔다. "현민아~." "야! 야!!" 조그만한 소리도 울려 퍼지는 아파트의 특성상, 반가운 음성으로 현민을 부르는 지혜의 목소리가 이곳저곳을 메아리 쳤고, 갑자기 자신을 껴안은 지혜를 보며, 당황한 현민은 급히 소리치며 지혜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쾅! 이웃집의 소란스러움에 몇몇 집이 현관문을 열고 복도를 확인했으나, 이미 현민과 지혜는 집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좀 놔라..." 힘겹게 지혜를 때어낸 현민은 현관에 서서 조심스럽게 안을 살폈다. 자신의 집이 아닌 이상 이렇게 소란 피는 것은 상당한 실례였기 때문이었다. "들어와." "응...." 지혜의 손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간 현민은 마땅히 할 것이 없어 집안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자 마셔." "아, 고마워." 지혜가 건네준 우유를 입가로 가져간 현민은 지혜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집에 아무도 없어?" "응. 자고갈래?" "푸훗!" 그녀의 당돌한(?) 말에 마시고 있던 우유가 코로(?) 나와버린 현민은 급히 입가를 가리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콜록! 콜록!" 슥... 우유가 코로 나오는 너무나 심한 고통에 눈물을 흘린 현민은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지혜를 돌아보았다. "내 방 보여줄까?" 현민이 울고있는 것을 보며, 미소지은 지혜가 다시한번 현민의 손을 붙잡고, 집안의 어딘가로 이끌었다. "짠!" 지혜의 방은 현민이 보기에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평소에 사용하지도 않는 책상하나와 캡슐만 달랑 있는 자신의 방과 비교하기가 무서울 정도로 그녀의 방은 여성스럽고 귀여운 느낌이 팍팍 들었다. 스윽... "어?!" 털썩! 방안에 들어서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현민은 자신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지혜의 침대로 예상되는 곳에 주저앉아 버렸다. "누워봐." "왜?" "어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지혜에게 한 잘못도 있고, 그녀의 입가에 떠오른 것이 장난기 서린 웃음이기에 현민은 그녀의 부탁에 순순히 동해 줬다. "기분 어때?" "음.... 푹신한데?" 지혜의 질문에 현민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혜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코로 숨을 깊이 쉬어봐." "후우우우웁." 별로 어려운 부탁도 아니기에 현민은 코로 숨을 들어 마셨고, 천천히 내뱉은 후, 허리를 세워 자리에 앉았다. "됐지?" "향기 안나?" "응?" 지혜의 말을 듣고서야 깨달은 현민은, 자신의 방과 다르게 지혜의 방에서는 약간의 좋은 냄새가 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향수라도 뿌려?" "음~. 사랑을 하는 여성에게 분비되는 천연의 향수~. 수컷을 유혹하는 특별한 향이라고 해야하나?" "응?" 털썩! 이상한 말을 내뱉은 지혜는 현민이 말을 하기도 전에 강한 힘으로 현민을 눌러버렸고, 현민은 지혜의 밑에 깔려 침대에 누워버렸다. "비, 비켜...."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기에 그녀의 옷은 축 쳐져있었고, 그 속으로 지혜의 속살이 보일듯 말듯 하며 현민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냄새좋지?" 그녀가 다가올수록 현민의 코에 느껴지는 향기는 점점 더 짙어졌다. 싹! 와락! 지혜의 한쪽팔을 밀친 현민이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움직인 지혜가 현민을 눌러(?)버렸다. "나 아무것도 안 입었다." 두근! 두근! 두근! 그녀의 말을 들은 현민의 머릿속에는 19딱지가 붙은 이상한(?) 상상들이 재생되었고, 얼굴은 빨갛게 변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현민의 머릿속에는 19딱지가 붙은 이상한(?) 상상들이 재생되었고, 얼굴은 빨갛게 변했다. 스르륵.... 두 사람의 얼굴이 천천히 가까워졌고, 현민은 커져만 가는 지혜의 눈을 바라보았다. .....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두 사람은 움직임을 멈췄고, 얼굴에 느껴지는 그녀의 숨결에 현민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입술을 기다렸지만 현민에게 닿은 곳은 자신의 입술이 아니었고, 닿은 것도 그녀의 입술이 아니었다. 쭈우욱!! "가자기 무야~!" "아우~, 귀여워. 요렇게 귀여운 놈이 어떻게 그런 말을 했을꼬~?" 마치 거리를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유모차에 있는 아기의 볼을 꼬집듯이, 쭉쭉 잡아당긴 지혜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갑자기 뭐야?! 꼭 ...할 것처럼 하더니." "왜? 기다렸어? 정말?" 점점 작아만 가는 현민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듯, 그녀는 현민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대며 현민을 놀려댔다. "에에. 그럼 말해주지~, 난 네가 나한테 관심 없다고 하길래 그만 끝냈는데(?)..." 뻔뻔한 얼굴로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자신이 관심 있었다고 하면 어디까지 갔을 지가 궁금한 현민이었다. "됐네요! 그보다 학교는 왜 안 나온거야? 집에서 뭐라 안그래?" 지혜는 현민이 말을 돌리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를 위해 준비해놓은(?)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걱정했어?" "당연히 걱정....했지!" "너, 말을 좀 끈다?" 크게 소리치던 현민의 말이 중간에 끊어졌고, 지혜는 날카로운 눈으로 현민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순식간에 환한 얼굴로 바꾼 지혜는 의자를 밀어, 현민에게 좀 더 다가갔다. "하긴, 일주일을 예상하고 있는데 3일 만에 온 걸 보면 내가 엄청 걱정됐나봐?" "걱정 했다니깐." "정말? 얼마만큼?" 두 볼이 빨갛게 상기된 지혜는 두 눈을 반짠이며 현민에게 물어봤고, 그런 지혜의 눈빛이 부담스러운 현민은 진지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늘만큼 땅만큼." "에이~, 너무 추상적이잖아." "하아... 3일동안 「싸울아비」안했다, 됐어?" 현민의 말에 지혜의 두 눈이 크게 떠졌고, 예쁜 입도 반쯤 벌어졌다. 한 손으로는 현민을 가르키는게, 아무래도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 행동은 뭐야?" "꺄아~." 덜커덩. 쪽~. 털썩! 자신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일어났고, 현민의 사고는 순간 정지해 버렸다. '뭐지? 지혜가 날 봤고,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지혜가 앉아있던 의자가 넘어졌지. 그리고 지혜가 달려들었고(?) 갑자기 뽀뽀를 했던가? 뽀뽀? 키스~?!' "호오~?" 현민에게 뽀뽀를 한 지혜는 침대에 앉아 자신의 입술을 만지고 있었고, 현민은 아직도 생각중인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불쑥. "기분좋아?" 현민에게 갑자기 얼굴을 들이민 지혜는 현민의 감정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현민의 입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의 시선은 방금전 닿았던 그녀의 입술에 향해 있었다. "게임 중독증으로 보이는 내 님께서 이 몸을 생각하느라 게임을 안했다기에 주는 선.물.이야. 그리고 이거 첫키스니깐 이상하게 보면 안돼~." 두근!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얼굴도 붉어진 것을 보면,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한 행동을 많이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보였다. '웃! 갑자기 두근거렸어....' ...... 침대에 누워있는 현민과, 걸터앉은 지혜 사이의 대화가 사라져버렸고, 두 사람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현민아, 우리 같이 게임할까?" "싸울?" "응." 어색한 분위기를 참다 못한 지혜가 결국에 말을 꺼냈고, 현민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겨우 3일....) 「싸울아비」를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인지 흥분한 표정이었다. "가자!" 현민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고, 지혜는 그런 현민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이 정도로 「싸울아비」에 빠져있는 현민이 자신 때문에 3일이나 접속을 안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다시한번 기분이 좋아졌다. 탁. "응? 문은 왜 닫아?" 이제 막 나갈려고 하는 현민을 뒤로 잡아당긴 지혜는 방문을 닫아버렸고, 현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지혜를 바라봤으나 지혜는 음흉하게 웃기만 했다. "지금부터 옷 갈아입을 건데 구경안해?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 속에 아무것도 안 입었는데...." "야!" 탁, 쾅! 그렇게 말하는 지혜의 웃옷은 이미 절반이나 올라가 있었고, 당황한 현민은 뒤도 보지 않은채 방 밖으로 뛰쳐 나가버렸다. "훗, 순진하기는." 한번 울린 것의 대가치고는 상당히 힘든(?) 경험을 하는 현민이었다. -------------------------------------------------------------------------------- 부스럭. "으음..." 해가 머리 위를 지나가고서야 눈을 뜬 지혜는 아직도 졸린지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지혜의 행동을 바라본 부모님이 이미 한소리 했지만 잠자면서 들은 지혜가 그것을 기억할리는 절대 없었다. "우웅~." 언제까지고 누워있을 수만은 없기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지혜는 잠을 깨기 위해서인지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분홍색의 잠옷을 입고 있었고, 양 갈래로 묶은 귀여운 모습이었다.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간신히 침대를 벗어난 지혜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갔고, 무엇을 하는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를 않았다. 하지만 화장실 내부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아마도 씻고 있는 것 같았다. 딸칵. 화장실의 문을 열고 나온 지혜의 모습은 들어가기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짧은 반바지에 커다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지혜는 매끄러운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고, 조금 전과는 다른 여인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식사는 간단히 토스트~." 어느새 입가에 빵을 물고 헐렁한 자세로 쇼파에 앉은 지혜는 발가락으로 리모콘을 조종하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보여주며 누워있었다. "심심해~." 순식간에 빵을 먹어치운 지혜는 연신 발가락을 사용해 이리저리 채널을 바꿨으나 아직은 이른 시간이기에 TV에서는 그녀가 볼만한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았다. 띵동"하아, 귀찮게 누구야?"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지혜는 인터폰을 눌렀고, 이내 기계의 화면이 밖을 비추어 주었다. "누구세요?" 현민이다?! -지혜 친구인데, 걱정되서 찾아왔어요. 철컥 인터폰에서 현민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직전에 현민의 얼굴을 확인한 지혜가 맨발로 뛰어나갔고, 현관을 열자마자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현민을 향해 육탄공격을 해버렸다. "현민아~." "야! 야!!" 푸훗, 이럴 때 보면 정말 귀엽다니깐... 당황해 하는 현민에게 밀쳐서 집안으로 들어온 지혜는 현민의 표정을 살피며 미소지었다. 쾅! "좀 놔라..." 히잉~, 기분좋은데. 현민은 왜 내가 안는 것을 싫어하는거야? 서로가 좋아하면(?) 좋잖아? 누이좋고, 매부도 좋고. 하지만 결국 현민의 손길에 떨어져버렸고, 지혜는 현민을 자신의 집 안으로 이끌었다. "들어와." "응...." 흠... 이럴때는 마실 것부터 줘야겠지? 어디보자....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냉장고를 여는 순간 울상으로 바뀌었다. 히잉! 엄마도 참! 어떻게 된 냉장고가 물하고 우유밖에 없어? 어쩔 수없이 우유라도 줘야하나? "자 마셔." "아, 고마워." "집에 아무도 없어?" 호오~, 걱정되나보지? 어디 한번... "응. 자고갈래?" "푸훗!" 쿡쿡쿡! 얼마나 당황하면 마시던게 코로 나올까? 쿡쿡! 현민이는 반응이 너무 빠르단말야. "콜록! 콜록!" 킥킥, 가린다고 못 봤을 것 같지? 전부 봤네요~. -------------------------------------------------------------------------------- 얼마나 당황하면 마시던게 코로 나올까? 쿡쿡! 현민이는 반응이 너무 빠르단말야. "콜록! 콜록!" 킥킥, 가린다고 못 봤을 것 같지? 전부 봤네요~. "내 방 보여줄까?" 흐응~, 현민이가 손은 크네. 그보다 내가 방을 정리했던가? 음.... 속옷빨래는 엄마가 어재 전부 가져갔으니 남아있는 건 없겠지? 뭐, 있으면 선물(?)로 줘버리면 되고. 이불은 일어나자마자 갰으니 깔끔하겠고. 근데, 책상위에 만화책을 올려놨던가? "짠!" 어때? 여성스럽지? 쿡쿡, 저 입 벌어진 것 좀 봐. 스윽... "어?!" 털썩! 따끈할 껄? 일어난지 얼마 안됐으니깐. 호오~, 부끄러워하는거야? 이렇게 순진하면 나중에 고생(?)하는거 아냐? "누워봐." "왜?" "어서~." 그래, 빨리 누워봐. 덮쳐버리게. 쿡쿡쿡. "기분 어때?" "음.... 푹신한데?" 겨우 그거야? 포근하다던지 향기가 난다는지는 없고? 하여튼 무드가 없다니깐 무드가... 하아, 이 몸이 그것까지도 이끌어줘야하다니... "코로 숨을 깊이 쉬어봐." "후우우우웁." 그래도 시키는 건 잘해요. 이렇게 말 잘 들으면 살림에 관해서 고생은 덜 하겠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현민은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벌써부터 현민을 자신의 배우자로 찍어놓고 있었다. 남들은 현민을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현민은 아주 귀엽고, 가정적인 남자였다. "됐지?" "향기 안나?" "응?" 모른척 하는거야? 정말로 모르는거야? 그런 얼굴이면 내가 궁금하잖아! 애매모호한 현민의 표정을 보는 지혜의 얼굴은 현민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현민은 그녀의 얼굴이 바뀐것을 모르는 듯, 연신 코만 킁킁 거렸다. "향수라도 뿌려?" 그렇지! 너 딱걸렸어. "음~. 사랑을 하는 여성에게 분비되는 천연의 향수~. 수컷을 유혹하는 특별한 향이라고 해야하나?" "응?" 평소에는 팽팽 돌아가는 머리가 안돌아가니? 페로몬이라고 이 바보야. 털썩! "비, 비켜...." 쿡쿡! 내가 비키란다고 비키는 바보냐? 우리의 귀여운 현민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오늘 끝장(?)볼려나....? 학교는 졸업해야하는데..... 지혜의 생각은 현민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조숙(?)한 면이 있었다. "냄새좋지?" 야, 야! 내 가슴보지 말고, 눈을 봐야지! 뭐, 상관없..... 잠깐, 나 오늘 속옷 안 입었잖아!! 싹! 어딜 피해?! 그녀가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 동안, 재빠르게 팔을 치운 현민이 몸을 빼내려 했으나 현민보다는 지혜가 한발 빨랐다. 와락! "나 아무것도 안 입었다." 두근! 두근! 두근! 엄청 두근거리나 보네.... 어라? 이거 내 심장소리잖아? 현민이가 들으면 안돼는데, 혹시 들리나? 근데 이러다가 정말 일(?)치루는거 아냐? 뭐, 내 귀여운 현민이가 허락없이 덮치지는 않겠지만. 쿡쿡.... 스르륵.... 뭐야? 이정도로 했는데 키스도 없어? 하다못에 등이라도 안아줘야 되는거 아냐? 좋아, 네가 어디까지 참는지 내가 시험해 주마. 번쩍! 현민은 눈치챌 수 없었지만 지혜의 두 눈은 라이트를 킨 것처럼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 우웃, 간지럽다.... 조금씩 새어나오는 현민은 숨결이 그녀의 코끝에 닿자, 그녀는 현민의 숨결이 너무나 간지럽게 느껴졌다. 눈망울 떨리는 것 좀 봐. 와~, 사슴같이 떨리는 눈동자가 이런거구나.... 더 이상 하면 나도 위험할 것 같으니 여기서 스톱! 쭈우욱!! "가자기 무야~!" "아우~, 귀여워. 요렇게 귀여운 놈이 어떻게 그런 말을 했을꼬~?" 얘가 옥상에서 차갑게 말한 현민이 맞아? 혹시 쌍둥이 아냐? "갑자기 뭐야?! 꼭 ...할 것처럼 하더니." 호오? 키스하고 싶었다는 거지? 그치? 좋아! 다행이 이성에 대한 감정은 살아있는것 같군. 난 또 호모인줄 의심했네.... "왜? 기다렸어? 정말?" 쿡쿡, 시선 돌리기는... "에에. 그럼 말해주지~, 난 네가 나한테 관심 없다고 하길래 그만 끝냈는데(?)..." 얼씨구, 저 달싹이는 입술봐라. 그래, 말하면 해줄게. 말해봐, 응? 나 좋아한다고 한번말 말해주라. 뽀뽀하고 싶다고 말하면 해준다니깐? 하지만 현민의 입에서는 그녀가 기대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됐네요! 그보다 학교는 왜 안 나온거야? 집에서 뭐라 안그래?" 치! 말돌리긴. 하긴 순진한 현민에게는 이정도가 한계겠지... 차근차근 나가다 보면 정복(?) 할 수 있을거야, 반드시!! "걱정했어?" "당연히 걱정....했지!" 어쭈, 말이 끊어지네? "너, 말을 좀 끈다?" 그래도 3일만에 왔으면 빨리 왔네. 관심이 없는건 아닌가봐. "하긴, 일주일을 예상하고 있는데 3일 만에 온 걸 보면 내가 엄청 걱정됐나봐?" "걱정 했다니깐." "정말? 얼마만큼?" 얼마만큼 걱정했어? 많이? 정말 많이? 혹시 '하늘만큼 땅만큼'이라는 엉터리 대답은 아니겠지? "하늘만큼 땅만큼." "에이~, 너무 추상적이잖아." 현민아, 넌 절대 바람피지 못하겠다.... 그런 네가 왜 이리 좋을까? 쿡쿡"하아... 3일동안 「싸울아비」안했다, 됐어?" 뭐? 정말?! 거의 모든 시간을 게임속에서 살다시피 하는 현민이가 게임을 안해? 내 걱정 때문에? 정말이야? 아우~, 나 감동 먹었어. 저 쑥스러워하는 표정! 너무 귀엽잖아~. 누가 바라봐도 귀여운 곳은 전혀 없는 현민의 얼굴이었지만 이미 눈돌아가버린 지혜를 말릴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 뭐? 정말?! 거의 모든 시간을 게임속에서 살다시피 하는 현민이가 게임을 안해? 내 걱정 때문에? 정말이야? 아우~, 나 감동 먹었어. 저 쑥스러워하는 표정! 너무 귀엽잖아~. 누가 바라봐도 귀여운 곳은 전혀 없는 현민의 얼굴이었지만 이미 눈돌아가버린 지혜를 말릴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그 행동은 뭐야?" "꺄아~." 덜커덩. 쪽~. 털썩! 우앗! "호오~?" 와, 키스란거 기분 좋네? 부드럽고, 촉촉하고, 따뜻한게.... 스윽. 헤헤, 나 상당히 야한거겠지? 혓바닥으로 자신의 입술을 훑은 지혜는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촉촉해진 입술을 매만졌다. 히잉~. 나도 침 발라 놀걸. 근데 현민이는 왜 안 일어 나지? "기분좋아?" 그래서 안 일어 나는거야? 호~, 내 입술을 보는건가? 한번더 해줄까? 침도 발랐는데. 아냐아냐, 두 번하면 효과가 떨어질거야. 아쉽지만 한번만 해야지. "게임 중독증으로 보이는 내 님께서 이 몸을 생각하느라 게임을 안했다기에 주는 선.물.이야. 그리고 이거 첫키스니깐 이상하게 보면 안돼~." 어라? 얼굴이 빨게지는데? 아우! 정말 하고 싶잖아. 키스를 하라는 천사와 하지 말라는 악마가 마음속에서 싸움을 하는지 그녀의 얼굴은 현민과 키스하고픈 욕구를 억누르느라 붉어져 있었다. ...... 뭐야, 왜 아무런 말이 없어? 한번 더 하자고 하던지, 기분이 좋았다던지 그런 말 해야하는거 아냐? 무언가 상당히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혜였다. "현민아, 우리 같이 게임할까?" 내가 졌다, 그냥 나가서 놀자. "싸울?" "응." 이래서 남자는 커서도 애라는 건가? 너무 좋아하잖아, 쿡쿡. 아우 귀여워. "가자!" 쿡쿡, 이봐요, 너무 급한거 아냐? 나 아직 속옷도 안 입었다고~. 이런 현민이 접속을 안했다는 것을 보면 「싸울아비」보다는 내가 먼저라는 얘기겠지? 쿡쿡, 나를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모른다니 거짓말쟁이. 마지막으로 장난한번 쳐볼까? 탁. "응? 문은 왜 닫아?" 후후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언니 말고는 본적이 없는 나이스한 몸매를 보여줄테니 눈 크게 뜨고 잘 보라구. 흐흐(?)... "지금부터 옷 갈아입을 건데 구경안해?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 속에 아무것도 안 입었는데...." "야!" 탁, 쾅! 어라? 나가네? 큭큭. 현민아~. 나 네가 너무 좋아. 후후. "훗, 너무 순진하잖아?" "현민씨 돈은 있는거죠?" "야, 좀 떨어져!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짧은 반바지 대신에 칠부바지를 입고, 헐렁한 웃옷 대신에 가슴을 조이는 듯 한 반팔을 입은 지혜는 현민을 자극(?)하기 위해서인지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우리가 불륜이냐? 내가 예뻐서 쳐다보는 거니깐 현민이 너는 신경쓰지 않아도 돼." "나 지금 교복이란 말야!" 담담히 말하는 지혜의 얼굴을 보며, 현민은 황당하단 얼굴로 소리쳤지만 지혜는 현민의 말을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딸랑~. 사람들의 이상하단 눈초리를 받으며, 겨우 캡슐방에 도착한 현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의 고생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언니, 커플이요~." "네, 몇 시간 하실거죠?" "음.... 밤 10시까지요." "3만원입니다. 34, 35번으로 가세요." 지혜의 몫까지 계산한 현민은 익숙해 보이는 지혜의 손에 이끌려 그녀가 알려준 자리에 섰다. "....캡슐도 커플이 있냐?" "어머? 몰랐어? 얼마나 짜릿한데." 도대체 뭐가 짜릿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남녀를 밀폐된 공간에 넣으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 도저히 가우리의 생각을 알 수 없었던 현민이었다. "자, 헤드셋 끼고 여기 누워." 어색해 하는 현민을 옆으로 이끌어서 헤드셋을 씌워준 지혜는 현민을 눞힌 후, 자신도 헤드셋을 끼고 자리에 누웠다. "기본적인 것은 전부 똑같은데 로그인 할 때 서로가 볼 수 있다는 것만 다를거야." 위이잉~.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현민을 대신해서 캡슐을 가동시킨 지혜는 현민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고 먼저 게임속으로 들어가버렸다. "하아.... 도대체 어떻게 되는건지."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87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현민의 시야가 바뀌면서 그는 자신의 위치가 마지막으로 종료한 자신의 방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오빠~." "오라버니~." "미안미안. 오빠가 오늘 약속이 있어서 놀아주지 못할 것 같아." "히잉~." 자신에게 달라붙는 4명의 꼬마정령을 하나씩 때어낸 현민은 울상을 짓고 있는 그들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오랜만이야, 린." "어? 이제야 나온거야?" "으응, 약간 늦었어." 큐를 옆에 재워놓은 채,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녀의 주위에는 이상한 모양이 그려진 종이들이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고, 탁자 위에는 각가지 모양의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얘들 좀 봐줄래?" "귀여운 아이들이 있다면 나야 환영이지! 근데, 어디갈려고?" "아,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게..." 현민이 정확히 말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의심을 가졌지만, 현민에 대해서 철저히 믿고 있는 린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저번에 정령들한테 들었는데 적이 많다면서?" "걱정마, 쿡쿡. 내가 누군지 알잖아?" "맞아, 오랜만에 봐서 까먹었나봐. 엄연히 이름을 가진 마녀를 무시해버렸네? 쿡쿡. '루나'" "다녀올게." 린의 미소를 보며, 밖으로 나온 현민은 마녀의 지팡이를 꺼내들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현민아, 어디야? "어라? 말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거지?" 귓가에 속삭이듯 들리는 지혜의 목소리에 허공에 멈춰선 현민은 메시지를 보내지 못해 허둥거렸다. -'커플 채팅'이라고 말한 다음에 전화하듯이 말하면 돼. "커플 채팅. 들려?" -응, 쉽지? 다행스럽게 지혜의 말대로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나 지금 '보스턴'에 있는데 얼마나 걸려? 보스턴 이라는 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가까운 마을에 텔레포트 NPC가 있고, 돈이라면 넘칠 듯이 있는 현민은 이동에 대해서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음....5분~10분이면 갈 수 있어." -알았어. 광장에 있을게 빨리와야해~. 지혜와의 채팅을 끝낸 현민은 한층 속도를 높여 마을로 날아갔고, 예정대로 10분이 되기 전에 보스턴이란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웅성웅성"와우~." 보스턴이란 곳도 수도 중에 하나인지 길이 매끄럽게 깔려 있었고, 멋들어진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거리의 양쪽으로는 장사를 하는 유저들이 자리를 깔고 있었고, 그런 유저들의 사이는 걸어다니는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렸다. "저긴가?" 많은 유저들이 움직이는 곳이라서인지 곳곳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현민은 별다른 안내 없이 쉽사리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봐요, 아가씨. 우리랑 같이 사냥하는게 어떠세요? 저희들이 키워드릴게요. 마법사란 유저들 렙업하기 힘들지 않아요? 저희들이 사냥터에서 잠깐동안 쩔해드리면 금방 오른다니깐요?" "괜찮아요, 애인이랑 사냥하기로 했거든요." "혹시, 저희들 못 믿어서 그러는 거에요? 저희 사무라이 길드의 간부들이에요." 너무나 넓고, 사람도 많은 광장에서 어떻게 지혜를 찾을까 고민했던 현민은 예상과 다르게, 아무런 고생없이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야?" "왔어? 자, 가자! 내가 좋은데 알고 있거든." 가까이 다가온 현민이 말을 걸자, 뒤를 돌아본 지혜가 현민의 팔을 붙잡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지혜를 둘러싸고 있던 세명의 남자들은 그런 지혜를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이봐 아가씨, 이렇게 허접한 어쌔씬이 뭐가 있다고 같이 사냥한다는 거야? 우리가 키워주겠다니깐." 어느새 세명의 남자들이 현민과 지혜를 둘러싸 버렸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일정한 공간을 만들고 그들을 구경했다. "몇 렙이죠?" "나? 이래보여도 길드에서 중간은 먹고 들어간다니깐." "몇 렙이죠?" "아, 시팔새끼 말 졸라 많네, 넌 좀 빠져, 새꺄." 현민이 나서며 자꾸만 말을 끊자 화가 난 유저 한명이, 현민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왔고, 현민은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스윽..... "뭐? 가위바위보 하자고?" 현민은 한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앞에 있는 유저의 얼굴앞에 다섯 개의 손가락을 쫙 폈다. "라이트," 번쩍! "크악!" 어쌔씬으로만 생각했던 현민의 손에서 갑자기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오자 피하지를 못한 그 유저가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칼을 휘둘렀고, 현민은 그의 칼을 가볍게 피하며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인탱글, 파이어." 현민의 인탱글 마법에 실처럼 가늘게 생겨난 나무뿌리가 현민의 오른손을 칭칭 감으며 건틀렛처럼 번했고, 현민은 그것에 불을 붙여 자신의 양손을 태웠다. "전사의 축복!" 그들의 뒤로 빠져나갔던 지혜가 현민에게 마법을 걸어주었고, 현민은 자신의 힘과 스피드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빨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쾅! 우득. 눈이 보이지 않는 상대를 넘겨버린 현민이 특별한 방어구가 존재하지 않는 그의 머리를 움켜잡았고, 다시한번 땅에 박아버렸다. 쾅! "대지의 족쇄." 촤르륵. "대기의 속박! 라이트! 미러 이미지!" 현민이 한명의 유저를 상대하고 있는 동안 뒤에 있는 지혜는 나머지 두명의 유저를 견재해 주고 있었고, 현민은 첫 번째 유저를 빠르게 정리한 후, 다음 유저를 향해 움직였다. "인탱글." "크억!" 움직이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저의 목을 움켜잡은 현민이 인탱글 마법을 사용하여, 유저의 머리를 포장(?)해 버렸다. "꺄악~." "우왁!" 하지만 본 실력을 전부 사용한 것이 아니어서인지 어느새 한명의 유저가 달아나 있었고, 그는 주위에 있던 여성 유저를 인질로 잡아버렸다. '하아, 잡아도 가까이에 있는 지혜를 잡아야지 왜 저리로 도망갔냐......' 현민은 한숨을 내쉬면서 지혜를 돌아보았고, 지혜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놓아주세요, 그쪽이 먼저 시작했잖아요?" "움직이지마!" 현민이 가까이 다가오려하자 깜짝 놀란 유저가 작은 소도를 여성의 목에 대고 위협했고, 현민은 그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자." "응." 손을 감싸고 있는 인탱글을 없애버린 현민은 뒤로 돌아 지혜에게 갔고, 지혜는 그런 현민의 옆에 붙어서서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다. "야, 야!! 어디가, 이리안와?!" "혼자 노세요. 저분들 마법은 좀 있다 없어지니깐 신경쓰지 마시고요." 이미 볼장 다 봤으니 떠나겠다는 것이었는데, 당한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태도가 보통 얄미운 것이 아니었다. "이런 돼지새끼들이 나를 놀리나?!!" 저벅저벅. 하지만 뒤에서 그가 욕을 하던 무엇을 하던지간에 현민은 상관하지 않았고, 지혜도 현민을 따라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뭐야, 나름대로 재미있을 줄 알고 잡혀줬는데." "뭐?" 점점 사라져가는 현민을 보며 화를 삭히지 못하고 있던 유저는 자신의 품안에서 들려오는 황당한 말에 밑을 내려다보았고, 자신에게 잡힌 여성유저의 반응이 좀 전과는 다른 것을 눈치챘다. "이미 늦었어." 와득! "꺄악!!!" "PK다!" 여성 유저의 손이 젤리를 파고들 듯 사무라이 길드원의 뱃속으로 쉽사리 들어갔고, 하나의 검붉은 것을 꺼냈다. "뭐, 뭐.....?" "나? 히든 클래스라고 해야하나? 종족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휘이이잉~. 길게 늘어지는 그녀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갔고, 눈동자의 모양도 야행성 동물의 그것처럼 밝게 빛났다. 또한 그녀의 치마를 뚫고 두 개의 꼬리가 나왔는데, 그 모습이 의외로 그녀와 상당히 잘 어울려 보였다. "...구미호(九尾狐)로 승직중인 이미호(二尾狐)야 잘 부탁해." "크르륵..." 하지만 그녀에게 배가 뚫린 유저는 그녀의 말을 전부 듣지 못하고 가루로 변해 흩어져버렸다. "잡아라!!" "어라? 역시 수도라서 그런지 상당히 빠른데?" 경비병이 출동한 상태에서, PK범을 잡았을 때 받을 보상을 생각한 유저들이, 서둘러 그녀를 잡기위해 모여들었고, 그녀는 자신을 잡으려하는 사람들을 피해 건물의 벽을 타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오랜만에 찾은 먹잇감인데 놓칠수야 없지." 붉디붉은 입술을 훑은 그녀는 현민이 사라졌던 방향을 바라본 후, 유저들의 눈을 피해 골목의 어딘가로 들어가버렸다. -------------------------------------------------------------------------------- "현민아, 아까 그 여자 괜찮을까?" 지혜가 알고 있는 현민은 위기에 처한 여인을 놓고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바라본 현민은 이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고, 지혜는 현민이 나름대로의 생각을 존중해 주었기에 현민을 믿고 따라온 것이었다. "약해 보이지는 않던데?" 평소라면 그냥 물러서지 않았을 것을 알기에 현민 스스로도 자신에게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지를 못했을 뿐, 그의 마음과 몸은 이미 그녀가 뿜어내는 어떤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여잔데... 구해줘야 하지 않아?" "됐어. 그만 생각해. 그보다 좋은 곳이 어디야?" "음... 저 모퉁이 돌아서 나오는 가게." 지혜에가 한쪽 팔을 내어준 현민은 지혜가 알려 준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고, 모퉁이를 돌자 눈앞에 커다란 건물이 지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파르페?" "혹시 파르페 싫어해?" "물론, 아니지만..." 현민의 생각은 현실에서 먹을 수 있는 파르페를 왜 가상현실에서 먹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왜 그리 이상한 눈으로 봐? 뽀뽀해 줄까?" 현민의 어이없다는 눈초리를 읽은 것인지 지혜가 입술을 내밀며 현민을 압박(?) 했고, 현민은 그녀의 공격에 맥없이 뒤로 물러났다. "얘기좀 하다가 가자, 아직 시간 많잖아? 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길다구... 충분히 다(?) 할 수 있어." ".....난 가끔가다가 너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어." "Me too~." "그만 좀 붙어!" 잠시 뜸들인 현민의 말에 지혜는 밝은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며 말했고, 가까워진 얼굴에 부끄러움을 참지 못한 현민은 다시한번 그녀를 밀치며 거리를 만들으려 했다. "어서오세요~. 커플 둘이요! 3번 테이블로 가시겠어요?" 어느새 도착한 파르페 가게의 입구에서는, 남자의 로망중 하나인 메이드 복을 입은 아가씨가 현민과 지혜를 빈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퍽! "아야!" "뭘봐? 눈 안돌려?" 힐끔힐끔 돌아가는 현민의 시선이 불쾌했던 것인지 지혜는 현민의 정강이를 구두끝으로 조준하여 때려버렸고, 현민의 얼굴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강하게 잡은 지혜는 그의 얼굴을 가까이 끌고와 현민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속닥속닥.. 화르륵! 나른하게 속삭이는 지혜의 입김 때문일까? 현민의 얼굴은 빨갛게 변했고, 지혜의 말이 끝나자 서둘러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진 현민은 지혜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우리 귀여운 현민이 뭐 먹을래?" '우리?' '귀여워?' '크억?!' '어머머머머....' 등장부터가 너무나 소란스러운 커플이기에 모두가 현민과 지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현민외에는 보이지 않는 지혜가 그것을 알리 없었고, 지혜의 말로 인해 이리저리 눈동자만 움직이고 있는 현민이 그것을 알아차릴 일도 없었다. "이제 그만하면 안돼? 장난이 너무 심해." "내가 장난하는 것 같아? 장난삼아서 키스했을 것 같냐구!" '헉! 키스?!' '어머머, 갈데까지 간건가?' '설마, 임신....?'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 그들의 대화에 사람들은 먹는것도 중단한 채 귀를 귀울였고, 그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메이드 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뭐래? 하지만 점점 장난같아 지잖아! 좀전에 나한테 한말도 그래! 보여준다고? 정말로 보여줄 수 있어서 그런 말 한거야?" '여자몸이 그렇게 보고 싶으면 말해, 내가 보여줄테니깐....' 이것이 바로 좀전에 지혜가 현민의 귀에 속삭였던 문제의 말이었다. "일어나." "응?" 현민을 빤히 쳐다보며 현민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린 지혜가 주문도 하지 않은채 자리에서 일어났고, 현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재촉했다. "보고 싶다며? 밖에서는 안되지만 우리집에서는 보여줄 수 있어. 아직 부모님도 안 오셨을테니깐...." 혹시나 하는 생각에 현민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만 작게 얘기 했지만, 조용한 정적속에서 모두가 집중을 하고 있었기에 1층에서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고객들은 전혀 없었다. 꿀꺽! 1층의 모든 남자들의 시선이 지혜에게로 모아졌고, 1층에 있던 모든 여자들의 발은 반대쪽에 앉아있던 남자의 정강이에 박혀버렸다. 또각또각. "저기...." "응?" 현민의 손을 잡고, 현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지혜는 자신과 현민의 손을 풀며, 말을 건내는 한명의 여성을 보며, 인상을 썼다. 하지만 지혜가 인상을 쓰던 말던 그녀는 현민만 바라보고 있었고, 현민은 전혀 알지못한 여자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당황했다. "아까 정말 멋있으셨어요. 3대(大)길드 중 하나인 사무라이 길드를 상대로 그런말을 하다니.... 저 첫눈에 반해버렸다니깐요. 제가 좋은 곳 알고 있는데 같이 안 가실래요? 이런 곳 하고는 정말 다른 곳이에요. 방음 시설도 완벽하고, 갖가지 준비물(?)도 다양하게 있어서 여러 가지 플레이(?)를 할 수 있데요...." 번뜩! "야!" "왜!" 두 여자의 눈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그녀들의 소란스러운 싸움을 혹시나 누가 볼까하고 주위를 둘러본 현민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현민은 모른척 해달라는 눈치를 연신 보냈지만 이제껏 보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야 모른척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자, 그만하고 파르페나 먹자. 응? 그쪽분은 이미 뵌 것 같은데 서로 인사나 할까요?" "아, 예... 저는 미호라고 해요." "현민아!" 현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지혜는 빨갛게 변한 얼굴로 현민을 노려보았고, 현민은 그런 지혜를 잠시 바라보다 손을 뻗어 지혜를 잡아당겼다. "자, 됐지?" "흥!" 현민이 자신의 손을 꼭 잡아준 채로 옆에 앉아있자 고개를 반대로 돌린 지혜는 콧소리를 내며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아이디가 현민이세요? 아니면 이름?" "아이디는 아니고 이름이 현민이에요." "어머!" 이름이 현민이라는 말에 미호는 화들짝 놀라며 반가운 얼굴을 했다. "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사람이네요. 동양계 쪽의 얼굴을 보고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한국인이었다니, 어디사세요? 그리고 지금 몇 살?" 속살포같이 쏟아지는 그녀의 질문에 현민은 정신없어 했고, 현민의 옆에 앉아있던 지혜는 여우같은(?) 미호의 태도에 눈에 불을켜며 노려보았다. "말해줄 의무는 없으니깐 그만 일어나 주시겠어요? 아직 우.리.끼리의 대화가 남아있어서 말이에요. 호호호." 지혜가 먼저 안쪽으로 파고들며 공격하려 했으나, 이런 일에 대해서는 베테랑(?)인 미호는 그녀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 오히려 반격까지 했다. "우.리.라뇨? 저.의. 현민씨께서는 그런거 같지 않은데요? 딱 보면 알지 않아요?" "처.음. 보신 분이 그.이.를 어떻게 알고서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야!" "난 장난아냐, 그러니 집에가서 얘기하자. 알았지?" 점점 심해지는 그녀들의 대화를 말리기 위해 현민이 급히 끼어들었으나 그의 참견은 그녀들의 싸움을 더욱 사납게 만들 뿐이었다. "왜요? 집에 가서 유혹이라도 하게요? 근데, 그걸로 되겠어요? 그것도 가슴이라고....." 지혜의 가슴도 나름대로 예쁘게 생겼지만 미호의 가슴과 비교했을 때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살찌는 것 보다는 적당한 가슴과 몸매를 유지하는게 좋을걸요? 우리 현민이는 뚱.뚱.한. 여자를 싫어하니깐 말이죠." 끄덕끄덕... 모두가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을 때, 좀 전에 현민과 지혜를 안내했던 메이드만이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의 몸을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흥!" 미호란 여성이 심하게 뚱뚱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와 지혜를 비교했을 때, 지혜의 몸매가 더욱 보기 좋은 것은 사실이었고, 미호도 그것을 인정했는지 더 이상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속셈이에요? 우리 현민이가 귀여운 것은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인데, 설마 처음 본 당신이 그것을 알았단 말인가요? 뛰어나게 얼굴이 잘 생긴것도 아닌 현민을 보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당신의 정신상태가 궁금하군요!" 뛰어나게 얼굴이 잘 생기지도 않은 현민을 좋아하는 지혜의 정신상태는 어떤지 심히 궁금했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는 이상한 공식이 성립(?)했기에 그것은 크게 따질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 "그만해, 가자." "잠깐만, 아직 이야기 남았다고."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이 지혜를 잡아 끌었으나 지혜는 아직 할말이 남았는지 현민의 손길에 따라가려 하지 않았다. "지금 마법 사용중이니깐 어서 따라와." "마법?" 현민이 마법을 사용했다는 소리를 듣고난 후, 주위를 둘러봤지만 지혜는 어떤것이 달라졌는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너 도대체 무슨 마법을 사용했길래...." "거짓된 진실, 5서클의 환상마법. 지금 모두가 환상속에 빠져있으니깐 어서 나가자." "으응...." 현민의 설명을 듣고나서야 지혜는 마지못해 현민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벗어났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이 환상에 빠진 것도 모른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문하시겠어요?" "네? 갑자기 무슨.... 그보다 제 앞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갔죠?" "손님은 혼자 오셨는데요?" 현민과 지혜가 사라진 시점에 환상속에 빠져있는 미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현민이라는 먹이를 놓고 한명의 여성과 싸우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 현재, 그녀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환상이었고, 다른 존재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지만 미호가 그것까지 알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뭐지? 뭔가가 어색해.....' 동물적인 느낌으로 무언가 이상한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파악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 괜히 이상한 여자랑 싸우고..... 이상한 소리도 하고." "나도 잘못한 게 있으니 괜찮아. 그리고 그 여자 위험한 것 같아.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녀한테서 느껴지던 느낌이 광장에서 느꼈던 여자와 비슷한 것 같아." "그래?" 현민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던 기운은 육식을 하는 짐승 특유의 살기와 기운이었다. 정령과의 친화력이 높고, 친환경적인(?) 마녀란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민이 쉽사리 그녀의 기운을 느꼈던 것이었다. 둥둥둥! 둥둥! "응? 퍼포먼슨가?" "가볼까?" 시장의 중심 부분에서 커다란 비트음이 들리며 가슴을 울렸고,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던 현민과 지혜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바꿨다. -마법사가 약해 보이는가? 쾅! 콰쾅! -마법사가 어려워 보이는가? 투두둥! 둥! 둥! 검은색의 거대한 화면에서 대기를 진동시키는 음악과 함께 누군가의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주위의 분위기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보라, 싸울아비 속의 마법사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이번엔 마법사다!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절대자의 길! 쿵! 쿵! '보라'라는 말과 함께 화면이 바뀌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매우 익숙한 모습이 상영됐다. "현민?" "벌써, 만든건가?" 화면속의 현민과 자신의 옆에 있는 현민을 비교하고 있던 지혜가 현민을 불렀지만, 현민은 자신의 모습이 나오고 있는 화면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 까짓 꺼! 흐아아아압!!!!!! 화면속의 늑대인간이 최강의 기술을 사용하는 듯 엄청난 변화를 보이며 마법사를 공격하려 했으나 그의 앞에 존재하는 한명의 마법사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당신이 아무리 강해도.... 당신이 아무리 빨라도..... -아랑아(餓狼牙)!! -......여왕의 거미줄은 벗어날 수 없어요.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우와아아아!!" "헉!" "세상에!" 넓은 시장에서 화면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현민의 마법에 놀란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너 저런 마법도 있어?" 현민의 엄청난 마법에 지혜 역시 현민의 귀에 작게 속삭이며 물어보았고, 현민은 화면에서 눈을 때지 않은 채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크아앙!!! -.....소용없어요. 거미줄에 늑대인간 유저가 걸리면서 상황은 종료되었고, 사람들은 엄청난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옆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 있는 영상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히든 클래스에 속하는 것 중에 하나가 늑대인간이다. 하물며, 하찮은 마법사도 이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숨겨진 직업(직업인가?)중의 하나인 늑대인간이 겨우 이정도 일 것 같아?!!! 늑대의 울부짖음은 광기를 불러오고, 늑대의 발톱은 잔인한 피의 강을 흐르게 한다!!!! 우득! 우드득!! 화면속의 늑대인간이 현민이 겪은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소리를 내며 거대해지기 시작했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그때의 기억이 나는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크아아아앙!!!! "저 유저도 엄청나다...." "그치? 하여튼 싸울아비는 숨어있는 유저들이 너무 많다니깐." 현민의 모습과 비교될 정도로 거대해진 늑대인간의 모습에 유저들은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유저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들보다는 평범한 유저들이 더욱 많았기 때문이었다. -죽...여 버리겠다. -아뇨, 나는 죽지 않아요. 당신만 죽을뿐........ 그 누구도 나를 건들지는 못해. -크아아앙!!! 피에로의 가면을 쓴 유명한 마법사 현민이 오만한 말을 내뱉었고, 주위에서는 화면속의 현민을 보며 침을 삼키는 유저들이 몇몇 있었다. -아쉽지만, 놀이는 여기까지. 딸랑딸랑.... 늑대인간에게 사형선고를 하듯 거만한 현민의 머리에서 특유의 방울소리가 들렸고, 이어 현민의 마법이 실현되었다. -크아아앙!!!! -.....대지의 심판. 푹! 푸푸푹!! 푹! 콰직! 푹!! 콰드득! 우직! 우득!.......... -끄, 끄어어....... "세, 세상에!" "저게 마법사야?!" "뭐, 뭐야! 저런게 무슨 마법사야?!!" 그동안 알고 있던 비리비리한 마법사들과 달리, 오랜만에 세상에 등장한 현민은 엄청난 마법을 선보이며, 마법사의 위력을 한층 더 뽐내고 있었다. -아, 아...... 주, 죽여버리..... -아직도 안 죽었네요? 그럼, 확실히 보내드릴게요. 지옥의 문. 부디 편안히 죽을 수 있기를....... 현민의 마지막 마법이 늑대인간을 삼켜버렸고, 화면은 다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보라, 마법사의 영광을! 그들의 위대한 전투를!! 두두둥! 둥! 콰쾅! 두두둥! 둥! 두둥! 가슴을 진동시키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화면속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한 엄청난 영상이 상영되었다. 현민과 채리플랑이라는 두 명의 마법사가 하는 대결은 전사들이 하는 대결에 비해 화려했고, 강렬했으며, 주위의 모든 것을 부셔버리는 파워까지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전사들도 그런 것이 있긴 했지만 그것들은 마법사에 비해 매우 약한 수준으로 내비쳤다. "와! 정말 대단한데? 저렇게 대단한 능력의 마법사를 왜 아무도 안하지?" "너 같으면 게임 속에서도 공부하고 싶냐? 그건 정신나간 또라이들이나 하는 짓이니깐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은 당연히 마법사란 직업을 안하는 거지." "그런가?" 마법사란 직업을 또라이 전용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으나 현민은 그들의 말에 불쾌해하며 뭐라 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저 어릿광대 왠지 가짜같지 않아?" "응? 왜?" "어릿광대란 유저, 토너먼트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상당한 마법조합을 보여줬잖아. 하지만 지금 보는건 단순히 마법의 난사 아냐? 저런건 마법을 할 수만 있는 조건이면 누구나 하는거잖아?" 흠칫! 바로 옆에서 하는 대화이기에 누구보다 잘 듣고 있었던 현민은 그들의 말에 그동안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깨달아 버렸다. "아마, 운영자가 가짜 탈바가지 쓰고, 유저랑 짜고 한 걸거야. 어릿광대가 얼마나 천재인데 저따위로 마법난사만 하겠냐?" "하긴, 그렇지?" 검은 화면에서는 마법사 이외에도 다양한 직업들을 소개시켜주고 있었으나 처음에 나왔던 마법사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뒤에 나오는 내용들은 식상하고 재미없는 것들이었다. "현민아, 괜찮아?" "응? 아, 응.... 난 괜찮아. 잠시 생각하느라고." "그래?" "그것 참 다행이네요." 흠칫! 들려서는 안돼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현민과 지혜는 파르페가게에서 따돌린 미호가 자신들의 뒤에 있는 것을 보며, 깜짝 놀라 몸을 돌리려고 했다. "왠만하면 쉽게 갈려고 했는데." 푹! "아아....." "현민!" 미처 몸을 돌리기도 전에 다가온 미호의 손이 현민의 등으로 들어가 버렸고, 미호는 뱃속에 들어간 손을 휘저으며,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찾았다!" 푸욱! "컥!!" "생체정지!" 미호의 손이 밖으로 나오면서 현민의 등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고, 그런 현민의 상태를 파악한 지혜가 다급한 마음으로 현민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워터 실드! 전투버전!" 자신과 현민을 실드로 감싼 지혜가 또다른 마법을 실행했고, 그녀와 현민을 감싸고 있던 실드는 가시같은 날카로운 창들을 뿜어내며, 실드의 주위로 모든 것의 접근을 막아버렸다. "호오, 상당히 곤란한 마법이네요." 실드따위야 부셔버리면 된다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시를 피해서 부시기는 상당히 힘든 것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미호도 쉽사리 행동을 하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보다..... 안 죽네요? 보통은 벌써 죽던데." 무식한 아이템으로 거대한 생명력과 회복력을 가진 현민이기에 약간의 시간을 번 것이었지, 그도 그렇게 오래버틸 수 있었던것은 아니었다. "비, 빌어먹을. 과거의... 영광." 번쩍! "휴우... 혹시나 찾아둔게 다행이군." 과거의 영광(A급) 설명 : 드워프들의 내기로 인해 탄생한 팔찌. 과거의 능력을 되살리는 기능이 있지만 한달에 한번만 사용이 가능하다. 능력 : 모든 능력을 10초 전의 상태로 되돌려 준다. 제작자 : 룬. 이것은 채리플랑과의 싸움으로 인해 혹시나 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찾아놓은 또 다른 '과거의 영광'이었다. 채리플랑의 것보다 나중에 만든 것이기에 등급은 같았으나 옵션이나 반영구적인 것에서는 훨씬 나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보다 이제는 남을 사람만 남은건가?" 대도시에서 일어난 PK에 낮은 레벨을 가진 사람들은 이리저리 도망쳤고, 그곳에 남은것은 고레벨의 유저와 그들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미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빨간 고깃덩어리를 보면서 말했고, 현민은 대답할 생각이 없는 듯, 조용히 노려만 봤다. "그렇게 바라 보지마. 나도 좋아서 이러는 것은 아니야. 하필이면 이런 빌어먹을 종족이 되어서 그러는 것뿐이라고!" 그동안에 싸인 것이 많았던 모양인지 그녀는 현민의 눈을 바라보며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전부 내뱉었다. -------------------------------------------------------------------------------- "정말?" "그래!" 현민의 물음에 미호는 큰소리로 소리쳤으나 현민의 반응은 냉담했다. "근데 왜 날 죽이려 했지?" "너희들은 오크를 죽이지 않아? 웨어울프나 묘인족 같은 다른 종족을 죽이지 않아?" "그들은...." "닥쳐!" 주위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한명의 유저가 입을 열려고 했으나 그보다 먼저 말한 미호가 유저의 말을 끊어버렸다. "유저들 중에는 사람이나 엘프, 드워프 같은 사람만 있는게 아니야. 어쩌다가 운이 없어서 나같은 여우족이나 오크 같이 어둠의 종족으로 되는 사람도 있다고! 그들은 좋아서 하는 줄 알아?" "다시 시작하면 안돼?" 지혜의 마법을 벗어나 밖으로 나온 현민은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고, 미호는 현민의 질문에 헛웃음만 흘렸다. "넌 내가 바보로 보이니? 너 혹시 캐릭터 지우고 다시 해본적 있어?" "아니." "만약 네가 이종족이었다면 캐릭터를 다시 만들어도 같은 이종족이야." 현민은 미호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초반에 캐릭터의 설정에서 외모를 바꿀 수 있는 기능을 알고 있고, 기본적으로 나오는 것이 인간으로 알고 있었는데, 미호의 말을 들어보니 꼭 그런것도 아닌것 같았다. "종족이란 것 자체가 랜덤이라는 것은 맞아. 하지만 그것은 게임속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몇몇 사람들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거라고. 이제 이해가 돼?" 미호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난 현민은 그제야 이해가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의 본인에게 종족 자체가 정해져 있다면 게임속에서 아무리 캐릭터를 만들어도 그 종족만 나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간은 왜 빼가?" 현민의 뱃속에서 꺼내간 것을 간이라고 생각한 지혜가 미호의 손에 들려져 있는 고깃덩어리를 가르키며 물었고, 미호는 자신의 손에 있는 고기(...)를 움켜쥐며, 대답을 했다. "넌 '전설의 고향'도 안 봤냐? 구미호가 사람 간을 100일 동안 100개 먹으면 사람 된다잖아? 나도 지금 퀘스트 중일 뿐이라고." "하아....." 세상에, 저런 종족을 만들고 사람으로 변하는 퀘스트가 저런거라니.... 현민은 세삼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어버린 그들의 JQ가 존경스러워졌고, 과연 어떠한 존재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만나보고 싶었다. "정말 그런 것이 퀘스트라면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도 되지 않아?" "중복 불가. 최소한 레벨 10 이상이고 자신의 레벨보다 최소 5이상 높을 것. 성별이 다를 것." "혹시..." 그녀가 하고 있는 말이 무엇인지 생각한 현민이 확인을 위해 물어보았고, 미호는 현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퀘스트의 조건이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호를 사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 난 후, 그녀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를 인식했다. "모두 비켜!" "모두 움직이지 마시오!" 길게 늘어져 있는 시장에서 한쪽으로는 경비대가 또 한쪽으로는 한 집단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시장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포위해 버렸다. "네년이 조금전에 내 동생을 죽인 년이냐?!" "도시에서 대낮에 살인이라니! 법이 두렵지 않은가?!" 양쪽에서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미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역시나 라는 표정을 지었다. "현민이라고 했나? 정말 할 말 없지만 나한테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으니 이해해 줄 수 있어?" 그녀의 모든 상황을 들은 현민은 잠시 그녀를 용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YES. 이유는? 그녀에게도 사정이 있으니깐. 정말? ....예쁘게 생긴 여자니깐. ....그럼 그렇지. 끄덕. 머릿속을 정리한 현민이 고개를 끄덕였고, 미호란 여성은 밝은 얼굴을 했다. "정말 고마워. 만약 나중에 만난다면 네가 어떤 부탁을 하던지 들어줄게, 알았지?" "우리 현민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마요!" 미호가 현민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하자, 불안감(?)을 느낀 지혜가 현민의 시야를 차단하면서 미호를 향해 가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미호는 그런 지혜를 보며 미소지을 뿐,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있는지 주변을 둘러싼 유저들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아...." -너한테서 피냄새를 느꼈을 뿐이야. 흠칫! 머릿속을 울리는 미호의 말에 현민은 깜짝 놀랐다.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현민 역시 상당히 많은 유저들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호가 맡은 냄새란 것은 미호가 동물관련 종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맞을 수 있는 그런 냄새였다. "네가 착하니깐 너한테 죽은 유저들은 착하지 않을테지? 처음으로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안녕." 싹! 현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낸 미호는 모두가 보고 있는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고, 미호의 모습을 놓친 사람들은 귀신이라도 홀린듯한 표정으로 미호가 사라진 자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졌어..." "현민아?" "방금 미호라는 여성과 싸웠다면 난 반드시 졌을거야." 현민은 마지막에 사라진 미호의 속도를 보고 자신의 패배를 예상했다. 마법사란 직업이 상당히 강하긴 하지만 그것은 마법사가 목표를 정하고 마법을 사용할 때였다. 물론, 현민은 상대를 붙잡아 놓을 수 있는 마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호 정도의 스피드라면 현민이 입을 벌리기도 전에 죽었을테니, 이것이 현민은 절대 그녀를 이길 수 없는 이유였다. "그보다..." "어떡할까?" 미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던 현민과 지혜는 아직도 둘러싸고 있는 유저들과 경비를 보며 어떡해 처리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모여왔기 때문인지 그나마 남아있던 유저들도 다 도망가 버렸고, 그들이 포위하고 있는 공간에는 현민과 지혜밖에 남아있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기... 경비아저씨들은 이만 가봐도 되지 않을까요? 범인은 이미 도망갔는데..." "범인과 너희들을 대화를 들어봤을때, 상당한 친분이 있는것 같더군. 일단, 조사를 위해서 그러니 함께 가 주시겠나?" "하아..." 경비대장의 말을 들은 현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게임속의 데이트는 안된다니깐." "어이." 누가 끌고 왔는데 저런 소리를 하는지, 현민은 자신의 뒤에서 가만히 있는 지혜를 보며 머리가 아파왔다. "현민이가 지켜줄거지? 나 연약하단말야." 6서클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지혜가 연약하다고 하니 듣고 있는 5서클의 현민은 속이 뒤짚혀졌다. "내가 무슨 수로? 그냥 도망이나 치자. 절대방어, 디그!" "꺄아악!" "뭐야?!" "도망인가?!!" 절대방어 마법이 현민과 지혜를 감싸는 동시에 땅 밑으로 사라져 버렸고, 당황한 유저들은 황급히 현민이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스윽. "인탱글!" 한쪽의 벽에다 손을 가져간 현민은 인탱글 마법을 사용했고, 현민의 마법을 양분삼은 나무 뿌리는 땅을 파고들며 길게길게 뻗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쿠구구구궁! "으악!" "엄마야!" "지, 지진이다!" 갑자기 커지는 나무뿌리 때문에 굳건했던 대지가 이리저리 흔들렸고, 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자세를 낮추어 안정을 찾았다. "가자." 사람들이 엎드려있는 사이 현민은 나무뿌리의 수관을 가르키며 지혜의 손을 잡고 앞장섰다. "너 항상 이런식으로 마법을 썼어?" 도저히 상상도 못한 마법의 조합에 지혜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이렇게 했지." 마법을 난사하던 최근의 기억이 떠오른 현민은 자신의 어리석었던 행동을 비웃으며, 예전의 기분을 느낀 듯 조용히 미소 지었다. "라이트. 가실까요, 레이디?" "물론이죠, 나의 기사님." -------------------------------------------------------------------------------- "으차찻! 재밌었지?" "응. 그러니깐 내일은 학교 꼭 나와야 해. 알았지?" 지혜는 현민의 말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섰다. "나 정말로 네가 좋아, 헤헤." "그렇게 말해도..." 가까이 다가선 지혜에게서 아침에 맡았던 향기가 다시 코끝을 스치자 현민은 한걸음 물러나며 대답했다. "괜찮아, 너는 내가 널 아~주 좋아한다는 것 만 알아주면 돼." "...응." "그럼, 먼저 들어가볼게. 잘가 현민아." "잘가." 현민은 지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몸을 돌리고 밖으로 나왔다. "데이트는 잘 했는가?" "아, 데이트 아니에요. 친구인걸요." "호오~? 지혜 학생은 아닌 것 같던데?" "하하..." 경비아저씨의 말에 현민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자리를 비켰다. 더 이상 얘기를 했다가는 아저씨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안녕히계세요." "잘가게, 자주 놀러오고." 경비아저씨의 배웅을 받은 현민은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시계는 아직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지혜의 말대로 아직도 밤은 끝나지 않았다. 털썩!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87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종료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집에 도착한 현민은 바로 캡슐에 누웠고, 다시 한번 「싸울아비」속으로 빠져들었다. 웅성웅성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말이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목적이 있어서 말을 하는 것인지, 이제 막 접속한 현민의 귀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혼란스럽게 들려왔고, 시끄러운 소리에 적응을 하지 못한 현민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저기." "응?" 막 발걸음을 옮기려던 현민은 자신을 붙잡는 손길에 뒤를 돌아보았고, 익숙해 보이는 한 여성을 볼 수 있었다. "어쩐 일이세요?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요?" "저번에 약속했잖아요. 이벤트 같은게 있으면 남들보다 먼저 알려드리겠다고요." "일단, 조용한 곳에서 얘기해요." 시끄러운 장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운영자를 이끈 현민은 조용한 공터로 자리를 옮겼다. 현실성을 강조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도시라서 그런 것인지 도시에는 숲이 우거진 공터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아까 이벤트라고 하셨는데, 무슨 이벤트가 있나요?" 현민은 그동안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을 운영자가 직접 알려준다고 하자, 일단은 호기심이 생겼다. -앞으로 현실에서 3개월쯤 뒤에 제2회 토너먼트가 있을거에요. 아직 예정이지만 거의 확실하니 먼저 알려드리는 거에요. 이벤트 같은 정보를 함부로 말할 경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에 그녀는 혹시나 하는 경우를 생각하여 현민에게 귓속말 기능으로 알려주었다. "귓속말인가요?" -네, 운영자만 가능한 특권이에요.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서 가우리는 귓속말이란 것을 아예 없애버렸다. 멀리서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그런 일이 있다니 미리 준비해야겠네요." 운영자에게 정보를 얻은 현민은 앞으로 있을 대회를 위해 그동안 미뤄왔던 것을 전부 만들어 놓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저를 강하게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예?" 현민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운영자면 강하지 않아요?" 현민의 앞에 등장한 운영자는 그런 현민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저희 운영자는 말 그대로 '운영자'에요.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 아니라, 게임속의 벨런스나 오류를 잡아내는 사람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번같은 일이 있던거고요." 말을 하던 운영자는 예전 현민과의 만남을 기억하는지 빨개진 얼굴로, 현민과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부탁드릴게요. 저를 강하게 만들어주세요." 운영자의 말을 들은 현민은 잠시 고민했다. 그녀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현민이 생각하기에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존재는 자신이 아니었다. "어째서 저를 찾아오신거에요?" "당신과의 싸움으로 운영자도 어느 정도 싸우는 법은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거고, 당신에게서 싸우는 법을 배우고 싶었어요." 현민을 향해 말하는 그녀의 눈은 이미 확신이라는 단어가 박혀있었다. 현민은 간절함이 들어있는 그녀의 말에 예전에 생각했던 하나의 방법을 꺼낼 수 있었다. "방법은 있어요... 하지만 저도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네요." "열심히 배울게요! 제발, 부탁드려요." 방법이 있다는 현민의 말에 운영자는 현민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며 애원했다. "현실에서 일주일 후에 저를 찾아오세요. 그동안 준비해 드릴게요. 그보다, 어떤 무기를 사용하실 거죠?" "아무거나요, 제가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없거든요..." 너무나 무턱대고 부탁하는 운영자였지만 현민은 그동안의 정도 있었기에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럼, 그것도 제가 알아서 해보죠. 다시한번 말하지만 일주일 후에 저를 찾아오세요." "네!" 현민의 말에 그녀는 환한 얼굴로 미소지었다. "그보다 늦은 시간인데 아직도 퇴근하지 않은건가요?" 현민이 접속한 시간이 11시니 여성 운영자에게는 밤길이 위험한 시간이었다. "8시에 퇴근하고 지금 집에서 하는 거에요." "그런데 어떻게 저를 찾으신거죠?" 8시에 퇴근했다는 운영자가 어떻게 자신을 찾은건지 현민은 알 수가 없었다. 회사였다면야 어떤 시스템으로 찾아도 할 말이 없지만 회사도 아니고, 집에서 자신을 찾았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생각되었다. "야근하고 있는 다른 운영자에게 당신의 위치를 알아달라고 부탁했죠. 저희들에게 당신은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위험인물이거든요." 말을 해놓고도 어색했던지 그녀는 베시시 웃으며 어색함을 없애려 노력했다. 그녀의 노력이 통했는지 그들은 한결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상당히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럼, 다음에 뵈요." "네, 저는 여기서 조금 더 있다가 갈게요. 잘가요." 현민의 인사를 받으며 운영자가 사라졌고, 홀로 남은 현민은 운영자가 남아있는 자리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페튜니아라.... 제가 당신의 부탁을 받아들인 것은 당신으로 인해 제가 강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과 같으니까요." 아무도 없는 곳에 마지막 말을 흘린 현민은 그녀가 얘기해준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3개월이란 시간이 남았지만 목표가 정해진 순간 3개월이라는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 "여기쯤이 좋겠지?" 운영자 페튜니아와 헤어진 후, 시장의 중앙에 자리 잡은 현민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고는 구매를 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그가 구매할 물건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짝! "흔들리는 바람에 내 목소리를 실어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조용히 흘려다오." 슥, 스슥... 이 정도의 마법진을 가볍게 발현할 수 있어진 현민은 자신의 향상된 실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빨갛게 빛나고 있는 마법진을 향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비홀더의 눈' 전부 구매합니다. 개당 10실버에 구해요. 현재 위치는 마을 중앙상가입니다." 현민은 '비홀더의 눈'이라는게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상점행 아이템의 가격이 10실버라면 누구라도 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아 벌써 수십명의 사람들이 비홀더의 눈을 산다는 현민을 찾아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비홀더의 눈 산다신분 어딨으세요?" "비홀더의 눈 팝니다!" 자신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자 현민은 댄싱라이트를 사용하여 자신의 머리위에 화살표를 하나 그려 넣었다. "흔들리는 바람에 내 목소리를 실어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조용히 흘려다오." 슥, 스슥... "'비홀더의 눈' 개당 10실버에 삽니다. 제 머리위에 화살표를 보시고, 찾아주세요." "비홀더의 눈 팔게요." 현민이 비홀더의 눈을 구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가까운 곳을 헤매던 한명의 유저가 현민을 향해 다가와 거래를 신청했다. "몇 개 있으시죠?" "2개요." "몇 개나 있으세요?" "1개." "몇 개...." .... '비홀더의 눈'이라는 것이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징그러운 모습에 유저들이 얻기를 싫어하는 것인지, 현민에게 비홀더의 눈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량의 숫자만 거래해 왔다. '이제 팔 사람들은 전부 팔은건가?' 30분도 안돼는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구매한 '비홀더의 눈' 수량은 238개였고, 현민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23골드 80실버였다. "또 구매해야 하는게 뭐가 있지? 음... 피?" 앞으로 만들어질 물건을 생각하며, 재료들을 떠올린 현민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민의 직업이 마녀인 이상 최상급의 아이템 창조에는 피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마을 중앙상가에서 각종 몬스터의 피 전부 구매합니다! 한 병당 3실버! 머리위의 화살표를 보고 찾아주세요." 현민이 말하는 한 병이란 일반 잡화점에서 파는 500ml의 병에 담겨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시한번 마법을 사용한 현민은 자신의 위에 커다란 화살표를 만들었고, 그것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했다. "'샤벨타이거의 피'인데 이것도 사시나요?" "네, 전부 삽니다." "저기.. '오크족장의 피'도 똑같은 가격인가요?" "일단 살펴보고 생각해 볼게요." 현민의 주위는 조금전과 마찬가지로 거래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현민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구매했다. 아직까지 많은 돈이 남아있으니 물건을 사는데 소요되는 작은 돈(?) 정도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현민이었다. "이정도면 되겠지?" 가득찬 인벤토리와 마법의 주머니를 살펴본 현민은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겨우 두 가지의 물건을 사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이 많고, 거래하는 물건들이 다양하다보니, 의외로 많은 시간을 소비했기에,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하려면 빨리 움직여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목표는 우승이다. 쿠쿡." 저번에는 비록 자신의 실력이 낮아 본선에도 진출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이 있었다. "앞으로 남은 3개월... 정말 바쁠거야." 빈틈없이 짜여진 계획은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현민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현민아~, 뭐해?" 스스슥, 슥슥. "이번에 깨달은게 있어서 마법을 간단히 만들고 있어.." "에에?" 현민은 열심히 매직보드에 있는 문제를 풀고 있었고, 지혜는 그런 현민을 이해가 안간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왜? 네 마법 엄청 쌔잖아.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만 해도 주변의 환경이 좋으면 모든 유저들을 잡아버릴 수 있지 않아?" 현민과 같이 현민이 나오는 광고를 본 지혜였기에 현민이 사용하는 마법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파악을 끝낸 후였다. 비록 화면을 통해서 본 현민의 마법이었지만 그 능력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에, 강한 마법을 약하게 만든다는 현민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인생 뭐 있어? 재미있게 살다가면 그만이잖아. 큭큭."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건데?" "천재님께서 알아맞춰 주세요." 현민은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지혜를 놀리며 매직보드에 있는 문제를 계속해서 풀어나갔다. 이번에 깨달은 것들을 실행 할 수 있다면 자신이 보아온 존재 중에서 자신을 이길 사람은 없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시험준비는 안해?" "응, 이번 시험은 포기했어." "에에!" 현실에서는 마법 만들고, 가상현실에서는 아이템을 창조하느라 바쁜 현민은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존재하는 기말고사를 포기해 버리는 엄청난 짓을 결정했다. 과거의 현민이라면 부모님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반드시 했을 테지만 가상현실을 통해서 점점 변해가는 현민은, 이제 그런것에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 할 일이 생겼어. 그래서 그래." "시험보다 중요해?" "응."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뭐." 현민에 대해서는 철저히 믿는 지혜였기에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지금 만드는 마법은 뭐야? 나도 알려주면 안돼?" "그냥 평범한 마법이야." "에이~, 그러지 말고 알려주라, 응?" 지혜는 귀여운 척, 이쁜 척 해가며 현민에게 달라붙었으나 현민은 그런 지혜를 피해다니며 문제를 풀 뿐,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어쭈, 자꾸 그러면 너 후회할텐데?" "괜찮아. 이거 서클이 낮아서 조금만 투자하면 금방 할 수 있거든. 지금부터 다시 풀어도 학교 끝나기 전에는 할 수 있어." 한동안 술래잡기를 하던 지혜가 지쳐버렸는지 허리에 손을 얹고, 짐짓 화난 듯이 말했으나 현민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하며, 지혜를 한층 더 불붙게 만들었다. 슬금슬금... "오지 마, 겁나."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았는지 현민은 조금씩 다가오는 지혜를 피해 다시 한걸음 떨어졌고, 지혜는 그런 현민을 따라 다시 한걸음 다가갔다. "나도 좀 알려주라, 치사하게 혼자만 마법만들고." "너도 만들어서 사용해, 저번에 보니 무시무시하던데?" "하지만, 최강의 마법사는 '어릿광대'인걸?" 쫑긋! "응?"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인 '어릿광대'가 최강의 마법사라고 하자 관심이 생긴 현민은 그동안 눈을 때지 않던 매직보드를 손에서 놓은 채, 지혜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얘기해 봐. 내가 최강이라고?" "이번에 나온 광고가 대박 났잖아. 광고가 대박나니 광고의 주인공도 대박나는게 당연한거 아니겠어? 거기다 세계 최고의 천.재. 채리플랑도 마법대결에서 이겨버리고 말야." 광고가 나가기 전까지 현민은 단순히 재미있고 독특한 마법사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광고에서 현민의 새로운 마법이 상영되었고, 채리플랑과의 마법겨룸에서 어이없이 패배함으로써 그는 사람들의 뇌리속에 최강의 마법사로 자리잡게 된 것이었다. "난 졌어. 너도 봤잖아?" "알아, 하지만 그것은 아이템 때문이고,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야. 더욱이 채리플랑도 공식적인 장소에서 너한테 패배했다고 인정했고 말야." -------------------------------------------------------------------------------- "정말?" "응." 세계적인 천재에게 인정받으며 같은 천재계열(?)에 올라선 현민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기뻐하는 것도, 그렇다고 부끄러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얼굴 표정이 왜 그래?" "왜?" "무언가 심각히 불만스러운 얼굴이야, 잘하면 한대 치겠는데?" 껄렁껄렁한 지혜의 말을 들은 현민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표정이 정말 그런지 살펴보고 있었고, 지혜는 그런 현민의 이마를 툭툭 건드렸다. "네 얼굴은 나중에 만지고, 왜 불만스러운 표정인지 말은 해야지?" "....나도 모르겠어." "응?" 원래대로 돌아온 현민의 얼굴에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 불만스러운 감정을 얼굴로 나타내고서 그런 감정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현민의 말에 지혜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장난스러운 분위기라면 적당히 웃어주면 그만이었지만 심각히 고민하는 현민의 앞에서 함부로 웃음을 흘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자, 그만 생각하고,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는거야?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 서두르는 것 같던데." "비밀." 털썩 지혜가 달라붙었으나 더 이상 신경쓰지 않은 현민은 매직보드를 손에들고, 조금전에 풀다만 문제들을 다시 풀어나갔다. "현~민~아~. 알려주라. 응?" "안돼. 그리고 자꾸 달라붙지마." 지혜는 자신의 손을 피해 도망가는 현민을 쫓아서 움직였고, 그들의 술래잡기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헥, 헥... 넌 지치지도 않냐?" "응. 그러니깐 너도 담배를 적당히 피던지, 아니면 끊어." 헥헥거리는 지혜와 반대로 현민은 문제를 풀면서도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툭툭... 지혜가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매직보드를 손에 쥐고 문제를 풀던 현민은 약간 애매한 문제가 나왔는지 터치펜으로 매직보드를 툭툭 치며,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지혜는 기척을 죽인 채, 조용히 현민의 뒤로 다가갔고, 현민이 움직이지 않는 순간 재빨리 현민의 허리를 감싸않았다. 와락! "잡았다!" "놓쳤다." "야!"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현민은 이미 그녀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있었고, 그녀는 억울하단 표정으로 멀리 도망가고 있는 현민만을 바라보았다. "그만 내려가자, 좀 있으면 점심시간도 끝나니깐." "하아...." 남들은 안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자신의(?) 현민은 안기는 것이 싫어서 도망가니, 벌써부터 앞날이 걱정되는 지혜였다. "다녀왔어요." "그래." 털썩! 집에서 TV를 보시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한 현민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캡슐에 누워버렸다. "현민아, 이제 시험기간인데 게임은 그만하고 공부 좀 하지 그러니? 아버지가 뭐라고 하면 어쩔려구." 현민은 문밖에서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못 들었다는 듯 캡슐을 닫아버리고는 「싸울아비」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빠~." "오라버니, 오셨어요?" "오빠야." "...." 현민이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네 명의 정령들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다들 잘 놀고 있었어?" "응! 담비 장난감 가지고 재미있게 놀았어." 슥슥. 현민의 질문에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담비가 환희 웃으며 말했고, 현민은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른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냈지?" "네~." 네 명의 정령들이 입을 맞추어 대답했고, 현민의 입에는 다시한번 부드러운 미소가 생겨났다. "나가... 윽!" 방밖으로 나가던 현민은 발을 통해서, 무언가 날카로운 것을 느끼고는 깜짝 놀라 넘어져 버렸다. "뭐야? 헉!" 바닥을 살피던 현민은 자신이 밟을 뻔 했던 것이 작은 단검인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인벤토리 안에 있는 무기들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무기도 꺼내놓은 적이 없었는데, 전혀 못 보던 단검이 바닥에 서 있자(꽂혀있는 것이 아니라 서있다...) 그것을 보고 놀란것이었다. "담비야,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으면, 깨끗이 치워야지. 오라버니가 지저분해서(?) 놀라잖니." "우웅, 미안." 휭! 태엥~. 부르르르르.... 단검을 집어든 담비가 벽면을 향해 손목을 가볍게 흔들었고, 그의 손에 있던 단검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 벽에 박혀버렸다. "너, 너. 저 단검 어디서 났어?" "우웅, 저번에 주었어.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담비는 솔직하게 말했고, 현민은 그녀의 귀엽고 깜찍한 얼굴을 보며, 자신의 손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저번에 오라버니가 이상한 아줌마랑 싸우는 동안에 주운 거예요." "저건 담비가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흘리고 간걸 주운거야." 염화를 제외한 두 정령이 담비를 대신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현민은 그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담비가 전부 챙긴건가?!' "아유~, 이뻐." "헤헤헤." 담비를 껴안은 현민은 흘러나오는 콧물도 신경쓰지 않은 채 자신의 볼을 담비의 볼에 비볐고, 현민의 애정표현이 기분좋은 듯 담비도 환한 얼굴을 현민의 얼굴에 마주 비볐다. "전부다 주운거야?" "응!" 현민의 미소에 기분이 좋은 담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하려는 듯이 호주머니에서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고, 담비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아이템이 많아질수록 현민의 얼굴도 이상하게 변해갔다. '무, 무슨 마술주머니야?' 담비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아이템은 이미 현민의 방을 반 이상 차지하고 있었고, 쌓아진 높이도 높아 흔들거리는 것이 조금만 잘못되도 넘어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나 많이 주웠지? 헤..." 너무 많이 주운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현민은 칭찬해 달라고 머리를 내미는 담비를 거부할 수가 없어 어쩔수 없이 쓰다듬어 주었다. "루나야, 뭐....?!" 시끄러운 소리에 호기심이 생긴 린이 천천히 방문을 열었고, 현민의 눈은 높이 싸여진 아이템들로 향했다. 아주 조금 열려진 문이었지만 그것에 기대고 있던 아이템들은 그냥 넘어져 버렸고, 현민은 순식간에 무너지는 아이템 탑에 파묻혀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쌓여진 탑에 무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당탕탕!! "루나야, 괜찮아?" "응..." 팟! 무너진 아이템의 사이로 거대한 손이 보였고, 그 손이 사라지면서 현민이 모습을 들어냈다. "도대체 뭐야? 이 쓰레기는." "쓰레기 아냐! 담비 장난감이야!" 쓰레기라는 말에 발끈한 담비가 작은 주먹을 휘두르며 린에게 달려들었으나, 담비의 주먹을 잘 알고 있는 정령들이 적극 말림으로써 담비의 의도는 성공할 수가 없었다. "씩, 씩..." "이리와, 담비야." 결국, 현민이 나서 담비를 품에 안았고, 담비는 그제서야 마음에 안정을 찾은 듯, 화를 풀고 현민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린, 이제부터 바쁠거야. 엄청난 일이 있을 거거든. 쿡쿡..." "하아, 도대체 뭘 하려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현민의 웃음이 알리는 불안감을 읽은 린은 천천히 자신의 앞에 다가오는 미래를 느끼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마, 처음에는 가장 쉬운것부터 할 거니깐." "....뭔데?" 자신의 예감이 빚나가길 바라며, 린은 조용히 현민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발.록.소.환." "....." 그동안의 어설퍼 보이던 모습을 벗어버리고, 확실한 마녀(?)가 되기로 작정한 것인지,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현민의 표정은 마을에 존재하는 그 어떤 마녀보다도 더욱 마녀같았고, 사악해보였다. "깔깔깔깔..." 현민은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지만, 왠지 그녀의 귀에는 경쾌한(?) 현민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일단, 발록 소환진 좀 부탁할게." 싱글벙글. 린은 뻔뻔하게 부탁하며, 싱글벙글 웃고있는 현민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강력한 마법한방 갈겨버리고 싶었지만 애처롭게 울고 있는 큐를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너 발록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아? 잘못하다간 우리 모두 사망이라고!" "괜찮아, 괜찮아.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도대체 현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알 수 없었던 린은 현민의 머릿속을 뜯어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렇게 했을 경우, 현민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기에 차마 하지는 못했다. "도대체 발록을 소환해서 뭐할려고 하는거야?! 세계정복이라도 하게?!" "걱정마, 마녀 루나의 이름을 걸고, 절대 네가 걱정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거야." 린에게 가까이 다가간 현민은 린의 어깨를 마주잡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여기 꼬마정령들도 함께 있고 말야." 슥슥. 현민은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는 네 명의 꼬마정령들을 린에게 보여주며, 자신감 있는 웃음을 보여주었다. 현민이 보여주는 미소가 믿음 가는 미소는 아니었지만 그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왠지 자신의 걱정이 바보같이 느껴진 린은 현민에게 화내는 것도 포기하고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렸다. "하아, 알았으니깐 여기부터 치우자. 왜 이리 지저분한거야?" "쿡쿡, 그냥 놔둬. 찾아야 할 것도 있거든." "응?" 현민은 옷깃을 걷어올리고 치우려 하는 린을 말린 후, 이리저리 널려있는 아이템을 뒤지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그 당시 수많은 몬스터를 잡은 현민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다 찾았다!" 보고있는 린과 정령들이 지루해 할 만큼의 시간이 지나서야 숙여져 있던 허리를 핀 현민이 큰소리로 외쳤고, 현민의 목소리에 맞추어 잠에서 깨어난 담비가 입가에 묻어있는 침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쓰....을모 없는 것들로 뭐하게?" '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담비의 눈가에 살기가 고였고, 그런 담비의 시선을 느낀 린은 어설프게 말을 바꾸었다. "이제, 재료도 전부 모았으니 가디언이나 하나 만들려고." "그 뼈다귀 말하는 거야?" "응." 도대체 어떤 것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기에 발록소환이 쉽다고 하는 것인지 린은 도저히 현민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거야?" "예쁘게, 귀엽게, 깜찍하게." 전혀 성의없는 대답이었지만 린은 그 대답만 듣고도 현민이 만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것은 '피의 제물'로 만들면 간단하지 않아?" 린이 말하는 '피의 제물'이란 것은 마녀들이 가디언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주된 방법으로, 강력한 존재를 만든 후, 그 존재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바꾸는 것을 말했다. 이 경우, 재료비(?) 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추어 디자인(?)을 할 수 있기에 마녀들이 애호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를거야, 기대해 봐." 이미 어떻게 만들것인지에 대해서 계획을 세운 것인지, 현민의 목소리는 거침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고있는 린은 그런 현민의 목소리가 마냥 불안하기만 했다. "일단, 206개의 뼈 전부에 마나흡입 마법진을 그려넣을거야." "에엑!!!" 이제야 겨우 하나를 말한 것이었지만, 현민의 말을 들은 린은 절대 불가능한 것을 들었다는 듯이 엄청난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현민이 원하는 마나흡입 마법진은 일반적으로 그릴 경우 가로, 세로 10m의 공간을 차지하며, 그것을 최대한으로 줄인다고 했을 때, 성공한 사례가 손바닥 크기였기 때문이였다. "괜찮아, 인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거든." 싱긋. 현민이 평소와는 다르게 웃음을 많이 흘렸지만 린은 그런 현민의 미소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리고 복구의 마법진도 그려 넣을 거야. 206개 모두 말이지." "하아...." 처음에 너무 심한 것을 들어서 그런것인지, 린은 1m^2의 공간을 차지하는 복구의 마법진이 왠지모르게 우수운 소리로 들렸다. "그게 끝이지? 그렇지?" "아니, 두 가지의 마법진을 전부 새긴 다음에는 일반 마법진을 새겨넣을거야. 증폭, 공격, 보조계열의 마법들 전부." "세, 세상에! 너 설마 마법까지 전부 넣을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이었으나 현민에게 들려온 것은 역시나 긍정이었다. "추가로 예전에 만들어놓은 '천벌'까지 넣을 생각인데? 쿡쿡." 너무나 여유로운 현민의 표정에 린은 현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진지한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루나야... 너 인체에서 가장 작은 뼈의 길이가 얼마인지 알아?" "음.... 대략 2mm?" 빠직! 현민의 대답을 들은 린의 머리에 십자모양의 혈관이 튀어나왔고, 그녀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걸 아는 자식이 그 조그만 공간에 마나흡입 마법진하고, 복구마법진을 그린다고 하냐?!" "에이~, 화내면 피부 나빠져. 웃어, 응? 내가 마사지 해줄까?" 린의 얼굴이 원조마녀(?)처럼 변해가기 시작하자 재빨리 린에게 다가간 현민이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그녀의 화를 식히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그의 손길에 린은 얌전해지기 시작했고, 현민은 그녀가 이 이상 화내기 전에 자신의 계획을 말해 주었다. "그리 어려운 일 아니니깐, 화내지 마. 일단 저주 계열의 마녀들에게 부탁해서 작게 변하는 거야. 그러면 우리는 작아지고 뼈가 될 조각들은 커지겠지? 그렇게 한없이 작아지다 보면, 언젠가 뼈조각들이 아주아주 커지고, 우리는 그 위에다 편한 마음으로 마법을 새길 수 있을거야. 쉽지?" "세상에...." 도대체 어디서 이런 잔머리가 나오는 것인지, 린은 현민의 엄청난 잔머리에 감탄해 버렸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지만 현민의 말대로 하면 그보다 작은 것에도 충분히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글세? 쿡쿡." 린이 깜짝놀라는 것이 재밌었는지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는 현민은 마냥 기분좋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D-98일 현민과 린은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마을에 있는 저주계열의 마녀를 불러와 자리에 앉혔다.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에요." "맞아, 언니. 그리고 이번일 성공하면 정령석도 두둑히 줄게." "정말?!!" 내성적인 성격인지 조용히 앉아있기만 하던 마녀가, 정령석을 준다는 린의 말에 벌떡 일어나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니, 현민은 그녀에게 많은 정령석을 줘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며 깜짝 놀랬다. '수, 순간 넘어갈 뻔 했어....' "췟!" 현민의 표정에서 물고기(?)가 도망갔다는 것을 파악한 마녀도 아쉬운 탄성을 내뱉으며, 다시 자리에 앉아 처음과 같은 표정으로 조용히 내숭떨었다. "그럼, 부탁할게요, 언니." "응." 웅얼웅얼..... ".....작아져라!" 그녀의 외침에 따라 현민과 린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고, 현민은 점점 거대해져가는 뼈를 보며, 싱글싱글 미소지었다. "아참, 작은 모습일 땐 조심해야해. 혹시라도 고양이가 밟거나 곤충이 먹을 수도 있고, 하다못해 벼룩한테도 밝혀죽을 수 있으니깐 말야." 세상에 밟혀 죽을 존재가 없어서 벼룩한테 밟혀 죽는다니..... 어떻게 죽어도 상관은 없지만, 현민은 최소한 벼룩에 밟혀죽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그럼 조심해~. 10시간 동안 죽지 않기를 빌어." 앞으로 10시간.... 현민은 정말로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자, 그럼 어서 그리고 끝내버리자." "하아.... 왜 하필 결계를 부셔가지고는." 린은 하필이면 현민이 찾아오는 그 날, 결계를 부순것이 마냥 억울하기만 했다. -------------------------------------------------------------------------------- "린, 내가 없을때도 부탁할게...." "나, 날 죽여." 말 할 힘도 없는 것인지 린은 몸조차 바로하지 못한 채,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진공, 정화, 살균 마법을 사용한 후에 하면 이런 일은 없을거야." "하아, 나중에 계산 확실히 해야 해~." "응..." 자신 역시도 린에게 너무 많은 것을 부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언제고 한번 그녀만을 위한 것을 준비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현실에 있는 시간동안에는 자신이 할 일을 린이 전부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고마워, 린." "으응?" "쿡, 아냐." 현민의 작은 말을 못들은 것인지 그녀는 반문을 했지만 현민은 작게 웃기만 할 뿐, 다시한번 말해 주지는 않았다. "그럼, 나는 마법진을 그릴만한 장소를 찾아볼게." "알았어. 난 잠시 쉬다가 다시 그리지 뭐," 일의 순서상, 골렘을 완성시키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발록의 소환문제였다. 소환되는 존재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마을 주변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고, 또한 마법진의 크기도 있었기에 장소 또한 함부로 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현민은 발록소환 마법진을 얻고도 발록을 소환할 만한 장소를 찾지 못해 아직까지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터벅터벅.... 바스락. "하아.... 주변에 던전이라도 있으면 좀 좋아?" 어마어마한 동굴이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소환하는 존재의 크기가 크다고 하니, 현민은 무작정 넓고 거대한 장소를 찾아 다녔다. 하지만 현민이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완전히 소환된 발록이 서있을 정도의 장소라면 드래곤 레어 정도가 아니고서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 오빠.... 그런 것 만들면 되지 않아......요?" 평소 조용하기 짝이없는 염화가 현민의 옷깃을 잡으며 오랜만에 입을 열었고, 현민은 그동안 간단한 것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머리를 탓하며, 기쁜 얼굴로 염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염화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말을 하도록 노력해봐, 알았지?" "...응." "오빠, 오빠! 나, 내가 할래~." 현민이 염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 그의 옆에 있던 담비가 현민을 향해 폴짝폴짝 뛰었고, 현민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와~, 근데 얼마나 커야해?" "마녀의 마을만한 크기면 좋을듯한데, 만들 수 있어?" "응!" 혹시나 하는 현민의 질문에 담비는 걱정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자신있게 대답했다. 다른 존재가 이런 말을 했다면 못 믿었겠지만, 순진한 만큼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담비를 잘 알고 있는 현민이었기에 그는 담비를 믿고 맏겨 주었다. "자, 간다!" 푹! "으악!" "꺄악!" 부들부들... 현민과 네 명의 꼬마정령들이 서있던 바닥이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앉아 버렸고, 현민과 두 명의 꼬마정령(윈디아 제외)들은 갑작스런 속도에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끝~!" "아아아...."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인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인지, 염화와 묘의 눈은 팽글팽글 돌아가고 있었고, 현민은 바닥에 주저앉아 속을 다스리고 있는 중이었다. "재미있던데...." "헤헤, 재밌지? 그치?" 바람의 정령인 윈디아는 속도를 즐길 줄 아는(?) 종족이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빠, 이정도면 돼? 아니면 좀 더 커야해?" "으응?" 담비의 말에 정신을 차린 현민은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약간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기에 그는 어떠한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라이트." "우와~." "크다..." "...." 현민의 라이트가 작은 것은 아니었으나 동굴의 크기가 생각 외로 거대하다 보니, 라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동굴의 벽까지 닿지를 않았다. "이 정도면 돼?" "으, 응..." 현민은 마녀 마을정도의 크기를 원하긴 했으나 설마 이 정도까지 만들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왠지 모르는 피곤함과 어색함에 상태창을 열어본 현민은 이정도로 거대한 공간이 만들어 진 이유를 확인 할 수 있었다. ----------------------- 이름 : 룬. Lv : 87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4) 민첩 : (11) 건강 : (13) 반사신경 : (16) 지능 : 322(18) 정신 : 364(20) 공격력 : 28 -28 마법력 : +680 방어력 : 52 생명력 : 2639 (+2300) 정신력 : 138 / 60825 ((+16000)*3) 물 속성 친화력 : 407 불 속성 친화력 : 366 땅 속성 친화력 : 367 바람 속성 친화력 : 366 정령력 : 313 물 Lv 79 바람 Lv 79 불 Lv 79 땅 Lv 79 보너스 스텟 : 0 ----------------------- 이 정도의 동굴을 만드는데 60687이란 정신력을 쏟아 부었으니, 이정도의 공간이 안 나온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오빠, 나 잘했지? 응?" "그래..." 어차피 만들어 진 공간이니 더 이상 화를 내봐야 피곤한 것은 현민이었다. "그럼 이왕 부탁하는 것 이것까지 그려줄래? 똑같이." "응!" 움직일 힘조차 없는 현민은 어쩔 수 없이 담비에게 다시한번 부탁했고, 담비는 처음으로 현민이 '부탁'했기에 엄청나게 큰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다. "아자자자자~." 털썩! '뭐, 뭐야....?' -정신력의 한계로 인해 '기절'상태에 빠집니다. '이, 이런 제기라아알......' -------------------------------------------------------------------------------- 툭, 툭툭.. "어이, 이봐." "으응....?" 정신력의 한계로 인해 강제적인 수면상태로 빠져있던 현민은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발로 툭툭 건드리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어떤 놈이...." '기절'상태에서 깨어난 휴유증인지, 아니면 잠에서 곧바로 일어나서인지 현민은 현재의 상황을 쉽사리 파악할 수 없었고, 잠시간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야 자신이 쓰러진 이유와 자신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가 어딘지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네 놈이 나 부른 놈이냐?" "으윽?!" 계속해서 다가오는 발길질을 피해, 몸을 일으킨 현민은 간신히 허리를 세울 수 있었고,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동안 현민의 머리를 건드렸던 존재는 허리정도 오는 금발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이마에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뿔과 엉덩이 부분의 기다란 꼬리가 그녀가 인간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눈 떴으면, 이 애들 좀 데려가라." "응?" 뭐가 그렇게 좋은 것인지 4명의 꼬마정령들은 발록으로 추정되는 자의 몸에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발록... 이신가요?" "왜?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가?" 끄덕. 발록이라기 보다는 흔히 알고 있는 마족처럼, 발록이란 자의 모습도 인간의 모양에 뿔과 꼬리가 달려있는 차이밖에 없었다. "아참, 인간들은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했던가? 실수했군." 우득! 우드득!! "꺄아아~." "꺄르르르." 주르륵. 뼈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 발록의 몸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정령들은 그런 발록의 몸을 미끄럼틀 타듯이 돌아다니며 즐거워 했다. "크아아아앙!" 우우우웅... 동굴을 가득 채울 듯이 커다랗게 변한 발록의 울부짖음에 동굴과 땅이 크게 흔들렸고, 그 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은 현민은 고막이 터지는 듯 한 고통에 다시한번 누워버렸다. "크으으으... 이제는 믿는가?" 거대하게 변해버린 발록에게서는 엄청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고, 상상도 못했던 위압감을 처음으로 느껴본 현민은 말을 할 수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도 없었다. "흥! 본 모습도 견디지 못하는 주제에 감히, 존재를 의심하다니." "하악, 하악, 하악.." 너무나 거대한 위압감에 눌려있던 현민은 발록의 모습이 인간형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발록이란 존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이 현민을 숨도 쉴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우웅,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요." 발록에게 달라붙어 있던 네 명의 정령들은 어느새 괴로워하는 현민의 곁에 서 있었고, 발록은 무심한 눈으로 네 명의 정령과 현민을 내려다 보았다. "하찮은 인간이여, 어서 말하라. 그대의 소원은 무엇인가?" "콜록! 콜록!" 물기 맺힌 눈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붉게 물들인 눈으로 발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전투." "?" 너무나 어이없는 현민의 말에, 발록은 혹시나 자신이 잘 못 들었을 것 같아 확인삼아 다시한번 현민에게 물어보았다. "뭐라 했지?"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하?!" 발록으로서는 도저히 현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간에 대해서 충분한 공부(?)를 했고, 마족 필기시험(?)에서도 수석을 하며, 인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안다고 자신하던 그였지만 현민이란 존재는 전혀 엉뚱한 것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싸우는 법을 알려달라는 거지? 그냥 강하게 해달라고 하면 안 돼는 것인가?" 강하게 해 달라는 것은 자신의 기운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끝날 수 있었으나, 싸우는 방법을 해 달라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것이 분명했기에 발록으로서도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에게도 엄연히 사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사흘에 한번씩, 두 시간동안 두 명과 죽기 직전까지 싸워주시면 됩니다. 기한은 1년." "흠... 그것을 해주면 나에게 뭘 해줄 수 있지?" 기간이 길긴 하지만 특별히 손해보는 것은 없었기에, 현민의 조건이 좋기만 한다면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현민은 조건을 내세우는 발록에게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돌을 꺼내 건네주었다. "뭐지?" "정령의 돌이에요." 정령의 돌 속성 : 어둠 능령 : 사용자에게 속성친화력 1을 부여한다. 설명 : 마력의 돌에 속성이 생기며 변화한 돌. 요정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간식(?) "이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소용없는것 같군." "아뇨." 발록은 현민이 건내준 돌을 다시 현민에게 돌려주려 했으나 현민은 그녀가 건내주는 돌을 받지 않았다. "제 예상이 맞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꼭 필요할 거에요. 일단, 한번 드시겠어요?" 현민의 고집 때문에 발록은 어쩔 수 없이 현민이 건내준 돌을 씹어 먹었다. 현민이 자신을 속인다 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푸핫! 쿠당탕! 발록의 몸 전체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고, 한순간 뿜어져 나온 마기의 강한 기운에 날라가버린 현민은 한참을 굴러가서 멈출 수 있었다. "호오?" 현민이 날아간 것 보다는, 자신의 몸 상태가 더욱 신기한 것인지 발록은 연신 자신의 몸을 살펴보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슈욱! "컥!" 털썩! 발록이 현민을 향해 손을 내뻗자, 발록의 손에서 나온 마기가 현민의 목을 움켜잡았고, 마족은 현민을 자신의 앞으로 끌고 왔다. "도대체 뭐지? 마기가 넘치는 군."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줄 돌입니다. 하아, 당신이 저의 부탁을 들어주시면 저희와 싸움이 끝날 때마다 하나씩 드리겠습니다." 현민의 조건에 대해서 발록은 차근차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자신에게 손해되는 것은 없었고, 자신에게 강함을 줄 수 있는 현민이 마음에 들어버린 발록은 현민의 조건을 승낙하기로 결정했다. "좋다. 너의 조건 받아들이지." 까딱까딱 현민의 조건을 승낙한 발록이 현민을 향해서 손가락을 까딱거렸고, 힘겹게 일어난 현민은 불안한 눈으로 발록의 곁에 다가갔다. 파악! "큭!" "내 흔적이다. 너의 마법진으로 내가 나올 확률이 미약하니, 너와의 계약 기간동안에는 너의 정신력을 양식으로 소환될 것이다." 현민의 목 부분에 이상한 도형을 그려준 발록은 기다란 꼬리를 흔들며 마계로 사라져 버렸고, 홀로남은 현민은 목을 부여잡으며 뒤로 넘어져 버렸다. "오빠, 괜찮아?"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오빠..." "우웅, 많이 아파?" 네 명의 정령들이 현민에게 달라붙어 그를 걱정했으나, 현민은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뿐, 그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는 않았다. "이제 하나는 끝났네." .....말까지 돌리는 것으로 보아, 넘어질 때 상당히 아팠음이 분명했다. -------------------------------------------------------------------------------- D-93일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87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운영자와 만나기로 약속된 날짜가 되었고, 현민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웃음지으며, 천천히 게임속으로 들어갔다. "오빠~." "오라버니~." "아, 안녕하세요..." "하이루~, 방가방가!" 주르륵... 언제나 반가운 묘의 부름과 애교 넘치는 윈디아의 부름, 쑥스럽게 인사하는 염화를 뒤로 하고, 어디서 배운 것인지 이상한 말을 하는 담비 때문에 현민은 첫 등장부터 불길함을 느껴야만 했다. "담비야! 너 그런 인사 누구한테 배웠어?!" "우웅, 옆집 정령이요." 화난듯이 말하는 현민의 태도에 잔뜩 기죽은 담비가 조용히 손가락을 물며 대답했고, 현민은 그런 담비의 태도에 한숨만 내쉬었다. 담비의 잘못도 아니었고, 옆집에 질 나쁜(?) 정령이 사는 것 때문이니, 불만 있으면 자신이 집을 나가야 했다. "하아....." "왜 그리 한숨쉬어요?" 흠칫! 갑작스런 목소리에 깜짝 놀란 현민이 뒤를 돌아보았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창가에 기대서서 현민이 있는 방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들어 온 거죠? 결계가 깨진것은 느끼지 못했는데." "운영자의 특권 중 하나가 이동제한 없음이거든요." ".... 그것 참 편리하군요."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운영자의 능력이었지만, 만약 그것이 현민에게 가능하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어마어마한 능력이기도 했다. 스윽... "그보다 제가 온 것은 어떻게 알았죠?" 얼굴을 최대한 가리며 서있던 현민은 인벤토리에서 마녀의 가면을 꺼내 썼다. "저번에 말했잖아요, 당신만을 감시하는 팀이 따로 있다고요." "도대체 왜 날 감시하는지 모르겠네요." "저희들의 일일 뿐이니 특별히 신경 쓸 것은 없어요. 사생활도 확실히 보장되고요. 그보다 이미 얼굴도 알고 있는데 꼭 가면을 써야하나요?" 현민의 얼굴에 쓰여진 가면이 답답해 보이는 것인지 그녀는 현민의 가면을 벗기려고 했으나 현민은 그녀의 뜻에 따르지 않았다. "일단, 여기서 나가죠. 다른 마녀들이 오기 전에요." 무언가 말하려 하는 페튜니아의 말을 끊어버린 현민은 그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날아올랐다. 마녀의 마을에 외부인이 들어온다는 것은 규칙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인과 관계가 있는 자신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담비야, 어딘지 기억해?" "응! 조기."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너무나 넓은 숲 때문에 아직도 위치를 기억하지 못하는 현민은 담비의 도움을 받아 숨겨진 동굴을 찾아갔다. 슉! "여, 여긴 어디죠?" 빠르게 내려가는 현민의 지팡이는 한참을 내려가도 멈추지 않았고, 페튜니아는 생소해 보이는 장소에 긴장하며 현민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라이트." 팟! 현민의 시동어에 동굴의 천장에 수백개는 넘어보이는 작은 구슬들이 빛을 뿜어냈고, 그 작은 구슬들은 어두운 밤하늘에 빛을 뿌리는 별들처럼 보였다. "당신이 나에게 부탁한 것이니 후회는 하지 마세요." 끄덕. 현민이 말하기 이전부터 각오를 하고 있던 페튜니아는 고개를 끄덕여 현민에게 자신의 의지를 보여줬고, 현민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발록을 소환했다. "소환." 우우우웅... 현민의 손에 적혀있던 마법진이 현민의 앞쪽에서 똑같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곳을 통해 하나의 존재가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여, 오랜만이군." "안녕하세요." "와~, 발록 언니(?)다!" "와~." 현민의 주위에 달라붙어 있던 네 명의 꼬마정령들은 발록이 등장하자 그녀에게 달라붙으며 장난쳤고, 발록언니(?)는 웃으며 그들을 안아주었다. "누구죠?" 아직은 정령들을 볼 수 없는 페튜니아이기에 그녀는 정령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또한 정령들의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물론, 정령들의 말도 계약한 정령과만 가능했지만. "발록님이세요." "!!" 현민의 한마디에, 옆에 서있던 페튜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려버린 채, 석화마법에 걸린 듯,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어, 어떻게..." "흠... 저 인간을 보니 내가 공부한 것이 확실하군. 그렇다면 네가 별종이란 얘긴가?" 발록은 반쯤 풀려있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페튜니아와 옆에서 싱글거리는 현민을 비교한 후, 스스로의 실력에 만족감을 느꼈다. -도, 도대체 어떻게 한 거에요?! 발록은 절대 소환하면 안됀다고요! 가상현실의 모든 존재들을 죽이고 싶은 거에요?!! 발록을 앞에 두고 잔뜩 긴장한 페튜니아가 고래고래 소리질렀지만 현민은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호오, 신기한 능력이군. 자신의 말을 상대의 귓가에 직접 전달하는 것인가? 하지만 너무 커서 그런지 나한테도 들리는군." "아, 저...." 페튜니아의 말에 기분이 상한듯한 발록이 약간의 살기와 함께 기운을 내뿜자 그녀는 아무런 말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벌벌 떨며 굳어버렸고, 그런 그녀를 걱정한 것인지 현민이 그녀의 앞으로 한걸음 나왔다. "발록님, 오늘도 부탁드리겠습니다." "흥! 그동안 배운 것은 있다고 이정도의 기운은 참는거냐?" 아무리 미약한 기운이었다지만 현민의 처음을 생각했을 때, 지금의 수준은 정말 많은 발전을 겪은 것 이었다. "걱정마라, 이정도의 기운은 금방 익숙해지도록 만들어 줄 테니깐. 그리고, 너보다는 저 아이가 먼저 하는 것이 나을 듯 한데, 네 생각은 어떠냐?" "흐음..." 발록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기에,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현민의 머릿속에서 페튜니아에 대한 걱정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자신과 페튜니아의 순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제가 먼저 하는게 나을 것 같네요. 처음이라 긴장했을 것 같고요." "흠... 네가 그렇다면야. 간다." 팍! 파팍! 팍! 퍽! 파팍! 퍽! 현민에게 다가간 발록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고, 현민은 그녀의 공격을 막기위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발록의 움직임은 그리 빨라 보이지 않았으나 현민의 방어를 뚫고, 현민의 몸 이곳저곳을 가격했으며, 그녀의 주먹에 맞은 현민의 얼굴과 몸은 빠르게 부어올랐다. "묘! 이리와서 치료해줘." "네~." 3분이란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현민의 얼굴과 몸이 호빵으로 변해버렸고, 발록은 쓰러져버린 현민의 앞에서 묘를 불러 치료시켰다. "새살이 쑥~쑥~." 묘의 손에서 나오는 미약한 빛이 현민의 몸에 닿으면서 현민의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현민은 익숙한 태도로 다시 자세를 잡고 발록을 향해 섰다. "간다." 퍽! 퍼퍽! 파파팍! 퍽! 현민과 발록의 싸움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들의 싸움을 보고 있는 페튜니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표정도 잠시였을 뿐, 현민이 다시 일어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그와 비례해 현민이 버티는 시간도 조금씩이지만 늘어가기 시작했다. "흠, 오늘은 그마..." 팍! 퍽! "...안 하지." 말하고 있는 틈을 타고 들어오는 현민의 주먹을 가볍게 막아버린 발록은 현민의 배에 사뿐히 발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거기 너. 그런 차림으로 할 건가? 내 생각에도 루나와 같은 차림새가 좋다고 보는데?" 현재 페튜니아의 차림새는, 이전 채리플랑과의 대결 때처럼 멋들어진 날개와 무기, 방어구를 착용한 완전 전투태세였다. 사냥할 생각만 하고 현민에게 부탁했던 것이 너무나 후회되기 시작하는 그녀였다. "후우.... 최대한 가볍게 하고 싸우세요. 처음에는 피하는 것만 생각하고 하나하나 움직임을 볼 수 있도록 하세요." "흥! 내가 해준말 그대로 하면 멋있을 줄 알아? 말 하는 존재가 멋있어야지 말도 멋있는 거라고." 자신이 현민에게 했던말을 현민이 다시 사용하자, 발록은 짐짓 삐진듯한 표정으로 땅을 툭툭 찼다. "그보다 이제는 진짜로 시작한다." 스윽.... "어?! 발록언니가 발록오빠 됐다!!" "진짜네.." "..." "와~. 변신이다." 발록의 볼록하게 솟아있던 가슴이 납작하게 변해갔고, 가냘퍼 보이던 팔에도 우락부락한 근육이 생기기 시작했다. 약간 작아보이던 키도 190cm는 될 듯이 커졌고, 풍기는 기운도 부드러운 것이 아닌, 거칠기 짝이 없는 기운이었다. "응? 발록은 양성인가요?" "하하하, 발록한테 성이란 것이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저와 있을 때의 모습은...." 현민의 말에 발록은 웃긴다는 표정으로 크게 대답해줬다. "네가 남성이니 서비스 차원에서 여성의 모습을 한 것 뿐. 마계의 종족들은 전부 성별이란 것이 정해져 있지 않다. 아니,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은 정해져 있군. 여하튼 그들을 제외한 모든 존재들의 성은 정해져 있지 않고, 소환자나 계약자가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지." 발록의 말을 듣고 있던 현민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발록의 소리는 자신이 여성의 모습을 원했다고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서비스 차원에서 소환자와 상관없이 변하는 것이지만 말야." "휴우우...." 빤히 보이는 현민의 태도에 웃음 지은 발록은 자신의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페튜니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장해, 맞으면 아프거든." 꿀꺽! 페튜니아의 목에서 침넘어가는 소리가 다시한번 크게 울렸고, 그녀는 촉촉해진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으나 현민은 매정히 그녀의 눈을 피해버렸다. "걱정마, 사람은 맞으면서 큰다잖아?"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발록의 목소리였다. -------------------------------------------------------------------------------- 위이이잉.... "어라? 팀장님 벌써 나오세요?" 또각또각.. 현민이 부탁을 받아들였을 때는 빠른 시간안에 강해질 것 같아 기분좋은 마음으로 「싸울아비」에 접속했던 페튜니아였지만 나올때의 기분은 그것이 아니었던지 얼굴 전체가 매우 차갑게 굳어있었다. "봤어요?" "네?" "화면 봤냐고요." "아, 아뇨. 사생활 보호법 때문에 위치와 접속 확인만 하고 있는데요." 너무나 차가운 팀장의 분위기에 잘못 걸리면 큰일 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남성 운영자는 최대한 자세를 낮추며 들어갔다. 까드득! 흠칫! 이빨이 갈리는 것이 아니라 깨지는 듯한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들려오면서 사무실 내의 온도가 순간적으로 2도 하락했다. 물론, 온도계가 없어서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모두들 그렇게 느꼈으니 다수결의 원칙으로 온도는 내려간 것 같기는 했다. "저, 저기.... 도대체 무슨일이." 섬뜩! 몇몇 유저들이 대형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은,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인기가 많은 팀장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예외였는지 사람들을 쳐다보는 시선에는 미약한 살기가 흐르는 듯 했다. "아무일도 없었어요." 또각또각 쾅!!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잔뜩 화가 난 팀장은, 문소리를 크게 내며 나가버렸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지?" "그러게요..." 속닥속닥 행여나 팀장이 다시 들어올까 겁이난 운영자들은 조용히 속닥거리며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의 대화는 그들이 퇴근하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 그럼 저는 가볼게요..." 발록과의 수업을 마친 페튜니아는 서둘러 사라졌고, 자리에 남은 발록과 현민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발록님... 여성이었는데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음?" 현민이 바라보기에 발록과 페튜니아의 대련은 거의 일방적인 구타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발록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맞아버린 페튜니아는 고통 때문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발록의 주먹을 전부다 몸에 허용해 버리고 말았다. "이해할 수가 없군." 스스슥. "난 너와 같은 수준으로 대련했어. 근데 그 인간에게 한 것은 심한 것인가?" 말하는 도중 남성의 모습에서 여성의 모습으로 몸을 바꾼 발록이 머리를 정리하며 현민에게 말했고, 현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만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침묵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 네 명의 정령들은 분위기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언니가 되어버린 발록을 향해서 뛰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인간들에게는 왜 그런 감정이 있는거지? '여성체이기에 보호해야 한다?' 말도 안돼는 헛소리야." 현민의 생각을 알고 있는 발록이 현민의 생각을 비웃었고, 현민은 발록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좀더 자세히 말해주었다. "모든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게 생각할거에요.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원시적으로 설명하자면 그들은 체력적으로 남성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체력 면에서 뛰어난 남성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지요. 섬세함이 부족한 남성들은 반대로 여성에게 보조받는 것이고요. '서로가 필요하기에 돕고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군요." "큭큭큭, '나에게 필요하기에 남을 돕는다'라 가장 인간적인 대답이군." 현민의 대답이 이해가 간 것인지, 아니면 비웃기 위한 것인지, 미묘한 웃음을 흘리는 발록은 현민에게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은 채, 손을 내밀고 있었다. "줘." 발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현민이 발록의 손에 작은 돌을 올려주었고, 그것을 받아든 발록은 재빨리 입에 넣은 뒤, 강해지는 자신의 힘을 음미하며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역시 좋군. 그럼 나는 이만." "히잉~. 발록 언니 가는거야? 좀더 놀아주라." "언니, 같이 놀아요." "....조금만 있다가 가세요." 마계로 돌아가는 발록을 아쉬워 한 네 명의 꼬마정령들이 발록에게 달라붙었으나 발록은 그런 네 명의 꼬마정령들을 쓰다듬어 줄 뿐, 발길을 돌려 그들과 어울려 주지는 않았다. "나중에 놀아줄테니, 건강히 지내렴." "응!" "네!!" 발록은 자신의 말에 힘차게 대답하는 네 명의 꼬마정령을 뒤로한 채, 암흑으로 되어있는 마계의 문을 열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발록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네 명의 꼬마정령들은 발록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현민에게 돌아와 찰싹 달라붙었다. "헤헤. 오빠 놀아줘." "오라버니~." "..." "오빵." "하아..." 도대체 빛 계열에 속하는 정령이란 존재가 어째서 어둠계열의 마족인 발록을 좋아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현민은, 발록이 사라지고 나서야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네 명의 꼬마정령들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돌아가자. 린이 하고 있는 일을 전부 끝내야지?" "우웅...." 네 명의 정령들은 더욱 놀고 싶었으나 현민에게는 아직도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더 이상 현민에게 보챌 수가 없었다. 현민과 노는 것이 두 번째로 좋기는 하지만 현민을 제외하고도 마녀의 마을에는 수많은 그들의 친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민은 자신보다 발록을 좋아하는 정령들 때문에 삐진 게 아니.....일 것이다. 달칵. "다녀왔어~." "으응.... 어서와." 현민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것은 피곤에 지쳐있는 린이었다. 노동 아닌 노동을 하고 있는 린은 피곤한 얼굴로 탁자에 볼을 붙인 채, 현민을 바라보기만 하였고, 현민은 자신을 위해서 도와주는 린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마지막은 내가 할테니 조금이라도 쉬고 있어." "으응...." 새근새근... 많이 피곤했던 모양인지 현민과 대화를 끝내자마자 린의 숨소리가 고르게 바뀌었고, 현민은 그녀에게 자신의 로브를 덮어준 뒤, 서둘러 마지막 작업을 시작했다. 현민의 앞에 있는 뼈 모양의 금속에는 현민이 원했던 마법진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하나로 되었으되 아직은 이어지지 않은 존재들이여, 나의 마나를 힘으로 삼아, 나의 정신력을 양식으로 삼아, 지금 이 자리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라." 주르륵...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그대와 그대를 연결하는 존재를 받아들여, 하나로 이루어져 새롭게 탄생하라!" 두개골 모양의 작은 구체에 왼손을 얹은 현민은 조용히 주문을 외웠고, 현민의 오른팔에서 피가 흘러나오며, 뼈 모양의 금속 밑에 마법진을 이뤄가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χ%26#971:κκητ%26#980:%26#978:%26#994:%26#999:%26#988:%26#984098:Ξ%26#939:ΘΦζθ." 마녀의 스킬이 발동되기 시작하면서 현민의 입은 스스로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 그의 입에서는 그 자신조차 모르는 이상한 언어가 흘러나왔고, 그의 몸도 통제에서 벗어나 이상한 도형을 그리고 있었다. "%26#997:%26#980:φχκΚΥε..... Φμνξπ%26#979:%26#1003:%26#1006:%26#1007:!!" 팟!!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206개의 조각에서 동시에 작은 빛이 깜빡였고, 현민은 자신의 마법이 성공했다는 것을 느낌상으로 알 수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아무런 연결도 되어있지 않았지만, 현민이 두개골을 들어 올리는 순간, 척추에서 시작하여 발가락뼈 하나까지 전부 들어 올려지며 하나의 뼈다귀를 이루었다. "하아... 정말 손이 많이 간다니깐." 정말 후회가 되긴 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어떠한 존재들과 싸울지도 몰랐기에 그로서는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했다. "음.... 어디보자. 일단 눈은 비홀더의 눈에 마법을 걸어서 석화를 제거해 버리고, 매혹을 쓸까? 음.... 좋아 투명마법을 넣어두고, 디텍트 마나에, 호크아이(hawk-eyed)를 넣으면? 음..." 일반적인 눈알을 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라면 상당히 괴기스런 분위기가 연출되었을 테지만, 비홀더의 눈이란 것이 단순히 돌맹이처럼 생겼기 때문에 모두가 상상하는 그런 멋진(?) 장면은 연출되지가 않았다. "좋아! 이정도면 눈으로 완벽하고, 근육은 트롤 50%, 오우거 50%......" 탁자 위에는 하나의 해골이 놓여 있고, 탁자의 주변으로 수많은 견본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었으며, 이상한 색깔과 냄새의 약품들이 뽀글뽀글 끓고 있는 현민의 작업대는 정말로 동화속에 나오는 마녀의 그것과 똑같아 있었다. -------------------------------------------------------------------------------- "으음...." 귓가를 자극하는 이상한 소리와, 코끝에 느껴지는 역한 냄새를 느낀 린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눈을 떴다. "쿡쿡쿡쿡." 흠칫!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린은 현민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어깨를 들썩이며 낮은 웃음을 흘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추렸다. "뭐, 뭐야?" "응?" 린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녀가 일어난 것을 눈치 챈 현민이 뒤를 돌아보았고, 현민의 얼굴을 본 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로 물러나버렸다. "왜, 왜 그래?" "리인~." "으, 응..." 주춤주춤. 현민이 한 마리의 좀비같이 걸어오자, 린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고, 현민은 한걸음 더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왔다. 덮썩! 꿀꺽! 현민이 어깨를 붙들자 잔뜩 긴장한 린은 침을 삼켰고, 현민은 서서히 그녀와 눈을 마주해 갔다.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고, 그들은 이상한 분위기(?)에 빠져 서로의 눈만을 바라보았다. 가까이에서 현민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린은 분위기 때문인지 현민의 눈이 촉촉하게 빛난다고 생각했다. ".....실패했어." "응?" "우윽..." 린의 생각은 착각이 아니었다. 실패한 것이 억울한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의 노력이 아까웠던 것인지 현민의 눈은 정말 촉촉하게 젖어있었고, 울먹울먹 거리는 것을 보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하아, 뭐가 실패했는데?" 현민을 자리에 앉힌 린은 맞은편에 앉아 현민을 바라보았고, 현민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뼈 위에 일반적으로 신체를 구성하는 조직들을 덮어주고, 모든 신체 기관을 대신할 문장들을 넣어준 다음에 마법적인 연결로 일체화를 시키려 했는데, 서로 어울리지가 않는지 마법이 실현되지가 않아." "하아...." 그제서야 현민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던 린은, 일단 한숨부터 내쉬었다. "루나야." "응?" "우리가 흑마법사니? 아니면 네크로맨서? 우리는 마녀야. 우리의 한계는 본질을 속이는 것이지, 새롭게 짜깁기를 한다거나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니야. 어엿한 마녀인줄 알았는데 마녀의 능력이 뭔지도 몰랐어?" "아....!!" 린의 말을 듣고서야 현민은 그동안 자신이 했던 마법진들이 전부 본질을 속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본질을 속이고, 정해진 것을 속이기 때문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마법진들이 존재했던 것이었다. "그럼 이제 어쩌지?" "어쩌긴? 포기하는 거지." "으응...." 정말로 아깝긴 했지만 현민이 생각했던 것을 실현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노력은 백지로 돌아가 버렸다. 달그락달그락 두개골을 잡은 채, 이리저리 흔들던 현민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 너무나 아까워 버릴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걸 어디..... 아?!" 이리저리 흔들던 뼈다귀에서 무언가 생각이 난 것인지 현민은 다급히 자신의 인벤토리를 살펴보았고, 한쪽 구석에서 하나의 책을 꺼내들었다. -인형술의 모든 것. 현민이 들고 있는 하나의 스킬북은, 아직까지도 유용히 쓰고 있는 현민의 가면을 살 때, 그곳의 할머니가 주셨던 책이었다. "하하하! 이것이라면...." 우연히 얻은 것으로 한줄기의 희망을 발견한 현민은 광소를 터트렸고, 멀리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린은 현민의 광적인 행동에 안쓰러움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그녀의 눈빛은 절대로 정상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D-92 현민에 의해 거대한 동굴에 소환된 발록은 자신의 눈을 피하는 페튜니아와 이상한 책을 바라보며 손을 움직이는 현민을 보고,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 오늘은 누가 먼저 할 거지?" 스윽. 발록의 말에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가르켰고, 발록의 얼굴은 짜증스럽게 바뀌었다. "어서하지 못하겠느냐!!" 후우웅!! "꺄아악!" 그들의 행동에 화가난 발록은 한순간 자신의 기운을 방출했고, 갑자기 느껴지는 압력과 공기의 흐름에 놀란 페튜니아는 주저앉아 버렸다. "오늘은 너 부터 하지." 발록은 남성의 모습으로 바꾼 채, 페튜니아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고, 그녀는 죽으러 가는 것처럼 축 처진 모습으로 힘겹게 발을 옮겨나갔다. "루나 저것이 어디에 정신 팔렸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루나도 저 모양이고 하니. 자세히 가르쳐 주겠다." 현민이란 존재가 발록인 자신의 기운에 버티면서 책을 읽자, 자신이 많이 물러졌다고 생각한 발록은 페튜니아를 시작으로 현민을 확실히 굴려버리기로 다짐했다. "싸움의 시작은 보고 느끼는 것이다." 삭! 발록의 주먹이 페튜니아를 얼굴을 향해 뻗어났고, 순간 움찔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피했다. "그래, 이번의 주먹은 네가 볼 수 있었기에 피한 것이지. 내 눈을 똑바로 봐라." 퍽! "꺄악!" 발록의 말에 따라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던 페튜니아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볼에 무언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이 발록의 주먹이라는 것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의 너는 거의 모든 것을 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사각에서 나온 내 주먹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맞아버린 거다. 알겠나?" 끄덕 발록은 고개를 끄덕이는 페튜니아를 바로 세워졌고, 다음 강의(?)를 계속했다. "천천히 할 테니, 일단은 빠짐없이 봐라. 그리고 나서 몸을 움직여라. 도중에 무언가를 느낀다면 바로 피해버려라." 그녀의 앞에 서있던 발록은 그녀를 향해서 천천히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싸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발록이기에 그의 주먹은 거의가 직선을 이루며 페튜니아의 얼굴쪽을 향했다. 스윽, 슥, 스윽.... 퍽! "꺄악!" 일반적인 속도로 위험되지 않는 주먹이 다가와서인지 한동안 잘 피하고 있던 페튜니아는 밑에서 올라오는 갑작스런 충격에 비명을 지르며 넘어져 버렸다. "맞을 때마다 비명을 지를 생각이냐? 비명도 참아라. 그리고 팔만 보지말고 내 모든 것을 똑바로 보고 느껴라!" 페튜니아는 다시 일어났고, 발록은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이전과 달리 예전의 속도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며, 위력 또한 어제와 마찬가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크윽! 컥!" 무참히 쏟아지는 발록의 주먹 속에서, 페튜니아는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피하려 노력했고, 가끔가다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실력인지 한 대 정도는 비켜 맞았다. 퍽! 퍼퍼퍽! 퍽! 퍼퍽! 페튜니아를 향한 그의 구타는 2시간동안 계속되었고, 2시간이 지난 후, 페튜니아는 도저히 사람이라 생각할 수 없는 괴상한 생명체가 되어버렸다. "묘, 치료해 줘." "응!" 페튜니아의 손을 붙잡고 질질 끌기 시작한 묘는 동굴의 한쪽으로 사라져버렸고, 발록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현민을 바라보았다. -------------------------------------------------------------------------------- "빨리 안 할 거야?" "하아..." 스윽. 페튜니아가 발록에게 열심히 맞는 동안 책의 내용에 빠져있던 현민은 자신을 재촉하는 발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보아온 그녀의 성격상 자신이 더 이상 버틴다면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기 때문이었다. "자~, 가볍게 한방!" 팍! "역시!" 현민에게 다가간 발록이 권투선수 주먹의 빠르기로 현민을 쳤다. 권투선수의 주먹 속도가 2m/s정도 되었지만, 발록의 몸 전체에 집중을 하고 있던 현민은 발록의 첫 번째 주먹을 의외로 쉽게 막아버렸다. "자, 계속 간다!!" 파파팍! 퍽! 퍼퍽! 팍! 퍼퍼퍽! 퍽! 팍! 퍼퍽!......... 혼자서 신이 난 발록은 현민의 몸 이곳저곳에 주먹을 꽂아 넣었고, 너무나 빠른 주먹이 쉴 새없이 날아오자 현민은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전부 맞아버렸다. 물론, 가끔가다가는 막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였지만, 막거나 피하는 것 보다는 맞는 것이 훨씬 많았다. 털썩! "묘~, 치료해." "네에~." 어둠을 뚫고, 달려온 묘가 쓰러져버린 현민을 치료했고, 찐빵처럼 부어있던 현민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가자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또 해야지?" 현민의 빠른 성장에 재미를 느낀 것인지, 아니면 현민을 때리는 것에 재미를 느낀 것인지, 발록은 평소와 다르게 싱글싱글 거리며 현민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잘 막아봐." 팍! 팍! 퍽! 파팍! 퍽! 현민과 한걸음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서있던 발록이 빠르게 주먹을 휘둘렀고, 현민은 그녀의 몸과 팔을 바라보며, 그녀의 주먹을 피하려 노력했다. "상대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올 때는 절대 눈을 맞지 않도록 해." 퍽! "크윽!!" 발록이 하는 말에 귀를 귀울였을 때, 현민은 이미 그녀의 주먹에 한쪽 눈을 얻어맞은 후였다. "사람이란 존재는 거의 모든 것을 눈에 의지하기 때문에 한순간이라도 눈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으면 당황하게 되지. 그리고 당황하는 것은 지금처럼 일방적인 구타가 될 수도 있으니 참고하고." 퍼퍼퍽! 퍽! 퍼퍼퍼퍼퍽! 발록의 말처럼 그녀의 주먹에 눈을 얻어맞는 순간, 현민은 무언가 반짝였다고 느끼면서 한순간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현민은 자신의 눈이 안보이자 당황했고, 멀쩡한 눈으로 발록을 바라보려 했으나 하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현민의 거리감각을 마비시켰고, 시야의 사각지대를 넓게 만들었다. "그렇지, 상대의 주먹으로 눈이 안보일 때는 뒤로 물러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야." 발록의 주먹을 참지 못한 현민이 사정거리를 피해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발록은 쉽사리 현민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는 것은 나에게 힘들고 상대에게 편한 방향이니 절대 그렇게 하면 안돼." 퍽! 퍼퍼퍽! 퍽! 현민의 시야가 회복되기 전까지, 현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발록의 주먹을 맞아야만 했다. "그러니깐 네 눈이 보이지 않을 때는, 뒤로 물러나기보다, 얼굴을 가리고 상대 쪽으로 강하게 밀어버리는 게 나은 거야." 팟! 퍽! "크억!" 발록의 말대로 실천한 현민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으나, 발록은 이미 옆으로 비킨 뒤였다. 옆으로 비켜선 발록의 시야에 텅 비어있는 현민의 옆구리가 보였고, 발록은 주저없이 자신의 주먹을 그의 옆구리에 박아버렸다. "방금 같은 경우는 오히려 선택을 잘못한 거야. 조금 전과 같이 네가 나한테 맞았을 때는 우리 둘의 거리가 좁았지만, 네가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 지금에서는 우리 둘 사이에 거리가 꽤 있거든? 그것이 아주 미약한 거리일지 몰라도 그 정도의 거리면 이미 상대방은 충분히 피할 정도일거야." 발록은 현민의 행동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었지만 그녀의 주먹을 맞으면서 들어야 하는 현민은 쉽사리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그러니깐 결론은!" 퍽! 파팍! 퍽! 안 보이는 두 눈을 부릅뜨고, 발록을 바라본 현민은 간간히 한두대를 막기 시작했으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맞으면서 배워야 한다는 것!" 퍼퍽! 퍽! 퍼퍼퍽! 발록의 주먹은 다시 현민의 몸에 박히기 시작했고, 그들의 싸움(?)은 예정된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털썩! "하아~." 예정된 2시간이 경과하면서 더 이상 서있을 힘이 없어진 현민은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었고, 발록은 상쾌하단 얼굴로 기지개를 폈다. "묘, 이리와서 루나 치료하고 잠깐 놀까?" "와~~!!!" 놀아준다는 발록의 말에 신이 난 네 명의 꼬마정령들이 발록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고, 발록은 밝은 얼굴로 네 명의 정령들을 안아주었다. "자, 어서 치료하고 놀러가자." 엄연히 소환체인 발록이었지만 높은 서열을 가지고 있었기에, 계약같은 것에 묶이는 존재는 아니었다. "가요!" 기쁜마음으로 현민을 치료해버린 묘가 발록의 품으로 안겨들어갔고, 발록은 네 명의 꼬마정령들을 대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하아..." "괜찮은가요?" 자신도 맞아봤기에, 페튜니아는 현민이 겪은 고통이 어떤것인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강해질 수 있어요?" "네, 그 누구보다도." 다짐하듯 말하는 현민의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엇고, 현민의 말을 듣고 있는 페튜니아의 두 눈에는 믿음이 떠올라 있었다. "근데, 스텟은 봉인 했나요?" "네?" "싸울아비는 다 좋은데, 스텟으로 인한 능력의 증가가 너무 크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스텟을 봉인하고 현실의 능력만 가진 채 즐기고 있답니다." 현민의 말을 들은 페튜니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레벨이 몇이에요?" "87이요." "혹시, 어떤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찾아오지는 않았나요? 싸우는 법이나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서...." 페튜니아의 말을 듣고 있던 현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직껏 방에 처박혀 마법을 익혀서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찾아온 존재가 있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상하다. 시스템에 문제는 없었을텐데." 현민의 부정에 고개를 갸웃거린 페튜니아는 연신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는데요?" "아, 그게...." 말하기가 곤란한 것인지 페튜니아의 말이 잠시 끊어졌으나, 결심을 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싸울아비란 특수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첫 번째가 스텟을 봉인할 것이고, 두 번째가 스텟을 봉인한 채 레벨 50을 만드는 것이에요. 최초의 싸울아비라는 여성유저도 초반에 저희들에게 부탁해서 스탯을 봉인 받았고, 그 상태로 사냥을 하면서 50을 만들었거든요." "그게 가능해요?" 예전의 몹 수준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길 수 있었지만, 상대가 남성도 아니고 여고생인 것을 생각했을 때 그것을 이루는 것은 상당히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유저가 현실에서 검도를 배웠나 보더라고요. 싸울아비란 게임 자체가 현실의 능력을 거의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게임이니 현실에서 검도를 배웠다고 한다면 그 정도야 어려운 것도 아니었겠죠." 현실의 본 능력을 그대로 가져오는 싸울아비의 시스템 때문에 현실에서의 실력자는 초반에 상당한 이득을 얻는 경우가 있었다. 칼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일반인과는 다르게 전문적으로 배운 실력자들은 자신의 특성을 살려 사냥에 임했고, 그것이 그들의 성장을 빠르게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좋은 것 알았네요." "아, 이것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요. 게임의 밸런스 때문에 함부로 말할 만한 것이 안 되거든요." 그녀의 사정을 알고 있는 현민이기에 자신이 들은 내용을 함부로 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연하죠. 누구 좋으라고 그것을 말하겠어요? 나한테 뭔가 이득이 있다면 모르지만 나에게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만 좋은 것이니,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는 현민의 말에 기분이 좋아야만 하는 페튜니아였으나, 그녀의 속마음은 왠지 모르게 답답했다. "왠지.... 상당히 인간적인 말이네요." "예?" 단 이틀이었으나 발록에게 맞으면서 설교를 들은 페튜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발록의 사상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 D-50 팍! 파파팍! 팍! 파팍! 퍽! 현실로 43일. 게임속의 시간으로 172일이 지난 지금, 페튜니아는 발록과의 싸움에서 거의 모든 주먹을 막아내는 실력으로 발전했다. 아직까지도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는 했지만 정신없이 얻어맞기만 하던 예전에 비하면 정말로 많은 발전이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거의 모든 것을 막는건가?" "하아, 하아, 하아..." 너무나 빠른 주먹을 막는 다는 것은 때리는 것 이상으로 상당한 체력이 필요한 것이기에 페튜니아는, 호흡조절과 방어 외의 것은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루나의 2배를 하고서야 비슷한 수준이라니.... 너도 참 재능이 없는 인간이군." "하아, 하아... 그, 그는 남자잖아요. 후우우웁! 하아아아...." 현실에서의 생활이 있는 현민은 게임속에서 이틀이란 시간밖에 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게임 자체가 직업인 페튜니아는 언제나 접속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별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현민이 싸움에 재능이 있었던 것인지 그들의 실력은 좀처럼 줄어들지가 않았고, 지금에서야 겨우 비슷하게 올라온 것이었다. "인간은 이해 할 수가 없군.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지? 여성체도 남성체 못지 않게 상당한 근육을 가지고 있고, 유연함과..."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으니 조금만 한다면 너는 충분히 그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맞군." 발록의 말을 중간에 짤라버린 페튜니아가 그의 말을 이어했고,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발록은 그녀의 말이 자신의 생각과 같은 것을 비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 노력하는 것이고요." "루나! 페튜니아와의 싸움도 끝났다." 더 이상 들을 도 없다는 듯이 몸을 돌린 발록은,한 쪽 구석에서 인형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현민을 불렀다. 여가의 시간을 활용하여 틈틈이 인형술을 익힌 현민은 이제야 어느정도 인형을 움직일 수 있었고, 지금도 그런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묘, 페튜니아 치료한 후, 나가서 놀까?" "와~." 많이 지쳐있는 페튜니아가 현민과 공정한 대결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발록은 그들이 마음껏 싸울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발록의 배려로 어느정도 거리를 잡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의 자세를 잡았다. "오늘은 봐주지 않을거에요." 스윽... 페튜니아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왼발을 뒤로 하여 언제든지 달려나갈 수 있게 발을 일(1)자로 만들었다. 오른팔은 가슴쪽으로 당겨 언제든 때릴 수 있도록 주먹을 쥐고 있었고, 왼팔은 오른팔보다 앞쪽으로 나가 방어에 손바닥을 보이며 방어를 신경쓰고 있었다. "저도." 스윽... 페튜니아가 자세를 잡아가자, 그녀를 마주하고 있던 현민도 그동안 몸에 베인 자신의 자세를 만들었다. 어깨정도 벌어진 현민의 양 발은 언뜻 보면 일(一)자로 보였으나 오른발보다는 왼발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두 팔 역시, 자연스럽게 있는 듯 했으나 왼손은 주먹을 쥐고 있었고, 오른손은 펼쳐진 상태로, 방어에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팟!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현민은 자신의 자리에서 움직임이 없었고, 페튜니아가 먼저 현민을 향해 달려나갔다. 팍! 가까이 다가온 페튜니아가 현민을 가격하기 위해 주먹진 오른손을 빠르게 뻗어나갔고, 현민은 내려가 있던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그녀의 팔을 쳤다. 현민의 손에 의해 그녀의 오른팔은 바깥쪽으로 흘러갔고, 그녀는 현민의 오른팔이 사선을 이루어 빈틈을 만들고 있는 사이에 왼팔로 현민을 가격하려 했다. 툭! 하지만 현민은 내려가 있던 오른팔의 팔꿈치를 위로 올리며 페튜니아의 주먹을 위로 흘려보냈고, 양팔이 벌어진 채 가슴을 훤히 보여주는 페튜니아에게 왼팔을 빠르게 뻗었다. "흡!" 빠르게 다가온 현민의 손이 그녀의 가슴에 닿을려는 찰나, 현민의 공격으로 탄력을 받은 그녀가 허리를 유연하게 꺾으면서 몸을 사선으로 회전시켰다. 팟! 돌아가는 몸을 따라 움직인 그녀의 발이 현민의 턱을 노리면서 날아올랐고, 현민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자세를 낮추었다. 현민을 향한 페튜니아의 공격이 실패하면서, 그녀는 마치 사선으로 덤블링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악..... 그녀의 발이 땅으로 닿기 직전, 몸을 낮춘 현민이 발로 원을 그리며 페튜니아의 팔을 공격했으나, 현민의 행동보다는 그녀의 몸동작이 좀 더 빨랐는지 그녀는 현민의 발에 닿지 않은 채 몸을 세울 수 있었다. 팟! 퍽! 퍼퍽! 퍼퍼퍽! 몸을 일으킨 페튜니아는 다시한번 현민을 향해 돌진했고, 이번에는 손이 아니라 발을 사용해 공격을 했다. 발은 손보다 긴 거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현민은 가까이 접근하지 못한 채 그녀의 공격만 막아냈다. 왠만한 발이라면 잡아버림 그만이었지만 페튜니아의 발은, 허리의 유연함 때문인지 상당히 빠르게 날아와 상대를 가격한 후, 부드럽게 뒤로 빠지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퍽! 팍! 파팍! 퍽! 하지만 공격을 하고 있는 다리도 페튜니아의 신체였기 때문에 현민은 빠르게 다가오는 그녀의 발에 직접 공격을 가하려 했다. 빠르게 올라온 그녀의 발이 현민의 옆구리에 박히려는 순간, 재빨리 몸을 비튼 현민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발에 주먹을 꽂아넣었고, 그의 타격이 유효했던지 한순간 자세가 무너져버린 페튜니아는 아주 조금이지만 상체가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슈악! 팍!! 페튜니아의 발을 때리고 난 직 후, 몸을 반 바퀴 돌린 현민이 왼쪽 손등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격하려 했다. 하지만 현민의 의도를 알아차린 페튜니아가 왼팔을 들어 현민의 팔을 막았고, 오른손으로 현민의 목을 잡아버린 페튜니아는 현민의 목을 잡은 채, 보폭을 크게 하여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윽!" 목을 조이는 그녀의 손길과 상체가 뒤로 젖혀지면서 중심을 잃어버린 현민은 신음을 내뱉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페튜니아는 왼손으로 현민의 귀 부분을 타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왼손보다 빠르게 움직인 그의 머리가 그녀의 얼굴을 정확히 때렸고, 턱에서 느껴지는 강한 고통을 참지 못한 페튜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현민의 목을 잡고 있던 팔을 풀어버렸다. "위험했네요." "크윽.... 여자를 그렇게 때리는 게 어딨어요?" 현민의 머리에 턱을 맞은 덕택인지 페튜니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연신 비틀거렸다. "그만큼 위험했어요." "흥!" 대화를 하는 동안 정상으로 돌아온 페튜니아는 현민을 쏘아보았고, 현민은 그녀의 얼굴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동안 일어난 그들의 싸움이었지만, 그들의 싸움은 그 어떤 영화에서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멋있었고, 영화보다 더욱 영화같았다. "이제 정말로 가요!" 현민에게 가까이 다가간 페튜니아가 현민을 향해 양 주먹을 내뻗기 시작했고, 현민도 그런 그녀의 주먹을 막으면서 간간히 공격했다. 그들의 두 팔은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짜여진 연극처럼 딱딱 들어맞았다. 퍼퍼퍽! 퍽! 퍼퍽!! 퍼퍼퍼퍼퍽! "후우, 후우, 후우...." "하아, 하아, 하아...." 탁! 퍽!! 그녀의 주먹이 멀리 벗어나는 사이, 그 잠깐의 빈틈을 놓치지 않은 현민은 다가오는 그녀의 또 다른 주먹을 피해 자세를 낮추었고,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녀의 배를 향해 왼손으로 강하게 밀어쳤다. "커억!" 현민의 손바닥이 정확히 박혀 들어갔기에, 그녀는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으로 인해 한순간 호흡이 멈춰버렸다. "후우우우우...." "하아, 하아, 하아....." 잠시 시간이 지나서야 고통을 이겨낸 페튜니아가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들어올렸고, 현민은 그런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오늘도 졌네요." "상당히 힘들었어요." 두 사람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졌어 있었고, 머리카락에서는 뭉쳐진 땀방울들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인사를 하며 또 다른 하루를 끝마쳤다. "근데, 루나씨." "?" "제가 정말 강해지고 있기는 하는건가요? 다른 유저들과 비교했을 때, 스탯에 대한 차이 때문에 별로 강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서요..." 이미 50일 정도나 지났지만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발록의 능력도 그저 뛰어난 인간의 능력정도이기 때문에 고레벨의 유저에게 통할지가 의심됐다. "이리 와봐요." 페튜니아의 말을 듣고 있던 현민은 그녀를 자신의 앞으로 불렀고, 그녀가 다가오자 마법으로 그녀의 땀을 말려주었다. "혹시 가위바위보 잘하세요?" "예?" "자, 가위바위.." 현민의 말에 페튜니아가 의문 섞인 대답을 했지만 현민은 말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페튜니아는 그런 현민의 페이스에 따라가 자신도 가위바위보를 하기위해 손을 내밀었다. "...보!" 움찔! 위로 약간 들려졌던 현민의 손이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할 때, 현민의 손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핀 페튜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동작을 따라해 버렸고, 두 사람의 대결은 비겨버렸다. "가위... 바위... 보!" 움찔! 계속해서 이어지는 현민의 도전에 페튜니아는 다시한번 현민의 손동작을 따라해버렸고, 점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자, 어때요?" "네?" 한동안 계속된 가위바위보 속에서 현민은 손만을 바라보며 다음에 낼 동작을 읽고 있던 페튜니아는, 너무나 집중하고 있었던 덕분에 현민을 말을 듣지 못하고, 현민에게 다시한번 물어보았다. "어떠세요? 적어도 가위바위보에는 강해졌죠?" "예?" "푸훗, 농담이니 그렇게 놀라지 마세요. 제가 하려는 말은 제 손을 보고 반응하는 것을 말하는 거에요." "아!" 정말 단순한 것일 수도 있지만 짧은 거리에 일어나는 손의 변화를 읽는 다는 것은 왠만한 것은 거의 볼 수 있다는 얘기였고, 그것은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공격을 피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 "앞으로는 좀 더 느낄 수 있도록 말해드릴게요." 흠칫! 현민의 말 속에 담겨있는 뜻을 눈치 챈 것인지 아니면 동굴 속이기에 한기를 느낀 것인지, 페튜니아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며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꼈다. "일찍 들어가보세요." "네."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났는지를 알고있는 현민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페튜니아를 먼저 보냈다. 그녀의 직업이 운영자라고는 하지만 그녀에게도 일은 있을 것이고, 이렇게 놀고 있는 것이 다른사람에게는 좋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뒤에 뵈요." "네." 페튜니아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질때까지 인사를 한 현민은 그녀가 사라지자 뒤로 돌아서며 한쪽을 바라보았다. "호오, 이제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건가?" "그녀 스스로가 자각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녀는 상당히 강해졌어요." "호호, 난 너를 말하는 거다." 강해진 존재가 자신이라는 말에 현민은 쉽게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녀의 실력이 향상됐다면 몰라도 자신의 실력은 아주 조금씩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이정도의 거리에서 소리 없이 접근했는데, 그것을 눈치 채고 뒤를 돌아봤으니 너 또한 상당 강해진거다." 그녀의 말대로 발록의 발걸음은 특수한 마법이라도 사용하는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더욱이 그녀 스스로가 기척을 낼 경우를 재외하고는 그녀의 몸에서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으니 발록의 말대로 현민역시 상당히 강해진 것이 분명했다. "우리 이쁜이 상이라도 줘야하나?" 현민에게 가까이 다가간 발록은 현민의 두 불을 잡고 이마를 마주하며 도리도리 했다. "인간들은 이런것을 가족하고만 해요." 발록의 품에서 벗어난 현민이 붉어진 얼굴을 식히며 말했으나, 발록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왜? 이성에 대해 끌리는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짐승도 마찬가지거늘. 게다가 지금의 난 여성체잖아? 인간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아름다운." 발록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여성체를 하고 있는 발록은 탐스럽고 기다란 금발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있었고, 붉은 색의 두 눈동자는 마치 보석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으며, 촉촉이 젖어있는 입술은 다른 사람에게 뺏기기 싫은 욕심을 만들어냈다. 예쁘게 올라온 코도 눈, 입과 조화를 이루며 그녀의 알굴을 더욱 보기좋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게다가 몸도 나이스하고." 너무 마른것도 아니고 통통한 것도 아닌 발록의 몸은 사람의 눈을 기분 좋게 했고, 봉긋이 올라와 있는 가슴은 다시한번 눈이 가도록 하고 있었다. 가냘파 보이는 허리는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만들었다. "결론은 내가 이렇게 하면 남성체인 너는 상당히 좋아해야만 한다는 거지."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남성에 해당하는 것이지, 여성에게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 현민에게까지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저는 별로." "본능에 충실해봐. 내가 이러면 기분좋지 않아?" 팟! 현민을 잡아당긴 발록이 그를 자신의 품에 안으려 했으나 그녀보다 빠르게 움직인 현민이, 그녀의 품을 벗어나 뒤로 물러났다. "풋! 난 네가 그래서 좋아. 보통의 인간들과 틀린점이 말야. 크큭" 발록의 발이 현민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현민은 자신을 따라붙는 발록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발록의 손이 그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팔을 돌린 현민이 반대로 발록의 손을 붙잡았고, 빠르게 안으로 파고들며 그녀를 업어치려 했다. 툭! "큭!!" 하지만 싸움에 있어서는 현민보다 몇 수 위인 발록이 현민의 무릎 뒤쪽을 건드렸고, 지탱하는 중심을 잃어버린 현민은 그 상태 그대로 발록의 품에 안겨 버렸다. "우아아앗!! 오빠가 안았다." "아아, 오라버니가 저렇게 적극적이였을 줄은.... 앞으로 분발하겠어요." "헤에~, 푹신한게 기분 좋겠다." "....변태." 엄연히 말하자면 현민이 안은것이 아니라 발록에게 안긴것이었지만, 꼬마정령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그것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발록이 가만히 있고, 현민이 안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때, 기분좋아?" "글쎄요...." "응?" 상당히 날뛸 것이라 생각한 현민은,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자신의 품에 안겨 가만히 있었다. "이래도? 이래도?" 부비부비. 품에 안긴 현민의 볼에 자신의 볼을 가져간 발록이 정겹게(?) 비벼댔으나 현민에게서는 그녀가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뭐야, 재미없게." 털썩!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현민 때문에 재미가 없어진 발록은 그를 안은 그 자세 그대로 넘어져 바닥에 몸을 눕혔고, 현민은 자신을 붙잡는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얌전히 누워있었다. "하아..." 움찔. "응?" 발록이 한숨을 내쉬는 아주 잠깐의 시간에,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현민이 미약한 반응을 보였고, 발록은 현민의 그런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하아..." "...." 자신의 호흡 때문에 움찔한 것으로 느낀 발록이 다시한번 숨을 내뱉었지만 현민의 몸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발록은 자신의 예상과 다른 현민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한 후에 다시한번 도전(?)했다. 움찔! "놔, 놔줘요!" 움찔! 움찔! 자신이 기척을 흘리는 순간 현민의 몸은 도마 위의 생선처럼 팔딱거렸고, 발록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에 기분좋은 미소를 흘렸다. "히히히..." ..... "너 상당히 민감하다? 나한테 기척이 없으면 눈에 보여도 여성체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 '내, 냄새가!' 발록은 자신의 기척으로 반응한다 생각했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는 것이었다. 처음 발록의 품에 안겼을 때, 기척을 숨기고 있는 발록에게서는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았으나, 기척을 들어낸 발록에게서는 지혜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그런 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바둥바둥 발록의 품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현민이었으나 발록은 그를 절대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자, 누나 볼에 뽀뽀하면 놓아줄게." "고, 공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현민의 몸을 강제로 돌려버린 발록이 현민을 바라보며 자신의 볼을 들이밀었고,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는 발록의 상태에 현민은 재빨리 마법을 시전하였다. "어~~서~~" "나, 나 여기서 허락을 받아," 자꾸만 자리를 피하려는 현민의 머리를 잡아버린 발록이 강제로 그의 얼굴을 자신의 볼쪽으로 가져왔고, 현민도 두 손으로 땅을 짚어 자신의 얼굴이 발록에 가까이 가는 것을 막았다.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겠노라. 블링크!!" 팟! 현민의 마법이 완성되면서 그는 발록에게서 멀리 떨어진 장소로 이동되었고, 발록은 그런 현민을 재밌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호호호, 이런 재미로 악마들이 인간을 놀리는 것인가? 상당히 재미있군, 오랜만에 웃었어." 초반에는 상당한 무게를 보이며 분위기를 잡아가던 발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인지, 아니면 정령들과 어울려서 인지, 현재의 그녀는 상당히 변해 있었다. "적당히 놀았으니 그만 가봐야겠군. 줘." 자리에서 일어나 흙먼지를 털은 발록이, 현민을 향해서 손을 내밀었고, 발록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 현민은 그녀의 손에 정령의돌을 올려주었다. 팟! 쪽! 현민의 팔을 붙잡은 발록이 기습적으로 현민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너무 귀여워서 주는 선물이니깐 절대 씻지마라." 말을 마친 발록은 이상한 표정을 지은 현민을 놔둔 채, 정령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마계로 돌아가 버렸다. "오빠, 이제 가자." "오라버니?" "오빠앙~." "...오빠?" 발록에게 귀엽다는 소리와 함께 뽀뽀까지 받았으니 만약 이것을 운영자들이 보았다면 그들은 너무나 놀란 표정으로 숨을 쉬지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사정이었고, 발록에게 직접 그 말을 전해들은 현민은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 심각히 고민하고 있었다. "....난 사악한 사람들의 이상형인가?" 마계의 발록도 그렇고, 현실세계의 지혜도 그렇고, 자신을 좋아하는 존재들은 전부다 사악한 존재인 것 같았다. -------------------------------------------------------------------------------- D-49 "하아, 하아, 하아." "오늘은 여기까지." "가, 감사, 하아, 합니다... 하아, 하아..."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발록에게 전신마사지(?)를 받은 페튜니아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듯,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룰루루~." 발록이 부르기도 전에 스스로 나타난 묘는 익숙한 모습으로 페튜니아의 발을 잡아 끌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봐, 루나." "네?" 전날과 마찬가지로 인형술이 담겨있는 책만 바라보던 현민은 자신을 부르는 발록의 목소리에 책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었다. 그의(페튜니아와의 싸움으로 아직은 '그') 성격상 대답을 안 하면 자신을 괴롭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무기를 안 쓰는 건가? 저 여자에게 듣자니 무슨 대회같은 것에 나갈거라면서?" 현민 역시 발록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상대가 무투가라면 모르지만 칼이나 날이 달린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맨손으로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네, 그래서 전투방식에 맞춰서 만들려고요." "호오, 그렇단 말이지? 그치만 무기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알고 있겠지?" 무기를 손에 쉬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발록은 혹시나 잊고 있을 현민을 향해 충고를 해 주었다. "물론이죠, 그리고 그 무기 때문에 앞으로 몇 일은 못 나올 것 같은데 이해해 주실거죠?" "그동안 저 여자가 너를 뛰어넘을수도 있는데 괜찮겠나?" "물론." 현민은 발록의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 스스로가 강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맞지만 자신이란 존재는 마법사지 전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좋아, 허락하지. 앞으로 일주일이다. 그 시간 안에 해결하지 못한다면 계약은 파기하겠다." "!!" 강하게 나오는 발록의 조건에 현민은 무기의 제작기간을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보면 아슬아슬했지만 일주일까지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 이번에는 현민의 말에 발록이 놀란 듯, 사슴처럼 커다란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윽... 흠칫! "뭐하는 짓이지?" "아, 하하하. 눈이 너무 예뻐서." "호오?" 현민의 물음에 감탄사를 내뱉은 발록은 가늘어진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두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려고?" "하하, 하...." 동그랗게 커진 발록의 눈을 바라보던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두 개의 손가락을 그녀의 눈에 가져갔고, 깜짝놀란 발록이 몸을 뒤로 뺐던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났으니 현민으로서는 등줄기에 땀이 흘렀고, 발록은 나름대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이 눈이 예뻐? 응? 똑바로 봐봐." 현민의 얼굴을 자신에게 가까이 가져간 발록이 그의 머리를 강하게 잡아당기며, 자신의 눈을 그의 앞으로 가져갔다. 멀리서 바라보는 둘의 동작은 상당히 므흣해 보였지만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죽을 맛이었다. 발록은 현민의 눈을 바라보며 엄청난 살기를 뿜어대고 있었고, 현민은 그녀의 살기를 코앞에서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와락! 흠칫! 흠칫! 코끝이 2c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뱀 앞에 있는 쥐처럼 본능적인 공포로 움직이지 못하는 현민의 등에 너무나 당연한 누군가가 안겨들었고, 갑작스러운 충격에 현민과 발록의 얼굴은 점점 가까워졌다. '뭐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밀치면 닿아버리잖아!!' 그녀의 살기어린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드는 게 눈에 비치며, 현민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시간이었을 뿐, 현민의 눈에 비치던 모든 것들은 다시금 원래의 시간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스윽... "하아, 하아, 하아...." "휴우...." "응? 왜?" 서로의 입술이 닿을 찰나 강제적으로 목의 근육을 비틀어버린 현민은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바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고, 그의 입술은 목적지를 변경하여 그녀의 볼에 살짝 스치기만 했다. "대단한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훈련강도를 높여도 되겠어." 고양이처럼 휘어진 눈을 하고 있는 발록은 눈앞에 있는 현민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입술과 입술이 부딪히려는 순간에 보여준 현민의 움직임이 발록 그녀의 움직임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었다. "우웅.... 왜 그러지? 오빠, 난 조~기 가서 놀게. 바이바이~"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담비는 천천히 현민의 등에서 떨어지며 원래 있던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 하하.... 일단 무기는 만들고." "걱정마, 내일부터 쉬게 해줄게." 휘어진 발록의 눈에서는 광기가 흐르고 있었고, 현민은 그녀의 앞에서 식은땀만 흘렸다. "자, 간다!!" "자, 잠깐!" 파파팍! 팍! 퍼퍽! 팍! 퍼퍼퍽! 파파팍! 순식간에 발록의 주먹이 허공에 새겨졌고, 일부분은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현민의 몸에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어딜 피해!" 퍼퍼퍽! 퍼퍽! 퍼퍼퍼퍼퍽! 어떻게든 주먹을 피하기 위해 뒤로 피했으나 발록은 그를 절대로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그동안 실력이 좋아져 적게 맞았던 현민은 처음으로 돌아간 듯, 호빵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부디 살아남기를. "안녕하세요...." "응? 자네 왔....!!!" 오랜만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드워프 할아버지는 깜짝 놀란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서, 설마 아내 몰래 바람피웠나?" "저 결혼 안했어요." "그러면 애인이 임신했는데 책임을 회피 했다던지..." "저 애인 없어요!" "크흠! 근데 자네 얼굴이....." 현재 현민의 얼굴은 드워프 할아버지가 못 알아볼 정도로 심각히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 퉁퉁 부어오른 눈 부위는 눈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을 수 없도록 하였고, 얼굴 역시 평소의 두배로 불어나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는 상태였다. 또한 얼룩 강아지도 아닌 현민의 얼굴이 청색, 검은색,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입술은 어묵처럼 퉁퉁 불어있었다. "그, 그냥 맞았어요...." "괘, 괜찮네. 우리집이 빈방이 있어서 며칠 지네도..." "아니라니까요!" "크흠! 아니라니 다행이군..." 현민의 강한 부정에 드워프 할아버지가 한수 접었지만 그의 표정은 절대로 현민의 말을 믿고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거 보기가 부담스럽구먼. 가면 좀 쓰게." 현민의 앞에서 웃을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현민에게 얼굴을 가리도록 했고,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던 현민도 인벤토리에서 가면을 꺼내 착용했다. "그래, 무슨일로 왔는가?" "할아버지, 남자의 로망이 뭔지 아세요?" "흐음...." 현민의 물음에 현민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쳐다본 드워프 할아버지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할렘, 메이드, 비서, 주인님?" "아니에요!!" 너무나 인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드워프 할아버지의 말에 이상한 상상(?)이 스쳐지나간 현민은 붉어진 얼굴로 드워프 할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현민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인지 몇몇 친분있는 드워프들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 뭔가?" "변신!!" "변태?" "변신이라고요!" "호오~~?" 현민의 커다란 음성에 호기심을 느낀 드워프들이 그를 둘러쌌고, 현민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 "마법이라는 것 중에 언락(unlock)이라는 마법이 있으신 것은 아시죠?" "물론, 그 정도야 기본이지." "암, 암." 현민의 말에 드워프들은 당연히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현민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언락(unlock)이란 마법은 락(lock) 이라는 마법과 대칭되는 마법인데, 이 마법에 참 재미있는 설정이 있더라구요." 마법진이라는 것으로 자신들에게 상당한 해택을 준 현민이었기에 그들은 현민이 말하는 마법이라는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락(lock)이라는 마법은 물체를 '고정'시켜 '열리지 않도록'하는 것이고, 언락(unlock)은 락(lock)마법을 해제하는 거더군요." 끄덕끄덕 어느정도 기본 지식이 있는 드워프들도 현민이 하고 있는 설명정도의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질문. 만약 락(lock) 마법의 '열리지 않도록'이라는 것을 제외시켜버린다면?" "흠? 그럼 '물체를 '고정'시킨다'인가?" "정답~!" "도대체 그것으로 뭘 한다는 건가? 어서 좀 말해보게." 무언가 나올 것을 예감한 드워프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현민을 재촉했고, 현민은 그들의 눈동자를 즐기며(?) 자신이 알아낸 것을 말해주었다. "하나의 물건을 만들고 '상태1'의 그것을 '고정'시킨 다음, 그것으로 다른 물건인 '상태2'를 만든다면? 그리고 그것에 언락(unlock)마법을 사용한다면?" "서, 설마?!" "후후훗, 락(lock)마법과 언락(unlock)마법을 통해 '상태1'에서 '상태2'로 변신이 된다는 말씀!!" "오오오오오!!!" 어릴 때부터 변신과 합체에 꿈(?)을 가지고 있던 드워프들은 현민의 말에 열광했고, 현민이 만들고자 하는 물건에 자신이 선택되기만을 반짝이는 눈으로 기다렸다. "잠깐! 그렇게 한다면 '상태2'에서 '상태1'로 돌아올 수는 있는건가?" 단 한번의 변신으로 물건의 능력이 다 한다면 만들 가치조차 없는 것이기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드워프였다. 하지만 현민은 이미 그것도 생각해 놓았는지 퉁퉁 불어터진 얼굴로 거만하게 말했다. "물론이죠, 쿡쿡쿡. '상태2'의 모습에 다시한번 락(lock)의 변형마법을 새긴다면 언락(unlock)의 마법만으로 두 개의 물건을 바꿀 수 있다~. 이 말씀입니다." "우오오오오!!!" 어설픈 변신(?)이 아닌 완벽한 변신아이템(?)을 만들게 해준다는 현민의 말에, 그를 둘러싸고 있던 드워프들은 광적인 함성을 내지르며 그의 주위에서 춤을 췄다. 그들의 기쁜마음을 이해한 현민은 자신을 둘러싼 드워프들이 춤을 추는 것을 구경했으나 그것도 잠시일 뿐, 똑같이 보이는 드워프들이 자신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자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깡! "꾸엑!" 현민의 주위를 신나게 돌고 있던 한명의 드워프가 어디선가 날아온 프라이팬에 머리를 맞고는 차디찬 바닥에 누워버렸다. "야 이 자식아! 내가 낮술먹고 춤추지 말랬지?!" 프라이팬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다가온 한명의 여성 드워프가 현민을 힐끔 쳐다보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프라이팬을 주워들고는 드워프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드워프 남성과는 다르게 인간의 소녀처럼 가냘퍼 보이는 드워프 여성은 체격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두배되는 드워프를 쉽사리 들어올렸다. 깡! 깡! 깡! 깡! 까깡! 깡! "너 같은 드워프! 맞아야 정신차리지?" 너무나 화가난 것인지, 아니면 무거워서 인지, 바닥에 드워프를 팽개쳐 버린 그녀는 그의 몸에 올라타서 양손으로 프라이팬을 잡은 뒤, 힘차게 내려 찍었다. 쉬익~ 퍽! "어쭈 피해?" "마, 마누라. 그걸 세워서 찍으면 나 죽어." "그래! 너 죽고 나 살자!" "으아악!!" 까까까까깡!! 푹! 까까깡! 그 드워프를 시작으로 사방에서 주방용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신혼집에서는 국자나 숟가락이, 화목한 가정에서는 프라이팬과 도마(?)가, 권태기의 집안에서는 칼이 날아오니 그것을 바라보는 현민의 눈에는 동병상련의 아픔이 담겨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너무나 괴로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차마 곁에서 지켜봐주지 못하는 현민은 같이 맞을까 두려워서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D-48 깡! 깡! 깡! 깡!.... "후우, 후우, 후우..." 뜨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는 드워프 마을의 대장간에서는 평소에 볼 수 없던 키 큰 존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깡! 깡! 챙그랑!! "이런!" "아!" 절대 실패가 없을 것이라 예상했던 드워프의 망치질에서는 연신 물건이 깨져 나갔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과 드워프들의 입에서는 아쉬움의 탄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흐음... 루나양(?), 아무래도 상태를 '고정'시킨 것 때문에 물건이 변화를 허용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저도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네요. 무슨 방법이 있을 텐데...." 당연히 성공하리라 예상했던 아이템의 제작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 상태였고, 현민은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만들어지지 않는 무기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방법들을 생각해 보았다. '락과 언락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것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무언가 다른 방법이 있을거야... 도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거지?' 작가와 현민은 그들이 알고 있는 마법에 대해서 차근차근 살펴보기 시작했고, 하나의 마법에 눈이 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이거다!!" "응?" "왜 그러나 루나양?" 주변에 있는 드워프들이 놀란 만큼 크게 외친 현민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고, 이내 한쪽 구석에서 찾고자 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었다. "정보." 녹슨 철검(무급) 설명 : 오랫동안 방치되었기에 많은 녹슬었다. 공격력 : 15 -20 내구력 : 17 조건 : 누구나 착용 가능. -일정확률로 파상풍 유발. 현민의 손에 들린 무기는 드워프들의 대장간에 있기에, 그 모양이나 상태가 상당히 어설퍼 보이는 물건이었다. "우리 대장간에 저런게 있었나?" "그러게?" "저거 녹일려고 가져다 놓은거 아냐?" "그런가?" 자신들도 예상 못한 엉뚱한 물건에 드워프들은 자신들끼리 속닥거렸고, 현민은 그들의 틈을 벗어나 녹슨 철검에 하나의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각인(刻印), 2단계!" 각인(刻印)(4서클) 소모 정신력 : 2000 능력 : 사물에 원하는 모양을 세길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마법.(1단계 음각, 2단계 압축) 현재 단계 : 6 주문 : 내 손끝에서 나온 하나의 길이 그 끝을 모르......... 무기에 그려진 마법진들이 현민의 마법에 의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녹슨철검의 검신에 현민이 그려놓은 마법진이 음각됐다. "휴우우...." "이번에는 된 건가?" 현민이 어딘지 모르게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뱉자, 그의 성공을 직감한 드워프들이 현민을 향해 확인대답을 요구했고, 현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걸로 아주 멋있는 칼을 만들어주세요. 대신에 이전과 같이 다른 재료는 넣지 말아주시고요." "녹슨칼을 멋진 칼로 만들어 달라니...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부탁을 받은 드워프가 되는건가?" "푸하하하하." 현민이 들고 있던 녹슨철검을 화로에 넣은 드워프 할아버지는 농담을 하며 주변과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깡! 깡! 깡! 깡! 깡!.... 이전과는 다르게 규칙적인 소리가 울려퍼졌고, 현민과 드워프들은 서서히 모습을 바꾸는 철검을 보며, 감동을 받은 듯 두 눈을 반짝였다. 치이이익! 깡! 깡! 깡! 깡! 드워프 할아버지의 손에 들린 녹슨 철검이 화롯불과 물을 오갈수록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두꺼워 보이던 검신은 길게 늘어졌고, 쓸모없는 장식들도 녹아들며 검신의 길이를 길게 만들어주었다. 어느정도 칼의 모양이 정해지기 시작했고, 드워프 할아버지는 자신의 기술을 살리며 쇠를 접기 시작했다. 깡! 깡! 깡! 깡! 깡! 깡! 깡!.... 치이이익..... 드워프 할아버지의 망치질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하늘에 별이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어느새 드워프 할아버지는 검만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잊어 가고 있었고, 주변의 드워프들은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듯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후우우우."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선천적으로 타고난 실력(實力)과 신력(神力)을 가진 드워프들이기에 그들의 접쇠작업은 기본적으로 10회를 넘어가고 있었다. 깡! 깡! "하아, 하아, 하아..." 열세번을 접고 있을 때쯤 드워프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단내가 풍기기 시작했고, 검은 완성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 깡! 깡! 취이이익........ "이제 날을 넣으면 끝이니 걱정 말거라." 벌써 달이지고 해가 떠오르고 있었지만 드워프들과 현민은 피곤함을 모르고 있었고, 앞으로 모습을 들어 낼 검을 생각하니,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 마지막을 장식해야지?" "네!" 힘차게 대답한 현민은 완성된 검에 마법진을 새겨넣기 시작했다. 시험용이라기는 하지만 첫 번째 작품인 것은 확실기에 현민은 첫 번째 모습에서는 할 수 없었던 마법진들을 마구 넣었다. 기왕이면 강한 것이 좋기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멋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명령어만 넣으면...!!" 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낸 현민은 그동안 만들어온 문장을 검의 표면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이 명령어로 인하여 드워프 할아버지가 만든 물건은 그가 꿈꿔왔던 물건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웅우웅우웅! 팟!! 검의 표면에 마지막 한 문장까지 모두 적어 넣자, 누구나 느낄 정도로 울음을 터트린 검이 자신의 완성을 알리듯 빛을 강하게 터트렸다. "서, 성공인가?" 환한 빛이 사라진 후, 현민의 손에 들린 검은 새롭게 만들기 이전의 녹슨철검 모양이었고, 드워프들은 검의 반응에 성공을 생각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깨어나라 마녀의 검이여. 거짓된 모습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모습으로 깨어나 모든 존재에게 너의 존재를 알려라!" 샤르르르륵.... 현민의 문장이 완성되자 검이 반응을 보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1m정도 되던 검신의 길이는 2m정도로 늘어나 있었고, 30cm정도 되어보이던 손잡이도 60cm로 두배나 들어나 있었다. 검신과 손잡이 부분에 있던 폼은 간소하게 변하여 두 개를 구별해주기만 했다. "아아...." 총길이 2m 60cm의 어마어마한 길이의 검을 바라보는 현민은 검이 가지고 있는 환상적인 모습에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는 단 한번도 검을 본적이 없는 현민은 가상현실 속에서 처음으로 바라보는 검의 자태에 검이란 것의 아름다움이 어떠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멋지군...." 2m의 검신에는 용의 비늘모양이 담겨져 있었고, 날을 이루고 있는 물결무늬가 검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일본도로 보이지만 그것도 아니네?' 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는 현민이었지만 일본도가 약간의 곡선적인 검날을 그리고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검은 일본도와는 다르게 검 자체가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고, 끝 부분이 약간 휘어 도(刀)와 같은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정보." 용린(龍鱗)(B급) 설명 : 검신의 무늬가 용의 비늘을 닮은 검. 공격력 : 540 -600 내구력 : 130 조건 : 레벨 80 이상. -샤프니스 사용 가능. 파이어 사용 가능. 윈드 커터 사용 가능. 용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검은 B급 무기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구력에 대해서는 C급 중간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내구력이 너무 낮은걸?" "흐음... 마법진이 검의 균형을 깨뜨린것 같군." "그렇지? 하지만 검에 마법진을 새겨넣지 않으면 무기는 변하지 않으니 어쩔 수는 없을 듯 하군. 애초에 내구력을 높게 만들어서 마법진을 견디게 할 수밖에...." 웅성웅성 드워프들은 하나의 검을 놓고 회의에 들어갔고, 현민은 그들의 틈새에서 드워프들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근데, 루나 양은 무슨 마법진을 사용한 거지? 맞아. 언락과 락 마법진은 아니였던것 같던데." 하도 많은 실패를 하며 그의 마법진을 외워버렸던 드워프들은 현민이 사용한 마법진이 기존에 설명해 주었던 언락과 락 마법진이 아니란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제가 사용한 마법은 메모라이즈에요." "아!" "그런데 어떻게 변하는 것이 가능한거지? 메모라이즈라는 것은 마법을 기억하는 것 아닌가?" 현민은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메모라이즈 마법적 특성을 이용하여 그것을 가지고 무기 자체의 모습을 기억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메모라이즈로 가능한 것은 마법이었고, 그 사용도 상당히 다르니 드워프들이 궁금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메모라이즈 마법은 말 그대로 마법을 '기억'해 놓는 것이에요. 하지만 이것에 '마법'이란 것을 '형상'으로 바꾸면 메모라이즈는 '형상'을 '기억'하는 마법이 되는 거죠. 물론, 마법으로는 불가능하고 마법진으로만 가능한 것은 당연한 말이겠지만요."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마법진을 사용함으로써 현민은 두 번째의 문제를 쉽사리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 변하는 것은 어떻게 한 것이지?" "그것은 락(lock) 마법을 사용했어요. 락(lock)마법의 기초만을 가지고 상당 부분의 설정을 바꾼 다음에 그것을 제어시스템으로 사용한 거죠. a에서 b로, b에서 a로." "으음..." 드워프들은 마법과 마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 못했지만 현민의 수준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현민이 만드는 아이템들은 일반 마법사들이 제작하는 아티펙트보다 훨씬 뛰어나고, 좋았으며, 과학적이었다. 단순히 마법을 새겨 넣고 아티펙트라 우기는 마법사들과는 전혀 다른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따로 있어요. 이 검은 그것을 위한 시험작일 뿐이니까요." "이번에는 내가 만들어보지." "아니, 내가 하지." "그보다는 내가 하는게..." .... 웅성웅성 수많은 드워프들이 다음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해서 나섰고, 현민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드워프들의 분위기가 살벌한 것이 곧 싸움이라도 날듯 했기 때문이었다. 쿵! "다음 작품은 모두가 만든다!" 방금 검을 만들어서인지 온몸에서 땀을 흘리며 매끄러운 근육을 자랑하는 할아버지는 바닥을 치며, 모든 드워프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쳤고, 드워프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며 할아버지의 말에 따랐다. "이런 모양과 이런 기능을 가진 건틀렛을 만들 생각이에요. 가능할까요?" "푸하하하핫! 이렇게 많은 드워프들이 모였는데 그 정도 하나 못 만들겠나? 기다려보게, 우리가 최강의 물건을 만들어서 선물해 주지." 현민이 건내준 설계도를 받은 드워프 할아버지는 다른 드워픋르에게 설계도를 넘겨주며, 호언장담을 했고, 현민은 그런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냈다. '가상현실 시간으로 3일. 1교시를 빼먹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간이군.' 1교시 지각하는 것은 어느정도 봐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현민은 최악의 경우 1교시 지각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마법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무기제작의 특성상, 현민은 물건이 완성될 때까지 자리를 떠날 수 없었고, 발록이 현민에게 준 시간도 현재 3일정도 밖에는 남아있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깡! 깡! 스윽, 스윽, 스윽....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는 대장간에서는 수십명의 드워프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현민은 한쪽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 하하하! 푸하하하핫!!" "해냈다! 하하하하!!" 2번의 밤이 지나도록 잠도 자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한 드워프들은 완성된 물건을 눈앞에 두고, 서로를 얼싸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 드워프들의 작업을 보아온 현민도 이 때 만큼은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환호성을 지르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최강의 무기가 만들어 졌네요." "네가 보여준 그림에서 우리가 추가한 것도 있고, 제외한 것도 있지만 이것의 성능이 너의 상상 이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확신하마."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너무나 고생한 드워프들을 향해 현민은 다시한번 고개를 숙였고, 드워프들은 현민의 인사를 받으며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도 꿈을 이룰 수 있어서 고마웠다. 하하하! 세상에 어느 드워프들이 변신무기를 만들어 봤겠는가! 우리가 최초이며, 우리의 후손들이 최후이다!" "와아아아아!!!" 드워프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다시한번 기뻐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드워프 할아버지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냈다. 앞으로 남은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서둘러 정해진 장소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다음에 다시 찾아뵐게요." "그래, 시간 늦지 않게 서두르는게 좋겠지." "네." "그 아이를 잘 대해 주거라. 루인아츠. 그게 그 아이의 이름이니깐." 현민의 손에 들린 것을 바라보며 말하는 드워프 할아버지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담겨 있었다. 현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을 품에 안으며, 드워프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대략 30분. 거짓을 하지 않고, 계약을 지키는 마계의 특성상 약간이라도 시간을 넘긴다면 발록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 "왔나?" 파팍! 팟! 파파팍! 퍽! "뭐라고요?" "이만 끝내지." 퍽! 퍼퍼퍽! 퍽! 퍽! 퍼퍼팍! "꺄아악!" 털썩! 어딘지 들뜬 모습의 발록은 자신의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던 페튜니아를 잡은 뒤, 연속기를 펼치기 시작했고, 발록의 연속기에 걸린 페튜니아는 그의 손을 벗어나지 못한 채, 모든 공격을 허용하고는 땅에 몸을 눕혔다. "많이 늘었군. 마지막의 두 대를 피하다니." 짧은 기간이었지만 얼마나 굴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발록의 한마디는 그녀의 실력이 한층 더 향상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탁! "왔나?" "안 늦었죠?" 가볍게 내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린 발록은 한쪽에서 걸어나오는 현민을 보며 인사를 나누었다. 스으윽. "그런거 같네." 남성에서 여성으로 몸을 바꾼 발록은 현민을 마주보았고, 현민은 바닥에서 묘에게 치료(?)를 받는 페튜니아를 바라보았다. 찰싹! "끝~." 어느새 치료를 끝마친 묘는 페튜니아의 등을 찰싹 때린 후, 도망가 버렸고, 현민은 그런 묘의 모습에 한숨을 내뱉었다. 발록과 함께 지내기 시작한 이후, 정령들의 장난이 더욱 심해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서와요." "네." 정신을 차린 페튜니아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현민을 발견한 듯 인사를 건내왔고, 현민은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며 인사를 받았다. "이게, 앞으로 당신의 무기에요." "네?" "흐음... 그게 이번에 만든 무기인가?" 끄덕 현민이 건내준 두 개의 물건을 받은 페튜니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고, 발록은 현민을 새롭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정도의 무기라면 제작이 쉽지 않았을텐데?" "드워프들의 도움을 받았지요." "흐음?" 발록이 생각하기에 페튜니아의 품에 있는 두 개의 물건은 드워프들로서도 쉽사리 만들만한 물건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얼핏 느껴지는 기운이 왠만한 무기들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 "단순한 건틀렛 같은데 그냥 착용하면 되는 건가요?" 현민에게서 한 쌍의 건틀렛을 건내받은 페튜니아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한 채 현민만을 바라보았고, 현민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건틀렛을 그녀의 손에 착용시켜 주었다. 찰칵! 찰칵! 전투 중에 건틀렛이 벗겨지지 않도록 제작되어진 팔찌 모양의 고리를 연결해 준 현민은 페튜니아의 손을 잡고 고리 부분으로 나와있는 두 개의 끈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슈욱! "아!" 현민이 팔 윗부분으로 나와있는 두 개의 끈을 강하게 잡아당기자 건틀렛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끈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에는 그녀의 손에 건틀렛이 달라붙어 있었다. 슈욱! 오른손에 이어 왼손의 건틀렛까지 착용시켜준 현민은 두 주먹을 쥐었다폈다하는 페튜니아를 바라보았다. "상당히 느낌이 좋은데요? 정보." 강철 건틀렛(D급) 설명 : 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틀렛 공격력 : 80 -100 방어력 : 90 -90 내구력 : 140 조건 : 없음. 현민이 건내준 아이템은 등급으로 따질 경우 D급의 평범한 아이템이었지만 옵션을 보니 왠만한 C급과도 비교될만한 최상급이었다. "응?" 조용해진 분위기에 정보창에서 눈을 돌린 페튜니아는 현민과 발록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의 어깨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그들이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왜 웃어요?!" 자신이 모르는 뭔가로 누군가가 웃는다는 것이 별로 기분 좋지 못한 페튜니아는 크게 소리쳤고, 현민과 발록은 입가의 미소도 지우지 않은 채 페튜니아를 바라보았다. "풋, 나를 따라해 봐요. '깨어나라, 깊고 깊은 잠에서 일어나 나를 수호하라.' "깨어나라. 깊고 깊은 잠에서 일어나 나를 수호하라." "아참! 두 손을 마주잡고 해야해요." 잠시 깜빡한 것인지 현민은 다시한번 페튜니아에게 주문을 했고, 페튜니아는 두 손을 마주 잡은 후, 다시한번 현민의 말을 따라했다. "깨어나라, 깊고 깊은 잠에서 일어나 나를 수호하라." "'어둠속의 너를 부르는 존재가 곧 너의 주인이니, 나의 부름에 답하여 지금 눈을 떠라.'" "어둠속의 너를 부르는 존재가 곧 너의 주인이니, 나의 부름에 답하여 지금 눈을 떠라." 우웅우웅우웅.... 그녀의 주문이 끝나자 건틀렛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녀는 당황한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루인아츠.'" "루인...아츠?" 팟! 철컥! 촤르르르륵! "호오?" "와우~." 마지막 말이 끝났을 때, 그녀의 팔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손목정도밖에 오지 않던 건틀렛의 끝이 길게 늘어지면서 팔꿈치 부분까지 올라왔고, 팔을 접었을 경우 팔꿈치 부분에 뾰족한 부분이 길게 나와 있어 창과 같은 공격이 가능해 보였다. 팔까지 올라와 있는 부분도 끝부분이 곡선을 그리고 있어서 팔의 움직임에 전혀 방해를 주지 않고 있었다. 손등에는 세 개의 날카로운 칼날이 달려있었고, 건틀렛의 손가락 마디 부분도 하나하나 날카로워 주먹을 쥐었을 경우 두 번째 마디의 날카로운 부분이 송곳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멋있는데?" "드워프분들이 노력해 주셨죠." 거의 팔 전체를 덮고 있는 그녀의 건틀렛은 단면이 비늘처럼 되어 있었고, 비늘의 하나하나가 날카롭게 생겨서 어디에 닿던지 간에 갈가리 찢어버릴 것처럼 생겨 있었다. "정보." 루인아츠(A급) 설명 : 무투가들을 위한 최고의 무기. 에고아이템 공격력 : 900-950 방어력 : 1000-1200 내구력 : 1400 조건 : 마녀와의 친분. -머리 색깔의 변화. (강제) -눈동자 색깔의 변화. (강제) -힘 +250. (선택) -하루 10분, 스트랭스 사용 가능. "세, 세상에!!" 정보창을 열어 하나하나를 확인한 페튜니아는 놀라서 벌어진 입을 쉽사리 다물 수가 없었다. 거의 시중에서는 거래되지가 않는 A급인 것도 대단한데 공격력과 방어력은 A급 중에서도 최강에 속하고 있었고, 내구력도 어느것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힘이 +250에 스트랭스까지 가능하다니...." 힘을 가장 많이 올려준다는 OPG(Orge Power Gauntlet)도 200밖에 올려주지 않는데, 현민이 만들어 온 것은 힘을 250이나 올려주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스트랭스 마법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이정도면 일순간이나마 오우거와 팔씨름도 맞먹을 정도였다. "멋지군. 이제부터는 무기로 대련하는 거겠지?" "물론이죠." "근데 네 무기는?" 너무나 멋들어진 모습의 루인아츠에, 페튜니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연신 감탄만 했고, 발록은 그런 페튜니아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제 무기는 단순히 6개의 칼이에요." "장검? 중검? 단검?" "단검." "흐음.... 너한테 적당할 것 같기도 하네." 발록은 현민의 전투방식을 생각해 본 뒤, 그의 선택이 괜찮았다고 칭찬했다. "꺄악!" "?" "응?" 한참을 좋아라 하던 페튜니아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자 깜짝 놀란 정령들은 멀리 도망가 버렸고, 발록과 현민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 말을...." "당연하죠, 장인들이 그의 영혼을 깨웠으니 까요." "아, 아하하...." "대단하군, 에고아이템이었나?" 루인아츠에 에고가 담겨있다는 말을 들은 발록은 현민이란 존재에 대해 더욱 많은 호기심이 생겨났다. 고대시대일 때도 몇몇만 제작이 가능했다는 에고무기를 현대에 와서 만들었으니 그가 감추고 있는 실력은 훨씬 많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좋아, 적당히 쉰 것도 같고, 무기도 새로 받았으니 시험해 봐야겠지?" 페튜니아와 적당히 거리를 벌린 발록은 남성의 모습으로 변신한 후, 거칠게 타오르고 있는 하나의 검을 소환하였다. "와라." 팟! 펑! 파팍! 쾅! 촤르르륵! 챙! 페튜니아의 신형은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었고, 회전이 많아질수록 그녀의 공격도 거세졌다. 하지만 발록은 그녀의 공격을 하나의 검으로 여유있게 막아가며 어린애와 싸움하듯 여유가지 부리고 있었다. 촤악! 흠칫! 어쩌다 운이 좋아 그녀의 팔이 발록의 가슴을 스쳐지나갔고, 발록은 싸늘한 느낌과 함께 자신의 옷이 찢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대, 대단하군. 단순한 아이템하나로 사람의 실력이 이렇게 바뀌는 것인가?" "루아가 공격의 방법을 알려줬어요." "루아? 아아, 루인아츠를 말하는 건가?" 페튜니아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발록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낱 아티펙트의 도움을 받는다면 너의 실력은 그 이상으로 늘지 않을 것이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벌벌 떨었을, 차가운 눈빛과 태도로 발록이 말했지만 지금의 그녀는 붉어진 눈동자로 발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아뇨. 당신이 나를 가르치는 것처럼 루아도 나를 가르칠 뿐, 나는 루아에게 의지하지 않아요." "훗,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가주마." 콰콰쾅! 팡! 퍽! 쿠드드드득! 와직! 그녀들의 싸움으로 거대한 동굴의 이곳저곳이 부서졌고, 현민은 그녀들의 싸움에 질려 멀리감치 자리를 피했다. 그녀들의 곁에서 싸움을 구경하다가는 빗나간 공격에 맞아 앗! 하는 순간에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그녀의 몸에서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온몸이 젖을 정도의 땀이 흐르고 있었고, 루인아츠의 효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는 머리카락은 이곳저곳에 휘날리고 있었다. "대단하군." "저, 정말 좋아." 서로 대결을 마친 발록과 페튜니아는 루인아츠의 능력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잠깐이었지만 발록이 위험할 정도의 공격이 가능했고, 페튜니아의 움직임도 한결 좋아진 것을 보면, 루인아츠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었다. "어때요? 사용해보니 괜찮은가요?" "최강이에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걸 만든거죠?" 현민의 물음에 답하는 페튜니아는 금방이라도 튀어오를듯 흥분해 있었고, 현민은 그녀를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좋다니 다행이네요." "근데, 공짜로 주는 건가요?" 현민에게 물어보는 페튜니아의 두 눈은, 조금전에 흥분했던 것과는 다르게 장난감을 뺐기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촉촉이 젖어 있었다. "설마요." "무, 무슨..." 그녀의 대답을 부정한 현민은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고, 천천히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오호? 저런게 인간들의 정상적인 키스인가? 배워둬야 겠군." 옆에서 혼자 신이난 발록은 현민과 페튜니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페튜니아는 그런 발록 때문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현민의 거센 손길에 몸을 피하지 못했다. 스윽 두근 두근 두근.... 현민의 얼굴이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심장은 더욱 거세게 뛰었고,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는지 조용히 눈을 감고 현민이 마주하기 좋은 자세(?)를 취했다. '이정도의 아이템을 만들어 주었는데, 키스는 당연한 거야. 그리고 어, 어차피 살짝 닿는 것 뿐이야. 저, 절대 이 이상(?) 나가지는 않을거야!' 질끈 감긴 두 눈으로 현민의 입술을 기다린 그녀는 곧 있으면 느껴질 감촉(?)을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알고 지내는 사이니깐 500만원에 싸게 해드릴게요. 나중에 계좌로 입금해 주세요." 부르르르 "꺄악!" 입에서 느껴질 감촉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페튜니아는 귀에서 느껴지는 현민의 숨길에 몸을 떨었고, 참을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비명을 지르며 그의 품을 벗어났다. "하악, 하악, 하악!" "흠! 단순한 귓속말 이었나?" 씽긋! 왠지 속았다는 표정의 발록을 바라본 현민은 씽긋 웃어주었고, 고개를 숙인 페튜니아는 루인아츠와 대화하는 것인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저, 저는 이만 가볼게요!" "네, 잘 가세요. 아참, 그리고 계좌 번호는 xxx-xx-xxxxxx이고 xx은행 이에요. 500만원 잊지말고 넣어주셔야해요~." 하지만 현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고, 현민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있는 발록을 보며 미소지었다. "보기보다 상당히 짖궂군." "글쎄요~." 발록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현민의 어투는 장난같지가 않았다. 적어도 돈에 관한것은... -------------------------------------------------------------------------------- 위이이이잉.... "응? 오늘도 한바탕 하셨나봐요?" "네." "오늘은 얼마나 버티셨어요?" "5분정도?" "와~!" 캡슐에서 나오는 페튜니아을 둘러싼 운영자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는 그녀의 실력을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다르게 무관심했고, 어떻게 보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팀장님, 무슨 일 있었어요?" "아, 아니요. 그보다 저는 홍보팀에 좀 다녀올게요." "아, 예...."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아는 것인지, 그녀에게서 무엇인가의 이상함을 느낀, 한 여성 운영자가 그녀의 안색을 보고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페튜니아(팀장)는 얼굴이 빨갛게 변했고, 서둘러 자리를 피해버렸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 "그러게...." 저벅저벅.. "휴우..." 거의 모든 시간을 사무실에서 생활하다보니, 그녀의 신발은 언제나 운동화였고 복장도 치마가 아닌 청바지와 면티들 뿐이었다. "응? 박팀장이 왠일이야?" "잠깐 대화 좀...." 개발팀 사무실의 입구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박팀장은 멀리서 자신을 발견한 여성을 손짓으로 불러냈고, 그녀의 손짓을 발견한 홍보팀장은 자신을 손으로 가르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래?" 복도로 나온 홍보팀장은 페튜니아의 이상한 표정에서 무엇을 느낀것인지 그녀의 안부를 먼저 물어보았다. "성희야, 우리 조용한데서 얘기 좀 하자." "응?" 박팀장에게 손을 잡힌 성희는 화장실로 끌려갔고, 사무실에 남아있던 남성 직원들은 그녀들이 금단의 사랑(?)을 이룰 것인지에 대해서 이런저런 토론을 했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을 뿐, 같이 일하는 여성 직원들에게 눌려 그들은 일을 해야만 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성희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알았지?" "알았으니깐 어서 얘기해봐." "저기...." 자신이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인지 그녀는 연신 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말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 답답하게. 도대체 무슨일인데?" "나, 나.... 욕구불만 인가봐." "응?" 작은 목소리기는 했지만 가까이에 있는 성희가 듣기에 크게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내용을 의심한 성희는 자신이 들은 것이 맞는 것인지를 확인 할 수가 없었다. "욕구불만?" "으응....." "쿡, 쿠쿠쿡, 크크크크큭...." 쑥스럽게 대답하는 자신의 친구를 보며, 그녀는 도저히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 농담 아니라고!" "쿠쿠쿡, 그래도 웃긴걸? 우리 혜진이 다 컸는걸?" "야!" 화장실이란 공간이 쉽게 울리기 때문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복도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 "혜진아, 너 남자친구랑 ..... 해본 적 있어?" 혜진이는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 하는 성희의 말에 빨갛게 익은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남자친구 사귄적이 없는 것은 너도 잘 알잖아." "아아, 깜빡했네. 그럼 .....는?" 절레절레 "그, 그런걸 어떻게 해?" 귓속말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성희의 말을 들은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익어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혜진과 대화를 나누는 성희는 그녀의 빨갛게 익은 얼굴따위는 관심도 가지 않았다. 툭! "응?" "혜진아." "응." 혜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 성희는 진지한 눈빛으로 혜진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분위기에 휩쓸린 혜진도 심각한 눈으로 그녀의 입을 바라보았다. "욕구불만 맞아. 남자라도 알려줄까? 한번쯤은 괜찮.." "야!" "자, 장난이야, 장난...." 하지만 장난이라고 말하는 성희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바닥만 바라보았고 그녀의 말에는 진실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보다 갑자기 왠 욕구불만이야?" "그, 그게..." 학교부터 직장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을 같이 지낸 친한 친구사이이기에 그녀는 성희를 믿고,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크크크큭." 주르륵... 성희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준 혜진은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엄청난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난 또 대단한 건지 알았잖아, 겨우 입술가지고 그런거야? 약간 부끄럽긴 하겠지만 길가다가 잘생긴 사람 만나면 찐하게 해봐." "나보고 변태되라고?" 혜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성희를 바라봤으나 성희는 그녀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떳떳하게 말했다. "못생긴 남자나 여자가 할 경우에만 변태가 되는거고. 너 정도라면 단순한 구경거리정도?" "네가 하면?" "로맨틱이지." "풋!" "쿡쿡쿡." 다른 사람에게 털어놔서인지 혜진의 얼굴은 이전보다 밝아있었고, 그녀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를 즐겨나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욕구불만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거야...' 입으로는 혜진과 대화를 하는 성희였지만, 그녀는 오랜만에 사랑이 찾아온 자신의 친구를 마음속으로 축하해 주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사랑이 이루어질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기왕이면 두 사람이 이루어지기만을 빌었다. '네 마음을 훔친 사람이 누군지 반드시 잡아주마. 쿡쿡쿡.' 너무나 순진한 자신의 친구 때문에 성희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남자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친구마음을 뺏어간 것을 보면 그 사람은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 같았다. "엣취! 정말로 감기 걸린건가?" 1교시를 결석한 탓에 담임에게 끌려갔던 현민은 몸살감기로 인해 늦잠을 잤다고 변명했다. 현민의 몸에는 애초에 열이 많았고, 잠을 자지 못한 현민의 표정도 많이 안 좋아 보였기에 그녀의 담임선생님은 남아있으려는 현민을 강제로 조퇴시켜버렸다. 운이 좋아 조퇴까지 허락받아 버린 현민은, 평소와 같았다면 바로 싸울아비에 접속했을 테지만 가상현실에서 정신을 혹사시킨 탓인지 그의 정신은 충분한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털썩 "자고 일어나서...." 비틀비틀 걸어서 집에 도착한 현민은 곧바로 캡슐에 누워버렸고, 포근히 감싸주는 캡슐을 느끼며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채리야, 채리야~!" "응?" 천천히 길을 걸어가고 있던 채리플랑은 뒤에서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 때문에 자리에 멈춰섰다. "너 광고 찍었으면서 나한테는 얘기도 안한거야?" "아참!" "요게~!!"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채리는 자신이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냈고, 그녀를 향해서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의 표정을 바라본 친구는 그녀의 목을 감싸안아 버렸다. "어릿광대와 싸워보니깐 어때? 좋았어?" "응!" 친구와의 장난에 미소지으며 웃고있던 채리플랑은 어릿광대란 말에 흥분한 표정으로 볼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와의 대결이 있은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어릿광대의 움직임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최강이었어, 얼마나 멋졌는지 알아? 그 사람은 마법을....." 어릿광대에 대해서 입을 연 채리플랑은 끊임없이 현민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고, 그녀의 친구는 채리플랑이 웃으며 얘기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남자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채리플랑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던 그녀의 친구는 어릿광대가 남자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를 재촉했다. "응, 좀처럼 구별하기 힘들었는데, 가끔가다 보여주는 움직임들이 남자의 움직임이었어." '봤다는건 말 못해....' "흐음..." "그보다 말야, 어릿광대가 나한테...." 잠시 멈췄던 어릿광대의 자랑은 또 다시 시작되었고, 채리플랑의 어릿광대 자랑은 그녀가 잠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풋, 단단히 빠졌나보네." "으응..." 잠들어 있는 채리플랑의 볼을 쿡쿡 찌른 그녀는 채리플랑의 자랑으로 인해, 이제는 남 같지가 않은 어릿광대를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우웅, 담비야 제발 그만....."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나을 때도 있는 법이었다. 부스럭... "으음...." 저녁이 되어서야 깊은 잠에서 깨어난 현민은 뭉쳐 있는 머리를 긁으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 -현재 시간은 20시 23분 15초입니다." 털썩! 11시쯤 집에 돌아왔으니 거의 10시간동안 잠을 자버린 현민은 아직도 졸린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87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와~." 현민이 싸울아비 속으로 접속하는 순간. 동시에 튀어나온 네 명의 정령들이 현민의 몸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평소보다 빠른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같은 시간차이를 두고 접속하던 현민이,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더 일찍 들어오자 그것을 눈치 챈 발록이 현민에게 물은 것이었다. "으음... 예." "응? 자다 일어난건가?" "예...." 가상현실에 접속해서도 잠이 깨지 않았는지 서있는 그의 몸은 연신 비틀거렸고, 두 손은 눈을 비비느라 얼굴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슈욱! 팟! 퍽! 발록의 주먹이 현민에게 날아오는 순간부터, 네 명의 꼬마정령들은 현민에게서 떨어져 멀리 도망쳐버렸다. 허공을 가로지른 발록의 주먹이 현민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순간, 네명의 정령이 떨어져 나갔기에 신형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현민은, 몸을 낮추며 회전하기 시작했고, 발록의 품으로 파고든 다음 팔꿈치로 발록의 허리를 때리려 했다. 하지만 현민의 공격은 발록의 손에 가볍게 막혔고, 그의 공격을 막은 발록은 씽긋 웃으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잠 좀 깼지?" "아, 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발록의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것을 눈치 챈 현민은 발록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도록 다짐했다. "덤벼봐." "하아...." 무엇이 불만이기에 이러는 것인지, 현민은 발록의 태도에 한숨을 쉰 후, 인벤토리에서 6자루의 단검을 꺼냈다. "그게 저번에 말한 단검?" "네." "흐음...." 두개의 단검은 송곳과 같은 형태로 날의 길이가 40cm정도 되었고, 손잡이도 20cm정도였다. 손잡이의 끝부분은 일반적인 무기의 손잡이와 다르게 뾰족한 형태였고, 생긴 것으로 보아 손잡이로도 공격이 가능해 보였다. 찰칵찰칵! 슥스윽 검집에 연결된 고리를 팔목에 착용한 현민은 검집이 팔에서 빠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했고, 발록은 현민의 그런 모습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재미있겠는걸?" 손등 쪽으로 나와있는 검의 손잡이는 발록의 예상대로 공격이 가능해 보였고, 손목에서 약간 떠 있는 것으로 보아 검을 뽑기도 쉬워보였고, 손목의 움직임에도 전혀 방해를 주지 않고 있었다. 스윽, 꾸욱.... 인벤토리에서 두개의 단검이 붙어있는 벨트를 꺼낸 현민은 그것을 허리에 걸치고, 뒤로 돌아가 있는 단검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했다. 각각의 손잡이가 반대로 향해져 있는 단검은 현민의 손에 쉽게 잡히도록 되어 있었다. 스윽..꾸욱! 스윽..꾸욱! 마지막으로 두개의 고리가 연결된 검집을 두개 꺼낸 현민은 손잡이가 위로 올라오도록 하여 허벅지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허벅지에 고정된 두개의 검은 허벅지와 일직선이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손잡이 부분이 약간 앞으로 나와 있는 형태로, 서있는 상황에서 가장 쉽게 뽑히도록 되어 있었다. "쿡쿡쿡, 벌써부터 흥분돼." 현민과의 싸움이 정말로 흥분되는 것인지 발록의 두 볼은 붉으스름하게 물들어 있었고, 그녀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간다." 팟! 붉게 타오르는 검을 뽑아든 발록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현민을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챙! 위에서 내려오는 발록의 검을 향해 왼손을 올려든 현민은 왼손에 착용된 검집을 이용하여 그녀의 공격을 막았고, 오른손을 뒤로 하여 허리에 있는 무기를 뽑아 발록을 향해 휘둘렀다. "도인가?" 현민의 양손에 묶여 있는 것이 송곳의 모양이라면 그의 허리에 묶여 있는 것은 한쪽에만 날을 가지고 있는 도의 형태였다. 발록은 현민의 무기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 묶여있는 위치를 생각하며, 그의 무기가 어떤 동작에서 사용되는지를 분석했다. 현민의 오른손에 들린 무기가 발록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고, 순간 약해지는 왼손을 놓치지 않은 발록은 검을 뒤로 회전시키며 검끝을 바로세워 현민의 어깨부분에 찔러넣었다. 하지만 현민은 이미 발록의 왼쪽으로 피한 상태였고, 오히려 발록의 쭉 뻗은 오른팔을 잡아낸 현민이 그녀의 품안으로 파고들면서 오른팔의 단검으로 그녀의 팔을 잘라들어갔다. "어림없어!" 안쪽으로 파고드는 현민의 어깨에 왼손을 올린 발록이 몸을 높이 뛰어 현민을 한바퀴 넘어버렸고, 그 상태 그대로 현민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챙! 채채챙! 챙챙! 베기로 들어오는 것은 손목에 착용된 검집으로 막아내고, 찌르기로 들어오는 것은 오른손의 소도로 쳐내며 현민은 그녀의 공격을 열심히 막아냈다. "역수로 검을 잡으면 베기밖에는 사용이 안될텐데?" 발록의 검이 점점더 빠르게 움직이자 더 이상 한손으로만 막을 수 없었던 현민은 왼손을 뒤로하여 또 다른 소도를 꺼내려 하였다. 하지만 때마침 들려오는 발록의 소리를 듣고는 손을 아래로 내려 허벅지에 묶여있는 검을 뽑아들었다. "정신없군. 허벅지에 있는 것은 양쪽에 날이 있는 검이라니..." 현민의 허벅지에 걸려있는 무기는 일반적인 검의 형태로, 양쪽에 날이 있었고, 길이는 60cm정도 되는 중검이었다. 챙! 채채채챙! 챙! 촤악! 챙그랑 "풋!" "윽!" 오른손에 있던 단검을 허리에 꽂아 넣으려던 현민이 단검을 떨어뜨리면서 그들의 대결은 잠시 멈춰졌다. "쿡쿡쿡. 검 넣는 연습을 해야할 것 같은데?"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쑥스러웠던 것인지 현민의 두 볼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발록은 검을 역소환 하며 현민에게 다가갔다. "너한테 어울리는 무기인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완벽히 다루지는 못하는 것 같아." "네..." "페튜니아는 상관없었지만 너는 무기에 좀더 익숙해 져야만 할 것 같군." 발록의 말에 현민은 자신의 무기만 만지작 거릴 뿐, 그 이상의 어떠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근데, 어째서 네 무기는 평범한 거지?" 한참을 고개 숙이고 있었던 현민은 발록의 호기심 섞인 물음을 듣고서야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발록을 바라보았다. "검을 들고 싸울 것도 아닌데, 좋은 검이 필요한가요?" "응?" "저 마녀잖아요. 검을 들고 싸울 것도 아닌데 굳이 좋은 무기를 만들 필요는 없죠." "!!" 현민의 말을 들은 발록은 경악어린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고, 현민은 그녀의 놀란 표정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까, 깜빡했었어, 네가 마녀란 사실을...." "윽!" "하, 하지만 그동안 네가 마법을 안 썼잖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은 것인지 발록은 당황한 얼굴로 다급히 변명을 내뱉었고, 현민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응? 무슨 일 있었나요?" 언제 접속한 것인지, 그들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 페튜니아는 현민의 이상한 분위기 때문에 발록을 향해서 조용히 물었다. "그, 그냥..." 발록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페튜니아의 물음을 흘려버렸고, 페튜니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래에 있는 현민을 바라보았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쿠궁! 그동안 마법을 쓰지 않고 있었던 현민은 일부러 마법을 쓰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처음에는 싸움의 방법을 알기위해서 스스로가 마법의 사용을 억제한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 "...지 마요, 그러다..." "응?" 자신만의 생각속에 빠져있던 현민은 페튜니아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무슨일이 있는지 고개를 돌렸다. "응?" "어라?" 현민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입술은 발록을 덮쳐들어갔다. 쪼~... 싹! "으으윽!!" 하지만, 목의 근육을 억지로 비틀어버린 현민은 다행히도(?) 발록과의 뽀뽀를 피해버렸고, 그 부작용으로 인해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저, 정말 대단하다니깐." 인간이란 존재를 낮게 바라보는 발록마저도 이 순간 만큼은 현민의 움직임을 높게 쳐줬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발록인 자신도 움직이지를 못했는데, 한낱 인간인 현민이 목의 근육을 강제로 움직이며 자신의 얼굴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내가 그렇게 이상한가?" 발록은 자신을 피하려 하는 현민 때문인지 페튜니아에게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페튜니아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어주었다. "그럼, 얘가 이상한거지?" 끄덕끄덕 "후후훗, 페튜니아! 다리잡아!!" 아픈 목을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현민의 몸에 올라타버린 발록이 현민의 양손을 단단히 고정시켰고, 페튜니아를 시켜 그의 다리마저 잡아버렸다. "자~, 루나군?" 섬뜩! 입술을 훑고 있는 발록의 모습은 누가 봐도 매력적이었지만 그녀에게 잡혀있는 현민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마계의 존재처럼 보일 뿐이었다. "우으윽...." 현민을 놀리기 위한 것인지 발록은 예전의 기억을 살려 인기척을 들어냈고, 신경이 예민한 현민은 그녀에게서 풍겨나오는 달콤한 향기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바둥바둥 "꺄악!" 위기(?)를 직감한 현민이 몸의 움직임을 더욱 크게 하자, 그의 힘을 참지 못한 페튜니아가 다리를 놓쳐버렸고, 현민은 이틈을 타 재빨리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깨어나라, 깊고 깊은 잠에서 일어나 나를 수호하라. 어둠속의 너를 부르는 존재가 곧 너의 주인이니, 나의 부름에 답하여 지금 눈을 떠라. 루인아츠!" 촤르르르륵! 잠에서 깨어난 루인아츠가 그녀의 팔을 감쌌고, 그녀는 강해진 힘으로 현민의 두 다리를 꽉 붙잡았다. "자꾸 바둥거리면 재미없을 줄 알아." "공간과 공간의 벽을..." "사일런스~." 뻐끔뻐끔 "마법에 약하기는 하지만 마족에게 이 정도는 기본이라는 말씀." 현민을 완전히 제압한 발록은 자신의 얼굴을 현민에게 가까이 했고, 그녀의 얼굴이 현민과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꼬리도 점점 심하게 살랑(?)거리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아아?'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느낌. 온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은 현민은 왠지 모를 익숙한 기분에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가 마음을 가라앉히기 시작하자 그의 몸에서 느껴지던 감각이 그를 벗어났고, 그는 마치 영혼이 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관찰했다. 스윽... "응?" '아?' 의지가 없기에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몸이었지만, 그의 몸은 의지 없이도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발록 또한 분명히 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던 현민이 별다른 동작없이 자신의 손을 벗어나자, 말도 안돼는 상황에 놀랐는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원하는 건가요?" "어, 어떻게 말을?" '뭐, 뭐야?' 현민은 분명히 발록의 사일런스 마법에 걸려 있었다. 아니, 걸려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법이 걸려있다는 것을 무시하듯이 그의 몸은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나를 원하는 건가요?" '게임 시스템인가? 뭐지? 도대체 뭐야?!' 너무나 또렷이 보이는 자신의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자 현민은 왠지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분명히 보고 있고, 듣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존재였다. 현민의 몸은 발록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아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왔고, 고장난 라디오 마냥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를... 원하는 건가요?" 흠칫! 발록과 현민의 코가 맞닿아 있는 상황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페튜니아가 현민의 발을 놓은 채 물러나 았었고, 발록은 그 자세 그대로 현민을 마주보고 있었다. "넌 누구지?" "나를 원하지 않나요?" "대답해, 넌 루나가 아냐. 넌 누구지?" 현민의 목에 날카로운 손톱을 가져간 발록은 차가운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흘러나왔고, 그 기운은 거의 본체의 그것과 비슷한 정도였다. "나는 당신이 바라보는 루나에요. '나'를 사랑하는 발록이여." 쪽. '무, 무슨짓을!!' 콰드드득! 현민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의 입술을 발록의 입술에 가져갔다. 자신의 몸이 행한 일에 당황한 현민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으나 그의 비명을 들어주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현민에게 입술을 빼앗긴(?) 발록은 현민의 목에 닿아있던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으나 그녀의 손에 차가운 바닥만 부서졌을 뿐, 그녀의 의도대로 현민을 공격하지는 못했다. "넌 누구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지?' 한순간에 멀리 도망간 것은 그렇다고 해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거리에서의 공격을 피해버린 현민은 절대로 평상시의 그라고 할 수가 없었다. "아, 아아..." '느낌이...' "응?" 단순히 구경만 하고 있던 현민은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 순간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깨달았다. 현민의 이상한 움직임에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던 발록은 현민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져 버리자 그에게 다가가 넘어지고 있는 그를 안아주었다. 푹! 평소 같았으면 당장에 도망갔을 현민이었지만, 그의 몸은 자신의 생각처럼 쉽게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뻐끔뻐끔... "캔슬." 이전에는 어떻게 말한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현민은 입만을 뻐끔거리고 있었고, 발록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현민을 위해 마법을 없애주었다. "모, 몸에 힘이 없네요. 하아, 하아...." "루나." "네?" 현민을 품에 앉고 자리에 주저앉은 발록은 차분한 어투로 현민을 불렀다. "가슴에 대고 숨쉬지 마라. 간지럽다." "큭!" 발록의 말을 들은 현민이 그녀의 품을 벗어나기 위해서 발악했지만, 발록은 현민을 놓아주려 하지 않고 품 안에 꼬옥 안았다. "어떤 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가지고 놀려 하다니." "우우웁! 우웁!!" "어이, 숨까지는 참겠지만 깨물지(?)는 마라. 그것은 참기 힘들군...." 발록의 품을 벗어나기 위해 거칠게 숨을 쉰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로 깨문적이 없던 현민은 그녀의 품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렇게 침몰했고, 발록은 자신을 바라보는 페튜니아를 보며 미소지었다. "너도 안아볼래?" "하, 하...!" "웃차! 응?" 현민을 언제까지나 품안에 안고 있을 수는 없기에, 발록은 현민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그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발록이 현민의 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안 페튜니아가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발록의 기합소리에 고개만 휘저었다. "싱겁긴... 어이, 정신 좀 차려봐." 흔들흔들... 현민의 정신은 멀쩡했지만 그의 몸은 점점더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말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에는 말할 힘조차 남아있지가 않은 것 같았다. '모, 목아파....' "네가 기운이 없다면야. 뽀뽀~." "으으윽...." 말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은 현민의 몸이었지만, 최악의 상황(?) 때문인지 그는 자신의 손을 들어올려 필사적으로 입을 막으려 했다. 그런 현민의 노력이 가상했던지, 얼굴을 가까이 하고 있던 발록은 페튜니아에게 현민을 건내주었다. "흐음... 원래대로 돌아온 건가? 도대체 아까는 뭐지?" 페튜니아는 겨드랑이 부분에 손을 넣어 현민을 끌어안았다. 페튜니아의 품에서 축 쳐져있는 현민을 바라보는 발록의 표정에는 현민에 대한 의문이 담겨 있었고, 한동안 그들은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를 않았다. "로....그 아웃." "어, 어라?" "응?" 시간이 지나서인지 말할 힘이 돌아온 현민은 로그아웃을 해버렸고, 페튜니아의 품에 안겨있던 현민의 신형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아.... 도망가는 것 하나는 대단하다니깐." 현민의 도주 솜씨에 감탄한 발록은 멍하니 서있는 페튜니아를 바라보았다. "안 할거야? 덤벼봐." "아, 네!" 발록은 도망쳐버린 현민에게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고, 페튜니아도 자신을 재촉하는 발록 때문에 그를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어차피 마법진으로 인해 소환되는 발록이었기 때문에 현민의 존재유무는 특별히 신경 쓸 것이 없었다. -------------------------------------------------------------------------------- 위이이이잉..... "으윽..." 겨우겨우 로그아웃을 할 수 있었던 현민은 캡슐을 열고 일어서는 순간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해보았지만 쉽게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게임속의 시스템이었나? 아니면 이중인격?" 피식! 마법진을 그릴 때 알지도 못하는 말을 했던 것처럼 지금의 일도 하나의 시스템이라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이중인격이라면 말이 되기는 하겠지만 거의 20년 가까이를 살아오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린 적은 없었기에 그것 또한 아닌 것 같았다. 털썩! "하긴, 그런거 신경쓸 필요도 없지...." 캡슐에 누워버린 현민은 몸을 뒤척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두운 방안과 포근한 캡슐속에서 조용히 누워있는 현민은 천천히 잠으로 빠져들어갔다. "으응...?" 이제는 버릇이 되어 자동으로 눈을 뜬 현민은 침대에 누운 채 가만히 있었다. "우우..." 자다 일어난 현민은 평소의 이미지와 다르게 베개에 얼굴을 묻고 일어나기 싫은 듯, 투정부리는 듯한 귀여운(?) 소리를 냈다. "하아..." 한동안을 끙끙거리다가 베개에서 머리를 든 현민은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고, 그런 그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것은 처음 눈을 뜨고 30분이 지나서였다. "나, 무슨 꿈꾼거 같은데.... 돼지는 아니고, 여자 꿈도 아니고. 뭐였지?" 무언가 꿈을 꾼 것은 확실했지만 꿈을 꿨다는 것만 인지할 뿐, 꿈속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가 않았다. "으... 몰라, 무슨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에 관한 것이겠지. 꿈속에서도 문제 푼 건가? 쿡쿡..." 예전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공부를, 잠까지 줄여가며 하고 있으니 왠지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툭툭! 잠에서 일어나 운동할 준비를 마친 현민은 조용히 집을 나섰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이른 시간이기에 작은 소리도 다른 사람을 깨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나와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들어마신 현민은 가벼운 달리기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였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어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하루이기도 했다. "현~민아~." "응." 언제나처럼 활짝 핀 얼굴로 옥상에 올라온 지혜는 현민의 옆에 달라붙으려 했다. 하지만 현민은 그런 지혜에게 한 치의 틈도 주지 않았고, 오늘도 현민의 승리로 그들의 대결도 막을 내렸다. "그보다 언제 나랑 사냥하러 갈 거야? 아직도 시간 안돼?" 현민과 사냥하기 보다는 데이트를 즐기고 싶은 지혜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현민을 꼬시려 애썼으나, 현민은 그런 지혜의 부탁을 단 한번도 들어주지 않고 있었다. "나랑 다닐 생각하지 말고 레벨 좀 올려." "응? 왜?" "이번 여름방학 시작할 때, 제2회 토너먼트가 있을 예정인가 봐." "정말?!" 현민의 말을 들은 지혜는 복권에 당첨된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현민은 그런 지혜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매직보드를 풀었다. "근데, 그걸 왜 지금 알려줘?" "이번주 안으로 공지 뜰거거든." "현민." "응?" 문제를 풀고 있는 현민의 앞에 다가간 지혜는 현민의 매직보드를 향하고 있는 현민의 얼굴을 들어올려 자신을 바라보도록 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그, 글쎄...." "호오~, 그래?" 끄덕끄덕 왠지 묘한 웃음을 흘리는 지혜를 보니, 그녀에게 미리 말해준 것이 어마어마한 실수인 것만 같았다. "3√r^2." "아앗!" 그녀의 말한마디에 현민이 풀고 있던 문제가 리셋되어 버렸고, 지혜는 잔인한 표정을 지으며 문제를 계속 리셋 시켰다. "∏p... 2∑3%26#8731:a%26#8732:53b..." "그, 그만!" 그녀가 문제를 맞추면서 리셋의 횟수가 올라갈수록 문제의 난이도 역시 높아져 갔고, 필살적으로 매직보드를 보려하는 지혜를 간신히 때어놓은 현민이 매직보드의 문제를 봤을 때, 그의 머리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악마." "마녀." "..." "..." 상당히 유치해 보이는 둘의 싸움이었지만 그들의 만남은 언제나 이런식이었고, 이제는 서로에게 많이 익숙해져 있는 둘이었다. "현민아, 오늘도 야자 안해?" "응." 야자를 안 한다는 현민의 소리에 환호한 지혜는, 최대한 현민에게 달라붙으려 했다. "나랑 데이트 하러 가자." "데이트는 연인들끼리 하는거야." 팔짱을 끼려는 지혜의 손을 피한 현민은 그녀와 자신의 관계가 연인은 아니라고 돌려 말했다. "그럼, 놀러가자." "하아... 어디가려고?" '아자!' 현민은 아직 승낙도 하지 않았지만, 지혜는 이미 현민이 승낙한 것처럼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동안 지켜봐온 현민의 성격상 저런 말이 나온다면 이미 간다고 확정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나 옷 좀 사려는데 짐이 많을 것 같거든." "멀리는 안돼." "응! 중심상가에서 살거야." 학교와 집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곳이었기에, 그곳이라면 크게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물론,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뿐이지만 말이다. "가자~." "붙지 좀 마." 현민은 자꾸만 달라붙는 지혜를 피했고, 지혜는 자꾸만 피하는 현민에게 달라붙었다. 그런 아름다운(?) 두 사람의 모습은, 주위사람들로 하여금 살기를 일으키게 만들 정도였다. "그보다 무슨 옷을 사려고 하는거야?" "이제 여름이잖아. 노출을 준비해야지." 현민과 같이 있어서인지 지혜의 표정은 방방 뜨고 있었지만 그녀의 옆에 있는 현민의 표정은 축 가라앉아 있었다. "현민아, 저기저기!" "응? 안가! 너 저걸 사려고 온 거야? 그런 건 친구들하고 가야지!!" 크게 소리치는 지혜의 손길을 따라 눈을 돌린 현민은 창가에 란제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속옷가게를 보며 크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인지 몇몇 사람이 현민을 바라보았지만 그들보다 더 중요한게 있었기에 그들의 시선을 신경쓰지는 않았다. "안간다니깐." "뭐 어때~. 너 보여주려고 사는건데." "푸훗!!!" "컥! 콜록콜록!" 너무나 큰 현민의 목소리 때문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은 지혜의 입에서 나오는 발칙한(?) 말 때문에 입에 들었던 음식물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도 보여줄 사람이 없어서 서러운데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에 너무 놀랐기 때문이었다. "제발 장소 좀 가려가면서 말해. 여자애가 부끄러움도 없어?" "네가 책임지면 되잖아." "크윽!" "으으으...." 이번에도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몇몇 노처녀, 노총각들이 서둘러 자리를 피해버렸다. 자꾸만 비교되는 자신들의 처지가 그들의 마음을 후벼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안 갈거야?" 지혜는 어떻게든 현민을 데려가기 위해 그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현민은 지혜가 온 힘을 다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 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나 혼자 들어가서 사올게." "하아... 저기 앉아 있을게." "응. 대신 집에 가면 어울리는지 말해줘야 해~." 콰당! 쿵!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있던 노총각, 노처녀들은 그들의 말에 발이 꼬여 넘어졌고, 또 다른 몇몇은 가로수나 기타 장애물을 보지 못한 채 들이박아 버렸다. "제발...." 주변의 사람들이 일으키는 소동이 많아지고서야 그들이 눈에 들어온 현민은 이 이상 사고를 치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옮기고 싶었다. 점점 많아지는 아줌마들의 시선 중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혜는 그런 현민의 마음과는 반대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또 한번의 아픔을 전해주었다. "현민아 타협하자, 남자인 네가 저기에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하니깐 저기 벽에 있는 것 하나만 집어올게 어울리나 봐줘." 그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함을 느낀 현민과 주변 사람들은 천천히 속옷매장의 안을 바라보았고, 벽에 걸려 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들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노총각, 노처녀, 아줌마 할 것 없이 전부 다 붉어진 얼굴로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사, 사지마!" 벽에 걸려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현민도 더 이상 자리에 남아있기가 힘든지 지혜를 내버려 둔 채 서둘러 자리를 피해버렸다. "어차피 입으면 좋아할 거면서.... 야, 같이가~." 아쉬움이 남는 것인지 속옷매장의 벽에 걸려 있는 속옷들을 다시 한번 바라본 지혜는 저 멀리 가고 있는 현민을 향해 뛰어갔다. 속옷매장의 벽에 걸려있는 그것은 가장 평범한 것이 T팬티였고, 그밖에도 망사, 끈, 란제리 등 각가지 야한 속옷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 "어디가? 나 아직 옷 안 샀단 말야." 저 멀리 걸어가고 있던 현민을 따라잡은 지혜는 상가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현민을 붙잡았다. "속옷정도라면 혼자사도 상관없잖아? 난 간다." "야~. 장난한거 가지고 삐졌어?" "안 삐졌어." "삐진것 같은데?" "안 삐졌다니깐." "그래? 그럼, 가자." "야!" 지혜를 향해 크게 소리치긴 했지만 현민의 발걸음은 이미 지혜를 따라가고 있었다. 매장에 도착한 지혜와 현민은 이런저런 옷을 구경하였고, 현민은 지혜가 옷을 고를때마다 이런저런 투정을 부렸다. "이 옷 어때?" "그거 입을거면 속옷만 입고 다녀도 되겠네." 짧은 미니스커트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자신을 향해 물어보자, 현민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말해주었다. 현민의 말을 들은 지혜는 볼을 부풀리며 옷을 내려놓았고, 이번에는 이전 것보다 약간 긴 치마를 잡았다. "이건 괜찮아?" "그게 그거 같은데?" 조금 전 것과 비교했을 때 긴 것이지, 객관적으로 본다면 현민의 말대로 그게 그거였다. "그럼 어느게 어울릴 것 같은데? 네가 골라봐." "내, 내가?" 자신이 마음에 드는 옷을 현민이 구박하자, 심술이 난 지혜는 현민에게 옷을 고르라고 했다. 선택의 화살은 현민에게로 향해졌고, 현민은 한줄기의 땀을 흘리며 주위에 있는 여성옷을 살펴보았다. "음... 이거랑 이거." "이게 뭐야? 유행 다 지난거잖아." "그, 그래....?" 가장 무난해 보이는 반바지와 티를 골라주었지만 유행이 지난 것이었던지 지혜가 마음에 안든다고 소리쳤다. "나한테 어울릴만한 것 좀 골라줘 봐." "이건 어때?" "응?" 자신을 재촉하는 지혜를 향해서 현민은 하나의 옷을 건내주었고, 지혜는 깜짝 놀라며 현민이 건내준 옷을 살펴보았다. "원피스?" "응, 보기보다 편할 것 같아서." 마녀로 생활할 때 언제나 원피스를 입고 다니기 때문인지, 다른것은 몰라도 원피스에 대한 소감(?)만큼은 많이 알고 있었고, 자신이 느껴본(?) 경험을 바탕으로 했을 때, 그의 손에 있는 원피스가 가장 편한것 같았다. "어, 어째 좀..." "난 골라줬으니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마." "윽!" 현민이 먼저 선수치자 신음소리를 내뱉은 지혜는 찡그린 인상으로 옷을 바라보았다. "괜찮을 것 같은데 한번 입어보시지 그러세요?" "예?" 상술인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보고 있던 직원이 지혜에게 말을 걸어왔고, 지혜는 현민과 옷을 바라본 뒤, 조용히 탈의실로 들어갔다. "이상하기만 해봐." 원피스란 것을 좋아하지 않는 지혜는 현민을 노려보며 탈의실 안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직원은 현민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오래 사귀셨나봐요." "아, 아뇨. 그냥 친구에요." "쿡쿡쿡." 오해를 하는 여직원을 향해 진실을 말해주었지만 그녀는 현민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샤르륵... "어, 어때?" 그녀 스스로는 많이 어색한 모양인지 쑥스러워하고 있었지만, 무릎까지 오는 하늘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지혜는 그의 생각보다도 더욱 잘 어울렸다. "상당히 잘 어울리시는데요?" "진짜요?" 여직원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지혜는 거울의 앞에서 비켜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현민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에요?" "145,000원입니다." "조, 좀 비싸네요." 그동안 자신을 위해 많이 신경 써준 지혜였기에, 그녀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옷을 사주려했지만 그런 그의 마음은 가격표란 이름의 장애물에 주춤해 버렸다. '어차피 돈은 많이 있지만....' 정확히 얼마가 들어있는지는 모르지만, 수십, 수백 개의 아이템을 팔았던 적이 있는 현민은 적어도 15만원이상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돈 찾을만한 곳이 가까운 곳에 있나요?" "1층에 가시면 입구쪽에 현금지급기가 있을거에요." 한몫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녀는 연신, 웃음으로 현민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금방 다녀올테니, 잘 말해주세요." "예." 별로 멀지도 않은 거리였지만 현민은 그 짧은 거리마저도 뛰어갔다. 스윽. 삑, 삑, 삐삐삐삑. "컥!" 현금지급기 앞에서 열심히 버튼을 누르고 있던 현민은 무엇을 본 것인지 급히 숨을 내뱉었고, 주위의 사람들은 그런 현민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현재 잔액 : 8,156,172,963원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80억?!!'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분명히 80억이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드를 다시 긁어도 잔액은 분명히 80억이었다. '도, 도대체 얼마에 팔렸기에?' 단순히 1,2만원으로 거래 될 거라 생각했던 아이템이 도대체 얼마에 팔린 것인지... 그의 통장에는 학생으로서 절대로 벌 수 없는 그런 돈이 들어있었다. "학생 무슨 문제 있어?" "아, 아니에요." 현금지급기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의아하게 여긴 경비가 현민에게 다가왔고, 현민은 다급히 15만원을 찾은 다음, 지급기에서 멀리 떨어졌다. "화장실이 왜 이리 오래걸렸어?" "아, 그, 그게..." 지혜가 엉뚱하게 물어보자 현민의 시선은 여직원에게로 향했고, 그는 여직원이 자신을 향해 윙크하는 것을 보았다. "여기 처음 와서 위치를 몰랐거든. 그래서 좀 헤맸어." "그래?" "응." 현민의 말을 믿는 것인지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은 채 조용히 넘어갔고, 현민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언니, 이 옷 얼마에요?" "지혜야, 그동안 내가 신세진 것도 있으니깐 그 옷은 내가 선물할게." "정말? 이거 얼만데?" 현민이 선물해 준다니, 마음은 기뻤지만, 옷이 비쌀 경우 현민에게 미안하기에 그녀의 손은 가격표로 향했다. "14,500원이에요." "그래요?" 지혜보다 한발 나서서 가격표를 뜯어버린 여직원은 마지막에 붙어 있는 0하나가 빠진 가격을 불러주며 현민을 향해 웃어주었고, 현민은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학생으로서 약간 비싼감이 없지 않았지만 80억이 들어있는 통장을 확인한 후였기에 크게 후회하지는 않았다. 물론, 통장에 80억이 없었다면 현민이 옷을 사줬을지가 미지수였다. "자, 이번엔 다른 옷가게로~." "또?" 벌써 하나의 옷을 사줬지만 지혜는 아직도 멀었다는 듯이 근처에 있는 다른 옷가게를 찾고 있었다. "지혜야, 나 일찍 들어가야 해." "응?" "지금도 상당히 무리해서 시간낸 거란말야." 약간 서두르는 느낌의 현민 때문에 실망한 것인지 지혜의 표정은 조금전과 다르게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지혜의 그런 얼굴에 현민도 미안한 마음이 생겼지만 더 이상 시간을 늦출수는 없었다. "알았어... 그럼, 나 혼자 살게." "미안해..." 지혜에게 사과를 한 현민은 집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꾸욱.... 현민이 떠나가고 홀로 남은 지혜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를 않았고, 원피스가 들어있는 쇼핑백을 두손으로 꼭 쥐었다. 축 쳐진 그녀의 어깨와 숙여진 고개가 그녀의 우울한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은 지혜가 우는것은 아닌지 관심을 가졌다. 툭! "응?" "하아.... 가자."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자 고개를 든 지혜는 자신의 눈앞에 현민이 있는 것을 보았다. 현민은 지혜의 어깨를 톡톡 치며 가게를 가르켰고, 지혜는 환해진 얼굴로 현민을 이끌었다. "아~, 재밌었다. 오늘 정말 고마워." "하아... 그래." 8~9군데의 옷가게를 돌아다녔지만 지혜의 손에 들린 것은 현민이 사준 단 하나의 원피스뿐이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만 한 현민은 지혜의 울 것 같은 모습에 발길을 돌린 자신이 후회됐다. "응? 현민아 나 저거 해보고 싶은데." "응?" 지혜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린 현민은 지혜의 손이 가르키는 곳에 멋들어진 할아버지가 이상한 물건들을 깔고 점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점?" "빨리와!" 현민이 결정을 하기도 전에 지혜는 이미 점쟁이 할아버지의 앞에 달려가 있었고, 현민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가 있는 곳에 걸어갔다. "너무 비싸요, 할아버지. 깎아주시면 안돼요~?" 복채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혜는 할아버지에게 애교를 떨며 가격을 깎고 있었고, 현민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스스로도 모르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좋아, 깎아주마. 뭐가 알고 싶은거냐?" "저희 둘의 궁합이요." 지혜가 현민의 팔짱을 끼며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고, 지혜의 행동에 깜짝 놀란 현민은 다급히 팔을 뺐다. "어디보자. 둘이 맺어지면..... 최악이군." "네?" 내려온 안경을 올려 쓴 할아버지는 차가운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여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남자가 문제가 많아. 저 얼굴을 보니 운 좋아야 살인자고, 평범하면 연쇄살인범이구나." "...." "할아버지! 멀쩡한 사람한테 살인범이 뭐에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있는 현민의 표정은 싸늘히 굳어버렸고, 옆에 있던 지혜가 대신 할아버지에게 크게 따져들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지혜가 떠들던 말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현민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네놈. 무협지 좋아하냐?" 끄덕. "그러면, 천살성이 뭔지 알겠구나?" 끄덕... 웬만큼 무협지를 읽었다면야 천살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책을 좋아했던 현민도 그것의 기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네놈이 천살성이다." 흠칫! 할아버지의 말에 지혜도 놀랐고, 현민도 놀랐다. 현민이야 소설속에서 많이 보아온 천살성이 자신이라고 하길래 놀랐고, 지혜는 천살성이란 말이 가지는 뜻이 너무나 나쁘기에 그것에 놀란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현민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현민도 할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내가 만약 누구를 죽인다면....." "응?" 할아버지와 눈을 마주하고 있던 현민이 조용히 입을 열었고, 할아버지와 지혜는 현민이 할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처음은 바로 저 자신일 것입니다." '그 처음은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4권 끝=== 흠칫! 흠칫!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 서늘한 기운에, 지혜와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할아버지는 현민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전과는 다르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클클클, 그거 아느냐? 천살성이란 별은 자애로운 별이란다." "?"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구에게 버림받고, 세상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존재들에게 힘을 주는 별이 천살성이지..." 품안에서 곰방대를 꺼내들은 할아버지는 멋들어지게 담배를 피웠고, 현민과 지혜는 할아버지의 분위기에 눌려 말을 꺼내지 못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구에게 버림받고, 세상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힘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복수, 살인." 그제서야 현민과 지혜는 할아버지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고, 현민을 시험했는지 알 수 있었다. "너도 마음에 들었고 하니, 천살성이란 것은 제외하고 제대로 봐주마." 할아버지는 현민과 지혜의 손금과 얼굴을 두루 살폈고, 결과를 알아냈는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선, 너는 고집이 강한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해바라기처럼 일편단심이니 부부금슬은 좋겠고... 왠만한 사람보다 똑똑한 것 같으니 집안을 화목하게 만들겠어..." 지혜를 바라보며 얘기 해준 할아버지는 곰방대의 담배를 비웠고,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지혜는 뿌듯한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는, 천살성이란 것만 제외하고는 최상의 남편이구나! 능력이 있고 머리가 좋으니 돈이 넘쳐흐르는 상이고, 몸 또한 건강하니 왠만한 사람의 두 배는 살겠어... 이성에 대한 사랑 또한 그 사람이 좋아해주는 만큼 그 사랑을 돌려주니, 둘이 만난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구나." 할아버지가 얘기해준 둘의 궁합에 지혜의 표정은 환하게 변했고, 현민의 얼굴은 복잡하게 변해갔다.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돈이 있는 것을 맞췄다는 얘기는 할아버지의 점괘가 상당히 정확하다는 얘기였고, 어쩌면 정말로 자신이 천살성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에게 복채를 건낸 지혜가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는 현민을 잡아끌었다. "부디 저 아이의 말대로 되기만을 빌어야겠군...." -------------------------------------------------------------------------------- D-30 "지금부터 저는 토너먼트를 준비할 거에요." 이제는 6개의 단검을 익숙하게 다루는 현민은 발록이나 페튜니아와의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잠시나마 현민을 압도했던 페튜니아는 빠르게 성장하는 현민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소리지?" "죄송하지만 저는 내일부터 대련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대련을 못한다는 현민의 소리에 날카롭게 반응한 발록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싸움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고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반응하는 현민은 그동안 심심하게 지냈던 발록에게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었다. 페튜니아 역시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녀보다는 현민을 가르치는 것이 더욱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지금 정도의 대련도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아?" "약간의 시간이라지만 그 시간조차 부족할 것 같아요." 현민이 절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자, 발록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너의 실력을 증명해라. 네가 얼마나 배웠는지를 나에게 증명해라." 현민을 마주하고 있던 발록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며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악한 기운이 물신 풍겨나는 마법진은 공간과 공간을 연결했고, 마계에 있는 하나의 존재를 불러들였다. "명을!" "네 눈앞에 있는 인간을 죽여라." 그녀에게서 풍겨나오는 기운으로 발록임을 알아본 마족이 스스로 몸을 낮추며 명령을 기다렸고, 발록은 현민을 가르키며 죽일것을 명했다. 현민을 바라본 마족은 눈을 붉게 빛내며 현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하급 마족이다. 싸워서 이겨봐라. 그러면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으마." 챙! 채채챙! 챙! 최하급이라지만 마족의 기본 레벨이 100으로 잡혀있었으니 현민을 상대하고 있는 존재의 레벨이 최소 100은 넘었다는 소리였다. 그러한 것을 알고 있는 페튜니아는 멀리서 현민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만 보냈다. "발록님의 말씀대로 죽어버려라!"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고, 두 개의 꼬리가 달려있는 흉측한 모양의 마족은 8개의 기다란 손톱으로 현민을 몰아세웠고, 현민은 그러한 마족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며 상대했다. "마족은 태생적으로 체력이 높아 쉽게 지치지 않는다. 네가 계속 그렇게 한다면 죽는것은 너일 것이다."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은 채 피하기만 하는 현민이 안타까웠는지 발록은 현민을 향해 충고를 내던져 줬고, 그 때부터 현민도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 공격을 할 때마다 그의 두손에 있는 무기들은 빠르게 바뀌었고, 그런 현민의 전투방식 때문에 마족의 몸에도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마족은 전투형태라는 또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해야 할거다." "크아아아앙!!" 우드득! 발록의 말과 동시에 현민을 상대하고 있던 마족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현민의 몸에 생기는 상처들은 더욱 많아지기 시작했다. "오, 오빠...." "오라버니." "우웅, 지면 안돼는데." "힘내요." 멀리서 바라보는 네 명의 꼬마정령들도 현민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현민이 이기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스악! "꺄악!" "오빠!" "안돼!" "아!" 신체의 변형이 이루어진 뒤부터 배로 빨라진 마족의 움직임을, 현민은 쉽사리 따라가지 못했다. 그 결과, 현민이 놓친 하나의 손톱이 그의 어깨를 스쳐지나갔고, 그의 팔을 몸에서 분리시켜버렸다. 촤아아악!! "크아아악!" 두 손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마족의 공격을 한손으로 막는다는 것은 말도 안돼는 소리였고, 현민의 나머지 팔 역시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제법 버텼지만...." 스릉! "그만 죽어버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바닥에 무릎 꿇어버린 현민은 흐릿한 시야속에 들어오는 마족의 손톱을 바라보았다. "안돼!" "그만둬!" "오라버니!" "오빠!" 현민을 바라보던 페튜니아와 네 명의 꼬마정령들이 현민의 죽음 앞에 깜짝 놀라 소리쳤고, 그것으로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사르륵.....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민의 두 팔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고, 그의 앞에는 먼지만 휘날리고 있었다. 멀리서 그를 바라보던 존재들은 무엇을 보았는지 경악어린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단하군." "도대체.... 어떻게?" "오빠...." "오라버니...." "머, 멋지다." 현민이 최하급 마족을 처리해 버리자, 발록은 아쉬운 마음으로 현민을 놓아주어야만 했다. "내일부터는.... 안 나와도 된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흥!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인사를 하다니." 둘이 서로 때리고 맞는 사이(?)였지만 그 사이에 정이라도 들었는지 발록은 평소와 다르게 두 볼을 붉히며 현민의 시선을 외면해 버렸다. "최대한 빨리 마치고, 발록님이 돌아가기 전에 올게요." "빨리온다면야..." 긁적긁적. 발록은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였고, 페튜니아는 그런 발록의 행동에 작게 미소지었다. 발록에게 다가간 현민은 그녀의 손에 40여개 정도의 정령의 돌을 올려주었고, 발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현민은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현민이 사라지고나자 네 명의 꼬마정령들도 모습을 감추어버렸고, 거대한 동굴에 남은 페튜니아와 발록은 아쉬운 얼굴로 서로만 바라보았다.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이게 마지막은 아닐거에요." "날 걱정하기 보다는 너 자신 먼저 걱정하는게 나을 것 같군." 페튜니아에게 위로받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발록은 남자로 모습을 바꾸며 몸을 풀었다. "기분도 안 좋으니 대결이나 하도록 하지. 루나가 없는 만큼 네가 두 배로 한다." "물론!"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의 페튜니아는 루인아츠를 잠에서 깨우며 발록을 향해 달려들었다. 현민과 정령이 사라진 동굴의 모습은 너무나 텅비어보였지만 전투를 하는 그들에게는 더 이상 현민에 대한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은 대결을 함으로써 현민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잊으려는 것이었다. 발록에게 허락을 받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온 현민은 평소에 하지 않던 이상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뽀글뽀글... 펑! "콜록! 콜록!" 비홀더의 눈이라 예상되는 돌을 앞에 둔 현민은 시험관에서 끓고 있는 액체를 한 방울 떨어뜨렸고 액체와 돌이 만나는 순간, 작은 소리를 내며 폭발해 버렸다. "성공인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여 연기를 거둬낸 현민은 비홀더의 눈을 살펴보았고, 원하던 결과가 나온 것인지, 만족스러운 열굴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찾아냈군. 쿡쿡쿡." 스윽... "하지만, 하필 이거라니...." 현민이 손을 뻗은 곳에는 예전에 구입했던, 여러 가지의 피가 담긴 시험관이 줄 세워져 있었고 현민이 들어 올린 시험관에는 피의 주인이 적혀 있었다. -다크엘프. 적당한 것을 찾아낸 것까지는 좋았는데, 앞으로가 문제였다. "검색. 싸울아비, 다크엘프, 위치." 싸울아비 => 24,845,122건 다크엘프 => 8,545,153건 위치 => 158,423,215,482건 다크엘프 위치 => 165건 인터넷의 지식인들을 통해 원하는 자료를 얻어낸 현민은, 다크엘프의 마을들 중에 자신의 위치와 최대한 가까운 곳을 찾아서 기억했다. 물론, 최대한 가까운 것이었지, 두 곳 사이의 거리는 상당했고, 몹들도 굉장히 많이 존재하는 그런 곳이었다. "서둘러볼까?" 얼마 남지 않은 시험기간 때문에 모두가 공부를 하고 있을 시간. 현민만은 시험공부를 무시해 버린 채 싸울아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린~. 나 어디 좀 다녀올게." "응." 거실에서 실험하고 있는 린은 현민의 말에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실험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 가보실까?" 빗자루를 타고 하늘높이 날아오른 현민은 빠르게 방위를 계산한 후, 어둠의 숲이 존재하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 "어디에 있으려나...." 세 시간 정도를 날아서 어둠의 숲에 도착한 현민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다크엘프들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현민의 발아래는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이 자라있었고, 그 틈 사이로 다크엘프들을 찾는다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슈웅! "우악!" 한참을 두리번 거리며 찾고 있던 현민에게 하나의 화살이 날아왔고, 화살에 놀란 현민은 빗자루에서 균형을 잃어버렸다. "오라버니!" 현민이 바닥에 떨어질수도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윈디아는 현민의 신형을 바로 새워준 뒤, 다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휴... 어디였지?" 고개를 숙인 현민은 화살이 날와왔음직한 방향을 바라보았고, 두 번째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 재빨리 그곳으로 내려가 화살을 날린 존재를 찾았다. "멈춰!" "아! 저기...." 화살이 날아온 나무속으로 들어간 현민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십의 다크엘프들을 볼 수 있었다. "마녀인가? 목적이 뭐지?" 다크엘프도 엘프의 한 종류이기에 '진실의 눈'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현민이 마녀라는 것을 한번에 알아보았다. "아, 저기... 피가 좀 필요해서요." 태태탱! 현민의 대답에 잠시나마 활을 내렸던 다크엘프들이 다시 활을 들어 현민을 겨냥했고, 현민은 그들의 행동에 난처하다는 듯 웃음만 흘렸다. "됐다! 설마 우리와 싸우려고 찾아온 것인가?" 대표로 보이는 존재가 손을 들어 주위의 다크엘프들을 막아주었고, 그는 현민과 대화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아니요, 저는 피를 얻어가기 위해 찾아왔을 뿐이에요." 현민은 다시한번 자신의 목적을 말해주었다. "아직 얼마나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웅성웅성.... 마녀란 존재가 괴상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오랜 기간을 살아온 그들도 현민과 같은 존재는 처음 보았다. 다크엘프들의 영토에 들어와서는 다크엘프들에게 피를 달라고 하다니.... 싸우자고 찾아오는 놈들과 물건 좀 달라고 찾아오는 놈들이 좀 더 정상적으로 느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보상은 확실히 해 드릴게요." "보상?" "네!" 대화로 해결이 가능할거라 짐작한 현민의 얼굴은 밝아졌고, 그런 현민의 기분을 읽은 것인지 다크엘프들의 표정도 처음과 다르게 많이 풀어져 있었다. "일단, 마을로 데려간다." 수십의 다크엘프들에게 둘러싸인 현민의 목에는 두 개의 검이 놓여져 있고, 그의 등을 향해서 여러 개의 활이 겨냥되어 있는 상태로 다크엘프들의 마을에 초대되었다. "와~." "거기서!" "이놈!" 다크엘프들의 마을에 들어선 현민은 무언가에 당황한 듯, 두 눈을 가만히 하지 못한 채 마구 움직이더니, 결국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장로님,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목에 칼이 놓여지고, 등에 활이 겨냥된 상태에서 자신이 손님인지가 심히 의심스러웠지만 그는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보세요." "아, 그, 그게...." "고개를 들어보거라." "죄, 죄송합니다. 주, 주위가 조금...." 현민의 앞에는 세 명의 장로가 나와있었고, 그들은 고개를 들지못하는 현민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그를 대려온 대표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는 거죠?" "그, 그게.... 인간들에 비해 노출이 너무 심해서요." "푸훗." "큭큭." "크크큭." "허허허." 현민의 말에 그를 감싸고 있던 다크엘프들이 작게 미소지었다. 현민의 말대로 다크엘프들은 나뭇잎만을 사용하여 몸의 중요한 부분만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순진한(?) 현민은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은 현민은 빨갛게 익었지만 원래 빨갛게 변했던 얼굴인지라 그리 티가 나지는 않았다. "블라인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기가 불편한 현민은 자신을 향해 블라인드 마법을 펼쳤고, 앞이 보이지 않자,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호오." "재미있는 아이네요." 현민의 행동에 장로들은 묘한 웃음을 내비쳤고, 어느새 모여든 다크엘프들은 순진한 현민을 보며 키득거렸다. "그보다 얼마만큼의 피가 필요하고, 또 그에 따른 보상이 무엇인지 말해볼까요?" 조용히 자리에 앉아 현민을 바라보고 있던 한분의 장로가 직접적인 이야기를 꺼냈고, 모두의 시선은 현민을 향했다. "피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보상은 앞으로 만들어질 무기 하나와, 정령...이라고 해야할까요?" "음?" 장로들은 현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령이라는 것이 물건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정령을 거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할게요!" "세피아!" 수많은 다크엘프들의 틈 사이로 한명의 꼬마가 튀어나와 현민을 향해 매달렸다. 눈이 안보이는 현민으로서는 자신에게 매달린 존재가 누군지를 알 수 없기에 가만히 서서 상황을 살펴보았다. "장로할머니, 나 정령 갖고 싶어요. 내가 할 거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한 일을 너 같은 어린이한테 맡길 순 없다!" "할아버지!" "안돼!" "흐으윽!" 장로들의 강한 반발에 꼬마 다크엘프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고, 주변의 다크엘프들은 난처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왜 정령이 갖고 싶은데?" 자신에게 안겨 있는 꼬마의 위치를 대충 짐작한 현민은 허리를 숙이고,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어보았다. 현민의 손길을 느낀 꼬마 다크엘프는 울먹이는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며, 애절하게 얘기했다. "나, 나만 정령이 없어... 다른 친구들은 전부 정령이 있는데, 나는 정령을 볼 수도, 불러낼 수도 없어..." 꼬마의 말을 듣고 있던 주변의 다크엘프들은 꼬마를 향해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정말 가끔이지만 자연의 축복을 받지 못한 채 태어나는 아이들은 정령과의 계약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약 하시겠어요?" 분명히 안 보이고 있었지만 그의 두 눈은 장로들의 눈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고, 장로들은 세피아라 불린 꼬마 다크엘프의 눈물어린 눈을 쳐다본 후, 마지못해 승낙해 버렸다. "많은 피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한분이 조금씩만 주셔도 엄청난 양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이것은...." 현민은 인벤토리에서 정령의 돌 하나를 꺼냈고, 그것을 손에 꼭 쥐었다. "잠재되어 있는 강인한 힘을 불러들여...... 스트랭스." 흠칫! 챙! 현민의 마법에 깜짝놀란 다크엘프들이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대었고, 현민은 그 것을 무시한 채 주먹에 있는 돌을 으스러트려 꼬마의 입에 넣어주었다. 꿀꺽! "뭐하는 거냐?!" "cobweb(거미줄)" cobweb(거미줄)(2서클) 소모 정신력 : 20 능력 : 점성과 탄성이 높은 거미줄을 내뿜는다. 현재 단계 : 10 주문 : ??? 현민의 손끝에서 나온 10개의 거미줄이 꼬마의 신형을 묶었고, 다크엘프들은 갑자기 변한 현민의 태도에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못한 채 고함만 질렀다. "나 그대와 계약하고 싶다."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현민이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세피아는 허공에 별을 그리기 시작했고, 현민의 입에서 세피아와 똑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령의 문?!!" "설마?!" 기본적으로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다크엘프들은 현민이 세피아의 몸을 움직여 만들어 낸 정령의 문을 보고는 경악했다. 자연에 축복을 받지 못한 존재는 절대로 열 수 없다는 정령의 문을 현민이란 존재는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가서 좋은 친구 만들어보렴." 어느새 시야가 돌아온 현민이 세피아의 등을 쳐주며 문 사이로 밀어넣었고, 그는 환하게 웃으며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계약금은 된거죠?" "아, 아아..." "무슨 이런 말도 안돼는...." 절대로 불가능하게 생각했던 일.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해줬던 세피아에게, 현민이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정령과의 계약을 이뤄주었다. -------------------------------------------------------------------------------- "주겠다." 흠칫! 모두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황에서 현민을 끌고 왔던 다크엘프 대표가 현민의 앞으로 다가가 자신의 허리에 있는 검을 뽑았다. 스릉.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검은, 듣는 것만으로도 명검임을 알 수 있듯이 멋진 소리가 흘러나왔고, 현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크엘프가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휘릭 스윽... "인탱글!" 쉬릭! 왼팔을 들어올린 다크엘프가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팔을 그으려 했고, 그것에 깜짝 놀란 현민이 인탱글로 그의 팔을 감싸 버렸다. "무슨짓이에요!" "왜 막는거지?" 당황해 소리치는 현민을 향해, 다크엘프는 차가운 눈으로 의아함을 나타냈다. "세피로스, 딸아이를 위해서 나서는 것은 좋지만, 그대 혼자서 모든 피를 뽑을 필요는 없어요. 저기 있는 순진한 마녀가 원하는 것은 누군가의 피가 아니라 다크엘프의 피일 뿐이니까요." "흠, 죄송합니다." 장로의 말을 들은 세피로스는 칼을 집어넣은 뒤, 장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런 세피로스의 모습에 웃음지은 장로들은 현민을 보고 말했다. "딸아이를 가진 엄마라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세요." "네? 딸아이를 가진 엄마?" 장로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은 현민은 커다랗게 벌린 입으로 세피로스를 향해서 손짓했다. "타인에게 손짓하는 것은 다크엘프들의 사회에서도 예의가 아니다." 단순히 충고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현민의 손짓이 기분 나쁜 것인지, 세피로스는 차가운 어투로 현민을 보며 말했고, 그제서야 벌어진 현민의 입에서 말이 세어나왔다. "나, 남자 아니었어요?!" "풋!" "킥킥킥." "쿡쿡...." "흠! 흠흠!!" 현민의 말을 들은 주위의 다크엘프들은 입을 머리를 돌리고 입을 가린 채 키득거리며 웃었고, 그들의 그런 모습을 바라본 세피로스는 차가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로들 역시 현민의 말에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세피로스를 살피며 현민을 향해 이야기 했다. "흠! 비록 세피로스가 여성에 비해 목소리가 굵다지만." "흠흠! 가슴이 빈약하다는 것을 빼먹었구려..." "비, 비록 세피로스가 여성에 비해 목소리가 굵고, 가슴이 남자처럼 빈약하다지만." "저기... 남자보다도 근육이 많다는 말이 빠졌네요." "그, 그러니깐 세피로스가..." "그만하십시오!" 더 이상 참지 못한 세피로스가 빨갛게 익은 얼굴로 고함을 질렀고, 그들의 묘한 상황에 주변의 다크엘프들은 큰 웃음을 터트렸다. "순진한 마녀여,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지요?" "루나. 마녀로서의 저의 이름은 루나입니다." 장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현민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미소를 바라본 현민은 편안한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대답했다. "당분간 루나를 우리의 친구로 인정하며, 피를 제공하는데 협조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다크엘프들과 별다른 마찰을 일으키지 않은 현민은 원래의 계획대로 되어가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장로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 어서 뽑으세요." "아, 그, 그게...." "눈을 뜨셔야죠." 하나의 집을 빌려 피를 뽑고 있는 현민은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가린 부분보다 안 가린 부분이 훨씬 많은 다크엘프 여성들은 자신들의 행동하나하나에 얼굴을 붉히며 반응하는 현민을 보고 재미있어 했고, 장난기가 심한 몇몇 존재들은 남은 것마저도 은근히 풀어헤치며(?) 그에게 장난(?)을 걸고 있었다. "어서요~." 타고난 은신술과 미약한 인기척으로 인해 어새신으로서는 최강의 종족인 그들이었지만 다크엘프라는 종족은 엘프들보다 자유로워 농담과 장난을 즐기는 종족이기도 했다. "소, 손을 주시겠어요?" 결국 뒤로 돌아앉은 현민이 다크엘프를 향해 손을 요구했고, 다크엘프 여성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그의 겨드랑이에 발을 넣어주었다. "자세가 상당히 힘드니깐 빨리 끝내주세요." "우윽!" 상상하면 안된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다크엘프의 자세가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고, 흥분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던 현민은 다급히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호호홋, 얼마 걸렸어?" "3분 12초." 집에서 걸어나오는 다크엘프 여성은 문 앞에 대기 하고 있던 또 다른 여성에게 기록(?)을 물어보았고, 자신의 기록을 들으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12초만 빨랐으면." "그러게 하나쯤은 벗어야 한다니깐." "응, 응." "칫!, 다음에는 벗어봐야겠어." 현민이 위치하고 있는 집앞에는 다크엘프 여성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녀들 모두는 현민을 놀릴 생각으로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벌써 수십의 엘프들이 그의 집을 거쳐갔지만 단 한방울도 피를 뽑지 못한 불쌍한 현민이었다. "호호호, 봤어요? 이번에는 제가 이겼네요." "끄응..." "하아..."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던 장로는 나머지 두 명의 장로에게서 무엇인가를 가로채 왔고, 품안에 있던 물건을 빼앗긴 장로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순진한 마녀라니까요...." "남자가 마녀라니.... 인간세계에만 존재한다는 변태가 아닐까?" "글쎄요... 저렇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이성에 관해서는 정상인것 같은데." 멀리서 현민을 지켜보고 있던 장로들은 현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터트렸고, 주위의 남성들은 현민과 다크엘프 여성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 현민이 여성들과 장로들로 인해 고생을 하자, 동지애(?)를 느낀 남성 다크엘프들은 스스로 헌혈에 앞장섰고, 그들의 행동에 정말로 감동받아버린 현민은 작은 선물로 밤에 사용하는 영양제(?)와 포션을 실험실에서 가져와 나눠주었다. "손을 주시고요. 감사합니다." 다음 차례의 다크엘프가 들어와 현민의 앞에 앉았고, 이제는 익숙해진 자세로 그의 손을 받아든 현민은, 약간 어긋나 보이는 공간의 틈에서 그의 손에 작은 상처를 냈다. 찰랑~. 그의 손에서 조금씩 흘러나온 피가 어느 정도 뭉치자 그의 손을 빼낸 현민은 힐을 사용해 출혈을 멈춰주었고, 이전의 사람과 같이 몇 알의 알약과 포션 한 병을 건내주었다. "다음 분." "흠! 흠흠!" "응?" 어디서 많이 들어본 헛기침 소리에 고개를 들은 현민은 세분의 장로님들이 찾아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쿡, 쿡쿡... "??" 양쪽에 서계신 두 분의 장로할머니들은 가운데에 있는 장로할아버지를 쿡쿡 찔러댔고, 할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잘하세요." "알지요?" 장로할아버지에게 무언가 언질을 준 두 분의 할머님들은 집 밖으로 나가셨고, 현민은 혼자 서있는 장로할아버지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 나도 헌혈하러왔네." "아, 그러세요? 이리로 앉으세요." 현민은 장로님을 의자에 안내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장로님의 손을 가져왔다. "크흠!" 약간 불편해 하시기는 했지만 장로님도 다른 다크엘프들과 같이 헌혈을 끝마쳤고, 자신에게 힐을 해주는 현민을 묘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여기 이거 받아가세요." "나, 나는 영양제 안주나? 늙으니 그런게 필요한데 말야." 눈치를 보아하니 이미 다 알고 오신것 같았지만 지금도 많이 부끄러워(?) 하시기에 현민은 웃음을 참으며 영양제(?)를 몇 알 건내주었다. 하지만 장로님은 자리에서 떠나지 않은 채 얼굴만 더 붉히셨고, 현민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야만 했다. "왜 그러세요?" "그, 그게....." 무언가 쑥스러운 얘기인듯 장로님은 한참을 어물거리더니 현민의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내가 마누라가 둘이라서 말야... 조금전에 봤지? 일인분(?)만 받아 가면 화낼 것 같아서...." "네?! 두 분의 장로님 모두 아내셨어요?!" 싸울아비의 설정 중에 하나가, 엘프들의 '해바라기 사랑'인 것을 잘 알고 있는 현민은, 자신이 들은 것이 사실인지를 확인 할 수가 없었다. "그, 그게 한번에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그래도 남자가 책임은 져야 하지 않는가." "...두 분이 허락은 하셨어요?" "크흠! 흠! 내가 좀 잘나다 보니깐 그런것은 문제없지."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현민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피어올랐고, 그의 미소를 바라보고 있는 장로님의 등줄기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제, 제발 아니라고 해주게..." "죄송합니다, 쿡쿡쿡." 하필 두 분의 장로님이 창가를 지나가는 순간에 큰소리로 외쳤으니, 그 두 분이 장로할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 잘난 남자의 능력 좀 확인해 볼까요? 흥!" "얼마나 버티나 시간 재보겠어요." 두 분의 장로님들은 현민이 보기에도 찬바람을 쌩쌩 풍기며 사라지셨고, 현민은 미소지으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오래 사신 것 같은데 아직도 신혼같은 그들의 모습이 현민의 눈에는 너무 좋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장로님!" 어깨가 축 늘어진 장로할아버지가 뒷문으로 집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장로님을 부른 현민은 밤에 사용하는 영양제를 듬뿍 담아 장로님에게 건네주었다. "이정도면 혼나지는 않으실 거에요." "고, 고맙네..." 장로할아버지의 두 눈이 울먹거렸고, 현민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렸다. 장로님을 할아버지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세피아를 기준으로 잡은 것이었고, 장로님들의 외모를 봤을 때, 그들의 나이를 사람으로 짐작한다면 30~40대 정도밖에는 되어 보이지 않았다. "다음 분." 한참동안 계시던 장로님이 나가고, 남성 다크엘프들의 협조는 계속되었다. 자신들이 현민을 도와주는 만큼 현민도 자신들을 도와(?)주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더 편한 마음으로 현민에게 협조할 수 있었다. "하아... 많이 모았네." 하루라는 시간을 소비해서 얻은, 피의 양은 하나의 욕조를 가득 채울만한 양이었다. "중얼중얼...." 자리에 앉아 검붉은 색의 피를 바라보는 현민은, 이런저런 마법들과 마법진을 생각하며 최강의 무기를 만들 공식과 방법을 정리해 나갔다. 마지막 재료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구했기에 이제 남은것은 무기를 제작하는 것 뿐이었다. "저런게 마녀인가요?" "후훗." 멀리서 현민을 바라보고 있던 세피로스는 자신의 옆에 있는 장로를 향해 질문을 던졌고, 장로는 의미모를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너무 위험한 존재입니다." "걱정하지마라. 그는 마녀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진정한 마녀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니, 걱정같은 것은 하지 말거라." 모순되는 장로의 대답이었지만 세피로스는 장로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머리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의 몸과 마음은 이미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무섭습니다." "응?" "모든 존재들에게 미움 받는 마녀라는 존재가 저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녀라는 존재들이 마을에서 살지 못하고 숨어사는 이유. 모든 존재에게 미움받고 있다는 사실이 세피로스의 입을 통해서 잠깐 흘러나왔지만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고 그냥 흘려버렸다. "괜찮다. 내 눈으로 바라본 저 존재로 인해 그러한 생각도 없어질 것이니 말이다, 허허허!" "가는건가?" "네." 딱 하룻동안, 다크엘프의 마을에서 머무른 현민은 만족할 만한 양의 피를 모았기에 천천히 떠날 준비를 했다.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에서 더 이상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낭비였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찾아올 거라 믿으니, 빨리오라 하지는 않겠네." "네, 안녕히 계세요." 이른 새벽, 장로님들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은 현민은 처음왔을 때와는 반대로 조용하게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홀로 남은 장로할아버지는 현민이 사라진 장소만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무엇인가를 잊어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보, 약은 받았어요?" "아차!!" 그제서야 자신이 잊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해낸 장로는 옷이 달라붙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서둘러 도망가기 위해 사방을 살폈다. "잘나신 남편님께서 어디를 도망가시는 거죠?" 끼기기기긱. 천천히 돌아가는 장로의 목에서, 녹슨 쇠가 맞물리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저희에게 능력을 보여주시지 않겠어요?" "꿀꺽!" '어서 돌아와 주게! 제발~~~!!' 현민이 떠나고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한입으로 두말하는 불쌍한 장로할아버지였다. -------------------------------------------------------------------------------- "후우, 후우, 후우...." 열심히 뛰어가고 있는 현민의 손목과 발목에는 3kg의 모래주머니가 달려 있었고, 그의 두 손에도 3kg정도 되어보이는 아령이 양손에 쥐어져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달리기 많으로 상당한 땀을 흘린 현민은 공원의 한 부분에 자리한 후, 깊게 숨을 들어마시며 호흡을 조절해 나갔다. 팍! 호흡을 완전히 가라앉힌 후, 가만히 서있던 현민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갔고, 그의 발에 밀려난 흙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3kg의 모래주머니와 3kg의 아령을 합하여 6kg의 무게를 버티고 있는 그의 두 손은 허공을 빠르게 움직였고, 현민은 이런저런 움직임을 더하며, 싸울아비에서 발록을 상대하는 느낌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팟! 파팍! 검을 대신하기 위해 아령을 잡고 있는 것인지 현민은 아령을 쥔 두 손을 검처럼 휘두르며 허공에 있는 발록을 공격해 가고 있었다. 눈을 감은채 상상에 있는 발록을 공격하던 현민은 어느새 자신의 상상속에 빠져버렸고, 주위의 모든 것을 거부한 채 자신의 환상만을 바라보았다. 팍! 파파팟! 퍽! 팍! 그의 양 손은 6kg의 무게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발기술까지 사용하며 열중하고 있었다. "하아아... 좋다." 차가운 새벽바람은 공부로 인해 피곤한 그녀의 머리를 맑게 만들어 주었다. 시험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새벽까지 공부를 하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장이라는 지위도 있고, 수능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는 수시를 위한 내신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휘잉! 퍽! 파팍! 후우웅! "뭐, 뭐지?" 아무도 없는 이른 새벽. 촉촉한 안개가 자욱한 공원을 걷고 있던 그녀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잔뜩 긴장한 채 주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찌릉찌릉 팟! 퍼퍼퍽! 파팟! 움직임을 멈추고 청각에 집중하자 풀벌레 소리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다시금 들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본능적인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천천히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또각또각... 최대한 소리를 낮추어 접근한 그녀는 빛이 비추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서 사람으로 짐작되는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춤추는 건가? 아니면 무술가?" 파팍! 쿵!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던 그림자의 주먹과 나무가 부딪히며 믿기 힘든 소리가 울려퍼졌고, 처음으로 들어보는 황당한 소리에 그녀는 입을 벌린 채 움직이지를 못했다. "세상에, 도대체 누구지?" 멀리서 바라보던 그녀의 신형은 어느새 어둠속에 있는 존재의 근처로 이동해 있었다. 반장은 어둠속에 감추어진 존재를 보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며 시선을 집중하였다. 파팟! 쉬이익! '응?' 왠지 가까워 졌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그림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던 반장은 자리를 피하지 않았고, 그것이 엄청난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정도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어둠속의 존재에게 그 정도의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던지 두 사람의 거리는 순간 급속도로 줄어들어 버렸고, 그의 주먹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꺄아아악!" 흠칫! 빡! 그녀의 비명과 함께 엄청난 소리가 공원에 울려퍼졌고, 그것을 끝으로 공원은 잠시간 침묵했다. "꺄아아악!" 자신의 상상속에 빠져,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귓가를 울리는 우렁찬 비명소리에 현실로 돌아왔고, 자신의 주먹이 누군가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위험해!' 그냥 때려도 충격이 상당한데 6kg의 무게까지 추가되어있으니, 지금의 주먹에 맞는다면 누군지는 몰라도 적당한 선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현민의 눈에 보이는 그의 주먹은 느리게 날아가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의지대로 멈추려 하지는 않았다. '막아야 해!' '그러면 움직여.' 빡! 현민으로 인해 요란한 소리가 흘러나왔던 공원이었지만 그의 움직임이 멈추자 공원에도 정적이 찾아왔다. "괜찮아요?" "아, 네..." 눈을 감고 주저앉아버린 반장은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응? 현민?" "누구...?" 달과 마주하고 있는 현민은 그림자로 인해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달을 등지고 있던 반장은 자신에게 주먹을 날렸던 존재가 현민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 반장." 이제는 이름을 대신하고 있는 '반장'이라는 호칭에, 현민은 그제야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렸다. "아?! 이 시간에 여긴 왜?" "시험기간이라 공부하고 집에 가는 길이지..." 남들이 잠을 자고, 현민이 운동을 하는 이른 새벽. 이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간다는 반장의 말에 현민은 질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아... 그럼 잘 가." 반장의 말을 들은 현민은 몸을 돌렸고, 자신의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그는 이내 반장의 손에 잡혀 움직이지 못했다. "현민아 아까 엄청난 소리 나던데 괜찮아?" "하아.... 다친 곳 없으니깐 일찍 들어가. 피곤하지 않아?" 자신의 오른손을 잡아채는 반장의 손길을 뿌리친 현민은 집을 향해 걸어갔고, 그의 뒤를 쫓아간 반장은 다시한번 그의 오른손을 살펴보았다. "안 아파? 괜찮아?" "말했잖아. 괜찮다고."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기에 크게 다쳤을 거라 생각한 현민의 오른손은 그녀가 살펴봤을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하아... 너 집 어디냐?" "공원 반대편." "가자. 혹시 모르니깐 데려다 줄게." "그, 그래..." 데려다 준다는 현민의 말에, 반장은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한 채,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아까 굉장하게 움직이던데, 무슨 무술같은거 하는거야?" 멈칫! "그냥 허공에 주먹질 한거야. 무술은 무슨." 잠시 걸음을 멈췄던 현민은 다시금 걸음을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장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밤에는 위험하니깐 왠만하면 집에서 공부해라. 잘 가." "으, 으응..." 현민에게서 충고를 듣는 반장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친오빠에게 꾸중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답을 마친 반장은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몸을 돌린 현민은 그제서야 왼쪽 팔을 부여잡았다. "크으윽...." 몸을 움직였기에 많은 땀을 흘렸고 또한 한밤중이었기에 잘 안보여서 그렇지, 현재 현민의 온몸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현민의 오른손이 반장을 때리려는 순간 왼손을 움직인 현민은 반장의 얼굴대신 자신의 왼팔을 때려버린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손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어서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파괴력도 컸기에 그의 왼팔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정말.... 언제나 여자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군." 짜릿한 고통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감각도 느껴지지 않은 왼팔을 부여잡은 현민은 천천히 발을 움직이며,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향했다. -------------------------------------------------------------------------------- 쏴아아아... 흠뻑 젖은 몸을 씻기 위해 욕실에 들어간 현민은 샤워기로 뿜어져 나오는 물을 맞으며, 욱신거리는 왼팔을 쓰다듬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 후발선제(後拔先制)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움직임일 때 가능한 것이지, 하나의 몸에서 이어지는 두 개의 팔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곧게 뻗어나가고 있던 그의 오른손 앞을 가로막은 그의 왼팔은 절대 올 수 없는 위치에서 튀어나와 그 스스로도 당황하게 만들었다. '가끔가다 시야가 느리게 보이는 것도 그렇고,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들어 너무 이상한 것 같아...' 평소에는 '그럴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무시하고 지내던 현민이었지만 오늘처럼 확실히 몸과 마음이 각각 움직여버리자, 더 이상 쉽사리 넘길만한 문제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촤아악! 똑, 똑, 똑.... 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 현민은 거울을 통해 비치는 자신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거울속에 비치는 그의 눈동자에는 또 하나의 자신이 비치고 있었고, 그 존재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넌.... 누구지?' "나는 너..." 흠칫! 텅! 터터텅!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말에 깜짝 놀란 현민은 급히 거울에서 떨어졌다. 그의 손이 비누통을 건드렸는지, 바닥에 떨어지는 비누통이 요란한 소리를 만들었고, 현민은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듯한 한기를 느꼈다. 똑, 똑, 똑..... 한동안 움직임을 멈춘 현민은 사방을 살펴보았고, 현민의 머리에 뭉쳐진 물방울들이 떨어지는 소리만 욕실을 울렸다. "하아...." 쏴아아아.... 멈췄던 숨을 내쉰 현민은 긴장된 몸을 풀어주기 위해 뜨거운 물을 틀었고,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온 물은 현민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현민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하나의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귀신같은 것을 엄청 무서워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무서운 영화를 볼 때도 혼자서는 절대 보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을 부끄러워한 현민은 중학교 때까지 남들이 가자고 하면 제일 먼저 나섰지만 그것도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얘기였고, 영화가 시작된 이후 가장 공포에 질리는 것은 현민이었다. '나는 너....' 쏟아지는 물을 계속해서 맞고 있던, 현민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자신이 말한 말이 메아리 치고 있었다. "도대체...." 하지만 그 뒤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고, 현민은 욕실을 벗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교복을 챙겨 입었다. 모든 등교준비를 마쳤지만, 등교를 하기에는 너무나 이른 시간이었고, 현민은 잠깐의 시간이 생긴 틈을 타 싸울아비 속으로 들어갔다. [캐릭터 룬 Lv. 77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이제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현실의 세계를 벗어난 현민은 가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린, 어때?" "일찍왔네?" "응, 약간 시간이 생겼거든." "그래?" 물론, 시간이 생겨서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어두운 시간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서 인지는 오로지 현민만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 수정본이야." 샤락, 샤락... 린에게서 하나의 노트를 건내받은 현민은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책의 내용을 훑어보았고, 여러 가지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기..." "오라버니!" "으악!!" 린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던 현민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허공에서 거꾸로 나타나는 윈디아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주저앉아 버렸다. ..... 평소에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현민의 생소한 모습에 깜짝 놀란 두 여성과 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아...."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 왠지 모르게 어색한 현민의 반응에 걱정이 되는 것인지, 두 명의 여성은 현민의 건강상태를 물어보았고, 현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린의 맞은편 의자에 주저앉았다. '괜찮다 생각했는데....'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민은 아직도 공포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영화의 내용이야 보는 순간에만 무서움이 있는 것이지만, 이번의 일은 스스로가 직.접. 겪은 것이기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있는 것이었다. "미안... 나 먼저 가볼게." 스스로가 자신을 다스릴 수 없게 되자 현민은 게임을 하고싶은 생각도 사라져 버렸다. "마음속으로 한 질문에 대답을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지?"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대답을 한 것이 절대 '자신'은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 스스로가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야, 저 새끼 뭐 잘못 먹었냐?" "그러게? 오늘은 완전 분위기판데?" 새벽의 일이 자꾸만 거슬렸던 현민은 오전내내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고, 주변의 학생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좋게 바라보지는 않았다. 띠리 띠리 띠리리리링~♪♬"자자, 모두 자리에 앉아!" 4교시의 수업종이 울리며 담당 과목의 선생님이 들어왔고, 책상에 앉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조금 심한 말이지만, 진도만 나가면 된다는 식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그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털썩!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책상에 엎드린 현민은 따뜻한 햇살 때문인지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떠라." '응?'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안가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부름을 들은 현민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인가 하여 신경을 집중했다. "눈을 떠라......" "누....구?"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현민은 졸린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어두운 공간 안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하나의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아?!" "처음 만나는군." 현민과 마주한 인물. 그의 분위기나 차림새는 상당히 달랐지만 그는 분명히 현민, 그 자신이었다. "놀라지 말고, 조용히 들어라." 꿀꺽! 현민이 무언가 말을 할거라 짐작했는지, 또 하나의 현민은 그가 입을 열도록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너 다음으로 만들어진 인격. 그러니깐 너의 또 다른 인격이다." "인격?" 끄덕. 현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또 하나의 현민은 현민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눈짓을 준 뒤, 끊어진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 "나의 역할은 중재자. '나'라는 존재를 말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인격이다." '천살성이라는 것 때문인가?' 또 다른 현민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현민은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천살성이라기 보다는 '나' 스스로의 광기(狂氣) 때문이다." "!" "너와 나는 어차피 하나이기에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니 그렇게 놀랄 필요 없다. 물론, 너 또한 가능한 일이지만 너의 정신력보다 나의 정신력이 높기 때문에 너는 나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이번에도 생각을 읽힌 현민은 또 다른 존재의 머리를 읽으려 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너에 비해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훨씬 크다." "통제?" "너라는 인격은 모든 것이 제한되어 다른 인간들과 별다를게 없는 수준이지만 나는 그러한 제한들을 통제하여 훨씬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현민은 그가 어떠한 얘기를 하는 것인지 쉽사리 파악할 수가 없었다. "너의 방식으로 얘기하자면 만능 스포츠맨에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천재'라고 할 수 있을까? 너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나라는 존재가 '나'의 육체를 사용한다면 100m를 3초안에 달릴 수 있고, 자동차정도는 가볍게 뒤집을 수 있지. 또한 교과서를 외우는데 책 넘기는 정도의 시간밖에는 필요하지 않아." "어이, 자랑하지마. 재수없어." 현민은 또 다른 자신이 너무 대놓고 자랑을 해대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두 존재는 너무나 자신다운 자신의 말에 웃으며 마음을 풀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인식'함으로 인해 너의 제한이 풀렸다." "응?" "앞으로는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거다. 그럼 잘가라." "으, 으아아악!!" 현민의 발밑으로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고, 현민은 피하지도 못한 채 그곳으로 떨어졌다. 덜커덩! "응? 뭐야?" 어두운 꿈속에서 떨어지고 있던 현민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고, 그 충격으로 인해 의자는 뒤로 넘어진지 오래였다. "지금 잠자고 있던 새끼 모두 일어나!" 현민으로 인해 기분이 나빠진 선생님이 자고 있던 아이들을 모조리 일으켜 세웠고,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는 아이들은 현민을 향해 안 좋은 눈빛을 보냈다. "너희들 모두 실기평가 10점 감점이다! 앞에서부터 번호 불러!" 선생님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라 다들 고생하고 있었는데 현민이란 존재로 인해 점수를 날렸다 생각하니, 그것이 너무나 화가 난 것이었다. "반장! 자습시켜!" 아이들의 태도에 화가 난 선생님은 교실을 나가버렸고, 모두의 시선이 현민을 향해 돌려졌다. 퍽! "애새끼야, 걸릴려면 혼자 걸리지 왜 지랄인데? 앙?!" 현민의 뒤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현민의 뒷통수를 때렸고, 현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뭘 꼬라봐!!" 퍽! "꺄악!" 남학생이 주먹이 현민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으나 현민은 그의 주먹을 막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크게 울려 퍼지는 주먹에 여자아이들은 깜짝 놀랐고, 남자들은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을 맞은 현민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약해....' 누가 보기에도 상당한 파워를 가지고 있을듯한 주먹이었지만 그것을 맞은 현민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퍽! 또한번의 주먹이 현민의 얼굴에 날라 왔고, 이번에도 현민은 가만히 서서 그의 주먹을 맞아 주었다. '죽여?' '참아!'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기분이 세 대나 맞았기에 기분이 나빠진 현민의 눈에서는 차가운 안광이 흘러나왔고, 그의 마음속에서는 또 하나의 그가 다급히 외쳤다. 또 다른 현민이 평가하는 현민의 존재는 왠만한 인간정도는 정말로 죽일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퍽! 퍼퍼퍽! 퍽! 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현민을 둘러싸고 있던 남학생들이 현민을 향해 주먹과 발을 날렸고, 현민은 그들의 틈에서 모든 것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현민아!" '반장? 큭!' 어디선가 외치는 반장의 목소리에 끊어졌던 생각이 돌아온 현민은 자신의 왼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주먹질이 아침에 다친 왼팔을 건드린 것만 같았다. 턱! 아이들의 발길질에 의해 넘어져 있던 현민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발을 잡아 챈 후,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물론, 아이들은 현민이 일어나지 못하게 계속 주먹질을 날렸지만 솜방망이 같은 그들의 주먹질이 현민을 막을 수는 없었다. 퍽! 우당탕탕!!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자신을 처음 때린 남학생의 몸을 밀치고 그의 위에 올라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반장이 현민의 주먹을 잡아챘고, 현민은 다음의 동작을 행할 수가 없었다. "그만해...." "꺼져!" 퍽! 현민의 밑에 깔려있던 남학생이 소리치며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렀고, 현민은 반장이 잡고 있던 오른손을 뺀 후, 남학생의 머리를 짓눌렀다. "날 건드리지 마...." 멈칫! 낮게 가라앉은 현민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울리는 순간 싸늘한 기운을 느낀 그는 움직임을 멈추어 버렸다. 툭!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가방을 집어들었고, 수업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교실을 나가버렸다. "현민아!" 모두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반장만이 현민의 뒤를 쫓아 따라 나갔고, 남아있던 반 아이들은 현민의 태도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수업 안 끝났잖아." "..." "내일 담임한테 혼나고 싶은거야?" "..." 신발조차 갈아 신지 않은 반장이 현민의 뒤를 쫓아왔지만 현민은 그런 그녀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야! 최현민! 같이 가자니깐?!" 어느새 그들은 뒷문을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고, 현민은 옆에서 소리지르는 반장을 무시한 채, 파란불로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터벅터벅...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나서야 현민은 걸음을 옮겼고, 반장은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현민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야! 같이..." 현민이 완전히 건너가고 나서야 다급히 횡단보도를 뛰어간 반장은 갑자기 다가오는 차에 깜짝 놀라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끼이이이이익! 현민이 건넌 횡단보도는 도로의 가장자리에 붙어 있었고, 우회전 신호등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상당히 위험한 골목이었다. 평소에도 많은 사고가 나는 장소이기에 표지판도 마련되어 있었지만, 그 표지판이라는 것도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자리잡고 있어 쓸모가 없었다. 이번의 경우에도 언덕길을 빠르게 내려오던 한 대의 스포츠카가 아무런 생각없이 우회전을 한 것이었고, 그 때를 맞추어 반장이 길을 건넌 것이었다. -------------------------------------------------------------------------------- "아?!" "야, 이 미친년아! 차에 치어 뒈지고 싶냐?!!" 다행히 급하게 달려오던 차는 반장의 앞에서 멈추어 섰다. 하지만 너무 놀라서인지 반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고, 운전자는 그런 반장을 향해 이런저런 욕을 하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나와." "뭐?" 어느새 운전석에 다가간 현민이 운전사를 밖으로 불렀고, 운전사도 한주먹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당당히 차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횡단보도고 지금은 파란불이니깐 신고할테면 신고하세요." 운전자에게 깜빡이는 파란색 신호등과 발아래의 횡단보도를 보여준 현민은 차로 다가가 주먹을 쥐었다. 휘익! 퍽! 챙그랑! 퍼퍽! 우직! "뭐, 뭐하는 거야?!!" 야구방망이를 휘둘러도 부수는게 쉽지 않은 자동차를, 현민은 맨 주먹만으로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차를 마구 때리는 현민의 두 주먹에서는 피가 흘러내렸지만 현민은 그런 것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자동차를 때렸다. 손으로 때려서 부서지지 않는다면 발을 이용해서 마구 찼다. "여보세요?! 여기 미친놈이 차를 부수고 있어요! 빨리와주세요! xx고등학교 뒤편 횡단보도 앞이니 빨리요!" 살벌한 현민의 모습에 말릴 생각조차 같지 못한 운전자는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 "으아아!!" 쾅! 콰직! 시끄러운 소리에 모여든 사람들은 현민이 자동차를 부수는 장면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몇몇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사진까지 찍어댔다. "혀, 현민아!" "후우, 후우, 후우...." 반장이 부르는 소리에 멈춰선 현민은 차에서 떨어져 운전자를 향해 걸어갔다. "다시한번 이 따위로 운전하면.... 그땐 당신이 저렇게 될거에요." 털썩! 현민의 눈을 마주한 운전자는 현민의 눈에 비치는 광기와 살기에 놀라 주저앉아 버렸고, 현민은 아직도 앉아있던 반장을 일으켰다. "앞으로는 따라오지마." 현민은 반장을 일으켜 세워준 뒤, 경찰이 오기 전에 재빨리 도망쳤다. '마음을 가라앉혀, 너무 흥분했어.' '충분히 냉정해.' '나 또한 너야. 마음정도는 알 수 있어.' 반장과 헤어진 직 후,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긴 현민은 어느새 자신의 방에 도착해 있었다. '그래? 하지만 난, 그 어떤 때보다 냉정히 생각할 수 있어.' '그렇지만!' '너 또한 나야. 정확히는 모르지만 느낄 수 있어.' 또 하나의 자신과 대화를 마친 현민은 캡슐로 들어갔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77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린, 노트 좀 줘." "응? 아, 여기...." 허공에서 나타나자마자 노트를 찾은 현민은 린이 정리해 놓은 노트를 보며, 여러 가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마법진이라는 것이 도형으로 이루어진 알고리즘 개념이기에, 그것을 바라보는 현민의 능력에는 별다른 부담이 없었다. "린, 나 드워프 할아버지들에게 다녀올게." "으응...." 노트를 한번 훑어본 현민은 빗자루(낫)를 타고 날아가 버렸고, 그 자리에 남은 정령들과 린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요즘들어 루나가 많이 이상하지 않아?" "우웅... 평소의 오빠가 아니야."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상해요...." "이상해." 그들은 현민이 무언가 이상하다고만 느낄 뿐,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끼이익...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응? 어쩐일로?" 드워프 마을에 도착한 현민은, 언제나 자신을 반겨주는 드워프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 들어갔다. 언제나 부탁만 하는 현민을 보면서도 드워프 할아버지는 웃으며 대해 주었고, 현민은 그런 드워프 할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는 활이에요." "또, 변신인가?" 변신아이템 제작에 흠뻑 빠져버린 드워프들은 이런저런 변신 물건(?)들을 만들고 있었고, 드워프 할아버지는 현민이 부탁하는 변신 물건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굉장할 수도 있죠." "응? 도대체 뭐기에?" 궁금해 하는 드워프 할아버지를 향해 현민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물건을 알려주었다. "일단 활은 최대한 강해야 해요. 그리고, 위쪽의 활대가 넓고 두터워야 하고요." "흐음.... 그 정도야 뭐." "지금 당장 가능할까요?" "지금?" 평소와 다르게 서두르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어차피 하는 것 지금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던 드워프 할아버지는 현민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아, 그리고 위쪽의 넓고 평평한 면에 이러한 모양좀 새겨주세요." 현민은 한 장의 종이를 드워프에게 건내주면서 부탁했고, 드워프 할아버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거다." 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기는 드워프 할아버지를 따라 가는 현민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자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하지만 또 다른 자신의 말처럼 흥분되어 있는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으려 하지 않았다. 게임속의 시간으로 대략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현민이 원했던 활이 모습을 들어냈다. 2m의 길이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활은, 위쪽의 활대가 방패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고, 마법진이 잔뜩 그려진 모습이었다. "이제, 뭘 할 셈인가?" "보다 강한 아이템으로 만들거에요." 활대의 넓은 부분에 하나의 돌을 올려놓은 현민은 인벤토리에서 다크엘프들의 피를 꺼내어 드워프 할아버지가 새겨 넣은 마법진에 흘려넣었다. 까드득! 키이이이이잉.... 마법진에 들어간 다크엘프들의 피가 완전한 도형을 만들자, 마법진이 그려져 있던 활의 부분에서 쇠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위에 있던 돌을 천천히 삼키기 시작했다. 놀랍고 재미있는 상황에 드워프 할아버지는 눈을 빛내며 바라보았고, 현민도 자신의 실험이 성공할지에 대해서 눈을 빛냈다. "끝난건가?" 시끄러웠던 소리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처음의 모습을 갖춘 하나의 활뿐이었다. 드워프 할아버지는 실험이 성공한 것인지 궁금하여 현민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나,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 "정보창." 잠자는 마녀의 활(C급) 설명 : 잠들어 있는 활. 본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공격력 : 100 -150 내구력 : 400 조건 : 없음. "고맙습니다." "흠...." 드워프가 만든것에 비해 형편없는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무기였으나 현민은 그런 무기에 만족함을 느꼈다. "루나군." "네?"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모습은 평소에 내가 보아오던 모습이 아닌 것 같군..."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는 드워프 할아버지는 인자한 눈길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무슨일이 있었는가?" "....." 드워프 할아버지와 마주한 현민은 그의 눈을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고, 드워프 할아버지는 고개숙인 현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힘드니깐 조금만 더 숙이렴."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민의 머리도, 드워프의 기준에서는 상당히 높은 것이었기에 드워프 할아버지는 현민의 머리를 더욱 아래로 내리게 했다. 슥슥... "....다른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그들의 주먹과 발길질에 맞기만 할 뿐, 대응할 수가 없었어요. 그것이 너무 후회됩니다." 슥슥... 팍! "윽!" 현민의 머리를 다정스레 쓰다듬던 드워프 할아버지는 현민의 말을 듣자마자 뒤통수를 후려쳤다. "맞았으면 때려야지 그걸 참아?!" 드워프 할아버지의 호통소리에 현민은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네가 좋단다." "네?" 드워프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든 현민은 자신의 앞에 서있는 할아버지가 인자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인간들처럼 마주 싸우기보다는 참고 참으며,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네가 좋단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때리지 못하는 것에 화를 내는거에요!" 퍽! "윽!" 현민이 고함지르자 깜짝 놀란 드워프 할아버지는 현민의 뒤통수를 다시 한번 때렸다. "네가 성자(聖子)냐? 맞았으면 때리고 싶은게 당연한거지 뭘 그렇게 소리 질러?!" 드워프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는 현민은 할아버지가 말하는 내용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너한테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는 존재가 있지? 지금 가서 나한테 한 말을 그대로 해보거라." "예?" "너한테 쌈질 가르쳐준 사람을 찾아가라고." 드워프 할아버지는 현민에게 충고를 해준 뒤, 현민의 등을 밀치며 그를 밖으로 내보냈다. "다녀와서 어떤 무기가 만들었는지 보여주려구나." 드워프 할아버지에게 쫓겨난 현민은 하늘로 날아올라 발록을 찾아갔다. 비록 게임이지만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는 NPC들이기에 그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거짓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파팍! 퍽! "응? 페튜니아, 잠시 멈춰." 한참 싸우고 있던 페튜니아는 발록의 중단에, 날아가고 있던 주먹을 멈추며 자세를 바로했다. "무슨 일?" 남성의 모습에서 여성으로 바꾼 발록은 허공에 떠있는 현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현민은 가볍게 날아와 발록의 앞에 내려섰다. "사람들과 싸웠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맞기만 할 뿐, 아무런 대응도 못했어요." "뭐?" 갑작스런 현민의 말에 이상한 표정을 지은 발록은 현민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혹시, 그 사람들 칼 들었니?" "아니요." "그럼, 격투가?" "아니요." "그럼, 싸움꾼?" "아니요." 그밖에 다양한 것들을 물어보았으나 현민의 대답은 전부 '아니요'였다. "풋, 푸하하하, 꺄하하하하." 점점 빨게지던 발록의 얼굴이 마침내 폭발해 버렸고, 그녀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바닥을 뒹구며 발버둥 쳤다. 갑작스런 발록의 웃음에 당황한 현민이, 자신의 얘기가 웃기냐는 듯한 눈빛으로 페튜니아를 쳐다보았고, 페튜니아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킥, 킥킥킥. 바, 발록을 웃겨 죽이려 하다니.... 크큭. 아이고 죽겠다." "웃지 말고, 얘기해 주세요." 현민은 웃음을 참지 못하는 발록을 보고도 화를 내기보다는 왜 웃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알려주지." 간신히 웃음을 멈춘 발록은 현민을 보면 다시 웃을까봐, 현민에게 등을 돌린 채 말을 꺼냈다. "조그만 꼬마들이 너한테 달려들어 주먹질을 하는데, 그 주먹들 중 하나가 너의 생식기에 정통으로 맞아버린거야. 아프겠지? 엄~청 아플거야." 이상한 설명을 하는 발록의 얘기에 현민의 얼굴이 일그러져 버렸고, 페튜니아는 작게 미소지었다. "그러면 너는 고민하겠지, '이놈의 꼬마를 때려버릴까?'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 전에 또다시 고민하겠지, '이런 꼬마를 때리면 크게 다칠텐데...'"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어요." 현민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발록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스스로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너보다 수준이 낮은 상대는 그 상대가 다칠까봐 전력으로 상대를 하지 못한다는 거야. 물론, 나라면 그런 것 상관없이 죽여버렸을 테지만." 발록의 말에는 장난이란 것이 담겨있지 않아서 더욱 살벌하게 느껴졌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화가 나요." 발록의 자세한(?) 설명 때문에 이해는 되었지만 그래도 화는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럼, 덤벼." "네?" 현민과 마주한 발록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현민을 향해 손짓을 했다. "나와 싸우면서 화를 풀라고." "하지만...." "오랜만이지? 덤벼봐." 발록의 말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현민은 어릿광대의 복장을 한 후, 6개의 단검을 꺼내어 원래의 위치에 착용했다. "후후후후." 챙! 채채챙! 챙! 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발록이 검을 강하게 찔러왔고, 몸을 옆으로 피한 현민은 그녀의 검을 튕겨버린 후, 자신의 검으로 그녀의 몸을 베어나갔다. 하지만 빠르게 회수된 그녀의 검이 현민의 검을 가로막았고, 이어서 내려온 검의 끝이 현민의 목을 노리고 찔러들어왔다. 파팍! 퍽! 챙! 하체를 낮추어 그녀의 검을 피한 현민은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며 허리에 꽂혀있던 단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발록의 몸은 이미 현민의 궤도에서 사라져 있었고, 현민은 날카로운 예기가 등에서 느껴지자 땅을 박차며 앞으로 나갔다. 그의 예상대로 날아온 발록의 검은 허공을 지나 바닥에 박혀 버렸고, 현민은 다시 몸을 뒤로 하며, 발록을 향해 돌진했다. 팟! 채채챙! 챙! 현민이 발록을 향해 빠르게 돌진하자 발록은 땅에 박힌 검을 거칠게 뽑아 들었고, 그녀의 검을 따라 땅에 있던 돌과 흙이 현민을 향해 튀어 날아갔다. 그녀의 공격에 양손에 도를 잡은 현민은 다른 것을 무시한 채, 얼굴로 날아오는 것만 막아냈고, 그녀의 신형과 가까워 졌을때, 신형을 낮추며 그녀의 발을 공격했다. 푹! 현민의 공격을 예상한 발록은 그의 발이 오기 직전 칼을 박아넣었고, 현민역시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날아가던 발을 강하게 튕기며 몸을 바로 세웠다. "멋져!" 현민의 움직임에 감탄한 발록이 소리쳤고, 멀리서 그것을 바라보던 페튜니아는 입만 벌린 채 그들의 싸움을 지켜봤다. "하아, 하아, 하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폭발적인 움직임을 많이 한, 현민의 숨결은 벌써부터 거칠어져 있었다. "즐겁지 않아? 쿡쿡." "고마워요." 발록의 말에 조그맣게 대답한 현민은 땅을 박차며 앞으로 나갔다. 촤악! 스윽! 현민은 발록의 품으로 빠르게 파고들어 우수(右手)의 도를 휘둘렀고, 발록은 몸을 뒤로 빼며 그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실수였다. 한번 밀어붙이기 시작한 현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졌으며, 현민의 아름다운 동작이 환상처럼 이어졌다. 챙! 채챙! 챙! 팟! 퍼퍽! 발록이 뒤로 몸을 빼며 현민의 첫 번째 공격을 피해버렸고, 현민은 회전하던 그대로 좌수(左手)의 역검을 발록의 얼굴로 가져갔다. 발록의 신형이 낮아지며 현민의 공격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지나가자, 오른손으로 땅을 짚은 후, 왼발을 높이 들어 발록을 향해 내리쳤다. 팟! 채챙! 챙! 왼발의 원심력을 이용하여 몸을 일으켜 세운 현민은 뒤로 몸을 피한 발록을 쫓아가며 양손의 검을 찔렀고, 발록의 몸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그의 검을 옆으로 피해버린 후, 현민을 향해 검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현민이 빙글 돌자 허공만 찔렀고, 현민은 발을 반보 회전하며 몸의 움직임을 더욱 빨리했다. 스윽.. "윽!" 현민의 오른손에 쥐어있던 날카로운 검날이 발록의 옷을 찢어버렸고, 깜짝 놀란 발록이 검을 회수해 현민을 향해 내리찍었다.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검을 느낀 현민은 왼팔을 들어올려 발록의 검을 튕겨냈고, 재빨리 오른손의 무기를 송곳으로 바꾼 현민은 몸을 바로세우며 그녀의 턱을 향해 찔러들어갔다. 핑! 날카로운 송곳이 아슬아슬한 차이로 그녀의 턱을 스쳐지나갔고, 허리를 뒤로 꺾은 발록은 현민의 턱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발이 턱에 도착하기 직전에 이미 현민의 왼팔이 그의 턱에 도착해 있었고, 현민의 손에 쥐어진 칼날의 예기를 느낀 발록은 황급히 발의 방향을 바꾸어 그의 턱을 가격했다. 퍽! 정확히 꽂히는 그녀의 발길질에 현민의 신형이 잠시 주춤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현민의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잠깐의 틈을 이용하여 호흡을 다스린 발록은 움직임을 바로하고 현민의 공격을 바라보았다. 챙! 채채챙! 챙! 채챙! 이전과는 다르게, 발록의 검은 현민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고, 현민의 얼굴에서 흐르는 땀방울은 더욱더 굵어져 갔다. "마지막...." 챙! 채채챙! 채채챙! 챙! 파팟! 팍! 챙! 마지막을 얘기한 현민의 신형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의 손에 들려있는 두개의 무기가 빠르게 바뀌며 발록을 압박해 갔다. 허공에 무기를 띄어놓고 몸을 회전시킨 현민은 다른 무기로 바꾸어 발록을 공격한 뒤, 다시 무기를 허공에 띄어놓고 또 다른 무기로 발록을 공격했다. 마치 저글링을 하는 듯한 현민의 손놀림에 6개의 무기는 공중에 떠있는 채 땅으로 내려오지 않았고, 그런 현민의 공격에 발록은 당황을, 페튜니아는 경악을 했다. "우윽!" 태태태탱! 열심히 움직이던 현민이 갑작스런 신음과 함께 움직임을 멈췄고, 그제서야 허공을 떠돌던 4개의 무기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후우...." 그의 앞에 선 발록은 황당하단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페튜니아는 다급히 그들에게로 뛰어왔다. "장난 아니잖아?" 그동안 싸웠던 현민이 이정도로 성장했을 줄 몰랐던 발록은 처음으로 보여준 현민의 실력에 깜작 놀란 얼굴을 했다. 모든 실력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상태를 제압할 뻔한 현민의 실력은 진정으로 놀라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이제 괜찮아?" 끄덕끄덕 발록의 질문에 숨고르기 바쁜 현민은 고개만 끄덕여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이제는 이해되지? 이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네가 일반인과 싸움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말야." 끄덕... 그녀와의 싸움으로 자신이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를 다시금 확인한 현민은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것이 녹아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루나씨." "하아, 하아... 네?" "현실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가능하세요?" 도저히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움직임이었지만 자신의 능력이 현실에서도 통하는 것을 보면, 현민의 움직임도 현실에서 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아마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현민이었지만 그의 말에 부정의 뜻은 담겨있지 않았다. "자! 오랜만에 땀도 흘렸으니 이만 가봐.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오늘처럼 싸워보자." 현민을 일으켜 세워준 발록은 현민의 몸에 있는 먼지들을 손수 털어주며 그에게 미소지었다. "최대한 빨리 올게요." 호흡을 다스린 현민은 발록과 페튜니아에게 인사를 건낸 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드워프 할아버지와 발록의 도움으로 마음의 응어리를 녹일 수 있었던 현민의 표정은 이전과 다른게 많이 밝아져 있었다. -------------------------------------------------------------------------------- "할아버지." "흘흘, 이제 보여주지 않겠나?" 많이 달라진 현민의 모습에 인자한 미소를 지은 드워프 할아버지는 조금전 만들었던 물건의 진정한 모습을 원했다. "네." 인벤토리에서 활을 꺼내 든 현민은 그것을 바닥에 꽂아 자신의 앞에 세웠다. "너에게 피를 먹인 존재가 너의 주인이니, 나의 피를 먹고 잠에서 깨어나라." 작은 단검으로 손끝에 상처를 낸 현민은, 활의 마법진을 그렸던 넓은 부분을 길게 그었다. -생명력이 200 감소합니다. 키이이이잉....... 생명력이 빠져나간다는 메시지와 함께, 활에서 쇠가 갈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현민은 마지막 주문을 외웠다.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 진실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라." 현민의 주문을 끝으로 활의 널찍한 부분에 하나의 선이 생기며,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벌어진 부분에서 하나의 눈동자가 모습을 들어냈고, 그 눈동자는 사방을 두리번 거리더니 현민을 발견하는 순간 동공이 크게 변했다. -마녀의 활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호오... 대단하군. 저 눈이 모든 마법진을 여는 스위치가 되는 것인가?" "네." 현민은 정보창을 열어서 아이템을 확인하였고, 드워프 할아버지는 종족 특유의 감정 기술로 현민이 만들어낸 아이템의 능력을 확인하였다. 마녀의 활(A급) 설명 : 잠에서 깨어난 마녀의 활. 마녀의 활이 눈을 뜨며 새로운 기능이 생겨났다. 공격력 : 1000-1200 내구력 : 400(무한) 조건 : 피의 계약 +정해진 주문. 힘 500 이상. -머리 색깔의 변화. (강제) -눈동자 색깔의 변화. (강제) -힘 +200 -강화마법으로 내구도 일시적 무한 -75%의 확률로 대상을 석화시킴. -스트랭스 사용 가능. (분당 20의 마나or정신력 소모) -이글아이 (분당 10의 마나or정신력 소모) <특수스킬> -관통 (50의 마나or정신력 소모) -심판 (3000의 생명력 and 3000의 마나or정신력 소모) "허, 허허허... 마녀란 직업은 정말 놀랍구만." 그가 만들어낸 마녀의 활은 정말 헛웃음밖에 나지 않는 그런 아이템이었다. 드워프가 혼신을 다해야 만들어 진다는 A급무기를, 현민은 마법진만으로 손쉽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근데, 심판이란 능력은 뭔가?" "음... 레이저 같은 건데, 빛이 가지고 있는 열에너지를 이용하여 공격하는 거에요."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되는군." 레이저라는 것이 현실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기에 드워프 할아버지는 현민의 설명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든, 원하는 것은 만들어진건가?" "음... 약간 부족하지만, 어차피 시험용이니까요." 이런 무기가 시험용이라면 앞으로 만들어질 무기는 어느 정도일지 도저히 상상히 가지 않았지만, 현민이라는 직업 특성상 하찮은 물건은 절대 나올 수 없으니 왠지 모를 기대감까지 생겨났다. "그보다 자네 이런 활을 사용할 수는 있나?" "제가 쓸 것 아닌데요." "헉!" 너무나 훌륭한 무기를 만들었기에 당연히 현민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의 예상은 멋지게 빗나가 버렸다. "이 무기는 다크엘프들의 것이에요. 그들과 약속했거든요." 드워프 할아버지는 너무나 잘 만들어진 무기가 다크엘프들의 손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자 왠지 모르게 배가 아팠지만, 무기의 주인이 현민이기에 그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할아버지, 저는 다크엘프들에게 가볼게요. 기다리고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 그러렴." 드워프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현민은 하늘로 날아올랐고, 드워프 할아버지는 그런 현민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언제나 밝게 웃으려구나." 드워프의 마을에서 다크엘프의 마을로 곧장 이동한 현민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들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우거진 숲으로 인해 그들의 마을을 찾지 못하자 그들이 먼저 현민을 발견하고는 그를 안내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정말로 왔군." "어서와요." "빨리 왔군요." 세피로스는 현민을 신기하단 눈으로 바라보았고, 장로님들은 현민의 방문을 웃으며 환영해 주었다. "그런데, 또 다른 장로님은 어디가셨나요?" "호, 호호호... 방에서 쉬고 있어요." "...약간 무리를 했더니." 장로님들의 붉어진 얼굴과 쑥스러워하는 행동으로 인해, 어떠한 상황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자, 현민의 얼굴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붉어져 버렸다. 얼굴이 빨갛게 변한 현민은 장로님들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고, 묘해진 그들의 분위기를 세피로스가 정리해 주었다. "또 다른 계약이었던, 무기가 만들어진 건가?" "아, 네. 다크엘프들이 협조해 주셔서 생각보다 쉽게 만들어졌어요." 세피로스의 말에 정신을 차린 현민은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활을 꺼내주었고, 세피로스는 현민이 건내 주는 거대한 활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쓸만하군." 세피로스는 상당히 궁핍한 생활을 하는 것인지, 아직 봉인을 풀지도 않은 활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현민을 향해 고마워했다. 현민은 그런 세피로스의 모습에 여성스러운 귀여움을 느끼며 작게 미소지었다. "정말 좋으세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응?"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다크엘프들은 현민의 말에 의아함을 내뱉었고, 현민은 그들의 모습에 미소지으며 활을 깨우도록 도와주었다. "제가 하라는대로 해주세요." 끄덕"일단, '너에게 피를 먹인 존재가 너의 주인이니, 나의 피를 먹고 잠에서 깨어나라.'라고 하세요." 끄덕 현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세피로스는, 현민이 말해준 것을 그대로 따라했다. "너에게 피를 먹인 존재가 너의 주인이니..... 다음에 뭐지?" 약간 엉뚱한 세피로스의 반응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다크엘프들과 현민의 신형이 잠깐 휘청거렸다. "'너에게 피를 먹인 존재가 너의 주인이니, 나의 피를 먹고 잠에서 깨어나라.'" "너에게 피를 먹인 존재가 너의 주인이니, 나의 피를 먹고 잠에서 깨어나라." 또 다시 불러주는 현민의 주문을 그대로 따라한 세피로스는 현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현민은 단검을 꺼내 그녀의 손끝에 상처를 냈다. "웃!" 키이이이잉..... 세피로스의 손을 붙잡은 현민이 그녀의 손을 이끌어 활의 널찍한 부분에 피를 묻혔고, 갑작스레 줄어드는 생명력에 세피로스가 당황서린 신음을 내뱉었다.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 진실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라.'"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 진실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라." 번쩍! 세피로스의 주문과 함께 마녀의 활이 눈을 떴고, 세피로스의 머리와 눈동자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우와!" "와...." "대단하군요." "멋지다." 주변을 감싸고 있던 다크엘프들은 세피로스가 보이는 멋진 변화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욱 놀란 것은 세피로스 자신이었고, 그는 길게 늘어진 붉은색 머리카락을 쓸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예쁘네요." 화륵! 조금전까지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헷갈리는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머리가 붉게 물들자 더 이상 그녀를 남자라고 착각할 수 없었다. 현민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자신을 생각을 솔직히 말했고, 그녀는 처음으로 들어보는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옵션을 불러드릴게요." 무기의 능력을 볼 수 없는 다크엘프들을 위해 현민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무기의 능력을 말해 주었다. "이름은 마녀의 활, 등급은 A급이고요. 공격력은 1000에서 1200이고, 내구력은 거의 무한이고, 음... 강제로 머리색깔과 눈이 바뀌는 기능이 있어요. 그리고, OPG를 착용한 만큼의 힘이 증가하고, 75%의 확률로 적을 석화시킨답니다. 그리고 스트랭스와 이글아이를 사용할 수 있고, 특수스킬로는 관통하고 심판이 있어요." "세상에..." "저런 무기가 존재해?" 현민의 설명을 들은 다크엘프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세피로스의 손에 들린 활만을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그들의 삶에서도, 현민이 건내준 무기만큼 좋은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숫자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것을 준다는건가? 겨우 피를 준 대가로?" 자신들의 피를 대가로 준다는 현민의 무기는, 그들이 받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물건이었다. 그러한 것을 알고 있는 세피로스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고, 장로님들은 아무런 말 없이 현민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당신들이 준 피로 인해, 만들 수 있었던 물건이니까요. 그리고 저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 이렇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무기가 아무것도 아니란 현민의 말에, 다크엘프들은 경악 이외에는 어떤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정도의 능력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현민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물어볼 다크엘프는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저는 쓸 수도 없는 물건이고요. 제한 조건이 힘 500이상이거든요." "..." 현민은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다크엘프들은 현민의 말에 웃음지을 수가 없었다. "첫 화살은 멋지게 쏴봐야 하지 않겠어요?" "장로님." "루나의 말대로 해보세요." 현민의 말에 고개를 돌린 세피로스는 장로님들에게 허락을 구했고, 장로님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활을 쏴보도록 했다. "스트랭스, 이글아이 사용한 후,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향해 심판을 사용해 보세요." "스트랭스, 이글아이." 스트랭스와 이글아이를 사용한 세피로스는 활을 들어올렸다. "심판." 현민이 마지막으로 부탁한 심판을 사용하자 활 앞에 하나의 구슬이 생겨났고, 세피로스가 현을 당기자 구슬에서 나온 하나의 빛이 그녀의 손끝을 따라 맴돌았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핑! "꺄악!" 세피로스는 현민의 신호에 맞추어 잡고 있던 현을 놓아버렸고, 동시에 엄청난 반발력을 느끼며 뒤로 튕겨져 버렸다. 콰가가가가각! 하지만 그녀의 손에서 쏘아진 빛의 화살은 그녀가 목표했던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어마어마한 회전 때문인지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며 주위의 모든 것을 뒤집어 버렸다. 콰콰콰콰콰콰쾅!! 그녀의 화살이 마침내 정해진 목표에 도달하였고, 이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모두 방어하세요!" 후폭풍을 예상한 현민은 다급히 소리쳤고, 다크엘프들은 현민의 말에 최대한의 방어를 펼치기 시작했다. "절대방어! 웅얼웅얼...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절대방어를 형성한 후, 다급히 주문을 외운 현민은 여왕의 거미줄을 시전하여 주변의 모든 것을 묶어버렸다. 콰콰콰콰콱! 한참 동안이나 어마어마한 세기의 먼지바람이 그들을 스쳐지나갔고, 모든 것이 끝나고서야 현민은 마법들을 취소 시켰다. "세, 세상에...." "아아...." 주변의 시야가 트이면서 다크엘프들은 폭발이 일어났던 산으로 고개를 돌렸고, 화살이 도착했던 저 멀리의 산꼭대기가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린 것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산이 있던 그 장소는 커다란 크리에이터를 남긴 채 전부 사라져 버렸다. "이, 이게...." "루나씨!" 산이 하나 날아가 버렸으니 운영자가 오는 것은 당연했고, 그 작품의 주범이 현민이었으니 페튜니아가 오는 것도 당연했다. "아차...."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파악한 현민은 손으로 머리를 짚었고, 페튜니아는 그런 현민의 앞으로 다가서며, 그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쫑알쫑알... 페튜니아의 잔소리는 계속되었고,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던 다크엘프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만." 심판이란 스킬로 인해 상당한 생명력과 정신력이 빠져나간 상태였지만, 두 다리를 곧게 편 세피로스는 그런 것을 숨기며, 페튜니아를 향해 활을 겨누었다. "누구지?" "깨어나라, 깊고 깊은 잠에서 일어나 나를 수호하라. 어둠속의 너를 부르는 존재가 곧 너의 주인이니, 나의 부름에 답하여 지금 눈을 떠라." 핑! "루인아츠!" 탱! 많이 비슷해 보이는 주문에 무엇인가를 눈치챈 세피로스가 재빨리 현을 놓았지만, 그녀보다는 페튜니아가 약간 더 빨랐다. "설마?" "나와 루나는 아는 사이니, 더 이상 참견한다면 가만있지 않겠어요." 다크엘프들이 페튜니아의 루인아츠를 보고 놀라있는 사이, 세피로스를 돌아본 페튜니아는 단호히 말했고, 루나는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지었다. "자자, 제가 잘못한 것이니 우리 둘은 따로 얘기하기로 하죠. 그리고, 다크엘프들과의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루나!" 덮석! "응?" 현민이 황급히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작은 존재가 다리를 부여잡아 현민은 그 뜻을 실행할 수 없었다. "세피아?" "응!" 현민을 붙잡은 존재는 이전에 정령계로 여행(?)을 떠났던 세피아였다. "나 정령과 계약했다! 요기." 그녀는 현민에게 자랑하듯 조그만한 불의 새를 보여주었고, 현민은 그런 세피아의 귀여운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정령을 언제나 보살펴줘야 한다~, 알았지?" "응!" 세피아의 머리를 다시한번 쓰다듬어 준 현민은 장로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우리가 저런 무기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다크엘프들의 피로 만든 무기이니 충분한 자격이 있으세요." "우리가 저 무기를 지킬 수 있는가?" "저 무기가 당신들을 지켜줄 거예요." "우리가 저 무기를 올바른 곳에 쓸 수 있는가?" 두분의 장로님들은 현민을 향해 질문을 던졌고, 마지막 질문에서 현민은 대답을 잠시 멈추었다. "내가 보아온 다크엘프라면." 씽긋! 마지막 대답을 해준 현민은 페튜니아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고, 장로님들은 현민의 마지막 대답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에게 인정받은 우리 다크엘프들이라면....." 한참이 지나 현민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세피로스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꺄악!" "으악! 루, 루인아츠!" "어머!" 처음으로 타는 빗자루(?)에 쉽사리 균형을 잡지 못한 페튜니아가 비명을 지르며 현민을 껴안았고, 현민은 그녀의 손에 끼어진 루인아츠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현민의 비명에 당황한 페튜니아가 재빨리 루인아츠를 잠재웠으나 이미 그의 몸은 너덜하게 변해 있었다. "크윽... 과거의 영광." 한동안 전투할 일이 없기 때문에, 현민은 힐을 사용하기 보다 아이템에 담겨있는 '과거의 영광'을 사용하여 몸을 치료했다. "윈디아." "네~." 현민의 부름에 모습을 들어낸 윈디아는 현민의 뜻을 읽고는,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 그녀와 그가 서있을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이번의 일은 실수니깐 넘어가 주세요." "설마, 또 A급무기를 만든거에요?" 끄덕 경악하는 페튜니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현민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적당히 봐주세요. 산을 날려버리는게 저만(?)은 아니잖아요?" "그런걸 어떻게 봐줘요!" 물론, 산을 날려버리는 것이 현민만의 행동은 아니었지만 작아도 산이고 커도 산이니, 규모로 따지자면 현민만큼 사고친 유저도 드물었다. 하지만 페튜니아와 알고지낸 게 한두달도 아닌 현민으로서는 그녀가 웃으며 넘어가주기를 빌었다. "하아... 대신 무기값은 없어요." "죄송하지만 500만원도 상당히 거저드리는건데요?" "으윽!" 현민의 말에 부정하고 싶었지만 A급의 에고무기가 500만원이라는 것은 그의 말대로 공짜나 다름없었다. 만약 이것을 시중의 경매에 붙인다면 과장되게 말해서 5억까지도 갈만한 물건이었다. "그러면 이번 한번만이에요!" "네, 네." 설마하니 산을 날려버릴 줄 몰랐던 현민으로서는 페튜니아가 봐준다고 할 때, 최대한 웃으며 넘겨야 했다. "그보다 언제쯤 올거에요?" "글쎄요... 제 무기만 완성하면 되는데, 제꺼는 시간이 조금 걸릴 듯 하네요." "하아.... 도대체 어떤 무기를 만들려고 하는 건지." 한숨을 내뱉는 페튜니아를 보는 현민의 입가에는 묘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이번 대회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이번에는 저도 나가볼 거예요.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확인해 봐야하거든요." "흐음... 그럼 저는 가볼게요. 다음에 만나요." D-8 쿨쿨... "야, 누가 제 좀 깨워봐." "그러지 마세요. 승민씨도 이틀동안 야근하고 겨우 쉬는거에요." "하아...." 세계 1위의 게임이자 기업인 가우리의 운영자들은 언제나 일이 있었고, 그렇기에 집에 들어가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이 상당히 부족했다. 그러한 것을 제2운영팀장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를 깨우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삐삑! 삐삑! "응?" 잠깐의 여유를 즐기며 커피를 마시고 있던 제2운영팀장은 컴퓨터에 울리는 메시지에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하고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S급?!" "네?" 깜짝 놀란 팀장의 모습에 운영자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고, 팀장은 잠자고 있던 운영자를 다급히 깨울 수밖에 없었다. "승민!" "넵?!"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 운영자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팀장을 바라보았고, 팀장은 그런 운영자를 향해 서둘러 명령했다. "S급무기가 주어지는 퀘스트 중 봉인이 풀린 것 있나 당장 살펴보고, 혹시나 진행중인 것이 있다면 버그로 인해 얻어진 것이 아닌가 확인해 봐!" "네!" 자다가 일어나 약간 정신이 몽롱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기에, 급히 잠을 몰아내며 키보드의 자판을 두들겼다. "어?" 운영자에게 경고를 알려주던 메시지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버렸고, 그는 자신의 눈을 비비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뭐지? 분명히 있었는데.... 승민! 혹시 모르니깐 자세히 찾아봐줘." 메시지가 사라지긴 했지만 혹시나 모를 상황을 위하여 조사하던 것을 계속 부탁했고, 그 자신도 컴퓨터에 매달려 S급무기에 대한 것들을 조사해 나갔다. 하지만 그들이 조사한 것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들은 이내 컴퓨터의 오류로 생각하며 문제를 넘겨 버렸다. D-7 "어서와."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이를 반기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발록은 주먹을 말아 가볍게 찔러 넣었고, 그런 발록의 환영(?)을 받는 현민 역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발록의 얼굴에 칼을 날렸다. "하하하..." "호호호..." 동작을 멈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미소지었고, 페튜니아는 그들의 상잔을 지켜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팟! 파파팍! 챙! 채챙! 촤악! 쾅! 퍼퍽! 오랜만난 둘은 신나게 싸웠고, 10분정도가 지나자 현민이 지쳐버리며 그녀와의 싸움을 포기해 버렸다. "자요." "응?" 자리에 주저앉은 현민은 발록을 향해 무엇인가를 건내주었고, 발록은 의아한 얼굴로 현민이 주는 것을 건내 받았다. "귀걸이?" "네. 하나 만들었어요." "고마워." 현민에게 인사를 한 발록은 즉석에서 착용하였다. "마력 회복 200%, 마력 증가 150%." "아아...." 현민이 말해주지 않아도, 그녀는 이미 귀걸이로 인해 늘어나는 자신의 마력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이 주는 엄청난 힘으로 인해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다. "꺄하하하하하!!" 콰콰콰콰쾅! 우르르릉.... 그녀의 웃음소리와 함께 땅이 마구 갈라졌고, 지진이 난 듯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을 예상한 현민은 이미 절대방어로 자신과 페튜니아를 보호하고 있었고, 담비를 소환해 주변의 충격파를 흡수하고 있었다. "사랑해!" 그 무엇도 부수지 못한 절대방어를 가벼운 손짓만으로 갈라버린 발록은 현민을 껴안으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마계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실력과 마력을 가지고 있는 발록에게, 그런 마력을 1.5배로 만들어주는 아이템을 주었으니 발록의 입장에서는 없던 사랑도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계약이었다지만 발록에게 상당히 많은 것을 배웠고, 나 스스로가 변했으니 그에 대한 작은 보답이에요." 물론, 현민이 착용한 300%와 비교해 볼 때, 그의 선물은 아주 조그만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일반 유저들에게나 통하는 얘기였다. "루나, 혹시 소원 있어? 혹시, 내 몸을 원해? 자손을 번식(?)시켜 줄까? 아니면 세계정복?" 늘어난 마력이 기쁜 발록은 현민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귀여운 소녀처럼 쫑알거렸으나, 기척을 들어내지 않은 발록을 현민이 불편해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살기나 기운을 내뿜고, 감추는 법을 알려주세요." "응?" 너무나 쉽고 황당한 부탁에, 페튜니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발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걸로 돼? 그런 것은 너무 쉬우니깐 공짜로 해줄게. 다른건 없어?" "쿡쿡, 괜찮아요." 언제나 부담스러웠던 발록이었지만, 지금 그의 눈에 비치는 발록이 모습은 너무나 귀엽기만 했다. "흥!" 왠지 아쉬운 현민의 반응에 콧바람을 내뿜은 발록은 현민을 한쪽으로 이끌어 과외를 시작했다. 현민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발록은 현민을 향해 애교부리며 한참동안 대화했고, 페튜니아가 슬슬 지루해 졌을 때, 대화를 마친 그들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이걸로 끝이야?" "네." "언제 조용히 만나...." 다시한번 현민에게 물은 발록은 현민의 부탁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계속해서 현민을 유혹했다. "그리고 이건 페튜니아씨꺼,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탈?" 현민이 건내준 것은 은색의 아름다운 가면이었다. 우리나라 전통의 각시탈과 비슷한 모양이었지만 이마 부분에 두개의 뿔이 돋아나 있었다. 스윽... "하회탈?" 페튜니아의 탈이 각시탈이라면, 현민의 새로운 가면은 턱부분이 없는 양반 하회탈이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가면을 쓰고 말하는 현민의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 발록과 페튜니아를 데리고 페드로 왕국의 수도로 이동한 현민은, 토너먼트 접수를 위해 중앙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현민의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발록은 처음의 모습과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머리에 난 뿔과 엉덩이에 난 꼬리를 숨긴 다음, 현민과 페튜니아가 꾸미고 꾸며서 만들어 놓은 모습이었다. 딸랑. "왜 가면을 쓰는거야?"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자 궁금하게 여긴 발록이 현민을 향해 물었으나, 현민은 발록을 보며 웃기만 할 뿐,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자신을 놀리는 듯한 현민의 태도에 발록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가고 있을 때, 발록의 반대편에서 걷고 있던 페튜니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는 유명하니까요." "응?" 페튜니아의 손이 한쪽 방향을 가르켰고, 발록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이 까짓 꺼! 흐아아아압!!!!!! "호오?" 화면속의 늑대인간을 바라보던 발록은 그 다음에 나오는 마법사가 자신과 만나기 이전의 현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아무리 강해도.... 당신이 아무리 빨라도..... -아랑아(餓狼牙)!! -......여왕의 거미줄은 벗어날 수 없어요.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굉장한데?" 현민의 옆을 걷고 있던 발록이, 현민의 옆구리를 툭툭치며 칭찬했고, 현민은 그녀의 태도에 애매한 웃음만 흘렸다. -크아앙!!! -.....소용없어요. -히든 클래스에 속하는 것 중에 하나가 늑대인간이다. 하물며, 하찮은 마법사도 이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숨겨진 직업 중의 하나인 늑대인간이 겨우 이정도 일 것 같아?!!! 늑대의 울부짖음은 광기를 불러오고, 늑대의 발톱은 잔인한 피의 강을 흐르게 한다!!!! 우득! 우드득!! "이겼어? 졌어?" "한번 보세요." -크아아아앙!!!! 죽...여 버리겠다. -아뇨, 나는 죽지 않아요. 당신만 죽을뿐........ 그 누구도 나를 건들지는 못해. "오오, 멋져! '그 누구도 나를 건들지는 못해~.'" 발록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현민을 팔을 꾹꾹 눌러대며, 마지막에 한 현민의 말을 따라했다. -크아아앙!!! -아쉽지만, 놀이는 여기까지. 딸랑딸랑.... 화면속에 있는 현민의 모자에서 방울소리가 울려퍼졌고, 발록이 기다리는 현민의 마법이 모습을 들어냈다. -크아아앙!!!! -.....대지의 심판. 푹! 푸푸푹!! 푹! 콰직! 푹!! 콰드득! 우직! 우득!.......... -끄, 끄어어....... "우와! 너 정말 마법사였구나?!" 화면속의 현민이 보여주는 실력에 놀란 듯한 발록은 주변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런데, 그 가면을 쓰고 유명해 졌으면, 평소에는 벗고 다녀야 하는거 아냐?" 도리도리 어찌보면 당연한 발록의 말이었지만 현민은 고개를 흔들며 주변의 사람들을 손으로 가르켰다. "진짜 어릿광대인가?" "에이, 설마. 가면쓰고 다니는 사람이 한둘이고, 모자쓰고 다니는 사람이 한둘이냐? 게다가 옆에 있는 여자도 가면쓰고 있잖아." 주변의 사람들은 긴가민가 하고 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현민을 어릿광대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에게는 의심이란 것이 있어서 쉽사리 믿지 않으니까요." "그렇군." 현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발록은 그의 팔에 팔짱을 끼며 걸어나갔다. 발록의 반대쪽에 있는 페튜니아는 그런 발록과 현민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 채, 걸어가기만 했다. 발록과는 다르게 페튜니아에게서는 여성스런 냄새가 흘러나와, 현민이 그녀와 두세걸음 정도의 차이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페튜니아와 함께 중앙에 접수를 한 현민은 더 이상 할 것이 없자 자신의 양쪽에 있는 두 존재를 바라보았다. "이제 뭐하죠?" "음...." "글쎄..." 그들 모두 토너먼트 접수만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접수를 마치자 더 이상 할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저는 사냥하러 갈건데, 두 분은 어떻게 하실거에요?" "음..." "난 구경." 앞으로 남은 일주일 동안 얼마의 경험치를 모을지는 모르지만 떨어진 레벨을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사냥은 필수였다. 현민의 말에 발록은 따라간다고 말했고, 페튜니아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운영자라는 직업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놀고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일 때문에 안될 것 같네요." "네. 그럼 시합때 뵈요." 현민과 인사를 나눈 페튜니아는 허공으로 사라져버렸고, 그 자리에 남은 발록과 현민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볼까요?" 둥실. 인벤토리에서 낫을 꺼낸 현민은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등에서 날개를 꺼낸 발록도 그의 뒤를 쫓아 하늘로 날아올랐다. 몇몇 유저들이 그런 그들의 모습에 신기해했지만 그보다 다양한 것도 많이 있었기에 그들을 향한 시선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진실된 거짓(5서클)." ['진실된 거짓'마법의 지속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퐁! 근처의 숲에서 메모라이징으로 마법을 저장한 현민은, 그중의 하나인 진실된 거짓을 펼쳐놓은 후, 예전에 사용했던 유혹의 향기를 꺼내어 뚜껑을 열었다. 크워워!! 크아아앙! 취익! 그들의 주위로 수십의 몬스터들이 모여들었고, 발록은 신기한 표정으로 현민의 손에들린 병을 바라보았다. "몬스터들의 페로몬인가?" "네." "흐음, 신기하긴 하지만 이 정도의 몬스터를 어떻게 잡으려는 거지?" 수도의 근처는 정기적으로 몬스터 토벌 이벤트가 벌어지기에 그 숫자가 상당히 적은 장소였지만 그가 들고 있는 유혹의 향기 때문인지 절대로 모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몬스터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저 마법사잖아요. 이 정도는 기본이죠." 발록을 향해 자신있게 말한 현민은 거대한 낫으로 바닥을 찍으며 소리쳤다. "대지의 심판(5서클)!" 콰드득! 푹! 푸푸푹! 푹! 쿠어억! 크앙! 취, 취이익!! 꾸에엑! 마법의 시전자인 현민이 있는 곳만 제외하고, 주변의 모든 곳에서 대지의 창이 튀어나와 몬스터들을 학살했다. 단 한차례의 공격으로 절반 이상의 몬스터들이 줄어버렸고, 대지 위에는 피부가 두꺼운 몹들만 남아있었다. "대지의 족쇄(3서클), 수중감옥(3서클)." 피부가 두꺼운 몬스터들을 따로 묶은 현민은 수중감옥으로 가두어 익사시켜 버렸다. "진짜로 마법사네..." 언제나 싸우는 모습만 보아왔기에 그의 직업을 의심했던 발록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여주는 현민의 마법에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순식간에 레벨을 올려버린 현민은 발록과 함께 좀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이제 1업을 했으니 앞으로 9를 더 올려야 원래의 레벨을 복구하기 때문이었다. -------------------------------------------------------------------------------- 웅성웅성 토너먼트의 첫째날. 거대하게 마련된 콜로세움는 수많은 관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1등석에는 황제와 황족들 및 일부 고위 귀족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우우웅..... 우우웅.....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인해 주변의 모습이 시장바닥을 연상시키고 있을 때, 거대한 뿔피리 소리가 콜로세움에 울려퍼졌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모두조용!!" 황제 페하의 옆에 있던 한명의 기사가 아직도 남아있던 소음을 잠재워버렸고,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난 황제는 단상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 무투회는 앞으로 10일 뒤에 있을 공주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공주가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우승자가 아니라도 멋진 상을 내릴 것이니, 모두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상!" 펑! 퍼퍼펑! 펑! 와아아아아!!!! 황제의 말을 끝으로 공중에 화려한 불꽃이 수노여 졌고, 사람들의 함성이 콜로세움을 가득 메웠다. 띠링! [퀘스트] 공주의 얼굴에 표정을 만들어라! 황제는 공주의 마음에 들라고 했으나, 진정한 목적은 공주의 얼굴에 표정을 만드는 것! 웃어도 좋고, 울어도 좋고, 화를 내도 좋고, 겁을 먹어도 좋으니, 어떠한 표정이라도 만들어라! -보상 : 공주의 얼굴에 비례한 작위, 및 상금(최하 준남작), 토너먼트 진출권. 자신의 눈앞에 생겨난 종이를 읽은 현민은 황당한 얼굴로 페튜니아를 바라봤고, 페튜니아는 귀엽게(?) 웃으며 현민의 시선을 피했다. "예선전을 시작하겠소! 예선전의 방식은 데스 매치로 100명의 사람들 중 다섯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되겠소!" NPC로 생각되는 진행자의 말에 모두가 자신의 무기를 점검했다. "시작은 앞에서부터 번호대로 할 것이요! 그리고 상대를 죽일 경우 자동으로 탈락 처리되니, 절대로 상대를 죽이지 마시오! 왠만한 부상이라면 고위신관님들이 치료해 주시니 상처를 걱정하지 말고 싸울것이며, 마탑의 마법사중 천재라 불리시는 7서클의 샤이나님을 모셨으니 주변의 피해를 걱정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싸워주시오!" 와아아아아! 모두가 환성을 지르고 있는 사이, 현민의 시선은 단상으로 향해졌다. "샨?" 처음으로 게임을 할 때, 많은 도움을 줬던 그녀가 황제의 옆에 서서 단상의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연락도 안하더니 잘 지내고 있었네?" "누구 아는 사람 있나요?" 단상위를 바라보는 현민을 본 페튜니아가 그를 향해 물어봤지만 현민은 고개만 가로저을 뿐, 그녀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다. "NPC라지만 저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네?" 아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민이 단상위를 쳐다보자, 공주를 바라본다고 생각한 페튜니아가 현민에게 말했다. "그런가? 난 현민을 제외한 인간이 모두 똑같아 보이는데..." "하하..." 발록의 말에 웃음지은 현민은 샨에게서 시선을 돌려, 황제의 옆에 앉아 있는 공주를 바라보았다. 엄청나게 먼 거리였기에 보일 리가 없었지만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현민의 눈에는 그녀의 눈동자까지도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상당히 예쁜데요?" "그쵸? 게다가 모든 나라의 공주들이 저 정도로 예쁘더라구요."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대회장에서는 예선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정도의 시간이라면 한참 걸릴것 같네요." "나가서 구경이나 하죠. 어차피 자동 소환이니까요." 경기장 위에서는 엄청난 기술들이 난무하며 사방을 부수고 있었지만, 그들이 남을 살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잠시후, 경기장으로 소환됩니다.] "벌써 제 차례인가보네요." 여러 가지의 음식들을 먹으며 구경다니던 현민은 귓가에 울리는 메시지에 곧 있으면 소환될 준비를 했다. 이미 마법의 메모라이징은 해뒀고,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손에 들고 있는 것들과 같이 소환되면 민망하기에 그것들은 발록에게 건내줬다. [소환됩니다.] 현민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고, 발록과 페튜니아는 현민의 시합을 구경하기 위해 콜로세움으로 뛰어갔다. "시작합니다!" "진실된 거짓." 거대한 경기장에 여러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소환되었고, 그중의 하나인 현민은 시작의 알림과 동시에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결과가 나버렸다. "어릿광대!" "어릿광대가 여기 출전한거야?!" 현민의 환상마법에 걸려든 모든 사람들이 제발로 걸어서 경기장 밖으로 나갔고, 모두의 시선이 그런 황당한 사건을 만든 사람에게 모여졌다. 넓은 경기장에 홀로 남아있으니, 마법을 사용한 존재를 찾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스, 승자 어릿광대!" 당황한 사회자가 겨우 소리치긴 했지만 너무나 시시한 결과 때문인지 현민을 향해 환호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웅성웅성... 모든 사람이 현민을 보며 수근거렸고, 현민은 조용히 경기장에서 내려왔다. 현민의 다음에 참가한 페튜니아도 발록에게 배운 솜씨로 인해 본선의 진출은 확정되었다. "모두들 먼저 가보세요. 저는 만날 사람이 있어서." 그날 하루만에 모든 예선전이 끝나버렸고, 현민은 일행과 헤어져 마탑을 향해 걸어갔다. "얘들아." "네." "네." "예." "응? 불렀어?" 현민의 부름에 네 명의 정령이 튀어나왔고, 현민은 그들을 조용히 안아들었다. 담비는 목마를 탔고, 윈디아는 현민의 등에서 목을 감싸 안았고, 염화는 현민의 품에, 묘는 현민의 손을 잡았다. "어디가?" "저기." 단 일주일의 사냥이었지만 현민의 레벨은 기본의 두배 가까이 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의 성장에 맞추어 네 명의 꼬마 정령들도 상당히 올라 있었다. ----------------------- 이름 : 룬. Lv : 152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7) 민첩 : (15) 건강 : (16) 반사신경 : (18) 지능 : 360(19) 정신 : 462(21) 공격력 : 34 -34 마법력 : +758 방어력 : 60 생명력 : 2852 (+2300) 정신력 : 64770 ((+16000)*3) 물 속성 친화력 : 609 불 속성 친화력 : 609 땅 속성 친화력 : 609 바람 속성 친화력 : 609 정령력 : 620 물 Lv 154 바람 Lv 154 불 Lv 154 땅 Lv 154 보너스 스텟 : 0 ----------------------- 다른 유저들이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1/5의 경험치로 75레벨을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마법사의 특기인 몰이사냥을 한 현민은, 그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버렸다. "안녕하세요." "누구?" 마탑에 가까이 다가간 현민은 경비를 향해 인사를 건냈고, 경비병은 현민의 이상한 차림새에 잔뜩 긴장한 얼굴을 했다. "샨, 아니 샤이나에게 이것을 건내주실 수 있나요?" "위험한 물건인가?" "아니요, 설마하니 제가 샤이나에게 그런 물건을 주겠어요?" 작은 상자를 건내받은 경비병은 현민을 향해 인상을 썼다. "샤이나님!이다. 님 자를 빼먹지 마라!" "네, 네... 어쨌든 열어봐도 좋으니 물건만 확실히 전해주세요. 기다릴게요." 현민의 말에 물건의 뚜껑을 열어본 경비병은, 책과 돌만 담겨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뚜껑을 닫았다. "기다려라." "아참, 샤이나에게 '제자이자, 스승이며, 연인이자 친구인 존재가 너를 찾아왔다.'라고 말도 좀 전해주시겠어요?" "흥!" 현민의 말에 코웃음을 친 경비병은 샨에게 혼날 현민을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서 나온 또 다른 경비병이 그의 위치에 자리잡으며 현민을 경계했다. 타다다닥 건물의 안쪽에서 빠른 발걸음 소리를 들은 현민은 정령들에게 잠시 떨어져 있을 것을 부탁했다. 그의 시선이 건물의 입구에 고정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구를 열고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룬!" 덥석! 입구에서 뛰어나온 샨은 현민의 품으로 안겨들어갔고, 샨과 현민의 모습을 바라본 경비병은 입을 쩍 벌렸다. 샤이나는 마탑에서 인정한 천재 마법사였기 때문에 각국의 젊은 왕과 왕자들이 그녀에게 구애했지만 그녀는 단 한 존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존재가 맨발로 뛰어나와 남자의 품에 안겨들어갔으니, 그녀를 알고 있는 존재라면 입을 벌리는 것이 당연했다. "어서와요. 나의 제자이자 스승이며, 연인이자 친구인 존재여..." 현민의 품에 안겨있는 샨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현민은 그런 샨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 "쿡쿡. 연기실력 많이 늘었네?" "괜찮았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과는 이렇게 해야한다고 하더라구." "어디에서?" "책에서. 제목이 아마 '불타는 이 밤'이었지?" 현민에게서 떨어져 나온 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물을 닦았고, 현민역시 그런 샨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 책 겉표지가 빨갛지 않았어?" "응. 모서리 부분에는 19라고 적혀있던걸?" 현민의 옆에 서서 그의 손을 잡은 샨은 현민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그들의 황당한 만남에 경비병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헤매었다. 한편.... "헉!" "저, 저건 뭐하는 놈이야?!" "으, 으으!! 내 딸 같은 샨이..." 마탑의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아홉명의 장로들은, 자신들의 공동 제자이자 앞으로 탄생할 대마법사인 샨이 한 남자의 품에 안겨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빨갛게 변한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너 이놈! 저 녀석이 뭐라고 했더냐?!" "그, 그게...." 현민과 샨의 만남에 얼굴이 붉어진 장로들이, 현민의 말을 가져온 경비병을 둘러싸고 압박했다. "제자이자 스승이며, 연인이자 친구라고...." "연인!!!" "뭐라?!" "히익!" 다른 것은 듣지도 않은 채, 연인이란 두 글자만이 장로들의 머릿속을 헤매고 다녔고, 장로들의 불같은 성질에 경비병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저 녀석이 감히 내 딸 같은 샨을!" "내 제자를!" "장래의 대마법사를!" "그, 아무튼 샨을!" 한참 고함을 지르던 장로들은 더 이상 지를 고함이 없자,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가자!" "응!" 아홉명의 장로들이 샨의 방으로 뛰어갔고, 마탑의 꼭대기에는 경비병만 남게 되었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찾아온거야? 얼마나 기다렸다고." "한동안 이것저것 만드느라 바빴거든. 그리고 너도 공부한다고 해서 함부로 찾아올 수가 없었고..." 샨의 방으로 들어간 현민은 그녀가 건내주는 차를 받아들며, 멋들어진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보다 벌써 7서클인거야?" "당연하지. 그보다 너는?" "나? 5서클." "에게?" 5서클이라는 현민의 말에 샨은 자신도 모르게 현민의 실력을 낮게 보았다. "에게? 5서클하고 대결한번 해볼까?" "자신있어?" "후후후, 이긴사람 소원들어주기다." "쿡쿡쿡. 좋아." 남아있는 차를 들이킨 현민은 샨과 함께 자리를 이동했다. 어느정도의 수준이 될지도 모르는데 샨의 좁은 방에서 대결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방문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던, 아홉명의 장로들도 그들을 따라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괜찮은데?" "마법 연습장이니깐 왠만한 마법의 충격은 모두 흡수하지." 마탑의 지하로 이동한 현민과 샨은 창고같은 장소에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메모라이즈는 했지?" "당연. 마법의 개수는 20개로 제한할까? 40개로 제한할까?" "20개. 대결이 길면 피곤하잖아." 20개로 타협한 현민과 샨은 서로를 향해 마법을 날릴 준비를 하였다. "시...." "...작!" "대지의 족쇄!" "디스펠 베리어!" 두 사람의 시작소리와 함께, 현민은 대지의 족쇄를 사용하여 샨의 움직임을 묶으려 했다. 하지만 디스펠 베리어란 마법으로 현민의 마법을 무효화 시킨 샨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하나! 이번엔 내 차례! 인탱글! 리턴!" 바닥에서 솟아나온 나무뿌리가 현민의 발목을 감쌌고, 그 상태 그대로 원래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 했다. "셋! 윈드 커터! 인탱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나무뿌리를 바람의 칼날로 끊어버린 현민은 즉시 자세를 바로하며 오른손에 인탱글을 시전하였다. 쉬리릭! 현민의 팔목에서 시작된 인탱글은 그의 팔목을 감싼 후에도 길게 늘어졌다. 촤악!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넷! 버닝 핸드(Burning Hand)!" 샨의 손목을 감싼 나무뿌리가 커지려는 순간 샨이 자신의 손을 불태웠고, 현민의 나무뿌리는 맥없이 사라졌다. "멋진데?" "그치? 옷이 탄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아주 매력적인 마법이야." 다른 부분의 옷은 그을림조차 없었지만, 현민의 인탱글이 감싸았던 오른팔은 활활 타오르며 팔에 닿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음... 저 건방진 녀석도 조금 하는데?" "그러게. 하지만 샨이 이길거 같지?" "당연하지! 7서클이 장난인가?" 한쪽의 벽면에 숨어있던 9명의 장로들은 그들의 대결을 보며, 현민의 마법실력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중감옥!" "다섯! 워터 브레스!" 허공에서 생겨나는 물방울이 자신을 감싸기 직전, 재빨리 호흡마법을 시전한 현민은 물속에서도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섯! 아이스!" "여섯! 그래비티!" 현민의 여유로운 표정에 심술이 난 샨은 수중감옥을 얼려버리려고 했으나 현민의 중력마법으로 인해 그녀의 물은 땅속으로 쏟아졌다. "메~롱." 현민이 그런 샨을 향해 결정타를 날렸고, 샨은 두 손을 높이 들었다. "각오해! 아이스 랜스!" 그녀의 주문에, 수십 개에 달하는 아이스 랜스들이 허공에 생겨났고, 현민은 그런 샨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훗, 염력." "꺄악! 변태!" 그녀의 마법이 완성되기 직전, 염력을 사용한 현민은 그녀의 치마를 위로 올려버렸다. 샨은 자신의 치마가 올라가자 깜짝 놀라며 치마를 부여잡고 주저앉았으며, 그녀의 행동과 동시에 마법은 취소되었다. "푸하하하! 승리는 나의 것이다!" 현민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9명의 장로는 현민의 비열한 마법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표정을 지었다. "그리스! 인탱글! 수중감옥! 블링크! 버닝 핸드!" "블링크!" 하지만 그들이 뛰쳐나가기 직선 음흉한 미소를 지은 샨이 현민을 향해 마법연타를 날렸고, 현민은 그녀의 마법에 맥없이 당하며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다행이도 워터브레스의 지속시간이 남아있었고, 물속에서도 말이 가능했기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칫!" "그게 애인한테 할 태도야?" "흥! 어리석은 제자가 스승한테 까부는데, 이 정도는 가벼운 벌이지." 둘의 눈은 불이라도 밝히는 듯 매우 반짝거렸다. "재미있는데?" "그러게. 상당히 재미있는 마법이 많군." 그들의 마법대결은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즐겁게 하고 있었다. "너 12개 썼다." "너는 8개네?" 서로의 마법갯수를 확인한 두 사람은 잠시 끊어졌던 마법대결을 다시 했다. "대지의 손. 샨!" "응?" 짝! 대지의 손을 사용한 현민은 샨이 대답을 하는 순간 박수를 쳤다. 쾅! "우악!" 하지만 비명을 지른 것은 현민이었다. 짝 소리나게 부딪혔던 현민의 손은 부딪힌 속도만큼 팅겨나며 현민에게 고통을 주었다. 그런 현민을 바라보는 샨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서 있었다. "무, 무슨 마법이야?" "reflection(반사)." "치사해!" "안들려~." 샨의 반응이 얄미웠으나 자신의 모든 실력을 들어낼 수는 없었다. 이런 좁은 공간에서 가능한 것도 아니었고, 잘못하다간 샨이 다칠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샨 역시 마찬가지였다. "룬, 나 땀나는데." "나는 아프거든요?" "그래? 그럼 빨리 끝내야 겠네." 웅얼웅얼웅얼.... 샨의 종료 선언에 잔뜩 긴장한 현민이 그녀가 듣지 못하는 소리로 작게 마법을 실현했고, 그런 현민을 바라보는 샨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후후훗, 소용없을걸?" "글쎄? 큭큭." 그녀역시 현민에게 불안감을 느낀 것인지 표정이 다급히 변하며 서둘러 마법을 시전하였다. "tickle(간지럼)!" 털썩! "풋, 푸하하하, 쿡쿡쿡. 뭐, 뭐야? 큭큭." "오호호, 내 승리지?" 샨의 마법에 딱 걸려버린 현민은 땅바닥을 뒹굴며 웃음을 참지 못했고, 샨은 그런 현민에게 다가갔다. 탱! "뭐, 뭐야?" 현민을 향해 다가가던 그녀는 자신을 옭아매는 무언가에 더 이상 움직이지를 못한 채 현민을 향해 소리쳤다. "하하, 위, 하하하하, 윈드..크, 크큭, 커터. 꺄하하하하." 팅! "꺄악! 아악! 야! 우악! 꺄악! 내려줘! 룬! 치마 엉켰단말야!" "푸하하하핫! 하하! 푸하하하하하!!" 투명화 마법이 걸린 여왕의 거미줄에 걸려버린 샨은, 현민의 마법이 밑부분을 끝어버리자 하늘 높이 튕겨져 올라가며 거미줄에 돌돌 말려버렸다. 갑작스럽게 올라갔기 때문에 거미줄에 걸려있는 그녀의 모습이 상당히 야했지만 바닥에 업드려 웃고 있는 현민에게는 그런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무승부군," "무승부네." "비겼네?" "호오?" "둘다 이겼군." "그러게."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9명의 장로들만이 그들의 황당한 마법대결에 결말을 내려주었다. -------------------------------------------------------------------------------- "흐아아암... 샨, 어디가?" 밤새도록 장로들에게 시달림을 받은 현민은, 결국 잠잘 곳을 마련하지 못하여 샨의 방에서 같이 잤다. 물론, 방만 같이 썼을 뿐, 샨은 침대에서, 현민은 방의 천장에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을 설치하여, 편안한 자세로 달라붙어 잤다. "네가 거미야? 아침부터 올려다보기 힘드니깐 그냥 내려와. 그리고, 옷 갈아 입는데 빤히 쳐다보지도 말고." "흐아암. 캔슬." 탁. 졸린 눈을 비빈 현민은 마법을 캔슬하고, 몸을 낮추며 충격을 흡수하여 멋지게 착지했다. "그리스." 철푸덕! "으윽!" 샨의 심술궂은 마법에 현민은 팔다리를 쭉 뻤으며 미끄러져 버렸고, 샨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혼자서 당할 수만은 없었던 현민은 마법을 사용하였다. "염력." "후후후, 미안하지만 오늘은 속에 바지입었지롱." 이로서 오늘은 현민의 완패였다. "나 출근해야 하니깐 집 잘보고 있어요, 내 사랑." 쪽! 현민에게 다가간 샨이 그의 볼쪽에서 쪽 소리를 냈다. 그녀의 입술과 현민의 볼이 닿지는 않았지만 누가 보아도 그들의 인사는 연인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미안, 오늘은 나도 무투회에 나가봐야 하거든. 잘 다녀와, 샨." 쪽! 현민 역시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지 않은 상태에서 쪽 소리를 냈고, 문밖에서 몰래 보고 있던 장로들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저, 저놈의 쉐이를!!' '주둥이를 뽑아버릴라!' '가만두나봐라.' '101가지 저주를 동시에 걸어주마!' "워프!" 자신의 눈앞에서 샨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준 현민은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손을 내렸다. "메모라이즈." 오늘의 전투를 위해 현민은 마법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루나!" 현민이 콜로세움으로 들어가려 하자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인지, 갑자기 나타난 발록이 현민의 한쪽 팔에 매달렸다. "안녕하세요." 딸랑. "응." "갈까요?" 현민이 발록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사이, 그의 반대쪽에 나타난 페튜니아가 현민의 옆에 달라붙으며 정면을 가르켰다. "네." "아무래도 제가 먼저인가봐요."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는지 모르겠지만 현민이 보기에 참가한 사람들의 실력은 거기서 거기였다. 발록 역시 너무나 수준낮은 시합이 지루한 것인지 하품을 하고 있었고, 그러던 차에 페튜니아의 시합이 다가온 것이었다. "잘해요." "네!" 현민의 옆에 서 있던 그녀는 자신의 품에서 가면을 꺼내어 착용하였고, 몸이 흐릿해 진다고 느끼는 순간 그녀는 이미 경기장의 중앙에 서 있었다. "기사인가?" "그런거 같은데요?" 페튜니아의 반대쪽에 나온 사람은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거대한 투핸드소드를 들고 있는 멋진 기사였다.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안내소리에 기사는 검을 들어올렸고, 페튜니아는 루인아츠를 잠에서 깨웠다. "깨어나라, 깊고 깊은 잠에서 일어나 나를 수호하라. 어둠속의 너를 부르는 존재가 곧 너의 주인이니, 나의 부름에 답하여 지금 눈을 떠라. 루인아츠!" 깨어나는 루인아츠와 함께 그녀의 눈동자와 머리가 붉게 변하며 허공에 휘날렸고, 은색의 가면과 거대한 루인아츠로 인하여 그녀에게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움찔. "호오... 대단한 물건이군," 멀리서 구경을 하고 있던 황족들과 고위 귀족들도 페튜니아의 무기에 관심을 가졌다. "대단하군. 그건 어디서 얻은거지?" "스승이 만들어줬다고 해야할까요?" "등급은?" "비밀. 당신이 안온다면 제가 가죠." 거대한 루인아츠를 끼고 있는 페튜니아는 그 무게가 의심될 정도로 빠르게 뛰어나갔고, 기사는 차분한 눈으로 그녀가 바로 앞에 다가왔을 때, 검을 강하게 내려쳤다. 쾅! 깡! 퍽! 자신의 머리위로 검이 떨어져 내리자, 바닥을 찍어 움직임을 멈춘 페튜니아는 왼손으로 검면을 치며 튕겨버렸고, 들어나는 그의 가슴을 강하게 때려버렸다. 우아아아아!!!! 그녀의 주먹질 한방에 무거워 보이던 기사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경기장 밖으로 튕겨져 나갔고, 그것을 구경한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다. 기사도 멋지긴 하지만, 기사보다는 가면을 쓴 페튜니아가 더욱 예뻐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아, 인간이란 존재는 이해할 수가 없다니깐." 발록은 그런 남성들의 환호에 고개를 저었고, 현민은 그런 발록을 보며 미소지었다. "이럴때는 인간이라기보다 '남자'라고 하는게 맞을 거에요." 현민과 발록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너무나 쉽게 승리해버린 페튜니아가 그들의 곁으로 돌아왔고, 그녀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 "응? 이번엔 내 차례인가보네요." 페튜니아의 다음으로 메시지를 들은 현민은 자신의 차례가 오자 차림새를 바로하며, 가면을 고쳐썼다. 딸랑. "다녀올게요." 페튜니아에 이어서 현민의 신형이 사라져버렸고, 발록은 재미난 눈으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네크로맨서라...." 현민의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자신과 친숙한 어둠의 기운이었고, 그 질을 볼 때, 네크로맨서가 틀림없었다. 딸랑. "어릿광대? 진짜인가?" "글쎄요?" 현민의 맞은편에 등장한 사내가 현민의 정체에 신경썼지만, 현민은 그러한 사내와 상관없이 샨에게 애정표현하기 바빴다. "시작합니다!" "일어나라, 어둠의 군사들이여. 나의 부름에 맞추어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깨어나, 나의 적을 쓰러뜨려라!" 콰드득! 달그락, 달그락... "응?" 너무나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린 현민은 경기장 위에 서있는 백여마리의 스켈레톤을 보며 경악했다. "중국사람인가요?" "그렇다!" "하아...." 쪽수로 밀어붙이려고 하는 상대를 보며 현민은 한숨을 내뱉었다. 많으면 장땡이라는 저런식의 유저는 현민으로서도 좋아하지 않는 유형이었다. "절대방어!" 펑! 갑자기 날아온 화염마법을 막기위해 현민은 절대방어를 시전하였고, 허공에 떠있는 네 마리의 뼈다귀를 보았다. "스켈레톤 메이지라.... 귀찮아졌네요." "하하하하, 이정도의 숫자면 오우거도 껌이지! 다구리에 장사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마!" 현민의 난처한 표정을 읽은 것인지, 그는 크게 웃으며 자신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쿡쿡쿡, 미안하지만 몰이사냥이라면 이쪽도 환영이랍니다." 하지만 현민에게 그런것이 통할리 없었다. "대지의 심판!" 콰드드득! 땅에서 솟아오른 창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허공에 떠 있는 스켈레톤을 제외한 모든 것이 부서져 버렸다. 물론, 상대를 죽이면 실격이니 현민은 딱 그의 발앞에서 마법이 끊기도록 설정해 놓은 상태였다. "또 해보실래요?" "이익! 일어나라! 공격!" 그의 공격명령과 함께, 스켈레톤 나이트와, 스켈레톤,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현민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현민은 방어막에 둘러싸여 편안히 구경만 했다. "소환! 본 와이번!" 쿠아아아앙! 경기장을 가득 매울만한 크기의 본 와이번이 허공에 소환되었고, 그는 와이번의 꼬리를 타고 올라가 그 위에서 명령을 내렸다. "브레스!" 크오오오오오! "호오~. 정말로 원하신다면야." 딸랑. 아래에서는 스켈레톤들이 절대방어를 두드리며 시끄럽게 하고 있었고, 공중에 날고 있는 본 와이번의 입에는 시커먼 연기같은 것이 모이고 있었다. 하지만 현민은 마음착한 악당이 아니기에 그가 준비하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대지의 손! 절대방어! 스트랭스!" 이전에 시전했던 대지의 심판에 여왕의 거미줄을 사용하자 그것에 달라붙은 스켈레톤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를 못했고, 대지의 손을 사용한 현민은 자신의 앞에 절대방어를 생성하였다. 스윽.... "다치지 않게 조심하시길....." 대지의 손으로 절대방어를 집어든 현민은 허공에 떠 있는 상대를 바라보며, 악동같은 미소를 지었다. 팟! 그의 발이 높이 들어올려졌고, 그 발이 내려오는 순간 팔이 휘둘러졌다. 그의 몸동작에 맞추어 대지의 손도 움직였고, 그 손에 들린 절대방어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와이번을 향해 날아갔다. 슈앙! "아, 아직 준비가!!" 쾅! 콰드드드득! 절대방어에 명중한 본 와이번은 산산히 흩어져버렸고, 그 위에 있는 네크로맨서는 맥없이 떨어져 내렸다. "cobweb(거미줄), 댄싱라이트."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그까지 잡아준 현민은 그가 다치지 않도록 장외로 던지면서 귀빈석에 있는 샨을 바라보았다. "승자! 어릿광대!!" 와아아아아아!! 언제나 재미있고 엉뚱한 어릿광대의 마법에, 그것을 구경한 사람들은 콜로세움이 떠나갈 듯, 함성을 외쳤다. -------------------------------------------------------------------------------- "하하하하, 샤이나님 보셨습니까? 정말 재미있군요." "호호호." 황제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예비 대마법사이기에 황제는 샨에게 말을 높이고 있었다. 황족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현민의 마법에 웃음짓고 있었고,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공주의 얼굴에도 작은 미소가 생겨나 있었다. '역시 어릿광대가 룬이네.' 너무나 독특한 마법의 사용이기에 샨은 어릿광대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더욱이 그것만이 아니라도 자신의 앞에 생겨나는 하트 때문에 그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더우신가요?" "아, 아닙니다." 허공에 생기는 하트를 없애기 위해 손짓을 하자 그녀의 뜻을 오해한 황비가 물어보았고, 샨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말썽쟁이! 하여튼 귀엽게 논다니깐.' 자꾸만 생겨나는 하트를 향해 손을 흔들었으나 그녀의 표정은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있는 공주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뭐 할까요?" "글쎄, 아직은 재미있는 시합이 없네." "그래도 보는게 어때요? 오늘 시합이 끝나면 다음 시합은 4일 뒤이기 때문에...." "응?" "네?" 4일 뒤에야 시합이 있다는 페튜니아의 말에 현민과 발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충분한 휴식을 가지면서 싸우기 위해서에요." 페튜니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현민은 이미 그녀가 말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만약, 21일동안의 시합을 연속으로 진행한다고 한다면 현실에서는 5일동안 캡슐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흠... 하지만 너무 재미없는데." "맞아." 발록과 현민이 뜻을 맞추어 페튜니아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그들의 표정에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음... 아참! 루나씨." "네?" 한참을 고민하던 페튜니아가 무언가 생각난 얼굴로 현민을 불렀고, 현민은 그녀의 부름에 반사적으로 대답을 했다. "현실에서도 움직임이 가능하시죠?" "왜요?" "가능하신가요?" "흠...." 페튜니아가 질문하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민은 쉽사리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언제나 보아온 페튜니아에게 거짓말이 통할거라 장담할 수 없었던 현민은 스스로를 낮추며 대답했다. "여기서의 움직임보다는 약간 둔할 거예요." 하지만 그 정도의 대답도 만족했는지, 페튜니아의 얼굴은 밝아져 있었다. "저기, 그럼. 시간도 남고 하니, 싸울아비 광고에 출연하지 않으실래요?" "네?" 갑작스런 페튜니아의 광고부탁에 당황한 현민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페튜니아를 바라보았다. 물론, 둘 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들의 얼굴이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광고에 협조해 주시면 20억원을 드릴게요." 도대체 벌어들이는 수입이 얼마나 되기에, 광고에 '협조' 하는 사람에게 20억원을 준다는 것인지 현민은 그녀의 생각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 돈이라면 연예인이나 영화배우들에게 부탁하는게 낫지 않나요?" "하지만 그들이 하면 연극이잖아요." '도대체 무슨 광고이길래...' 빠르게 회전하는 그의 머리가 하나의 가설을 만들어냈고, 그 가설로 인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현실에서 하면 크게 다칠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광고비의 나머지 금액으로 의료진들을 구성하기로 했거든요." 주르륵... 단순히 반응만 떠본 것이었는데, 페튜니아는 현민의 말에 자세한 계획까지 말해주었다. "딱 한번만 해주세요. 루나씨가 허락하셔야지 싸울아비에게도 제안하니까요." "싸울아비?" "네, 그러니 해주세요." 가끔가다 방송에서 보아왔던 싸울아비가 온다는 소리에 현민의 마음이 약간 움직였다. 페튜니아의 말에 따르면 싸울아비란 존재들도 모든 스텟을 봉인했다고 하니, 「싸울아비」내에서의 움직임이 곧 현실의 움직임과 같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루나, 한번 싸워보면 안돼?" 싸움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발록이었고, 지금은 너무나 심심했기에, 현민의 옆에 붙어있는 그녀는 현민과 다른 존재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참견했다. 다른 존재라면 모르지만 언제나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현민은, 그녀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겨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할게요. 일정은 언제죠?" 현민의 허락에 페튜니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잠시만요!" 현민의 앞에 서있던 페튜니아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에 남은 현민과 발록은 멀뚱히 서서 페튜니아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흠..." 현민의 눈앞에서 페튜니아가 사라진지 1분도 되지 않아, 페튜니아는 현민의 앞에 다시 모습을 들어냈다. "여기 계약서 읽어보시고, 싸인해주세요." 페튜니아가 건내준 계약서를 대충 읽어본 현민은 펜을 들고 즉시 싸인해 버렸고, 현민과 발록, 그리고 페튜니아가 수증기처럼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수도란 곳이 워낙 다양한 곳이니, 주변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현민일행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풀이 무성한 들판으로 이동한 발록과 현민은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긴 머리를 곱게 묶은 여자가 바위위에 앉아 검을 만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광고는 간단해요. 저와 아리님이 한편이 되어 루나님과 대결하는 거에요." "아리?" "루나?" 서로의 모습을 살피던 두 사람은 서로의 호칭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대를 더욱 살펴보았고, 발록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웃음지었다. "당신이 어릿광대인가요?" "당신이 싸울아비인가요?" "큭, 큭큭." 너무나 척척 들어맞는 그들의 호흡에 결국 발록의 허리가 구부러졌고, 페튜니아의 얼굴도 웃음을 참느라 빨갛게 물들었다. "사람은 참 재미있어. 모두가 다른 듯 하면서도, 결국에는 같으니 말이야." 발록은 현민과 아리라는 여자를 보며 말했고, 마지막으로 페튜니아를 바라보았다. "시작하기 전에 잠시만요." 페튜니아가 묘해진 분위기를 중재시켰고, 곧 이어 또 다른 존재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들어냈다. "안녕하세요. 홍보팀장 윤성희라고 합니다." 꾸벅. 페튜니아(혜진)의 친구이자 홍보팀장인 성희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고, 현민과 아리도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일단, 이번 광고의 내용은 현실의 움직임이 가상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것과, 반대의 경우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얘기는 현실에서 한번더 대결해야 한다는 건가요?" "네." 아리의 질문에 대답한 성희는 또 다른 질문이 있는지 잠시 기다렸지만 더 이상의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 3분 뒤에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성희가 대결시간을 정하자 여러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주변에 모습을 들어내며 카메라 같은 것을 설치했다. "여기 팝콘 좀 주세요." "올 때 음료수도요!" 딱딱하고 격식적인 느낌을 풍기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회의실 안에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거대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누가 이길까?" "어릿광대가 마법을 사용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야, 최강의 직업인 싸울아비가 있으니 당연히 아리가 이기겠지." "맞아, 게다가 2:1의 싸움이잖아?" 머리를 맞댄 직원들은 스크린 속에 비치는 세 존재의 싸움을 기대하며,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누가 이길 것 같은가요?" "저는 비길 듯 합니다." "흠...." 거대한 기업의 사장자리를 맞고 있는 그녀역시 현민과 싸울아비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릿광대가 아무리 뛰어나다해도 마법을 사용한 대결이 아닌 몸으로 하는 대결이고, 또한 1:1도 아닌 2:1의 싸움이기에 운이 좋아야 비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윤팀장이 2:1을 권한 이유도 있을테니, 저는 최소한의 결과가 비길 것 같군요." 수많은 유저중에 관심을 가진 유저인 만큼, 그녀는 현민의 실력을 좀 더 높게 쳐주었다. -------------------------------------------------------------------------------- 자신에게 주어진 3분이란 시간동안 6개의 단검을 착용한 현민은, 또 다른 자신과 대화를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길 수 있을까?' '저번에 보여줬던 실력이라면....' '하지만 두 사람일 때는 불가능해.' ''난' 할 수 있어.' "준비 됐으면 시작하세요." 수백대는 되어보이는 카메라가 이리저리 설치되어 있었고, 성희는 하늘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딸랑.... 샤르릉... 현민의 모자에서 방울소리가 울려퍼지자, 아리의 손목에 걸린 팔찌들이 그 소리에 대답하듯 맑은 소리를 만들었다. 페튜니아와 아리가 현민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섰고, 현민은 두개의 단검을 손에 쥐고, 공격해 들어올 그녀들을 기다렸다. 팟! 페튜니아가 먼저 현민을 향해 돌진했고, 그녀의 움직임에 맞추어 아리가 현민을 향해 돌진했다. 팍! 파팍! 챙! 페튜니아의 공격을 왼손으로 막아내던 현민은 아리의 검이 가까이 다가오자 페튜니아의 팔을 잡아, 아리를 향해 밀어넣었다. 자신을 향해 페튜니아가 갑자기 다가오자 순간 움찔한 아리는 자세를 비스듬이 하여 그녀의 몸을 잡아준 상태로 멈추었던 공격을 다시 하였고, 무너졌던 균형을 되찾은 페튜니아는 강한 돌진과 함께 아리의 검을 막고 있는 현민에게 돌려차기를 했다. 퍽! 팟! 파파파팟! 그녀의 발을 발로 막은 현민은 그녀에게 실린 힘을 이용하여 덤블링으로 몸을 뺐다. "휴... 장난 아니네요." 1분이란 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 잠깐의 사이에 현민은 자신이 얼마나 불리한지를 깨달았다. 싸움에 있어서는 1+1이 2가 아니라 3 또는 4였다. "후우, 후우, 후웁!" 팟! 순간적으로 호흡을 들어마신 현민이 그녀들을 향해 빠르게 뛰어나갔고, 작은 돌맹이 하나를 허공으로 튕겼다. 빠르게 달려가던 현민이 갑자기 보폭을 반으로 줄여버리자 그의 상체가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절반 이상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그가 넘어지기 직전 그의 가슴높이에 올라온 돌맹이를 손등의 검으로 강하게 쳤고, 그 작은 돌맹이는 원심력과 현민의 힘이 합쳐지며, 빠른 속도로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팟! 챙! 넘어질 듯 휘청한 발을 높이 들어 옆으로 몸을 돌렸고, 다시 한번 몸을 회전하며 뒤꿈치로 페튜니아의 머리를 찍어내려갔다. 현민이 패튜니아를 공격할 때, 그녀의 옆에 서있던 아리는 순간적으로 날아온 돌맹이를 막아내고 있었다. 팍!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손으로 땅을 짚은 현민은 발에서 전해오는 반발력을 이용하여 몸을 회전한 후, 또 다른 발로 페튜니아를 공격했다. 현민의 공격을 막고 공격할 기회를 찾고 있던 페튜니아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현민의 또 다른 발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슥! 현민의 몸이 거꾸로 되어 있는 상태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은 아리가 현민의 몸을 갈라버릴 듯 거칠게 검을 휘둘렀고, 현민은 하체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며 바닥에 바짝 엎드려 그녀의 검을 피했다. 팍! 손으로 중심을 잡고 다리를 크게 돌리자 그의 발끝에 아리의 발이 걸려들었고,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공격할 기회가 생겼지만 자신을 향해 발을 날리는 페튜니아로 인해, 몸을 일으킨 현민은 아리가 공격을 못하는 잠깐의 틈을 타, 페튜니아를 몰아붙였다. 파파팍! 퍽! 파팍! 퍼퍽! 퍽! 파팍! 아리가 일어나기까지 3초란 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 잠깐의 사이동안 그들은 10번 이상의 공격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주먹이 허공에서 부딪히고, 그들의 발이 서로 만나면서 엄청난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들은 아무런 표정변화가 없었다. "루나! 파이팅!!"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배웠길래..." 멀리서 지켜보는 발록은 현민을 응원했고, 허공에 떠있는 성희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혜진의 실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제나 여려보이던 혜진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인해 보였다. 팽! 채챙! 퍼퍽! 퍽! 페튜니아와 현민이 주먹다툼을 하고 있는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아리가 현민을 향해 기다란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그녀의 움직임에 맞추어 현민의 움직임도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팟! 챙! 촤악! 팡! 퍼퍽! 페튜니아의 두 주먹을 막아가던 현민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아리의 검을 허공으로 튕긴 후, 두 손에 검을 쥐고 페튜니아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현민이 페튜니아에게 공격을 집중하자 많은 빈틈이 생겨났지만 아리의 공격은 단 하나도 현민을 맞추지 못했다. 챙! 채채챙! 챙! 챙! 퍽! 채챙! 두 손과 두 발을 사용하여 페튜니아를 공격하는 현민은, 아리의 검이 날아오는 잠깐의 시간에만 몸을 틀어 그녀의 공격을 피하거나 손등에 있는 검집으로 막아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그런 싸움이 계속되고 있을 때, 페튜니아의 주먹이 현민의 얼굴을 향해서 날아갔고, 현민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생겨났다. 삭! "응?" "어라?" 현민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자 순간 움찔한 두 사람은, 사라진 현민 대신에 나타난 상대를 보고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실례." 퍽! "꺄악!" 한편, 두 사람의 사각 지대로 몸을 피한 현민은 그들의 움직임이 잠깐 동안 멈추었을 때, 그들의 틈사이로 다시 들어가 그들의 공격을 막아낸 후, 아리의 몸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아리의 몸이 멀리 나가떨어지자, 현민과 페튜니아는 다시 1:1의 상황이 되었고, 현민은 그 틈을 노리지 않았다. "잘한다! 일어나기 전에 이겨야 해!" 멀리서 발록의 응원에 미소지은 현민은 발록에게 사용했던 기술을 다시한번 사용했다. 파팟! 현민이 자신의 품안으로 파고들며 회전하기 시작하자 그때의 움직임으로 짐작한 페튜니아는 잔뜩 긴장하며 현민의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있었다. 툭... 허공에 떠 있던 성희의 카메라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녀는 자신이 카메라를 놓쳤다는 것도 모르는 듯, 입을 벌린 채 현민과 페튜니아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챙! 채채챙! 챙! 채챙! 짧게 회전한 현민이 오른손의 들린 역도(易刀)로 베어들어갔고, 그녀가 손에 착용한 건틀렛으로 막아내자 몸을 반대로 비틀어 회전하며 좌수의 송곳으로 그녀의 몸을 찔러 들어갔다. 현민의 송곳이 그녀의 몸에 닿기 직전, 페튜니아가 현민의 손목을 잡아버렸고, 그 자세 그대로 현민을 억압하려 했으나 그 전에 이미 현민의 오른손 무기가 왼손으로 옮겨지며 그녀의 몸을 찔러들어갔다. 팟! 자신의 몸을 찔러오는 송곳을 피해 다급히 현민의 손을 놓았지만 이미 현민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그녀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장군." 힘들기는 했지만 페튜니아의 제압을 성공한 현민은 다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페튜니아를 제압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의 뒤에는 아직 아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1:1이니 봐주지 않을 거에요." 딸랑. "쿡쿡쿡..." 바닥을 뒹굴고, 그녀들의 공격으로 현민의 몸은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그것은 옷에만 해당할 뿐, 현민의 몸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민에게 패배를 인정한 페튜니아는 발록이 있는 쪽으로 물러나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혜진이 너! 어떻게 그런 실력을..." "쉿!" 가까이 다가온 성희가 혜진에게 달려들었지만 현민과의 싸움을 주시하고 있던 혜진(페튜니아)은 그런 성희의 입을 시작하기 전에 막아버렸다. 스으윽.... "호오?" 머리위로 검을 든 아리는 아래로 내려진 검신의 끝부분에 손을 얹고, 현민을 노려보았다. "월하개화(月下開化)..." 그녀의 몸이 작게 흔들리며 춤을 추듯 현민에게 다가왔고, 현민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미소지으며, 양손의 검을 고쳐 잡았다. "그럼 나는..." 딸랑딸랑. "...어릿광대의 춤." "쿡쿡." 멀리서 현민의 작은 말을 들은 발록은 작게 웃음지었고, 혜진과 성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스윽... 살랑.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아니지만 그녀의 검은 정확히 현민을 향해 날아들었고, 현민은 왼손을 들어 그녀의 검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의 팔에서 느껴지는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고, 그제서야 뭔가를 느낀 현민은 그녀의 검이 똑같은 속도로 자신의 팔을 향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팍! 챙! 채챙! 다급히 오른손을 휘둘러 그녀의 검을 막아낸 현민은 오른손을 뻗으면서 생겨난 힘을 이용하여 몸을 회전 시켰고, 아리의 턱을 향해 팔꿈치를 꽂아 넣었다. 하지만 그녀의 턱은 이미 뒤로 이동해 있는 상태였고, 헛손질을 한 현민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을 보며 이를 악 물었다. 파캉! 챙! 채챙! 챙! 다행히 그녀의 검을 왼손으로 막은 현민은 안이했던 생각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양손에 있던 검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그의 주변에 떠있는 검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허공에 4개의 검이 떠있을 때, 현민의 움직임도 최고조에 도달해 있었다. 채채채채채채채챙!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민의 공격에, 그녀의 검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6개의 검을 쉴새없이 사용하고 있는 현민은, 동시에 두 번의 공격을 하고 잇었고, 아리는 그런 공격을 하나의 검으로만 막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움직임도 처음과 다르게 둔해지기 시작했다. 퍽! "꺄악!" 공격할 생각은 갖지도 못한 채 현민의 공격만을 막아내던 아리는, 갑자기 시야가 바뀌자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끊임없이 회전하며 공격하던 현민이 갑자기 상체를 숙이며 그녀의 발을 걸었던 것이었다. 털썩! 툭, 투투툭! 그녀가 넘어지자 재빨리 그녀의 위에 올라탄 현민은 양손에 쥐어진 송곳으로 그녀의 가슴과 목을 겨누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역시 루나!!" 멀리서 지켜보던 발록은 현민과 아리의 대결이 끝나자 그들에게 다가갔고, 페튜니아도 그녀의 뒤를 쫓아 걸어갔다. "세상에.... 저게 인간이야?" 혼자 남은 성희만이 아직까지 맺혀있는 현민의 환상에, 자리를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툭, 텅!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들고있던 맥주캔을 놓쳐버렸고, 그들의 손을 벗어난 맥주들은 땅바닥에 쏟아졌다. "도대체, 무슨 운동을 한거지?" "세상에...." "야! 저게 스텟을 봉인한 사람의 움직임이야?!" 황당하긴 했지만 그들의 눈앞에 있는 자료는 그들의 스텟이 봉인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번의 광고가 나간다면 어릿광대란 유저는 마법으로도 검술로도 최강의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이겼...네요." "그, 그렇네요." 현민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한것도 아니었지만, 이정도의 움직임으로 상대를 제압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그들은 현민의 이기는 모습을 보고도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만약...." "?" "만약, 내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저렇게 놀 수 있었을까요?" "....." 너무나 슬픈 사장의 음색에 그녀의 옆에 서있던 존재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후우...." 캡슐에서 일어난 현민은 흥분된 몸을 쉽사리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의 대결이라...." 싸울아비에서의 대결을 마친 현민은 다음 계획인 현실에서의 대결을 받아들였고, 시간은 다음날 오후 2시에 서울역 앞에서 하기로 했다. 이미 방학은 시작되었고, 내일이 휴일이기에 최대한 빠른 시간으로 잡은 것이었다. 게다가, 오후 8시부터는 대회에 참가해야 하기에 더욱 서둘러야 했다. 툭툭...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아직 운동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싸울아비와의 대결에서 흥분된 마음이 쉽사리 가라앉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찌릉찌릉... 시계는 1시반을 가르키고 있었고, 공원에는 벌레들의 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월하개화(月下開化)라...'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검이었지만 그런만큼 가장 상대하기 힘든 검이었다. 더욱이 내려갔던 검이 잠시간의 멈칫거림도 없이 다시 올라왔다는 것은 아리라는 여학생이 검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더욱 잘 다룬다는 것과 같았다. 스으윽... 현민의 오른손이 머리 위로 올라갔고, 왼손은 길게 늘어져 손바닥이 바깥쪽으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한참동안 손의 방향과 위치를 바꾸고서야 아리의 자세와 비슷한 모양을 갖출 수 있었다. '부드럽게... 흐르듯이...' ''나'의 공격이 속도라면, 걔의 공격은 흐름이야...' '그래, 그러니 부드럽게...' 평소의 연습과 다르게 현민의 움직임은 아주 느렸다. 하지만 그의 온몸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의 움직임이 상당히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후아!" 한동안의 움직임 끝에 숨을 내뱉은 현민은 다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아 버렸다. 정확한 동작을 위해 느리게 움직이다 보니, 상당히 무리한 자세도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응.' 한동안 휴식을 갖은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전의 동작을 다시했다. 단 한번의 연습을 거친 현민의 모습은 아리가 검을 들고 있는 모습과 상당히 비슷해 보였으나, 현민 특유의 독특함이 담겨있는 자세였다. 스윽, 스윽, 스슥. 부드럽게 움직이는 현민의 동작은 아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으나, 여성스러운 흐름보다는 약간의 거칠고 빠름이 섞여 있는 그런 동작이 되어있었다. "우윽! 졸라 아프네." 아리와 같이, 기술로 검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검을 움직이는 것이었기에, 한번 움직이고 난 현민의 몸은 엄청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무리하지 말자. 내일은 할 일이 많으니깐." 아리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상당히 무리가 가는 동작이었기에 현민은 더 이상의 연습은 포기한 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딸랑. "어서오세요." 집과 반대방향으로 걸어온 현민은 아침에 쓸 돈을 찾기 위해 가까운 편의점을 찾았다. 집 근처에는 현금지급기가 없기에 미리 찾으려고 한 것이었다. 삑! 삐삐삐삑 기존의 80억에 20억이 더해진 금액을 바라본 현민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아주 조금만 찾은 다음 식품 코너로 걸어갔다. 차비로 쓸 잔돈도 필요하고 아침에 먹을 반찬도 사기 위해서였다. 평소라면 김치로 대충 때우겠지만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경우이기에 약간이라도 영양보충을 해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음... 고기, 고기, 고기....' 대충 고기와 관련된 것을 찾아보던 현민은 마땅히 먹을 것이 없자 떡갈비를 하나 집어 터덜터덜 걸어갔다. 삑! "3,200원입니다." "여기요." "비닐봉지 드릴... 현민?"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든 현민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볼 수 없었던 수진이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에? 수진이?" "뭐야, 네가 먼저 알아봐야 하는거 아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이기에 둘의 표정은 밝게 변해 있었고, 현민의 표정도 예전의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화장해서 못 알아봤잖아. 변장을 하고 다니는데 어떻게 알아보냐?" "이게 변장이냐? 화장이지. 남들은 예쁘다고 하는데 그런말도 못해?" 수진의 말에 묘한 웃음을 지은 현민은 웃으며 이야기 했다. "응." "하아... 어째 넌 변한게 없냐? 아닌가? 살은 엄청 빠졌네." "그치? 나 살 많이 빠졌지? 크큭." 현민의 표정에는 자신이 살을 뺄 동안 너는 뭘 했냐는 뜻이 담겨 있었고, 그의 표정을 읽어낸 수진은 현민을 가볍게 밀어냈다. "여기서 더 살빼면 뼈만 남아." "인정할게. 그보다 밤늦은 시간에 알바하는거야?" "으응...." 한참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수진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그들의 대화가 잠시 멈춰졌다. "무슨일 있어?" 자신을 걱정하는 현민을 보며 미소 지은 수진은,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옛날일을 말해줬다. "1년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이제는 현진이랑 내가 살림해야 하거든." "동생은 괜찮아? 아직 어리잖아." 피식! 마음속으로 부모님의 사고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을 정리하고 있던 수진은, 현민의 물음에 수진은 작게 웃음지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사고 당한 부모님에 대해서 물어봤을 테지만, 오랜만에 만난 현민이란 존재는 그런 질문이 친구에게 상처를 줄까봐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현민이란 사람이 이런 성격의 '친구'였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응, 둘 다 잘 지내. 나라에서 약간의 특혜가 있거든." "특혜는 뭐 있겠냐. 특혜가 있으면 네가 이런 고생도 하지 않겠지." 탁히 부정할 수 없는 현민의 말에 수진은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런데 현진이도 알바하는 거야?" "아니, 걔는 집에서 동생들 돌봐야지." "여자 혼자 위험하지 않아?" "풋! 네가 언제 우리를 여자 취급했냐?" 현민의 걱정에 수진은 웃음을 내뱉었다. "이거 언제 끝나는데?" "4시." "얼마 안 남았네?" 수진의 말에 시계를 바라본 현민은 4시까지 10분 정도 남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끝나면 바래다 줄게." "정말? 늦은 시간에 들어가면 혼나지 않아?" "걱정마." 한동안 그녀와 대화를 나눈 현민은, 그녀의 다음 근무자가 오고 나서야 편의점을 나왔다. "후아! 공기 좋네." "가자." 숨을 깊게 들어마시는 수진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린 현민은 정면을 가르키며 수진을 앞장세웠다. "힘들지?" "응?" 갑작스런 현민의 질문이었지만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수진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벌써 1년이나 지냈는걸. 그리고 남들이 겪을 일을 나는 좀더 빨리 겪은 것뿐이잖아." 왠지 성숙해 보이는 수진의 대답에, 잠시 자리에 멈춘 현민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현민이 생각에 잠기며 그들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고, 정신을 차린 현민은 다시금 수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수진아, 싸울아비 해본적 있어?" "아니, 친구들이 얘기하는 것 들어본 적은 있는데, 아직 해본 적은 없어. 갑자기 그건 왜?" 현민의 갑작스런 질문에 수진은 현민을 돌아봤다. "싸울아비에서 1골드가 만원으로 계산되거든. 나도 그걸로 용돈(?) 좀 벌었고 말야. 네가 한다면 내가 도와줄게." "1골드가 만원이라고? 그거 불법아냐?" "싸울아비 만든 회사에서 하는 거니깐 합법이지." 현민의 말에 수진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현민의 말이 사실이라면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해보고는 싶지만...." 뒷말을 흐리는 수진의 말에 현민은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학생이란 신분으로 인해 시간적 여유가 없어졌고, 부모님이 돌아가심으로 인해 금전적 여유가 없어졌으니, 그녀에게 게임이란 것은 하나의 사치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내일 오후 2시에 다 같이 놀러갈래? 서울역에서 엄청난 이벤트가 있는데." "응?" "잘하면 공짜로 게임할 수도 있고." "정말?!" "응." 수진은 현민의 말에 기뻐했다. 교실에 들어가면 모두가 싸울아비에 대한 얘기뿐이었기에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한 수진은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저기가 우리집이야." 그녀가 가르킨 방향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건물 하나가 서 있었다. "잘가." "무슨 섭한 소리를... 현진이도 만나고 가야지. 혹시, 현진이 잠버릇이 벗고 자는거야?" 퍽! "윽!" "헛소리 마, 임마. 옷 잘 입고, 얌전히 자니깐." 현민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은 수진은, 현민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여어." "응?" 그녀가 건물의 입구로 들어가려고 할 때,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두 남자가 그들을 불러세웠다. "수진학생, 돈을 빌려갔으면 갚아야지. 벌써 1년이나 지났잖아?" "자꾸 이러면 우리도 폭력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 그들의 말에 수진의 표정이 굳어버렸지만, 현민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생겨났다. "아저씨들, 수진이 얼마를 빌려갔는데요?" "2억 빌려가고 이자까지 2억 4천." 현민의 시선이 돌아가며 수진을 바라보았고, 수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아, 미안해." "아..." 현민의 말을 들은 수진의 눈가에 작은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현민만은 남들과 다르기에 허름한 자신의 집까지 데려왔지만, 지금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바가 없었다. "오늘 현진이는 못 만나겠다." "응?"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른 이유에 수진은 깜짝 놀랐다. 남들과 같은 반응에 서운했지만 그 이유만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눈물을 닦고 있을 때, 현민은 이미 그 사내들과 차에 타고 있었다. "내일 아침 11시에 집앞에 나와있어~." 이미 차는 출발하였고, 현민은 마지막 말을 남긴 채 그들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 돈 내가 갚을테니, 사장님에게 좀 대려다 주실래요?" "뭐?" "제 친구가 빌린 돈 전부 갚아 드릴게요." 주먹질 좀 한다고 생각했기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현민은 그들에게 순순히 돈을 주려하고 있었다. "사장님, 수진학생의 돈을 대신 갚는다는 친구가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네, 근데 이 친구도 아직 학생인지라 진담인지 농담인지가.... 예, 알겠습니다." 정말로 돈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긴 했지만, 현민의 목소리가 너무나 당당했기에 그는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했다. "가자." 그들은 어디론가 현민을 데려갔고, 현민은 창밖의 경치를 구경하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어째서 그들이 돈을 빌린 것인지 아십니까?" "흐음..."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의 사내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햇병아리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잠자다 일어난 것도 기분이 나쁜데, 자신이 잘못이라도 한 것 마냥 이렇게 따지고 드니, 그의 기분은 더욱 안 좋아 질 수밖에 없었다. "그 따위 이유 알 것 없고, 돈이나 내놔." 피곤한 그의 음색에 현민은 핸드폰의 버튼을 이리저리 눌렀다. "은행, 계좌번호." "xx은행 xxx-xx-xxxxxxx" "확인해봐요." 건방지게 행동한 현민은 핸드폰을 집어 던졌고, 그의 핸드폰을 받아낸 사장은 거래내용과 잔액을 보고는 깜짝놀랐다. 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의 통장에 3억을 빼고도 99억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숫자누르기가 힘들어서 3억 드렸어요." "어디서 난 돈이지?" 그의 눈앞에 있는 현민은 어디로 보아도 학생이었고, 그의 통장에 있는 금액은 평범한 학생은 가질 수 없는 그런 금액이었다. 그렇기에 의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것은 묻지 마시고, 제 부탁좀 들어주시겠어요?" "응?" "수진과 현진이에게 아저씨 이름으로 집을 사주세요. 학생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사주시고, 캡슐도 두 개 구입해 주세요. 돈은 제가 드릴게요." 현민의 말을 들은 사장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이정도의 돈이 있다면 굳이 자신을 빌리지 않아도 혼자서 구입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좋아." 현민이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자, 그는 현민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친구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하고, 고개를 숙이는 현민이, 꼭 영화 속에서만 나오는 주인공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기 계약서 있으니 가져가라. 그리고 모든 것이 준비되면 이쪽에서 가격을 요구하지." "부탁드립니다." "얘들아, 집앞까지 데려다 줘라." 사내의 말에 옆에서 대기중인 사내들이 현민과 함께 문을 나섰다. "고등학생이 100억이라. 집안이 좋은건가, 재주가 좋은건가..." 그는 현민이란 존재를 의심하며 담배를 집어 들었다. 다른 존재들과 달리 현민과의 만남은 왠지 모르게 오래갈듯 했기 때문이었다. -------------------------------------------------------------------------------- 검은색의 긴 바지와 메이커가 들어간 흰색의 셔츠를 입은 현민은 마지막으로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해 보았다. "아참." 무언가를 생각하다 다급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현민은, 책상의 한쪽에 장식되어 있는 어릿광대 가면을 가방에 넣어 밖으로 나왔다. "가볼까?" 만나기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수진과 현진을 데릴러 가야 하기에 현민은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는 현민의 발걸음은 왠지 들떠있는 것 같았다. "현민아!" "응? 왜?" 서로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 졌을 때쯤 현민을 발견한 수진이 그를 불렀고, 모두가 현민을 향해 뛰어왔다. 현진과 수진의 뒤로 달려오는 두 명의 아이들이 아마도 그녀들의 동생인 것 같았다. "오랜만이지? 기다렸어?" "괜찮아?" "다친대는 없어?" 수진과 똑같은 얼굴의, 현진을 바라본 현민이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냈으나, 그들은 현민의 인사를 듣지도 않은 채, 한밤중에 끌려간(?) 현민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일 없었어. 우리 삼촌 동창이었거든." "그, 그래?" "응." 너무나 허황된 말이었지만, 현민이 평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수진과 현진은 현민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말을 하고 있는 현민의 태도가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의심조차도 가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응, 안녕?"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이제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현민을 향해 인사했고, 현민은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얘가 수빈이고, 이쪽이 예진이야." "난 현민이야, 잘 부탁해." 웃음지은 현민이 아이들을 바라보자 수빈은 무뚝뚝하게, 예진은 방긋 웃으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자, 가자. 늦게가면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 그 스스로가 주인공이었지만, 아직까지는 그것을 말해줄 수가 없었다. "어디서 하는거야?" "음...." 버스와 전철을 오랜 시간 타고서야 서울역에 도착했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서울역전에는 사람들만 가득할 뿐, 그 어떠한 이벤트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도착한 현민도 막상 도찬한 후에야 연락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여 난처한 표정만 지었다. "언니, 나 힘들어." "현민?" 예진의 투정에 현진이가 현민을 바라보았고, 현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의 볼만 긁적였다. "2시...." 조용히 시계를 확인한 현민은 가방에서 가면을 꺼낸 후, 빈 가방을 수진에게 넘겼다. "여기 가만히 있어. 그리고, 잘 봐둬. 내가 이런 짓 하는거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깐." 쑥스러운 표정을 지은 현민은 역전 중앙을 향해 걸어갔고, 중앙에 서있다 싶을 때, 발걸음을 멈췄다. 현민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지만 모두가 각자의 발걸음으로 바빴기 때문인지 그를 신경쓰는 사람은 일행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꾸욱... "후우우웁!" 얼굴에서 벗겨지지 않게 단단히 가면을 쓴 현민은 숨을 깊게 들어마셨다. "페튜니아!!!!!!!!!" 멈칫! 갑작스런 현민의 외침에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모두들 현민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팡! 탁! 타탁! 어디선가 나타난 페튜니아(혜진)가 현민을 공격해 왔고, 현민은 그녀의 공격을 가볍게 막으며 거리를 벌렸다. 스윽...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페튜니아는 현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싸울아비」내에서 현민이 준 것과 똑같은 것을 쓰고 있는 혜진은, 두 손에 루인아츠를 대신하여 철제 건틀렛을 착용하고 있었다. 흠칫! 사악! 현민이 혜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무언가의 섬뜩함을 느낀 현민은 주저없이 허리를 숙였고, 그의 등으로 하나의 검이 스쳐지나갔다. "꺄악!" 반짝이는 검에 놀란 시민들이 서둘러 그들과 거리를 벌렸고, 현민은 진검을 가져온 아리 때문에 식은땀을 흘렸다. 툭툭. 아리의 무기에 당황하는 사이, 그의 곁으로 다가온 페튜니아가 현민에게 6개의 단검과 하나의 마이크형 이어폰을 건내주었다. 단, 하룻밤 사이었지만 페튜니아는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응?" "잘해봐요." 애애애앵..... 도로변이 통제되며 여러대의 구급차가 달려왔고, 수십명의 카메라맨들이 곳곳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싸울아비의 운영자중 하나인 '페튜니아'입니다." 페튜니아의 목소리가 주변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곳곳에 퍼져나갔고, 그제야 사람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생겨났다. 게임속이 아닌 도시의 중심에 「싸울아비」의 운영자가 모습을 들어냈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은 특수촬영이 아니며, 모든 것이 본인의 능력인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최초의 싸울아비인 '아리'님과 '어릿광대'님이 협조해 주셨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인가?" "그러게. 싸울아비와 어릿광대라니..." 웅성웅성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싸울아비와 어릿광대란 소리에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그들을 모르는 수진과 현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민만을 바라보았다. "하압!" 의미없는 기합을 지른 페튜니아가 현민을 향해 달려갔고, 그녀의 몸이 두 걸음 앞으로 다가오는 순간 현민이 먼저 한걸음 다가가며,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버렸다. 팟! 퍼퍼퍽! 퍽! 퍼퍽! 그들의 동작이 정확히 일치되며 손과 발이 딱딱 들어맞았다. 너무나 정확히 들어맞는 그들의 동작에 의심이 들 수도 있었지만,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주먹 부딪히는 소리가, 그들의 대결은 장난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퍼퍼퍽! 챙! 채챙! 퍽! 현민이 페튜니아만 신경쓰고 있는 사이, 그의 등으로 다가온 아리가 조용히 검을 휘둘렀고, 현민은 게임속에서 했던 것과 같이 페튜니아의 공격을 막으며 그녀의 검이 오는 순간 몸을 틀어 검을 팅겨냈다. '위험해...' 팟, 파파팍! 팡! 퍼퍽! 「싸울아비」속에서의 대결과는 다르게 약간 더딘 몸의 움직임을 느낀 현민은 두 사람의 공격을 동시에 막는다는 것이, 약간 힘들게 느껴졌다. 정신과 다르게 몸의 움직임이 약간씩 느리자 그의 손은 점점 엉켜들어갔고, 현민은 어쩔수 없이 거리를 벌렸다. '하아... 도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는거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자 답답함을 느낀 현민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고, 그의 질문에 잠자고 있던 또 하나의 인격이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의 난 어릿광대다...' '하지만!' 또 다른 자신과 대화에 빠진 현민은 움직임을 멈췄고, 그의 움직임에 맞추어 페튜니아와 아리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왜 현진과 수진을 데려왔지?' '그건...' 또 다른 자신이 하는 질문에 현민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말자, 여기 이 자리에 서 있는 나 자신은 어릿광대이니, 가장 너 다운 모습을 보여주는거다!' '....' 또 다른 자신의 말을 듣고 서야 현민은 자신이 현진과 수진을 이곳에 대려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세상을 조롱하고, 나 자신을 비웃어라!' 힘들어 하는 그들에게 잠시간의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스윽... 페튜니아와 아리에게서 등을 돌린 현민은 수진과 현진이 있는 곳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귀족적으로 인사했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정중함이 아닌 익살스러움이었고, 가면의 속에 있는 그의 얼굴은 재미난 일이 있는 듯 정겨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딸랑딸랑 주변에는 어떠한 방울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민의 귀에는 그만이 들을수 있는 방울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툭, 투툭. 두 개의 단검을 꺼낸 현민은 그 단검들을 장난스럽게 던지며 놀았고, 페튜니아와 아리는 장난스럽게 변한 현민의 분위기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끄덕 끄덕. 둘의 고개가 끄덕여졌고, 그녀들은 현민을 향해서 돌진했다. 챙! 퍼퍽! 채채챙! 팡! 채챙! 아리의 공격이 먼저 도착했고, 현민은 그녀의 검을 오른쪽으로 팅겨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안쪽으로 파고들며 어깨로 몸을 들이박았다. 그녀의 뒤로 페튜니아가 다가오자 떨어지는 칼을 발로 차며 공격을 했고, 그녀가 손을 모아 검을 막아내자 팅겨진 검을 잡고 아리를 공격했다. 채채챙! 아리를 공격하는 두 손에는 역날의 도가 들려있었고, 원래 있었던 두 개의 송곳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파파팡! 채챙! 현민에게 다가온 페튜니아가 손발을 이용하여 공격을 했고, 현민은 몸을 회전하며 그녀의 공격을 막는 동시에 다시한번 회전하여 페튜니아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의 신형이 정신없이 돌아가며 둘의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 챙! 채챙! 그녀들의 공격을 막아내던 현민은 송곳이 허리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발을 들어올려 송곳을 걷어찼다. 두 개의 송곳이 아리의 얼굴을 향하여 빠르게 날아갔고, 아리는 현민을 공격하는 대신 두 개의 송곳을 막아갔다. 착! 퍽! "컥!" 그녀의 검이 높게 들린 순간 그녀의 팔을 잡아 챈 현민이 옆구리에 한방을 넣었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그녀의 몸이 멈추었고, 그와 동시에 몸을 돌린 현민이 이번에는 페튜니아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격투가 전문인 그녀는 현민과 마찬가지로 그의 손을 붙잡았고, 서로의 손이 붙잡힌 상태에서 그들은 보는사람들이 놀랄만한 박투를 선보였다. 파파파팍! 두 개의 주먹이 서로의 주먹을 공격하였고, 둘의 대치상황은 쉽사리 끝나지가 않았다. 그러던 순간 그녀의 발사이로 한쪽발을 들이민 현민이 손을 잡아당기며 몸을 앞으로 했고, 둘은 껴안은 듯한 자세가 되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페튜니아는 눈망울을 떨었고, 현민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스윽! 아리의 검이 그를 향해 날아오는 순간. 현민은 페튜니아의 목을 밀며 허리를 숙였고, 중심을 잡으려던 페튜니아는 현민의 발에 걸리며 맥없이 넘어져 버렸다. 쾅! 그녀의 몸이 바닥과 닿는 동시에 현민의 주먹이 그녀의 머리 바로 옆을 강타했고, 그녀는 현민의 주먹에 몸을 떨었다. "장군." 탁! 타타타탁! 페튜니아에게 승리를 선언한 현민은 덤블링을 하며 재빨리 거리를 벌렸고, 간발의 차이로 아리의 검이 스쳐지나갔다. "받아라. 그리고 덤벼." 거리를 벌리고 있는 현민을 가만히 지켜본 아리는 바닥에 떨어진 두 개의 검을 들어 현민을 향해 던졌다. "멋지다...." 현민의 모습을 보고 있던 수빈과 예진은 너무나 멋진 현민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들과 함께 바라보고 있던 수진과 현진도 너무나 달라진 현민의 모습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태탱... 스윽. 바닥에 떨어진 두 개의 단검을 주어든 현민은 6개의 검을 원래의 자리에 넣었다. 그리고 미소지었다. "월하개화(月下開花)..." "그럼 나는 어릿광대의 춤.. 일까요?" '세상을 조롱하고, 너 자신을 비웃어라!' 현민이 미소짓고 있을 때, 그의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인격은 현민을 향해 소리없이 외치고 있었다. 스윽... 그녀의 발이 조금씩 나아갔고, 흔들리는 몸에 맞추어 그녀의 검도 춤추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싸울아비」속에서의 움직임과 전혀 다른점이 없었다. 탁!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현민도 몸을 돌려 덤블링을 했다. 그녀의 움직임보다 현민의 움직임이 더욱 빨랐고, 적당히 거리를 계산한 현민은 마지막 몸을 옆으로 틀며 바닥을 미끄러졌다. 촤악.... 바닥이 흙은 아니기에 미끄러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의 몸은 어찌어찌 아리의 앞까지 도착했고, 현민의 회전과 더불어 아리와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채채채채채채채챙! 빠르게 돌아가는 현민의 몸과 부드럽게 움직이며 현민의 공격을 막아내는 아리로 인해, 장내에는 그들의 싸움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채채챙! 챙! 「싸울아비」속에서와는 다르게 그녀의 검은 끊김이 없었고, 검의 움직임이 더욱 부드러웠다. 그녀의 검이 그러한 움직임을 보이자 현민의 공격도 쉽사리 성공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가끔가다 날아오는 그녀의 공격은 날카로워서 현민의 몸을 둔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응!' 또 다른 마음에 대답한 현민은 자신을 공격하는 아리의 검을 오른 손등의 검집으로 튕겨냈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멈춤 없이 현민을 향해 날아들려 하였고, 현민은 반대쪽 손의 검으로 다시한번 그녀의 검을 밀어냈다. 흠칫! 그녀의 의지와 다르게 그녀의 검은 몸에서 한참 떨어져 나갔고, 그녀의 몸에 커다란 빈틈이 생겨났다. 오른손의 무기를 역수의 도로 바꾼 현민은 몸을 반회전 하며 그녀의 머리를 향해 팔꿈치 공격을 하였고, 그녀의 머리가 뒤로 물러나며 피해지는 순간, 팔을 펴며 다시 한번 공격하였다. 삭! 현민의 검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몸을 낮추었고, 왼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은 현민은 허공에 몸을 띄우며 그녀의 등으로 넘어갔다. 등으로 넘어간 현민이 오른손의 검으로 그녀의 목을 겨누었고, 그와 동시에 움직인 그녀의 검이 현민의 이마를 겨누었다. 우와아아아아!!!! 휘이이익!! "멋져요!!!!" "최고!!!" 그들이 움직임을 멈추자 주위에서 엄청난 환호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현민은 주저앉은 아리를 일으켜 주며 주위를 향해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장난스러움은 누구나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였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다시한번 미소지었다. -------------------------------------------------------------------------------- "누나, 그 형 누구야? 친해? 그 형 싸움 잘하던데 배우면 안될까?" "언니, 언니. 그 오빠랑 친해? 언니들이 좋아 하는거야?" 현민의 활약을 눈앞에서 목격한 아이들은 흥분한 표정으로 현민에 대해 물어보았고, 수진과 현진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반짝거리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자니 무언가 말은 해주어야 했지만, 너무나 달라진 현민의 모습으로,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툭. "어때? 재미있었어?" "형! 정말 멋있었어요!" "오빠, 너무 멋져!" 어느새 수진과 현진의 뒤에 다가온 현민이 그들의 어깨를 건들며 그들을 불렀고, 가까이 다가온 주인공의 모습에 두 꼬마의 반짝이는 눈이 현민을 향해서 집중되었다. "도대체 2년 사이에 뭘 한거야?" "너 정말 현민이 맞아?" 눈앞의 현민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시선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적나라하게 떠올라 있었다. "당연히 내가 현민이지, 누구겠어?" 그녀들의 반응에 웃음지은 현민은 수진이 메고 있던 가방을 건내받았다. "이제... 잠깐만." 현진, 수진 가족을 대리고 어디론가 향하려는 순간 그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현민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 네... 벌써요? 아, 감사합니다. 아뇨, 지금 서울역이에요. 네. 3시요? 아예, 알겠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현민의 표정은 매우 밝아졌고, 현진과 수진은 그런 현민의 표정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자! 먹으러 가자~." 현진과 수진은 계속해서 통화의 내용을 궁금해 했지만 현민은 그녀들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수빈과 예진을 양 옆에 끼고 있는 현민은, 두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나갔다. 점심으로 고기를 먹은 아이들은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현민은 조용히 걸음을 늦추며 수진과 현진의 보폭에 자신의 걸음을 맞추었다. "재밌었지?" "응." "하긴, 내가 이렇게 망가져보긴 오늘이 처음이다." "후훗." 너무나 멋있었던 현민의 모습이었지만 남들 앞에 나서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현민으로서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그의 빨개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한번 놀리고 싶었지만 오늘 하루 동안 그가 희생(?)한 것을 생각하며, 놀리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을 억눌렀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 "나도." "야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즐겁게 논 건데, 고마운 게 어딨어?" 그는 모르겠지만 그녀들에게 고마운 것은, 자신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있는 현민 그 자체였다. 예전이라면 현민의 말을 당연하게 여겼겠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금, 현민이 해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 그녀들의 가슴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오빠, 이제 어디가?" "형, 빨리와요." "오냐." 수진과 현진을 뒤로한 채 그들에게 걸어간 현민은 앞서 잡았던 약속 장소로 그들을 안내했다. "타라." 약속 장소에는 어제 찾아왔던 남자들 중 한명이 차와 함께 대기중이었고, 현진과 수진은 불안한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아저씨 직원이거든." 말이 좋아 직원이지 원래의 위치를 아는 그녀들로서는, 그와의 동차가 엄청 불안했지만 현민이란 존재의 믿음 하나로 차에 몸을 실었다. "사장님이 특별히 신경썼다고 하니깐 별 문제는 없을거다. 필요한 물건들도 전부 구해놓았으니 너희들은 몸만 가면 된다." "제가 나중에 따로 연락드릴게요." 현민과 운전수 사이에서 그녀들이 이해할 수 없는 대화가 오고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피곤에 지친 아이들은 어느새 잠들어 있었고, 그들이 타고 있는 자동차는 현민이 살고 있는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자, 105동 1201호다." 운전수가 현민에게 하나의 열쇠를 건내주었고, 열쇠를 받아든 현민은 차에서 내렸다. 그의 뒤를 따라 현진, 수진 가족이 내려섰고, 차는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버렸다. "가자." "어디가는데?" "현민아, 왜 그러는거야?" 현진과 수진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현민은 잠에서 덜 깬 아이들을 이끌며 아파트의 안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뭐지?" "여기엔 왜 온 거야?" 그녀가 서있는 아파트는 이번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였다.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의 외형은 상당히 깔끔하고 깨끗했으며, 복도에는 미약한 페인트 냄새가 나고 있었다. 찰칵! 1201호에 도착한 현민은 열쇠를 문에 꽂아 넣었고,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에게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형, 형네 집이에요?" "오빠 집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현민의 집으로 생각한 채 안으로 들어섰고, 현민은 수진과 현진의 등을 밀치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우와~! 언니, 언니! 이방 엄청 예뻐!" "누나! 여기 캡슐있다!" "와! 벽걸이TV에 게임기까지!" 아이들은 방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기 바빴고, 현민은 그들의 모습에 웃음지으며 열쇠를 현진에게 건내주었다. "받아." "응?" "이 집이, 당분간 너희들이 생활할 집이야." "우리?" 현민의 말에 그녀들은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난 표정으로 바뀌었다. 짝! "어? 누나?!" "언니!" 화를 참지 못한 수진이 결국 현민의 뺨을 때려버렸고, 현민의 고개가 반대는 반대로 돌아가 버렸다. "우리가.... 거지로 보여? 이런거 해주면 좋아할지 알았어?!!" 수진이 현민을 향해 고함질렀고, 현진은 사나운 표정으로 현민을 노려보았다. 스윽... 돌아갔던 고개가 원래대로 돌아왔고, 현민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뺨을 맞은 것에 대한 화난 표정도, 평소의 무표정도 아닌 웃음이 걸려있었고, 현민의 웃음으로 인해 그녀들은 순간 당황에 빠졌다. 툭, 툭.... "바~보. 내가 언제 너희들한테 준다고 했냐? 당. 분. 간. 이라고 했잖아. 당분간. 이 집은 빌려주는 것뿐이야. 그러니깐 너희들이 생활하는데 쓰는 비용은 전부 너희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나는 너희들이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집을 빌려줄 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 뿐이니깐말야. 알았어? 꼬맹이들?" 수진과 현진의 머리에 손을 올린 현민은 동생을 대하듯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현민의 말을 들은 그녀들의 눈에서는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흑, 흑흑..."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아무것도 모르기에 힘든일이 많이 있었지만, 모두가 그들을 외면할 뿐 도와주려 하지는 않았다. 그녀들 스스로도 그것을 느꼈기에 누군가의 힘에 의지하지 않은 채 혼자의 힘으로 일어나려 애썼고, 1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어느정도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단, 1년이었지만 그동안의 생활은 그 어떤 때보다 힘들었고, 괴로웠다. 친척들과 친지들조차 자신들을 외면했기에....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기에.... 하지만 지금. 자신들과 친구라는 이름, 그 하나로 얽혀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자신들을 위해 웃어주자 그녀들은 더 이상 마음의 벽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기댈 것이 없기에 더욱 단단히 쌓아올린 마음의 벽이었지만, 그녀들의 벽은 현민의 웃음하나로 무너져 버렸고, 그 안에 가득 채우고 있던 눈물을 흘려보냈다. "으아아앙!" "흑흑흑..." 현민의 품에 안긴 그녀들은 목놓아 울어버렸고, 현민은 그녀들을 부드럽게 다독여 줬다. 험악한 분위기에 깜작 놀란 예진은 이미 울고 있었고, 수빈은 예진을 달래주며 현민을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새근...새근... 새근... 울다가 지쳐버린 그녀들은 전부 잠들어 버렸고, 자신에게 기대어 잠자는 수진을 조심스레 눕혀준 현민은 현진 먼저 부드럽게 안아들었다. 현민과 시선을 마주한 수빈이 방문을 열어주었고, 현민은 방안의 침대에 그녀를 눕혀주었다. 달칵.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온 현민은 바닥에 누워있는 수진을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으응..."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 듯이 미소 짓고 있는 수진은 잠꼬대를 하며 현민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수빈은 다시한번 방문을 열어주었고, 현민은 자신의 품에 안긴 수진을 현진의 옆에 조심히 눕혀주었다. 스윽... "잘자." 두 사람에게 이불까지 덮어준 현민은 방문을 닫고 나와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예진을 들어올렸다. 새근... 울다가 지친 예진 역시 현민의 품에 안긴줄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너무나 똑같은 세 자매를 보며 미소지은 현민은 예진이 마음에 들어했던 방안의 침대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달칵. "고마워요, 형." "훗, 나 네 누나 친구야, 임마. 친구란 건 말야, 정말 필요할 때, 곁에서 도와주는 거야. 너는 나처럼 한발 늦으면 안 된다~. 알았지?" "네." 수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현민은 수빈에게 열쇠를 건내준 후, 작별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갔다. "정말 고마워요, 형." 현민이 나가고 나서도 한참동안 현관에 서있던 수빈은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러니깐 저만 믿으세요. 확실히 연결해 드릴게요. 매형"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현민의 모습에 반해버린 수빈은, 당사자들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벌써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 "정말 고마워요, 형." 현민이 나가고 나서도 한참동안 현관에 서있던 수빈은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러니깐 저만 믿으세요. 확실히 연결해 드릴게요."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현민의 모습에 반해버린 수빈은, 당사자들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벌써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휴우.... 다행이 늦진 않은건가?" 현진, 수진의 집을 나오자마자 집으로 뛰어간 현민은 다급히 싸울아비 속으로 들어갔고, 아직 시작되지 않은 토너먼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덥석! "루나! 왜 이리 늦었어?" "하하..." 뒤에서 튀어나온 발록이 그의 등에 매달렸고, 현민은 그녀를 자신의 옆에 앉히며 경기장의 시합을 구경했다. "꼬마네?" "인형술?" 현민과 함께 경기장을 바라본 발록은 경기장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나이를 보며 놀랐고, 현민은 그 꼬마가 사용하는 기술에 놀랐다. "루나야, 누가 이길 것 같아?" "궁수가 이기겠네요." 현민이 대답할 것도 없이, 경기장 위에는 너무나 일방적인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궁수가 쏘아보네는 화살을 피하기 바쁜 꼬마는 인형술을 쓰지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글쎄요..." 발록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한 현민은 꼬마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루나씨, 오늘은 왜 이리 일찍가신거에요?" 서울역에서 한바탕 난리를 부린 후, 모든 것을 끝마친 페튜니아와 성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간단한 만남을 가지려했으나 현민은 그들에게서 도망치듯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었다.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저기 좀 봐요." 적절히 쏘아지는 궁수의 공격이 꼬마아이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고, 그의 마지막 화살이 꼬마를 경기장 밖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잠시후, 경기장으로 소환됩니다.] "오늘은 제가 먼저..." 현민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지며 경기장으로 이동되었고, 발록은 호기심 서린 눈으로 현민의 경기를 주시했다. "성직자라... 쿡쿡." "성직자라...." 자신의 반대편에 모습을 들어낸 존재를 바라본 현민의 얼굴에는 낭패감이 떠올랐다. 하얀색의 성스러운 로브를 입고 있는 그녀는 경건한 자세로 현민을 마주하며 현민을 압박했다. "시작합니다!" 사회자의 말에 기도를 하고 있던 성직자가 눈을 떴고, 품안에서 하나의 무기를 꺼내었다. 쾅! 주르륵.... 그녀의 몸과 똑같은 크기를 지닌 거대한 쇠망치가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내렸고, 현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흐아아아아압!" "세상에...." 저 가냘픈 팔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가냘픈 팔을 지닌 사제님께서 자신을 향해 쇠망치를 휘두르며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스러운 여신의 이름으로~!! 처!" 그녀의 쇠망치가 하늘높이 솟아올랐고, 현민은 황당한 눈으로 그녀의 괴력을 바라만 보았다. "단!!" 콰콰콰콰쾅! 육중한 무게와 크기를 가진 쇠망치가 빠르게 땅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것이 바닥에 부딪혔을 때, 그것은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어 버렸다. 하늘 높이 떠있던 현민이 경기장이 있었던 장소로 내려왔고, 잠시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소, 속행!!" 단한번의 공격으로 경기장 전체를 부수어 버렸지만 사회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시합을 계속 진행시켰다. 사회자의 진행소리에 몸을 움직인 여사제는 자신의 몸에 축복을 걸기 시작했다. "성스러운 여신이여! 당신의 종에게 축복을!!" 스앙~. "성스러운 여신이여! 당신의 종에게 빠른 발걸음을!" 스앙~. "성스러운 여신이여! 당신의 종에게 무한한 힘을!" 스앙~. 축복 특유의 환한 빛과 함께 그녀의 몸은 더욱 날렵해 졌고, 망치의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대지의 손! 절대방어! 스트랭스! 하아압! 여신의 발걸음!" 힘에는 힘이라 생각한 현민은, 이전에 사용했던 방식 그대로 절대방어를 대지의 손으로 잡아 강하게 집어던졌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여신의 발걸음까지 사용하여 날아가는 절대방어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부앙! 두 번의 가속으로 절대방어의 파괴력은 이전의 공격보다 배 이상으로 늘어나버렸고, 현민은 기대어린 눈으로 성직자를 바라보았다. "하아아아아압!!" 그녀의 목에서 하이 소프라노의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고, 그녀의 쇠망치와 현민의 절대방어가 부딪혔다. "서, 설마...." 콰직! 콰지직! 그녀의 발이 바닥을 파고 들어갔고, 1자 모양의 쇠망지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휘어졌다. 현민이 집어던진 절대방어는 엄청난 회전을 보이며 허공에 떠 있었고, 쇠망치와 절대방어의 사이에서는 가끔가다 불꽃도 튀겼다. "하아아아악!!!" 깡! "컥!" "홈~런!!" 곡선을 그리던 쇠망치가 곧게 펴지고, 돌아갔던 여사제의 허리가 앞으로 돌아오면서, 현민의 절대방어는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도대체 힘이 몇이길래...." 그녀의 힘에 경악한 현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황당한 눈으로 그녀만을 바라보았고, 잠시 숨을 돌린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현민을 노려보았다. "하아..." "여신의 이름으로! 어리석은 자에게 신의 철퇴를!!" "블링크!" 조금더 길어진 그녀의 주문에 불길함을 느낀 현민은 다급히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는 자신의 탁월한 선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콰콰콰콰쾅! 경기장을 완전히 없애버린 것도 부족했는지, 그녀의 망치가 부딪힌 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며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상당히 깊게 파인 크레이터로 보아 샨의 방어막이 없었다면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지 너무나 훤했다. "담비, 흙인형!" 콰드드득! 마침내 현민이 담비의 이름을 불렀고, 담비는 마음껏 날뛰었다. 경기장이 있었던 곳에 현민 모양의 흙인형이 일어났고, 현민의 모습도 그들 흙인형에 파묻혀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잘 봐라, 꼬마야. 이것이 나의 인형술이다!" 현민의 목소리가 콜로세움의 곳곳에 울려퍼졌고, 현민을 바라보고 있던 샨과 발록, 페튜니아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cobweb(거미줄)." 하나의 흙인형 손끝에서 거미줄이 시작되었고, 그 거미줄은 허공에 떠있는 마녀의 지팡이를 지나 다른 흙인형과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흙인형의 손끝에서 다시 시작된 거미줄은 또 다시 허공에 떠있는 마녀의 지팡이를 지나 다른 흙인형과 연결되었고, 그것이 계속 반복되며, 모든 흙인형이 하나의 고리처럼 연결되어 버렸다. 수많은 흙인형과 거미줄로 감싸여진 경기장은 복잡하게 변해버렸다. "이런 공격쯤이야!" 처음 마법이 시작된 위치를 기억하고 있던 여사제는 다른 인형들을 신경쓰지 않은 채, 그 인형 하나만을 목표로 하여 달려나갔고, 결국 그녀의 쇠망치에 현민의 돌인형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설마?!" 산산히 부서지는 돌인형 속에서 현민이 나올것이라 예상했지만 현실은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진행되었고, 산산히 흩어지는 흙인형은 먼지만 만들어냈다. 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어요. 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어요... 당신은 나를 이길 수... 당신은 나를... 수많은 인형들이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내용을 말하자, 그녀는 인형들의 틈 속에서 혼란에 빠져버렸다. 이정도의 흙인형이 그녀에게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실체와 인형을 구분해내지 못하자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어차피 인형이니 실만 끊어버리면!" 불끈! 주위의 흙인형을 부셔버린 성직자는 몸을 움츠리며 다리에 힘을 모았다. 그녀의 두 손에는 거대한 쇠망치가 들려있었지만, 그녀에게 그런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팟! 그녀의 몸이 마녀의 지팡이로 빠르게 날아갔고, 마침내 그녀의 몸과 마녀의 지팡이가 동일선상에 위치했다. 절대방어, 그래비티 절대방어, 그래비티 절대방어, 그래비티 .... 대지에 서있던 수백명의 현민들이 그녀의 행동을 막았고, 그녀는 허공에서 맥없이 떨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흙인형 속에 숨어있는 현민이 자꾸만 방해하자, 그녀는 계획을 변경하여 모든 흙인형을 부수기로 했다. "여신의 이름으로! 어리석은 자에게 신의 철퇴를!!" 콰콰쾅! 다시한번 그녀의 쇠망치가 대지와 충돌했고, 그 자리는 유성이라도 맞은 듯 거대한 구멍이 만들어졌다. "하아, 하아, 하아...." 그녀의 단 한방으로 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흙인형이 사라져버렸지만, 그 대가로 인하여 그녀의 체력도 많이 떨어져버렸다. 샤르륵.... 그녀가 만들어낸 먼지와 함께 반짝이는 거미줄들이 허공에 휘날렸고, 그녀는 거친 손길로 몸에 엉키는 거미줄을 풀어헤쳤다. 멈칫! 한참 거미줄을 걷어내던 그녀의 손길이 갑자기 멈춰버렸고,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내가 말했죠? 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어요." "무, 무슨!"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현민의 신형이 마녀의 지팡이 위에 모습을 들어냈다. 지팡이(낫)의 위에 앉아 있는 현민은 어릿광대의 복장을 벗어버린 채 마녀의 복장을 하고는 사악하게 미소 지었다. "자~, 어서 항복한다 말하세요." "못해!" "정말요?" 현민의 손끝이 움직이자 그녀의 손이 내려가며 자신의 치마를 잡았고, 그녀는 설마하는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어서 항복하시죠?" "시, 싫어!" 스르륵... "꺄악!" 발목을 덮고 있던 치마가 순식간에 무릎위로 올라왔고, 깜짝놀란 여사제는 비명을 질러댔다. 몸의 어딘가를 묶고 있는 거미줄을 끊기 위해 온갖 힘을 줘보기도 했지만 몸을 구속하고 있는 거미줄은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항복하시겠어요?" "시, 싫어...." 스르륵... "꺄악! 꺄악!" 다시한번 물어본 현민의 질문에 그녀는 울먹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현민은 그녀의 치마를 허벅지 중간까지 올려버렸다. "꺄악! 변태! 보지마~!!" 꿀꺽! 샨과 발록, 그리고 페튜니아는 현민의 짓궂은 장난에 난처한 웃음을 흘렸고, 그들의 시합을 바라보고 있던 황제를 포함한 모든 남성들은, 침을 삼키며 현민을 응원(?)했다. "자, 이제 마지막이에요." "항복!" 털썩!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여사제가 항복을 선언했고, 현민은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거미줄을 없애버렸다. "승자! 어릿광대!" 우우우우우우!! 멋진 시합을 보여준 경기였기에 환호해야 마땅했지만 결국에는 보여주지 않은 안타까움 때문인지 경기장을 에워싼 남성들은 현민을 향해 야유를 부렸다. 하지만 그런 관중들에게도 미소를 지은 현민은 여사제에게 인사를 한 후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 "정말 힘든데요?" "나도 저런 사제는 처음봤어." 발록의 곁으로 돌아온 현민은 발록을 보자마자 한마디 내뱉었고, 발록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현민이 상대했던 성직자를 바라보았다. "그보다 페튜니아씨는 아직 인가요?" "그 녀석 기권했어." "네?" 자리에 앉으며 페튜니아의 시합을 기다리던 현민은 기권했다는 발록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광고로 인해서 당분간 접할 수가 없거든요. 언제나 놀 수만은 없으니까요." 다른 존재가 이정도로 놀았으면 당장에 짤렸겠지만, 그녀의 일이라는 것이 운영자였기 때문에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운영자로서, 최대의 문제거리인 현민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쉽네요." "충분히 놀았으니 이제 일해야지요. 아쉽지만 당분간 못 만날것 같네요." 잠시간의 헤어짐일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 시간조차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반드시 우승하세요." 현민에게 작별인사를 건낸 페튜니아는 현민이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허공속에 녹아들었고, 현민은 들어 올리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나도 이제 가봐야 해." "네?!" 페튜니아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동안 미운정이라도 싸여서인지, 현민은 발록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간다는 것에, 심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스스로는 부정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은 솔직하게 외치고 있었다. "왜, 왜요?" 그동안 몰랐지만, 현민은 발록이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너무나 익숙했기에, 너무나 편했기에... 어느사이엔가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였고, 스승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미 상당한 계약기간을 어겼으니깐." "연장하면 안되나요?" "안~돼." 현민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그녀는 손가락을 흔들며 미소지었다. 덥석... "이렇게 귀여운 루나를 괴롭힐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자신과의 접촉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몸을 움찔거리는 현민을 괴롭히는 것은 발록에게 있어 가장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강해져라." 발록의 발밑에 그녀와 현민만 볼 수 있는 마법진이 생성되었고, 현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발록만 바라보았다. "즐거웠어." 씽긋.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발록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현민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현민의 입에도 미소가 생겨났다. "....또 놀러와요." "응!" 현민의 마지막 말에 그녀는 힘차게 대답했고, 그녀의 눈에서 밝게 빛나는 무언가가 허공으로 흩어져내렸다. 스윽... 투툭.... 발록의 눈물(무급) 헤어짐을 아쉬워한 발록이 남아있는 존재를 위해 흘리는 눈물. "안 놀러 오면 내가 찾아갈 거에요. 쿡쿡." 바닥에 떨어진 두 개의 보석을 주워든 현민은 보석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헤어짐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색했지만, 언제고 다시 만나면 되는 것이기에, 헤어지는 것에 슬픔을 가지지는 않았다. 현민은 미소지었고, 그것은 언제나와 같은 장난기 서린 미소였다. "으음.... 그럼 난 뭐하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현민은 그 자리를 도망쳐 나왔고, 홀로 거리를 활보하는 중이었다. 물론, 자신을 드러내는 가면은 벗어버린 후였다. "응?" 한참을 걷고 있는 그의 눈에 축 처진 어깨가 들어왔고, 현민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멈춰 세웠다. "왜 울어?" "아, 안 울어요!" 뒤로 돌아선 그는 현민의 이전에 시합했던 인형술사였다. 현민의 물음에 강하게 부정했지만 그의 눈에 흐르는 작은 물방울은 그의 말과 반대되고 있었다. "인형술은 아주 대단한 직업이야." "..." 꼬마를 끌고 근처의 벤치로 간 현민은, 어린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움직이지 못하는 인형들에게 생명을 넣는 직업이지." '...할머니?' 현민의 말을 듣고 있던 꼬마는 하나의 존재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인형술이란, 인형에게 생명을 넣는 것이란다... 콜록! 콜록!' "나의 마음에 담긴 뜻을 읽고 그에 움직이는 인형들은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거야." '네가 인형에게 생명을 넣어주면, 콜록! 콜록! 인형들은 너를 위해 움직일 것이란다...' 할머님의 말씀과 일치되는 현민의 말에 깜짝 놀란 꼬마가 다급히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현민은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이건..." 현민이 있는 자리에 놓여져 있는 것은 그동안 현민이 쓰고 다닌 피에로 가면과 모자였고, 과거에 할머니께서 주셨던 하나의 스킬북이었다. -모든 것은 원래대로.... 그리고 안부 전해주렴. by 어릿광대 "어릿...광대?" 남겨진 하나의 쪽지를 읽은 꼬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민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이미 현민의 신형은 완전히 사라져버린 후였다. -------------------------------------------------------------------------------- "하아, 아쉽네. 마음에 드는 가면이었는데." 어릿광대의 가면은 현민에게 상당히 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것이었지만, 그 가면과 자신 사이의 인연은 끝난 것이라 생각했기에 거리낌 없이 꼬마에게 주고 온 것이었다. 터벅터벅.... "우리 저기 가보자." "자기야, 빨리와!" "오빠, 저건 어때?" 웅성웅성 토너먼트가 열리는 기간 동안은 「싸울아비」의 모든 수도가 축제 기간이었기에, 수많은 연인들이 거리들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이를 홀로 걷고 있는 현민은 왠지 멍한 눈으로 앞을 향해 걸어나갔다. "룬! 룬!" "응?" 잘못 들었다 생각했던 부름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낀 현민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존재를 바라보았다. "샨? 어떻게..." 절대 여기에 올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샨이 현민의 팔에 안겨들었고, 현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샨을 바라보았다. "룬이 보고싶어서. 쿡쿡." "풋."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들의 미소는 서로 닮아 있었다. "오랜만에 데이트나 할까?" "좋죠." 현민이 손을 내밀자 샨이 그의 손을 마주 잡았고, 그들은 거리의 커플중 하나가 되어, 도시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룬." "응?" "저번에 기존의 마법과 다른 마법들이 있던데 새로 만든거야?" "응, 네가 봤을 땐 어때?" "음... 이용하기 편하달까?" 서로의 관심분야가 같아서인지 그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마법에 대한 토론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다정한 연인의 속삭임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으득! "저, 저 날강도!" "드디어 샨에게 애인이..." "커흠! 손녀의 데이트를 훔쳐보다니... 쯧쯧쯧." "그러는 자네는 왜 왔는가?" "크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현만과 샨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각자의 손에 마법지팡이가 들려있는 것으로 봐선, 현민이 실수(?) 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 마법에 당해본 소감은 어때?" "최악." 주변의 다정한 연인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현민이 샨을 향해서 자신의 마법을 물어보았고, 현민의 마법조합에 추악한 꼴로 천장에 매달린 것이 기억난 샨은 얼굴을 붉히며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도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깐." "저번의 마법들을 말하는 거지?" "응." 그녀에게 당한 마법들을 떠올린 현민은 마지막의 마법을 기억하는 순간, 이번에는 현민의 얼굴이 빨갛게 변해버렸다. 흉한 모습으로 매달린 것에 심술 난 샨이 하루종일 마법을 풀어주지 않아 거의 죽을 뻔 했기 때문이었다. 잘못했으면 최초로 죽은 원인이 웃음이 될 뻔 했었다. "룬." "응?" 발걸음을 멈춰선 샨이 현민을 불렀고, 현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돌아가며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 눈빛을 마주한 채 샨이 현민을 향해 한걸음 다가왔고, 두 사람의 얼굴이 바짝 붙어 버렸다. "마법교환하자, 응?" "풋!" 마법을 교환하자는 샨의 말에 자신의 선물이 기억난 현민은 작게 미소지었다. 자신은 이미 주었건만 그것을 확인하지 않은 샨은 자신에게 똑같은 것을 또 달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선물은 본 거야?" "응? 아, 그, 그게..." 현민의 물음에 샨의 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렸다. 현재, 현민이 선물한 선물상자는 열어보지도 않고 그 자체로 소중히 보관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것을 여자의 입으로 말하기는 상당히 쑥스러웠기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얼버무렸다. "풋. 그 상자안에 내가 만든 마법들을 전부 정리해 넣어두었어. 돌아가면 열어봐." "으응..." 상자를 보관한 자신의 행동이 들켰다고 생각한 샨은 쑥스러운 마음에 얼굴을 들지 못한 채 그의 따듯한 손만 꽉 잡았고, 현민은 조용히 미소지어주었다. "가자, 내 마법도 알려주고 네 마법도 배울려면 시간이 모자랄 거야." "응!" 다른 존재들이라면 자신의 마법을 높게 생각하기에, 쉽게 알려주려 하지 않겠지만, 현민과 샨은 서로의 마법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법을 배우려 했다. 도시의 구경을 멈춘 그들은 마탑으로 향했지만, 아직 데이트가 끝난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데이트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가상현실에서의 이틀동안 잠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마저 줄이며 서로의 마법을 교환한 현민은 현실에서 잠깐의 시간을 보낸 다음 다시 「싸울아비」속으로 들어왔다. 두두둥! 두둥! "자! 그럼 첫 번째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양선수 입장!" 사회자의 우렁찬 음성에 맞추어 경기장 위에 두 명의 유저가 소환되었다. 스윽... 경기장에 들어선 현민은 새로운 가면이 어색한지 계속해서 가면을 만지작거렸고, 그런 현민과 마주한 전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현민만을 바라보았다. "어릿광대 가면은 어쩐거냐?" "응? 나를 아나요?" 사회자도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소개를 하지 않았고, 자신 역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알지 못해야 했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전사는 한눈에 자신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 냄새... 잊을수가 없다." 갸웃? 이해할 수 없는 전사의 말에 현민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전사는 그런 현민의 행동에 조용히 미소지었다. "이래도...." 스스스슥.... 전사의 몸이 커지며 온몸에 털이 수북이 자라났고, 변화가 끝났을 땐 한 마리의 짐승으로 변해 있었다. "...모르겠느냐?" 흠칫! "늑대인간."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 존재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현민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늑대인간은 이전과 달리 은색의 털을 아름답게 휘날리고 있었고, 생긴 모습도 저번에 비해 훨씬 날렵하고 강해보였다. "너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응?" "너로 인해 한층 더 강해졌으니 말이다." 후웅!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닌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으로 인해 그의 주변에는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시합에 나온 이유는 너와 대결하기 위해서다. 운이 좋아서인지 결승이 아니라 3회전에서 만나는군." 늑대인간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지만 현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가 하는 말만을 듣고 있었다. "시합 시작!" 팟! "절대방어." 사회자의 시작소리와 함께 늑대인간의 모습이 경기장에서 사라져 버렸고, 현민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격을 위해 절대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콰콰콰콰쾅! "크윽!" 현민의 절대방어에 무엇인가가 부딪히며 어마어마한 소리를 만들어냈고, 현민의 절대방어는 무거운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왠만한 힘으로는 움직이지도 않는 절대방어가 이리 쉽게 흔들리는 것을 보니, 그의 실력이 훨씬 올라간 것 같았다. "예전의 나와 동급으로 생각하지 마라." "쿡쿡. 저를 얕보지 말아 주세요.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예전의 그 마법이군." 현민의 마법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그는, 움직임을 멈추고 현민을 관찰하였다. "cobweb of queen, cobweb of queen, cobweb of queen, cobweb of queen." 끝났다고 생각한 현민의 마법은 계속 이어졌고, 다섯 번의 마법이 펼쳐졌을 때는 경기장의 모든 곳이 거미줄로 가득 차 있었다. "2회전의 인형술이라도 보여줄 샘인가?" "대답은 아니랍니다." "응? 무슨 속셈이지?" 현민은 자신을 감싸고 있던 절대방어를 해제해 버렸고, 늑대인간은 그런 현민의 행동에 사방을 경계했다. "이런 거미줄을 잘라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 삭! 특이한 기운이 그의 손톱을 감싸자 주변에 있던 한가닥의 거미줄이 손쉽게 잘라져 버렸다. 하지만 현민은 그런 행동에도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 "어, 어떻게!" "거미는 자신의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법이죠. 쿡쿡쿡."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이란 마법 자체가 엄청난 점성과 탄성을 갖고 있는 거미줄을 만드는 것이니 현민의 말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스스로가 거미줄 위에서 마음껏 움직이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기꾼..." "응?" 현민의 마법을 보고 그가 사용하는 마법을 대충 눈치 챈 샨이 작게 중얼거렸고,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황녀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아니에요." "응." 당황한 샨이 고개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고, 그제서야 황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조심하세요. 헤이스트!" 퉁! 투퉁! 거미줄을 붙잡은 현민이 허공으로 몸을 튕겼고, 반대편의 거미줄에 몸을 실으며 다시한번 허공으로 몸을 튕겼다. 그의 몸이 허공과 바닥을 이리저리 튕겨다니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스피드로 해보자는 거냐?" 스스스슥! 늑대인간의 몸 전체에서 밝은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그의 몸 자체가 하나의 칼날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팟! 둘의 신형이 경기장에서 사라져 버렸고, 그들의 시합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그들의 모습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렸다. 촤악! "크윽!" 늑대인간의 기운에 경기장 위의 거미줄이 갈기갈기 찢겨졌고, 모든 거미줄이 사라지고 나서야 피투성이 모습의 현민이 경기장 위에 나타났다. "나와 맞먹을 정도의 스피드를 가지고 있어도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다." "그럴...까요?" 늑대인간의 말에 현민은 미소지었다. "움직이는 것이 힘들지는 않나요? 서있기가 불편하지는 않나요? 고개를 들고 있는게... 힘들지는 않나요?" "크윽!" 현민의 말에 최면이라도 걸린듯 갑자기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지고, 서있는 것도 버거워지면서, 스스로 의식하지 않는 사이 고개가 내려가고 있었다. "도, 도대체 무슨짓을!" "저번에 말했었죠? 당신이 아무리 강해도.... 당신이 아무리 빨라도..... 여왕의 거미줄은 피할 수 없다고요." 털썩! 현민이 말하는 도중 늑대인간의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았고,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주세요. 저 위에 있는 애인님께서 질투하시거든요. 쿡쿡." "장난하는 거냐!" 장난끼 어린 현민의 말에 늑대인간이 소리를 높였고, 현민은 그의 앞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장난은 아니랍니다. 그럼 말해드릴게요. 당신이 궁금해 한 것들을 말이죠." 툭! 더 이상 버티기 힘든것인지 양 무릎을 꿇은 늑대인간은 고개만을 들어 현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떻게 당한 것이지?" "진짜 거미줄은 인비지빌러티 마법으로 인해 보이지 않고 있었고, 당신이 바라본 거미줄들은 제가 사용한 또 다른 마법이었죠. 당신도 아시죠? 제 마법은 점성과 탄성에 있어서는 최강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이전에 있었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그는 여왕의 거미줄에 달라붙은 것을 원래의 자리에서 뽑을지언정 절대로 끊어지거나 떨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지금 움직일 수 없는것은..."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당신의 몸을 이리저리 묶고 있어서이지요." 끊어지지 않는 강력한 고무줄이 사방에서 온몸을 끌어당기니 그가 움직임이기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너, 너는 어떻게?" "현재 저는 제 자신에게 그리스 마법을 사용 중 이랍니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리스는 지속형 마법이에요. 게다가 지금은 플라이를 사용해서 날고 있는 중이고요." "걷는 것이 아니라 날고 있었다는 말이군...." "네." 늑대인간과 마주한 현민은 피투성이된 모습으로 싱글싱글 웃었고, 늑대인간은 그런 현민의 모습에 헛웃음만 흘렸다. "여기서 내가 커지면 어떻게 되지?" "마법 중에 샤프니스라는 게 있거든요. 그것을 거미줄에 사용하면 아마도 토막 날 듯한데.... 해보시겠어요?" "흥! 졌다." 늑대인간은 아쉬운 표정으로 패배를 인정했고, 현민은 싱글거리며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승자! 어릿광대~~!!" 와아아아아아! "만약 경기장을 둘러싼 방어막이 없었다면 내가 이겼을 것이다." 현민의 마법이 취소되자 자리에서 일어난 늑대인간이 인간형으로 바꾸며 현민을 향해 한마디 했다. 그런 늑대인간의 말에 미소지은 현민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말해주었다. "만약, '살인 할 수 없다'라는 규칙이 없었다면 그 누구도 나를 이기지 못할거에요." 섬뜩! 현민의 말에서 진심을 느낀 늑대인간은 너무나 살벌한 현민의 말에 잠시 몸을 굳혔다. "오늘 시합 즐거웠어요." 뚜벅뚜벅... 현민은 몸을 돌려 경기장을 내려갔고, 홀로 남은 늑대인간은 등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현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기쁜가요?" 샨의 옆에서 그녀를 바라본 황녀는 환한 표정을 짓는 샨을 향해 무표정하게 물어보았다. "네?" "그대의 표정이 밝아보이는군요." 황녀의 말을 들은 샨은 자신의 두 볼을 감싸며 황녀를 바라보았다. 붉어진 두 볼을 가리면 자신의 표정이 가려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는 사람인가요?" "훗." 황녀의 물음에 샨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하자면 제자이자, 스승이며, 연인이자 친구인 존재라고 할까요?" "모순된 존재인가 보군요." "쿡쿡... 그렇네요." 황녀의 결론에 샨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말도 진실이었지만 황녀의 결론도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소개해 드릴게요. 그러면 아실거에요. 제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제가 이해한 것과는 다른 모양이군요." 샨의 웃음에 고개를 갸웃거린 황녀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 여기고, 그녀의 말을 다시금 되새겼다. 스슥.... 아침 일찍 시합을 끝낸 현민은 곧장 샨의 방으로 돌아와 익히다 말았던 마법들을 다시금 풀기 시작했다. 샨이 만든 마법들은 그의 마법 못지않게 강하고 여려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그런 마법들이었다. 으드득! 오랜시간동안 누워있었기에 그의 온몸은 비명을 질러댔고, 현민은 그런 몸을 위해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툭툭. 마법이란 것도 급하기는 했지만 스스로의 생활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린 운동이 아니었다면 현민의 지금 몸은 유지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팟! 파파팟! 슥! 언제나처럼 달리기를 끝마친 현민이 공원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고, 온몸이 땀에 젖었을 때가 되어서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후아...." 해가 떠있을 때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지만 한밤중의 공기는 아직도 약간의 차가움을 가지고 있었다. 한동안 심호흡을 한 현민은 수진이 일하는 편의점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땀이 범벅된 상태로 만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수진아~." 편의점에 도착한 현민은 편의점 안의 사람을 확인한 뒤,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들어갔다. 이른 새벽이기에 손님들은 존재하지 않았고, 수진만이 홀로 있었다. "현민?" "어레? 현진이네?" 당연히 수진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현민은 뜻밖의 장소에 있는 현진 때문에 어리둥절해 했다. "언제나 수진이만 일할 수는 없잖아." "얼굴 다른거 아무도 몰라?" "알아보는 네가 신기한거야." 쌍둥이라서인지 그녀들의 얼굴은 엄청 닮아있었고, 왠만한 친구들도 그녀들을 구분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 있는 현민은 왠만한 친구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녀들을 구분하는 몇 명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 "근데, 무슨일로 온거야?" "싸울아비 하자고." 현민의 말을 들은 현진은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핸드폰은 장식이니?" "응. 그리고 너희들 번호 바뀌어서 모르는 걸." 그녀는 현민의 말을 듣고서야 현민이 왜 찾아온지를 알 수 있었다. "오늘 시작해봐. 내가 도와줄게." "얘기하는 것 들어보니깐 계정비인가 하는 게 비싸다던데?" 돈을 벌어 생활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현진은 돈에 대해서 예민했고, 「싸울아비」의 크디큰 계정비는 그들의 생활에 많은 문제를 끼칠 수도 있었다. "걱정마.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6개월로 두 개 끊어놨어." "세상에! 몇백만원 아냐? 그걸 공짜로 해줘?" "저번에 광고 찍은 서비스야. 그러니 아침에 수진이랑 접속해." 현민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현진을 계속해서 꼬드겼고, 결국 현진이 두 손 들어버렸다. "알았어, 알았으니깐 그만 좀 해라." "쿡쿡, 그럼 내일 페드로 제국의 수도로 캐릭터 만들고, 공원의 분수대에서 기다려." 그녀가 일을 끝마칠 때까지 많은 대화를 나눈 현민은 그녀를 집에 바래다 준 뒤에야,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잔 현민은 해가 떠있는 것을 보자마자 현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현진이 핸드폰이죠?" -네. "나 현민이~." -그러니? 난 수진이니깐 이만. 띠... 띠... 띠... "윽!" 현민의 장난끼서린 목소리를 들은 수진은 가차없이 핸드폰을 끊어버렸고, 현민은 재빨리 재다이얼을 눌렀다. "무슨 짓이야?" -아침인사. "하아..." 수진의 당당한 대답에 한숨을 지은 현민은 전화건 용건을 얘기했다. "지금 들어올 수 있지? 페드로 제국의 수도로 캐릭터 만든 다음에 공원의 분수대로 찾아와. 기다릴게." -응. 용건을 얘기한 현민은 통화를 끊고, 캡슐에 몸을 눕혔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152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검은색의 시야가 밝게 물들면서 익숙한 방의 모습이 현민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샨은 어디 갔나보네." 방의 주인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나간것인지, 방 어디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슬슬 가볼까?" 자신의 인벤토리를 한 번 살펴본 현민은 공원의 분수대에서 기다리고 있을 현진과 수진을 향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웅성웅성 와글와글 공원뿐만 아니라 공원을 가는 길 그 자체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고 있었고, 그들의 작음 음성들이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 귀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런 최악의 장소를 뚫고 분수대에 도착한 현민은 분수대를 돌며 그녀들을 찾아다녔다. "어이." "응?" "응?" 수진과 현진의 뒤로 조용히 다가간 현민이 그녀들의 어깨를 건드렸고, 그녀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현민을 보았다. "쿡쿡쿡. 놀란 얼굴도 똑같은데?" "장난하지마." "깜짝 놀랐잖아." 분수대 위에서 뛰어내린 현민은 그녀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느낌 어때? 현실 같지?" "응. 엄청 신기한데?" "현실하고 다른 게 없는 것 같아." 가상현실을 처음으로 접한 수진과 현진은 현실과 다를바 없는 가상현실을 느끼며 감탄하고 있었다. "네들 직업은 뭐로 할래? 정해놓은 것 있어?" 도리도리. 갑작스런 질문이기도 했지만 현민의 부탁으로 하는 그녀들이 「싸울아비」에 대해 아는 것이 있을리 만무했다. "흐음... 정령사는 어때?" "정령사?" 둘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나왔고, 현민은 그들의 얼굴을 보며, 작게 키득거렸다. "정령사라는 것이 주된 직업보다 보조적인 직업이라 어느정도 이상이면 엄청 강해지거든." "우리는 뭐가 뭔지 모르니깐..." "걱정마. 내가 확실히 도와줄게."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들과 함께 장소를 옮긴 현민은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엄청난 양의 정령석을 꺼냈다. "보석?" "아니, 이게 정령석이란 거야." "흐음~." "이런게 있구나." 그녀들이 살아가는 것에 바빴기에 망정이지, 만약 약간의 여유가 생겨 TV라도 봤었다면, 정령석의 가격에 놀라 기절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있는 속성은 불, 물, 바람, 땅, 어둠, 빛, 나무, 생명, 죽음, 번개뿐이야. 이중에서 골라볼래?" "음..." "많다." 색깔이 다양한 열 개의 보석을 감상하는 그녀들은 어느것을 선택할지 신중히 생각하고 있었다. "나무, 불, 바람, 생명, 어둠." "번개, 물, 땅, 죽음, 빛." "호오?" 수진과 현진이 고른 다섯 가지의 속성을 들은 현민은 그녀들의 선택에 놀란 얼굴을 했다. 그녀들은 모르겠지만 적절히 나누어진 속성이 잘 연계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각자 골랐으면 그것을 손에 놓고, 사용이라고 말해봐." "사용." "사용." 보석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그녀들의 몸으로 흘러들어갔고, 현민은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지었다. "어때?" "그, 글쎄... 달라진게 없는데?" "응."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현민은 한가지 주문을 했다. "손으로 별을 그리면서, '나 그대와 계약하고 싶다.'라고 해봐." "나 그대와 계약하고 싶다." "나 그대와 계약하고 싶다." 수진과 현민의 앞으로 두 개의 문이 생성되었고, 현민은 의아해 하는 그녀들을 밀치며 문으로 들어가게 했다. "정령석만 사용한다고 정령사가 되는 건 아냐. 정령과 계약을 했을 때, 정령사가 되는 거지. 그.러.니.깐." 잠시 말을 끊은 현민은 자신을 향해 불안한 눈을 하고 있는 그녀들을 보며 짓궂게 웃었다. "잘 다녀오라고." 툭! 툭! "꺄악!" "꺄아악!" 현민의 손길에 밀려난 그녀들은 정령의 문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의례있는 의식처럼 엄청난 높이의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달칵. 소환자가 사라지자 정령의 문도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고, 홀로 남은 현민은 그녀들이 계약할 꼬마정령들을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깐 마법공부나 해볼까?" 정령과의 계약에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 것을 알고 있는 현민은, 그 시간동안 마법을 배우기 위하여 샨의 방으로 발을 옮겼다. 그가 수많은 마법을 만든 것처럼 샨 역시 다양한 마법을 만들었기에 그것들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 "언제쯤 오려나..." 샨의 방에서 마법책을 가지고 나온 현민은 분수대가 보이는 곳에 앉아 문제를 풀고 있었다. 정령과 계약을 마친 수진과 현진이 언제 나올지도 몰랐고, 약속장소도 딱히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코..... 새근새근... "하아..." 따뜻한 햇살 때문인지 아니면 시원한 바람 때문인지, 오랜만에 나온 꼬마정령들은 나른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치열한 접전 끝에 현민의 다리를 차지한 윈디아와 담비가 행복한 표정으로 그의 다리에 잠들어 있었고, 묘와 염화는 현민의 등에 기대어 곤히 잠자고 있었다. "응? 얘들아, 일어나." "우웅..." 분수대를 살피며 문제를 풀고 있던 현민은, 벌써 모습을 들어낸 그녀들을 보며 잠들어 있는 네 명의 꼬마정령들을 깨웠다. "계약했어?" "응. 근데 그게 네 정령들이야?" 정령과의 계약으로 인해 정령을 볼 수 있는 그녀들은 현민의 곁을 떠나려하지 않는 네 명의 정령들을 보며 현민을 향해 물어보았다. "응, 귀엽지?" "별로." "내 정령들이 훨씬 귀여워." 정령과 계약한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건만 그녀들은 벌써부터 자신의 정령을 감싸돌고 있었다. "소환, 썬더, 운다인, 노움, 데스, 루이네." 현민의 정령이 모두 여자아이인 것과는 다르게 현진이 소환한 정령들은 모두 남자아이들이었고,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이상한 눈빛을 보냈다. "쇼타콘." "로리콘." 파지직!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았고, 그들의 뒤에 있는 꼬마정령들도 서로를 향해 노려보았다. "소환, 우드, 사라만다, 실피드, 라이, 다크." 현진과 현민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수진이 조용히 자신의 정령을 소환했고, 두 사람의 시선은 수진을 향해 자동으로 돌아갔다. "동물애호가." "흥! 변태들보다는 동물애호가가 낫지!" 현민의 말에도 수진은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분명히 꼬마정령들이 거부했을거야." "맞아맞아, 아마 무섭다고 울면서 도망갔을걸?" 움찔!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었는지 수진의 몸이 한차례 움찔거렸지만 그것을 본 존재는 수진의 정령들밖에 없었다. "뭐, 둘 다 정령과의 계약은 제대로 한것 같으니 소개 좀 해줄래?" "응." 현민의 부탁에 먼저 대답한 현진이 다섯명의 꼬마들을 하나씩 소개시켜 줬다. "노랑머리의 귀여운 꼬마가 번개의 속성인 '썬더'고." 현진이 처음으로 소개시켜 준 정령은 번개의 정령인 썬더였다. 커다란 눈과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토실토실한 볼은, 썬더를 깨물어주고 싶도록 만들어 주었다. 눈동자의 색깔이 머리와 같은 황금색이었지만 밝게 빛나는 그런 눈빛이었기 때문에 썬더의 얼굴에 매우 잘 어울렸다. "그리고, 이 아이가 물의 정령인 '운다인'이고." 두 번째로 소개시켜준 정령은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꼬마정령이었다. 전체적으로 커다란 특징은 없었지만 머리카락의 색깔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맑은 물의 색깔이어서 그런지 매우 차분하고 인상깊은 아이였다. "여기 이 귀티나게 생긴 꼬마가 땅의 정령인 '노움'" 세 번째로 소개시켜준 정령은 땅의 정령인 노움이었는데, 현민이 계약을 맺은 담비와는 달리 어린이 양복을 입고 있는 깔끔한 모습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노움이라고 불러주세요." 꾸벅. 현진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다른 정령들과는 다르게, 노움은 스스로 그녀의 품을 벗어나 현민과 수진을 향해 귀엽게 인사했다. 좀더 나이가 많아 보였다면 정중함이 묻어 있었겠지만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노움의 인사는 입가에 미소를 만드는 귀여움이 담겨 있었다. "귀엽지? 그리고, 이 꼬마는 죽음의 정령인 '데스'" 네 번째로 소개시켜준 정령은 죽음의 정령인 데스였다. 하지만 죽음의 정령이란 이미지와 맞지 않게 소심해 보이는 데스는 현민의 염화와 마찬가지로 매우 조용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쪽이 빛의 정령인 '루이네'야." "어디서 본 것 같아." "그치?" 현진의 소개를 듣고 있던 수진이 루이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고, 현진 역시 수진의 말에 동의하였다. "왠지 익숙한 얼굴 때문에 계약했다니깐." "왠지 이놈의 웃는 얼굴이 익숙해 보이는데..." 수진은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 루이네를 빤히 쳐다보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비명과 함께 현민을 돌아보았다.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 "만화는 적당히 보렴." 수진의 비명에 고개를 저은 현민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잘봐. 요 얼굴! 머리카락이랑 눈 색깔이 달라서 그렇지 너랑 똑같은 얼굴이라고!" "흐음..." 흰색의 머리카락 때문에 쉽게 알 수는 없었지만, 루이네의 모습은 현민의 모습을 축소한 것만 같았다. "숨겨놓은 자식 아닐까?" "그치? 애엄마가 누굴까?" 현민의 당황한 표정을 발견한 그녀들은 오랜만의 기회를 이용하여 현민을 놀려댔다. "아, 알았으니깐 수진이도 소개나 시켜줘." "그럴까?" 현진은 당황해 하는 현민을 더욱 놀리고 싶어 했지만 수진이 자신의 정령들을 소개하고 싶어 하였기에 그녀들의 장난은 거기서 멈춰버렸다. "여기 이 원숭이가 나무의 정령인 '우드'" 수진이 처음으로 소개시켜준 정령은 나무의 정령인 우드였다. 작은 새끼 원숭이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우드는 수진의 어깨에 앉아 긴꼬리로 그녀의 목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이 불의 정령인 '사라만다'" 수진이 소개시켜준 사라만다는 작은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늑대와 개를 구별하지 못하는 현민은 작은 강아지 정도로만 생각해 버렸다. "여기 이 꼬마는 바람의 정령인 '실피드'" 우드의 반대쪽인 오른쪽 어깨에 앉아 있는 실피드는 현민이 딱 한번 본적있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여기 느림보 거북이가 생명의 정령인 '라이'이고."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생명의 정령을 기대하고 있던 현민은, 수진의 손바닥에 있는 작은 거북이를 보며 매우 실망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라이를 보고 있자니 속도 답답해지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요기 귀여운 아이가 어둠의 정령인 다크." "미야앙~."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것은 작은 발을 아장아장 움직이고 있는 검은 고양이였다. 동글동글한 눈을 가지고 있는 다크는 현민의 손바닥으로 온몸이 가려지는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네 정령들 소개해 줘." "이쪽이 물의 정령인 묘, 얘는 바람의 정령인 윈디아, 얘가 땅의 정령인 담비고, 이 아이가 불의 정령인 염화." 현민은 자신에게 붙어 있는 네 명의 꼬마정령들을 가리키며 수진과 현진에게 소개시켜 준 뒤, 꼬마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려고?" "콜로세움. 아직 시합이 남았거든." "무슨 시합?" 「싸울아비」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그녀들은 현민이 말하는 시합이 무슨 시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대결 같은 거야." 현민의 부족한 설명에 고개를 갸웃거린 수진과 현진은 각자의 정령들을 데리고 자리를 이동했다. 「싸울아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현민이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우웃, 사람이 너무 많아." "현민아, 어디야?" 콜로세움의 입구부터 관중석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그것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처음 시작하는 수진과 현진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 "담비, 윈디아 뚫어." "응~." "네." 현민의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움직인 담비와 윈디아는 주변의 사람들을 마구 집어던지며, 현민의 앞에 있는 사람들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담비와 윈디아의 손길에 날아가는 사람중 다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가 불쾌한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하아, 역시 어릿광대 가면이 있어야 하는데...." 어릿광대 가면을 벗어버린 채 하회탈 모양의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현민을 알아보는 유저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딸랑... "응?" 길을 정리하고 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방울소리에 발걸음을 멈춘 현민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찾아보았다. "너는." 현민이 찾을 필요도 없이, 그의 앞으로 다가온 꼬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현민을 향해 모자와 어릿광대 가면을 건내주었다. "이건?" "형이 주신 걸 받았을 때,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꼬마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높이 들며 현민과 눈을 마주했다. "역시 이 가면은 형이 쓰고 있을 때, 가장 멋진 것 같아요." 꼬마의 고백 아닌 고백을 들은 현민은 입가에 짙은 미소를 머금고 꼬마를 바라보았다. --------------------------------------------------------------------------------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는 약하고... 체격도 작고... 형처럼 될 수 없는걸요." 스윽... 딸랑. 꼬마의 손에서 어릿광대 가면과 모자를 집어든 현민은, 하회탈 가면을 벗어버린 후, 어릿광대 가면을 착용했다. 그리고 벗어버린 하회탈 가면을 꼬마에게 건내주었다. "자." "네?" "네가 강하지 않다면 이 탈과 함께 강해져 봐. 모든 사람들이 이 탈로 인해 너를 기억할 수 있도록 말야." "고, 고맙습니다!" 쉽게 만들 수 있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가면이었지만, 꼬마에게는 현민이 주엇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이는 물건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꼬마에게 어릿광대란 존재는 영웅과 동급이었기 때문이었다. "오~, 인기 많은데?" "그러게. 쿡쿡." 하회탈을 품에 안은 꼬마는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고, 수진과 현진은 남아있는 현민의 옆에서 그를 놀려댔다. 딸랑... "장난은 그만하고 빨리 가자." "예이~." 수진과 현진의 장난 때문인지 현민이 발걸음을 서둘렀고, 현민의 앞에 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자리를 비켜주었다. 현민이 어릿광대인 것을 안 이상 그를 향해 불쾌한 눈빛을 던진다거나 길을 막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재미있을거야." 현민 일행이 관중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누군가의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저 사람은..." "정령사네?" "정령사가 많은 가봐." 우연히 바라본 시합의 주인공은 과거 현민에게서 정령석을 구입했던 여성 유저였다. 경기장 위에는 그녀가 소환한 것으로 예상되는 정령들이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강해보였고, 현민 일행이 계약한 정령들에 비해 상당히 컸다. "실피드 숨어있는 적을 찾아! 노움, 실피드가 찾는 적을 붙잡아! 샐러맨더는 공격!" "훗, 숨어있는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정령사의 대결 상대가 어쌔씬 계열인지, 그의 목소리만 울려퍼질뿐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삭! "윽!" 바람의 정령으로도 모습을 찾을 수 없는지 실피드라는 정령은 허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만 했고, 노움과 샐러맨더는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정령사와 정령들이 목표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쌔씬의 공격은 계속되었고, 그녀의 몸에는 작은 상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실피드! 거대폭풍!" 크오오오!! 정령사의 명령에 와이번의 모습을 한 실피드가 크게 울부짖었고, 경기장위로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매서운 바람이라도 숨겨진 길이 존재하지..." 사삭! "크윽!" 정령사의 몸에 다시금 혈선이 그어졌고, 어쌔씬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이런 것으로는 나의 길을 막을 수 없다." "샐러맨더!" 푸화아아악! 정령사의 신호를 눈치 챈 샐러맨더가 사방을 향해 불길을 뿜어냈고, 실피드의 바람과 어울려 경기장의 모든곳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흥! 말했을텐데, 바람에도 길이 있다고 말야." 경기장을 불태우는 상황에도 어쌔씬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고, 정령사의 옷이 넝마로 변해버렸다. "운디네, 방어!" "이런이런, 조심하라고. 그렇게 움직이면 옷이 찢어져 버리잖아?" "꺄악!" 운디네의 방어막이 그녀를 감쌌지만 어쌔씬의 공격은 운디네의 방어를 뚫어버리며 그녀의 옷을 찢어버렸다. "너무 심하잖아." 점점 심해지는 정령사의 모습에 현진과 수진이 현민을 바라보았지만, 현민은 차가운 눈으로 경기장만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그녀들의 시선을 알지 못했다. "하악, 하악, 하악...." 끝까지 버티던 정령사가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상의는 작은 조각으로 변해 이리저리 흩어졌고, 하의도 이곳저곳이 찢어져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만 같았다. "노움! 운디네! 실피드!" 마지막이란 생각을 갖은 정령사는 그녀가 알고 있는 최강의 공격을 명령했고, 그녀의 명령을 '느낀' 정령들이 빠르게 행동했다. 콰드득! 쩌저적! 쿠콰콰콰쾅! 현민이 만든 대지의 심판과 같이 수많은 창들이 땅에서 솟아올랐고, 운디네의 화살이 하늘에서 땅으로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하늘과 땅에서 빈틈없는 공격이 이뤄지는 순간, 사방에서 바람의 칼날이 날아들기 시작했고, 경기장의 모든 곳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하아..." 뚝, 뚝... 그녀의 공격이 끝났을 때, 온몸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그녀의 앞으로 모습을 들어냈고,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퍽! "꺄악!" 그의 발이 그녀의 복부에 박혔고, 그녀는 멀리 나가 떨어져 버렸다. 간신히 가슴을 가리고 있는, 그녀의 숨결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거칠었으며, 마지막 공격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상태 때문인지 정령들은 모두 사라져버린 후였다. "이제 승자를..." "블링크, 과거의 영광." 그가 심판을 바라보며 말을 하려는 순간 경기장에 모습을 들어낸 현민이 쓰러진 정령사에게 옷을 덮어주었다. "뭐지?" "누구?" 딸랑.... 현민의 움직임에 흔들린 방울이 맑은 소리를 퍼트렸고, 그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 흥분이 담기기 시작했다. 어.릿.광.대! 어.릿.광.대! "위대하신 황제폐하!" 고개숙여 인사하는 현민의 목소리가 콜로세움을 뒤흔들었고, 현민을 응원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순간 침묵했다. "말하라." "흔치 않는 정령사의 모습에 기대하고 계시던 황녀께서 이리 슬퍼하시니,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무표정한 황녀까지 걸고넘어진 현민은 말이 끈기지 않도록 서둘렀다. "이 미천한 어릿광대에게 정령사의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황제의 시선이 황녀를 향해 돌아갔고, 황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와아아아아아!!!! 볼거리가 많은(?) 경기를 펼치는 어릿광대의 시합에 사람들은 열중했고, 수진과 현진은 당황했다. "신관님들? 여기 이분들을 치료해 주지 않으시겠어요?" 경기장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신관을 부른 현민은 몸을 가린채 가만히 앉아 있는 정령사와 피투성으로 서있는 어쌔씬을 가르켰다. "잘 봐두세요. 고객에 대한 마지막 서비스랍니다." 현민이 건내준 옷으로 몸을 가린 그녀가 아래로 내려갈 때, 현민은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말했다. "자, 그럼." 현민이 몸을 돌렸을 때, 어쌔씬은 모든 치료를 마친 채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지? 너는 마법사 아닌가?" ----------------------- 이름 : 룬. Lv : 306 직업 : 불의 정령. 정령력 : 66192 ----------------------- "도대체 뭐지?" "말했잖아요? 저 자체가 정령이라고." 삭! 사삭! 현민이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수많은 칼날들이 그를 스쳐지나갔지만 현민의 몸에는 작은 상처하나 생기지 않았다. "젠장!" "이제 공격이 끝나신 건가요?" 상냥히 말하는 현민의 모습은 관중들에게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지만, 그와 맞서고 있는 어쌔씬에게는 아니었다. "그럼 제가 공격할게요." 화르르륵! "아아아아!!" 자신의 어깨를 감싸안은 현민이 몸을 수그린 채 비명을 질러댔고, 그의 등에 엄청난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팟! "하아, 하아, 하아." 두 장의 날개가 현민의 등에서 펼쳐졌고,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관중들은 너무나 환상적인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하지를 못했다. "여신...." 아름다운 외모와 붉게 타오르는 날개는 황제의 말처럼 여신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피해보세요." 쾅! 콰콰콰콰쾅! 현민의 날개짓에 폭발하기 시작한 경기장은 모든 것을 박살내고도 한참동안이나 계속 이어졌다. 시끄러운 폭음이 관중들의 귀를 멀게 만들었고, 폭발의 위력이 컸기 때문인지 샨의 방어막을 뚫은 날카로운 바람들이 사람들을 괴롭혔다. "윈드!" 폭발이 끝나자 경기장 위에 수많은 먼지가 피어올랐고, 시야에 답답함을 느낀 샨이 바람을 일으켜 경기장의 먼지를 허공으로 날려보냈다. "쿨럭! 쿨럭!" 먼지가 걷어지고 들어난 경기장은 모든 것이 파괴된 모습이었다. 그 중앙에는 날개로 자신을 감싼 현민이 위치하고 있었고, 처참히 부서진 한쪽에서 모습을 들어낸 어쌔씬은 피를 토하는 중이었다. "이게 바로 정령이고, 이런 게 바로 정령사에요." "크억! 쿨럭!" 어쌔씬에게 다가간 현민이 그를 향해 말해주었으나, 피를 토하고 있는 어쌔씬은 현민의 말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승자! 어릿광대!!!" 와아아아아아!!!!! 현민의 승리를 축하하는 관중들이 엄청난 함성을 내질렀고, 현민을 알고 있는 세 사람은 너무나 다른 현민의 모습에 의아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스윽... "해제." [정령화 상태가 풀립니다.] [레벨이 10 감소합니다.] 어릿광대 가면을 쓴 현민이 정령화 상태를 해제했고, 그의 모습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럼 이만." 황제와 샨이 있는 쪽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한 현민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고, 현진과 수진의 옆에 모습을 들어냈다. "어때? 정령술이란 것 멋있지?" "....." 현민의 자랑섞인 음성이 들려왔지만 그녀들은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가자." "어, 어딜?" "사냥하러." 수진과 현진의 손을 잡은 현민은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콜로세움 밖으로 나갔다. 수진과 현진을 텔레포터의 앞까지 끌고간 현민은 그녀들에게 텔레포트 하는 법을 알려주며 약간(?)의 돈을 쥐어주었다. "일단 5골드 줄게. 쿠진이라는 마을로 이동해." 쿠진이라는 마을은 현민이 처음으로 시작한 마을의 이름이었다. 「싸울아비」내에는 수많은 초보마을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중에 가장 익숙한 마을이 쿠진이었기 때문에, 보다 쉽게 알려주기 위하여 같은 마을을 선택한 것이었다. "쿠진으로 보내주세요." "네." 수진과 현진이 차례대로 사라졌고, 그녀들의 이동을 확인한 현민도 비용을 지불하고 쿠진으로 텔레포트 했다. "이제 어디로?" "어떻게 해야해?" 현민보다 먼저 도착한 그녀들이 현민을 기다리고 있었고, 현민은 그녀들과 함께 장소를 이동했다. "가벼운 인터페이스부터 설명해 줄게. 일단, 상태창이라고 외치면 너희들에 대한 정보가 눈앞에 생겨날거야. 레벨을 1 올릴 때 마다 부가 스텟이 5씩 증가하고, 정령들의 레벨이 1 오를때 3의 스텟이 생겨나." "스텟은 어떻게 올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들은 현민을 향해 조언을 구했고, 그녀들의 물음에 현민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반적으로 나갈까? 아니면 아템빨?' "현민?" "응? 아, 미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현민은 현진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기왕 도와주던 것 끝까지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다른 것은 올리지 말고, 친화력에 전부 올려. 레벨이 1오르면 스텟을 5 받는다고 했지? 그 5란 스텟을 친화력에 1씩 부여하고, 정령들이 얻는 각각의 스텟을 친화력에 2, 정령력에 1로 해서 올려." "음... 생각보다 쉽네." "그렇게 하면 우리도 네가 했던 걸 할 수 있는 거야?" 「싸울아비」를 처음으로 접하자마자 엄청난 것을 봤으니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있었다. "내가 가르쳐 준다면야 가능하지. 하지만 아직은 안돼, 최강의 기술이라 조건이 까다롭거든." "조건이 뭔데?" 호기심을 느낀 두 여성이 현민을 향해 물었고, 현민은 별것 아니란 듯이 대답해 주었다. "친화력 600이상. 거기다가 추가로 정령과 마음이 '같을' 것." "세상에!" "그런걸 어떻게 배웠어?" 마음이 같다는 것은 둘째치고, 친화력이 600이란 것은 75레벨까지 정령과 본인이 얻는 모든 스텟을 친화력에 쏟아부어야만 나올 수 있는 숫자였다. 하지만 일반 스텟과 정령력을 찍지 않고서는 사냥이 불가하기 때문에 75에 600을 만든다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였다. "우연히 배웠다고 할까?" 처음으로 합일 할 때의 기억이 난 현민은, 조용히 염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니깐 처음 합일(合一)했을 때가...." 현민이 처음으로 합일했을 때는, 과거 발록의 시험으로 마족과 대결을 펼칠 때였다. "발록님의 말씀대로 죽어버려라!"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고, 두 개의 꼬리가 달려있는 흉측한 모양의 마족은 8개의 기다란 손톱으로 현민을 몰아세웠고, 현민은 그러한 마족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며 상대했다. "마족은 태생적으로 체력이 높아 쉽게 지치지 않는다. 네가 계속 그렇게 한다면 죽는것은 너일 것이다."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은 채 피하기만 하는 현민이 안타까웠는지 발록은 현민을 향해 충고를 내던져 줬고, 그 때부터 현민도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 공격을 할 때마다 그의 두손에 있는 무기들은 빠르게 바뀌었고, 그런 현민의 전투방식 때문에 마족의 몸에도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마족은 전투형태라는 또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해야 할거다." "크아아아앙!!" 우드득! 발록의 말과 동시에 현민을 상대하고 있던 마족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현민의 몸에 생기는 상처들은 더욱 많아지기 시작했다. "오, 오빠...." "오라버니." "우웅, 지면 안돼는데." "힘내요." 멀리서 바라보는 네 명의 꼬마정령들도 현민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현민이 이기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스악! "꺄악!" "오빠!" "안돼!" "아!" 신체의 변형이 이루어진 뒤부터 배로 빨라진 마족의 움직임을, 현민은 쉽사리 따라가지 못했다. 그 결과, 현민이 놓친 하나의 손톱이 그의 어깨를 스쳐지나갔고, 그의 팔을 몸에서 분리시켜버렸다. 촤아아악!! "크아아악!" 두 손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마족의 공격을 한손으로 막는다는 것은 말도 안돼는 소리였고, 현민의 나머지 팔 역시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제법 버텼지만...." 스릉! "그만 죽어버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바닥에 무릎 꿇어버린 현민은 흐릿한 시야속에 들어오는 마족의 손톱을 바라보았다. "안돼!" "그만둬!" "오라버니!" "오빠!" 현민을 바라보던 페튜니아와 네 명의 꼬마정령들이 현민의 죽음 앞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안돼!' 팟! 마족의 손톱이 미간에 다가왔을 때, 현민은 등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으로 인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오빠...' '염화...' 등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가슴으로 옮겨가자, 무엇인가를 느낀 현민은 감고 있던 두 눈을 뜨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화르르륵! "큭!" 현민의 머리를 꿰뚫으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피어오르는 불길에 놀란 마족은 현민에게 하던 공격을 멈추며 멀리 떨어져 나왔다. "아, 아아...." 새로운 존재로 변한 현민은 갓난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어설프게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뭐지?" 갑작스런 변화와 무언가의 이상함을 느낀 발록이 예리한 눈으로 현민을 주시했고, 마족은 무방비 상태가 된 현민을 향해 재빨리 돌진했다. '이건 누구 손?' '이건 누구 손?' 마족이 다가오는 것조차 신경쓰지 않은 현민은 새하얗고 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염화는 작디작은 손이 아닌 '어른'의 손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어라!" '마족?' '마족?' 스악! 펑! 빠르게 다가오던 마족의 얼굴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무방비 상태로 당해버린 마족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저 멀리 튕겨나갔다. '불...' '힘...' '이건 염화의 생각?' '이건 오빠의 생각?' 두개이자 하나가 된 현민은 속삭이듯 들려오는 염화의 생각을 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맞춰갔다. "크윽! 뭐, 뭘한거냐?!"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족의 얼굴은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뛰어난 치유력 때문인지 상처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금 더 강한힘을...' '조금 더 강한힘을...' 염화와 현민의 생각이 강하게 일치했고, 그들의 의지에 맞추어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화르륵! "루나!" "오빠!" "루나씨!" "오라버니!!" "어!" 허리를 구부린 현민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자, 땅이 녹을 만큼의 뜨거운 불꽃이 피어오르며 그의 몸을 감쌌다. 너무나 뜨거운 불길에 깜짝 놀란 발록이 현민의 이름을 불렀고, 주변에 있던 다른 존재들도 현민을 걱정하는 마음에 그의 이름만 부르짖었다. 화륵! 흠칫! 일정한 방향으로 회전하며 타오르던 불길이 갑자기 움직임을 바꾸었고, 무언가를 느낀 발록은 세 명의 정령과 페튜니아의 몸을 잡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푸핫! 화르르륵! 발록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현민을 감싸고 있던 불꽃이 말 그대로 넓게 펼쳐졌고, 그것의 범위에 있는 것은 모두가 '사라져' 버렸다. 펄럭! 펄럭! 온몸을 뒤덮고도 남을 정도의 거대한 날개가 현민의 등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다섯명의 여성들은 현민의 엄청난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르륵..... 신기하다는 눈을 한 현민이 등에 있는 날개를 움직여 보았고, 날개에서 일어난 바람으로 인하여, 주변의 재들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한참동안이나 날개를 움직이던 현민은 날개에 대한 관심이 식었는지, 이번에는 자신의 새로운 몸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건 여성의 몸?' '이건 어른의 몸?' 건강한 18세의 소년으로서 여성의 몸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순간적인 호기심이 생긴 현민은 자신의 가슴으로 손을 가져갔다. 다른 사람의 가슴도 아니고, 자신의 가슴을 만진다고 생각하였기에 거부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꺄악!' '큭!' 하지만 그의 손이 가슴에 닿기 직전, 엄청난 비명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려퍼졌고, 현민은 온몸에서 느껴지던 힘이 다시금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령화 상태가 풀립니다.] [레벨이 10 감소합니다.] "뭐, 뭐지?" 현민의 모습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떨어졌던 그의 팔은 원상태로 회복되어 있었다. "대단하군." "도대체.... 어떻게?" "오빠...." "오라버니...." "머, 멋지다." 그를 바라보는 모두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지만, 발록의 눈에서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비밀." "야!" "야!" -------------------------------------------------------------------------------- 장난기가 다분히 묻어있는 현민의 말에 수진과 현진이 고함을 질렀지만 현민은 그녀들의 고함을 가볍게 무시했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알려줄게 있는데, 내가 펼쳤던 합일이라는 기술은 절대로 무적이 아니야." "응?" "왜?" 사냥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가던 현민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들에게 합일과 정령술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었다. "합일이라는 기술을 펼치면 정령의 레벨 + 나의 레벨이 되어서 두 배 가까이 오르지만 지속시간도 있고, 정령화 상태가 끝나면 레벨이 10이나 감소해버려." "지속시간은 어떻게 되는데? 레벨별로 나뉘는 거야?" 약간이나마 게임을 알고 있는 수진이 질문을 했고, 현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신력 + 정령력이 지속시간이야. 초당 1이 소모되니깐 정신력하고 정령력이 낮다면 절대로 오래 버틸 수가 없지. 게다가 정령화의 상태에서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것도 추가로 정신력과 정령력이 소모되니, 싸움을 한다고 하면은 초당 10~20의 정신력과 정령력이 소모된다고 보면 돼." "우우, 우리는 언제 올리냐..." 아직도 멀었다 이야기 하는 현민의 말에, 현진이 가볍게 투정을 부렸다. "정령들과 대화를 하거나 놀아주는 것도 친화력을 올릴 수 있으니 600만드는 것도 금방이야." 스텟 말고도 친화력을 올릴 수 있다는 현민의 말에 현진과 수진의 두 눈이 반짝였다. 너무나 멋진 현민의 모습에 반한 그녀들은, 원래의 목적도 잊어버린 채 현민의 수준까지 도달하는 것이 현재의 목표였다. "내가 도와주는 것은 여기까지야.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너희들의 사냥방법을 스스로 찾아내는 거야." 그녀들을 사냥터까지 데려다준 현민은 그녀들이 보이는 위치의 그늘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현민이 누워버리자 네 명의 꼬마 정령도 현민에게 달라붙었고, 잠시 그들만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오빠, 나 졸려." "저도요." "우웅...." "졸려요..." 정령들의 작은 싸움에 승자가 정해졌고, 예상대로 윈디아가 현민의 가슴을 차지했다. 아쉽게 패배한 담비가 현민의 왼팔을, 묘와 염화가 현민의 오른팔을 베고 누웠다. 정령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수진과 현진이 주변을 시끄럽게 했지만,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을 즐기는 현민에게, 그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준이었다. 아직은 렙이 낮아서 그런지 그녀들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5레벨을 만들었고, 자신만의 사냥법을 익혀나가고 있었다. 툭, 툭툭. "으음..." 모자란 정신력을 체우기 위해, 현민의 머리맡에 앉은 현진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현민의 볼을 툭툭 건드렸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현민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녀의 손길을 피하려 노력했다. "쿡쿡." 툭, 툭툭툭. "으음..." 현민의 반응에 재미가 들린 현진은 계속해서 그의 볼을 찔러댔고, 결국 현민의 잠을 깨워버렸다. "뭐야? 잠자고 있는 것 안보여?" "헤헤." "하아...." 현진의 웃음 때문에 현민의 입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냥은 잘돼?" 아직도 잠들어 있는 네 명의 정령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현민은, 현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어보았다. "응, 어느정도 익숙해 졌다고 할까? 생명을 죽인다는게 걸리긴 하지만 시체가 남는 건 아니니깐...." "그래?" 현민은 모르고 있었지만 남성 유저와 여성 유저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시체에 대한 것이었는데, 남성 유저의 경우 일정시간동안 시체가 존재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바로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싸울아비를 갓 시작하는 어린이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가봐야 겠다." 어찌보면 대충 도와주는 것 같았지만, 지금의 현민은 자신이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녀들을 도와주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은 마법사란 직업을 '주'로 했기 때문에 단계별로 나갈 필요가 없었지만 정령사를 '주'로 하는 현진과 수진은 단계별로 몬스터를 잡아가는 것이 성장에 도움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아이템 같은 경우에는 꼼꼼히 살펴보고 사기당하지 않도록 조심해. 알았지?" "응." "일단, 20골드 줄 테니깐 10골드씩 나눠서 써." 현진에게 돈을 건낸 현민은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네 명의 꼬마정령들을 잠에서 깨웠다. "그리고 너희들도 적당한 무기를 사서, 정령들과 함께 싸우도록 해봐." 현진에게 마지막으로 충고를 던진 현민은, 작별의 인사도 없이 페드로 제국의 수도를 향해 이동했다. 그의 시합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경기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끝까지 멋진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평소와 다르게 인사말을 건낸 사회자는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황제를 향해 인사를 했다. "첫번째 경기를 시작합니다!!" 와아아아아!! 드디어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됐고, 토너먼트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세 번째 경기는 자.칭. 서부의 총잡이 '여우아씨'님과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는 '어릿광대'님의 대결입니다!" "총잡이?" 사회자의 말을 들은 현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판타지에서는 밸런스를 생각해서라도 만들어질 수 없는 물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타타타타탕!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현민은 커다란 소리로 인해 현실로 돌아왔고, 상대방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왜? 이 총이 가짜 같아서 고민하는 거냐?" 총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왠지 가냘파 보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렸고, 카우보이모자에 가려진 상대방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디다 정신을 파는거냐?!" "절대방어." 타타탕! 고함을 지른 여우아씨가 양손에 총을 들었고, 그녀의 총이 완전히 올라오기 직전 방어마법을 실행하였다. 그녀의 총알은 현민의 마법을 뚫지 못하고 있었지만, 2자루의 리볼버에서 나오는 총알은 끊어지려 하지를 않았다. "조심해야할걸? 이래보여도 A급 무기거든. 옵션변경! 스핀! 파워샷!" 쾅! 그녀의 외침과 함께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소리가 콜로세움에 울려퍼졌고, 그녀의 몸도 커다란 반발력으로 인해 하늘을 날고 있는 중이었다. 탓! 공중에서 몸을 돌려 멋지게 착지한 그녀는 자신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현민이 있는 곳을 향하여 고개를 들었다. "응?" 하지만 그녀가 바라본 장소에 있는 것은 깨질 듯 말 듯 한 절대방어 마법뿐이었고, 그 속에 있던 현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순간 블링크를 사용하여 도착지점에 미리 이동한 현민은 그녀가 고개를 들며 주위를 살필 때, 그녀의 목을 뒤에서 부여잡았다. 스윽. "한번." 타타타타탕! 상대가 여자이기 때문에 공격을 하기보다 항복을 유도해 내려했으나, 고집이 강한것인지 그녀는 현민을 향해 총을 갈기며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너무나 빠르게 움직여서인지 머리에 있던 모자가 벗겨지며 그녀의 얼굴이 들어났다. 그녀의 얼굴을 봤을 때, 가장 특징적인 것은 갸름한 얼굴선과 분홍빛 입술이었다. 이 두 가지로 인해 그녀의 얼굴은 예뻐보였다. 목을 살짝 덮는 밝은 파란색의 머리는 그녀를 신비하게 보이도록 했고, 귀에서 반짝이는 총알모양의 귀걸이는 그녀를 고집 있어 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녀의 예쁜 모습이 모두에게 들어나 있었지만 현민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꾸욱...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그녀의 목을 잡았던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낀것만 같았다. "약간 방심했지만 지금부터 뒤를 잡히는 일은 없을 거다." 떨어지는 모자를 잡아서 다시 쓴 그녀는 현민을 향해 두 자루의 리볼버를 조준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탕! 또 다시 총알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총알은 현민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target on!" 탕~!! 그녀의 목소리가 콜로세움에 울려퍼졌고, 그동안 쏘아졌던 모든 총알이 현민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기존 속도의 두 배 이상으로 날아가는 총알들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 채 절대방어에 부딪쳤고, 현민의 방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후~." 현민의 주위에는 자욱한 먼지가 생겨났고, 그녀는 자신의 승리를 예상한 듯, 뜨거워진 총구에 바람을 불었다. 쨍그랑!흠칫!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맥없이 부서졌고, 먼지가 흩어지고 보이는 것은 멀쩡한 모습의 현민이었다. "마, 말도 안돼!" 두 배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 총알들이 그렇게 부딪혔는데도 절대방어 하나를 깨지 못했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기술을 개방하게 만들었다. "target on! power up! spin! an attack of heaven!" 우우우우웅!!!! 그녀의 외침에 맞추어 총구를 향해 붉은색의 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A급 무기의 위험함을 잘 알고 있는 현민은 그녀를 막기 위해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팟!탓! 현민이 그녀의 뒤로 가는 순간 그녀의 신형은 이미 현민의 뒤편으로 이동해 있었고, 현민이 다시 신형을 이동시켰을 때는 또 다시 반대편으로 이동해 있었다. 그녀의 선언대로 그녀는 현민에게 등을 내주지 않았고, 현민에게는 더 이상 그녀의 공격을 막을 시간이 존재하지 앟았다. 우웅! 우웅! 우웅! 두 개의 총구에 모인 붉은색의 입자들은 거칠게 요동치며 금방이라도 튀어나갈듯 꿈틀거렸기 때문이었다. "인탱글!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대지의 방패! 대지의 손! 속성변화! 강화! 절대방어! 염..." "fire!!" 타겟을 정한 이상 피할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현민은 그녀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마법을 사용하여 그녀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총에서 나온 공격은 현민의 모든 마법들을 부수며 현민을 향해 나아갔고, 현민의 절대방어에 처음으로 4개의 구멍이 생겨났다. 털썩! 너무나 강력한 공격력으로 인해 주변에는 먼지하나 생겨나지가 않았고, 현민의 처참한 모습이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과...과거..의...." "심판!" 팔다리가 사라져 버린 현민은 바닥에 누워 수많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의도한 것이기는 하지만 죽으면 탈락이라는 규칙 때문에 그녀는 서둘러 심판을 불렀고, 심판도 너무나 확연한 차이에 승부를 정하려 했지만, 이것도 어릿광대의 연출이라 생각하며 잠시간 고민을 거듭했다. "..영광." 모든 상처가 자동으로 치유되는 트롤조차 불가능한 재생이 현민에게서 일어났다. 몸에 생겨난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버렸던 팔다리가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고, 얼마의 시간도 지나지 않아 현민의 모습은 이전과 다름없어 졌다. "소, 속행!!"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현민을 보며 심판은 시합을 계속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아무런 공격을 하지 않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고, 고개를 들어 황제가 앉아있는 귀빈석을 바라보았다.흠칫!그가 바라보았던 것은 주변을 감싸고 '있었던' 방어막이었고, 그가 바라본 곳은 샨이 '서있어야' 하는 곳이었다. "target on! power up!" 스킬을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는 울부짖음에 가까워져 있었고, 부릅뜬 두 눈은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딸랑딸랑... "인탱글.... 속성변화...." 속성변화(3서클)소모 정신력 : 30 능력 : 대상의 속성을 철과 동일하게 만든다. 현재 단계 : 10 주문 : ??? 수많은 바람속에서도 울리지 않던 방울이 소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주변의 모든 관객들이 그들의 대결에 숨을 죽였다. 현민은 스스로의 왼손에 인탱글을 걸었고, 그의 손목과 손을 감싼 기다란 나무뿌리가 위아래로 길게 늘어지며 강철같이 변했다. "spin! an attack of heaven!" 우우우우우웅!! 그녀의 기술이 다시한번 발동되며 붉은색의 입자들이 총구의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cobweb, cobweb, cobweb, cobweb, cobweb, cobweb, cobweb....." 그녀가 붉은색의 입자들을 모으는 중에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현민은 나무뿌리 끝을 거미줄로 이어버렸고, 거미줄의 탄력으로 인해 직선을 그리던 나무뿌리가 부드럽게 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스. 전사의 투지. 스트랭스." 전사의 투지(5서클) 소모정신력 : 350 능력 : 전사의 의지를 흉내내어 힘과 민첩이 일시적(30초)으로 300 상승한다. 재사용 시간 현실시간 1일. 현재 단계 : 6 주문 : 잃어버린 전사의 투지를 이어받아 그의 뜻을 대신........ 거미줄에 탄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점성도 있기에 현민은 그리스 마법을 사용하여 점성을 지워버린 후, 자신을 향해 힘 관련 마법들을 사용했다. 까득. "나, 홀로 존재하니 그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하였고, 나, 홀로 바라보니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였고, 나, 홀로 생각하니 그 누구도 나를 거스르지 못하였다." 검지를 입으로 가져간 현민은 스스로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렸고, 거미줄이 있는 곳에 마법진을 그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현민의 피로 이루어진 붉은색의 마법진은 바닥으로 떨어져내리지 않은 채 허공에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 거대한 바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며, 그대를 바라보고, 그대의 죽음을 생각하니. 그대 죽음의 부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의 뜻을 받들여라!" 끼기기기긱!! "fire!!" 오른손을 고리 모양으로 하여 거미줄을 힘차계 잡아당기니 인탱글과 속성변화로 강화된 활대가 거미줄의 탄성을 간신히 견뎌내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의 공격이 먼저 이루어졌고, 이전과 같은 엄청난 공격이 현민을 향해 날아들었다. "심판..." 핑! 콰가가가가가가각!!! 그녀의 공격이 바로 앞에 다가온 순간, 현민의 오른손이 잡고 있던 거미줄을 놓았고, 현민의 바로 앞에서 그녀의 공격과 현민의 공격이 부딪혔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현민의 공격에 맥없이 사라져버렸고, 현민의 공격은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하며 상대방을 향해 날아갔다. "아악!" 현민의 공격은 그녀의 몸에 닿지도 않았지만 그의 공격에서 나온 날카로운 바람이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생명을 죽이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현민은 허공을 향해서 공격을 했고, 그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상처하나 없을 수 있었다. "하악, 하악, 하악...." 저벅저벅...딸랑. 발걸음을 옮긴 현민은, 쓰러져 있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규칙만 아니라면 죽여버렸을 거다." "으으으으으..." 상대가 여자였다면 모르겠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남자인 이상, 샨이 쓰러졌다는 것만으로도 죽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현민의 앞에 쓰러져 있는 존재는 책에서만 등장하는 성별초월 초절정 꽃미남(?)이었고, 현민은 그것을 단한번의 접촉으로 알아봤던 것이었다. 거의 예지력 수준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현민의 여성기피증이었다. 현민이 정신력의 과다 사용으로 쓰러졌다 생각했던 샨은, 멀쩡한 모습으로 바닥에 몸을 수그린 채 몸을 숨기고 있는 중이었다. "끝났네요. 일어나세요." "...네." 황녀의 신호를 듣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 샨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옷을 정리했고, 황녀는 그런 샨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속성변화, 강화, 전사의 투지는 당신만의 마법이라며 자랑하던 것이 아니었나요?" "물론, 예전에는 저'만'의 마법이었죠." 그녀의 대답이 담고 있는 뜻을 눈치 챈 황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경기장만을 바라보았다. -------------------------------------------------------------------------------- "하아...." 마녀로 복장을 바꾼 현민은 가면의 능력을 사용하여 귀빈석을 훔쳐보았고, 멀쩡한 모습의 샨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멋지게 당했군." 자신은 걱정을 넘어서 분노까지 했건만 당사자가 저리 멀쩡한 것을 보니, 괜스레 화를 냈던 상대방에게 미안해졌다. "로그아웃." 샨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현민은 「싸울아비」의 접속을 종료했다. 다음 경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자신이 게임만 하기 때문인지 부모님의 시선도 많이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똑, 똑, 똑..... "하아...." '이제 얼마 안남았군.' "응." 욕조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현민은 내면의 또 다른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A급 무기의 힘을 막을 만한 마법 조합이 필요해...' "만들 수는 있을거야. 이제는 6서클이니깐." 5서클의 일정 수준 이상부터는 새로운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문제가 복잡하게 변하거나 양이 늘어나는 것이었으니 시간만 충분하다면 누구라도 풀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지만 말이다. 그동안 현실에서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던 현민은 최근에 들어서야 간신히 6서클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공격력이라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해." '그치만 너는 못 막았어.' "방심했으니깐." 서로가 서로의 인격을 이해했는지 그들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나버렸다. "지금부터 마지막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몇 경기가 더 남았을 것이라 예상했건만 그의 생각과 다르게 바로 결승전이 치러졌다. 상대방의 경우는 압도적인 강함으로 승리가 정해졌고, 현민의 경우에는 상대방이 기권을 하며 승부가 결정났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만났군." 자신을 알고 있는 듯 한 상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현민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는 분명 처음보는 존재였다. "어째서 채리가 너 따위에게 관심을 보이는 거지?" 시합이 시작된 이후로 계속 말을 하고 있었지만 현민은 그가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심해. 나는 채리플랑처럼 봐주지 않을 테니깐. 그리고 잘 기억해 둬. 너를 죽일 나의 이름을...." 현민의 맞은편에 있던 그가 로브를 뒤로 넘겼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의 얼굴이 모습을 들어냈다. 흠칫! "현자길드..." 로브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현자길드의 문양은 그의 볼에 새겨져 있었다. "나의 이름은 루얀이다." 루얀의 차가운 눈동자가 현민의 눈을 직시했고,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가장 힘든 시합을 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말이 많으시네요." "훗, 그래?" 현민의 비꼼에 화가 날만도 하련만 그의 행동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 깜빡할 뻔 했군." 서로가 공격을 시작하려는 찰나 움직임을 멈춘 그는 현민을 향해 마지막 충고를 건냈다. "최대한 노력하는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기회도 없을 테니깐 말야. 블링크."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마법을 사용하여 현민의 뒤로 이동했다. "워터볼, 아이스. weight up(무게증가)." 그의 기척을 느낀 현민이 자리를 이동하기도 전에 그의 마법이 현민의 발을 감싸버렸다. 현민의 발을 감싼 물덩어리가 그의 발과 함께 얼어버렸고, 이어지는 마법에 엄청난 무게로 증가하며 현민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블링크, 파이어, 인탱글,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움직임이 둔하기에 마법으로 자리를 벗어난 현민은 파이어 마법을 사용하여 발에 얼어붙어 있는 물을 녹여버렸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현민의 마법이 루얀의 두 다리를 감싸며 올라갔고, 이어지는 마법에 어마어마한 두께로 굵어졌다. "파이어 아머," "대지의 손, 스트랭스, 절대방어." 슈앙! 현민의 마법이 그의 몸을 산산조각내기 직전, 그의 몸을 감싸는 불꽃의 갑옷이 나무뿌리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현민은 이미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의 두 번째 마법이 루얀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블링크! 플라이!" 현민의 공격이 다가온 순간, 루얀은 허공으로 몸을 옮기며 현민의 공격을 피해버렸다. "블링크! 그래비티!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그가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현민이 빠르게 날아가는 절대방어를 블링크 시켜버렸고, 벽에 부딪혀 사라져야 하는 현민의 절대방어는 그의 머리위에서 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중간에 사용한 중력마법으로 인해 절대방어의 파괴력은 늘어나 있었고, 그의 발밑에는 여왕의 거미줄이 설치되어 있어 도망갈 장소를 막고 있었다. "훗, 그래비티, 에어실드." 그래비티 마법을 그래비티 마법으로 없애버린 루얀은 엄청난 속도로 내려오는 절대방어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린 후, 조용히 마법을 시전하였다. 그의 손에 모여든 바람이 빠르게 회전하며 작게 압축되었고, 현민의 절대방어와 부딪혔다. 퉁! 콰콰쾅! 그의 에어실드에 부딪힌 절대방어가 옆으로 튕겨졌고, 샨이 이루고 있는 방어막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나버렸다. "파이어 월." 탁.현민의 절대방어를 부신 루얀은 파이어 월 마법을 사용하여 현민의 거미줄을 녹인 이후, 땅으로 내려와 그를 바라보았다. "겨우 이정도의 실력이라니 장난같군." "도대체 몇 서클이죠?" "궁금해?" 그가 사용하는 마법은 일반적으로 5서클 이상이었고, 그것을 명령어만으로 한다면 최소 7서클 이상이라는 소리였다. 물론, 현민과 같이 메모라이징을 해 놓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마법을 난발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가 않았다. 메모라이징으로 기억이 가능한 마법의 숫자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8서클이다. 아쉽지만 최초의 8서클은 아니지." 딸랑.... 루얀은 현민이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엄청난 천재였다. 그의 실력은 샨보다 뛰어났고, 어딘가에서 놀고 있을 지혜의 실력도 뛰어넘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역시 천재는 다르네요." "아직도 여유로운가 보군. 그럼 나도 본격적으로 해주지." 말을 마친 루얀이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나의 피와 계약한 마계의 존재여, 지금 여기서 계약의 대가를 받고자 하니 모습을 들어내라." "흑마법?" 루얀이 펼치고 있는 것은, 현민이 홈페이지에서 설명으로만 들어봤던 흑마법의 일종이었다. "나의 팔에 강림하라, 나의 생각을 대신하라, 적의 몸을 갉아먹어라! 마우스(mouth)!" 그의 마법이 실현되자 어디선가 생겨난 검은 안개가 그의 팔에 스며들었다.쩌억! 쩌억! "너의 직업은 마녀, 정령사, 마법사라고 하더군." "도대체 무슨생각으로 그런 직업을 고른거냐." "하하하, 생각은 있는거냐?" 첫 번째 말을 루얀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두 번째의 말은 오른손에서 흘러나왔고, 세 번째의 말은 왼손에서 흘러나왔다. "이런게 바로 상호보조적인 직업의 조합이다." "멍청한 놈아." "멍청한 놈아." 세 개의 입을 가지고 있는 그는 각각의 입을 사용하며 현민을 도발했다. "하나인 입도 시끄러웠는데, 세 개로 늘어났으니 귀가 너무 아픈 것 같군요." "뭐라고!" "뭐라고!" "뭐라고!" 현민을 도발하려던 루얀은 현민의 도발에 완전히 걸려들었고, 각각의 입으로 서로 다른 마법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스, 인탱글." "워터볼, 포이즌, 염력." "파이어볼, 파이어볼, 파이어볼." 현민이 딛고 있던 바닥의 마찰력이 제로로 변하면서 현민의 신형이 바닥으로 넘어졌고, 이어지는 마법이 그의 몸을 감싸버렸다. 그와 동시에 생겨난 독극물이 현민의 머리를 감싸버렸고, 그런 현민을 향하여 세 개의 파이어볼이 시간차를 두며 날아갔다. 콰콰쾅! 기본적인 공격마법으로 알려져 있는 파이어볼은 엄청난 위력을 보이며 현민이 있던 곳을 가루로 만들어버렸고, 그의 신형을 중심으로 반경 3m의 모든 것이 가루로 변해 버렸다. "하하하하, 마지막 마법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끝나는 거냐?" "푸하하하하." "하하하하." 딸랑..... "응?" 파이어볼 마법으로 인해 경기장에 있던 현민의 신형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하나의 방울소리가 그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루얀은 서둘러 주위를 바라보았고, 모든 존재의 시간이 멈춰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뭐, 뭐야?!" 하늘을 날고 있던 새도 허공에서 움직임을 멈춰버렸고, 수많은 관중들도 아무런 움직임과 소리없이 경기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안티 매직!"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루얀이 서둘러 자신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그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시야는 거울처럼 산산조각 났다. 딸랑.... "저의 환상이 재미있으셨나요?" 루얀이 당했다고 생각했던 현민은 그가 공격을 하기 이전에, 이미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흑마법을 사용하여 두 개의 입을 소환하고 있는 사이 그에게 진실된 거짓을 사용한 현민은 그가 허공을 향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문제군....' '마법을 너무 많이 사용했어. 메모라이징한 마법이 몇 개 안 남았다.' '하아.... 엄청 문제있군.' 진실된 거짓의 사용중에 공격할 수도 있었지만 그가 사용한 마법으로 인해 접근이 불가능했고, 현민이 모르는 특수한 마법으로 인해 그 효과도 아주 잠깐뿐이었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현민의 마법을 벗어난 루얀은 흥분되었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몸을 맡겨라.' '왜?'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지....' 현민의 인격이 허락도 하기전에 또 다른 인격이 그의 몸을 차지했고, 현민은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이전에도 몇 번 겪어보기는 했지만, 의식을 하고 있으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블리자드." "토네이도." "그래비티." 경기장 위로 쏟아져 내리는 얼음덩어리가, 루얀이 위치한 곳을 제외한 모든 곳을 부셔버리기 시작했다. 경기장위로 부는 토네이도는 얼음덩어리를 이리저리 날리며 현민의 신형을 압박했고, 그래비티 마법은 얼음덩어리의 공격력을 증가시켰다. "ΓβζΛξ드." "크아악!" "크아악!" "크아악!" 점점 얼어가는 현민을 보며 자신의 승리를 예상하던 루얀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절대방어를 감싼 채 그의 뒤에 나타난 현민이 불타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ηπβΔιж판." "앱솔루트 실드!" 쿠드득! 콰직! 파파파파팟! 또 다시 이어지는 현민의 마법에 위기를 느낀 루얀은 자신을 보호해줄 방어막을 시전하였다. 그가 마법을 시전하는 동시에 그가 서있던 땅이 밑으로 사라져버렸고, 땅속의 벽면에서 창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엉켜들었다. 모든 것이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의 마법이 약간이라도 늦었다면 그는 절대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블링크." "도대체 무슨 마법이지?" 루얀은 블링크 마법으로 자리를 벗어나는 동시에 현민에게 질문 했다. 지금의 현민이 사용하는 기술은 정령술도 아니었고, 마녀의 기술도 아니었으며, 마법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세 가지 마법을 사용했을 뿐이랍니다." "무, 무슨 말도 안돼는!!" "이해가 안 되시나요?" 세계적인 천재로 인정받는 루얀이었지만 지금 현민이 하고 있는 말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법이란 것은 하나의 명령어로 하나씩 실행되는 것이 「싸울아비」의 규칙이었기 때문이었다. "목소리를 다르게 해줄까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얀을 향해 현민은 또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대지의 손." "파이어 핸드." 흠칫! "앱솔루트 실드!" 그의 옆에서 불타는 대지의 손이 생겨나 그를 공격했고, 그는 방어마법을 사용하여 현민의 공격을 막아냈다.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두 가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거지!!" 현민은 루얀과 다르게 하나의 입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입이 움직이면서 나온 소리는 분명히 두 가지였다. 가냘파 보이는 여성의 목소리가 대지의 손 마법을 시전했고, 중년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가 파이어 핸드 마법을 시전했다. "당신정도의 천재라면 이론을 알고 있을 텐데요?" 루얀은 현민의 대답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을 지나가는 수많은 이론들이 가능한 것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 인간이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하하하, 정말 대단하군. 이 이상의 장난을 치면 내가 당하겠어." 말을 마친 루얀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개방했다. "타오르는 별빛이여, 어둠속을 여행하는 방랑자여......." 그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마나가 모이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트리기 시작했다. "큭!" '큭!' 또 다른 현민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던 현민은 갑작스런 고통과 함께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고, 어느새 자신의 인격과 또 다른 인격의 위치가 바뀌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험해! 어서 막아야 해!' 루얀의 마법에서 무엇인가를 느낀 것인지, 현민의 또 다른 인격은 현민이 서둘러 주기를 바라고 있었고, 현민도 그의 뜻을 따라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루얀의 양 손에 있는 입들이 사용하는 마법으로 인해 그의 곁으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디그, 대지의 창." "파이어볼, 라이트닝 에로우. 기가 라이트닝." 그가 발을 내딛으려 하는 곳은 땅이 무너지거나 솟아오르며 현민을 방해하였고, 그가 이동하려고 하면 공격마법이 날아오며 그의 움직임을 차단했다. 거기에 더하여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몇가지의 마법은 현민의 움직임에 계산되어진 마법들이어서 현민을 위험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어둠속에 있는 파괴력은 그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니......" 대결의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현민이 메모라이징 해 놓은 마법들은 자연스럽게 0이 되어버렸다. "인탱글, 속성변화, cobweb, cobweb, cobweb, cobweb, cobweb........." 결국 현민이 선택한 것은 이전의 경기에서 사용했던 심판이었고, 그는 자신의 왼팔을 인탱글하여 거대한 활을 만들었다. "그리스, 대지의 방패, 홀드, 스트랭스" 거미줄의 점성을 제거한 현민은 대지의 방패를 자신의 뒤에 소환하여 밀려나는 것을 방지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모자라다 생각했는지 홀드마법까지 사용하여 자신의 하반신을 바닥에 묶어 버렸다. "그대를 부르는 나의 목소리에 답해, 지금 이......" "기가 라이트닝" "기가 라이트닝" 기다란 주문을 외우는 동시에 현민의 공격을 막아가는 루얀은 현민의 공격이 이어지기 전에 그를 공격하였다. 두 개의 기가 라이트닝이 하나로 합쳐지며 현민을 향해 떨어져 내렸고, 현민은 재빨리 홀드 마법과 대지의 방패를 캔슬하며 몸을 옆으로 던졌다.꺄득. "나, 홀로 존재하니 그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하였고, 나, 홀로 바라보니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였고, 나, 홀로 생각하니 그 누구도 나를 거스르지 못하였다. 그런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며, 그대를 바라보고, 그대의 죽음을 생각하니. 그대 죽음의 부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의 뜻을 받들어라!" 끼기기기긱!! 그를 조준한 현민이 심판을 사용하기 직전, 그의 눈이 현민의 활을 바라보았고, 양 손에 있는 입으로 두 가지의 마법을 시전했다. "에어실드." "대지의 창." 핑! 푹! "크아악!" 빠르게 회전하는 에어실드가 거미줄 있는 부분에 생겨나며, 거미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중간부분이 끝어진 거미줄은 현민의 팔을 훑고 지나가며,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그와 동시에 땅에서 솟아오른 대지의 창이 현민의 다리에 상처를 주었다. "언제나 지켜지는 규칙에서 벗어나, 그대의 존재를........" "땅에서 생겨난 영혼의 울부짖음이 그대의 다리를 붙잡는다." "사악한 악마의 노래가 그대의 귀를 괴롭히니, 그대 악마의 노래 속에 울부짖어라." 다리의 부상으로 인해 움직임이 느린 현민은 그의 마법을 피할 수 없었다. 땅에서 솟아오른 검은 안개가 땅에 붙어있는 그의 몸을 붙잡았고, 귀를 찢는듯한 고음이 그의 귀에 울려퍼지며 정신을 뒤흔들어 놓았다. "혼돈." "안개의 환상." 계속해서 이어지는 루얀의 마법에 현민의 시야가 이리저리 뒤틀리기 시작했고, 환상까지 보이면서 최악의 상태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 강림하라!" 고오오오오..... "크윽...."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상황이었지만 무거운 바람의 흐름이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미, 믿을 건...."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물약과 작은 뼈다귀 인형을 꺼낸 현민은 자신이 알고 있는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였다. "일어나라, 나의 종이여. 나에게서 받은 생명으로 나의 부름에 답하여, 지금 이 자리에 눈을 떠라." 주르륵....바닥에 흐르는 현민의 피가 마법진을 이루었고, 그가 흘려보내주는 물약이 인형의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달그락! "가, 가라.... 나의 적을 멸살하라." 달그락, 달그락...탓, 타타타타탓!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 작은 해골은 루얀을 향해서 빠르게 달려나갔다. "메테오!!" 메테오(8서클) 소모 정신력 : 12000 능력 : 거대한 운석을 소환하여 대규모의 파괴를 일으킨다. 현재 단계 : 1 주문 : 타오르는 별빛이여, 어둠속을 여행하는 방랑자여....... 시동어를 내뱉음으로서 루얀의 마법은 완성되었다. 현민은 쓰러져 있고, 스스로의 마법이 성공하자, 루얀에게는 자연스레 허점이 생겨났고, 그 작은 틈으로 현민의 인형이 파고들었다. 가가가가가각! 루얀의 다리에 달라붙은 해골인형은 턱을 연속적으로 부딪히기 시작했고, 듣기에 거북한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뭐, 뭐야?!" "파이어 아머!" "에어실드!" 해골인형의 모습에 당황한 루얀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방어마법을 사용하였고, 에어실드를 이용하여 해골을 떨어뜨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마법은 해골과 닿는 동시에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고, 해골의 입가가 미소 짓는 것처럼 보여졌다. -천벌. 쿠르르르르릉! 해골의 시동어와 함께, 콜로세움의 하늘 위에 엄청난 양의 먹구름이 생겨났고, 한줄기의 벼락이 샨의 마법을 뚫고, 경기장으로 내려쳤다. 번쩍! 거대한 크기의 벼락은 약간의 꺾임도 없이 정확히 수직으로 내려와 모든 것을 녹여버렸다. 경기장 위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구멍이 생겨났고, 그 구멍은 현민이 있는 곳에서 정확히 1cm 벗어난 곳까지 나 있었다. 털썩! "뭐, 그, 그 따위....." 어마어마한 공격으로 인해 죽는 것이 당연했다 생각했던 루얀이 현민의 옆으로 떨어져 내렸고, 현민은 거대한 낫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그가 쓰러져서인지 현민을 억압하고 있던 마법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웅성웅성.... "하아...." 움직이지 못하는 루얀을 보며 심판을 부르려던 현민은 하늘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한숨부터 내뱉었다. "미친..." 딸랑딸랑. 현민이 바라보는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중의 하나는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룬!" "최악이네." 멀리서 바라보던 샨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현민의 옆으로 이동해 왔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운석의 크기를 보자니 수도로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제국 전부가 날아가버릴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장로님들과 내가 한다면 가능..." "샨." 샨의 어깨를 잡은 현민은 무언가 말하려 하는 샨의 말을 끊어버렸다. "응?" "방송 좀 해줘. 내가 말할 때까지 절대로 눈을 뜨면 안 된다고 말야. 안 그러면 죽을 수도 있다고.... 알았지?" "으응." 현민의 부탁을 받은 샨의 신형이 경기장 위에서 사라져 버렸고, 현민은 바닥에 누워있는 루얀을 바라보았다. "그 따위 NPC 전부 죽으면 어때서?" "당신은 닥치세요. 그리고 두 눈 부릅뜨고 있으시기를...." 쩡! 자세를 바로한 현민은 거대한 자루의 끝부분을 바닥에 세운체 거대한 날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정말 하기 싫었는데..." 스악! 오른손에 상처를 낸 현민은 피가 흐르는 손으로 낫의 한쪽면을 쓸어주었다. 그의 피가 낫의 날을 따라 곡선을 이루며 묻어났고, 날에 묻은 피가 천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어둠속에 잠자고 있는 자여, 눈을 봉인당한자여. 그대의 주인이자, 아버지인 나의 피를 받아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봐라. 너의 시선에 맞추어 세상을 판단하고, 너의 의지에 맞추어 모든 것을 부수어라." 현민의 피가 낫으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낫 전체에서 감쳐져 있던 마법진이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잉...... 쇠가 갈리는 듯 한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채, 두 눈과 귀를 가리고 몸을 움추렸다. 그리고 현민이 들고 있는 마녀의 빗자루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쩍! 쩌저저적! "일어나라! 깊은 잠에서 깨어나 세상을 바라봐라!!" 번쩍! 마녀의 빗자루에 생겨났던 금이 위아래로 갈라지면서 눈이 떠졌고, 마녀의 빗자루는 수백 개의 눈이 달린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캬하하하하!!! 일어났다! 깨어났다!! 이번에는 어떤 능력이냐?! 돌이냐? 불이냐? 물이냐? 또르르르르.... 현민이 피를 묻혔던 날의 옆면에서 거대한 선이 생겨났고, 그것이 천천히 갈라지며 거대한 눈동자가 모습을 들어냈다. -불나와라! 불이다! 불타는 존재들이 내뱉은 황홀한 노랫소리가 듣고 싶다!! 돌이 되는 것도 재미없고, 얼어붙는 것도 재미없다! 타오르고 타올라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거대한 눈에 세 개의 동공이 차례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 속도가 점점 떨어졌다. 또르륵!번쩍! 거대한 눈의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선택되었고, 그 눈동자에 맞추어 마녀의 빗자루 전체에 있는 눈동자들도 전부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마녀의 빗자루(S급) 설명 : 마녀 루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빗자루, 너무나 특별한 나머지 이름만 빗자루일 뿐 빗이 달려있지는 않다. 드워프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져 특히 강한 공격력과 내구력을 가지고 있다.(측정불가) 마녀 루나의 무식한 방식이 추가되어 있어 싸이코적인 성향을 가진 에고무기. 속성 : 석화 공격력 : ??? 내구력 : ??? 조건 : 마녀 루나만 사용 가능. 거래 불가. -크아아악!! 돌이냐?! 나는 태우고 싶단 말이다! 활활 타오르는 존재들을 보며 기쁨의 함성을.... 퍽! -까울! "시끄럽다, 닥쳐."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파장을 흘려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마녀의 빗자루가 말하는 것은 조금만 듣고 있어도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파장도 약한 것이 아니라서 반경 100Km 안에 있다면 누구나 들을 정도였다. -으흐흐흑, 주인님은 나만 미워해. 캬캬캬캬!! "하아..." 구구구구........ 현민과 마녀의 빗자루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엄청난 크기의 운석이 콜로세움 위의 하늘을 가려버렸다. "적이다, 죽여." -으하하하하하!!! 모두 눈을 떠라! 아니 감아! 절대로 뜨지마!! 크캬캬캬!!! 현민의 손을 벗어난 마녀의 빗자루가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고, 그 작디작은 크기로 운석을 향해 돌진했다. "크아아...." "꺄아아..." 호기심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현민과 샨의 말을 무시한 채, 마녀의 빗자루를 바라보았고, 완전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겁에 질린 표정 그대로, 돌이 되어 버렸다. 콜로세움 곳곳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더욱더 귀를 막고 눈을 감으며 몸을 안보이도록 했다. -어째서 이따위 돌이란 말이냐!! 피! 피! 피! 피! 피를 흘려라!! 내가 먹을 피를 흘려 나를 기쁘게 해라!! 으헤헤헤헤헤!!! 불평불만 내뱉던 마녀의 빗자루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고, 하늘을 가리던 거대한 운석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사라지는 과정이 보인 것도 아니었고, 마녀의 빗자루가 모습을 감추자 운석도 같이 모습을 감추어 버린 것이었다. -꺼어어어억! 맛없다! 맛없어! 내게 피를! 피를 줘!!!! 현민의 앞에 모습을 들어내어 기다란 트림을 한 마녀의 빗자루는 현민을 베어버릴 듯 위협하며 이리저리 소리질렀다. "거짓된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거짓된 판단을 내렸으니, 그대의 존재를 의심하여, 나 이 자리에서 그대의 의지를 거두어 간다. 편안한 어둠속에서 안식을 얻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어, 다시한번 바라볼 세상을 위해 떠진 눈을 감아라!" -아악!! 싫어! 잠자기 싫단 말이다!! 크캬캬캬캬!!!촤르륵!! 현민이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며 주문을 외우자, 당황한 마녀의 빗자루가 현민을 피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하지만 현민의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쇠사슬이 더욱 빠른속도로 날아가 마녀의 빗자루를 묶어버렸고, 그것과 함께 마법진으로 들어가버렸다. 탱! 마법진을 통과한 마녀의 빗자루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땅바닥에 떨어졌고, 이것으로 현민의 화려한 경기는 끝이 났다. -------------------------------------------------------------------------------- 털썩!빗자루가 정상으로 돌아와 바닥에 떨어지자, 현민의 몸을 지탱하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려버렸고, 그는 자리에 쓰러졌다. "으으.... 기분나빠."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민은 억지로 몸을 움직여 손을 옷에 문질렀다. 마녀의 빗자루 전체에 눈이 생기다보니 빗자루를 잡고 있던 부분에도 몇 개의 눈이 생겨났었고, 현민은 그 눈알들의 윗부분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는 낫을 항상 봉인시켜두는 이유 중의 하나도 눈알을 잡는 느낌 때문이었다. 달그락달그락 "응?" 쓰러져 있는 현민의 귓가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현민은 그 방향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마녀의 빗자루를 해제한 패널티 때문에 그의 시야에는 어둠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살아있니? 지금은 내가 눈이 보이지 않아서 모르겠구나." 달그락... 현민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가까이 다가온 뼈다귀가 그의 몸을 흔들었다. "쿡쿡." 흠칫! 조용한 경기장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누워있던 현민은 옆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루얀을 떠올렸다. "아직도 안 죽었나요?" "다행히도 말이지." "흐응~. 보기보다 겁이 많으신가 봐요? 두 눈을 꼭 감고 있으셨다니." "이익!!" 움직이지 못하는 현민을 보며 기쁨의 미소를 흘리던 루얀은, 이어지는 현민의 말에 신음성만 내뱉었다. 단단히 당부하는 현민의 말에 루얀 역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고, 이어지는 엄청난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나의 승리다! 네가 뭐라고 하던지 내가 이겼으니 끝난거야!" 메테오를 사용한 루얀은 현재 단 하나의 마법도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간신히 움직일 정도의 정신력만 남아있었기에, 1서클의 마법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기절상태로 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한 현민에 비해 나은 상태였기에 승리를 자신할 수는 있었다. "정말.... 그럴까요?" 딸랑~. 흠칫! 현민의 말이 그의 귓가를 스쳐지나갔고, 이어지는 방울소리에 그의 몸이 움찔했다. 달그락 그의 앞으로 작은 해골인형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다다다다다닥 이빨을 부딪치고 있는 해골인형은 분명히 웃고 있는 상태였고, 그런 해골인형을 바라보는 루얀의 등에서는 식은땀만 흘렀다. "꿀꺽!" 타타타탁! 사방을 둘러보며 침을 삼킨 루얀은 인형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냅다 뛰어갔다. 현민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고 자신은 움직임이 가능했으니, 심판이 판정을 내린다면 자신의 승리였기 때문이었다. 씨익... 하지만 그를 바라보고 있는 해골인형은 그의 웃긴 모습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짙은 미소(?)를 흘렸다. -절대방어. "윽!" 묵직한 절대방어가 열심히 도망가고 있는 루얀의 몸을 감싸버렸고, 루얀은 식은땀을 흘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현민의 해골인형을 바라보았다. 그의 인생에 있어, 인형이 이렇게까지 무서웠던 적은 처키의 인형 이후로 처음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뚝. 루얀을 향해 걸어가던 해골인형이 5m정도의 거리를 남겨둔 채 움직임을 멈췄고, 그 둘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인탱글... 해골인형의 손에 쏙 들어올 만한 작은 나무뿌리가 땅에서 솟아났고, 해골인형은 아더왕이라도 되는 듯이 멋들어진 자세로 나무뿌리를 땅에서 뽑아올렸다. -스트랭스,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아, 안돼..." 해골인형의 손에 있던 나무뿌리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그의 몇 십 배는 될만한 크기로 성장했다. 쿵!따다다다닥! "안돼~~!!" 해골인형이 광소했고, 루얀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루얀의 비명을 무시한 해골인형이 거대한 나무방망이를 든 채 힘차게 달려 나갔고, 루얀이 있는 절대방어를 강하게 때려버렸다. 달그락달그락! 깡~~!! 추억의 만화에서나 나올 듯한 장면이 연출되며, 루얀을 감싼 절대방어는 저 하늘의 별이 되어 버렸다. 따다다다다닥! 루얀을 날려버린 해골인형은 현민이에게 자랑이라도 하는 듯 손가락으로 V를 만들며 웃음을 흘렸다. "샨을 불러줄래?" 끄덕. -플라이. 해골의 웃음에, 같이 웃어준 현민은 해골인형을 향해 부탁을 했고, 현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해골인형은 마지막 마나를 긁어모아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샨의 품에 안겨 그녀와 함께 현민의 곁으로 돌아왔다. "룬! 괜찮은거야?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거야, 응?!" 현민의 말에 따라 눈을 감고 있었던 샨은 머릿속을 울리는 미친x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곳곳에서 울리는 사람들의 비명에 마음을 다스릴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이 지난 후, 콜로세움의 내부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지고 나서야, 자신의 곁으로 하나의 인형이 다가왔고, 그 인형을 따라 현민의 곁으로 이동해 온 것이었다. "미, 미안... 나, 처음으로 죽을 것 같아." "흑, 흑흑흑... 눈 떠봐, 룬. 제발 나를 버리고 떠나지 마..." 현민의 곁으로 다가간 샨이 그의 머리를 품에 안으며 눈물을 흘렸고,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던 콜로세움에 샨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룬! 룬! 제발 죽지마!!" "미, 미안... 난 이미 틀렸어." 콜로세움에 울려퍼지는 샨의 목소리를 듣고 상황판단을 끝마친 관중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경기장의 중앙에 있는 그들을 보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공주의 키스만이 나를 살릴 수..." "황녀도 되나요?" "응?" "엥?" 샨과 호흡을 맞추며 사람들을 속이고 있던 현민은 옆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에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들이 연극에 빠져 있는 사이, 그들의 곁으로 황녀가 다가온 것이었다.스윽... "아, 저, 저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샨의 품에 안겨있는 현민을 빼앗은 황녀는 그의 가면을 들춘 후, 자신의 입술을 그에게 가져갔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샨은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후우... 후우... 황녀의 숨결이 현민의 입가를 간지럽혔고, 당황한 현민은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품을 벗어났다. "무, 무슨!!! 컥!" [급격한 움직임으로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사망하셨습니다. 현실시간으로 24시간이 지난 후, 접속하시기 바랍니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현민의 죽음은, 드래곤과 싸우다 죽는 것도 아니었고, 최강의 유저와 승부를 겨루기 위해 싸우다 죽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황녀의 키스를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다 상처가 터지면서였다. 너무나 황당한 사망으로 인해서인지 현민을 품에 안고 있던 황녀도,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샨도, 그리고 조용히 구경하고 있던 해골인형도 두 눈을 뜬 채 현민의 시체만 바라볼 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 "하아..." 어이없이 죽음을 맞이한 현민도 나오는 것은 한숨밖에 없었다. 평소(?)와 같이 움직였을 뿐이었는데 상처가 터지며 사망하다니... 참으로 불운할 뿐이었다. 달칵. "형, 싸울아비 재미있어?" 현민이 거실로 나오자마자 쇼파에 앉아있던 현웅이 싸울아비에 대해 물어보았다. 평범한 현민과 다르게 현웅의 생활은 아주 모범적이었고, 노는 것보다는 공부와 가깝게 지내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싸울아비를 하지 않는 희귀종(?)에 속해있었다. "왜?" "벌써 1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싸울아비 얘기만 나오길래." 싸울아비가 나온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그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어떠한 나라나 기업도 비슷한 것조차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본 싸울아비는 아름다웠어." "풋, 어울리지 않아, 형." "그러냐? 하지만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밤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니 아름답다는 말은 사실이야." "나도 해볼까?" 현민의 말에 호기심이 생긴것인지, 현웅도 싸울아비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너까지 하면 집안 분위기가 안 좋을 걸?" "하아... 그러네." 현웅은 현민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현민의 방안에서 전화기가 진동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그들의 대화는 멈추어 버렸다. "여보세요?" -아, 저기... 지혜라고 아시나요?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는 분명 처음 듣는 것이었지만 그녀가 말하는 사람은 현민이 알고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아, 네." -여기 XX클럽인데, 지혜 좀 데려가 주시겠어요? "네?" -지혜가 저희들과 술을 마셨는데, 너무 많이 마셨는지 정신을 못 차려서요. "아, 예." 어쩌다 자신에게까지 연락이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을 들어보니, 지혜로 인해 주변의 인물들이 힘들어하는 것만 같았다. "현민아~~." "현민이세요?" 현민이 XX클럽 앞에 도착하자, 술에 취한 지혜가 비틀거리며 현민에게 안겨들었고, 주변의 친구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지혜 좀 부탁드릴게요. 상태가 저러다보니 집에는 연락도 못하겠고, 최근에 통화한 것을 보니 현민이라는 이름만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지혜가 술 깰때까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그녀들과 현민사이에 잠깐 동안의 대화가 오고갔고, 현민의 모습에 안심을 한 그녀들은 지혜를 그에게 맡긴 채 몸을 돌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여학생인 이상 밤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웅...." 번잡한 거리에서 지혜와 단둘이 남은 현민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업어야만 했다. 그나마 차리고 있던 정신도 현민을 만나며 무너져 버렸고, 지금은 곤히 잠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디로 가지?" 막상 지혜를 들쳐 업기는 했으나 술에 취한 그녀를 데리고 현민이 향할 만한 장소는 많지가 않았다. "하아...." 이래저래 한숨만 나오는 하루였다.... 흰색의 천들과 아름다운 장식품이 전시되어 있는 황녀의 방은 그녀의 이미지와 맞게 차분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유모." "네." 창가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차를 즐기고 있던 황녀가 톤이 없는 특유의 목소리로 유모를 불렀고, 언제나 대기중이던 유모는 조용히 대답했다. "....황녀와 공주는 다른가요?" "네?" 갑작스런 황녀의 질문에 유모는 머리를 갸웃했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깨닫고는 황녀가 물어본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황녀와 공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답니다. 황녀는 황제폐하의 여자제분을 말하는 것이고, 공주는 왕들의 여자제들을 말하는 것이죠." "그래요?" 유모로서는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주었지만 공주의 얼굴에는 아직도 의아함이 담겨져 있었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 "그러니깐..." 황녀는 그날 겪은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유모의 얼굴에는 짙은 미소가 생겨났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있어 황녀는 정말로 귀여운 소녀였기 때문이었다. "쿡쿡, 황녀님께서 실수 하셨네요. 거기서의 공주님은 '연인'이라는 의미랍니다." "그런가요?" "그럼요. 그보다, 샨님께 연인이 있으셨는지 몰랐는데요? 그동안 청혼을 거절한 것도 이유가 있었군요." "스승이자 제자이며, 연인이자 친구라고 하더군요... 아닌가? 제자이며 스승이고, 친구이자 연인이라고 했나?...." 황녀는 샨이 했던 말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지 한참동안이나 고민했고, 유모는 그런 황녀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평소와 같은 햇살이었지만 오늘의 햇살은 정말로 부드럽게 느껴졌다. "유모를 불러와라." "네." 일상의 업무로 돌아와 있는 황제는, 잠시간의 시간을 내어 황녀의 유모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자신이 내렸던 명령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대가 지켜본 황녀는 어떻던가?" 황제의 집무실로 황녀의 유모가 들어왔고, 황제는 주위의 사람을 물린 후, 서둘러 물어보았다. 황제이기 이전에 한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무표정한 얼굴의 딸을 너무나 걱정하고 있었다. 어디가 모자른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사고가 있었던 적도 없는데, 황녀의 표정이 항상 무표정했기 때문이었다. "황녀께서는 9가지의 감정을 표현하셨습니다." "하하하, 그 아이가 그렇게 다양한 표정을 지었단 말인가? 그런 시합을 보여준 18명의 사람들에게 감사를 해야겠군." 황녀가 표정을 지었다는 말에, 황제는 방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아닙니다, 폐하." "응?" "황녀께서 표정을 보이신 시합은 전부 어릿광대의 시합뿐이니, 그에게만 상을 내리시는 것이 옳게 생각되옵니다." "어릿광대? 마지막 시합의 승자말인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대결이었고, 그 과정에서 제국을 구한 영웅도 되었으니, 황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의 첫 번째 시합에서는 그의 마법사용을 보시며 작은 미소를 지으셨고, 그의 두 번째 시합에서는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또한 네 번째의 시합에서는 어릿광대를 향해 경악어린 표정과 황홀한 표정, 그리고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을 하셨습니다." "허?! 사랑?" 감정만 나타내도 성공했다 여겼건만 의외로 대박을 건져낸 황제였다. 물론, 그것이 당첨될지 꽝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첫사랑인듯 싶습니다." "하하하하! 그 사람은 반드시 잡아야겠군. 황녀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니! 그대는 믿어지는가?" "아직도 황녀의 모습이 선명하답니다." 유모의 말을 들은 황제는 한참동안이나 웃음을 지속했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그녀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정말 기뻤기 때문이었다. "다섯번째 시합에서는 어릿광대를 향해 걱정 어린 표정을 하였고, 마지막 시합에서는 어릿광대를 안고 있던 샨님에게 질투어린 시선을, 자신을 피하는 어릿광대를 보며 황당한 시선을,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표정을 지었답니다." "허, 허허..." 유모의 말을 전부 들은 황제는 복잡한 얼굴을 했다. 유모의 말을 들어보고 정리해 보니, 자신의 딸이 삼각관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왠만하면 자신의 딸과 어릿광대를 이어주겠지만 또 다른 축을 구상하는 존재가 예비대마법사이다보니 그것또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어릿광대가 이계인이라고 했으니, 생각은 더더욱 복잡해져 갔다. -------------------------------------------------------------------------------- "하아..." 지혜의 친구들에게 지혜를 건내 받은 현민은 그녀를 업은 채, 자신이 갈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띵동~. 띵동~. -누구세요? "나 현민이." 아파트의 현관문에 도착한 현민은 초인종을 눌렀고, 안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형!" "응?" 자신의 귀가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히 형 앞에 무언가를 말했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빈의 태도 때문에 자신의 귀에 의심만 들었다. "들어오... 누구?" 환한 얼굴로 현민을 맞이하던 수빈은 현민이 업고 있는 지혜를 보는 순간, 인상이 일그러지면서 현민을 향해 의아한 눈을 보냈다. "미안, 내 친구인데 상태가 이러다보니 갈 때가 여기밖에 없네..." "일단 들어오세요." 자신의 누나들과 현민을 연결해 주려는 수빈의 입장에서는 술에 취한 지혜가 참으로 못마땅했지만 현민이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문 밖에 세워둘 수가 없었다. "하아... 누나들은 뭐해?" "게임하는 중이에요, 잠시만요." 수빈이 수진과 현진의 방으로 들어갔고, 예진이 음료수를 가지고 현민에게 다가왔다. "오빠, 이거." "고마워." 쇼파에 지혜를 눕혀준 현민은 예진의 행동에 미소지으며, 예진이 건내주는 음료수를 받았다. "한밤중에 왠일이야?" "갑자기 왜 왔어?" "안녕~." 수진과 현진이 잠옷차림으로 나왔지만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속옷도 아니고 입을 것은 입었기 때문이었다. "응? 여자친구?" "never~."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인 것 알지?" "물론." 현민과 마주한 수진과 현진은 장난끼어린 미소를 지으며 현민을 올려댔고, 현민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의 장난을 피해갔다. 그녀들과 함께 있는 현민의 모습은 평소의 차가운 모습이 아닌 장난기 많고, 능글맞은 모습이었다. "게임은 어때? 재미있어?" "응!" "최고야!" 그들은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의 대화를 듣다 지친 수빈과 예진은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으윽! 머, 머리가..." 잠에서 일어난 지혜는 숙취라는 이름의 엄청난 고통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끈거리는 머리와 울렁거리는 속은, 그녀에게 있어 어젯밤의 일을 기억나도록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현민이였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분명히 현민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자신의 행동이 기억나자 지혜의 얼굴을 빨갛게 익어버렸고, 자신의 처지에 한숨을 내뱉었다. 필름이 끊겨서 아무것도 모른다면 좋겠지만 천재적인 그의 두뇌는 필름을 끊어버리는 것조차 용서하지 않고 있었다. "응? 일어났네?" "에?"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고개를 든 지혜는, 방금 샤워를 마친 듯이 온몸에 물기가 촉촉한 현진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안녕?" "아, 응. 안녕." 지혜의 머리는 숙취로 인해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라,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처음본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사람을 보며 뭐라 할 수는 없었기에 같이 인사를 해주었다. "뭐해?" "수진아, 현민이 친구 일어났어." 현진과 지혜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인사를 하고 있을 때, 현진과 비슷한 목소리가 그녀들의 뒤에서 들려왔고, 둘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해졌다. "그래? 꿀물은 줬어?" "아직." "쌍둥이?" 뒤에서 등장하는 수진도 이제야 샤워를 끝마쳤는지 온몸에 물기가 촉촉했다. "응. 내가 현진이고, 저쪽이 수진이야. 나이는 너랑 동갑." "아, 응." 현진이 자신들의 소개를 하고 있는 사이. 주방으로 들어간 수진이 순식간에 꿀물을 만들어 가지고 나왔다. "고마워." 수진을 향해 손을 뻗은 지혜가 꿀물을 받으려는 순간, 수진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보다, 너 현민이 여친이야?" 질문을 하고 있는 수진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쌍둥이인 현진의 눈도 그녀와 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 "호오~?" "좋아하는 거야?" "응." '아직'이라는 지혜의 말에 쌍둥이들의 눈이 더욱 반짝였고, 그들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와! 현민을 좋아한데!" "그러게." 두 사람은, 지혜의 얼굴을 쥬라기 공원의 공룡을 구경하듯이 신기하단 눈으로 바라보았다. "으음... 하지만 우리도 '좋아'하기는 하지." "으음... 그러네." 움찔! 수진이 지혜를 신기하단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이, 현진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고백했고, 그녀의 옆에 있던 수진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들의 현민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순간 지혜의 창백한 얼굴이 더욱더 창백하게 변해갔고, 얼굴도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근데, 너는 '좋아'하는거야? '사랑'하는거야?" "현민의 방식으로 생각하자면 우리는 순전히 '좋아'하는 것뿐이라." "응?" 숙취로 인해 로딩이 길어진 지혜의 머리였지만 현민과 관계된 일이기 때문인지 그녀의 머리는 과부하를 일으키며 뺑뺑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들이 기대하던 대답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사랑'해." "호오~." "강한데!" 지혜의 당당한 고백이 예상 밖이었던지, 그녀의 고백을 들은 수진과 현진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자, 속 좀 정리하고 여자들끼리 심도 있는 대화를 해볼까?" "고, 고마워..." 수진이 건내주는 꿀물을 받아든 지혜는 점점 심해지는 속을 달래주기 위해 꿀물을 들이켰다. 하.지.만.... "우욱!!" "꺄악!" "화장실! 화장실!" 꿀물이 들어감으로 인해 그녀의 속은 발짝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그녀의 속에 담겨있던 음식물들이 거슬러 올라오려하는 조짐을 보였다. 지혜의 곁에 있던 수진과 현진은 지혜의 신형을 잡아끌며 화장실로 보내버렸고, 무엇인가가 생각난 듯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현민이 어딨지?" "화장실...." -------------------------------------------------------------------------------- "....현민이 어딨지?" "화장실...." 두 사람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서로를 마주 본 현진과 수진은 서둘러 지혜를 붙잡았다. "반대쪽이야!" "어, 어서!" "우...." 다급한 그녀들이 지혜를 반대쪽의 화장실로 데려가려 했으나, 지혜는 이미 한계치에 도달해 있는 상태였다. 쿵쿵!! 다급한 지혜가 두 사람을 뿌리치며 화장실의 문을 두드렸고,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던 현민은 때마침 들려오는 노크(?) 소리를 현진이 두드리는 것으로 착각했다. "현진아, 린스 어딨...." 머리를 감는 도중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현민의 허리는 90도로 숙여져 있었고, 화장실의 문안으로 다급히 머리를 집어넣은 지혜의 위치는 현민보다 높았다. 그리고... "우욱!" 촤아아악! 정해졌던 목표(?)에 도착을 하는 순간 한계치를 넘어버린 지혜가 주변을 살피지도 않은 채, 참고 있던 것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으읍!!" "우욱! 우우우욱!!" 촤악! 촤르르륵! 자신의 머리위로 따뜻한 무언가가 쏟아지자, 깜짝 놀란 현민이 다급히 뒤로 물러났고, 이어지는 지혜의 분출(?)에 자신의 얼굴을 타고 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지혜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난 몰라...." "으윽..." "우웩!" 현진과 수진은 머리에 토사물(...)을 덮은 채 굳어있는 현민과, 정신없이 토하고 있는 지혜를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었다. 모두가 말이 없는 가운데 들리는 것이라고는 지혜의 토하는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특유의 시큼한 냄새도.... "미안해..." 박박박 화장실의 문앞에 서있던 지혜는 현민을 향해 끊임없이 사과했다. 하지만 현민은 지혜의 말도 무시한 채 머리를 문지르기 바빴다. 지혜의 위액이 얼마나 강했던 것인지 그의 머리에서는 아직도 시큼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고, 현민은 냄새만이라도 감추기 위해 샴푸로 떡칠을 하고 있었지만 냄새는 쉽사리 사라지려 하지 않았다. "괜찮아, 현민이는 좋아하는 여자한테는 화내지 않거든." "응, 소심해서 삐지기는 잘하는데, 화는 안내." 지혜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해가자 그녀의 뒤에 나타난 현진과 수진이 그녀를 달래주었다. "자. 그보다 우리는 심도있는 대화를 나눠야지?" "현민이 너는 방에 들어오지 마." 박박박! 수진과 현진은 지혜를 끌고 안으로 사라졌고, 남아있는 현민은 빨래라도 하듯이 머리를 박박 비벼댔다. "지혜라고 했지?" "응." 지혜를 이끌고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온 수진과 현진은 침대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음... 일단 우리가 알고 있는 현민에 대해서 말해줄까?" "그래야 대화가 되겠지." "언니~." "누나, 나도." 그녀들이 대화를 시작하려는 순간 수빈과 예진이 방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왔고, 수진과 현진의 곁으로 달라붙었다. "문은 잠궜지?" "응!" 예진이 다시한번 방문을 확인하였고, 그녀들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 현민이 '좋아한다'에 대해서 말해준 적 있어?" "아니." "그래?" 처음부터 반응이 좋은 지혜를 보며, 수진과 현진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예진이랑 수빈이는 '좋아하다'의 반대말이 뭔지 알아?" "응, 싫어한다." "싫어한다." 현진은 예진과 수빈이에게 질문을 하며 대화를 이끌었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싫어하다'의 반대말이 '좋아하다'인데, 사람들은 좋아한다는 말을 이성에게 사용하는 말로 알고 있어." "에?" 아직 어린 수빈과 예진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고,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 지혜는 그녀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눈치챘다. "현민은 자신의 친구 모두를 '좋아해'" "현민에게 있어서 '좋아하다'의 의미는 단지 '싫어하다'의 반대말일 뿐이거든." "이해 안돼. '좋아하다'는 말은 말 그대로 좋아한다는 거 아냐?" 수진과 현진의 설명을 들은 예진은 이해가 안된다는 얼굴을 하였다. "'좋아하다'와 '싫어하다'의 중간도 있지 않아? 현민이 형의 생각은 흑백논리잖아." "오오~, 똑똑한데?" 수빈의 대답에 놀란 표정을 지은 수진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좋아하다'와 '싫어하다'의 중간이 있을 것 같아?" "응." "응." 수진과 현진은 수빈과 예진의 대답에 미소지었다. 과거에 현민과의 대화에서 자신들이 이런 대답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사귀는데 있어서 '좋아하다'와 '싫어하다'의 중간은 없어. 단지." "'좋아하다'와 '싫어하다'를 반복할 뿐이지." "우우, 모르겠어." "복잡해." 수진과 현진의 설명에, 예진은 인상을 썼고, 수빈은 이해가 될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지혜는 웃음을 흘렸다. 수진과 현진이 하는 말은 어린애들에게 아직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한거야, 우리는 현민을 '좋아한다'라고..." "물론, 현민도 우리를 좋아하고 있지." "우리는 좋아하지 않아?" "쿡쿡." "쿡." 현민을 좋아한다는 말에 질투를 느낀 것인지, 현진의 품에 안겨있던 예진이 고개를 들며 물어보았고, 현진과 수진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너희들을 좋아하는게 아냐." "히잉..." "가족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거야." 현진의 말에 울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예진은 옆에서 들려오는 수진의 대답에 만족스런 얼굴을 하며 현진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사랑하다'의 반대말은 '무관심하다'란 거 알아?" "응." 이번에는 아이들이 아닌 지혜를 향해서 물어보았다. "'사랑하다'와 '무관심하다'라는 것은 '좋아하다'와 '싫어하다'처럼 딱 나누어지는 게 아니야." "삼단논법으로 보자면 ''무관심하다'의 반대말이 '사랑하다'이니, '사랑하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다'와 '싫어하다'는 것도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가 는 것이지...." "이상해..." "이상해..." 왠지 이상한 현진의 말에 두 아이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상하지? 만약 '사랑하다'와 '무관심하다'가 흑백처럼 나누어지는 거라면 이상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두 개의 단어 사이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우웅...." "'사랑하다'와 '무관심하다'의 사이에 존재하는 게 '좋아하다'와 '싫어하다'라는 거야." 그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수진과 현진의 말을 듣고 있던 지혜는 단 하나의 의심도 생겨나지 않았다. 그녀들의 설명이 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현민은 '사랑한다'라는 것이 '좋아하다'와 '싫어하다'는 것처럼 딱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고 했어." "지금 했던 게 설마?" "응, 현민이 중학교 때 말해준거야." 지혜는 놀란 얼굴을 하였고, 수진과 현진은 무엇 때문인지 의미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왜 이런 말을 우리에게 했는지 알아?" "응?" 수진의 물음을 듣고서야, 지혜의 머리에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말에 집중하다보니 그녀들이 왜 그런 말을 들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정도 수준의 이야기를 중학교 때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현민의 짝꿍이 약간 덤벙대는 애였거든?" "그래서인지 짝꿍인 현민이 엄청 챙겨주어서, 우리반 여자애들이 물어본 적이 있었어." "너 짝꿍 좋아하는 거냐구." "대답한거야?" "풋." "큭큭큭." 지혜의 얼굴이 설마하는 표정으로 바뀌었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수진과 현진은 예전의 일이 기억나는 듯이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얼굴이 빨갛게 변해서 변명하는 게 귀여웠었는데." "지금은 날씬하지만 그때는 동글동글한 게 귀여웠었거든." 굴러다니는 것을 멈추고 자리에 앉은 수진과 현진은 예전의 현민을 생각했다. "그 때는 웃으며 넘겼는데, 너무 인상 깊어서인지 그때 현민이 했던 말이 지워지지 않더라구." "'내가 말하는 '좋아한다'는 것은 단지, '싫어한다'의 반대말일 뿐이야.'라고." 두 사람의 표정이 비슷하게 변했고, 그녀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지혜는 그녀들을 향해서 질투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모르는 현민을 알고 있다는 것이 뭔지 모를 감정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그 덕에 우리도 연애한번 할 수 없었지." "에엑?" 그녀들의 말에 지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수진과 현진이 예뻐보였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남학생들이 고백을 하는데, 그때마다 현민의 얼굴과 그 말이 떠오르더라고..." "현진이뿐만 아니라 나도 현민의 그 말이 생각나서, 고백을 받을 수가 없었어. 이 남자애는 단지 나를 싫어하지 않을 뿐 정말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멋지다...." "언니들 멋져..." 그녀들의 말에 지혜와 예진은 감탄한 듯한 얼굴을 했다. 그녀들이 보기에 수진과 현진은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한번 물어볼게." "정말, 현민을 좋아해?" "정말로 현민을 좋아하는 거야?" 두 사람이 지혜를 향해 동시에 물어보았고, 그녀들의 물음을 들은 지혜는 생각에 빠졌다. 그녀들의 말을 듣고 의미를 깨달은 지금에 와서는 자신이 알고 있던 말이 약간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모르겠어." "이런." "하아..." 지혜의 대답을 들은 두 여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현민이 마지막에 해준 말을 해줄까?" 현진이 먼저 입을 열었고, 이내 그녀들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이 뭔지 모르지만 '사랑한다'면 주저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사랑이라는 것이 뭔지 모르지만 '사랑한다'면 주저하지 않을 것 같아." 그녀들의 대답을 들은 지혜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게 중학교 때의 현민이 한 말이야." "아쉽지만.... 너는 아직 아닌 것 같아." 지혜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 똑똑. "뭐해? 잠깐 나와 봐." 잠겨있는 방문을 확인한 현민이 노크를 했고, 그녀들을 불렀다. 현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혜의 머리가 자동으로 돌아갔고, 시선을 문 쪽으로 향했다. "내가 갈게." 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아직도 냄새나?" "음..." 현민이 현진을 향해 머리를 내밀었고, 그의 머리를 붙잡은 현진은 숨을 들이쉬며 냄새를 맡았다. "글세... 수진아, 와서 냄새 좀 맡아봐." "응." 현진에 이어서 수진까지 현민의 머리를 붙잡은 채 냄새를 맡았다. "음... 한번만 더 감으면 될 것 같은데?" "그래?" "빨리 감고 와. 샴푸 많이 써도 상관없으니깐 듬뿍 사용해, 알았지?" "응." 지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현민과 수진, 현진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현민의 모습은 평소의 쌀쌀맞은 모습이 아니라 정겹고 다정한 모습뿐이었다. "현민아" "응?" 현민이 젖어있는 머리를 만지며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수진이가 현민을 불러 세웠다. "현민아. 우리들 좋아해?" "응. 언제나..." 정겨운 미소를 보여주며 대답한 현민은, 멈췄던 발걸음을 옮기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네가 정말 좋아, 친구라서 다행인 것 같아." "어때?" 현진이 지혜를 바라보았고, 수진도 지혜를 바라보았다. "너희들.... 현민을 사랑해?" "아니." "아니." 망설이듯 나오는 지혜의 물음이었지만 그녀들의 대답은 단호했다. "말했잖아? 우리들은 현민의 그 말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에 의심이 생겼다고..." "아무리 현민이 그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현민 그 자체를 사랑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 지혜의 고개는 다시 아래로 숙여졌고, 조용한 분위기에 적응 못한 수빈과 예진은 조용히 자신들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심각히 생각하지마, 우리가 얘기 했던 것은 현민의 생각일 뿐이지, 너 스스로의 생각인 것은 아니니깐." "맞아, 현민이 저 놈이 조금 특이하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니깐, 너는 너 스스로의 생각을 가지고 현민을 대하면 되는거야." 그녀들은 지혜에게 여러 가지의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하는 대부분의 말이 현민을 욕하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지혜에게 힘을 주는 듯한 말이었다. "나 잠깐만." "응." "응." 자리에서 일어난 지혜가 방을 나가버렸고, 수진과 현진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너무 기죽였나?" "그러게..." "하지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니깐." "미안한 말이지만 현민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침대에 누워버린 그녀들은 지혜에 대한 평가를 마쳤다. 지혜에 대한 평가가 나쁘기는 했지만 그녀들은 간절히 생각했다. 그녀와 현민이 이루어지기를.... 쏴아아.... 방을 나선 지혜는 현민이 있는 화장실의 문을 열었다. "응? 누구야?" 거품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는 상황에서 문이 열리는 것을 느낀 현민은 뒤를 향해 물어보았고, 지혜는 그런 현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왁!!" 우당탕! 쏴아.... 머리를 감는 중이기에 상의를 벗고 있던 현민은, 지혜가 자신을 껴안아 버리자 깜짝 놀라며 샤워기를 놓쳐버렸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샤워기는 현민과 지혜의 온몸을 적셨다. "뭐해?! 빨리 풀어!" 당황한 현민은 눈도 뜨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함만 질렀다. 하지만 지혜는 그런 현민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를 않았다. "이렇게 두근거리는데...." "뭐?" "너를 안고 있으면 이렇게 두근거리는데... 언제나 보고 싶은데... 언제나 함께 있고 싶은데..." 그녀가 말을 하는 동안, 현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저번에는 당당히 사랑한다 말했었는데... 흑." "...왜 그래?" 지혜의 갑작스런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현민이 그녀에게 물어보았으나, 지혜는 현민을 안은 채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지혜야." "흑, 흑흑..." "너 몇 살이야?" 현민의 물음에도 지혜는 울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도 18살이고, 나도 18살이야. 너는 18살짜리가 이런 이야기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들의 행동만 본다면 대학생이나 성인으로 생각되었지만 그들의 나이는 분명히 18살이었다. "이런 행동은 10년 뒤에나 생각하자, 응?" 지혜의 손을 잡은 현민이 그녀의 꽉 묶인 손을 풀기 시작했고, 그녀의 몸을 떠밀어 화장실 밖으로 밀어냈다. "괜찮아?" 화장실의 앞에는 현진과 수진이 서 있었고, 그녀들은 축져진 모습으로 나오는 지혜를 걱정했다. "지혜야, 정 안돼면 찍어 눌러(?)! 쟤도 남자인 이상 책임(?)은 질 것 아냐?" "응!" "에?" 현진과 수진은 지혜가 우울해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녀들의 생각과 다르게 지혜의 대답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정 안돼면 찍어 누를게." "에에?" 지혜의 두 눈은 아직도 촉촉이 젖어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오(?) 같은 것이 서려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너무나 다른 지혜의 모습에 두 사람의 얼굴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지혜는 그런 그녀들을 보며 웃기만 할뿐,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현민의 말대로 우리는 아직 어리니깐..... 나중에 눌러(?)버리면 돼.'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는 지혜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에취!" 그녀의 다짐과 함께,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재채기 소리가 그녀들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143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현민이 알아본 싸울아비의 죽음관련 시스템은 기존의 것들과는 생각을 달리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게임이었다면 사망에 제한이 없는 대신에 일정수치의 능력이 깎였을 테지만 싸울아비에서는 사망에 제한을 주는 대신 죽음을 경험할 때마다 레벨을 올려주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자신의 죽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100%란 얘기였다. '이렇게 한 시간을 보내야 하나?' 싸울아비에서는 실제의 죽음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모든 오감을 차단한 채 한 시간을 있어야지만 정상적인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는 그밖에 패널티라 할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옵션, 잔인도 최상.' 싸울아비의 죽음에 대해서 알아보다 발견한 잔인도라는 것은 시체가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을 조정하는 옵션명령어였다. 현민이 검색한 사이트에서는 잔인도를 최상으로 할 경우 최대 일주일까지 시체가 남아있다는 설명이 있었고, 여성들은 기본적인 설정으로 잔인도 최하가 되며, 바로 사라진다고 나와 있었다. '스텟창.' ----------------------- 이름 : 룬. Lv : 143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7) 민첩 : (15) 건강 : (16) 반사신경 : (18) 지능 : 360(19) 정신 : 462(21) 공격력 : 34 -34 마법력 : +758 방어력 : 60 생명력 : 2852 (+2300) 정신력 : 64770 ((+16000)*3) 물 속성 친화력 : 609 불 속성 친화력 : 609 땅 속성 친화력 : 609 바람 속성 친화력 : 609 정령력 : 620 물 Lv 154 바람 Lv 154 불 Lv 154 땅 Lv 154 보너스 스텟 : 0 ----------------------- 죽음으로 인해 레벨이 올라갔지만 정령화의 상태로 변한 대가 때문에, 전체적인 그의 레벨은 9가 떨어져 있었고, 보너스 스텟은 전혀 없었다. 새근새근... '응?'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현민에게 잃어버렸던 오감 중 하나인 청각이 돌아왔고, 그는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샨인가?' 하나의 감각이 돌아오긴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로 돌아온 것은 미각이었지만 현재 움직일 수도, 뭘 먹을 수도 없는 상태이니 현민이 그것을 알 수는 없었다. '누구지?' 세 번째로 후각이 돌아왔고, 현민은 낯선 여인의 냄새(?)를 맡았다. 은은히 풍겨오는 냄새는 절대로 샨의 냄새(?)가 아니었다. 물론, 남자도 개과 동물(늑대...)이기는 하지만 신체적으로는 개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현민과 같이 냄새로 사람을 구분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단지, 그의 유별난 여성기피증이 만들어 낸 초(超)능력이었다. '어디지?' 네 번째로 돌아온 것은 시각이었고, 그의 눈에는 흰색의 높다란 천장과 멋들어진 샹들리에가 보였다. 눈이 보이기 시작한 현민은 최대한 눈알을 굴리며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높다란 천장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에게는 시야의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움찔! 마지막 감각인 촉각이 돌아왔고, 현민의 몸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드득 "으윽..." 실감나는 게임이라서 그런지, 오랜만에 일어나는 현민의 허리는 심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허리의 비명을 무시한 현민은 주위를 먼저 살펴보았고, 자신이 누워있는 위치를 보며 심각한 생각에 빠졌다. '무, 무슨 목적으로 가장자리에 눕힌 거냐....' 성인남자 네 명이 대(大)자로 자도 충분할 만큼의 넓은 침대에서 현민이 누워있는 곳은 가장자리의 끝부분이었다. 단, 하나의 잠버릇도 존재하지 않는 현민은 언제나 잠들었던 자세 그대로 눈을 뜨며 아침을 맞이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현민이 침대의 중앙에서 가장자리까지 굴러왔을 리가 없으니 결론은 타의에 의한 것뿐이었다. 새근... 새근... "에?" 귓가를 간지럽힌 숨소리를 찾아 고개를 돌린 현민은 죽기 직전에 보았던 황녀가 자신의 침대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황녀라는 존재들은 잠자는 것도 교육받는 것인지, 현민의 눈앞에 있는 황녀는 단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잠자고 있었다. 새근... "피곤한건가?" 상체를 일으킨 현민은 가만히 앉아, 잠들어 있는 황녀의 얼굴을 구경했다. 스윽... 현민이 황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엎드려 있던 황녀가 조용히 상체를 일으켰다. "이제야 일어나셨군요." 잠에서 깨어난 황녀는 현민에게 잠자는 것을 들켰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절대로 그런적이 없다는 듯이 현민을 향해 말을 건냈다. 하지만 그녀의 볼에 있는 붉은색의 자국은 그녀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볼이..." "괜찮답니다. 그보다...." 현민이 자신의 볼을 가르키며 알려주었지만, 그런 현민의 호의를 무시한 황녀는 한쪽 볼에 동그란 자국을 들어낸 채 현민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네?" "황녀와 공주는 다른 것이더군요. 저의 아버지께서 왕이셨다면 죽으시는 일이 없었을 텐데 죄송합니다... 유모에게 물어보니 연인이신 샤이나님이 하셨다면 살 수 있으실 것이라 하던데... 괜한 참견으로 죽음까지 경험하게 하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황녀에게 사과를 받고 있는 현민은 정말로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이유는 웃겨서 죽는 것이었지만... 웃음을 참고 있는 현민의 얼굴은, 모든 피가 몰려들었는지 빨간색을 넘어서 검붉은 색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웃음을 참기 위해 꽉 다문 입은 심한 경련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화... 나신건가요?" 현민의 얼굴이 일그러진 이유를 착각한 황녀는,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표정한 얼굴에 미안함 마음을 담고 있는 황녀의 얼굴은, 현민이 바라보기에 너무나 귀여운 모습이었다. "쿡, 크크큭, 푸하하하하하!" "왜... 웃으시죠?" 주변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황녀모독죄라고 하여 참수해 버렸을 테지만, 그럴만한 사람도 없었고, 능력이 있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죄(?)를 지은 황녀가 이상하단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기만 했다. "쿡쿡쿡, 귀여우신 황녀님에게 마녀의 축복이 함께하길..." 쪽! 황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현민은 그녀의 머리를 잡은 후, 이마에 입맞춤을 하였다. 그가 존재하는 세상은 '가상'현실이었고, 그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황녀였지만, 지금의 그에게 있어서 눈앞에 있는 황녀는 그의 여동생과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딱 걸렸어, 룬. 이제부터 나는 바람피는 현장을 목격한 마누라가 되는 거지?" "그러네?" 현민이 황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 있는 사이에 샨이 조용히 문을 열며 방안으로 들어왔고, 현민은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팟! [페드로 드 루시아가 '마녀의 축복'상태로 됩니다.] [마녀의 축복 사용제한이 4회 남았습니다.] "에?" "뭐, 뭐야?"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이 샨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얼굴이 붉어진 황녀의 몸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빛은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멋진 장면을 만들어 냈다. 마녀의 축복 대상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유지시켜준다. 사랑하는 존재와 한날한시에 죽는다. 사용가능횟수 : 4회 너무나 화려한 이펙트에 깜짝 놀란 현민은 다급히 스킬창을 뒤져보았고, 그동안 단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마녀의 축복이 가지는 화려한 이펙트에 비해 그 능력은 하찮아 보였다. 물론, 현민의 생각뿐이었다. 마녀의 축복이 가지는 능력은 남성들을 위한 것이 아닌, 여성들을 위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현민에게는 쓸모가 없을지 몰라도, 여성들은 언제나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기회였다. "바, 방금 뭐죠?"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빛에 스스로 놀란 황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현민을 바라보았고, 반대편에 있던 샨 역시 놀란 얼굴로 현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씨익... 두 사람의 놀란 얼굴을 바라본 현민의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가 걸렸고, 현민을 알고 있는 샨이 다급한 마음으로 마법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현민을 알고 있는 만큼 현민도 그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민의 움직임이 조금더 빨랐다. "홀드, 대지의 족쇄." 도망가려던 샨의 신형이 제자리에 묶여 버렸고, 현민은 그녀를 향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내 사랑~. 왜 도망가려고요?" "뭐, 뭘 하려고?" "실.험." 어느새 현민은 샨의 앞에 도착해 있었고, 그는 손을 내밀어 샨의 얼굴을 감쌌다. "당신에게 마녀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쪽! 처음으로 닿는 현민의 입술 때문에 샨의 얼굴이 평소와는 다르게 붉게 물들었다. 팟! [샤이나가 '마녀의 축복'상태로 됩니다.] [마녀의 축복 사용제한이 3회 남았습니다.] "호오?" 샨의 몸에서도 황녀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오며, 하늘높이 솟아올랐다. 하늘로 솟아오른 빛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하며, 그 사이로 달라진 샨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와아~, 예쁘네." 조금전의 모습에서는 아름다움을 봐야만 했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샨은 스스로가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른 존재는 어떨지 몰라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그녀가 풍기는 기운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무슨일이냐!" 멀리서도 보일정도로 높이 솟아오른 빛으로 인해 다급히 달려온 기사들이 지금에서야 문을 부수고 도착한 것이었다. 다급히 문을 부수며 안으로 들어온 20명의 기사들은 평소보다 더욱 아름다운 황녀와 샨의 모습에 두 눈을 감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가주세요." "나가주세요." "네, 넵!!" 한 명만 말했다면 계속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머뭇거렸을 테지만, 두 명의 아름다운 여자가 동시에 말하자, 그녀들의 말을 거부할 수 없는 기사들은 일제히 나가버렸다. 털썩! "역시 남자들은 아름다운 얼굴에 사족을 못 쓴다니깐." 침대에 걸터앉은 현민이 그녀들을 바라본 후, 기사들이 나간 문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는 룬은?" "훗." 어느새 다가온 샨이 현민의 옆에 걸터앉았고, 현민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임자있는 남자는 한사람만 바라보는 거야." 쏙!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현민이 샨을 바라보자, 샨과 현민의 사이로 무표정한 얼굴의 황녀가 끼어 앉았다. "쿡! 황녀님, 얼굴이 붉어지셨답니다." "쿡쿡!" 현민은 붉어진 황녀의 얼굴을 보며 미소지었고, 샨은 황녀의 마음을 눈치챘기에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미소가 방안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황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빨갛게 만들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 현민은 붉어진 황녀의 얼굴을 보며 미소지었고, 샨은 황녀의 마음을 눈치챘기에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미소가 방안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황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빨갛게 만들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룬, 아까 그 마법은 뭐야? 축복 계열인 것 같던데." "아, 그거?" 한동안 미소하고 있었던 샨이 현민을 향해 조금 전의 빛무리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이름은 마녀의 축복이고, 능력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유지시켜주는 거랑, 사랑하는 사람과 한날한시에 죽는정도... 엄청난 효과에 비해서는 별로더라." "아아..." 현민은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설명해 주었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황녀와 샨은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아름다워지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것이었고, 현민은 자신들에게 영원한 아름다움을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한날한시에 죽는다니... 두 사람이 비명횡사만 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로맨스적인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멋져..." "멋져요..." "하아..." 두 사람은 꿈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현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녀들의 반응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보다, 내 시합은 어떻게 된거야?" "아참!" 현민의 말에 현실로 돌아온 샨이 그가 죽어있는(?)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일단, 대회 우승자는 너로 정해졌어. 정식으로 하자면 옆에 계신 황녀님이시지만..." 샨의 말에 가만히 앉아 있던 황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때의 일을 생각할수록 현민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모든 우승자들이 한자리에 모일 거라는 신탁이 내려왔어." "에?"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신탁에 현민의 고개가 갸웃했다. 언제나 처박혀 있는 것을 좋아하는 현민이 모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신탁에 대한 것이었다. 싸울아비 속에 존재하는 것이 하나의 '세계'인 이상 운영자들도 '세계'를 바꾸는 것은 함부로 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신탁이란 것이었다. '세계'에 신탁을 내림으로써 갑작스런 변화에 대한 충격을 줄이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운영자들의 방법이었다. 첫 번째 토너먼트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는 피해가 잇달았고, 운영자들이 유저들을 관리함으로써 며칠동안 밤샘작업을 하도록 만들었었다. "정해진 시간은 잠시 후야." "뭐?!" 이것 역시 너무나 갑작스런 말이었다. 몇 시간 후도 아니고, '잠시'라니... 언제나 40~50개의 마법을 메모라이즈 해놓는 현민에게, 샨의 말은 그냥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마법사의 특징이 엄청난 파괴력과 그에 비례하는 주문의 영창이기에, 메모라이징을 해놓지 않은 마법사의 경우 저렙 유저와의 차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힘내세요." "쿡쿡, 들었지? 그리고, 우승상품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깐 천천히 다녀와." "윽!" 샨의 말을 들은 현민의 입에서는 신음이 터져나왔다. [정해진 공간으로 이동됩니다. 하시던 작업을 끝마쳐주시기 바랍니다.] 남은시간 : 56초 샨의 말대로 '잠시 후'에 현민의 귓가로 메시지가 들려왔고, 그의 눈앞에 빠르게 줄어드는 숫자가 생겨났다. "이런!" 남은시간 : 30초 ...29초 시간은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다급해진 현민은 무엇을 챙겨야 할지 열심히 생각했다. 평소에는 잘만 돌아가던 그의 머리였으나, 갑작스런 상황이기 때문인지 좀처럼 생각나지가 않았다. "룬!" 탁! "룬님!" 딸랑딸랑~. 샨이 현민을 향해 어릿광대 가면을 던져 주었고, 그와 동시에 황녀가 어릿광대 모자를 던져주었다. "쿡쿡쿡." 딸랑. 남은시간 : 7초 ...6초 ...5초 샨과 황녀에게서 받은 가면과 모자를 착용한 현민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한순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가면을 쓴 지금의 현민의 모습에서는 조금 전의 당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여유로움이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잘 다녀와." "열심히 하세요." 너무나 현민다운 모습에, 그를 바라보고 있던 두 명의 여성들은 짙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배웅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스윽.... 왼손을 뒷짐지고, 오른발을 뒤로 빼며 허리를 수그린 현민은 오른손으로 배를 감싸며 장난스런 인사를 남기고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잘... 하겠죠?" "물론이죠, 그는 어릿광대인걸요." 걱정이 묻어나는 황녀의 목소리와 비교될 정도로, 샨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있었다. "휴우~." 황궁에서 모습을 감춘 현민은 낯익어 보이는 장소에 모습을 들어냈다. 모든 공간이 흰색으로 되어 있는 이 공간은 1회 토너먼트에서 예선전을 치룰때의 그 장소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보다..." 딸랑. 숙여졌던 허리를 올린 현민은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새로운 공간에 도착한 사람은 전부 32명이었고, 판타지 쪽이 16명, 무협 쪽이 16명이었다. "현민씨~~." 스윽... 팟! 현민이 주위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들었고, 본능적인 위험(?)을 느낀 현민은 한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그가 한걸음 물러나자 그가 있던 위치로 여성이 나타났고, 빠른 속도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멈추어 섰다. "미호?" "정답~." 현민이 자신을 알아보자 크게 소리친 미호가 그를 껴안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보다 먼저 움직인 존재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런 장소에서 그런 행동은 어울리지 않는군요." "싸울아비?" "호오?" 현민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다가온 아리는 기다란 검을 뽑아 미호에게 겨누고 있었다. 미호의 눈이 자신의 목에 대어져 있는 검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을 때, 묘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허허, 연아. 이리오너라." "네, 할아버지." 두 사람이 묘한 대치를 하고 있을 때, 그들의 뒤에서 멋지게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아리를 불렀고, 아리는 공손한 대답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유난히 밝은 달 아래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던 하연은 온몸이 땀에 젖을 때가 되어서야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제가... 약한가요?" "응?" 마루에 앉아 하연이 휘두르는 검을 보던 할아버지는 손녀의 갑작스런 물음을 잘못 들었다 생각했다. 이미 또래의 한계를 넘어섰고, 왠만한 경지에 올라있는 자신의 손녀가 약하다는 소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허허, 우리 연이가 수련중에 말을 하다니, 별일을 다 겪는구나..." 하연의 걱정과 다르게 할아버지는 기쁜 듯한 웃음을 흘렸다. 차분한 성격 때문에 다른 손녀들과 같은 귀여움은 없었지만, 그런 손녀와의 대화도 그는 아주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소개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연은 뽑았던 검을 집어넣으며 할아버지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들은 방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허허, 우리 하연이에게 남자가 생긴 모양이더구나." "호오~. 경사로군요!" 방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하연의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물었고, 할아버지는 작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들어오시죠." "크흠! 가마." "저도..." 하연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그 이외의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문을 걸어잠궜다. 삑!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자, 하연은 준비된 영상을 재생시켰다. "광고?" "싸울아비?" 언제나 보아오던 싸울아비의 광고가 시작되었지다. -페튜니아!!!!!!!!! 하지만 똑같은 것은 시작부분이었을 뿐, 그 뒤의 내용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딴판이었다. 본래의 내용이 이어져야 할 부분에서 광대가면을 쓴 이상한 아이가 서울역으로 보이는 곳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장면이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싶었을 그 때. 팡!탁! 타탁! 어디선가 나타난 또 다른 사람이 그를 공격했고, 그런 영상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영상속의 두 사람이 묘한 대치를 하고 있을 때, 이상한 가면을 쓴 남자아이의 뒤로 그들이 알고 있는 존재가 모습을 들어냈다. 사악! 영상에 나오는 그들의 대결은 빠르게 지나갔고, 중간중간 현실과 싸울아비가 번갈아가며, 비교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절정에 도달한 현민의 실력이 모습을 들어냈다. -월하개화(月下開花)... -그럼 나는 어릿광대의 춤.. 일까요? TV 속에 있는 존재에게서는 진지함이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하연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스스로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스윽... 그들의 딸이자 손녀인 하연의 발이 조금씩 나아갔고, 흔들리는 몸에 맞추어 그녀의 검도 춤추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언제나 보아오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탁!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상대도 몸을 돌려 덤블링을 시작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하연에 비해 상대의 움직임은 날렵하고, 잽쌌기에 마치 한 마리의 고양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촤악.... 그의 신형이 바닥에 미끄러졌고, 순식간에 하연의 앞으로 도달해 있었다. 채채채채채채채챙! 그때부터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영상에서 보여주는 그의 싸움은 그들도 처음 보는 신기한 것이었고, 몸의 움직임도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날렵했다. 허공에 떠 있는 6개의 단검을 저렇게 자유롭게 다룬다는 것이 정말 놀랍기만 했다. 채채챙! 챙! 손녀의 검과 상대의 검이 빠르게 부딪히며 엄청난 소리가 울려퍼졌다. 서울역전의 모습과 처음보는 장소가 번갈았지만 그들의 모습은 부드럽게 이어졌기 때문에 특별한 어지러움은 느껴지지가 않았다. 모두가 영상으로 빠져들어갈 때, 영상속의 사내가 하연의 검을 두 번 튕겨냈고, 그녀의 신형이 일순 무너졌다. 흠칫! 오른손의 무기를 역수의 도로 바꾼 상대는 몸을 반회전 하며 하연의 머리를 향해 팔꿈치 공격을 하였고, 그녀의 머리가 뒤로 물러나며 피해지는 순간, 팔을 펴며 다시 한번 공격하였다. 삭! 상대의 검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몸을 낮추었고, 왼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은 현민은 허공에 몸을 띄우며 그녀의 등으로 넘어갔다. 등으로 넘어간 현민이 오른손의 검으로 그녀의 목을 겨누었고, 그와 동시에 움직인 그녀의 검이 현민의 이마를 겨누었다. "허, 허허허...." "하, 하하...하." 한편의 엄청난 광고가 끝을 맺었고, 그들은 웃음 이외에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혹시 짐작가는 사람은 없으신가요?" "흐음... 저런 방식의 공격도 처음봤고, 싸움도 처음봤단다... 게다가 저 정도의 솜씨라면 한번쯤 들어볼만도 하건만, 나는 너를 통해서 알게 되는구나." 결론은 모른다는 소리였다. 검에 있어서는 천재라 불리는 자신을 뛰어넘는 그 사내. 검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있어, 현민은 가장 관심이 가는 존재인 동시에, 가장 방해가 되는 존재였다. "현실에서도 저 정도의 실력이라니.... 이 할애비도 한번쯤 대결해 보고 싶구나." 연세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강자였다. 싸울아비에서도... 현실에서도... "저는 수련하러 가겠습니다." 할아버지의 대답을 들은 하연은 밖으로 나갔고, 남아있는 두 사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아버지,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부부싸움 할 때, 죽지는 않겠죠?" "흐음... 최소한 다치지는 않을 것 같구나." 너무나 강한 하연 때문에 신랑을 고르는 것 또한 신중히 생각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부담감은 하연의 아버지가 더욱 심했다. 만약 자신의 선택이 잘못 된다면, 그것은 앞으로 들어올 사위가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이미 겪어본 경험이 있는 바, 최소한 사위만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하연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 "오랜만이죠?" "채리플랑..." "호오?" 현민의 곁에 있던 아리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채리플랑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고, 미호는 묘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번에도 재미있는 시합 부탁드릴게요." "네." 씽긋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눈 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현민, 두 사람하고 친분 있는 거야?" "응." "흐음... 그런데 어째 여자만 오네?" 뜨끔! 미호의 날카로운 질문에 현민도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는지 한차례 몸을 굳혔다. "나도 여자고, 싸울아비도, 채리플랑도..." "미호는 다른 사람들 많이 알고 있지? 나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미호가 집요하게 물어보자 현민은 말을 돌려버렸고, 미호는 모르는척 주제를 바꿔주었다. "물론. 저기 흰색으로 도배한 사람이 성자라 불리는 아벨이야. 레벨은 433." 미호가 가르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현민의 마녀복장과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이 책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쪽의 검은색으로 도배한 사람은 죽음의 사제라고 불리는 파우스트고, 레벨은 421이래." 이번에 알려준 존재는 검은색의 로브를 뒤집어 쓴 채, 명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기에 두개의 검을 가지고 있는 사람 보이지?" "여자랑 있는?" "응, 그 여자가 레벨 396의 바람의 테이머이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레벨 413의 이도류 마스터야." 미호가 소개해준 두 사람은 멀리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다. "저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 최고 레벨 451의 현술사 엠페러야." 미호가 가리키는 자리에는 가벼운 복장을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단 하나의 무장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미호의 소개를 듣고 있던 현민은 더 이상 소개를 들을 필요가 없어졌다. 혹시나 하고 듣고 있던 설명이었지만 모두의 평균레벨이 400을 가뿐히 넘겼기 때문이었다. "싸울아비랑, 채리플랑이랑, 미호의 레벨은?" "싸울아비는 401, 채리플랑은 443, 나는 408이지." "하아..." 레벨로만 비교했을 때 가장 약한 존재는 현민이었다. 하지만 본 시합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민이 기죽을 이유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딸랑~... "쿡쿡쿡. 정말 재미있는 시합이 될 것 같군요." 흠칫! 익숙한 현민의 목소리였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현민의 곁에 있던 미호가 일순간 몸을 떨며 한걸음 물러났다. 이미 현민의 말투는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아참, 룬이나 어릿광대라 불러주시겠어요? 현민이란 이름은 본명이라서요." "으응..." 현민의 분위기에 놀란 미호는 이전과 같이 현민을 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드드드득... 본선전의 진출자들이 끼리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들이 서 있던 땅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들이 있던 장소에 거대한 경기장이 모습을 들어냈다. 모두가 균형을 잡고 있는 사이, 엄청난 기운이 경기장 중심에서 흘러나왔고, 모두의 눈이 경기장의 중심으로 모여졌다. "지금부터 제 2회 토너먼트 본선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경기장의 중심에는 현민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페튜니아네?" 루인아츠의 봉인을 해제한 채, 무장을 하고 있는 페튜니아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고, 멋진 모습이었다. "본선전에서는 사망처리가 되지 않으며, 죽었을 경우에는 즉시 부활 가능하니 모든 능력을 사용하여 상대와 싸우시기 바랍니다." 페튜니아의 말에 경기장에 있던 32명의 사람들이 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현민 역시 자리에 앉아 메모라이징을 했다. "이번 대회에서의 우승자는 대륙간의 2회 횡단권을, 준우승자는 6개월동안 다른 대륙의 여행권을, 3~4위는 다른 대륙의 세달 여행권, 5~16위는 다른 대륙의 한달 여행권, 17~32위는 10일 여행권이 주어집니다. 이 여행권은 즉시 사용가능하며, 타인에게 양도가 가능하니, 다른 대륙으로의 여행이 싫으신 분은 운영자들이나 유저들에게 거래하시어 금전적인 이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웅성웅성...그들에게 있어 대륙간의 횡단은 엄청난 기회였다. 서로의 대륙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판티지 대륙에서 무협으로 넘어가던지 아니면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던지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넘어가기만 하면 그것은 대박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첫 번째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경기를 알리는 페튜니아의 목소리에, 시끄럽던 경기장이 조용해지면서 누구나 느낄 정도의 짙은 긴장감이 흘렀다. "미호님과 여랑님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경기장 밖으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페튜니아의 말에 현민의 옆에 있던 미호가 입가에 미소를 만들었고, 저 멀리서 상대편이 전 투 준비를 했다. "잘 하세요." "응!" 전투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그녀의 두 눈에는 흥분이 담겨져 있었다. 내려가기 직전 미호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던진 현민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경기장 아래를 향했고, 경기장에 남은 두 사람은 페튜니아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시작하세요!" 가까이 다가온 두 사람이 어느정도의 거리를 두었을 때, 그들의 사이에 있었던 페튜니아가 경기의 시합을 알렸다. "그대를 위해 세 수를 양보하겠소. 오시오!" "쿡, 쿡쿡쿡." 여랑이란 남자가 미호를 보며 멋지게 말했지만 그의 말을 듣는 미호는 헛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종족의 특성상 PK가 전문인 미호에게 1:1의 시합에서 양보까지 하다니... 미호의 눈에 비치는 여랑은 죽으려고 환장한 남자에 불과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삭!미호가 여랑을 보며 웃음 짓는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경기장에서 사라졌다. '빠르다.' 미호의 움직임은 저번에 보았던 늑대인간의 움직임을 뛰어넘고 있었다. 종족적인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늑대인간과 비교했을 때, 스피드 면에서는 미호의 움직임이 한 단계 위인 것만 같았다. 챙! "큭!" "호오?" 눈에 보이지 않는 빠르기임에도 불구하고, 여랑이라는 존재는 미호의 손톱을 막아가고 있었다.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거의 본능적인 움직임처럼 보였다. 채채챙! "잘 막네?" "흡!" 시작을 양보했던 여랑은 한동안 미호의 공격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의 신형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두 사람의 공방이 적당히 이루어졌다. 채채채채챙! 빠른 움직임과 날카로운 손톱이 여랑의 온몸을 노렸지만, 여량의 검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우우웅...흠칫! 손톱과 칼이 부딪히며 대결을 하고 있을 때, 여랑의 검이 미약하게 울기 시작했고,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낀 미호는 그의 검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스으으으.... 미호가 뒤로 물러나자 여랑의 검에서 푸른색의 빛이 흘러나와 그의 검을 감쌌다. "검강인가?" "검강이군." "벌써부터 검강이라니..." 현민은 처음 보기에 긴가민가했다. 그런 현민을 대신하여 주위의 강호인들이 확답을 해주었다. "검강인가보죠?" "그렇소. 400이상의 특권이지." 무림 쪽에서 검강을 쓰는 것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깨달음을 얻어서 쓰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무공의 숙련도를 올리며 쓰는 것이었으며, 마지막 하나가 400레벨을 달성하면서 쓰는 것이었다. 방법에 따른 차이는 없었지만 대부분의 검강 유저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 방법으로 검강을 배우고 있었다. "그럼 저도..." 스스스슥.... 살랑. 길게 내려온 미호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고, 여섯 개의 꼬리가 모습을 들어냈다. "본격적으로 놀아보죠." 팟!팟!쾅!콰직! 콰직!채채채채챙! 미호의 신형이 경기장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 여랑의 모습도 경기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사라져버린 경기장에서는 엄청난 소리만 들려왔고, 이곳저곳이 부서져 나갔다. 탁! 사뿐. 경기장에서 사라졌던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들어냈을 때, 그들의 모습은 처음과 달랐다. 곳곳에 베어진 상처가 있었으며,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갑자기 생긴 궁금함인데, 기술명을 안 외쳐도 쓸 수 있는 건가요?" "기술명을 외친다면 강하기야 하겠지만, 상대가 눈치 채고 방어하는데 어찌 기술명을 외치겠소?" 어쩐지 웃긴 여랑의 말이었으나 그의 말에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생김새나 공격방법이란 것은 기술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기술명을 외친다는 것은 상대에게 내가 어떤 공격을 할지 미리 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궁금한 것도 알았으니 이제 끝내야겠군요." 흠칫! 미호의 도발적인 말에 여랑은 두 눈에 살기를 띄며 미호를 바라보았다. "이 이상했다간 옷이 전부 찢어져 버릴 것 같아서요." "큭! 잠룡출하(潛龍出霞)!" 놀림 받았다 생각한 여랑이 기술명까지 외치며 공격을 가했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거대한 용을 본 미호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이것만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살짝 돌려진 그녀의 눈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현민의 시선이 있었다. 크아아앙!! "꺼져라." 쩌억! 미호의 코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용이 그녀를 위협하듯 울부짖었으나, 미호의 장난같은 손짓 한번에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 "음..." "강하군."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들어난 미호의 얼굴은 이전의 아름다운 얼굴이 아닌, 여우와 사람의 중간적인 모습이었다. 붉은색의 눈동자에는 짙은 살기가 담겨져 있었고, 반짝이는 은색의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사뿐 미호는 살짝 발걸음을 옮겼을 뿐이었지만 그녀의 신형은 어느새 여랑의 앞에 도착해 그의 목을 잡고 있었다. 지금 보여준 미호의 스피드는 여직까지의 스피드가 장난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스윽... "무, 무슨! 쿨럭!" 여랑의 배가 두부로 되어있는 것도 아니건만, 부드럽게 나아간 그녀의 손은 여랑의 배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 일검진천(一劍唇天)..." 마지막 공격이란 것을 깨달은 여랑이 최대의 공격을 했고, 그것은 바로 앞에 있던 미호의 배에 정확히 적중했다. 쿵! 경기장에 엄청난 소리가 울려퍼지며 먼지가 피어올랐고, 모두의 시선은 먼지의 안쪽으로 집중되었다. "마, 말도..." 당했을 거라 생각했던 미호는 단 하나의 상처도 없었다. 길게 늘어난 그녀의 머리카락이 여랑의 오른팔과 검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푸악! 그녀의 붉은색 눈동자가 번뜩이는 순간, 여랑의 뱃속에 있던 그녀의 손이 세상에 모습을 들어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들어갈 때와는 다르게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쥐어져 있는 상태였다. 털썩! 여랑의 신형이 경기장에 쓰러졌고, 배에 뚫린 구멍을 통해 상당량의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낭인들의 왕이라 길래 어느 정도 할줄 알았건만 겨우 저 정도였군." 여랑이란 사람이 쓰러지자, 그들의 경기를 보고 있던 무림인들이 여랑이란 존재를 비웃기 시작했다. 그들이 바라본 여랑은 이제야 절정의 초입수준에 도달한 허접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도 약하다는 건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의 눈살은 자동으로 찡그려졌다. 그들의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저 정도의 실력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내 시합 어때?" 현민이 주변의 무림인들을 보며 인상을 쓰고 있을 때, 그의 곁으로 시합을 끝마친 미호가 다가왔다. 그녀가 현민의 곁으로 다가오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현민을 향하게 되었다. "너무 빨라서 보이는 게 없던데요?" 딸랑 피식! 현민의 솔직한 대답에 이곳저곳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시시한 그들의 싸움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거짓말." 남들은 현민을 비웃고 있었지만 그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미호는 현민의 말을 부정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현민은 모두를 조롱하는 어릿광대였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두 번째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현민과 미호가 잠깐 동안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미호의 대결로 산산조각 났던 경기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투광 홍연님과 원조광대님은 경기장 위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원조광대?" "무슨 호칭이 그래? 쿡쿡." "큭큭큭." 페튜니아의 소개에 맞추어 두 명의 사내가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투광이란 존재는 지극히 평범해 보였고, 원조광대라는 사람은 너무나 화려해 보였다. 네 갈래로 갈라진 모자에서는 시끄러운 방울소리가 울리고 있었고, 크게 부풀어 있는 옷들도 움직이기에 불편해 보였다. "이번 시합은 금방 끝나겠군." "시작해 주세요!" 주변의 모두가 웃고 있을 때, 페튜니아가 시합의 시작을 알려왔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호오?" "최소 5서클인가?" 그가 등장했을 때는 그의 모습을 보며 비웃었지만, 파이어 볼 마법을 시동어만 가지고 사용하는 모습을 보자 모두가 웃음을 멈추었다. 처음에는 메모라이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미 파이어 볼의 숫자는 메모라이징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뭘 하자는 거지?" 원조광대가 만든 파이어 볼이 날아올 것이라 생각한 채,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투광은 자신의 주변을 가득 메운 불덩어리들을 보며 인상을 굳혔다. 허공에 멈춰져 있는 파이어 볼은 그의 주변을 둘러싼 채, 그가 피할만한 공간을 없애고 있었다. 딸랑딸랑딸랑... 현민의 귀에 들리는 원조광대의 방울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거슬리는 느낌이 있었다. "저의 승리랍니다." 현민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 때, 원조광대는 자신의 승리를 자신했고, 단검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 띠를 꺼내어 허벅지, 팔, 허리에 둘러맸다. 크게 부풀어 있는 옷에 단검까지 껴입으니,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웃음이 안 나올 내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킥킥킥." "쿡쿡." "크흠!" "크크큭." 모두가 원조광대를 비웃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원조광대는 그러한 일이 익숙한 것인지, 무시하는 것인지 모두의 웃음 속에서도 꿋꿋했다. 스릉... 허리에서 단검을 뽑아든 원조광대가 단검을 이리저리 날리며 고난위도의 저글링을 선보였다. 저글링을 하는 도중 몇 개의 단검을 떨어뜨리며 두 발을 이용해 저글링을 하기도 했고, 한쪽팔과 입을 사용하는 위험한 수준의 묘기도 보여주었다. "호오?!" "오오!!" "와!" 그의 묘기를 바라본 현민은 왜 그가 자신을 원조광대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는 현민과 다른 진짜(?) 어릿광대였다. 모두가 재미있다는 눈으로 그의 저글링 묘기를 보고 있을 때, 현민과 투광이란 존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그 짓만 할거냐? 지루하군..." "이익!! 디스펠 바디." 디스펠 바디(6서클) 능력 : 자신이 사용한 마법에 본인이 신체가 접촉될 경우 마법이 취소된다. 투광의 말에 흥분한 원조광대가 자신의 몸에 마법을 걸며 투광을 향해 돌진했다. 파파팍! 빠르게 달려오던 원조광대가 허공에 있는 틈을 향해 단검을 날렸고, 빠르게 날아간 단검은 투광의 미간을 향하고 있었다. "흡!" 원조광대의 단검이 빠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못 피할 정도의 공격은 아니었다. 씨익! 흠칫! 쾅! 콰콰콰콰쾅!! 투광이 그의 단검을 피했을 때, 원조광대가 짙은 미소를 지었고, 이내 거대한 폭발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투광의 뒤로 날아간 단검이 허공에 있는 파이어 볼을 건들며 거대한 폭발을 만들었다. 단검에 닿은 파이어 볼만 터진 것이 아니라 그것의 범위에 있던 모든 파이어 볼들이 터져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주변의 모든 파이어 볼에도 적용되어 경기장 위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딸랑딸랑딸랑... "저의 승리..." 꽉! "윽!" 원조광대가 페튜니아를 보며 자신의 승리를 말하고 있을 때, 그의 등 뒤에서 연기를 뚫은 하나의 팔이 몸을 들어올려 버렸다. 갑자기 나타난 손에 머리를 잡힌 원조광대는 그의 손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그의 손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겨우 이 따위 불장난이라니." 연기가 사라지고 모습을 들어낸 것은 누더기 옷을 입고 있는 투광이었다. 원조광대의 파이어 볼 때문인지 그의 옷 전체가 검게 그을려 있었으며,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재미없군." 쾅! "끄어어..." 원조광대를 들고 있던 투광은 그의 머리를 바닥에 꽂아버렸다. 그들의 시합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이번 대결의 승자는 투광입니다." 터벅터벅 페튜니아의 선언을 들은 투광은 경기장 위에서 내려왔다. "휘유~, 많이 다쳤는걸?" 모두가 다음시합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하나의 존재가 경기장에서 내려오는 투광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그의 말투와 행동에서는 투광을 걱정하기보다 비웃는 듯한 느낌이 풍기고 있었다. "꺼져." "크크큭, 한심하군." 미약한 살기를 내뿜은 투광은 그의 앞을 지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시합은 혈귀와 어릿광대님의 시합이 되겠습니다. 두 분은 올라와 주세요." "큭큭큭, 드디어 내 차례인가? 투광 눈뜨고 잘 봐라. 이 몸이 어떻게 싸우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색으로 도배를 한 그는 투광을 향해 자신만만한 웃음을 내뱉으며 경기장 위로 올라갔다. "벌써! 아직 메모라이징도 안했는데!" 조금 더 걸릴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현민의 시합은 금방 찾아왔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미호는 메모라이징도 제대로 하지 못한 현민을 걱정했으나, 그가 걱정하고 있는 현민은 가면속에서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찮아요, 하나는 했거든요. 그리고...." 딸랑... "그래서 더욱 재미있지 않아요?" 가면을 고쳐 쓴 현민은 혈귀가 기다리고 있는 경기장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딸랑... 저벅저벅 딸랑.... 저벅저벅 그가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의 머리에 달린 방울이 맑은 소리를 만들었고, 모두의 눈에는 재미있다는 표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림 서열 5위의 혈귀다. 네놈이 그 유명한 어릿광대란 놈이냐?" 현민이 혈귀와 마주하자, 혈귀가 살기를 내뿜으며 현민을 압박했다. '발록에 비해서 너무 약해...' '이런것도 살기라고 내뿜다니... 한심하군.' 혈귀의 살기도 엄청난 것에 속하고 있었지만, 주변의 모든 것을 공포에 질리도록 만드는 발록의 살기에 비할 때, 바닷속에 가라앉은 작은 바늘정도였다. 딸랑... "시작할까요?" 현민이 페튜니아를 돌아보았고, 그녀는 현민의 미소를 생각하며 환히 미소지었다. "시작하세요!!" "너를 위해 세..." "매직 애로우." 페튜니아의 시작소리와 동시에 혈귀가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현민의 갑작스런 마법에 끝까지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코앞에 다가온 매직 애로우부터 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익!" 슉! 그의 허리가 90도 가까이 휘어지면서 마법을 피할 수 있었고, 현민은 그를 위해 두 번째 마법을 사용하였다. 딸랑! "디그." "으악!!" 갑자기 사라지는 땅에 깜짝 놀란 혈귀가 그 위치를 벗어나려 했으나, 현민이 만든 구덩이는 세네 사람이 동시에 빠질 정도의 크기였기에, 무너진 자세를 하고 있는 혈귀는 그의 마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구덩이에 떨어진 그가 다급히 나오려고 할 때, 현민의 마지막 마법이 펼쳐졌다. "대지의 심판." 푸푸푸푸푹! "끄어어...." 디그의 구멍에 생긴 벽면에서 수십 수백 개의 창이 튀어나와 공간을 메워 버렸고, 그 공간의 사이에 있었던 혈귀는 튀어나온 창으로 인해 걸레처럼 변해버렸다. 딸랑... 그의 시합에 사용된 마법의 숫자는 겨우 세 개였고, 시합에 걸린 시간은 5초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현민의 시합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딸랑... "말도 안돼..." "최강." "이거 밸런스 파괴 아냐?" 경기장에 있던 현민이 내려오고 나서야 하나둘 정신 차리기 시작했고, 심판을 보고 있던 패튜니아가 다급히 현민의 승리를 판정했다. "승자 어릿광대!" 너무나 빠르게 끝나버린 현민의 시합에 모두의 눈에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허접한(?) 놈들과는 다른 진짜 실력을 가진 존재가 새로이 모습을 들어냈기 때문이었다. 딸랑... "재미있죠? 쿡쿡." -------------------------------------------------------------------------------- 미호의 곁으로 다가온 현민은 밝은 웃음을 지었고, 그의 웃음소리를 들은 미호는 가면속에 있을 그의 얼굴을 생각하며 몸을 떨었다. 그녀의 본능은 그를 가장 위험하다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털썩! "그럼, 저는 메모라이징을 할 테니 결과를 알려주세요." "으응..." 자리에 주저앉은 현민은 본격적으로 메모라이징에 들어갔고, 주변의 인물들은 한동안 그런 현민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그동안 얕보고 있었던 현민이란 존재는 그들을 가장 위험하게 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 시합은 '저주의 마녀'와 '어두운 밤하늘에 울부짖는 영혼의 외침을 듣는 마녀'님의 시합이 있겠습니다." 페튜니아의 외침에 현민을 향해 있던 모두의 시선이 다시금 경기장으로 돌아갔다. 호칭으로 봤을 때, 이번의 시합은 단 한번도 보지 못한 마녀들의 시합이었기 때문이었다. "윽!" 그녀들이 경기장으로 올라가는 순간, 메모라이징을 하고 있던 현민은 무언가 못 맡을 냄새를 맡은 것인지, 한손으로 코를 부여잡은 채 메모라이징을 계속했고, 그의 옆에 있는 미호는 자신에게서 냄새가 나는 것으로 착각했는지 연신 코를 킁킁거렸다. "시작하세요!" "흥! 너 정말로 마녀야?" "보면 몰라?" 모두가 화려한 마법과 멋진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녀들의 시작은 단순한 말싸움이었다. 팟! 어두운 밤하늘에 울부짖는 영혼의 외침을 듣는 마녀, 이하 어두운 마녀가 품에서 빗자루를 꺼내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녀의 뒤를 따라 저주의 마녀도 이상하게 생긴 빗자루를 꺼내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화염의 바람이 어둠을 뚫고 불어치니, 그 앞에 가로막을 것, 존재하지 않는다." 저주의 마녀가 현민과 같은 마법진을 만들며 공격을 시도했다. 그녀의 손이 마법진을 완성하자 엄청난 불바람이 뿜어져 나오며 어두운 마녀를 공격하였고, 그녀는 빗자루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불바람을 피해갔다. "나 저주의 힘을 빌어 명하니, 그대 움직임이 느려지리라." "뭐?" 저주의 마녀가 또 다른 주문을 외우자, 어두운 마녀의 움직임이 확연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끝이닷!" 저주의 마녀가 마법진을 움직여 어둠의 마녀를 가리켰고, 그녀를 향해 거친 불바람이 몰아쳤다. "꺄악!" "뭐지?" 모두가 끝났다 생각하고 있을 때, 그들의 귓가를 울리는 것은 공격을 받은 어두운 마녀의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격을 한 저주의 마녀가 내지른 비명이었다. "하찮은 짝퉁주제에..." 어두운 마녀는 불길 속에서 말하고 있었지만, 조금의 데미지도 받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자~ 그럼. 마녀의 특기를 보여줄까? 깔깔깔." 탁. 자신을 감싸는 불길을 피해 땅으로 내려온 어두운 마녀는 모두에게 보여줄 재미난 장면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대의 조건은 게으른 거지의 키스! 나 '어두운 밤하늘에 울부짖는 영혼의 외침을 듣는' 마녀의 호칭으로 그대에게 저주를! 그대여 개~구~리~가 되어라!!" 펑! 어두운 마녀가 저주의 마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엄청난 폭음과 함께 그녀의 몸 주변에서 생겨난 연기가 시야를 가려버렸다. 잠시 후, 연기가 걷히자 모두의 시선이 바닥에 있는 옷으로 집중되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해 있던 옷의 주인은 이미 모습을 감춘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부스럭부스럭... "개, 개굴! 개굴!" ......:::::: 옷 속에서 하나의 개구리가 튀어나왔고, 모두의 이마에서 거대한 땀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깔깔깔깔깔깔. 감히 마녀의 호칭을 사용하다니, 이 정도도 많이 봐준 줄 알라고!" 폴짝폴짝! "개굴!" 어두운 마녀의 말에 화가 난 것인지, 작디작은 개구리가 팔짝 튀어 올라 그녀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호오? 개기는 거야? 네가 뭔가를 모르고 있나본데, 마녀의 저주는 죽음으로도 풀리지가 않아. 알아?" "개, 개, 개꼬르!" 어두운 마녀의 설명을 이해한 것인지, 그녀의 다리에 달라붙었던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이상해 졌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개구리로 변한 그녀는 게으른 거지와 입맞춤을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친절히 설명해 줄까? 마녀는 말이야.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지는데, 그 첫 번째가 마법진을 사용하는 공격계열이고, 두 번째가 물약을 사용하는 시약계열, 그리고 마지막이 저주를 사용하는 저주계열이야. 알았어?" "개굴!" 자신의 다리에 달라붙었던 개구리의 뒷다리를 잡아서 들어올린 어두운 마녀는 주변을 향해서인지 저주의 마녀를 향해서인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마녀들은 서로의 계열을 냄새로 알아맞힐 수 있는데, 공격계열같은 경우 온몸에서 책 냄새가 나고, 시약계열은 지독한 약냄새, 그리고 저주계열은 각종 썩은 냄새가 난데. 추가로, 같은 마을 마녀들의 냄새는 맡을 수가 없데, 만약 같은 마을의 마녀 냄새도 맡았다면 마녀란 존재는 독립적으로 됐을 테니깐." 말을 마친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현재 메모라이징을 하고 있는 현민의 얼굴이었다. "이제는 알겠지? 왜 내가 너를 마녀가 아니라고 했는지..." 다시금 개구리로 시선을 돌린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개구리를 멀리 집어던졌다. "잘가렴." 개굴~~~~. "승자 '어두운 밤하늘에 울부짖는 영혼의 외침을 듣는 마녀'님!" 경기장에서 내려오는 어두운 마녀를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에는 현민의 시합을 능가할 만한 긴장감이 담겨져 있었다. 특별한 공격이 아닌 저주계열의 마녀라면 상대하기가 엄청 까다롭기 때문이었다. 시합이 진행될수록 강한 존재가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승자 검후!" "승자 현술사!" "승자..." "승자..." 현민의 다음에 진행된 대결에서는 모두가 시합이라도 하는 듯, 엄청난 속도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얼레? 왜 다들 여기에 모여 있죠?" 메모라이징을 끝낸 현민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를 중심으로 하여 대결에서 승리한 15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게." 하나둘 오기 시작한 사람들이 어느새 전부 다가와 있었으니, 미호도 특별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있다보니 이렇게 모인 것 같은데?" "으윽!" 현민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지독한 악취와 함께 다가온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풍겨지는 냄새가 맡아지지 않는지 코를 부여잡는 현민을 이상하단 눈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반응을 보면 마녀가 확실한 것 같은데, 남자도 마녀가 될 수 있나?" 현민의 복장과는 다르게 이야기속의 마녀와 똑같은, 검은색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녀는 얼굴을 들어내며 현민과 눈을 마주했다. 현민의 눈에 비치는 그녀의 얼굴은 흉측해 보이지 않았으며 엄청난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너는 호칭이 뭐야?" 어두운 마녀가 질문을 던지자 스스로의 코에 윈드마법을 사용한 현민은 냄새를 피해 숨을 쉬며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없는데요?" "에엑!!" 호칭이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현민은 그녀에게 솔직히 말해주었고, 그의 말을 들은 어두운 마녀는 경악어린 음성을 내뱉으며 모두를 놀래 켰다. "너 100레벨은 넘었지?" "네." "마녀란 존재가 100레벨부터 호칭을 얻을 수 있는 건 알아?" "아니요." 현민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그를 한쪽으로 끌고 들어가 자세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마녀란 직업은 호칭을 얻는 순간부터 호칭에 대한 고유한 능력을 얻을 수 있어." "호오?" 어두운 마녀의 설명을 듣는 현민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는 그에게도 흥미로운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호칭은 어떻게 얻죠?" "카드점." "??" "100장의 카드 중 6장의 카드를 뽑는거야. 그리고 그 순서를 단어로 조합하면 호칭이 나오는거지. 나같은 경우에는 어둠, 밤, 하늘, 절규, 영혼, 청각을 뽑아서, '어두운 밤하늘에 울부짖는 영혼의 외침을 듣는' 마녀가 되는 거지." "흐음~. 858,277,728,000가지인가?" 어두운 마녀가 설명을 해주고 있을 때, 현민은 100장의 카드 중 6장의 카드로 만들어질 수 있는 호칭의 개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상당히 커다란 숫자가 나오는 계산이었으나, 6서클 마법사에게 이 정도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괴물..." 씽긋. 현민의 엄청난 암산에 어두운 마녀가 경악어린 표정을 짓자, 현민은 그녀를 향해 웃음만 지어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알려주시는 거에요?" 현민과 친분관계라도 있었으면 모르지만, 그녀와 현민은 적으로 만날 수도 있는 존재였고, 성별도 달랐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어두운 마녀는 현민을 구석으로 이끌고 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마녀란 존재는 흔치 않으니깐.... 동료의식이라고 해야 하나?" 툭툭. 현민에게 대답을 한 어두운 마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고, 현민도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의 네 모습이 어릿광대이긴 하지만 너는 확실히 마녀니깐. 그것도 엄청난 수준의 공격계열 마녀." 마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현민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그녀는 더 이상 말해줄 것이 없다는 듯이 원래의 자리로 그를 데려갔다. "무슨 이야기 했어?" 현민과 어두운 마녀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자, 호기심이 강한 미호가 현민을 향해 물어보았고, 주위의 사람들도 그들의 대화가 궁금했던 것인지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현민의 입에 신경을 집중했다. "글쎄요..." 딸랑. 하지만 현민은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미호의 시선을 피해버렸고, 그런 현민의 태도에 어두운 마녀가 미소 지었다. "잠시만 주목해 주시겠습니까?" 모두가 끼리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거나 서로에 대해 관찰하고 있을 때, 그들의 앞으로 다가온 페튜니아가 그들의 시선을 하나로 모았다. "본래의 예정은 하루의 휴식을 취하고 내일 시합을 하는 것이었으나 너무나 빠른 시간에 시합이 끝났기에, 8강전도 오늘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죠?" "흠... 찬성." "찬성." "반대." "찬성." .... "찬성이 11명, 반대가 5명이므로, 오늘 시합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페튜니아의 의견에 모두가 찬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대한 이들도 특별한 일이 있어서 반대한 것은 아니었기에 모두가 페튜니아의 의견에 동의하는 뜻을 밝혔다. 그들로서도 이러한 일은 빨리 끝내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상대를 불러드리겠습니다." 1회전 현술사 vs 매화일검 2회전 체리플랑 vs 무당 3회전 나 vs 투광 4회전 싸울아비 vs 마검 5회전 미호 vs 바람의 테이머 6회전 마녀 vs 검제 7회전 성자 vs 죽음의 사제 8회전 소수마녀 vs 검후 "입니다." 안내를 하고 있는 페튜니아는 호칭부터 이름까지 모두를 설명했지만 그것을 듣고 있는 현민은 자신이 기억하기 쉬운 것만 받아서 대전표를 만들어 버렸다. "지금 바로 시작할테니 현술사 엠페러님과 매화일검 남궁성님은 경기장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저벅저벅 사뿐 현술사와는 달리 경공을 사용한 매화일검은 멋진 모습으로 경기장에 올라왔다. 각자 위치를 잡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드디어 시합을 알리는 페튜니아의 음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시작하세요!" 샤릉 매화일검의 검이 맑은 소리를 내며 검집에서 모습을 들어냈고, 현술사는 그런 매화일검을 보며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하압!" 매화일검의 검에서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고, 현민의 얼굴이 놀란 표정으로 바뀌었다. 정말로 무협지처럼 꽃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매화?' '아니, 검의 잔상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저게 환상이라고?' 또 다른 자신이 환상이라고 했지만 검이 지나가는 자리에 남는 그것은 현민의 눈에 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검이 비추는 빛으로 인해 시각적인 착각이 일어나는 거다. 검이란 것은 반사성이 뛰어난 물질이니, 작은 빛도 반사시킬 수 있겠지... 아니면 내공같은 걸로 반짝이던지.' 자신의 생각을 말한, 또 다른 인격은 조용히 경기를 구경했고, 현민은 그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했다. 챙, 채채채채챙! 매화일검의 검이 현술사를 향해 나아가려는 순간마다 쇠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며, 그의 검이 나아가지를 못했다. 그런 상황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고, 현술사는 그런 매화일검의 공격을 피하기만 할 뿐, 특별한 반격도 하지 않았다. "하압!" 툭! "끝이다!!" 거칠게 몰아붙히는 매화일검의 검에, 현술사의 끈이 끊어져버렸고, 그 때를 놓치지 않은 매화일검이 검을 깊숙이 밀어넣었다. "멈춰." "뭐?" 매화일검의 검이 현술사의 목에 닿기 직전. 그의 검은 현술사의 말을 따르듯 움직임을 멈춰버렸고, 당황한 매화일검이 검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았으나 그의 검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았다. "주인을..." "뭐, 뭐야? 설마, 실?" 당황한 매화일검이 검을 놓았으나 그의 검은 아직도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고, 그런 검을 향해 현술사가 손을 뻗었다. "죽여." 빙글. 핑! 현술사를 향하던 검끝이 매화일검에게로 돌아섰고, 화살이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현민의 눈에는 하나의 빛처럼 보일정도로 빠르게 쏘아진 검은 매화일검의 심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그는 다급히 보법을 사용하여 자리를 벗어났다. "컥! 어떻..게?" 원래의 위치에서 사라진 매화일검이 다시금 모습을 들어 낸 장소는 현술사의 등 뒤에서였다. 하지만 사라질 때와 다르게 그의 가슴에는 하나의 검이 박혀 있었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냥 죽어." 푹 털썩! 하지만 돌아선 현술사의 손이 검을 뽑아냈고, 심장에 구멍이 생긴 매화일검은 엄청난 양의 피를 뿌리며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승자, 현술사 엠페러!" 첫 시합부터 강하게 나오는 현술사 때문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다음 시합은 체리플랑 대 무당(巫堂)이신 박현군님의 대결이 있겠습니다." "무당(巫堂)? 무당(武堂)?" 첫 번째 시합을 보지 못한 현민은 페튜니아가 말하는 무당(巫堂)이 무당(巫堂)인지 무당(武堂)인지를 구별하지 못했다. "동양의 법사와 서양의 법사 대결이라..." "재미있겠군." "흠...." 하지만 모든 시합을 관찰했던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이 재미있는 것인지, 긴장했던 두 눈을 호기심으로 가득 채우며 경기장 위로 올라온 두 명을 관찰했다. 그리고 현민은 그런 그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래?" "네?" 현민의 한심하단 시선이 너무 티났던 것인지, 그의 옆에 붙어있던 미호가 그를 바라보며, 현민의 이상함을 지적했다. "왠지 한심하단 눈으로 쳐다보길래..." "아아..." 그제야 자신이 너무 티냈다는 것을 느낀 현민은 다시금 행동관리를 하며, 작은 목소리로 무당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무당이란 직업은 신비한 능력을 신으로부터 받은 반성인적(半聖人的)인 존재이기 때문에 중간에서 인간의 뜻을 신에게 전달하고 소원을 성취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말하는 거에요." "그럼 사제 같은 거네?" "네." 현민의 설명을 이해한 미호가 그의 말을 간단히 정리했고, 현민은 그런 미호를 향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무당의 직접적인 능력은 사제(司祭), 주의(呪醫), 예언자인 점에 있어요. 사제란 공물(供物)과 기도로써 신의 뜻을 탐지하는 제의(祭儀) 주재의 구실이며, 주의는 주문으로 병을 고치는 의사라는 뜻으로, 질병·흉사 등의 근원이 되는 악령을 구축하는 일을 담당한답니다. 그리고 무당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신을 통하여 판단하는 길흉점복(吉凶占卜)의 예언자가 되지요." "헤에? 그런 능력이라면 엄청 약하겠네?" "물론, 아니지요." 현민의 설명을 전부 이해한 미호는 무당이란 직업을 약하게 보았으나, 현민은 그녀의 말에 강하게 부정했다. "무당의 예지능력은 엄청나지요. 잘만 활용한다면 어느 정도의 공격은 피할 수 있을 걸요? 게다가 신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니까요." 무당에 대한 현민의 설명이 끝났을 때, 시합을 알리는 페튜니아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흡!" 시작과 동시에 몸을 움직인 체리플랑이 양손을 휘둘러 두 개의 파이어 볼을 무당에게 날리며, 뒤쪽으로 물러나며 거리를 만들었다. "무언(無言)?!" 도대체 어떠한 방법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체리플랑은 시동어를 내뱉지 않으면서도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하나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두개의 마법을 무언(無言)으로 실현시키고 있었다. 스윽... 펑!펑! 그녀가 무언으로 날려보낸 마법들은 무당의 몸을 맞추지 못한 채 바닥만 부셨고,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는 무당의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허공에 떠도는 길 잃은 존재들이여, 대지에 잠자는 사악한 병마들이여, 그대들의 말을 듣는 자로서 그대들에게 부탁합니다. 우리의 존재를 거부하는 적에게 우리의 뜻을 알려주소서!" 먼지 속에서 들려오는 무당의 목소리에 주위의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스스스.... 네모반듯했던 경기장에 땅이 울퉁불퉁 솟아올랐고, 흙먼지를 대신한 안개가 주변의 시야를 차단했다. 거기에 더하여 음습한 기운까지 흘러나오니, 흰색으로 되어 있어 깨끗한 분위기를 자랑하던 경기장은 순식간에 공동묘지로 변신해 버렸다. "꺄악! 무서워~." 딸랑딸랑... "저, 저기 미호양?" 주변의 호러틱한 분위기에 잔뜩 긴장한(?) 미호가 현민의 품으로 안겨 들어갔고, 당황한 현민은 자신의 품에 달라붙은 미호를 때어놓으려 했다. '즐기는군.' '즐기고 있어.' '너무 티 나는군...' '저런 모습으로 무섭다니....' 미호를 때놓기 바쁜 현민은 알지를 못했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주변의 사람들은 미호의 엉덩이에 달려있는 여섯 개의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에취! 에취! 에취!" 꼬르르륵! 긁적긁적... 한편, 미호와 현민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 경기장 위에 있던 체리플랑은 멈추지 않는 재채기와 배고픔, 그리고 간지러움으로 인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죽은 자를 안내하는 사신이시여, 저에게 죽음을 안내하도록 해 주시옵소서!" 체리플랑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이, 무당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공격을 이어나갔고, 그의 손에는 현민의 빗자루(?)와 비슷한 모양의 검은색 낫이 소환되었다. 쉭! "고통도, 상처도 없을 거예요." 현민의 빗자루와 비슷할 정도의 크기를 가진 거대한 낫이었지만, 무당은 그러한 것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듯, 오른손의 가벼운 동작만으로도 낫을 움직이고 있었다. 탁!쿠드드득! 거대한 낫을 휘두르던 그가 체리플랑을 향해 다가갈 때, 그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빨라졌다. 그가 원래의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고, 그는 속도를 더하여 체리플랑을 향해 달려나갔다. "대지의 망자들이여, 사신의 일을 대행하는 자로서 명하노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적을 구속하라!" 쿠득!콰드드득! 무당의 외침과 함께 무덤에서 솟아오른 손들이 체리플랑의 움직임을 구속해 버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그는 거대한 낫을 휘둘러 사정거리에 들어온 그녀의 몸을 베어버렸다. 사르르르륵... 하지만 그의 낫이 휘둘러진 후, 흩어지는 것은 그녀의 몸을 잡고 있던 손들 뿐이었다.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던 그녀의 몸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고, 무당의 낫도 처음의 목표를 지나 또 다른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챙! "에취! 에취!" 그녀가 다시금 모습을 들어 낸 장소는 무당의 왼편이었고, 방향을 바꾸었던 무당의 낫은 체리플랑의 손에 있는 조그만한 방패에 막혀있는 상태였다. "무언(無言)?" 첫 번째 마법에서 시동어를 못 들었다고 생각했던 무당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시동어를 못 들었다는 것은 그녀가 정말로 말없이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에취!" 그리고 체리플랑은 아직까지 재채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無言)마법이라니..." "에취! 에취!" 꼬르륵.... 마법계열 중에 강한 직업을 골라보라고 한다면 그 중 하나가 언령사였다. 언령사란 직업은 마법을 명령어만으로 하기 때문에 딜레이가 없다는 가장 큰 장점을 가진 직업이었다. 물론, 딜레이가 적은만큼 데미지 또한 적지만 명령어만으로 마법이 사용된다는 것은 그러한 단점을 충분히 덮어줄만 했다. 이러한 직업과 반대로 마법사랑 직업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딜레이가 길다. 그러한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것이 메모라이징이었으나 그것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었고, 일정 수준 이상은 메모라이징을 할 수 없었기에 이것도 최선의 방법은 되지가 못했다. 그러한 싸울아비에서 체리플랑이 무언마법을 사용했으니, 어떻게 보면 그것은 최강의 존재란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딜레이가 없고, 파괴력은 최상이었으니, 동등한 입장일 경우 그녀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체, 에취! 인지..." 그동안 무언으로 마법을 사용하던 체리플랑은 멈추지 않는 재채기까지 참아가며 마법을 사용하였고, 그동안의 괴로운 표정이 아닌 편안한 얼굴로 돌아왔다. "에취! 뭐, 에, 에취!" "상황 역전인가요?" 편안한 얼굴이 된 체리플랑과 반대로, 무당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재채기가 나오고 있었고, 두 손은 온몸을 긁고 있는 중이었다. "어릿광대님을 위해 준비해둔 마법인데, 벌써 사용할 줄이야...." 흠칫! 체리플랑의 시선이 경기장 아래에 있는 현민에게로 향했고, 그녀의 눈빛과 마주한 현민은 고양이에게 잡힌 생쥐처럼 일순 몸을 굳혔다. "자~, 그럼 끝내 볼까요?" 그녀의 선언을 들은 모두는 어떠한 마법을 사용할까 긴장했지만 체리플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무당을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체리플랑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경기장 위에는 무당의 재채기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털썩! "에취..." 끊임없이 온몸을 긁으며 재채기를 하던 무당의 행동이 느려지던가 싶더니, 어느순간 힘없이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바닥에 넘어진 무당은 손만 꿈틀거릴뿐, 모든 행동을 멈춰버렸고, 간간히 나오는 재채기는 그의 생명을 갉아먹는 기침처럼 들렸다.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 "마법을 사용한 건가?" 그녀가 무언(無言)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녀가 어떠한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눈치 챘을 뿐, 왜 무당이 쓰러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너는 알고 있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는 가운데, 미호의 시선은 그녀의 옆에 있는 현민에게로 향해졌다. 현민 역시 뛰어난 마법사이기에 어느정도 알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바라보는 현민은 체리플랑과 눈을 마주하고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단한 마법이었어요." 딸랑... 미호의 생각대로, 현민은 체리플랑의 마법을 파악하였고, 그것에 대해 감탄하고 있는 중이었다. "호오? 어떤 마법을 사용했는지 아시는 거예요?" 또각또각 너무나 확연한 결과 때문에 체리플랑의 승리는 진작에 결정나 있었고, 체리플랑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현민을 향해 다가왔다. "제 생각이 맞다면 당신은 포이즌 마법을 사용했을 거예요. 포이즌 마법의 특징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거죠. 생명력을 1이 될 때까지 깎아먹는 마법이니까요." "정답~." 씽긋 답을 맞춘 학생을 칭찬하듯이 체리플랑은 현민을 향해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민의 정답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2서클의 포이즌이 이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을 리는 없으니 다른 보조마법을 사용했겠죠? 음... 당신은 어떤 것을 썼을지 모르지만 저는 힐을 사용했을 것 같아요. 힐이란 것은 세포의 움직임을 활성화시켜 상처를 회복시키는 마법이니까요." "포이즌 마법에 힐 마법?" 현민의 설명을 듣고 있던 미호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민이 설명해 주는 힐 마법은 포이즌 마법과 전혀 상관없게 생각되었고, 능력도 회복을 시켜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회복할 때에는 세포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로 하죠. 하지만 세포 스스로가 에너지를 만들 수는 없기에 혈액이 에너지가 될만한 것들을 옮겨 준답니다. 혈액이 순환하는 이유이죠." "조금더 설명을 쉽게 하자면 힐이라는 마법에는 혈액순환을 활발히 하는 부과적인 효과가 있다는 얘기에요." "아하!" 현민의 설명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던 미호는 체리플랑의 설명을 듣고서야, 현민의 말이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있었다. "역시 대단하네요. 한번에 맞추다니." "설마요... 저는 전부 말하지 않았는데요?" 체리플랑의 칭찬을 현민이 받아치자 웃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살짝 굳어버렸다. "에너지라는게 뱃속의 영양분이나 몸에 저장된 영양분일수도 있지만 그밖에 산소일 수도 있죠. 그렇기에 힐에 걸린 사람들은 평소보다 호흡이 가쁘고 더 많은 산소를 몸으로 공급하려고 해요. 하지만 저 사람은 그러한 움직임도 없으면서 재채기까지 하고 있으니 더욱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겠죠?" 끄덕끄덕 이번에는 현민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곁에 있던 미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저 사람은 그 스스로도 모르게 호흡을 하고 있는 중 일거에요." "맞아요. 저 사람에게 수중호흡 마법도 사용했어요.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사람을 죽일 수는 없으니까요." 패배를 인정한다는 듯이, 현민의 설명을 끊은 체리플랑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먼저 말해주었다. "수중호흡이란 마법은 인체의 모공을 열어 주변의 산소를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마법이에요. 쉽게 얘기하자면 입으로 하는 호흡을 몸으로도 하게 하는 마법이란 소리죠. 그렇기 때문에 무당이란 분이 죽지 않았을 거예요. 맞죠?" 딸랑... 모든 답을 말한 현민이 체리플랑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법사란 것이 저런 직업이었구나." "사람들이 안하는 이유가 있네..." "딴세상 사람들 같아..." "그냥 마법이나 사용하면 되지, 저런걸 생각하면서 게임하나?" 체리플랑과 현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변의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즐기기 위한 게임에서 이것저것 신경 쓰며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즐기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리허설일 뿐이에요. 당신을 위한 마법은 따로 준비해 뒀답니다. 후훗." "오오오~~!!" "와~!" "....." "흠! 흠흠! 연아 고생 좀 하겠구나." 현민을 향해 다정히 속삭이는 체리플랑의 모습에 주위의 철없는 남자들이 환호성을 내뱉었고, 아리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손녀를 향해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 "할아버지..." "쑥스러워 하기는..." "할아버지." 아리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살기가 묻어 있었고, 그것을 읽은 할아버지는 더 이상 손녀를 놀리는 것을 하지 않았다. "이제 그의 시합이에요. 게다가 상대도 투광이니, 엄청난 시합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끌끌끌, 투광이라는 아이도 상당했지... 이 늙은이에게 어찌나 조르던지."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녀와 그녀의 할아버지는 현민의 시합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리는 현민이 자신과 비슷할 정도의 실력을 가졌기에... 그리고 그녀의 할아버지는 현민의 상대인 투광이 어떠한 아이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그들이 기대하는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세 번째 시합을 하실 어릿광대님과 투광 홍연님은 경기장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페튜니아의 음성이 거대한 공간에 울려퍼졌고, 현민과 투광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경기장을 향해 올라갔다. 딸랑... "준비가 되셨으면..." "잠깐." 적당히 거리를 벌린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기에, 시합을 시작하려던 페튜니아는 자신을 말을 자르는 투광 때문에 하고자 하는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어릿광대님에게 결투를 부탁드립니다." "네?" 딸랑... 갑작스런 투광의 말에 현민의 고개가 갸웃거렸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머리에 달린 방울이 맑은 소리를 토해냈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당신과 페튜니아, 그리고 싸울아비의 싸움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것을 보았고, 당신과의 싸움을 꿈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현민을 향해 말하고 있는 투광의 눈에는 세 살 어린아이라도 눈치 챌만한 강한 투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 그의 모습은 그의 별호와 마찬가지로 싸움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싸움...이라." 두근... 두근... 현민의 머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빠르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은 투광과의 싸움에 기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템창 오픈." 스윽... 한동안 조용히 서있던 현민은 자신의 모자를 벗는 대신에 6개의 단검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뭐지?" "저건?" 인터넷상에서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아직 광고로 나간 것이 아니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현민의 실력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현민이 유명하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은 일정 지역에서만 그런 것이었고, 각 나라마다 최강의 인기를 자랑하는 존재들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꾸욱! 6개의 단검이 각각의 자리에 메여졌고, 투광은 그런 현민을 바라보며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시작하세요!" 팟! 팟! 페튜니아의 시작소리와 함께 몸을 움직인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빠르게 달려나갔다. 탁! 어느 정도의 거리가 벌려진 순간 왼쪽에 힘을 주며 몸을 멈춘 두 사람은 달려오던 스피드를 실어 오른발차기를 했다. 빠르게 올라온 두 사람의 다리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하지만 빠르게 올라온 것을 생각할 때, 허공에서 부딪힌 두 사람의 다리에서는 예상했던 것만큼의 커다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스윽! 허공에서 부딪힌 다리가 자연스럽게 땅으로 내려왔고, 발의 움직임에 맞추어 두 사람의 몸이 회전했다. 그들의 몸이 회전함에 따라 자연스레 움직인 왼발이, 서로의 몸을 향해 움직였다. 탁! 각자의 몸을 향해 움직이 두 발은, 원래의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서로 마주했고, 이번 역시 미미한 소리만 나며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같은 생각을 하며, 똑같이 움직인다라..." "응?" 현민의 대결을 보고 있던 아리는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깜짝 놀라며 한걸음 물러섰다. 그 곳에는 신선 같은 모습의 존재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부님!!" "응? 자네 왔는가?" 정해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들어올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를 어떻게 해서 들어온 것인지 신기했지만, 하연(아리)의 할아버지는 그러한 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하연의 사부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 것 같은가?" "허허, 서로의 움직임에 놀라 멈춘 것 같은데?" 경기장에 있는 현민과 투광은 왼발을 높이 든 채, 뒤돌려 차기의 자세에서 멈춰있었다. 그들의 말대로 서로의 움직임에 놀라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저 가면 쓴 아이... 발기술이 어설퍼 보이는군." "그는 발기술을 사용하지 않아요." 현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아리가 입을 열었고,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두 분의 할아버지는 수염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는 현민의 발길질은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합!" "합!" 그들이 대화를 주고 받는 사이에도 경기장 위에 있는 현민과 투광은 계속해서 몸을 부딪치고 있는 중이었다. 팍! 파파팍!팟! 팟! 두 사람의 신형이 떨어지며 다시금 거리가 벌어졌고, 두 사람은 자리에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한동안 멈춰 서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팟! 그들의 거리가 어느 정도 되었을 때, 투광이 먼저 발을 움직이며 현민의 머리를 노리고 들어갔다. 쾅! 하지만 그의 발은 그가 목표로 했던 현민의 머리에 부딪힌 것이 아니라 마주 오는 현민의 주먹과 충돌했다. "무식하군." "엄청나네." 이전과 다른 소리로 보아 서로가 엄청난 고통이 있을 법도 하건만 두 사람은 아픈 기색 하나 없이 다음 공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타탓! 허공에서 부딪힌 투광의 다리가 움직임을 바꾸며 현민의 배를 찔러 들어갔고, 그의 움직임에 맞추어 현민의 주먹도 다시금 그의 다리를 노리며 날아갔다. 하지만 현민의 주먹이 그의 정강이에 닿기 직전, 그의 다리가 접히며 현민의 주먹을 피해냈고, 옆으로 틀어지며 현민의 머리를 강하게 강타했다...... "빠르군..." "끊음이 확실하군." 빠르게 들어간 투광의 발이 현민의 머리를 강타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의 발은 현민의 머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멈춰있는 상태였다. 그의 발이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팔을 움직인 현민이 허리에 있는 단도를 뽑아 그의 발 앞에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스윽! 공격할 것 같았던 투광의 다리가 움직임을 멈추자, 현민의 단도가 움직이며 그의 다리를 베려했다. 그리고 투광의 다리가 왼손의 단도를 피해버렸을 때, 오른손을 움직인 현민이, 허리에 꽂혀있던 또 다른 단도를 뽑아 투광의 몸을 빠르게 베어갔다. "흡!" 한순간 호흡을 멈춘 투광이 자세를 낮추며 현민의 일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현민의 공격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발을 길게 뻗어 현민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그의 발에 걸린 것은 현민의 왼쪽다리 뿐이었고, 현민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리를 길게 뻗은 탓인지 그의 몸은 절반 이상 돌아가 있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현민은 오른쪽 다리로 균형을 잡으며 왼쪽 뒤꿈치로 투광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 타탁! 현민의 발이 투광의 머리에 닿으려는 순간, 오른손을 들어 올린 투광이 그의 발목을 잡아버렸고, 현민의 발은 투광의 손길에 따라 그의 머리를 비켜, 땅으로 내려왔다. 현민의 발을 땅으로 옮기는 것과 동시에 왼손으로 땅을 짚은 투광은, 물구나무를 서듯 두 발을 곧게 폈다. 퍽! 퍽! "큭!" "컥!" 빠르게 올라온 투광의 발이 현민의 턱을 강하게 쳐 올렸고, 투광이 발을 뻗는 사이에 움직인 현민이, 오른쪽 무릎으로 투광의 명치를 강타했다. 두 사람의 공격이 정확히 들어갔기에, 그 둘은 이어지는 공격을 하지 못한 채 충격을 다스려야만 했다. 비틀... "쿨럭!" "대단할 줄 알았는데, 엄청 시시하네...." "겨우 저 정도의 실력이라니, 한심하네." 경기장에 있는 두 사람의 싸움은 영화의 그것처럼 멋있어 보였으나, 그들이 있는 장소가 가상현실인 것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시시한 싸움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사부님...." "참고, 지켜 보자구나." "저들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싸우는 중이니, 저들의 생각 따위는 신경쓰지 말거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지는 몰라도, 그들이 바라보는 현민과 투광의 싸움은 본인의 능력만으로 싸우는 싸움이었다. 퍽!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충격을 다스린 두 사람은 다시금 붙어서 싸우고 있었다. 퍼퍼퍼퍽! 곧게 뻗어진 현민의 주먹이 투광의 얼굴을 때리려는 순간, 그 앞을 가로막은 투광의 왼팔이 현민의 주먹을 안쪽으로 쳐 냈고, 현민의 오른쪽으로 커다란 틈이 만들어졌다. 이 틈을 놓칠 리 없는 투광이 현민의 오른쪽을 공격하려 했다. 슥 안쪽으로 튕겨진 오른손으로 인해 몸에 틈이 생긴 현민은 그 틈을 막기 위해서, 오른발을 앞으로 한 채, 왼발과 오른발의 뒤꿈치를 살짝 뒤틀었다. 너무나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그 행동으로 인하여, 타의(他意)로 인해 반쯤 돌아갔던 그의 몸은, 자의(自意)로 완전히 돌아버렸다. "시작이다." "드디어..." 현민의 몸이 절반 이상 돌아가자, 페튜니아와 아리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의 싸움을 알고 있는 그녀들은 지금의 동작이 어떠한 것의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응..스윽. 반쯤 돌아가 있는 현민이 양 손에 무기를 빼어들었고, 그렇게 시작된 현민의 움직임은 그녀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 만의 춤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훙! 흠칫! 몸을 돌린 현민이 자세를 낮추자 그의 머리위로 투광의 주먹이 빠르게 지나갔다. 한편, 아슬아슬한 차이로 현민의 머리를 때리지 못한 투광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품 안에 있는 현민에게서 자신을 노리는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팟! 스윽! 스윽! 현민의 기운을 느낀 투광이 빠르게 손을 빼내자, 그의 팔이 있던 자리로 현민의 오른손에 들려진 송곳이 찔러 들어왔고, 이어지는 현민의 왼손이 그의 옆구리로 들어왔다. 현민의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면 가볍게 맞아줄 수도 있었지만, 현재 현민의 손에는 날카로운 단도가 들려져 있었고, 그의 팔꿈치에도 끝이 뾰족한 검집이 매달려 있었기에, 가벼운 생각으로 맞아줄 수는 없었다. 타탁! 두 발을 움직인 투광이 잠시 공격을 포기한 채 뒤로 물러났고, 현민은 그런 기회를 놓치기 싫다는 듯이 투광의 신형을 따라 움직였다. 팟!스윽! 현민의 오른손에 들린 송곳이 그의 몸을 노리며 찔러오자, 다급히 손을 들어 올린 투광이 그의 송곳을 잡아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현민의 왼손에 들려진 단도가 그의 팔을 노리며 날아오자 그는 잡았던 송곳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현민의 왼손에 들린 단검은 투광의 팔을 자르지 못한 채 높이 솟아올랐고, 투광은 그 틈을 타 현민의 왼쪽 옆구리에 발차기를 넣었다. 스윽... 스앙! 하지만 그가 현민의 왼쪽 옆구리를 노리며 오른발을 들어 올렸을 때는 현민의 오른손에 들린 송곳이 그의 목표에 자리잡고 있었다. 챙!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민의 송곳은 투광의 각반에 부딪혀 버렸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투광은 다리를 회수하며, 현민의 신형을 잡으려 했다. 탁! 하지만 그의 발이 땅에 닿는 것과 동시에 현민의 신형은 다시금 정면을 향해 있었고, 현민의 양 팔은, 쭉 뻗은 투광의 팔을 노리며 날아오고 있는 중 이었다. 싹! 현민의 단검 때문인지, 쭉 뻗었던 그의 두 손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고, 대신 그의 발이 현민의 몸을 노리며 곧게 펴졌다. 갑자기 날아오는 발에 놀란 현민은, 몸을 옆으로 비틀었고, 자신의 눈앞으로 스쳐지나가는 발을 잘라버리려는 듯, 왼손에 들린 단도를 빠르게 휘둘렀다. 스윽!팟! 하지만 투광의 발은 현민의 손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현민의 단도가 투광의 발이 있던 자리에 도착했을 때쯤, 이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자신의 움직임이 한발 늦었다는 것을 느낀 현민은 왼쪽으로 몸을 돌렸고, 투광의 머리를 향해 왼쪽 팔꿈치로 가격하려 했다. 팟! 하지만 현민이 노리던 자리에 투광의 머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그의 머리를 향하여 투광의 왼발이 날아오고 있었다. 스윽! 한 바퀴 돌았던 현민의 신형이 한 번 더 돌았고, 그의 오른손에 있던 무기가 송곳에서 단검으로 바뀌었다. 퉁! 현민의 머리를 목표로 했던 투광은 자신의 발이 상대의 검면에 닿자, 신형을 회수하며 그의 하체를 공격했다. 탁! 현민의 신형이 뒤로 물러났고, 투광도 현민과 마찬가지로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만들었다. "불발..." "..." 현민만의 춤을 기대하던 두 명의 여성은 그의 춤이 실패로 끝나자 상당히 아쉬워했다. 툭. "걱정 말거라. 네가 보고자하는 것은 지금부터 시작인 것 같으니..." 어깨에 놓여진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린 아리는 할아버지의 위로를 들으며, 아직 끝나지 않은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윽. 두 사람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중이었고, 현민은 양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원래의 위치에 넣었다. 그리고 투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타탁... 탓! 탓! 탓! 빠르게 달려 나가던 현민이 몸을 비틀며 손을 위로 했고, 허공을 향해 몸을 띄었다. 그의 손이 바닥에 닿았고, 그의 몸은 다시금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 허공으로 튕겨 오른 현민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그의 무릎이 부드럽게 접히면서 강하게 튕겨졌다. "덤블링?" "시작이다!" 몇 바퀴 돌지도 않았지만 현민의 신형은 이미 투광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합!" 현민이 도착할 위치와 타이밍을 생각한 투광은 그 기회를 살려서 강한 발차기를 했지만 그의 앞에 도착한 현민의 몸이 순간적으로 정지하면서 그의 발차기는 허공을 스쳐지나갔다. 투광의 발차기가 지나가고 나서야 멈췄던 현민의 몸이 그에게로 날아갔다. 촤아악! 마지막 회전에서 몸을 비튼 현민은 왼손으로 땅을 짚으며 안정적으로 자세를 낮추었다. 방금 전의 무리한 움직임으로 순간 균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투광의 발이 빨랐기에 망정이지 그의 발이 조금만 느렸어도 현민의 몸을 스칠 뻔 했다. 현민으로서는 무리한 도박에서 대박을 건진 것과 같았다. 딸랑... 한순간이지만 현민과 투광의 시선이 마주쳤고, 투광은 현민의 몸에서 방울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스윽... 스윽... 그리고 멈춰졌던 두 사람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팟! 파파팟! 회전하기 시작한 현민이 투광의 몸을 공격해 들어갔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민의 공격을 끊지 못한 투광은 손을 바삐 움직이며 그의 공격을 막아갔다. 타타타타타탁! 현민의 두 손과 발은 투광의 손과 발에 의해 막혔지만 물 흐르듯 스쳐지나가며 현민의 회전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온 몸에 달려 있던 네 개의 무기가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현민의 회전도 한층 가속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탁! 채챙! 타탁! 탁! '어, 어떻게 이런 움직임을...!!!' 오른쪽으로 도는가 싶던 현민의 신형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며 왼쪽을 공격해 왔고, 회전하는 그의 흐름을 막았다 싶으면, 자연스레 반대로 회전하며 그의 회전을 도와주는 것처럼 되고 있었다. 우득! '아무리 빨라도 두 개의 팔로만 공격한다면!!!' 이를 악문 투광이 뒤로 물러나는 두 발에 힘을 주었고, 두 눈을 부릅뜨며, 현민의 공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허허, 점점 재미있어 지는구나." 겨우겨우 막아가던 투광의 손이 점점 여유롭게 변해갔고, 한층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타탁! 현민의 양손에 달린 무기가 끊임없이 바뀌며, 투광을 압박해 들어갔으나, 현민의 손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투광은 그러한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아리나 페튜니아처럼 무기를 사용한다면 모르지만 그의 무기란 두 주먹이었고, 그의 무기가 부딪혀야하는 것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멋...져." "대단하다...." 현민의 움직임이 한층 빨라지고, 그것을 막아가는 투광의 손도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자, 그들의 싸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회전하는 현민의 움직임은 춤사위 같았고, 그런 현민의 공격을 막아가는 투광의 손놀림은 영화속의 주인공 같았기 때문이었다. 타타탁!팟!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은 공방은 투광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기면서 끊겨 버렸다. 현민의 공격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던 투광이 그의 팔을 잡으며 허공으로 몸을 띄었다. 스윽... 투광의 점프가 높아서인지 아니면, 현민이 힘을 주고 있어서인지, 허공에 몸을 띄운 투광은 현민의 팔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후웅! 현민의 팔 위에 올라선 투광이 그의 머리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한손(오른손)은 자신에게 구속되어 있는 상태였고, 다른 손(왼손)은 그 손(오른손) 밑에 있었으니, 자신의 공격을 막을 수단은 더 이상 없었다. 툭! 그의 공격이 성공하려는 순간, 현민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떨어뜨렸다. 움찔! 공격을 하고 있던 투광은 갑작스런 현민의 움직임에 몸을 움찔했으나, 하고 있던 공격을 멈추거나 바꾸지는 않았다. 스윽... "아!" 손을 움직인 현민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투광의 손을 역으로 잡았고, 하체를 낮추고 상체를 숙이며, 그의 몸을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허공에서 균형을 잡고 있던 투광의 신형은 현민의 손길로 인해 무너져 버렸고, 그의 공격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팟! 투광이 땅으로 떨어지기 직전, 왼손으로 땅을 짚은 현민은 자신의 몸을 수직으로 세웠고, 투광의 몸이 땅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무릎으로 그의 머리가 있는 부분을 노리며 쓰러졌다. 퍽!! "큭!" -------------------------------------------------------------------------------- 현민의 무릎이 투광의 얼굴에 정확히 꽂혔으나, 신음을 내뱉은 것은 투광이 아닌, 공격을 한 현민 스스로였다. "블링크..." 팟! 탁. 뜻밖의 고통에 신형이 무너진 현민은 투광이 공격하기 전에 블링크로 몸을 피했다. "정말... 대단했어요. 저도 나름대로 싸움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림없는 것 같네요." 현민의 공격을 전통으로 받아들인 투광은 아무런 충격이 없는 것인지, 별다른 이상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더러워진 옷을 털어냈다. "싸움에서는 졌습니다." "싸움에서는?" "네. 싸움에서는요. 그리고 지금부터 저는 당신을 이기기 위해 모든 실력을 드러내겠습니다." 현민을 마주한 투광의 눈빛이 변했고, 그들의 대결은 자연스레 2차전으로 들어갔다. "맹수들의 왕이여, 맹수들의 신이여, 모든 것을 바라보는 그대의 눈을 나에게 빌려주소서." "죽은 자를 관리하는 염라국의 임금이시여! 산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미천한 존재가 어긋난 죽음을 살아가는 존재를 보내려 하니, 그를 마중할 사신을 불러주소서!" 쿠드드득!콰콰콰콰콱! 투광의 말에 대기가 찢어지고, 땅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틈에서 나타난 존재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신들이었다. 어떠한 존재는 어둠으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토끼나 노루, 호랑이 같은 동물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사신도 있었으며 바니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독특한(?) 사신도 있었다. 그렇게 모습을 들어 낸 사신들은 현민을 향해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각자의 손에 있는 다양한 무기로 현민을 노리고 있었다. "그동안 비밀로 해 왔지만 저 또한 무당(巫堂)이랍니다. 이전의 선무당과는 차원이 다르니 조심하시길...." 푸르릉!크크크크큭 호호호 죽여... 죽여... 죽여... 세로로 길게 찢어진 투광의 두 눈에서는 붉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꿀꺽! 본 모습을 드러낸 투광은, 몸 전체에서 귀기가 흐르고 있었고, 투기와 함께 광기가 흘러나오는 모습이었다. "쿡쿡쿡......" 뜻밖의 모습을 바라본 모두가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사이에, 그 긴장감의 원인과 싸우고 있는 현민은 즐거운 듯한 미소를 흘리며, 모두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만들어 주었다. "체인지." 어릿광대의 복장을 하고 있던 현민의 모습이 마녀의 복장으로 바뀌었고, 그의 얼굴에는 어릿광대의 가면을 대신한, 마녀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놀아볼까요? 쿡쿡쿡." 현민의 모습은 바뀌었지만, 장난스런 그의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짝! "그대의 마음에 답할 수 있기를..." 손바닥을 마주친 현민의 두 손에서는 작은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늘의 무구(武具)를 관장하는 신이시여! 거짓된 존재, 사악한 존재를 벌(罰) 할 무기를 내려주소서!" 투광의 손이 빛나기 시작했고, 손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사라졌을 때, 그의 손에는 거대한 언월도가 쥐어져 있었다. 후웅!! 크카카카칵! 하압! 크르릉! 손에 쥐여진 언월도를 크게 휘두른 투광이, 언월도의 끝으로 현민을 가리키자 그의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사신들이 현민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룬." "어릿광대..." "루나..." 너무나 강한 투광의 모습 때문인지,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투광의 승리가 담겨져 있었다. 스윽...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하늘의 눈으로......" 투광이 현민을 향한 공격을 시작하자, 가만히 있던 현민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번에 성공해야해.' 현민이 하고 있는 움직임.그것은 여직껏 구상만 했을 뿐, 단 한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최강의 기술이었다. '도와줘....' "대지를 바라보는 진실된 존재여...." '도와줘.' '주위를 느끼며 움직여 봐. 모든 것을 느끼려하지 말고, 나와 가까운 것들만 느끼며 몸을 움직여봐.' 스윽... "모든 죄를 판단하는 것에는 기준이란 것이 존재치 아니하나..." '그것들만 느끼고 있으면, 움직여야 하는 곳을 알려줄게...' 스윽... 수많은 사신들이 현민을 공격하고 있는 중이었건만, 그들의 낫은 현민의 몸을 스치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민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허공에 그림을 그렸고, 땅을 스치는 듯한 현민의 발걸음은 경기장의 위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말도 안돼...." "춤?" "허, 허허허....." "대, 대단하군." 수많은 사신들이 현민을 감싸고 있었기에,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많지 않은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틈새에서 움직이고 있는 현민은, 넓은 평원에서 전통적인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양손과 두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아름다운 미성(美聲 : 가면의 능력)으로 주문까지 외우니, 마치 노래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나의 존재가 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마법...진?" "설마?!!" 하늘하늘 움직이고 있는 현민의 손에서 흘러나온 핏방울이 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그림이 이뤄가는 것이 다차원 마법진인 것을 눈치 챈, 어두운 마녀와 체리플랑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건 말도 안돼! 모든 마법진을 선으로 분석하여 알맞은 조건을 찾아내야하는 작업을 인간의 두뇌가 할 수 있을 리 없어!! 게다가 정해진 움직임도 아니고, 싸우면서 그려간다니.... 이건 말도 안돼...." 털썩! 계속해서 이어지는 현민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체리플랑은 다리에 힘이 빠진 듯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렸고, 다른 사람들은 체리플랑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스윽.... "타인의 죄를 평(評)하오니......" 흑과 백으로 얼룩덜룩한 무늬가 담겨있는 색종이가 두 장 있을 때, 두 장이 수직으로 겹쳐지면 하나의 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선에서 마주한 두 색종이의 무늬가 (====)과 같이 일치할 수도 있으며, (_-_=)과 같이 엇갈리는 부분이 나올 수도 있다. 하나의 선에서 만나는 두 색종이의 무늬가 반드시 다르다거나,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색종이를 선으로 나누어 여러 방향으로 비교해 본다면 같은 무늬가 겹치는 선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이 체리플랑을 경악하게 만든 내용이었으며, 현민이 여러 개의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스윽... "그 죄의 크기를 결정하여...." "도대체 어떻게 피하는 거지?!!" 사신들의 공격이 현민의 옷조차 스치지 못하자, 투광마저 언월도를 들고 현민을 공격하고 있었으나,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눈마저, 현민의 움직임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다가올 미래를 보고 언월도를 움직였지만, 그렇게 움직인 언월도는 현민의 옷을 스치지도 않았다. "사부님?" "궁금하더냐?" 끄덕.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던 아리가 자신의 스승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뜻을 눈치 챈 사부가 조용히 미소지었다. "바둑을 할 때 가장 잘 하는 사람은 다음수를 읽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다음수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란다. 상대가 한 수 앞을 보고 있다고 하지만, 두 수 앞을 보고 있는 사람을 이길 순 없으니 말이다." 그들의 대화가 작지 않았기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경기장 위의 현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존경심마저 담아가며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아무런 것도 모른 채, 또 다른 존재가 알려 주는 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스윽..... 한참동안 움직이던 현민의 신형이 그 동작을 멈춰버렸고, 주위에 떠다니던 현민의 핏방울은 여러 개의 마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심판을 내리소서." 깡!깡!깡!깡!깡!깡!깡!깡!깡! 모든 마법진을 그린 현민이 움직임을 멈추자, 그 때를 놓치지 않은 사신들이 현민에게로 달려들었으나, 현민의 주위에는 투명한 방어막이 쳐져있는 상태였다. 수십의 사신들이 현민을 감싸버렸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있던 수많은 마법진들이 붉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스윽. "천......" "천?" 현민의 손이 하늘로 올라감과 동시에, 그의 입에서 시동어의 첫 자가 흘러나왔고, 투광과 주변의 사람들은 장난스런 현민의 모습에 긴장하며, 다음에 나올 시동어를 귀 기울였다. "...벌." 번쩍! 올라갔던 현민의 손이 투광을 향하며 땅으로 내려왔고, 두 번째 시동어와 함께 어마어마한 빛이 그들의 눈을 마비시켰다. 콰콰콰콰콰쾅!!!.... 강한 빛에 이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거대한 소리가 주위의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끝났을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춘 듯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쿡... 쿡쿡, 꺄하하하하하!!" 모든 것이 숨죽인 공간속에서 현민의 맑은 웃음이 곳곳으로 퍼져갔다. '이런 움직임이 가능하다니.... 꿈만 같아.'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서있는 현민은, 스스로의 움직임에 감탄하고 있는 중이었다. 예전 토너먼트에서 여러 유저들의 공격을 받을 때에는 또 다른 인격이 몸을 다루었기에 몰랐었지만, 지금 그의 도움을 받으면서 몸을 움직여보니, 엄청난 성취감과 이유를 알 수 없는 흥분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이정도의 움직임을 만든 것만으로 머리가 아프다니. 나도 상당히 머리가 나쁜 사람인가 보군.' 현민이 스스로의 움직임에 엄청난 만족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인격의 현민은, 이 정도의 생각만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머리로 인하여 한숨을 내뱉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은 어찌어찌해서 내가 도와줬다고 하지만, 다음에도 내가 해줄 수 있을거란 믿음은 버려라. 너와 내가 같은 존재라지만 너의 한계와 나의 한계란 것이 서로 다르니, 다음에도 이러한 움직임을 하고 싶다면 너의 인격 스스로의 한계를 높여야 한다.' '응.' 또 다른 인격이 말하지 않아도, 현민 스스로가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다른 인격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에서 상당한 고통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라?" 강한 빛으로 인해 사라졌던 시각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현민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주변의 모습에 길게 변한 머리카락(가면의 능력)만 매만졌다. "음.... 조금 과했나?" 휘이이잉~ 끝없는 대지를 자랑하던 경기장의 공간은 현민이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현민의 마법 범위가 얼마나 거대했던지, 그의 시야가 미치는 곳까지의 대지는 전부 녹아서 사라져버린 상태였고, 그 깊이 또한 모든 것이 어둠으로만 보였기에 추정이 불가능 했다. "'조금 과했나?'라뇨!!" "헤?" 모든 것이 사라진 주변을 보며, 약간의 반성(?)을 하고 있던 현민은 갑자기 나타난 페튜니아를 보며 묘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갑자기 번쩍! 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그 다음에 '사망하셨습니다.'라니요!!" 현민의 마법은 목표로 정했던 투광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했기에, 그 범위 안에 있던 다른 후보자와 페튜니아는 원인도 모르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헤~, 그런데 누나." "누, 누나?" 묘한 감탄사와 친근하게 대하는 현민에게서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페튜니아의 화났던 표정이 조금 뒤에 있을 현민의 말 때문에 불안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나 지금 마녀의 가면인데. 쿡쿡쿡." "그게 무..."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얼굴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얼굴은 핏기가 사라지며 파랗게 변해갔다. -위에는 그렇다 치지만, 곰돌이가 그려진 속옷을 입고 다니시다니.... 취향 독특하시네요. -곰돌이에서 레이스로 바꾸다니 상당히 변화가 심한데요?' "꺄아악!!!"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비명을 지른 그녀는 현민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투툭...현민의 마법으로 인해, 그가 서 있는 조그마한 땅을 제외하고는 모든 땅이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그런 좁은 장소에서 뒷걸음질까지 쳤으니, 그녀의 발에 닿는 것은 딱딱한 대지가 아니라 깊디깊은 구멍뿐이었다. "아아?" 탁! 그녀의 몸이 뒤로 넘어가려는 순간, 손을 뻗은 현민이 그녀의 팔을 잡아 힘껏 당겼다.툭... "루, 루나씨..." 현민의 손에 이끌린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의 품안에 안겨버렸고, 현민은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누나...." 페튜니아를 안고 잇는 현민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고, 현민의 품에 안긴 페튜니아는 갑작스런 상황에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카메라보고 웃어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요? 쿡쿡쿡." "서, 설마...." 현민의 품에 안겨 있던 그녀는 현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하나의 눈을 보며, 모든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털썩! 현민의 품에 안겨있던 그녀의 신형이 무너져버렸고, 현민은 그녀가 쓰러지지 않도록 허리를 잡아주었다. "오호호호호호!! 공주는 내가 데려간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마녀처럼 웃은 현민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눈)을 부셔버렸다. 스윽. "천......" "천?" "...벌." 번쩍! -사망하셨습니다.우당탕탕! 갑작스런 빛과 함께 경기장을 살피던 모든 모니터가 마비되자, 그에 당황한 운영자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지?!" "뭐야! 어서 상황 분석해봐!" "야! 이건 그쪽의 일이잖아!" 푸슉! "규완씨, 어릿광대가 최근에 사용한 마법을 살펴보세요. 미진씨는 다른 대기자들의 상태를 확인해 보시고, 전화나 도우미를 보내 지금의 상태에 대해서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재영씨는 공간에 대한 간섭이 복구되는 즉시 새로운 감시 카메라를 투입하세요! 나머지 분들은 각자가 맡은 부분에서 다른 이상현상이 나왔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넵!" 캡슐에서 일어난 페튜니아(혜진)는 당황하는 운영자들을 진정시킨뒤, 자신의 계정에서 사망기록을 삭제해 버린 후, 싸울아비 속으로 재접속 했다. "연락 완료!" "마법 분석 완료! 정보 띄웁니다!!" 등급 : 7서클 마법명 : 천벌 소모 정신력 : 500 능력 : 하늘에 있는 모든 벼락을 모아 한곳에 내리게 한다. 현재 단계 : 0 주문 :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하늘의 눈으로 대지를 바라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마법정보에, 시끌벅적하던 운영자들이 일순 입을 닫아버렸다. "이봐! 이거 사실이야?! 지금 나온 파괴력 수치는 8서클을 넘어간다고!!" "어릿광대를 6서클이라고 한 놈이 누구야?!!"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가 알려준 정보가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다. "긴급 감시카메라 투입! 영상 투영합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운영자들 사이로 커다란 목소리의 외침이 들려왔고, 그들의 시선은 정면에 배치된 거대한 스크린으로 이동했다. "크억!!" "세상에~~." "저, 저, 저, 저 새끼!!!!!" "꺄악! 멋져~.""쿠오오오오!!!" 새로이 투입된 카메라로부터 보내오는 영상은 어릿광대로 추정되는 마녀와 그들의 우상이자, 마음의 안식처였던 팀장님(페튜니아)이 뜨겁게(?) 포옹하는 장면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남자 직원들은 살기와 광기를 내보이며 현민을 욕했고, 여성 직원들은 그들과 반대로 현민의 품에 안긴 페튜니아를 부러워했다. 화면에 비친 페튜니아의 모습으로 인해 그들의 일은 잠시 뒤로 미뤄졌다. 브이~~ ㅡㅡV"우오오오!!!" "꺄아~ 귀여워!" 화면속의 현민이 두 개의 손가락을 들어올렸고, 그것을 지켜보던 수많은 남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똑같은 화면을 바라보던 여성들은 귀여운(?) 현민의 모습을 저장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푹! "억!" 고개를 돌린 페튜니아는 카메라를 보고 놀란 눈을 하였으나, 이내 현민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겨들어갔고(진실은 아니지만...), 현민은 그런 페튜니아를 안아주며, 카메라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오호호호호호!! 공주는 내가 데려간다!!" 현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카메라의 영상이 끊어져 버렸고, 제1운영실은 엉망으로 변해버렸다. "누나? 누나~~." "으응?" 커다란 충격을 받고 쓰러져 있었던 페튜니아는, 귀찮을 정도로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헤헤..." "루나...씨?" "네~." 이전과는 너무나 다른 현민의 분위기였으나, 그런 현민의 모습에서는 특별한 낯설음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어렴풋이 느껴왔던 현민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너무나도 엄청난 마법과, 그 마법 이후 갑자기 변화한 현민으로 인해, 페튜니아의 머리는 복잡해 졌다. '극도의 파괴로 인해, 그동안 억눌렸던 성격이 잠시 모습을 들어 낸 것뿐이다.' 현민 역시 페튜니아와 같은 생각으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잠들었다 생각했던 또 하나의 인격이 현민의 호기심을 풀어주었다. '너도 알다시피 천살성이란 존재는 세상에 대한 살기가 엄청나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그러한 것을 세상으로 표출하기보다 속으로 쌓아 왔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절제하기 위해서 자유로운 성격을 묶어야만 했던 것이다.' '흠... 하긴.' 또 다른 인격의 설명을 듣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상태가 이해되었다. 지금의 성격은 차갑고, 부정적이었지만, 중학교 때까지의 현민 성격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장난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보다 많은 살기를 내뿜어야만 했던 '나'는 본래의 성격 위에 살기를 올려놓고, 그 위에 절제하는 성격을 만들어 나 스스로를 다스렸다. 하지만 극도의 파괴와 폭력으로 인해 그동안 싸여있던 살기가 일순간 무너져 버렸고, 그럼으로 인해 잠자고 있던 성격이 모습을 들어 낸 것뿐이다.' '음.... 과연. 미친놈이 괜히 미친놈은 아니군.' '하아.......' 너무도 장난스러운 현민의 태도 때문인지, 또 다른 인격의 한숨은 평소보다 더욱 길게 이어졌다. "처음 쓰는 마법이라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고개를 흔드는 페튜니아에게 현민은 변명 아닌 변명의 말을 내뱉었고, 그의 변명을 들은 페튜니아의 얼굴은 사납게 변해갔다. "마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의 태도는 뭐예요? 저하고 장난하시는 건가요?!" "지금의 나는 싫어요...?" 글썽글썽... "으윽!" 제자리에 쪼그려 앉은 현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페튜니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현민을 향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네? 지금의 저는 싫은가요?" 두근! 두근! 두근! 마녀의 로브 사이로 보이는 현민의 쇄골은 그녀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촉촉이 젖어있는 현민의 입술은 그녀의 목을 메이게 만들었다. "하아.... 지금의 당신도 좋아요." "헤헤..." GIVE UP~. 너무나 달라진 현민의 모습에, 결국 페튜니아가 두 손 들어버렸다. 이전의 현민이라면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모습의 현민에게 그녀가 당해낼 수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보다 이 넓은 공간을 어찌 해야 할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파괴된 공간.아무리 본 서버와는 다른 공간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서버의 일부분인 것은 틀림없었고, 이정도의 파괴상태라면 모든 운영자가 3일 이상을 날 새야 하는 정도였다. "내가 해줄까요?" 그녀의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던 현민이 입을 열었고, 페튜니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팟! "눈 감고 있으세요~~." 페튜니아가 승낙을 하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인벤토리에서 마녀의 빗자루를 꺼내며 허공에 몸을 내던졌다. 스윽... "어둠속에 잠자고 있는 자여, 눈을 봉인당한자여. 그대의 주인이자, 아버지인 나의 피를 받아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봐라. 너의 시선에 맞추어 세상을 판단하고, 너의 의지에 맞추어 모든 것을 부수어라." 자신의 손가락에 상처를 낸 현민은 피가 흐르는 손으로 낫의 옆면을 스다듬었다. 붉게 흘러나오는 현민의 피가 낫의 면에 묻어났고, 마녀의 빗자루는 자신에게 묻은 현민의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잉...... 현민이 사용한 마법의 파괴력이 엄청났던지, 그가 만들어 놓은 구멍은 아직도 끝을 보이지 않고 있었고, 그의 몸은 계속해서 어둠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그와 함께 떨어지는 마녀의 낫은 쇠가 갈리는 듯한 소리를 퍼트렸고, 듣기에 좋지 못한 소리가 주변을 메아리치며 울려퍼졌다. 쩍! 쩌저저적! "일어나라! 깊은 잠에서 깨어나 세상을 바라봐라!!" 번쩍! 마녀의 빗자루에 생겨났던 금이 위아래로 갈라지면서 거대한 눈이 모습을 들어냈고,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마녀의 빗자루 이곳저곳에서 그것과 비슷하게 생긴 작은 눈들이 모습을 들어냈다. 이전의 모습과 완전히 바뀐 마녀의 빗자루는 수백 개의 눈이 달린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으흐흐흑!!! 외출이다~~~!!!! 캬캬캭!또르르르르.... 잠에서 깨어난 시간이 짧아서 그런 것인지, 또 다시 모습을 들어낸 마녀의 빗자루는 상당히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눈만 달린 빗자루에게서 표정이 나올 리가 없겠지만 그의 눈이 그리고 있는 반달의 모습을 보면, 지금의 상황을 상당히 좋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히히히! 내가 할 일이 뭐지? 흑흑흑!! 기쁜 마음으로 거부할게요. 크큭!!! 깊은 어둠을 향해 떨어지고 있던 마녀의 빗자루는, 현민과 자신의 몸을 허공에 띄웠다. 활짝 열린 거대한 눈에서는 세 개의 눈동자가 번갈아가며 모습을 드러냈고, 활짝 열린 거대한 눈에서 세 개의 눈동자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또르륵!번쩍! 거대한 눈의 눈동자가 파란색으로 선택되었고, 그 눈동자에 맞추어 마녀의 빗자루 전체에 있는 눈동자들도 전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마녀의 빗자루(S급) 설명 : 마녀 루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빗자루, 너무나 특별한 나머지 이름만 빗자루일 뿐 빗이 달려있지는 않다. 드워프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져 특히 강한 공격력과 내구력을 가지고 있다.(측정불가) 마녀 루나의 무식한 방식이 추가되어 있어 싸이코적인 성향을 가진 에고무기. 속성 : 빙(氷) 공격력 : ??? 내구력 : ??? 조건 : 마녀 루나만 사용 가능. 거래 불가. -크캬캬캬캬! 내가 정말 싫어하는 얼음이구나~! 좋다! 좋아! 크하하하하!!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마녀의 빗자루는 언제나와 같이 정신없는 모습이었고, 시끄러운 정신파로 주변에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있는 중이었다. "빗자루님?" -네~, 주인님. "여기 커다란 구멍을 땅으로 바꿔주시겠어요?" -뭐? 허공에 뜬 상태로 거대한 구멍을 바라보던 마녀의 빗자루는 부릅떠진 수백 개의 눈을 일제히 깜빡였고, 잠시 후, 현민을 마주보았다. -크캬캬캬캬!! 주인새끼가 드디어 미쳤군요! 이 몸에게 파괴도 아니고 창조를 하라니! 으흑흑흑흑... 주인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어 너무나 기쁘구나. 크캬캬캭!!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마녀의 빗자루는, 성격이 바뀌어버린 현민 마저 화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현민의 화가 한계치를 넘어갔고, 그는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곧게 핀 후, 진지한 눈으로 마녀의 빗자루를 바라보았다. -뭐, 뭘 하시려고 주인님? 나는 그런 짓이 정말 좋아요! 크흐흐흐흑... "해 주시겠죠?" -우히히히히! 네 놈 같으면 해 주시와요~. 분위기 파악 못하는 마녀의 빗자루가 결국 사고를 쳤다. 푹! 푹! 푹! -끄악! 끄억! 끄르르르륵! 곧게 세워진 현민의 손가락이 마녀의 빗자루에 달려있는 눈들을 쿡쿡 찔러버렸고, 그의 손가락은 한마디 이상씩 들어가고 서야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다. -마, 만들께요!!! "헤헤, 정말요?" -크크크, 네... 흑흑. 미친 빗자루조차도 현민에게는 한수 물려야 했고, 승리(?)를 차지한 현민은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맑은(?) 미소가 보기 싫었던 것인지, 그를 태우고 있던 마녀의 빗자루는 현민을 허공에 놓아둔 채 아무런 말도 없이 모습을 감춰버렸다. "윈디아!" "네~, 오라버니." 끝도 보이지 않는 구멍을 향해 또 다시 떨어지고 있던 현민은 주변의 바람을 즐기며 윈디아를 불렀다. 바람을 즐기는 것도 좋았지만, 끝도 없어 보이는 이곳에서 떨어지면, 올라오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라버니, 왜 안 부르셨어요? 얼마나 심심했다구요." 떨어지는 상황중임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모습을 들어 낸 윈디아는 현민의 품에 매달려 볼을 부비기에 바빴다. 혼자서 소환된 적이 거의 없었던 윈디아는, 다른 정령들이 없다는 그 행복감에, 만취되어 있는 상태였다. "윈디아? 일단, 저 위까지 올려주지 않을래?" "네." 현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떨어지고 있던 그의 신형이 허공에 멈추었고, 그의 신형을 받쳐주는 바람에 몸을 맡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페튜니아가 있는 조그마한 땅이 모습을 들어냈다. 탁 윈디아를 품에 안고 땅에 내려선 현민은 아직까지 눈을 감고 있는 페튜니아에게 입을 열었다. "조금만 기다리..." -주인새끼님~~!!! "쿡!" "풋!" 땅에 도착한 현민이 완벽한 문장을 말하기도 전에, 그의 앞에 도착한 마녀의 빗자루가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현민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네 말대로 다 했습니다. 쿠헤헤헤. 마녀의 빗자루에 달려있는 눈동자들이 반월을 그리고 있었고, 가면속에 있는 현민의 눈도 반월을 그리기 시작했다. "윈디아, 잠시 페튜니아한테 가 있을래?" "네~." 현민의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그의 품에 안겨있던 윈디아가 페튜니아의 옆으로 자리를 이동했고, 현민의 손은 마녀의 빗자루가 눈치채지 못할만큼 조심스럽게 움직여 그의 몸을 잡아챘다. -주, 주인? "땅이 조금 끈적거리는 것 같지 않니?" -우헤헤헤헤, 그게 궁금했냐? 그거 내 침입니다. 푸히히히. 마녀의 빗자루가 하는 말을 들은 현민과 페튜니아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죽어." 푹! 푹! 푹! 푹! 푹! -끄억! 컥! 윽! 꺄악! 끄어어~ "거짓된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거짓된 판단을 내렸으니, 그대의 존재를 의심하여, 나 이 자리에서 그대의 의지를 거두어 간다. 편안한 어둠속에서 안식을 얻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어, 다시한번 바라볼 세상을 위해 떠진 눈을 감아라!" 푹! 푹! 푹! -아아아아아악!! 마녀의 빗자루를 발로 밟은 현민은, 한손으로는 마법진을, 그리고 또 다른 한손으로는 마녀의 빗자루에 달려있는 눈을 찌르며 주문을 외웠다. 촤르륵!! 마법진에서 생겨난 쇠사슬이 마녀의 빗자루를 구속했고, 마녀의 빗자루는 쇠사슬에 이끌려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주, 주인님!!! "응?" -psycho of psycho~ I'll be back........ 마녀의 빗자루 끝부분의 살짝 올라간 부분은 얼핏 보니 엄지손가락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에 발끈한 현민이 다급히 손을 뻗었으나, 마녀의 빗자루는 이미 마법진 속으로 사라져 버린 후 였다. "쿡쿡쿡." "꺄르르르. 오라버니가 당했네요." "칫!"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고, 페튜니아는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섞여있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동안 아무런 소리 없이 그 커다란 구멍을 매웠다는 것은 현민이 가진 무구가 엄청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누나, 나 잘했죠?" 어느새 다가온 현민은 페튜니아를 향해 친근히 다가가며 얼굴을 내밀었다. "상 주세요." "사, 상?!" "오라버니!" 페튜니아가 놀라고, 윈디아가 놀랬으나, 현민은 그녀들의 반응에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은 채 두 눈을 감고 얼굴을 내밀었다. 두근... 두근... 두근...꿀꺽! 살짝 감긴 페튜니아의 얼굴이 현민과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윈디아의 눈초리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5cm...3cm...2cm...1cm...0.5cm... 이미 두 사람의 코가 닿은 지는 오래되었고, 이제는 서로의 입술이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번쩍! "싫어~! "팟! 그들의 입술이 만나기 0.2cm정도를 남겨놓았을 때, 감겨있던 현민의 눈이 번쩍 떠졌고 그와 동시에 그의 신형이 땅으로 꺼지듯 순식간에 낮아지며 다가오는 페튜니아의 입술을 피해버렸다. 현민이 몸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윈디아의 날카로운 비명이 그의 귓가를 흔들었다. "응?" 한편, 예상했던 목적지(...)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이상함을 느낀 페튜니아는 감겨진 두 눈을 살짝 뜨며 주위를 살펴보았고, 텅 비어버린 목적지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현민의 장난에 속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죄, 죄송해요." "응?" 페튜니아가 붉어진 얼굴로 사라진 현민을 찾고 있을 때, 그녀의 밑에서 현민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쪽을 향하여 고개를 돌린 페튜니아는 빨갛게 익은 얼굴로 우물쭈물하고 있는 현민을 볼 수 있었다. '본래의 성격으로 돌아왔나 보군.' '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한거야?! 말렸어야지!' "죄, 죄송해요. 잠깐 정신이 어떻게 되버려서..." 정신을 차린 현민은 또 다른 자신과 대화하는 동시에 페튜니아에게 사과의 말을 건냈다. 그 조차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몸을 움직인 것은 분명 자신의 인격이었고, 그러한 행동을 한 것도 자신이 분명했다. 모든 기억이 생생한 현민은 조금 전의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행동에, 붉어진 얼굴을 감춰야만 했다. "조금 전은...?" "죄, 죄송해요. 마법의 영향으로...." "하아..." 현민의 변명은 말도 안되는 것이었으나, 그녀 스스로도 부끄러운 행동을 하였기에 별다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헤헤, 오라버니~." 현민과 페튜니아가 얼굴을 붉힌 채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을 때, 그들의 사이에 있던 윈디아가 현민의 품으로 안겨 들어갔다. "죄송했습니다. 페튜니아님." "아, 아뇨..." 윈디아를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페튜니아를 향해 정중히 사과의 말을 건냈고, 페튜니아는 원래대로 돌아온 현민의 모습에 의미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차원 복구 완료! -카메라 복구 완료! -대기중이던 유저 부활 준비 완료!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운영자들의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지자마자, 빗자루의 침으로 인해 끈적거리던 대지가 이전과 같이 하얀색의 대리석으로 바뀌었다. "모든 유저들의 상태를 어릿광대의 마법사용 2초 전으로 하여 부활시키세요." -네! 허공에 울려퍼지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의 주변으로는 현민의 마법에 사망했던 유저들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 "죄송했습니다. 저희도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이 발생하는 바람에...." 그들의 앞에 선 페튜니아가 모두에게 사과의 말을 건냈으나, 그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그들의 앞에 있는 페튜니아가 아니라 그녀의 뒤쪽으로 서 있는 어릿광대 현민이었다. "그 예상치 못한 일이란 것이 저기 있는 어릿광대 때문인가?"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이 페튜니아를 향해 질문했고, 그녀는 난처하단 표정으로 현민과 그를 번갈아 보았다. "네." -루나씨! 현민은, 스스로의 일로 인해 페튜니아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자 스스로가 앞으로 나가며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죽여버리겠다." 현민으로 인해 한차례의 죽음을 경험한 그는, 주위의 사람들이 물러날 정도의 살기를 풍기며 현민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그의 앞에 서 있는 현민은 그의 살기를 받으면서도 물러나거나 움직이는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쿡쿡, 할 수 있을까요?" '마음을 가라 앉혀! 마음의 균형이 무너진 지금에서는 작은 일에도 살기가 나올 수 있다!' 복잡하게 뒤엉킨 현민의 마음을 느낀 것인지, 그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인격은 다급한 음성으로 현민의 행동을 말리려 했다. 마음의 균형을 찾지 못한 지금의 상태에서 분노한다면 그 스스로가 중재하지 못할 일이 생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딸랑~. 현민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오려는 순간, 그의 모자에 달린 방울이 맑은 소리를 냈고, 현민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춰버렸다. "루나씨! 그만하세요." "자네도 그만하게. 싸움이라면 저 위에서 해도 상관없지 않은가?" 귓가에 울리는 방울소리로 인해 이미 움직임을 멈춘 현민이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페튜니아는 다급히 달려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페튜니아가 현민을 말리고 들어가자, 아리의 할아버지가 다가와 상대의 움직임을 막았다. "어서 시작하자. 죽이고 싶은 새끼가 생겼으니깐..." 주변이 일렁거릴 정도의 살기를 내뿜고 있는 그가 페튜니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페튜니아는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뜻을 물어보았다. 끄덕.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양인의 의견에 동의했고, 그녀는 현민의 팔을 놓으며 경기장 위로 장소를 옮겼다. "이전 대결의 승자는 어릿광대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는 죽음이 기록되지 않으니, 죽음의 횟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다음 대결을 하실 싸울아비 아리님과 마검 루시엘님은 경기장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페튜니아의 진행에 맞추어, 현민의 옆에 서있던 아리가 기다란 검을 들고 경기장에 올라갔다. 그녀와 함께 경기장에 올라가는 존재는, 조금전 현민을 향해 살기를 내뿜던 동양인이었다. "너의 싸움 잘 보았단다..." 경기장에 올라가는 아리를 보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옆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현민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싸울아비인 아리(하연)의 할아버지와 스승이 자리잡고 있었다. "싸울아비만큼 잘 싸우더구나." "감사합니다." 딸랑. 자신을 향한 그들의 칭찬에 현민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룬, 아까는 어떻게 한 거야?" "조금 전의 그것이 마녀의 능력인가요?" 루시엘이란 사람의 살기에 맞추어 살벌하게 변했던 현민의 모습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자마자 그의 곁으로 달라붙은 두 명의 여성은 자신들의 호기심을 해결하려 했다. 현민으로 인해 죽음을 경험했으나, 이 곳에서의 죽음은 기록되지도 않는다고 하였고, 죽음에 대한 공포나 고통 또한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이 현민을 미워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니, 지금의 그것은 마녀라기보다 마법사의 능력이에요." 체리플랑이 현민의 능력에 호기심을 나타내고 있을 때,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어두운 마녀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녀 스스로가 공격계열의 마녀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진 마법진이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여준 마법진들은 마지막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준비였을 거예요." 어두운 마녀의 설명이 이어졌고, 체리플랑은 그녀의 말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현민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이 맞아요." 싸울아비와 루시엘이 싸우고 있는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시선을 경기장에 고정한 채 입만 열어 대답했다. "정신력 증가, 서클 증가, 마법진 지속시간 증가................... 물리적 방어, 속성 저항력 마법진을 사용했답니다." 경기장을 바라바고 있는 현민은 자신이 사용했던 마법진들을 하나하나 말해주었고, 그의 말이 끝날 때 쯤, 체리플랑과 어두운 마녀의 입은 활짝 벌려져 있었다. "그, 그렇게 많은 마법진의 사용이 가능해?" "그렇게 많은 마법진을 3차원으로 구성했다고?" 분명히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었지만, 설명을 듣고 나니 더욱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현민이 몸으로 보여줬으니 특별한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쉿, 싸울아비가 싸우고 있어요." 가면의 입으로 손가락을 들어올린 현민은 두 사람을 향해 조용히 해 달라는 행동을 보였다. 스릉... "잘 봐두어라. 네가 어떻게 죽을지를 말이다." 현민을 향해 검을 뽑아든 루시엘은 살기어린 경고를 하며, 아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한테는 미안하군." "?" "내 모든 능력을 보이고 살아남은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스.... 흠칫!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의 왼손에서 하나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왼손에 새롭게 모습을 보인 검은 오른손에 있는 검은색의 검과는 반대되는 흰색의 검이었다. 오른손의 검에서는 검은색의 안개 같은 것이 흘러나왔고, 왼손의 검에서는 하얀 서광이 흘러나오며 주위를 밝혔다. 스윽.... 검에서 느껴지는 강한 힘을 느낀 아리는 처음부터 강하게 나갈려는 듯, 월하개화의 자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깨어나라, 일리아." -후아암. 주인님~. 두 개의 검으로도 끝나지 않은 루시엘은 작은 요정같은 것을 소환했다. 그의 옆에 모습을 들어 낸 작은 요정은 루시엘의 얼굴에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다. "미안, 나중에 놀아줄게. 지금은 전투다." -후웅~. 네. 루시엘의 말을 들은 작은 요정은 실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의 몸으로 들어가 버렸다. 촤촤촤촥! 루시엘의 가슴에서 시작한 검은색의 실타래는 그의 몸 전부를 감쌌고, 단단한 철갑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온몸을 감싼 갑옷은 매끄러운 곡선에 날카로운 부분이 군데군데 나와 있는 흉흉한 모습이었고, 온몸이 무기처럼 보였다. 머리를 감싸고 있는 투구에는 두 가닥의 사슬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마에서 정수리로 이어지며 길게 늘어져 있는 두 개의 사슬은 가벼운 움직임만으로도 흔들리고 있었다. "멋지다...." 경기장 밑에서도 느껴질 정도의 짙은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미호의 말대로 그의 모습은 상당히 멋있었다. "힘들겠군." "흠..." 현민의 옆에 자리잡은 두 할아버지들은 경기장 위에 있는 아리(하연)을 걱정하였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현민도, 철갑으로 둘러싸인 루시엘을 아리가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에 대해 걱정했다. 강인해 보이는 루시엘의 방어구는 쉽사리 뚫리지 않을 것 같았다. "움직인다." 팟! 싸울아비 할아버지의 말을 시작으로, 경기장에 있던 두 사람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이며 곳곳에 잔상을 남겼다. 경기장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아리의 몸놀림은 현민을 상대할 때보다 더욱 빨랐고, 민첩했다. 챙! 채채채채챙! 루시엘이 들고 있는 두 자루의 검은 모든 것을 베어버릴 듯 거칠게 움직였고, 그와 상대하고 있는 싸울아비의 검은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듯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그의 검을 차근차근 막아가고 있었다. 쉭! 흠칫! 두 자루의 검을 차근히 막아가던 아리는 갑자기 날아오는 두 자루의 철편을 피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었고, 그 때를 놓치지 않은 루시엘은 아리의 배를 걷어찼다. "큭!" "머리의 사슬이..." 루시엘의 검을 막아가고 있던 아리를 공격한 것은 그의 머리에 장식처럼 달려 있던 두 가닥의 사슬이었다. 가벼운 움직임만으로도 움직이는 그의 사슬은, 루시엘이 거친 움직임을 보일 경우 위협적인 철편으로 돌변했다. "조심해라. 지금의 나는 온 몸이 무기다." 아리가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려는 것인지, 루시엘은 넘어져 있는 아리가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 "싸울아비라는 것... 온몸을 무기로 사용하는 직업이 아니었던가? 겨우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최강이라는 칭호가 아깝군." 검은 갑옷을 걸치고 있는 그는 싸늘한 눈으로 아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과 말을 보고 들은 아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검의 손잡이를 머리위로 한 채 검끝을 배꼽 쪽으로 하여 월하개화의 자세를 잡았다. "월하(月下).... 개화(開花)." 팟! 검을 들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물론, 현민의 눈에만 사라진 것으로 보였을 뿐, 경기장 위에 있는 아리는 이전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움직이는 속도가 현민의 눈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에 그의 시야에서는 싸울아비가 사라졌다는 착각을 받은 것이었다. "호오?" "와아..." "아리가 꽃을 피우는구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루시엘과 아리의 모습은 현민의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아리의 검이 남기고 가는 잔상은 현민의 눈에 생생히 들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검의 잔상은, 현민의 머릿속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채채채챙! 아리의 몸놀림이 바뀌자, 루시엘은 더 이상 아리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리도 마찬가지였다.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아리의 검은 루시엘의 검을 피해 그의 몸을 가격했지만,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은 아리의 검이 뚫기에는 매우 단단했다. "어둠속에 물들어라!!" 두 개의 검을 바쁘게 움직여 아리의 검을 막아가던 루시엘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을 땅에 깊이 찔러 넣었다. 하지만 그의 검이 땅에 박히기 직전, 그의 검과 땅 사이에 작은 웜홀이 생겨나며 그의 검을 집어 삼켰다. 스팡!팟! 팟! 팟! 팟! 팟! 팟!.......... 그의 검은 자루 있는 부분까지 깊이 들어갔고, 검이 모습을 감추자, 경기장의 이곳저곳에서 가지각색의 크기를 가진 검들이, 아리를 목표로 솟아올라왔다. "하압!!" 땅에서 검이 솟아오르는 것을 눈치 챈 아리는, 루시엘을 공격하던 검을 멈추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녀의 발밑에서 솟아오른 검들은 그녀를 노리며 쫓아왔고, 아리는 그런 검들을 밟으며 더욱 높이 뛰어 올랐다. "울어라, 빛의 검이여!" 아리의 신형이 하늘 높이 올라갔을 때, 루시엘이 왼손의 검을 휘두르며 공중에 있는 아리를 공격했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왼손의 검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허공에 몸을 띄우고 있던 아리는, 보이지 않는 공격을 막기 위해 검을 앞으로 내세웠다. 채채채채챙! 팟! 촤아아악! 허공에서 루시엘의 공격을 막은 아리는 빠른 속도로 밀려나며 경기장의 끝으로 날아갔다. 빠르게 날아갔던 그녀의 신형은 땅에 도착하고서도 쉽사리 멈추려 하지 않았고, 그녀가 경기장에 검을 꼽고서야 간신히 움직임이 멈추었다. 채챙! 자리에 멈춘 그녀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을 때, 그녀를 향해 다가온 루시엘이 양손의 검을 휘두르며 그녀를 공격해 왔다. 안쪽에서 올라오는 루시엘의 마검이 아리의 가슴부분을 노리며 날아왔고, 그의 검을 본 아리는 검을 기울이며 그의 공격을 흘려냈다. 이어진 성검이 그녀의 머리를 노리며 날아왔고, 그녀는 반대쪽으로 기울이며 그의 검을 흘렸다. 스슥! 촥! 두 개의 검이 빚나가자 루시엘의 몸에는 수많은 빈틈이 생겨났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아리는 그의 머리를 향해 검을 찔러 들어갔다. 아리의 검이 루시엘의 투구 사이로 향하고 있을 때, 루시엘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고, 그의 머리 움직임에 맞추어, 투구에 달려있던 사슬이 아리의 몸을 찢어버릴 듯이 날아왔다. 스윽... 머리에 달린 철편을 피하기 위해서 아리의 하체가 낮아졌고, 마검의 머리를 찔러가던 그녀의 검은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두 개의 철편을 스쳐지나갔다. 그녀를 공격하던 철편이 지나갔을 때, 낮아졌던 그녀의 하체는 다시금 원래의 자리를 찾았고, 부드럽게 원을 그리던 그녀의 검도 한 바퀴 회전하여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 마검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챙! 하지만 그녀의 공격이 성공하기 직전, 마검을 들어 올린 루시엘이 아리의 검을 막았고, 반대쪽의 성검으로 공격을 하였기에, 아리는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스스슥! 성검을 피하기 위해서 그녀의 검이 거두어졌고, 몸을 낮춘 그녀는 현민의 자세를 흉내 내며 빠르게 회전했다. 쾅!! 몸을 빠르게 회전시킨 아리는 자신의 검에 원심력의 힘을 더하여 루시엘의 허리를 베어들어갔고, 루시엘은 두 자루의 검을 바닥에 꽂으며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그들의 검이 서로 부딪히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스슥! 팟! 검을 기울인 아리가 루시엘의 검을 타며 위로 솟아올랐고, 루시엘은 다급히 머리를 뒤로 옮겼다. 빠르게 올라간 아리의 검은, 특유의 움직임을 보이며, 루시엘의 머리를 따라 갔고, 루시엘은 다급히 몸을 굴렸다. 타탁! 팟!챙! 루시엘을 따라 움직인 아리는 승기를 놓치지 않기위해 그를 몰아세웠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아리의 검은 루시엘의 마검과 성검을 뚫고, 그의 몸에 직접적인 공격을 하였으나, 단단한 그의 갑옷은 좀처럼 뚫리지 않았다. "울어라, 낙화(落花)여!!" 우우우웅....아리의 외침에 반응한 것인지, 그녀의 손에 들린 기다란 도가 거친 소리를 내며 떨리기 시작했다. "저것인가? 이곳에서 배웠다는 기술이..." "아직 미숙하지만 기를 사용하는 것이라네." "호오?" 기를 사용한다는 싸울아비(아리의 스승)의 말에, 아리의 할아버지가 묘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로서도 자신의 손녀가 이 정도의 능력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크흠!" '크흠! 손녀사위 구하려면 아범이 고생 좀 하겠구먼....' 기침을 하고 있는 아리(하연) 할아버지는 자신의 옆에서 경기장을 바라보는 현민을, 훔쳐보고 있었다. 우우웅...휘이이잉.... '바람...?'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검의 울부짖음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검을 둘러싸는 바람의 기운이 강해지고 있었다. 현민의 눈이 아리의 검에 집중되었을 때, 그녀의 검을 따라 움직이는 바람이 날카롭게 변하며 주위의 모든 것을 베어갔다. "하압!" 채채채채챙!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던 아리가 다시금 루시엘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검과 루시엘의 검이 부딪히자, 시끄러운 쇳소리가 현민의 귀에 울려 퍼졌다. 그들의 검은 한번만 부딪혔으나, 아리의 검을 중심으로 하여 돌고 있던, 날카로운 바람이 루시엘의 검에 여러번의 타격을 주고 있었다. "큭!" 아리의 검에 신음을 내뱉은 루시엘은, 마검의 기술과 여러 가지 기술을 보여주면서 아리와 호각을 겨루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싸우고 있는 그들이 전사계열이라서 그런 것인지, 빠르게 부딪히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현민의 시합에서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박진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리아!" 아리와 검을 맞대며 싸우고 있던 루시엘이, 갑옷의 에고인 일리아를 불렀고, 그의 뜻을 받아들인 일리아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그의 갑옷은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었고, 새로워진 갑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우...." 전신을 감싸고 있던 그의 갑옷은 팔과 다리부분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었다. 몸통의 갑옷과 머리 부분의 투구가 사라진 대신에, 그의 팔과 다리를 감싸고 있던 방어구들이 커지면서 더욱더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팟! 갑옷이 집중됨에 따라 근력과 민첩도 변화된 것인지, 땅을 박차고 달려나가는 루시엘의 스피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루시엘이 다시금 모습을 들어낸 곳은 아리의 우측 측면이었고, 그의 움직임을 눈치 챈 아리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의 검을 막아냈다. 쾅!!콰콰콰콱! 하지만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루시엘의 근력 때문에 아리의 신형은 뒤로 물러났고,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그녀의 노력 때문에, 그녀의 신형은 땅을 부수며 미끄러지고 있었다. 비틀 "카오스!" 쩡! 너무나 강한 힘 때문에, 끝까지 버텨오던 아리의 신형이 무너져 버렸고, 그 때를 놓치지 않은 루시엘은 두 자루의 검을 부딪치며, 새로운 기술을 사용했다. 흑과 백으로 어우러진 두 자루의 검은, 서로의 기운 때문에 강한 반발을 일으키며 하나의 정점에 기운을 모았고, 루시엘은 그 기운이 한계에 달했을 때, 아리를 향해 그 기운을 뿜어냈다. "천공..." "흡!" "합!" 루시엘과 아리, 그리고 다른 유저들이 일직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아리를 스쳐지나간 루시엘의 공격은, 경기장 밖에서 대기중인 유저들에게로 날아왔다.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에 깜짝 놀란 체리플랑이 마법을 사용하여 막으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앞으로 나간 다른 존재들이 루시엘의 기술을 단번에 없애 버렸다. 콰콰콰콰쾅!!! 좌우로 갈라진 루시엘의 공격은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며 그에 닿는 모든 것을 부셔버렸다. -------------------------------------------------------------------------------- "아리..." 직격이나 다름없었던 루시엘의 공격에, 현민은 경기장에 있을 아리의 상태가 걱정되었다. 단 두 번의 만남이었을 뿐이지만,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문 현민으로서는 아리도 친분을 다진 유저 중에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쿨럭! 크억!" 경기장을 가득 메우던 먼지가 사라지자, 처참한 꼴을 하고 있는 아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상체를 감싸고 있던 방어구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그녀가 입고 있던 옷도 옷이라기보다 구멍 난 천이라고 해야 할 만큼 찢어진 상태였다. 바닥에 엎드려 있는 아리는 뿜어져 나오는 피로 인해 호흡조차 불편해 하고 있었고, 그녀의 손에 들린 도는 절반이 부러져 나가 단도가 되어 있었다. "끈질기군. 한국의 싸울아비들은 바퀴벌레 정신이냐?" 툭툭... "콜록! 컥!" 바닥에 넘어진 아리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 루시엘이 그녀의 팔을 건드리며, 그녀의 신형을 무너트렸다. "항복해라." 아리에게 다가간 루시엘은 차가운 눈으로 바닥에 넘어져 있는 아리를 주시했다. 하지만 바닥에 엎드려 있는 아리는 루시엘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인지, 부러진 도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봐, 상대가 이 정도면 승리를 인정해도 되지 않나?" 이제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리를 가리킨 루시엘은 페튜니아를 바라보며, 판결을 부탁했으나, 그들의 시합을 바라보고 있는 페튜니아는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뭐, 어쩔 수 없지." 페튜니아에게서 부정의 대답을 들은 루시엘은 아리의 다리를 잡아끌었다. 질질질... 루시엘에게 발이 잡힌 아리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경기장의 모서리로 끌려갔다. 넝마로 된 옷은 이미 그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녀의 등은 바닥에 긁히며 상처입고 있었고, 그렇게 찢어진 아리의 등은 군데군데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경기장의 밖에서 보고 잇던 다른 유저들은 루시엘의 행동에 눈살을 찌뿌릴 뿐, 그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아리의 할아버지조차 신음을 내뱉을 뿐, 그녀의 대결에 참견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두근.... 루시엘의 신형은 어느새 경기장의 끝에 도달해 있었고,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아리의 발을 들어 경기장 밖으로 집어 던졌다. 아리의 발을 들어 집어 던지는 루시엘의 눈에는 조금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고, 쓰레기나 인형을 던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연아!!" "아리야!!" 두근... 루시엘의 손에 이끌린 아리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아무런 움직임 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경기장 밖에서 이것을 보고 있던 아리의 할아버지와 스승은 그녀의 신형을 잡기위해 서둘러 몸을 날렸다. 두근...탁. "아..." 아리의 할아버지와 스승이 그녀의 몸을 잡기 직전, 그들보다 먼저 움직인 하나의 존재가 빠르게 떨어지는 그녀를 안으며 모든 충격을 흘려버리고 있었다. '정신차려! 이것은 환상이다. 지금의 너는 거짓된 공간 속에 있는거야!' '알아.' 현민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현민은, 정신적으로 불안한 지금의 상태에서 이러한 일까지 벌어져 버리자, 자신을 말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의 모든 일은 환상일 뿐이다. 지금의 내 품에 안긴 존재도 현실에서는 멀쩡히 살아있어. 지금의 그녀는 환상속에서 즐기는 것 뿐이야. 이곳에서의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아니란 것을 너도 잘 알잖아?!' '알아.' 떨어지는 아리를 받아든 현민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그들의 곁으로 다가온 유저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으나, 내면의 또 다른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현민은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나, 나는.... 아지..익." 움찔! 현민의 품에 안겨 있던 아리가 입을 열자, 그녀를 안고 있던 현민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슬립..." 힘겹게 입을 열은 아리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린 현민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를 잠의 세계에 인도했다. "묘..." 현민의 부름에 모습을 드러낸 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아리를 치료한 후,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새근... "짝퉁은 진짜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사무라이를 흉내 낸 싸울아비 따위가 나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지." 두근!!! 저벅저벅...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진 저택의 복도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한 복도에는 한 명의 남성만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흔히 볼 수 없는 여성들의 이상형이었다. 오뚝한 코와, 부드러운 눈빛, 여성 같은 그의 입술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호감을 만들게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서 단 한가지의 흠을 찾자면, 일반 사람에게는 볼 수 없는 날카로운 뿔 두 개가 그의 머리에 솟아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후우우..." 기다란 복도를 지나 그 끝에 도달한 남자는 거대한 크기를 가진 문 앞에서 한차례 심호흡을 했다. 마계에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였으나, 지금 만날 존재는 그런 그가 고개를 숙여야 할 만큼 대단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스으윽... 품안에 안고 있던 서류뭉치를 허공에 띄운 그가, 거대한 문 위에 손을 올려놓았고,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던 문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움직이며, 내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벅저벅... "아직도 그 모습이십니까?" 방안으로 들어선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거인이 앉을 법한 거대한 책상이었다. 너무나 거대한 책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으나, 책상의 중앙에는 그와 비슷한 크기를 가진 하나의 존재가 일을 하고 있었다. "아아, 마리냐?" "마리가 아니라 마이드 폐 리아제입니다." "그래그래, 마리." 책상의 중아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발록은, 귀찮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언제나 말하지만 이 귀걸이가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야." 부지런히 서류를 읽어가던 발록은 마리에게 자랑하듯,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귀에 걸린 귀걸이를 보여주었다. 본체로 변한다고 귀에 걸린 귀걸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귀걸이가 어울리는 모습이 여성형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여성형으로 지내고 있는 발록이었다. "설마하니 마족한테 선물을 할 줄이야..." 발록의 책상에 서류를 올려놓던 마리는 무엇이 마음에 안드는 것인지 쉬지않고 투덜거렸다. "나니깐 이성을 유지한거지, 네가 계약했다면 마계로 납치해 왔을걸?" "후훗, 설마요." 서류를 정리해 주던 마리는, 발록의 말에 미묘한 웃음을 내뱉었다. '위대한 마족인 내가 한낱 인간을 원해 납치해 온다는 것은, 천족이 머리에 꽃을 꽂고 마족과 같이 춤추는 일이 일어날 경우와 같겠지...' 생각은 복잡했으나, 결론적으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소리였다. "네가 안 봐서..." 흠칫! "무...." 마리를 향해 무언가 말을 하려던 발록은 무엇인가를 느낀것인지 숙여졌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깜짝 놀라는 마리의 머리를 잡은 채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두근!!! -살기나 기운을 내뿜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냐. 강한 의지. 모든 것을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를 갖는다면 네 몸에서 자동적으로 살기가 만들어 질 거야. 반대로 주위의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다면 너의 기운 자체가 없어지겠지. 문제는 네가 이러한 것을 얼마나 익숙하게 사용하나야. 현민의 눈에는 자신의 품에 안긴 아리만이 보이고 있었고, 그의 귀에는 세차게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소리만 들려왔다. 스스스스슥....... 딸랑딸랑. 강한 의지. 모든 것을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던 현민은, 루시엘의 행동으로 인해 그동안 감춰왔던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아아....." 덜덜덜..... 점점 강해지는 현민의 살기에 놀란 미호가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고, 얼굴을 굳힌 아리의 할아버지와 스승은 그런 미호와 나머지 사람들을 붙잡아 현민에게서 멀리 떨어뜨렸다. 진정한 강자인 아리의 할아버지와 스승은 현민이 뿜어내고 있는 살기가, 일반적인 살기(스킬이나 일반인이 뿜어내는 살기)와는 질적, 양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쿵! 딸랑딸랑! 모든 것을 죽이겠다는 현민의 살기가 주위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그의 뜻을 받아들인 대기가 무거운 움직임을 보이며, 주위의 모든 것을 짓눌렀다. "...슨, 응?" 아리의 할아버지와 스승이 모두의 앞에서 검을 뽑은 채 현민의 살기를 막아가고 있을 때, 그들의 곁으로 네 명의 존재가 새로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명의 존재는 성스러운 기운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의 존재는 사악한 기운을, 그리고 다른 하나의 존재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아아..." 마계에서 사라진 발록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현민이 살기를 내뿜고 있는 장소였고, 그렇게 나타난 발록은 현민의 상태를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름답다..." 발록의 손에 머리를 잡힌 채 이동되었던 마리도 엄청난 살기를 뿜어내는 현민을 보고난 후, 발록과 비슷한 상태가 되어 현민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정도의 살기라니... 정말 인간인가?" "마족들이 반할정도라니...." 성스러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두 존재가 유저들의 앞으로 나서자, 그들을 억누르고 있던 현민의 살기가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고, 답답함을 벗어난 유저들은 물속에서 올라온 사람들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건 말도안돼." "허, 허허허...." 스스스스슥.... 주변을 압박하던 현민의 의지는 그 한계를 뛰어넘어 버렸고, 그가 표현하는 의지 자체가 하나의 실체가 되어 주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지랑이처럼 풍기던 현민의 살기는 검은 안개가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뒤덮었고, 그 안개 속에 존재하는 것들은 현민의 강한 의지에 모든 움직임을 멈추어 버렸다. 덜덜덜덜.... 경기장에 있었던 페튜니아와 루시엘은 천족들의 비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들 스스로가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현민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루인아츠는 페튜니아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가 봉인을 푼 채, 날카로운 기운을 사방에 내뿜고 있었고, 루시엘의 갑주인 일리아는 아리를 상대하는 것 이상으로 루시엘을 감싸며, 현민의 기운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딸랑.... 현민의 살기가 실체화됨에 따라 움직임을 멈췄던 방울이, 현민의 움직임에 다시금 맑은 소리를 울렸다. 스윽... 아리를 향하던 현민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고, 완전히 올라온 현민의 시선에 루시엘의 모습이 들어왔을 때, 움직임을 멈추었던 현민의 살기가... -크오오오오!!!!! 울.부.짖.었.다. 콰직!!! 현민의 살기가 울부짖자 대기의 압력이 기존 이상으로 높아졌고, 그렇게 무거워진 대기는 현민을 중심으로 하여 주위의 모든 것을 눌러버렸다. 부들부들.... 페튜니아의 루인아츠는 현민의 살기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으나, 루시엘의 일리아는 슬슬 한계에 도달하는 것인지,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전에는 없었던 떨림도 생기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 현민을 중심으로 사방의 모든 것을 덮어버린 살기는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발록과 마리의 눈은 몽롱하게 풀려버렸고, 천족들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갔다. 그리고 갑작스런 변화를 보이는 현민을 보며, 미호와 어두운 마녀는 걱정어린 표정을 지었다. 부르르르.... 팟! "응?" "어라?" "뭐, 뭐지?" 페튜니아를 지키던 루인아츠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미약한 떨림을 보였을 때, 모든 것을 죽일 것만 같았던 현민의 기운이 나타나던 것보다 빠르게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고, 갑작스레 사라진 현민의 살기에 주위의 존재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살기가 줄어들면서 없어진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나라는 인격이 없었으면 희대의 살인마가 탄생할 뻔 했군,...' 현민의 살기를 없앤 것은 현민의 내면에 존재했던 또 하나의 현민이었다. 아리의 상처에 분노한 현민의 인격이 엄청난 살기를 뿜어내고 있을 때, 그의 내면에 존재하던 또 하나의 현민이 그런 현민의 인격을 잠재우고, 온몸으로 내뿜는 살기를 없애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위험해....' 그 스스로가 현민의 살기를 없애기는 했으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 일뿐. 그의 몸 안에서는 아직도 엄청난 양의 살기가 뿜어져 나가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여서 잠시 실수를 했군요..." 아리를 품에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주변을 향해 사과의 말을 던졌다.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던 자신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과의 말을 하는 것이 웃기기는 했으나, 지금의 그에게는 이 말을 제외하고는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아, 조금전의 루나가 예뻤는데...." "크, 크흠!!" 천족들을 의식한 마리가 발록을 향해 헛기침을 했으나, 발록은 그런 마리의 태도에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마리를 향해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냈다. "마리 너, 얼굴 빨갛다." 화르륵!! 발록의 말을 들은 마리의 얼굴은 빨간색을 넘어 검붉은 색으로 변해갔다. "발록님과 대장군님이 여기에 오신 것이 저 인간 때문인가요?" 발록이 마리의 붉어진 얼굴을 놀려대고 있을 때, 그들의 곁으로 두 명의 천족이 다가왔다. 마계와 천계의 계약상 마족이나 천족의 이유 없는 강림 시에는 그에 준하는 천족이나 마족이 강제로 소환되기 때문이었다. "응, 예쁘지 않아?" "제 눈에는 그 무엇보다 흉측해 보입니다." 발록은 현민을 보며 몽롱한 눈빛을 했지만, 똑같이 현민을 바라보는 천족은 징그러운 벌레를 바라보듯 현민을 쳐다보았다. "싸울아비의 어원(語原)이 사무라이든 아니든 그런 것은 상관없어." 천족과 발록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아리의 몸에 마녀의 옷을 덮어준 현민은 녹슨 철검을 꺼내어 경기장 위로 발을 옮겼다. "사무라이를 들먹이는 것을 보니, 일본인인가 보지?" "네놈은 한국인인가 보군." 현민의 엄청난 살기를 견딘 것은 루시엘이 아니라 그에게 속한 일리아였기 때문에, 루시엘은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던 현민에 대해서 아무런 공포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현민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서 온 몸을 떨고 있는 일리아를 보며, 한심하단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싸울아비란 '싸우다'라는 의미를 가진 '싸울'과 사람이란 의미를 가진 '아비'가 만난 합성어다." 저벅저벅... "뭐, 일반적으로 해석하자면 '싸우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진정한 의미는 '싸움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까지 말을 한 현민이 루시엘을 바라보았으나, 그의 얼굴에는 현민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직도 이해가 안돼? 싸울아비란 나 자신보다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 싸움을 할 줄 아는 존재를 말하는 거다. 타인을 배려하고 내 가족들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그런 존재 말야....." "그게 바로 사무라이란 거다!" 무시하는 듯한 현민의 말에 발끈한 것인지, 루시엘이 화가난 표정으로 현민을 향해 소리쳤다. "쿡쿡, 미친놈." "뭐?!" 현민의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인격은 본래의 현민에 비해서 냉정한 타입이었지만, 그의 앞에 있는 루시엘은 그런 현민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만들어주었다. "우리나라의 싸울아비가 너희 나라에 가면 사무라이가 되는 것이고, 서양으로 가면 기사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전사가 되는 것이고, 영웅이 되는 것이다." 루시엘의 머리가 나쁜 것인지, 현민의 말이 복잡했던 것인지, 현민의 말을 듣고 있는 루시엘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싸움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너희 나라에만 있을 줄 알았냐?" "아!!" 현민의 말을 들은 루시엘은 그제서야 이해한 것 같았다. 루시엘이 어원만으로 싸울아비와 사무라이를 비교했다면, 현민은 그 뜻을 가지고 싸울아비를 풀이한 것이었다. "나는 네가 말하는 어원(語原) 따위에는 관심없어. 나한테 중요한 것은 나 또한 '싸움을 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것 뿐이야. 그런데 싸울아비에 대해서 너란 새끼가 함부로 지껄여?" 고개를 돌린 현민이 루시엘의 두 눈을 바라보았고, 억눌렀던 살기의 극히 일부분을 풀어버렸다. "네가 정말로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크윽!!" 조금 전의 살기에 비해 극히 일부분이라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현민의 살기는 그 어떤 존재의 살기보다도 날카로웠다. "보여주마. 네 놈이 비웃을 만큼 싸울아비가 가벼운 존재가 아니란 것을........" 루시엘을 향해 녹슨 철검을 들어올렸던 현민은, 페튜니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가 쓰고 있던 가면과 자신의 가면을 바꿔 썼다. 다른 사람의 아이템과 바꾼다거나 가져가는 것이 함부로 될 리는 없었지만 현민의 행동을 짐작한 페튜니아가 현민의 행동을 도와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스스스스..... 팡! 페튜니아의 각시탈을 착용한 현민의, 머리카락이 허리부분까지 길게 자라났고, 녹슨 철검을 땅에 밖아 놓은 현민은 길게 자라난 머리카락 묶었다. 헝겊으로 머리를 묶은 현민은 바닥에 꽂아놓았던 철검을 손에 들었고, 루시엘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깨어나라 마녀의 검이여. 거짓된 모습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모습으로 깨어나 모든 존재에게 너의 존재를 알려라!" 용린(龍鱗)(B급) 설명 : 검신의 무늬가 용의 비늘을 닮은 검. 공격력 : 540 -600 내구력 : 130 조건 : 레벨 80 이상. -샤프니스 사용 가능. 파이어 사용 가능. 윈드 커터 사용 가능. 현민의 손에 들린 녹슨 철검은 산산조각 나버렸고, 그곳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엄청난 길이의 아름다운 도였다. 2m를 가뿐히 넘어가는 현민의 도는, 그가 손을 높이 들어도 다지 않을 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부터의 저는 그녀를 대신할 것입니다." 흠칫! 루시엘의 앞에 도착한 현민은 더 이상 현민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루시엘을 향해 말하는 현민의 목소리는 아리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고, 그가 풍기는 기운도 아리의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스윽.... "월하개화(月下開花)." 루시엘의 정면에 멈춰선 현민은 검끝을 하늘로 향하게 하였고, 왼손으로 그런 검의 검면에 손을 올려놓았다. 검끝이 땅을 향하고 그런 상태의 검면에 왼손을 올려놓는 아리의 자세와는 반대되었으나, 현민이 사용하는 검의 길이는 그녀가 사용하는 것의 배로 길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의 자세가 더욱 자연스러워 보이고 있었다. "싸워도 되는 거냐?" 현민은 이미 공격할 자세를 갖추고 있었으나, 그런 현민의 앞에 있는 루시엘은 차분히 페튜니아를 바라보았다. 싸울아비에 대해서 말을 할 때, 잠깐 놀라기는 했으나 현민의 모든 것을 얕잡아 보고 있는 루시엘로서는 자신에게 죽음을 겪도록 한 현민을 조금이라도 빨리 죽여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끄덕.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잠시 고민했던 페튜니아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엘이란 존재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보아온 현민이라면 아무런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가 보여줄 앞으로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팟! 페튜니아의 고개가 끄덕여 지는 것과 동시에 양손에 검을 다잡은 루시엘이 현민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가 알고 있는 현민의 움직임은 상당히 느렸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이길 것이라 생각했다. 스윽... 루시엘은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현민은 그러한 루시엘의 움직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루시엘의 모습이 사라지자 월하개화의 자세를 하고 있던 현민은 자세를 풀며, 칼끝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흐억!!" 현민의 칼끝이 그의 시선과 일치했을 때, 그 칼끝의 바로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루시엘이 당황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현민이 가지고 있는 도의 길이가 2m를 넘어가다보니, 루시엘이 공격을 하기도 전에 현민의 도가 그의 코에 닿아버린 상황이었다. 캉!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민의 칼끝은 루시엘의 투구에 닿았고, 빠르게 달려오던 그의 몸은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며 허공으로 두 다리가 떠올라 버렸다. 루시엘의 투구가 칼끝에 닿은 직후, 도를 뒤로 튕겨낸 현민은 빠른 속도로 튕겨 나온 도와 함께, 회전을 하며 루시안을 향해 두 걸음 다가갔다. 스슥 스으윽... 두 걸음 앞으로 다가간 현민의 앞에는 정신을 못 차리는 루시엘의 몸이 허공에 떠 있었고, 현민은 그런 루시엘을 바라보며, 회전력이 더해진 도를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렸다. 챙! 스으윽... 현민의 칼날이 루시엘의 갑옷에 닿는 순간, 현민은 자신의 손목과 팔을 움직이며 기다란 도를 자신의 몸쪽으로 당겼다. 현민의 기묘한 움직임 때문에 그의 칼날이 루시엘의 갑옷을 톱질하는 듯한 모양이 나왔고, 흠집조차 나지 않던 루시엘의 갑옷이 베여져 갔다. "흡!!" 현민의 도가 그의 갑옷을 뚫으려 하는 순간, 허공에서 떨어지던 루시엘이 현민의 검이 당겨지는 방향에 맞추어 회전을 하였고, 현민은 다급히 자신의 도를 그의 몸 밑에서 뽑아냈다. 회전을 하고 있는 그의 몸이 바닥에 떨어질 경우, 그의 칼이 부러지거나 그의 몸에 깔리는 일이 생겨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팟! 손으로 땅을 짚으며 몸을 비튼 루시엘이 민첩한 동작으로 현민의 허리를 베어 들어갔고, 현민은 자신의 검을 사선으로 기울이며, 그의 검을 위쪽으로 흘려보냈다. 현민의 검이 만들어주는 길을 따라 올라가던 루시엘의 검이 대각선 방향으로 올라갔고, 자신의 도를 그의 검 위쪽으로 돌린 현민은 루시엘의 검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치며 그의 머리를 베어버리려 했다. 챙! 하지만 루시엘의 검이 현민의 검을 쳐내면서 그의 검은 원래의 목적지를 벗어나게 되었고, 반대로 기회를 얻은 루시엘이 현민의 몸에 성검을 찔러넣었다. 스윽... 루시엘의 검이 자신을 찔러오자 현민의 오른발이 뒤로 움직였다. 그가 움직인 거리가 딱 한 걸음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루시엘의 검을 피할 정도의 거리가 나오고 있었다. 현민이 한걸음 뒤로 물러났기에 그들 사이에 거리가 생겨 났지만 그것은 루시엘에게만 허용되는 거리일뿐, 무기의 길이가 창보다 긴 현민에게는 루시엘이 아직도 공격범위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스윽... 현민의 몸에서 아리 특유의 움직임이 나왔고, 루시엘의 마검에 의해 왼쪽으로 튕겨졌던 검이 본래의 속도 그대로 루시엘의 머리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가 보이고 있는 움직임은 평소에 아리가 했던 월하개화의 움직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 "시작하겠습니다." 슥... "....개화(開花)" 현민의 손에 따라 움직이는 그의 검은, 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붓과 같이 움직였다. 검이 꺾이는 순간에 단 한차례의 멈춤도 없이 이어지는 현민의 검은 허공을 도화지로 하여 아름다운 꽃을 그리고 있었다. "흩날려라..."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 듯 한 그 한마디로 인해 현민의 검이 한차례 빨라졌고, 검의 빠름이 현란함이라는 것을 부가적으로 가져다주었다. 채채채채챙! 그들의 검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서로의 몸을 노렸다. 평소의 현민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인격이 바뀌어버린 지금, 그에게 있어서 이 정도의 일은 힘든 것도 아니었다. 채챙! 루시엘의 마검이 현민의 허리를 베어들어갔고, 현민은 그런 루시엘의 검을 위로 쳐올리는 동시에 검을 비틀어 루시엘의 허리를 베어 들어갔다. 그런 현민의 검은 루시엘의 성검에 막히며 맥없이 튕겨났고, 현민은 다시금 방향을 바꾸며 루시엘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채채채채채채챙! 몸을 빠르게 움직이는 두 사람은 끊임없이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았다. 루시엘은 현민을 향해 스킬을 사용할 생각으로 잠시간의 틈을 노리고 있었으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현민의 검은, 그 조금의 틈도 만들어 주지를 않고 있었다. 채채챙! 움찔! 빠르게 움직이는 검으로 인해 루시엘의 눈이 엉키기 시작했고, 그런 엉킴은 루시엘의 손을 반박자 늦게 만들었다. 아주 잠깐 사이에 루시엘에게는 조그만한 틈이 생겨버렸고, 그러한 틈을 놓치지 않은 현민은 그곳을 향해 검을 움직였다. 파팟! 스윽.... 챙! 순간의 실수를 판단한 루시엘이 서둘러 현민에게서 거리를 두려 했으나, 그는 현민의 공격범위를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몸을 낮추며 한 바퀴 회전한 현민은 아래에서 검을 올리며 사선으로 루시엘을 베어 올렸다. 챙! "후..." 하지만 현민보다 빠르게 움직인 루시엘의 갑옷이 현민의 검이 도착할 부분만 방어하였고, 그들의 전세는 역전되어 이제는 현민의 몸에 작은 빈틈이 생겨버렸다. "어둠에 물들어라!!!" 파파파파팍! 루시엘의 마검 검신이 땅속으로 사라졌고, 현민의 주위에서 수십 개의 검들이 그를 노리며 빠르게 솟아올랐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의 대결만 바라보던 다른 유저들은, 현민에게 위기가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채채채채채채채챙! 가장 먼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을 반으로 잘라버린 현민은, 이어서 따라오는 두 번째의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며 사선으로 베어냈다. 아리와는 달리 다가오는 모든 검을 잘라버리기 시작한 현민은, 빠르게 몸을 회전시키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들을 차례대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검에 있어 천재라는 건 저런 것을 말하나 보군...." 너무나 엄청난 현민의 모습에 아리의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경기장 위에서 움직이는 현민을 보고 있었기에 대답을 해줄 여유가 없었다. 스으으으윽.... 현민의 몸은 좌우로 번갈아 가며 회전하고 있었으나, 그의 손에 들린 검은 그러한 현민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일정한 빠르기로 움직이고 있었다.끊임없이 이어지는 현민의 움직임... 중심에 자리잡고 있던 현민의 몸은 이미 검의 잔상으로 인해 사라진지 오래였고, 그렇게 현민을 감싸고 있는 검의 잔상은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그리며 주위의 모든 것을 베어버렸다. "울어라! 빛의 검이여!!!" 현민이 모든 검을 베어가고 있을 때, 루시엘이 그런 현민을 향해 보이지 않는 검을 날려 보냈다. 땅에서 솟아오른 검을 막아가고 있던 현민을 향해, 보이지 않던 검까지 날아가자 그를 감싸고 있던 꽃봉오리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물론, 검의 잔상이 그러한 움직임을 만들어 냈을 뿐,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현민의 검은 단지 조금 더 멀리 베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그만 죽어버려!! 카오스!!" 루시엘의 두 자루 검이 허공에서 부딪혔고, 아리를 공격했던 엄청난 기운이 현민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파파팟!! 그 잠깐의 사이에 현민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고, 그를 감싸고 있던 꽃봉오리가 완전히 열리며 한 송이의 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꽃이 완전히 열렸을 때, 루시엘의 카오스가 현민의 바로 앞에 다가왔고, 두 다리에 힘을 준 현민은 카오스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현민의 검과 루시엘의 카오스가 부딪히려고 하는 순간, 그것을 구경하던 유저들은 현민이 아리와 같이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다. "울어라! 낙화(落花)여!!!" 현민의 검이 루시엘의 카오스와 부딪히려는 순간, 현민의 검을 감싸고 있던 강한 소용돌이가 루시엘의 카오스와 부딪혔고, 두 개의 공격이 허공에서 힘을 겨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현민의 검에서 생겨난 소용돌이가 루시엘의 카오스로 파고들어가며 그의 공격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싸울아비의 낙화?!" "설마 히든 클래스?" 경기장에서 싸우고 있는 현민이, 아리의 기술마저 똑같이 사용하자 모두가 히든클래스인가 하고 현민을 의심했다. "싸울아비"내에는 아직도 많은 직업들이 모습을 감추고 있었고, 현민의 능력은 그런 히든클래스의 하나로 이해가 가능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봤는가?" "검으로 바람을 모으더군... 이 정도라면 평범한 사람으로는 볼 수 없겠지." 다른 사람들은 히든클래스로만 생각했지만 평생을 검과 함께 살아온 두 분의 할아버지는 현민의 모든 움직임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검은 주변의 공기를 가르며 바람을 만들어 냈고, 그렇게 만들어진 바람은 검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검으로 바람을 만든 현민이 검을 앞으로 내지르는 순간, 검의 흐름을 따라 가고 있던 바람이 앞으로 쏘아지며 루시엘의 카오스를 사방으로 날려보낸 것이었다. 타타탁! 루시엘의 카오스가 터지면서 부셔졌던 경기장의 파편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주변을 가득 메우던 먼지도 천천히 가라앉으며 경기장 위의 모습이 나타났다. "움직이면...." 꿀꺽! "죽여 버리겠습니다." 먼지가 사라지고 드러난 경기장의 모습은, 2m60cm의 기다란 도를 든 현민이 루시엘의 왼쪽 눈앞에서 1cm 정도를 남긴 채 멈춰있는 모습이었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조용한 정적 속에서 루시엘의 두 눈동자는 현민의 두 눈동자와 마주쳤고, 차갑고 깊게 가라앉은 현민의 눈동자를 마주한 루시엘은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탱그랑~. 태탱! 루시엘의 손에 있던 두 자루의 검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들의 대결은 현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털썩! "...." 루시엘의 검이 바닥에 떨어지자, 루시엘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던 현민도 자신의 무기를 거두어 들었고,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페튜니아를 향해 자리를 옮겼다. 저벅저벅... 챙그랑 현민의 몸이 페튜니아의 앞까지 도착했을 때, 현민의 손에 들린 용린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바닥에 떨어져 내렸고, 페튜니아는 왠지 이상한 현민의 모습에 걱정 어린 표정을 했다. 털썩! 현민의 가면과 페튜니아의 가면이 원래대로 바뀌었다 생각하는 순간, 현민의 몸이 페튜니아의 품안으로 쓰러져버렸다. "누나... 저 기권할게요. 아이템 좀 부탁해....요." 귀담아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너무나 작은 목소리였지만, 조금전 현민의 움직임이 너무나 대단했기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였다. 스스스.... 강제로 로그아웃이 되었는지, 아니면 스스로 로그아웃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페튜니아의 품안에 안겨있던 현민의 신형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화려했던 현민의 시합이 끝나버렸고, 남아있는 유저들은 사라지는 현민을 보며 복잡한 얼굴을 했다. 현민이란 존재와 싸우지 않은 것에 대한 안심과, 싸워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이이잉.... "싸울아비"를 종료했기에 캡슐의 뚜껑이 열렸지만, 캡슐에 누워있는 현민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정신이.... 위험해.' 그의 인격이 만들어진 이유가 중재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그의 내면에서는 수많은 감정들이 복잡하게 엉켜있었고,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대한 살기가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내면의 불안정함 때문인지, 육체의 한계 때문인지, 머리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던 현민은 그 고통을 참지 못한 채 육체에 대한 제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 ------------------------------------------- 다음에 나올 현민이는 정신이상자일까요? 살인자일까요? 오늘 하루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_(__)_띠...띠...띠... 똑...똑... 깊디깊은 잠에서 깨어난 현민이 처음으로 들은 것은 규칙적인 기계음과 왠지 모르게 신경 거슬리는 작은 물소리였다. "현웅아..... 시끄러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현민은,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도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띠...띠... 너무나 졸린 현민은 기계음을 무시하고 잠을 청하려 했으나, 그의 정신이 돌아오면 돌아올수록 기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선명해졌기에 더 이상 누워만 을 수 없었다. "아, 진짜..." 벌떡! ".....에?" 기계음으로 인해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익숙한 방이 아니라,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1인 병실이었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현민은 자신의 기억을 되새겨보기 시작했고, 자신의 기억이 어디에서 끊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마지막의 기억이 토너먼트? 그 다음은? 어떻게 로그아웃 한거지?' 분노로 인해 스스로의 의지를 잃어버렸기에, 현민의 기억은 거기서부터 끊겨있었다. '혹시 네가 한거야? 응? 대답해 봐.' ..... 스스로의 인격이 하나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현민은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이 육체를 제어했다고 생각하며 그를 불러보았지만, 평소와 다르게 그의 내면에서는 아무런 울림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디로 간...' - 당분간은 대화하기 힘들거다. "응?" 자신의 또 다른 인격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현민은 갑자기 떠오르는 꿈의 마지막 내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꿈을 꾼 것도 확실하고, 꿈속에서 또 다른 인격과 대화를 한 것 같은 기분은 들지만, 또 다른 인격이 어떠한 말을 했고, 그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꿈에서 깨어난다면 당분간은 대화하기 힘들거다. '...왜?' 한참을 더듬어서야 또 다른 인격이 했던 말을 기억할 수 있었지만,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또 다른 인격이 마지막에 했던 말뿐이었고, 나머지의 내용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아...." '당분간이라고 한 것은 확실하니, 대화를 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 현민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지금의 현민은 분노하기 이전의 현민에 비해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가 잠들었을 때 방문한 내면의 세계에서, 그는 분명히 변화를 겪었고, 그러한 현민의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털썩! 한번더 주변을 둘러본 현민은 별다른게 없는 병실의 모습에, 침대에 누워서 꿈속의 내용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거지? 나는 왜 여기 있는 거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는 기억은 또 다른 인격의 마지막 말 뿐이었고, 창밖으로는 환한 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당장 밖으로 나가 물어볼 수도 없었다. "3시 30분이라..." 띠...띠... 옆에 놓여 진 시계를 본 현민은 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몸 전체로 느껴졌고, 그러한 심장소리에 맞추어 규칙적인 기계음이 들려왔다. '내일... 일어나서 물어보자.' 늦은 시간이고, 아직도 정신적, 육체적인 피로를 느끼고 있는 현민은, 더 이상의 귀찮은 생각을 접어버린 채, 또 다시 꿈의 세계로 들어갔다. 부스럭부스럭... '으응....' 딸그락, 챙. 한밤중에 깨어나 다시금 잠을 청한 현민은, 누군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자신의 잠이 깨어지는 것을 느꼈다.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기 싫었던 현민은 두 눈을 감은 채 오기를 부렸으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 점점 시끄러워지는 소음으로 인해 결국 모든 잠이 달아나버렸고, 몸을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었다. "우웅...." 부스럭... 벅벅. 잠에서 일어난 현민은 간지러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잘 떠지지 않은 눈을 뜨기 위해 두 눈을 비볐다. 챙! "응?" 자리에 앉은 현민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졸음과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그의 옆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현민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돌아갔다. "하암~ 좋은아침." "아아..." 현민은 자신의 옆에서 사과를 들고 앉아 있는 현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으나, 그의 인사를 받고 있는 현진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굳어있는 상태였다. "왜 그래?" 왠지 이상한 현진의 반응에 현민의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렸고, 그런 현민을 바라보는 현진의 두 눈에서는 한줄기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에? 왜 울어?" "현민아!! 으아아앙...." 한줄기의 눈물을 시작으로 크게 울기 시작한 현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잠에서 깨어난 현민을 자신의 품에 안아버렸고, 현진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흔들린 의자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가 버렸다. 덜커덩! 현진의 품에 안겨버린 현민은 갑작스런 현진의 행동에 놀라기는 했으나, 그녀의 손길을 피하거나 풀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조용한 움직임으로 그녀의 품에서 벗어난 현민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을 꺼냈으나, 그의 말을 들은 현진은 더욱 커다란 울음을 터트리며 현민의 품안에 안겨들었다. 달칵! "현진... 현민?" 자신의 품에 안긴 현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음이 멈추기를 가만히 기다리던 현민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진의 모습에,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버렸다. "에... 그러니깐, 현진이 갑자기 울어......." "으아앙, 현민아!" "아....." 다급히 변명을 늘어놓던 현민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수진이마저 자신의 품으로 뛰어들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들의 울음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이제 괜찮아?" "으응..." "응.." 현민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던 그녀들은 두 눈이 퉁퉁 부은 후에야 눈물을 멈출 수 있었다. "왜 운거야?" "...그, 그게." 그녀들이 울음을 그치고 나자, 현민은 그녀들이 우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하지만 막상 현민의 질문을 받은 그녀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부끄러워서 절대 말 못해.' '창피해....' 나름대로의 사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은, 서로의 눈치만을 보며 입을 열지 않았고, 결국 그녀들의 태도에 현민이 백기를 들어버렸다. "하아... 그보다 내가 왜 여기 온거야?" 그녀들이 울었던 이유 다음으로 궁금했던 것은, 현민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비록 많은 피로가 쌓이기는 했지만, 자신의 몸은 건강했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이곳(병원)에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모르겠어?" "현민이 너, 3주하고 2일동안 의식이 없었어." "컥!" 그녀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현민으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그 정도로 오랜 시간을 누워 있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이렇게 움직이는 것도, 그리고 말을 하는 것도 상당히 힘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러한 것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어제의 피로가 말끔히 풀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응!"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어본 현민이었지만, 그의 물음에 대답하는 수진의 얼굴에는 거짓이 담겨있지 않았다. "아아....." "왜, 왜 그래? 어디 아파?" "괜찮아? 힘들면 누워." 수진의 대답을 들은 현민은 고개를 숙이며 신음소리를 내뱉었고, 갑작스런 현민의 반응에 걱정이 된 수진과 현진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현민이 신음을 내뱉는 이유는 그녀들이 걱정할만한 그러한 이유가 절대 아니었다. "23일동안 싸울아비에 접속을 안 하다니... 그 시간동안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 몇 개고, 마법이 몇 개인데... 으으으. 새로운 마법 조합도 시험해 봐야하고, 또." "야!" "야!" 현민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그녀들이 현민을 향해 크게 소리쳤고, 그녀들의 외침을 들은 현민이 고개를 들었다. "고마워." 씽긋! "우윽!" "윽!" 웃으며 말하는 현민의 감사에, 수진과 현진은 다급히 몸을 뒤로 빼며 그와 적당한 거리를 만들었다. 현민과 가까이 붙어 있으면, 붉어지는 얼굴을 그에게 들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위험했어...' '현민이가 이런 얼굴을 하다니...' 어떤 의미에서 위험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들은 현민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빠르게 뛰고 있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 작가 : 일어나자 하는 것이 여자와 포옹이라니... 현민 : 훗, 부럽냐? 작가 : .....아니. 현민 : 수진과 현진이 둘다 안겼는데? 게다가 마지막 속마음은 반한 거잖아? 작가 : 잊고 있나본데.... 크크크. 현민 : (움찔!) 우, 웃음이..... 작가 : 분명히 말해두마. 넌 선택 당.하.는 쪽이다. 크크크크크 현민 : 도,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작가 : 주인공은 자살하면 안되는거 알지? 절대 자살하지 마렴. 고인의 명복을...... 오늘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면서, 고인의 명복을........이 아니라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_(__)_'너무 귀여워~' '너무 귀여워~' 그녀들이 알고 지내던 어렸을 적의 현민에게는 장난기가 많이 있었기에 귀여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현민의 성격에서 나오는 것일 뿐, 얼굴 자체가 귀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들이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성격뿐만 아니라 얼굴마저 너무나 귀여운 상태였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뻗쳐있고, 작게 떠진 두 눈은 아직도 졸음이 남아있는지 살짝 풀린 채로, 입만 싱긋 웃고 있는 현민의 모습은 꼭 잠에서 일어난 고양이 같았다. "응?" 시선을 마주하는 두 사람에게서 의문을 느낀 현민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질문을 던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저기, 그러면 나 깨어났으니깐 퇴원해도 되는 거지?" "아, 응." "그러면 간호사 좀 불러주라." 현민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을 했고, 현민은 그녀들에게 간호사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왜?" "이 바늘 빼야하는데 무서워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의 주인공은 이런 상황에 처했을 경우 혼자서 바늘을 뽑고 몰래 나가겠지만, 평범한(?) 현민은 스스로가 바늘을 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응." 현민의 곁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병실 밖으로 나갔다. 수진은 병원의 간호사에게 현민의 상태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였고, 현진은 밖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는 현민의 어머니에게 현민이 깨어난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현민이 병원을 나온 것은 깨어난 날이 아닌 그 다음날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의 잠에서 깨어난 현민은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서 갖가지의 검사를 받았고, 그러한 검사가 다음날 늦게가 되어서야 끝났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게임은 금지다." "네?!"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하고 있던 현민은, 운전 중에 얘기하는 아버지의 말씀에 크게 소리쳤다. "사람의 뇌파에 변화를 주는 그런 위험한 게임기는 중고로 팔아버릴거다." "아버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의사에게 어떠한 말을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아버지는 현민의 상태를 게임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너랑 할 얘기가 없으니, 앞으로 남은 방학 기간 동안은 공부만 하거라. 벌써 2학년 2학기이니 1년만 있으면 수능이다. 지금의 성적으로 네가 갈 수 있는 대학이 수도권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물론, 중간중간 잘 본 과목도 있고, 시험도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성적으로 수도권의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너도 잘 알고 있을테니, 내 말대로 지금부터는 공부만 하거라." 냉정히 말하는 아버지의 말씀은 현민이 생각하기도 옮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드러낸 모습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고, 감추고 있는 것을 드러낸 현민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 "....." "게임기(캡슐)를 산다는 사람은 다음 주에 오기로 했으니 그때까지 포장이라도 해라." 현민의 아버지는 현민이 잠들어 있는 동안 모든 것을 정리해 놓고 있는 상태였고, 굳은 다짐 때문인지 현민의 의사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 현민의 입은 굳게 닫힌 채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현민의 두 시선은 창밖을 향하고 있었으나,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현민이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할 때였다. "아버지." "?" 현민의 부름에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고, 현민은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한 채 그동안 생각해 왔던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저 혼자 살겠습니다." "!!" 현민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것은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도 놀랐고, 그의 동생인 현웅도, 놀란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현민이 이러한 말을 하리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무슨 수로 혼자 산다는 거냐?!" 어찌 들으면 가출해 버리겠다는 현민의 말에 그의 아버지가 화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오면서 생각해 봤어요." 먹고 있던 죽을 남긴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현민의 말과 태도에 화가 난 아버지가 자신의 앞에 있는 밥그릇을 현민에게 집어 던졌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밥그릇을 본 현민의 어머니는 갑작스런 상황에 몸을 굳혔다. 탁! 툭. 빠르게 날아가던 밥그릇은 금방이라도 현민의 머리를 때릴 것만 같았지만, 그것은 현민의 머리에 맞지 않고 뒤돌아선 현민의 손에 간단히 잡혀버렸다. 날아오는 밥그릇을 잡아버린 현민은 온몸에 묻은 밥을 털며, 밥그릇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툭툭. 날아가는 밥그릇을 맞거나 피할 줄 알았던 현민의 아버지는, 현민이 밥그릇을 잡아버리자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현실에 괴리감을 느끼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현민이 일어난 식탁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현민은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철컥! "하아...." 방으로 들어온 현민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신의 문을 잠그며 한숨을 내쉰 것이었다. 방문 밖에서는 부모님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온 현민은 더 이상, 밖의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방으로 들어온 현민 역시 부모님이 무엇을 걱정하고 계시는지 알고 있었다. 학력으로서 사람을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사회를 몸으로 겪어보신 부모님들은, 자신이 그러한 길을 가지 않도록 하려 한다는 것을 현민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로 인해 단 한번도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는 현민은, 처음으로 즐기는 지금의 놀이를 절대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부모의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이 될 수는 없겠지...." 비록 부모님과 싸우기는 했지만, 그 스스로도 이렇게 나가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부모자식간의 연을 끊는 것도 아닌 이상, 이렇게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며 떠나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후우...." 자신의 방에서 잠시 생각을 정리한 현민은 방문을 열고 부모님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동안 감춰왔던 비밀의 일부를 털어놓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였다. "조용히 들어만 주세요..." 부모님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현민은, 싸울아비 속에서의 자신을 일부 드러냈다. 싸울아비에서의 마법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했고, 그러한 마법을 자신이 어디까지 익히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실력을 가진 자가 현실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는지를 설명하였다. ..... 현민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눈 시간은 3시간을 넘겨버렸고, 부모님의 얼굴은 이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성적과 진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민의 부모님은, 현민이 S대조차 쉽사리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가서는 어떻게 생활하려고 하는 거냐?" 현민을 향해 말을 꺼내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노기가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겉으로 표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민이 S대조차 쉽사리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기뻤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진학이 아니니, 아르바이트 같은 일을 하면서 사회를 경험해 보려구요." 웬만큼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이 그의 통장에 잠들어 있었으나, 현민은 그러한 것을 부모님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의 통장에 있는 돈은 학생이 만지기에는 너무나 큰돈이었고, 그것을 솔직히 말한다면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네 엄마하고 상의해 보마." "네." 상의해 본다고는 했으나, 현민이 생각하기에 이미 답은 나와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 현민 : 큭...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작가 : 쯧쯧쯧... 네가 어디가 잘났다고? 거울줄까? 현민 : 아쉽지만, 나에게는 아직 지혜, 혜진(페튜니아)누님, 연이(아리)가 있어!! (+ . +) 작가 : 아직도 포기를 모르다니... 기다려라. 언젠가 결정타를 날려주마 + . + 오늘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_(__)_ 탁... 부모님과의 대화를 마친 현민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깔끔하게 정리되어진 캡슐을 다시 설치했다. 자신이 잠자는 동안 싸울아비의 세계가 어떻게 변했을지 가장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23일 동안의 싸울아비에 대한 주요 내용들을 검색해줘." - 총 건수. 6건. [전쟁. 가뭄. 토너먼트. 광고. 패치, 싸울아비]으로 요약되었습니다. 캡슐을 설치한 현민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싸울아비로의 접속이나 신체검사가 아닌, 그동안의 있었던 일에 대한 정보수집이었다. "토너먼트 열어줘." <제2회 토너먼트 우승자. 검제 하승훈. 올해 69세의 하승훈 씨는 엄청난 실력을 발휘하며, 2위 소수마녀 윤희연 씨와의 결승전에서 단 한번의 손짓으로 그녀를 제압, 단번에 승부를 가렸다. 3위를 차지한 사람은 무협에서 활동 중인 검후로서, 4위의 바람의 테이머 하양님과 치열한 결전 끝에 승리를 차지.....> 토너먼트에 대한 기사에는 현민에 대한 내용도 나오고 있었으나, 누구의 상대였다고만 나왔을 뿐, 그의 활약이나 능력에 대해서는 단 한줄의 내용도 실려 있지 않았다. 게다가 투광과의 싸움에서 현민이 승리했다는 결과도 왜곡되어, 현민이 패배하고 투광이 올라갔다는 내용도 보이고 있었다. "페튜니아 누나가 해준건가?" 누군가가 방해라도 한 듯이 그에 대한 모든 내용을 왜곡 시켰으나, 그러한 정보를 보고 있는 현민은 화를 내기보다는 환한 얼굴로 페튜니아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페튜니아라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쓸데없이 유명해 지는 것보다는 나 자신의 실력을 감추는 게 낫겠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현민은 자신이 유명하다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TV를 보는 존재지 TV에 나오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패치 보여줘." - 관련된 내용을 말씀해 주십시오. "마법사." <마법의 사용과 동시에 문제의 연산을 통하여 마법이 실현되는 패치가 됨에 따라, 전체 인구의 0.5%에 달하던 마법사의 수가 0.1%로 하락해 버렸습니다. 일부 유저들은 또 다시 일어난 마법사의 하락 패치에 본사로 찾아가 대규모의 시위를 하였으나, 그러한 시위에도 가우리 사는 의지를 꺾지 않은 채..........> 메테오를 소환한 루얀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날려버린 현민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싸울아비"를 만든 가우리 사는 다시 한번 마법사의 하락패치를 함으로써 많은 유저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 속에서도 가우리의 회장은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고, 지쳐버린 유저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바꿔거나 게임을 포기함으로써 그들의 시위는 끝나버렸다. "멋지군...." 마법사에 대한 패치 내용을 전부 읽은 현민이 처음으로 한 말은 반어적 의미가 담긴 감탄사였다. 가우리 사에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이러한 패치는 나이가 어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회사에 상당한 손해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게임을 만든 사람이 그렇게 단순한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리 없지...." 그 어떤 존재도 실현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 낸 사람이 그러한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도 안돼는 것이었다. 현민 스스로도 그러한 것을 알고 있기에, 회장이라는 사람의 생각을 유추해 보려 했으나, 그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싸울아비에 대한 것을 보여줘." 다음의 내용으로 선택한 것은 게임의 이름이자 아리의 직업인 싸울아비에 대한 것이었다. <각 나라에서 실시된 광고와 제2회 토너먼트에 출전한 정체불명의 선수에 의해 싸울아비의 의미가 세계적으로 알려짐에 따라, '싸움을 할 줄 아는 존재'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각자 의미를 가진 하나의 가면을 소유하고 있는 그들은, 자신의 가면을 걸고 상대와 승부를 가림으로서 자신의 실력을..........> <제2회 토너먼트 종료 후, 싸울아비에서 실시한 광고로 인해 전세계의 폭력사건이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 중 몇몇 존재들은 그들을 말리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과 충돌하였으며, 압도적인 무위를 보인 후, 그들의 틈을 빠져나가 세계를 경악에.......> "큭...." 싸울이비에 대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하나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두 개의 내용이 보여주는 것은 단 하나의 동영상 이었고, 그 속에는 현민과 아리가 서울 도심의 한복판에서 엄청난 싸움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23일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세상이 변한 것 같아...." 23일이라면 짧게 볼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현민에게는 그러한 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라는 말을 몸으로 체험한 그에게는 익숙했던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아...." 아직 몇 개의 내용이 남아있었지만 현민은 그것들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흘러간 시간을 알았을 때는 '깊은 잠에 빠졌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이 갖고 있는 정도를 생각하니,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23일 동안 뭘 한거야? 응? 또 하나의 '나'여....' 스스로의 의지로는 감춰진 기억을 읽을 수 없었던 현민은 또 다른 인격을 불러보았으나, 그 인격은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지 현민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있었다. "싸울아비 접속." [캐릭터 룬 Lv. 153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싸울아비로의 접속이었다. 기억할 수 없는 것을 떠올리려는 것은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았고, 다른 것을 할 정도로 정신이 맑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태의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상현실을 즐기며, 몸과 마음에 여유를 갖는 것이었다. "우왁?!" 현민이 접속된 장소는 그가 접속을 종료한 경기장도 아니었고, 일반적인 땅바닥도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허공에서 생겨난 현민은 손발을 휘저으며 무언가를 잡으려 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손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는 중력의 힘에 의해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눈이라도 보였다면 순간적인 판단으로 마법이라도 쓸 수 있었겠지만, 접속을 했을 때, 가장 마지막으로 형성되는 것이 시각이었기 때문에, 현민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털썩! 퍽! "크윽!" "!!!!!!" 바닥에 떨어져 내린 현민은 손과 무릎에 느껴지는 푹신한 바닥에 의아함이 생겼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내 단단한 무언가와 얼굴을 부딪힌 현민은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고통에 눈물까지 흘리며, 코와 입을 부여잡았다. "아...." 울먹울먹.... 시야가 돌아오자마자 확인한 것은 그가 부딪힌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현민은 그것이 주는 충격으로 인해, 온몸이 굳어버렸고, 머릿속이 백지로 변해버렸다. "화, 황녀님......" "으아아아아아앙......" 신음처럼 내뱉는 현민의 말과 동시에, 그의 밑에 깔려있던 황녀가 진주같은 눈물을 흘리며 교과서 읽듯(?) 울음을 터트렸다. 현민의 얼굴과 황녀의 얼굴이 정확히 부딪혔기 때문에, 현민의 코와 부딪힌 그녀의 코에서는 쌍코피가 흘러내렸고, 현민의 입과 부딪힌 그녀의 입은 퉁퉁 부어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강하게 부딪힌 두 사람의 턱은 검붉게 물들고 있는 중이었다. 똑똑. "황녀님?" 높낮음이라고는 전혀 없는, 황녀의 어색한 울음소리를 들은 것인지, 문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기사가 정중히 문을 두드리며 황녀를 불렀다. "황녀님...?" 스으윽.... 방안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경비를 서고 있던 기사가 살짝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침입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소리를 냈다고 생각했던 황녀도 그녀의 침대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중이었다. "착각인가?" 달칵.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기사는 같이 경비를 서고 있던 기사에게 이상 없다는 수신호를 보낸 후, 황녀의 방문을 닫아주었다. "후.... 죄송해요." 기사가 황녀라고 생각했던 존재는 황녀의 머리위로 떨어졌던 현민이었고, 침대 위에서 잠자고 있던 황녀는 현재 이불속 현민의 품에 안겨 있는 상태였다. 공주의 침실이 조금이라도 밝았다면 침대위에 있는 것이 현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테지만, 어둠으로 뒤덮인 황녀의 침실에서 확인 가능한 것은 사람의 실루엣정도였다. "울지 않을거죠?" 끄덕... 황녀를 품에 안고 있던 현민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고, 황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풋." 울먹울먹.... 품에 안고 있던 황녀를 놓아준 현민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자 자신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현민의 품에 안겨있던 황녀가 상당히 웃긴 모습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던 그녀의 코피는, 현민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은 덕분에 이곳저곳으로 번져 있었고, 현민과 부딪힌 그녀의 턱은 심하게 부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미안해요, 울보 공주님..." "풋." 울먹이는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 현민은 선수(?)처럼 다정하게 속삭이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하지만 그도 잊은 것이 있었으니, 그의 상태도 그녀와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현민의 모습은, 무표정한 황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만들어 주었다. "묘." "네~." 현민의 부름에 조용히 대답을 한 묘는 황녀와 현민의 얼굴을 치료해 주었고, 실체화된 상태에서 묘한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흐응~." "응?" "윈디아한테 일러야지~~." "헉!!"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로 현민을 경악하게 만든 묘는 재빨리 모습을 감추었고, 연달아 부르는 현민의 목소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방금 그게 정령?" "하아.... 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황녀는 묘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현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떤 정령들과 계약을 하셨나요?" "불, 물, 바람, 땅의 정령과 계약을 했어요." 귀여운 그녀들의 모습이 떠오른 것인지,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현민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들의 성격은 어떻죠?" "음... 불의 정령인 염화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고...."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이고....' "물의 정령인 묘는 호기심이 많고, 저를 좋아해요." '장난기가 많고, 저를 만만하게 보죠.' "바람의 정령 윈디아는 언제나 즐겁고, 활기차게 생활하며," '언제나 노골적이고, 끈적하게(?) 생활하며,' "땅의 정령인 담비는 순박하고, 생각만해도 끄.....암찍해요." '씻는 것을 싫어하고, 생각만해도 끔찍해요.' 마지막에 속마음을 말할 뻔했던 현민은 간신히 말을 바꿀 수 있었고, 자신이 왜 웃었을까에 대해서 심각히 고민해 보았다. ---------------------------------------- 오늘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_(__)_ "정말 좋아하나 봐요." "그, 그러네요." 차마 부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었던 현민은 식은땀을 흘리며 거짓말을 해야 했다. 정령에 대해 꿈꾸고 있는 소녀에게 진실의 아픔을 가르쳐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침대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은 그 뒤로도 정령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황녀는 현민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스윽... 황녀의 옆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킨 현민은 침대의 가장자리로 몸을 옮겼다. 게임의 시간에 맞추어 그 자신의 몸도 피곤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지만 황녀의 옆에서 잠들었을 경우, 다음날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털썩! 침대의 가장자리로 몸을 옮긴 현민은 조용히 누워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환하게 비추는 달과 빼곡히 박혀있는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밤하늘에 취해버린 현민은 스스로도 잊어버린채 하늘만 바라보았고, 그런 현민에게 다가온 잠이 그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또각또각 "안녕하십니까? 샤이나님!" "안녕하십니까? 샤이나님!" 복도를 걸어오는 샨을 발견한 기사들이 그녀를 향해 인사를 건냈고, 샨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황녀님은 일어나셨나요?" 그들의 앞에 도착한 샨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에게 질문을 했고, 기사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평소 같으면 벌써 일어나 인사를 건낼 시간이지만, 오늘은 깊은 잠에 빠지신 듯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시만요." 샨은 조용히 방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간 후, 기사들이 보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궜다. 이른 아침부터 황녀를 만날 수 있는 것은 그녀에게 배정된 시녀들뿐이었고, 그녀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황녀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어디서나 예외는 존재했고 이번 경우에는 마탑의 예비장로인 샤이나가 그러했다. "아.... 실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던 샨은 침대위에 누워있는 가족의 모습에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왔다. 침대위에는 황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섯명의 인물들이 서로 엉켜서 잠들어 있었기에 방을 착각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응? 황녀님께서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나요?" "아, 음....." 기사의 말을 들은 샨은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다. '황녀님이 엄마. 룬이 아빠. 그리고 여자아이가 넷....? 황녀님한테 아이가 있었던가? 아니아니, 황녀님이랑 룬이 결혼을 했을 리가 없잖아?!' 쾅!! 순식간에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낸 샨은 거칠게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갔고, 경비를 서고 있던 기사들이 놀랄 만큼 빠르게 문을 닫았다. "하아... 걸리면 사망이랍니다. 바람둥이 제자님." 침대의 가장자리에는 현민이 대(大)자로 누워 있었고, 그의 배 위에는 윈디아가 올라가 잠자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에는 염화와 담비가 잠자고 있었고, 왼팔에는 묘와 황녀가 잠자고 있었는데, 바깥쪽에 있는 황녀가 현민을 껴안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살펴봐도 사이좋은 부부가 딸들(묘,염화,담비,윈디아)과 함께 잠자고 있는 모습이었다. "염력." 샨이 가장먼저 목표로 삼은 것은 현민의 가슴위에서 잠자고 있는 윈디아였다. 염력을 사용하여 윈디아를 들어올린 샨은 윈디아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그녀를 반대쪽 가장자리에 눕혀놓았다. 스윽... 플라이로 몸을 띄운 샨은 다른 존재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조심스럽게 현민의 몸 위에 자리잡았다. "으음..." 평소에 느끼던 무게(?)가 달라져서인지, 잠자고 있던 현민이 신음을 내뱉었고, 샨은 그런 현민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안 일어나면 덮쳐 버릴거야." 오싹!!! 샨의 한마디에 눈을 뜬 현민은 자신을 바라보며 싱글거리고 있는 샨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진심이었지?" "흐응~. 글쎄?" 현민의 물음에 샨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는 현민이 먼저 포기해 버렸다. "그 순진했던 샨이 이렇게 변하다니..." "당신 때문이잖아요. 요 심.술.쟁.이." "큭!" 누가 들었으면 오해할만한, 아니 오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말을 내뱉는 샨 덕분에, 현민은 자신을 품에서 놓아주지 않으려던 잠을 완전히 쫓아낼 수 있었다. "염력." 자신의 팔을 차지하고 있는 네 명을 들어올리기 위해 마법을 사용한 현민은 자신의 앞에 생겨난 수학공식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3차원 좌표의 거리계산? 운동 에너지? 위치 에너지? 중력의 계산은 또 뭐지?' 문제의 수준이 심하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여러 가지의 문제들이 섞여서 나온 것 자체가 현민에게 귀찮음을 만들어 주었다. '240, 24(J)' -마법이 실현됩니다. 현민이 답을 생각함과 동시에, 그만이 들을 수 있는 메시지가 귓가에 울려 퍼졌고, 현민의 팔에 누워있던 염화와 담비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윈디아의 곁으로 이동되었다. '만약 답이 틀리면 어떻게 되는거지? 마법이 캔슬되는 건가?' "뭐해?" 문제가 쉬웠기에 답을 맞출 수 있었지만 다음에 나올 문제도 쉬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새롭게 바뀐 마법사의 시스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위에 올라타고 있는 샨이 현민을 불렀고, 현민은 다른 마법을 사용해 보았다. "공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자리에 누워있던 현민이 블링크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그에게만 보이는 문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 나온 문제는 화학작용에 소비되는 에너지와 좌표의 최단 이동거리에 관한 공식이었다. '(450,0,25) 1266345(J)' 팟! 약간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현민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의 신형은 기존에 있던 장소에서 왼쪽으로 옮겨져 황녀의 반대편에 모습을 드러냈다. 털썩! "으응?" "우웅...." 그녀들이 베고 있던 현민의 팔이 사라져 버리자, 그녀들의 머리가 침대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 충격에 눈을 뜬 것은 황녀뿐이었고, 묘는 깊이 잠들었는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현민의 몸 위에 타고 있던 샨은 플라이 마법 때문인지 현민이 사라지기 직전의 자세로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다. "루운...?" "조금 더 주무세요." "네..." 털썩! 상체를 일으킨 황녀가 졸린 눈을 비비며 현민을 불렀고, 현민은 그런 황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황녀의 상체가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현민의 다리에 머리가 닿았고, 그녀는 현민의 다리를 베고 또 다시 잠에 빠졌다. 스윽... 현민은 자신의 다리를 베고 잠들어버린 황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겨 주었고, 그러한 현민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샨은 붉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룬, 황제폐하가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너 아마 이거일걸?" 흔들흔들 붉어진 얼굴의 샨이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려 목 언저리에서 흔들거렸고, 현민은 그러한 샨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만들었다. "훗." "뭐, 뭐야, 그 웃음은?" "질투하는 샨이 귀여워서." 현민의 말을 들은 샨의 얼굴은 언제 붉어졌냐는 듯이 원래의 색을 되찾았고, 이어서 어이없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미쳤구나?" 움찔! 너무나 적절한 샨의 한마디에 현민의 모든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샨의 말에 현민이 보이는 태도는 일반사람들이 정곡을 찔렸을 때 보이는 태도와 조금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 내가 왜 움찔한거지?' 스스로가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하. 무슨 난감한 소리를...." "3초의 침묵은 뭐야?" "....묻지 말아줘." "쿡쿡." 현민의 대답에 미소 지은 샨은 그의 곁으로 내려앉아 현민의 한쪽 다리를 차지하였다. "이제 뭐 할거야?" 현민의 다리를 베고 누운 샨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질문했고, 현민은 자신의 다리에 누워있는 두 여성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행이나 다닐려고." "여행?"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룬 현민은 이번의 독립을 맞이하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게임을 즐겨볼 생각이었다. 그동안은 다른 사람에게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마법을 만들면서 즐거움을 느꼈지만,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며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민의 대답을 들은 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현민이 떠나는 것을 말렸다. "룬, 여행보다는 나랑 같이 마법 연구 하면 안돼?" "응?" 왠지모르게 다급한 샨의 목소리에 현민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여졌다. "모든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 지금 같은 시기에 여행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전쟁?" 샨이 들려준 전쟁은 NPC끼리의 전쟁도, 유저들끼리의 전쟁도 아니었다. 국가적 차원의 몇몇 길드가 "싸울아비"내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선포했다는 것이었다. "싸울아비"의 이익이 현실에서의 이익이 되기 때문인지 의외로 많은 유저들이 나라차원의 길드를 만들어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였다. "응. 우리나라에는 아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나봐. 그러니깐 여행같은 건 나중에 하자, 응?" "흐음...." 걱정스러운 샨의 눈길 때문인지 현민은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현민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녀가 기대하는 그런 대답이 아니었다. "샨." "응?" "모든 유저들을 죽여버릴까?" 오싹! 현민의 말에는 조금의 살기도 들어있지 않았지만, 죽음을 얘기하는 현민의 말에 조금의 살기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샨에게는 더욱 살벌하게만 느껴졌다. 살기가 흐르지 않는 현민의 말투는 사람을 죽인다기 보다 벌레를 죽인다는 느낌이 풍겼기 때문이었다. "룬!" "응? 왜?" 현민의 말투에 깜짝 놀란 샨이 현민을 향해 소리쳤지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그녀가 왜 소리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스스로가 어떠한 말투로 그러한 말을 했는지 느끼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응..." 현민을 부르는 샨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인지 현민의 다리를 베고 잠을 자던 황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황녀의 커다란 두 눈에는 아직도 졸음이 가득 차 있었지만, 황녀는 그런 두 눈을 비비며 샨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아쿠아. 염력." '60, 25' 그의 눈앞에 두 개의 공식이 생겨났지만, 문제도 쉬었고, 문제를 푸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현민은 두 개의 문재를 한순간에 풀어버리고 마법을 실현시켰다. 현민의 앞에 작은 물덩어리가 생겨났고, 그것을 염력으로 붙잡은 현민은 황녀의 얼굴을 깔끔히 씻겨주었다. "윈드." 황녀의 얼굴에 물기가 그대로 남아있자, 샨이 마법을 사용하여 황녀의 얼굴을 말려주었다. "황녀님도 일어났으니, 나는 이만 가볼게." "룬!" "가시나요?"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정령들에게 다가갔고, 아직 현민을 말리지 못한 샨은 다시금 현민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하지만 현민은 샨을 바라보며 웃음지을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고, 황녀는 그러한 현민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빨리 가야죠. 황녀님과 하룻밤을 보냈으니 목숨이 위험하거든요. 쿡쿡." 딸랑... 현민의 얼굴에는 어느새 어릿광대 가면이 착용되어 있었고, 그의 머리에는 두 개의 방울이 달린 모자가 쓰여져 있었다. "일어나렴. 집에 가야지?" "우웅..." "..." "오빠..." "오라버니....." 아직 잠이 덜 깬 담비가 현민의 등을 차지했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염화가 현민의 오른쪽에 서며 현민의 바지를 붙잡았다. 황녀의 곁에서 일어난 묘는 현민의 곁으로 이동하여 그의 손을 붙잡았고, 마지막으로 일어난 윈디아는 현민의 품에 안겨들었다. "....바람피면 죽여버릴거예요." 물론, 현민을 향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하, 하하... 그럼 나중에 뵈요. 귀환." '24∏+534' 당황스런 웃음을 흘리던 현민은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내며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고, 그 장소에는 두 명의 여성과 현민이 남긴 메시지만 존재했다. - 다음에는 내가 이길거야. 그리고 우승 상품은 너한테 맡겨놓을게. <스승이자 제자이며, 친구이자 연인인 샨에게.> - 황녀님 다음에도 같이 자요^^ <잠자는 모습이 아름다운 황녀님에게> "하아... 제발 조심히 다녀야 할텐데." 평소 같으면 허공의 메시지를 읽고 한마디 했을 샨이지만, 여행을 간다는 현민의 계획이 걱정되었기에 현민의 메시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샤이나님..." "네?" 샨이 연신 한숨을 쉬며 현민을 걱정하고 있을 때,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황녀가 평소와 같지 않은 심각한 표정으로 샨을 불렀고, 그녀의 얼굴에 덩달아 긴장한 샨도 심각한 표정으로 황녀를 바라보았다. "저 이제 더럽혀진 건가요?" "풉!!" "아닌가요?" 황제의 딸 사랑 마음 때문에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못한 황녀는, 평소에 시녀들이 했던 말들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고, 예상밖의 반응을 보이는 샨을 보며, 자신의 생각이 틀린지 고민하는 듯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휴가 나온 친구와 놀아주다보니, 대책없는 나날을 보냈네요... 몇날몇일 밤을 세고... 피시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밤에는 온갖 술들을 섭취하고 다녔더니... 죽겠습니다. (x . x) 오늘하루도 재미있게 읽으셨기 바라면서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_(__)_"다녀왔.... 절대방어!" 오랜만에 마녀의 마을에 돌아온 현민은 자신의 방문을 열며 린을 향해 인사를 건냈으나, 린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한마디의 따뜻한 인사가 아닌, 농구공 크기의 매직미사일이었다. 현민은 갑자기 날아온 무언가를 방어하기 위해 다급한 음성으로 마법을 외웠다. 하지만 토너먼트 이후의 패치로 인해 마법은 문제를 풀어야만 실현되었고, 현민의 JQ가 아무리 좋다고는 하지만 천재라는 종족은 아니었기에 현민으로서는 그 짧은 시간에 문제를 풀어낼 수가 없었다. 퍽! "컥!" 현민의 품에 안겨있던 정령들은 매직미사일을 막아주기 보다는 현민을 방패로 하여 그의 몸 뒤에 숨어버렸고, 빠르게 날아온 매직미사일은 현민의 이마를 강타하며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크윽.... 아프잖아!" 덮석! "응?" 빨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부여잡은 현민은 자신의 품에 안겨든 린 때문에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바보. 얼마나 걱정했다고. 죽은 줄 알았잖아....." 현민은 토너먼트 이후에 23~24일동안 잠들었을 뿐이었지만, 현실의 4배로 시간이 흐르는 "싸울아비"로 생각한다면 그는 92~96일동안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사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싸울아비"의 NPC들은 이미 완벽에 가까운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인공지능이 현민이란 존재의 부재에 대해 '걱정'이란 것을 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정말로?" 스윽... 현민은 자신의 품에 안겨든 린을 감싸 안으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아니." 하지만 현민의 말에 ?(물음표)가 생기기도 전에 그의 품에 안겨 있던 린이 단호한 음성으로 대답했고, 현민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사이, 현민의 품에 안겨있던 그녀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큐~." "엥?" 현민이 린이라 생각했던 존재는 그녀의 정령이었던 큐가 모습을 바꾼 것이었다. 바람의 정령인 큐는 자신의 모습을 린으로 바꾸고, 린의 목소리가 만드는 소리의 파장을 대기 중에 만들어 린인 척 연기를 했던 것이었다. "어서와, 루나." 현민이 자신의 품에 안긴 큐를 보며 당황하는 사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린이 그를 껴안으며 돌아온 것을 반겨주었다. 지금같은 시기에 현민이 있다는 것은 그녀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기 때문이었다. "다녀왔어."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은 제대로 인사를 나누었고, 탁자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서서하기에는 상당히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도... 유저들이 왔다고?" "응, 너희들이 유저라 부르는 존재들이 몇 주 전에 쳐들어 왔었어." 전쟁이라는 것이 소규모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을 하는 길드들은 그 규모도 상당히 거대했다. 그러한 거대 길드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러한 금액을 얻기 위한 방법이 단체 사냥이었고, 며칠전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전쟁길드가 마녀의 마을을 습격했던 것이었다. "정령이란 존재가 있었기에 피해가 적었지만 다음 공격에는 어떻게 될지 몰랐거든..." "흠..." 현민이란 존재가 모든 마녀들을 합친 것만큼 강한 것은 아니었으나, 현민이란 존재는 마법진뿐만 아니라 마법까지 익히고 있었기에 단신으로 수많은 유저들을 상대 가능한 것도 사실이었다. "적이 대략 몇 명인데?" "음... 대략 8만?" "뭐?!" 린의 대답을 들은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져 버렸다. 첫째로는 누군가가 8만이나 되는 유저들을 전쟁이라는 목적으로 모았다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그만큼 많은 유저들을 100여명의 마녀들이 막아냈다는 것 때문이었다. 단순히 숫자로 계산해도 1명이 800명을 막아냈다는 것이니 그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놀랄 것 없어. 우리 마을에 호칭이 없는 것은 너밖에 없으니깐." 호칭을 부여받은 마녀와 그렇지 못한 마녀의 차이는 엄청나기 때문에 일부 마녀의 사회에서는 호칭을 부여받지 못한 자는 마녀로서 인정받지도 못하는 경우가 존재했다. 그러한 힘을 가진 존재가 마녀였기에, 그들은 평범한 인간들에게 쫓겨나 숲이나 산에 숨어사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만 아직 호칭이 없었네?" 토너먼트를 나가기 직전이 되어서야 레벨을 올린 현민이었기에, 마을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레벨은 100도 넘어가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토너먼트에 나가기 위해서 레벨을 올린 지금 그의 레벨은 100을 넘어서 버렸고, 호칭을 얻을 조건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로벨 언니한테 가자." 현민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린은 그의 팔을 붙잡고 다섯의 정령과 함께 로벨의 집으로 향했다. 마녀에게 있어 호칭이란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마녀들의 촌장이 해야만 했다. 크앙! 크앙! "피피~. 조용히 하렴." 현민과 린이 로벨(로벨리아나)의 집을 방문했을 때, 가장먼저 그들을 반겨준 것은 2m의 덩치를 가진 불의 정령 피피였다. 덩치만 본다면 오크를 간식으로 생각할 만큼 거대했지만 피피의 몸에 입혀진 드레스와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리본은 피피의 흉폭함을 다소 감춰주고 있었다. "들어오렴, 준비해 두었단다." 현민이 지내고 있는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마녀인 로벨은 현민이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벌써 모든 준비를 맞추고 현민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평소와 같았으면 피피의 간식을 졸랐을 로벨이지만 호칭을 부여한다는 것은 마녀의 의식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기에 하나하나의 행동에 진중함이 묻어있었다. "그럼 난 여기서 기다릴게." 현민과 같이 들어온 린은 거실에 있는 피피의 등에 자리잡았고, 현민은 로벨을 따라 2층의 방으로 들어갔다. "호칭이란 마녀의 문장과 같이 너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고, 너에게 주어질 힘을 의미하는 것이다." "네." 현민이 들어선 방에는 수백 개의 초가 불을 밝히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로벨은 평소의 누나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의식을 진행하는 재사장이나 무녀같은 진중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눈을 감고, '보이는' 카드를 뒤집으면 된다." '눈을 감고 보이는 걸 뒤집으라고?' 로벨의 말을 들은 현민의 고개가 살짝 기울여졌다. 그의 앞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눈을 감은 채로 무언가가 보인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고, '보이는' 카드를 뒤집어라." 보이지 않는 카드가 있더라 치더라도, 카드라는 것이 뒤집는 방법에서도 차이가 나올 수 있는 것이 현민의 생각이었지만, 로벨은 그러한 것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단지 눈을 감으면 카드가 보일 것이라 했고, 그것을 뒤집으라고만 강요했다. 스윽... 이미 상당한 시간을 게임에서 보낸 현민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기에 로벨이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런 현민에게 하나의 카드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륵... 두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한 장의 카드가 선명하게 '보이고'있었고, 더 이상의 망설임이나 생각 같은 것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앞에 있는 카드를 뒤집어 버렸다. 하지만 한번 뒤집어진 카드는 두 눈을 감은 현민에게 보이지 않았고 손을 통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현민이 두 눈을 뜨려고 했으나, 로벨의 손으로 추정되는 것이 그의 눈 위를 덮으며 그의 행동을 막았다. "눈을 뜨려하지 말고, 보이는 카드를 계속해서 뒤집으렴." 로벨의 말을 끝으로, 현민의 눈가를 덮고 있던 로벨의 손이 치워졌고, 현민은 차분한 마음으로 다음에 보이는 카드를 뒤집었다. 사륵...사륵...사륵...사륵...사륵... '어두운 밤하늘에 울부짖는 영혼의 외침을 듣는 마녀'가 해준 설명대로라면 6장의 카드를 뒤집은 현민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야 했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한 장의 카드가 보이고 있었다. 사륵.... 움찔! 현민이 또 한 장의 카드를 뒤집는 순간, 그의 카드를 바라보고 있던 로벨이 놀란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사륵.... 두 눈을 감고 있던 현민이 또 한 장의 카드를 뒤집은 것이었다. 현민에게 보인 것은 총 8장의 카드였고, 그 카드가 만드는 호칭도 그녀가 함부로 할 수 있을만한 것이 못되었기 때문이었다. "달...." "?" 더 이상 보이는 카드도 존재하지 않았고 침묵하고 있던 로벨도 입을 열었기 때문에, 의식이 끝났다는 것을 짐작한 현민이 두 눈을 떴다. 그런 현민의 눈에 비치는 것은 허공에 떠있는 8장의 카드를 보며 경악하는 로벨이었다. "달의 마녀....... 루나." 팟! 로벨의 말이 시작이 된 듯, 현민의 주위로 거친 바람이 몰아치며 방안을 장식하던 모든 초가 꺼져버렸고, 밝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높이 솟아있던 해님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하늘높이 솟아오른 달이 현민을 향해 비추기 시작했다. - 호칭 '달의 마녀'가 부여됩니다. - 정신력(마나)이 2배로 상승합니다. - 모든 마녀의 능력이 2배로 상승합니다. [S급 이벤트 발동 - 마녀사냥!] 사냥당할 것인가?! 사냥할 것인가?! 그대들에 의해 쫓겨났던 마녀가 드디어 눈을 떴으니, 인간들이여 침묵하라! 침묵의 사죄만이 그대들의 살길이니, 살고자 하는 자는 침묵하라! 마녀의 분노는 온 세상을 피로 물들이나, 그녀의 피는 모든 능력을 강하게 만들지니, 천하를 손에 넣고 싶은 자, 마녀의 피로 온몸을 물들여라!! 모든 달빛이 현민을 향해 모여들었고, 현민의 검은색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색으로 변하였다. 달빛에 반짝이는 현민의 머리카락은 은색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약간의 푸름도 들어있어, 밝은 달 아래의 호수 같은 빛깔이었다. - '달의 분노'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 '처벌'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길게 자라나는 현민의 머리는 어느새 발끝까지 자라나 있었고, 그를 비추던 달빛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현민에게 생긴 변화는 머리카락뿐이었으나 바뀌기 전과 후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머리가 은색으로 길어지기 전, 현민의 얼굴은 못생긴 것은 아니나, 절대로 잘생겼다라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민의 머리가 기다란 청은색으로 바뀌면서 평범하던 그의 얼굴이 엄청난 미남으로 보였다. 달의 분노 능력 : 모든 몬스터의 조종 가능. 조건 : 달이 있을 때만 사용가능. 처벌 능력 : 어떠한 것이든 죽일 수 있는 검을 소환 조건 : 소환의 대가는 한번의 죽음. 주문 : 내 심장에서 칼을 뽑아 그대의 목을 자를 수 있는 검을 소환할지니, 나의 죽음을 대가로 그대의 목숨을 가져가리라. 새롭게 생긴 두 개의 스킬은 간단한 내용으로 되어 있었지만 그 능력만큼은 간단하지가 않았다. 분노라는 스킬의 경우 달이 떠있을 때만 사용가능하다고 하지만 달이 떠있는 짧은 시간이라도 모든 몬스터를 조종한다면 나라 한두개쯤은 쉽사리 없애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처벌이란 능력은 자신의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설명대로라면 드래곤조차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팟! 현민을 비추던 달빛이 전부 사라져버리자 방안에 있던 꺼진 초들이 다시금 불을 밝혔고, 어둡던 하늘과 사라졌던 해님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귀찮은 능력을 얻었네요..." 허공에 생겨난 퀘스트 종이를 읽은 현민은 모든 유저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자 한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달의 마녀'란 호칭을 받으면서 엄청난 능력을 얻었지만, 그 능력만큼의 패널티를 같이 얻었다. "스텟창." ----------------------- 이름 : 룬(루나). 호칭 : 달의 마녀 Lv : 143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7) 민첩 : (15) 건강 : (16) 반사신경 : (18) 지능 : 360(19) 정신 : 462(21) 공격력 : 34 - 34 마법력 : +758 방어력 : 60 생명력 : 2852 (+2300) 정신력 : 129270 ((+16000)*3) 물 속성 친화력 : 609 불 속성 친화력 : 609 땅 속성 친화력 : 609 바람 속성 친화력 : 609 정령력 : 620 물 Lv 154 바람 Lv 154 불 Lv 154 땅 Lv 154 보너스 스텟 : 0 ----------------------- 현민의 스텟창(상태창)은 크게 바뀐것이 없어 보였지만, 자세히 바라볼 경우 그의 정신력은 일반 유저들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엄청난 정신력에 감탄을 하고 있었겠지만 현민은 어떤 것을 급히 계산중이었다. '버그?' 현민의 기존 정신력은 64635로 순수 정신력 5545에 아이템으로 인한 정신력 16000이 더해지고 거기에 3배가 되어진 숫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력이 2배가 된다면 순수 정신력인 5545의 두배 11090에 16000이 더해지고 3배가 되어진 81270이 되어야 했지만, 버그인지 현민의 정신력은 아이템이 포함된 64635가 2배로 되어진 것이었다. "루나? 무슨 이상있어?" "아뇨, 괜찮아요." 현민의 머리가 째빠르게 회전하고 있을 때, 가만히 있는 현민을 이상하게 여긴 로벨이 가까이 다가왔고, 현민은 잠시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이템 장착 해제, 착용.' 정신력을 높여주던 현민의 아이템들이 해제되었고, 금세 원래의 자리에 착용되어졌다. "스텟창." ----------------------- 이름 : 룬(루나). 호칭 : 달의 마녀 Lv : 143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7) 민첩 : (15) 건강 : (16) 반사신경 : (18) 지능 : 360(19) 정신 : 462(21) 공격력 : 34 - 34 마법력 : +758 방어력 : 60 생명력 : 2852 (+2300) 정신력 : 258540 ((+16000)*3) 물 속성 친화력 : 609 불 속성 친화력 : 609 땅 속성 친화력 : 609 바람 속성 친화력 : 609 정령력 : 620 물 Lv 154 바람 Lv 154 불 Lv 154 땅 Lv 154 보너스 스텟 : 0 ----------------------- 그의 계산은 정확했고, 현민의 정신력은 기존의 4배가량 늘어나 버렸다. 정신력만 따지자면 세계 최강의 위치에 자리잡은 현민이었다. 위이이잉... 정신력을 따지던 현민의 JQ가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의 얼굴에는 실망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하아.... 로벨누나.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로벨이 어떠한 말도 하기 전에 현민의 신형이 허공에서 사라져 버렸고, 로벨은 반쯤 들려진 손을 내리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현민이 호칭을 얻음으로써 모든 존재에게 퀘스트가 부여되었다면, 현민 역시 별도의 퀘스트가 부여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서있던 로벨이 그러한 역할을 해야만 하는 NPC였다. 하지만 현민은 로벨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사라져버렸고, 로벨은 자신의 의무를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 이번의 패치는 마법사를 죽이기 위한것이 아닙니다. 현민을 살리기 위한 패치죠. 그리고 마법을 사용할 때 나오는 문제들은 간단한 수학으로 설정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미적분 문제나 암산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문제는 아니랍니다. 아쿠아의 경우에는 구의 부피를 구하는 정도? 누구나 암산으로 끝낼 수 있겠죠...^^ 그리고 이에 따른 복선은 이미 깔려 있답니다. 못찾으신 분들을 위해 다시한번. '만약 답이 틀리면 어떻게 되는거지? 마법이 캔슬되는 건가?' 이게 바로 복선이죠. 그리고 이번화에 등장한 현민의 호칭. '달의 마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호칭인 만큼, 모든 유저가 현민을 죽이려 한다는 설정입니다. 오늘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_(__)_ ".... 그 저주받은 호칭이 나올 줄이야." 현민이 사라진 자리에 홀로 남은 로벨은 심각한 얼굴로 현민의 호칭에 대해서 고민했다. 마녀에게 있어서 달이라는 것은 힘을 상징하는 엄청난 카드였기에 호칭에 달에관한 이름이 하나라도 들어간다면 그것은 마녀에게 있어 커다란 영광이었다. 하지만 현민과 같이 모든 카드가 달을 가르킨 적은 한번도 없었고, 그 유명한 마녀전설의 마녀조차도 단 4개의 달만 가지고 천하를 피로 물들일 정도였다. 또각또각 "언니! 설마 루나가?!" 끄덕... 방금 일어난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는 린은 놀란 표정으로 로벨을 향해 물어보았고, 로벨의 고개가 살짝 숙여졌다. "마, 말도 안돼.... 몇 장이나 뽑은거야? 응?" 린의 물음에 모든 마녀들의 시선이 로벨의 입으로 모여졌다. 대낮에 달이 뜨고, 그 달빛이 촌장의 집을 향했다는 것은 누군가가 '달'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마녀들이 '달'의 호칭을 받은 엄청난 존재를 보기 위해 촌장의 집으로 몰려든 것이었다. "8장이다...." "뭐?!!" 웅성웅성 로벨의 대답을 들은 마녀들은 경악했다. 호칭을 만들어주는 마녀의 카드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카드였기에 더 뽑을 수도 덜 뽑을 수도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 카드를 8장이나 뽑았다는 것은 현민에게 주어지는 호칭이 6장의 카드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을 뜻했다. 게다가 역사상 최강 최악의 마녀가 지닌 호칭에도 '달'의 명칭은 겨우 4개밖에 들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현민이란 존재가 8장의 카드를 뽑았으니, 그녀들의 눈앞에서 새로운 역사가 쓰인 것이었다. "하지만 '달'의 카드는 총 6장이잖아!!" 마녀의 역사에 등장하는 달의 카드는 총 6장으로 신월(삭),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이 있었다. 물론, 모든 카드가 드러난 것은 아니었지만 달의 변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카드라면 이 6개가 모든 달의 카드인 것은 분명했다. "이름 없는 달..... gibbous moon(반원보다 불룩한 모양의 달)" "아!!" 로벨의 대답을 들은 마녀들이 일제히 탄성을 내뱉었다. 하현달(반달)과 보름달 사이, 보름달과 상현달(반달) 사이에는 분명이 구별되는 모양을 가진 모습의 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루나의 호칭은 '달의 마녀'다!" 평화로운 시기라면 몰라도 지금 같은 시기에서 '달의 마녀'가 등장한다는 것은 모든 마녀들에게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위이이잉...... "하아... 진작에 호칭 받을걸." 캡슐에서 일어난 현민은 호칭을 늦게 받은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토너먼트 이전에 6자리 숫자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저레벨의 마법을 무한 난사하여 쉽사리 이길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털썩! "휴, 마법을 사용할 때 마다 문제를 풀어야 하다니...." 중고등학교 정도의 간단한 수학이라 암산으로 가능한 수준이라지만, 마법을 사용함에 있어서 딜레이가 생긴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단점일 뿐, 조금전 인터넷을 뒤진 현민은 그 속에 숨겨진 거대한 장점을 찾아내었고,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 열심히 JQ를 돌리는 중이었다. "...최강이군, 크크큭." 하지만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였을 뿐, 그는 잔인한 현실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현민아, 너 방학 숙제는 다 했니?" "컥!!"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현실로 돌아온 현민은 급히 날짜를 계산하였고, 자신의 방학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절망했다. 한달을 약간 넘는 방학중에서 23일을 잠으로 보냈으니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현민~~" 싹! "아?" 이른 아침 힘겹게 등교를 하고 있던 현민은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한걸음 옆으로 물러났고, 그가 있던 자리에 지혜가 나타났다. "왜 연락 안했어? 너 퇴원했다는 소리 듣고 문자랑 음성 잔뜩 남겼는데." 잠들어 있었던 현민은 모르고 있지만, 수진과 현진, 그리고 지혜는 현민의 병실을 너무 많이 들락날락거려 그의 부모님도 그녀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정도였다. "숙제...." "숙제?" "숙제 때문에 피곤해 죽겠어." "헤에~? 우리 천재가 힘들어하는 것도 있었네?" 현민의 피곤에 찌든 모습을 바라본 지혜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는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현민을 자신과 같은 천재로 바라보고 있는 지혜는 숙제로 인해 고생했다는 현민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언제나 말하지만..." "너는 천재 맞아." "아니라고..." 근거까지 들먹이며 주장하는 두 사람은 학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까지 서로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른 새벽이기에 등교하는 학생의 숫자는 적었고 학교도 조용했기에, 길에는 그들의 말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너희 교실로 가." "싫.어." 교실의 앞에 도착한 현민은 자신의 옆에 붙어있는 지혜를 때어내려 했으나, 현민의 곁에 서있는 지혜는 그의 곁에서 조금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드르륵. 결국 지친 현민이 교실의 문을 열었고, 그의 곁에 붙어 있던 지혜는 현민을 따라 그의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안녕." "아, 퇴원한거야?" 현민보다 먼저 등교한 학생은 모범생이자 반장인.... 반장이 있었다. "응, 근데 반장." "응?" "미안한데 네 이름이 뭐였지?" 현민의 물음을 들은 반장과 지혜는 이상한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아직까지 반장의 이름을 모르는 것도 그렇고, 그것을 대놓고 물어보는 현민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아름이니깐 잊어버리지마." "바보."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반장도, 그리고 그것을 옆에서 듣고 있던 지혜도, 왠지 자신들의 상황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모든 수업을 마치고 남들은 자율학습을 하고 있을 시간에, 현민은 당당히 가방을 챙겨서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몇몇 도망가는 학생들이 담 사이를 통과하며 현민을 바라보았지만, 담임선생님께 허락을 받은 현민은 당당한 걸음으로 나가고 있었다. 현민이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그의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했고, 현민은 자신에게 걸려온 번호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받아버렸다. - 현민아~ "누구야?"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 글쎄~? 수진일까? 현진일까? "맞추면 뽀뽀?" - 맞추면 해줄게. 현민에게 전화를 건 것은 수진, 현진 자매중 하나였다. 현민이 자신들을 잘 구별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얼굴을 보고 구별하는 것이었기에 전화를 건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만만한 음성으로 현민의 조건을 승낙했다. 전화로 하는 이상 자신이 누군지는 모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음.... 그러면 현진이 너랑은 두 번째로 뽀뽀하는 건가?" - 흐읍!! 무슨 말씀을~. 틀렸으니깐 그건 무효지. "정말? 숨 들이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는데?" - 나 수진이야. 전화를 건 사람은 자꾸만 수진이라고 우겼지만, 현민은 벌서 감을 잡은 뒤였다. "너 자꾸 거짓말하면 예전에 뽀뽀한거 수진이한테 말한다?" - 윽! 현민이 초강수로 나오자 전화를 하고 있는 현진도 더 이상 발뺌할 수가 없었다. 중학교 시절 그들이 뽀뽀를 한 것은 아무로 모르는 비밀이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성격으로 생각한다면 현민이 비밀로 하려 했겠지만, 그때의 뽀뽀는 현민이 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현진에게 당.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는 별로 상관없었다. "무슨 일로 전화한거야?" - ....... "여보세요?" 하지만 전화를 건 현진이 무슨 일을 하는지 핸드폰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네가 받어!" 일찍 하교하고 침대에 누워서 현민과 전화를 하던 현진은 붉어진 얼굴로 자신의 손에 들린 전화기를 수진에게 넘겨버렸다. 현진에게서 전화기를 건내받은 수진은 현진의 붉어진 얼굴이 의심스러웠지만 전화기에서 현민의 음성이 계속 들려왔기에 그녀에 대한 의심은 잠시 접어두었다. "나야, 현민아." - 응? 수진이네? '초능력이네....' 목소리만으로 자신들을 구별하는 현민을 들으며 수진은 새삼스레 감탄했다. "이번에 "싸울아비"에서 던전을 하나 발견했는데, 우리끼리는 약간 힘들어서...." - 많이 어려워? "응, 제법 한다고 하는 친구들하고 같이 가봤는데, 장난 아니야." 겨우 한달의 기간이었지만 수진과 현진의 레벨은 이미 현민을 뛰어넘고 있었다. 각각 다섯의 정령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은 1/6의 경험치밖에 얻지를 못했지만, 정령사란 직업이 그녀들과 잘 어울리는 것인지, 그녀들은 빠른 시간에 "싸울아비"에 적응해 나갔고, 그녀들이 벌어들이는 돈도 이전의 알바비와 비슷할 정도로 늘어난 상태였다. - 어디로 가면 돼? "음... 현실시간으로 7시에 쿠진의 광장에서 기다릴게." - OK~. 현민의 승낙을 마지막으로 수진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후후후후훗....." "뭐, 뭐야?" 전화기를 원래의 위치에 가져다 놓은 수진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현진이를 바라보았고,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는 현진은 문쪽으로 움직이며 수진의 행동에 긴장했다. "쌍둥이 현진양이 무슨 비밀이 있을까나~?!" "꺄아악!" "자~, 빨리 말해봐." "그, 그만해." 현진을 향해 몸을 날린 수진은 도망가는 그녀를 침대위로 잡아당겼고, 현진의 뒤를 잡은 수진이 현진의 몸(?)을 주물럭거렸다. 그 뒤로 그녀들은 7시가 되기까지 자매만이 할 수 있는 스킨쉽(?)을 즐겼다. ------------------------------------------- 작가 : 너, 너, 너!! 도대체 언제 현진이랑 뽀뽀를!!!! 현민 : 훗! 작가 : 크헉! 현민 : 네가 모르는 과거가 있어. 쿡쿡. 작가 : .....알아내고야 말겠어! 아니, 알리고야 말겠어!! (+ . + ) 오늘 하루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_(__)_ 현민 : 야, 야! 작가 : 왜? 현민 : 할말 다 끝났으면 자매만의 스킨쉽 좀 자세히 묘사..... 작가 : 현진양~ 현진 : 네? 작가 : 현민이 질.문. 있대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다녀왔습니다~." 집에 도착한 현민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으나, 그의 인사를 받아주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인사를 했던 현민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올 말을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미리 가서 준비해 볼까?" 현진, 수진 자매와 약속한 7시가 되기까지 많은 여유가 있었으나, 준비할 것이 많은 현민은 약속보다 빠르게 "싸울아비"로 접속했다. [캐릭터 룬 Lv.143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어두컴컴한 캡슐에 누워있던 현민은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싸울아비 속의 룬으로 바뀌었다. - 룬!! 현민이 싸울아비로 들어갔을 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익숙했던 자신의 방이 아니었고, 그를 반겨주는 것도 평소의 밋밋한 가슴이 아니었다. 약간(?)의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현민은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존재가 엄청난 가슴의 소유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 누구? 아?!" 접속하자마자 안겨온 여인 때문에 순간 당황한 현민이었으나, 자신의 품에 안긴 존재가 누구인지 확인한 현민은 굳이 품에 안긴 존재를 떨어뜨리려 하지 않았다. - 룬 냄새 너무 좋아. 부비부비. "미안, 너무 늦었지?" 오른손을 들어 올린 현민은 자신의 품에 얼굴을 비비는 하피를 쓰다듬어 주었다. 토너먼트 100일전부터 발록과의 수련 때문에 만난 적이 없었으니, 현민으로서도 상당히 오랜만에 하피와 만나는 것이었다. - 저번에 냄새나서 찾아왔는데, 룬 없었어. 그래서 기다렸어. 현민이 마녀의 마을로 돌아왔을 때, 그의 존재를 느낀 하피가 마녀의 마을로 찾아왔었지만, 호칭을 얻은 현민이 바로 로그아웃을 해버렸기 때문에, 그녀가 현민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미안." - 이제는 항상 같이 있을래. 현민의 품에 안겨있는 하피는 현민의 냄새를 맡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그녀를 안고 있는 현민은 자신에게 몸을 부비는 하피로 인해 당황한 얼굴을 했다. 약간이나마 떨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를 껴안고 있는 하피의 힘이 현민보다 강했기에 그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녀를 풀어낼 수도 없었다. "휴우..." 로벨의 집을 떠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현민은 가장 먼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의 품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하피 때문에 움직이기가 곤란했던 현민은 품안에 있던 하피를 어르고 달래서 등에 업고 왔기 때문이었다. 현민이 한숨을 쉬고 있는 지금도, 그의 등에는 반쯤 벌거벗은 하피가 현민의 목에 얼굴을 비비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이었다. - 룬 이제 뭐해? "나는 마법사라서 메모라이즈를 해야해." - 응! 지식이 부족한 하피는 마법사라는 것도 몰랐고, 메모라이즈라는 것도 뭘 말하는 것인지 몰랐으나, 대답만은 우렁차게 했다. 현민의 등에 업혀있던 하피가 바닥으로 내려왔고, 현민도 바닥에 주저 않아, 그동안 생각했던 메모라이즈를 시험했다. "메모라이즈." 6x5x10=? 메모라이즈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가상기억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인지, 그 문제도 부피를 구하는 쉬운 공식이었다. 하지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현민은 굳이 그것의 답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공간의 부피가 300으로 잡혀있으니 300이라는 공간에 20개의 마법이 들어간다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한 현민은 정답의 두 배인 600을 생각하고, 40개의 마법을 메모라이즈 해 보았다. 하지만 현민의 생각대로 40개의 마법이 메모라이즈 되지는 않았다. 기존의 메모라이즈인 20개는 쉽사리 넘었으나 8개의 마법을 추가로 메모라이즈 했을 때, 메모라이즈가 실패로 되었다. 결국 현민이 메모라이즈 한 마법의 숫자는 27개였다. "음..." - 음.... 현민의 무릎에 올라앉은 하피가 현민을 따라했으나, JQ를 돌리기에 바쁜 현민은 그녀까지 신경 쓸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600으로 잡았는데 40개가 아니다? 뭔가가 잘못 된 것인가?' 300에 20개의 마법이 기억된다고 했을 때, 600에는 40개의 마법이 기억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확실했으나, 현실은 현민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디가 잘못된 지를 확인 할 수 없었던 현민은 메모라이즈했던 마법을 전부 취소해 버렸다. "메모라이즈." 6x5x10=? 똑같은 문제가 현민의 앞에 나타났고, 현민은 300의 정답을 생각한 후 21개의 마법을 메모라이즈 해 보았다. '역시 300의 답에는 20개가 되는 건가?' 하지만 정답을 맞히고 메모라이즈를 할 때에는 20개의 마법만 메모라이즈 되었고, 현민은 20개의 마법을 취소해 버렸다. '300이란 정답으로는 20개의 마법이 메모라이즈 되고, 남는 300이란 숫자에 7개의 마법이 메모라이즈되었다면? 5서클의 마법만 메모라이즈 했으니, 마법마다 정해진 숫자가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 7x <= 300 < 8x가 되는 건가?' 간단한 공식을 생각한 현민은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또 다시 메모라이즈 마법을 실행했다. "메모라이즈." 6x5x10=? '337.5' x의 최소값을 생각한 현민은 소숫점까지 써 가며 정답을 생각했으나 아쉽게도 20개의 마법만 메모라이즈되었을 뿐, 21번째의 마법은 메모라이즈 되지 않았다. "메모라이즈." 6x5x10=? '338' 현민은 막 일(노가다)의 정석을 보여주듯이 0.5 단위로 답을 끊으며 마법을 메모라이즈 했고, 기존의 2번을 포함하여 8번의 메모라이즈만에 5서클의 마법을 메모라이즈 할 수 있는 숫자를 찾아냈다. 오답을 말할 경우, 마법의 사용에 들어가는 정신력의 양이 증가하거나 감소하지만 6자리를 나타내는 현민의 정신력은 2자리의 정신력이 줄어든 정도로는 티도 나지 않았다. "메모라이즈." 6x5x10=? '1700' 5서클의 마법을 메모라이즈 할 수 있는 숫자를 찾아낸 현민은, 5서클에 이어서 6서클의 정해진 숫자도 찾아보고 싶었지만, 현진과 수진의 약속 때문에 더 이상 메모라이즈만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진정한 환상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진실된 거짓(5서클) 소모 정신력 : 200 능력 : 시간마저 속일 수 있는 듯한 강력한 환상마법. 믿음이 부족하고 정신력이 약한 존재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거짓속에서 영원을 헤맨다. 현재 단계 : 6 주문 : 진정한 환상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지의 상실이니, 그 시작을 지금 이곳에서........ ∫6x^2+x-2y-2 패치에 대해서 잔머리 굴릴 생각만 하던 현민이었으나, 5서클의 마법을 메모라이즈하면서 느낀 점은 역시나 욕이 안 나올 수 없는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현민과 린이 만들었던 '마녀의 공식'을 사용할 경우 미적분계열의 문제는 짧은 시간안에 쉽사리 풀 수 있었지만, 주문을 외우는 것 이외에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도 귀찮았고, 이렇게 문제를 풀고 마법을 저장해도, 사용할 때 또 다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귀찮았다. 리무브 소울(5서클) 소모 정신력 : x 능력 : 자신의 정신력을 x만큼 사용하여 상대방의 정신력을 x만큼 없애버린다. 현재단계 : 6 주문 : 그대의 영혼에 담긴 강인한 힘이 자연의 의지에 따라 흩어지니........ 여왕의 거미줄(5서클) 소모 정신력 : 100 능력 : '진실한' 여왕의 거미줄과, 같은 능력을 지닌, 마나의 거미줄이, 감싸않은 먹이를 놓아주지 않고 움직임을 봉쇄한다. 주위에 거미줄을 지탱해줄 무언가가 있을 경우 발현된다. 현재 단계 : 6 주문 : '진실한' 여왕의 거미줄이 내 주위에 퍼져 나의 먹이를 기다리............ 대지의 심판(5서클) 소모 정신력 : 320 능력 : 땅에서 솟아나온 단단한 창이 가시나무처럼 뻣어나며 주위에 있는 모든 적을 공격한다. 현재 단계 : 6 주문 : 대지에서 솟아나온 강인한 창이 그대를 뚫고........ 지옥의 문(5서클) 소모 정신력 : 230 능력 : 땅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며 대상을 집어삼킨다. 대지에 생겨난 구멍에서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현재 단계 : 6 주문 : 모든 영혼은 땅으로 돌아가니, 지금 그 사자(死者)의 문을 열어 살아있는 존재를 돌려보내............. 마법의 공간(5서클) 소모정신력 : 100 능력 : 범위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경우 이 공간안에서만 발현되며, 단일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경우 이 공간 전체에서 발현된다. 현재단계 : 6 주문 : 새롭게 이어진 하나의 공간에서............ ................... 시간의 여유가 별로 없는 현민은 마법의 저장을 서둘렀고, 현실로 7시가 되기 20분 전에 메모라이즈를 끝낼 수 있었다. 현실시간으로 5시가 약간 넘어서 접속했으니, 게임시간으로는 최소 4시간동안 메모라이즈만 한 것이었다. "휴우..." - 룬 끝났어? "루나, 로벨이 할 말......" 빠직! 로벨이 온 것을 알리기 위해 문을 열었던 린은 현민과 하피의 자세를 본 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머리에 혈관마크가 생겨났다. 현민의 무릎위에 앉아있는 하피는 두 다리로 현민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고, 두 날개는 현민의 어깨에 올린 채 기쁨이 담긴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자세에서 현민이란 존재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뒤로 기울인 채 무엇인가가 힘든듯 땀을 흘리고 있었으니....... 그들의 자세는 린이 오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자세였다. "응? 왜 그래?" - 룬, 무서워. 빠직!! 린의 분위기에 놀란 하피가 현민의 목을 껴안으며 그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고, 린의 머리에는 또 하나의 혈관마크가 생겨났다. "흐응~, 아무리 욕구불만이라지만 하피는 너무했다, 그치?" "로벨?" 문앞에서 굳어버린 린이 폭주하기 직전,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로벨이 현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현민은 자신을 찾아온 로벨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욕구불만이라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밤마다 잠 못 드는 마녀들이 얼마나 많은데." 농담이라면 울고 싶고, 진담이라면 뇌물이라도 주면서 부탁하고 싶은 로벨의 말에, 현민의 시선이 로벨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하피가 왜?"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하피가 있었으나, 현민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눈치 채지를 못했다. 그러한 현민의 태도에 린의 붉어졌던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싱글싱글 거리던 로벨도 심각한 얼굴로 웃음을 지웠다. "음....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닌 것 같지?" "응. 혹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건가?" "흡! 설마 책에서만 나온다는 장미족인가?" "그 남자만 좋아한다는 변태족?!" 속닥속닥...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는 그녀들은 한마디 할 때마다 현민을 쳐다보았고, 현민은 점점 붉어지는 그녀들의 얼굴을 보며, 심각한 오해가 생기기 전에 말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털썩! 하지만 그의 품에 안겨 있던 하피는 생각 이상으로 무거웠고, 현민의 신형은 자연스럽게 앞에 있던 침대쪽으로 기울어졌다. 하피의 무게로 인해 기울어지는 자신을 느낀 현민은 두 손을 휘두르며 무엇인가를 잡으려 했으나, 그의 손에 걸리는 것은 그를 안고 있는 하피의 옷 뿐이었고, 그들이 침대위로 넘어졌을 때, 하피의 옷이 위로 올라가며 그녀의 어여쁜 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빠직! "루나!!" "아, 아냐! 이건 실수야!!" 하피의 모습도 모습이었고, 그들의 자세도 자세다보니, 린의 머리에는 또 다시 혈관마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스슥! 스스슥 "파이어!" "방어~." 순식간에 마법진을 그려낸 린이 현민을 향해 가벼운 발화마법을 사용했으나, 그녀의 곁에 서있던 로벨이 현민을 대신해 그녀의 마법을 막아주었다. "언니!" "자자, 침착하렴. 루나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니? 게다가 저런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변태족(?)이 아니라는 얘기고... 결과는 만족이지?" "흥!" 콧바람을 낸 린이 고개를 돌리기는 했으나 더 이상 현민을 향해 마법을 날리지는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하피의 옷을 제대로 입혀준 현민은 붉어진 얼굴로 린과 로벨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들어와서 흥분한 것도 그렇고, 속닥거리며 이야기 한 내용도 정상적인(?) 여성들이 할만한 내용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뭐, 우리들이 오해했던 것 같으니깐 신경쓰지 마." 현민의 침대에 자리잡은 로벨이 두 손을 흔들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현민을 자신의 곁에 앉혔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 잘 들어, 너의 호칭에 관한 이야기니깐." "저기... 로벨누님?" "응?" 그녀가 막 퀘스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현민이 손을 들며 그녀의 이야기를 막았다. "제가 약속이 있어서 그러는데, 갔다와서 들으면 안될까요?" "흠..." 현민의 말에 생각하는 듯 로벨의 머리가 좌로 기울어졌고, 현민과 하피의 머리도 그녀의 머리를 따라 우로(보이는 방향) 기울어졌다. "뭐, 괜찮겠지." "언니!" 로벨이 말 하려고 하는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린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기 위해 서둘러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로벨은 천천히 말해도 된다는 태도로 흥분해 있는 린을 말렸다. "갔다오면 꼭! 들어야 한다?" "네!" 로벨과 약속을 한 현민은 한쪽 구석에 있는 상자를 집어 들었고, 하피와 함께 창문으로 나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린, 나 갔다올게~." - 데이트. 데이트. 룬하고 데이트. 펄럭! 펄럭! 마녀의 빗자루에 올라탄 현민은 창문으로 내다보는 린을 향해 인사를 했고, 하피는 그의 주위를 날아다니며 린의 신경을 건들었다. "언니, 당장 말해야 하는거 아냐?" 현민과 하피가 그들의 눈에서 사라졌을 때, 창가에 서 있던 린이 로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로벨의 허락이 떨어진다면 지금이라도 현민에게 호칭이 갖는 의미와 과거의 일을 알려주고 싶었다. "괜찮아. 아니, 괜찮을거야. 그는 강하고, 지금의 마녀들도 예전과는 다르니깐." 로벨은 현민으로 인해 강해진 자신들을 생각했다. 이전에도 강했지만 현민이 도와준 정령과의 만남은 그녀들을 한계 이상으로 강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러한 강함은 그녀들만으로 대륙을 상대함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모든 것이 그녀의 생각대로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 출판에 대한 질문이 많이 올라오네요ㅡㅡa 이전에도 한번 말한것 같은데, 저는 출판할 생각이 없답니다. 그리고 안티분들. 아쉽게도 5~7군데에서 출판제의는 확실히 받았으니 태클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말도 안돼는 것으로 욕 하지 말아주세요. ㅡㅡ 오늘 하루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_(__)_ -욕 먹기 싫은 작가가.....마녀의 마을을 벗어난 현민은 가까운 마을로 들어가기 직전에 근처의 숲으로 내려섰다. "묘." "네~." 숲에 들어선 현민은 주위를 살핀 후, 묘를 소환하여 하피의 몸을 깨끗이 만들어 주었다. 지저분하던 하피의 털이 묘의 물길에 씻겨지자 그동안의 때가 빠지며 하얗게 변했고, 원래의 색을 되찾은 하피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고마워." "헤헤헤." 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현민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현민에게 안겨있는 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정령계로 사라졌다. "지금의 모습은 너무 튀니깐 이걸 써." 한 장의 로브를 꺼낸 현민은 그것을 하피에게 둘러주어 그녀의 커다란 날개가 보이지 않도록 했다. 몬스터의 일종인 하피가 마을로 들어가면 유저들이 공격해 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 룬. 답답해. "미안, 하지만 조금만 참아줄래?" 한 장의 옷만 걸치고 다니던 하피는 커다란 로브가 전신을 둘러싸자 매우 불편해 했다. 현민은 그러한 하피를 어르고 달래며 데려갔고, 아무 일 없이 쿠진마을의 광장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휴우... 아직 늦진 않았네." - 룬 더워. 현진, 수진 자매와 약속한 시간까지는 현실로 5분 남았었고, 게임으로는 20분정도가 남아있었다. 현민의 곁에 있는 하피는 로브를 뒤집어썼기 때문인지, 현민에게 붙으며 투정을 부렸다. "잠깐만." 짝! 분수대의 가장자리에 하피를 앉힌 현민은 두 손을 마주쳤고, 그의 손끝에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음..." 스스슥, 스슥.... - 꺄르르르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현민은 하피의 가슴부위에 몇가지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로브를 통하여 간간히 닿는 현민의 손길이 간지러운 것인지, 현민의 손을 바라보는 하피가 맑은 웃음소리를 냈다. "됐다!" 휘이잉.... - 룬, 시원해~. 기분좋아! 현민이 마법진을 완성하자 하피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전까지는 걸치고 있는 것이 답답하고 불편했었지만 현민이 마법진을 그려주는 순간부터는 로브를 쓴 것 같지도 않은 느낌이었고, 로브에서 시원한 바람이 흘러나오며 그녀의 몸을 식혀주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건 어쩌지?" 하피에게 마법진을 그려준 후, 그녀의 곁에 주저앉은 현민은 로브속에서 느껴지는 자신의 길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나 아름답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이었기 때문에 자르지도 못한 채 로브로 가리고 있는 중이었다. "진짜로 잘라야 하나?" - 룬 머리카락 부드러워 기분좋아. 현민이 자신의 머리카락에 대해서 심각히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곁에 있던 하피가 현민의 행동을 말렸다. 현민에게 달라붙었을 때, 느껴지는 그의 머리카락은 그녀를 기분 좋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하지만 너무 길어서 불편한데.... 틀어 올릴까?" 길어진 머리카락을 보며 고민하던 현민은 멋들어지게 올라간 머리가 생각났고, 자신의 방에서 가져온 상자를 열었다. - 반짝반짝! "몇 개 만들었던 것 같은데...." 뚜껑이 열린 현민의 상자에는 드워프에게서 받아온 장신구들이 잔뜩 있었다. 상자 안에 담겨있는 장신구들은 짝과 맞춰진 것도 없었고 모든 것이 대충대충 담겨져 있었지만, 그것들의 능력중 대충인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자 안에 담겨진 장신구들은 그가 쓰기에는 필요 없고, 남에게 팔기에는 아까운, 그런 물건들만 들어 있었다. "이거랑, 이거랑, 이거.... 또 있나?" 작은 상자를 무릎위에 올려놓은 현민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도록 신경쓰면서 머리를 고정시킬 수 있을만한 것들을 모두 꺼냈다. 탁! 살짝 기울어진 상태로 열려있던 상자의 뚜겅은, 현민의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닫혀버렸고, 현민은 상자의 위에 장신구들을 놓고 머리를 틀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로브의 안에 있는 머리카락은 옷에 걸려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머리를 묶는 잠시 동안은 로브를 벗기로 결정했다. "와아...." "영화배우인가봐." 이리저리 살펴봐도 잘생긴 것과 거리가 있는 지극히 평범한 얼굴의 현민이었으나, 길게 자란 머리카락 때문인지, 아니면 머리카락의 색깔이 청은색으로 변해서인지, 지금의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현민의 멋진 모습에 시선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끄응... 음.... 이렇게 인가?" 사르륵.... 머리카락을 앞으로 넘긴 현민은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뭉치며 기다란 비녀를 이곳저곳에 박아 넣었다. 하지만 한번도 해본적 없는 머리가 그의 상상대로 나올 리가 만무했고, 현민의 머리는 비녀에 엉켜 올라간것도, 풀어진것도 아닌 이상한 머리가 되어버렸다. - 꺄하하. 룬, 너무 웃겨. 현민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피는 지저분해 보이는 현민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말까?" 옆에서 웃고 있는 하피도 그렇고,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버리자, 약간의 충격을 받은 현민은 머리에 꽂았던 비녀들을 다시 뽑아버렸다. "응? 수진아! 현진아!" 비녀를 손에 든 현민이 다시 꽂을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수진과 현진이 현민을 무시한 채 그의 앞을 지나갔다. 중학교 때와 모습이 바뀐 현민도 쉽사리 알아차렸던 그녀들이었지만 지금의 현민은 너무나 멋있었기에 그가 현민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 버린 것이었다. "누구?" "윽!" 그녀들은 자신들을 부르는 음성에 고개를 돌리기는 했으나, 현민의 얼굴을 마주하고도 그들을 부른 사람이 현민이인지를 눈치채지 못했다. 머리하나로 사람의 얼굴이 바뀌어 보이니, 어쩌면 아직 듣지 않은 퀘스트에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는 듯 했다. "설마 현민?" 수진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는 했으나, 그녀의 얼굴에는 확신이 아닌 의심이 담겨져 있었다. 혹시나 하고 묻는 수진의 질문에 현민의 고개가 천천히 숙여졌고, 현민의 대답을 들은 수진과 현진의 얼굴에는 경악의 표정이 떠올랐다. "말도 안돼!" "세상에!" 현민의 모습을 바라본 그녀들은 믿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의 모습이 현민이라면 없던 감정도 생겨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놀라지들 말고, 나 머리 좀 올려주라."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그녀들에게 뒤돌아서며 부탁을 했고, 그를 따라 일어난 하피가 현민의 등에 붙어 섰다. "응?" "누구?" "키악!!" - 룬 내꺼. 아무도 안줘. 현민의 등을 차지한 하피가 그에게 다가가려는 두 여성을 위협하였고, 현민은 그러한 하피를 자신의 앞으로 이끌었다. "자자, 착하지?" - 룬. 자신의 앞으로 하피를 데려온 현민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하피는 언제 흥분했냐는 듯이 현민의 품에 파고들었다. "빨리 좀 묶어주라, 응?" "아, 응..." 현민의 재촉에 정신을 차린 그녀들은 현민의 머리에 달라붙어 그의 머리를 올려주었고, 현민의 머리는 그가 상상했던대로 예쁘게 틀어 올려졌다. "휴우... 고마워. 근데 좀 묵직하네?" "머리가 기니깐..." 현민의 말에 대답을 했으나, 그녀들의 시선은 현민의 목선에 가있었다. 틀어 올린 머리와 주렁주렁한 귀걸이 그리고 목걸이로 예상되는 은색의 줄은 지금의 현민과 환상적으로 어울리며 그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목덜미를 지나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끼던 현민은, 멍하니 대답하는 그녀들이 무엇을 바라보는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챠릉 "이거? 마력을 올려주는 아이템이라서 어쩔 수 없이 착용했지 뭐." 그녀들의 뜻을 오해한 현민은 자신의 귀에 걸린 귀걸이를 만지며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고, 현민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었던 그녀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가, 가야지. 친구들이 기다려." "마, 맞다." 어설프게 몸을 돌린 그녀들이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고, 그녀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린 현민은 자신의 보물상자와 하피를 챙겨 그녀들의 뒤를 따라갔다. 딸랑~. 시끌시끌... 그녀들을 따라 현민이 들어간 장소는 조용한 거리와는 다르게 매우 시끌벅적한 가게였다. 가게 안에는 고렙저렙 상관없이 모두 모여 있었고, 그들은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기다렸지?" "와!"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세 명의 여성은 수진과 현진의 뒤에 있는 현민을 보며 입을 벌렸다. 이미 수진과 현진에게서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들의 앞에 있는 현민의 모습은 그녀들이 얘기했던 지극히 평범한 것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쟤들은 미적 감각이 떨어질 거야." "맞아. 저 정도가 평범이라니..." "눈이 너무 높은 건 아닐까?" "썬더." "사라만다." 그녀들의 속닥거림을 들은 현진과 수진이 정령을 소환했고, 그녀들의 협박이 통했는지 자리에 앉아있던 친구들이 입을 닫았다. "아, 음... 안녕하세요." 시끌벅적한 다른 테이블과는 다르게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은 말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있었고, 남자답게 용기를 낸 현민이 수진과 현진의 친구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동갑이니깐 편하게 말해." "안녕." "아, 안녕." "안녕." 서로가 어색해 하고 있을 때, 현진이가 나서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얘가 검사계열 직업의 김혜영이고, 이쪽은 대지의 신관인 이진화, 얘는 도둑계열의 박소라야." 검사계열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김혜영은 포니테일의 머리를 하고 있었고, 가벼운 레더아머를 착용 중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이진화는 가슴부위에 곡식이 새겨져 있는 하얀색의 로브를 입고 있었고, 검은색의 단발머리 때문인지 약간 어려보였다. 마지막으로 소개시켜준 박소라는 하나의 로브를 몸에 걸치고 있었는데, 로브 속으로 보이는 검은색 천으로 보아 도둑의 전용 옷인 타이즈를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이쪽은 최현민이고, 직업은..." 현민을 소개하던 현진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수진과 현민을 바라보았다. "...뭐지?" "제 직업은 마법사이자 정령사에요. 그리고 이쪽은 제 가디언이고요." 수진과 현진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현민이 나서며 자신과 옆에 있던 하피를 소개했다. "편하게 말해, 현민아. 다들 동갑인데 뭘." "응." 수진과 현진이 그들의 사이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이 지나가 그들은 그럭저럭 편하게 말하는 사이가 되었다. "흠... 그 정도 레벨로도 부족하다면 상당히 높은가 보네." 현민을 제외한 그녀들의 평균 레벨은 300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현진과 수진이 정령사란 것을 생각해 보면, 그녀들의 실질적인 평균 레벨은 360을 넘는다는 소리였고, 그러한 레벨로도 공략할 수 없는 던전이라면 지금의 등급으로 따질 때, 상급에 속하는 수준이었다. "응. 하지만 너라면 가능하겠지?" "뭐... 가능할지도." 사냥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던전조차 가 본 적이 없는 현민이었지만, 그녀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몬스터의 수준이 일반 필드보다 강할 뿐,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의 실력이라면 특별한 것이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가자. 오늘 안에 끝내야지?" 현민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현민의 움직임에 맞추어 하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정말 멋진걸 구경할 수 있을거야." "맞아. 현민이가 변신한 걸 보면, 진짜 입이 벌어진다니깐."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쿠진의 입구를 벗어나 던전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앞장서고 있는 다섯명의 여성들은 현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고, 그녀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현민은 심심하다고 외치는 하피를 달래며 힘들게 언덕을 올라가는 중이었다. "여기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이거나 다른 마을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다섯 명의 여자들을 따라 현민이 향한 곳은 큼직한 바위가 서 있는 쿠진의 뒷동산이었다. 서로 기대어져 있는 두 개의 바위 사이에는 작은 틈이 있었는데, 다섯 명의 여성들은 현민만 남겨놓은 채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가볼까?" - 응! 하피의 날개를 잡은 현민이 그녀를 이끌며 앞장섰고, 좁은 길을 통과하며 아래로 내려간 그들은 거대한 광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라이..." "루이네, 빛." "사라만다, 불." 어두운 것에 불편함을 느낀 현민이 라이트 마법을 사용하려는 순간, 그보다 빠르게 행동한 현진과 수진이 빛의 정령인 루이네와 불의 정령인 사라만다를 불러내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썬더, 운다인, 노움, 데스." "우드, 실피드, 라이, 다크." 모든 정령을 소환한 수진과 현진이 전투태세를 갖추었고, 나머지 세 여성들도 각자의 위치를 잡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이야... 모두가 멋있게 변했네?" 모두가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그들의 뒤에 있던 현민은 두 사람의 정령들을 향해 다가갔다. 처음 계약할 당시 꼬마였던 그녀들의 정령은 그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멋들어진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현진의 꼬마 정령들은 청년으로 변해 있었고, 수진의 아기 동물들도 커다랗게 성장해 있었다. "루이네!" "네!" 흰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루이네가 현진의 부름에 대답한 후,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퍼퍼퍼퍼퍼.........퍼퍼퍽!!! 꾸에엑!! 크아앙!! 까가가가각!! 빛의 정령인 루이네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몬스터들의 뒤통수를 쳤고, 생각도 못한 공격을 받은 몬스터들은 살기가 묻어있는 고함을 내지르며 루이네의 뒤를 쫓아 일행들 쪽으로 달려왔다. "와우~ 멋진데?" 수십마리의 몬스터가 달려오자 그들이 밟고 있는 땅까지 흔들릴 정도였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의 태도는 전혀 긴장되어 있지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놀라야 하는 것 아닌가?' '안 무서운가?' 수진과 현진의 사냥방법을 알고 있는 그녀들은 어느정도 익숙해져있기에 놀라지 않는다지만, 생전 처음보는 현민이 놀라지도 않는다는 것은 그녀들의 눈으로 보기에 약간 이상해 보였다. "노움, 데스! 죽음의 대지!" "네!" "예!" "우드, 다크! 어둠의 트랩! 실피드! 압축 공기!" "끼긱." "미양~." "끼이익!!" "라이, 사라만다는 대기!" "..." "크앙!!" "호오?" 겨우 한달이란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방학동안 "싸울아비"에만 파고들었던 그녀들은 다섯의 정령들과 호흡을 맞추며 멋지게 싸우고 있었다. 팟! 일행쪽으로 달리던 루이네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으나, 그들의 앞에는 또 다른 존재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마리(루이네)가 사라진 것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크아아아....앙?! 크케케....케케? 현민일행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오던 몬스터들이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느려지기 시작했고, 현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생겨났다. "죽음의 대지에 서있는 것 자체만으로 상당한 생명력이 감소할걸?" 현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죽음의 대지에서 쏫아난 나무뿌리가 그들의 몸을 구속했고, 이번에는 수진이가 짙은 미소를 만들었다. "잘가렴." "푸호오오오!!" 콰드득!! 퍼퍼퍼....퍼펑!! 생명의 정령인 라이의 힘으로 그들을 감싸고 있던 나무가 자라나 그들의 몸을 부수기 시작했고, 사라만다의 거친 불꽃은 주변에 떠다니던 압축공기를 폭발시키며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 비축분 다 털린지 오래랍니다...;;; 한글로 200여장의 글을 써 놓았지만, 이렇게 길게 연재하다보니 남는게 없네요^^a 오늘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_(__)_"와아! 이렇게 사냥하면 내가 필요없지 않아?" 현민과 비교했을 때, 약간의 차이가 나긴 했지만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버틸 것 같다는 게 현민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진과 현진이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우... 힘들어." "죽겠다." 팔랑팔랑. 수진과 현진은 거의 눕다싶은 자세로 풀어져버렸고, 그녀들의 주위를 둘러싼 정령들이 어디서 나온건지 알 수 없는 부채로 그녀들을 부쳐주었다. 주르륵... 한번의 전투로 풀어지는 그녀들을 본 현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황당한 표정으로 식은땀만 흘렸다. 수진과 현진의 친구들이 익숙하단 얼굴로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러한 것이 한두번은 아닌 것 같았다. "항상 이런 거야?" "으응..." "응. 스텟을 친화력에 몰아주다보니 마나(정신력)가 상당히 부족하거든..." 현민이 알려준 방법대로 스텟을 올렸으니, 그녀들의 마나(정신력)가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현민이 알려준 방법은 아이템으로 올라갈 마나를 생각하고 알려준 스텟 분배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우리들이 움직일 차례인가?" 툭툭. "진 사람이 아이스크림 사기." "좋아." 검 면이 50cm정도고 길이기 1m20cm인 거대한 칼을 인벤토리에서 꺼낸 검사가 땅을 차며 튀어나갈 준비를 하자, 그녀의 곁에 다가간 도적여성이 몸을 감추던 로브를 벗어버리며 양끝이 뾰족한 쇠침을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여신의 축복이 그대들과 함께 하기를, 블레스. 강인한 힘이 그대의 몸에 깃들기를, 스트랭스. 빠른 몸놀림으로 바람같이 움직이기를, 헤이스트. 영광스러운 그대의 투지에 아픔이 사라지기를, 베리어." 뒤에서 대기중인 사제가 그녀들에게 보조마법을 걸어주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튀어나가며 주변의 모든 몬스터들을 없애버렸다. 파악! 스악! 도적여성보다 먼저 몬스터 앞에 다가간 검사여성은 몬스터가 휘두르는 도끼를 막아낸 후, 그것의 두팔을 잘라버렸다. 몬스터의 팔을 잘라내며 위로 올라간 검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땅으로 내려왔고, 검사여성은 검 끝으로 땅을 긁으며 한바퀴 회전했다. "하아압!!" 쾅! 엄청난 무게에 회전력이 더해진 검사의 검은, 검이라기보다 철퇴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렇게 휘둘러진 검사의 검은 몬스터의 허리를 이등분하기는 했지만 몬스터의 상태는 잘라냈다기보다 '허리를 부셔버렸다'라는 표현이 옳게 느껴졌다. "하나~." "난 둘, 이제 셋." 검사 여인과는 반대로 조용조용 움직이고 있는 도적여성은 손에 쥔 두 개의 쇠침으로 몬스터들의 급소만 공격하고 있는 중이었다. 깔끔하게 움직이고 있는 도적여성은 어쌔씬 같은 동작으로 몬스터들의 머리에 쇠침을 박아 넣었다. "아~~!!" "응? 그건 반칙이잖아!!" 도적여성에게 지고 있던 검사여성은 전사들의 기술중 하나인 함성을 사용했고, 모두의 전투력이 올라가는 동시에 주변의 몬스터들이 그녀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사냥에 반칙이 어딨니?" 쾅! 퍽! 스앙! 콰콰콱!! 검사여성을 향해 8마리의 몬스터가 달려오고 있었지만 그것들의 목표인 검사여성은 거대한 칼로 그것들을 가지고 놀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월보(月步)!" 안그래도 빠르던 그녀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고, 모습도 흐릿하게 변하여 주변으로 녹아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털썩! 털썩! 털썩! 털썩! 털썩! "이걸로 8마리." "난 9마리! 흐압!" 쾅! "열~!!" 쿵! 털썩! 쿠쿵! 쿵! 털썩! "너무 느린 것 아냐? 난 벌써 14마리라고~." "아~~!!" 도적여성의 도발에 제대로 걸린 검사여성은 주변을 뛰어다니며 근처의 몬스터들을 전부 모았다. 파팟! "후후훗." 커다란 검을 높이 들어 올린 검사여성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낭아(狼牙)!!" 콰콰콰콰쾅!! 그녀만의 스킬이 발동되자 주변의 모든 것이 늑대의 이빨에 갈기갈기 찢긴 듯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몬스터들이 토막 난 것은 기본이었고, 주변의 땅도 이곳저곳 갈라져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저 정도면 나는 필요없는 것 아냐?" 단 두 사람이 주변의 모든 몬스터를 정리해 나가자 할 일이 없어진 현민은 수진과 현진에게 다가갔다. "아직 시작도 안했어." "1층부터 3층까지는 우리들만으로도 괜찮지만, 4층부터 힘들어 지거든...요." "4층부터는 몬스터들의 방어력과 생명력이 높아지고 원거리 공격형도 있어서 우리들은 힘들어." 현민과 마찬가지로 할 일이 없는 사제가 그들에게 다가와 현민의 질문에 대답했고, 현진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으음~. 지하로 내려가는 거야?" "응." "흐음~." 그녀들의 대답을 들은 현민은 길어진 앞머리를 베베꼬며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후후훗." 움찔!! 잠시 생각하던 현민이 갑자기 웃음을 흘렸고, 그의 웃음을 들은 세 사람은 동시에 몸을 움찔했다. "후아, 힘들다." "진화야, 회복 좀~." 이상한 웃음을 내뱉으며 좋아하는 현민을 보고 모두가 긴장하고 있을 때, 그들의 곁으로 1층의 몬스터들을 정리해버린 도적과 검사여성이 다가왔다. "이런 던전 빨리 깨고 싶지 않아?" "뭐... 빨리 깨면 좋지." "흐흐흐." 흠칫! 현민의 물음에 모두를 둘러본 현진이 대표로 대답했고, 현민의 입가에 생겨있던 미소가 음흉하게 변해갔다. "담비, 염화, 묘, 윈디아." "네~." 현민의 부름에 4명의 꼬마정령이 모습을 드러냈고, 모두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1층의 몬스터들은 이미 그녀들이 전멸시켜버렸기에, 굳이 정령을 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담비, 흙장난 좋아하지?" "응!" 자세를 낮추어 담비와 눈을 마주한 현민은 담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어보았고, 기울어진 모두의 얼굴에 의아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갑자기 정령을 부른 것도 이해가 안됐고, 정령에게 그런 것을 질문하는 현민도 이해가 안됐기 때문이었다. "담비, 오빠랑 흙장난 할까?" "음~~~~, 싫.어." "윽!" "풋!" "쿠쿡!" 부드러운 현민의 음성에 무엇인가를 느낀 것인지, 담비는 현민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너무나 단호한 담비의 태도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현민은 한참을 고민한 후, 최후의 스킬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사탕줄께." ....... ..... ... . 그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니, 어떠한 행동도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상당히 익숙해 보이는 현민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전.문.유괴범, 그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 하나?" "응." 반짝반짝! "시, 시.....로." 담비의 두 눈은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떠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하게 반짝거렸고, 옷을 꽉 쥐고 있는 담비의 두 손은 얼마나 쌔게 쥐었는지 피가 안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대답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담비는 절대로 한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두개 줄게." "쵸, 쵸콜렛 맛으로!!" 담비의 부담스러운 눈길에 항복해버린 현민은 검지에 이어 중지도 세워버렸고, 담비는 현민의 두 손가락이 내려가기라도 할까봐 양손으로 그의 손가락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 "헤헤헤." 대답을 한 현민은 인벤토리에서 땅의 정령석 두 개를 꺼내 담비의 손에 쥐어주었다. 두 개의 정령석을 손에 쥔 담비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정령석을 입안에 쑤셔 넣어 오물거렸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얻게 된 담비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상태였다. "오빠." "오라버니." 꾹꾹. - 룬. 담비의 행복한 표정이 부러운 것인지, 나머지 세 정령도 현민에게 달라붙었고, 곁에서 보고 있던 하피도 현민에게 다가가 자신의 입을 벌렸다. 이미 각오했던 출혈이기는 했지만 현실로 다가오니 그 느낌은 역시나 좋은 것이 아니었다. 결국 울상을 지은 현민이 3개의 정령석을 꺼내어 각각의 정령들에게 나눠주었고, 입을 벌리고 있는 하피에게도 하나의 정령석을 넣어주었다. "하아... 이게 바로 돈지랄(...)인가." 사용하는 것보다 만드는 양이 많기 때문에, 그의 방에는 아직도 많은 양의 정령석이 남아 있었지만, 하나에 50강하는 것을 6개나 사용한다는 것은 역시나 아까운 일이었다. "너희들 광렙해 본 적 있어?" "응?" 행복해 하는 정령들과 하피의 모습에 긍정적으로 생각한 현민은 우울했던 마음을 털어버리고, 5명의 여성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 벌어질 일... 정말 재미있을 것이니깐. "광렙이 뭔지 보여줄게." "뭐, 뭘하려고?" 하피의 로브를 벗겨준 현민은 염화와 묘, 그리고 윈디아를 안아들며 담비를 바라보았다. "윈디아, 준비됐지?" "네, 오라버니." 현민의 뜻을 읽은 윈디아는 그의 몸을 허공에 띄워주었고, 모든 준비가 끝난 현민은 담비와 시선을 마주했다. "담비야! 바닥이 보일 때까지 부셔!!" "응!!" 현민의 명령에 열심히 정령석을 빨던 담비가 작은 주먹으로 땅을 내려쳤다. "에잇!" 콩! 쿠우웅!!!! 혹시나 하는 얼굴로 담비를 바라보던 그녀들은, 귀엽게 부딪힌 담비의 손길에 발밑뿐만 아니라 동굴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정한 일은 아직 시작도 안 된 상태였다. 콰직! 콰드득! "서, 설마..." "말도 안돼!" "실피드! 모두를 허공..." 콰콰콰콰쾅!! "꺄악!!" "꺄아아악!!" "엄마~~~." "야호~~!" 자신의 발밑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수진이가 재빨리 실피드를 불렀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들과 정령들 모두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사제를 제외한 모두는 바지를 입고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치마를 입고 있는 사제는 뒤집어지려는 치마를 잡기위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물의 정령 묘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불의 정령 염화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땅의 정령 담비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바람의 정령 윈디아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 .. .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단 한 층의 붕괴로 현민의 레벨이 5상승했고, 정령들의 레벨이 3이 올랐다. 그리고 그보다 높은 레벨을 가지고 있던 현진과 수진자매 일행도 이번의 일로 인해 1레벨이 올라버렸다. "계속 갈게! 담비야, 부셔!!" "응~!!" 윈디아와 실피드의 노력으로 그들의 신형은 바위보다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담비로 인해 무너져내린 1층의 바닥이 2층의 몬스터들을 전멸시켜버렸고, 바닥에 내려선 담비는 또 다시 2층의 바닥을 부셔버렸다. "야호~~!!" "와아아아아!!!" 현민의 명령을 받은 담비는 동굴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각 층의 바닥을 부셔나갔고, 담비가 바닥을 부셔나갈 때마다 그들의 레벨은 미친 듯이 올라갔다. "응? 저기가 끝인가?" 한참을 떨어져 내리던 현민은 담비가 더 이상 바닥을 부수지 않자 마지막 층에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콰콰콰.....콰쾅!! 각 층을 이루고 있던 바닥이 산산조각나며 엄청난 양의 돌덩이로 변해 동굴의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것들이 만들어낸 수북한 먼지가 현민일행이 있는 높이까지 피어났다. "모두 조심해서 내려가." 심하게 피어오른 먼지로 인해 시야가 가려지자 먼저 내려가고 있던 현민이 모두를 향해 주의를 주었다. 많은 몬스터가 죽은것은 확실하지만 모든 몬스터가 죽었다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탁, 타타탁, 탁. 현민이 먼저 바닥에 내려섰고, 그의 뒤를 따라 다른 일행들이 바닥에 내려섰다. "윈디아, 먼지 좀 가라앉혀줘." "네." 슥. 현민에게 부탁받은 윈디아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고, 그녀의 손짓한번에 동굴가득 피어올랐던 먼지가 사라져버렸다. "음... 수진이는 내가 안아줄걸 그랬나?" 먼지가 사라지고 일행들을 둘러 본 현민은 실피드의 등에 올라타 있는 수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수진이를 제외한 4명의 아가씨들은 현진의 정령들에게 안겨 무사히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됐네요!" 탁. 단호히 대답한 수진이 실피드의 등에서 내려왔고, 피식 웃은 현민은 동굴의 최하층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마지막 층의 동굴은 윗층에서 무너져 내린 돌덩이들만 있을 뿐, 몬스터도 다른 입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끝?" "루이네, 찾아봐." 주변을 둘러본 현민이 허무한 음성으로 말하자, 현진이 루이네를 불러 주변을 살펴보도록 했다. 빛의 정령인 루이네라면 빠른 시간에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문이 있네요!" 무엇인가를 찾으러 간 루이네의 목소리가 어둠속에서 들려오긴 했으나, 루이네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루이네, 어디있어?" "빛을 따라오세요~." 현진과 루이네의 목소리가 동굴에 울려퍼졌고, 잠시 후 일행들의 왼쪽에 빛으로 된 길이 생겨났다. ------------------------------------------- 작가 : 네놈이었구나!! 현민 : 뭐, 뭐가? 작가 : 네가 담비를 저렇게 교육시키니깐, 담비가 이상해졌잖아! 현민 : 도대체 무슨? 작가 :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담비의 그 한마디를!! 담비 : 오빠, 오빠. 사탕줄께 따라올래? 현민 : ....;;; 작가 : OTL... 현민 : 도대체 언제 만난거냐? 작가 : 122회... 더 이상은 묻지 말아줘. 오늘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_(__)_담비의 귀여움은 끝나지 않았다.... ---------------------------------------------- "이쪽인가보네요." 사람이 다니지 못할 정도의 길은 아니었지만 바닥이 약간 거칠었기에, 현민이 앞장서며 길을 살폈다. 오물오물.. 오물... 쪽쪽... 또르륵... 정령들의 입에 있는 사탕의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었을 때쯤, 그들이 걷고 있던 빛의 길이 끝나며 엄청난 높이의 벽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여기에요." 벽을 따라 시선을 옮긴 그들이 보이지 않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한쪽 벽에 쪼그리고 앉은 루이네가 한손으로 벽을 가리키며 일행들을 불러모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저건가?" "어디?" 루이네가 손으로 가리키고 있긴 했지만, 그 곳에 있던 그 누구도 문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파삭! "어라?" 모두가 루이네의 손끝을 바라보며 문을 찾고 있을 때, 그들의 곁에 서있던 노움이 문 쪽의 땅을 압축시켜 눌러버렸다. 노움이 벽 부분의 땅을 없애고서야 손바닥정도의 크기를 가진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덩이에 파묻힌 문이 완전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원하는 것을 찾았기에 밝은 얼굴이 되었고, 루이네는 환한 표정이 되어 현진에게 달려갔다. "누나, 나 잘했죠?" 헥헥헥... 살짝 머리를 내밀며 현진을 바라보는 루이네의 모습이, 주인에게 칭찬받고 싶어하는 강아지의 모습과 다른 점이라고는 엉덩이에 흔들거리는 꼬리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아우~, 귀여워." 토닥토닥. "헤헤..." 귀엽다는 듯이 엉덩이를 쳐주는 현진의 손길에,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모두의 시선이 현민에게로 이동했다. 루이네의 예전 모습이 현민을 닮았다는 것을 기억해 본다면, 청년이 된 루이네와 현진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 모두의 시선이 현민에게로 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현진아, 그만해..." 왠지 모를 시선에 불편함을 느낀 현민이 그녀를 말렸지만 루이네를 안고 있는 현진은 자신의 품에 안긴 루이네를 풀어주려 하지 않았다. "뭐 어때? 귀여운건 사실인데..." 귀엽다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기에 굳이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문제는 그 존재가 자신을 닮았다는 것이었다. "루이네, 그러한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했을텐데요." "노, 노움~, 아파!" 루이네가 현진의 품에 안겨 부비부비(?)하고 있을 때,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노움이 루이네의 한쪽귀를 잡아당겼다. 행동과 말투를 보니, 정장차림의 노움이 다른 정령들의 맏형처럼 보였다. "하아, 문은 떨어진 바위로 막혀버린건가?" "네, 상당히 커다란 문이 돌로 인해 막힌 것 같군요." "흐음..." 던전을 무너트려 광렙을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여기서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상당히 많은 층수를 부셨으니, 문을 가리고 있는 돌덩이들도 엄청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노움,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땅을 판 다음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 할까?" "네, 상당한 층수가 부서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정도의 문이 보인다는 것은, 이 문이 엄청난 크기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크기의 문들은 마법진으로 열리거나,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하단 부분에 기계장치로 열리는 것이 정석입니다." 불가능하다는 노움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광렙을 하기는 했으나 그들이 얻은 아이템은 하나도 없었고, 처음으로 보는 최종보스를 문하나 사이에 두고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담비야, 문이 보일 때까지 바닥 좀 토닥토닥(?) 해줄래?" "네~." 현민의 부탁에 대답한 담비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토닥토닥할 준비를 했고, 나머지 일행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자세를 잡으며 긴장했다. - 두껍아~ 두껍아~ 쿵! 쿵! [레벨업 하셨습니다.] 담비의 손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땅을 내려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길에 닿는 땅은 한번 부딪힐 때마다 쑥쑥 내려갔고, 현민 일행이 디디고 있던 땅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중간중간 들리는 레벨업의 소리는 땅속에 묻혀있던 몬스터들이 처참히 죽어간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 오빠 줄게~, 사탕 다오~(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쿵! 쿵! - 두껍아, 두껍아, 우리 오빠 비싸다.(물 길어 오너라) 쿵! 쿵! [레벨업 하셨습니다.] - 두껍아, 두껍아, 두개가져 와주라.(너희집에 불났다.) 쿵! 쿵! 처음에는 발을 디디고 있던 곳이 무너져서 모두가 당황했지만, 윈디아와 실피드가 그들을 공중에 띄워주자 동굴에 울려 퍼지는 담비의 노래가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쿡쿡쿡, 현민이 몸값은 사탕 두 개?" "크크큭, 이참에 현민이 사버릴까?" - 양손에 가득 쥐고 빨리빨리 와주라~~(쇠스랑 가지고 똘래똘래 오너라) 쿵! 쿵! 쿵! 쾅!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담비가 마지막으로 땅을 치자, 엄청난 굉음(轟音)이 울리면서 천장의 돌덩이에 가려졌던 문이 완벽한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바닥을 적시는 푸른색의 물을 보니, 상당히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괴롭게 죽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정신력이 0.01%미만이므로 현기증이 발생합니다. 비틀... 바닥에 내려선 현민이 비틀거리며 주저앉았고, 그의 곁에 있던 윈디아와 염화, 묘가 현민에게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왜 그래 현민아?" 멀쩡하던 현민이 갑자기 쓰러지자 깜작 놀란 일행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고, 현민은 흔들리는 시야에 머리를 붙잡으며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 이름 : 룬(루나). 호칭 : 달의 마녀 Lv : 221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7) 민첩 : (15) 건강 : (16) 반사신경 : (18) 지능 : 453(19) 정신 : 586(21) 공격력 : 34 - 34 마법력 : +758 방어력 : 60 생명력 : 2852 (+2300) 정신력 : 9 / 258540 ((+16000)*3) 물 속성 친화력 : 609 불 속성 친화력 : 609 땅 속성 친화력 : 609 바람 속성 친화력 : 609 정령력 : 620 물 Lv 223 스텟 : 207 바람 Lv 223 스텟 : 207 불 Lv 223 스텟 : 207 땅 Lv 223 스텟 : 207 보너스 스텟 : 390 ----------------------- 상태창을 바라본 현민은 자신이 무엇을 실수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한번 당해본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비에게 일을 시키며 자신의 정신력을 확인 안한 것이었다. 6자리의 정신력을 가지고 자만했던 현민은 아직도 부족한 자신의 정신력에 우울해하며, 7자리의 숫자에 도전할 각오를 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담비로 인해 쓰러지는 일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 정신력이 바닥이야..." "하, 하긴 지금의 이걸 보면 멀쩡한게 이상하다." 한 25층은 부순 것 같았고 그만큼의 돌덩이를 흔적없이 압축시켰으니, 쓰러지지 않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여기 피로회복제라도 먹어." 피로회복제 정신적인 피로를 회복시켜, 정신력&마나의 회복력을 배로 늘려준다. 지속시간 : 1분. 아이템과 회복제로 인해 현민의 정신력은 엄청난 속도로 차올랐지만, 모든 정신력이 차오르기까지 그가 마신 피로회복제의 숫자는 10병을 넘어섰다. "노움, 마나(정신력)가 높으면 이 정도의 일도 가능한거야?" "아니요. 절대 불가입니다. 이정도의 능력이라면 4차 성장을 한다해도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현민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한쪽에 자리잡은 현진은 땅의 정령인 노움과 질문을 주고받았다. 현민의 정령인 담비가 보여준 능력은 그들의 상식을 뛰어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아이는 아직 1차 성장도 안했는데?" 특별한 등급이 없는 정령들은 성장에 따라 그 능력이 나뉘어졌는데, 기존의 등급과 비교하자면 처음으로 계약을 맺었을 때가 하급이었고, 1차 성장한 이후가 중급, 2차 성장한 이후가 상급, 3차 성장한 이후가 최상급, 그리고 4차 성장이 정령왕급으로 나눌 수 있었다. 초반에는 각 단계의 성장마다 모습이 변하였기에 그들이 착각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같은 속성일지라도 모든 정령이 동일한 힘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기에 저도 정확한 대답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 날은 현진의 정령인 노움이 처음으로 그녀에게 대답을 못 한 날이었다. "담비야, 다 놀았으면 장난감 주워와야지?" "네~." 다다다다닷. "장난감?" "응?" 모든 정신력을 회복한 현민이 담비에게 말했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장난감을 찾는 현민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러한 공간에서 장난감이란게 나올리도 없거니와 원래의 공간에 있던 것들도 땅속으로 들어갔으니, 무언인가를 가져올리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민과 그의 정령들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규정해서는 안되는 존재들이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응?" "오빠~, 훌쩍!" 부비부비부비 "다, 담비야..." 갑작스런 레벨업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던 현민은 등뒤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느낌에 서서히 얼굴이 굳어갔다. "오빠. 이~~~따 만큼 커다란 삼돌이가 장난감 안 주길래 때찌했어." "삼돌이?" "우리말고 살아있는게 있었던가?" 두 팔을 크게 벌리며 커다란 원을 그려낸 담비는 두 손을 휘두르며 현민에게 자랑했다. 대충 설명을 들어보니, 아직까지 살아있던 몬스터를 때려죽이고 아이템을 뺏어온 것 같았다. "장난감 많았어?" "응~!" 현민의 질문에 힘차게 대답한 담비는 주머니에서 물건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수욱... 툭툭............툭! "헤헤헤." 불룩했던 양쪽 주머니에서 모든 아이템을 꺼낸 담비는 가벼운 표정으로 현민의 품에 안겨들어갔다. "노, 노움. 땅의 정령은 아공간도 가지고 있는거야?"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만... 담비란 존재에 관련된 것은 더 이상 묻지 말아주세요." 현진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노움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담비에게서 등을 돌렸다. 담비의 주머니에서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 물건들은 그들의 키보다 높이 쌓인 상태에서도 끊이지를 않았고, 중간중간 보이는 검이나 갑옷 같은 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수진아, 현진아. 나한테 필요한건 없으니깐 적당히 나눠가져." 담비가 꺼내는 것을 살피고 있던 현민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이미 빼돌린 상태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담비와 현민은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만 꺼내놓은 것이었다. "저, 정말?" "진짜로 가져도 되요?" "이걸 전부...!!"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일행들은 아이템을 넘겨주는 현민을 향해 미안한 눈빛을 보내었다. 대충 훑어본 아이템은 어느것 하나 나쁜게 없었고, 잘만 판다면 엄청 비쌀 것들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현민이 도와준 것으로 인해 한순간 레벨이 높아진 그녀들은, 그들의 동렙에 비해 아이템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었기에 아이템을 바꿔야 하기도 했다. "정말 괜찮아 현민아?" 툭. "내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건 너희들도 잘 알잖아?" 파티를 도와달라는 것도 무리한 부탁이었는데, 사냥하면서 얻은 아이템까지 전부 주니, 현진과 수진은 현민을 향해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에게 다가간 현민은 그녀들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단 장비쪽만 살펴보고, 나머지는 밖에서 나눠요." "응." 현민의 말에 힘차게 대답한 그녀들은 아이템 산을 뒤지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우와! 이검 B급이다!" 불꽃의 검(B급) 설명 : 제작 중에 들어간 불의 기운으로 인해 붉게 변한 검. 공격력 : 380 - 520 내구력 : 420 조건 : 200 레벨 이상의 전사계열. - 화 속성 데미지 50 추가 - 화 속성 데미지 흡수. - 힘 15 증가. 자신의 검과 비슷해 보이는 붉은색의 거대한 대검을 뽑아든 검사여성은 엄청 좋아 보이는(그녀의 생각)검을 얻어서인지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검을 살펴보았다. "혜영아! 여기 엄청 좋은 방어구 있어!" "정말?!" 그냥 좋은 것도 아니고, 엄청 좋다는 친구의 말에, 재빨리 새로운 검을 착용한 그녀는 친구가 찾아놓은 아이템 쪽으로 달려갔다. "이거 너한테 좋을 것 같아서." "이것도 B급!!!" 어둠의 갑옷(B급) 설명 : 마계의 장군이 입었다고 하는 엄청 좋은 방어구. 방어력 : 800-900 내구력 : 1050 조건 : 350 레벨, 힘 500 이상 - 암흑속성 공격 흡수. - 성속성 공격의 방어 시 데미지 3배. - 힘, 민첩 20 상승 날아갈 것만 같은 표정으로 변한 그녀는 즉석에서 갑옷을 벗고, 새로운 아이템을 착용해 버렸다. 검사여성 말고도 모두가 자신의 직업에 맞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고, 아직도 쌓여있는 아이템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예언의 수정구(B급) 설명 : 어둠의 사제가 착용하고 있던 마계의 수정구. 공격력 : 50-100 조건 : 사제만 사용 가능. - 신성관계 주문 사용시 50% 신성력 감소. - 신성관계 마법의 범위 2배 증가. - 신성력 1.2배 상승. 그림자 망토(B급) 설명 : 그림자로 만들어진 망토 공격력 : 500 방어력 : 750 내구력 : 무한. 조건 : 레벨 350 이상, 도둑&어쌔씬 계열 사용 가능 - 그림자 속에 100% 은신 가능. - 모습의 변화 가능. 케르베로스의 이빨(A급 재료) 설명 : 지옥의 파수꾼이자, 마계의 마물인 케로베로스의 이빨. 공격력 : 500 + ??? 내구력 : 1500 - ??? 조건 : 없음. - 불속성 공격 무시. - 하루에 한번 케로베로스의 울음(공포 효과) 사용 가능. - 동물 공격시 70% 데미지 상승. '삼돌이가 케르베로스였나...' '혹시 삼돌이가 470 레벨의 케르베로스?' '삼돌이....' 주르륵...... 신나게 아이템을 뒤지던 그녀들은 하나의 아이템 앞에서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너무나 유명하기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물건이 현재 그녀들의 손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너무 늦은 것 같아." "아, 아템도 많은데 나중에 다시 오는건...." 그녀들은 잔뜩 긴장했다. 케르베로스가 최하층에 있었다 한다고 치더라도 문지기가 470레벨이니, 문 반대쪽에 존재하는 보스는 그것보다 높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걱정말고 아이템이나 챙기자." "일단 필요한건 챙겼지?" 아무것도 모르는 수진, 현진 자매는 남아있는 아이템을 정리하며 각자의 인벤토리에 나누어 담았다. 그녀들도 레벨이 있기 때문에 인벤토리에 상당히 많은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가자!" 끼이이익.... 긴장감이 전혀 없는 현민, 수진, 현진이 앞장서며 문을 열었고, 진실을 알고 있는 세명의 여성들은 뒤쪽에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갔다. 최하 470레벨이었으니, 안에 있는 보스의 공격은 스쳐도 사망수준일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 크크크크, 그 많은 키메라를 없애고 찾아오다니... 어느 정도의 실력은 있나보구나. 흠칫!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들 일행이 일제히 몸을 움츠렸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본능적으로 짜증나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치?!!" "마, 말도 안돼!" "싸울아비"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리치의 레벨은 평균 700이었다. 게다가 리치들의 수준도 기본 8서클이었으니, 그들로서는 살아갈 희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크크크, 여자의 고기는 기름기가 많지만 야들야들해서 먹기 좋지. "변태." "H." "헨타이." "....아담." "쿡!!" 검은색의 로브를 쓰고 있는 리치는 그들에게 공포를 주기위해 무서운 말을 내뱉었으나, 현민의 꼬마정령들은 그런 리치의 마음을 철저히 짓밟았다. - 이, 이 망할 정령들이!!!! 휘이이이잉!!!! 꼬마정령들의 말에 분노한 리치가 마력을 끌어올리자 그의 주변으로 검은색의 기운들이 소용돌이쳤다. 리치의 마력이 점점 더 강해지자 현민의 일행들이 주저앉기 시작했고, 현민의 꼬마 정령들도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현민의 몸에 달라붙었다. "끼이이익!!!" 모두가 힘들어 하는 순간 앞으로 나선 하피가 자신의 거대한 날개를 흔들었고, 그녀에게서 만들어진 거대한 바람은 리치의 마력으로 생긴 바람을 잠시동안 없애 버렸다. - 이제는 하찮은 마물까지!! "잠깐!" - 응? 무시당하는 것에 이어 방해까지 당한 리치는 잔뜩 분노한 채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리치가 뼈만 남은 손을 현민쪽으로 가리켰을 때, 가장 선두에 서 있는 현민이 한 손을 들며 리치를 말렸다. - 뭐냐?! "당신은 마법사인가요?" - 너는 리치란 존재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것이냐?!! 현민의 질문을 들은 리치가 고함을 지르듯 대답했고, 그의 대답을 들은 현민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생겨났다. "으흐흐흐흐." - 뭐, 뭐냐?! 현민의 웃음에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엄청난 마력을 뿜어내던 리치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렇게 물러난 것은 리치뿐만 아니라 현민의 뒤쪽으로 모여 있던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 다크 스피어! 데스 포그! 프로즌 해머!! 불길함을 느낀 리치가 현민을 향해 다급히 마법을 사용했으나, 그가 사용한 마법들은 현민에게 오기도 전, 그보다 먼저 움직인 현진과 수진의 정령들로 인해 막혀버렸다. "이 마법을 사용하기는 두 번째네요." 그가 처음으로 이 마법을 사용한 것은 처음으로 체리플랑과 싸울 때였다. 그 이후로는 사용할 일도 없었으니, 이번에 사용하는 것이 두 번째였다. - 도대체 무슨.... "리무브 소울." 리무브 소울(5서클) 소모정신력 : x 능력 : 자신의 정신력을 x만큼 사용하여 상대방의 정신력을 x만큼 없애버린다. 현재단계 : 6 주문 : 그대의 영혼에 담긴 강인한 힘이 자연의 의지에 따라 흩어지니........ 리무브 소울이란 마법은, 패치 이전에는 적은 양(500)의 정신력으로 상대의 모든 정신력을 없애버리는 훌륭한 마법이었지만, 패치 이후에는 상대방과 자신의 정신력을 1:1로 소모시키는 그런 마법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리무브 소울은 공식을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 사용한 마법은 당신의 정신력만큼 나의 정신력을 소모시키는 마법이에요." - 크흐흐흐.... 네가 나보다 정신력이 높다고 자신하느냐? 한참을 달그락거리던 리치는 현민의 설명을 듣자마자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렸다. 200레벨이 간신히 넘어보이는 현민이 700레벨의 자신보다 정신력이 높다는 것은 7살짜리 꼬마가 20살짜리 청년에게 자신이 훨씬 많은 밥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고, 생각이 되었다. 달그락.... 털썩! 투투툭... 그 말을 마친 리치는 썩은 나무토막처럼 바닥에 흩어져버렸고, 그것을 바라보는 일행들은 정령, 사람 할 것 없이 놀란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400레벨이 수십 명 와도 이길수가 없다고 하는 700레벨의 리치를 현민이 홀로 잡아버린 것이었다. ---------------------------------- 어두운 동굴의 거대한 문 앞에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마물이 몸을 누운 채 잠들어 있었다. 리치에게 걸려 재수없게 납치당한 그는, 납치되어왔을 초반에는 자신의 견생(犬生)을 저주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으나, 몇백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는 자신의 견생을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하암~." 하루 세끼 밥 나오고, 심심하면 주위에 있는 장난감(몬스터)들을 가지고 놀면 되니, 그에게 있어서 이곳은 지상낙원과 마찬가지인 장소가 되었다. 콰직! 쫑긋! "??" 바닥에 등을 깔고, 바른 자세(?)로 잠을 자던 케르베로스는 천장에서 들려오는 어색한 소리에 여섯 개의 귀를 쫑긋거렸다. 그가 문을 지킨지 몇백년의 세월이 되었고, 그동안 수많은 모험자와 영웅들이 찾아왔었지만, 지금같이 천장에서 소리가 난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자신의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케르베로스는 천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고, 하늘 높이 솟아있던 천장이 자신의 눈앞에 다가오자 여섯 개의 눈을 부라렸다. "!!!!" 퍽!! "깨갱!!!" 가장 처음 돌을 맞은 것은 세 개의 머리중 가운데에 있던 머리였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하나의 돌을 피하고자 양쪽의 머리가 반대로 움직이니, 중앙에 있던 머리는 피하지도 못하고 돌에 맞은 것이었다. 콰콰콰콰쾅!!! 하지만 그 돌을 시작으로 수많은 돌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하자, 가운데 머리를 돌에 맞았던 케르베로스는 아픈곳도 문지르지 못한 채 떨어지는 돌을 피해야만 했다. 쾅! 쾅! 쾅! 수 많은 돌이 그만을 노리는 듯 그가 움직이는 장소마다 돌이 떨어져 내렸고, 세 개의 머리를 이리저리 살피며 움직이는 그는, 발에 땀이 날 정도로 뛰어다녀야만 했다. '저 따위 바위 그냥 녹여버리자!' '좋아, 좋아!' '그래!' 한참을 피하던 케르베로스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지자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바위를 부셔버리기로 작정했다.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그는 어디를 가도 돌에 맞을 것이 분명했기에, 어떻게 보자면 지금의 선택이 가장 최선이 될 수도 있었다. 화르륵! 세 개의 머리에 엄청난 열기를 가진 화염이 생겨났고, 그들 머리는 자신들의 위로 떨어지는 바위를 향해 일제히 불꽃을 내뱉었다. 팡!팡!팡! 주위의 모든 것을 녹여버릴 것 만 같은 화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바위를 산산조각 내버렸고, 그것을 바라본 케르베로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음 표적을 조준했다. 펑!펑!펑!펑!펑! 처음이 어려웠을 뿐, 차츰 익숙해져가기 시작한 케르베로스는 자신의 위로 떨어지는 바위만을 노리며 부셔버렸다. 한참을 부셔가던 케르베로스는 어느 순간 자신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엄청난 높이의 돌덩이가 쌓여있다는 것을 눈치챘고, 그것들이 무너질까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그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끼잉..." 하지만 그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쿵!!! 모든 돌맹이가 떨어져 내린 것을 확인했건만 마지막으로 무엇이 떨어져 내린것인지, 그가 서 있던 돌덩이들이 엄청난 흔들림을 보이며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크헉!' '제, 젠장!' '니미....' 한순간에 돌덩이 속으로 파묻혀버린 케르베로스는 자신의 견생이 눈앞에 스쳐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빠, 빠져나가야 한다.' '여기서 죽을 순 없어...' '으으으...' 최후의 몸부림인가... 땅속에 파묻힌 케르베로스는 자신의 온몸으로 불꽃을 내뿜으며 주위의 바위를 녹여버렸고, 어느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조심하면 살 수 있다.' '무너지지 마라. 무너지지 마라...' 하지만 그의 노력은 이번에도 무너졌다. 쿵! 쿵! 쿵! 쿵! 쿵!.........쾅!!! 그가 만들어 놓은 공간이 무언가의 힘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그의 머리위를 덮고 있던 흙들이 엄청난 압력으로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깨갱!!" "깽!!" "깨개갱!!" 이대로 있다간 자신의 죽음이 확실하기에 케르베로스는 엄마 젖을 빨던 힘까지 모두 동원하여 온몸에 힘을 주었다. '끄어어억!!' '주, 죽는다.' '나 죽어~~.' 엄청난 무게와 압력이 그의 몸을 짓눌렀고, 그는 온몸에 힘을 준 그 자세 그대로 땅속에 박혀들어갔다. '이, 이렇게 개 같이 죽다니...' '이런 개 같은...' '개 같이 죽을 순 없어...' 세 개의 머리는 꺼져가는 의식을 붙잡으며, 생(生)에 대한 강한 집착을 내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 앞에 진정한 사신이 도착했다. "엉?" 오물오물오물... '인간?' '아니, 정령이다.' '따, 땅의 정령! 저 녀석 짓인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주변을 짓누르는 흙의 무게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쫄랑쫄랑 움직이고 있었다. "삼돌아, 살았니? 훌쩍!" '사, 삼돌이!!' '저런 망할 정령이!!!' '먹어버리겠다!' 케르베로스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일어나며 주위의 흙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불가능할것이라 여겼던 것이 한 존재의 말로 인해 가능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크르르릉.." 화르륵! 자신을 중심으로 공간을 만들어 몸을 바로 세운 케르베로스는 온몸을 화염으로 감싼 채 무엇인가를 열심히 빨고 있는 땅의 정령을 노려보았다. "우웅... 삼돌아," 오물... "혹시 장난감 없어?" '저, 저게 또?!!' '아, 혈압이!!' '먹어주마!' 마계의 마물 중 서열 500위 안에 당당히 들어가는 자신에게 삼돌이라 부르는 건방진 정령이 나타나자 그들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크앙!" "엉?" 주르륵.... 엄청난 열기를 가진 케르베로스가 담비에게 달려갔고, 갑자기 느껴지는 열기에 담비의 막혀있던 코가 뻥하고 뚫려버리며 엄청난 양의 콧물이 흘러나왔다. 스윽... "헤헤헤..." 오른손을 들어 올려 코를 문지른 담비는 자신에게 입을 벌리며 달려오는 케르베로스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게 되었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장난감!!" 팟! 덥썩! '우, 우엑!!' '불쌍해...' '최악이야...' 자신들이 목표로 했던 것이 입으로 날아오자, 가운데 있던 머리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입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그의 입에 들어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담비의 오른손만이 그의 입술에 들어가 있었다. "자꾸 방해하면 때찌 할꼬야." "크아앙!!" 끈적하게 느껴지는 담비의 콧물이 자신의 입안으로 흘러들어오자, 가운데 머리의 두 눈이 붉게 변하며 담비를 향해 뜨거운 불길을 내뿜았다. 하지만 담비의 움직임이 그보다 빨랐다. "얍!" 콩~. 케르베로스의 코를 집고 머리 위로 뛰어오른 담비가, 주먹을 말아 쥐며 가운데 머리를 때려버렸다. 담비의 작은 주먹은 귀여운 소리를 내며 케르베로스의 가운데 머리와 부딪혔으나, 그 결과만은 전혀 귀엽지가 못한 상황이었다. 콰직! '복슬이형!!!' '복슬아!!' 담비의 주먹에 맞은 가운데 머리, 일명 복슬이는 입에 머금은 불꽃도 내뿜지 못한채 머리가 으스러지며 바닥으로 축 쳐졌다. "너희들도 때찌! 때찌!" 케르베로스가 장난감(아이템)을 주지 않는 다는 것에 분노한 담비는 나머지 두 머리도 때려주었고, 그들은 470레벨이라는 것이 허무할 정도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들을 누르는 압력에 대항하지만 않았어도 이러한 결과가 나올리 없었지만, 견생에 있어서 예측된 것은 있을 수 없었고, 어찌보면 이것이 그들의 운명인지도 몰랐다. '희, 흰둥이 형....' '검둥아....' "웅차! 훌쩍!"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훌쩍이는 담비가 코를 문지르며, 콧물 묻은 손으로 복슬이의 이빨을 뽑고 있는 것이었다. '제, 제발... 왼손으로 뽑아줬으면.' '왼손으로 뽑아주기를...' 오른손은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지만 왼손은 멀쩡했기에, 왼손으로 뽑아주기를 바라며 죽어가는 케르베로스의 두 머리였다. ------------------------------------------------- 작가 : 담비의 앵콜곡 듣겠습니다~~!! 담비 : 두껍아~ 두껍아~ 오빠 줄게~ 사탕다오~ 두껍아, 두껍아, 우리 오빠 비싸다~ 두껍아, 두껍아, 두개가져 와주라~ 양손에 가득 쥐고 빨리빨리 와주라~~ 작가 : 박수~~!! 오늘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_(__)_ - 주말은 쉽니다."네."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에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을 때, 그들의 귓가로 현민의 낭랑한 대답소리가 들려왔다. "리치가 보스이다 보니 너무 쉬운데?" 전투계열의 보스라면, 하다못해 리치보다 한 단계 밑인 데스나이트만 등장했어도 현민은 상당한 고생을 했을 것이다. 마법사인 현민이 데스나이트를 이길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레벨차와 능력차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은 분명했다. "역시, 현민이~!" "브이~." 현민이와 수진, 현진은 아는 것이 없었기에 리치를 쉽게 잡은 것에 대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바라본 현민의 첫 모습(정령화)은 누구도 이기지 못할 만큼 강했기 때문에, 그녀들은 리치를 잡는 현민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근데 아이템이 안 나왔는데?" "리치는 라이프 베슬을 찾아서 부셔야 해." 수진이 리치의 뼈다귀를 뒤지고 있을 때,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도적여성이 주변을 살피며 말해주었다. "루이네, 썬더, 운다인, 노움, 데스. 라이프 베슬을 찾아줘." "사라만다, 우드, 실피드, 라이, 다크. 라이프 베슬을 찾아와." 그녀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를 한 수진과 현진은 자신들의 정령에게 라이프 베슬을 찾아오도록 했다. 나머지 일행들이 라이프 베슬을 찾기 시작하자, 현민도 자신의 정령들에게 라이프 베슬을 찾아오도록 부탁했다. "너희들도 찾아봐 줄래? 먼저 가져오는 정령한테는 오빠가 상줄게." '상!' '상...' '상, 후훗...' '음냐, 쩝쩝쩝.' 상을 준다는 현민의 말에 윈디아와 염화가 눈에 불을 켰고, 묘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유일하게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정령이 있다면 묘의 손을 잡은 채 코를 훌쩍이는 담비뿐이었다. 슥! 삭! 척! 스윽... 염화와 윈디아, 그리고 묘의 손이 재빨리 올라가며 담비를 가리켰고, 다른 정령들의 눈치를 살피던 담비가 은근슬쩍 묘의 손을 놓으며 현민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담비의 태도를 눈치 챈, 세 정령이 그러한 담비를 둘러쌌고, 현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담비를 쳐다보았다. "다, 담비 너 설마?!" 싹!! 무언가를 눈치 챈 현민이 도망가는 담비를 잽싸게 낚아챘고, 현민에게 허리를 잡힌 담비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현민의 품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쳤다. "우아웁! 우웁 우우웁 우아우아웁!(오빠! 나 정말로 안 먹었어요!)" "담비 너 빨리 입 안 열래?!" 도리도리도리. 담비를 품에 안은 현민은 혹시라도 담비가 입에 든 것을 삼켜버릴까 조심하면서 담비의 손을 치우려 노력했고, 주위에 있던 염화와 윈디아, 그리고 묘도 현민을 도와 담비의 입에 든 것을 빼내려고 했다. 오독! 오도독! 오도도도독... "아, 안돼!!!" "헉!" "...!!!" "다, 담비야..." 담비를 품에 안고 있던 현민과, 담비와 현민의 실랑이를 보고 있던 정령들은, 담비의 입에서 들리는 낯익은(?) 소리에 경악어린 표정을 했다. 담비의 입에 들어있던 것이 그들의 예상과 일치한다면, 지금의 그 소리는 절대로 입안에서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였다. "헤헤, 나 아무것도 안 먹었쪄." 담비는 더 이상 감출게 없다고 여기는 것인지 해맑게 웃고 있었지만, 그런 담비의 이빨에는 붉은색의 작은 수정조각과 뭔지 모를 붉은 액체가 덕지덕지 끼어있었다. 설마하니 라이프 베슬을 먹어버릴 것이라고는 그들은 물론, 운영자도 생각하지 못했고, "싸울아비"의 인공지능(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무너질 담(坍), 무너질 비(圮)... 담비는 오늘도 여러 존재의 개념과 마음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현민아, 아이템은 몇 개 찾았지만 라이프 베슬은 없던데?" "이쪽도 마찬가지야, 땅속도 없고, 천장이나, 벽도 살펴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어." 현민과 정령들이 담비의 행동에 대해서 한숨을 내뱉고 있을 때, 리치가 있던 던전을 한바퀴 돌아본 일행들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 그건 벌써 담비가 찾은... 것 같아." 찾은 것뿐만이 아니라 이미 먹어버리기까지 했으나, 모든 진실을 알려주기에는 그녀들이 너무나 심약해 보였다. "와! 진짜다. 이리와서 아이템 좀 봐봐!!" 현민이 난처한 눈으로 담비를 바라보고 있을 때, 리치의 시체를 살피던 현진이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리치의 라이프 베슬이 부서지면서 그가 지니고 있던 아이템이 드롭되었기 때문이었다. 리치의 로브(A급) 설명 : 리치가 직접 제작한 고급 로브 방어력 : 400-500 내구력 : 450 조건 : 400레벨 이상, 지능 300이상 착용가능. - 3서클 이하의 마법 데미지 흡수. - 4서클 마법 데미지 50% 감소. - 5서클 마법 데미지 20% 감소. - 6서클 마법 데미지 10% 감소. - 하루에 한번 0.1%의 확률로 마법 반사.(서클 무시) - 정신력or마나 +1000 "에, 에, 에이급!!!" "와! 옵션 좀 봐!" "옷도 엄청 예쁘다, 그치?" 리치가 드롭한 것은 단 하나의 로브였으나, 현민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그것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들은 A급 아이템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 능력도 그녀들이 보기에는 엄청 뛰어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얼마나 할까?" "아쉽지만 이건 포기 해야겠지?" "흐음, 오늘 하루 광렙도 해주고 아템도 전부 줬으니, 하나쯤은 양보해야할지도..." 그녀들은 눈앞에 있는 리치의 로브가 탐나기는 했으나, 이미 상당히 많은 것들을 양보 받았기 때문에 큰 욕심은 부리지 않고 있었다. 그녀들이 리치의 로브를 두고 상의하고 있을 때, 현민은 리치가 있던 곳을 이곳저곳 살펴보는 중이었다. "이건... 마법서?" 현민이 멈춰 선 자리는 수 백 개의 책이 꽂혀있는 책장의 앞이었다. 그곳에는 기존의 마법서와 리치가 만들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마법들이 서클별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것들의 공식이 풀이된 두꺼운 종이뭉치도 있었다. "설마 이런게 있을 줄이야..."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책에 꽂혀있는 마법서들을 보며 좋아하겠지만, 현민은 그러한 마법서들보다는 마법의 공식이 풀이되어 있는 종이 뭉치들을 보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리치가 만들어 놓은 공식의 풀이들은 현민이 만들어 놓은 것보다 더욱 세분화되어 있었고, 내용 또한 다양하고 예까지 들어가 있어 보는 것도 아주 편했다. "좋은 걸 얻었네." 책장에 있던 책을 통째로 챙긴 현민은 다른 장소도 돌아다녀 보았으나, 그 외의 장소에서는 특별한 물건이 발견되지 않았다. 툭. "현민아, 오늘 하루 고생했어." 현민이 리치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곁으로 다가온 현진이 리치의 로브를 현민에게 던지며 말했다. 현민이 자리를 비운 동안 내린 그녀들의 결론은, 지금까지 받은 아이템의 양이라면 이 정도의 로브보다도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현진아, 수진아." "응?" "응?" 많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어서 행복한 얼굴이 된 그녀들이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려고 할 때, 그들의 뒤에 서있던 현민이 조용히 그녀들을 불러세웠다. "쿠진의 광장에서 기다릴게. 둘이서 찾아와, 알았지?" "응." 현민이 그녀들의 귀에 소곤거리자 그의 뒤에 서있던 하피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현민에게서 떨어진 두 사람은 친구들에게로 돌아갔고, 귀환주문서를 사용하여 순식간에 마을로 이동해버렸다. "우리도 갈까?" 마녀의 빗자루를 꺼낸 현민이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윈디아를 제외한 나머지 정령들이 현민에게 매달렸다. 허공에 날아오른 그들은 동굴의 입구를 통과하여 약속된 장소로 이동했다. --------------------------------------- 너무 놀았나봐요. 아니면 버닝의 후유증인가...?"흐음... 조용하네." 현민이 쿠진 광장에 있는 분수대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막 지고 있는 시간대였다. 분수대 앞의 벤치에 현민이 자리 잡자, 그의 곁으로 4명의 꼬마정령과 하피가 각자의 위치를 차지했다. 가장먼저 움직인 하피가 현민의 오른편에 기대어 앉았고, 묘와 염화는 현민의 왼쪽에, 윈디아는 현민의 가슴에, 담비는 현민의 무릎에 아슬아슬 걸터앉았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죠?" "퇴원해도 괜찮은 거야?" 벤치에 앉아 있는 현민이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앞으로 다가온 페튜니아가 그의 안부를 물었다. "응? 어떻게 아셨어요?" 수진과 현진, 지혜 같은 경우는 자신과 연락을 하기에 입원한 것을 알았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단 한번 만났던 페튜니아가 자신의 일까지 안다는 것에 현민의 고개가 좌로 기울어졌다. "너희 부모님이 우리 회사에 찾아오셨거든." "...죄송해요." 난처한 듯한 페튜니아의 음성에 현민의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자신이 쓰러지면서 부모님이 어떠한 태도를 보이셨을 지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우리도 완벽히 만든다고는 했지만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디서든 예외는 나올 수가 있으니깐." 현민이 쓰러진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인지, 페튜니아의 음성에는 힘이 없었다. "하지만 제가 쓰러진 이유는 저한테 있어요." "응?" "토너먼트에서의 마지막... 아마 그 일 때문에 쓰러졌을 거예요." 현민의 말을 들은 페튜니아는 한 달 전에 일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때 보았던 현민의 모습은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에 별도의 노력 없이도 쉽사리 떠올랐다. '아마?' 확신하는 것이 아닌 추측하는 현민의 말투에 무언가가 걸리는 페튜니아였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페튜니아를 쳐다보던 현민이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그의 말은 이어지지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있던 현민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의 곁에 기대어 잠자고 있던 정령들은 갑자기 움직이는 현민으로 인해 자세가 무너지며 잠에서 깨어났다. 파팟! 초보용 옷을 입고 있던 현민의 복장이 마녀의 복장으로 바뀌었고, 틀어 올렸던 머리카락도 비녀가 빠지면서 풀어져 버렸다. 스르륵.... 하늘로 날아선 현민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흩날렸고, 살짝 기울어져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자가 현민을 신비하게 만들어줬다. [달의 기운을 받아 모든 능력이 2배로 증가합니다.] [달이 떠 있는 동안 몬스터로 분류됩니다.] "후..." '엄청난데?' 완전히 모습을 바꾼 현민은 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 팀장님, 이거 대박인데요? - 전부 보고 있나요? - 네. 허공에 떠 있던 현민의 발이 바닥에 닿았고, 잠에서 깨어난 정령들은 다시금 현민에게 달라붙었다. "던전 무너트린 거는 죄송해요." "응?" 현민의 모습에 취해있던 페튜니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를 못했다. "오늘 오후에 던전 하나를 부셔버렸거든요..." - 쿠진 마을 뒷동산에 있던 216번째 리치의 던전이 무너진 것을 말하는 것 같네요. "아..!! 괜찮아. 리치의 던전 같은 것은 특별 던전이라 보스를 공략하면 사라지는 던전이거든." 패치로 인해 인공지능 운영자들의 일이 많아지면서 그 자료를 정리하고 처리하는 운영자들의 일도 증가하였기에, 그녀는 아직까지 현민이 사고 친 던전의 기록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 다행이네요." 페튜니아의 말을 들은 현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부순것도 많았지만 이번의 일은 그가 생각하기에도 약간(?)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 담비가 리치의 라이프 베슬을 먹어서 그러는데 아무 문제없을까요?" "응?" - 방금 뭐라고 한거죠? - 시스템에 오류가 있는 것 같아요. 사운드가 이상한데요? 현민의 말을 듣고 있던 운영자들은 일순간 자신의 청각을 의심하며 현실을 외면해버렸다. "여기 담비가 라이프 베슬을 먹어서..." 품에 안겨있던 윈디아를 내려준 현민은 콧물을 흘리며 손가락을 빨고 있는 담비를 품에 안아들고 페튜니아에게 보여주었다. "아, 음... 그러니깐, 라이프 베슬이 리치의 라이프 베슬?" 끄덕. 현민에게 확답을 들은 페튜니아의 얼굴이 이상하게 찡그려졌다. 라이프 베슬을 대기중에서 부순다면 담고 있던 용기는 조각이 나고 안에 들은 '생명'은 대기 중에 흩어지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먹었다면? "아직 그러한 일이 없어서... 우리도 알아봐야 할 것 같아." 담비의 일은 운영자들로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기에 그녀는 서둘러 돌아가려 했다. "아참, 이거 받어." 그녀의 신형이 사라지기 직전, 그녀는 현민에게 하나의 철검을 건네주었다. 그녀가 건네준 철검은 현민이 토너먼트의 마지막에 놓고 왔던 용린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용린?" 페튜니아에게 용린을 건네받기는 했으나, 마지막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현민은 왜 그녀가 용린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지를 못했다. "건강해져서 다행이야, 현민아." "아..." 페튜니아는 현민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고, 그 미소가 너무나 예쁘게 느껴졌던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 룬, 내꺼. 절대 안 줄거야. 현민의 태도에 질투를 느낀 것인지, 가만히 서있던 하피가 뒤에서 그를 껴안으며 자신의 볼을 현민의 볼에 비벼댔다. "자, 착하지?" 자꾸만 비벼대는 하피를 적당히 달래준 현민은, 마녀의 복장 그대로 원래의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달이 뜨면서 몬스터로 분류되었기에 이렇게 자리 잡은 것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주위에는 4명의 꼬마정령들이 항상 대기중이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혹시... 현민?" 머리를 들어 올린 현민이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을 때, 그런 현민을 향해서 수진과 현진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분수대의 조명에 의지해 주변을 살펴본 결과, 그들의 약속 장소에는 단 한명의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의 주위에 있는 정령들을 보면 그 중심에 있는 존재가 현민인 것은 확실하였으나, 지금의 현민 모습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가였기에 그녀들은 말을 꺼내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늦었네?" "아, 응." "아이템이 많다보니, 나누는데 시간이 걸렸어." 그녀들은 현민의 뒤편에 있는 분수대에 걸터앉았고, 그녀들을 따라 각각의 정령들이 주변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지금 그 모습..." "남자에게도 비밀은 있는 법이야." 호기심 많은 수진이 현민의 모습에 대해서 물어보려 했으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민이 먼저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툭. "저번에 못 줬던 아이템." 현민이 그녀들에게 건네준 것은 그의 방에서 가져왔던 작은 상자였다. 그 상자 안에는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이템이 들어있었으나, 현민은 그러한 것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너희들이 필요한 것만 꺼내 쓰고, 나머지는 잘 보관해둬. 그것도 빌려주는 거니깐." "고마워." 만약 하나의 아이템이라도 확인 해 보았다면 엄청난 능력에 경악을 했을 테지만, 그녀들은 상자만 받아들었을 뿐, 그 안에 들어있는 장신구들을 살펴보지는 않았다. "게임은 할 만해? 레벨은 빨리 올린 것 같던데." "응. 재미있어." "요즘에는 알바비 정도로 벌 수 있어서 생활에도 지장이 없어." 그녀들의 레벨은 빨리 올린 수준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30분 만에 왕복하는 스피드와 비슷한 정도였다. 현민이 추천해준 정령사는 그녀들의 성격과 취향에 딱 들어맞는 직업이었고, 처음으로 접한 정령사(현민)의 능력이 어마어마했기에, 정령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도 갖지 않았다. 그러한 그녀들은 언제나 파티를 하며 자신들보다 배는 높은 몬스터들만 사냥해왔고, 그 결과 한달만에 200레벨을 넘겨버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녀들에 대해서 내심 걱정하고 있던 현민은 생활에도 게임에도 문제가 없다는 그녀들의 말에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현민의 태도였지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만들어 주었던 친구들이기에 그러한 건지도 몰랐다. "그러면 내 심부름 좀 하나 해줄래?" "응?" 꾸벅꾸벅 졸고 있는 네명의 정령과 하피를 벤치에 앉힌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너희들 체리플랑 알지?" "세계적인 천재?" "싸울아비 최고의 마법사?" "풋." 툭. 현진과 수진의 대답을 들은 현민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에게 하나의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이것 좀 그녀한테 전해줄래?" "에엑?!!" "에엑?!!" 현민의 부탁을 들은 그녀들은 똑같은 비명을 지르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체리플랑의 경우 세계적인 스타였기 때문에, 작고 초라한(?) 물건을 전달해 달라는 현민의 부탁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것을 걔한테 가져다준다면 멋진 아이템이나, 몇 십 강(몇 천 골드)도 줄걸?" "정말?" 이것을 전달할 경우 상당한 보상이 있다는 현민의 말에 현진과 수진의 눈이 초롱초롱 해졌다. 하루 종일 접속해야 몇 십 골드를 만지는 그녀들에게 단 한번의 배달로 몇 천 골드가 생긴다고 하니 눈이 빛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사기라고 생각해 보겠지만 현민이 직접 말하는 것이니 그럴리는 절대 없다는 게 그녀들의 생각이었다. ---------------------------------------- "지금 사용한 마법은 당신의 정신력만큼 나의 정신력을 소모시키는 마법이에요." 만약 '나의 정신력만큼 당신의 정신력을 소모시키는 마법이에요.'라고 한다면, 상대가 기절을 하건말건 자신은 무조건 기절이 되는 것이고, '당신의 정신력만큼 나의 정신력을 소모시키는 마법이에요.'라고 한다면, 상대방이 나의 정신력보다 높을 경우에만 기절을 하는 게 되는 거죠. 말은 읽는 순서에 따라 글이 바뀔수도 있답니다... "음... 아마도." "아마가 뭐야? 아마가..." "대답이 불성실해." 현민의 대답을 들은 수진과 현진이 그를 흘겨보았으나, 그녀들의 눈에 담겨있는 것은 짜증이 아닌 장난기였다. "내가 체리플랑을 안다고 해서 걔가 나를 안다고 할 순 없잖아? 일단은 선물이고 그 안에 편지도 들어있으니깐 분명히 보상이 있을거야. 그리고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정령술." 두 권의 책을 꺼내든 현민은 그 책을 수진과 현진에게 각각 주었다. 현민이 건네준 책은 이전에 주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합일'이었다. "나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 기술명하고 조건이 좀 더 좋아졌어. 기술명은 '정령화'로 바뀌었고, 조건은 친화력 500이상, 패널티는 레벨10감소." "끝?" "응." 마법사란 직업은 이번의 패치로 인해 상당히 약해졌다지만, 정령사란 직업은 마법사와는 반대로 상당히 좋게 변했다. 일반적인 정령사들에게 크게 좋아진 점은 없었지만, '합일'이라는 정령술을 가지고 있던 현민에게는 최상이라고 할 정도로 좋아진 상태였다. 정령화(정령술) 레벨 = 본인의 레벨 + 정령의 레벨 정령력(속성별 차이 존재) = 본인의 모든 스텟 * 100 + 정신력 + 생명력 + 정령력 지속시간 = 초당 1의 정령력 감소. 정령or본인의 해제. - 조건 : 친화력 500이상 - 패널티 : 정령화 해제시 레벨 10 감소. "말도 안돼! 이 정도면 천하무적이잖아!" 물론 레벨 10의 감소가 있다고는 하지만, 몰이사냥을 생각해 본다면 최강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들 스스로도 250레벨을 넘기고 있고, 정령들의 레벨도 250을 넘고 있기에 '정령화'란 스킬을 쓴다면 순간적으로 500레벨의 정령과 똑같은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러니깐 이 몸이 천재라는 것 아니겠어? 쿡쿡." "네가 천재(天災: 하늘의 재앙)라는 건 알겠지만, 동음이의어에 유의해서 말해야지." "똑똑한거랑 하늘의 재앙이랑은 뜻이 전혀 반대니깐." 쌍둥이의 텔레파시가 통한 것인지 그녀들은 하나 된 마음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글쎄, 어쩌면 그 천재가 맞을지도..." 그녀들의 말을 들은 현민은 그녀들이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지나가듯 한마디 했다. "그리고 이 옷은 너희들이 팔아서 써라. 이거 지금의 내 옷보다 안 좋거든." 현민이 그녀들에게 건네준 것은 던전에서 얻었던 리치의 로브였다. 지금의 현민이 입고 있는 마녀의 옷은 일반적인 천 옷과 조금의 다름도 없었지만, 능력이야 언제든 부여할 수 있었고, 지금의 마녀 옷이 마음에 들었기에 리치의 로브는 그에게 필요 없는 것이었다. "세상에 A급보다 좋은 옷도 있어?" "우와~, 이제보니 갑부잖아?" "원래는 없는데, 나는 옵션을 만들 수 있거든." 그녀들에게는 특별히 감출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현민은 아직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내용을 처음으로 말해 주었다. 현민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깜짝 놀란 표정을 하며 아쉽다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우우, 우리도 마법사나 할껄." "아~, 내가 머리만 좋았어도 마법사하는 건데." "푸훗." 정령사라는 직업보다 마법사라는 직업이 탐난다는 것인지, 두 여성은 진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게임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인첸터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직업이기에 그녀들에게는 더욱더 필요한 직업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해봐." "머리아파." "머리아파." 동시에 나오는 그녀들의 대답에 현민의 입가가 절로 씰룩 거렸다. "정령사란 직업도 상당히 마음에 들고, 이 아이들하고 같이 다니는 것도 좋아." "나도 얘들하고 같이 싸우는 게 편해." 정령들을 바라보는 그녀들은 더 이상 다른 직업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현민도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아참, 현민아!" "응?" 자리에서 돌아선 그가 정령들을 깨우려 할 때, 수진이가 현민을 멈춰 세웠다. "너희 삼촌이 언제 한번 만나자는데?" "삼촌?" 현진의 말에 잠시 기억을 더듬은 현민은, 그녀들이 말하는 삼촌이 돈 빌려주는 것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아저씨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응. 아저씨가 연락도 안 된다고 하고, 자주 놀러오지도 않는다고 심심하데." "언제 만났어?" 그녀들이 갖고 있던 빚은 현민이 갚았기 때문에 그녀들과 그가 연락을 할 이유는 없었다. "평소에 같이 사냥다녀." "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진의 대답에 현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너희 삼촌도 상당히 유명하던데, 몰랐어? 늑대인간 루시안이라고." "으응, 물론 알지. 광고도 같이 찍었잖아?" 그 아저씨의 직업이 늑대인간이라는 것을 들은 순간 현민의 몸이 살짝 흔들렸지만, 그녀들은 현민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 너희 삼촌이 나이만 적었으면 시집가는건데." "마음착하지, 순진(?)하지, 귀엽(?)지, 돈 많지, 집 많지, 땅도 많고..." 현진의 입에서 나오는 아저씨에 대한 평가는 현민의 예상과는 전혀 반대되는 이미지였다. "정말?" "에? 몰랐다는 말투인데?" "나야 자주 안 만나니깐." 그녀들의 눈에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현민의 거짓말에 입을 다물었다. "너희 삼촌, 말하기가 조금 죄송스럽지만 상당히 순진하더라구." "그동안 여자랑 사귈 기회는 많았는데, 여자 옆에만 다가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온몸이 뻣뻣해져서 제대로 말도 못한데." "으윽!!"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민은, 그의 이야기가 왠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귀엽지 않아?" "게다가 얼굴도 상당히 잘생겼고, 싸움도 잘하시고." 그를 생각하는 것인지 두 사람의 얼굴은 밤에도 보일 정도로 붉어져있었다. "알았으니깐, 난 먼저 간다."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었고, 서둘러 마법공식을 보고 싶었던 현민은 마녀의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삐졌어?" "진짜로 삐진 건 아니지?" "나 삐졌으니깐 말 걸지 마." 밴치로 돌아선 현민은 자신의 어깨에 담비를 앉혔고, 윈디아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묘와 염화를 품안에 안아든 현민은 하피를 깨워 귀환주문서를 건내주었다. "중간중간 어려우면 말해, 도와줄게. 그리고 게임은 적당히 하고." 본인도 상당히 많은 시간을 게임으로 보내고 있었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당히 충고의 말을 하는 현민이었다. - 룬, 어서 가자. 나 졸려. 자다가 일어난 하피는 졸린 눈을 비비며 현민을 재촉하였다. "난 먼저 간다. 수고." "응, 잘 가." "오늘 고마웠어." 현민의 모습이 먼저 사라졌고, 그의 뒤를 이어서 현진과 수진의 모습도 쿠진 광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사라진 쿠진 광장에는 분수대의 물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스윽...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현민은 자신의 침대에 하피와 정령들을 뉘어주었다. "우웅..." "으윽! 차, 착하지 담비야? 머리는 놓고..." 그의 머리에서 잠자고 있던 담비가 현민의 머리를 놓으려 하지 않았지만, 담비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어서 결국 담비도 침대에 눕힐 수 있었다. 다섯 명이 잠자기엔 약간 작은 느낌이 드는 침대였지만, 하피를 제외한 정령들은 세로가 아닌 가로로 눕혔기 때문에 모두가 두 발 뻗고 잠자는 중이었다. "샨의 마법에, 리치의 마법공식이라... 앞으로 바쁘겠는데?"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온 현민은 탁자에 앉아 몇 권의 책을 꺼냈다. 그가 꺼내든 책들은 샨이 건네준 마법서 몇 권과 리치의 던전에서 가져온 마법의 풀이집이었다. "새로운 마법을 만들 필요는 없어. 기존의 마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속에 담겨진 규칙만 알 수 있으면 되는거야..." 한권의 책을 집어든 현민은 작은 목표를 정한 후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의 손은 끊임없이 움직였고, 마법서의 페이지는 한 장, 한 장 넘어갔다. "하암..." "싸울아비"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문제를 풀어가던 현민은 운동시간도 건너뛰고 5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보다도 늦은 시간에 잠들었기 때문에 그가 잠잔 시간은 2시간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현민은 졸린 눈을 비비며 등교해야만 했다. 스스슥... 현민의 두 발은 언제나 걸어가던 길을 따라서 학교를 향하고 있었으나, 반쯤 감겨진 그의 두 눈은 매직보드를 향해 있었고, 힘겹게 들려진 현민의 오른손은 매직보드에 나타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귀찮게 하지 마. 도대체 뭘 보고 나를 좋아한다는 거야?" "뭘 보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너 자체를 좋아하는 거야." 평상시라면 이쯤에서 지혜가 달려들어야 하겠지만, 지혜는 평소의 그 자리에서 다른 남자와 말다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현민아!" 스윽... 이른 아침 힘겹게 등교를 하고 있던 현민은 언제나 들려오는 지혜의 목소리에 한걸음 옆으로 물러났지만, 지혜는 그가 있던 자리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움직인 그 남학생도 현민의 앞을 가로막았다. "현민아, 얘 좀 어떻게 해봐. 나는 싫다는데 자꾸 달라붙어!" "남자친구도 없잖아. 나랑 사귀어줘." "현민이가 내 남자친구야!" "뭐?" 그제야 고개를 돌린 그는 매직보드의 문제를 풀고 있는 현민을 바라보았다. "나는 남자고 지혜의 친구가 맞으니, 남자친구라고 해도 상관없겠네." "너랑 사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알고 말하는 거야." 그들을 향해 간단히 대답한 현민은 한걸음 옆으로 물러서서 그들을 피한 후,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좋아해. 제발 나랑 사귀어줘." "정말 미안하지만, 난 쟤를 좋아해." "하아..." 단호한 지혜의, 말과 태도에는 한 치의 거짓도 담겨있지 않았기에 앞서 걸어가던 현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혜가 현민의 뒤를 따라 움직이자, 그 남학생도 지혜의 뒤를 따라 움직였고, 그들은 계단을 올라 현민의 교실까지도 따라 붙었다. 드르륵... "안..." 평소와 같이 인사를 건네던 반장은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두 사람 때문에 완전한 문장을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남들이 얼굴을 붉힐만한 고백을 주고받는 상태였고, 그런 그들의 사이에 있는 현민은 조용히 앉아 매직보드만 풀고 있었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거냐?" 스윽! 기다란 도를 들고 한참을 움직이던 하연(아리)은 옆에서 말을 거는 아버지 때문에 순간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지금은 수련 중이에요." "그러니 한마디만 하면 되지 않으냐." 스윽... "이미 진하오빠와 약혼중이에요."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 하연이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중에 말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것이기에 그녀의 몸에 흐르는 땀은 기존보다 더욱 많아졌다. "그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네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라기..." 팟! 스윽... "어머니와 상담은 하셨나요?" "윽!!" 부드럽게 움직이며 한바퀴 회전한 하연이 아버지를 향해 질문을 던졌고, 그녀의 질문을 받아든 하연의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있지 못한 채 신음을 내뱉으며 굳어버렸다. "그리고 저는 진하오빠와의 결혼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졌기 때문인지 지금은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것만 같아요." 파팟! 스윽... "하지만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같은 취미를 가지고..." "진하오빠도 항상 수련을 하고 있다 들었는데요." 조심스럽게 입을 연 하연의 아버지였지만, 이번에도 그의 말은 끝을 맺을 수가 없었다. "그가 진하보다 잘생겼다면..." "그러면 좋겠지만, 진하오빠보다 잘생긴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네요." 그들이 말하고 있는 진하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연은 진하라는 사람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혹시 그가 재벌2세라면..." "진하오빠도 재벌2세이지 않나요? 그리고 저희 집을 생각해본다면 누구와 살아도 제가 책임질 정도는 될 것 같네요." "크흠!"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을 생각해보면 하연의 말은 당연한 것이었다. 도시 한가운데 있는 엄청난 크기의 한옥에 살고 있는 그들이 돈에 관한 걱정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됐다. 옛말처럼 3대는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허허, 하지만 그와 함께 있을 때는 웃지 않았니?" 멈칫! 그녀의 귓가에 할아버지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고, 갑자기 나타난 할아버지 때문인지, 아니면 할아버지가 말하는 내용 때문인지, 결코 멈추지 않았던 그녀의 검이 한순간 정지해버렸다. 검을 내리고 돌아서는 그녀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녀의 표정은 평소보다도 더욱 차가워보였다. "저는 웃지 않았어요." "호오~?" 단호한 하연의 말에 할아버지가 묘한 탄성을 내뱉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만들었다. "그는 저를 강하게 만들어줄 존재일 뿐이에요." "허허... 아범아, 저 고집은 네 고집이냐? 어미 고집이냐?" "그건 질문이 아니잖아요? 푸훗." 할아버지의 질문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말을 한 하연의 아버지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지 못했다. 평범한 그로서는 자신의 뒤에 하연의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보." 흠칫!! "여, 여보님..." "허허허." 끌려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연은, 그들을 보며 웃음을 흘리는 할아버지에게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다시 말씀드릴게요. 저는 웃지 않았어요." "그래그래, 할아버지가 졌다." 결국 하연의 할아버지가 백기를 들어 올렸지만, 그의 태도는 말과 반대되어 있었다. "그보다 언제 한번 초대해 주지 않으련? 그와 대화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벤트라는 것이 끝날때까지 대륙에 나타나지를 않더구나." 하연의 할아버지는 현민의 실력에 흥미가 생겨, 그를 만나기 위해 대륙까지 건너갔지만, 현민이 병원에 신세를 지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저는 그가 누군지도..." 툭. "그런거라면 할아버지가 다 조사해 놨단다. 언제 한번 초대하렴." 어떠한 방법으로 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할아버지가 건네준 서류에는 현민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알겠습니다." 자신의 검을 정리한 하연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후, 흐르는 땀도 닦지 않은 채 서류를 집어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흐음... 밤하늘이 예전 같지는 않군." 수련장에 홀로 남은 하연의 할아버지는 별이 없는 밤하늘을 보며 아쉬워했다. "으아아악!!" "아비가 울지 않으면 좋으련만..." "아아악!" 오늘 하루 고생하신 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_(__)_ 그동안의 노력에 보상 받으셨기를 바라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 "신체검사." 학교에서 돌아온 현민은 가볍게 식사를 한 후,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현실과 게임의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문제를 푸는 것 보다는 게임에서 문제를 푸는것이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캔 중입니다.] 하지만 캡슐에 들어간 현민이 먼저 한 것은 "싸울아비"의 접속이 아니라, 그동안 미뤄왔던 신체검사였다. 일반적인 유저들은 최상의 상태에서 신체검사를 하여 최강의 조건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지만, 현민은 정기적으로 신체검사를 하여 자신의 변화를 관찰하고 조절했다. 위이이잉.... 인체에 무해한 빛이 현민의 몸을 지나가고 있을 때, 현민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문제를 빠르게 풀어가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나온 문제는 간단한 덧셈이나 언어적 문제였고 겨우(?) 100개밖에 되지 않았기에, 스캔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다. 힘 : 16 민첩 : 14 건강 : 15 반사신경 : 16 지능 : 19 정신 : 19 문제가 사라진 장소에는 현민의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한 달 동안의 침대생활 때문인지 현민의 능력은 이전의 것과 비교했을 때 전부 낮아진 상태였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222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이제는 익숙한 여성의 음성을 들으며 현민의 의식은 게임으로 옮겨졌다. "아아..." "싸울아비"에 들어온 현민은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상황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현민이 로그인 된 방의 중앙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는 담비의 장난감(아이템)이 천장까지 쌓여있었다. 종료하기 전까지 깔끔한 모습을 갖추고 있던 그의 방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상태였다. 딱! "큭!!" "아앗~!!" "헉!" "오, 오라버니..." "쿡쿡." 현민이 어질러진 방을 보며 경악하고 있을 때, 동그란 구슬 같은 것이 현민의 머리를 강타하며 그의 정신을 깨워주었다. 현민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고, 그의 눈에는 거대한 장난감 더미 위에 앉아있는 담비가 보이고 있었다. "담비야." "헤헷..." 현민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스스로의 죄(?)를 알고 있는 담비는 장난감 더미에서 내려와 자신의 손에 들린 물건을 현민에게 건네주었다. "하아... 정말이지 존경스럽구나." 현민이 받아든 것은 귀여워 보이는 새총이었으나, 문제는 거기에 사용된 재료였다. - 오우거의 힘줄 - 아라크네의 거미줄 - 미스릴 실 - 하울링의 뼈 담비의 아기자기한 새총은 Y모양의 하울링 뼈에 오우거의 힘줄과 아라크네의 거미줄, 그리고 미스릴 실을 꼬아 만든 특수 끈을 묶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울링이 어떠한 몬스터고 언제 잡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머지 재료들만으로도 엄청난 가격의 물건이었고, 뼈의 탄력과 강도를 생각해 보자면, 하울링의 뼈도 보통의 물건은 아닌 게 확실했다. "너희들도 놀았으면 치워야지?"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현민이 주위에 있는 아이템들을 줍기 시작했고, 나머지 정령들도 현민을 따라 어질러놓은 아이템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의 양이었기에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담비가 어디선가 가져온 상자에 넣기 시작하자 그 많던 아이템들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아이템들을 담은 상자에는 아직도 많은 여유가 남아 있었다. "담비야, 이것도 주은거야?" "응! 훌쩍, 헤헤헤... " 일반 보물상자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 상자에 그 많은 양의 아이템들이 들어갔다면,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상자도 상당히 고급의 아이템이라는 소리였다. "하아..." 윈디아와 묘의 도움으로 청소는 빨리 끝났으나, 현민이 겪은 정신적 피로는 1시간동안 청소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톡톡. "다 치웠으면 얘기나 할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현민은, 창틀에 턱을 괸 채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로벨을 볼 수 있었다. "들어오세요." "그럼, 사양 않고." 탁. 고양이 같이 가볍게 움직인 로벨은 창틀을 뛰어넘어 현민의 방으로 들어왔다. 로벨이 안으로 들어오자 쪼르륵 창가로 달려간 네 명의 꼬마정령들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피피를 보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놀아라~." "네~!!" - 응! 하피와 4명의 정령들이 밖으로 나가자 현민의 방이 조용해졌다. 어린 정령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은 로벨이 현민의 침대에 걸터앉았고, 현민은 그녀와 마주하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스윽... 서로를 마주한 그들이 말을 꺼내려고 할 때, 현민의 방문이 열리며 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랑 말하기도 참 힘들다." "큭큭. 그러네." 현민의 방으로 들어온 린은 손에 들린 따뜻한 코코아를 현민에게 건내준 뒤, 또 다른 하나를 로벨에게 건네주며 그녀의 곁에 자리 잡았다. "자, 그럼 시작할게." 손에 들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로벨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녀의 이름 앞에 붙는 호칭이란 것은 마녀의 미래와 힘에 관련된 거야. 그렇기 때문에 호칭이란 것은 그 마녀의 장기나 능력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지. 저주계열에는 '저주'라는 단어가, 약물 계열에는 '창조'라는 단어가, 마법진 계열에는 '파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거야." 로벨의 설명을 듣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호칭이 '달'로만 된 것에 의문을 가졌다. 그녀의 설명대로라면 자신의 호칭에는 '파괴'란 단어가 들어가서, '파괴의 달의 마녀'라든지, '달을 파괴하는 마녀'라는 호칭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맞아. 너의 호칭은 그것들과 상관없는 '달'로만 이루어져 있지. 이 '달'이라는 호칭은 마녀의 능력과 관계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혀 없는 그런 능력을 가리키는 호칭이야." "응?" 마녀의 능력을 세 가지(저주, 마법, 약물)로 알고 있던 현민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달'이란 호칭이 갖는 의미는 [control]." "컨트롤?" 로벨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마녀와 어떤 관계도 없어 보이는 단어였다. 현민이 정령들이나 하피와 계약관계를 맺은 것은 맞지만 그것은 마녀와 관계된 어떤 것들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마녀(魔女)]만 얻을 수 있고, [마녀]에게만 주어지는 호칭. 그게 바로 '달'이야." 이제는 식어버린 커피를 한번에 들이킨 로벨은 본격적인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가 마녀(魔女)라고 불리게 된 이유를 말해줄게. 지금은 인간들을 피해서 지내고 있지만, 몇 천 년 전의 마녀들은 인간들과 같은 마을에서 생활했어. 비록 평범한 인간의 4배에 해당하는 수명을 가지고 있다지만, 엄청난 능력과 뛰어난 외모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많은 존재들이었지."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는 옛날동화처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 마녀들 중에서 특히나 뛰어난 인물이 태어났었어." "혹시 처음으로 '달'이란 호칭을 받은 사람이야?" 너무나 뻔한 이야기에 혹시나 하고 한마디 던졌지만, 세상은 현민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바보. 마녀들의 역사는 인간들의 역사만큼 오래되었기 때문에 '달'이란 호칭의 처음을 찾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린의 한마디에 현민의 입이 닫혀버렸고, 로벨은 끊어졌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달의 호칭을 받은 사람은 찾을 수 있지. 그리고 내가 말하던 사람이 역사에 적힌 바로 그 [마녀]야." "그 마녀는 몇 장이나 뽑았는데?" "4장." "그녀가 뽑은 '달'의 카드는 단, 4장이었지만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사상 최악이자 최강의 마녀라고 불렸어." 중간중간 끼어드는 현민 때문에 본론으로 들어갈 수가 없던 로벨이 헛기침을 하며 현민에게 눈치를 주었다. "흠흠! 그 마녀는 태어나서 300년 동안 아주 평화로운 삶을 보냈어. 그녀의 성장은 다른 마녀들과 다를 바가 없었고, 마지막의 삶을 함께할 사람과 결혼도 했지." "에? 마녀도 결혼해?" 자꾸만 이야기를 끊는 현민의 태도에 로벨의 눈초리가 사납게 변했다. "마녀란 존재들은 인간들에 비해 수명이 길뿐 특별한 차이는 없어. 그래서 300년의 삶을 살고 난 후, 마지막 100년 정도는 인간과 가정을 꾸리고 사는 거지." "그 마녀는 평범한 농부랑 결혼을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보냈어. 하지만 너무 행복해서였던지,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불행이 찾아왔지. 그녀가 살고 있던 지역은 인구가 100도 안 되는 산골의 오지였는데, 그런 곳으로 나라의 황태자가 찾아온 거야." * * * 철그럭! 히이잉~! "여기가 제국의 끝인가?" "그렇사옵니다, 전하." 제국의 뒤를 이을 황태자와 수천의 기사들이 도착한 장소는 인구가 100명도 안되어 보이는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마을로 통하는 길조차 단 한명의 사람밖에 지나갈 수 없는 길이었기에, 기사들이 직접 길을 만들어야만 할 정도였다. "이런 마을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다니..." "수도나 영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들이 받을 수 있는 해택이 많지 않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의 옆에 있던 노(老)기사가 설명을 해주었지만, 구겨진 황태자의 얼굴은 펴지려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비치는 사람들은 모두가 거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 * * 로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민은 그녀의 말에 질문이 생겼는지 살짝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입이 열리자마자 또다시 날카롭게 변하는 로벨의 눈초리 때문에, 벌어진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황태자는 빼어난 미모의 그녀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 * * * "응?" 수 백 명의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길을 걷고 있던 황태자는, 기사들의 틈사이로 보이는 하나의 여인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였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낮추고 있는 그녀는 자신과 시선도 마주하고 있지 않았지만, 들어나는 몸매와 반짝이는 은빛의 머리카락은 황태자에게 짙은 호기심을 만들어 주었다. "이리로 데려와라." 황태자의 명을 받은 두 명의 기사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팔을 잡아 황태자의 앞으로 끌고 왔다. 웅성웅성 "조용!!"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마을 사람들은 기사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서로를 바라보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고개를 들어라." 그녀의 앞으로 다가간 황태자가 다정히 말을 건냈지만, 숙여진 그녀의 얼굴은 들려지지가 않았다. 스르릉. "고개를 들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그녀가 황태자의 말을 무시하자, 그의 옆에 서있던 노기사가 검을 빼어들며 그녀의 목에 들이대었다. 노기사의 행동에 불쾌해진 황태자가 얼굴을 찡그려졌으나, 기사의 행동으로 인해 들려진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의 얼굴이 감탄으로 물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어서 검을 치워라!" 그녀의 미모에 놀란 황태자가 다급히 소리쳤으나, 노기사의 검은 이미 치워진 상태였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노기사 역시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에 칼을 거두어 버린 것이었다. * * * "그녀의 얼굴에 반해버린 황태자는 즉석에서 고백했데, 자신의 첩이 되어달라고." "그녀는 거부했고, 황태자는 분노했다?" 현민이 대답했고, 로벨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아. 여기서부터는 다른 이야기들과 마찬가지지." * * * "이런 미모를 가진 여자가 이런 곳에 있다니... 내 첩이 될 생각은 없느냐?" 그녀의 앞으로 다가간 황태자는 그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얘기했다. 하지만 그녀의 온몸을 훑고 있는 그의 눈은 뱀의 눈같이 징그럽고 불쾌했다. "저, 전하! 그, 그, 그 여인은 이미 결혼을 한 여인이옵니다!" "그녀는 저의 아내입니다!!" 황태자의 태도에 반응을 보인 것은 그의 앞에 있던 여인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던 그녀의 남편과 마을의 촌장님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기사들의 두려움 때문에,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하지는 못했으나 그 뜻을 전달하는데 크게 문제는 없었다. 정작 문제가 있는 것은 그들이 황태자에게 자신의 뜻을 말했다는 것이었다. "저들을 끌고 와라!!" 그들이 자신의 뜻에 반대하자 화가 난 황태자가 주변의 기사들에게 명령했고, 그들을 향해 달려간 기사들은 그들의 머리를 부여잡고 황태자의 앞으로 끌고 갔다. 스릉. "대답하라. 나의 첩이 되겠느냐?" 허리에서 검을 뽑아든 황태자는 남편의 목에 검을 갔다대며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남편의 눈을 마주하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짙은 절망감이 어려 있었고, 대답에 대한 고민도 담겨있었다. "나는 상관..." "전하, 그녀는 꿈의 여인입니다! 그녀를 건드리면 어떠한 일을 당할지 그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한줄기의 눈물을 흘린 남편이 자상한 얼굴로 아내를 바라보며 말을 꺼내고 있을 때, 그의 옆에 끌려온 마을의 촌장이 황태자를 향해서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 * * "꿈의 여인? 마녀가 아니라?" 분명히 마녀라 예상했던 여인이 다른 명칭으로 불려 지자 현민의 고개가 또다시 기울어졌다.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명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으니, 일반사람들에게는 '꿈의 여인'이라고 불렸었지. 문제는 그 황태자의 행동으로 인해 모든 '꿈의 여인'들이 '마녀'라 불리었다는 거야." * * * "호오? 꿈의 여인이라고?" 널리 퍼져있는 '꿈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들은 약간의 과장이 포함되어 있다지만 대부분이 사실이었기에, 그녀의 정체를 알았을 때 호기심보다는 경악과 공포의 질린 얼굴을 하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의 앞에 있는 황태자는 그녀를 향해 더욱 징그러운 눈빛만 보내고 있었다. "그대가 꿈의 여인이라니 정말로 좋군. 꿈의 여인은 죽기 직전까지 늙지를 않는다지?"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눈은 그녀의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답하라. 나의 첩이 되겠느냐?" "당신의 첩이 되느니, 여기 있는 모든 기사들을 죽여 버리겠어요." 흠칫! 처음으로 말하는 여인의 말에는 모든 것을 죽이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여인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황태자는 그녀의 기운에 놀라 뒷걸음질 쳤고,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네가 단 한명의 기사라도 죽인다면 너의 남편이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은가? 너는 수천의 기사들을 죽여야 하지만 나는 단 한명의 남자만 죽이면 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황태자가 욕심은 많을지 몰라도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상황과 그녀의 상황을 설명하며, 그녀가 자신에게 굴복하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신경쓰지마! 마을을... 마을에 사는 다른 이들을..." "닥쳐!" 퍽! "큭!" 여인의 남편을 둘러싸고 있던 기사 중의 하나가 남편의 머리를 검집으로 때렸고, 남편의 머리에서 피가 터지는 모습에 그녀의 분노어린 시선이 기사에게로 향했다. 흠칫! 그녀의 시선을 마주한 기사 역시 황태자와 마찬가지로 몸을 굳히며 뒤로 물러났다. 그들을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은 드래곤이 바라보는 것과 같은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또 한 번 남편을 건드린다면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전부 죽여 버릴테다." 살기어린 여인의 말에 긴장했을 거라 예상했던 황태자는 의외로 태연한 얼굴이었다. "죽여." "뭐?" 스윽! 남편의 목에 검을 대고 있던 기사가 황태자의 명에 따라 검을 움직였고, 남편의 목은 금방이라도 땅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었던 여인은 다급한 얼굴로 남편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전부였다. "안..." 퍽! "...돼..." 털썩! 그녀의 뒤에 서있던 기사가 그녀를 기절시켰고, 그녀는 남편의 마지막도 보지 못한 채 의식을 잃어버렸다. * * * "룬!!" "아? 왜?" 로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민은 린의 외침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로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민은 어느순간 그녀의 환상을 보기 시작했고, 그녀와 자신의 경계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몸에서 흘러나오던 엄청난 기운은 가라앉았지만, 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괜찮아? 이야기는 다음에 들을래?" 현민을 걱정한 린이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그녀의 옆에 있던 로벨이 그것을 제지했다. 지금 현민이 보이는 반응은 그녀가 생각했을 때, 매우 정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계속할게." * * * "으음..." 기절했던 그녀가 깨어난 곳은 그나마 커다랗던 촌장님의 집이었다. 최소한 촌장님의 집만은 커야한다고 우긴 마을 사람들이, 몇 달간 고생을 하며 함께 지었던 집이었다. "이제야 깨어났군." "당신!!" 철그렁! 기절에서 깨어난 여인은 저주스러운 황태자가 자신의 몸을 만지고 있자 그의 손길을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팔다리는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지를 않았고, 다급히 사용한 마법진마저 그려지지 않고 있었다. "크크큭. 그대가 차고 있는 팔찌와 발찌는 마나를 구속하는 것이라오. 제 아무리 꿈의 여인이라 할지라도 벗어날 수는 없지." 여인의 몸을 만지고 있는 황태자는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첫날밤을 묶어서 보낸다는 게 걸리지만, 우리를 축복하는 사람도 보고 있으니 이 정도에서 넘어가 주시겠소?" "아?!!" 황태자가 바라보는 벽을 향해 고개를 돌린 여인은 자신의 남편이 벽에 묶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편을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은 급히 만들어진 듯 벽과의 연결이 조잡해 보였으나, 일반인이 풀 수 있을 정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보! 여보!!" "오늘부터 당신은 나만 바라봐야 할 것이오. 그 선물로 당신의 '이전' 남편을 깨워주지." 여인의 곁에서 일어난 황태자는 남편이 걸려있는 벽으로 다가가, 약속대로 그녀의 남편을 깨워주었다. 황태자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린 남편은 여인이 침대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는 다급히 소리쳤다. "으읍!!" "지금부터 일어날 고귀한 행사에 소음이 끼어서는 안되지... 지금부터 이 몸이 그대의 아내를 정화하리라." 천천히 여인을 향해 걸어간 황태자는 묶여 있는 여인의 옷을 찢어버렸다. "안돼!" 철그렁! 철그렁! "으읍!!" 아름다운 그녀의 나신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자 여인과 여인의 남편이 몸을 뒤흔들며 황태자의 행동을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을 묶고 있는 쇠사슬은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들의 몸부림은 의미없는 행동이 되었다. "당신의 더러움을 내가 씻어주지." 마치 신이라도 된다는 듯한 그의 말에 여인의 눈에 절망감이 어렸다. "아아, 제발! 제발하지 말아주세요!!" 철그렁!! 황태자의 손이 온몸을 쓰다듬고 다니자 여인의 입에서 부탁하는 말이 나왔으나, 그의 손은 멈추려하지를 않았다. "으읍!! 으으읍!!!" 철그렁! 철컹! "아악! 싫어! 제발.... 제발 하지 말아줘요." * * * "그만!" 로벨의 이야기가 시작하자 또다시 환상에 빠져 든 현민은 내용이 점점 심해지자 스스로의 의지로 환상을 없애버렸다. "그 부분은 건너뛰어 줘." 로벨을 향해 부탁하는 현민의 음성은 환상 속에서 고함을 지른 여인처럼 쉬어 있었다. "알았어. 그녀는 황태자에게 겁탈 당했고, 그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어버렸어. 그녀가 다시 깨어난 것은 황태자와 만나고 3일이 지난 밤이었어." * * * "헉! 헉! 헉!" 황태자는 여인이 깨어있던지 기절해있던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그는 여인을 원할 때마다 그녀를 겁탈했고, 그녀의 정신을 무너트렸다. "으윽!" "하아! 하아! 깨어났느냐?"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찡그린 여인은 지금의 상황이 현실인지 의심이 갔다. 하지만 시선을 돌린 그녀의 눈에는 벽에 걸린 남편이 보이고 있었고, 자신의 몸 위에서는 제국의 황태자라는 사내가 더러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아아..."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는 슬픈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으나, 그녀의 남편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너의 이전 남편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의 남편이니 나에게 복종하라." "아, 아아..." 슬픔으로 가득찬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으나, 이미 말라버린 그녀의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었다. 두근! - 나랑 결혼해 주세요. 자신을 향해 꽃을 바치던 그의 손이 피에 젖어있었다. 아마, 쇠사슬을 벗어나려다가 다친 거겠지... 바보 같은 사람. 두근! - 당신과 결혼한 게 너무 좋아. 자신을 향해 사랑을 속삭이던 그의 입이 검붉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괴로움에 피를 토한 거겠지... 어리석은 사람. 두근! - 언제나 함께할게... 자신과 죽음을 함께 하리라 생각했던 그가 싸늘한 시체로 벽에 걸려있었다. 내가 느낄 아픔에... "아아아아악!!!" 남편을 바라보고 있던 여인은 말라버린 눈물을 대신하여 피를 흘리며 슬퍼했다. "저, 전하!!" 그녀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문 밖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순간의 즐거움을 방해받은 황태자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옷을 걸친 후,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하, 하늘이... 붉은색의 달이..." 잔뜩 놀란 기사는 황태자를 향해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으나, 그의 의지와 다르게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제대로된 문장을 만들지 못하였다. 쾅!! 황태자의 짜증이 한계에 다달할 무렵, 그들이 있던 장소에 어마어마한 소음이 울려퍼지면서 촌장의 집이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2층에 있던 황태자와 그를 호위하고 있던 다수의 기사들은 갑자기 없어지는 바닥에 놀랐으나, 날렵한 동작으로 땅에 내려섰다. "뭐, 뭐냐?! 마법사라도 나타난 것이냐?!!" "아, 아아..." 기사의 도움으로 바닥에 안전히 내려선 황태자는 갑자기 무너져버린 집을 보며 주위의 기사들을 다그쳤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은 그를 지나쳐 하늘로 향해 있었고, 황태자는 그제야 주위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달이..." "뭐?" 그제야 뒤를 돌아본 황태자는 하늘에 떠 있는 붉은색의 달을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상이변으로 불그스름한 달이 보일 때도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지금과 같이 금방이라도 피를 흘릴 듯한 붉은 달을 보는 것은 역사적으로 그들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다.... 죽여드릴게요." 흠칫!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침대에 묶여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과 발을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스윽... "모, 몸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린 여인이 바닥을 가리키자, 그녀의 시야가 미치는 부분까지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나며, 모든 존재들을 묶어버렸다. 현민이 쓰는 봉인 마법진과 비슷해보였지만 범위와 위력 면에서, 훨씬 강해보이는 마법진이었다. 크아아앙!!! 끼리리릭! 취익! 췩!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이 불안한 눈동자로 사방을 살피고 있을 때, 마을의 주변으로 근처의 모든 몬스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습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땅이 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몬스터 대군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장의 '달'의 카드는 열 마리의 몬스터를 다룰 수 있고," 쿠쿠쿠쿠쿵!! 땅을 울리는 진동이 점점 강해져 갔고, 몬스터들의 고함이 사방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두 장의 '달'의 카드는 마을 정도의 몬스터를 다룰 수 있고," 허공에서 내려온 여인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남편의 시체에 다가갔다. "세 장의 '달'의 카드는 왕국 정도의 몬스터를 다룰 수 있고," 스윽... 허공에 물을 모은 여인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남편의 피 묻은 얼굴을 씻겨 주었다. 조심스럽게 씻어주는 그녀의 손길은 잠에 빠진 남편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만 같았다. "네 장의 '달'의 카드는 제국 정도의 몬스터를 다룰 수 있답니다." 쪽. 남편의 귀에 조용히 속삭이는 여인은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을 털어놓는 것 같았다. "으아악!" "아악!" "살려줘! 싫어!!!" 여인이 남편과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들을 둘러쌌던 몬스터들이 가만히 서있는 기사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여인의 마법진으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은 몬스터들에게 아주 좋은 식사거리였고, 힘든 겨울철 먹이가 없었던 그들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다. "나를 사악하다고 하지 말아줘요.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할 거에요." 남편을 놓고 자리에서 잃어난 여인은 차가운 얼굴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제국의 모든 인.간.들을 죽일거에요." 황태자의 앞으로 다가간 여인은 몬스터들이 황태자를 먹지 못하도록 하였다. "당신은 나와 같이 가요." 여인의 신형이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녀의 곁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황태자가 따라 움직였다. 몬스터들이 덮친 마을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울려퍼졌고, 그곳은 살아있는 지옥으로 변해갔다. * * * "마을 사람들은 기사들이 이미 죽여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었지. 아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나봐. 가장 소중한 것을 영원히 잃어버렸으니깐." 환상속에 빠져있는 현민은 로벨의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 단지, 눈앞의 환상에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제국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2시간이야. 단 2시간만에 제국의 모든 인간들이 몬스터들의 뱃속으로 들어갔지." * * *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2시간동안 끌려 다닌 황태자는 더 이상 오만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생지옥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눈으로 확인한 그는 꿈의 여인을 건드린 자신을 저주하며, 그녀를 향해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크아악!!" "아악!" "꺄아악!!" 그들이 도착한 황궁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먹히고 난 후였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먹는 몬스터들을 보며 공포로 인해 죽어갔다. 털썩! 황태자가 바닥으로 내려선 곳은 그들의 가족이 모여있는 장소였다. 황제로 보이는 사람과 그의 부인으로 추측되는 사람이 다섯, 그리고 그들의 자식이라 생각되는 사람이 14명, 그리고 그들의 부인과 자식이라고 생각되는 사람까지 모두 합치니, 3대가 100명을 가뿐히 넘기고 있었다. "아, 아아..." 아름다운 나신의 여인이 그들을 향해 다가가자, 그녀를 바라본 남성들이 주위의 상황도 잊은 채 욕망이 가득한 얼굴을 하였다. 그들의 얼굴은 여인의 마음에 커다란 분노를 만들어 주었다. "후훗." 꿀꺽! 분노한 마음과 달리 그녀의 입에서는 옅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미소를 들은 황태자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바지까지 적셨으나, 다른 존재들은 그런 황태자를 무시했다. "내가 아름답나요?" 그녀가 입을 열자 주변을 시끄럽게 하던 비명소리가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마법진을 사용하여 주변의 소리를 차단해 버린 것이었다. 분노로 인해 한계를 뛰어넘은 그녀는 간단한 손짓만으로 복잡한 마법진을 그릴 수 있었다. "너, 너무나 아름답소." 말을 하고 있는 그들은 흔들리는 여인의 몸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여인들은 자신들의 남편과 아버지도 말리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스윽... "먹어라." 여인이 손을 들어올리자 그들이 있는 자리로 여러개의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여인의 한마디에 모두의 몸이 그들의 의지를 벗어나 버렸다. 까득! "꺄아아아!!!" 으직! "아아악!!" 멋대로 움직이는 그들의 몸은 부모가 자식을 먹고, 자식이 부모를 먹으며, 끔찍한 상황을 만들었다. 한입한입 깨물으며 서로를 먹고 있는 그들은 처참한 비명을 지르면서도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끼이이익... 탁!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온 여인은 피곤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 시간전만해도 멋졌으리라 예상되는 황궁의 내부는 사방이 피로 물들어 흉측한 모습이 되었고, 이전까지 움직였을 것이라 예상되는 사람들은 해골만 남은 채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네가 한 짓이더냐?!!" 후우웅!! 갑자기 나타난 여섯 명의 존재들은 여인을 향해 살기어린 눈을 했다. 다양한 종족을 하고 있는 그들은 평범한 존재는 내뿜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드래곤 로드와 각 속성의 대표분들이시군요." 한번에 그들을 알아맞힌 여인은 힘겹게 미소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찌 그리 당당한가!!" "네가 죽인 생명이 몇 인 줄은 아느냐?!" 각 속성의 대표들은 여인을 향해 분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처음에 사라지는 몇몇 생명들을 보며 단순히 인간사이의 살인이나 전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단 2시간만에 대륙의 1/3에 해당하는 인구가 사라져 버리니 그들로서도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그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여인의 행동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려서일수도 있었다. "말해보게, 그들이 벌을 받을 만한 죄를 지었는가?" 로드가 뿜어내는 기운은 다른 드래곤들이 뿜어내는 기운을 합한 것보다 더욱 위력적이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주변은 이미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상태였고, 여인은 허공에 신형을 유지한 채로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로드시여. 그들이 저를 만들었으니, 그들의 죄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답니다."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여인은 무언가 사정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중간계의 균형을 담당해야 하는 드래곤들에게 여인의 행동은 사정이 있어도 용서가 안 되는 행동이었다. * * * "드래곤을 만난 그녀는 드래곤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 길고 길었던 로벨의 이야기가 끝을 맺었고, 현실처럼 느껴지던 환상도 끝나버렸다. "...그녀는 죽은거야." "뭐?" 목이 잔뜩 쉰 현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살아갈 의지가 없어서 드래곤들을 이용해 자살한거야." 현민의 말을 들은 두 마녀(린, 로벨)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는 드래곤과 여인이 만나 죽는 부분까지였기에 현민이 본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제길! 옛날이야긴데... 환상인데... 졸라게 슬프잖아..." 그녀들에게서 등을 돌린 현민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 일이 있은 후, 꿈의 여인들은 마녀(魔女)라고 불리게 되고, 모든 종족들로부터 배척받게 되었지." 로벨은 현민의 눈물에 신경쓰지 않고 마지막 말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현민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로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할 일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서장이었을 뿐,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이야기였다. 오랜만에 공지인것 같네요... 글을 올리지 못한것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요즘 일이 많고 이번달 말까지 계획이 잡혀져 있기 때문에 약간의시간도 낼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모든 일이 끝나는 12월달에 많은 양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약간만 기다려 주세요... _(__)_ 일주일동안 작업했는데 이정도 분량밖에 나오지 않았네요 ㅜㅜ 이정도라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 "내가 할 일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서장이었을 뿐,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렇게 긴장하지마. 어려운 부탁은 아니니깐. 우훗." 움찔! 어렵지 않다는 로벨의 말이 있었지만 그녀의 말끝에 붙어있는 작은 웃음소리는 현민의 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그녀를 지켜줘, 루나." "뭐?" 로벨의 부탁을 들은 현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 누구보다 확실한 죽음을 갖았고, 그 누구보다도 처참히 죽었던 그녀가,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강이자 최악이었던 마녀, '파괴 속에 웃음 짓는 달의 마녀 아세인'을..." "그녀는 죽었어. 설마 죽은 자를 지켜달라는 거야?" "알아, 그녀는 죽었지." 현민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로벨도 그녀의 죽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그녀의 죽음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소멸한 것은 아니야. 아무리 죄가 크더라도 소멸까지 할 정도는 아니니깐." "..." 로벨의 설명을 듣고 있던 현민은 그녀가 하는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낼 수 있는 답은 하나밖에 존재하지가 않았다. "설마... 환생했다고 말하는 거야?" 끄덕 로벨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지자, 뜻하지 않은 로벨의 반응에 현민의 고개가 좌로 기울어 졌다. "싸울아비"의 시스템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민은, 유저도 아니고 NPC에게서 처음으로 환생에 대한 말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너희들도 완벽한 죽음을 얻은 다음에는 환생을 하잖아?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는 상당히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이고 너희는 바로 된다는 점이겠지." 현민의 고개가 기울어진 상태로 멈춰져 있었지만, 로벨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 태어날 그녀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얻을 거야. 하지만 그녀가 겪을 정신적인 고통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지."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현민의 질문에 한숨을 내쉰 로벨은 의심스러워하는 현민을 위해, 자신이 알 수 있었던 이유를 가르쳐 주었다. "너는 마녀가 나오는 이야기도 안보니?" 그녀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너무나 투명해 보이는 하나의 수정 구슬이었다. 일체의 굴절도 없이 반대편이 보이는 그것은, 너무나 맑아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다. 현민은 그것을 보고서야 로벨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을 이해했다. 마녀의 수정 구슬은 집시들의 타로카드만큼 신비롭고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알겠지?" "확률은?" "100%" 현민의 물음에 대답하는 로벨의 음성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마녀의 점이라는 것은 타로카드같이 언제나 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 정확도와 분명한 내용은 타로카드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녀는 어디 있어?"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남쪽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 로벨의 이야기를 들은 현민의 표정은 절망적으로 바뀌었다. 이 넓은 대륙에서 남쪽에 있다는 힌트가 첫 번째 이유였고, 그가 자리 잡고 있는 마녀의 마을이 대륙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할 거야. 지금 대륙은 전쟁, 홍수, 가뭄 등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그녀가 불행해지는 것은 순식간일 수도 있어." "하아... 힌트는 남쪽에 있다는 것 하나뿐이야?" "응." 현민을 향해 대답하는 로벨의 얼굴은 너무나 태평스러웠다. 그녀가 내다본 미래를 현민에게 말해줄 수는 없지만, 그 미래를 생각해본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이 너무나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이리 와보렴." 눈을 내리감은 현민이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은은한 미소를 지은 로벨이 그를 가까이 불렀다. 스윽... 자신의 앞에 현민을 앉힌 로벨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부드럽게 얘기했다. "미래를 예상하고 움직이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마음에 따라 움직여 보렴. 너와 그녀의 인연은 필연이니,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거란다." "너무 어려운 것 같아." "그래?" 현민의 대답을 들은 로벨과 린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한순간 현민이 투정부리는 아이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정말 힘들 것 같으면 전쟁, 가뭄, 홍수를 없애면 되잖아? 다른 존재들은 몰라도 우리 마녀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니깐 말야." 저주, 마법, 약물제조가 특기인 마녀들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개인으로 도시를 전멸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녀들의 정점에 있는 것이 현민이었으니, 린의 말대로 전쟁, 가뭄, 홍수를 없애는 것이 사람 하나 찾는 것보다 쉬운 것일 수도 있었다. "하아..." "내 충고를 기억하고 찾아다닌다면, 네가 싫어도 만날 수 있을거야." 현민을 일으켜 세운 로벨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의 뒤를 따라 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나야지만 너의 진정한 힘을 찾을 수 있을거야." "응?" "너의 외모, 너의 머리카락... 주체하지 못하는 너의 힘으로 인해 변한 것이니, 그녀를 만나 너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수고~." 말을 마친 로벨과 린은 방을 나가버렸고, 방안에는 현민만 멀뚱히 남아버렸다. "...아세인." 조용한 방안에 홀로 남은 현민은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비록 환상속에서 만난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녀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현민은 그녀의 불행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았다. "가까운 곳부터...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꾸욱! 주먹을 불끈 쥔 현민은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서 차근차근 생각해 보았다. 처음으로 얻은 퀘스트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오빠야~." "오라버니." "오빠." "...빠" - 룬. 현민이 일의 순서를 계산하며 앞으로의 예정을 정하고 있을 때, 밖에서 놀고 있던 정령들과 하피가 창문으로 들어와 현민의 품에 안겨들었다. 얼마나 심각하게 놀았는지, 그녀들은 정령인 주제에 온몸이 흙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그 흙들은 현민의 몸에 그대로 묻어났다. "하아, 너희들만 있으면 심각한 일이 없을 것 같아..." "헤헤, 오빠가 칭찬했다." "그건 칭찬이 아니에요." "쿡쿡쿡." "흐윽..." 현민의 고민은 정령들을 보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그에게 있어서 심각한 일은 눈앞에 있는 정령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여행하기 전에 일단 좀 씻자." "으윽!" 현민의 씻자는 말에 담비의 인상이 굳어졌으나, 잽싸게 움직인 현민의 오른손이 담비의 허리를 낚아챘다. 담비의 표정으로 볼 때, 도망칠 것이 100%였기 때문이었다. 바둥바둥! "우앙~ 싫어!" "아아, 오라버니와의 목욕..." "쿡쿡." "..." "그럼, 잘 다녀와." "응." 몇 시간의 노력 끝에 담비를 씻기는 것에 성공한 현민은, 드디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여행할 것이지만, 그가 준비할 것이라고는 만들어 놓은 아이템들과 그동안 분석했던 마법들의 수식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 룬 일찍 와야 해. "응." 현민을 마주한 하피는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때문에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현민을 바라보고 있는 하피는 마녀의 마을 주변의 모든 하피를 대표하는 보스급의 몬스터였기 때문에, 현민을 따라 머나먼 여행을 할 수는 없었다. 스윽... 장비창에서 마녀의 빗자루를 꺼낸 현민은 부드러운 동작으로 허공에 몸을 띄었다. "다녀올게." 현민의 주위로 네 명의 정령이 모여들었고, 현민은 자신을 배웅하는 마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후,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현민이 찾고자 하는 아세인이 어디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남쪽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 이제 루나도 갔으니, 우리도 이동해볼까?" "네." 남쪽을 향해 루나가 사라지자마자, 모든 마녀들이 자신들의 짐을 가지고 마을의 중앙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녀들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손으로는 여러 손을 당할 수가 없었기에 그녀들도 한곳으로 뭉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과연 루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기대되지 않아?" 허공을 향해 혼잣말을 내뱉은 로벨의 모습이 그 누구보다 마녀다워 보인 것은 착각이었을까? "오빠, 우리 어디가?" 마녀의 빗자루 위에서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던 현민은 옆에서 들려오는 묘의 질문에 풀고 있던 문제를 덮으며 시선을 마주했다. "글쎄... 어디로 가고 싶어?" "음... 꼬마정령들 만나러 가자." "꼬마정령?" 묘의 대답을 들은 현민은 묘가 말하는 꼬마정령이 누구인지 쉽사리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만나보았던 몇몇 존재들 중에서 꼬마정령과 함께하는 존재들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보다 커졌다고 반항하는 꼬마정령들을 말하는 거예요, 오라버니." "아아, 수진하고 현진이 정령들?"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현민은 윈디아의 도움을 받고서야, 묘가 말하는 정령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초반에는 현민의 정령들과 같이 작고 귀여웠던 꼬마정령들이었지만, 이번에 만났을 때는 자신과 비슷하게 성장하였기에 '꼬마정령'이란 말을 들었을 때, 쉽사리 생각하지를 못한 것이었다. "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은 왜?" "오랜만이잖아." "저번에 묘랑 윈디아랑 염화가 엄~~청 놀림 당했엉." "응?" 억지로 웃음지은 묘가 현민을 향해 입을 열고 있을 때, 그의 등 뒤에 자리 잡고 있던 담비가 환한 얼굴로 현민에게 자랑했다. 담비의 말을 들은 꼬마정령들의 인상이 심하게 구겨지며 담비를 노려보았으나, 담비는 그들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은 채 현민을 향해 당당히 말을 이었다. "묘한테는 땅꼬마라고 했고, 염화한테는 소심하다고 했고, 윈디아한테는 음, 절벼... 읍?!" 순식간에 자리를 바꾸어 담비의 입을 막아버린 윈디아는 현민에게 등을 보이며 담비의 눈을 노려보았다. "호, 호호. 담비야, 맞고 싶니?" 도리도리... 너무나 살벌한 윈디아의 눈빛은 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던 담비를 움찔하게 만들 정도였다. "호호호,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라버니." "그러니깐 한번만 만나보면 안돼? 저번에 인사도 안하고 그냥 왔잖아." 끄덕끄덕... 도대체 어떠한 말을 들은 것인지, 평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던 염화마저 현민을 향해 간절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쿡!" 스윽... 꼬마정령들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은 현민은 날아가고 있던 마녀의 빗자루를 멈춰 세운 후,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염화를 품안에 안았다. "우리 염화는 소심한 게 아니라 말이 없는 것뿐이고, 묘와 윈디아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런 것뿐이야." 스윽. 쪽. 염화를 안고 있던 현민은 한손으로 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윈디아를 가까이 불러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현민의 단순한 행동으로 인해, 상승 중이던 꼬마정령들의 분노게이지가 행복게이지로 급격히 바뀌었고, 찡그려졌던 얼굴들이 저녁노을처럼 붉게 물들었다.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윈디아랑~ 오빠랑~ 뽀뽀했데요~, 뽀뽀했데요~." 현민의 등을 차지하고 있던 담비가 윈디아를 보며 놀려댔으나, 담비의 노래를 듣고 있는 윈디아는 그것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부우우... 훌쩍!" 두 볼을 붉게 물들인 윈디아가 예상했던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잔뜩 실망한 담비가 코를 훌쩍이며 현민의 등에 얼굴을 비볐다. "나중에 또 놀리면 오빠한테 말해, 오빠가 정령화해서 혼내줄게." "응!" "네." 끄덕... 그들의 얼굴은 처음과 같이 즐겁게 바뀌었고, 현민은 다시금 빗자루를 움직였다. 네 명의 꼬마정령들이 현민의 주위에서 재잘재잘 거렸고, 그들의 중심에 앉아 있는 현민은 잠깐 멈추었던 풀이를 다시 시작했다. 쫑긋! 우우우웅... 움찔! 현민과 정령들이 남쪽을 향하여 한참을 날아가고 있을 때 윈다아의 귀가 쫑긋거렸고, 그들이 타고 있던 마녀의 빗자루가 묘한 진동을 내며 울음을 터트렸다. "뭐지?" 마녀의 빗자루와 정령들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낀 현민이 잠시 문제푸는 것을 멈추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하늘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현민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응?" 현민이 이상함을 찾지 못하자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윈디아가 손을 들어 올리며 왼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현민의 육안으로는 그쪽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없었고, 현민은 빗자루의 방향을 바꾸어 윈디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저건... 연기?" 한참을 날아와 현민이 볼 수 있었던 것은 검게 피어오르는 커다란 연기였다. 윈디아가 가리키고 있던 장소에서는 까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거리가 너무 멀다보니 현민의 육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설마..." 검게 피어오르는 연기에 불안함을 느낀 현민은 자신의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점까지 속도를 높였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쾅! "으아악!!" "아악!" 콰직! 쿠르르릉...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목책은 산산히 부서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마을을 지키던 경비병들도 상당수가 바닥에 누워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몇 가구되지 않았던 마을은 곳곳이 불에 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고, 조그마한 가게들은 유저들의 약탈로 엉망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어이! 찾았어?" 스악! "크억!"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현민은, 한명의 유저가 NPC를 죽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젠장! 이 마을에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러게 이런 초보마을 말고 도시 쪽으로 가자니깐!" 멍한 상태의 현민이 죽어가는 NPC를 바라보고 있을 때, 유저의 물음에 두 명의 인물이 대답을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한명의 유저는 어쌔신으로 예상되는 남성유저였고, 다른 하나는 채찍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한 무기를 사용하는 여성유저였다. "루루! 북쪽의 마을로 가면 마녀를 만날 수 있다면서!" "제 점괘는 100% 맞는다구요!"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주변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중학생 정도의 여자아이였다. 한손에 두꺼운 카드뭉치를 들고 있는 그녀는 로벨이 이야기 했던 집시로 보였다. "아, 제길! 길원들 불러 모아봐! 혹시라도 남아있는 NPC가 있을 수 있으니깐 전부 뒤져보자고." "예." "응." "알았어." 잠시 모였던 세 명의 유저들이 각자 왔던 곳으로 돌아갔고, 혼자 남은 그는 주변의 바위를 의자 삼아 자리에 앉았다. "아, 젠장! 도대체 몇 번째야? 빌어먹을 마녀새끼가 졸라게 안 나오네. 후~." 움찔! 허공에 뜬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현민은 그가 하는 말에 몸을 움찔거렸다. 그들이 모든 NPC들을 죽여 가며 찾고 있는 것이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윽... 탁! 스스로의 행동에 결정을 내린 현민은 마녀의 가면을 착용한 후, 가벼운 동작으로 땅에 내려섰다. 팟! 현민이 땅에 내려섬과 동시에, 바위에 앉아 있던 유저가 자신의 무기를 빠르게 잡아챘다. 그의 검은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의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는 무기의 크기에 맞지 않는 빠른 속도로 그것을 휘둘러 현민의 목을 위협했다. "나이스!" 몇 개의 마을을 전멸시키며 마녀를 찾아다녔던 그는 드디어 퀘스트를 완료한다는 기쁨에 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 온 것은 지옥보다 괴로운 고통의 시작이었다. "윈디아." "네, 오라버니." 팡! 콰콰콰쾅!! "쿨럭!" 현민의 부름에 그의 앞으로 이동한 윈디아는, 현민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던 유저의 복부에 공기를 폭발시켰다. 가까운 거리에서 엄청난 폭발을 당한 그자는 여러 개의 벽을 부수며 상당한 거리를 날아갔으나, 어느 정도의 레벨은 되는지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다. 스윽... "신나게 놀아볼까?" 그의 상태를 확인한 현민은 윈디아를 바라보며 가면을 벗어버렸다. "오라버니와 함께라면..." 스윽... 현민의 앞으로 다가온 윈디아는 양손을 뻗어 현민의 두 볼을 감싸며 그와의 시선을 맞추었다. 현민은 윈디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지었고, 윈디아는 그런 현민에게 다가가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쪽. "...언제든지." 후웅! 현민을 향해 가까이 다가간 윈디아가 현민의 입술에 귀엽게 입을 맞추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하여 바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작게 시작되었던 바람은 순식간에 거대해졌고,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버릴 정도의 강렬한 토네이도가 되었다. "호오?" "우와~." "..." 현민과 윈디아의 정령화를 처음으로 바라본 나머지 정령들은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는데, 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담비는 감탄을, 염화는 인상을 찡그렸다. "호호호." 팡! 콰콰콰콰쾅!!!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고 있던 토네이도가 갑작스런 팽창을 보이며 터져버리자, 그것에 말려들어 돌고 있던 갖가지 물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모든 것을 부셔버렸다. 엄청난 속도의 바람을 따라 움직이고 있던 물건들이었기에, 작은 조각하나도 충분한 살상력을 지니고 있었다. 휘이잉... 주변을 휘돌던 바람이 잠잠해지자, 윈디아와 정령화한 현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은색으로 반짝이던 그의 머리카락은 정령화한 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검은색이었던 현민의 두 눈동자는 청색으로 변해 있었다. 살짝 내리감은 그의 두 눈에는 묘한 색기가 어려 있었고, 분홍빛으로 빛나는 그의 입술에는 현민 특유의 장난기어린 미소가 담겨 있었다. "우와! 멋지당~ 훌쩍." 스윽. 윈디아와 정령화를 한 현민은 염화 때와는 다르게 반(半)나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작은 회오리바람이 그의 몸을 가려주고 있기는 하였으나, 보일 듯 말듯 하는 그의 모습이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해요." 양손으로 가슴을 가린 그(현민&윈디아)는 황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염화와는 다른 이 느낌은 왠지... 너무 기분좋아. 우훗~." "오홋?!" "헤에?" "우윽!" 묘하게 색기 어린 그에게서는 현민의 모습보다 윈디아의 모습이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어때요, 오라버니? 제 몸 괜찮죠?" "대장!!" "도대체 뭐야?!" 현민과 합쳐진 윈디아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있을 때, 마을 여기저기를 휘졌고 다니던 유저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현민과 윈디아를 둘러싼 그들은 팔다리가 꺾이고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머리가 사라져 버린 그들의 길마(길드마스터)의 처참한 상태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윈디아와의 대화는 나중에 하고, 당신들 먼저 상대해 드릴게요." "모두 조심해! 방금 전의 토네이도를 저년이 한 것 같아!" "제길! 저 미친년이 한 짓인가?" "아, 젠장! 이놈의 게임에 정상적인 건 없어?!" 주변의 유저들을 보며 살짝 미소 지은 그는 양손에 작은 바람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유저들이 현민의 행동에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바람을 다루는 직업은 그들로서도 처음 듣는 것이었고, 눈앞의 존재는 상상할 수 없는 파괴력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신나게 놀아 봐요, 쿠쿠쿡." 휘이잉!! 자신을 감사고 있는 유저들을 살핀 현민은 자신의 손에 있는 두 개의 바람을 정면이 있던 두 명의 유저에게 날려 보냈다. "뭐?" "뭐야?" 현민의 손에서 날아간 바람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두 유저에게 다가갔고, 이내 작은 토네이도로 변해 그들을 감싸버렸다. 유저를 감싼 토네이도는 이전의 것처럼 거대하지는 않았으나, 그 파괴력만은 이전의 것과 비교될 만 했다. "으아악!" "크억!" 콰가가각! "우욱!" 토네이도에 둘러싸인 두 명의 유저는 바람의 칼날을 피하지도 못한 채,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갔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바람의 칼날은 두 명의 유저를 난도질 했고, 그들을 감싼 바람이 사라졌을 때,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사람이라고 짐작되는 고기 덩어리들 뿐이었다. "으음... 약간 잔인한데요?" 스스로가 한 일에 대해 잔인하다고 말하는 현민이었으나, 그의 얼굴과 몸짓은 곤란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죽음이었을 뿐, 과정과 모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압!!" 스윽! 삭! 한명의 유저를 시작으로 하여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유저들이 현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먼저 다가온 한명의 검사가 현민의 몸을 가로질렀고, 그의 뒤편에서 나온 은신계열들이 현민의 목을 베어나갔다. 하지만 그 모든 공격들은 현민의 몸을 통과해 버렸고, 현민의 입가에 생겨났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설마, 고스트 계열인가?" "그런 건 진작 좀 말하라고! 화염!" "섀도우!" 현민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를 못하는 그들은 현민에게 타격이 먹히지 않자, 방법을 바꾸어 현민을 공격해 나가기 시작했다. 검사나 타격계열들은 자신의 무기에 검기나 마나를 씌어 현민을 공격했고, 법사계열들은 물리적인 공격보다 원소적인 공격으로 현민을 압박했다. 거의 100여명에 달하는 길드원이 현민 하나만을 노리고 있었으나, 그들의 사이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현민은 조금의 타격도 받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윈디아와의 정령화도 날개가 생길까요? 저번에 보니깐 예쁘던데..." 이리저리 움직이며 유저들의 공격을 피해 나가던 현민은, 순간 움직임을 멈추며 자신의 앞에 있는 유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글쎄..." 현민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무투가는 그의 모습에 넋이 나가버려, 현민이 적이란 것도 잊어버린 듯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물론, 그의 시선이 현민의 가슴과 허리 아래쪽으로 향해 있는 것은 당연한말이었다. "한번 해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꿀꺽!" 순식간에 자리를 이동한 현민은 반대편 끝 쪽에 있는 유저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허공에 몸을 띄운 채로 그의 목을 껴안은 현민은, 그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귓가에 속삭였고, 현민에게 당하고(?)있는 유저의 얼굴은 한겨울의 고구마 같이 검붉게 타올랐다. "뭐하는 거야?! 저리 비켜!!" 촤아악! "크억!" 현민의 태도에 화가 난 것인지 한명의 유저가 현민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으나, 그녀의 채찍이 도착하기도 전에 현민의 신형은 그녀의 등 뒤로 이동해 있는 상태였고, 그녀의 채찍은 애꿎은 유저를 강타했다. "흐응~. 짓궂기는... 질투는 건강에 나빠요, 후우~." 그녀의 뒤로 이동한 현민은 그녀의 어깨에 살짝 팔을 걸치고, 귓가에 속삭이며 바람을 불어넣었다. "흐아앙~." 털썩! "어라?" 현민의 행동에 얼굴이 빨개진 그녀는 다리에 힘이 빠진 듯 맥없이 주저앉았고, 현민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함이 떠올랐다. 설마하니 귀에 바람을 넣어서 주저앉을 것이라고는 그도 윈디아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쿡! 귀여운 분이네요. 이참에 먹어버릴까요?" 스윽... 주저앉은 여성 유저의 턱을 치켜 올린 현민은 자신의 입술을 적시며 매혹적으로 말했고, 주변의 몇몇 남성들이 금단의 사랑(?)에 침을 삼켰다. 팡! "너무 재촉하지 마세요. 이 중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답니다." 현민이 붉어진 얼굴의 여성 유저를 마주하고 있을 때, 그의 등 뒤로 한명의 검사가 칼을 휘둘러 왔다. 하지만 그의 칼날은 현민이 만든 작은 토네이도에 막혀 허공으로 튕겨나 버렸고,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훑어봤다. "궁금하지 않아요? '나'란 존재가 어떠한 모습을 갖을지 말이에요." 휘이잉!! 매혹적인 미소를 흘리던 현민은 염화와 날개를 만들 듯이 힘을 집중 시켰고, 정령화한 그의 몸 주위로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를 중심으로 모여든 바람은 주변의 접근을 방해하였고, 많은 먼지를 만들어 그의 모습을 가려버렸다. "이 모습... 괜찮아요?" 잠시 후, 먼지가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현민은 이전의 모습과 약간 달라져 있었다. 매끈했던 그의 다리는 작은 토네이도로 변해 휘몰아치고 있었고, 길게 휘날리던 머리카락도 소라껍질처럼 돌돌 말려 올라가 있었다. 가슴부분에서 돌고 있는 소용돌이는 별반 차이가 없었으나, 그의 양쪽 손목에 두 개의 소용돌이가 새롭게 생겨나 있었다. "그럼 이제... 열심히 도망가 보세요. 쿠쿡." 스윽... 현민이 두 팔을 활짝 펼치자, 그의 주변으로 바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작은 회오리바람으로 시작된 바람의 움직임은 이내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바람으로 변해갔고, 자연의 엄청난 모습을 눈앞에서 겪게 된 유저들은 서둘러 도망가려 했으나, 현민의 토네이도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크아악!!" "으악!" "꺄아악!!" 현민의 주변을 돌고 있는 네 개의 토네이도는 현민의 의지에 따라 마을 주변의 모든 유저들을 빨아들였다. 현민의 토네이도에 빨려 들어간 유저들은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이나, 그들과 같이 빨려 들어온 각가지의 물건들에 의해 처참히 죽어갔다. 그 어떠한 방어구나 기술들도 현민의 공격을 막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사, 사기야... 이건 말도 안돼..." "응?" 자신의 힘에 만족하여 폐허가 되어가는 마을을 바라보던 현민은 옆에서 들려오는 조그만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현민이 바라보는 곳에서는 다른 이유로 힘이 빠진 여성유저가 네 개의 토네이도를 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걸 잡으려 했다고? 제길!" 팟! 촤아악! 현민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토네이도 사이의 틈으로 몸을 날렸다. 현민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토네이도에 틈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그녀는 그것도 알지 못한 채 열심히 달려나갔다. "흐응~, 술래잡기인가요? 열심히 도망가셔야 될 거에요. 지금까지 잡지 못한 존재는 담비밖에 없으니까요." 현민의 신형이 허공에 흩어지며 사라져 버렸고, 그곳에는 수십명의 유저를 집어삼킨 토네이도들만 남아있었다. "하아, 하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사용하여 도망가던 여성유저는 마을을 벗어나 숲에 들어오고 나서야 숨을 몰아쉬었다. 사방이 트이지 않은 숲에서 현민이 발견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아... 도대체 정체가 뭐야?! npc인지 유저인지도 모르겠고..." "일단은 바람의 정령이라고 할까요?" "히익!!" ----------------------- 이름 : 룬. Lv : 445 직업 : 바람의 정령. 정령력(精靈力) : 259436 ----------------------- 나무에 기대어 사방을 경계하고 있던 그녀는 나무를 통과해 모습을 드러내는 현민을 보며 경악을 했다. "미안해요." "응?" 깜짝 놀라 무기를 잡아가던 그녀는 갑작스런 현민의 사과에 복잡한 얼굴을 하였다. 모든 게 끝난 것 같기도 했고, 갑작스런 그의 사과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만 놀아야 될 것 같아요. 안녕히..." 허공을 향해 손을 뻗은 현민은 한줄기의 바람을 쥐어 '잡았고',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그것을 흔들었다. 스악! "컥! 이, 이런 개...썅." 털썩! 데구르르...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현민의 공격이었기에 그녀는 피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역시... 약간 사기인가요?" 물론, 이정도의 능력을 보이기까지 많은 양의 정령력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그 이상의 정령력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잠시 자신의 모습을 둘러본 현민은 원래의 장소를 떠올렸고, 그의 몸은 순식간에 그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콰콰콰콰콱! 현민이 돌아온 장소에서는 아직도 네 개의 토네이도가 주변의 모든 것을 청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손을 들어 올린 현민은 파리를 내쫒듯 손을 휘둘렀고, 주변을 돌고 있던 네 개의 토네이도는 현민의 손길에 허무할 정도로 쉽게 사라져 버렸다. 툭! 투투툭! 투투투투툭... 모든 것을 빨아올리던 토네이도가 사라져 버리자, 바람에 솟아올랐던 물건들이 하나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사람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떨어지기는 했으나, 그들의 모습은 절대로 살아있을 수 없는 상태였다. "후우..." [정령화 상태가 풀립니다.] [레벨이 10 감소합니다.] "...이상해." "오라버니..." "어째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에 아무렇지가 않을까?" 윈디아와의 정령화가 풀린 현민은 처참해진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상해." "오라버니..." "어째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에 아무렇지가 않을까?" 현민의 말을 듣고 있는 정령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현민의 정령들이 성숙하다 할지라도 그들의 정신은 아직 어린아이의 수준이었고, 현민의 고민을 이해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신수준이 높다고 하더라도 현민의 생각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죽음이 싫은 거라면... 내가 해결해 줄게." 현민의 우울한 얼굴을 보기 싫었던 묘가 현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금의 능력으로는 부족하지만, 현민과 정령화를 한다면 그가 바라고 있는 것을 이뤄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윽 부드럽게 미소 지은 현민은 자세를 낮추어 묘와 시선을 마주했다. "괜찮아." 스윽스윽... 묘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은 현민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평소와 같으면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현민의 손에 달라붙었을 묘였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현민의 손길을 피하며 자신의 손을 현민에게 내밀었다. "나... 오빠가 슬픈거 싫어. 흑!" 한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어깨를 들썽거리고 있는 묘는 현민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기를 끝까지 기다렸다. 처음으로 보는 묘의 눈물에 마음이 흔들린 현민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씨익... "걸렸당, 훌쩍!" "하아, 우리 오라버니는 눈물에 약하다니깐." "흐윽, 이번에는 묘랑..." 현민과 손을 맞잡은 묘는 눈물을 닦으며 승리의 미소를 지어보였고, 멀리서 그것을 바라보던 꼬마정령들은 묘에게 속아 넘어간 현민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찰랑! 현민이 묘와 손을 맞잡자, 그의 손이 물방울로 변하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물방울로 변한 현민의 몸은 새롭게 뭉치며 형태를 만들어갔다. 찰랑~. 다리까지 길게 늘어지던 현민의 머리카락은 등에 오는 정도로 짧아졌고, 은색이 아닌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의 귀는 사람의 귀가 아니라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변해 있었고, 전체적인 얼굴의 형태는 묘의 성장형으로 생각되는 모습이었다. 커다란 눈동자와 작고 귀여운 그의 입술은 약간 어려보이는 묘의 이미지와 꼭 닮아 있었다. "헤헤." 스윽. 스윽... 현민과 정령화를 마친 묘는 이전과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 듯한 미소를 흘렸다. 목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슴선 아래까지 내려오는 검은색의 민소매형 상의와 반바지 형태의 검은색 타이즈를 입고 있는 그는 금방이라도 바다에 들어갈 듯한 다이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몸매(?)를 살피는 데 커다란 불편함은 없었다. "푸히히히!" "킥! 담비야, 웃으면 안돼요, 쿡쿡!" "흐흑, 피식. 흐흐흑, 풋." "응?" 현민과 정령화한 묘가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만족한 미소를 만들고 있을 때, 그의 귓가로 정령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담비는 묘가 보던 말던 크게 웃음을 터트렸고, 어느정도 눈치가 있는 윈디아와 염화는 조용히 입을 가리고 웃었다. 특히 염화는 묘와 현민의 정령화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고 있을 정도였다. "왜 웃는 건데?" 볼을 잔뜩 부풀린 묘가 화를 내자, 그나마 상태가 좋은 윈디아가 그 원인을 말해 주었다. "풋, 그게 다 큰 거니?" "우윽!!!" 윈디아의 말을 듣고서야 그는 왜 정령들이 웃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적당히 솟아오른 가슴과 매끈한 몸매만 보다보니 가장 중요한 자신의 키에 대해서 깜빡한 것이었다. "뭐, 괜찮아. 지금의 이 모습은 너희들과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깐. 흥!" 잔득 불어 있던 묘의 볼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빨갛게 변했던 그의 얼굴도 평상시대로 돌아왔다. 키가 약간, 아주 약.간. 작은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만이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에서 윈디아처럼 멀.대.같이 커다란 것은 흉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비켜 있으렴. 잘못하면 휘말릴 것 같아." 정령들에게서 등을 돌린 현민은 양손을 가슴 쪽으로 모은 후, 두 눈을 내리감았다. "루아 데 이카르. 샤르 가 하데 비아른..." 찰랑. 스스스슥... 현민과 정령화 한 묘가 마법 비슷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그의 주변으로 물방울들이 생겨나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현민의 머리카락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카르가 레 호아 이루샤." 소용돌이치는 주변의 물들과 함께 현민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그의 모습이 다시한번 변하기 시작했다. 현민의 두 발이 하나로 합쳐지며 지느러미와 비늘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가 입고 있던 상의가 비키니처럼 변하며 어깨와 목의 사이에 아가미가 생겨났다. 첨벙! 모든 변화가 끝난 현민은 동화 속에 등장하는 인어공주 같았다. 현민이 완벽한 변신을 마쳤을 때 그의 주변은 어마어마한 양의 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는 기쁜 듯한 얼굴로 물속에 몸을 던졌다. "모두 비켜~!" 촤아악! 촤아아악! 물속에 들어간 현민이 양 손을 넓게 펼치자, 그의 주변만을 감싸고 있던 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폐허로 변해버린 마을의 모든 곳을 물로 채워버렸다. "우푸!" "후후훗." "꼬르르륵..." 갑작스런 일에 피하지 못했던 담비와 염화는 사방을 채우는 물을 들이마시며 괴로워했고, 남들보다 빠르게 바람을 모은 윈디아만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깊디깊은 잠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들이여, 어둠속의 환상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들이여. 그대들을 위한 등불이 눈앞에 밝혀지니, 그 길을 따라 영원의 어둠에서 걸어 나와 진실한 빛을 마주하라!" 소생(정령마법) 명 당 100의 정령력 필요. 명 당 0.1%의 경험치 필요. 유저에게 사용 불가. 주문을 마친 현민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변을 헤엄치며 놀고 다녔다. 현실에서 수영을 하지 못하는 현민은 처음으로 겪어보는 수영의 재미에 이곳저곳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뽀글... 뽀글뽀글... 뽀르륵... 유저들에게 공격당하고 현민의 토네이도로 인해 산산조각 났던 마을 NPC들의 육체에서 작은 물거품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물거품들은 각자의 위치를 찾아가며 이곳저곳에 뭉치기 시작했다. "푸헤, 배불렁. 훌쩍!" "호오..." "히잉..." 윈디아가 만든 공간으로 몸을 피한 두 정령은 보지를 못했으나, 그 공간을 만든 윈디아는 NPC들의 몸이 이전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지는 것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지금의 현민이 쓰고 있는 마법은 대신관의 부활마법보다도 뛰어난 것이었고,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불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마법이었다. [15.3%의 경험치가 감소합니다.] 현민이 한참을 헤엄치며 놀고 있을 때, 그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민의 사정범위 내에 있던 NPC들이 육체의 재구성과 영혼의 부활을 이루자 그것의 완료를 알려주는 메시지가 울린 것이었다. 찰랑. 완벽한 부활을 이룬 NPC들은 물 위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힘없이 떠다녔고, 현민은 자신의 힘을 거두며 폐허를 덮고 있던 물을 천천히 없애기 시작했다. 사뿐. 폐허의 모든 물들을 원래의 장소로 돌려보낸 현민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대지에 발을 올렸다. 젖어있는 머리가 그의 얼굴과 몸에 달라붙어 있었으나, 현민의 가벼운 고개 짓에 모든 물기가 사라지며 뽀송뽀송한 모습이 되었다. "후우..." [정령화 상태가 풀립니다.] [레벨이 10 감소합니다.] 단 두 번의 정령화로 인해 1/10에 해당하는 레벨이 감소하였으나, 현민은 그러한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레벨이란 것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가 마법사였기 때문이었다. "랄라라~." 젖어있던 대지가 원래대로 돌아오자, 두 팔을 걷어 부친 담비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새로운 장난감이 생기는 것은 담비에게도, 그리고 나머지 정령들에게도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다 페튜니아 누나가 오는 건 아닌지..." 지금의 능력은 본인이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것들뿐이었다. 모든 유저를 학살했던 거대한 토네이도도 모든 능력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정도의 능력을 보였다면, 최악의 경우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 예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비록 NPC들 뿐만이라고 할지라도 그 많은 존재들을 부활시킨 패널티가 단순히 15.3%의 경험치라는 것은 말 그대로 사기일 수밖에 없었다. "으으으..." 현민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바닥에 누워있던 마을 npc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들은 육체가 새롭게 구성되어서인지, 아니면 빠져나갔던 영혼이 육체로 돌아와서인지, 자신의 몸을 다루는 것에 상당히 어색한 모습이었다. "저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게 있나?" "어떻게 우리가 살아난 거지? 분명, 분명 죽었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린 마을 사람들은 현민의 주위로 몰려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유저들에 의해 학살을 당했던 일은 그들로서 기억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그러한 일을 당하고도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응? 혹시 룬 아닌가?" "룬?" "아, 샤이나랑 붙어 다니던 그 룬?" 현민이 어떻게 얘기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을 둘러싼 npc 중 하나가 현민을 알아봤다. "오랜만이에요, 아주머니." 현민을 알아본 아주머니는 예전에 샨과 함께 자주 찾아갔던 과일가게의 주인 아주머니였다. 지도상으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쿠진 마을은 찾아오는 유저들도 거의 없는 곳이었고, 현민이란 존재가 언제나 샨과 함께 하였기에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네는 알고 있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말해주게! 우리는 살아있는 것인가? 죽어있는 것인가?" 현민을 향해 매달리는 그들의 눈에는 프로그램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담겨져 있었다. 한번의 죽음을 경험한 그들로서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 살아있음의 행복을 알고 있었고, 그 행복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은..." 네 명의 정령들을 자신의 곁으로 안아들은 현민은 환한 미소를 만들며 주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깊디깊은 잠을 자고 있는 중이랍니다. 현실의 제가 이렇게 예쁠 리가 없잖아요? 쿠쿡." "뭐?" "에?" 너무나 예쁜 미소로 농담을 하는 현민 때문인지, 마을 전체를 감싸던 긴장감이 한순간 사라지며 마을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풋!" "킥!" "푸하하하하!" "오호호호..." 묘한 침묵 속에서 환하게 피었던 현민의 미소가 점차 썩어(?) 들어가고 있을 때, 꼬마아이들의 웃음을 시작으로 마을 전체가 웃음바다로 변해버렸다. 자신들이 겪었던 현실을 믿을 수 없었던 그들은 마음속 깊이 현민의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한 대답을 현민이 해주자, 그들을 감싸고 있던 긴장감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후우..." npc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현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약간 불안하기는 했으나, 그들은 자신의 뜻대로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 현민의 직업이 마법사인건 아시죠? 그동안 주인공의 마법에 대한 게 별로 없었지만, 다음 이야기에서 현민과 샨이 만났을 때, 독특한 마법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거에요. 현민이 샨과 만났을 때, 마법사의 진정한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온갖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ㅜㅜ 그리고, 현민의 정령화는 전부 여성체 입니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담비역시 마찬가지죠... 염화는 [날개], 윈디아는 [토네이도], 묘는 [꼬리]가 등장했을 때, 모든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담비는? 훗, 비밀. 현민 : 말투가 건방진데? 작가 : (빠직!) 변태는 가만히. 현민 : (울컥!) 네가 그러면 안될텐데... 주인공은 나 아냐? 작가 : 훗! 네가 출연을 거부한다면 외전으로 나가는 수밖에... 현민 : 담비야, 작가 오빠 때찌! 담비 : 이야아아압!! 작가 : 담비야, 사탕줄까? 담비 : 헤헤헤, 응! 훌쩍. 현민 : 다, 담비를 매수하다니.... OTL 작가 : 푸하하하하! (톡!) 작가 : 응? 염화 : 우,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요...(글썽글썽) 작가 : ............졌다. OTL 현민 : (씨익) 윈디아 : 어린애도 아니고 맨날 싸워요? 이제 철 좀 드세요! 현민 : '너 다섯살 아니었니?' 작가 : '너 다섯살 아니었니?' 토닥토닥... 묘 : 괜찮아,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잖아? 현민 : ;;;; 작가 : ;;;;수정과 연재를 동시에 하는게 가장 최선의 방법인 것 같네요. 수정을 해야지만 연재를 할 것이고, 연재를 해야지만 수정을 하기로 마음 잡았습니다. ------------------------------------------------------ "깨어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 있을 거예요." 스윽... 마녀의 모자와 가면을 착용한 현민은, 그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마법을 사용했다. "포그." 포그(2서클) 소모 정신력 : 20 능력 : 시야를 가릴 수 있을 정도의 짙은 안개를 만들어 낸다. 현재 단계 : 10 주문 : ??? 현민을 중심으로 짙은 안개가 퍼져나가고 있었지만, 현민의 농담에 웃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런 변화를 쉽사리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바닥을 시작으로 천천히 깔린 현민의 마법이 점점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의 마법이 허리를 넘어서고서야 마을사람들이 주변의 이상함을 눈치챘다. "안개?" "이, 이건?" 평소라면 가볍게 넘어갔을 단순한 안개였지만, 불길한 일을 당하고 난 직후였기에 때문인지 마을사람들은 단순한 안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깨어나면... 아무 일도 없을 거랍니다. 인첸트 슬립." 인첸트(5서클) 소모 정신력 : 120 능력 : 본연의 속성 외에 다른 속성을 추가한다. 현재단계 : 6 주문 : 본연의 힘에 새로운 힘을 담아 그대의 능력을 더욱 강하게 하고자... 현민이 만든 안개에 슬립마법이 인첸트되었고, 마법에 저항이 없는 마을 사람들은 현민의 마법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잠에 빠져 버렸다. 마을을 감싸고 있던 안개는 모든 사람들을 잠재운 후 허공으로 사라져버렸고, 마을이 있었던 장소에는 현민과 그의 정령들만이 두 발을 붙이고 서 있었다. 툭툭... "우웅, 다들 코~ 자네?" 현민의 마법에 쓰러진 마을사람들이 걱정된 것인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담비는 바닥에 누워있는 마을 사람들을 쿡쿡 찔러보았다. "도와드려요, 오라버니?" "아니, 괜찮아." 옆에서 올려다보는 윈디아에게 고개를 흔들어준 현민은 두 문을 마주친 후,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어서라. 기억하라. 네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그 모습을..." 현민의 양손이 허공을 스쳐지나가자, 그의 손길이 스친 장소에 붉은색의 선이 생기며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그리는 마법진과 주문이 완성됨에 따라, 차분히 내려가 있던 그의 머리카락이 미약한 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했고, 사방에 퍼져있던 마을의 조각들이 조심스런 움직임을 보였다. 흔들흔들...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라!" 허공에 그려진 현민의 마법진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산산조각 난 마을의 전부를 덮을 만큼 커졌다. 현민을 중심으로 하여 넓게 퍼진 마법진은 하나의 구를 이루며 주변의 모든 것을 감쌌고, 그 안에 존재하고 있던 마을의 조각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원래의 모습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마법진이 감싸고 있는 땅은 지진이라도 난 듯 거칠게 흔들렸으나 부서지기는커녕 이전의 모습을 되찾으며 정돈되어 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부서져 있던 길들이 가장 먼저 이전의 모습으로 복구되었고, 그 다음으로 집들과 주변의 건물들이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너무나 넓은 지역이라서인지 예전에 사용했을 때보다 천천히 진행되었으나, 그 효과는 눈에 보일정도로 똑똑했다. "하아..." 현민의 마법진이 모든 마을을 고쳤을 때는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천천히 저물어가던 해는 그 모습을 감춘지 오래였고, 그의 자리를 대신하여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다. 팡! "우와아!" "아름답다..." "아..." "멋지다..." 모든 마을을 이전의 상태로 복구한 현민의 마법진은 자신의 할 임무를 다 했기 때문인지 산산히 부서지며 허공으로 녹아내렸다. 보랗게 빛나며 부서지는 현민의 마법진은 밝은 달밤에 별이 쏟아지듯 아름답게 흩어졌고, 마법진이 부서지는 아름다운 모습에 현민의 정령들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로벨의 말이 이런 거였나..." 정령들과는 다르게 하늘의 달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또 다른 인격이 사라지기 전의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달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조금의 감정도 담겨있지 않아,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빠?" 하늘을 수놓았던 마법진의 조각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자, 현민의 꼬마정령들은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현민을 돌아보았다. 더 이상 구경거리도 없으니 다른 장소로 놀러(?)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제 갈까?" "응!" 꼬마정령들의 키가 크거나 현민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면 쉽사리 말을 걸지 못했겠지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현민의 얼굴은 키가 작은 그들에게 보이지가 않았고, 정령들을 바라보는 현민의 얼굴도 다정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런 의심도 갖지 못했다. 우웅! 우웅! 우웅!! 현민은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마녀의 빗자루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싸움에 끼지 못한것에 삐져버린 마녀의 빗자루는 현민의 의지대로 날아오르려 하지 않았다. "자꾸 반항하면 담비에게 줘 버릴거야." 움찔! 부르르르르... 일반적인 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마녀의 빗자루지만, 그래도 에고 무기라서 그런지 담비의 무서움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현민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가 없을 때마다 담비가 현민의 빗자루를 가지고 놀기(?) 때문이었다. 스응... 현민의 협박 한 번에 얌전해진 마녀의 빗자루는 조용히 날아올랐다. "페드로 제국의 수도로." 페드로 궁전을 향해 날아가는 현민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샨과 헤어진 지 하루(현실의)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지만, 조금전의 만났던 유저들을 생각한다면 무언가 나쁜 일이 생겼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을을 떠나기 직전 로벨이 해준 그 이야기가 현민의 머리를 떠나려하지 않고 있었다. ----------------------------------------------------- 약속대로 이전의 글은 폭파시킨 후, 짧게 한편 올리겠습니다. 맛보기로만.... <<1화>> - 프롤로그 -는 그대로 가고 <<2화>> 수정했습니다."얘들아, 잠시 정령계로 가 있을래? 오빠가 나중에 불러줄게." 페드로의 궁전을 향해 날아가고 있던 현민은, 허공을 날아가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정령들을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정령들이 떨어져서 다칠 일은 없다지만 빠르게 날아가고 있는 현민에게는 그들의 모습이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네..." "우웅..." 끄덕. 쌔근... 묘와 염화가 졸린 눈을 비비며 정령계로 사라졌고, 빨갛게 변한 눈으로 현민의 품에 안겨있던 윈디아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담비를 데리고 정령계로 돌아갔다. "앞으로의 모습... 보여줄 순 없으니깐." 팔찌와 발찌, 그리고 각종 반지와 귀걸이까지 착용한 현민은 마녀의 가면을 벗어버린 후, 어릿광대의 가면을 착용하였다. 치렁치렁했던 마녀의 복장도 움직이기 편한 초보용의 옷으로 바꾸었고, 머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어릿광대의 모습으로 하였다. 스릉. 6개의 단검을 꺼낸 현민은 팔과 허벅지, 허리에 착용하였고, 하나의 단검을 꺼내어 자신의 목 언저리로 가져갔다. 스악. 스악... 단 두 번의 손길에 현민의 아름답던 머리카락이 허공에 휘날리며 흩어져 버렸고, 발까지 오던 기다란 머리카락은 어깨도 닿지 않을 만큼 짧아졌다. "조금만 기다려." 페드로 궁전을 향해 날아가고 있던 현민의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샨의 걱정을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의심, 그리고 어디서 느끼는지 모르는 불안감이 그의 마음에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와아아아!!!" 한참을 날아가던 현민은 다음날의 해가 뜨고 나서야 원하던 장소에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원래의 목적지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남아있었지만, 그가 날아가고 있는 장소에서는 유저들과 npc들의 전쟁이 이뤄지고 있었다. "막아라!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저곳을 뚫어야만 우리들의 승리다!" 쾅! 콰콰쾅!! 그의 밑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은 영화 속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서로의 목을 미친듯이 베고 있는 양쪽의 존재들은 전쟁과 살생이라는 광기 속에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며 주변의 존재를 죽이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슬픔도 없었고, 타인을 위한 희생도 없었으며, 동료라는 것도 없는 것 만 같았다. "린의 말대로..." 스윽... "전쟁이란 걸 없애버리겠어." 전쟁터의 위를 빠르게 날아가던 현민의 신형은 중간쯤 도착하자 움직임을 멈추었다. 밑에서 그를 발견한 몇몇 존재들이 마법이나 활을 쏘며 현민을 떨어뜨리려 했으나, 하늘 높이 도착한 그들의 공격은 원래의 힘이 담겨있지 않아 현민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스윽. 챙. "대지의 족쇄..." 다른 존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치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현민이었기에, 그의 마법한방은 넓은 지역의 모든 존재를 옭아맬 만큼 위력적이었다. 타인을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던 수많은 존재(유저, NPC)들은 자신들의 손발과 목을 옭아매는 대지의 족쇄에 깜짝 놀라며 그것들을 부수려 했으나, 오우거조차 일순간 옭아맬 수 있는 대지의 족쇄이기에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가 않았다. "...대지의 심판" 대지의 족쇄에 이어진 대지의 심판은 땅 위에 서있던 모든 존재의 생명을 빼앗아갔다. 현민의 마법이 일반적으로 땅에서 솟아올랐다면야 방어구의 능력에 따라 생존이 결정되었겠지만, 그들의 손발과 목을 옭아매는 대지의 족쇄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것에 묶인 존재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창이라고 하기는 뭐하고 바늘이나 가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것들이 안팎으로 솟아나오며, 그들의 몸과 목을 분리 시켜버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두 번의 마법으로 수 만 명의 생명을 빼앗아버린 현민은 그 과정과 맞지 않게 레벨업까지 해버렸다. 지금 그의 상태가 몬스터(몹)라고 규정되어진 NPC였기 때문에 유저들이나 다른 NPC들을 죽여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샨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모든 유저들을 삭제시켜버리겠어." 챠르릉... 길게 늘어진 현민의 귀걸이들은, 서로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만들어냈다. 한차례의 전쟁터를 정리해버린 현민은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아악!" "피해라!!" "막아! 저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그런 그의 앞에 다음으로 모습을 들어 낸 것은 유저들과 npc들의 공성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였다. 성벽의 밑에서는 수많은 유저들이 마법과 기술들을 사용하며 성벽을 부수려 하고 있었고, 성벽위에 있는 npc들은 날아오는 공격들을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파이어볼, 파이어볼, 파이어볼..." 허공에서 움직임을 멈춘 현민은 유저들의 진형이 있는 아래쪽에 파이어볼 마법을 퍼부었다. 계속해서 생겨나는 공식들이 눈에 거슬렸지만 그렇게 어려운 문제들도 아니었기에 아래로 쏟아지는 마법들은 끊임이 없었다. 또한, 그 파괴력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기 충분했다. "아아악!" "대지의 보호!" "막아! 궁수들은 하늘의 마법사를 공격!!" 유저들의 진형에도 마법들을 사용하는 여러 가지의 직업들이 존재하고는 있었지만, 순수 마법사의 마법인 파이어볼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직업을 가진 존재는 많지가 않았다. "절대방어." 지휘관의 적절한 대응으로 인해, 유저들을 공격하던 현민의 마법이 잠시 끊어졌다. "전사계열들은 방패를 들고 저자의 마법을 막아! 그의 뒤를 법사계열들이 지원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자를 땅으로 끌어내! 힐러들은 원거리공격자들의 사이에서 전사들에게 힐을! 모두 자기의 위치에서 저자를 막아라!" 유저들을 지휘하고 있던 그는 현민이 단신의 존재라고 해서 방심을 하지 않았다. 공성전에 반드시 필요한 몇몇 존재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존재들에게 현민을 경계하도록 주의했고, 그의 마법을 훌륭히 방어했다. "인탱글,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합!" 팟! 현민은 인탱글로 그들의 몸을 묶어버리고,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로 그들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땅위에 있는 유저들은 현민의 마법보다 빠르게 이동하며 그의 마법을 피해 다녔고, 그의 마법에 걸리는 존재들은 움직임이 둔한 힐러계열이나 법사들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라도 죽었으면 다행이련만, 주변을 돌아다니는 다른 유저들인 그들의 구속을 풀어주었기에 결국 죽은 존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공략했다는 건가?" 그 위력과 유용성이 너무나 잘 알려진 마법조합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유저들이라면 현민의 마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마법사들의 주된 공격방법이었고, 당하는 존재들은 지능이 낮은 몬스터들밖에 없었다. "대지의 손." 대지의 손 마법을 사용한 현민은 그들의 중앙에 두 개의 손을 만들었다. 자신들의 사이에 두 개의 손이 나타나자 깜짝 놀란 유저들은 주변으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 반응을 노린 현민은 주변의 땅을 쓸며 양손 가득 돌들을 모았다. "스트랭스." 그의 근력이 상승하자 대지의 손도 그 위력이 늘어났고, 그 때를 맞춘 현민은 손안에 가득한 돌맹이들을 하늘 높이 날렸다. 주변으로 흩어지던 유저들은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는 손에 의아해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무언가를 눈치 챈 지휘관이 주변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모두 피해!!" "그레비티," 쿵! 현민의 마법에 그들이 있던 공간의 중력이 무거워졌다. 갑작스런 중력의 변화에 놀란 그들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무거워진 그들의 몸과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공기로 인해 그들의 몸은 평소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호흡조차도 힘든 상황이었다. "샤프" 피피피피피피핑!! 그레비티의 마법에 바로 이어진 샤프 마법은 하늘에 떠 있던 돌맹이들의 성질을 날카롭게 만들어주었다. 그 수를 샐 수 없는 돌맹이들은 거침없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꿰뚫으며 바닥에 박히기 시작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탱그랑... 털썩! 털썩! 털썩!... 현민의 공격을 막지 못하여 온몸에 구멍이 뚫린 유저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고, 그 위에 남아있는 존재는 100단위로 줄어 버렸다. 너무나 많은 수의 유저들이 있었기에 단순한 공격으로도 이 정도의 사상자를 낼 수 있었던 것이었고, 이렇게 많은 수의 생존자들이 있을 수 있던 것이었다. --------------------------------------------------- 크리스마스 전에 하나 올릴게요.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눈을 배달보냈어요. 각 지역마다 배달 날짜가 다르니 크리스마스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택배원을 한대 때려주세요. 택배원 이름 산타클로스 입니다. 오늘 하루도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_(__)_ <<3화>> 수정했습니다."이, 이건 말도 안돼..." 그나마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주변의 처참한 모습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여성이나 미성년자에게는 특수효과의 형태로 보인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본다 해도 그들의 주변 모두가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룬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떨어트려!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게!!" 공중을 향해 공격하지 못하는 유저들은 하늘만 올려다보며 분노를 나타냈다. "파워샷 조합 스핀!" "하울!!" 끼이익!!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를 궁수 한명이 현민을 향해 화살을 날렸고, 테이머로 보이는 유저가 한 마리의 하피를 소환하여 현민을 공격했다. 한눈에 봐도 강해 보이는 궁수의 공격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하피는 금방이라도 현민을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절대방어." 챙그랑! 오우거도 막아내는 현민의 절대방어는 유저의 기술에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하지만, 절대방어를 부순 화살은 원래의 힘과 방향을 잃어버렸고, 그의 화살은 현민의 옆을 지나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좋아!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걸로!!" "하울! 공중에 대기해!" 그의 화살이 현민의 방어를 꿰뚫어버리자 잔뜩 흥분한 지휘관이 다시 한번 기술을 요구했다.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해결될 것 같은 분위기였기가 되지, 허공의 하피를 움직이고 있던 테이머는 잠시 하피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파워샷 조합 스핀! 그리고 더블샷!!" 피핑!! "훗." 빠르게 발사된 두 개의 화살은 이전의 파괴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화살이 현민의 방어를 부수면 두 번째 화살로 현민을 관통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그를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 "절대방어, 스핀, 헤이스트." 스핀(1서클) 소모 정신력 : 10 능력 : 사물의 일부분을 축으로 하여 강하게 회전시킨다. 현재단계 : 10 주문 : ??? 화살보다 빠르게 현민을 감싼 절대방어는 화살과 수직 된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이어진 헤이스트 마법에 강한 회전을 시작했다. 너무나 빠른 회전에 현민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쯤, 그의 절대방어를 향해 두 대의 화살이 도착했다. 팅팅! 상당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을 유저의 화살은 현민의 절대방어에 맥없이 튕겨져 버렸다. 현민의 절대방어가 멈추어진 상태라면 하나의 점에 힘이 집중되어 깨어질 수 있었겠지만, 지금 현민의 절대방어는 빛조차 통과시키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회전중이었기에 부숴버린 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다. 스으윽... "하울! 지금이다!!" 유저의 화살을 막아낸 현민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절대방어를 해제했다. 현민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을 노치지 않은 테이머는 하피를 향해 현민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모두가 당했다 생각했었지만, 현민에게는 그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존재했다. 끼이익! 현민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던 하피는 무엇을 느낀 것인지 현민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당황하고 있었다. "응? 뭐해?! 공격해!!" 하피를 소환한 유저는 하피를 향해 계속해서 명령했으나 하피는 말을 듣지 않았고, 그들이 가졌던 또 다른 희망도 부서져 버렸다. 하피라는 것은 서열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피의 우두머리와 계약을 하고 있는 현민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피해있으렴." 하피가 왜 자신을 공격하지 않고 있는지 대충 짐작을 한 현민은 자신의 주변에 멈춰있는 하피를 멀리 날려 보냈다. 날아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하피에게 있어서 우선순위는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우두머리와 계약한 현민이었기에 순순히 현민의 말을 받아들였다. "이에는 이로..." 딸랑딸랑... 수많은 바람 속에서도 울리지 않던 방울이 소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밑에서 보고 있던 유저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나 많은 어릿광대가면 때문에 의심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소문으로만 접했던 진.짜. '어릿광대'였다. "인탱글... 속성변화..." 속성변화(3서클) 소모 정신력 : 30 능력 : 대상의 속성을 철과 동일하게 만든다. 현재 단계 : 10 주문 : ??? 현민의 왼손에 엉켜들기 시작한 인탱글은 위아래로 길게 뻗어졌고, 그 상태 그대로 철과 같이 굳어져버렸다. "cobweb, cobweb, cobweb, cobweb..." 나무뿌리의 양끝을 거미줄로 이은 현민은 직선이던 나무막대가 곡선을 만들 때까지 거미줄을 사용하였다. 십여 개의 거미줄이 엉키고 나서야 현민의 손에 고정되었던 나무뿌리가 곡선을 만들었다. "그리스, 전사의 투지, 스트랭스." 전사의 투지(5서클) 소모 정신력 : 350 능력 : 전사의 의지를 흉내내어 힘과 민첩이 일시적(30초)으로 300 상승한다. 재사용 시간 현실시간 1일. 현재 단계 : 6 주문 : 잃어버린 전사의 투지를 이어받아 그의 뜻을 대신... 거미줄에 있는 점성을 없애버린 현민은 자신을 향해 마법을 사용한 뒤, 오른손 검지를 입으로 가져갔다. 까득. "나 홀로 존재하니 그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하였고, 나 홀로 바라보니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였고, 나 홀로 생각하니 그 누구도 나를 거스르지 못하였다." 스스로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린 현민은, 거미줄이 있는 곳에 마법진을 그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마법진이기에 제대로 됐는지는 확인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기분이라면 실패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며, 그대를 바라보고, 그대의 죽음을 생각하니. 그대 죽음의 부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의 뜻을 받들어라." 끼기기기긱!! 오른손을 고리 모양으로 하여 거미줄을 힘차게 잡아당기니 인탱글과 속성변화로 강화된 활대가 거미줄의 탄성을 간신히 견뎌내며 비명을 질러댔다. 급히 만든 것이기에 몇 번이나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민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제, 제기랄..." 너무나 오만한 현민의 주문이 조용해진 전쟁터에 울려 퍼지자, 유저 측의 지휘관이 욕설을 내뱉었다. 다른 나라라면 모를 수도 있다지만 중국이나 일본, 한국에서 어릿광대의 이 기술을 모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심판..." 쿠아아앙!!! 현민의 손끝에서 생겨난 빛 무리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늘어나며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만만치 않은 반발력으로 인해 현민의 신형도 공중으로 튕겨나가 버렸으나, 빠르게 움직인 마녀의 빗자루가 현민의 몸을 받쳐주었다. "이게... 인간의 기술이라는 건가." 성벽의 위에서 현민의 활약을 지켜보던 npc들은 현민이 만든 결과 때문에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저와 npc들이 전쟁을 치루던 그곳은 현민의 기술에 의해 기다란 길이 생겨나 있었다. 문제는 그 길이 사람이 다닐만한 것이 아니라 거인들에게나 어울릴만한 길이라는 것이었다. 스스슥. "다음 장소로..." 왼손의 인탱글을 해제한 현민은 서둘러서 앞으로 나아갔다. 벌써 상당한 시간을 게임에서 보냈기 때문에 등교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깨달을 지어다." 빠르게 날아가는 마녀의 빗자루 위에서 메모라이징을 하고 있던 현민은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추어 원하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샨을 찾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최악의 경우 마녀의 빗자루를 봉인해제 시킬 생각까지 하고 있었으니, 수도에 도착하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꺄아악!!" "크악!" "사, 살려.. 컥!" 제국의 수도에 도착한 현민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일들에 굳어져 버렸다. 몇 개의 성을 지나는 동안에 상당히 많은 장면을 볼 수 있었던 현민이었지만, 지금의 장면만큼 심한 것은 보지를 못했었다. "크크크, 이 게임은 정말 현실 같아서 좋다니깐." "미친새끼, 이런 곳에서 그게 하고 싶냐?" "너도 들어가서 즐겨봐, 임마. 현실에서 이런 거 할 수나 있겠냐?" - 아아, 제발! 제발하지 말아주세요!! - 아악! 싫어! 제발.... 제발 하지 말아줘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현민은 괴로움 속에 울부짖던 아세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런 짓은 너나 해, 임마. 나는 '사냥'이나 하련다." "몇 '마리'나 잡았는데?" "그년 남편이 31'마리'째야." 히히덕거리고 있는 두 명의 유저는 npc들을 단순한 프로그램으로만 여기는 것 같았고, 현민은 그러한 유저들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의 사람들과 똑같이 반응하고 행동하는 npc들을 어찌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을까, 그것이 현민의 생각이었다. "블링크." 팟! 마녀의 빗자루를 손으로 잡은 현민이 공중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손에 쥐여진 마녀의 빗자루로 한 명의 유저를 겨누고 있는 상태였다. 딸랑... "31'마리'째라고요? 이런... 저도 분발해야겠어요." "뭐, 뭐야?" "누구?!" 너무나 갑작스런 현민의 등장이었기에 그들은 현민을 보면서도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유저들이 '전쟁'에 참가 중이었기 때문에 같은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저는 이제야 한 '마리'를 잡기 시작했거든요." 스악! 스윽... 툭. 데굴데굴... 너무나 가벼운 현민의 움직임으로 인해 유저의 머리는 그 위치를 잃어버리고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기에 동료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위험을 깨닫게 된 그는 자신의 무기를 잡으며 현민을 향해 공격해갔다. "너 이 미친..." "그리스." 현민을 향해 달려가던 그는 모든 마찰력을 잃어버리며 앞으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현민은 그가 넘어질 자리에 마녀의 빗자루를 가져갔다. 스악... 그의 머리는 마녀의 빗자루에 달린 낫의 끝에 정확히 닿으며 절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봉인이 되었다하더라도 엄청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마녀의 빗자루였기 때문에 닿는 순간 잘려져 버린 것이었다. "두 '마리'... 하지만 이렇게 해서 다 잡을 수는 없으니." 바닥에 쓰러진 유저를 바라보는 현민은 그들을 더 이상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로벨의 환상덕분인지는 몰라도 이러한 존재들에게 엄청난 혐오감이 생긴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시간도 없으니..." 스악! 오른손에 상처를 낸 현민은 피가 흐르는 손으로 낫의 한쪽 면을 쓸었다. 그의 손끝에 맺힌 피는 그의 손길을 따라 낫의 면에 하나의 선을 그려냈고, 그렇게 만들어진 붉은 선은 점점 희미해졌다. "어둠속에 잠자고 있는 자여, 눈을 봉인당한자여. 그대의 주인이자, 아버지인 나의 피를 받아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봐라. 너의 시선에 맞추어 세상을 판단하고, 너의 의지에 맞추어 모든 것을 부수어라." 현민의 주문이 완성됨에 따라 그동안 숨겨져 있던 마법진들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잉...... 쇠가 갈리는 듯한 소리가 주변에 메아리치자, 전쟁으로 인해 시끄러웠던 수도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통해 직접 들리는 소리가 신경쓰였기 때문이었다. 쩍! 쩌저적! 현민의 주문이 점점 완성되어 갈 수록 마녀의 빗자루에 수십, 수백 개의 실선들이 생겨났다. "일어나라, 깊은 잠에서 깨어나 세상을 바라봐라!" 번쩍! 마녀의 빗자루에 생겨났던 실선들이 위아래로 갈라지면서 눈이 떠졌고, 마녀의 빗자루는 수백 개의 눈이 달린 징그러운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마녀의 빗자루가 오랜만에 모습을 들어낸 것이었다. -우히히히! 일어났냐? 하암... 일어났다! 키키키킥! 또르르르르.... 마녀의 빗자루에 달린 눈이 완전히 떠지자, 그 안에 담겨있던 눈동자가 룰렛처럼 돌아가기 시작했고, 천천히 그 속도가 줄어들며 하나의 눈동자가 선택되었다. 마녀의 빗자루(S급) 설명 : 마녀 루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빗자루, 너무나 특별한 나머지 이름만 빗자루일 뿐 빗이 달려있지는 않다. 드워프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져 특히 강한 공격력과 내구력을 가지고 있다.(측정불가) 마녀 루나의 무식한 방식이 추가되어 있어 싸이코적인 성향을 가진 에고무기. 속성 : 염(炎) 공격력 : ??? 내구력 : ??? 조건 : 마녀 루나만 사용 가능. 거래 불가. - 오호?! 오호?! 오호?! 마녀의 빗자루에 달린 커다란 눈이 피처럼 붉은색으로 선택이 되자, 마녀의 빗자루가 묘한 탄성을 내뱉으며 즐거워했다. 오랜만에 나온 것도 즐거운 일인데 평소에 그토록 원하던 염(炎) 속성까지 선택되었으니, 빗자루에게 있어서는 운수대통의 날이었다. - 푸히히히! 주인새끼야, 내가 뭘 할까요? 말만해. 오늘 기분도 좋으니깐 네 말만 들어줄게요. 캬캬캬캭! 현민의 주위를 빠르게 돌고 있는 마녀의 빗자루는 보는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모든 유저들을 죽여." - 히엑~?! 현민의 명령을 들은 마녀의 빗자루는 엄청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만들어진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동안 받은 명령이라고는 돌(메테오)과 땅을 먹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 저, 정말? "npc들은 건들지 말고,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유저들을 죽여." 현민을 향해 되묻는 빗자루의 음성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 우히히히. 사랑해, 사랑해요~. 당장 먹.으.러. 가겠어. 크크. 피처럼 붉은 눈들이 반짝인다 싶었을 때는 이미 그 모습이 사라져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모든 유저들의 죽음을 명령한 현민은 천천히 걸어 나가며 살아있는 npc들을 찾아보았다. 자신이 찾는 존재도 npc이기 때문에 유저보다는 npc가 더욱 잘 알고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딸랑... "내 뒤로 오지 마세요." 무엇인가를 느낀 것인지 앞으로 걸어가던 현민은 갑작스레 몸을 돌렸고, 그런 그의 앞에는 온몸을 검은색으로 뒤덮은 하나의 존재가 서 있었다. "...어릿광대." 털썩! 가면 속에서 보이는 현민의 차가운 눈과 마주한 그녀는 뒷걸음질 치다 넘어져 버렸다. 도시에 비명이 끊어져서 이상하다 여겼건만, 그 원인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존재라면 그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되었다. "당신도 유저인가요?" 바닥에 넘어진 여성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에, 현민은 그녀의 공격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언제든지 방어할 수 있는 자세를 잡았다. "저, 저는 '유저'라는 존재가 아닙니다..." 현민의 질문에 부복한 그녀는 현민과 눈도 마주하지 못한 채 대답을 했다. 어릿광대라는 존재는 유저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npc들에게도 상당히 두려운 존재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고 있는 정보는 어릿광대가 단신으로 수십 만 명의 유저들을 학살했다는 것이었다. "아..." 현민은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녀의 빗자루에게 살인명령을 내린 이상 그 어떠한 유저도 살아있을 수는 없다는 걸 지금에서야 기억한 것이었다. "미안해요, 제가 실수했네요." 딸랑.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현민은 귀엽게(?) 미소지으며 자신의 가면을 긁적였다. "괘, 괜찮습니다." npc들 사이에 어떠한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인지, 그녀는 현민의 얼굴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음... 혹시. 샨, 아니... 황궁마법사인 샤이나하고, 황녀님이 어떻게 되신지 아세요?" "황녀님과 마법사님들은 도시의 상황이 악화되자 멀리 피신하셨답니다. 마탑의 장로님들과 마법으로 이동하시기 때문에 그 위치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현민에게 말해주었다. "휴우... 무사히 피했나 보네요." "저기... 제가 알아봐 드릴까요?" 무사히 피했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현민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바라본 그녀가 살짝 물어보았다. 어릿광대란 존재는 샨이나 황녀와 그렇고 그런 소문(?)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사이가 좋았으니, 운이 좋다면 귀족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말요? 그래 주시겠어요?" 마법으로 이동한다는 소리에 막막해하던 현민은 자신의 앞에 있는 여성이 도움을 준다니 너무나 고마웠다. 정령이나 마녀의 빗자루를 사용하여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대륙을 뒤져가며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 주인새끼님~~. "풋. 아..." 현민에게 대답하려고 입을 열던 그녀는 갑자기 들려오는 귀여운(?) 목소리에 작은 웃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숙인채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눈 좀 감고 계세요." "...네." 혹시나 모를 일에 부탁을 한 현민은 온몸에 피를 묻히고 자신을 향해 비틀비틀 날아오는 마녀의 빗자루를 바라보았다. - 다 먹었다, 푸히히히. 딸꾹!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나 또 배고파, 꺼어어어억! "몸에 묻은 피나 어떻게 해봐." - 쓰으읍!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룬 마녀의 빗자루는 평소와 다르게 말을 잘 듣고 있었다. 이번에도 현민의 명령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자신의 몸에 묻은 모든 피를 흡수하며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살짝 불안하기는 했으나, 정신만은 멀쩡(?)한 것 같았다. "돌아가렴." - 담에 뵈용~. 딸꾹! 수많은 유저들을 죽이고 엄청난 양의 피를 마신 마녀의 빗자루는 피에 취했는지 살짝 맛이 간 상태였다. 정상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봉인을 그 스스로가 한 것이 그 증거였다. ------------------------------------------------- Merry Christmas~ 염화의 노래 한곡~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밤 아기 천사 노래가 하늘 나라 울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염화에 이은 작가님의 노래 한곡~ 고요한 밤, 거북한 밤, 연인을 묻은 밤, 야산 위에 찾아가 땅속 깊이 묻을 때 쏠로 만세 한다. 쏠로 만세 란다... ㅡㅡv "수도도 정리된 것 같네요." "!!" 자신이 어떠한 일을 했는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현민은 가볍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npc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수도의 모든 이방인들을...?' 다른 곳들은 영주의 사병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제국의 수도는 나라의 모든 저력이 모여 있는 장소였기에 유저들의 수도 다른 곳보다 배 이상으로 많은 곳이었다. 그런 곳을 단 10분도 되지 않아서 정리해 버렸으니 현민의 존재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현민의 능력이라기보다 최초의 S급 무기인 마녀의 빗자루가 한 것이었으나, 그녀가 무기의 정체를 알리는 없었다. "앞으로 이틀 뒤 이 자리에 서 있을게요. 그때까지 가능한가요?" 꿀꺽! "...네에." 잔뜩 긴장한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럼 부탁할게요." 더 이상의 시간이 없었던 현민은 그녀의 앞에서 로그아웃 해버렸고, 그 자리에 홀로 남은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한동안 움직이지를 못했다. "어, 어서 길드에 가야하는데..." 현민이 웃는 얼굴로 그녀를 대해줬으나, 그의 행동보다는 그의 능력이 두려웠다. 그녀가 바라본 현민의 힘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악당보다도, 그리고 그들을 물리치는 영웅보다도 강인해 보였다. 우우웅... 현실에서 하루라는 시간을 소비하고, 게임에서 이틀이란 시간을 밤새운 현민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비틀... "읍?!" 접속기의 커버가 열리자 비틀거리며 일어난 현민은 자신의 입을 급히 틀어막으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쾅! "우욱!" 화장실의 변기에 머리를 가져간 현민은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비울 때까지 토하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왠만하면 속을 가라앉히며 참을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울렁거리는 속은 진정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형, 괜찮아?" 화장실에 들어간 현민이 한참 토하고 있을 때, 그를 걱정한 동생이 화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토하는데 정신이 없는 현민은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못했고, 결국 문을 열고 들어온 동생이 조용히 현민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형, 밤새 게임한 거야? 그러다 저번처럼 쓰러..." "이제 괜찮아, 고마워." 동생의 말을 자른 현민은 초췌해진 얼굴로 동생을 내보냈다. 학교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그전에 샤워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쏴아아... "..." 뜨거운 물로 온몸을 적시며 가만히 서있던 현민은 시선을 돌려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김으로 인해 흐릿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얼굴을 보는데 커다란 지장은 없었다. "...잊은 거냐?" 흠칫! 조용히 거울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스스로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저번처럼 요란스럽게 반응하지는 않았으나, 심장이 철렁한 것은 예전과 똑같았다. '기억나지 않나보군. 너와 내가 [나]를 가뒀던 것이...' '[나]를 가둬?'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또 다른 현민이 해주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범한 그로서는 잠들었던 30일간 자신의 내면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전부 기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일로 인해 너의 인격을 둘로 나누었다. 나란 존재는 처음부터 완벽한 '중재자'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너란 존재는 오리지널이었으니깐.' '그럼 또 다른 인격이 있단 소리야?' 남들에게 미친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가족에게까지 이중인격을 숨기고 있었던 현민은 또 다른 인격이 생겨났단 소리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인격이라기보다는 '살기덩어리'라고 하는 게 맞는듯 하군. 너란 존재에게서 살기란 것을 뜯어내어 만들어진 인격이 세 번째 인격이니...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실에서만 나누어질 뿐, 게임 속에서는 이전과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 때문에 현실에서는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몸으로 나타난 것이니 앞으로는 조심해.' 현민끼리의 대화는 그가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만 계속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쇠사슬소리가 들릴 때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혀라.' 현민에게 마지막 말을 전해준 그는 내면의 어둠속으로 잠들어 갔다. 현민의 육체가 잠들었던 30일동안 그의 정신은 끊임없이 일을 했으니, 그 피곤함이 상상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중재자'란 인격은 현민의 피곤함까지 대신해주고 있었으니 오랜 시간 깨어 있는 것은 그의 정신을 붕괴시킬 수도 있었다. "쇠사슬 소리?" 탁. 집을 나서는 현민은 또 다른 현민이 해주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했으나 깊은 고민은 하지를 않았다. 지금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최대한으로 마법을 개선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스스슥... 매직보드를 풀어가고 있는 현민의 손은 낙서라도 하듯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고서클의 마법을 새로 만들기에는 그 시간이 부족했지만, 저서클의 마법은 만드는 것에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패치로 인해 변해버린 마법들의 제한을 기존으로 되돌리는 것이나 약간의 변형을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슥, 스슥... "야! 봤어? 봤어?!" "뭘?"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의 교실은 언제나처럼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런 시끄러운 교실에 앉아 있는 현민은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앞에 있는 매직보드만 풀어나갔다. "어제 새벽 전쟁에 참가했던 600만 유저 중에 380만 유저들이 한순간에 전멸했대!!" "에엑?!!" "정말?!" "말도 안돼!" 한 아이가 가져온 정보에 안 그래도 시끄러웠던 교실이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싸울아비"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현민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그 남학생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정말이야, 북쪽의 영지를 공격하고 있던 100만 유저들이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일격에 무너졌고, 수도를 공격 중이던 300만 유저들은 이유도 모른 채 사망했대."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영지를 공격하고 있던 110만 유저들과 수도를 공격하고 있던 270만의 유저들이었으나,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런 숫자에는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랭커들도 있지 않았어?" "우리나라 랭커들은 황녀를 뒤쫓고 있었대." 움찔. 한참 문제를 풀고 있었던 현민은 황녀의 이야기에 몸을 움찔거렸다. 오늘 아침 npc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샨이 황녀와 함께 이동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누구한테 전멸당한거야? 일본 새끼들이 쳐들어온 거야?" 누군가의 질문에 시끄럽던 교실이 한순간 조용해 졌다. 수백만 유저들을 전멸시킨 존재가 누군지 궁금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문 것이었다. "이번에도 어릿광대래." "또?" 남자아이의 얘기를 듣는 교실의 아이들은 질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싸울아비"가 생겨나고 1년이 지난 시간동안 대부분의 대형 사고는 그 혼자서 이룬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응, 그래서 지금 척살령 떨어졌다는데?" 척살령이라는 것은 계정의 삭제가 없는 "싸울아비"에서 특정한 유저들을 내쫓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상습적인 P.K나 사기꾼들은 걸렸을 경우 지역을 바꾸면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기 때문에 척살령이란 것으로 유저가 게임을 할 수 없을 정도까지 괴롭히는 것이었다. "근데, 찾을 수나 있을까?" "그러게..." 모여 있던 아이들은 끼리끼리 흩어졌고,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문제풀이를 멈추었던 현민도 다시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직보드를 풀어가는 현민은 수업이 시작되어도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자습시간 같은 경우에는 대놓고 풀었으며, 수업을 나가는 경우에는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씩 문제를 풀어나갔다. "자, 그럼 이 문제 풀어볼 사람?" '찾았다!' 한참 눈치를 살피며 문제를 풀어나가던 현민은 드디어 발견한 속도의 값에 환호성을 내뱉을 뻔 했다. 속도의 공식을 찾아낸 것은 예전이었지만, 그 공식 속에서 속도를 정하는 값은 오늘에서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현민이가 나와서 풀어볼래?" '이제 이 공식의 x 계수를 제곱하여...' "최현민?" 움찔! 한참 수식을 변화 중이던 현민은 담임선생님이 부르는 소리에 몸을 움찔했다. 수식의 변화에 한참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듣지를 못한 것이었다. 'x의 계수와 y, z의 계수는 일정한 분배법칙을 따르니...' 저벅저벅.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나가는 현민은 풀고 있던 문제에 대해 끝까지 생각했다. 'y의 계수와 z의 계수는 α√β^3과...' "자, 분필." 잠시 생각을 접은 현민은 선생님이 건내주는 분필을 잡고 칠판에 적힌 문제의 앞으로 다가갔다. 톡, 톡. 타타탁, 타탁, 타타타타탁. 분필의 끝으로 가볍게 칠판을 두드린 현민은 문제에 대한 모든 생각이 끝난 것인지 거침없는 손길로 답을 적어 내려갔다. 그가 분필을 받은 후, 문제를 풀기까지는 5초의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꾸벅. 'y의 계수가 α√β^3이었으니깐, z의 계수는...' "설명도 해줘야지? 답만 적고 가서는 어떻게 푼 건지 알 수가 없잖니?" 선생님께 분필을 건네 드리고 자리로 들어가던 현민은 뒤에서 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자리에 멈춰 섰다. 아무리 자신의 일이 급하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선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 미지수의 계수와 지수를 더하여 그 수의 홀과 짝을 구별합니다. 홀일 경우에는..." 칠판의 문제를 설명하고 있는 현민은 선생님이 원하는 풀이를 말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현민의 설명으로 풀어지는 문제는 너무나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의 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지만 답을 만들어내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현민의 설명을 듣는다면 초등학생도 문제를 풀 수 있을 정도였다. "상당히 편리한 방법이네, 그렇지?" 현민의 설명을 들은 선생님은 상당히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수업의 진행을 위해 현민을 자리로 보냈다. 이후, 현민의 풀이를 지운 선생님은 기존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갔으나, 그 과정은 현민의 풀이에 비해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웠다. 스슥... 자리에 돌아온 현민은 친구들의 시선도 무시한 채 다시금 매직보드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 "점심 맛있게 먹어라~."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업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아이들은 언제나 정확한 선생님의 종료선언에 다시 한번 감탄의 시선을 보내었다. "현민이는 잠깐 따라올래?" 시끌벅적한 교실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가시던 담임선생님은 자리에서 매직보드를 풀고 있는 현민을 어디론가 불러냈다. 매직보드를 보며 잠시 고민을 하던 현민은 결국 아쉬운 표정으로 매직보드를 내려놓은 후 밖으로 나갔다. "아까 그 공식. 네가 만든 거니?" "...아니요." 선생님과 마주 앉아 있는 현민은 그녀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을 속이지 못하는 현민은 눈을 마주하고 있는 상태에서 거짓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증명은 해 봤어?" "못했어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현민은 단 한 번도 그녀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가 사용한 공식이 린과 함께 만들었던 마녀의 공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까는 어떻게 정답이 나온거니?" "그 공식은 13개의 미지수까지 적용이 되는데, 저희 학교 수학책은 대부분 3개의 미지수에서 끝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었던 거예요." 공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사람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다. 그들에게는 수학교사와 학생이라는 직업 이외에도 "싸울아비"의 마법사란 직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던 그들의 대화는 20분 정도가 지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이 이상 대화를 나누었다가는 점심을 거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그래. 아참, 서클 올리는 것은 잘 되고 있니?" "이제는... 4서클이에요." 선생님의 질문을 들은 현민은 대답을 하기 전에 잠시 고민했다. 아직은 이른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이미 말을 해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정말? 와! 대단한데?" 현민의 대답을 들은 담임선생님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비록 최초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반에서 처음으로 나온 4서클의 유저였기에 기뻐하는 그녀였다. "대학은 정했어?" "아직이요."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선생님한테 말해, 알았지? 선생님이 최대한 도와줄게." "네." 다시한번 인사를 건넨 현민은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책상에는 아직 끝내지 못한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민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의 자리에 있는 것은 풀다만 매직보드가 아닌 깔끔하게 지워진 상태의 매직보드였다. "누구야?" 교실에 남아있던 아이들은 현민의 모습을 보며 키득거렸다. 그들이 보아왔던 현민은 그 상대가 누군지 알아도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러한 짓을 한 이유도 그러한 현민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아, 미안." 현민이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을 때, 그의 뒤로 다가간 한명의 학생이 사과를 건네왔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반성도 없었고,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슨 노트같이 생겼길래 낙서장인..." 쾅!! 웃는 얼굴로 어설픈 변명을 하던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을 정확히 붙잡은 현민이 교실의 뒷문에 그를 박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장난 섞인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교실은 현민의 행동으로 인해 완전히 침묵해버렸다. 문에 머리를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 밖까지 울릴 정도로 컸고, 문에 뒤통수를 박은 그 아이는 기절해버렸는지 움직이지를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건들지 마라." 툭. 털썩! 손에 잡힌 머리를 문에 박고 있던 현민은 한마디 경고를 한 후, 쓰레기를 버리듯 그를 옆으로 던져버렸다. 슥... 순식간에 한명의 학생을 기절시켜버린 현민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교실에 있던 아이들이 경악과 황당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현민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저게 기절한거지?" "와! 나 처음 봤어. 저렇게 맞으면 기절 하는구나." "어떻게 맞았는데?" 예상밖의 상황에 교실의 아이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복도를 감싸고 있던 학생들은 현민의 반에서 일어난 일에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뭐해? 어서 양호실로 옮겨야지!" 현민의 행동으로 인해 교실이 침묵하고 있을 때, 교실에 들어온 반장이 기절해 있는 학생을 양호실로 옮기게 했다. 교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눈치를 보아하니 그동안 참아왔던 현민이 주먹을 휘두른 것 같았다. "응? 한명은 어디 갔지?" "조금 아파서 양호실에 있어요." 현민으로 인해 한명의 학생이 점심시간에 기절하는 일이 있었지만, 선생님과 학생의 중간에 있는 반장이 적절히 거짓말을 하여 반에서 일어난 싸움을 비밀로 하였다. 몇몇 남학생들이 현민을 감싸주는 행동에 기분나빠했으나, 이러한 일이 선생님의 귀에 들어갔을 때 혼나는 것은 당사자들만이 아니었기에 모두가 그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했다. 스슥, 슥... 한명의 아이를 기절시킨 현민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시간을 보냈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문제를 풀었고,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문제만 풀었다. 유일하게 문제를 풀지 않는 시간이 청소시간이었는데, 그때에는 남들보다 열심히 청소를 하여 모든 청소를 일찍 끝내버렸다. "새 학년이 되는 날도 멀지 않았으니깐, 모두 사물함 비워놓도록 해." 담임선생님의 종례까지 받은 현민은 더 이상 학교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야자를 빠지는 몇몇 학생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하교를 하지만, 현민은 그러한 시간도 아까워서 일찍 집으로 갔다. 저벅저벅... 현민은 수많은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서도 문제를 풀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무거운 것을 가지고 지나가면 비켜주었고, 복도를 빠르게 달려온다면 옆으로 비켜주었다. 깡! "잡아, 잡아!!" "이쪽으로 패스해!" 몇몇의 학생들이 현민과 같이 하교를 하고 있었으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나 야구를 하며 놀고 있었다. 깡! "홈런~!" "달려! 달려!!" 한참 야구를 하고 있던 그들은 빠르게 날아가는 공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어?! 거기 피해!!" 공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외야수는 그들이 잡아야 하는 공이 그들을 지나 학교 쪽으로 날아가자 다급히 소리쳤으나, 그들의 목소리보다는 공의 움직임이 더욱 빨랐다. "꺄악!" 퍽! 공의 움직임을 쫓고 있던 주변의 학생들은 여학생의 비명소리에 놀라 그녀를 향해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걱정하고 있는 여학생은 놀라서 주저앉았을 뿐, 특별히 다친 곳이 없어보였다. "자." 툭. "응?" 주저앉아버린 여학생에게 자신이 잡은 공을 넘겨준 현민은 이내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갔다. "괜찮아? 다친데 없어?" "아, 응." 공을 건네준 현민이 앞으로 걸어 나가자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여학생이 그녀를 일으켜 주었다. "그보다, 방금 진짜 영화 같았던 것 알아?" 공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지른 그녀와 달리, 그녀의 옆에 있던 여학생은 현민의 움직임을 전부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날아오는 공을 보며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한걸음을 크게 옮긴 현민이 손을 내뻗으며 날아오는 공을 막아낸 것이었다. 그의 손에 맞은 야구공은 그 움직임을 멈추었고, 현민은 그러한 공을 잡아 그녀에게 건네줬던 것이었다. '후...' 공을 잡은 후, 후문으로 걸어 나가는 현민은 매직보드의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었다. 맨손으로 야구공을 잡은 충격 때문에 펜을 잡고 있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와, 예쁘다." "어디 학교지? 이 근처 학교는 아닌 것 같은데." 현민이 오른손의 감각을 되찾아 가고 있을 때, 그가 향하고 있는 후문에서는 때 아닌 소란이 일고 있었다.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미모를 가진 여학생이 그들에게는 낯선 교복을 입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창한 날씨에 기다란 우산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이상해 보이기는 했으나, 그녀의 미모가 모든 것을 용서(?)해 주고 있었다. 저벅저벅. 스슥, 스스슥... 손의 감각이 돌아올수록 현민이 매직보드를 풀어가는 속도도 점점 빨라져갔고, 그가 후문을 지날 때쯤에는 모든 고통이 없어졌는지 매직보드를 풀어나가는 그의 손이 이전과 같이 빠르게 움직였다. "앗! 저, 저기..." 주변의 남학생들이 이런저런 말을 건네 와도 아무런 답이 없던 그녀는 현민을 보는 순간 두 눈을 반짝이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더 이상 귀찮은 시선을 받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벅저벅. 사박사박... 팟! 현민의 뒤를 쫓아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현민과 자신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급히 몸을 움직이며 현민을 향해 달려들었고, 자신의 손에 들린 기다린 우산을 검처럼 휘두르며 현민의 머리를 베어들어갔다. 쉬익! 그녀가 휘두르는 우산에서는 뭉툭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바람소리가 세어 나왔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후문의 남학생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경악하며 현민을 향해 소리치려했다. 하지만 그들이 걱정하는 현민은 그녀의 우산을 너무나 쉽게 피하고 있었다. 스윽, 팟! 촤아악! 순간적으로 다리를 접으며 하체를 낮춘 현민은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린 후, 땅을 박차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현민의 동작으로 인해 그녀와 현민의 거리가 순간 늘어나버렸고, 현민은 바닥을 미끄러져나가며 잃어버린 몸의 중심을 잡아갔다. "뭐죠?" 갑작스러운 공격 때문이었는지 현민의 입에서는 어릿광대의 말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릿광대일 때만 공격적인 움직임을 하였기에 그도 모르는 습관이 생긴 것이었다. "..." 현민의 물음에 시끄럽던 후문이 조용해졌다. 운이 좋다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싸움구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뉴스와 소문으로만 접했던 싸울아비들이 그들의 눈앞에 있었으니, 이보다 더한 구경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나온 말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고 싶었어요." "...에?" "!!!" "!!!" 그녀의 대답을 들은 현민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귀 보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의 머리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주변에 있던 모든 남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리도 예쁜 여학생이 저리도 당당하게 고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우리 아는 사이야?" 그녀의 말에 너무나 당황한 현민은 그녀가 자신을 공격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황당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현민의 질문을 받은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첫마디가 오해를 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러면 알겠죠? 그리고 이전의 말은 당신과 대련하고 싶다는 것 일 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그녀는 하나의 끈을 꺼내어 길게 풀린 자신의 머리를 한 갈래로 묶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변명은 그녀가 스스로의 말에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현민을 향해 말하는 그녀의 음성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고, 우산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도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그녀가 머리를 묶고서야 누구인지를 눈치 챘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어릿광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기에 아는 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모른 척 하시는 건가요?" "..."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말해도 상관없나요?" 그녀를 모른 척하려던 현민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말 때문에 평소의 길을 걸어갈 수가 없었다. "이쪽으로."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던 현민은 학생들이 없을 만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대부분을 숨기고 다니는 현민이었기에 혹시나 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왠일이...세요?" "할아버지께서 당신을 초대하셨어요. 그 얘기를 전하기 위해 찾아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향해 검, 아니 우산을 휘두른 점 사과드립니다." 현민의 질문을 받은 하연은 평소의 차분한 목소리로 찾아온 이유와 이전의 일에 대하여 사과의 말을 건네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초조한 마음으로 우산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저는 어떻게 찾으신 거죠?" "할아버지께서 당신의 정보를 구하셨답니다." "어떻게...?" 완벽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을 가장 잘 숨기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런 그의 정보를 이렇게 구했다는 것은 할아버지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모릅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하시면 다른 사람이 마중 갈 것입니다." 하나의 명함을 꺼낸 그녀는 그것을 현민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들의 대화는 끊어져버렸다. 하연은 자신이 할 말을 전부 전했고, 현민은 마땅히 할 만 한 질문이 없었으니 침묵한 것이었다. "그게 끝?" "네." "저기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내가 다니는 학교를 알았다면, 집 전화번호나 핸드폰번호 같은 것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전화로 안 했죠?" "..." 현민의 질문을 받은 그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두운 밤이기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감처럼 붉게 물들어 있는 상태였다. "응?" "하, 할아버지께서 직접 찾아가보라고..." "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현민은 그녀의 대답에 수긍하고 넘어갔으나, 현민을 향해 변명의 말을 내뱉은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더 이상 같이 있다가는 무슨 말이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만." 사박사박. 현민을 향해 급히 인사를 건넨 그녀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때의 그 할아버지인가?" 하연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있는 현민은 이전에 보았던 하연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신선과 같은 분위기의 할아버지였기에 쉽게 잊혀지지 않는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급한 것은 아니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매직보드를 풀며 달리기 시작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들 수도 있었지만, 달리면서 문제를 풀고 있는 현민은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후우..." 하연과의 대화 때문에 약간의 시간을 지체했으나 그 시간만큼 빠르게 달려왔기 때문에, 그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집으로 들어간 현민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면서 잠시 고민을 했다. 한겨울이라고는 하지만 빠르게 달려와서인지 그의 몸에서는 후끈한 기운이 일고 있었고, 땀으로 인해 끈적거렸기 때문이었다. "랭킹이라고 했어." 스윽... 마음을 정한 현민은 샤워를 나중으로 미루고 몸에 있는 땀만 닦아냈다. 랭킹으로 정해진 존재들은 그 능력이 하찮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직업, 같은 레벨, 같은 능력이라고 해도 랭킹에 속해 있는 자들은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랭킹에 들어있는 것이었고, 모두가 들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캐릭터 룬 Lv. 376 접속하시겠습니까?] 약 400만 명의 유저를 죽인 현민의 레벨은 170가량이 올라가 있었다. 계속해서 메아리치는 메시지들을 차단해 버렸던 현민은 지금 접속하기 전까지 자신의 레벨도 모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현민이 "싸울아비"에 접속했을 때, 그의 앞에는 마지막으로 만났던 npc가 헤어질때의 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부탁했던 건... 어떻게 됐죠?" "황녀님은 지금 미레이 숲에 계십니다." "미레이 숲?" 많은 여행을 다니지 못했던 현민은 엘프들의 숲이라 일컬어지는 미레이 숲도 알지를 못했다. "분쟁을 싫어하는 엘프들에게 도움을 청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곳이 어느 쪽이죠?" 현민의 물음을 들은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려 한곳을 가리켰다. 방위에 약한 현민은 그녀가 가리키는 곳이 어느 쪽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가 왔던 곳은 아니었다. 우웅... 장비창에서 마녀의 빗자루를 꺼낸 현민은 가벼운 동작으로 그 위에 올라탔다. 보는 사람들은 아슬아슬해 보일지 몰라도 마녀의 빗자루에 앉아 있는 현민은 그 무엇보다 편하게 앉아 있는 중이었다. "이쪽을 향해 날아가다 싸움이 나는 곳을 발견하면 멈춰." 우웅, 우웅, 우웅... 마녀의 빗자루가 투덜거리는 것 같기는 했으나, 현민의 말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마녀의 빗자루를 타고 있는 현민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렸고, 그곳에 남겨진 npc는 사라지는 현민을 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무사하세요." 콰콰쾅!! npc가 가리킨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가던 현민은 아래쪽에서 들리는 폭음에, 외우고 있던 메모라이즈를 멈추었다. 메모라이즈를 하기보다는 황녀와 샨이 있는 곳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질긴 년." "저런 꼴을 하고도 살아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20여명의 유저들에게 둘러싸인 샨은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멀쩡했던 팔다리는 하나씩만 남아있었고, 아름다웠던 머리카락은 화염 때문인지 전부다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왼쪽 눈은 심하게 다친 것인지 감싸고 있는 붕대사이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녀의 오른쪽 볼은 속살이 보일만큼 심하게 갈려있었다. "워, 워터... 크억!" 남아있는 오른팔을 들어 마법을 시전하던 샨은 복부에 꽂히는 하나의 검 때문에 주문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어서 끝내자구. 어릿광대라는 PK범도 잡아야 하잖아?" "그럴까?" "제가 하지요. 고통 없이 보내드리겠습니다." 턱시도에 모자를 쓰고 있는 유저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샨을 향해 다가갔고, 샨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유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녀의 앞에 있는 존재들이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춤. 잃어버린 다리를 대신하여 샨을 부축하고 있던 황녀는 다가오는 유저를 피하기 위해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녀의 뒤에는 거대한 나무가 버티고 있었고, 나무에 막혀버린 황녀는 두려운 눈길로 그만을 바라보았다. "안녕히 가시길..." 스스슥. 아무것도 없었던 그의 오른손에서 기다린 검이 모습을 드러내며 그녀들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의 움직임을 전부 보고 있던 샨은 그의 검이 자신의 목에 닿을 때 쯤, 남아있던 한쪽 눈을 감았다. '룬...' 상상 속으로나마 그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검은 금방이라도 샨의 목과 황녀의 목을 베어버릴 듯 했으나, 그 결과는 중간에 등장한 존재로 인해 정반대가 되어버렸다. 챙! "응?" "뭐지?" 샨과 황녀의 죽음을 당연히 여기던 그들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이 모르게 누군가가 나타났다는 것이 그 첫 번째였고, 턱시도 유저의 공격이 가볍게 막혔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였다. "이게 뭐야? 바보같이..." "룬..." "헤, 너...무 바보같은가...?" 서로에게 기대었기에 서있을 수 있었던 두 사람은 현민이 나타나자 그의 품에 안겨 들어갔다. 그들에게 있어서 현민이란 존재는 언제나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 다 모두 수고했어. 자고 일어나면 모든 악몽이 끝나 있을거야." 스르륵... 그의 품에 안겨있던 샨과 황녀는 현민의 한마디에 마법이라도 걸린 듯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룬의 말이었기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룬의 한마디였기에, 잠만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악몽이라고? 이 모든 것이 현실이다! 터져라! 폭발하라! 파이어 볼!" 현민이 자신의 품에 안긴 두 사람을 조심스럽게 눕히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참지 못한 한명의 유저가 현민을 향해 파이어 볼을 날렸다. 간단한 명령어로 파이어 볼을 만드는 것으로 봤을 때, 일반적인 마법사가 아니라 언령사인 것 같았다. "절대방어, 인첸트 파이어..." 화르륵! "뭐, 뭐야?" "어?! 저거 터져야 하는 것 아냐?" 자리에 누워있는 두 사람에게 방어마법을 사용한 후, 자신의 오른손에 인첸트 마법을 건 현민은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파이어 볼을 가볍게 낚아챘다. 현민의 손과 부딪힌 파이어 볼은 커다란 폭발을 일으켜야 했으나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수중호흡, 에어 브레스." 에어 브레스(2서클) 소모 정신력 : 20 능력 : 입으로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낸다. 공격력 0 현재 단계 : 10 주문 : ??? "뭐, 뭘하려고?" 파이어 볼을 들고 있는 오른손을 정면으로 가져간 현민은 그것을 향해 입을 모으고 가볍게 숨을 내뿜었다. "후우...." 화르르르륵!!! 현민의 입에서 나온 바람은 거대한 불길을 만들며 전방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불을 내뿜고 있는 현민의 모습은 서커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가 만들고 있는 화염의 크기는 왠만한(?) 방화범도 만들어내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크기였다. "이런 미친!! 솟아라! 물의 벽이여!!" 현민의 화염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욕설을 내뱉은 언령사는 자신을 둘러싸는 물의 장벽을 만들어 현민의 화염을 막아냈다. 일반적인 마법이었다면 그의 장벽을 단번에 뚫어버렸을 테지만, 현민의 공격은 단순한 마법의 조합이었기 때문에 그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블링크, 아이스, 인첸트 라이트닝." 쩌저정! 파지직! 언령사가 현민의 공격을 막고 있는 사이, 물의 벽으로 이동한 현민은 그가 사용한 마법에 왼손을 가져가며 물의 벽을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첸트 라이트닝은 얼음의 벽으로 바뀐 물의 벽에 고압의 전류가 흐르도록 했다. "나를 여기에 가두려고 하는 모양인데, 이런 것쯤은 플라이로 날아가면 그만이야." water wall(물의 벽)이란 마법은 사방만 막아줄 뿐, 위쪽까지 막아주는 마법은 아니었기에 언령사의 말대로 공중을 통해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현민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참, 이건 돌려줄게요. 저에게는 필요가 없네요." 스윽... 얼음의 벽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현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파이어 볼을 언령사 쪽으로 날려 보냈다. 일반 마법사에 비해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허공을 날아가던 언령사는 현민이 날려보낸 파이어 볼에 기겁을 했다. "아, 안돼! 누가 좀 막아줘!!!" 다급한 음성의 언령사가 주변의 유저들을 향해 도움을 요청했으나,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유저들은 현민의 뒤를 쫓기에 바빴다. 펑! 쨍그랑... 얼음의 벽에 도착한 파이어 볼은 엄청난 폭음을 만들며 폭발해 버렸고, 산산조각 난 얼음조각들은 바람을 타고 주변으로 흩어졌다. 흩날리는 얼음조각들은 아무런 공격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야하지만, 그것은 현민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였다. 파지직! "끄아아악!!!!" 바람에 흩날리는 얼음조각 하나하나에는 현민의 인첸트 마법이 걸려있었고, 그것들은 주변의 유저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갔다. 이리저리 흩어지는 얼음조각들은 하나하나가 몇 백에서 몇 천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얼음조각을 맞고 있는 그들의 HP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어서 빨리 체력과 축복!!" "여신의 가르침에..." 황녀와 샨의 뒤를 쫓고 있던 랭킹들 중에는 공격계열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체력과 능력이 순식간에 상승하였다. "몰아!!" 현민을 감싼 유저들이 일순간에 달려들며 그를 공격했다. 그들의 사이에는 조금의 틈도 없었기 때문에 현민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대지의 심판." 콰드득!! 현민의 마법에 사방에서 대지의 창이 솟아나왔으나, 현민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유저들은 그 모든 공격들을 피하며 현민에게 다가갔다. 왠만한 레벨의 그들은 현민의 공격을 맞아 줄 정도로 느려터지지 않았다. "속성변화,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젠장!!!" "뭐, 뭐야?" 대지의 심판으로 솟아오른 창들을 강철의 속성으로 변화시킨 현민은, 자신의 주변을 여왕의 거미줄로 둘러싸 버렸다. 현민을 향해 무작정 달려들던 근접계열들은 그의 공격에 맥없이 당해버렸고, 그들의 사이에 있는 현민은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인첸트 아이스." 인첸트 계열 중에 최하위에 위치해 있는 아이스는 그 효력이 나타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에 많은 유저들이 사용하지 않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효력은 일반 마법들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공격력 면에서는 최상위에 속하는 마법이었다. "누, 누가 좀 도와줘!" "뭐야? 피가 왜 이리 빨리 줄어?!" 몸의 일부분만 걸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몸 전체가 거미줄에 감싸여진 상태였기에 인첸트 아이스의 효과는 그들의 몸 전체에서 나타났다. 손 또는 발이 거미줄에 묶여 있는 존재들은 얼어붙는 과정이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으나, 온몸이 거미줄로 감싸여진 유저들은 벌써 온몸이 반 이상 얼어붙어 있었다. "그래도 랭커라는 것들인데, 저 정도밖에 안되나?" "내가 말했잖아? 알짜배기는 우리밖에 없다고." "조금은 겸손해 보세요." "그만해요, 그만~." "우리가 나설 차롄가?"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은 현민은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장소에는 화려하게 타고 있는 주변과는 다르게 멀쩡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한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의 가지에 다섯 명의 유저들이 잡담을 하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블링크, 대지의 손, 스트랭스, 헤이스트, 그레비티." 황녀와 샨이 누워있는 장소로 이동해 버린 현민은 자신의 손을 깍지 끼며 대지의 손을 만들었다. 현민의 손과 닮은 거대한 손이 땅에서 솟아올랐고, 자신을 향해 강화마법을 건 현민은, 마지막으로 거미줄에 묶여 있는 유저들을 향하여 그레비티 마법을 사용하였다. "흡!" 딸랑~. 콰직!! 현민의 공격에 얼어가고 있던 유저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순식간의 모든 유저들을 죽여 버린 현민은 웃는 얼굴로 나무 위를 바라보았다. 그의 웃음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아 보였다. "죽여 드릴게요." 씽긋. -------------------------------------------- 1월 1일에 맞춰 올리려고 했는데, 약간 늦었네요^^;; 모두 2006년 한해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_(__)_ 올해 2007년에도 모두가 웃음 지을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4화>> 수정했습니다. <<5화>> 수정했습니다."죽여 드릴게요." 씽긋. 현민의 미소를 바라본 그들은 장난스러운 태도를 지워버렸다. 그들이 바라본 현민은 최고의 마법사라는 채리플랑보다도 마법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격은 내가 막아 줄 테니 마음껏 공격해. 흡!" 쿵!! 단단해 보이는 갑옷과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던 한명의 유저가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무거운 소리를 만들었다. 그가 뛰어내린 장소를 중심으로 하여 반경 3M의 공간에 있던 대지의 심판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고, 단단했던 바닥도 모래로 변해버렸다. "조심해야 할 거야. 우리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거든." 흠칫! 나무에서 떨어진 유저를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뒤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몸을 굳혔다.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고 뒤를 빼앗긴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스릉. 팟! 두 개의 단검을 꺼낸 현민은 재빠르게 몸을 돌리며 등 뒤의 유저를 공격했다. 하지만 현민의 공격이 그의 몸에 닿기 직전에 그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고, 당황한 현민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을 때, 그의 등 뒤에서 사라진 유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문대로 빠르잖아? 순수 마법사라고 하던데..." 푹! "컥?!"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현민의 뒤에 나타난 그 유저는 현민의 옆구리에 단검을 박아 넣은 후 또 다시 사라져 버렸고, 그런 그의 모습은 방패를 착용한 유저의 옆에 나타났다. 양손의 단검을 제외하고는 방어구조차 착용하지 않은 그의 모습은 현민과 비슷해 보였다. "아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여기 아가씨들이 다치는 건 싫지?" 지속적으로 빠지는 HP를 막기 위해 힐 마법을 사용하고 있던 현민은 옆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시선을 돌린 현민의 두 눈에 보이는 것은 절대방어 속에 얌전히 누워있어야 하는 샨과 황녀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절대방어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보호해야 할 대상을 잃어버린 절대방어 뿐이었다. 샨과 황녀를 대리고 있는 유저는 절대방어를 부수지 않고, 그녀들을 꺼내간 것이었다. "우리들이 괜히 랭커는 아니랍니다." 현민의 정면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존재는 양손에 기다란 검을 빼어든 턱시도 유저였다. "미안하지만, 이번 전쟁은 우리가 이겨야겠어." 그리고 그의 뒤편으로는 마지막 남은 유저가 걸어오고 있었다. 현민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그는 가죽갑옷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있지를 않았으나, 그도 랭커인 것으로 보면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스윽... 딸랑~.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끄덕. 현민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이려던 그들은 갑작스러운 현민의 질문에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현민의 질문을 받아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들의 승리가 확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번쯤 들어 주는 것이었다. "제 랭킹은 몇 위죠?" "...내가 알기로 공식 618위, 비공식 1302위야." 현민은 상당히 알려진 유저중의 하나였으나, 그 랭킹은 그다지 높지가 않았다. "쿡쿡." 유저의 입을 통해 자신의 랭킹을 들은 현민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그 랭킹이라는 것을 누가 정했는지 심하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정~말 재미있을 거랍니다. 쿠쿠쿡." 현민의 말을 듣고 있는 유저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왠지모를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득. "너를 죽인다면 우리들로서는 즐겁겠지. 크르릉." 모두가 한껏 긴장하여 움직이는 것을 피하고 있을 때, 현민의 뒤에 있던 유저가 늑대인간으로 변하며 기다란 손톱을 만들었다. 적갈색의 털을 가지고 있는 그의 모습은, 이전에 싸웠던 늑대인간 삼촌(?)의 처음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딸랑~. 팟! 팟! 현민의 방울소리가 신호가 된 듯, 정면에 있던 턱시도 유저와 등 뒤에 있던 늑대인간 유저가 동시에 현민을 공격해 들어갔다. 늑대인간 유저의 손톱이 현민의 허리를 할퀴어 갔고, 그 뒤를 이어서 턱시도 유저의 쌍검이 현민의 머리와 심장을 노리며 날아왔다. 스르륵... 움찔! 움찔! 현민을 공격했던 그들이 너무나 쉽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들의 공격을 맞은 현민의 몸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며 상대방의 모습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당황한 그들은 황급히 몸을 틀었고, 그들의 공격은 서로의 몸을 스치듯 비켜나갔다. "일루젼이야!" 현민의 옆구리를 찔렀던 여성유저가 소리를 치고서야, 당황하던 두 유저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느 틈에 빠져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으로 빠져나가다니 대단한데?" 움찔! 그들이 서있던 나무 위로 몸을 피하여 다음 공격을 생각하고 있던 현민은 갑자기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렸다. 여기에서 들려올 여성의 목소리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땅 아래 있었던 여성 유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팟! 나무위에 서 있던 현민의 신형이 급격히 낮아졌고, 아슬아슬한 차이로 그녀의 단검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의 위험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몸을 숙여 피했던 단검이 그의 정면에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득! 자신의 눈앞에 다가온 단검에 깜짝 놀란 현민은 목에서 소리가 날정도로 급히 목을 꺾었고, 그녀의 단검은 현민의 가면을 스쳐지나갔다. 아무리 커다란 나무의 가지라고 할지라도 사람이 서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지였기에, 뒤로 피한 현민의 신형은 땅으로 떨어졌다. "혼자서 잡으려고 하지 말라고." 떨어지고 있는 현민의 앞에 나타난 존재는 샨과 황녀를 인질로 잡고 있던 남성 유저였다. 나무위의 여성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그는, 현민의 앞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면서 그의 심장을 향해 단검을 찔렀다. "블링크!" 팟! 떨어지고 있던 현민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고, 현민의 앞에 있던 존재도 현민을 따라 모습을 감추었다. 모두가 사라진 현민을 찾고 있을 때, 하늘 높은 곳에서 현민의 신형이 나타나며 또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전사랑 다섯 번째 늑대인간의 능력은 대충 알겠는데, 나머지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지?' "딴 생각 할 시간도 있나봐?" 푹! "큭!" 떨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있었기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생각을 하고 있던 현민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유저의 공격에 맥없이 당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심장을 관통당한 것이 아니라 손바닥을 관통 당했다는 것이었다. 스악... "이런!" 다급히 장비창에 손을 넣은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를 꺼내었고, 갑자기 생겨난 현민의 무기에 깜짝 놀란 유저는 현민의 손을 꿰뚫어버린 칼을 놓으며 자리를 피하려 했다. 거대한 크기에 맞지 않게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는 마녀의 빗자루는 금방이라도 유저를 두 조각 낼 것 같았으나, 그의 빗자루가 유저의 몸에 닿을 때쯤 현민을 공격한 유저의 모습은 또 다시 사라지고 난 후였다. "도대체 무..." "크아악!!" "응?" 마녀의 빗자루에 올라타 자신의 공격이 실패했다 생각하고 있던 현민은 밑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제길! 저 무긴 뭐지? 조금 전에 공간을 갈랐어..." 밑에서 비명을 지른 존재는 현민의 공격을 피해서 사라졌던 남성 유저였다. 모두가 완벽히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는지 그의 복부에는 하나의 선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공간?' 현민과 그들의 거리가 그렇게 먼 것은 아니었기에, 그의 목소리는 현민의 귀에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현민은 남성유저의 능력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펄럭! 펄럭! "귀찮게 날아다니지 마!!" 팍! "크악!!" 하늘에 떠 있던 현민이 유저들의 능력을 알아가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어깨를 움켜잡으며 그를 땅으로 끌어내렸다. "수영장, 수중호흡!" 수영장(4서클) 소모 정신력 : 부피만큼의 마나(m단위) 능력 : 사각형 모양의 공간에 물을 가득 소환한다. 지속시간인 2분 동안은 물의 양이 줄어들지 않는다. 현재 단계 : 10 땅을 향해 빠르게 내려가고 있던 현민은 땅에서부터 자신의 앞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양의 물을 만들었다.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깨에서 느껴지는 강한 힘을 볼 때, 쉽사리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풍덩! 현민과 그를 잡고 있던 존재가 물속으로 빠져 버리자, 주변에서 현민을 노리고 있던 존재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현민을 잡고 있는 존재를 믿기는 하지만, 혹시나 하는 경우 물속을 빠져나오는 현민을 죽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풀렸다!' 물의 아래쪽으로 내려가던 현민은 자신을 구속하던 발톱이 어깨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생겨난 물로 인해 당황한 그가 현민의 어깨를 놓아버린 것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물속에 신형을 정지한 현민은 자신을 잡았던 존재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흰색의 깃털뿐이었다. 꽉! '큭!' 뽀글... 현민이 사라진 존재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현민의 밑쪽에서 빠르게 올라온 무언가가 현민의 발목을 낚아채며 그를 밑으로 끌어당겼다. '인어?' 현민의 발목을 끌어당기고 있는 존재는 다섯 명의 유저 중에 늑대인간으로 형태를 바꾸었던 남성유저였다. 하지만 현민을 당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늑대인간의 형태가 아니라 인어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상반신은 이전에 보았던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하반신이 물고기의 꼬리로 변해있었다. "이거 우리들이 나설 일도 없는 것 아냐?" "소문만 무성했지, 생각보다 약하군요." "그런가?" "한명씩 덤볐다면 당했을 수도 있었겠지." 물 밖에서 대기 중인 네 명의 유저들은 물속에 갇힌 현민을 보며 긴장을 풀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그들이 나설 일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슈욱! 슈욱! 슈욱! 뽀글뽀글... 인어로 변한 유저에게 발목을 잡힌 현민은 주변에 물거품을 만들어 낼 정도로 거세게 휘둘러지고 있는 상태였다. 거친 움직임으로 인해 벌어진 입에는 쉴새 없이 물이 들어왔고, 사방팔당으로 회전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가 땅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스." 뽀그륵... "윽?" 현민의 발목을 잡고 한참을 돌리고 있던 그는 현민의 마법으로 인해 발목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의 입에서 당황한 신음이 터져 나왔으나, 현민의 신형은 빠르게 튕겨져 나갔기에 그가 쫓아갈 수도 없는 상태였다. "제가 잡을 테니, 천천히 나오시길..." 하늘높이 날아가고 있는 현민의 방향에는 턱시도를 차려입은 유저가 서 있었다. 양손에 8개의 단검을 만들어 낸 그 유저는 현민이 날아가고 있는 장소를 향해 모든 단검을 던져버렸다. "콜록! 그레비티, 해제." 허공을 날아가며 물을 토해낸 현민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단검들을 발견하고는 그레비티 마법을 사용하였다. 한순간 무거워진 현민의 신형은 빠르게 아래로 떨어져 내렸고, 턱시도 유저의 단검은 현민의 위를 지나가버렸다. 촤아악! "훗." 땅으로 내려온 현민이 바닥을 미끄러지며 중심을 잡고 있을 때, 턱시도 유저가 그러한 현민을 보며 코웃음 쳤다. 현민이 자신의 공격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현민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는 묘한 웃음만 자리하고 있었다. 흠칫! 그런 턱시도 유저의 행동에서 무엇인가를 느낀 것인지, 바닥을 미끄러지던 현민이 자신의 중심을 흩으려 버렸다. 중심을 잃어버린 현민의 몸은 바닥을 구르며 미끄러져 갔고, 현민의 몸은 한순간에 지저분해 졌다. 파파팍! 현민이 한참을 구르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간 자리로 8개의 단검이 바닥에 박히기 시작했다. 땅에 박히는 8개의 단검들은 현민이 허공에서 피했던 턱시도 유저의 단검들이었다. 독특한 직업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가 허공의 단검들을 움직인 것이었다. "후..." 현민으로 인해 피어오른 먼지가 사라지자, 엉망이 되어버린 현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6개의 구멍이 뚫린 그의 어깨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젖어있었던 그의 몸은 피어오른 먼지로 인해 지저분하게 변해버렸다. "역시 소문은 믿을게 못 되는군요." "나 혼자서도 충분할 뻔 했군." "왠지 불쌍해 보이는 걸?" "어설픈 마법조차 안 갈기니, 나는 하는 일도 없군." "인질을 괜히 잡았나?" 현민의 앞으로 다가간 다섯 명의 유저들은 현민의 상태를 보며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처음의 큰소리와 다르게 현민은 변변한 마법조차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휴... 꼴이 엉망이네요. 힐, 클린." 어깨에 뚫린 상처가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었으나 흘러내리던 피가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마법이 현민의 모습을 이전과 같이 깔끔하게 만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현민의 모습은 처음의 모습과 변함이 없었으나, 그의 생명력(HP)은 상당히 줄어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확신했답니다." 거친 움직임으로 삐뚤어진 가면을 고쳐 쓴 현민은 잠시 끊어졌던 말을 이어주었다. "당신들이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딸랑... 현민의 말을 듣고 있는 그들의 얼굴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지금의 상황은 그 누가 보더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현민의 얼굴에는 묘한 자신감이 서려있어 함부로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 씽긋. 팟! 흠칫! 갑작스러운 현민의 미소에 그들이 의아해 하고 있을 때 현민이 신형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생각도 못한 현민의 움직임에 그들의 반응이 한 박자 늦어졌다. "포그, 아쿠아, 아이스, 인첸트 라이트닝, 파이어 볼." 펑! "피해!" 넓게 퍼지는 얼음조각을 바라본 유저들은 현민의 공격방법을 기억하며 주변으로 넓게 흩어졌다. 조금씩 피어오르는 안개가 그들의 시야를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스윽. 피어오르는 안개 속으로 넓게 흩어진 그들은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현민의 공격이 날아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민 스스로도 그들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마법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그들은 현민이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 앞에 누구야?" "응?" 시야를 가리는 안개를 피해 불길이 있는 곳까지 이동해 있던 여성 유저는 안개 속에서 걸어 나오는 누군가의 모습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안개 속에서 나오는 존재가 현민일 경우 단번에 베어버릴 생각이었다. 스윽.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할 때쯤, 불가에 서있던 그녀의 신형이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녀의 신형은 안개 속에서 다시 생겨났고, 그녀의 손에 들린 칼은 정체모를 실루엣의 목에 겨누어져 있었다. "어이. 나야, 나." 목에 칼을 겨눈 채, 정체를 확인하던 여성 유저는 두 손을 들며 반가워하는 유저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너였어?" "혹시 어릿광대 못 봤어?" 안개 속을 벗어난 그는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현민 때문에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잡았겠지." 도리도리 "내가 여기 어떻게 온 줄 알아? 나는 그의 방울 소리를 따라 온 거야." 흠칫! 불을 가지고 장난을 치던 그녀는 옆에서 하는 유저의 말에 몸을 굳혔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의 주위 어딘가에 현민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스악! 남성 유저의 말에 짜증을 부린 그녀는 양손에 단검을 빼들며 주위를 경계하는데 동참했다. 그들의 능력은 시야와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안계 속에서는 다른 유저들보다 불리했다. 게다가 뒤에는 커다란 불이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기 때문에 피할 공간도 많지가 않았다. "너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어?" 불길을 뒤로 한 채 안개 속을 노려보던 그녀가 옆의 유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공간을 다루는 그의 능력이라면 일정 영역에서 움직이는 존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안개 속에서는 불가능해. 그러는 너는?" "하아, 이렇게 안개가 많은 상태에서는 시간이 정지되어도 보이는 게 없어. 오히려 허공에 떠 있는 물방울 때문에 움직임까지 느려진단 말야." "이거 참... 하아." 여인의 대답을 들은 그는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딸랑... 흠칫! 그들이 사방을 경계하고 있을 때, 그들의 귓가로 현민의 방울소리가 들려왔다. 현민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고 있었으나, 그들이 들은 방울소리는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울려 퍼진 것 같았다. "저기!" 팟! 갑작스러운 남자의 외침에 깜짝 놀란 그녀는 오른쪽을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수 있는 자세를 잡았다. 딸랑... "미안해요." 그녀가 정면을 바라보며 현민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녀의 등 뒤에서 익숙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평소에 들었던 남성 유저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들이 죽여야 하는 어릿광대의 목소리였다. 슥! 그녀의 등 뒤에 자리 잡은 현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단검을 그녀의 심장에 박아 넣으려 했다. 하지만 시간을 정지 할 수 있는 그녀는 현민의 단검이 닿기도 전에 그 위치를 벗어나 버렸다. 팟! "하아, 하아, 하아..." 시간을 정지시키자마자 앞으로 튀어나간 그녀는 급한 움직임으로 인해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 칼에 찔리지는 않았으나 죽을 뻔했기 때문인지 그녀의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려 하지를 않았다. "단칼에 죽여주겠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살짝 뻗어진 현민의 손을 부여잡으며 그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10초의 시간이 풀리는 즉시 현민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을 생각이었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3초, 2초, 1초... 응?" 그녀에게 정해진 10초의 시간이 지나갔지만, 정지되어버린 시간은 정상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 겪는 것이라 그런지 현민의 심장에 칼을 겨누고 있는 그녀의 두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의 굴레에 갇혀버렸다는 최악의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저, 접속종료! 종료! 운영자!!..."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참을 기다려 보았지만, 정지된 시간은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접속종료와 운영자 호출 등 온갖 방법을 다 해보았지만, 정지된 시간 속에서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기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 아... 흑." 공포로 질린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놓아버렸고,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싸울아비"였지만 자신의 능력은 시간과 관련된 것이었기에 어떠한 일이 생길지 누구도 장담 못했기 때문이었다. 딸랑... 딸랑... 자리에 주저앉은 그녀가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녀의 귓가에 들려서는 안 되는 방울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흠칫! 조용한 적막 속에 들리는 현민의 방울은 왠지 모를 섬뜩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희망적인 소리였다. "너, 움직일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제발... 제발 운영자를 불러줘!!" 현민을 부여잡은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르르륵... 그녀의 마음이 통했는지 굳어있던 현민의 눈동자가 움직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동자만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현민의 모습은 호러영화에 등장하는 살인 조각상 같아 보였으나,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현민의 겉모습이 아니었다. "내, 내, 내..." "응?" 굳어있는 현민의 팔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고, 마주하고 있는 그의 입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인, 가, 간으로..." "뭐, 뭐라고 하는거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인가... 현민에게 어깨를 붙잡힌 그녀는 현민의 손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강하게 잡힌 현민의 손은 좀처럼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현민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변해갔다. "내가 인간으로 보이느냐?!!!" 쩌억!! 가면이라 생각했던 어릿광대 가면이 현민의 얼굴에 달라붙으며 두 눈이 길게 찢어졌고, 붉게 칠해진 입이 위아래로 갈라졌다. 귀까지 찢어진 그의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영원한 시간의 굴레 속에서 지옥을... 크에에!!" "꺄아아악!!!" 벌어진 입 사이로 들어난 혓바닥에는 현민의 어릿광대 얼굴이 있었다. 징그러운 모습의 현민이 혓바닥(?)은 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그녀의 목을 감쌌고, 거대해진 현민의 머리가 그녀의 몸을 집어 삼켜버렸다. 아그작! 아그작! 아그작! 꿀꺽! ..... "꺄아아악!!!" 흠칫! 자욱한 안개 속에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유저는 갑자기 들려오는 여성의 비명에 몸을 떨었다. 이곳에서 비명을 지를 만한 여성은 한명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길! 꽃님이는 벌써 당한건가?" 여성유저를 꽃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는, 조금 전 현민이 모습을 바꾸었던 공간을 다루는 능력자였다. 딸랑... "거기냐?!"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그는 가까운 곳에서 방울소리가 들려오자, 현민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옮겼다. 하지만 그의 신형이 현민에게 도달하기도 전, 그는 무엇인가에 부딪히며 원래의 목적지에 도착하지를 못했다. 퍽! "제, 제길... 장애물이 있었나?" 그는 공간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한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직선거리에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게다가 두 번째, 세 번째의 공간이동은 첫 번째 공간이동의 위치에서 30m 범위 안에 있는 장소만 가능하였고, 네 번째 공간이동은 반드시 첫 번째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딸랑... "안 오시나요?" 흠칫!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문지르고 있던 그는 방울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현민의 목소리에 흠칫거렸다. 설마하니 현민의 존재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디냐?!" 딸랑... "설마, 제 위치도 모르는 건가요? 실망했습니다." 현민의 한마디에 자존심이 상해버린 그는 그동안 감추었던 기술을 사용해버렸다. "스캔." 그가 사용한 기술은 그를 중심으로 하여 반경 30m의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군." 뒤로 돌아서며 한쪽을 바라보는 그는 현민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장소를 바라보며 잔인한 미소를 흘렸다. 이 기술을 사용한 이상 그를 중심으로 30m안에서는 숨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윽. 현민의 움직임을 살피며 자리를 옮긴 그는, 현민과 자신의 사이에 장애물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사용 중이던 기술을 종료했다. 주변의 사물을 스캔하고 있을 때는 공간이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팟! "응?" 하지만 그가 공간이동을 시도했을 때, 그의 신형은 지금의 위치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팟! 팟! 팟! 팟!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여러번 시도를 해보았으나 그의 능력 자체가 사라진 것인지 한걸음의 공간도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뭐지? 도대체 무슨..." 딸랑... "그렇게 서두르실 필요는 없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을 테니 말이죠." 그들의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현민이 무슨 마법이라도 사용한 것인지, 그의 귓가에는 현민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리고 있었다. "좋아.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전하면 받아주겠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그는 스캔을 사용하여 현민을 관찰하였다. 멀리서 느껴지는 현민의 기운이 움직일 경우,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꺄아아악!!" "꽃님이가 당했다?" 쫑긋! 리자드맨과 비슷하게 변하여 현민의 냄새를 찾아가던 그는 멀리서 들려오는 여성 유저의 비명소리에 자신의 모습을 아누비스(Anubis : 자칼의 머리를 가진 사람의 모습)와 비슷하게 바꾸어 두 귀를 쫑긋거렸다. 아그작! 아그작! 아그작! "미, 미친!!!" 그의 귀에 들리는 것은 포악한 육식동물이 무엇인가를 잡아먹을 때, 들리는 끔찍한 소리였다. 엘프들이 관리하는 숲이기에 몬스터 따위는 있을 리 만무했고, 결론은 어릿광대란 존재가 무엇인가로부터 꽃님을 먹게 했다는 것뿐이었다. 부스럭. 팟!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늑대인간의 형태로 모습을 바꾼 그 유저는 10개의 손톱을 늘어트리며 상대방을 공격해 갔다. 채채챙! "어릿광대~!!!" 하지만 그의 공격은 손쉽게 막아졌고, 드디어 현민을 발견하게 된 유저가 현민을 향하여 분노에 찬 외침을 토해냈다. "그쪽에 계시던 여자분은... 정말로 맛있었습니다. 쿠쿠쿡." 가면 속에 보이는 현민의 눈동자에는 여유로움이 보이고 있었다. "크아아앙!!" 팟! 한껏 분노한 그는 모든 힘을 사용하여 현민을 밀어냈다. 늑대인간 유저에게 힘에서 밀린 현민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멋들어진 자세로 회전을 하며 가뿐히 착지를 했다. 톡톡.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가볍게 땅을 찬 현민은 양손의 단검을 다른 것으로 바꾸며 전투자세를 취했다.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그들은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참, 잊어버리고 말을 안했는데, 그녀의 능력은 제가 가져버렸답니다." 푹! "컥?!" 그가 바라보고 있는 장소에서 현민의 신형이 사라진다 싶더니, 그의 옆구리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리를 이동한 현민이 그의 옆구리에 단검을 박아넣은 것이었다. 팍! 갑작스러운 고통에 깜짝 놀란 그가 현민을 향해서 손을 휘두르기는 했으나, 그의 신형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어때요? 놀랍죠?" 늑대인간으로 변해있는 유저의 옆구리에 칼을 박아 넣었던 현민은 처음의 위치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칼을 돌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직업이지? 마법사가 아니었나?" "알려고 하지 마시길..." 또 다시 사라진 현민의 신형이 그의 등 뒤에 나타나며 늑대인간의 머리를 베어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을 때, 그의 모습이 새롭게 바뀌며 현민의 공격을 피해버렸다. "이번에는 치타? 고양이?" 새롭게 바뀐 그의 모습은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인간을 닮아 있었다. 외형적으로 바뀐 것은 귀와 꼬리밖에 없었지만, 그의 움직임은 이전에 비해 유연하고 빠르게 변해 있었다. "죽여주마." 날카로운 그의 음성에는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짐승의 끈적한 살기가 묻어나 있었다. "응? 어릿광대가 둘?" 그들의 싸움으로 인해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할 때, 그들의 싸움터에 새로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는 그 존재는 현민을 죽이고자 하는 다섯명 중에 하나였다. "무슨 소리야? 어릿광대는 저기..." "저자가 진짜 어릿광대야!!" 새로 나타난 그의 말에 의아해 하던 유저는 크게 소리치는 현민의 음성에 불안감이 들었다. "나야, 하늘! 이 모습을 보고도 모르겠어? 어릿광대가 짐승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을 하늘이라고 말하는 그 유저가 방패를 든 유저에게 자신의 팔을 보여주었으나, 방패를 든 유저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치는 두 존재는, 모두가 완벽한 어릿광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다섯명 중에 어릿광대를 이기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무슨 말을 해도 하늘의 말은 그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었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는 하늘의 귀에 똑똑히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저를 비웃고 있는 현민의 입가도 그의 눈에는 선명히 보였다. "어때요? 아직도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뭉쳐있던 다섯명의 유저들은 뿔뿔이 흩어진지 오래였고, 개인으로서 상대하는 어릿광대의 존재는 그들이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현실이고, 그것이 진실 같았지만, 현민을 대하고 있는 하늘은 그 사실이 믿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스윽. "죽이겠다!!" 팟! 한순간의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인 하늘은 순식간에 현민과의 거리를 좁히며 공격해 나갔다. 채채챙!! 칼날을 비스듬히 하고 있는 현민은 하늘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기보다 흘려버리며 그의 틈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가끔가다가 시간을 정지시키며 하늘의 몸에 칼을 박아 넣었다. "정말 모르겠군... 나의 선택이 잘못된 건가?"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방패 유저는 빠르게 부딪히는 어릿광대들의 모습에 자신의 결정을 되새겨 보았다. 두 명의 어릿광대가 모두 진짜라면 자신을 공격했을 것이었고, 둘 다 가짜라면 서로 싸움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알아보았고, 싸우는 중이었으니, 그가 보고 있는 둘 중의 하나는 가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퍼퍼퍽! 시간을 이동한 현민이 하늘의 몸에 3개의 단검을 추가로 박아 넣었지만, 거대한 몸집으로 변해있는 하늘은 현민의 공격에 주춤하지 않았다. 서로를 노리고 공격을 주고받은 그들은 이미 멀쩡한 부분이 없을 정도였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현민의 모자는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였고, 하늘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그의 몸에는 수십 개의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몸도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현민과 같은 피칠을 하고 있었다. 온몸을 뒤덮고 있는 그의 털 속에는 13개의 단검이 박혀 있어,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주었다. "마지막!" 마침내 하늘의 품으로 들어간 현민이 그의 심장을 노리며 단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현민의 칼은 하늘의 심장에 박히지 않았다. 곰의 모습을 하고 있던 하늘이, 현민의 칼이 닿기 직전에 악어의 모습으로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죽는 건 너야." 다시금 늑대인간의 모습으로 바꾼 하늘이 현민의 심장을 부여잡았다. 푹! 심장이 꿰뚫린 현민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고, 비릿한 미소를 지은 하늘은 자신의 손에 들린 현민의 심장을 거세게 뽑아버렸다. 생각 이상으로 고전하기는 했으나, 어릿광대는 자신의 손으로 죽여 버릴 수 있었다. "하늘이?" "아...!" 현민이 죽고 나서야 모든 마법이 풀린 것 인지, 그동안 알아보지 못했던 유저가 하늘의 모습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실망했어, 형. 이제야 알아보는 거야?" "미안, 미안. 그보다 다른 사람들은?" 현민의 심장을 던져버린 하늘은 방패를 가진 유저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짝짝짝... "응?" 서로 마주하여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고개를 기울였다. 한참동안 이어지는 박수소리는 그들의 주위에 울려퍼지고 있었지만, 박수를 치는 존재는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했죠? 당신들은 나를 이길 수 없다고 말이에요. 쿠쿡." 딸랑... 흠칫! 흠칫! 승리를 기뻐하던 그들은 허공에서 들려오는 현민의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당연히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현민이 박수를 치며 그들을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하지만 혹시나 하고 돌아본 자리에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현민의 시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현민의 시체는 거짓이 아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고민하지 마세요. 이제 곧 5분이랍니다." "뭐?" 쩌저적! 쩌적! 그들이 황당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그들이 있는 '공간'에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유리처럼 갈라지는 그것들은 그들이 바라보는 모든 사물에 생겨나며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4, 3, 2, 1." 챙그랑! 현민의 카운트다운에 맞추어 주변의 사물들이 산산조각 나며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야를 가리던 안개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고, 그들이 싸웠던 장소는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이었다. "아!" "조!" 새로워진 환경을 눈여겨 살펴보던 그들은 땅바닥에 누워있는 한명의 유저를 보며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심장에 구멍이 뚫려 죽어있는 유저가 어릿광대가 아닌 턱시도를 입고 있던 유저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턱시도는 걸레처럼 변하여 처음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다른 곳에 비해 말끔한 그의 얼굴은 분명히 조의 얼굴이었다. "너, 너 도대체 무슨 짓을?!!" "정말로 내가 죽인거야? 그런거야, 형?"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그들은 지금의 상황에 경악하고 있었다. 현민의 마법은 그들의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과 촉각까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의 환상이 재미 있으셨나요?" 그들의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던 현민은 더 이상의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기에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모든 게 환상이었다고? 전부 거짓이었단 말야?" "음... 이건 사업상 비밀인데요. 마법의 이름은 '진실 된 거짓'이고, 능력은 지금 겪으신 것과 같이 오감의 완벽한 혼란이랍니다." 환상 마법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위협을 줄 수 없는 마법 중에 하나였지만, 그것은 하나의 존재만 걸렸을 때 해당하는 경우였고, 지금과 같이 단체로 걸릴 경우에는 피아의 분별력을 낮출 수 있기에 상당히 유용한 마법이었다. "그리고 조심하세요. 지금의 마법은 살.짝. 위험한 마법이거든요." 씽긋. 그들을 향해 경고 해주는 현민의 주위에는 수십 개의 마법진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었고, 그의 발밑에는 정신을 잃은 샨과 황녀, 꽃님이라는 유저가 누워 있었다. "자, 그럼~. 천..." 쿠르르르릉!!!! 내려져 있던 현민의 손이 하늘 높이 올라가자 맑았던 하늘에 거대한 크기의 먹구름이 모여들며 위험한 소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내 쪽으로 붙어!!" 팍! "인내, 강화, 천상의 보호!" 아무것도 모르는 하늘(유저)은 현민을 노려보며 날아올 마법을 대비했지만, 이전에 한번 현민의 기술을 본 적 있었던 방패 유저는 하늘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최강의 방어기술을 사용했다. "자, 잠깐! 나도..." 하늘을 향해 방패를 올려 든 유저가 앞으로 다가올 공격에 대비하고 있을 때, 공간을 다루는 유저가 그들의 곁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공간을 다루는 유저와 그들의 사이에는 상당한 장애물과 거리가 있었기에 단번에 이동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벌." 하늘 높이 솟았던 현민의 손가락이 유저들을 가리키며 떨어져 내렸고, 하늘에서 내려온 어마어마한 빛덩어리가 그 일대를 집어삼켜버렸다. 콰콰콰콰쾅!! 그 후에 들린 어마어마한 소리는 그들의 귀를 마비시켰으나, 현민의 방어막 안에서는 사일런스 마법이 사용되고 있었기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길!!"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왔을 때, 현민이 가장 먼저 들은 것은 욕설을 내뱉는 하늘의 목소리였다. 방패 유저의 방어 범위내로 공간이동하던 유저가, 아슬아슬한 차이로 자신의 오른손만을 방어 범위 안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길게 뻗어진 그의 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사라져버려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랍니다." "너, 이 자식!!" 또 한명의 동료를 눈앞에서 잃어버린 두 사람은 현민을 향해서 강한 살기를 드러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냥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누가 사냥 당하고 있는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디그~♪." 팟! 현민의 마법에 그들이 딛고 있던 마지막 땅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그 일대의 땅이라고는 현민이 서 있는 장소밖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바닥을 잃어버린 그들은 어둠속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지만, 하늘이라는 유저는 다른 짐승의 모습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었기에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 "으아악!!" 문제는 빠르게 떨어져 내리고 있는 방패 유저였다. 갑자기 없어진 바닥에 놀란 그는, 하나뿐인 방패도 잃어버린 채 두 팔을 버둥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걱정마세요. 당신을 위해 준비해둔 것이 있답니다." 딸랑. 떨어지는 유저와 그런 유저를 구하기 위해 날아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현민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절대방어." 현민이 사용한 절대방어는 그의 주변을 감싼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날고 있는 하늘(유저)의 신형을 감쌌다. 하늘을 감싼 절대방어는 그의 움직임에 방해를 주지는 않았으나, 그가 방패 유저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파이어볼." 화륵! 다음에 이어진 마법은 현민의 손 위에 커다란 불덩어리를 만들었고, 현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불덩어리를 방패 유저에게 던져버렸다. 현민의 손에서 계속 날아가는 파이어볼은 방패 유저의 신형이 벽에 닿을 때까지 끊어지지 않았다. 펑! 펑! 펑!... 파이어 볼은 그에게 커다란 데미지를 주지는 않았지만, 허공에 떠 있는 그를 뒤로 날려 보내기에는 충분했다. "디그, cobweb of queen, 파이어볼." 방패 유저가 도착할 벽면에 거대한 구멍을 만든 현민은 그곳을 거미줄로 둘러쌌다. 마지막 파이어볼이 방패 유저와 부딪히며 폭발해버렸고, 그의 신형은 빠르게 밀려나며 현민이 쳐놓은 거미줄에 정확히 걸려버렸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모든 준비를 끝낸 현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살아남은 두 명중 한명은 현민의 거미줄에 걸려있는 상태였고, 또 다른 한명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허공만 날아다니고 있었다. "대지의 손, 스트랭스, 헤이스트, 전사의 투지." 방패 유저가 묶여 있는 장소에 거대한 땅의 손을 만들어낸 현민은 자신의 몸에 갖가지 보조마법을 걸었다. "흥, 네가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나한테는 안 통해." 방패 유저의 앞에는 엄청난 크기의 주먹이 생겨나 있었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걱정보다 여유로움이 떠올라 있었다. 모든 스텟을 생명력과 방어력에 투자한 그였기에, 현민의 마법정도는 가볍게 맞아줄 수 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대지의 심판, 속성변화." 현민의 마법이 사용되자 그의 앞에 있던 주먹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주먹의 이곳저곳에서 날카로운 창들이 솟아나왔고, 주먹전체가 강철처럼 변화하자 그의 마음에도 불안감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바위정도는 문제가 없었지만, 강철은 약간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멈춰!" 하늘에서 현민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하늘(유저)은 방패 유저의 불안한 얼굴에 그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주위는 절대방어가 감싸고 있었기에 날카로운 발톱으로 공격을 할 수가 없었고, 남은 방법이라고는 무식한 육탄공격뿐이었다. "해제, 아이스 애로우." 쉬익! 하지만 현민의 공격을 생각하지 못했던 그는, 현민을 향해 날아가는 중, 아이스 애로우에 어깨를 꿰뚫리고 말았다. 그의 어깨는 빠르게 얼어붙었고, 한쪽 날개를 잃어버린 그는 더 이상 하늘을 날지 못하여 추락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기다려주세요." 순식간에 하늘을 떨어뜨려버린 현민은 사라진 마법을 다시 사용했다. "대지의 손, 대지의 심판, 속성변화." 방패 유저의 앞에 거대한 주먹이 또 다시 생겨났고, 거미줄에 잡혀 있는 그는 살기어린 얼굴로 현민을 노려보았다. 그들의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그의 살기가 현민에게까지 다가가지는 못했으나, 현민을 죽이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다듬을 수는 있었다. "자~, 그럼 조심해주세요." 스슥... 두 주먹을 말아 쥔 현민은 앞으로의 움직임을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리스." 팟! 파팟! 팟! 팟! 파파팟! 주먹에 힘을 모은 현민은 정면을 향해 오른손을 내뻗었다. 빠르게 날아간 그의 주먹은 허공을 때린 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고, 오른손의 뒤를 이어 왼손이 허공을 강타했다. 그의 시선은 허공의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의 두 주먹은 그곳만을 집중적으로 때리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그의 주먹에 맞추어 생기는 엄청난 소리가 천벌로 생긴 거대한 구멍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빠르게 끊어지는 그 소리는 일종의 음율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곳곳으로 메아리치던 그 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져버렸다. "겨우 이 정도냐? 크크." 거미줄에 묶여있던 그가 거대한 땅의 손을 부셔버린 것이었다. "당신의 능력... 충격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것이었죠? 제가 실수했군요." 그의 능력을 깜빡했던 현민은 자신의 실수를 순순히 인정했다. 물리적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그는 현민의 공격을 흡수하여 주먹에 그대로 방출했던 것이었다. 주먹에 솟아난 가시로 인해 그 자신도 상당한 충격을 받기는 했으나 죽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대지의 손." "하하하, 강철의 주먹도 멀쩡한 이 몸한테, 바위로 공격하려는 거냐?" 자신의 앞에 솟아난 바위 주먹을 바라본 유저는 이전보다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이번에 만들어진 주먹에서는 뾰족한 가시들도 보이지 않았고, 강철같이 단단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슥. 스슥... 오른팔을 휘두른 현민은 그 반동을 이용해 회전하기 시작했다. 오른손을 내지른 후, 반 바퀴 회전한 현민은 왼발로 중심을 잡으며 오른발을 들어올렸다. "어스퀘이크." 쿵! 빠르게 움직이는 대지의 손에 작은 진동을 만든 현민은, 들어 올린 오른발을 강하게 내리며 허리를 비틀었고, 어깨를 비틀었다. 쾅!!! "그냥 죽어주세요." 하지만 현민의 부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쿨럭! 크으..." 거미줄에 걸려있는 그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몇 번의 기침을 하고난 그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의 생명력과 방어력이 현민의 생각보다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번 것도 약하군, 크크크." "하아, 정말 미안해요. 이것까지는 하지 않으려했는데..." 그의 비웃음을 들은 현민은 최후의 수단을 꺼내기로 했다. 왠만하면 편안(?)하게 보내주려 했으나, 그가 자신의 호의(?)를 거절하고 있었으니, 최악의 수단을 꺼내기로 한 것이었다. "대지의 손." 현민이 만든 대지의 손은 방패 유저의 앞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의 등 뒤에서 생겨났다. 정면에 만들어지지 않은 대지의 손이 방패 유저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나, 앞이나 뒤나 방어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앞으로 다가올 공격을 비웃어 주려고 생각했다. "어스 스피어." 양손을 깍지 낀 현민은 검지손가락과 중지손가락을 뻗으며, 손가락의 끝에 하나의 창을 만들었고, 왠지 모를 비장한 분위기를 풍기며 방패 유저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정말... 미안해요. 흡!" 푸욱! "크어어어어..." 움찔! 움찔! 현민의 공격은 어린아이들의 장난 같았으나, 그 효과는 너무나 확실했다. 대지의 창에 엉덩이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찔린 방패 유저는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극심한 고통에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엄청난 고통과 함께 죽음을 경험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하아..." 피식! 방패 유저의 죽음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현민은, 한숨의 끝에 묘한 바람소리를 만들었다. 파파팍! 흠칫! 이제는 죽어버린 방패 유저를 향해 미안한(?) 마음을 표하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발 앞에 꽂히는 3개의 화살에 몸을 굳혔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유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어스! 사라진 땅을 만들어주세요." 쿠어어!! 낭랑한 목소리가 현민의 귀에까지 들려오고 있을 때, 현민이 만든 구멍의 밖에서 엄청난 크기의 존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땅의 정령이라고 생각되는 그 존재는 현민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구멍을 단번에 채워버렸다. "와~. 땅의 상급 정령인가요?" "당신이 숲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아세요?!!" 현민의 앞까지 다가온 그 존재는 순백이라는 말이 어울려 보이는 엘프들이었다. 현민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그들은 현민의 행동으로 인해 숲이 사라져버리자 상당히 분노한 것 같았다. "물론이죠." 그들에게 답하고 있는 현민은 미약한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역시 인간들은..." "그러는 당신들은 어째서 숲으로 도망 온 인간들을 보호해주지 않았죠?" 현민을 향해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던 엘프들의 대표는 갑작스런 현민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째서 그들의 분쟁을 보고만 있었나요?" "친구의 부탁이 있었어요." 엘프들의 대답을 들은 현민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웠다. 가면을 썼기에 그의 얼굴이 들어나지는 않았으나, 차가워진 그의 눈과 다물어진 입을 본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겨우 그 따위 이유로..." "어.릿.광.대..." 흠칫! "뭐죠?" 엘프들의 태도에 화가난 현민이 마녀의 빗자루를 깨우려 할 때, 엘프들의 뒤편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득한 살기가 묻어있는 그의 음성에 깜짝 놀란 엘프들이 길을 열어주었고, 그 길의 끝에는 어깨의 상처를 회복한 하늘이 현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는 정말 화가 나게 만드는구나." "그런가요?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죠?" 크아아앙!!! 두 눈을 붉게 물들인 하늘은 짐승과 같은 울부짖음을 내뱉었다. 그의 울부짖음은 숲의 곳곳에 메아리쳤고, 이내 거대한 움직임이 현민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푸드득. 쿠구구구궁... 그들의 머리 위에는 엄청난 수의 새들이 하늘을 가리기 시작했고, 땅 위에서는 육식, 초식 가리지 않고 모든 동물들이 달려와 현민을 향해 강한 적개심을 내비치고 있었다. 현실과는 다르게 상당한 숲을 자랑하는 "싸울아비"의 세계에서는 그 숲의 크기만큼 엄청난 양의 동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장로님은 물러나 주세요." "후우, 동물들에게 피를 묻히시려는 겁니까." 하늘(유저)을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보인 엘프의 대표는 주변의 엘프들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하늘의 움직임이 불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큭큭, 크크크, 꺄하하하하하!!" 딸랑딸랑딸랑... 수천, 수만 마리의 동물들이 현민을 향해 살기를 들어내자 주변의 사물이 부서질 정도로 거센 압력이 현민을 둘러쌌다. 하지만 그들의 살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현민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고, 오히려 그들을 황당하게 할 만큼 커다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웃어라. 그게 마지막일테니... 크르릉." "후훗, 말했죠? 당신은 저를 이길 수 없어요." 팟! 짧았던 현민의 머리카락이 갑작스럽게 자라나며 발목까지 내려왔고, 살짝 떠있던 달이 현민의 머리위로 급격히 떠오르며, 하늘을 비추던 해가 모습을 감추었다. 어두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하나의 달은 현민만을 비추고 있었다. 털썩! 현민을 바라보고 있던 엘프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고, 인간보다 예민한 동물들은 앞으로 다가올 일 때문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태도에 이상함을 느낀 하늘이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그들의 행동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었기에 통제가 되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궁!!!! 그들이 서 있는 땅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하늘을 뒤덮고 있던 새들이 서둘러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쿠어어어!!! 크아앙!!! 끼이익!! 까악! 까악! "이건 말도 안돼, 사기야... 설마, 운영잔가...?" 펄럭! 쿵! 숲을 가득 채울 정도로 모여든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은 현민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거대한 크기를 가진 자이언트나, 사이클롭스도 현민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와이번이나 그리폰도 날개를 접고 현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지금의 저는..." 장비창에 손을 가져간 현민은 어릿광대 가면을 마녀의 가면으로 바꾸었다. "...모든 몬스터들의 어머니랍니다." 그만을 비추는 달빛 아래서 몬스터들의 경배를 받고 있는 현민의 모습은, 너무나 공포스러웠고 사악해 보였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아름답고, 성스러워보였다. ------------------------------------------- 정말 길죠? 두편으로 나눠서 올릴까 하다가 중간에 끊어지면 아쉬울 것 같아서 한편으로 올렸습니다^^; 담비 : 염화야, 염화야. 엄마가 영어로 뭐야? 염화 : ...mama 담비 : 호오~? 그럼 우리 오빠 몬스터 맘마야? 염화 : (주르륵)...;;; "마, 마녀..." 마녀의 공포를 잘 알고 있는 엘프들은 앞으로 다가올 두려움에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파괴적인 힘과는 반대로,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마녀들은 깊은 숲속에 숨어살기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그녀들을 화나게 할 경우에는 대륙이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녀들 중에서도 최강의 마녀를 건드렸으니, 그들의 죽음은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털썩! "저, 저희들의 무례를 용서하시고, 저희들의 죽음만으로 끝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드래곤이 와도 당당히 죽음을 맞이하는 엘프들이 현민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상계의 균형을 담당하는 드래곤들은 죄를 지은 자만을 벌하지만, 마녀란 자들은 죄를 지은 존재뿐만 아니라 종족 그 자체를 없애버리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부활한 호비트들도 과거 마녀들에게 멸족 당했던 종족 중 하나였다. "지금의 이것은 다른 존재들에게 보내는 경고일 뿐, 저는 당신들의 피를 원하지 않습니다." 엘프들에게 말하고 있는 현민의 두 눈동자는 하늘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꿀꺽...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죠?" 현민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하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더 이상 그의 편은 존재하지가 않았다. 몬스터들의 살기에 놀란 동물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숨어버린지 오래였고, 그의 친구였던 엘프들도 현민을 피해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그는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나하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 다섯 명이, 단 한명의 마법사에게 당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시간을 멈추는 직업, 공간을 다루는 직업, 모든 충격을 막아낼 수 있는 직업, 검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직업, 그리고 모든 동물을 다루고 동물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자신의 직업까지, 그 어느것 하나도 마법사에 뒤지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들의 패배였고, 승자는 자신들이 비웃었던 어릿광대였다. "당신들이 조용히 즐겼다면 저 또한 나설 일이 없었겠죠." 와이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현민이 하늘의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가 정령사로서의 능력을 사용했다면 당신들을 상대하는데 3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는답니다." 너무나 오만한 소리였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령화를 할 때는 현민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수치의 정신력이 전부 정령력으로 바뀌기 때문에 그들이 현민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정령화한 현민의 정령력은 천 레벨대의 정령들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어째서 npc들의 편에 서는 거냐. 너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게임을 통해서 나라의 이익을..." "대지의 족쇄." "큭!" 하늘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던 현민은 대지의 족쇄를 사용하여 그의 신형을 묶어버렸다. "당신 게임이라는 말이 뭔지는 아세요?" "크으으..." 하늘을 구속해 놓은 현민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너무나 여성스러운 그의 발걸음이었으나, 진실은 기다란 머리가 바닥에 끌리기도 했고, 자신의 발에 밟히며 뽑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게임이라는 것은 이익을 생각하기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놀이를 말하는 거예요. 게임에서조차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스윽... "굳이 게임을 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두근! 살짝 머리를 넘기며 웃음 짓는 현민의 모습에, 하늘의 가슴이 두근거리기며 금단의 사랑(?)에 눈을... 뜨지는 않았다. 다만, 현민과 겹쳐 보이는 여인의 슬픈 미소에 가슴이 두근거린 것뿐이었다. "너, 너는 도대체 뭐지...?" 하늘의 질문에 현민이 입을 열었고, 현민의 모습에 투영된 존재가 입을 열었다. "이미 알고 있잖아요? 제가 어릿광대란 사실을 말이에요." - '파괴 속에 웃음 짓는 달의 마녀' 아세인이랍니다. 스르륵... 현민의 모습에 투영된 존재는 달의 카드가 기억하고 있던 아세인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죽어버린, 아니 새롭게 환생을 했다는 '파괴 속에 웃음 짓는 달의 마녀' 아세인이 잠깐 동안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니면, 저의 신상정보를 물으신 건가요?" "아?" 아세인의 환상 속에 빠져있던 하늘은 현민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잠깐 보였던 아름다운 존재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 그의 앞에는 자신의 친구들을 죽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쩡! 삭! 순간적인 힘으로 오른팔의 구속을 풀어낸 하늘이 현민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오른팔을 제외한 다른 곳들은 구속이 풀리지 않았기에 그의 공격범위는 짧았지만, 그런 그를 향해서 현민이 다가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가장 큰 기회였다. 푸학! 자신의 손톱이 현민의 목에 도달하기 까지 현민에게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기에 하늘은 자신이 그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가 원하던 피가 나온 곳은 현민의 목이 아닌 자신의 어깨였다. "아아악!!" 툭. "감히, 어디에 손을 대느냐?!" 하늘의 팔을 잘라버린 것은 어둠속에 산다는 뱀파이어였다. 상위 몬스터의 하나로 분류되는 뱀파이어들은 갓 태어난 존재가 200대의 레벨이었고, 필드에서 돌아다니는 뱀파이어들은 기본적으로 500레벨이 넘었기에 지금의 "싸울아비"에서는 홀로 잡을 수 없는 몬스터 중에 하나였다. "괜찮으니깐 뒤로 물러나주세요." "네에..." 현민의 말을 들은 뱀파이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서 현민의 위험을 막아주었지만, 매정한(?) 현민이 한마디의 말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무룩한 표정의 뱀파이어가 하늘의 팔을 걷어차며 현민의 옆을 스쳐지나갈 때, 그런 그를 향해 현민이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요." 단 한마디의 말이었으나, 그의 말을 들은 뱀파이어의 표정에서는 화사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현민이 해주는 칭찬은 어머니가 해주는 칭찬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든 사람이든지 칭찬을 받고 기분이 나쁜 존재는 없는 것이다. "헤헤헤..." 헤픈 웃음을 흘리는 뱀파이어는 뒤에 있는 몬스터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현민이 위험에 처한 순간 모두가 움직였지만, 그가 가장 먼저 도착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민은 자신의 주변에 여러 마리의 몬스터가 도착했던 것도 알지 못했다. "그걸 끊어버리다니... 생각보다 강하시네요." 하늘을 향해 말하고 있는 현민은, 자신의 마법이 끊어졌다는 게 뜻밖인 것 같았다. 평소의 그라면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그는 무슨 생각이 있어서인지 확실한 악역을 자처하고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낮게 깔린 하늘의 목소리에는 현민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가득 담겨 있었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현민은 이전과 다름없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말했잖아요. 당신 정도로는 나를 죽일 수 없어요." "크아앙!!" 현민의 말에 분노한 하늘이 다시한번 발악적으로 움직여 보았으나, 그를 묶고 있는 족쇄는 이전과 같이 끊어지려 하지 않았다. "앞으로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아주세요." 울부짖는 하늘을 향해서 경고를 해준 현민이 뒤로 돌아섰을 때, 이제는 지쳐버린 하늘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우리가..." "응?" "우리가 이 제국을 정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게임에서조차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을 거다. 그래도 좋은 거냐?" 하늘의 말은 사실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작된 전쟁은 어느 순간부터 국가적으로 발전되어 있는 상태였고, 지금에 와서는 다른 나라의 이익까지 차지하기 위해 유저들끼리 전쟁을 하는 곳도 있었다. 그중 가장 위험한 세력이 중국이었고, 대한민국은 그런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NPC들의 힘을 흡수하려 했던 것이었다. "훗, 걱정하지 마세요." 몬스터들을 향해 돌아서있던 현민이 하늘을 향해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안 그래도 모든 유저들을 죽여 버릴 생각이랍니다." 씽긋. 두근! 지금의 심장소리는 금단의 사랑(?)에 눈을 뜬 것일지도... "그럼, 안녕히... 속성변화, 지옥의 문" 지옥의 문(5서클) 소모 정신력 : 230 능력 : - 땅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며 대상을 집어삼킨다. - 대지에 생겨난 구멍에서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현재 단계 : 7 주문 : 모든 영혼은 땅으로 돌아가니, 지금 그 사자(死者)의 문을 열어 살아있는 존재를 돌려보내.............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하여 대지의 족쇄를 강철의 속성으로 바꾼 현민은, 하늘의 발밑에 지옥의 문을 시전하였다. 하늘의 발밑에 생긴 검은색의 구멍은 그의 몸을 천천히 끌어당겼다. 차갑고 끈끈한 감촉은 그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철컹!! "이리와! 비겁하게 싸우지 말고 덤벼!! 당당하게 싸우잔 말이다!!" 점점 멀어지는 현민을 바라보는 하늘의 움직임은 상당히 거칠었으나, 그를 구속하고 있는 대지의 족쇄는 끊어지려 하지 않았다. 외형만 늑대인간인 하늘은 늑대인간 특유의 치유력과 재생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잘려진 어깨의 상처를 통해 상당량의 HP가 빠져나가며 일부 스텟을 제한당했기 때문이었다. "아참!" 하늘의 신형이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을 때, 몬스터들을 향해 걸어가던 현민이 무엇인가 생각난 듯 뒤를 돌아보았다. "다섯 명의 유저들 중에서 당신이 가장 약했어요." 씽긋. "으악! 아아악!!" 철컹! 현민의 상큼한(?) 미소를 바라본 하늘은 갖가지 동물로 변신을 하며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으나, 이미 가슴까지 들어와 있는 상태였기에 그의 반항은 무의미했다. "반드시!!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웁!!!" 하늘의 시끄러운 외침은 그의 입이 어둠속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기분 나빠진 몇몇 몬스터들이 지금이라도 달려가 하늘의 머리를 뜯어 먹으려 했지만, 현민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하였다. "저런거 먹으면 배탈 난답니다." 크르릉... 현민은 그들을 걱정하는 자상한 어머니(?)였기 때문에, 모든 몬스터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켰다. ------------------------------------------------ 200회의 리플이 950개를 넘겼답니다. 천을 넘겼다면 조금더 기념적이었겠지만, 너무 욕심부리면 안되겠죠? ^^a 200회를 축하해 주신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모든 분들이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기 위해 조금더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_(__)_ 주변의 몬스터들을 말리고 있던 현민은 하늘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져버리자 뒤를 돌아보았다. 하늘의 처리도 끝났으니, 이제 하나의 존재만 남은 상태였다. "자, 당신이 마지막이네요." 현민이 바라보는 장소에는 샨과 황녀, 그리고 현민의 환상마법에 기절해 버린 꽃님이란 유저가 누워 있었다. "음, 저기..." 툭툭. 당당한 자세로 꽃님에게 다가간 현민이었으나, 기절해 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현민의 손길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녀의 앞에 쪼그리고 앉은 현민은 그녀를 깨우기 위해서인지 팔을 살짝살짝 건드리기만 했다. 4명의 유저를 죽인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그의 손길에 주변의 몬스터들이 답답해했으나,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저기요..." 흔들흔들 툭툭 찌르기만 하던 현민은 그녀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자, 용기(?)를 내어 그녀의 어깨를 흔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깨어나지 않는다면 아쿠아 마법을 사용할 하려는 현민이었다. "으음..." 현민의 마음이 통한 것인지, 그의 조심스러운 손길에 그녀의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일어나셨어요?" 그녀의 눈이 절반쯤 떠졌을 때, 환한 미소를 지은 현민이 인사를 건냈다. 하지만 완전히 눈을 뜬 그녀의 반응은 현민이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꺄아아아아악!!!" 흠칫! 털썩! 움찔! 갑작스러운 꽃님의 비명에 깜짝 놀란 현민은 뒤로 넘어져 버렸고, 주변의 몬스터들이 몸을 떨었다. 설마하니 깨어나자마자 비명을 지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당황하게 한 것은 그녀의 다음 행동이었다. "으아아앙!!! 엉엉엉..." 모두를 놀라게 할 정도로 커다란 비명을 내지른 그녀는, '흑흑'도 아니고 '엉엉'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현민의 마법에 독하게 당한 그녀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아, 저기..." 아는 여자가 울고 있어도 당황할 판에 모르는 여자가 서럽게 울고 있으니, 그녀의 앞에 있는 현민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이럴 때는 살짝 안아주는게..." 찌릿! 그나마 인간들과 밀접한 뱀파이어가 현민을 향해 한마디 해주었지만, 뱀파이어의 말을 들은 현민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현민의 눈초리에 상처받은 뱀파이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이언트 뒤에 몸을 숨겼다. "괜찮아요. 모든 것은 환상이었답니다. 모든 것은 거짓일 뿐이에요..." 옆에서 잠자고 있는 샨과 황녀가 깨어날 것을 걱정한 현민은, 그녀들의 주변에 사일런스 마법을 사용한 후, 울고 있는 꽃님을 달래주기 시작했다. 안아주지도, 그렇다고 손도 잡아 주지는 못했으나,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달래주었다. "흑, 훌쩍!" 울고 있는 그녀의 눈과 가면 속에 있는 현민의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울음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차분히 가라앉은 현민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놀란 그녀의 마음도 진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진정됐나요?" "다른 사람들은..."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질문은 그녀와 함께 했던 다른 유저들에 대해서였다. 조용한 주변으로 인해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자신과 같은 예외의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민의 대답은 그녀가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 죽여 버렸답니다." 흠칫! "어, 어째서 나만..." 현민을 향해 묻고 있는 그녀의 눈에는 작은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환상보다 더욱 무서운(?) 일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왜 당신을 죽이지 않았냐고요?" 끄덕 꽃님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가 잔뜩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여도 남자거든요." 스윽... 꽃님과 마주하고 있던 현민이 쓰고 있던 마녀의 가면을 벗어버리자, 아름다웠던 현민의 목소리가 평소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여성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아요." 남녀의 성별을 떠나서 현민에게 죽는 존재들은 '적'이라고 규정되어진 존재들뿐이었다. 현민의 앞에 있는 꽃님도 '적'이라 정해진 유저 중에 하나였으나, 그녀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었기에 아직까지 죽이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저의 힘을 알리기 위해서랍니다." 여기까지 말한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네 명의 꼬마정령들을 불렀다. "윈디아, 묘, 염화, 담비야." 현민의 부름에 나타난 네 명의 꼬마정령들은 주변의 몬스터들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많은 존재의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담비를 제외한 3명의 꼬마정령들에게만 해당되었을 뿐이었다. "와~~, 장난감이다, 훌쩍!" 주변에 있는 수많은 몬스터들을 보며 환호성을 내뱉은 담비가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한 자세를 잡았으나, 재빨리 움직인 현민의 손이 그런 담비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제발 참아주렴. 윈디아, 담비 좀 잡아." "장~난~감~~!!" 움찔! 담비가 칭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낀 것인지, 현민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한걸음 물러나 버렸다. 현민의 곁에 있는 담비는 그렇게 강한 존재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본능이 담비라는 존재를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묘." "헤헤, 또?" 손에 들려진 담비를 윈디아에게 맡기 현민은 묘를 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에는 묘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스르륵... 묘의 손이 현민의 손을 마주잡자, 그들의 몸이 물방울로 변하며 허공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허공에 떠다니는 작은 물방울들은 현민의 몸이 전부 부서질 때까지 그 상태를 유지하였고, 현민의 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흩어지고 나서야 한곳으로 모이며 뭉치기 시작했다. "유후~." "도대체 무슨...?!" 현민의 변화를 모두 지켜본 꽃님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던 현민이 완벽히 사라지며 새로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나타난 존재는 그가 보았던 현민과 모습도 달랐고, 성별조차 완전히 달랐다. "잘 봐둬요. 내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꽃님을 향해 단단히 말해둔 현민은 샨과 황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현민의 손길에 생겨난 작은 물방울들이 그녀들의 몸을 감싸 안았고, 그녀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공에 몸이 떠올랐다. "일단, 샨부터 치료해 볼까?" 지면에서 살짝 떠 있는 현민이 샨에게 이동하여 그녀의 배를 어루만졌다. "새살이 쏙쏙~." 찰랑~. 현민의 주문으로 모여든 주변의 물방울들이 샨의 몸에 부딪히며 그녀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을 둘러싼 물방울들이 곳곳에 난 상처들을 없애주었고, 팔과 다리, 그리고 눈에 집중되어진 작은 물방울들이 사라져버린 그녀의 신체를 새롭게 만들었다. "말도 안돼! 대신관만 가능하다는 리커버리를 마법사가?" 꽃님이 말하는 리커버리란 것은 사라진 신체를 다시 만드는 것으로, 교황의 바로 아래인 원로나 대신관 이상이 되어야만 사용 가능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현민의 진실한 능력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똑같은 방법으로 황녀의 상처들도 치유해준 현민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꽃님을 바라보았다. "이런걸로 놀라면 재미없지 않아요? 쿡쿡." 꽃님의 볼에 물방울을 튀긴 현민이 힘을 사용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루아 데 이카르. 샤르 가 하데 비아른..." 찰랑. 스스슥... 허공에 방울진 물방울들이 현민을 주위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거센 물방울들의 움직임에 현민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카르가 레 호아 이루샤." 이제는 하나의 물이 되어 거칠게 움직이는 소용돌이 속에서 현민의 모습이 또한번 바뀌기 시작했다. 두 개로 갈라졌던 현민의 발이 하나로 합쳐지며 물고기의 기다란 꼬리로 변해버렸고, 그가 입고 있던 상의 또한 가슴이하의 부분과 어깨를 덮고 있던 부분이 사라지며 좀 더 노출된 모습이 되었다. 그의 어깨와 목 사이에 작은 아가미가 생겨났고, 현민의 두 귀는 동화 속에 나오는 정령처럼 지느러미 비슷한 모양으로 변해버렸다. "세이렌?" 그의 눈앞에 있는 현민의 모습은, 하늘이 보여줬던 어설픈 인어가 아니라,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완벽한 인어공주의 모습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찰랑! ----------------------- 이름 : 룬. Lv : 752 직업 : 물의 정령. 정령력(精靈力) : 306,842 ----------------------- 자신의 영역을 최대로 넓힌 현민은 그 범위 안에 죽어있는 npc들의 시체를 물로 감싸기 시작했다. 수도와 대도시에서는 많은 npc들이 죽어 있어서 엄청난 양의 정령력이 소모되었지만, 지방이나 외곽쪽으로 갈수록 죽어있는 시체들이 줄어들어서인지 소모되는 정령력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전쟁이 커다란 도시에서 일어났기에 그런 것이었다. "깊디깊은 잠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들이여," 현민은 소생 마법의 주문을 외우고 있는 동시에, 남아있는 정령력을 계산하여 최대한으로 부활시킬 수 있는 사람의 수를 계산하였다. '현재 있는 정령력이 264,801이니깐, 부활 가능한 수는 2,648명밖에 되지 않는건가? 거기에 시간당 소모되는 정령력과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정령력까지 계산해 보면, 대략 2,623명...' 여기까지 생각한 현민은 주문을 외우고 있는 동시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령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동작 없이 생각만으로도 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허공에 그려졌다. '마력을 증폭하는 마법진을 4개, 소모되는 정령력을 줄여주는 마법진이 3개. 그러면 128배로 증가하니깐... 335,744명. 좋아!' "어둠속의 환상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들이여." 현민과 하나가 되어있는 묘는 현민의 복잡한 계산에 힘들어 했으나, 최대한으로 마음을 맞추었기에 정령화가 풀리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대들을 위한 등불이 눈앞에 밝혀지니, 그 길을 따라 영원의 어둠에서 걸어 나와 진실한 빛을 마주하라!" 소생(甦生 : 정령마법) 명 당 100의 정령력 필요. 명 당 0.1%의 경험치 필요. 유저에게 사용 불가. 현민이 마법을 완성하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빛기둥들이 이곳저곳에서 솟아나기 시작했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빛기둥이, 현민이 만든 어둠을 틈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상당한 높이까지 솟아오르는 빛기둥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현민이 있는 곳까지 비출 정도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와~, 역시 나의 능력!! 브이~." 멀리서 솟아나는 아름다운 빛기둥에 감탄사를 내보낸 현민은,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는 3명의 꼬마정령들을 향해 V를 만들며 자랑했다."어때요? 굉장하죠?" "저건?" "npc들을 부활시키는 거예요." "마, 말도 안돼!" 현민의 옆에서 빛기둥을 바라보고 있는 꽃님은 지금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나의 존재를 부활시킬 수 있는 유저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릿광대란 존재가 얼핏 보아도 수천의 존재를 부활시키고 있었으니 그녀로서는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정확히 284,652명이지요. 다행히도 죽은 사람이 적었네요." 현민에게 부활당한 npc들의 수를 들은 꽃님은 지금의 상황을 의심했다. 현민이 만들어내는 환상은 현실의 것과 똑같았기 때문에 자신이 속는 것인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당신에게 부탁할 일만 남았어요." "어, 어떤..." 현민의 부탁을 듣고 있는 그녀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현민이 이러한 능력을 자신에게 보여준 이유가 부탁과 관련되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부탁이 아니라면 자신이 살아있을 이유도, 어릿광대가 이러한 능력을 보여줄 이유도 없었다. [레벨이 284 감소합니다. 경험치가 65.2% 감소합니다.] 현민이 꽃님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주변의 빛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소생의 완료를 알려주는 메시지가 현민의 귀에 들려왔다. "휴우..." 팟! [레벨이 10 감소합니다.] 더 이상 정령의 힘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남아있는 정령력도 적었기 때문에 현민은 서둘러 정령화를 풀어버렸다. 자신이 혼자라면 아무런 상관없었지만, 그의 앞에는 꽃님이라는 '적'이 있었기에 정신력 부족으로 기절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만 했다. 스윽...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현민은 잠깐 벗어놓았던 가면을 다시 착용했다. 이제부터의 그는 조금 사악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당신을 포함한 모든 유저에게 경고합니다." 꽃님을 향해 말하는 현민에게서는 조금전에 보았던 친절함이 배어있지 않았다. 지금의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온몸이 따끔거리는 듯한 살기와 왠만한 몬스터들에게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존재감뿐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뭉치거나, 전쟁을 하는 유저들이 있다면..." 스윽! 팟! 마녀의 지팡이를 손에 잡은 현민은 날카로운 날로 꽃님의 목을 감쌌다. "전부 죽여 드리겠습니다." 털썩! 시간을 다룰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라면 현민의 공격정도는 가볍게 피할 수 있었겠지만, 현민에게 두려움이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현민의 차가운 눈길에 잔뜩 겁을 먹어 자신의 능력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아, 하아, 하아..." 살벌한 모습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현민은 꽃님의 목에 대었던 마녀의 빗자루를 치워주었다. 자신의 목에서 마녀의 빗자루가 사라지자 급히 숨을 몰아쉰 꽃님은 자신의 목을 확인이라도 하듯 연신 만져보았다. 현민의 빗자루가 그녀의 목에 닿지는 않았으나 빗자루가 가지고 있는 예기가 날카로웠기에 그녀의 목에는 가느다란 선이 그어져 있었다. "당신들이 찾고 있는 '달의 마녀'가 저랍니다. 죽고 싶으면 덤비세요." 씽긋. 현민의 웃음을 마주한 꽃님은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처음의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 두 번째의 잔인하고 살벌한 모습, 그리고 마지막의 장난기 많은 모습까지... 짧은 시간동안 그녀가 바라본 현민은, 어릿광대란 명칭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럼, 안녕히... 텔레포트." 텔레포트(6서클) 소모 정신력 : 200 능력 :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여 장소를 이동한다. 현재 단계 : 2 주문 :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허공의 길을 열어... 치마의 양 끝을 잡으며 장난스럽게 인사를 건넨 현민은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앞에 있던 꽃님을 어디론가 이동시켜버렸다. 굳이 살려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 어떤 유저보다도 심한 고통을 겪었기에 약간이나마 배려해준 것이었다. "하아..." 꽃님을 마지막으로 하여 모든 싸움을 끝내버린 현민은 지친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가상현실의 세계라고는 하지만, 짧은 시간동안의 거친 움직임은 그의 정신에 엄청난 피로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있었다. "처음인데도 모여준 것, 정말 고마워." 주변의 몬스터들을 돌아본 현민은 그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지금의 능력을 해제한다면 자신과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지만, 지금의 그들은 자신을 어머니로 여기며 자신의 말에 귀담아 주고 있었기에 그들을 향해서 감사의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크르릉... "크워..." 현민의 마음이 통한 것인지, 현민의 감사를 받아든 모든 몬스터들이 다시한번 현민을 향하여 무릎을 꿇었다. 현민의 능력이 해제되었을 때는 장담할 수가 없었으나, 지금의 그는 그들의 어머니와 같기 때문에, 현민을 향하여 순종의 뜻을 보이는 것이었다. "모두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렴. 오늘 하루는 정말 고마웠어." "크아앙!!" 펄럭! 펄럭! 현민의 말을 들은 몬스터들은 작별인사라도 하듯이 크게 울부짖은 후,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숫자의 비행 몬스터들이 하늘을 뒤덮었고, 수백만은 되어 보이는 몬스터들이 모든 숲을 밟고 지나갔다. "어머니께서 부르신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팟! 모든 몬스터들이 이동하는 중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던 뱀파이어는, 몬스터들의 이동에 의한 땅의 진동이 멈추고 나서야 현민의 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뱀파이어를 마지막으로 하여 모든 것이 정리되었고, 소란스럽던 현민의 주위가 한결 조용해졌다. 스르륵... 모든 몬스터들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현민은 사용중이던 스킬을 해제하였고, 머리위에 떠있던 달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길어졌던 현민의 머리카락은 스킬이 해제되어도 다시 짧아지거나 하지 않았다. "후웅, 장난깜..." 울먹울먹. "하아..." 담비의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현민은, 세 명의 정령이 온 힘을 다해 담비를 붙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정령들에게 팔다리를 붙잡힌 담비는, 영화 속에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몬스터들이 떠나간 방향을 향해 손을 내뻗으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자자, 착하지?" 비록 눈물은 나오지 않았으나 담비의 울먹거림은 현민이 달래주어도 쉽사리 멈추려 하지를 않았고, 현민은 5개의 정령석을 사용해야만 했다. 2개의 정령석은 담비의 입속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3개의 정령석은 다른 정령들의 입으로 하나씩 들어갔다. "하아, 정령석도 얼마 없네." 그 많던 정령석들은 현민의 정령들이 간식(...)으로 먹었기 때문에, 그 수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너희들은 정령계 가서 놀고 있을래?" "네~." 정령석을 오물거리던 네 명의 꼬마정령들은 크게 대답하며 정령계로 사라졌다. 황량한 벌판만 남아있는 현민의 곁보다는 정령계에 가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그들도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후우..." 털썩! 깊은 한숨을 내뱉은 현민은 샨과 황녀의 곁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수백만의 몬스터들이 밟고 지나간 숲에는 살아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현민의 주위로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새근새근... '예쁘다...' 자신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두 명의 여성을 바라보던 현민은,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들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뻗었다. "으음..." 움찔! 조심스럽게 뻗어진 현민의 손이 샨의 볼에 닿으려고 할 때, 차가운 바람에 추위를 느낀 샨이 몸을 움츠렸고, 갑작스러운 그녀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 현민은 뻗어진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커다란 범죄를 저지른 사람 같았다. "머, 머리카락을 쓸어주려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현민은 잠자고 있는 샨에게 변명까지 했다. "엣취!" "추, 추운건가?" 황녀의 재채기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린 현민은, 그녀들이 깨어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린 현민은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땅바닥에서 잠자고 있는 그녀들은 주변의 추위로 인해 몸을 떨고 있었다. "디그."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그녀들이 잠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조금 떨어진 장소에 가로세로 4m, 높이 5m의 구멍을 팠다. "절대방어, 어스퀘이크." 직경 4m의 거대한 절대방어를 만든 현민은 그것을 구멍 속으로 밀어 넣은 후, 어스퀘이크 마법을 사용하였다. 현민이 만들어 놓은 구멍의 주변에 가벼운 지진이 일어나며 흙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현민이 넣어놓았던 절대방어가 땅 속에 묻혀버렸다. "그래비티." 그리고 사용된 그래비티 마법은 무너져 내린 땅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절대방어의 위로 가볍게 쌓여있던 흙들은 위에서 누르는 압력과 밑에서 받치는 절대방어로 인해 단단하게 뭉쳐졌다. "해제." 땅을 받쳐주던 절대방어가 사라져 버렸으나, 그 위에 쌓여있던 흙들은 단단히 뭉쳐져 있었기 때문에 아래로 무너져 내리지가 않았다. 겉모습만 보면 가로세로 4m, 깊이 50cm 땅을 판 것처럼 보였다. "디그, 인탱글,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파이어." 작게 파여진 땅으로 자리를 옮긴 현민은, 디그 마법을 사용하여 땅속의 공간을 연결하는 작은 구멍을 만들어 낸 후, 그 구멍을 통하여 밑에 있는 공간에 작은 나무줄기를 소환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마법에 거대해진 나무줄기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휴...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그리스." 기본적인 준비를 마친 현민은 얕게 패인 바닥위에 여왕의 거미줄을 사용한 후, 그리스 마법으로 거미줄의 점성을 없애버렸다.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했기에 그리 많은 열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확실히 따뜻했다. 온돌과 비슷한 효과를 마법으로 만든 것이다. "염력." 샨과 황녀를 중앙에 눕혀준 현민은 로브를 꺼내어 그녀들을 덮어준 뒤, 땅바닥에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멋진 것도 보기 힘든데... 어째서 싸움만 하려고 하는 걸까?" 털썩! 자리에 누운 현민은 한참동안이나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도 커다란 변화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바라보는 하늘은 아무리 바라봐도 질리지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밤하늘에 빛나고 있는 별과 달들이 현민의 마음에 묘한 감동을 주었다. 204화는 질문을 받아볼까 해요. 200회까지 오면서 궁금하거나 기억이 안나시는 게 있으면 질문 주세요. << 이 글은 다음 연재때 삭제 됩니다. >> ----------------질문 & 답변---------------- >정령화의 레벨은 = 현민의 레벨 + 정령의 레벨 입니다. 그리고 스킬의 사용으로 인해 줄어드는 경험치나 레벨은 현민에게만 적용된다는 설정입니다. >현민의 정확한 레벨이 몇이죠? (-)는 깎인 수치입니다. ----------------------- 이름 : 룬(루나). 호칭 : 달의 마녀 Lv : 82 (-294) 직업 : 마법사, 마녀, 정령사 힘 : (17) 민첩 : (15) 건강 : (16) 반사신경 : (18) 지능 : 453(19) 정신 : 586(21) 공격력 : 34 - 34 마법력 : +758 방어력 : 60 생명력 : 2852 (+2300) 정신력 : 263160 / 263160 ((+16000)*3) (-52410) 물 속성 친화력 : 879 (-294) 불 속성 친화력 : 879 (-294) 땅 속성 친화력 : 879 (-294) 바람 속성 친화력 : 879 (-294) 정령력 : 1347 (-294) 물(묘) Lv 376 불(염화) Lv 376 땅(담비) Lv 376 바람(윈디아) Lv 376 ----------------------- >편수삽화를 보고 싶은데 면화에 있죠? "싸울아비-룬"의 [작품목록]에서 작품소개가 쓰여진 곳 밑에 있는 [작품삽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마법의 종류를 알려주세요. 0서클 - 분석 - 조합 - 창조 1서클 - 라이트 - 매직미사일 - 파이어 - 실드 - 힐 - 인탱글 - 홀드 - 클리어 - 아쿠아 2서클 - 매직애로우 - 워터 볼 - 디그 - 그리스 - 큐어포이즌 - 염력 - 수중호흡 - 포이즌 - 메모라이즈 - 아이스 3서클 - 파이어볼 - 아이스볼 - 워터애로우 - 슬로우 - 윈드커터 - 라이트닝 애로우 - 슬립 - 언락 - 미러이미지 -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 커스 4서클 - 스트랭스 - 헤이스트 - 어스 스피어 - 라이트닝 볼 - 복화술 - 디택트 마나 - 투시 - 매혹 - 혼돈 - 아이스 월 - 파이워 월 - 리무브 커스 5서클 - 플라이 - 라이트닝 스트라이크 - 어스퀘이크 - 리드 랭기지 - 리드 매직 - 인비지빌리티 - 그래비티 - 블링크 - 인첸트 - 콜라이트닝 6서클 - 디텍트 인비지빌리티 - 디스펠 매직 - 텔레포트 현민이 만든 스킬들... 1서클 - 스핀 - 댄싱 라이트 2서클 - 에어 브레스 - cobweb(거미줄) 3서클 - 대지의 손 - 여신의 발걸음 - 절대방어 - 수중감옥 - 대지의 족쇄 - 속성변화 4서클 - 수영장 - 아이스 - 각인 5서클 - 지옥의 문 - 대지의 심판 - 진실된 거짓 - 여왕의 거미줄 - 전사의 투지 - 리무브 소울 7서클 - 천벌 >구미호는 어떻게 이벤트전 판타지쪽으로 넘어왔나요? 몇몇 특별한 직업은 대륙에 상관없이 얻을 수 있도록 설정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싸울아비가 판타지 쪽에 있는 것이지요. >발록을 소환했으면 다른 존재들도 소환할수 있나요? 발록의 소환도 다른 마녀들의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현민의 능력으로는 불가지요. >현민이 모든 전투력을 개방했을시 이기지 못할 존재가 있나요? 드래곤이 있답니다. 제 소설에서는 [드래곤의 나이 = 레벨] 이란 설정이기 때문에 해츨링을 갖 벗어난 드래곤도 1000레벨이 넘습니다. 일반적인 드래곤은 절대로 불가지요. >판타지와 무협쪽 평균적 전투력은 어느쪽이 더 강한가요? 대등합니다. 전사의 경우, 무협은 유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타지는 강을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최강의 직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목록좀 가르쳐주세요~ 여신의 발찌 설명 : 아름다운 여신이 새겨져 있는 발찌 하루에 세 번, 기억된 마법을 발현 할 수 있다. 능력 : 절대방어마법 3회 사용가능. (정신력 소모 없음) 마녀의 발찌 설명 : 자세히 보면 달 아래의 아름다운 마녀가 바라보고 있는 발찌 정신력을 높여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5000 (1분에 5의 정신력 소모) (세트 착용시 정신력 +3000) 증폭의 장신구 세트(발찌) 설명 :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순백의 색깔이 아름다운 발찌. 정신력을 증폭시켜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120% (세트 착용시 정신력 300%) 천사의 팔찌 설명 : 천사가 새겨진 아름다운 팔찌. 착용자의 생명력을 높여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생명력 +500 (분당 3의 정신력 소모) 생명의 팔찌 설명 : 마법이 새겨진 평범한 팔찌. 착용자의 생명력을 높여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생명력 +800 (분당 4의 정신력 소모) 마녀의 팔찌 설명 : 자세히 보면 달 아래의 아름다운 마녀가 바라보고 있는 팔찌 정신력을 높여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5000 (1분에 5의 정신력 소모) (세트 착용시 정신력 +3000) 증폭의 장신구 세트(팔찌) 설명 :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순백의 색깔이 아름다운 팔찌. 정신력을 증폭시켜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120% (세트 착용시 정신력 300%) 마나 반지 설명 :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반지. 정신력을 높여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3000 (1분에 1의 정신력 소모.) 치유의 반지 설명 : 드워프들이 미스릴로 만든 아름다운 반지. 생명력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분당 50의 생명력 회복. (1분에 5의 정신력 소모.) 회복의 반지 설명 : 어린 드워프가 만든 시험용 장신구. 정신력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분당 100의 정신력 회복. (1분에 20의 생명력 소모.) 증폭의 장신구 세트(반지) 설명 :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순백의 색깔이 아름다운 반지. 정신력을 증폭시켜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정신력 120% (세트 착용시 정신력 300%) 회복의 목걸이 설명 : 드워프들이 미스릴로 만든 아름다운 목걸이. '생명'을 상징으로 하고 있다. 생명력과 정신력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특별한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분당 100의 생명력 회복. (1분에 10의 정신력 소모.) 분당 150의 정신력 회복. (1분에 30의 생명력 소모.) 생명의 귀걸이 설명 : 한 쌍의 아름다운 귀걸이. 귀걸이의 장식이 부딪힐 때,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착용자의 생명력을 높여주는 마법이 흐르고 있다. 능력 : 착용자의 생명력 +1000 (분당 10의 정신력 소모) >식물거대화 기술에서, 소모 정신력이 30+α 던데 , 플러스 알파는 무슨 의도로? +α는 다음에 있을 마법사 패치가 수용될 수 있게 하는 역할입니다. 지금은 마법마다 소모되는 정신력과 문제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지만, 다음에 나올 패치는 마법의 문제가 사용자의 연산능력을 시험하고, 마법의 범위나 능력은 상상으로 이루어 지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현술사 엠페러 였나요? 그사람이 죽어라 라고 말햇더니 칼이 날라가서 죽는데.. 그거 어떻게 한건지좀 ㄱ-; 그의 무기를 얇은 실로 묶어서 조종한 것입니다. 자신의 말에 따라 무기를 움직여서 그를 죽인 것이지요. >유저들 특히 자신보다도 레벨이 상위인 존재들이 상당수 있었을 듯 한데 그런 유저들을 만명단위로 죽였으면 충분히 마지막에 294레벨이 감소된 것보다 훨씬 높은 레벨이 되었을 것 같은데 지금도 82레벨인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 군요. 현민은 정령들과 경험치를 나누기 때문에 1/5밖에 먹지를 않는답니다. 그렇기에 상당한 숫자의 유저를 잡아도 그정도의 레벨업밖에 하지 못한 것이죠. > 다행히 스텟은 감소가 되지 않는가 보군요. 지난번에 나왔는지 기억이 가물~~ 레벨이 내려갔는데 스텟이 안 내려가면 원래 레벨이 될때 까지 추가 스텟이 안 생기겠군요. 한동안 스텟 찍는 재미가 없을 듯.... 현민은 자신의 스텟을 정령에게 투자한답니다. 1업당 얻는 5개의 스텟을 각각 친화력이 1씩, 정령력에 1씩 투자하는 거죠. 현민의 지능과 정신은 순수한 노가다의 결과물이랍니다. >정령들의 레벨보다.... 정령들의 """ 스텟 """ <<<< 을 알고 싶어요. 담비가 몬스터를 장난감으로 대할 정도이니..... =ㅅ= 정령들의 스텟 = 정령력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령들의 정령력은 그들이 낼수 있는 힘,정신,능력,데미지 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수치입니다. 굳이 스텟을 보자면... -------------------------- 이름 : 염화 Lv : 376 직업 : 불의 정령 힘 : 1347 (-294) 민첩 : 1347 (-294) 건강 : 1347 (-294) 반사신경 : 1347 (-294) 지능 : 1347 (-294) 정신 : 1347 (-294) 공격력 : 13470 (-2940) 마법력 : 13470 (-2940) 방어력 : 13470 (-2940) 생명력 : 134700 (-29400) 정신력 : 134700 (-29400) 룬 속성(?) 친화력 : 879 (-294) ---------------------------- 이 되겠지요^^;; 물론 이것이 기본적인 것이고, 정령의 특성에 따라 수치들이 몰아진답니다. 담비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수치가 힘으로...ㅡㅡ >님아 상태창에()<< 이렇게 돼있는숫자 뭐임?? 궁금해서 죽겠음 ()안에 있는 숫자는 현실의 능력치 입니다. [힘 (15) = 힘 150]입니다. [힘 350(15)] 라면 [힘 500]과 마찬가지라는 소리죠. >전(前)화에서 궁금한 점이있는데요...꽃님이는 동영상을 촬영해서 유저들에게 알렸을까요? 괜히 궁금...폼잡아서 다 했는데 꽃님이만 알고 있으면... 그건 다음화에^^ "으음..." "일어났어?" 눈가를 비추는 햇살에 잠에서 깨어난 현민이 두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본 것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샨의 얼굴이었다. 자신의 옆으로 현민을 가져온(?) 샨은, 옆으로 누워 팔을 벤 채 현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바.보." 샨을 바라본 현민의 첫 마디는 '바보'였다. 8서클을 이루고 9서클을 넘어가는 그녀가 하찮은(?) 유저들에게 고생을 했기에 심술궂은 말이 나온 것이었다. "훗, 걱정했어?" "아픈 데는 없지?" "응." 현민과 얼굴을 마주한 채 누워있는 샨은,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태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러한 샨을 보고 있는 현민이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안부를 묻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잠자기 직전까지 샨의 정신적인 충격을 걱정했던 현민은, 의외로 멀쩡한 샨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응, 그런 의미로 서비스~." 펄럭! 장난스런 미소를 지은 샨은 덮고 있던 로브의 한쪽을 들추었고, 로브 속에 숨어있던 그녀의 몸이 드러났다. 이전 날에는 눈치 채지 못했었으나, 지금 바라보는 샨의 옷은 수차례의 전투로 인해 천 조각으로 변해있는 상태였다. 일부의 상의와 하의는 팔다리와 함께 잘려나가며 사라져버린 상태였고, 나머지 부분도 칼침과 마법을 맞았기에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었다. 옷으로 인해 가려진 곳보다 구멍으로 인하여 보이는 속살이 훨씬 많았으며,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속옷의 면적보다도 적은 것 같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현민이 절대로 견딜 수 없는 노출을 하고 있었다. 두근! 팟! 갑작스런 샨의 행동에 깜짝 놀란 현민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가 방향을 돌린 곳에는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근... 간질! 새근... 간질! 돌아선 현민의 입술에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고 있었으나, 그 존재가 누군지 잘 알고 있는 현민은 두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황녀의 얼굴을 코앞에서 본다면 거칠어지는 자신의 숨결에 그녀가 깨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앞에는 황녀의 입술이 있고, 뒤에는 샨의 알몸(?)이 있으니, 이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스윽... 툭. 움찔! "흐응~?" 조심스럽게 얼굴을 뒤로 하던 현민은 뒤통수에 닿는 부드러운 감각에 몸을 굳혔다. 어디에 부딪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어디든 그의 뒤에는 샨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민의 머리를 막은 것은 그가 예상한 곳(?)이 아닌 샨의 손바닥이었다. 장난기 많은 그녀가 현민의 머리를 막으며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잠자는 황녀님은 키스가 있어야 일어나는 것 알지?" 툭. 현민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인 샨이 현민의 머리를 밀어버렸다. 쪽. "에?" 그녀의 의도로 인해 현민의 입술이 황녀의 얼굴에 닿기는 닿았으나, 그 장소는 샨이 예상한 곳이 아니었다. 현민의 입술이 황녀의 입술에 닿으려는 순간, 현민이 턱을 올리며 황녀의 입술을 피한 것이었다. 원래의 궤도를 벗어난 현민의 입술은 황녀의 코에 도착했다. "으음..." 엎친데 덮친격으로 현민의 키스(?)를 받은 황녀가 눈을 뜨기 시작했고, 당황한 현민은 그 장소를 도망가려고 했다. "윽?" 하지만 그의 길어진 머리카락이 그녀들의 몸 아래 깔려있었기에 그의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현민의 뒤에 누워있는 샨은 안절부절 하는 현민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괜찮아. 코에 뽀뽀한 것 가지고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깐." 현민의 뒤에 있던 샨은 순진한 그의 반응에 조용히 미소 지으며, 현민의 등에 머리를 기대었다. 언제라도 안아주고 싶은 현민의 등이었으나, 그가 보일 반응을 잘 알고 있는 샨이었기에 이정도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었다. "...룬?" 샨이 현민의 등에 기대고 있을 때, 현민의 키스(?)로 잠에서 깨어난 황녀가 졸린 눈을 비비며 현민의 얼굴을 확인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꿈인지 현실인지를 구별하려는 것 같았다. "룬!" 와락!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현실인 것을 깨달은 황녀는 현민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그를 껴안아 버렸다. 갑작스러운 황녀의 행동은 샨도, 현민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흐이익!" 찌리릿! 두 눈 멀쩡히 뜨고 황녀에게 안겨버린 현민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와 목에서 느껴지는 숨결, 그리고 품안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몸에 온몸의 털이 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고, 머리카락을 제외한 온몸의 솜털들이 일어서 있는 중이었다. "브, 블링크!" 얼굴이 빨갛게 익은 현민이 블링크를 사용하여 도망가려고 했으나, 메모라이징 되지 않은 그의 마법은 실현될 리가 없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차분히 대응했던 현민이었으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요. 기다렸어요. 당신만 불렀어요. 구해줄거라고. 내 앞에 나타날 거라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현민은 더 이상 도망갈 생각을 갖을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과 맞닿아 있는 자신의 볼에서 촉촉한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무뚝뚝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던 황녀였지만, 그 며칠 동안의 고생이 그녀를 바꾸어 놓았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던 황녀는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이제 책임져 주세요." "에?" "응?" 갑작스러운 황녀의 말에 샨과 현민이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나, 어떠한 표정도 나타나 있지 않은 그녀의 얼굴이었기에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는 것이 힘들었다. "남자가 여자를 안으면 책임져야 한다고 했어요."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황녀가 자신의 얼굴을 현민에게 가져가며 말했다.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그들의 얼굴이었기에, 말하면서 나오는 황녀의 숨결이 현민의 입가에 고스란히 닿고 있었다. 찌리릿!! 황녀의 행동으로 인해서 진정되었던 현민의 얼굴이 급격히 빨개지기 시작했고, 가라앉았던 현민의 솜털들도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황녀의 뛰어난 미모를 떠나서, 여성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현민의 몸이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테, 텔레포트!" 팟! "아...?" "풋!" 블링크를 모두 사용했던 현민은 6서클의 텔레포트를 이용해 황녀의 품을 벗어났다. 메모라이징 해놓았던 블링크는 모두 사용했지만, 텔레포트는 아직 남아 있었다. 현민의 신형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 황녀는 작게 입을 벌렸고, 샨은 재빨리 도망가는 현민의 모습에 작게 미소 지었다. "황녀님. 룬은 부끄럼을 많이 타서 너무 다가가면 도망쳐 버린답니다. 그리고 안는다는 것은 포옹하는 것과 다른 거랍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샨은 누워있는 황녀를 자리에 앉히며, 틀린 지식을 바로잡아 주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안으면 아기도 생긴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배에 손을 얹고 말하는 황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임산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황녀의 막강한 공격(?)에도 샨의 방어는 철저하게 유지됐다. "아기가 생기려면 남자와 여자가 알.몸.으로 안아야 한답니다." "아하..." 샨의 설명을 들은 황녀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눈빛으로 현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현민을 바라보고 있는 황녀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이었지만, 샨의 설명을 들어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도 노골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면 부끄러워서 또 도망갈 거예요." 움찔! 한참동안 현민을 바라바고 있던 황녀는 옆에서 하는 샨의 충고에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스스로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현민이 도망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룬도 이리로 와. 머리 만져줄게." 몰래몰래 훔쳐보는 황녀의 시선에 웃음지은 샨은, 멀리서 머리를 만지고 있는 현민을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어설픈 그의 손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만져주는 게 빠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샨~~!! - 샤아안~!! 어딨느냐?! - 황녀님~~! 샨과 황녀가 현민의 머리를 가지고 이리저리 장난을 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샨과 황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게 메아리치는 음성은 그 방향을 찾기가 힘들었지만, 그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듯 들려오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서, 설마..." "이 목소리는..." "응?" 메아리치던 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들림에 따라, 황녀와 샨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존재들이 자신들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파이어 볼." 자리에서 일어난 샨이 목청 높여 할아버지를 불렀고, 현민은 그런 샨을 위하여 허공을 향해 파이어 볼을 날려주었다. 소리 높여 부르는 것보다는 신호를 날리는 게 빠르기 때문이었다. 팟! "황녀님!" "샨!" 현민의 신호가 하늘 높이 올라가자마자 9명의 할아버지들이 현민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금실과 은실로 장식된 멋진 로브를 입고 계신 9명의 할아버지는 샨과 황녀를 둘러싼 채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었다. "무사해서...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할아버지들을 바라보는 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9명의 장로들과 헤어지기 직전의 상황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할아버지들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으니, 참으려고 해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래그래." "아무 일 없이 이렇게 살아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샨과 황녀를 바라보는 장로들의 눈에는 안도의 감정이 나타나 있었다. 목숨까지 바쳐가며 지켰던 그녀들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요." 끄덕. 한참 대화를 나누던 샨과 황녀는 그제야 현민이 생각난 듯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들의 뒤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고,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현민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샨과 황녀는 자신들의 로브와 치마를 당기는 무언가를 느끼고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달그락, 달그락. "응?" "아...?" 그녀들이 바라보는 장소에는 익숙한 모양의 해골모형이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분명..." 그녀의 발밑에 있는 것은 이전에 현민이 사용했던 해골 인형이었다. 인형이 현민의 품을 걸어 나왔을 리 없었으니, 그들의 앞에 있는 인형은 현민이 놓고 갔다는 것이었다. 달그락. "응?" 그녀들이 자신을 보게 하는 것에 성공한 해골인형은 양손에 들린 쪽지를 황녀와 샨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들이 쪽지를 받아들자, 허리까지 오던 해골모형의 크기가 팔뚝만한 크기(약 30cm)로 줄어들었고, 그렇게 작아진 해골모형은 황녀의 치마를 타고 올라가 그녀의 어깨에 자리 잡았다. - 모든 것은 원래대로... - 가디언. 첫 번째 있는 것이 샨의 쪽지에 담겨있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의 것은 황녀의 쪽지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웅얼웅얼. "응?" 쪽지를 바라보고 있는 샨이 작게 입을 열었으나, 너무나 작은 목소리였기에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바보... 키스라도 해주려고 했는데.' 만약 들었다면 샨에게 애정이 넘치는 장로들로 인해 현민의 목숨이 사라졌을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언제부터 본거에요?" 아무런 말도 없이 샨과 황녀의 곁에서 사라져버린 현민은, 멀찍이 떨어진 장소에서 어떤 여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왠만하면 여성과의 대화를 피해버리는 현민이었으니, 눈앞의 여성과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녀를 잘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처음부터." "하아..." 여성의 대답을 들은 현민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러면 꽃님이란 유저한테 협박할 필요가 없었잖아요. 누나." 현민이 누나라고 부른 존재는 며칠 전 잠깐 만났던 페튜니아였다. 운영자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현민의 접속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그의 뒤를 따라다닌 것이었다. 만약 현민이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꽃님이란 유저를 협박하여 소문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운영자가 바라보는 영상은 자동으로 저장되니, 나중에 그 영상을 올리도록 부탁하면 끝이기 때문이었다. "아뇨, 아주 적절했어요." "에?" 페튜니아의 대답을 들은 현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협박이 어째서 적절한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경고보다는 [어릿광대]의 경고가 더욱 현실적이니까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나 할까?" 유저들의 전쟁을 막고 싶은 것은 운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상현실이라고는 하지만,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싸울아비"였기 때문에 전쟁이 미치는 그 영향은 그들이 복구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막으려고 했을 때, 일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녀의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어릿광대'가 모든 유저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으니, 가우리로서는 작은 희망을 얻은 것이었다.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모습을 드러낸 거 아니에요?" 페튜니아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모르는 현민으로서는, 찔리는 것들이 너무 많아 그 이유를 댈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수백만 유저들을 몰살시켜서 항의가 들어오는 일이나, 수십만 npc들이 죽었다 살아나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일이나, 수백만의 몬스터들이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벗어나 버린 일이나, 미레이 숲의 엘프들이 사라져 버린 일이나, 숲 자체가 없어져 버린 일 정도는 어떻게든 되겠지요." 이전의 일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의 큼지막한 사건들뿐이었으나, 그러한 일을 처리해야하는 페튜니아는 예상 외로 편안한 얼굴이었다. "대신에 동영상은 저희 쪽에서 올릴게요." 일주일의 야근을 각오하며 그녀가 노리고 있는 것은 현민의 전투가 담겨있는 동영상이었다. 모든 유저들에게 경고가 들어있는 현민의 동영상이 세계 각지에 퍼지게 된다면, 모든 유저들이 현민을 노리고 올 것은 당연한 말이었다. 게다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마녀 퀘스트의 타겟이 모두에게 덤비라고 광고까지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도발은 없을 것이다. "뭐, 저야 좋죠." 하지만 그녀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현민은 그녀의 조건을 바로 승낙해주었다. 그녀의 조건이 미안할 정도로 조금(?) 심한 사고를 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조건이 없었어도 부탁할 일이었으니, 오히려 다행인듯 싶었다. "고마워." 페튜니아는 현민의 동영상을 손에 넣었기 때문인지 환한 웃음을 지었고, 현민은 그러한 페튜니아의 미소를 부담스러워했다. "아참, 깜빡하고 있었는데. 무협 쪽으로 넘어가는 티켓을 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사용기간이 지나버려서..." "아쉽네요." 말은 아쉽다고 하고 있지만, 현민의 얼굴은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대륙과 대륙을 가르고 있는 산맥에는 공략 불가능한 몬스터들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현민의 경우에는 그들의 사이를 유유히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 잠깐 눈 좀 붙이고, 학교를 가야해서요." "네, 그럼 다음에 봐요. 그리고 동영상은 아침까지 올려놓을게요." "다음에 봐요, 누나." 페튜니아를 향해 손을 흔들던 현민의 신형이 모습을 감추자, 페튜니아의 등 뒤로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 "흐응~, 이정도면 거의 스토... 꺄악!" "아?! 미안." 페튜니아의 등 뒤에 나타나며 무언가 말을 하던 존재는 빠르게 휘둘러지는 페튜니아의 손에 깜짝 놀라며 주저앉아 버렸다. 페튜니아가 손을 멈추지 않았다면, 그녀의 머리는 산산조각 나버렸을 것이다. "도,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툭툭. 땅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번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페튜니아가 현민과 같이 게임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그녀가 알고 있던 페튜니아는 더 이상 연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야?" "에휴, 연하한테 푹 빠져가지고는." "내, 내가 언제?" 페튜니아는 자신의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인지 상대방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언제긴 언제, 항상 싱글벙글하면서..." "안 그랬어!" "그래그래, 알았으니깐 영상이나 넘겨줘." 페튜니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녀는 포기했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저장되어진 동영상을 요구했다. 영상을 편집하는 일은 홍보팀장인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자." "하여튼..." "왜?" "아니야." 페튜니아의 손을 마주 잡은 성희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페튜니아를 바라보았다. 페튜니아가 건네주는 동영상이 복사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속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원본 영상에 독특한 표식이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에게는 정말 한숨 나오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시작할 테니깐 내 사무실로 와." "응." 그것을 끝으로 그녀들의 신형도 사라져 버렸다. "아아..." 자명종 소리로 인해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게임을 종료하고 나왔을 때 5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며 잠시 고민한 현민은 수마의 유혹을 참지 못한 채 잠에 빠져버렸고, 잠든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명종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하룻밤만 샜더라면 조금 더 쉽게 일어날 수 있었겠지만, 어제 저녁도 게임으로 인해 밤을 새웠기 때문에 더욱 못 일어나고 있는 현민이었다. "형, 안 씻었어?" 상체를 일으킨 현민이 앉은 채로 잠들어 버렸을 때, 그의 동생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현민의 방문을 열었다. 그가 알고 있는 현민은, 보는 사람이 외울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현민이 씻을 시간에 씻지 않고 있으니, 이상한 것이 당연했다. "응, 씻어야지..." 비틀... 비틀... 동생의 부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했으나, 그의 걸음은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엄청 불안해 보였다. "졸리면 더 자. 학교 8시까지잖아?" "아아, 괜찮아..." 현민의 방이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방이기에 다행이었지, 동생의 방처럼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가는 도중 잠들어 버렸을 것이다. "잠 좀 깼어?" "응." 한차례 샤워를 하고 욕실에서 나오는 현민은, 약간 피곤한 눈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잠에서 깬 것 같았다. 현민이 욕실에서 나오자 현웅이 씻으러 들어갔고, 현민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교복을 입기 시작했다. "하암, 다녀오겠습니다." 아직 해조차 뜨지 않은 시간에, 어두운 집안에 인사를 한 현민은 조용히 집을 나섰다. 학교 가기에는 약간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지금 시간에 가지 않으면, 수많은 학생들과 몸싸움을 하며 등교해야 했기에 일찍 출발한 것이었다. 타다다다닷 "현민아~~." 스윽... 졸린 눈을 비비며 매직보드를 풀어가던 현민은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에 맞추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자신이 먼저 피한다면 그녀가 자신의 몸을 따라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현민의 거리가 두 걸음정도 남았을 때 현민의 몸이 옆으로 움직였고, 지혜의 몸은 평소와 같이 현민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밤새 엄청 날뛰었던데?" 현민의 옆에 나란히 선 지혜가 현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인터넷이랑 방송이 난리도 아니야. 오늘 새벽에 올라온 동영상 때문에 모든 유저들이 너 하나 죽이려고 모이려 한대." "벌써 올라왔어?" "응, 아직 못 봤나봐?" 현민의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지혜는 자신이 본 것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말해주었다. 한편의 영화처럼 제작된 현민의 동영상은 "싸울아비"의 홈페이지에 메인화면으로 올라와 있는 중이었고, 각종 방송사나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끊임없이 방송되고 있었다. "얼마나 멋있게 나왔는지 알아? 특히, '지금의 저는... 모든 몬스터들의 어머니랍니다.' 꺄아~.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달빛과 수많은 몬스터들의 경배!! 아아~, 완전히 반해버렸어!" 스윽... 나란히 걸어가던 지혜가 다시한번 현민의 목을 껴안으려고 했으나, 빠르게 움직인 현민이 그녀의 공격을 피해버렸다. 일반적이었으면 자신의 애정이 거부당하여 기분이 나빴을 테지만, 지혜라는 존재는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기에 금세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랭킹 2위의 꽃님이란 유저가 너에게 덤비는 건 '미친 짓'이라고 써놨더라. [그는 모든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요.]라면서." "그래?" "응, 그 누구도 너를 이기지 못할 거라고 극히 칭찬하던데?" 현민을 향해 말하고 있는 지혜의 눈은 장난감을 얻은 고양이처럼 매우 반짝거리고 있었다. "모르지, "싸울아비"에는 엄청난 직업들이 많으니깐. 그리고 세계적인 천재 채리플랑도 있잖아?" "글쎄, 걔도 나랑 비슷하다고 한다면 마법을 조합하기보다 새롭게 만들어서 사용할 걸?" "그래그래, 천재라서 좋겠다." 천재는 천재를 안다는 듯, 지혜가 채리플랑을 자신과 비교하여 말하고 있었다. "안녕." "안녕. 또 같이 오네?" "하이~." 지혜는 다른 반의 학생이었으나, 반장도 지혜도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반장, 오늘 새벽에 올라온 동영상 봤어?" "랭킹들하고 싸우는 어릿광대 말이지?" "응!" 현민의 곁에서 떨어져나간(?) 지혜는 반장과 어울려 수다를 즐겼다. 묵묵한 현민에게 말을 하기보다는 현민을 놀리며 대화를 하는 게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벌써 다운 받아놨는걸~." "역시!" "가끔가다가 싱긋거리면서 웃는 게 꼭 아이 같아서 귀엽지 않아?" "호오~?" 움찔! 멀리서 매직보드를 풀고 있던 현민은 지혜의 묘한 탄성에 고개를 숙였다.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붉어진 얼굴을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에 대한 지혜의 칭찬은 자신을 놀리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반장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신을 칭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저는... 모든 몬스터들의 어머니랍니다.'라고 하는데, 그때 모습 봤어? 진짜 여자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니깐." "그치, 그치? 나는 영화 속의 공.주.님.인줄 알았다니깐? 쿡쿡." 움찔!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현민은 지혜가 나가기 전까지 머리를 들지 못했다. 현민의 정체를 알고 있는 지혜가 현민을 옆에 두고, 반장과 이상한 질문을 주고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반장은 지혜가 원하는 데로 현민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가방조차 풀지 않은 지혜는 반장의 곁에서 한참동안 대화를 즐겼고, 교실이 절반쯤 차고 나서야 자신의 반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이들은 절반밖에 오지 않았지만, 아침조회까지 10분정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시끌시끌. 웅성웅성. 교실의 여기저기 뭉쳐있는 아이들은 새벽에 올라온 동영상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호칭 그대로 '어릿광대'라 생각했던 존재가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강했기 때문이었다. 최강의 마법사도 아니었고, 뛰어난 전사도 아닌 어릿광대는 생전 처음 보는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스윽.. "어?!" "설마..." 한참 시끌벅적하던 교실은 누군가의 등교로 인해 조용해졌다. 아니, 등교로 인해 조용해진 것이 아니라, 그가 맨 뒤에 있던 의자를 집어 들었기 때문에 조용해진 것이었다. 의자의 등받이를 손에 잡은 그는 의자를 들어 올리며 현민을 향해 다가갔고, 주변의 아이들은 설마하는 생각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제 당한 것이 있었기에 오자마자 싸움을 걸 뿐, 의자를 휘두르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벅저벅. 스스슥, 스슥... 뒤에서 의자를 든 학생이 걸어오고 있을 때, 자리에 앉아 있는 현민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매직보드의 문제를 풀고 있었다. 멈칫. 의자를 든 학생이 현민의 뒤에 멈춰 서자, 교실에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그만 소리라도 냈다가는 그 학생이 의자를 휘두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에 들린 의자가 빠르게 휘둘러졌다. 후웅! 움찔. 집중한 상태로 문제를 풀어나가던 현민은 무엇인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그것을 피하지는 못하였다. 책상에 앉아 있는 자세라 움직이는 것이 불편했고, 너무나 집중하고 있었기에 반응이 한 박자 늦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퍽! 퍽!! 우당탕탕! "꺄악!" "미, 미친!!" 자신의 손에 들린 의자로 현민의 등을 때린 그는, 현민의 의자를 걷어차며 현민을 밀어버렸다. 그의 발길에 넘어진 현민은 주변의 책상들과 함께 쓰러져버렸고, 주변의 학생들이 심각해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괜찮아?" 지끈. 빠르게 다가온 반장이 현민을 걱정하며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현민은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며 스스로 일어났다. 의자로 맞은 부분은 별로 아프지 않았으나, 넘어지면서 부딪힌 이마가 약간 신경 쓰였다. 고통은 크지 않았으나, 현민의 왼쪽 눈으로 피가 흘러내렸기 때문이었다. "비켜! 다치기 전에." 주춤. 그의 살벌한 외침에 가운데를 막고 있던 학생이 천천히 물러섰다. 작정하고 온 그를 막으면 자신들도 다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살벌한 그의 모습에 친한 친구들도 쉽사리 말리지 못하고 있었다. "반장 비켜줘."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걱정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반장을 멀리 물러나게 했다. 재수 없으면 잘못 날아온 의자에 그녀가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도 한번 누워봐, 이 개x꺄!"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멀리 물러나면서 그들을 주위로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지자, 의자를 들고 있던 학생이 현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시한번 의자로 쳐서 그를 쓰러트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현민에게 그의 공격이 맞을 리 없었다. 팟! "윽!" 오른발을 살짝 비틀며 앞으로 내밀은 현민은 상체를 돌리며 날아오는 의자 다리를 오른손으로 잡아챘다. 의자의 다리중 하나가 손에 잡히자마자 왼발을 움직인 현민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의자가 날아오는 속도와 비슷하게 회전하였기 때문에, 그가 잡고 있던 의자는 현민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였고, 오히려 등받이의 거친 부분이 그의 손을 다치게 했다. 너무나 빠른 현민의 움직임은 의자가 손에 잡히는 순간 회전을 시작한 것인지, 회전을 하며 의자를 잡은 것인지 쉽게 구분할 수가 없었다. 스윽! 주변의 책상은 모두 쓰러져 있었고, 학생들은 멀리 물러나 있었기 때문에 그의 동작을 방해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현민에게 의자를 빼앗긴 그는, 현민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움직이는 의자를 피할 수 없었기에,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두려워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멈칫. 하지만 그가 기다리는 고통은 느껴지지가 않았다. 순식간에 한 바퀴를 회전한 현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의자의 등받이로 그의 목을 겨누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현민의 동작으로 인해, 교실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너무나 환상적인 현민의 모습에 어떠한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현민이 능력의 일부를 공개했네요. 자, 그는 자신의 능력을 어디까지 공개할까요?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되는 전쟁에서 담비가 최고의 활약을 펼칩니다. 예고 >> 무너질 담(坍), 무너질 비(圮)... 우리의 담비는 현민에 이어, 하늘에 떠있는 운영자의 마음도 무너트렸다. 과연, 어떤일로?당분간 휴식기간을 갖을 생각입니다. 글이 엉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길게길게 써내려 가다보니 연재속도도 느려지고 저도 지치는 것 같네요... 앞으로의 내용을 위해서는 잠깐 쉬어주는게 나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입니다. 당분간은 그동안 미뤄왔던 수정작업을 하며, 뒷 이야기를 쓸 생각입니다. 최대한 빨리 오겠습니다. _(__)_ 퍽! "큭." 텅... "어?" 모두가 현민의 동작으로 정신이 나가있을 때,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현민의 공격으로 인해 동작을 멈추었던 학생이 주먹을 휘두른 것이었다. 그 학생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들고 있던 의자를 놓쳐버렸다. "x꺄, 그냥 쳐보지? 응?" 퍽! 퍽! 현민의 공격에 놀라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던 그 학생은, 현민의 공격이 멈춰버리자 그때가 기회라고 여기는 듯 현민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현민이 조금이라도 물러난다면 비켜나갈 주먹이었지만, 그의 주먹을 맞고 있는 현민은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그만해! 누가 좀 말려!" 피투성이로 변해버린 현민의 얼굴에 깜짝 놀란 반장이 주변의 아이들에게 부탁을 하자, 몇몇 아이들이 그들에게로 달려 붙었다. 하지만 멀리서 달려오는 그들보다는, 그 학생에게 맞고 있는 현민의 움직임이 더욱 빨랐다. 스윽... 팍! "컥!" 날아오는 그의 주먹을 왼손으로 잡아버린 현민은, 그의 팔을 당기며 오른손을 내뻗었다. 현민이 크게 움직일 것도 없이 현민의 오른손에 그의 목이 잡혀버렸고, 현민은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어 그의 목을 눌렀다. 그의 목을 억세게 잡을 필요도 없이, 현민의 엄지손가락만으로도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어제처럼 잠자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 응?" 그를 당기며 한걸음 다가간 현민은 그의 오른쪽 어깨와 자신의 오른쪽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이 붙었다. 거리를 벌리고 있을 경우 그의 발에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에, 컥, 크르륵." 현민의 손으로 인해 숨이 막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고통은 목을 조르고 있는 것과 같았다. 현민의 손을 치우려고도 하고, 손과 발로 현민을 때려보기도 했으나, 그의 목에 닿아 있는 현민의 손은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어설프게 덤빌거면 덤비지를 마. 귀찮으니깐." 슥! 털썩! 그것이 그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무언가가 턱을 스쳐지나간다고 느꼈을 때, 그의 의식은 어둠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현민이 왼손의 손바닥으로 그의 턱을 스쳐 때리자 뇌에 충격이 오며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반장." "아, 응?!" 피투성이로 서있는 현민과 바닥에 쓰러져버린 학생을 보며 굳어버린 반장이, 현민의 부름에 어설프게 대답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지?" "으응." 어제에 이어서 또 다시 기절시켜버린 현민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교실을 나갔다. 평소였다면 분개하며 달려들었을 아이들이,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으며 현민을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 "어서 책상 치우고, 누가 현우 좀 옮겨줘." 현민이 나가고 나자 반장이 정리를 하기 시작했고, 모두들 반장의 소리에 맞추어 교실을 정리했다. 바닥에 떨어진 현민의 피가 교실을 더럽히고 있었기에 어떤 곳은 청소도 해야만 했다. 선생님이 오시기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얼굴을 피로 물들인 현민은 화장실에 들어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시간이 시간이었기 때문에 화장실의 문이 닫혀있어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후우..." 두근두근! 조용히 문을 닫고 벽에 기대선 현민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으나, 그의 가슴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거친 움직임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싸움으로 인해 두근거렸기 때문이었다. 쏴아아... 세면대로 자리를 옮긴 현민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현민의 얼굴은 피범벅이가 되어있었지만, 이전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굳어있는 것이었을 뿐, 아직까지 피가 흘러나오는 상처는 없었다. "하아..." '그런 위험한 짓을 잘도 하는구나.' "아, 일어났어?" 얼굴의 피를 모두 닦아낸 현민이 거울을 바라보며 얼굴의 상처를 살피고 있을 때, 그의 내면에 있던 또 하나의 인격이 현민을 향해 화를 냈다. '네가 사용한 마지막 일격. 조금의 실수라도 한다면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아니, 운이 좋아 기절로 끝난 것이다.' "응." '다음부터는 기절시키기보다 뼈를 분질러 버려라. 오히려 그것이 안전하니깐.' 그의 말대로 머리에 충격을 주어 기절시키는 것보다는 신체에 충격을 주어 움직일 수 없도록 하는 게 안전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아무런 감정 없이 말하고 있는 현민의 또 다른 인격은, 인격이 달라도 현민은 현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그게 낫긴 한데 치료비가 들어가잖아. 나중이 귀찮아져." '실수로 죽이는 것보다는 나.' "음... 왠만하면 안할게." '싸움은 자제해.' 그것을 끝으로 현민의 내면은 또 다시 잠에 빠졌다. 현민이 싸움을 했기에 깨어났을 뿐, 그의 정신적인 피로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라." 나지막이 입을 연 현민은 거울속의 있는 자신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왠지 피곤해 보이는 거울속의 현민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드르르륵... 현민이 교실의 문을 열었을 때,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현민의 얼굴로 집중되었다. 현민의 얼굴이 상처투성이라면 깨끗이 정리를 하였다 하더라도 싸웠다는 것을 눈치 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교실로 들어오는 현민의 얼굴은 조금의 상처도 보이지가 않았다. 이마의 다친 부분은 머리카락으로 가려졌고, 입 같은 경우는 겉이 다친 것이 아니라 속이 다쳤기에 상처가 있다는 것이 티도 나지 않았다. 얼굴에는 조금의 멍도 들어있지 않았고,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입술이 약간 찢어진 것밖에 없었다. 그것마저도 흔히 갈리진 것 같은 모양이어서 싸웠다는(맞았다는) 흔적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으렴. 이제 다 온 거지?" 동복의 겉옷을 손에 들고 있는 현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옷을 의자에 걸치며 자리에 앉았다. "안 춥니?" "괜찮습니다." 아무리 교실이 따뜻하다고는 할지라도 겉옷을 벗고 있는 것은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한 담임선생님이 현민을 향해 물어보았으나, 현민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설령 춥다고 할지라도 피 묻은 옷을 입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 그러면 전달사항 말할 테니 잘 듣도록." 현민에게서 시선을 돌린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 주 수요일에 졸업인건 알지?" "네." "그럼 다음 주에..." 담임선생님이 아침조회를 하고 있는 동안에 현민은 자신의 책상위에 올려 진 매직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현민의 이마에 난 상처의 원인이 매직보드였는지, 매직보드의 곳곳에는 현민의 피로 추정되는 것이 묻어 있었다. 게다가 부딪힐 때의 충격 때문인지 이곳저곳이 부서져 있는 매직보드는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 '새로... 사야하나.' 몇 만원도 아니고 몇 십 만원 짜리가 부서져 있으니, 생각할수록 짜증이 나는 현민이었다. 매직보드를 사는데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으나, 쓸데없는 일로 돈이 나간다는 것이 현민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자, 그럼 수업 열심히 해라~." "네!" 현민이 부서진 매직보드를 바라보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침조회를 마친 현민의 담임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셨다. 평소와 같으면 선생님이 나가는 것과 동시에 시끄러워질 교실이었으나, 오늘은 현민과 현우의 싸움이 있었기 때문인지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저기..." "응?" 주변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선생님이 나가는 것과 동시에 자리에 엎드렸던 현민은 자신을 부르는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들었다. "양호실 안가도 돼? 아까 의자로 맞은 데도 그렇고 얼굴도..." "괜찮아..." 털썩. 짧게 말을 끊은 현민은 책상 위에 엎드려서 편한 자세를 잡았고, 반장이 보고 있는 가운데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매직보드로 인해 억지로 버티던 현민은 그 수단마저 사라져버리자 잠을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새근... 새근... "에?" 엎드리자마자 들려오는 곤한 숨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린 반장이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현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살짝 드러나는 현민의 얼굴은 정말로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고, 현민을 신경써준 반장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소곤소곤... 현민이 잠들고 나서야 묵직했던 반의 분위기가 약간씩 풀리기 시작했고, 몇몇 아이들은 자리를 이동하여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현민을 주제로 시작했던 그들의 대화는 어느 순간 "싸울아비"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버렸고, 목소리의 크기도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소곤거리던 그들의 대화가 웅성거림으로 바뀌어버렸다. 웅성웅성 너무나 시끄러운 교실의 분위에 살짝 걱정된 반장이 현민을 돌아보았으나, 깊은 잠에 빠져있는 현민은 주변의 시끄러움도 모른 채 곤히 자고 있었다. "현민아." 흔들. "현민아?" "으응...?" 한참 곤히 자고 있던 현민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려고 했으나, 몸까지 흔들어대기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인데 밥 안 먹어?" "하암..." 아침부터 잠자기 시작했던 현민은 반장과 시간표의 도움으로 인해 점심시간까지 잘 수 있었다. 1교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던 국사였으므로 자습, 2교시 역시 음악이었기에 자습, 3교시는 체육이었으나 날씨가 추우니 실내에서 자습, 4교시는 언어였지만 반장이 나서서 현민을 병자(?)로 만들었기에 아무런 간섭 없이 잠잘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모든 아이들이 식당으로 이동해 있는 상태였고, 교실에는 현민과 반장만이 남아있었다. "나, 졸린데..." 비틀... 현민의 상체가 책상에서 떨어지기는 했으나, 잠깐 떠졌던 현민의 두 눈은 반장을 확인한 후 다시 감겨버렸고, 의자에 기대어 있는 그의 상체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래도 밥은 먹는 게..." 반장이 현민을 향해서 말을 걸었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현민은 그 잠깐의 사이를 참지 못하고 이미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또 다시 잠들어버린 현민을 바라보며 깨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줄 존재가 나타났다. "현민아~." 덮석! 익숙한 모습으로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지혜는 현민이 있는 장소로 곧장 달려와 잠자고 있는 현민을 안아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그녀가 안기 전에 가볍게 피해버렸을 현민이었지만, 잠자고 있는 지금의 그는 평소와 다르게 무방비했다. "웁?" "아?" "에? 꺄악!" 지혜의 가슴에 정확히 안겨있는 현민은 자신의 얼굴을 감싼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들의 곁에 서 있던 반장은 현민의 머리를 가슴에 안아버리는 지혜의 대담한 행동에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현민을 품에 안고 있는 지혜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신의 품에 안긴 현민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한걸음 물러났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에 놀란 것인지, 지혜가 안아도 일어나지 않았던 현민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물어보았다. 하지만 지혜가 비명을 지른 이유를 알지 못하는 반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비명을 지른 지혜는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왜 비명을 질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응?" 현민이 아무런 말이 없는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현민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지혜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공격을 피하던 현민을 처음으로 안아보았기 때문인지 두근거리는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가 않았다. "지혜야!" 세 사람 사이에 묘한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며 그들의 침묵도 사라져버렸다. 지혜와 사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남학생이, 지혜를 쫓아 현민의 교실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하아..." 그를 바라보는 지혜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자신을 보며 미소 짓고 있는 남자는 자신이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해맑게 웃기 때문이었다. 외모, 성격, 집안, 머리 그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남자가 어째서 자신을 좋아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지혜였다. 스윽... 그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지혜는 현민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그와 자신의 사이에 현민이 있도록 했다. 충혈 된 눈으로 남학생을 올려다보던 현민은 지혜의 손이 자신의 어깨에 올라오고서야 자신의 위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기..." "난 현민을 좋아해.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 미래를 그에게 맡기고 싶을 만큼 좋아하고 있어." 교실에 있는 3명은 지혜의 말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미래를 맞긴다는 것. 지혜는 현민과 결혼하고 싶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너무나 진지한 지혜의 말투에 반장과 현민의 얼굴이 붉어져 버렸고, 지혜를 찾아왔던 남학생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버렸다. "너무 좋아해서 언제나 함께 있고 싶고, 현민외의 다른 남자는 보이지도 않아." 너무나 당당한 그녀의 말에 반장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너무나 직접적인 그녀의 고백에 자신의 마음이 두근거렸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있는 지혜의 모습은,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상적인 여주인공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고백을 받고 있는 현민의 얼굴은 붉어진 반장의 얼굴과는 반대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이전의 붉어진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너를 좋아할 거야. 아니, 나만을 좋아하게 만들 거야." "도대체 나의 어디가 좋은 거야? 나보다 예쁜 애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 같은 성격의 애들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그녀의 말대로 였다. 지혜의 얼굴은 '귀여운 것 같다', '나름대로 괜찮다'정도의 소리는 들을 수 있어도, '예쁘다', '아름답다'의 정도는 아니었다. 공부 또한 자신의 실력을 속이고 있었기에 중간정도에 머무르는 성적이었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지혜의 성격은 다른 여자애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현민의 눈에는 미인으로 보이는 지혜였으나, 현민이야 눈코입만 정상적(?)으로 붙어있으면 전부 미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민의 생각은 제외였다. "처음엔 나도 몰랐어. 하지만... 지금 이 감정을 좋아한다고 말해야 할 것만 같아. 그리고 지금의 이 감정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강적이다." "하아..." 자신의 귀에도 겨우 들릴 정도로 조그맣게 속삭이는 지혜의 목소리에, 현민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잠이 깨지 않아 그녀의 말을 진실로 생각했었으나, 어디선가 들어봤던 그녀의 말에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한 현민이었다. "이번 축제 때 너만을 위한 무대를 준비할거야. 꼭 봐줘." "싫... 흥!" 그의 말을 들은 지혜는 단호하게 거부하려 했지만, 현민의 손이 그녀의 손위에 닿으며 말렸기 때문에 중간에 말을 자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 너도 나오는 건 어때?" "나는 왜?" 그의 시선이 지혜를 떠나 현민에게로 옮겨졌고, 그의 시선을 받고 있는 현민의 인상은 자연스럽게 구겨져 버렸다. 당사자들의 문제에 왜 자신을 끼어 넣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 사람이 지혜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는 거다. 지혜를 걸고 하는 내기가 아니라 너랑 나의 마음을 걸고 하는 내기를 하자는 거다." "후우..." 그의 말을 듣고 있는 현민은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러는 것인지, 요즘 들어 이런저런 이유로 싸우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의 도전이 폭력에 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싸우자는 것이었기에 한숨만 흘러나오는 현민이었다. "안 해. 아니, 기권할게." 그의 말을 들은 현민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지혜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다. 그가 내건 조건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민이 이긴다면 철거머리 같은 그가 떨어져나갈 것이고, 만약에 현민이 진다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바뀌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겠어!" "야!" 고개를 돌리고 있던 현민은 자신을 대신하여 대답하는 지혜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녀의 대답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었고, 그 뜻도 반대였기 때문이었다. 스윽... "어려울 때 도와준다고 했지?" "언제?" 현민을 향해 허리를 숙인 지혜가 그의 귓가에 조그맣게 속삭였지만, 현민은 전혀 기억이 안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작년 겨울에, 눈 내리는 밤, 포옹하면서." "...몰라." 작년 겨울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때의 일을 기억해낸 현민이었지만, 자신은 절대 모르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면서 힘겹게 대답했다. "기억날 때까지 안아줄까? 응?" "...나 요즘에 시간 없는 거 알잖아. 싫어." 그녀의 협박에 굴복한 현민은 그때의 일을 인정했지만, 부탁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일보다는 자신의 일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샨과 황녀들을 구해냈다고는 하지만 유저들과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었다. "그 전쟁. 내가 도와줄게. 어때?" "음..." 그녀의 조건을 들은 현민은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 혼자서도 모든 유저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혼자서 모든 유저들을 상대해야하는 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천재라는 종족(천재는 사람도 아니다...)이 자신을 도와준다면 그 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위험도 상당히 줄어들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대신, 무대에 서야만 한다는 것이 현민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무대에 서는 것도 부담스럽고, 남들에게 보일만한 재주도 없으니 더욱더 꺼려졌다. "모든 전쟁을 3일 안에 끝내주겠어." 그러한 현민의 마음을 눈치 챈 지혜가 조금 더 강한 조건을 내걸자,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던 현민의 천칭이 축제의 방향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그녀의 조건대로 3일이란 시간 안에 끝나기만 한다면 축제까지 이틀의 시간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씽긋. 현민의 대답을 들은 지혜는 입가에 예쁜 미소를 지으며 수그렸던 허리를 바로 세웠다. 현민이 어떠한 것을 보여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현민이 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조건... 받아들일게." 그녀의 조건을 수락하기는 했지만, 현민의 두 눈에는 불만이라는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어디서 나타난 엉뚱한 놈 때문에 망신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춤도, 노래도 하지 못하고, 별다른 재주도 없는 자신이었기에 망신당할 것은 분명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해." "하아..." 현민을 향해 확답을 받고 있는 그의 모습은 자신감에 차 있었고, 그제야 무엇인가를 눈치 챈 현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민의 예상이 맞다면, 그는 이미 상당한 준비를 끝마친 상황에서 현민을 향해 내기를 걸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중에 봐, 지혜야. 아참!" 지혜를 행해 인사를 건낸 그가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할 때, 무엇인가 생각난 듯 발걸음을 멈추며 다시금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까는 몰랐는데, 네가 본 영화는 나도 재미있게 봤어." "윽!" "하아..." "응?" 그의 마지막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반장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지만, 현민과 지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한숨과 신음을 내뱉었다. 그를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속은 것은 자신들이었다. "영화라니? 무슨 소리?" 그가 나가자마자 반장이 현민을 돌아보며 질문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건넨 말뜻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돌아본 현민은 지혜를 손으로 가리키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 이놈이 한 말... 영화에서 나온 대사거든." "에?" - 당신이 너무 좋아요. 너무 좋아해서 언제나 함께 하고 싶고, 당신외의 다른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걸요... 흑. - 나도... 나도 너밖에 없단다. 하지만 폐하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나야 상관없지만 너의 목숨이 위험하여... - 마마!! 제발... 제발 소녀를 버리지 말아주시와요. 흑흑흑. 벌서 1년이나 지난 영화였으나, 처음으로 여자와 본 영화였기에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내용이었다. 대사까지 기억나는 것은 그때의 내용이 흥미로웠기(?) 때문인지도... "칫! 완벽히 연기한 줄 알았는데..." "...악마." "마녀 주제에..." 그들의 대화에는 다정한 말이 오고가지 않았지만 그들의 곁에 서있던 반장은,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서로에 대한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반장, 점심 맛있게 먹어. 난 지혜랑 얘기 좀 하러갈 거니깐." "아, 응." 현민과 지혜는 전쟁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기 때문에 옥상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다. 반장을 피하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자신의 존재를 알려줄 수 없기에 어느 정도의 선은 두어야만했다. "정말 가능한 거야?" "당연하지. 이미 계획까지 생각했으니, 너는 약속이나 지켜." 옥상을 향해 올라가는 지혜는 현민의 옆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지만, 반장의 눈에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다정한 연인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사귀어온 친구처럼 보이고 있었다. 어른스러워 보이면서도 장난기 어린 그들의 모습이 부럽게 느껴졌다. 딩동뎅동~♪ "끝이다~." 7교시까지의 수업을 모두 마친 그들에게는 저녁시간 이후의 야자(야간자율학습)가 남아있었지만, 지금부터 야자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오랫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모두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빨리 끝내자!" 드르르륵... 웅성웅성 당장이라도 이리저리 흩어져 놀고 싶은 것이 그들의 마음이었으나, 그러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청소를 해야만 했다. 청소를 안 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같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기에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모두가 부지런히 움직이여 했다. 폴짝! 폴짝! "아이씨! 누가 꼭대기에 올려놓은 거야?" 모두가 청소도구를 손에 쥐고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유난히 키가 작은 여학생 한명이 책장 위에 올려진 걸레를 꺼내지 못하며 폴짝거리고 있었다. 안쪽 깊숙이 박혀서 일부분만 살짝 보이고 있는 걸레는, 누군가가 장난치다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책장위의 걸레를 보며 어떻게 꺼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의 귓가로 무뚝뚝한 음성이 들려왔다. "...꺼내줄까?" 움찔! 가까이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녀는, 자신의 뒤에 서있는 현민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나 버렸다. 현민이란 존재가 기척도 없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놀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는 현민은, 한걸음 물러나 자리를 만들어주는 그녀의 행동을 긍정이라고 생각하며 책장 위의 걸레를 잡으려 했다. 팟! 살짝 구부려졌던 현민의 다리가 강하게 튕기면서 현민의 신형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가벼운 동작으로 뛰어오른 현민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걸레를 잡기에는 충분했다. 슥. 탁. "자." "고, 고마워." 여유로운 동작으로 책장위의 걸레를 꺼낸 현민은 작은 발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려섰고,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걸레를 여학생에게 넘긴 후,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자신의 자리에 돌아갔다. "우, 우와..." 현민이 청소를 하고 있을 때, 현민에게서 걸레를 받아든 여학생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현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현민은 가벼운 동작으로 뛰어올랐지만, 자신의 눈높이에서 현민의 허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현민의 키를 생각해보면, 조금 전 40cm정도는 뛴 것 같았다. "요즘 들어 너무 멋있지 않아?" "맞아, 맞아." "예전에는 저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현민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그녀의 곁으로 모여든 여학생들이 현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현민이었지만, 요즘 들어 보여주는 그의 모습이 여학생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아까 1학년 여자애들이 찾아온 거 봤어?" "어제 후문에서 소동피운 게 현민이었대." .... 쫑알쫑알... "하지만..." "응?" 그녀들이 현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들의 틈에 끼어있던 반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잡담하고 있는 그녀들을 청소시키기 위해 다가왔던 반장이었지만, 반장도 여자인지라 어느 순간부터 그녀들의 수다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왠지 다가가기가 힘들지 않아?" 작게 들리는 반장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음... 맞아." "왠지 피한다고 할까?" "말 걸기가 무서워, 아침의 일도 있고..." "자! 잡담은 그만하고 어서 청소하자!" 모두가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시작하려고 할 때, 정신을 차린 반장이 그녀들을 말리며 청소를 재촉했다.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남학생들의 시선이 점점 사납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청소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쉬는 시간이 짧아지니 그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자, 그럼 모두 저녁 맛있게 먹어라~." "네~!!" "그리고 현민아, 잠깐 얘기 좀 할까?" 움찔!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마자 책가방을 집어 들고 집에 갈 준비를 하던 현민은, 자신을 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몸이 굳어버렸다. 선생님과 현민이 대화를 나눌만한 내용이, 어제와 오늘 아침의 싸움밖에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장과 반 아이들이 싸움에 대해서 철저히 숨겼다고는 하지만 다른 반의 학생들까지 자신의 싸움을 비밀로 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자, 앉아." "네." 선생님의 뒤를 따라 교무실로 들어간 현민은, 누가 봐도 티가 날 정도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이번일로 인해 부모님이 오신다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현민아." "네." "서클 확인은 언제 할 거야?" "...에?" 하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던 현민의 귀에 들린 것은 그가 걱정하던 내용이 아니었다. "4서클 유저가 됐으니 증명 받아야 하잖아? 선생님이 주말에 시간이 비니깐 이번 주말엔 어때?" 자신의 반에서 4서클 유저가 나온 것에 잔뜩 흥분한 담임선생님이 현민의 일을 서두르는 것이었다. 고등학생이 "싸울아비"에서 4서클 유저가 된다면, 그의 노력과 실력을 인정하여 대학에서도 받아준다고 하였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학교의 교직원이 참가한 가운데 운영자로부터 확인을 받아야만 했다. 간단한 확인이라면 교직원만으로도 충분할 테지만, 혹시나 모를 방법들을 대비하여 운영자의 확인을 받는 것이었다. "아, 저는 괜찮..." 선생님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던 현민은 문장을 완전히 말하지 않은 채 중간에 말을 끊었다. 지혜가 3일안에 모든 전쟁을 끝내준다고는 했지만, 그녀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응?" 현민의 말이 중간에 끊어지자 담임선생님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으나, 이내 그 원인을 찾아낸 듯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다. "혹시나 전쟁 때문에 그런 거니?" 흠칫! 두근! 두근! 선생님과의 약속에 대해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현민은, 정곡을 찌르는 담임선생님의 말로 인해 심장의 두근거림이 빨라졌다. "어릿광대의 동영상은 선생님도 봤어. 하지만 몇 억의 유저들을 상대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사람 수는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거든." 두근...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인해 심하게 두근거리던 가슴은 평상시의 속도로 돌아왔고, 불안해하던 현민의 얼굴도 평소와 같이 냉정하게 변해버렸다. "그럼 이번 주 일요일에 시간 비워둘게요. 언제쯤이 적당할까요?"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현민이 고개를 들었을 때, 냉정하게 변해있던 그의 얼굴에는 보기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음... 일요일 5시 어때?" "저는 괜찮아요. 어디로 갈까요?" "루카 왕국에 '토와'라는 마을로 올래?" "마을 중앙에서 기다리면 되나요?" "응."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현민의 얼굴은 계속해서 웃는 얼굴이었다. 오랫동안 같은 미소를 유지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어색함을 느끼게 할 수 있었지만, 현민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는 그러한 느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내일 봐." "예." 담임선생님과의 대화를 마친 현민은 그녀를 향해 예(禮)를 차린 후, 조용히 물러났다. 현민이 교무실을 나가려고 할 때, 현민의 담임선생님 주변으로 모여든 여러 선생님들이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그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현민은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이 조용히 교무실의 문을 닫았다. 달칵. 교무실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온 현민은 언제 웃었냐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윽... 잠시 동안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현민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매만졌다. 얼굴에 살짝 올려진 그의 손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기 보다는 얼굴 위에 쓰여진 무엇인가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저는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답니다." --------------------------------------------------- 잠수를 끝낸 것은 아니지만 너무 오래 안올리면, 연중을 걱정하실것 같아서 몇편 올렸습니다. 현민에게 주어진 일주일의 시간동안 많은 사건을 겹치도록 만들다보니 제 머리가 어지럽네요^^; 이 뒷편도 올려드리고 싶지만 내용의 연결을 다듬는 중이기에 나중에 올려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저는 또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_(__)_<2월 10일(목) 7시 23분> -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82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캡슐에 누워있는 현민은 커다란 전쟁을 앞두고 있었지만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자세한 계획을 듣지 못하여 지혜가 어떠한 방법을 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바라보았던 지혜정도라면 그의 승리는 당연했다. "앞으로 3일." 스윽... 현민이 숲의 한가운데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싸울아비"에서는 새로운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점점 밝아지는 하늘은 어제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전쟁을 생각한다면 그것도 잠깐뿐일 것이다. 띠링~♬ [마법사의 마법이 패치 되었습니다.] - 마법의 사용에 필요했던 수식이 랜덤으로 바뀌었습니다.(문제의 수준은 마법의 서클과 지능에 영향을 받습니다.) - 모양과 크기가 정해져 있던 마법들이,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그 모양과 크기가 변하도록 바뀌었습니다. 또한 정해져 있던 정신력의 수치도 사라졌습니다.(모양과 크기에 따라 사용되는 정신력의 수치가 일정하게 변화합니다.) "싸울아비"에 들어오자마자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현민은, 귓가에 들려오는 메시지 소리에, 올렸던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전쟁의 시작을 앞두고 이루어진 이번의 패치는 현민에 있어 득(得)이 될 수도, 실(失)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고마워요, 누나." 하지만, 그 글을 읽고 있는 현민은 인상을 쓰기보다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이번의 패치를 진행 했을 페튜니아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이번의 전쟁은..." 스윽... 인벤토리에서 어릿광대의 가면을 꺼내든 현민은 그것을 얼굴로 가져갔다. "...제가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이군요." 딸랑~. <2월 10일(목) 7시 21분> 화려하게 장식된 거대한 홀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앉아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어서 의견을 내보란 말이오! 이대로 그들에게 우리의 땅을 주자는 말이오?!" 중앙의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는 존재가, 얼굴을 붉히며 주변의 사람들에게 고함을 쳤지만, 그의 고함에 주변 인물들의 고개만 낮아질 뿐, 거대한 홀에는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있었다. "하아... 이미 반이나 넘어간 상태요. 정말 대책은 없는 것이오?" 할 수만 있다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가 누려왔던 권리는 지금 같은 상황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를 벗어날 수도 없었다.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방법도, 도망갈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의 마음은 더욱더 지쳐만 갔다. 똑똑. 그의 침묵으로 인하여 거대한 홀이 정적에 빠져있었기 때문인지,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그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정상적이었다면 노크 소리가 아닌 기사들의 외침이 들려와야 했기에 그들의 얼굴이 불안하게 변해갔다. "누구냐?" 불안한 얼굴로 자신만을 바라보는 주변의 인물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번 쳐다봐 준 그는, 이전의 지친 얼굴이 아닌 위엄이 넘치는 모습으로 문의 반대편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스으윽... 하지만 문의 건너편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고, 대신 그들이 바라보고 있던 문이 미약한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열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한 주변의 기사들이 근처에 있는 인물들을 호위하기 시작했고, 그 외의 나머지 인물들은 문을 둘러싼 채, 검을 뽑아들었다.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가 적일 경우 가차 없이 베기 위해서였다. 딸랑~, 딸랑~.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한 걸음, 한 걸음 내걸을 때마다 맑은 방울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간질였고, 웃으면서도 우는 듯한 묘한 가면이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안녕하신가요? 황.제.폐.하." 정중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그의 인사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져버렸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문을 감싼 채 검을 겨누고 있던 기사들은 이미 한걸음 물러선 지가 오래였고, 황제는 그들을 다그치지도 못한 채 신음처럼 그의 호칭을 내뱉었다. "어릿...광대." 지금 막 로그인하여 숲속을 걸어가고 있을 현민이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저를 알아주시다니 영광이옵니다." 현민은 자신을 알아본 황제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장난기 어려있는 말투와 행동이 그의 말에 일치되지가 않아, 언뜻 보면 현민의 행동이 황제를 모욕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놈!!" 이런 현민의 태도를 가만히 넘길 리 없는 기사들이 살벌한 기운을 드러내며 현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수십 개의 날카로운 검이 그의 몸을 난자하려고 했으나, 그것들의 목표가 되고 있는 현민은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은 채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죽어라!" 그들의 검이 현민의 몸에 닿는 순간까지도 그 자리에 있는 현민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그들의 검이 빗나갈 이유는 없었다. 푹! 푸푸푹! 모든 기사들의 검이 현민의 몸에 꽂힌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던 기사들만은 자신들의 검을 현민의 몸에 꽂아 넣고 있었다. 머리에 하나, 목에 하나, 심장에 셋, 가슴에 둘, 허리에 하나, 그리고 다리를 자르고 지나간 검이 셋이나 되었으나, 그런 상태가 되어버린 현민은 불사신이라도 되는 듯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인탱글,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그래비티." 쿠쿠쿵! 현민의 몸에서 솟아나기 시작하는 나무뿌리에 검을 잡고 있는 기사들이 현민의 몸에서 검을 뽑으려고 했으나, 단단히 박혀있는 그들의 검은 전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의 몸도 나무뿌리로 감싸여 버렸다. 기사들의 평균 레벨이 300이었기 때문에 거대해진 나무에 눌려 죽지는 않았으나, 이어지는 현민의 마법에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움을 주러 온 사람에게 너무 심한데요?" 딸랑딸랑... 팔짱을 낀 채 좌우로 고개를 흔들고 있는 현민은, 자신의 태도에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도움을 주러 왔다는 존재가 어째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건가?" "호오?" 현민이 고개를 저으며 한탄(?)하고 있을 때, 황제의 곁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마법사로 추측되는 그 할아버지는 기사들의 사이에 있는 현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장의 한쪽 벽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아신 거죠?" 현민의 목소리는 아래쪽에서 들려왔으나, 그의 신형이 있던 자리에는 한그루의 나무만 서있을 뿐, 현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천장에 붙어 거꾸로 서있던 현민이, 자신의 몸을 투명화 마법으로 숨긴 채 환상 마법을 사용하여 나무의 모습을 자신으로 바꾼 것이었다. "처음부터라면 믿겠는가?" "흐응~." 자신의 마법이 들통 났다는 것에 아쉬워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겠지만,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현민은 자신의 마법이 들켰다는 것을 상당히 즐거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연륜이라는 것은 속일 수가 없나보네요." "자네 역시 소문 이상의 실력이군."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쿠쿡." 가벼운 동작으로 땅에 내려선 현민이 할아버지를 향해 감사를 보냈다. "그보다 좀 전에 도와주러 왔다고 하였는가?" 현민과 마법사 할아버지의 대화가 잠시 끊어졌을 때,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황제가 작은 희망을 품은 채 현민을 향해서 질문을 던졌다. 유저들을 통해서 퍼지게 된 현민의 질 나쁜 소문은 그들의 귀에도 닿아 있었지만, 그 소문들 속에 숨어있는 현민의 행동은 하나같이 올바랐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문제... 해결하고 싶으신 거겠죠?" 황제의 두 눈과 마주쳐 있는 현민의 두 눈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현자의 눈을 닮아 있었다. "가능... 하겠는가?" 현민을 향해서 부탁하고 있는 황제는 지금 자신이 하는 부탁이 절대로 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거대한 땅과 수많은 백성들은 유저들에게 빼앗긴 지 오래였고, 욕심 많은 일부의 귀족들이 나라의 재산까지 빼돌리며 유저들의 밑으로 들어갔기에,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힘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역사와 충신들의 노력으로 아직까지 버티고 있을 뿐이지, 지금의 나라는 언제 망한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물론이랍니다." 불안해하는 황제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현민은 황제의 물음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해 주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자리를 옮겨서 할까요?" 흠칫! 자리를 옮긴다는 현민의 말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몸을 굳혔다. 지금까지 보아온 현민의 태도가 그들에게 우호적이기는 했으나, 어딘지 모를 장소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그의 태도가 우호적일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됩니다! 저자가 어릿광대라 할지라도 그를 따라나선다는 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현민의 제안에 황제가 망설이는 표정을 내보이자, 주변에 있던 모든 귀족들이 황제를 말리기 시작했다. 일이 잘못되어 황제를 잃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나라는 당장에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황제의 뒤를 이을 황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러한 것도 소용이 없었다. "장소의 안전은 확실하답니다. 이미 다른 제국의 황제들과 주변 왕국들의 왕들도 모여 있는 상태이지요. 그래도 불안하시다면 두 명의 호위도 허락하겠습니다." 흥분해 있는 그들의 사이에서도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현민이, 익숙한 태도로 그들을 향해 부가 설명을 해주었다. "다른 제국의 황제?" "안전한 장소라니... 지금 같은 때에 어디가 안전하단 말인가?!" 웅성웅성 "모두 조용!!" 현민의 말을 의심한 귀족들로 인해, 궁의 내부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자 황제가 크게 소리치며 모든 귀족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위엄이 가득한 그의 음성은 시끄러운 귀족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며 모두의 귀에 확실히 전달되었다. "가겠다." "폐하!" "조용하라!" 자리에서 일어난 황제는 현민을 향해 발을 옮기며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조용해진 궁 안에서 현민을 따라가겠다는 황제의 말이 들리자, 모든 대신들이 입을 맞추어 황제를 불렀으나, 그러한 귀족들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발걸음은 멈춰지지가 않았다. 스윽... "두 명의 호위도 된다고 하였으니,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스승님..."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황제가 현민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을 때, 뒤에서 따라온 마법사가 그의 왼편에 자리 잡았고, 그의 뒤를 이어서 유일하게 검을 차고 있던 귀족이 황제의 오른편에 자리 잡았다. 두 명의 호위를 얻은 황제는 더더욱 당당한 표정이 되어 현민의 앞으로 걸어갔고, 주변의 귀족들은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한 채, 황제의 걸음만 바라보았다. "가세." "걱정 마시고 편히 계시기를..." 딸랑~. 황제에게 한걸음 다가간 현민은 주변의 귀족들에게 인사를 하며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황제의 모습에 귀족들의 얼굴이 불안하게 변했으나, 이제 그들에게 남은 선택은 황제의 귀환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궁전에서 자리를 옮긴 현민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깊은 어둠이 자리잡고 있는 동굴이었다. 웅얼웅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현민은 작게 흥얼거리며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는 것인가?" 너무나 작은 목소리로 부르기 때문에 가사까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현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너무나 단순하고, 왠지 모르게 경쾌해서 쉽사리 따라 부르게 되는 그런 멜로디였다. "들려드려요?" "부탁하네." 아무런 대화도 없이 걸어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여긴 황제가 현민에게 노래를 부탁했다. 황제의 신청(?)을 받은 현민은 잠시 목을 가다듬은 후, 여성처럼 높은 목소리로 즐겁게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귀여운 악마가 있다네. 아이처럼 장난스러운 귀여운 악마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죽이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죽이고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눈물을 짓네. 갈기갈기 찢겨진 그들을 보며 환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네. 노래의 음은 너무나 단순하며 경쾌했지만, 그 음에 맞추어진 가사는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그들에게 섬뜩함을 안겨주었다. 어른으로서 이러한 노래에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 말이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경쾌한 음과 모순되는 잔인한 가사가 그들의 공포를 자극하고 있었다. 저벅저벅... 현민의 노래는 진작에 끝났으나, 그 노래와 가사는 그들의 귓가에서 메아리 치고 있었다. 쉬운 멜로디와 섬뜩한 가사였기에 쉽사리 기억에서 지워지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귓가를 맴도는 노래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들의 귀에 또 다른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악마가 되었다네. 숲속을 뛰어 놀던 내가 악마가 되었다네. 나의 숲을 불태워버린 그들을 위해, 나는, 나는 악마가 되어 버렸다네. 나는, 나는 악마가 되었다네. 이제는 웃을 수 없기에, 환하게 웃고 있는 가면을 쓰고, 나는, 나는 악마가 되어 버렸다네. 나는, 나는 악마가 되었다네. 악마보다 잔인한,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나는, 나는 악마가 되어 버렸다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예전의 나를 기억하며, 나 오늘도 눈물을 흘리며, 나의 친구들을 죽여간다네... 새롭게 들려오는 현민의 노래는 이전의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슬픈 음이었으나, 이전의 노래보다 길었기 때문인지 그들의 머릿속에 기억되지는 않았다. 무엇인가 슬픈 것을 들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무엇을 들었는지 그들의 머리가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다왔네요." "아..." 그들이 현민의 노래를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을 때, 그들보다 앞서고 있던 현민이 목적지의 도착을 알려주었다. 어두운 길을 걸어서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엄청난 크기의 동굴이었고, 그 중앙에 있는 커다란 탁자에는 현민의 말대로 수십 명의 지도자들이 자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가 모이고 있는 중이니 잠시만 기다리겠습니까?" "어릿광대?" 현민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가고 있던 황제 일행은, 그들을 안내해준 현민 이외의 또 다른 현민을 보며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가면을 썼기에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두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그를 따라온 두 존재들은 너무나 똑같은 그들의 모습에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마, 말도 안돼..." "인간이 아닌 건가...?" 사방으로 보이는 길에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이 나오고 있었고, 그들의 앞에는 모두 어릿광대가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들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올려보았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들은 같은 사람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같은 시간> 아직도 숲 속을 걷고 있는 또 다른 현민은, 새롭게 패치 된 마법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여러 개의 마법을 펼치면 차트 형식으로 정리된다는 건가..." 허공에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며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현민의 주위에는, 수백 개는 되어 보이는 파이어볼들이 그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 몇몇은 나무를 건드리며 지나가기도 했지만, 나무에 불이 붙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번의 패치는 정말 재미있네요. 쿠쿠쿡." 숲속에 울려 퍼지는 현민의 웃음소리는 자신이 장난친 곳에 누군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악동의 웃음소리 같았다. --------------------------------------------------- 사탕을 받지 못한 외로운 여성분들을 위해 한편의 글을 올리려 했는데 약간 늦어버렸네요^^; 그리고 치킨헤드 님은 예전에도 비평해서 그렇게 욕을 먹으시더니 아직까지 보고계시네요... 나름대로 놀라워요. 저라면 조용히 있던지 가만히 물러나겠어요. 그리고 문피아나 조아라나 비슷한 싸이트라고 생각합니다. 읽을만한 것 찾기는 둘다 힘들기 마찬가지죠. 제가 조아라에서만 연재하는 이유는 문피아의 연재 방법이 귀찮고 번거롭게 때문입니다. 조아라 만큼 연재 등록이 간단하다면 문피아에서 활동하고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싸이트의 운영자가 아니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가들이니 다시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작가 : 날짜는 늦었지만 화이트 데이 기념인데, 재미있으셨나요? 현민 : 재미는 무슨 재미!! 너는 내 몸을 몇 개나 만들어 놓은거야?! 작가 : 맞다! 화이트 데이 기념으로 현민이 하나씩 가져가세요. 사탕 두개(...) 드리는 것보다는 현민이 하나(?) 드리는게 나을 것 같아서 복제 시켰답니다. (+ . +) ㅎㅎㅎ... 현민 : 너 이자... ???? : 제가 현민이에게 손대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작가 : ? 현민 : ? ..... ... 작가 : 저, 저기... 누구세요? ???? : 현민이의 '아내'랍니다. 현민 : 헉!! 작가 : 우악으악~ 왜 벌써 나왔어요?!! ???? : 아직 아닌...가? 작가 : 당연하죠!! 현민 : 마, 말도 안돼... 내가 저, 저.... 우읍?!! 작가 : ...그 다음 말하면 묻어버린다. (-.ㅡ)/ ???? : 현민이에게서 손 때시죠... 사회에서 매.장. 당하고 싶으신가요? 작가 : (꿀꺽!) 죄송합니다... ???? : 아직 나올때가 아니라고 하니, 나중에 뵈요. '여보' 현민 : 으, 으응... 작가 : 가, 갔냐? 현민 : 응. 작가 : 휴우... 현민 : 나... 쟤랑 결혼하는 거냐? 다른 사람으로 바꿔주면 안될까? 왠지 하루하루가 무서울 것 같아... ㅜ.ㅜ 작가 : 괜찮아, 너라면 잘 살거야. 아마도... <2월 10일(목) 7시 23분> "후아, 드디어 페드로 제국인가? 힘들다, 힘들어~." 조금 전, 이름도 모르는 제국의 황제와 공간을 이동해 온 현민은, 바닥에서 잠자고 있는 그들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할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계획이 생각 이상으로 막노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 무슨 이유로 이러한 일을 하는 거지? 그들을 속일 필요 없이 하나하나 데려오면 되는 것 아닌가?" 잠들어 있는 황제 일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 예상했던 동굴에서 현민 이외의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민의 뒤로 조용히 다가온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 때는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지요. 그 기준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같은 것 하나가 존재한답니다." "반드시라고?" "네."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을 관찰해온 그였지만, 그런 그조차도 현민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바라본 인간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의 기준을 만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엇이지?" "후훗, 세상에 공짜는 없답니다." "대답의 가치에 따라 보상을 주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돈을 요구하고 있는 현민의 모습과, 그러한 현민을 익숙하다는 듯이 넘어가고 있는 그들의 상황은 한두번 겪어본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정답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흠..."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준으로 두고 생각을 한답니다. 나 자신이 가능하다면 일의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고, 나 자신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면 다른 누구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지요." 그에게 질문을 던진 존재는 현민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지만, 현민은 그러한 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다음의 말을 이었다. "가능한 일, 불가능한 일. 유능한 존재, 무능한 존재. 개성, 외모, 성격 등 그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에는 '자신'이란 존재가 들어가 있답니다. 사회나 유행, 이념 같은 주변 환경이 자신의 '기준'을 세우는데 영향을 끼치지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일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현민은 잠시 숨을 골랐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면? 만약, 그렇다면 인간이란 존재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요?" "지금의 현실을 의심하며, 진실이란 것을 외면해버리겠지." 깊은 고민에 빠져 보이는 그였으나 현민의 말은 듣고 있었는지, 그가 물어보는 질문에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맞아요, 당신의 말대로 모든 것을 의심하며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존재를 자신과 다른 존재로 생각하겠지. 예를 들면 신(神)과 같은..." "정답~." 현민은 자신의 문제를 맞춘 것에 대해서 환한 표정이 되었지만, 그와 마주하고 있는 존재는 차가운 표정이 되어 현민을 바라보았다. "너는 신(神)이 되고 싶은 것인가." "푸훗! 저는 친구를 도와주려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신의 힘을 사양할 필요가 없죠." "신의 힘이라..." "절대적인 믿음.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니까요." 현민의 그러한 태도가 마음에 든 것인지, 차갑게 굳어있던 그의 얼굴이 약간이나마 부드럽게 바뀌었다. "그런 목소리로 말해봤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가요?" 그의 말투와 행동은 상당히 귀여웠으나, 그것은 대부분(?)의 여성과 일부(?)의 남성에게만 허용되는 것이지, 현민에게까지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자 귀엽게 미소 지은 현민이 자신의 가면을 벗어버렸다. "후아, 현민이는 이런 걸 쓰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정말 궁금하다니깐." 어릿광대의 가면을 쓰고 있는 존재가 당연히 현민일거라 예상했었지만, 가면을 벗고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현민이 아닌 지혜였다. 모든 전쟁을 3일안에 끝내겠다고 자신한 그녀는,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서 이러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현민이란 존재가 네가 연기한 것과 똑같다면 한번쯤은 만나보고 싶군." "당신이라면 현민의 정신세계를 상당히 좋아할 거예요." "나는 왜 그런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하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바닥에 자고 있는 황족을 내버려둔 그들은 사이좋은(?)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며 어둠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저와 다른, 또 다른 의미의 천재이니까요." "천재인 것이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마법이라는 것은 하나하나가 완벽을 이루는 것. 그런 것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그러한 순서를 거친다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는 현민이 사용하는 마법의 방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훗. 당신이 말하는 마법이 '단어'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현민이란 존재는 '문장'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 일 뿐... 이것이 제가 천재라 판단하는 이유랍니다." "..." 그들의 대화는 지혜의 말을 끝으로 멈추어 버렸다. 마지막 대답을 한 지혜가 현민의 가면을 쓴 후, 그 장소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던 지혜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혼자 남아있는 그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지만, 이내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2월 10일(목) 7시 25분> 아직 모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현민의 도움으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던 페드로 제국의 황제는 그 다음의 문제를 놓고 오늘도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가? 역시 돈이 문제라는 거군..." 전쟁이 끝나가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돈'이었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라면 물건이나 땅을 빼앗아 그동안의 손해를 감당할 수 있을 테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유저들과의 전쟁은 그들의 일방적인 손해만을 가져왔다.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던 페드로 제국의 궁전도 이곳저곳이 박살나 버린 상태였으나, 그것을 고칠 돈이 없기에 지금과 같이 멀쩡한 장소를 찾아가며 회의를 진행해야만 했다. "귀족들도 없는 건가?" "최소한의 돈을 남겨놓은 채 비밀금고까지 털어왔으니, 더 이상의 돈이 나올 리가 없지요." "하아..." 황제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으나, 주변의 인물들은 그러한 황제를 말릴 수가 없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 되어버린 돈은, 원하는 만큼 리필이 가능한 그런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알려드릴까요?" 흠칫! "누구냐?!"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 회의에 모두가 피곤해하고 있을 때, 그들의 귓가로 낯선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은 인원이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다섯 명의 인물들만 있었기에 착각을 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딸랑~. "안녕하세요?" 유리는 깨져버리고 틀만 남은 창가에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으나,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으로 인해 그의 얼굴은 보이지가 않았다. 탁! 딸랑~. 방안으로 들어선 그림자는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그들의 앞에 다가갔고, 황제의 곁을 지키던 3명의 존재는 황제를 뒤로 보내며 다가오는 존재를 경계했다. 전쟁이 끝나가고 있는 상황이기에 최대한 조심해야만 했다. "소인 어릿광대.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해 지금 막..." "자네는..." "도착했습니다. 쿠쿠쿡." "소인 어릿광대.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해 지금 막..." "자네는..." "도착했습니다. 쿠쿠쿡." 창문의 빛을 가리며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엄청난 능력으로 제국의 전쟁을 끝내버렸던 어릿광대였다. 창문으로 들어온 존재가 그들의 적이 아닌 것을 확인한 3명의 존재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며 황제를 호위했다.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현민이라고 할지라도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털썩! "저번의 일은... 정말 고마웠다." "폐, 폐하!" "아버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3명의 존재들을 뒤로 보낸 황제는 자리에 무릎 꿇으며, 현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깜짝 놀란 주변의 인물들이 그의 행동을 말렸으나, 숙여진 황제의 머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당신은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어요. 저는 친구들을 위해서 움직였을 뿐이니까요." 황제에게 가까이 다가간 현민은 그의 상체를 바로 세워주며, 황제의 뒤편으로 서있던 샨과 황녀를 바라보았다. 그들과의 인연으로 움직인 자신에게 황제의 인사는 과분한 것이었다. "그보다..." "수중감옥!" "읍?!" 뽀글... 황제를 일으켜 세우며 무언가 말을 하려던 현민은, 자신을 감싸는 물로 인해 다음의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샨이 현민을 향해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기에 마법조차 사용하지 못한 현민은, 샨의 마법에 갇혀 당황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 무슨 짓인가?!" 황제와 주변의 인물들도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깜짝 놀라며 그녀를 돌아보았으나,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는 샨은 차가운 얼굴로 현민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신, 누군데 어릿광대 흉내를 내는 거지?" 뽀글... 흠칫! 갑작스러운 샨의 말에 깜짝 놀란 것인지, 물속에 갇혀 있던 현민이 몇 모금의 물을 들이켜 버렸다. 그녀를 향해서 양 손을 흔들고 있는 현민은, 그녀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 같았으나, 차가운 얼굴의 그녀는 자신의 마법을 거두어들이지 않고 있었다. "저, 정말인가?" "그가... 아닌가요?" 황제와 황녀는 그들의 앞에 있는 현민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릿광대란 존재 자체가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인물이었기에 그들의 앞에 있는 존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별하기 모호했기 때문이었다. 팟! "귀엽지 않은 아가씨네요. 어째서 저를 가짜라 하시는 거죠?" 모두가 물속의 현민을 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 물속에 있던 현민이 샨의 뒤편에 나타나며 그녀의 목을 감싸 안았다. 방금 전까지 물속에 있었던 현민이었지만, 그녀를 안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뽀송뽀송해 보였다. "당신이 '그'라면 이러한 행동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인첸트 라이트닝." "속성변화, 암(岩)." 자신의 목을 감싼 현민의 팔에 손을 올려놓은 샨은, 자신의 몸 전체에 인첸트 마법을 걸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속도로 마법을 실현한 현민이 자신의 몸을 바위의 속성으로 바꾸며 그녀의 마법에 저항했다. "그리고 그는 저를 친구라고 부르지 않아요. 연.인.이라고 부르죠." 움찔! "그리스(grease), 버블실드(bubble shield), 강화(强化), 파이어볼(fire ball)." 여유로운 모습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현민은, 이어지는 샨의 말을 듣고는 몸이 굳어버렸다. 그 틈을 놓칠 리 없는 샨이 그리스 마법을 사용하며 재빨리 그의 품을 벗어났고, 이어지는 마법으로 그의 몸을 감싸버린 후, 그의 복부에 손을 가져가며 제로거리 사격으로 파이어 볼을 사용했다. "큭!" "이런!" 실드의 안쪽에서 폭발한 파이어 볼은 강화된 실드를 부풀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며, 공격을 한 샨에게도 약간의 충격을 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나, 빠르게 움직인 주변의 인물들이 황제와 황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충격의 대부분을 막아주었다. "하지만..." 움찔!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기에 크게 다쳤을 거라 생각했던 가짜 어릿광대는, 모두의 생각과 다르게 멀쩡한 모습으로 샨을 바라보고 있었다. 샨 또한 상대방의 실력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조금의 그을림도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은 그녀를 한층 더 긴장시켰다. "이런 능력을 가진 존재는 '어릿광대' 밖에 없잖아요? 쿠쿡." 딸랑~. 조금 전까지의 샨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 눈앞의 존재를 본 순간부터는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비록, 현민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세상에 둘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존재가 또 하나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리스!" "cobweb(거미줄)~." 하지만 지금은 여유를 가지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눈앞의 존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그의 가면을 벗겨보면 될 일이었다. 샨은 본격적인 공격에 앞서서 그의 균형을 무너트리려고 했지만, 어릿광대의 가면을 쓰고 있는 그는 현민과 똑같은 마법을 사용하며 자신의 발을 바닥에 붙여 버렸다. "대지의 심판!" 하지만 현민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어릿광대의 가면을 쓴 존재만이 아니었다. 그를 상대하고 있는 샨 역시 현민과 마법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였기에, 그들의 마법은 서로가 비슷하게 보였다. "인탱글,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딸랑~. 어릿광대의 주변으로 수많은 대지의 창이 솟아나고 있을 때, 그것을 나무뿌리로 감싸버린 그가 그것들을 두껍게 만들며 창의 움직임을 막아버렸다. 어릿광대를 노리던 샨의 공격은 그의 몸에 닿지도 않은 채 멈춰버렸고, 멈춰버린 창들 사이에 가만히 서있던 어릿광대가 여유로운 눈빛으로 샨을 바라보았다. "겨우 이정도 인가요? 훗." 어릿광대의 비꼬는 듯한 말투가 샨을 도발하고 있었지만, 샨은 그러한 어릿광대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어릿광대가 현민의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당신, 어릿광대와 무슨 관계지?" "알고 싶어요?" 어릿광대는 유혹적인(?) 자세를 취하며 샨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대답의 여하에 따라 죽여주겠어." "호오~?" 딸랑~. 차분하고 순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샨이 섬뜩한 살기를 드러내자, 어릿광대의 입에서 묘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오면 대답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흠~. 무슨 관계냐고 물었죠?" 살짝 뜸을 들인 어릿광대는 샨을 마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어릿광대의 진.짜. 연인입니다." 움찔! 어릿광대의 가면을 쓰고 있는 지혜의 얼굴은, 현민이 봤으면 악마라고 불렀을 그런 표정이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현민의 연인이라는 여자를 만났으니, 이 기회에 경쟁자를 제거(?)해 버리려는 것이었다. "자~, 이제 저의 생사(生死)여부는?" "대답은... 죽음." 지혜가 현민의 연인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에, 샨은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를 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현민은 절대로 여자를 사귀지 못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녀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생각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서로가 같았다. "water whip(물의 채찍)!" "인탱글!" 한발 빠르게 움직인 샨이 물의 채찍을 만들어내며 지혜의 신형을 공격했고, 그녀의 뒤를 이어서 나무뿌리를 손에 감싼 지혜가 그것을 채찍으로 사용하며 샨의 공격을 막아냈다. 촤아악! 이리저리 움직이던 두 개의 채찍은 허공에서 엉켜버렸으나, 그들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프리즈(freeze)!" 샨이 사용한 물의 채찍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지혜의 채찍을 묶어버렸고, 끝이 뾰족하게 변한 물의 채찍은 계속해서 늘어나며 지혜를 공격해 들어갔다.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빠르게 늘어나던 샨의 채찍은 지혜의 얼굴을 조금 남겨놓고 멈추어 버렸다. 두꺼워 지는 지혜의 채찍으로 인해 그것을 감싸고 있던 얼음의 채찍이 산산조각 나며, 샨의 채찍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이었다. "파이어볼!" 자신의 공격이 들어가지 않을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인지, 샨의 채찍이 부서지자마자 거대한 크기의 파이어 볼이 지혜를 향해서 날아들었다. "절대방어." "리플렉션(reflection)." "이런!" 날아오는 파이어 볼을 보며 방어마법을 펼쳤던 지혜는, 이어지는 샨의 마법에 처음으로 당황한 음성을 내뱉었다. 샨이 사용한 마법이 자신의 방어막을 감싸며 날아오는 파이어 볼을 위쪽으로 튕겨냈기 때문이었다. 쾅! 쿠쿠쿠쿵!! 사방이 막혀있는 실내에서 파이어 볼이 위쪽을 향해 날아갔으니, 지혜가 있는 부분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방어막을 해제하고 자리를 옮기는 것과, 방어막을 유지한 채 자리를 지키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어느 것을 택한다 할지라도 그녀에게는 위험했다. 방어막을 해제한 순간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샨이 공격을 할 것은 분명했고, 만약 방어막을 유지하고 있다면 돌덩이 속에 갇혀 움직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흥!"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한 지혜는 하나의 방법을 찾아낸 듯, 절대방어를 없애며 샨을 향해 달려 나갔다. "파이어 애로우!" 지혜의 선택을 예상하고 있었던 샨은 열 개의 파이어 애로우를 만들어 지혜에게 날려 보냈다. 샨이 쏘아 보낸 불의 화살은 하나하나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날아갔기에, 일반적인 방법으로 그것들을 피해낼 수는 없었다. "블링크!" 불의 화살이 지혜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아슬아슬하게 공간을 이동한 지혜가 샨의 등에 자신의 손을 가져갔다. "체크메이..." 흠칫! 팟! 샨이 했던 0거리 사격으로 파이어 볼을 날리려던 지혜는, 크게 움직이는 샨의 손과 자신의 주변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흠칫 놀라며 샨의 등에서 멀리 떨어졌고, 자신의 선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짝! 쾅! 지혜가 블링크를 사용하여 공격을 피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샨은, 자신의 등 뒤에 대지의 손을 소환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지혜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샨은 자신의 양손을 빠르게 휘둘렀고, 등 뒤에 나타난 지혜가 그녀의 등에 손을 가져갔을 때, 절묘한 타이밍으로 박수를 친 것이었다. "대지의 손!" 콰직! 콰직! 뒤로 물러난 지혜도 대지의 손을 사용하였고, 서로의 손을 맞잡은 그녀들은 대지의 손을 통해서 힘겨루기를 하는 듯한 상황이 되었다. '대지의 손'이라는 마법은 공격과 방어가 가능한 마법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포기하고 다른 마법을 사용한다면 상대방에게 틈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 "?" 무거운 침묵 속에서 그녀들의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 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릿광대가 당신 같은 절.벽.을 좋아할 리 없잖아?" 울컥! 다른 얘기였다면 움찔하는 정도로 끝났을 그녀였지만, 평소에도 다른 사람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가슴을 의식하고 있었던 지혜였기에 샨의 말에 울컥해 버렸다. 자신은 티셔츠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찾아보기가 힘들었지만, 상대방(샨)은 펑퍼짐한 로브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의 굴곡이 확연했기 때문이었다. "다, 당신이야 말로, 으득! 어릿광대가 아.줌.마.를 좋아할 리 없잖아요?" 울컥! 이를 악물고 대답하는 지혜의 말로 인해, 이번에는 샨이 울컥해 버렸다. 현민과 처음 만났을 때는 외모상 두 살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아 보였으나, 가상현실의 시간이 현실의 4배이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현민과 10살 이상의 나이차가 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민이 사용한 '마녀의 축복' 때문에 실제로 보이는 나이차는 5살도 안되었으나, 자신의 나이를 알고 있는 샨에게는 언제나 현민의 외모가 콤플렉스로 다가왔다. 현민은 변함이 없는데 자신만 늙어(?)가다보니 알게 모르게 쌓인 것이 많은 샨이었다. "호.호. 누구보고 아줌마래?" 으득! "당신이야말로, 누구 보고 절벽이라고요?" 까득! 두 사람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현민의 소유권(?)에 관한 것은 미뤄진지 오래였고, 지금의 그녀들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대지의 심판!" "대지의 심판!" 두 사람은 서로의 마법에 대지의 심판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공격했고, 서로의 마법을 피해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은 주변의 피해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콰쾅!! 점점 심해지는 그녀들의 마법으로 인해 그나마 멀쩡했던 방이 처참하게 변해갔고, 중간에 멈춰버린 균열도 그 틈이 점점 벌어져 갔다. 잘못하다가는 멀쩡한 방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성을 찾아서 돌아다녀야 할 상황이었다. "어, 어떻게든 해보게."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성의 모습에 황제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지만, 황제를 호위하고 있던 소드마스터도 그녀들의 싸움은 말릴 수가 없었다. 소드마스터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할지라도 8서클 마법사들의 싸움을 말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8서클의 마스터이기 때문에 저는 끼어들 수도 없습니다." 그녀들을 죽일 각오로 덤빈다면 둘 중에 하나는 죽이는 게 가능하겠지만, 그 자신도 누군가의 마법에 맞아 죽을 것은 분명했다. "...말려줘." 달그락! 가만히 서서 해골을 쓰다듬고(?) 있던 황녀는 곤란해 하는 아버지를 위해 품에 안겨 있는 해골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팔뚝만한 크기로 황녀의 품에 안겨있던 해골인형은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허리정도까지 성장해버렸고, 뼈가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를 만들며 샨과 지혜의 사이로 달려 가 버렸다. "일루젼, 파이어 볼!" "절대방어, 인챈트 파이어!" 샨은 일루젼 마법으로 일정 공간의 변화를 없애버린 다음에 수십 개의 파이어 볼을 만들어서 지혜를 공격했고, 어디에서 날아오는지, 얼마만큼의 숫자가 날아오는지를 알 수 없었던 지혜는, 자신의 모든 방위를 방어해야만 했다. 3서클의 절대방어는 5서클의 마법까지 여유롭게 받아낼 수 있지만, 많은 수의 마법이 동시에 날아온다면 부서질 수도 있었기에 약간 보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 "아?" 지혜의 방어막을 보며 자신의 공격이 막힐 것이라 예상한 샨이 다음의 마법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하나의 해골이 나타나며 지혜의 방어막을 없애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지혜도, 샨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그녀들의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 캔슬. 지혜의 방어막을 없애는 것으로 끝내지 않은 해골은, 샨이 사용한 일루젼 마법도 캔슬해 버렸다. 캔슬에 필요한 마나는 지혜의 방어막으로부터 흡수했기 때문에, 마나가 모자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아줌마!!" 일루젼 마법이 캔슬되면서 모습을 드러낸 파이어 볼은, 지혜의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설마하니 이정도까지의 파이어 볼을 만들 줄 몰랐던 지혜는, 크게 분노하며 샨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다급히 방어마법을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빠르게 다가온 파이어 볼들은 이미 그녀의 몸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펑! "아악!" 가장 가까이에 있던 파이어 볼이 커다란 폭음을 만들며 터져버리자, 크게 놀란 지혜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 버렸다. 하지만, 첫 번째 폭음을 만든 파이어 볼은 그녀의 몸에 맞은 것이 아니었다. - 헤이스트. 퍼퍼.....퍼펑!! 하나의 파이어 볼을 맞아 마나를 채운 해골인형은, 헤이스트 마법을 사용하여 주변의 모든 공격을 얻어맞기 시작했다. 해골인형은 자체적으로 마나를 생산할 수 없었기에 샨과 지혜의 마법을 흡수하여 마나를 충전하는 것이었다. "휴우..." "으윽!" 해골인형 덕분에 목숨을 건진 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고, 우연히 얻은 기회를 날려버린 샨은 안타까움의 신음을 내뱉었다. - 중얼중얼... 대지의 심판. 흠칫! 해골인형을 바라보며 엇갈린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들은, 자신들을 향해 마법이 날아오자 다급히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해골인형이 사용한 대지의 심판은 무차별 적으로 솟아난 것이 아니라, 해골인형으로부터 직선방향으로 솟아났기 때문에 그녀들이 피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응?" "어라?" 해골인형이 사용한 마법을 피해서 자리를 이동한 두 사람은 무언가에 걸려서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 의아함을 내비쳤다. 허공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무엇인가가 그들의 몸을 구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 설마?! 인챈..." - 사일런스. 현민에게 한번 당해본 적이 있었던 샨은 다음의 마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서 구속을 벗어나려 했지만, 그런 샨의 생각을 꿰뚫어 본 것인지 해골인형이 두 사람을 향하여 사일런스 마법을 사용하였다. 허공에 몸이 묶인 채로 말마저 막혀버린 두 사람은 간절한 눈빛으로 해골인형을 바라보았으나, 해골인형은 그런 두 사람의 발밑에 손을 가져갈 뿐이었다. - 윈드 커터. 찌익! 찌지직! 해골인형의 손을 따라 날라 간 바람의 칼은 그들의 발밑을 스쳐지나갔고, 천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그녀들의 몸이 튕겨 올라갔다. 천장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 빠르게 튕겨 올라간 두 사람은, 망가진 모습으로 천장에 달라붙어버렸다. 따다다다닥! 두 사람을 천장에 붙여버린 해골인형은, 시끄러운 이빨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천장에 붙어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상당히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폭음이 멈추지 않았던 방에는 해골인형의 이빨 소리만 울려 퍼졌고, 모든 상황이 정리된 것을 깨달은 기사들이 서둘러 황제의 곁으로 달려갔다. "끄, 끝난건가?" "괜찮으십니까?!" 황제가 있는 장소에서 폭음이 들려왔기에 서둘러 달려왔던 기사들이었지만, 샨과 지혜의 싸움을 뚫고 황제의 곁으로 갈 수 없었기에 초조한 눈으로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스윽... 황제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을 때, 조용히 자리를 벗어난 황녀가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해골 인형을 안아들었다. 자신을 안아든 존재가 누구인지를 확인한 해골인형은 커져버린 자신의 몸(?)을 원래의 크기로 바꾸며 그녀의 품에 안겨들었다. "..." 해골을 주워든 황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뻐끔뻐끔 뻐끔뻐끔 황제의 안위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잊혀 졌던 두 사람은, 해골인형을 안고 있는 황녀에게 자신을 풀어달라고 입을 열었으나, 해골인형의 마법으로 인해 말을 빼앗긴 그들의 입에서는 바람소리조차 나지 않고 있었다. "..."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황녀는 천장에 붙어있는 지혜와 자신의 품에 안긴 해골인형을 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슴." 빠직! ...가 아니라, 천장에 매달린 지혜의 가슴과 자신의 가슴을 비교한 후 말을 한 것이었다. 시끄러운 상황에서 들려온 황녀의 말소리는 매우 작았으나, 지혜의 두 귀에는 황녀의 한마디가 확실히 들렸다. 따다다다닥!! 황녀의 한마디에 흥분한 지혜가 이리저리 발버둥을 쳤으나, 끈끈함과 탄력을 자랑하는 여왕의 거미줄이 끊어질 리 없었다. 지혜는 가슴을 비교한 황녀보다, 황녀의 말을 듣고 턱이 빠질 정도로 웃고 있는 해골인형이 더욱 얄미웠다. 스윽 "..." 지혜를 바라보던 황녀의 시선이 이번에는 샨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을 받고 있는 샨은 상당히 당당한 얼굴이었다. 위에서 바라본 황녀의 가슴이, 자신보다 작아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샨의 생각은 황녀를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었다. 스윽... 왼손으로 해골인형을 안아든 황녀는, 오른손으로 인형의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19살." 빠직!! 황녀의 말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샨이, 지혜의 뒤를 이어 난동을 부렸지만, 황녀는 샨의 그러한 태도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황녀의 손에 따라 움직인 해골인형의 손이 천장에 붙어있는 샨을 가리켰고, 침묵을 지키던 황녀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29살" 끄덕끄덕 황녀와 샨을 번갈아 바라본 해골인형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슴, ...19살, ...가슴, ...19살." 또한번 지혜의 가슴과 자신의 가슴을 비교한 황녀가 '가슴'이란 말을 내뱉었고, 샨의 얼굴과 해골인형을 번갈아 바라본 황녀가 자신의 나이를 말했다. 아무런 악의도 가지고 있지 않은 황녀였으나, 다시 한번 비교하는 그녀의 행동은 천장에 매달린 두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훗." 울컥! 울컥! 황녀의 웃음소리를 들은 두 사람은 순수함이라는 것이 사악함의 극(極 : 한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현민에게서 악마 소리를 듣고 다니는 지혜도, 황녀의 순수함에는 뒤처질 정도였다. "거기서 뭐 하는 건가?" "응?" 두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던 황녀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황녀가 바라보고 있는 그 장소에는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에, PK를 상징하는 붉은 눈동자를 지닌 아름다운 존재가 천장에 붙어있는 지혜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뻐끔뻐끔 "캔슬." 그를 바라보는 지혜가 무엇인가 말을 했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고, 붉은 머리의 남자는 지혜에게 걸려 있는 모든 마법을 해제해 주었다. 천장에서 같은 꼴을 하고 있는 샨도 덤으로 해주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찾아왔더니, 놀고 있었나 보군." "의외의 존재가 저를 꿰뚫어 봐서 말이죠." 그의 곁으로 내려선 지혜는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함을 되찾았다. 그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샨과 지혜가 바닥에 내려오고서야 새로운 존재가 나타난 것을 깨달은 기사들이 서둘러서 그들을 포위했지만, 지혜와 붉은 머리의 미(美)남자는 자신들의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기사들을 완벽히 무시했다. "그래서 결론은?" "이 사람들은 그곳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방법만 알려주고 떠나도록 하지요." 그들의 대화를 들은 주변의 인물들은 험악한 인상이 되어 그들을 위협했다. 황성이 제 집이라도 되는 듯 마음대로 왔다가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사들의 생각이었고, 황녀의 옆에 붙어있는 샨과 황제의 곁을 지키고 있는 소드마스터는 그들이 서둘러 떠나주기를 빌고 있었다.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새롭게 나타난 존재가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째." 수많은 기사들의 틈 사이로 황제를 바라본 지혜는 차가운 눈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앞으로 10일간 이 제국의 모든 마을에 30명의 기사들을 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임무는 마을에 나타나는 모든 이계인들의 살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면 반드시 죽여 버리십시오." 꿀꺽! 그들을 향해 말하고 있는 지혜는 현민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단순한 살기가 아니라 주변의 공기를 묵직하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두 번째는 모든 이계인들에게 지금의 10배에 해당하는 물건 값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빵이라도 반드시 10배의 가격으로 팔아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그들의 물건을 구입할 시에는 지금 구입 가격의 1/10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구입하도록 명하십니오. 당분간은 지금과 같은 생활을 면하기 힘들테지만, 한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모든 마을이 이전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말한 지혜는 옆에 있는 남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어릿광대는 내 남자니깐 건들 생각 하지마." 지혜의 마지막 충고는 샨과 황녀를 향한 것이었다. 가상현실의 여자들에게 현민을 빼앗길 리가 없지만, 가상현실 속에서 남몰래 딴살림(?) 차리는 존재들이 많이 있기에 확실히 못을 박아 놓는 지혜였다. 샨과 황녀에게 한마디 쏘아붙인 지혜는 옆의 남자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 작가 : 우, 우울해... ㅠㅠ 현민 : 왜 또? 작가 : 나 너무 오래 쉰 걸가? 코멘이 넘 적어, 흑. 현민 : 훗, 당연한 거 아냐? 작가 : (흠칫!)어, 어째서? 현민 : 너 같으면 주인공 안나오는데 보고 싶겠냐? 작가 : ... 현민 : ...뭐냐 그 침묵은. 작가 : 하아... 현민 : (울컥!)왜 한숨인데?! 작가 : 여기서 잠깐. 짜증나는 현민이는 갖다 버리고, 아름다우신 현민이 부인과의 인터뷰를 가져보겠습니다. 작가 : 안녕하세요? ???? : 여보세요? 아, 김비서님? 작가 : 응? ???? : 네. 저 ????에요. 하나 부탁 좀 드릴게요. 작가 : 저, 저기... ???? : 저번에 말씀드렸던 작가 있죠? '싸울아비-룬'인가 뭔가 쓴다는... 작가 : (움찔!) ???? : 네, 이번에 사람하나 묻을려고요. 아뇨, 굳이 산이 아니라도 좋아요. 바다에 던진다고요? 흠... 혹시나 살아나는 경우는 없는거겠죠? 남편에게 들어보니 이분 잠수실력이 장난 아니라고 들어서요... 네, 부탁드릴게요. 수고스럽겠지만 땅에 묻어주세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뚜-, 뚜-, 뚜- 작가 : 호, 혹시...? ???? : 내가 말했죠? 남편한테 손대면 매장해버린다고. 작가 : 흑, 흑흑... 여러분 부디 건강하세요. ㅠ.ㅠ 모월 모일 아나운서a : 어젯밤 새벽 억세개 쏟아지던 비로 인하여 야산에 묻혀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작가로 보이는 이번 물건은... 작가 : 야, 산에서 뭐가 나왔다는데? 현민 : ...네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게 더 신기해. 작가 : 훗, 미안하다. 현민 : (주르륵)...;; 너, 무, 무슨 짓을... 작가 : 장례식에는 무슨 꽃을 올려줄까? (씽긋) <2월 10일(목) 7시 48분> "이쪽이 맞나?" 게임시간으로 오전 8시, 현실시간으로 오후 8시에 모든 유저들과 전쟁을 해야 하는 현민은, 지혜가 정해준 장소를 찾지 못하여 아직까지 숲을 헤매고 있었다. 마녀의 빗자루를 타고 간다면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먼저 공격당할 위험이 있기에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흠칫! 반투명하게 만들어진 지도와 손에 들려진 지도를 보며 방향을 맞춰보던 현민은, 자신의 근처로 이동해오는 누군가를 보며 긴장했다. 지혜가 정해놓은 장소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남아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상황이었기에 여기에서 적을 만난다 하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나예요." "누나?" 새롭게 나타난 존재가 적일 경우 가차 없이 죽이려 했던 현민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존재가 페튜니아인 것을 확인하고는 들어 올렸던 손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렸다. "이번의 전쟁, 가능하겠어요?" 현민의 앞으로 다가온 페튜니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이번의 광고와 현민의(정확히는 지혜의) 도발로 인해,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가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스스로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최강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남들보다 독특해 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 현민을 죽여서 보상을 얻으려 찾아오는 사람 등 온갖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중이었다. "음... 몇 명이나 모였는데요?" "현재 2억 명이요." 페튜니아의 대답을 들은 현민의 신형이 제자리에 멈춰버렸다. 2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를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전체 인구가 대략 7천만 명이고, 일본의 인구가 1억 3천만 명 정도 되니, 2억이라는 숫자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모든 인구수를 말하는 것과 같았다. "정말 2억이요?" "네. 게다가 지금 움직이고 있는 유저들의 수까지 합하면 대략 4억정도로..." 현민의 물음에 대답해 주고 있는 페튜니아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끝말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억 단위의 유저들이 덤벼드는데, 그 많은 유저들을 상대로 현민이 혼자서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의 전쟁은 저희 운영자들이나 몇몇 유저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쿡." "응?" 현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하던 페튜니아는 낮게 들려오는 현민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웃을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한 페튜니아는 끊어진 말을 다시 하려고 했으나, 가면 속으로 보이는 현민의 두 눈에 몸이 굳어버렸다. '웃고 있어...' 그녀가 착각한 것이 아니었다. 가면으로 가려진 현민의 얼굴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누나는 천재를 본 적 있나요?" "으, 으응..." 천재란 존재들은 평생토록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소수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운영자의 일을 하고 있는 페튜니아는 천재 중의 천재라 인정받고 있는 채리플랑은 물론이고, 그밖에 다양한 천재들을 만난 경험이 있었다. "천재란 사람들의 생각은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요, 그렇지 않아요?" 저벅저벅... 2억 명이 모이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제자리에 멈췄던 현민은, 페튜니아의 소매를 살짝 당긴 후 천천히 걸어 나갔다. 현민의 뜻을 이해한 페튜니아는 현민과 나란히 걸어가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사람들을 천재라고 하는 걸까요?" "..." 페튜니아는 현민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번의 전쟁은 현민뿐만 아니라 운영자들에게도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는 일이었기에 서둘러 방법을 찾아야 하건만, 당사자인 현민은 엉뚱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나?" "응?" 자신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이 없는 페튜니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현민은, 당황해 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아니에요." 지혜와의 대화에 익숙해져 있었던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와의 대화를 생각하며 문답을 요구한 것이었다. 하나의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하며 결론을 이끌어내는 지혜와의 대화방법이 정상적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누나가 바라본 천재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바라본 천재는 '자신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아직까지도 엉뚱한 현민의 이야기였으나, 그의 말끝에 붙어있던 물음표는 사라져 있었다. '자신을 계산한다고? 자신의 한계를 안다는 말인가...?' "자신의 한계를 안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정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흠칫! 혼자서 현민의 말을 생각하고 있던 페튜니아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본 듯한 현민의 말에 깜짝 놀랐다. "누나가 뭘 생각하는지 아는 게 아니라, 누나가 어떠한 생각을 할지 알고 있는 거예요." 뜨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가면을 벗어든 현민이 웃는 얼굴로 페튜니아를 바라보았으나, 현민을 마주하고 있는 페튜니아는 의심스러운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현민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한 말은 페튜니아의 속마음과 대화가 되었다 싶을 정도로 절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페튜니아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 지은 현민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자신을 계산 할 수 있으려면, 일단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삶을 알아야 해요." 자신의 느낌을 말로 설명하려는 현민은, 자신의 뜻이 제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래야지만, 내가 어떠한 사람이고,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 알 수 있으니까요. 과거와 현재의 삶을 안다는 것은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미래의 삶을 안다는 것이 상당히 힘든 일이죠. 미래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예상하고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존재들을 계산해야 하니까요." "그, 그런 사람이 있어요?" 쉽게 말하자면, 모든 존재들의 '현재까지의 삶'을 앎으로써 그들이 나에게 끼칠 영향을 계산하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나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이었다. 페튜니아는 현민의 말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천재라는 조건이 붙어있는 말이었으나, 이러한 일이 가능한 천재가 존재할지 의문이었다. "말했잖아요? 제가 바.라.본. 천재라고. 훗." 자신을 천재라고 할 때는 그녀의 수준을 의심하는 현민이었지만, 그 외의 것들에 있어서는 지혜가 천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만큼 인정하고 있는 그녀가 이러한 상황을 몰랐을 리 없었으니, 괜한 일을 걱정한 자신이 한심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몰랐을 리는 없을 거예요. 오히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려고 했겠죠." "세상에..." 페튜니아는 이러한 상황이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그녀의 옆에서 걸어가고 있는 현민은 어디선가 미소 지을 그녀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정도의 인원을 모은 것인지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이정도의 인원을 모으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현민은 지혜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의 곁을 걸어가고 있는 페튜니아는 그런 현민의 생각을 읽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다. 독특한 마법을 제외하고는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현민이었지만, 순간 보였던 그의 모습이 자신과 다른 영역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깐 이번의 일은 운영자나 유저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푸훗, 누나." "네?" 페튜니아의 입에서 다시 한번 현민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왔으나, 이번에도 현민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녀는 '자신을 계산 할 수 있는' 천재예요. 나만큼이나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죠. 그런 그녀가 이정도의 인원을 모았다면, 지금의 나로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미일 거예요." "하지만..." 페튜니아 또한 현민의 실력이 최고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2억이라는 숫자는 드래곤마저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숫자이기에 그녀가 걱정하는 것이었다. 최강으로 자리 잡은 드래곤이었지만, 그런 그들도 평균레벨 350을 넘어가는 존재들을 2억명이나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보다 궁금하지 않아요?" "?" 페튜니아의 말을 끊으며 질문을 던진 현민은, 인벤토리에서 어릿광대 가면을 꺼내며 페튜니아를 돌아보았다. "이번의 전쟁이 끝나면, 저는 '악마'라 불릴까요? '신'이라 불릴까요?" 현민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페튜니아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에 쓰여져 있는 어릿광대의 가면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왜요? 가면에 뭐가 붙었나요?" "아, 아니...에요." 페튜니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가면에 향해있는 것을 보고는 의아한 마음으로 물었으나, 페튜니아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을 회피했다. 자신의 상상을 현민에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흐음~." 현민의 입에서 묘한 음성이 흘러나왔으나, 페튜니아를 향해 집요하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녀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기 보다는, 지금의 승률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것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지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니, 최대한 준비를 하려는 현민이었다. "누나의 루인아츠... 이번의 전쟁 동안만 빌릴 수 있을까요?" "루인아츠를?" D급의 건틀렛에서 A급으로 변하는 루인아츠는 장인들에 의해 탄생한 순수한 에고무기였다. 대부분의 에고무기가 그러하듯 루인아츠 역시 주인을 가리는 무기였기에 현민에게 빌려준다 하여도 그가 쓸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잊으셨어요? 루인아츠를 누가 만들었는지..." "아!" 이번에도 그녀의 생각을 예상한 것인지, 그녀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현민의 대답이 먼저 나왔다. 루인아츠의 외형은 장인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 졌지만, 루인아츠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전부 현민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 현민의 부탁을 받아들인 페튜니아는 자신의 손에 끼고 있던 건틀렛을 벗어서 현민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건네준 것은 단순한 철제 건틀렛이었지만, 이것이 루인아츠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고마워요." 페튜니아에게서 건틀렛을 받아든 현민은 그 자리에서 착용해 버렸다. 그의 손에 껴진 루인아츠는 쇠로 이루어진 물건이었으나, 조금 전까지 페튜니아가 착용하고 있어서인지, 쇠 특유의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페튜니아의 온기가 현민의 손을 감싸주었다. "그리고, 누나. 이번 주말에 마법사 서클 확인 좀 해주시겠어요?" "아직도 안했나요?" 현민의 부탁을 들은 페튜니아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같은 또래에서 몇 명 없는 6서클 유저가 아직까지도 서클확인을 받지 않았다는 것에 놀란 것이었다. 마법사라는 직업은 서클이 높을수록 자신의 실력을 숨기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현민 정도의 수준이라면 진작에 신청이 들어와야 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게다가 학교와 집에는 4서클이라고 말해놨기 때문에 지금의 수준도 숨겨야만 해요." "그래서 저에게?" 서클의 확인은 모든 운영자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현민의 서클을 속여 줄 수 있는 존재는 페튜니아밖에 없었다. "네. 그러니깐 일요일에 잠깐 와주셔서 4서클이라는 것 좀 확인해주세요." "어렵지는 않지만... 꼭 속여야 하는 일인가요?" "부탁드릴게요."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이었지만, 타인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6서클의 현민이, 자신을 4서클이라고 한다 해서 문제가 생길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만 더요." "?" "저를 전쟁터의 하늘로 이동시켜 주시겠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요." "네." 페튜니아의 대답이 있자마자 그들의 신형이 숲에서 사라져 버렸다. 허공으로 이동한 현민은 자신의 발밑을 보며 지금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으나, 그의 발밑은 거대한 구름만 있을 뿐, 땅이란 것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고마워요, 누나. 이렇게 도와주셔서..." "정말 이정도로 괜찮나요? 저만이라도 도와줄게요." 처음의 만남이 악연이었기 때문인지, 현민에게는 미안함 마음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쟁을 앞두고 무리한 패치까지 진행했으니,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고 싶은 것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음... 그럼 동영상 좀 찍어주실래요? 운영자들이 찍는 동영상이 더 멋지더라고요. 헤헷." "..." 현민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페튜니아의 얼굴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걱정마세요. 그 누구도 나를 이길 수는 없어요." 현민 스스로도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말했듯이 지혜를 믿었기에, 그녀라면 자신의 능력을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지금의 자신을 믿을 수 있는 것이었다. 현민의 그러한 감정을 느낀 것인지, 현민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페튜니아의 눈에도 현민에 대한 믿음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럼, 화려하게 시작해 볼까요?" 딸랑~. 페튜니아의 두 눈에서 신뢰의 감정을 느낀 현민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만들며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두 눈을 감은 현민은 양팔을 벌리며 주위의 바람을 느껴보았다. 하늘 높은 곳에서 움직이고 있는 차가운 공기는 현민의 가슴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법이라는 것에 준비동작이 있을 리는 없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만한 일이었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자세를 잡는 것이었다. "파이어... 볼." 처음의 시작은 파이어 볼이었다. 전쟁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약간 평범한 마법이었으나, 현민은 그러한 문제를 마법의 숫자로 커버해 버렸다. "서, 설마..."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파이어 볼들은 일정한 속도로 늘어나며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 버렸고, 하늘을 가득 메운 파이어 볼들은 차가웠던 공기를 순식간에 데워버렸다. 하나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제를 풀어야 했지만, 2, 3초마다 늘어나는 파이어 볼들은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인지, 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만들어 주었다. '다중 캐스팅(multiple casting)?!' 이번의 패치는 마법의 사용을 어렵게 만들었으나, 동시에 하나의 마법만 가능했던 기존의 한계를 없애주기도 하였다. 물론, 여러 개의 마법을 사용할 때에는 이전의 마법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새로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정신력보다 훨씬 많은 정신력의 소모를 각오해야만 했다. 소모되는 정신력은 유지되는 시간과 사용한 마법의 수량에 따라 크게 증가하다보니, 4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10개의 마법을 쓰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정신력이 소모되었다. '도대체 정신력이 얼마이기에!' 현민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5분이 지났으니, 가장 처음에 만들어진 파이어 볼은 수십 개의 파이어 볼을 만들 수 있는 정신력이 소모되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편하게 말하세요. 지금처럼 존대와 반말을 섞지 마시고요." 백여 개의 파이어 볼을 만든 현민은 그것들을 아래로 내려 보내며 페튜니아를 돌아보았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허공에 떠 있던 현민의 신형도 파이어 볼들의 뒤를 따라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페튜니아의 가슴속에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생겨났다. "부디 성공해 줘. 이 게임이 게임으로서 남아있을 수 있도록..." 이번의 일이 성공한다면 키스라도 해주고 싶은 페튜니아였다. "팀장님! 결과는요?!" "싸울아비"를 종료한 페튜니아가 운영자들을 위한 가상현실 공간으로 들어섰을 때, 수많은 운영자들이 그녀를 둘러싸며 이번의 참가를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던 이벤트였지만, 수많은 나라가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게임의 존속이 위험해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도리도리 "거절했어요." "제길!" "도대체 왜?!"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을 만든 가우리는 모든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기에,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할 수 있었다. 모든 나라가 그 거위를 탐내고 있었으나, 거위를 독차지 할 경우 수많은 적이 생겨나기에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거위가 낳은 황금알(싸울아비)이 위치해 있었다. 모든 나라가 같은 위치에서 시작하였기에, 황금알을 독차지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의 이벤트가 그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현민의 사냥을 이유로 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혼자서도 가능하니까요." "네?" 자신들의 도움을 거절한 현민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잔뜩 흥분해 있던 운영자들은, 차분하게 들려오는 페튜니아의 음성에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였다. "혼자서 가능하다고? 2억 명하고의 전쟁이? 너 지금 2천명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냐?" 페튜니아의 말에 잔뜩 흥분한 성희(홍보팀장)가 그녀를 향해 따지고 들었으나, 페튜니아는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현민이라면 가능해. 분명히..." "하?!" 성희는 너무나 황당하여 말도 나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어릿광대에게 빠져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의 페튜니아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도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궁금하지 않아?" "뭐가?" "이번의 전쟁이 끝나면, 그는 '악마'라고 불릴까? '신'이라고 불릴까?" 그녀의 입가에 달려있는 미소는 현민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2월 10일(목) 7시 59분> 약속된 8시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을 때, 무대의 주인공인 현민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의 몸 주변은 절대방어가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바람으로 인한 피해는 없었다. "하아... 많기도 하네." 한참을 떨어져 내리던 현민은 구름을 통과하고 나서 보이는 넓은 땅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평원은 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유저들이 득실거렸다. 뿐만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산들도 사람으로 뒤덮여 있을 정도였다. "모자라겠는데?" 현민은 2억이라는 유저들의 숫자가 이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유저들의 숫자에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파이어 볼을 조금 더 만들고는 싶었지만, 떨어지기까지 남아있는 시간도 얼마 없었고, 아래에 있는 유저들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파이어 볼들을 발견하였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제발 죽어버리시길... 그래비티(5서클)! 헤이스트(4서클)! 디스펠!" 빠르게 낙하하고 있던 파이어 볼들은 중력마법과 헤이스트가 더해지면서 엄청난 속도를 가지게 되었다. 파이어 볼들 사이로 떨어지고 있던 현민도 마법의 범위에 속해 있었으니, 디스펠 마법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해당된 마법들을 무(無)로 되돌렸다. "조심하세요~." 현민이 땅에 도착하기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남아있었으나, 현민의 마법으로 인해 빨라진 파이어 볼들은 바닥과의 거리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었다. "쾅~." 콰콰콰콰쾅!!! 현민의 말이 신호라도 된 듯, 그의 말과 맞추어 엄청난 폭발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현민의 마법으로 인해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진 파이어 볼들은, 빨라진 속도에 비례하며 그 파괴력이 배 이상으로 늘어나 버렸기에, 방어력이 약하거나 레벨이 적은 유저들은 바로 죽어버리기도 했다. 화르륵! "으아아악!!" "아악!!" "꺄악! 사, 살려줘!" "싫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파이어 볼들은 반경 8m의 모든 것을 부셔버릴 정도의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간신히 파이어 볼의 범위를 벗어난 유저들 또한, 자신의 주변을 휩싸는 불길로 인해 엄청난 데미지를 받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와 연기가 그들의 시야를 방해했고,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유저들과 불길이 그들의 이동을 방해했다. "왔다!" 엄청난 마법이 평원의 한 부분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자,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유저들이 두 눈을 빛내며 현민을 찾기 시작했다. "절대방어, invisibility(투명화 : 5서클), spin(회전 : 2서클), 가속(加速 : 2서클), haste(신속 : 4서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유저들의 목표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는 현민은, 엄청난 크기의 절대방어를 사용하여 평원의 모든 것을 감싸버렸다. 투명화 마법으로 인하여 절대방어의 경계가 보이지는 않았으나, 보이지 않는 경계로 인하여 그들은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6서클의 마법까지 방어할 정도로 방어력이 좋은 절대방어가 엄청난 빠르기로 회전을 하자, 그 어떤 유저의 공격도 현민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탁. 딸랑~.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평원을 가둬버린 현민은, 유저들의 시선을 피하여 먼지의 중심으로 내려섰다. 불길과 연기,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는 그 곳은, 가까이에 있어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나빴다. - 아아악! - 꺄악! - 히, 힐!! 어서! 가상현실과 동일한 시간이 흐르고 있는 공간에서 현민을 바라보고 있던 운영자들은, 현민이 만들어 낸 모습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현민이 있는 장소를 보여주고 있던 수백 개의 화면들은 아비규환의 모습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었다. "이, 이번의 마법으로 2,672명 사망... 새롭게 생긴 방어막으로 인해 사망자 10,213명 추가." 시작한지 5분이라는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단 두 번의 마법으로 현민이 죽인 유저들의 숫자는 13,000명이었다. 2억이라는 숫자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한 정도였지만, 한사람이 이루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 숫자는 엄청난 것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어막도 만명 이상의 유저를 죽음으로 안내했다. 일부의 유저들은 보이지 않는 절대방어에 휩쓸리며 갈기갈기 찢겨버렸고, 그 밖에 유저들은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방어막에 멋모르고 공격하다, 엄청난 힘으로 튕겨나는 자신들의 무기를 제어하지 못하여 주변의 유저들을 무참히 죽여 버렸다.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그들은 서로의 검에 동료들이 죽어나가자, 거대한 전쟁 속에서 그들만의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전쟁은 소리 없이 퍼져나가며, 적아(敵我 : 적과 나)의 구별이 없는 거대한 혼란을 만들었다. "어릿광대는?!"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유저들뿐만 아니라 현민도 위험할 수 있기에, 페튜니아는 서둘러 현민의 신형을 찾도록 했다. 수백 개의 화면들이 현민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고, 하나의 화면이 현민을 찾은 것인지 크게 확대 되었다. "후우..." 현민의 멀쩡한 모습을 확인한 페튜니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화면에 집중했다. "벌써 세 개인가..." 먼지 속으로 내려선 현민은, 벌써부터 사용해버린 메모라이즈 마법으로 인해 앞으로가 걱정되었다. 2억 명과 장기간의 전쟁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메모라이즈 된 마법은 최대한 아껴야만 했다. 유저들이 주문을 기다려 줄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일어나렴, 루인아츠." 지금 당장 루인아츠를 사용하려는 것은 아니었으나, 혹시나 모를 상황에서 마법을 아끼기 위해 루인아츠를 깨운 것이었다. 루인아츠가 본모습을 유지하는데 시간이 정해져 있다거나, 특정한 것의 소모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부터 불러낸다하여도 특별한 손해는 없었다. 파지직! 촤아악!! 페튜니아가 착용하고 있을 때는, 위험한 상황이거나 주문을 외워야지만 모습을 드러내던 루인아츠였지만, 현민이 착용한 지금에는 단순히 부르는 것만으로도 모습을 드러내었다. 손목정도밖에 오지 않던 건틀렛의 끝이 길게 늘어지면서 팔꿈치 부분까지 올라왔고, 팔을 접었을 경우 팔꿈치 부분에 뾰족한 부분이 길게 나와 있어 창과 같은 공격이 가능해 보였다. 팔까지 올라와 있는 부분은 끝부분이 곡선을 그리고 있어서 팔의 움직임에 전혀 방해를 주지 않고 있었다. 손등에는 세 개의 날카로운 칼날이 달려있었고, 고깔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손가락 부분들은, 마디 윗부분이 뾰족하게 되어 있어, 주먹을 쥐었을 경우 두 번째 마디의 날카로운 부분이 송곳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오랜만이에요, 어머니. "아직도 어머니라고 하는 거야?" - 그분들에게 어머니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루인아츠가 말하는 그분들이란, 자신을 만들어 준 드워프들을 칭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만들어 준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자각할 수 있는 존재로서, 그들을 '어머니'라고 칭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나도 남자야." - 그분들과 룬님을 비교했을 때, 룬님을 어머니라고 하는 것이 조금 덜 우울하답니다. 루인아츠도 현민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우울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누..." - 뒤! 흠칫! 챙! 머릿속에서 크게 울리는 루인아츠의 소리에 깜짝 놀란 현민은, 다급히 뒤로 돌며 양손으로 정면을 막았다. 맑은 쇳소리와 함께 현민의 손으로 가벼운 충격이 전해졌고, 지금의 상황을 다시한번 깨달은 현민은 장난스러운 태도를 버렸다. 딸랑... "이거 잡담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군요." 일반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유저들은 먼지와 연기로 인해 현민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지만, 암살자나 살수 같은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유저들은, 그런 장애물들을 꿰뚫어보며 현민의 위치를 찾아내고 있었다. "헤이스트(4서클), 스트랭스(4서클)." 지금의 스텟으로는 그들을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현민은, 그들이 두 번째 공격을 하기 전에 자신을 향하여 강화 마법을 사용했다. 강화 마법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는 없었으나, 지금보다 좋아질 것은 분명했다. "수중감옥(3서클). 인탱글(1서클). 대지의 족쇄(3서클)." 시야의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은 현민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들의 위치를 제대로 찾기가 힘들었다. 루인아츠의 도움으로 그들의 위치를 찾는다하여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그들은 현민의 마법이 실현되기도 전에 자리를 피하고 있었기에 현민의 마법은 허공만을 감쌌다. "그리스(2서클). cobweb(거미줄 : 2서클)." 일반적인 구속마법이 그들의 움직임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한 현민은 그리스 마법과 거미줄 마법만을 사용하여 그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서 있을 수 있는 장소는 순식간에 줄어들어 버렸고, 현민 주위의 모든 땅이 마법으로 둘러싸이다 보니, 그들은 최소한으로 다가갈 수 있는 거리를 찾아야 했다. "cobweb(거미줄 : 2서클), 수중감옥(3서클), 아이스(4서클)." 쩡! 하나의 길을 찾아서 현민을 향해 달려들던 유저는, 자신을 감싸버린 물의 감옥에 경악하며 서둘러 벗어나려 했으나, 단단히 얼어버리는 물로 인해서 움직임이 멈추어버렸다. 그들이 밟을 수 있는 땅은 제한적이었고, 그들의 목표는 현민 자신이었기 때문에, 현민이 그들의 움직임을 예상하기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나머지 분들도..." 흠칫! 팟! 순식간에 한명이 당해버리자 깜짝 놀란 나머지 유저들이, 서둘러 물러나며 그와의 거리를 만들었다. 공간이 제한된 장소에서 무작정 공격하다가는 자신들도 얼음덩어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계속 덤비시겠어요?" 꿀꺽... 현민의 물음을 들은 어쌔씬 유저들은 지금의 상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같은 업종(?)의 유저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노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현민을 죽일 수만 있다면 상당한 이득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은 분명했지만, 그 자신의 위험은 엄청 높을 것이다. 하지만, 현민이 싸우고 있는 타이밍에 뒤를 노린다면, 현민을 죽이는데 참여한 기여도에는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그들의 위험이 줄어들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스윽... 한명의 유저가 결정을 내린 듯 허공으로 몸을 감추며 사라져버리자, 나머지 유저들도 그의 뒤를 따라 허공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현민의 빈틈을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갔네요. 현민은 짙은 먼지로 인해 주변의 사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현민을 대신하여 루인아츠가 주변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루인아츠의 설명을 들은 현민의 입가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생겨났지만, 그것은 안도와 기쁨의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덤비는 것은 당신들 마음대로였지만, 도망치는 것도 마음대로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딸랑~. 루인아츠에게 주변의 상황을 부탁한 현민은, 두 눈을 감고 다음에 사용할 마법의 크기를 상상했다. "실드, 수영장(4서클)." 자신의 발밑에 실드를 만들어 그 위에 올라탄 현민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엄청난 양의 물을 소환하였다. 현민으로 인해 모여든 물은 허리정도까지밖에 오지 않았지만, 하늘이 맑았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장소가 물로 덮여있다고 할 정도로 그 범위가 엄청났다. 모여드는 물로 인하여 허공을 뒤덮고 있던 먼지와 연기가 많이 가라앉았으나, 들판을 뒤덮고 있던 불과 만나며 수증기가 피어올랐기 때문에, 그들의 시야는 여전히 막혀있었다. "아이스(4서클)." 갑자기 생겨난 물이 그들의 허리까지 잠겨오자, 모든 유저가 현민의 다음 공격을 예상할 수 있었다. 물의 가장자리에 있던 유저들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고, 물에 둘러싸여있던 일부의 유저들은 피할 공간이 없었기에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물은 현민이 있는 장소를 시작으로 하여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대부분의 유저들은 물과 함께 전해지는 뜨거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현민의 마법이 절대영도에 가깝다 보니, 극도의 차가움을 넘어선 뜨거움이 느껴진 것이었다. "인첸트 라이트닝(4서클)," 현민으로 인해 만들어진 얼음의 크기가 상당했기 때문에, 인첸트 하는 것에도 엄청난 양의 정신력이 소모되었지만, 남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현민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파이어 볼(3서클)." 바닥에 손을 가져간 현민은 파이어 볼 마법을 사용하여 얼음을 부셔버렸다. 손과 얼음 사이에서 일어난 폭발은 엄청난 충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민의 손에 착용된 루인아츠가 그 힘의 대부분을 밀어내면서, 파이어 볼이 만든 모든 충격이 얼음으로 전해졌다. 펑! 샤르릉... 단단히 얼어붙었던 얼음은 조각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루로 변하며 허공에 휘날렸고, 얼음 속에 갇혀 있던 유저들의 하반신도 얼음과 같이 가루로 변하며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 크아악!! - 으, 으아악!! - 꺄악~!! "싸울아비"에서는 고통을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현실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정도였다. 하지만, 제한되는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일 뿐, 정신적인 고통까지는 아니었다. 평소에는 좋아했을 높은 현실성이 그들의 정신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왔고, 허리에서 느껴지는 작은 고통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생각됐다. 지금의 끔찍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죽고 싶은 유저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높은 생명력이 그들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지, 지옥..." 한걸음의 차이로 현민의 공격을 벗어날 수 있었던 유저들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며 지옥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반신이 사라진 채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공포영화 따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무서움을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너무나 처절한 그들의 비명소리가 수많은 유저들의 발걸음을 묶어버렸다. 파지직!! 이리저리 흩어졌던 얼음먼지가 바닥에 내려앉기 시작하자, 그들의 비명도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얼음먼지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데미지가, 고통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 안식을 가져다준 것이었다. "크으윽..." "크어억!!" 얼음먼지는 하반신이 사라진 유저들을 안식으로 이끌어 주었지만, 허공으로 솟아올랐던 일부의 유저에게는 엄청난 데미지를 주었다.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거의 없는 그들이었기에, 전격의 데미지를 전부 받아내야만 했다. - 우엑! - 우우욱!! 현민이 만들어낸 처참한 관경에 고개를 돌려버린 여성 운영자들은, 뒤집어지는 속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구석으로 달려가 속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가상현실이기에 나오는 것은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망자 254,182명. 현민을 중심으로 한 주변 유저들의 움직임이... 멈췄습니다." "어떻게... 가능한 거지? 도대체 어떻게..." 보고를 하고 있는 운영자의 얼굴뿐만 아니라,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운영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패치로 인해 현민이 받을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여줄 생각으로 했던 일이, 그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현실성으로 인해 약간 잔인한 경우는 볼 수 있었지만, 지옥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이러한 광경은 그들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저런 게... 마법일 리가 없잖아." 현민이 사용하고 있는 마법은, 그들이 알고 있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마법으로 인해 피어올랐던 수증기는 빠른 속도로 사라져버렸고, 그들의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올까?" - 이 근처의 유저들은 당분간 안 올 것 같네요. 넓게 드러나 있는 평야에는 중간중간에 유저들이 서 있었지만, 그 누구도 현민을 향해서 달려들지는 않았다. 어릿광대가 소수 인원과의 싸움에서 더욱 높은 전투력을 드러낸다고 알고 있는 그들은, 무모한 도전을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려고 했다. "그러면, 우리가 갈까?" - yes ma'am, my mother 그나마 있던 유저들도 현민을 보고 도망가 버리자, 지옥 같은 벌판에 멀쩡히 서있는 존재는 현민밖에 남아있지가 않았다. 이대로 기다려 봤자 유저들은 다가올 것 같지 않았고, 결국 현민이 먼저 다가가기로 했다. "대지의 손(3서클)." 현민의 오른팔과 똑같이 생긴 대지의 손이 그의 발밑에서 솟아나며, 현민의 신형을 들어 올렸다. 허공으로 팔을 들어 올린 현민은 무엇인가를 던지는 듯한 자세를 잡았고, 현민을 들고 있는 대지의 손도 현민과 같은 동작을 하였다. 후웅!! 현민의 팔이 휘둘러지자, 그의 팔과 똑같이 움직인 대지의 손이 현민의 신형을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현민이 떨어질 장소를 계산하고 있을 때, 종족적 특징이나 펫, 스킬을 사용하여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던 유저들이 현민과 속도를 맞추어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수의 유저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벌떼처럼 모여드는 그들의 모습에 현민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이상, 도망칠 수는 없을 거다!!" 진부한 대사(?)를 날리며 등장한 유저들의 두 눈에는, 현민을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현민이 땅에 있었기에 마땅한 공격을 할 수 없었던 그들이었지만, 현민 스스로가 그들의 영역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그를 이기지 못할 이유는 존재하지가 않았다. "절대방어(3서클)." 쾅! 콰콰콰콰쾅!!! 절대방어가 현민의 신형을 감싸기 무섭게, 엄청난 충격이 그의 방어막을 뒤흔들었다. 수많은 유저가 공격을 하다 보니, 현민의 방어막에 부딪히는 기술보다는, 기술끼리 부딪히며 폭발하는 것이 더욱 많았다. 극히 일부의 공격만이 현민의 방어막에 부딪혔지만, 현민의 상황은 그렇게 좋지가 못했다. "큭!" 현민의 방어막은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기에, 본래의 역할을 훌륭히 한다 해서 현민에게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들이 현민의 방어막을 이리저리 튕겼기 때문이었다. "re... reflection(반사 : 3서클). 실드, 실드, 실드, 실드... 실드!" 팟! 땅으로 내려서지 못한 채, 이리저리 튕겨 다니던 현민은, 절대방어에 반사 마법을 사용하여 모든 유저들의 공격을 튕겨내었다. 현민에게서 튕겨진 공격이 주변의 공격과 부딪히며 현민에게 잠깐 동안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고, 현민은 허공에 실드를 만들며 그것을 밟고 달렸다. 팟! 팟! 팟! 빠르게 달려 나가고 있는 현민의 신형은 순식간에 유저들과 가까워졌고, 유저들의 경악어린 시선이 현민의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 주었다. "인탱글(1서클),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3서클)." 현민이 사용한 마법은 너무나 유명한 것이었기에 많은 공략법까지 존재했으나, 일부를 제외한 많은 유저들이 현민의 마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나무가 커지기 전에 잘라냈다면 손쉽게 벗어날 수 있었지만, 나무뿌리가 감싼 것이 그들의 날개였기 때문에 꼼짝없이 당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나무뿌리를 잘라주세요!!" 수많은 유저들이 현민의 마법에 떨어지고 나서야 방법을 찾은 것인지, 한명의 유저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스스로가 현민의 마법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도와준다면 얘기는 달랐다. "흐음~." 그들이 서로를 도와주기 시작하자,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유저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들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고, 현민의 입에서는 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cobweb(거미줄 : 2서클)." "뭐, 뭐야?!" 그리폰에서 총을 쏘며 현민을 공격하고 있던 한명의 유저는, 그리폰의 날개에 달라붙는 현민의 거미줄에 당황한 음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진짜 황당한 일은 따로 있었다. 자신의 거미줄이 그리폰의 날개에 정확히 붙은 것을 확인한 현민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아래로 뛰어내린 것이었다. 기우뚱~. "끼이익!!" 펄럭! 펄럭! 현민으로 인하여 한쪽의 날개가 갑자기 무거워지자, 그리폰이 비명을 지르며 날개에 힘을 주었다. 날개의 펄럭임에 맞추어 현민의 신형이 위아래로 움직였고, 거미줄의 탄성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현민의 신형은 빠르게 튕겨 올랐다. "그리스." 팟! 거미줄을 놓아버린 현민의 신형은 하늘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유저들의 머리 위를 차지하였다. "그럼, 안녕히... cobweb of queen(여왕의 거미줄 : 5서클)." "응?" "어라?" 현민의 말에 잔뜩 긴장한 유저들은, 퍼붓고 있던 공격도 중지한 채 현민의 공격을 기다렸으나, 기다리던 마법은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허세다!!" 현민의 말을 거짓이라고 판단한 유저들은, 다시금 현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보상을 노리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현민을 죽여야 했다. "실드, 실드, 실드, 실드... 실드!" 팟! 팟! 팟! 팟! 허공에 실드를 만든 현민은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현민을 노리고 있는 유저들도 그의 뒤를 따라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탱~. "어? 뭐, 뭐야?" 탱, 쭈우욱~. "끄, 끈적해?" 하늘을 날고 있던 유저들의 입에서 당황한 음성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날아오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밑에서부터 올라온 무언가가 그들의 몸에 달라붙으며 날개를 구속해 버린 것이었다. "서, 설마?!" 허세라고 생각했던 현민의 마법은 그들의 밑에서 확실히 실현되어 있었다. 가장 멀리 위치한 유저들만 골라서 여왕의 거미줄을 연결한 현민은, 헤이스트 마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움직임을 빠르게 만들어주었다. 그들로 인하여 거대한 그물이 만들어졌으나, 자신에게 붙어있는 거미줄의 일부분이 이러한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유저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 도와줘!" 순식간에 올라온 거미줄이 현민에게 다가가던 유저들을 감싸버렸고, 거미줄에 달라붙은 유저들은 더 이상 스스로의 의지로 날아다닐 수가 없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심하게 달라붙는 거미줄이 그들의 날개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귀찮게 하지 말아주세요." 무거워진 거미줄은 아래로 쳐지기 시작했고, 현민은 차가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가장자리에서 거미줄의 그물을 유지하고 있던 유저들은 거미줄이 늘어나며 잠시 동안은 버틸 수 있었지만, 거미줄의 탄력이 한계에 다다라는 순간, 다른 유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땅에 떨어졌다. "피, 피해!!" 자신의 위로 거미줄이 생긴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유저들은, 떨어지는 거미줄에 경악어린 음성을 내뱉으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퍼어억!! 그들이 피한 거미줄은 어마어마한 소리를 만들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으나, 아래를 내려다보는 유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래로 떨어진 유저들의 생사가 아니라, 그들의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는 현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다면 아래를 보지 않아도 그들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촤아악! "아악!!" 핑! "컥!" 현민의 마법으로 인해 상당수의 유저들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하늘에는 아직까지도 수많은 유저들이 남아있었고, 그들은 현민을 노리며 공격하는 중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들의 공격이 현민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유저들을 떨어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 우왓?! 야이, xx야!! 뒤지고 싶냐?!" "너나 비켜 이 xx같은 x탱아!! 방해하면 죽여 버린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몇몇의 유저들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현민으로 인해 시작된 싸움들이었지만, 당사자인 현민은 거미줄과 실드 마법을 이용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cobweb(거미줄), 인탱글,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실드, 실드, 인탱글, 실드, cobweb." 유저들이 밀집된 지역만 골라서 돌아다니고 있는 현민은, 간간히 인탱글 마법을 사용하여 유저들을 떨어트렸다. 현민의 마법과 개인적인 싸움으로 인하여 많은 유저들이 떨어지고 있었으나, 하늘을 날고 있는 유저들의 수는 조금도 줄어든 것 같지가 않아 보였다. '이래서는 끝이 안보여...' 하늘에는 벌떼같이 모여 있고, 바닥에는 개미떼처럼 모여 있는 유저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오늘 중으로 끝낼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웠다. 문제를 아무리 빨리 푼다 해도 최소 3초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마법을 난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서클이 높아지면 문제의 수준도 높아졌기에 강력한 마법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불안했다. '최소한 땅 위에서...' 땅에서 싸운다면 훨씬 많은 유저들에게 공격당할 수 있었으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나았다. 게다가 현민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마법들은 땅이 있어야지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스윽! 빼곡히 둘러싸인 유저들을 벗어날 수 없었던 현민은, 비상의 수단으로 남겨놓았던 마녀의 빗자루를 꺼내었다. 현민이 만든 마녀의 빗자루가 정상적인 무기였다면 처음부터 마음 놓고 사용했을 테지만, 과도한 피를 섭취하여 취해버릴 경우 어떻게 될지를 알 수 없었기에 남겨둔 것이었다. "제, 젠장!! 마녀의 낫이다!!" "물러나!" "떨어져! 일단, 떨어져!!" 현민이 마녀의 빗자루를 꺼내들기가 무섭게, 근처에 있던 모든 유저들이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엄청난 공격력과 메두사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마녀의 빗자루는, 쉽사리 대항할 수 있는 평범한 무기가 아니었다. "어둠속에 잠자고 있는 자여, 눈을 봉인당한자여." 거대한 날에 피를 묻히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 현민의 신형은, 하늘에 머무르지 못한 채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의식으로 인한 것인지, 현민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떨어져가는 현민의 신형을 본 유저들은 그제야 '아차'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대의 주인이자, 아버지인 나의 피를 받아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봐라..." "제기랄!! 어떤 새끼가 물러나라고 지껄인거야!!" "xx!! 주문이 완성되면 우린 모두 죽음이야!" "...너의 시선에 맞추어 세상을 판단하고, 너의 의지에 맞추어 모든 것을 부수어라." 현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주문을 듣고서야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유저들은, 최대한의 속도를 내며 현민에게 날아갔다. 현민의 주문이 완성된다면 그들의 죽음은 확실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저들도 있었다. 끼이이이잉... 현민의 피가 낫으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낫 전체에서 감쳐져 있던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밟게 빛나고 있는 마녀의 빗자루를 보며 주문이 완성되어 간다는 것을 깨달은 유저들은, 현민에게 온갖 기술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가까운 거리이기에 빗맞을 이유도 없었고, 그들의 기술이라면 훨씬 빠른 속도로 현민에게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쩍! 쩌저저적! "일어나라!" "으아아아아아아아!!!" 현민의 주문은 마지막만을 남겨놓고 있었고, 그들의 기술은 현민의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현민의 주문이 먼저라면 그들이 죽는 것이었고, 반대라면 현민이 죽는 것이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세상을 바라봐라!!" 콰콰콰콰쾅!! 현민의 주문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주변의 유저들을 멀리 날려버렸다. 현민과 그들의 거리가 어느 정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까지 충격이 올만큼 그 폭발은 엄청났다. 펄럭! 펄럭! 날아가는 자신의 몸을 바로잡은 유저들은, 거대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저곳에 현민이 없다면 이번의 전쟁은 그들의 승리로서 끝나는 것이었고,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그들의 전쟁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응?" "어?" 얼굴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 때문에 손을 가져가던 유저들은, 얼굴에 손이 닿는 순간, 자신의 시야가 비틀리기 시작하자 당황한 음성을 내뱉었다. 일부의 유저들은 멀쩡했던 하늘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푸시시시시식!! - 으, 으아아악!! - 꺄아악!! 유저들의 몸에서 화려한 빛 무리가 튀어나와 주변을 아름답게 물들였으나, 유저들은 그것들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생각 할 수 없었다. 목에서 빛이 나오고 있는 유저들은 머리가 사라진 상태였고, 폭발했다고 생각될 만큼 화려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존재들은 온몸이 산산 조각난 채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잔인도의 설정을 높게 하고 있는 일부의 유저들은, 붉게 물들고 있는 하늘을 보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 푸헤헤헤헤헷!! 향긋한 냄새가 너무 고약해요, 으흑흑... 나는 코가 없는데 어떻게 냄새가 나는 거지? 응? 주인새끼님아. "입이 없어도 말할 수 있으니, 코가 없어도 맡을 수 있는 게 아닐까?" - 오홋? 오혹? 오홍?! 정말 멍청한 주인새끼님~, 역시나 천재라니깐. 크캬캬캬캬. 조각조각 분해되는 사람들을 보며 비명을 지르던 유저들은, 머릿속을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얼굴이 굳어져버렸다.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닌,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이 목소리가 마녀의 빗자루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하늘에 있는 모든 유저들을 죽여." 마녀의 빗자루를 타고(지팡이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날을 밟고 서있는 중이다.) 하늘에 머무르던 현민은 자신의 빗자루에게 모든 유저들을 죽이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 거기, 주인자식님 손에 착용된 어여쁘신 아가씨. 우리 따뜻한 피나 한잔하며, 미래를 나불거리지 않으실라우? - 뭐, 뭐죠? 이 정신 나간 물건은... 어서 치워주세요, 어머니. - 에이, 튕기지 마시고~. 내 눈깔 바라보며 주둥이 여세요~. 무흣! - 부, 불쾌해요!! 루인아츠에게 모든 눈알이 집중되어 있는 마녀의 빗자루는, 그녀(?)를 향해 다정한(?)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루인아츠가 남성의 인격체(...)였고, 마녀의 빗자루가 여성의 인격체(...orz)란 사실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할 테니 잘 들으세요." 전쟁 속에서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가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뜻을 방해하는 마녀의 빗자루 때문에 짜증이 일어났다. 게다가 사냥하기 쉽게 모여 있던 유저들도 마녀의 빗자루가 떠드는 동안 전부 흩어졌으니, 그의 짜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졌다. - 따악~! 보니 x리퐁 한 박스의 알갱이 숫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푸히히히히. 피에 말아먹는 그 맛... 캬아~, 졸.라. 맛없어!! 크케케케케!!! "유저들을 죽.여." - yes sir, my monster(?). 현민의 짜증을 느낀 것인지,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마녀의 빗자루가 현민의 명령에 바로 답했다. 아직까지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 속에서 검은색의 눈을 반짝인 마녀의 빗자루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마녀의 빗자루(S급) 설명 : 마녀 루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빗자루, 너무나 특별한 나머지 이름만 빗자루일 뿐 빗이 달려있지는 않다. 드워프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져 특히 강한 공격력과 내구력을 가지고 있다.(측정불가) 마녀 루나의 무식한 방식이 추가되어 있어 싸이코적인 성향을 가진 에고무기. 속성 : 석화 공격력 : ??? 내구력 : ??? 조건 : 마녀 루나만 사용 가능. 거래 불가. 하늘을 날지 못하는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가 사라진 이후에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현민의 옆으로는 별이 부서진 듯한 아름다운 빛 무리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현민의 눈에는 너무나 붉어 보이는 빗방울들이... "여신의 발걸음." 여신의 발걸음(3서클) 능력 : 하늘에서 생겨난 거대한 압력이 사용자의 발과 일체되어 상대를 공격한다. 사용자의 정신력에 따라 크기와 압력의 세기가 달라진다. 현재 단계 : 10 주문 : ??? 마녀의 빗자루에게 하늘을 맡긴 채 아래로 떨어지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발밑에 마법을 사용하였다. 여유롭게 마법을 사용할 찬스는 쉽게 오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기회를 살려서 많은 유저들을 죽이려는 것이었다. 자주 쓰는 마법은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마법이었다. "타이밍을 맞춰서..." - 제가 도와드릴까요?" "응, 고마워." 현민이 말하는 타이밍은 여신의 발걸음이 지면에 닿을 이후, 현민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현민의 몸이 아다만타이트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101%(?) 사망이기 때문이었다. "화려하게 밟아볼까?" - 조심하세요. 쿵!!! 어마어마한 소리가 울리며 여신의 발걸음이 지면으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신의 발걸음은 지면에 닿아있는 상태였지만, 마법의 사용자가 되는 현민은 아직도 허공에서 내려오는 중이었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려갔다. - 이제 그만! "플라이(5서클)." 루인아츠의 신호에 맞추어 하늘에 몸을 띄운 현민은, 속도를 조절하며 발자국(여신의 발걸음)이 없는 지역으로 내려섰다. 쾅! 쾅! 쾅!... - 피해! - 여기 좀 막아줘요! - 컥! - 으악! 바닥으로 내려선 현민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돌을 피해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유저들이었다. 엄청난 높이에서 떨어지고 있는 돌덩이(유저)들은 그 자체가 무기였기 때문에 하나라도 맞는다면 죽는 것이 당연했다. "제, 젠장! 아프잖아!!" ...세상이 넓어서 그런지 예외는 존재했다. "아..." "응?" 하늘에서 떨어진 돌을 맞고 머리를 문지르던 유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을 보며 입을 벌렸다.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던 어릿광대가 자신의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 어릿광대다아아아!!!" 그의 외침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자, 모든 유저들의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하늘에서는 아직도 돌덩이들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 돌의 표적이 되고 있는 유저들조차도 현민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 밑!! 흠칫! 팟! 너무나 조용한 정적 속에서 주변의 유저들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루인아츠의 외침에 다급히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루인아츠의 말이 있은 직후 움직였기 때문인지, 몇 개의 가시가 그의 다리를 스쳐지나갔다. '그, 그림자?!' - 몸을 틀어요! "흡!!" 루인아츠의 외침에 따라 허공에서 몸을 비틀자, 세 개의 화살이 현민의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의 반응이 조금만 느렸으면, 세 개의 화살은 현민의 몸을 스쳐지나가는 게 아니라 가슴에 꽂혔을 것이었다. "미꾸라지 같은 놈!!" 갑자기 몸을 날린 상태에서 비틀기까지 하다보니, 현민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져 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틈을 놓칠 리 없는 유저들은 현민을 향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스악!! 챙! 현민의 루인아츠와 한 유저의 대검이 강하게 부딪히면서 현민의 몸이 뒤로 날아가 버렸고, 다른 유저들의 무기가 날아가는 현민의 몸을 스쳐지나가며 바닥에 박혔다. 유저의 대검이 생각이상으로 강했던 것인지, 현민의 상체가 뒤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현민의 다리보다 그의 등이 먼저 바닥에 닿을 상황이었다. 스윽... 콰콰콰콰콱!! 다리를 가슴 쪽으로 당기며, 뒤로 기울어진 몸을 앞쪽으로 기울인 현민은, 오른손을 땅에 박아 넣은 후 두 발을 가볍게 내리며 미끄러졌다. - 이번에도 화살이에요!! 팟! 파파팍! 바닥을 미끄러지고 있던 현민은, 루인아츠의 말이 들리자마자 덤블링을 하여 그 자리를 벗어났다. 화살을 날린 유저가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가 있던 자리로 날아든 세 개의 화살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박혀 있었다. "내꺼다!!" 후웅! 허공으로 몸을 날린 현민이 자신의 앞으로 내려서는 것을 확인한 한명의 유저가 기쁨의 환호를 내뱉으며 자신의 철퇴(?)를 내려쳤다. 너무나 완벽한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부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으나, 당연히 맞을 거라 생각했던 그의 철퇴는 아무것도 맞추지 못한 채 허공을 지나가 버렸다. "까꿍~." 퍽! "으윽!" 관성의 법칙을 무시한 것인지 일반적인 체공시간보다 조금 더 오랜 시간을 허공에서 머무른 현민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자신의 머리를 지나가는 철퇴를 잡아버렸다. 양손으로 철퇴를 잡고 거꾸로 몸을 세운 현민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저들에게 귀여운(?) 한마디를 내뱉은 뒤, 철퇴 주인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찼다. 평소 상태의 공격이었다면 이 정도는 간지럽지도 않게 느껴졌을 테지만, 지금의 현민은 루인아츠의 [힘+250]이란 것과 스트랭스라는 마법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이 자식!!" "조심~." 챙! 스악! "컥!" 그들의 무기는 현민을 노리고 있었으나, 정작 그들이 공격한 것은 현민의 공격으로 바닥에 누워있던 이름 모를 유저였다. 그들의 공격이 자신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바닥에 있던 유저를 집어 들며 방패로 삼은 것이었다. 유저의 몸이 현민의 뒤를 막아주었고, 왼손에 착용된 루인아츠가 현민의 정면을 방어해 주었다. - 피하세요! 팟! 스아아앙... 핏! 루인아츠의 음성에 현민의 신형이 앞으로 튀어나가자, 그가 있던 자리로 일그러진 공간이 생겨나며 일정 영역의 물건들을 없애버린 후 사라졌다. '공간을 다루는 능력이라...' 그림자를 다루는 독특한 존재도 거치적거렸지만, 공간을 다룬다는 것은 그 이상으로 귀찮아 질수 있었다. '정신없네...' 현민은 몇몇 귀찮은 존재들로 인하여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그 방법이 되는 마법의 사용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정신적인 여유만 있다면 3초안에 문제를 풀 수 있을 테지만, 수많은 유저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계산을 하다 보니 10초가 지나도록 하나의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챙! '6,518,495,134. 됐다!' "대지의 족쇄(3서클), 대지의 심판(5서클)." 겨우겨우 완성된 마법이 유저들의 신형을 구속하였고, 곧바로 이어진 대지의 심판이 유저들의 목을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대지의 족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문제를 풀어야 했지만, 대지의 심판은 메모라이즈 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풀 필요가 없었다. 툭. 데구르르... - 꺄아아악!! 순식간에 이루어진 현민의 마법으로 대부분의 유저들이 죽어버리자, 살아남은 일부 유저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던 대지의 족쇄에서 대지의 심판이 사용되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들은 엄청난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 일부의 유저와, 빠른 움직임이나 독특한 방법으로 대지의 족쇄를 피할 수 있었던 유저밖에 없었다. "...과연 어릿광대." "이정도의 실력은 있단 말이지...?"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오싹하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잔인도를 중간으로 해 놓은 탓에, 바닥을 굴러다니는 유저들의 머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푸시시시시.... 털썩! 털썩! 그들의 잔인도가 조금만 높았다면, 그들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시산혈해(屍山血海)일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깨달은 일부의 유저들은 서둘러 잔인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멀쩡한 정신으로 이런 장소에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간이 크다 할지라도 사람의 머리가 자신을 바라보는데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이제 남은 정신력은 7만인가...' 광범위 마법들로 인하여 100만 가량의 유저를 죽일 수 있었던 현민이었지만, 그의 무리한 마법사용으로 인하여 26만이던 정신력은 7만으로 줄어 있었다. 15,000의 정신력을 소모하는 메테오 마법(8서클) 하나면, 10만의 유저를 죽일 수 있는 것에 비할 때, 현민의 정신력 소모는 약간 과도한 감이 있었다. "x신 새끼들... 마법사 따위에게 죽다니." 어느 정도 정리된 주변을 바라보며 한숨을 돌리고 있던 현민은, 주변 유저들을 비웃고 있는 짜증나는 목소리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한국의 랭커들도 쓰레기지만, 이 정도의 마법도 피하지 못하는 너희들은 더욱 쓰레기야." 팔짱을 낀 채 다가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약해 보였으나,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의 실력이 낮다고는 단정할 수 없었다. "안 그래? 어릿광대." 현민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잔인함이 담겨 있었다. 사람의 눈에서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현민도, 그의 생각만큼은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너 '따위'가 아직도 살아있으니깐 말이야." - 왼... 스악... - ...팔!! 툭. "크아아악!!!" 무엇인가를 느낀 루인아츠가 현민을 향해 경고를 하려고 할 때는, 이미 그의 왼팔이 떨어져 나간 이후였다. 현민의 허리부분에서 생겨난 그림자가 현민의 어깨 아랫부분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루인아츠가 감싸고 있는 것은 현민의 팔꿈치까지였기에 약간의 데미지만으로도 현민의 팔이 잘려버렸다. "지금의 공격은 경고일 뿐이야. 다음은 목을 노려주지." 이번에는 현민의 목을 노릴 생각으로 손을 뻗었지만, 현민의 목을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 "너 혼자 설치지 마." "...죽고 싶나?" 온몸을 검은색으로 물들인 한명의 유저가, 아무런 기척 없이 나타나며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댔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표로 왔을 뿐, 주위를 둘러보시지..." 그의 말대로였다. 그의 주변에 살아남은 유저들이 엄청난 살기를 띄우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어릿광대나 등 뒤의 유저를 죽인다면, 그 다음으로 노려지는 것은 자신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하지만 그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태도는 당당했다. 그림자를 다루는 자신의 능력이라면, 이곳에 있는 모든 유저들을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네 놈..." 까드득... "이런이런... 내분인가요?" 그의 건방진 태도에 잔뜩 흥분한 유저가 손에 들린 단검을 밀어 넣으려 했지만, 중간에 들려온 현민의 말이 그의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상당히 낯설은 그의 모습에 약간 놀랐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시죠? 어서 죽이세요." 마법을 사용하여 왼팔의 출혈을 막고 있는 현민은, 자신의 왼팔을 물건처럼 든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이놈의 왼팔은 왜 이렇게 자주 떨어지는지..." 자신의 몸을 남의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현민의 모습에, 모든 유저들의 생각이 하나로 통일되었다. - 지금 여기서 가장 위험한 놈은 '어릿광대'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본능이 현민의 존재에 대해서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자신들의 본능을 무시할 수 없었던 유저들은 서둘러서 현민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현민에게 맞기 보다는 다른 유저들의 공격과 부딪히고 있었다. 비슷한 수의 유저들이 전쟁을 한다면 수가 많은 것이 유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이 하나의 유저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수가 많다는 것이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지상에서나 공중에서나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비슷했다. "벌써 화해하시다니... 변덕스러운 분이시네요." 수많은 유저들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현민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어쌔씬 계열들의 직업들은 스킬의 대부분이 타겟 유저의 뒤로 이동하는 것이다 보니 다른 유저들과 겹치거나 부딪히며 넘어지기 일수였고, 원거리의 유저들은 현민의 주변을 다른 유저들이 둘러싸고 있어 아무런 공격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흡?!" 스악! 퍽! 현민의 왼팔이 잘려나간 상태였기에 그의 왼쪽은 상당히 무방비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유저들도 현민의 측면을 자주 공격했고, 가끔가다 날아오는 공격에 현민의 몸은 엉망으로 변해갔다. 현민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모든 것을 방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챙! "뭐?" "어떻게..." 현민을 둘러싼 채 한참동안 공격을 하고 있던 유저들은 자신의 공격이 현민의 '왼팔'에 막혀버리자 놀란 얼굴이 되었다. 분명히 떨어져 나갔던 현민의 왼팔이 멀쩡하게 붙어서 그들의 공격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호~, 이런 방법도 있었군요." 도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민의 왼팔은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재미있는 거 보여드릴까요?" 멀쩡히 붙은 왼팔을 사용하여 주변의 유저들을 상대하고 있던 현민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스크류 펀치~." 휘리리릭! 퍽!! "컥!" 일반적인 팔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360도 회전을 하며 길게 뻗어진 현민의 주먹은, 한명의 유저를 멀리멀리 날려버렸다. 만화 속에 나오는 로봇이라도 되는 듯 자신의 팔을 회전시킨 현민은 지금의 상황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이번엔 더욱 재미있을 거예요." 이번엔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왼팔을 들어 올린 현민이 그림자를 다루는 유저를 향해 손을 폈다. "로켓트 펀~치!" 꽉! "크윽!!" 장난스러운 현민의 말과 함께 빠르게 날아간 그의 왼팔이 그림자를 다루던 유저의 얼굴을 잡아버렸다. 현민의 왼팔은 생각이상으로 빠르게 날아갔기에, 그림자를 이용하여 현민의 공격을 막지도 못하였다. 강하게 잡힌 현민의 왼팔은 쉽사리 벗겨지지가 않았고, 이리저리 도망다니고 있는 현민의 입에서 잔인한 미소가 생겨났다. "죽어버리세요." 콰직! 털썩! 유저의 얼굴을 붙잡고 있던 현민의 왼손이 머리를 강하게 움켜잡자, 그의 머리가 산산 조각나며 부서져버렸다. 히든 스킬을 가지고 있는 유저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죽음이었다. 한명의 유저를 죽인 현민의 왼팔은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갔고, 주변의 유저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현민의 왼팔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마법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이 따위 것들은 쉽게 죽여 버릴 텐데..." 왼손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지만,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매우 못마땅했다. 하지만 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 머리위의 공간과 왼쪽의 화살을 조심하세요! 수많은 유저가 현민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모두가 기술쓰기를 자제하고 있었지만, 공간을 다루는 유저는 주변의 상황을 신경 쓰지 않고 현민을 노리고 있었다. 가끔가다 날아오는 화살도 자신의 실력이라도 보여주듯이 현민만을 노리며 그의 움직임을 힘들게 만들었다. "invisibility(투명화 : 5서클)!" "뭐, 뭐야? 투명마법?" 한참을 도망다니던 현민의 입에서 드디어 하나의 마법이 실현되었고, 넓게 퍼지는 현민의 마법에 모든 유저들의 움직임이 멈추어 버렸다. 현민의 절대방어가 감싸고 있던 지역의 모든 유저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는 현민의 모습과 그들 자신의 몸뿐이었다. '이제 남은 정신력이 5만 정도인가...' 5만이라는 숫자는 일반적인 마법사들도 쉽게 갖을 수 없는 정신력이었지만, 지금의 현민에게는 너무나 적게 느껴지는 정신력이었다. 반경 400km의 절대방어와 투명화 마법을 30분 정도 유지하는데 5만이라는 정신력이 소모되었기 때문이었다. "It's show time~." 현민의 눈에는 서로가 보이지 않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유저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30분 동안 현민은 최대한 많은 수의 유저를 죽여야만 했다. - 너 '따위'가 아직도 살아있으니깐 말이야. - 크아아악!!! 운영자들이 바라보고 있던 화면 속의 현민이 끔직한 비명을 내지르자, 페튜니아의 안색이 굳어버렸다. 일반적이라면 비명을 내지를 정도의 고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체감도가 몇 % 죠?!" "그러니깐..." 다급한 페튜니아의 음성에 운영자의 손길이 빨라졌고, 그의 눈앞에 현민의 정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8, 80%?!" "말도 안돼!" 체감도가 80%라는 것은 거의 모든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80%와 100%의 차이는 죽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80%라는 것은 사람의 육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최대한의 수치였다. - 지금의 공격은 경고일 뿐이야. 다음은 목을 노려주지. - 파이어. 크으으... "제, 제정신으로..." 화면속의 유저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모든 신경을 어릿광대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운영자들은, 현민이 하는 행동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 힐. 파이어 마법으로 왼팔의 출혈을 막은 현민은 회복마법을 사용하여 고통을 줄이고 있었다. 그의 왼팔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고, 현민은 자신의 발밑에 떨어져 있는 왼팔을 주워들었다. - 이런이런... 내분인가요? 차가우면서도 장난스러운 현민의 분위기는 어릿광대 특유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 왜 그러시죠? 어서 죽이세요. 화면 속의 유저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운영자들도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하여 숨을 죽이고 있었다. - 하아, 이놈의 왼팔은 왜 이렇게 자주 떨어지는지... 오싹!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무언가의 '어긋남'이 그들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들은 눈앞에서 마주한 것도 아닌 화면속의 존재에게,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다. 팟! 채채챙! 현민에게서 그러한 느낌을 받은 것은 운영자들뿐만이 아닌지, 유저들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현민의 신형은 유저들의 틈을 노리며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은 현민의 신형을 쫓아가며 자신의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 벌써 화해하시다니... 변덕스러운 분이시네요. 유저들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현민에게서는 이전에 느꼈던 '어긋남'이 사라져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변화가 없었으나, 그의 분위기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 흡?! 스악! 퍽! 시간이 지날수록 현민의 상처는 늘어만 갔고, 운영자들의 얼굴에 죄책감이 깃들었다. 그들이 조금 더 강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무리한 패치는 안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2억의 유저와 싸우고 있는 현민을 보고 있자니, 몇몇 국가의 압박에 무릎을 꿇은 자신들의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꼬옥... 현민의 그러한 모습에 긴장한 것인지, 페튜니아의 손이 옆에 있던 성희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페튜니아의 마음을 알아차린 성희가, 자신의 손에 닿은 그녀의 촉촉한 손을 마주 잡아 주었을 때, 모두가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챙! 잘려나갔던 현민의 왼팔이 원래의 위치에 붙어서 유저의 공격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팔이 잘려나간 상처는 그대로 있었으나, 그의 팔은 현민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 말도 안돼..." "혹시, 정령 마법?" 현민의 정령을 잘 알고 있는 페튜니아는 묘의 능력으로 의심했지만, 현민의 주위에는 단 한명의 정령도 소환되지 않은 상태였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운영자들의 얼굴이 의문으로 가득차기 시작했고, 한명의 운영자가 그들이 찾지 못한 정답을 가르쳐 주었다. "염력?" "?!!" 정답을 들을 수 있었던 운영자들은 생각도 못한 해답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설마하니 염력마법으로 잘려진 팔을 복구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러한 방법은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 오호~, 이런 방법도 있었군요. 현민의 의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그의 팔은, 떨어지기 이전과 조금의 차이도 없었다. 염력마법으로 끊어진 신경을 대신하는 것이었기에, 그의 왼팔이 이전의 능력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 재미있는 거 보여드릴까요? 스크류 펀치~ 기계도 아닌 사람의 팔이 360도 회전하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비위 상할 만한 모습이었지만, 그 팔의 당사자인 현민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 이번엔 더욱 재미있을 거예요. 로켓트 펀~치! 꽉! - 크윽!! 정말로 날아가 버린 현민의 왼팔은 히든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유저의 머리를 잡아버렸다. 강하게 잡힌 현민의 손은 유저의 머리를 풀어주지 않았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운영자들은 지금의 상황에 황당한 표정을 했다. - 죽어버리세요. 콰직! 장난 같은 현민의 말이었으나, 그로 인하여 한명의 유저의 머리가 수박 깨지듯 부서져 버렸다. 그들로서도 싫어하는 타입의 유저였기에 죽음 자체를 반겨야 했지만, 그의 죽는 모습이 너무나 끔찍하여 환호를 할 수도 없었다. - invisibility(투명화 : 5서클)! "투명화?" 현민이 사용한 마법은 5서클 중 하나인 투명화 마법이었으나, 그들이 놀란 이유는 그 대상이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향해 사용하리라 생각했던 현민의 마법은 그 만을 제외한 채 절대방어 안에 있는 모든 존재의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이렇게 되면 모든 공격이 현민에게 집중될 것이 뻔했다. - It's show time~. 가볍게 뛰어오른 현민이 즐거운 콧노래를 부르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직! 찌이익... 오른손의 루인아츠로 가까이 있던 유저의 무기를 잡아버린 현민은, 순식간에 그것을 부셔버리며 유저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루인아츠에 달려있는 비늘은 하나하나가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현민의 팔이 쓸고 지나간 그의 몸이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진 것이다. 팟! 한명의 유저를 찢어버린 현민은 서둘러 자리를 이동하였고, 그가 있던 자리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주변의 유저들을 멀리 날려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이었기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방어조차 하지 못했다. 스윽...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현민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고, 그가 향하고 있던 방향에서 가슴과 머리에 화살을 꽂은 유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죽어버리며 현민의 마법이 풀린 것이었다. "대단해..." "아아..." 화면속의 현민을 바라보고 있던 운영자들은 한편의 영화 같은 영상으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모두가 흥분된 영상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 성희(홍보팀장)는 의아한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보고 있는 화면에서는 유저들의 모습이 반투명한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지만, 게임 속에서 싸우고 있는 현민에게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성희의 시선이 현민의 정보창으로 돌아갔고, 거기에서 지금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디텍트 인비지빌리티(6서클)?" 사용 시간을 보면 투명화 마법이 사용되기 바로 전이었으나, 그녀의 기억 속에는 현민이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착각을 의심한 성희는, 이전의 영상을 찾아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 invisibility(투명화 : 5서클)! 두 번 봐도, 세 번 봐도 현민이 디텍트 마나를 사용하는 장면은 찍혀 있지 않았다. 마법은 실현되었는데, 그 주문을 말한 적이 없다면 결과는 하나였다. "무언(無言)?!" 채리플랑에 의해서 알려진 무언마법은 버그이면서도 버그가 아닌 특별한 것이었다. 마법사인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시스템에서 그들의 명령어를 인식하여 마법을 실행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대단해." 그녀는 정말로 감탄했다. 어릿광대라는 재미있는 모습으로 등장한 한 명의 마법사가 이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지금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릿광대란 존재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무리하지 마..." 모두가 현민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을 때, 페튜니아만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민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지금의 모습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같이 보낸 그녀로서는 지금의 현민이 얼마나 무리를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콰직! 퍽! 으득! 그녀가 장거리 육상선수라고 한다면, 현민은 단거리 육상선수라고 볼 수 있었다. 끊임없는 파괴력으로 오랜 시간을 싸우는 그녀와 다르게, 현민이란 존재는 짧은 시간동안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적을 상대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현민이 처음과 같은 움직임을 유지하며 아직까지 싸우고 있다면, 그것은 현민에게 있어서 상당한 무리일 것이 분명했다. "저기..." "응?" 모두가 현민의 싸움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을 때, 한 운영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의 시선은 그의 얼굴로 옮겨졌다. "어, 어릿광대가 배고프지 않을까요? 저번의 싸움도 그렇고 요 근래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 같은데..." "아!!" "맞다!" 어릿광대가 쓰고 다니는 가면 때문인지, 그가 무언가를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운영자들은 그의 말을 듣고서야 현민의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상태를 보면 크게 배고파 보이지는 않았으나(배가 고프면 일정 스텟이 감소한다) 장기간의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약간이라도 챙겨주고픈 것이었다. "그의 인벤에 식사를 넣어주세요. 말은 제가 하겠습니다." 운영자가 유저의 편의를 봐줘서는 안 되지만, 이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모두가 눈감아 주었다. 현재 시간 9시 13분. 게임속의 시간으로는 오후 12시 52분이었고, 현민이 전쟁을 시작한지 대략 5시간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현민의 숨은 무척이나 거칠어져 있었고, 흔들리는 그의 신형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그런 현민을 향해서 공격을 하는 유저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현민에게 다가가 공격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콰콰콰콰쾅!!! "으악!!" 컥! 콰직! "드디... 크악!" 사방에서 날아들고 있는 공격이 현민의 주위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고, 뒤에서 날아오는 일부의 공격들은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그들의 적은 더 이상 현민 하나만이 아니었다. 그들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유저들을 죽여야만 했다. 팟! 굳이 현민이 죽이지 않아도 많은 수의 유저들이 죽어버렸고, 그가 서있는 땅은 유저들의 시체로 흉측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단, 20분의 짧은 시간동안 죽어나간 유저의 수는, 지금까지 현민에 의해 죽어나간 유저들의 수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났다. - 꺄하하하~. 주인새끼님~, 딸꾹! 우히히히히... 촤아아악!! - 꺼어억~.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던 현민이 거친 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유저들을 죽여 나가고 있을 때, 현민의 주위에 있던 유저들 모두가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면서 현민의 빗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쩌저적! 운 좋게 살아있던 유저들은 갑자기 등장한 마녀의 빗자루와 시선을 마주한 후, 석화마법에 걸리며 돌로 변해버렸고, 현민의 주위에는 갑작스런 정적이 찾아왔다. 털썩! "하아, 하아, 전부?" - 우히히, 물롱, 다 먹었사와용~. 으흐흐흑... 빗자루의 등장으로 주변이 정리되자, 긴장이 풀려버린 현민은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빗자루의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주변을 맞길 정도의 정신(?)은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주, 주변... 하아, 하아. 유저, 후아, 죽여..." 꼬르륵...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현민이 간신히 무언가를 말하였지만, 작게 들려오는 그의 말소리는 뱃속에서 들려온 꼬르륵 소리에 맥없이 묻혀버렸다. - 푸헤헤헤헷, 배고프세요? 나는 배 터져 죽었는데, 아닌가? 죽어가는 건가? 크히히히... "하아... 하아... 하아..." 꼬르륵... 조금의 기운이라도 남아있다면 저놈의 빗자루를 이리저리 던져버릴 테지만, 지금의 현민은 일어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 배고파요? 배고파요? 배고파요? 정말 배고프면, 네 살이나 뜯어먹으세용~. 푸히히히... 컥! 움직일 수 없는 현민을 보며 마음껏 놀려대던 마녀의 빗자루는 자신의 머리(?)를 붙잡는 차가운 손길에 한순간 굳어버렸다. 무기의 공격력과 내구력의 차이가 있으니, 베고자 한다면 충분히 밸 수 있었지만, 루인아츠에게 반해버린 마녀의 빗자루가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 주, 주인새끼님하? 설마하니 팔이 날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마녀의 빗자루는 애처로운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바라본 현민은 지금까지의 행동을 좋게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너, 하아, 하아... 나중, 후우... 보자." - 우헤~. 바닥에 앉아있는 현민이 예상 밖의 행동을 보여주자, 마녀의 빗자루에 달려있는 커다란 눈동자가 가늘게 늘어지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지쳐 보이는 현민이었으나, 그가 자신을 괴롭히고자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가능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떨어진 생명력과 정신력을 복구하는 것이니깐 말이야." - 어, 어레? 우리 주인새끼님, 멀쩡해 지셨네용? 앙? 아닌가? 몸이 두 개가 되넹? 으흐흐흑... 하나도 미친놈인데, 두놈씩이나 되시다닝... 현민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던 마녀의 빗자루는 갑자기 일어나는 현민에게 깜짝 놀라며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두 개로 분열(?)한 현민이 자신을 괴롭힐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 흥! 당신 같은 무기랑은 정신부터가 다른 어머니라고요! - 캬캬캬캬! 주, 주인새끼님이가? 크흐흐흐흑... 이렇게 슬픈 농.담.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푸히히힛! 두 개의 무기가 현민의 머리를 통해서 시끄러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현민의 신경은 다른 곳에 가있었다. 현민이 쉬고 있는 도중에 페튜니아에게서 메시지가 왔기 때문이었다. '고마워요. 그런데 이렇게 도와줘도 괜찮은 거예요?' 현민에게 메시지를 보낸 페튜니아는 그의 인벤에 먹을 것을 넣어준 것뿐만 아니라, 지쳐있던 그의 몸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저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뿐이니까요...' 소모된 생명력이나 정신력을 회복시켜줄 순 없지만,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운영자로서 한 유저의 편의를 봐준다는 게 올바른 행동은 아니었으나, 모든 운영자들이 동의한 내용이었기에 뒷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반드시 이기세요.' '편하게 말하세요, 누나.' '...으, 으응. 바, 반드시 이겨...줘.' '쿡, 멋진 거 보여드릴 테니 녹화 확실히 부탁드립니다~.' 자신 있게 대답한 현민은 거대한 평원을 감싸고 있던 절대방어를 해제해 버렸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던 그의 정신력은 그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지만, 투명화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기에 정신력이 회복되지는 않았다. 어릿광대 가면을 벗어버린 현민은, 루인아츠에게 작업(?)을 걸고 있는 마녀의 빗자루를 돌아보았다. "주위에 다가오는 유저가 있다면 죽여." - 예이~. 낄낄낄낄.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유저들을 죽이고도 피가 부족한 것인지, 마녀의 빗자루는 현민의 명령에 환한 표정(?)이 되며 눈깔을 번득이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마녀의 빗자루를 내버려둔 채 인벤토리에서 빵을 꺼낸 현민은, 그것을 한입 뜯어먹은 후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녀의 문자가 익숙하지 않은 현민에게는 마법진의 사용이 무척이나 까다로웠으나, 마녀의 마법진은 그것을 감수할 만큼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강하게..." 파직! 현민의 오른손에서 순식간에 만들어진 하나의 마법진은 강력한 스파크를 튀기며 푸른빛을 흘리고 있었다. 간단하게 이루어진 마법진이었고, 기초에 속하는 것들 중 하나였기에 여기까지는 손쉽게 진행되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화려하게..." 파직! 파지직!! 작게 그려졌던 현민의 마법진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또 하나의 마법진을 만들어냈고,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스파크의 크기가 이전보다 더욱 강해져있었다. "성스러우면서도..." 현민의 손에 이루어진 마법진들이 또 하나의 마법진을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법진이 또 하나의 마법진을 만들었다. 계속해서 늘어가는 현민의 마법진은, 그 크기가 엄청나게 불어나며 현민의 몸이 움직여야 그려질 정도였다. 그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는 마법진을 정면에서 그릴 수는 없었기에, 현민은 자신의 머리위로 마법진을 옮긴 후 계속해서 그려나갔다. "잔인하게..." 파지직! 마법진을 그리던 현민의 손이 아래로 내려지자, 하나의 단면이었던 마법진이 13개의 단면으로 나누어졌다. 그렇게 나누어진 마법진들은 넓게 흩어지며, 거대한 크기의 마법진을 이루었다. - 크캬캬캬캬!! 피! 피! 피! 피! 맛있게 먹어줄 테니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씹어버릴 테니깐!! 크히히히히. 현민의 주위로 유저들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인지, 시끄러운 빗자루의 목소리가 현민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굳이 마녀의 빗자루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엄청난 함성 소리가 현민의 귀를 울리고 있었기에 유저들이 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아름다우면서도..." 마녀의 빗자루가 엄청난 속도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유저들을 죽이고 있었지만, 유저들과 현민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 갔다. 유저들의 수가 마녀의 빗자루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 흐, 흐엥~, 주인새끼님! 주인새끼님~!! "추악하게..." 현민의 마법진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을 때,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유저들을 죽이고 있던 마녀의 빗자루가 우는 목소리로 현민을 불렀다. - 흑! 나, 잡혔어용... 푸히히힛. 딸꾹!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몇몇 유저들이 마녀의 빗자루를 구속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비록, 마녀의 빗자루를 부수거나 빼앗지는 못하였지만, 현민의 공격 수단 중 하나가 줄어든 것은 분명했다. "모든 것을 부셔버려라..." 그러나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가 잡혔다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마녀의 빗자루는 벌써 기대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의 목적은 공중에 날아다니는 유저들의 전멸이었을 뿐, 모든 유저들을 상대해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현민의 마법진은 완성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마법진의 주문을 외우는 것뿐이었다. "자연에 존재하는 파멸의 힘이여. 아름다움 속에 녹아들어있는 파괴의 힘이여. 깊디깊은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대를 위해." 쿠르릉!! 번쩍! 현민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급격히 모여든 먹구름은 순식간에 그들의 머리 위를 덮어버렸다. 환했던 대지는 어둠으로 물들었고, 현민을 향해 달려가던 유저들은 난생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먹구름에 뒷일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마법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더라도 그들의 머리위에 있는 먹구름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아챌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나, 여기에 그대만의 무대를 만들었나니." 현민의 눈에 그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할 때, 그는 마녀의 가면을 착용하며 마지막 주문을 읽어나갔다. "그대, 나의 무대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초대받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을 즐겨라!" 콰콰콰콰쾅! 콰르르릉!! 현민의 주문이 완성되어 버리자, 하늘에 있던 먹구름에서 수천, 수만 가닥의 번개 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번개들은 하나하나가 엄청난 데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웬만한 존재들도 열 번째 번개를 버티지 못하였다. - 아악!! - 크아아악!! - 아, 아아아... 서로의 몸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현민의 마법을 피하려고 하다보니, 그들의 전쟁터는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렸다. 이때를 틈타 몇몇의 유저들이 현민을 향해 소리 없이 다가왔으나, 하늘의 번개가 그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파지직! 콰콰쾅!!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치는 벼락들이 그들의 몸을 태워버린 것이었다. 그들의 몸이 현민과 붙어 있다 할지라도, 하늘에서 내려치는 벼락은 현민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은 채 그들만을 죽음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리 오렴." - 우히히히히! 나도 먹고 싶은데... 딸꾹! 페튜니아가 건네준 빵과 우유를 먹고 공복감을 없앤 현민은, 저 멀리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마녀의 빗자루를 자신의 앞으로 데려왔다. 마녀의 빗자루에 대한 현민의 언령(言靈)은, 유저들의 구속을 단번에 풀어버리며 마녀의 빗자루를 현민의 앞으로 옮겨버렸다. "돌아가." - 흑흑, 거기 섹쉬한 총각~! 밤에 침대에서(?) 봐용~. 푸히히힛! 언젠가 꼭 먹고 말거야~! 빗자루의 눈인사를 받은 루인아츠는 중간에 들려온 그녀의 말에 몸을 떨었다. 그녀(?)의 말이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짝 정신이 나가있는 마녀의 빗자루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덮칠 것만 같았다. - 서, 섬뜩했어요... 한동안 시끄러웠던 마녀의 빗자루는 현민의 인벤토리로 들어가 버렸고, 마법진의 중심에서 번개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현민은 슬슬 움직일 준비를 하였다. 번개로 인하여 혼란스러운 지금이 가장 많은 유저들을 죽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현민과의 대화를 마친 페튜니아는,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사라져 버리는 현민의 절대방어를 보며 깜짝 놀랐다. 거대한 땅을 감싸고 있는 현민의 절대방어는 2억이 넘는 외부의 유저들을 막아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것을 해제한다면 엄청난 수의 유저들이 몰려들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화면에 잡히는 어릿광대의 얼굴은 편집해 주세요. 어디에서도 어릿광대의 얼굴이 드러나서는 안됩니다." 갑자기 드러나는 현민의 얼굴에 대부분의 운영자들이 눈을 반짝였다. 어릿광대의 얼굴을 알고 있는 존재는 운영자들 사이에서도 몇 명 없었기 때문에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페튜니아는 현민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느라 화면을 보지 못하고 있었고, 그녀를 대신하여 성희가 운영자들에게 다음의 지시를 내렸다. 지금 모여 있는 운영자들 중에서 페튜니아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녀였기에, 성희의 말을 무시할만한 운영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응?" 화면속의 현민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운영자들은, 인벤토리에서 빵을 꺼낸 현민이 한입만 베어 물고 식사를 마치는 모습에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이틀이나 굶었으니 여러 개의 빵을 먹어도 부족할 것이 분명한 어릿광대가, 단 한입만 베어 물고 더 이상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로서는 현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스윽.. - 강하게... "응?"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현민의 손은, 얼굴에 집중되어 있던 운영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았다. 마녀라는 히든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활용하지 않았던 현민이, 오랜만에 마법진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도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는 어릿광대가 히든 직업의 능력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그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 화려하게... 파직! 파지직!! 덜커덩! 벌떡! "마, 마, 마..." "말도 안돼!!" 어릿광대의 손에서 그려졌던 작은 마법진이 또 하나의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하자, 수십 명의 운영자들이 벌떡 일어나며 비명을 내질렀다. 마녀의 마법진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그들은, 허공에 그려진 마법진이 형태를 유지한 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성스러우면서도... 현민의 마법진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전에 봤던 현민의 마법진은 여러개로 이루어지긴 했어도 지금처럼 허공에서 움직이며 또 하나의 마법진을 그리지는 아니했다. 점점 커지는 현민의 마법진은 더 이상 정면에 그릴 수 없을 정도였고, 화면속의 현민은 그것을 머리위로 옮긴 다음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법진을 그렸다. - 잔인하게... 꿀꺽! 마법진을 그리기 위해 위로 올라갔던 현민의 손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하자, 현민의 머리위로 그려진 마법진과 똑같은 것들이 아래쪽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생겨난 13개의 마법진들은 강력한 스파크를 튀기며 화려한 효과를 연출했다. - 크캬캬캬캬!! 피! 피! 피! 피! 맛있게 먹어줄 테니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씹어버릴 테니깐!! 크히히히히. 현민의 마법진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마녀의 빗자루 목소리와 함께 수많은 유저들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으나, 그들이 달려오는 속도를 본다면 현민의 앞에 금방 도착할 것 같았다. - 아름다우면서도... 추악하게... 넓게 흩어진 13개의 마법진들은 일정한 모양을 만들며 배치되었고, 마법진과 마법진의 사이에 그것들을 잇는 마녀의 문자가 생겨났다. 마녀의 문자와 어우러진 13개의 마법진은, 하나의 마법진에 속하는 작은 문자가 되어, 엄청난 크기의 마법진을 이루었다. - 모든 것을 부셔버려라... 현민의 마지막 말과 함께, 모든 마녀의 문자가 완성되었고, 허공에 만들어진 마법진에서 스파크라고 말하기가 무안한 작은 번개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굉장해..." "멋지다..." "2차 직업으로 저 정도의 마법진이라고?" 현민이 만든 마법진은 온갖 기술을 사용한다 하여도 흉내 낼 수 없을 것 같은 화려함을 지니고 있었다. 크기도 크기였지만, 마법진에서 흐르는 강력한 전기가 화려한 불꽃을 피우며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자연에 존재하는 파멸의 힘이여. 아름다움 속에 녹아들어있는 파괴의 힘이여. 깊디깊은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대를 위해. 현민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환했던 주변이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생겨나기 시작한 먹구름이 순식간에 전쟁터의 하늘을 뒤덮어 버린 것이었다. 거칠게 울어대는 구름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위험하게 느껴졌다. 쿠르릉!! 번쩍!! - 나, 여기에 그대만의 무대를 만들었나니. 그대, 나의 무대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초대받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을 즐겨라! 현민의 주문이 완성되자, 하늘에 모여든 먹구름에서 번개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파괴력을 갖은 채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번개들은, 마치 하늘이 분노하여 벌을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 괜찮으시겠어요? 인간은 먹어야 하는 존재잖아요. 현민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유저들을 죽이기 위하여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루인아츠가 현민의 그러한 행동을 멈추게 했다. 하나의 빵을 먹어도 부족한 상황에서 한입만 오물거린 현민이 지친 몸을 움직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몸으로 싸움을 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무언가를 먹는다면 지금과 같은 움직임이 나올 수 있을까?" - 그, 그건... 현민의 질문을 받은 루인아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스스로도 현민이 식사한 이후에 지금과 같은 움직임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한 후에 인간의 몸은 소화과정을 1순위로 하기 때문에, 그 밖의 육체적인 부분에서는 많이 느려지는 것이 당연했다. "밥을 먹고 싶다면, 이 전쟁을 빨리 끝내버리면 되는 거야." 마녀의 가면을 어릿광대 가면으로 바꾼 현민은, 자신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닿기만 해도 잘려나갈 정도로 날카로운 루인아츠였으나, 루인아츠에 닿는 현민의 머리카락은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이며 흘러내릴 뿐이었다. "속성변화(3서클)." 겉으로 봤을 때 현민의 머리카락은 바뀐 것이 없어 보였으나, 하늘하늘 거리는 그의 머리카락은 강철과 같이 단단하게 변해 있었다. - 어떻게 하실려고요? "어떻게?" 자신의 머리카락에 마법을 사용하는 현민을 보며 루인아츠가 호기심 어린 질문을 했다. 루인아츠의 질문에 살짝 미소 지은 현민은. 자신이 하려던 행동을 직접 보여주었다. "이렇게... 인탱글(1서클)." "크윽!!" 스킬을 이용하여 현민의 뒤로 이동한 존재가 현민의 목을 베어버리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인 현민의 머리카락이 그의 온몸을 옭아매었다. 현민의 머리가 짧았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지금 그의 머리카락은 2m가 넘는 장발이었다. "샤프니스(2서클)." 흔들... 자신의 머리카락에 샤프니스 마법을 사용한 현민은 가벼운 고갯짓으로 머리카락을 끌어 당겼다. 날카로워진 현민의 머리카락은 유저의 몸으로 파고들어갔고, 그의 몸을 통과한 후 원래의 위치에 돌아왔다. 샤프니스는 겨우 2서클의 마법이었으나, 엄청난 정신력이 투자된 샤프니스는 2서클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왠만한 무기로는 상처조차 나지 않을 유저의 몸을, 단번에 잘라버린 것이 그 증거였다. 투투툭... 똑... 똑... 똑... 조각으로 나누어진 유저의 몸은 땅으로 떨어져 내렸고, 원래의 위치로 돌아온 현민의 머리카락에서는 유저의 피로 보이는 밝은 빛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어머니... "잔인해도 상관없어요... 욕을 먹어도 상관없어요..." 너무나 잔인한 현민의 모습에 루인아츠가 그를 말리려 했지만, 변명처럼 흘러나온 현민의 말이 루인아츠의 말을 끊어버렸다. "지금의 제가 원하는 것은..." 그가 원하는 것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뿐..." 거대한 동굴의 중앙에 서 있는 지혜는 자신의 발밑에 있는 거대한 물웅덩이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평범한 물웅덩이라면 그녀의 모습만 비췄을 테지만, 독특한 방법에 의하여 만들어진 마법의 물웅덩이는,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현민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 속성변화. 씨익... "뭘 하려는 거지?" 물웅덩이에 비치고 있는 현민은 자신의 머리에 속성변화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현민의 그러한 모습에 앞으로의 일을 예상한 지혜의 입에서는 만족한 듯한 웃음이 흘러나왔고, 아무것도 모른 채 바라만 보고 있는 붉은머리의 사내는 머리카락에만 마법을 사용하는 현민을 이상하단 눈으로 바라보았다. - 어떻게? 이렇게... 인탱글. 촤라락! 현민의 마법이 실현되자 길게 늘어져 있던 현민의 머리카락이 갑자기 나타난 유저의 몸을 묶어버렸다. 강하게 묶인 현민의 머리카락은 유저의 칼질에도 잘려지지가 않았다. "저, 저놈!! 저 예쁜 머리카락에 칼질을 해?!" "하아..." 단 한가닥의 머리카락도 잘리지 않고 있었으나,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지혜는 머리카락에 칼이 닿았다는 이유만으로도 광분하고 있었다. 옆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는 그러한 지혜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물웅덩이 속의 어릿광대란 존재를 보고 난 이후부터 그의 몸에 상처가 날 때마다 이러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왼쪽 팔이 떨어졌을 때는 자신이 말려야 할 정도로 심각했었다. - 샤프니스. 흔들... 투투툭... 움찔! 움찔! 물웅덩이 속의 현민이 샤프니스 마법을 사용하며 한명의 유저를 산산조각 내버렸고, 그런 현민의 모습에 두 사람의 몸이 정지해 버렸다. 가벼운 동작으로 고개를 흔들며 머리카락에 묻은 피를 털고 있는 현민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피에 젖어 있는 은색의 머리카락과 웃으면서 우는 듯한 기묘한 가면이 어우러지자, 물웅덩이 속의 존재는 더 이상 현민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위험할지도...' 지혜가 점(占)이란 것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지금의 현민을 보고 있자니 작년에 점을 쳐주신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그녀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역시 위험해..." 물웅덩이 속의 현민을 보며 인상을 찡그린 존재는 현민이 있는 자리로 공간을 이동하려고 했으나, 옆에 있는 지혜의 방해로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이대로 둔다면 역사상 최악의 마녀가 탄생할 것이다." "아뇨." 서로의 의견이 반대되자 두 사람은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서로가 어느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들을 중심으로 하여 긴장감이 흐르고 있을 때, 물웅덩이에서 현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잔인해도 상관없어요... 욕을 먹어도 상관없어요... 두 사람의 시선이 물웅덩이로 옮겨졌고,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현민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 지금의 제가 원하는 것은... 두근두근... 현민의 말에 지혜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도달했다. 여기서 현민이 어떠한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그녀가 모든 능력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삼일의 시간만 묶어 둘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뿐... "으음..." "쿡쿡." 지혜의 앞에 서 있던 존재는 현민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 고민에 빠져버렸고, 그와는 다르게 현민의 뜻을 순식간에 파악해 버린 지혜는 즐거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거부할 수 없는 공포. 항거할 수 없는 두려움. 인간이란 존재는 그런 것과 싸울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 "힘들거나 무서운 것이 있을수록 뭉치는 것이 인간이지만, 그런 그들도 바다의 해일이나 땅속의 지진에 대항할 생각은 하지 못하죠. 자연이란 존재가 갖은 능력은 그들이 뭉친다 하여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붉은머리의 남자를 향하여 입을 열고 있는 지혜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민이 말하는 '공포'란, 자연과 같은 '공포'. 그 누구도 덤빌 수 없는 두려움이에요." "인간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인간이 인간을 두려워한다고?" 그가 생각하는 인간은 절대로 다른 인간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겁이 많은 사람이라도 사람을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이 그의 경험이었다. "물론이죠. 그라면 가능해요."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지혜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의심도 들어있지 않았다. 콰직! 퍽! "크아아아아!!" 쾅!! 쏟아지는 번개의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현민은, 투명화 마법으로 자신의 몸을 숨긴 후 주변의 유저들을 죽이고 있었다.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지기 시작한지도 벌써 두 시간이 지나고 있었으나, 가득 모여있는 먹구름은 흩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콰콰쾅!! 번개가 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싸우기 시작한 현민은, 5만이라는 적은 정신력을 가지고 두 시간을 버티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메모라이징 해 놓았던 5, 6서클의 마법들도 위험할 때마다 사용하였기에 남은 마법은 얼마 되지 않았다. "파이어 볼!" 유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파이어 볼을 사용한 현민은, 흩어지는 그들의 뒤를 쫓아 하나하나 죽이기 시작했다. 최강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현민이 모습까지 보이지 않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유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파이어 볼!" 스악! 팟! 몇몇의 유저들을 처리한 현민은 이전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다른 유저들을 공격하였지만, 같은 방법에 당할 멍청한 유저는 존재하지 않았다. 허공에 생겨나는 현민의 마법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일부의 유저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파이어 볼을 보며 현민의 위치를 찾아낸 것이었다. "찾았다!" "죽어!" "저긴가?" 마법이라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그들을 귀찮게 하고 있었지만, 현민의 위치를 발견한 이후부터는 그러한 것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처음을 발견하기 힘들 뿐이지 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집중한다면, 현민이 숨어있다 할지라도 그의 움직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윽... 팟! 자신들을 향하여 날아오는 파이어 볼을 가볍게 피한 유저들은 현민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향하여 자신들의 무기를 휘두르려 했지만, 그들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을 현민이 아니었다. "대지의 손(3서클)." "뭐?" 쾅!! "크악!" "컥!" "으아악!!" "꺄악!" 그들의 뒤에 대지의 손을 만든 현민은 그들이 피해버린 파이어 볼을 정확하게 잡아버렸다. 대지의 손에 잡혀버린 파이어 볼은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대지의 손을 산산조각 내버렸고, 잘게 부수어진 작은 조각들은 엄청난 속도로 사방에 날아갔다. 조각난 돌멩이 중에는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었으나, 그 크기와 상관없는 강력한 충격이 유저들에게 심각한 데미지를 전해 주었다. "하아... 하아..." "개, 개자식..." 털썩! 이러한 무차별 공격의 대상에는 현민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공격이 어떻게 될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명의 유저를 방패로 삼아 자신의 공격에서 벗어나 있었다. 현민을 대신하여 돌에 맞은 유저가 그를 향해서 입을 열었으나, 그의 몸속에 들어있던 현민의 손이 가벼운 움직임을 보이자 바로 죽어버렸다. "절대방어(3서클), weight up(무게증가 : 2서클)." 한명의 유저를 죽여 버린 현민은 뒤로 물러나며 자신이 있는 자리에 절대방어를 만들었다. 안 그래도 무거운 절대방어에 무게증가 마법까지 사용되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땅이 들어갈 정도의 엄청난 무게가 되어버렸다. "그리스(2서클)." 바닥을 미끄럽게 만든 현민은 자신의 앞에 있는 절대방어를 앞쪽으로 강하게 밀었고, 빠르게 굴러나가는 절대방어는 바닥에 누워있는 유저들을 짓눌러버렸다. - 숙여요! 팟! 루인아츠의 다급한 음성에 맞추어 현민의 신형이 쓰러지듯 낮아졌고, 그가 있던 자리로 검은색의 물결 같은 것이 빠르게 지나갔다. "하아압!!" - 조심! 현민이 피한 것을 눈치 챈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는지, 검은색 물결의 뒤에는 그것의 주인으로 보이는 유저가 있었다. 검은색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고 있는 그의 검은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그리스(2서클)! cobweb(2서클)!" 그리스로 바닥을 미끄럽게 만든 현민은, 그의 가슴에 거미줄 마법을 사용하였다. 현민의 손과 그의 몸이 거미줄로 연결되는 순간, 현민의 오른손이 강하게 움직이며 유저의 몸을 자신쪽으로 잡아당겼다. 팟! 균형을 잃어버린 유저는 현민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끌려왔으나, 실상은 그 스스로가 날아왔다고 해야 옳았다. 줄을 잡아당긴 현민의 신형보다 끌려오고 있는 유저의 신형이 더욱 안정되어 있었고, 그의 손에 들린 검은 현민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훗. 염력(2서클)." 지금의 상황을 기회라고 생각하는 유저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흘린 현민은, 안정된 자세로 균형을 잡으며 2서클의 염력 마법을 사용하였다. 간단한 식으로 이루어진 2서클의 마법이었기에 문제를 계산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유저의 검이 현민의 심장에 거의 다 왔을 때,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쪽으로 내려가 있던 현민의 머리카락이 하늘높이 솟아오르며 고슴도치나 밤송이와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피피피픽! "아, 아아...!" 빠르게 날아오고 있던 유저는 뾰족하게 일어나 있는 현민의 머리카락에 온몸이 꿰뚫려버렸다. 검은 기운을 내뿜고 있던 검은 현민의 가슴에 닿아있었지만, 유저의 몸이 정지하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털썩! 사라락.. 유저의 몸을 빠져나온 현민의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가라앉으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머리를 뾰족하게 하고 있는 동안에는 왼팔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원래대로 되돌린 것이었다. 콰직! "하아... 하아..." 쾅! 퍼퍼퍽! "크악!!" 순식간에 한명의 유저를 죽여 버린 현민은, 자리를 옮겨 주변의 유저들을 죽여 나갔다. 현민의 손에 죽어나가는 유저들의 수는 2억이라는 숫자에 비하면 극히 미미했으나, 한 사람이 죽였다고 하기에는 믿기 힘든 숫자이기도 했다. 찌이익!! 멈칫! - 응? 왜요? 자신의 몸을 숨긴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유저들을 죽이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유저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후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번개들이 약해지기 시작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번개가 떨어지기 시작한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나고 있었으니, 하늘의 먹구름이 사라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씨익. 현민의 정신력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하늘의 먹구름도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현민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고 있었으나, 그 당사자인 현민은 지금의 전쟁 중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원했던 것이 드디어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마법진이... 완성되어간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번개. 그것들은 사상 최대의 마법진을 그리기 위한 현민의 거대한 붓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운영자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있었다. 아침 8시부 시작한 전쟁은 벌써 7시간동안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 시간도 버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현민은 모두의 예상을 깨뜨리며 아직까지 버티고 있었다. "앞으로 3시간..." 운영자들이 말하는 3시간이라는 것은 달이 떠오르기까지의 남은 시간이었다. 앞으로 3시간만 버티면 마녀의 능력이 각성하며, 더 이상 현민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스급의 몬스터들도 현민의 뜻에 따라 움직였기에, 그때의 현민은 무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문제는 그때까지 남은 3시간이었다. 현민의 정신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하늘의 먹구름은 조금씩 옅어졌기 때문이었다. 유저들을 죽이고 있는 현민의 몸놀림은 아직까지 괜찮은 것 같았으나, 정신력도 없이 3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마법사이자, 마녀이며, 정령사였지, 근접계열의 전투 클래스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아... 아아앗!!!" "응?" 화면속의 현민을 보며 기도를 하고 있던 운영자들은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 아닌 비명소리에 한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들의 시선이 모여 있는 곳에는 크게 입을 벌리며 깜짝 놀라 있는 운영자가 있었다. "뭐지? 헉!!" 그의 반응을 궁금하게 여긴 한명의 운영자가 그의 화면을 자신의 앞으로 옮겨왔고, 그것을 바라본 운영자는 자신의 옆에 있는 운영자와 똑같은 행동을 취하며 모든 운영자들에게 자신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세, 세상에!!" "말도 안돼..." "허!" 자신의 앞에 생겨난 작은 영상을 바라본 운영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니, 그 화면을 바라본다면 누구라도 이러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구름을 뚫고 바라본 "싸울아비"의 대륙에 엄청난 크기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주에 떠 있는 위성에서 중국의 만리장성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엄청난 높이에서 구름을 뚫고 바라본 넓은 대지에는 번개로 인하여 깊게 파인 부분들이 하나의 마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어서 분석해 보세요! 저 정도의 마법진이라면 대륙이 부서질 거예요!!" 저것이 어떠한 마법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크기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대륙이 날아간다는 끔찍한 상상을 한 일부의 운영자들이 자신의 일도 아닌데 마법진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노력으로 마법진에 대한 분석이 빠르게 나타났다. "생명력, 정신력 흡수 마법진?" "에?" "뭐?" 엄청난 공격 마법진일 것이라 생각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던 운영자들은,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마법진을 보며 어떠한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도 잠시였을 뿐, 이내 모든 운영자들의 얼굴이 환하게 바뀌었다. 이 마법진으로 인하여 부족했던 현민의 정신력이 회복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늘의 전쟁은 현민의 승리가 확실했다. 두근! "하아..." 두근! "하아..." 두근! 두근! 두근! 씨익... 거칠게 울리고 있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호흡을 가다듬은 현민은 현재 사용 중인 모든 마법을 해제했다. 자신의 모습을 감추던 투명화 마법도 해제하였고, 잘려나간 왼팔을 이어주던 염력도 해제하였다. 갑자기 나타나는 현민의 모습에 깜짝 놀란 유저들이 서둘러 거리를 벌리거나 공격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그런 그들의 행동도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촤르르륵...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는 현민이 오른손을 감싸고 있는 루인아츠까지 전부 해제하였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무방비하게 서 있는 현민의 모습은, 이번의 전쟁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5, 4..." "??" "3..." 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현민의 입에서 숫자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줄어들고 있는 그의 숫자에 의아하게 생각하는 존재들도 있었으나, 현민이란 존재가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존재들은, 그가 세고 있는 숫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로 그를 공격했다. "여..." 스악! 콰콰콰쾅!! 펑! 피잉!! 현민의 존재를 알아차린 수백, 수천 명의 유저들이 날린 공격들이 현민의 주위를 휩쓸며 주변의 유저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저들조차 옆에 사람을 따라 공격을 하다 보니, 현민이 있는 장소에서는 폭음이 멈추지를 않았고 엄청난 양의 먼지가 그들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흠칫! 오싹! 폭음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을 향해서 모이고 있던 유저들 중에 정령사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일부의 유저들은 전신을 감싸는 싸늘한 느낌에 다가가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른 존재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나, 정령사인 그들은 계약을 맺은 정령들이 위험한 존재의 등장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령왕..." 화르륵!! 신음처럼 흘러나오는 유저의 말에 맞추어, 거대한 화염의 날개가 그들의 시야에 가득 찼다. 어릿광대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호칭. 그동안 잊고 있었던 또 하나의 능력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스윽... 현민의 거대한 날개를 바라보고 있던 일부의 정령사들은 자신의 옆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로가 알지도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으나, 자신의 옆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미소는 서로 닮아 있었다. "그러한 능력을 당신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한 능력을 당신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 화르륵! 휘이이잉!! 찰랑~. 콰드드드득!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옆을 바라보고 있던 그들은,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던 존재들과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어떤 존재는 온몸이 불로 뒤덮여 있었고, 바람으로 변한 유저도 있었으며, 물이나 바위로 이루어진 존재도 있었다. 현민의 날개로 인해 멈추어 있었던 유저들은 새롭게 등장하는 엄청난 존재들에게 서둘러 자리를 비켜줘야만 했다. 그들의 능력은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주었기에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 역시, 나 하나만은 아니었던 건가? 어마어마한 모습으로 현민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은, 현민보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정령사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현민과 그들이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앞으로의 결과는 뻔했기 때문이었다. 펄럭! 펄럭! 그들이 서로의 능력에 대해서 비교해 보고 있을 때, 현민의 거대한 날개가 부드럽게 움직이며 주변의 먼지를 태워버렸다. 거대한 날개의 화려한 움직임은 떨어져 있는 그들의 시선을 한군데로 모아주었다. "흐음..." 먼지가 사라진 장소에서 드러난 현민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꼬마와 어른의 중간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소녀의 귀여움과 여인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붉은색의 차분한 머리모양은 청순한 이미지를 더해주었다. 게다가 그의 등 뒤로 접혀있는 거대한 불의 날개는 신화 속에 나오는 천사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불이 둘, 물이 하나, 바람이 하나, 땅이 둘인가요?" 먼지가 사라지며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 현민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섯 명의 유저들을 관찰하였다. 불의 정령사 중 한명은 알라딘에 나오는 램프의 요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불의 정령사는 온몸이 불로 이루어진 하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의 정령사로 보이는 존재는 남자 인어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바람의 정령사는 네 장의 날개를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페어리의 모습이었다. 온몸을 검은색의 단단한 것으로 둘러싸고 있는 땅의 정령사는 강인해 보이는 창을 들고 있는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명의 정령사는 만화에 등장할 법한 멋진 로봇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당신이 선택하세요. 우리 중 누구와 먼저 싸울 것인지... 현민의 주위를 한번 둘러본 물의 정령사가 현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른 정령사들과 상의한 것은 아니었으나, 최소 중급 이상의 정령과 정령화를 이루고 있는 그들은 현민의 실력을 자신들 이하로 판단하며 오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 하급 정령과의 정령화를 하고 있는 너에게 우리 모두가 덤빌 수는 없으니깐 말이다. 그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 정령들은 염화에 대해 주의를 주고 있었으나, 염화가 하급 정령이라는 이유가 그들을 방심하게 만들었다. 현민과 그들이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하여도 현민은 하급이었고, 그들은 상급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여섯이었고, 현민은 하나라는 사실이 그들의 이러한 마음을 더욱 부추겼다. "쿠쿡." - 응? - 웃음? 현민이 누구를 선택할지에 대해서 오만한 얼굴로 바라보고 잇던 6명의 정령사들은, 낮게 들려오는 현민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록 자신들 중 한명과 싸우는 것이라지만, 이 중 그 누구도 현민의 아래인 존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민과 상극이 되는 존재도 있었으나, 그 존재마저도 현민의 아래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신들과 우리의 차이를 알고 있나요?" - 무슨 소리죠? - 시간을 끄는 건가? 현민의 옆을 지키고 있던 하피 모습의 정령사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의 등 뒤를 지키고 있던 기사 모습의 정령사가 거대한 창을 들이밀며 현민을 위협했다. 일반적이라면 내구도가 깎이며 녹아버렸을 창이었지만, 그의 능력으로 보호되고 있는 대지의 창은 현민의 열기에 조금도 그을리지 않고 있었다. "제 모습을 보세요. 무언가 다른 점이 없나요?" - 음... - 무슨 소리지? - 앗! - 뭐가 다르다는... 다른 정령사들은 현민의 힌트를 듣고서도 현민과 자신들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바람의 정령사는 현민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챈 것 같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의 모습이었기에 그들도 쉽사리 눈치 채지 못한 것이었다. "한분은 알아차리셨나보네요." - 어째서 인간의 모습이지? 흠칫! 바람의 정령사가 하는 말을 듣고서야 주변의 유저들도 현민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불, 물, 바람, 땅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각자의 속성으로 몸이 이루어져 있는 상태였으나, 그들의 눈앞에 있는 현민은 거대한 날개를 제외하고는 몸이라 부를 수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염화는 마음이 착하기 때문에 모든 힘을 낼 수가 없답니다. 오빠를 위해서 힘을 빌려줄 수는 있지만, 다른 존재들이 괴로워하는 것은 보기 싫어하니까요." - 뭐지? 정령의 인격인가? - 이중인격? - 힘을 숨기고 있다는 거군... 마치 두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중간중간 달라지는 현민의 말투에 여섯 명의 정령사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정상적이지 못한 현민의 모습이 그들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화륵! 그들이 현민을 보며 다가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있을 때, 현민의 거대한 날개가 그를 감싸며 알과 같은 모습을 하였다. 거칠게 타오르기 시작한 현민의 날개는, 불의 정령사뿐만 아니라 어떠한 존재들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열기를 내뿜었다. 그가 서 있던 대지는 이미 녹아서 사라진지 오래였고, 현민에게 접근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일부의 유저들은 서둘러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현민의 날개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가 그들에게 엄청난 데미지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현민의 날개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주변의 공기마저 태워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 양도 다들 자는데 - 자장가? "자장가?" 현민의 날개에서 느껴지는 열기를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유저들이 서둘러 물러서고 있을 때, 현민의 입에서 그 어렵다는(?) 자장가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목소리의 자장가 소리는 너무나 부드럽고 달콤하게 느껴졌으나, 그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힘이 담겨있지 않았다. 달님은 영창으로 금구슬 은구슬을 보내는 이 한 밤 잘 자라 우리 아가 잘 자거라... 처음에는 가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였지만, 노래가 길어질수록 그러한 느낌이 사라지고 있었다. 중간부분에서는 변성기를 거치는 듯한 중성적인 음성이 흘러나왔고, 후반부에 가서는 현민 본래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후반부를 장식하는 현민의 음성에서는 처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대신하는 듯 낮아지는 현민의 음성이 포근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화르륵! 현민의 노래가 끝나며 잠깐의 정적이 흘렀을 때,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고 있던 현민의 날개가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 사이로 보이는 현민의 모습은 이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의 온몸은 뜨겁게 달구어진 철상(鐵像)처럼 거친 불길이 매끄럽게 타오르고 있었고, 길게 늘어졌던 머리카락은 거센 화염으로 변하여 위쪽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 하아...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한 현민이 깊게 숨을 내쉬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꽃이 피어오를 정도의 뜨거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현민의 얼굴은, 그동안 감추고 있었던 본래의 얼굴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민의 얼굴이 달아오른 철판처럼 붉은색을 이루고 있었기에 본래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펄럭! 화르륵!! 자신의 모습을 완벽히 바꾼 현민은, 기지개를 하듯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쳤다. 불꽃의 그림자를 만들며 화려하게 움직인 현민의 날개는 엄청난 열기의 바람을 사방으로 퍼트렸지만, 주변의 유저들은 현민의 날개에 시선을 빼앗겨 있었기에 자신의 곁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것도 몰랐다. ----------------------- 이름 : 룬. Lv : 902 직업 : 불의 정령. 정령력(精靈力) : 268,801 ----------------------- 염화의 의지를 잠재운 현민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능력을 전부 끌어올린 것이었다. 대륙에 그려진 현민의 마법진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으나, 그 능력은 크기에 비할 때 무척이나 미미했다. 겨우 5초에 1의 생명력과 정신력을 뺏어오는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어서, 어서, 어서..." "5, 4, 3..."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5초의 시간이었지만,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운영자들은 그 5초의 시간이 서둘러 지나가기를 간절히 빌었다. "...1!!!" 스악! 콰콰콰쾅!! 펑! 피잉!!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모든 운영자들이 마지막 숫자를 크게 외쳤으나, 그들의 외침은 동시에 들려오는 폭음소리에 맥없이 묻혀버렸다. 엄청난 연기가 그들의 화면을 가려버렸고, 몇몇의 운영자들은 먼지 속의 상황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어릿광대의 상황을 체크해요! 지금 상태는?!" 화면을 가리는 먼지를 생략하고 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을 잘 알고 있던 페튜니아는, 시스템으로 체크 중이던 현민의 상태를 확인하게 했다. 시스템에 나오는 수치로 직접적인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의 피해는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생명력 무(無)! 정신력 무(無)!" "주, 죽은...거야?" 곧바로 들려오는 운영자의 외침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생명력과 정신력이 없다는 것은 죽었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현민을 죽인 유저에게는 엄청난 힘이 들어갈 것이었고, 그 유저가 속한 나라는 또 다른 세계 속에서 엄청난 권력을 가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현민의 상태를 체크하던 운영자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생존 유(有)!!" 화르륵! 생명력과 정신력이 0이었으나, 현민은 분명히 살아 있는 중이었다. 화려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거대한 화염의 날개가 현민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현재 어릿광대의 상태가 정령으로 변경! 모든 수치가 정령력으로 바뀌었습니다!" 현민의 상태를 크게 외친 운영자는 자신이 보고 있는 현민의 정보를 화면의 하단에 표시하였다. 너무나 짧은 현민의 정보가 그들의 화면에 나타났고, 그것을 바라본 존재들은 하나같이 입을 벌리며 경악어린 표정을 했다. "9, 902?!" "레벨이?!!" 화면에 나오는 현민의 레벨이 900을 넘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벨 업이 빠른 편인 "싸울아비"였지만, 지금의 상태에서 900 이상의 레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년 이상의 노가다가 필요했다. "싸울아비"가 오픈한지도 벌써 2년이 지나갔지만, 그들이 만들었던 S급의 무기는 아직도 봉인 중이었고, 최고레벨이라는 유저도 그들의 계획에서 바라볼 때 중간 정도 레벨밖에는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 있는 현민은 갓 성룡이 된 드래곤과도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레벨을 가지고 있었다. 현민의 높은 레벨은 지금의 상황에 무척이나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운영자들은 편안한 얼굴을 하지 못했다. 만약 이것이 버그거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강력한 제지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타타타탁! 타타탁! 스윽... 딸깍! 현민을 응원하고 있던 수십의 운영자들이 해답을 찾기 위하여 몰두했다. 화면속의 현민이 유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민의 대화내용이 아니었다. "응?" 현민의 데이터를 하나하나 살펴보던 운영자는 현민의 특수한 스킬에 시선이 멈추었다. [정령화(정령 마법)] 설명 - 본인과 정령이 하나가 되며, 모든 것이 합쳐진다. - 정령이 유지할 정신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태를 유지하는데 초당 1의 정령력을 소모한다. - 정령화 해제시 10의 레벨이 감소한다. 레벨 : 본인의 레벨 + 정령의 레벨 정령력 : 생명력 + 정신력 or 마나 + 정령의 정령력 툭... 현민의 정령화를 바라본 운영자는 자신의 손에 들린 터치펜을 놓쳐버렸다. 정령화라는 것은 정령사들만을 위한 특수한 스킬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것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현민이 사용하고 있는 정령화는 그들이 알고 있는 정령화와 이름만 같았을 뿐, 그 능력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정령과 하나가 되며 그들의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정령사들은, 현민과 그들의 엄청난 차이로 인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들이 정령화를 하지 않고 있었다면 아무런 이상도 없었을 테지만, 그들은 유저인 동시에 정령이기도 했다. 펄럭! - 당신들을 죽이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에요... 오만한 자세로 서 있던 불의 정령사를 향하여 자리를 옮긴 현민은 그의 눈을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던 그의 몸이 정령사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으나, 나름대로의 배려인 것인지 뜨거운 열기는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날개를 제외한 현민의 크기는 불의 정령사 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존재감은 불의 정령사보다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 생각과 예의 없이 달려드는 당신들을 보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사르륵... 작은 불꽃으로 변하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린 현민은, 페어리 모습을 하고 있는 바람의 정령사 뒤에서 다시 나타났다. 불꽃의 날개를 움직이는 것이나, 자신의 몸을 불꽃으로 바꾸어 자리를 이동하는 현민에게서는 새로운 몸에 대한 어색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 그러지 않은 이유를 아세요? '마, 말도 안돼! 인간이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거지?' 모두의 머릿속에는 현민의 질문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그의 움직임에 대한 의문이 들어 있었다. 날개를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다른 곳에서 이룬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날개를 만드는 것은 그들도 가능한 것이었으나,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등에는 날개란 것이 달려있지 않다보니,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몸은커녕 팔 하나도 분리해 낼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실력이었다. - 나는 기다린 거예요. 당신들이 전부 모이기를... 그래야지만 깔.끔.하게 죽일 수 있잖아요? 현민의 말을 듣고 있던 유저들의 눈은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현민을 향해서 비웃음을 날렸겠지만, 지금은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현민의 힘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현민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며 우쭐대던 그들은, 현민을 보자마자 공격하지 않은 자신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비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양보는 어리석은 자의 오만에 불과했다. 펄럭! 거대한 날개를 움직인 현민은 하피의 모양을 하고 있는 불의 정령사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도 현민의 얼굴처럼 불에 달구어진 철 같았기 때문에, 정확한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 강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현민은 자신의 얼굴을 그녀의 얼굴과 가까이 했다. 정상적인 상태였으면 당장에 따귀라도 때렸을 테지만, 지금은 몸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분한 눈빛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거예요. 그녀와 가까이 하고 있던 현민이 살짝 입을 벌리며 깊게 숨을 들이쉬자, 그녀의 몸을 이루고 있던 불길이 작게 벌려진 현민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불꽃은 빠르게 사라졌고, 강제적으로 정령화가 풀려버린 그녀는 어정쩡한 자세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 말했잖아요? 끌어 안는 듯한 자세로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가져간 현민이,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 인간이 아니면 된다고... 화륵! 현민의 말이 여운을 남기기도 전에 순식간에 불타버린 여성 유저는, 몇 개의 아이템을 남겨놓은 채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들과 비슷한 수준을 가지고 있던 불의 정령사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죽어버리자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이분만으로는 부족하네요. 당신의 힘도 가져가야 하겠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하느라 상당량의 정신력을 소모했던 현민은 불의 정령사들이 가지고 있는 정령력을 흡수하여 자신의 정령력을 늘렸다. 정말로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그 결과는 현민이 만족할 정도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상급의 정령과 계약했다고 하는 불의 정령사들이 너무나 조금의 정령력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투투툭... 사륵... 램프의 요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불의 정령사도 현민에게 정령력을 흡수당한 후, 몇 개의 아이템을 떨어트리며 재가 되어 사라졌다. - 이제 지겨운 전쟁을 끝내도록 하죠. 불의 정령사가 가지고 있었던 정령력을 흡수하여 그동안 소모되었던 정령력을 완전히 회복한 현민은 조금이라도 정령력이 줄어들기 이전에 서둘러 전쟁을 마치기로 했다. 그가 생각하는 한번의 공격으로 얼마만큼의 유저가 죽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극소수만이 살아남을 것은 분명했다. 화르륵!! 현민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거대한 날개가 현민을 휘감으며 거대한 불의 소용돌이를 만들었고,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현민의 모습이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다. 현민의 목과 허리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의 엉덩이에서 꼬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 현민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자라나고 있었고, 멀쩡했던 현민의 손은 루인아츠의 모습과 같이 날카롭고 비늘이 달린 손으로 변해갔다. 얼핏 보면 리자드맨과 같은 흉측한 모습이었으나, 현민의 변화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x팔..." 주춤, 주춤... 점점 커지기 시작하는 현민의 모습에, 전쟁터를 가득 채우고 있던 유저들이 욕을 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커지는 것과 동시에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는 현민의 몸통과 온몸에 돋아난 비늘이 어떠한 모습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현실이 아니기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덤비던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목숨을 버리면서 공격한다할지라도 과연 약간의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가 의문인 상태에서는 도망밖에 방법이 없었다. 화르륵!! 회오리의 중심에서 두 눈을 감고 있는 현민은 자신의 몸을 바꾸기 위하여 엄청난 집중을 하고 있었다. 정령의 상태가 된 현민의 몸은 일종의 찰흙과 같은 상태였기에 그의 의지에 따라서 형태가 바뀌었다. '어차피 게임이야... 할 수 있어!' 몸의 형태를 바꾸는 것보다 더욱 커다란 문제는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억지로 바꾼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변화된 몸을 의식하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완전히 달라진 자신의 신체에 맞추어 몸을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몸의 형태를 바꾼다는 것은 매우 귀찮고 까다로운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세뇌(?)를 걸며 앞으로 변해갈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현민은, 그 모습에 자신의 감각을 맞추었다. 꿈틀. 움찔. 흔들... 거대한 몸통에 비할 때 너무나 짧은 손과 발이 약간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의 의지에 맞추어 확실히 움직이고 있었다. 입을 벌려보기도 하고 꼬리나 몸을 움직이며 자신의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모두 확인한 현민은 차분하게 감겨 있던 두 눈을 뜨며 크게 울부짖었다. 번쩍!! - 크아아아앙!!!! 쿠구구궁!! 눈을 뜸과 동시에 내지른 현민의 울부짖음은 대지를 뒤흔들 정도로 그 소리가 엄청났다. 너무나 엄청난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올라갔고, 그들은 완전히 변해버린 현민의 모습에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하였다. 그그그그극... 아무리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가상현실'이라는 곳에서 한명의 유저가 거대한 화룡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생각했을 때,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싸울아비"의 뛰어난 현실감은 현민의 모습을 너무나 생생히 하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무한한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사람이 용을 보았는데 웃고 떠들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정신은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하, 하하..." 오싹! 오싹! 물웅덩이를 바라보고 있던 지혜는 너무나 달라진 현민의 모습으로 인해 온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 동양의 전설이나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현민의 모습이 그녀의 온몸을 떨리게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떨림이 두려움 때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살짝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흥분으로 인하여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현민의 행동이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 옆에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존재는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읽으며 아쉬운 눈을 했다. 그녀의 두 눈에 일렁이고 있는 거대한 욕망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인간이란 말인가...' - 로드. 보고 있나? 지혜에게서 고개를 돌린 그는 레어의 입구로 보이는 현민의 거대한 모습을 보며, 로드라고 부르는 존재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 졌더군. - 미안하다. 꾸중하는 듯한 로드의 말투에 그는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혜의 설득과 더불어 언제든 막을 수 있다는 오만함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 상관없어. 이것은 그들만의 전쟁. 우리들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그와는 다르게, 로드라는 존재는 현민의 강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이러한 힘이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으나, 그것을 결정하는 로드는 이번의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 그리고, 그는 '우리' 쪽에 가까우니깐... - 그게 무슨...? - 앞으로 3일 후에 회의를 갖는다. - ...알았다. 로드의 일방적인 통보였지만, 그것에 대한 불만은 존재하지 않았다. 현민이 가지고 있는 힘이나 그가 마녀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번의 회의는 당장에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뻔하겠지만..." 마녀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그는 이번의 회의도 뻔한 결말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돼요!" "맞습니다! 일반적인 정령화는 이런 게 아니라고요!!" 현민의 정령화를 바라본 일부의 운영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현민의 기술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정령사란 직업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정령화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정령화는 정령과 동화하는 기술일 뿐이에요. 정령의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뿐이지 레벨이 합쳐지지는 않는다구요!" [정령화(정령마법)] 설명 : 정령과 하나가 되어 그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너무나 간단한 설명이지만, 일반적인 정령화는 그들의 육체가 정령이 되는 것뿐이지, 정령과 본인의 레벨이 합쳐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정령화는 정령의 레벨과 능력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고, 사용에 대한 제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현민처럼 초당 얼마의 정령력이 소모되어 지속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기술 하나하나에 정령력이 소모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저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정령화의 상태에서는 경험치나 아이템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 정령화의 장점을 비교해 본다면 현민의 정령화가 무척이나 좋아보였으나, 레벨의 감소나 지속시간을 본다면 어느 것이 뛰어나다고 구별할 수가 없었다. 두 가지 정령화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체는?" "네?" "육체는 바꿀 수 있는 거야?" 그들의 흥분된 말투 때문인지 질문을 하고 있는 성희의 얼굴은 많이 굳어 있었다. 그녀의 굳어진 얼굴에 잔뜩 긴장한 운영자들은 다시금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무, 물론 바꿀 수는 있지만, 상상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유지할 수도 없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팔을 4개로 만들 수는 있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두 개의 팔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날개도?" "물론이죠." 그들은 자신 있는 얼굴로 입을 모아 대답했으나, 그들의 대답을 믿는 사람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던 화면 속의 현민이, 여태껏 본적 없는 화려한 모습으로 자신의 날개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몸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정령이라고 봐도 뭐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 강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세요? 화면속에 있는 정령사는 현민이 가까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상급의 정령과 정령화를 이루고 있는 불의 정령사였지만, 그녀와 현민의 엄청난 레벨차이 때문에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거예요. 현민의 한마디는 모든 운영자들을 생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가볍게 생각하면 올바른 말로 들렸지만, 도덕적인 관념을 넣어서 생각해 본다면 문제가 있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적이지 못한 사람. 현실세계에서 그러한 사람은 필시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 이제 지겨운 전쟁을 끝내도록 하죠. 그들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 두 명의 정령사를 죽인 현민은, 여태껏 참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번의 전쟁을 끝내려 하고 있었다. 마법사의 능력과 마녀의 능력으로 상당수의 유저들이 죽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전쟁터에는 그 이상의 유저들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번의 전쟁은 4억이라는 엄청난 수의 유저가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가 죽는다 하여 크게 변화는 없어 보였다. 화르륵! 현민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거대한 날개는 거센 불꽃으로 변하여 현민의 주위를 맴돌았다. 현민의 날개로 만들어진 거대한 불의 토네이도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현민은 자신의 몸을 바꾸고 있었다. 문제는 그의 신체가 인간 같지 않은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그의 몸과 날카로워지고 있는 그의 손과 발, 그리고 점점 자라나고 있는 머리의 뿔은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 또한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며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이기 시작했고, 엉덩이 쪽의 꼬리가 길게 늘어지면서 몸과 꼬리의 구분이 사라져 버렸다. "저건... 불가능합니다." "말도 안돼..." "이건 정말 신(神)이라고 해야할지도..."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더 이상 어릿광대라는 한 명의 인간이 아니었다. 거대한 토네이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그것은 승천(昇天)을 준비하고 있는 한 마리의 용이었다. 아직은 작은 크기의 용이었지만, 그 크기는 빠르게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꿈틀. 움찔. 흔들... 현민의 몸을 가려주고 있던 불의 토네이도는 그의 몸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며 현민의 몸에 조금씩 흡수되었다. 토네이도의 모든 것을 흡수하며 완벽한 용의 모습을 갖춘 현민은 하늘을 가려버릴 정도로 그 크기가 엄청났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용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무서운 안광을 터트리며 거대한 포효를 했다. 번쩍!! - 크아아아앙!!!! 쿠구구궁!! 그 어떠한 공격도 스킬도 아니었으나,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대지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초당 984의 정령력 소모라... 대략 천으로 잡고 계산하면? 겨우 4분인가.' 훨씬 넓어진 시야를 가지고 대지를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간략히 계산해 보았다. 무턱대고 정령력을 쓰다가는 어쩌다 살아남은 유저에게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5초. 15000. 23만. 15. 16?' 현민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는 것은 암호와 같은 숫자의 나열이었다. 지상에 있는 모든 유저들을 죽이는데 15초의 시간을 생각하고 있는 현민은, 그동안 자신의 몸을 유지할 정령력을 남겨놓고 나머지의 모든 정령력을 공격하는 것에 투자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초당 16000의 정령력 소모였고, 그 정도의 데미지라면 속성 저항력이나 특수한 직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을 것이 분명했다. 이것의 1/10 정도만으로도 모든 유저들이 죽을만한 데미지는 쉽게 나오지만, 더 이상의 정령력이나 정신력은 필요가 없기에 전부 쏟아 붓는 것이었다. '여유롭게 20초! 초당 15000의 정령력으로!!' - 쿠오오오오!!! 순식간에 계산을 마친 현민이 아래쪽의 유저들을 향하여 공격할 마음을 갖자, 크게 벌어진 그의 입에 엄청난 양의 불길이 모이기 시작했다. 끈적해 보이고 마치 흐르는 듯한 불길의 모습은 엄청난 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스윽... 불꽃을 입에 머금은 현민의 고개가 살짝 위로 올라갔고, 온몸이 부풀어 오를 만큼 크게 숨을 들이셨다. 푸하하학!! 화르륵!! 현민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불길이 전쟁터의 위로 떨어져 내렸고, 엄청난 열기를 가지고 있는 그의 불길은 땅 위에 존재하던 모든 것을 없애버렸다. 현민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불길은 닿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녹여버렸기 때문에, 전쟁터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유저들의 도망가는 소리와 현민의 불길 소리뿐이었다. 화르륵! 현민이 생각한 15초의 시간이 지났을 때, 현민의 아래에서 보이던 대지는 더 이상 대지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였다. 엄청난 불길에 맥없이 녹아버린 대지는 거대한 불의 호수로 변해 있었다. - 후우... 후우... 후우... 15초 동안 숨을 내쉬어서 그런 것인지, 불길을 멈춘 현민은 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거대했던 현민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염화도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스으윽... 찰랑... "꿈을, 꿈을... 꿨어요." 하늘에서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한 현민의 발이 출렁이는 불의 호수에 살짝 닿았을 때, 그동안 잠자고 있던 염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몽롱하면서도 가라앉아 있는 염화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목소리였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꿈을... 괜찮아, 그것은 꿈이잖아? 그것은 꿈일 뿐, 현실에서 네가 한 일이 아니야." 이러한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자신의 마음속에 잠재운 것이었으나, 염화는 깊은 잠에 빠져서도 현민의 시야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여린 마음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을 사용하지 못하는 염화의 상냥함은, 현민에게 있어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마음이었다. "그러니, 모든 불꽃을 흡수한 다음에 정령계로 가서 쉬고 있으렴. 네." 염화의 대답을 들은 현민은 살짝 입을 벌려 주변의 모든 불꽃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현민의 입을 향하여 모여들고 있는 엄청난 양의 불꽃들은 무엇인가를 태우고 있던 것이었기에, 그 느낌이 무척이나 탁하고 지저분한 느낌이었다. 사르륵... 현민의 입에 흡수되는 것은 주변을 태우고 있던 불꽃뿐만이 아니었다.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들도 현민의 입으로 흡수되기 시작하며 주변의 모든 것은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거대했던 불의 호수는 그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대한 바위처럼 단단히 굳어버렸다. "흡!" 팡!! 모든 불꽃과 열기를 흡수한 현민은 벌어졌던 입을 다물었고, 날개를 만들듯 자신의 등을 통해서 모았던 불꽃을 터트렸다. 그의 등을 통해서 빠져나가는 수많은 불꽃들은 흔들리는 바람에 조용히 사라지며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었다. 사르륵... 모든 일을 마친 염화는 정령계로 돌아갔고, 여성의 형태를 하고 있던 현민의 육체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저벅, 저벅... 스스슥... 쿵! 쿵! 현민의 불길 속에서 운이 좋게, 혹은 특별한 능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일부의 유저들은 현민이 만들어낸 불길을 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가 되고 있는 현민도 그들의 접근을 눈치 챘지만, 석상처럼 굳어버린 듯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멈칫. 하늘 높이 솟아오른 불꽃의 기둥을 보며 찾아왔던 유저들은, 그 중심에서 멍하니 서 있는 현민을 발견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현민이 어릿광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둘러싸고 있는 장소에는 다른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으나,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어릿광대를 상징하는 가면이 씌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을 정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웠다. "어릿광대는 어디 있지?" "뭐야? 끝난 거야?" "네가 어릿광대인가?" "당신이 어릿광대를 죽였나요?" 결국, 의문을 참지 못한 몇 명의 유저들이 모두를 대표하여 현민을 향해 질문을 던졌지만, 그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현민은 아무런 대답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현민의 그러한 태도 때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현민을 어릿광대라고 생각하는 유저들이 많아졌다. 고오오오... 현민을 적이라 판단한 유저들이 저마다 기운을 뿜어내며 현민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현민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염화가... 울고 있어." "뭐?" 그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존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으나, 어느 누구도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나 작은 목소리였기에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존재도 한정되어 있었고, 행여나 듣는다 하여도 염화가 누구인지, 왜 울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놈들 때문에, 내 욕심 때문에... 그 착한 꼬마가 울고 있다고." 촤르르륵!! 현민의 뜻에 반응한 루인아츠가 전투형태로 변하면서 현민의 팔을 감쌌다. 하지만, 루인아츠가 감쌀 수 있는 것은 현민의 오른팔 일뿐, 떨어져 나간 왼팔마저 감싸지는 못하였다. 이전에는 변해 있는 상태에서 잘려나간 것이기에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떨어져 나간 상태였기에 현민의 왼팔을 신체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령화를 하는 것이 아니었어. 정령화가 아니었어도 충분히 죽일 수 있었는데... 어차피 게임인 걸? 나 하나만 귀찮으면 되는 거였는데." 현민의 오른팔을 감싸는 루인아츠를 보며 한층 긴장하고 있던 유저들은 현민의 혼잣말을 들으며 그의 정체를 확신했다. "저 새끼 설마?!" "정말, 어릿광대?" 팟! 스윽... 스팟! 현민의 정체를 파악한 유저들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몸을 날려 현민을 공격하였다. 그들과 현민의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존재했으나, 그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해버린 유저들은 이미 현민의 몸에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멈칫! "..." 뻐끔뻐금 그들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현민이 서둘러 움직이려고 했으나, 그의 몸은 무엇인가에 묶인 듯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게다가 누군가가 마법이라도 사용한 듯, 그의 입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멀쩡했던 시각과 청각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끼리릭! 스악! 파파팟! 현민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유저들은 자신의 공격에 현민이 죽을거라 생각하며 환의의 미소를 지었으나, 말이 안 나온다고 해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현민이 아니었다. 팟! 현민의 신형은 그들의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그들의 기술은 현민의 빈자리만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공격이 아무리 빠르다 할지라도 사람의 생각만큼 빠르지는 않았기에 단 한명의 공격도 그의 몸에 맞지 않았다. 코앞에서 현민의 신형을 놓쳐버린 유저들이 서둘러 현민의 신형을 찾으려 했지만, 한번 사라져 버린 현민의 모습은 좀처럼 발견되지가 않았다. 스윽... 메모라이즈 되어 있던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여 그 자리를 벗어난 현민은, 유저들이 존재하지 않는 한적한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남아있던 모든 유저가 현민의 주변으로 모여 있는 상태였기에, 그곳을 제외한 장소에서는 유저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스윽. 자리를 옮기 현민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에게 걸린 마법을 해제한 것이었다. 그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것은 장소가 바뀌는 순간 사라져 있었지만, 청각과 시각 그리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마법은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는 저주 계열인가?" 현민의 입을 막고 있던 침묵 마법은 6서클의 디스펠 매직으로 해제되었지만, 눈과 귀를 막고 있는 마법은 그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계열의 기술인 것인지 현민의 마법으로는 해결되지가 않았다. 저벅, 저벅... 어릿광대 가면을 착용하여 자신의 얼굴을 가린 현민은, 오른팔을 길게 늘어트리고 유저들을 향해 걸어갔다. 시각과 청각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현민의 오른팔에 착용되어 있는 루인아츠가 그의 눈과 귀를 대신해 주었다. "분노하라, 강인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여. 파괴 속에 울부짖는 어둠과 같이 모든 존재를 저주하며 분노를 터트려라." 휘이잉... 유저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현민의 입에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낯선 주문이 흘러나왔다. "나의 몸이 너의 몸이 되고, 너의 힘이 나의 힘이 되니. 우리 영혼,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며 둘인 존재." 촤르르륵! 출렁! 현민의 주문이 계속 될수록 현민의 오른손을 감싸고 있는 루인아츠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피의 진혼곡을 위해 어둠속에 숨어 있는 진실의 눈을 떠라." - 어서... 어서 불러주세요. 현민의 주문이 마지막에 다다르자,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크게 부풀어 있는 루인아츠가 현민의 마지막 한마디를 재촉했다. 단 한번도 드러나지 않은 루인아츠의 또 다른 모습. 현민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며, 루인아츠 조차도 어렴풋이만 알고 있는 또 하나의 모습이 지금 깨어나려고 하는 것이었다. "...루인아츠." - yes, my mother! 촤르르르륵!! 현민의 부름을 들은 루인아츠가 힘 있게 대답하며 거대한 모습으로 변했다. 팔꿈치까지만 올라오던 루인아츠는 그의 어깨를 넘어 상반신의 전부를 둘러쌓았고, 평범한 길이를 가지고 있던 현민의 팔은 손끝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어져 있었다. 팔의 두께는 오우거와 맞먹을 정도로 두꺼워졌지만, 삼각형의 모양을 갖추고 있는 현민의 팔은 어깨로 갈수록 얇아 졌기에 움직이는 것에 불편함은 없어보였다. 옷 안쪽으로 파고들어 현민의 상체를 감싼 루인아츠는 현민의 겉옷을 찢어버리며 날카로운 비늘을 드러냈고, 등 쪽으로 모여든 루인아츠의 비늘이 길고 날카로운 꼬리를 이루며 살랑거리고 있었다. 현민의 머리까지 감싼 루인아츠는 현민의 오른쪽 머리에 산양과 같은 날카로운 뿔도 만들었다. 고오오오오... 완벽한 변형을 이룬 루인아츠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와 주변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루인아츠로 둘러싸인 현민의 겉모습은 어떤 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는 것 같았으나, 왼팔이 없어서인지 그 모습이 완전하지 않아 쉽게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쪽이었나?" "저기 있다!" 루인아츠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기운이 너무나 거대하다보니 그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유저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눈에 현민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온몸이 울리는 듯한 거대한 충격이 그들의 몸에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랑, 살랑... 현민의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를 향해 2km의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한 유저들은, 4m정도 되는 기다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오고 있는 기이한 모습의 어릿광대를 볼 수 있었다. 멈칫! 어릿광대의 낯선 모습이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유저들은 발걸음을 멈추며 누군가가 먼저 다가가기를 기다렸다. 이전이었다면 어릿광대를 먼저 죽이기 위해 달려 나갔을 테지만, 그들이 겪은 현민은 단순한 공격에 쉽사리 죽어주는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저벅, 저벅... 멈칫.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던 현민은 유저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자리에 멈춰 섰다. 현민과 거리를 벌린 채 기척을 숨기고 있던 유저들은 갑자기 멈추는 현민을 보며 호흡소리까지 낮추었지만, 그들과 마주하고 있는 현민은 이미 그들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숨어 있어도 소용없어요." 핏! 콰직! 현민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것 같았으나, 그가 서 있는 땅의 바로 아래에 수많은 구멍이 생겨나며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난 빠르기로 꼬리를 움직인 현민이 자신의 발밑에 숨어 있던 한명의 유저를 죽여 버린 것이었다. 현민의 밑에서 기회만 노리고 있던 유저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 채 로그아웃되어 버렸다. "만 오천 명이라..." 청각과 시각을 잃어버린 현민은 그 무엇도 볼 수 없어야 했지만,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그의 시선은 곳곳에 숨어있는 유저들의 눈과 마주하고 있었다. 상당히 멀리 있었던 것인지 저 끝에서 달려오는 유저들도 몇몇이 있었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도 현민의 눈동자에 비쳐지고 있었다. 스윽... 얼굴로 손을 가져간 현민이 쓰고 있던 어릿광대 가면을 벗어버리자, 모두의 시선이 현민의 얼굴로 집중되었다. 이전에는 머리카락으로 인하여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의 머리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지?" "힉?!"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무너져 버렸다. 어릿광대 가면 속에서 드러난 현민의 얼굴은 또 다른 무엇인가가 씌어져 있는 것처럼 사람의 얼굴이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민의 오른쪽 얼굴에는 고양이의 눈처럼 기다란 모양의 동공을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눈이 번뜩이고 있었고, 왼쪽의 눈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는 루인아츠의 작은 비늘들이 빼곡히 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에는 상어와 같은 날카로운 이빨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뭉툭했던 현민의 귀는 엘프와 사람의 중간정도 되는 뾰족한 모양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S급 무기가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셨어요?" 루인아츠(D급->A급->S급) 설명 - 무투가들을 위한 최고의 무기. - 에고아이템. - 악마의 모습을 기초로 만들어진 무투갑. 공격력 : ?????(측정불가.) 방어력 : 2200-2800 내구력 : 1400 조건 : 마녀와의 친분. - 모든 스텟 +300. - 스트랭스 지속. - 헤이스트 지속. 현민의 이야기를 들은 주변의 유저들은 깜짝 놀라며 숨을 들이켰다. 그동안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마녀의 빗자루가 S급 아이템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지금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루인아츠도 S급 아이템이라고 확인 시켜줬기 때문이었다. 현재 최강의 무기라고 알려진(공개적으로) 것이 A급이었고, 그 수량도 드러난 것만 겨우 50개가 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의 S급 아이템 등장은 그들의 정신을 단번에 빼앗을 만큼 무척 매력적이었다. "반드시..." "죽인다!" 현민과 거리를 벌리며 차분히 때를 기다리고 있던 유저들의 눈동자는 루인아츠에 대한 지저분한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S급의 아이템이라는 것은 '특별한'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최강의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었다. 스팟! 쾅!! 우우웅!! 빠르게 움직인 수많은 암살자들이 현민의 등 뒤를 노리며 공격해 들어왔고, 거인이나 골렘을 사용하는 특수한 직업의 유저들은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며 현민을 공격했다. 노래나 악기를 사용하는 유저들은 다른 존재들을 신경 쓰지 않으며 강력한 기술을 사방에 난무하였고, 갖가지 저주와 마법들이 현민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챙! 채채챙! 팟! 콰직! 펑!! 그들의 숫자는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지만, 현민의 움직임은 2억명의 유저들을 상대했을 때보다 더욱 빨라야했다. 말 그대로 정예 중에 정예만 남아 있는 것이기에, 그들 하나하나의 실력이 현민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아무런 공격도 하지 못한 채 유저들의 공격을 피해만 다니고 있는 현민이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쉽게 꾸며낼 수 없는 여유로움이 흘러나왔다. "'진실 된 거짓'을 저 자신에게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직도 1만5천이라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4억 명의 유저들을 모두 죽이고 이제 남은 것은 1만5천 정도 였지만, 그들 모두가 정령화의 공격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지금부터의 싸움이 이전보다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남아 있는 유저들은 각국의 100위 안에 드는 랭커들 뿐이었으니 성희의 이러한 판단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능력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개개인이 현민과 맞먹을 정도로 뛰어났다. 멈칫! ........ 뻐끔뻐끔 성희가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확률적으로 계산하고 있을때 화면 속에 있던 현민의 몸이 굳어졌고, 그의 '소리'가 사라졌다. 사냥에 관해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유저들이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현민을 향해서 저주와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었기에 루인아츠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이때를 놓칠 리 없는 유저들이 그런 현민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안돼!" 끼리릭! 스악! 파파팟! 엄청난 폭발이 거대한 스크린을 가득 채웠지만, 그들의 목표가 되고있는 현민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정말이지 엄청난 녀석이군." 현민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있던 성희는 다시 한 번 무언(無言)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현민의 모습에 진정으로 감탄햇다. 성희가 보아온 수많은 유저 중에서 저 정도의 능력을 보여준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능력을 저렇게까지 잘 사용하는 존재는 한번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유저들을 비추고 있던 화면이 현민을 쫓아 다른 장소를 비추었다. 그곳에는 자신에게 걸려있는 마법을 일부 해제한 현민이 무엇인가의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분노하라, 강인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여, 파괴 속에 울부짖는 어둠과 같이 모든 존재를 저주하며 분노를 터트려라.> "데이터 없음?" 현민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마자 손가락을 움직여 데이터를 찾아보던 성희는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는 자신의 스크린을 보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실수이거나 처음으로 사용하는 마법진일 수도 있었기에 검색의 범위를 넓혀 보았지만,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화면에는 [No data]라는 메시지만 나올 뿐이었다. <나의 몸이 너의 몸이 되고, 너의 힘이 나의 힘이 되니, 우리 영혼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며 둘인 존재.> "도대체 어떤 마법이지?" <피의 진혼곡을 위해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진실의 눈을 떠라,> 흠칫! 현민의 마지막 주문을 들은 폐튜니아는 현민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주문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현민이 말하고 있는 주문은 그녀가 외우고 있는 주문과 전혀 다른 것이었으나, 그것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녀의 주문과 동일했다. 처음에는 또 다른 아이템의 주문일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루인아츠가 그녀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루인아츠.> "말도 안돼.........." "S급 아이템 등장! 미등록 아이템입니다.!" "뭐야? 저거 A급이라며?!" 거대하게 변한 루인아츠가 현민의 몸을 감싸기 시작하자 S급 아이템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가 그들이 있는 장소에 울려 퍼졌다. 그동안 A 급이라고 알고 있던 페튜니아의 루인아츠가 S급으로 또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S라는 등급은나라를 부술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지닌 아이템에게만 부여되는 것이었기에 모든 운영자들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들이 속았다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유저가 2개의 S급 아이템을 만들었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저런 애가 우리나라에 있었다고?" 성희는 이 정도로 뛰어난 현민이 여태껏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다.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듯이 저렇게 뛰어난 존재라면 본인이 숨긴다 해도 타인에 의해서 진작 알려졌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지금의 상황에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성희는 한명의 천재(?)가 한국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18살이란 나이에 6서클의 경지를 이루고,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 현민은 어느 모로 보나 천재라고 생각되었다. "건틀렛에서 갑옷으로라....." "발록?" 현민의 몸을 절반만 감싸고 있는 루인아츠는 그 형태가 완젼하지 않아 독특하게 생긴 갑옷 정도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현민과 같이 싸움을 배운 페튜니아는 루인아츠의 모습에서 발록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었다. "눈이 네 개인 건 이상하지만........" 2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발록과는 다르게 루인아츠로 감싸인 현민의 얼굴에는 3개의 눈이 있었다. 왼쪽의 눈 부분에는 루인아츠가 감싸여 있지 않아 현민의 눈이 그대로 보였으나, 만약 루인아츠가 감싸고 있었다면 그곳에도 2개의 눈이 있을 것 같았다. "S급 하나로 1만5천의 랭커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S급의 아이템이 가지는 힘은 확실히 대단했다.하지만 그것 하나가 1만 5천의 유저들과 대등한 전투를 하게 도와줄수 있을지는 의문이였다. 평범한 존재들이라면 그럭저럭 대등한 전투가 가능하겠지만, 지금 모여 있는 존재들은 전 세계에서도 최강이라 부를 수 있는 랭커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진실된 거짓." "뭐?" 진실된 거짓(5서클) 소모 정신력:200 능력:시간마저 속일 수 있는 듯한 강력한 환상 마법, 믿음이 부족하고 정신력이 약한 존재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거짓 속에서 영원을 헤맨다. 현재 단계:7 주문:진정한 환상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지의 상실이니, 그지삭을 지금 이곳에서 ........ 이제는 능숙하게 무언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현민은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진실된 거짓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 마법을 주변의 유저들을 향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어째서 자신에게 환상마법을 사용하는 거지?!" "확인해볼게" 타타타탓. 이전의 싸움으로 인해 진실된 거짓이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그녀들이었지만. 현민이 자신을 향하여 마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짐작할수 없었다. 진실된 거짓이라는 마법이 그녀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은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그 근원이 되는 것은 일루전이라는 '환상'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인 페튜니아는 현민의마법과 일루전 마법을 비교해 보았다. "이건 뭐... 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바꿀 수 있었던 거지?" 진실된 거짓과 일루전 마법의 소스를 비교해 보던 페튜니아는 현민의 소스를 보며 경악했다. 도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한 것인지 진실된 거짓의 소스 속에는 일루전 마법의 한계를 재한하는 소스가 전부 빠져 있었고, 대상의 오감을 바꿀 수 있는 독특한 소스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3서클의 마법이 어떻게 5서클로 바뀌었는지 눈치 채지 못한 그녀들의 실수 였다. '이걸 천만다행이라고 해야겠지?' 마법을 만들 때는 생각지도 못한 능력이었으나 '진실된 거짓'은 그 자신마저도 속여 버리면, 육체적인 제한을 풀어버렸다. 그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준 것이다. 6개월의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현민은 이것 외에도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몇몇 개의 마법 조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콰직! 스악! 느려진 시간속을 움직이고 있는 현민은 자신의 손에 닿는 모든것을 부수었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꼬리로 주변의 모든 것을 베어 버렸다. 갑자기 빨라진 육체를 그의 시력이 따라갈 수 있을 리 없었지만,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루인아츠가 현민의 우무직임에 맞추어 주변의 존재들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챙! "정말 놀라운데? 혼자서 이 정도의 유저들을 상대하다니." 느려진 시간 속에서 결코 멈추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현민의 몸이 한명의 유저에 의해 멈춰졌다. 간신히 현민의 공격을 막은 유저는 그를 향해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자신의 공격이 막힌 현민은 다른 유저를 노리며 몸을 날린 이후였다. 으득! "...씹었냐?" 현민은 5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수의 유저를 죽여야 하기 때문에 자리를 피한 것이었지만, 현민의 공격을 막았던 유저는 자신의 존재를 무시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챙채챙-! 까드드드드드득-! 웬만한 유저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현민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유저의 수를 꾸준히 줄여 나갔다. 혀닌과 비슷한 스피드로 움직일 수 있다 하더라도 일부의 스텟만을 집중적으로 키운 그들은 현민의 공격을 막거나 피해내지 못했다. 콰콰쾅~! 샤륵! 자신과 비슷한 속도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몇 명의 유저를 발견한 현민은 꼬리와 오른속, 그리고 머리카락을 사용하여 모든 방향을 방어했다. 상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현민의 방어에 완변히 가로막혔으나, 그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노리고 몇 명의 유저가 또 다른 공격을 시도했다.스팟! 시야가 가려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뚫고 바라볼 수 있는 루인아츠로 인해 상대방의 공격을 읽을 수 있었던 현민운, 순간적으로 최대한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며 그들의 시야를 벗어나 버렸다. 이러한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좋겠지만 그에게는 지금의 움직임만으로도 상당한 무리가 왔다. '크윽! 역시 팔 하나로는 안 되는 걸까?' 현민은 지끈거리는 온몸의 고통을 무시하며 허전해진 자신의 왼팔을 바라보았다. 만약 왼팔이 있었다면 방금과 같은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양손을 이용하여 전투를 하는 현민으로서는 하나의 팔이 없는 것이 커다란 타격이였다. 우득! 콰직! 스악! '응?쿠쿸.' 온몸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주변의 유저를 죽여 나가던 현민은 저 멀리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한 명의 여성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런 장소에서 이렇게 만났다는 사실이 단순한 인연같지는 않았다. "제길! 뭐가 저렇게 빨라?!" 현민의 주변을 둘러 싸고 있는 유저들은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짜증을 부릴수 밖에 없었다. 현민의 모습을 몰 수 있는 존재들은 반사 신경에 상당한 스텟을 투자한 소수의 인물들뿐이었고, 현민의 스피드를 따라갈ㄹ 수 있었던 존재는 민첩에 상당한 스텟을 투자한 유저들뿐이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현민의 공격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랭커라는게 허무할 정도로 맥없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를 상대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현민의 지능이 몬스터와 같다고 생각 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스윽! "안녕하세요?" "꺄.꺄아-! 희끗희끗 보이고 있는 어릿광대의 신형을 따라잡기 위해서 두눈을 찡그리면 잔뜩 집중하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나타나는 현민으ㅢ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한 박자 늦게 비명을 질렀다. 스팟! 콰직! 파파팟! 우득! 서걱! 퍼퍼퍼퍼펑! 현민은 빠른 속도로 그녀의 주변을 돌며, 근처에 있는 유저를 죽이고 자신과 그녀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막았다. 이 많은 사람 중에서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성직자가 그녀 하나였기 때문이다. 제2회 토너먼트에서 엄청난 괴력을 보여 주었던 그녀는 현민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기에 쉽사리 알아볼수 있었다. "부탁 좀 들어주세요." "꺄아아아아-!" 현민은 유저들을 공격하는 동시에 주변에서 날아오는 각가지 공격들을 막아가며 그녀를 향해 정중히(?)부탁했다. 하지만 현민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비명소리에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웬만하면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려 했으나,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던 혀닌은 서둘러 자리를 옮겻다. 자신이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꺠달은 유저들이 멀리 떨어져 원거리 공격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꺄아...꺅!?" 퍼퍼퍼펑! 현민의 기다란 꼬리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자리에서 들어올렸고, 자신의 허리를 감싸는 차가운 감촉을 느낀 그녀는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또 비명을 지르는 신기한 묘기(?)를 선보였다. 스륵, "부탁이 있어요." 꼬리를 움직여 그녀를 자신의 앞쪽으로 데려온 현민은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팔 좀 붙여 주시겠어요?" 스악! 서걱! "크아악~!" 현민의 눈은 그녀를 보고있었지만 그의 몸은 주변의 유저들을 착실히(?) 죽이고 있었다. "물론, 상황이 이러하니 공짜로 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하지만 해주지 않을 경우 저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답니다." 현민의 말투는 무척이나 친절했으나 말의 내용은 타협이 아닌 협박 이었다.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현민의 꼬리를 풀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그녀조차도 현민의 꼬리를 풀 수는 없었다. "파, 팔을.........." 결국 그녀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여기서 현민을 치료한다면 그녀 자신도 적으로 여겨질 수 있었으나 다른 유저들처럼 찢겨져 죽는 것은 두려웠다. 현민은 자신의 왼팔을 꺼내어 원래의 위치에 가져갔다. 그의 오른팔은 주변의 유저를 상대해야 했기에 가늘게 늘어진 현민의 앞머리가 그의 손을 대힌해주었다. "신성한 축복이 그대의 몸에 깃들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치유한다. Restoration(복구)." 사아아........... 현민의 왼팔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 나오면 그의 팔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팔이 한 번에 붙은 것은 아니었으나. 현민의 왼손에서는 조금씩이나마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움찔! 꾸욱! 씨익. 처음에는 손가락의 끝이 움직였고, 다음에는 현민의 손이 움직였다.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은 점점 위로 올라오고, 왼팔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사라졌을 때는 그의 뜻에 따라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잠깐 실례." 자신의 꼬리에 매달려 있는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 현민은 어린아이를 들 듯이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껴 높이 들어올렸다. 촤아아악-! 투두두둑. 가만히 서 있는 현민을 노리고 달려들던 수많은 유저들이 그의 기다란 꼬리에 산산조각 나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현민의 꼬리는 그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었으나 신체의 일부는 아니었기에 움직임의 한계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으, 으으....." "절대 방어." 절대 방어로 감싸인 작은 공간 안에는 현민과 그녀 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던 존재들 조차 현민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반항할 생각을 가질 수 없었다. "당신들 퀘스트의 조건이 '마녀의 피'였죠?" 스윽. 오른손으로 왼팔의 맨살을 가볍게 그어버린 현민은 거기서 흘러내리는 피를 그녀의 입가로 가져갔다. "입을 벌리세요." 그녀는 잔인도를 낮추고 있었기에 현민의 팔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붉게 보이지 않았으나, 그것이 피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차마 입을 벌리지 못했다. "우웁?! 컥! 콜록콜록!" 결국 강제로 손을 움직인 현민이 그녀의 입에 자신의 피를 흘려 넣었고, 어쩔수 없이 피를 먹게 된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입에 든 것을 뱉어내려 했다. 피를 먹는것이 그들이 바라는 퀘스트의 완료였지만 그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반가워 하지 않았다. 스윽.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던 현민은 퀘스트의 보상이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분가량이었고 남아 있는 유저들의 수는 1만명을 넘었기 때문이다. "나왔다!" "덤벼-!" 현민의 절대 방어가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를 알고 있는 그들은 무리하게 공격하기보다는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나오면 동시에 각가지 저주와 마법을 사용하여 그의 움직임을 묶어버렸고, 최강의 기술들로 그의 목을 베어버리려 했다. 모든것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이번에야 말로 기나긴 전쟁을 끝내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촤르르륵-! 현민의 왼팔이 원래의 위치를 찾자 그의 손에 끼고 있던 루인아츠가 변형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손끝에서 부터 타고 올라온 날카로운 비늘은 순시기간에 현민의 팔을 둘러 싸며 그동안 드러났던 그의 왼쪽 눈 부위를 감춰버렸다. 현민의 왼팔에서 솟아난 비늘이 비어 있는 부분을 감싸자 그의 상체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번쩍! 쾅~! 오른쪽에 있는 2개의 눈과 더불어 새롭게 생긴 왼쪽의 두눈까지 떠지자, 현민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흘러나오며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숴버렷다. 4개의 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의 모습에서는 말로만 들어봤던 절대자의 위엄이 그대로 느껴졌다. 팟! 움찔! 최아아악-! 푸쉬쉬쉬쉬-! 그들이 바라보고 있던 현민의 몸이 사라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엄청난 양의 피분수가 사방에서 뿜어져 나왔다. 시간상으로 보자면 단1초 였지만 그 안에 죽어나가는 유저의 숫자는 30명을 가볍게 넘기고 있었다. '이건 정말 생각 이상이야, 모든 것이 보이다니," 4개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은 기대 이상으로 엄청난 능력을 보여 주고 있는 루인아츠에게 감탄했다. 다소 이상한 것이라 생각했던 시야는 의외로 많은 것이 보였기에 더욱 좋았고, 남들은 볼 수 없는 것도 그의 눈에 비치고 있었다. 그가 알고자 한다면 유저의 레벨이나 스탯, 그밖에 생명력이나 정신력, 마나 등이 모두 보이고 있었고,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에 대한 정보나 스킬등도 빠짐없이 보였다. 게다가 사물을 투시하는 능력까지 있었으니, 그동안 마녀의 빗자루 아래로 생각했던 루인아츠의 평가에 대해서 조금은 바꿔야 했다. 흠칫! 쾅-! 갑자기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낀 현민은 다급히 몸을 틀며 손을 뻗었다. 그의 양손에 잡힌 것은 현민의 손과 비슷해 보이는 누군가의 손이었다. 현민의 시선이 손을 따라 올라가며 상대방의 얼굴에 멈추었고, 4개의 눈동자가 상대방의 얼굴을 직시했다. 꿀꺽! "아, 아이템만 믿고 있는 너쯤이야..............." 현민의 손을 붙잡고 있는 그 유저는 호기 있게 말하려 했으나 가늘게 떠진 4개의 눈동자를 바라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떨었다. 위엄과 살기가 뒤섞여서 노랗게 빛나고 있는 4개의 눈동자가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공포를 느낀 것이다. 부아아아앙-! 굳어 있는 그를 도우려는 것인지, 거대한 전기톱(?)을 들고 있는 유저가 현민의 뒤를 노리며 들어왓다. 두 손이 잡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이라면 현민을 죽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다른 유저들도 그러한 생각을 했는지 모두가 앞 다투어 현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너무나 완벽한 기회였지만 그들의 공격은 생각지 못한 방해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쿠어어어-! 콰직-! 그들의 발밑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생겨나더니, 엄청난 크기의 무엇인가가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린 것이다. 현민을 향해 공격을 하고 있던 그들은 피하지도 못한채 그것에 깔려 버렸고, 시끄럽던 전쟁터에 일순간 적막이 찾아왔다. "잘했어!" 모든 유저가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저 뒤에 서있는 한명의 유저가 현민의 위를 덮친 불의 골렘을 칭찬하였다. 하얀색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그 골렘은 일반적인 불의 골렘과 차이가 있었다. "운이 좋았어." 전쟁 전까지 그가 다루었던 불의 골렘은 다른 존재들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골렘이 현민의 불꽃을 견디며 진화해버린 것이다. 현민과의 전쟁 중에서 골렘이 더욱 강해졌으니, 그가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다. "일어나." 쿠어? 그는 현민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골렘에게 일어날 것을 명령했다. 평소였다면 바로 일어났을 골렘이었으나, 오늘의 골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쿠,쿠어어어-! "왜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골렘이 비명을 내질렀으나, 유저는 어째서 비명을 지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 점이 없다면 똑바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점점 올라오는 골렘의 신형은 기존의 크기보다 더욱 높은 곳까지 올라갔고, 그의 발밑에 감춰져 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득-! "이따위 불덩어리가..." 인간의 팔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부풀어 있는 현민의 오른판은, 아파트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골렘의 손목을 한 손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나요?" 우우웅-! 쾅! 쾅! 콰콰콰쾅-! 거대한 크기의 골렘을 가볍게 들고 있던 현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그것을 이곳저곳에 휘두르기 시작했다. 엄청난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있는 불의 골렘이었기에 가벼운 움직임만으로도 주변에 엄청난 피해를 만들었다. "흐아아아압-!" 콰콰콰콰쾅-! 주변의 모든것을 박살내 버린 현민은 거대한 기합을 내뱉으며 자신의 손에 들린 골렘을 바닥에 박아버렸다. 이미 엉망진창으로 부서져 있었던 골렘은 현민의 마지막 한방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며 사라져 버렸다. 골렘이 진화해서 좋아했던 유저가 이 모습을 본다면 땅을 치며 분해하겠지만, 그 주인이 되는 유저는 처음에 죽어버린 상태였기에 지금의 사실을 알기까지는 상당히한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수우웅. 골렘을 박살내 버린 현민은 거대하게 변해 있는 자신의 손을 원래의 모습으로 바꾸며 옆을 돌아보았다.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골렘을 사방으로 휘둘러댔기에 그의 주변은 철저히 파괴되어 있엇찌만, 그런 대지의 위에는 아직도 많은 수의 유저들이 살아남아 있었다. 주변의 유저들을 한번 돌아본 현민은 그들이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뒤에 있는 성직자를 돌아보았다. "괜찮아요?" "그, 그게......" 현민의 피를 마신 그녀는 변화된 자신의 능력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든 스텟은 100이상 올라 있었고, 달이 떠 있을 경우 모든 능력치가 2배로 상승하는 패시브스킬까지 생겨나 있었다. 겨우 피 한방울로 인하여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머리 색깔을 보니 무엇인가 보상을 받은 것 같네요." 현민의 눈에는 그녀의 스텟이 보이고 있었으나 그녀가 피를 마시기 이전의 스텟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눈에 띄는 변화라고는 금발이였던 그녀의 머리 색깔이 현민의 것과 비슷한 은발로 바뀌었다는 것뿐이었다. "당신과의 계약은 이루어졌습니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켰다고 판단한 현민은 그녀의 신형을 다른 장소로 옮겨 버렸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라지만 자신을 도와준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마지막의 배려로 그녀를 이동시킨 것이다. 앞으로 남은 2분 이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유저들을 죽이기 위한 유일한 존건은, 자신이 죽이지 말아야 할 존재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그녀를 다른 장소로 보내버린 현민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수많은 유저들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 없었지만, 그의 적 또한 상당수가 줄어있었다. 전쟁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마무리 콰콰쾅-! 펑!퍼퍼퍼퍼펑! "으악!" "아아악!" 한쪽에서는 피와 살이 난무하는 처참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그들이 싸우고 있는 그 장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명의 존재가 열심히 돌아나니고 있는 중이었다. 빠끔! 도리도리. 부서져 내린 공간에서 고개를 살짝 내민 그 존재는 양쪽을두리번 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조금만 씻었다면 '귀엽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예쁜 얼굴이었으나, 지금 그의 얼굴은 본래의 색깔을 잃어버릴 정도로 지저분한 상태였다. "헤헤헤.............."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깨달은 담비는 작은 웃음을 흘리며 구멍에서 기어 나왔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지금이 가장 많은 장난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이미 땅속에 묻혀 있던 수많은 장난감(?)을 차지한 담비였지만, 땅 위에 떨어져(?) 있는 장난감이 담비의 시선을 사로잡고 잇었다. "우와~! 이건 젓가락(?), 이건 실뭉치(?), 이건 돗자리(?), 그리고 이건............" 땅에 떨어진 물건들을 끊임없이 줍고 있는 담비는 자신이 줍고 있는 물건에 피와 살이 엉겨 붙어 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약간(?) 지저분한 물건들은 옷에 한번 문지렀고, 너무 지저분한 것들은 땅에 문지르며 깨끗하게(?) 만들었다. "이건 아빠옷~" 스윽. 스윽. 친구들과 함께 소꿉놀이를 할 생각으로 거대한 갑옷을 주워가던 담비는 자신이 정한 물건에 또 다른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몯느 움직임을 멈추었다. 감히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대는 놈이 있었기 때문이다. 땅에 떨어진 모든 물건들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담비에게 있어서, 이것은 치욕(?)과도 같은 일이었다. ".........." ".........." 하나의 물건에 손을 올리고 있는 두 존재는 상대방이 손을 치워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 그들 스스로가 양보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갑옷에 손을 올리고 있는 담비는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기회를 노렸고, 검은색의 갑옷을 입은 채 붉은 눈을 빛내고 있는 데스나이트는 자신을 상대호 물러나지 않고 있는 담비를 향해서 살벌한 분위기를 풍겼다. "놔라." "우웅-!" 쇠가 갈리는 듯한 듣기 싫은 목소리에 살기까지 묻어 있다보니,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담비의 볼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행동이었다. 만약 담비에 대해서 아는 존재가 있었다면 바로 도망갔을 그런 징조였다. "우웅.... 오빠가 세게 때리지는 말라고 했는댕, 훌쩍!" 자신의 작은 주먹을 바라보고 있는 담비는 흘러내리는 코를 닦으며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이전이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주먹을 날렸겠지만, 그 일로 인하여 엄청 혼잔 적이 있기 때문에 한번 더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튼튼해 보이니깐 괜찮을 꼬야." 파직! 파지직-! 담비는 스스로의 결론에 만족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쥐었다. 어찌 보면 무시하는 듯한 담비의 태도에 데스나이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살벌한 분위기를 넘어서 금방이라도 담비를 죽일 듯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 데스나이트가 자신의 검을 향해 손을 가져가고 있을때, 무엇인가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직! 우득! 콰드득! "뭐, 뭐가?" 데스나이트는 상당히 가까이서 그러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자신의 시선이 기울어지고 있는 것을 뻔히 느끼면서도 지금의 상황을 부정했다. "헉! 오빠한테 또 혼나겠다........." '설마........'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몸과 기울어져 있는 시선 속에서도 믿지 않고 있던 데스나이트는 담비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지금의 상황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담비의 공격(?)을 보지도 버티지도 못한 것이다. 데스나이트가 하급 정령에게 당해버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나, 그것을 제대로 본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우웅.... 묻어버려야지. 훌쩍!" '제, 제길. 그에게 알려........' 쿠드드득! 온몸이 산산조각 난 데스나이트는 마지막 남은 의지를 꼬아 자신의 주인에게 알리려고 했으나, 이어지는 담비의 능력에 그것조차 제대로 이루지를 못하였다. 담비의 능숙한(?) 손길이 그의 작은 뼛 조각조차도 순식간에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땅속 깊이 묻혀진 그의 의식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사라져 갔다. "나무어비불타, 아멩." 땅에 묻어버린 존재를 위하여 기도까지 해준 다비는 밝은 얼굴로 돌아서며 다음 장난감을 찾아 두리번 거렷다. 너무나 익숙해 보이는 담비의 소씨가 그동안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두껍아~ 두껍아~ 오빠줄게~ 사탕다오~ 두껍아, 두껍아, 우리 오빠 비싸다. 뚜겁아, 두껍아, 두 개 가져와주라. 양손에 가득 쥐고 빨리빨리 와주라~~ 데스나이트를 주먹 한 방으로 잠재운채 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니고 있는 담비의 행동은... 무척이나 은밀(?)했다. 콰득! 우드득! 스악! "하아....하아....하아....!" 3명의 유저를 마지막으로 하여 주변의 모든것을 정리해 버린 현민은 숨을 깊이 몰아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현민의 주변을 뒤덮고 있는 하얀 액체는 색깔뿐만 아니라 맛도 냄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그장소에서 숨을 쉬고 있는 현민에게는 진한 피 냄세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아...... 12초 ' 12초라는 아슬아슬한 시간을 남기고 주변의 모든 유저를 죽여버린 현민이었으나 그의 표정은 밝지가 않았다. 자신이 싸우는 동안에 저 멀리서 눈치만 보고 있던 존재들이 드디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 짐작한 현민이 먼저 공격하기도 했었지만ㄴ,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존재들은 그가 다가가려고만 해도 저 멀리 도망가 버렸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있었다. "작전대로 간다." "OK~!" "응!" "알았어!" 리더로 보이는 존재가 현민의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나머지 3명이 그의 양옆과 뒤쪽을 둘러쌌다. 지금의 눈에 익숙해진 현민은 그들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그들의 직업부터 살펴보았다. '언령사, 네크로맨서, 인섹터 Insecter? 그리고 그림자 도둑(Shadow Thief)?' 2개의 직업은 그 능력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나머지 두 직업은 그 능력을 예상하기기 쉽지 않았다. 가늘어진 눈에 그들의 스킬이 보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리더의 능력을 읽은 현민은 다급히 지금의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들의 직업과 위치를 생각할 때 지금의 위치는 매우 위험했다. "놓치지 마!" "라이트!" 리더의 능력을 알게 된 현민은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려 했으나, 그ㅡ의 뒤편에 있던 언령사가 라이트 마법을 사용하여 현민의 그림자를 또 하나 만들었다. 라이트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현민은 방향을바꾸어 언령사의 머리를 부숴버렷으나, 길게 늘어진 그의 그림자는 이미 리더의 발밑까지 닿아 있는 상태였다. "흡수!" 리더로 보이는 그 존재는 현민의 그림자가 자신의 발밑에 생겨나자마자 스킬을 사용하여 그의 그림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스킬로 인해 현민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는 그의 몸으로 스며들어갔다. 검게 물들어가는 그의 몸은 루인아츠로 둘러싸인 현민의 모습과 똑같았다. -하아아아아........... '젠장!' 완전히 변화한 그는 현민의 모습뿐만 아니라 스탯이나 능력, 그밖의 모든 것이 같아져 있었다. -엄청난 능력인데? 설마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현민의 그림자를 가져가며 똑같아져 버린 그는, 한 명의 동료가 죽어버린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지금의 상황을 좋아했다. 그동안 수많은 존재들의 그림자를 흡수해왔지만 지금보다 좋다고 생각할 만한 능력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릿광대 능력은 어때? 좋아?" -최강이야.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4억의 유저와 싸운 것이겠지. 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현민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그 이전에 그림자를 흡수했던 상대방은 최강의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또 하나 있었으니, 현민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해가 지기까지는 앞으로 한 시간, 마녀의 능력이 나오는 것도 한 시간 후가 되겠지요." -자~ 너는 우리들로부터 한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저벅저벅. 4명이덨던 그들의 수는 3명으로 죽어들어 있었지만 현민의 능력을 훔쳤기 때문인지 그들의 태도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당신들이야말로 한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요?" 흠칫! 느릿느릿한 걸으으로 다가가던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현민을 보며 까짝 놀라버렸다. 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원래대로 돌아와 버린 현민의 몸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그런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조심해! "어딜!" "소환!" 현민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리더가 그러한 것을 빠르게 눈치 채고 나머지 존재 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현민의 스피드를 간신히 따라가고 있던 그들은 각자의 능력을 살려 현민을 방어했다. 인섹터(Insecter)라는직업을 가지고 있는 유저는 벌레를 불러들여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고, 네크로맨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유저는 자신의 앞에 데스나이트들을 소환했다. 우득! "크억?!" 인섹터 유저의 앞에는 벌레로 이루어진 방어막이 펼쳐졌으나, 네크로맨서의 앞에는 그 무엇도 소환되지 않았다. 현민의 손은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한 그의 가슴을 꿰뚫어 버렸고, 네크로맨서 유저는 지금의 상황에 당황해하며 그의 손을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다. "나를 얕보지 말아요. 나는 어릿광대, 당신들 따.위.로는 건들지조차 못하는 존재 랍니다." 자신의 손에 꽂힌 채로 발버둥 치고 있는 네크로맨서 유저를 높이 들어올린 현민은 그의 몸을 찢어버리며 자신의 뒤를 쫒아오고 있는 리더를 향해 입을 열었다. 평소라면 이러한 말은 하지 않았으나 지금의 현민은 거만해질 필요가 있었다. -제기랄! 현민의 뒤를 쫒아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리더는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버리는 네크로맨서 유저를 보며 거칠게 입을 열었다. 현민과 같은 스텟을 가지고 있기에 상당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으나, 현민과 같은 스텟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그의 움직임은 현민의 속도를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저 자식을 묶어-! "알았으니깐 제발 좀 죽여 봐-!" 당연히 죽을 것이라 생각했던 현민은 조금의 상처도 없었고 자신들의 동료만 죽어나가자 그들은 서로에게 짜증을 냈다. 위이잉~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적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리더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인섹터 유저는 리더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드러냈다. 이미 한차례 불타버린 넓은 드랖 ㄴ어디에 그렇게 많은 곤충들이 있었던 것인지, 그의 주변으로 검은색 연기라고 생각될 만큼 엄청난 수의 곤충들이 모여들었다. 씨익. 그 숫자를 보며 자신만만해진 인섹터 유저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야말로- 인섹터 유저가 다루는 곤충들은 그 수가 많고 크기가 작기 때문에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리더는 현민의 주변을 곤충들이 둘러 쌌을 떄가 기회라고 생각하며 달려 나갈 준비를 했다. 팟! "크아아아아앙~!"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곤충으로부터 거리를 벌린 현민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곤충들을 향해 짐승과 같은 울부짖음을 내뱉었다. 현민의 입에서 퍼져 나가는 소리는 거대한 파장을 가지고있는 하나의 충격파가 되어 곤충들의 몸을 강타했다. 툭,투투툭........ 많은 수가 모일 경우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곤충들이었으나 그들의 작은 몸은 현민의 울부짖음을 견딜 만큼 강하지가 못했다. 엄청난 수의 벌레들이 단 한 번의 울부짖음으로 인해 더 이상의 움직임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틈을 노리고 있던 인세터 유저와 리더는 황당한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미, 미친 새끼. "...설마 육성(肉聲)으로?" 현민의 입에서 퍼져나간 울부짖음은 곤충들을 떨어트릴만큼 강렬하긴 했지만 그의 울부짖음을 스킬이라고 생각할수는 없었다. 그들이 경험한 스킬이라는 것은 사용자를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과 같이 한 방향으로만 전해지는 것은 스킬이라기보다 육성이라고 것을 단번에 알았고, 인섹터 유저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스킬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챌수 있었다. "한눈 팔면 죽는답니다." 우직! 그들이 현민의 어이 없는 방법으로 인해 넋을 놓고 있을때 순식간에 자리를 이동한 현민이 인섹터 유저의 목을 뜯어버렸다. 소환사 쪽에 해당하는 인섹터 유저는 현민의 공격을 피하지도, 벗어날수오 없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죽어벼렸다. "이제 당신만 남았네요/" -너.......... 그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ㅣㄹ려ㅕㄱ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그들이 현민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현민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생각한 것이 지금의 작전이었다. 쉬우면 쉬웠지 절대로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자신이 현민과 직접적인 전투를 벌이고, 150기의 데스나이트와 인섹터 유저의 수많은 곤충들이 자신의 싸움을 도와주어야 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들의 계획은 처음의 예정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만 있었다. "당신들도..... 나라에 속한 유저인가요?" 팟! 흠칫! 파파파팍! 리더를 향해서 질문을 던진 현민은 그가 대답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빠르게 달려들어 그를 공격했다. 일반 유저들에게는 너무나 빠르고 기습과도 같은 공격이었으나. 느린 시간대를 움직이고 있는 그들에게는 평범한 공격을 뿐이었다. 핏! 스윽. "당신들처럼 어리석은 사람들은 처음 봣어요." 쿵-! 현민은 자신의 얼굴로 날아오는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버린 후, 그의 손목을 붙잡으며 가볍게 몸을 돌렸다. 그 동작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현민의 몸은 끌려가듯 리더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등이 리더의 가슴에 닿는 순간 현민의 어깨가 강하게 튕겨졌다. 현민의 품 안으로 완전히 파고드는 순간 그의 목을 그어버리려던 리더는 생각치도 못한 그의 공격에 상체가 기울어져 버렸다. -젠장! 빙글. 스팟! 균형을 잃어버린 채 넘어지고있던 리더는 오른손을 비틀며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던 현민의 손을 잡아챗다. 넘어지고 있던 그의 몸은 현민이라는 축(軸)이 생기면서 원을 그리며 회전하였고, 기회가 생긱 리더는 왼손의 손등으로 현민의 머리를 공격하려 했다. 촤르륵! 하지만 날렵하게 움직인 현민의 꼬리가 그의 주먹을 붙잡아 버렸다. 체술로 현민을 이긴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다. 퍽! -크악! "오늘 제가 싸운 사람 중에 저보다 강한 사람이 없었을 것 같나요?" 현민의 발이 리더의 등에 깔끔하게 들어가며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현민의 모습 그대로를 흡수하여 높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커다란 데미지는 없었지만, 그의 등에서 느껴지는 충격은 현민의 손을 놓게 만들 정도였다. 콰득! 콰콰콰콰쾅! 현민은 그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을 때를 놓치지 않고 꼬리를 강하게 흔들어 그의 몸을 바닥에 내려쳤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현민의 꼬리는 주변의 대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으나, 그 꼬리에 매달려 있는 리더는 의외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나보다 높은 스텟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을것 같았나요?" 톡. 콰드드드드드드득! 쾅~! 현민의 꼬리가 리더의 손을 놓자 그의 몸이 물수제비처럼 땅에서 튕기며 저 멀리 날아갔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리더는 현민의 눈이 아슬아슬하게 보일 정도의 먼 거리에서 무언가에 부딪치며 간신히 멈추었다. -크으............ 비틀! 리더는바위라고 생각되는 커다란 돌에 부딪치며 간신히 몸을 멈출 수 있었지만 흔들리는 시야로 인해 멀쩡히 서 있지 못했다. 몸에 전해지는 충격은 없었으나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튕기다 보니 평행감각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스윽. 흠칫! 팟! 그가 균형을 잡지 못해 고생하고 있을 때 그의 등 뒤로 현민의 신형이 생겨났다. 현민과 자신의 거리가 상당했기에 안심하고 있던 리더는 순식간에 나타난 그를 느끼며 앞으로 튕겨저 나갔다. 자신의 뒤에 있는 현민이 어떠한 공격을 할지 모르기에 일단 거리를 벌린 것이다. "그런 존재들이 나를 죽이지 못한 이유는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당신이 내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살랑살랑~ 현민은 자신의 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기다란 꼬리를 살랑 거리며 서둘러 도망친 리더를 향해 차분히 말했다. 쾅! 콰콰쾅~! 순식간에 자리를 이동한 현민이 리더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에 현민이 말하는 동안 흔들림이 사라진 리더는 그의 주먹을 막으며 반격을 하였고, 두 다리를 땅에 붙이고 있는 두 사람은 엄청난 속도의 주먹을 주고 받으며 싸우기 시작했다. "당신이 꼬리를 사용하지 못하는게 그 첫 번째 이유입니다." 핏! -큭! 허공에서 살랑거리고 있던 현민의 꼬리가 그의 두 주먹과 같이 리더를 공격하자,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이고 있던 리더의 손발이 점점 꼬여 갔다. "당신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게 그 두번째 이유입니다." 스르륵. -제길! 현민은 각종 강화 마법을 사용하여 머리카락을 강화한 후 염력 마법으로 그것을 다루었다. 현민의 꼬리에 이어서 그의 기다란 머리카락도 움직이기 시작하자 궅데 자리를 지키던 리더의 두발이 땅에서 떨어져 버렸다. 련민과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는 리더는 상반신 그 자체가 무기였으나, 현민의 머리가락은 리더의 몸에 닿아도 쉽게 끊어지지 않으며 그의 싸움을 어렵게 만들었다. "당신이 마녀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게 그 세 번째 이유이며." 스스슥. 번쩍! -윽?! 리더가 몸을 피하며 거리가 벌어지자 현민의 손과 꼬리, 머리카락이 빠르게 움직이며 하나의 마법진을 그렸다. 순식간에 그려진 그의 마법진은 리더의 몸을 제자리에 묶어벼렸고, 현민은 오른손을 옆으로 뻗으며 다음의 말을 이었다. "당신이 정령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게 그 네 번째 이유입니다." 화르르르륵! 휘이잉. 현민의 오른팔을 감싸고 있던 루인아츠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맨살이 드러났고, 허공에 갑자기 나타난 윈디아가 가의 팔로 스며들어갔다. 흐릿하게 변해 있는 현민의 오른팔이 가벼운 움직임을 보이자 셀 수조차 없는 날카로운 바람이 리더를 향해서 날아갔다. 스팟! 툭. 꿈틀꿈틀. -크윽! 현민의 모습과 능력을 흡수한 리더는 루인아츠의 엄청난 방어력도 가지고 있었으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같은 자리를 향해서 날아간 바람의 칼날은 루인아츠를 부숴버리며 그의 팔을 잘라버렸다.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오른팔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고, 현민은 자신의 팔에 있는 윈디아를 정령계로 보내며 이전의 모습(루인아츠)을 했다. "당신은 나를 '흉내' 내고 있을 뿐, 제가 된 것이 아니에요." 으드득! 불쌍하다는 듯한 현민의 말투 때문인지, 리더의 입 안에서 이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를 이기고 싶나요?"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한 현민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나의 아이템이 갖고 싶은가요?" 인벤토리에서 어릿광대 가면을 꺼낸 현민이 그것을 착용하며 입을 열었다. "십만의 정령사를 데려오세요.. 그러면 나를 이길수 있을 거에요." 현민의 상반신을 가리고 있던 루인아츠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며 섬뜩했던 그의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일천의 마녀를 데려오세요... 그러면 나를 죽일 수 있을 거에요." -크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악~! 현민이 루인아츠 까지 벗으며 모든 무장을 헤제하자 리더가 비명을 지르며 그의 마법진을 벗어나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현민을 죽일 수 있는 타이밍이었으나, 그의 몸을 묶고 있는 마법진은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의 마법사를 데려오세요... 그러면 원하는 것을 얻으실 수 있을거에요." 현민은 리더의 잘려 나간 오른팔에 손을 뻗어 준비했던 마법을 사용했다. "인탱글 2서클, 샤프니스(2서클)." 현민의 손에서 길게 솟아난 나무뿌리는 샤프니스 마법이 걸리며 검과 같은 예리함을 만들었다. 푹! -크아악-! 나무뿌리의 뾰족한 끝이 잘려 나간 그의 오른팔에 파고들어갔고, 그는 상상 이상의 고통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림자를 훔치면서 현민의 체감도 까지 따라간 것 같았다. 일반적인 수준의 체감도를 유지하고 있던 그에게 맨살을 송곡으로 꿰뚫는 듯한 아픔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엇다. "잘 가요.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3서클)." -크, 크억! 크르르르륵..... 현민의 마법에 그의 팔에 박혀 있는 나무뿌리가 길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반적이라면 반대편으로 뚫고 나왔을 나무 뿌리였지만, 그의 겉을 감싸고 있는 루인아츠로 인해 방향만 바뀌며 그의 몸 안을 휘젓고 다녔다.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끄억!끄억!끄억...... 콰득!우지직!우드드득-! 길게 늘어나던 나무뿌리가 옆으로 커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그의 몸이 흉측하게 부풀어 오르자 고개를 돌리며 절대방어를 사용했다. 찌이익-! 현민의 절대방어가 그의 몸을 감싸자 리더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하얗게 물든 나무뿌ㅜ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저리 휘여 있는 나무뿌리는 그가 어떠한 고통을 겪었는지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데구르르르..... 현민이 절대 방어를 헤제 했을때 그의 발치로 리더의 머리가 굴러왔다. "흐음......" 보통 사라이라면 서둘러 발을 피하거나 멀리 차버렸겠지만 현민은 허리를 숙이며 그것을 집어 들었다. 눈물과 피로 지저분해진 그의 머리는 석상과 같이 당당해 보였으나,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사람의 머리와 다르지 않았다. 파스스스.... 현민의 손에 있던 리더의 머리가 가루로 변하며 바람에 사라졌고, 바람에 휘날리는 가루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현민은 자신의 손을 털며 하늘을올려보았다. 스윽. 그는 붉게 빛나고 있는 노을을 뒤로하고 허공을 향해서 정중히 인사를 했다. 현민의 인사는 레이디에게 춤을 신청하는 귀족의 모습과 닮아 있었으나, 그의 모습에서는 정중함이 아닌 장난스러움이 느껴졌다. "덤비셍. 쿠쿠쿡." "세상에는 귀여운 악마가 있다네." 흠칫! 지친 얼굴로 걸음을 옮기던 현민은 허공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얼굴이 굳어졌다. 어떠한 방법을 사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루인아츠의 시야를 피해서 살아남은 유저가 있었다. "아이처럼 장난스러운 귀여운 악마는." "착용." 촤르르륵-! 어릿광대 가면을 얼굴을 가린 현민은 인벤토리에 손을 넣으며 루인아츠를 착용했다. 현민의 손을 감싸며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루인아츠는 순식간에 1차변형을 이루며 그의 팔을 감쌌고, 어느 정도의 전투 준비를 마친 현민은 '진실된 거짓'의 남아 있는 시간을 체크해보았다. '1분34초... 세 명까지는 가능하겠지.' 조금 전의 싸움에서 마지막으로 메모라이징 해놓은 '진실된 거짓'을 사용해 버렸기 때문에 그가 초인적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1분30초가 전부였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존재가 물리 공격을 하는 유저라면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물리 공격이 아니느 마법 계열이나 특수 능력을 사용할 경우 현민이 상대할 수 있는 숫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3명이 한계였다. "분노하라, 강인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여."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죽이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루인아츠의 주문은 노래의 박자보다도 빠르게 들렸다. "파괴 속에 울부짖는 어둠과 같이 모든 존재를 저주하며 분노를 터트려라."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사람들으 죽이고." "나의 몸이 너의......" 멈칫! 경쾌하고 밝은 느낌의 노래와 경쟁하듯이 주문을 외우던 현민은 무엇인가를 알아챈 것인지 외우고 있던 주문을 멈춰 버렸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주변의 모습을 살펴보던 현민은 원하던 것을 발견한 것인지 발걸음을 옮겼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눈물을 짖네." 저벅저벅. 그가 발걸음을 멈춘 장소는 '진실된 거짓'으로 능령치가 향상된 상태가 아니더라도 몇 초면 도착 만큼 가까운 곳이었다. 이전에 있던 장소처럼 평평한 바닥만 존재하는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가만히 서 있는 현민은 무엇인가가 보이는 듯이 허공의 한 곳에 시선을 멈추었다. "나와." "갈기갈기 찢겨진 그들을보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이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를 향해 입을 열었으나, 그의 생각이 틀린 것인지 원하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허공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느낌의 노래는 그 끝을 보이로 있었고, 현민은 자신의 정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환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네." 스악!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진 현민의 손은 주변의 공기를 찢어 버리며 날카로운 바람을 만들었다. 그런 바람이 스쳐 지나간 현민의 정면에서는 5개의 선이 생기며 주변의 풍경과 다른 것을 보여 주었다. "...무슨 직이야?" "하~ 이!" 갈라진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현민에게 무모한 전쟁을 하도록 만든 지혜였다. 언제나와 같이 환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는 찢어진 공간을 벌리며 현민에게로 달려들었다. 스윽. "에?" 지혜를 대한는 현민의 반응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으나 허공을 껴안은 지혜는 그를 이상하단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을 피하고 있는 현민의 움직임이 너무나 부드럽고 차분했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움직이며 자신에게서 도망가려 하던 평소의 현민과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너......" 지혜에게서 물러난 현민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그녀를 향해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다. 현민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던 지혜는 혹시나 참고가 될 만한 말일까 생각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나, 현민의 입에서는 그녀가 원하고 있던 말이 나오지 않았다. "... 아니, 됬어." "에?" 무잇인가 이어질 듯했던 현민의 말은 중간에서 끊어져 버렸고, 지혜는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현민의 반응에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현민이라면 여기에서 말을 끊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데?" "오지 마." 낯설어 보이는 현민의 태도와 중간에 끊어진 말이 궁금해진 지혜는 걱정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혜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현민도 한걸음 물러나며 그들의 거리는 일정하게 유지 되었다. "내가 뭐 실수한 거야?" 그의 태도에 불편함을 느낀 지혜가 조심스런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으나, 가면으로 가려진 그의 얼굴에서는 어떤한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혹 만화나 소설 속의 인물들이라면(...) 사람의 눈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겠지만, 현실(?)속의 지혜에게는 그러한 재주가 존재하지 않았다. "... 지금은 복잡하니깐 나중에 이야기 하자." 현민의 이전 행동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눈치 챌수 있었다. 지금의 현민은 자신이 다가오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 하고 있었다. "알았어, 그럼 학교에서 봐." 현민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어서인지, 아니면 너무나 낯선 그의 행동에 화가 난 것인지 현민에게서 떨어지는 지혜의 얼굴은 찡그려여 있었다. 언제나 웃고 다니는 지혜에게 인상 쓴 지금의 얼굴은 무척이나 낮설어 보였다. 스스슥. "후우.........." 현민에게 작별인사를 건젠 지혜는 마법을 사용하여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혼자 남게 된 현민은 지혜의 빈자리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런 '능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던 거야?" 현민이 말하는 능력이 무엇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가면 속에 숨겨진 현민의 얼굴에는 지혜까 볼 수 없었던 복잡한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제 막 떠오르고 있는 달을 발견한 현민은 지금의 감정을 마음속 깊이 숨이겨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보다.........." 파핫! 떠오르고 있는 달과 현민의 눈이 마주치는 순가, 밝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살짝 떠 있던 달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평소보다도 더욱 거대해 보이는 오늘의 달은 별조차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 속에서 붉은색의 불길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샤르륵. 수많은 유저들을 상대하면서 이곳저곳이 잘려 나갔던 현민의 머리카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며 달빛 아래 찰랑가렸고, 이제는 옷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겉옷은 마녀의 옷으로 바뀌며 깔끔한 모습이 되었다. 스윽. 인벤토리에서 마녀의 모자를 꺼낸 현민은 그것을 머리에 쓰며 어릿광대 가면을 마녀의 가면으로 바꾸었다. 순식간에 모습을 바꾼 현민은 동화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마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레벨 500 이상만 모여 주세요." 스스슥-! 옆에 있다 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였으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천 수만이 넘는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현민의 곁에 생겨났다. 유저들 중에서는 단 한명도 존재 하지 않는 레벨이었으나, 현민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은 그 수가 의심될만큼 평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땅에서 솟구치거나 허공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몬스터들은 현민의 부름에 의해 마치 소환당한 것처럼 갑자기 생겨나고 있었다. -부르셧나이까. 쿵-! 현민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몬스터들은 현민보다도 레벨이 높은 존재들뿐이었으나, 그 누구도 머리를 숙이는 것에 대해서 망설이지 않았다. 일반 몬스터들에게서는 느낄수 없었던 엄청난 존재감이 주변의 대기를 짓눌렀고, 그들이 서있는 대지는 몬스터들에게서 느껴지는 광포한 기운에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부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현민을 향해 복종의 태도를 보이고 있었으나, 그들의 중심에 잇는 현민은 그들이 에워싸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수많은 존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압박감을 느낄 현민이 아니엇지만, 그들과 현민의 레벨 차이가 시스템적으로 압박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살랑. 그런 현민의 상태를 느낀 것인지 작은 여우 한마리가 그의 발치로 다가왔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둘러 싸고 있는 지금의 장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느아, 작은 여우가 다가선 것만으로도 현민이 느끼는 모든 압력이 사라져 버렸다. 스윽. 허리를 숙여 발치의 여우를 품에 안아든 현민이 조심스런 손길로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끊어졌던 마을 이었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들을 죽이겠습니다." -크르릉-! -푸후!푸후! 현민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깨달은 몬스터들이 거친 숨격을 내뱉으며 소리 없이 환호했다. 정해진 구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심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들에게 현민의 한마디는 참을 수 없는 '부탁' 이었기 때문이다. "셋이 한 조로 움직이며, 주변에서 느껴지는 모든 유저들을 죽여주세요." -크릉! 저희는 강합니다. 혼자서 움직여두 수백의 유저 정도는..... 검은색의 단단해 보이는 비늘은 온몸에 두르고 있는 거대한 와이번이 주변의 모슨터들을 둘러보며 현민을 향해 말했다. 여기 모여 있는 존재들 중에 유저에게 죽을 정도로 나약한 몬스터는 없었다. "유저들이 뭉치기 시작하면 그 숫자는 수만을 넘는답니다.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주세요." -크르릉..... 현민이 걱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와이번은 들었던 고개를 내리며 그의 뜻을 받아들였지만, 와이번의 말대로 현민의 생각은 확실히 잘못되어 있었다. 100레벨의 유저가 100레벨의 몬스터를 상대로 싸운다면 혼자서도 아슬아슬한 차이로 이길 수 있겠지만, 400레벨의 유저가 400레벨의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5명이상이 모여야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데미지를 가지고 혼자서 사냥 다니던 현민은 몰랐지만, 『싸울아비』는 파티 사냥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은 몬스터의 레벨이 오를수록 더욱 그랬다. 불행인 것일까? 다행인 것일까? 원래라면 전멸해버렸을 유저들이었지만, 몬스터를 과소평가한 현민으로 인해 전쟁 이후에 상당수의 유저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셋이서 한 조로 움직이다 보니 그들이 이동이 느려지며 일부의 유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냥.을 시작해 주세요." 팟! 파파팟~! 펄럭~! 현민의 말이 끝나자 그곳에 모여 있던 수많은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퍼져 나가는 그들의 입가에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듯 하나같이 달콤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가힌은 2주, 되도록 많은 유저들을 죽여야 한답니다." 몬스터들이 오늘 하루만 움직이거나, 전쟁 이후에도 움직 일 것이라 생각한 현민은 그들에게 2주라는 시간을 정해주었다. 얼마만큼의 유저가 죽을지는 알수 없었지만 오늘보다 적은 숫자의 유저들이 모일 것은 분명해 보였다. "당신도 가주세요." 모든 몬스터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품 안의 여우를 바닥에 내려 준 현민은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여우를 향해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작은 여우의 털이 너무나 부드러워 언제까지나 쓰다듬고 싶은 현민이었지만, 9개의 꼬리르 살랑거리고 있는 이 존재가 여기 모여 있던 존재들 중에 가장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만 낳아주어야 했다. "얼마나 살아남을까........" 이제는 사막이라고 해야 할 만큼 황폐해진 땅에서 홀로 남아 달을 구경하던 현민은 붉게 빛나는 세상을 보며 조용히 중얼 거렸다. 지혜에 대한 마음 덜컥! "우욱-!" 전쟁을 끝마치고 가상현실에서 빠져나온 현민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입을 틀어막으며 화장실로 뛰어가는 것이었다.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이제야 나타난 것이다. 『싸울아비』에서는 살인뿐만 아니라 살기를 다루는 것도 능숙하게 하는 현민이였지만, 현실에서의 그는 그러한 것을버티지 못했다. 살기라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동일한 정신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었으나, 이것은 현민이 싫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아, 하아, 하아... 미, 미치겠네." "괜찮아? 또 어딘가 이상한 거 아냐?" 한참을 토하던 현민이 어느정도 속을 가라앉혓을때, 화장실의 입구에 서 있던 현웅이 물을 한컵 건네주었다. 다급히 방에서 나온 현민이 화장실로 들어가 심각하게 구토를 하자 걱정되었던 것이다. 게임을 하고 나서 병원에 실려 나간 적인 두 번이나 있다보니 현웅으로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냥 멀미 비슷한 것 뿐이야." "형. 게임기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저번도 그렇고, 며칠 전에도 그렇고 게임을 하고 나면 항상 토하는 것 같던데...." "게임기에 문제는 없어." "하지만....." "괜찮아~ 설마 문제가 있다고 죽기야 하겠냐?" 정신과 관련된 가상현실 기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죽는 것이 당연할 것 같았지만, 현민은 그러한 생각 조차 하지 않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다. "그보다 엄마, 아빠는?" "오늘도 야근이신가 봐." "그래? 다행이네." 현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부모님이 계셨다면 또 한번 『싸울아비』로 인해 다퉜을지도 모른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입을 행군 현민은 현웅을 바라보았다. "....뭔데?" "응?" "TV에서 엄청 재밌는것 보여 준다면서?" "어, 응.... 근데 내가 말했어?" "훗! 네가 말했으니깐 내가 들었겟지." 현웅은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실제로 그가 말한 것은 아무것도 없엇다. 현웅은 아무런 말돈 하지 않았는데 현민이 먼저 대답한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내용이 정확했기에 현웅은 현민을 의심하는 거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의심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입 밖으로 말햇는지가 헷갈렸다. "어릿광대라는 유저가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숫자랑 싸우고 있어. 정확한 숫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얼추 몇억은 넘어 보이더라고," "헤에~ 대단한데? 하지만 몇억 대 일이라면 금방 죽지 않을까? 혹시 도와주는 사람이라도 있어?"" 이미 끝난 전쟁이고 구 주인공이 현민 자신이었으나,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질문을 했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을껄?" 소파로 이동한 현웅은 꺼저 있던 TV를 틀었다. TV의 화면에는 이미 끝나버린 현민의 전쟁이 나오고 있었다.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어릿광대가 마법과 루인아츠를 이용하여 주변의 유저들을 죽이고 있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동시에 어릿광대를 공격할 수는 없으니깐." "그런가?" 단순히 숫자만을 생각한다면 현민의 패배가 당연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하나라는 것과 공격할 수 있는 공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4억대1의 싸움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현웅의 말대로 4억명이 동시에 현민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민과 지혜도 이러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도움을 원하지 않은 것이다. "응. 게다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다보니 자기들끼리 싸움도 많이 난 것 같아. 자세히는 몰라도 어릿광대한테 죽은 사람보다 자기들끼리 싸워서 죽은 사람이 더 많을거야." 현웅의 생각은 정확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존재가 현민을 노리고 있었으나, 그 목표가 되는 현민은 한 명밖에 없다 보니 모두가 적이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민의 능력으로 많은 유저가 죽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게 죽은 유저들보다는 서로 싸워서 죽은 유저들이 더욱 많았다. "역시 우리 동생, 머리는 좋다니깐." "조금만 생각한다면 누구나 알수 있는거야." "윽! 그러면 이 형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냐?" "크큭. 그런건가?" "어쭈~ 너 많이 건방져졌다?" 현웅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현민은 무척이나 평범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웃으면서 사람을 죽이던 존재라곤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법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형." '부모님이 나도 『싸울아비』한다고 하면 화내실까?' '부모님이 나도 『싸울아비』한다고 하면 화내실까?' 마음이라도 읽은 것일까. TV를 보고 있는 현웅은 현민이 생각한 그대로 말했다. 상대방이 말할 내용을 미리 맞혔다면 놀란 만도 하지만, TV를 바라보고 있는 현민의 얼굴은 화가 나 있다고 생각될 만큼 무표정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현민의 얼굴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미소가 생겨났다. "언제 한번 부모님에게 말해볼게." "정말? 혼나지는 않겠지?" "음... 아마도?" "형~" "크크큭. 농다이야, 농담. 난 먼저 들어갈 테니깐 적당히 보다 자." "응." '...어차피 혼나지는 않겠지만.' 입 안에서 맴돌고 있는 현미니의 마지막 한마디는 동생에 대한 질투인지도 몰랐다. 털썩! 방으로 들어온 현민은 접속기 위에 몸을 던졌다. 현실에서 4시간. 가상현실 속에서 16시간 이상 동안 전쟁을 치른 현민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매우 피곤한 상태였다. 게다가 마지막에 나타난 지혜는 현민의 마음까지도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순식간에 잠에 빠져 버린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스륵. "...그냥 쉴까?" 새벽4시가 약간 안 된 시간에 눈을 뜬 현민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ㅣ잠 그것은 잠깐의 투정이었을 뿐, 이내 자리에ㅐ서 일어나며 나갈 준비를 했다. 운동을 안한 지도 며칠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씻지도 않고 옷만 챙겨 입은 현민은 조용히 집을 나섰다. "흐읍~ 하아..........." 한겨울의 새벽이라 추위가 장난 아니었지만 현민은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활짝 펼치며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셧다. 폐를 가득 채우는 차가운 기운에 졸음이 사라졌고, 몸이 깨어났다. "으~ 춥다. 슬슬 달려 볼까?" 제자리에서 가볍게 움직이던 현민은 모자를 눌러쓰며 달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몸을 덥히고 근육을 적당히 긴장시키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공원에 도착한 현민은 빛이 없는 공간을 찾아 자리 잡았다. 다른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기 위한 이유도 있었고, 시각에 의존하지 않은채 움직이기 위해서 였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현민은 두 눈을 감으며 내면의 또 다른 자신을 깨웠다. "일너나 오랜만에 한판 해야지?" '그렇게 날뛰고도 부족하다는 거냐?' "풋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긴." 누가 보면 전화기를 꺼내들고 신고해도 이상하지 않을 모법적인(?)정신이상자였지만, 스스로에게 익숙해진 현민은 자기와 대화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준비해라' "응." 현민이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또 다른 모습인 어릿광대가 존재했다. 내면의 현민이 그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환각을 만든거싱다.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 후각, 청각 까지 속이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해도 현민에게는 진상과 다름없었다. "오늘도 전력으로 간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언제나 마음속에서 들리던 또 다른 목소리가 현민의 귀로 들려왓다. "얼마든지."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을까?" "해보면 알겠지." 팟! 팟! 어릿광대(내면의 현민)가 먼저 움직였고, 미약한 차이로 현민도 달려 나갔다. 두 사람은 환각으로 만들어진 무기를 빼어들며 중앙에서 강하게 부딪쳣다. 챙!채채채채챙! 서로의 무기에 공격이 막힌 두 사람은 그대로 회전하며 왼손의 무기로 상대방을 찍었다. 손든에 달린 뾰족한 무기가 서로의 얼굴을 노리며 날아갔으나. 그들의 무기는 제대로 된 공격이 이루어지기 전 각자의 또 다른 무기에 막히며 실패해 버렸다.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어릿광대는 양손의 무기를 놓으며 또 다른 무기를 손에 잡았다. 오른손엔 도를 쥐었고 왼존엔 검을 쥐었다. 현민 역시 어릿광대가 무기를 바꾸는 것과 동시에 똑같은 무기로 바꾸며 그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그 뒤로도 현민 특유의 움직임을 보이며 수많은 공격이 이루어졌으나, 어릿광대와 현민 두 사람은 마치 연극이라도 하듯이 모든 동작을 대칭으로 움직이며 서로의 공격을 무력화 시켰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두 사람의 몸은 보는사람이 정신없을 정도였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대화까자ㅣ 나누고 있었다. "너도 알고 있지? 지금의 내가 어떻다는 걸."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 말인가?" "응. 읽는다고 하기에는 약간 이상한데, 그냥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떠올라." 오른손으로 공격하는가 싶다가 갑자기 몸의 회전을 멈추며 왼손으로 공격하던 현민이 어릿광대를 향해서 물어속,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하며 현민의 러리를 노리고 있던 어릿광대는 오른손의 단도로 그의 검을 정확히 내려 찍으며 대답했다. 실제는 거친 움직임으로 현민의 말이 중간중간 끊어졌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서로의 동작으로 인해 왼손이 내려가게 된 두 사람은 그쪽방향으로 몸을 기울이며 왼발을 높이 들었다. 퍽! 발목과 발목이 정확하게 부딪치면서 두 사람의 발은 강하게 튕겨졌지만, 어릿광대와 현민은 그 반동을 이용하여 자연스러운 동장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이도... 마음을 읽는 것은 아니야." "응? 윽!" '다행' 이라는 말에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했던 현민은 전혀 반대의 대답을 들으며 짧은 의문과 함께 신음을 내뱉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어릿광대의 움직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빠르게 달려 들어온 어릿광대는 허공에 4개의 무기를 띄우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상황을 분석해서 그 사람이 생각할 만한 내용을 추측하는 것이지/" 같이 움직였다면 여유롭게 막을 수있는 공격 이였으나, 뒤늦게 움직였던 현민은 다른 무기를 꺼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두 손을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하루 동안의 전쟁, 그 전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너 자신도 모르게 분석력이 올라간 거다." 양손의 무기가 현민의 위아래를 노리며 날아오는 순가, 현민 교묘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무기를 그의 무기에 갖다댓다. 그리고 2개의 무기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강하게 튕겨냈다. 현민은 다급히 뒤로 물러났으나 어릿광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양팔이 같은 힘으로 튕겨져 어느 방향으로 회전하는게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던 어릿광대가 현민의 생각을 비웃으며 앞으로 회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회전한 어릿광대는 뒤꿈치로 현민의 머리를 노렸다. '큭!젠장!' 발록과의 싸움으로 만들어진 현민 자신의 움직임이었으나, 막상 당하고 있으니 욕이 절로 나왔다. 현민의 오른팔을 들어 머리 위의 공격을 막은 뒤, 곧바로 들어오는 다음 공격을 왼팔로 막았다. 본래의 현민이라면 여기세어 끝이엇으나, 그를 능가하는 어릿광대는 양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회전하며 두 발로 현민을 공격했다. 허공에 있던 무기들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으나 어릿광대의 움직임은 멈춰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발을 날리는 어릿광대의 움직임은 카포에라처럼 빠르고 화려했다. "벌써부터 쓰기에는 이르지만................" 스슥, 쉭! 작게 중얼거린 현민은 왼발을 길게 뻗어 어릿광대의 왼쪽으로 옮겼다. 그런 후 중심을 이동시키며 오른발을 가져다 붙였다. 그리고 이어진 한차례의 공격. 현민은 손에 들고 있던 송곳 모양의 무기를 바닥에 있는 어릿광대의 얼굴을 향해 빠르게 날렸다. 빠른 동작이었기에 현민의 몸은 자연스레 기울어졌지만, 그는 다시 한 번 같은 방식으로 발을 옮기며 어릿광대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오른발을 움직였고 왼발을 뒤늦게 가져다 붙여다. 그렇게 어릿광대의 뒤를 잡을 수 이썼던 현민은 제자리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한번 더 공격을 시도했다. 중간에 있었던 공격에 어릿광대가 쓰러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퍽! 채챙! 먼저 던졌던 무기는 어릿광대의 머리를 비켜가며 바닥에 꽂혓고, 이어졌던 공격에서 오른손의 무기는 신발에, 왼손의 무기는 제대로 된 공격을 하기도 전에 어릿광대의 발에 막히며 실패해 버렸다. 1초 정도의 극히 짧은 시간에 현민은 세번의 공격을 한것 이었고, 어릿광대는 그 공격을 모두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현민의 움직임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현민은 다시 한번 오른쪽 대각선 앞으로 왼발은 내디디며 한바퀴 빙글 돌아 자리를 옮겼다. 처음의 동작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현민의 동작에 오른발이 바닥에 박혀 있는 무기의 자루 부분을 지나갔고,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이란 힘점이 가해진 무기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잇던 어릿광대를 노리며 빠르게 솟아올랐다. 팟! 예상치 못한 공격이고 그 속도도 빨랐기에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으나, 어릿광대는 아주 짧은 잠깐의 시간동안 허공에 몸을 멈추며 현민의 공격을 피해버렸다. 현민이 전쟁 중에 보였던 움직임과 마찬가리조 자신의 무게중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며 체공 시간을 늘린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어릿광대는 곧바로 돌아서며 현민을 향해 발올 날렸다. 빠르고 강한 어릿광대의 발차기는 매우 위협적이었으나, 그 찰나의 순간 현민의 얼굴에 나타난 것은 짙은 미소였다. 퍽! 그런 현민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강한 발차기로 현민의 가드를 뚫을 수 있었던 어릿광대가 목표를 앞에 두고 빠르게 발을 회수했다. 그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처음부터 가드를 노린 것만 같았다. 스릉! 잠시 멈칫한 어릿광대가 자신의 감각에 대해 의아해할때, 현민에게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가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저 무기는.....' 본래의 검집으로 들어가고 있는 현민의 무기는 조금 전 아래에서 솟구쳐 올랐던 송곳 모양의 단검이었다. 지금의 타이밍으로 생각해보면 검집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그의 발을 바고 들어가는게 목적이었던 것 같앗다. '역시.... 이제는 발만으로 방어할 수 없다는 건가?" 어제 있었던 전쟁 때문인지 더욱 날카롭고 위험해 보이는 현민의 공격에 내면의 현민도 더 이상 '적당히' 할 수가 없었다. 본래라면 지금의 수준으로 대등해야 했으나 그 자신의 발전은 그가 생각햇던 것보다 더울 빨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안했던 움직임이 지금은 물 흐르는 듯한 부드러움을 보이고 있었다. '일단 거리를 벌리고 무기를 주워야겠군.' 그렇게 판단한 어릿광대는 떨어진 무기의 위치를 파악하며 빠르게 움직였으나, 조금 전의 동작에 이어서 계속 움직이고 있는 현민으로 인해 중간에 길이 막혀 버렸다. 하나의 무기를 원래의 자리에 집어넣은 현민이 이전의 이치로 자리를 옮기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이다. 챙! '왼손의 무기는 막았다. 다음은 오른손. 무기를 뽑는 동장이 없으니 잡거나 주먹으로.............' 흠칫! 왼손의 공격을 막고 다음에 이어질 공격을 생각하고 있던 어릿광대는 계획했던 반격을 하지도 못한 채 서둘러 자리르 벗어나야 햇다. 원래라면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아야 하는 현민의 오른손에 날카로운 단검이 들려 잇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가면속에 있는 그의 얼굴에 잠시 경악이 서렷지만 그것은 나타나는 것보다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현민의 생각을 읽지 않아도 그의 위치를 생각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군 이전의 공격에서 오른손의 무기를 허공에 띄워둿던 건가?' 다시 한 버 자리를 옮긴 현민이 빠르게 공격하고 있었지만 어릿광대의 생각은 멈춰지지 않았다. '아직 부족해 보이지만... 쉽게 죽지 않을 정도는 됐군.' 현민이 보지 못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생겨났다. 『싸울아비』가 시작되고 2년, 그라는 인격이 태어나나지도 1년이 되어가는 짧은 시간동안 그 자신의 변화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근래 반년의 시간동안 살수 또는 킬러라 불리는 존재들로 부터 위험한 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내면의 현민)가 나서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되는것 같았다. '이번의 전쟁이 끝난다면 '난'는 조금 더 강해지겠지.' 내면의 현민의 이러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민은 어릿광대의 주변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사방에서 공격을 하고 있었다. 측면에서 하기도 하고 뒤에서 노리기도 하면서, 어떤 때는 갑자기 정면에 나타나 칼질(?)을 햇다. 제자리에서 도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축으로하여 그의 주변을 회전 하고 있었다. 철저히 한 사람만을 노리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본래의 움직임보다 동선은 늘었지만, 현민의 움직임은 여전히 빠르고 변칙적이며 거칠었다. '이 상태로는 끝이 없겠군.' 현민의 공격을 막거나 파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민이 자리를 옮기며 그 찰나의 순간 빈틈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릿광대는 그것을 알면서도 현민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한 움직임은 지금 현민이 낼수 있는 신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현민과 동일한 신체 능력 속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기에 지금 이상의 스피드는 드러낼 수 없엇다. 어릿광대는 방법을 바꾸어 뒤로 빠지는 현민의 다리에 발을 걸었지만, 현민은 무릎을 높이 들어올리며 그의 발을 손쉽게 피해버렸다. 그렇게 이동한 현민은 어릿광대와 두 눈을 마주했다. '위험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하는 현민의 눈빛은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이번에야 말로!" 흔들~ 눈앞에 있는 현민의 신형이 잠깐 흔들린다고 생각했을때, 어릿광대는 양쪽에서 빠르게 날아오는 2개의 무기를 느낄수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 공격한 것인지 2개의 무기가 서로 다른방향에서 미약한 차이를 두고 날아오고 있었다. 어릿광대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며 다급히 뒤로 물러났으나 그의 감각에 걸리는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정면에 있던 현민이 어느새 자리를 옮긴 것이다. 스륵, 탁! 팟! 왼발을 뒤로 빼며 부드럽게 발을 돌린 어릿광대는 옆에서 빠르게 찔러 들어오고 있던 현민의 팔을 쳐냈다. 어릿광대가 몸을 돌리는 순간 자신의 공격이 실패 했다는 것을 깨달은 현민은 공격 하고 있던 왼팔에 힘을 뺐다. 힘이 빠진 왼팔은 어릿광대의 손길에 맥없이 밀렸고, 현민은 돌아가는 손에 몸을 맡기며 빠르게 회전했다. 뒤로 돌려지는 현민의 오른손에는 역으로 들린 기다란 검이 있었다. 그것은 어릿광대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오른발은 빼기에는 현민과의 거리가 가까워 공간이 없었고 왼발을 움직이기에는 오른발의 지금 위치가 않 좋았다. 어릿광대는 잣가 분안함에도 고개를 숙여 피할 수밖에 없엇다. 사락! 현민의 검이 아슬아슬 하게 지나가며 어릿광대의 머리카락이 약간 잘렸다. 그야말로 영황의 한 장면이였다. 그렇게 현민의 검을 피할수 잇었던 어릿광대는 넘어지던 자세 그대로 바닥을 짚으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앞을 가로 막는 현민으로 인해 생각 했던 움직임을 이룰 수 없었다. 옆에서 공격을 하고 있던 현민이 어느새 또다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현민은 왼손의 송곳을 허공에 띄우며 허리의 단도를 꺼내들고 어릿광대의 상하를 향해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금 보여주는 현민의 움직임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움찍! 현민이 있는 쪽으로 넘어지고 있던 어릿광대는 지금의 상황에 위험을 느꼈다. 현민은 빠르게 공격하고 있었으나, 그자신은 넘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막는 것은 커녕 피하는 것도 불가능 했다. 팟! 2개의 무기가 어릿광대의 목과 가슴을 갈랐고, 연이어진 현민의 움직임에 허리와 등에도 치명적인 상처가 생겼다. 목과 가슴을 공격한 것에 멈추지 않은 현민은 한번더 자리를 옮기며 허리를 베었고, 또다시 자리를 옮기며 등을 가린것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비틀! 그렇게 공격에 성공한 현민은 두 팔을늘어트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한 호흡 동안에 이루어진 동작이었기에 그의 숨은 거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자신도 스스로의 방향전환에 익숙하지 않은지 연신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했다. 지금의 이런 모습을 보면 조금 전의 움직임은 필살기(?)였단 것 같았다. 어느 모로 봐도 더 이상의 공격은 불가능해 보였다. "쳇!" 그때 자신을 추스리기에도 바쁜 현민이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짧은 불평을 내뱉었다 그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스르륵. 현민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었다고 생각햇던 어릿광대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사리지고 있었다.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현민의 공격에 방법이 없던 어릿광대가 잔상만을 남기고 자리를 피한것이다. '한순간 위험했다. 역시 '나'는 나라는 건가?' 어릿광대는 현민의 곁으로 다가가며 지금의 상황에 내심 놀랐다. 비론 이런 상태가 되었다 해도 자기 자신을 그 정도로 몰아넣었다는 것은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제부터는 족므더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해야겠어.' 지금까지의 목적은 현민이 스스로의 육체를 완벽히 다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움직임을 보니 더 이상읜 '연습'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조금 더 빠른 움직임으로 현민의 한계를 늘려갈 생각이었다. 어릿광대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떄, 자리에 누워버린 현민이 그를 향해 투덜거렸다. "너 방금 '해제' 했지? 지금의 내 수준으로 싸운다고 하지 않았어?" "........." "아~ 아쉽다. 처음으로 성공할 수 있었는데." 정말로 아쉬워하는 듯한 현민의 말투에 내면의 현민은 가면 속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어차피 너랑 나는 하나인데 상처 하나 내겠다고 그렇게 달려드는거냐?" "훗! 누가 들으면 나만 이상한 인격으로 생각하겠다? 싸움이 끝났을 때, 반쯤 죽어있는 사람은 언제나 나라고." 오늘의 싸움은 현민의 일발적이었지만 그동안의 싸움마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현민의 말대로 싸움이 끝난 뒤에 처절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심하게 망가져 있는 것은 언제나 현민이었다. 땀과 흙, 상처로 지저분해지는 현민과 다르게 어릿광대ㅐ는 호흡조차 거칠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끝나는것이 보통이었다. "헤헤." 평소의 결과를 생각하던 현민은 그때와 오늘의 상태를 비교하며 헤픈 웃음을 흘렸다. 제대로 된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이겼다고 할수 있는 결과 였다. 털썩! "응?" 그런 현민의 곁으로 어릿광대가 주저 앉았고, 평소와 다른 그의 행동에 현민의 입에서 의문이 흘러나왔다. "왜?" "아까 하던 애기, 아직 끝난 게 아니다." "... 그거?" 짧은 대답이었으나 현민은 그가 말하려는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눈 내용은 그것밖에 없으니 모른다는게 이상한 거 였다. "네가 마음을 읽을수 있는것은 아니라구했지?" "응." "하지만 비슷하다고는 할 수 있다." 흠칫! 편안한 자세로 하늘을 보고 잇던 현민은 갑작스러운 어릿광대의 말에 표정이 굳어버렷다. "지금 네가 가지고 잇는 분석력이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맞을 테니깐." 현민은 어릿광대의 그러한 말을 들으며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내심 아기만을 빌었기 때문이다. 어릿광대가 맨 처음 '다행'이라고 한 것도 현민의 이러한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내가 느꼈던 지혜의 생각들은..........." "아쉽지만 사실이지." "...그래." 현민은 말이 없어졌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면의 현민은 그의 생각이 정리될 때가지 옆에서 기다려 주었다. "지혜에 대한 마음은 정했어?" 한차의 시간이 지났을 때 내면의 현민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 "물어볼 필요도 없었군. 그렇게 정한 건가?" "......" "훗! 역시 '나' 라는건가?" 현민은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내면의 현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또한 '나'의 생각에 후회는 없다." 내면의 현민은 그 말을 남기고 조용히 사라졌다. 자신의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깨닫게 된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이제 슬슬 따이 마르며 추위가 느껴지고 있었기에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엇다. 툭툭. "내 안에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원래의 나라면 이렇게 강하지 않았을 테니깐....." 짧은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현민의 표정은 이전보다 성숙해져 있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현민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채리야,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 '어릿광대' 말이야! 어.릿.광.대." 채리플랑의 단짝 친구이자 현자 길드의 부길마(부길드마스터)를 맡고 있는 '하얀하늘'은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화면 속의 어릿광대를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어릿광대가 무엇을 하든 신경 쓸 일은 아니었지만, 오늘의 일로 인해 길드원들의 분노는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모두가 현민을 노리고 있는 지금, 채리플랑이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것이 그 이유였다. "하아.... 알았어. 공격을 허락할게." "정말?!" 채리플랑의 대답을 드은 하얀하늘의 얼굴은 기쁨으로 물들었다. 어릿광대를 잡을 수 있다는 것에 그쁜것이 아니라 길드원들의 불만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쁜 것이었다. "하지만 죽일 수 없을걸? 최소 3억이었어, 전부를 비추지 않아서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4억정도는 모였을 거야. 그만큼의 유저들도 모두 죽었는대 우리가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길드원들을 얕보지 마. 네가 만든 길드고 천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야. 너나 내가 없어도 어릿광대 정도는 충분해." 하얀하늘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달려 있었지만, 채리플랑은 그녀의 미소를 보면서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그럴까?"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며 잠시 생각해보았다. 4억대1이 싸움. 그것은 이미 9서클의 문턱을 넘은 그녀에게도 무척이나 힘든 싸움이었다. 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또 이긴다고 자신할 수도 없었다. 4억이란 유저가 얼마나 많은 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민은 그러한것을 해냈고, 그것이 가능햇던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그녀의 상상을 벗어나는 힘이었다. 그러한 힘을 가지 현민과 싸운다? 그녀는 현자 길드의 마법사들이 패배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녀 자신만 하더라도 4억의 유저와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었지만, 길드의 모든 마법사와 싸워서 이길 수는 있었다.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모든것을 계산 했을 때 나온 객관적인 결과였다. 현민의 능력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훗!" 하지만 하얀하늘은 그녀의이러한 고민을 모르는지 미묘한 미소를 만들며 채리플랑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의심스러우면서도 장난스러운 미소였다. "채리가 걱정하는 건 길드원일까? 어릿광대일까?" "무, 무슨?!" 깊이 고민하고 있던 채리플랑은 갑작스러운 하얀하늘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 붉어졌다는것에 스스로 당황해했다. "너 이럴때 정말 귀여워 보이는 거 알아? 다른 일에는 냉정하면서도 어릿광대랑 연관되기만 하면 당황하는거." 하얀하늘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빨개진 채리플랑의 볼을 쿡쿡 찔렀다. 채리플랑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천재가 한 사람 때문에 얼굴을 붉힌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표정을 자신만 본다는 게 너무나 아까웠다. "하지만." "응?" ".... 멋있는걸." 멈칫! 예상외의 반격(?)에 하얀하늘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이번의 마법사용 봣어? 플라이가 아니라 실드를 이욯해서 하늘을 날아다니고, 투명화 마법으로 상대를 감춘 것 말이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있는 거지? 보통 투명화 마법을 사용하면 자신을 가리는 것이 정석 아냐? 아니,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투명화 마법을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잘려나간 왼팔. 그거 아마도 염력을 이용해서 움직였을 거야. 게다가 나만이 가능했던 무언마법도 사용했고, 환상마법을 이용한 자신의 상태 변화까지......" 점점 흥분하기 시작한 채리플랑은 누구누구 없이는 절대로 못 산다는 우리나라 일부의 여고생들처러 어릿광대에 대한 자랑을 길게 늘어트렸다. 그러면서도 과연 천재는 천재인지 현민의 마법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반박이라도 했다가는 한 대 맞을 것 같은 분위기라 하얀하늘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거, 채리플랑식 사랑 고백?" "........." "........." "........." 기묘한 침묵이 그곳에 맴돌았다. 제100장 현민에 대한 마음 스윽.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자자고 있던 현민이 어느순간 조용히 눈을 떴다. 방금 일어났음에도 현민의 두 눈은 초점이 잡혀 있어 잠깐 눈을 감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달칵. "형, 아직도 안일어 났어?" 현민이 눈을 뜨기가 무섭게 현웅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를 깨웠다. 학교갈 준비를 모두 마친 동생으로 보아 상당히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잔것 같았다. "일어났어." "형도 빨리 안가면 지각이야~" "응." 현민을 꺠운 현웅은 평소보다 늦은 것인지 서둘러서 집을 나섰다. 빠른 움직임으로 서둘러 준비하고 집을 나서도 아슬아슬 하건만,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는 현민의 행동은 평소보다도 더욱 느릿느릿했다. 새벽에 움직일 때문 해도 멀쩡했던 몸이 지금은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힘들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학교에 가고 있는 현민은 자신의 몸을 움직이기 위해 식은땀까지 흘릴 정도로 집중해야 했다. 무거운 것이라도 이고 있는 것처럼 온몸이 무거웠고, 타인의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새벽에 몸을 움직이긴 했으나 그거야 언제나 하는 것이니 예외였고, 현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원인은 전쟁밖에 없었다. '전쟁이란거... 이렇게 피곤한 건가?' 현민이 전쟁을 한 것은 겨우 하루, 그것도 가상현실 속에서 정신적으로만 싸운ㄱ ㅓㅅ이었으나 그 피곤함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였다.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의 몸이었기에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어릿광대 동영상 봤어?" "아, 시X. 말도 안 나오더란. 그 자식 사람이야?" "나는 어제 그 자리에 있었는데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지금 전 세계 에서 난리가 아닌가봐. 4억이란 숫자가 모이고도 그렇게 당했으니깐............." '...시끄러워.' 어제 교실에서 위험한 싸움이 있었음에도 반에 모여있는 아이들은 시끄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쉽게 풀리지 않는 정신적 피로 때문에 짜증이 난 현민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래닛지만 겁이 없는 것인지, 생각이 없은것인지 현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도 애써 그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었다. 스르륵. 두 눈을 감은 현민은 쓰러지듯 채상에 엎어져 버렸다. 더 이상 버티고 이을 힘도 없었고,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으로 인해 머리도 지끈거렸다. 거치었던 호흡은 시간이 지나며 규칙적으로 바뀌었고, 잔뜩 찡그려져 있던 현민의 얼굴도 평범하게 변해갔다. 금세 잠든 것이다. 잠잘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깊은 잠에 빠져 잇었다. 쾅! "현민이란 새끼가 누구야?1" 현민이 잠들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수 없었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현민은 누군가가 안좋은 일로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잤나?'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아침보다 쉽게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느끼며 시계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계를 볼 필요도 없이 주변의 아이들이 숟가락을 들고 있는 것으로 지금 의 시간을 알 수 있엇다. "너냐?" '네 명.......' 현민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몸의 상태가 정상적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숫자였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100퍼센트 현민의 패배였다. 그들과 자신을 비교한 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현민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좋은 말로 할때 와라. 여기서 뒈지고 싶지 않으면." 현민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남학생이 으르렁거린 후 먼저 앞장서기 시작했다. 곧 현민이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갔고, 나머지 3명의 학생이 그런 현민의 주변을 둘러싸며 교실을 나갔다. "어, 어떡해야 하지?" 그들이 들어오면서 조용해졌던 교실은 그들이 나가자 또 다시 시끄러워졌다. 그 자리에 있던 반장은 현민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발만 동동걸렸다 퍽! "컥!" 학교의 벽과 담 사이의 구석진 공간. 대략 20명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현민은 조금의 반항조차 하지 않은채 얻어맞고 있었다. 순서대로 돌아가며 현ㄴ민을 떄리고 있는 그들은 조금의 죄책감도 담겨 있지 않은 표정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병X 같은 새X. 이런 녀석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X팔리지도 않냐?" "닥쳐, 병X아. 이 새끼 싸우는거 보면 너 같은건 그냥 도망갈걸?" "웃기고 있네." 그들의 주먹을 10분째 버티고 있는 현민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옷의 이곳저곳이 피로 물들어 있었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그의 몸은 옆의 두 사람이 손을 놓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했다. "재미있냐?" ""당연하지!" 퍽! 대답과 함께 휘둘러진 주먹이 현민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그의 주먹으로 인해 현민의 몸이 ㄱ자로 꺾였지만, 누군가의 거친 손길이 그의 몸을 바로 세워 줬다 "나도 좀 즐겨 볼까?" "응?" 콰득-!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들리며 현민의 주변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양팔을 잡고 잇던 존재가 사라지면서 땅바닥으로 쓰러진 현민은 주변의 소란을 느끼며 상황을 파악했다. 새롭게 나타난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지?' "현민아! 괜찮아?" 자신을 도와줄 만한 존재가 누군지를 생각하던 현민은 낯익은 손길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는 것을 느꼈다.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고 소리가 울려서 확인을 할 수는 없었지만, 온몸에 전해지는 '느낌'이 지혜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현민이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주변의 소리가 사라지며 '어둠'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어둠? 아, 꿈이구나.' 주변에 어둠이 보인다는 것을 '인지'한 현민은 현실에서의 자신이 기절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따. 그렇지 않고서야 '꿈'을 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쨰서 이렇게 된 거지?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이기지는 못해도 죽일 수는 있었을 텐데.' 이긴다는 것과 죽인다는 것은 달랐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존재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으니 어떠한 공격도 가능한 것이다. 현민을 둘러싸고 있던 학생들처럼 때리는 것을 즐긴다면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을 수있겟지만, 자신을 단련하거나 '적'과 싸워온 현민에게 그러한 것은 불가했다. 죽이기 직전에 멈추는 것은 가능했어도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은 할수 없었다. '죽인다? 죽인다는 생각 때문이었나? 어째서... 어째서 나는 죽인다는 생각을 못하게 된거지?' 현민은 꿈이라는 것을 인지 하고도 깨어나지 않자 어둠 속을 돌아다니며 조금전의 일을 되새겨 보았다. 게임속에서는 몬스터건 사람이건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 자신이, 현실 에서는 주먹조차 휘두르지 못한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무엇이 나를 막는 거지?' 현민의 강한 의지 때문인가.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형태'를 가진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현민의 의지가 일어나자 그의 정신은 새롭게 나타난 그것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고 느끼면서 흐릿하게 보이던 존재가 현민의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았을 떄는 바위라고 생각했으나, 가까이서 바라본 그것은 쇠사슬로 감싸여진 '무언가'였다. 오싹하면서도 친근한 느낌, 그러면서도 다가가기 싫은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최르르르륵! 현민의 이러한 느낌이 강해지자 쇠사슬의 일부가 움직이면서 위쪽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작은 틈이 만들어졌다. 현민의 시선은 방금 만들어진 구멍으로 천천히 옮겨졌고, 그안에 갇혀 있던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번쩍-! 그것과 눈이 마주친 현민은 놀란들이 눈을뜨며 기절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기 직전 무엇인가를 들은 것 같았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따. "뭐, 뭐야, 방금." "........" "뭐, 뭐지?" 현민이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던 것은 어정쩡한 자세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이었다. 기절에서 깨어난 현민은 자세히 알지 못했으나,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그들뿐만 아니었다.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물론이고 근처를 지나고 있던 작은 동물들조차 눈앞에 있는 그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세상이.. 멈추었엇다." 싸우고 있던 존재들은 눈치 채지 못했으나 현민을 안고 있던 지혜만은 주변의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극히 찰나의 순간 바람은 물론이고, 하늘을 날고 있던 새조차도 날갯짓을 멈추고 있던 것을 말이다. 그런것을 보르는 다른 사람들은 왜 자신이 멈추었는지 이상해하는 표정이었다. '방금 거... 순간적이긴 했지만 엄청난 살기였어.' 지혜의 부탁으로 현민을 대신해서 싸우고 있던 치우는 짧은 순간 자신의 온몸을 옭아매는 섬뜩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간이 너무 짧아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다른 이들의 행동을 볼 때 그런 것은 아닌것 같았다. "비...... 켜줘." 그들이 어정쩡한 자세로 멈추는 바람에 싸우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있을때, 지혜의 품에 안겨 있던 현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아디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 얻어 맞고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나는 현민을 보며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 이정도로 맞아 줬으면 됐지? 너희들도 사고 치고 싶은 것은 아닐 테니깐." 현민은 질문을 던졌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현민의 상처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가에 피가 묻어 있기는 했으나 입술이 찢어진 것은 아니었고, 얼굴의 이곳저곳이 빨갛게 물들어 있기는 했으나 멍이나 상처가 보이지는 않았다. 근처만 맞아도 부어오르는 눈은 이전과 별 차이가 없었으며, 싸움 이후에는 반드시 보이는(?) 코피도 없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현민의 옷에 묻은 피가 어디서 흘러나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툭툭. 가볍게 옷을 턴 현민은 그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되돌아갔다. 그런 현민의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에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의 뒤를 잡을 생각을 하지못했다. '내가 뭘 본거지?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또 무슨 이유고?' 온 몸을 피로 물들이고 있는 현민의 차림새로 인해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지만, 당사자인 현민은 그들의 시선보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본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이상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답답했다. 게다가 기절하고 난 이후에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다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자신의 정신적 피로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 했기 때문이다. "헉!" "혀, 현민아!" "피, 피가.......!" 현민이 교실로 들어가자 시끌벅적하던 그곳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하나깉이 현민을 보며 입을 크게 벌리고 말을 하지 못했다. 너덜너덜 해진 흰색의 와이셔츠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특별한 상처가 없다 보니 현민을 가해자로 생각하고, 끌고 같 학생들을 피해자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현민과 가장 가까운 사이라 할 수 있는 반장조차 지금의 현민에게는 다가가지 ㅗㅅ하고있었다. 스윽. 현민은 침눅이 감독오 있는 교실을 한번 둘러본 후 반장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반장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그답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일단은 괜찮은것 같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현민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몸을 떨고 있는 반장의 모습은 걱정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기에 모두가 이상한 눈빛으로 현민을 바라보았지만, 반장만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 때문에 두려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현민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ㅜㄴ이다. "조금 있으면 지혜가 올 거야. 그러면 옥상으로 올라오라고 전해줘. 선생님들에게는 양호실에 있다고 말해주고." 여기까지 말한 현민은 반장에게서 등을 돌렸다. "...언제나 거짓말하게 해서 미안해."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 하지만 그것은 반장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현민은 그녀에게 한마디만을 남긴 채 교실에서 사라졌고, 교실은 또다시 시작바닥으로 변해 버렸다. 덜컹! "현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옥상으로 올라온 지혜는 주변을 둘러보며 현민부터 찾았다. 하지만 탁 트인 공간속에 있으리라 예상했던 현민의 신형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옥상을 보며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그녀의 옆쪽에서 현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였지?" 흠칫! 분명히 없다고 생각했었기에, 지혜는 갑자기 들려오는 현민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너와 내가 처음으로 만난 장소가." 현민의 목소리를 따라 지혜의 시선이 멈춘곳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세워진 철조망 위 였다. 옥상 어디에서도 볼수 없었던 현민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마법서를 풀고 있었고, 너는 담배 피우러 왔었지. 기억해?" 끄덕. 잊었을 리가 없었다. 그때의 우연한 만남이 없었다면, 자신은 삶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과 조금의 차이도 없는 일상. 그 속에서 인형처럼 자신을 움직이고 있을 때 현민을 만났다. 너무나 쉬운 문제를 가지고 끙끙 거리며 풀고 있던 현민의 얼굴이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지혜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미소 지었다. "물론. 그때 너와 나의 운명을 알았으니깐." "쿡! 아직도 그소리야?" 현민은 철조망 위에 걸터 앉으며 작게 웃음 지었다. 현민의미소는 언제나와 같았지만, 피 무두은 옷을 입고 있어서인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운명이라...... 너는 인연이라는 실이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진 것이 운명이라는 이름의 실타래라고 했지." "기억하네?" "잊을 리가 없지." 솔직히 잊고 있었다. 천재도 아닌 그가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혜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깨닫게 되면서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화를 냈고, 그래서 고민했고, 그래서 슬퍼했다. 현민은 자신의 표정을 숨기기위해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비치는 겨울 하늘은 현민의 마음과 다르게 맑만 했다. "자신을 계산할수 있는 천재. 내가 바라본 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지." "...무슨 소리야?" 지혜는 갑작스러운 현민의 말에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기했을 거야.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말이야. 그래서 운명이라고 여긴 건 아니야?" "당연하지. 운명이란 게 그런 거잖아? 생각지도 못한 만남. 생각지도 못한 이별. 생각지도 못한 재회. 그렇게 생각지도 못했기에 '운명'이라고 하는거야." 지혜는 현민의 말을 이해하고도 당당했다. 아니, 이해했기에 당당할수 있었다. 현민의 말에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사람의 마음을 읽지 않는 이상 그것을 확실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현민은 미소 띤 얼굴 그대로 지혜를 바라보았다. "지혜야,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 살까?" 흠칫! 현민의 태도는 무척이나 장난스러웠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현민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생각해?" 지혜는 현민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장난인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는 것 같은 느낌. 뭐라고 판단할수 없는 현민의 행동을 보며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어 어떠한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죽겠지. 아니, 나 또한 그냥 떨어지면 반드시 죽을 거야." 지혜가 고민하는 동안, 다시 철조망에서 일어난 현민은 그위를 걸어 다니며 이야기를 계속 했다. 높이가 낮은 곳도 아닌 그 좁은 곳을 걷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으나, 현민은 평지를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떨어져도 죽지 않을 수 있어. 내려 가는 순간 벽의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잡으면 낙하 속도를 줄일 수 있지. 운이 나쁘면 몇군데 부러지겠지만, 적어도 죽지 않을 것은 분명해." "너...." 지혜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현민은 그녀의 말을 잘라 버렸다. "그때의 나였다면 분명 죽었을 거야. 아닌가? 죽지는 않았겠구나. 여길 올라오지도 못할 테니깐." 여기까지 말한 현민은 걸음을 멈취며 지혜의 두눈을 바라보았다. "겨우 일년 반이지만 나는 달라졌지." 현민의 말투가 달라졌다. 더이상 부드럽지도, 자상하지도 않았다. 살기를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적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달라진 현민의 모습에 지혜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는?" 지혜는 현민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단순한 대답이었으나, 자신의 대답으로 인하여 현민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질것인가를 계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제의 차가운 반응도 그렇고 자신이 무엇인가 실수를 한 것 같았지만, 그 이유를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생각할 필요 없어. 그냥 솔직히 말하면 되는 거니깐. 이미 답은 정해져 있잖아?" "......." 지혜는 현민의 눈을 바라봤다. 흔들림이 없는 그의 눈동자는 이미 자신의 대답을 알고 있는것 같았다. 그녀의 느낌이 맞다면 현민은 지금 확인하려는 것 뿐이다. "그래. 내 답은 '아니다'야." "쿡쿡." 지혜의 대답을 들은 현민은 웃음을 터트렸다. 커다란 웃음은 아니었으나.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허리를 꺾었다. 예상외의 반응이었으나 지혜는 화를 내기보다 불안한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철조망 위에 서있는 그의 모습이 아슬아슬했기 때문이다. 지혜의 그러한 마음을 눈치 챈 것인지, 현민이 웃음을 멈췄다. "내가 이러는게 이상해?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것같네?" "불만 없어." "정말?" 끄덕. 지혜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 철조망 위에 있던 현민이 소리조차 내지 않고 순식간에 내려오며 지혜의 앞에 섰다. 정말로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나 지혜는 놀라거나 물러나지 않았다.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붙은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 "....왜 덮치려고?" "아니." 지혜는 도발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현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현민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고, 자신의 대답과 다르게 그녀의 가슴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거침없이 움직인 현민의 손가락은 지혜의 블라우스 틈새를 파고들며 가슴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것은 담배 한개비 였다. 거기서 끝나지 않은 현민은 지혜의 치마를 들췄고, 허벅지까지 올라와 있는 스타킬의 끝에서 또 하나를 찾아냈다. "이제 불만 있지?" 개그라면 개그라고 할수 있는 현민의 말이었으나, 지혜의 얼굴은 싸늘하기만 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여성의 몸에 거부감이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처럼 만지지 않는다면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어." 지금의 움직임, 그것은 그녀가 알고 있는 현민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그런 움직임이었다.현민의 말대로 만지고 안만지고의 차이가 아니라. '그'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정말로 변했어." 지혜는 끝까지 믿지 않으려 했으나,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너를 만나고 다른 천재들을 만나면서 천재가 여럿 모이면 바보도 천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현민은 손안의 담배를 꺾어버리며 본래의 내용으로 돌아왔다. "내가 만난 천재는 4명, 첫 번째 천재는 『싸울아비』의NPC중 하나인 샤이나. 나는 그녀로부터 내 자신을 바라볼수 있었고, 타인을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 두번째 천재는 바로 너. 나는 너에게 타인을 계산하는 법을 배웠지, 세 번째 천재는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싸울아비』의 NPC인 린. 그녀는 나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 네 번째 천재인 채리플랑 에게는 진실을 보는 법을 배웠지." '설마?!' 현민의 설명을 듣고 있던 지혜는 무엇을 생각한 것인지, 두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 주춤! 그리고 뒷걸음질 쳣다. 그것은 본능적인 거부감이었다. 현민이 말한 4명의 천재. 그들로부터 정말 그러한 것을 배웠다면 답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설사 여려 개가 나온다 하여도 그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마음을 읽는다고?!' 그녀가 조금만 모자랐다면 이 자리에서 도망갔을 것이다. 사람인 이상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두려워도 지금의 생각이 맞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아쉽지만 아니야." 움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확인하려던 지혜는 자신의 질문보다 먼저 나오는 현민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마음을 읽는다기보다는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비슷해." 지혜는 현민이 말하는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았다. "... 다른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어떤 사람의 현재를 통해 과거를 예상하고 그 예상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그 사람의 미래까지 계산하는 것이 지혜의 능력이었다. 지혜는 그러한 것을 계산할 수있는 머리를 가지고 있기에 주변 사람들의 행동, 사고방식 등의 변화를 주어 자신의 미래를 바꾸는 것도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예상할 수 있어. 그래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 현민의 능력은 지혜와 비슷하다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상하는 것쯤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술을 물마시듯이 마시는 사람을 보며 그의 다음 해동쯤이야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기절(?)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우엑!'이니깐 말이다. 문제는 그 확률이었다. 90퍼센트 이상. 그렇다는 것은 받침이나 띄어쓰기 빼고(?) 전부 맞는다고 볼 수 있었다. 지혜가 먼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면, 현민은 코앞의 미래를 예상할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읽는 듯한 행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혜는 현민의 분석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몰랐기 때문에 다른 경우를 생각하며 그를 의심했다. 그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말이다. 현민은 그녀의 이러한 생각을 예상하며 몇 가지를 말해주었다. "킬러들의 일부를 막아준 사람이 바로 너 라는것도." "......." "네가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 "네가 누구를 원하고 있는지도." 흠칫! 지혜는 현민의 말을 들으며 깜짝 놀랐다. 있었던 일이나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렇다 쳐도, 마지막 한마디는 자신의 마음까지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현민은 자혜의 흔들리는 마음을 알아본 것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마음의 결과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궁금해, 그래서 알고 싶어. 네가 원했던 나의 미래가 무엇인지를!" 현민은 지혜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하면 그녀의 생각을 예상 할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예상된 것처럼 그녀의 생각이 떠올랐다. "신과 악마? 지혜......." 현민은 손을 놓고 물러났다. "넌 나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현민과 눈을 마주하고 있던 지혜가 시선을 피했다. 현민의 눈이 자신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해줘. 신과 악마가 뭘 뜻하는지." "......" "부탁해." 현민은 지혜에게 부탁했다. 그는 예상할 수만 있을뿐, 정말로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전 지혜의 속마음을 읽은 듯한 것은 은연중에 느끼고 잇던 것을 말했을 뿐이었다. 지혜는 그런 현민을 보며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다면 화를 내도 부족한 상황에서 현민은 자신을 향해 '부탁'하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까지도 예상한 현민이 자신의 생각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오늘의 전쟁에서 너는 분노하 거야. 아마 어제보다 더 잔인해지겠지. 모두가 '악마'라고 부를만큼." "분노? 어째서?" 자신이 화를 낸다는 것에 현민은 의아해했으나, 지혜는 설명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일의 전쟁에서 너는 숨겨왔던 모든 능력을 드러낼 거야. 어제의 능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 거부할수 없는 두려움. 네가 했던 이 말은 숨겨 온 능력을 염두에 두고 말한거 아냐? 그런 능력이라면 '신'에 가까울테지." "...자신할 수 있어? 나는 변했어." 현민은 자세히 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생각이 확실한지를 물었다. "아무리 네가 바뀌었다고 해도 이것만은 변하지 않아." 지혜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민은 생각해야만 했다. 자신이 숨겨 온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최악의 상황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숨겨 온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게 내가 예상하고 있는 전부야. 마지막의 선물이라고 생각해둬." 지혜는 현민으로부터 돌아섰다. 자신이 그를 '장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생각 했다는 것을 들켰으니, 더 이상 그와 가까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뻔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안했어." 지혜는 현민에게 사과한 후 조용히 사라지려 했다. 자신을 부르는 현민의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뛰어서 내려갔을지도 몰랐다. "지혜야." 멈칫! 막 옥상을 내려가려던 지혜는 뒤에서 부르는 현민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벅저벅. 현민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지혜는 조슴스럽게 몸을 돌렸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으니, 현민이 때린다면 기꺼이 맞아줄 생각이었다. 지혜의 숙여진 고개 앞으로 현민의 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온 현민의 발은 지혜의 앞에서 멈춰 섰다. 지혜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드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있던 현민의 몸이 흔들렸다. 흔들. 그리고 현민의 몸이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혜가 예상도 못한 현민의 움직임에 굳어 있을때, 등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네가 미워."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에 지혜는 할 말이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장난감 취급했다면 그녀 스스로도 기분 나빴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현민이 말한 '미워'라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어, 그녀의 생각은 어느새 자신에게 까지 돌아왔다. 이대로 현민과의 관계가 끝난다면 자신은 삶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옛날로 돌아가 인형처럼 살아갈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녀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계산하고 있을 때, 등 뒤에있던 현민의 손이 앞으로 넘어왔다. 스윽. 그리고 살며시 그녀릉 안았따. "너를 미워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해." 두근! 한순간 지혜의 가슴이 진실로 두근거렸다. 다정하게 느껴지는 현민의 목소리에는 진심만이 담겨 있었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진실된 고백(?)에 두근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통 첫 번째의 만남은 우연이라 하고, 두번째의 만남은 인연이라 하지. 그리고 세 번째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하는거야. 우리의 만남은 두번. 운명이 아닌 인연. 네가 계속한다면 우리는 족이 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최소한.... 친구는 될 수 있어." 속삭이는 듯한 현민의 목소리에 지혜는 당황했다. 왠지 지금의 이 상황이 너무나 쑥스러웠다. 지혜는 붉어진 얼굴로 다급히 현민의 품을 빠져나왔다. "너, 너, 너......." 얼굴조차 돌리지 못하고 있는 지혜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보여 주던 현민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쑥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현민도 그것을 느꼈는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당하기만 했는데 복수할 기회가 온것이다. "왜 그래? 우리 지혜가 원하던 게 이런 거 아니었어?" 다시 한번 어깨로 올라오는 현민의 손에 깜짝 놀란 지혜가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그곳에는 어린아이처럼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는 현민이 있었다. 다정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모습. 그것은 수진과 현진의 집에서 잠깐 보았던 현민의 그 모습이었다. 피 묻은 옷을 입구 있는데도 그의 미소가 너무나 보기 좋았다. 지혜는 이렇게 느꼈다. "응?" "아......" 현민의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던 지혜는 의문 섞인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ㅏ 자신이 어떠한 상황인지도 말이다. 지혜는 조심스러운 눈길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용서해...주는 거야?" 살짝 숙여진 허리. 등 뒤에서 깍지를 끼고 있는 손. 45도를 이루고 있는 얼굴.살짝 올려다보는 듯한 눈. 만화나 소설에서 많이 나오는 가장 이상적인(?) 자세였다. 그러한 지혜를 보며 현민이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연습했냐?" 빠직!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현민 때문에 약간 화가 나기는 했으나, 지금은 참아야 했다. 자신의 잘못은 현민의 잘못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랗기 때문이다. 지혜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용서......" 아니, 물으려 했다. "수진이랑 현진이가 동시에 했을 때는 진짜 귀여워 보였는데 네가 하니깐 별로다." "야!" 현민의 한마디에 욱하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수진과 현진이 어째서 이런한 일을 했는지가 심각하게(?) 궁금했지만 그것은 일단 넘어가고, 욱하는 바람에 소리를 지른 지혜는 자신이 지르고도 깜짝 놀라 현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화를 내리라 생각했던 현민은 이전과 변함없는 표정으로 지혜를 바라보고 있었다 툭. "그래야 우리 악마답지." 현민은 마치 꼬마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지혜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단순한 행동이었으나, 지혜는 현민의 대답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정해지는 것은 없어. 운명은 과거를 돌아보고 말하는 것뿐, 미래를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너도 말했잔아? 인연이란 실이 얽히고 설킨 게 운명이라고. 복잡하게 이어진 인연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네가 모든 사람들을 계산 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은 현재를 바라보고 계산할 것이지, 미래를 바라보고 계산한 게 아니야. 지금 한 계산과 10년뒤에한 계산이 같을 것 같아? 내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절.대. 아닐걸?" 현민은 허리를 구부려 얼굴을 가까이했다. "산다는 것은 예상치 못하기에 재미있는 거야." 지혜는 할 말을 잃었다. 설마 그것까지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음속 깊숙이 숨겨놓은 것까지도 들킨 것이다. 현민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의 말은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정확했다. "그.러.니.까. 진심으로 웃으면서 살아봐." 지혜의 얼굴로 손을 가져간 현민은 억지로 그녀의 입에 미소를 만들었다.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미소이기에 웃긴 모습이었지만, 지혜 스스로 웃으면서 그녀의 미소는 예뻐졌다. '따뜻해.' 날씨가 추웠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두 볼에 닿아 잇는 현민의 손은 너무나 따뜻했다. 지혜는 그 따뜻함에 온몸이 나른해졌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올린 지혜는 자신의 손으로 현민의 손을 덮었다. "......" "...내 입술은 비싸니깐 그것까지 바라지는 마." 지혜가 두 눈을 감고 그 감각을 즐기고 있을 때, 떨리고 있는 현민의 음성이 그녀의 감상을 깨뜨렸다. 천천히 눈을 뜨고 있는 지혜의 얼굴을 보니, 그것이 매우 불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지혜의 그러한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자신에게 두 손이 붙잡힌 채로 불안에 떨고 있는 한마리의 강아지(?)가 보였지 때문이다. 지혜가 현민의 이러한 모습을 그냥 넘길 리 없었다. 지혜는 뜨고 있던 눈을 몽롱하게 하며 현민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60년 할부로 어떻게 안될까?" "하, 할부는 안 되는데." "......" "......" "...풋!" 나름대로 분위기도 잡혀 있기에 금방이라도 입술이 부딪칠 것 같았지만, 현민의 엉뚱한 대답이 지혜의 웃음보를 건드렸다. 현민은 그녀의 웃음이 멈출 때까지 양손이 잡힌 채로 기다려 두었다. 하지만 현민은 몰랐다. 한순간 자신의 순결(?)이 위험했다는 것을 말이다. 솔직히 현민의 엉뚱한 대답만 아니었다면 한 번쯤 노려볼 생각의 지혜였다. 이미 자신의 첫 키스는 그에게 주기로 계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참 웃은 지혜는 기분좋은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너의 이런 부분이 정말 좋아." "네가 친구라 여긴다면 나는 친구가 되어줄 거야." 현민과 지혜는 더 이상의 장난을 그만두고 원래의 모습이로 돌아왔다. "그래, 그보다......" "힌트는 충분해." 지혜가 말도 하기 전에 현민은 대답했다. "내가 분노한다는 건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거겠지? 내가 모든 능력을 드러낸다는 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서고 말이야. 네가 나를 아는 만큼 나도 나 자신을 잘알아." 현민은 웃었고, 지혜는 생각 했다. "역시 신기해." "네 능력보다는 덜 신기한 것 같은데?" "거봐. 지금 또 내 생각을 예상했잖아? 나는 신기하다고만 했을 뿐인데, 너는 그게 뭘 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 지혜는 놀라워했지만, 현민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조금 전의 상황에서 '신기해' 라는 말이 나왔으면, 내가 말했던 능력인 게 당연하잖아? 이런 건 능력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당연한 거야." "그런가?" 지혜는 속아 넘어갈 듯 말 듯한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현민의 말이 거짓말인 것은 아니지만, 지혜의 표정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괜찮아. 그 정도는 맞은 것도 아니니깐." "또, 또." 또 한번 말이 끊긴 지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틀리면 놀리기라도 할 텐데, 자신이 예기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대답부터 하니 뭔가 답답해도 할 말이 없었다. "대충 넘어가. 그리고 내가 누구한테 싸움을 배운지는 알지?" "발록?" "응." 아무리 꾸며 낸 모습이라고 해도 가까이 지낸 것은 사실이었기에 지혜는 현민에 대한 대부분의 일을 알고 있었다. "100일, 강상현실만 따지면 300일인가? 그동안 목숨을 걸고 싸움을 배웠지. 묘라는 정령이 있어서 아무리 맞아도 죽지는 않고, 설사 죽는다 해도 가상현실이니깐 목숨 걸고 실전으로 배웠다랄까?" "하지만 그건 가상현실이고 여기는 현실......" 절레절레 현민은 고개를 흔들며 지혜의 말을 끊었다. "현실에서 배운 걸 『싸울아비』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싸울아비』에서 배운 걸 현실에서 사용 못할 것 같아?" "아, 아무리 그렇다 해도......" 현민은 지혜가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알고 있었기에 질문보다 먼저 대답했다. "다를 거 없어." "응?" "나 체감도가 80퍼센트거든." "80?! 말도 안 돼!" "말 돼. 내 정신력이 21이니깐." "아......" 지혜는 할 말을 잃었다. 비교가 될지 모르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지능이 20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평균 13인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 수치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데 현민의 정신력이 21이란다. 수치로만 따지면 20보다 1이나 더 높은 숫자였다. 1~15까지는 커다란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그다음부터는 1올라가는 것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싸울아비』에서 현민의 21이라는 수치는 믿을 수 없는 수치였다. 참고로 말하면 현민의 지능이 19였다. 19인 현민과 20인 지혜의 머리가 이 정도로 심하게(?) 차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체감도가 높다 해서 그런 움직임이 가능해? 현실의 감각으로 배웠다고 해도 그것은 정신이 배운 것이지 육체가 배운 게 아니잖아." "네가 발록한테 배워봐. 절대 그런 소리 안 나올걸?" 현민은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지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봐주는 거? 절대 없었다. 훈련? 그런 건 하지도 않았다. 발록에게 수업을 받은 첫날 부터 24시간 동안 무작정 얻어 맞기만 했던 존재가 현민이다. 언제나 실전, 죽어도 상관없다는 게 발록의 교욱 방침(?)이었다. 그런 교육(?)을 1년 가까이 받았으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가상현실이기에 정신만 배웠다? 현신에서의 몸은 따라가지 못한다? 아니었다. 애초에 현민은 본래의 몸(능력)을 가지고 발록에게 싸움을 배웠기에 가상현실에서 실력이 늘어나는 만큼 현실에서의 실력도 늘어났다. 능력치를 바꾸지 못하는 가상현실에서 발록의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현실의 몸도 가상현실의 수련을 따라가야만 했다. 현민은 살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사람의 적응력이란 그만큼 놀라웠다. "고생했나 보네." "당연하지! 그리고 저번에 내 몸 만진 적(?) 있지?" "가슴 만졌을 때?" "......" 약간(?)이상한 지혜의 말에 현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말한 거 아냐?" 딱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던 현민은 일그러진 표정 그대로 말을 이었다. "...으응. 그때 이상하다고 했잖아." "맞아. 물구나무를 섰다면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게 당연한데, 팔은 물론이고 몸 어느 근육도 부풀어 오르지 않았었지." 지혜는 1년 전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떠올리며 그때 보았던 현민의 상태를 자세히 말했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지 않았던 건 아냐. 나는 확실히 힘을 주고 있었으니깐." "그럼?" "다만,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에 힘이 들어갔을 뿐이지." "아~!" "근육도 자주 사용되는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지? 내가 운동을 하는 주목적은 그런 사용되지 않는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야." 지혜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현민의 팔뚝으로 향했다. 옷으로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전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확실히 단단하면서도 울퉁불퉁하지 않았ㄷ. "그리고 그런 근육을 키우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지, 보다 빠르게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어떻게 어디로 움직일지를 말이야. 그런 힘이 있고 탄력이 좋은 근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주먹은 아프지도 않아." 솔직히 주먹에 맞아서 아프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발록의 주먹에 익숙해져 있기에 웬만한 주먹 정도는 아프지 않게 느껴지는 현민이었다. :그럼 아까는 일부러?" "응. 몸 상태도 안 좋았고, 맞아도 별로 안 아프니깐." 지혜는 현민의 대답에 어의가 없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얻어 맞고 있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발록에게 배운 건 상대를 죽이는 것이지, 쓰러트리는 게 아니야. 만약 시작한다면 난 누군가를 죽일 수 밖에 없어." 흠칫! 어이없어 하던 지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는 현민의 한마디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싸울아비』에서 잔인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곳은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 이었다. "그 말... 무슨?" "말 그대로야. 죽이기 직전에 멈추는 것은 가능해도 그 이하는 불가능해." 그것이 현민의 싸움 방식이었다. 언제나 목숨 걸고 싸워온 현민에게 '어중간함'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죽이거나, 죽기 직전에 멈추거나. 그동안 해온 어떠한 싸움도 그 두가지의 결과 밖에 없었다. 현민은 '죽음'이라는 완벽한 무력함 말고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걱정하지마. 나는 환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 정도로 어리석지 않아. 그리고 내가 말했지? 만약 누군가를 죽이게 된다면 그 처음은 바로 나 자신이야." 현민은 지혜의 어깨를 주무르며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러니깐 걱정말고 먼저 가봐. 치우가 찾는다." "치우가 찾는다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쿡! 날 뭐로 보는거야? 우리 반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지금 반장이랑 애기 하고 있을걸?" 현민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잇던 지혜는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현민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가 생각 이상으로 넓었기 때문ㅇ이다. "그런 것도 예상할 수 있어?" ?물론. 그러니깐 나중에 질투하지 말고 빨리 가봐." "훗! 이 악마님께서 질투를 할 것 같아? 어림없는 소리지."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지혜의 발은 옥상의 문을 향하고 있었다.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면, 스스로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악마? 악마가 어디잇는데? 쿡쿡. 미안하지만 지금 내 눈에 악마는 보이지 않아. 그냥 남들과 똑같이 사랑을 시작하는 열여덟 살의 여학생만 있을 뿐이지." 그렇게 말한 현민은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옥상의 가장자리로 걸아갔다. "너는 안 내려가?" "이 꼴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아? 약간 무모하지만 교복부터 사와야지." "아 참. 현민아!" "응?" 대답은 했으나 현민은 돌아보지 않았다. "넌 나에 대해서 몰라." 현민의 시선이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지혜가 자신의 치마를 들어올렸다. 속옷이 분홍색이라는 것에 눈길이 먼저(?) 갔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의 옆구리 쪽에 흰색의 무언가가 끼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직 한 개비가 남아 있거든." 쾅! 지혜는 도망가듯 내려가 버렸고, 옥상의 문이 오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모를 리가 있나. 너무 잘 알아서 문제지." 현민은 돌아서서 지혜가 내려간 옥상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마저 꺼내면 너와 나의 관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걸......" 확실히 문제가 되는 위치(?)... 아니, 문제가 될수 있었다. "내가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확신할 테니깐." 현민이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조용히 속삭이고 있을때, 내려갔다 생각했던 지혜는 아직도 옥상의 입구에 서서 두손을 가슴에 얹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엇다. "이게... 이게 수진과 현진이 말하던 감정인가? 하,하하! 뭐야, 이 감정?! 어째서 죄책감이 드는거지? 어째서 고맙다고 느끼는 거야? 어째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드는거냐고! 어재서... 어째서..." 이혜는 소리죽여 외쳤다. "소중하다고 생각되는거야......" 마지막의 그 한마디가 현민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었다. 제101장 정령들의 비밀 "시하야, 애들 다 모였어?" 막 길드 하우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미호는 시하부터 찾았다. "응. 네가 마지막이야." 시하의 말대로 길드 하우스의 내부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친구들까지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전부 모인 것이다. 미호를 마지막으로 전부 모인것을 확인한 시하는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드디어 현민이 대형 사고를 쳤어. 모두 알고 있겠지?" 모를리가 없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현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싸움으로 모두의 시선을 모았는데, 그 싸움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이겨 버렸으니 시끄러운 것은 당연했다. 시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모인 것은 현민을 도와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야." 웅성웅성. 시하가 주제를 말하자 길드 하우스의 내부가 시끄러워졌다.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인원수가 많다 보니 시끄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현민에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까?" 누군가가 던진 질문에 웅성거리던 길드 하우스가 조용해졌다. 그들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현민의 엄청난 능력을 보고 온 그들은, 과연 자신들의 도움이 그에게 필요할지 의문을 가지고 있엇다. "마지막에 봣던 용으로 변하면 웬만한 유저들 정도는 전멸이잖아." "맞아. 괜히 갔다가 우리까지 휩쓸리는 거 아냐?" 모두의 생각이 일치되면서 그들의 시선은 시하에게로 모아졌다. 그 이유를 듣기 위해서였다. 주변을 한번 둘러본 시하는 자신이 정리한 내용을 모두에게 알려 주었다. "어제의 그건 단순한 '싸움'에 불과해. 너희들도 대부분의 나라가 『싸울아비』에 '군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끄덕. "응."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유저들이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군대를 이루고 다니는 만큼 그들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잇었다. "어제 싸움에 참가한 건 그 '군대'의 소수 인원일 뿐, 전부가 참가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어." "단순히 정찰병이란 애기야?" "응." "그럼 그 많은 인원은?" "용병, 또는 일반 유저들. 현민이 가지고 있는 아이탬이나 능력은 그 누구라도 탐낼 만한 거니깐. 너희들도 구경해봐서 알잖아?" 시하를 보고 있던 아이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현민의 아이템은 대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은혜의 경우, 현민이 직접 인첸트까지 해줬으니 그 능력을 더욱 잘 알고 있엇다. 현민이 그들에게 아이템을 비렬 준다고 한 날,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아이템 수가 적어 가위바위보 배틀(?)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모든 유저의 공통 퀘스트도 있고 말이야." 첫날의 전쟁에서 현민의 변덕으로 퀘스트를 클리어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의 퀘스트는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도 현민의 캐릭터가 삭제 되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퀘스트 같았다. "그래서 내가 단순한 '싸움' 이라고 한 거야. 모두가 소수의 파티를 이루거나 길드 단위로 참가한 오합지졸이었기 떄문에 인원수가 많았다 하더라도 별 볼일 없었던 거지." 시하의 분석으 ㄴ정확했다. "그렇다면?" "맞아. 오늘부터의 싸움은 다른 거야. 아니, '싸움'이 아니라 '전쟁'이라고 말해야 겠지." 시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던 아이들은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싸움'과'전쟁'의 차이가 주는 무게 때문이었다. "그래서 물어본 거야. 현민을 도울 것이, 말것인지." "네 말대로라면 당연히 도와야지! 어차피 가상현실인데 뭐 어때?" 재영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시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한숨 나오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아." 시하의 한숨에는 인생의 피곤함(?)이 담겨 있엇다. 대충 의미를 해석하면 '저런 걸 친구라고...' 정도?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미호는 죽일 듯한 시선으로 재영을 째려봤다. "누가 재 좀 말려 봐. 저게 아주 우리 시하를 한숨 내뱉다 죽게 하려 하네." 시하의 연인인 미호에게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잘못하면 미호가 직접 움직일 분위기여씩에 주변의 친구들은 형식적으로나마 재영을 막을 수 밖에 없었다. "'싸움'이 '전쟁'으로 바뀌었다는 것 말고 다른 문제라도 있는거야?" 온몸을 검은색으로 도배하고 천장에 붙어 있던 한 명의 여성이 소리없이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그녀도 내심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시하의 한숨이 궁금했다. "일단 커다란 문제는 우리가 전쟁에 참여할 경우 상대해야 하는 존재가 '군대'라는 사실이야." "정보?" "자금력?" "권력?" 머리가 좋은 몇몇 아이들은 시하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단번에 잡아내며 그것에 따라오는 문제점을 말했다. "맞아. 그들은 나라 차원에서 지원을 받기 때문에 우리보다 월등히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 거야. 게다가 엄청난 자금력으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도 분명해. 그것에 관해서는 저번에 태산이가 사고 친 걸 기억하면 될 거야." 끄덕. 워낙 대형 사고였기에 모두가 쉽사리 이해할 수 있었다. 정보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그들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조금의 머뭇거림도 보이지 않았다. 학생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태산에게 큰 돈을 주고 정보를 산 것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 주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한차례 그들에게 시달렸던 태산은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전쟁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정보가 알려지는 것이야. 우리야 정보가 알려진다고 해서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지만, 현민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으니깐." "저번에 했던 말과 같은 거지? 우리로 인해 현민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 "응." 이미 대부분의 국가가 현민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시하와 나머지 아이들은 그것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나라가 숨시고자 하고 있으니, 그들이 안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도 가면을 쓰는 건 어때? 어차피 이때를 위해 준비해 둔거 아냐?" 누군가의 의견에 모두가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릿광대 가면을 쓰고 있는 현민의 모습이 부러워 만든 것인데, 그 사용이 불편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사용하지 않게 된 비운의(?) 가면 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가면이 있었구나." "그러게." 자신들에게 가면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들은 하나 둘의 품(인벤토리)에서 가면을 꺼냈다. 현민의 모습을 부러워하면서 만들었기에 능력은 없지만 외형은 멋있었다. 가면은 눈 밑으로 가리게 되어 있는 마스크 형태였고. 게다가 전체적으로 검붉은색이어서 무척이나 멋져 보이는 가면 이었다. "그럼 이제 해결된 거지?" "아직." 시하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체계를 갖추고 있고, 전문적으로 병법과 전략을 사용할 줄 안다는 거야." 여기 있는 어느 누구도 실력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몬스터를 상대로 싸워왔기 때문에 사람과의 싸움에 익숙한 사람은 얼마 없었다. 그런 그들이 '군대'와 부딪친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바로 전멸이다. "만약 우리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운이 없으면 오늘. 운이 좋으면 내일 캐릭터가 삭제 되는 거지." "으음. 차라리 현민이 다시 게임을 시작하면 어때? 이번에는 평범한 직업으로. 우리가 도와주면 되잖아?" "이미 늦었어. 너희들도 봐서 알잖아? 현민이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지. 그게 한 나라의 손에 전부 들어갔다고 생각해봐. 그날로 즉시 『싸울아비』에 독재자가 생겨날껄?" 길드 하우스에 모여있던 아이들은 시하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만큼 현민의 아이템은 대단했다. 다른 것은 제외 하고 마녀의 빗자루만 보더라도 그것 하나로 수십만 이상의 유저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럼 시하. 네 생각은 뭐야? 너라면 하나쯤 생각했곘지?" 집 안을 날아다니고 있던 피터팬(?)이 시하에게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아졌다. "나는 오늘의 전쟁이 아닌 내일의 전쟁에 참여했으면해." "내일? 그러면 오늘 당장이 위험하지 않아?" 시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오늘의 전쟁에 모든 나라가 참여하지는 않을거야. 욕심이 많은 나라는 먼저 죽이기 위해 나서겠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현민의 숨겨진 능력을 알기 위해 기다릴 테니깐." 길드 하우스의 내부는 조용했다. 모두가 시하의 의견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하는 그런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길드 하우스에슷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의 표전은 하나같았다. 모두가 긍정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현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확실해. 하지만 두 번의 전쟁에 전부 다 도움이 될 순 없어. 지금 목숨이 아슬아슬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가 전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거든." 시하가 그렇게까지 말했지만 그 누구도 싸우기 싫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싸우다 죽는다면 현민으로 부터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현민이라면 미안한 마음에 충분히 그럴 사람 이었다. 현민과는 달리 죽음과 친근한(?) 그들은 캐릭터의 삭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엇다. "자. 그럼 우리는 내일 전쟁에 참여한다. 모두 불만 없지?" "물론-!" 길드하우스에 있는 모두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지혜가 계산한 대로 미래가 움직이고 있었다. 학교를 무사히(?)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현민은 편안한 마음으로 전쟁을 준비했다. 어차피 홀로 하는 전쟁이었기에 계획 가틍ㄴ 것은 필요도 없었다. 그저 본능에 맡기고, 상황에 따라 적들을 죽이면 그만이다. -접속하기 [케릭터 룬, Lv431.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2월11일(금)7시54분. 모든 준비를 마친 현민은 두 번째 전쟁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촤르르르르륵!! "헤헤헤, 장~난감. 장난~감, 장난감~ 훌쩍!" 현민이 남아있는 1만5천 명의 유저들과 싸움을 하고 있는 시각. 우리의 담비는 엄청난 양의 장난감들을 자신의 보물 창고로 나르고 있었다. 어두운 동굴 속, 마치 산 하나를 통째로 뚫어놓은 듯한 그곳에는 담비의 장난감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현민이 가져야할 아이템을 담비가 빼돌리며(?) 어느새 이만큼이나 모은 것이다. 이전에 현민이 방에서 보았던 장난감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담비는 아무도 없다 생각하며 마음껏 놀고 있었지만, 그곳에는 담비 이외의 두 존재가 몰래 숨어서 그런 담비를 지켜 보고 있었다. 한 명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멋지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기품 있게 생긴 노인 이었다. "또 늘엇군요." "... 죄솝하니다." 한명은 한탄 했고, 한명은 사과햇다.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저 장난감, 아니 아이템을 줄이는데는 실패 했기 때문이다. 저 많은 아이템을 전부 기억하고 있는지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없어지기만 하면 주변 정령들을 괴롭혔기에 방법이 없었다. 가장 안쪽에 묻혀서 잊혔다 생각한 아이템을 가져가도 귀신같이 알아내는 존재가 담비였다. "담비로 인해 찾아온 정령들이 몇이나 되는거죠?" 담비가 차지한 이곳은 그 기운이 맑아 많은 정령들이 놀러오는 일종의 놀이터 비슷한 곳이었다. 그런 곳을 차지하고 있으니 모든 정령들로부터 불만 어린 말이 들려오고 있던 것이다. 힘이라도 비슷하다면 덤벼 보겠지만, 이미 상급 정령을 뛰어넘고 있는 담비의 능력 때문에 하소연만 하고 있는 정령들 이었다. "이제는... 없습니다. 저번에 한번 크게 혼자더니, 주변 정령들을 협반 한 모양입니다." "하아......." 그런데 이제는 그것조차 하지 못하게 협박을 했단다. 그녀의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머니께서 잘 타이르시면... 안되겠습니다? 그래도 담비가 어머니의 말씁은 잘 듣지 않습니가?" "타이른다라...... 하아." 그녀의 입에서는 다시 한 번 한숨이 새어 나왔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 "얼핏 느껴지는 기운으로는 최상급정령을 넘어 섯군요." "하급 정령이 말입니가?!" 노인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크게 소리쳤다. 노인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으나, 담비는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듯 혼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앗다.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가?" 노인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수천 년을 살아온 그의 상식선에서 그러한 일은 있을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령은 자연의 의지를 대신하는 존재이기에 예외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인은 자세한 설명을 위해 걸쭉한 것이 묻어서 반쯤 녹아 있는 딱딱한 무언가를 품속에서(?) 꺼냈다. 얼핏 봐도 누군가의 입에 들어 있었던(?)게 틀림없어 보였다. "담비가 사탕이라 부르는 이것 때문이더군요." 여인이 꺼낸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노인은 인상부터 찡그렸다. 그것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염화와 묘, 윈디아의 경우 정령계에 가져오지 않고 현민에게 받은 즉시 먹어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담비의 입을 열고(?) 가져온 것이었다. 먹을 것에 관해서는 현민 조차 당해내지 못하는 담비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가히 그의 노력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노인의 얼굴은 이내 의아해졌다. 혹시나 하고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지만 여인의 손안에 있는 정령석에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느끼기에 정령석은 색깔 있는 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여인은 혹시나 하고 다시 애를 쓰는 노인을 안쓰러운(?)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노력해봐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크, 크흠!" "이 돌은 어떠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령의 한계를 늘려 줄 뿐이니까요." "한계? 아!" 약간의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노인은 여인의 설명을 이해했다. "우리 정령들은 가지고 있는 능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그 이상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성장'을 하죠. 이 돌은 그 한계를 늘려 주는 겁니다." "그래서 네 명의 문제아들이 성장을 하지 않는 거군요." 끄덕.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갖고 있는 한계가 늘어나다 보니 꼬마 정령들의 힘도 그 끝을 모르고 늘어나는 거죠." 현민의 정령이 다른 사람의 정령보다 강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만약 보통 하급 정령의 한계치가 50이라고 하면 50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정령은 그 한계치를 늘리기 위해 성장을 하는대, 현민의 정령들 같은 경우 한계치가 계속 늘어나다 보니 성장은 안하고 힘만 늘어나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성장한다면, 이 세계의 기억 속에서 가장 강한 정령들이 탄생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서 성장하기를 바라야 겠군요." 빠각! "컥! 어, 어째서......?" "생각이라는 것 좀 하고 사세요!" 여인은 얼마나 흥분한 것인지 격식도 잊어버리고 노인의 뒤통수를 날려 버렸다. "어서 빨리 성장했으면 좋겠다고요? 당신 지금 재정신이에요?" 그녀가 화를 내는 데는 이유가 있엇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단계가 되려면 적어도 최상급 정령이 되어야 하는데, 한계치가 높은 현민의 정령들이 그 단계 까지 도달하려면 일반 정령의 몇십, 몇백 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욱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그들에게 그만큼 오랜 시간을 시달려야 한다면, 차라리 지금의 능력을 가진 그들에게 일평색을 시달리는게 나았다. "담비가 중급 정령이라면 어떨 것 같으세요. 네?" "...끄, 끔찍할지도." 잠시 고민하던 노인은 인상을 찡그리며 힘겹게 대답했다. 지금도 이 정도로 말썽을 부리는데, 만약 중급 정령이 된다면 어떤 경과가 나올지 그의 상식선에선 예상되지 않았다. 성장을 한 만큼 수집(?)의 범위가 더욱 넓어질지도 모른다. "묘가 중급 정령이라면?" "무서울지도......" 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장하면 머리가 좋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도 묘의 장난이 심각한데 머리까지 좋아진 묘가 장난을 친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루하루를 긴장하며 피곤하게 살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윈디아가 중급 정령이라면?" "섬뜩할지도......" 안그래도 발랑(?)까진 것이 성장 까지 한다면 다른 의미(?)에서 난리가 날 것은 분명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노인은 자신이 맞은 이유가 타당(?)하다고 수긍했다. 자신이 봐도 맞을 말을 한것이다. 노인은 충분히 반성했으나 여인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문제아는 4명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무제아는 나머지 3명과 다른 의미에서 문제아였으나, 잔뜩 흥분한 그녀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염화가 중급정령이라면?" 노인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귀, 귀여울지도......" "......" "......" 그곳에 대화가 사라졌다. 그들이 묘한 침묵에 감싸여 있을 때, 담비는 어디론가 이동하려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장난감의 정리(?)도 끝났으니 자랑하려는 것이ㅏㄷ. 담비의 신형이 조금씩 땅 속으로 가라앉으며 그 장소에서 사라져 갓다. 보물창고에서 사라진 담비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분홍색의 레이스가 휘날리고(?) 있는 소녀틱한 방의 한쪽 구석이었다. 그방 안에는 원래의 주인뿐만 아니라 담비가 찾고자 햇던 나머지 두 정령들도 같이 있었다. "훌쩍! 다들 여기......" 기쁜 얼굴로 다가가던 담비 였으나, 얼굴에 있는 미소는 그들에게 다가갈수록 사라져갔다. "흑, 흑흑, 훌쩍!" 염화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적의(?)담비라 해도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는 웃을 수 없었다. 자리에 멈춰선 담비는 묘와 윈디아를 바라보았으나,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모른다는 표시를 보였다. 현민의 소환 이후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염화는 눈물부터 흘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4시간 전이다. 염화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묘와 위디아는 돌아오자 마자 울음을 터트리는 여화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물이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들이 달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염화의 눈물은 쉽사리 멈추지 않아 결국 그들이 먼저 지쳐 버린 상태 였다. "염화야, 이거 줄게 그만 울어. 훌쩍!" 담비가 내민 것은 정령석이었다. 비록 그것을 내밀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 가득히 아쉬운 마음을 담고 있었지만, 그 누가 달라고 해도 주지 않던 것을 선뜻(?) 내민 것이다. 얼마나 놀란 것인지 염화도 울음을 멈추고 담비를 처다봤다. "이제 뚝! 헤헤." 뜻하지 않게 염화의 울음을 그치게 한 담비는 뿌듯한 얼굴로 묘와 윈디아를 바라보았다. 한편, 담비가 주기에 받긴 했으나 염화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누가 가지고 있던 것처럼 걸쭉한 것이 잔뜩 묻어있는 그것은 촉감 자체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염화의 커다란 눈망울에 또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울먹울먹. "딱! 두 번밖에 안 빨았엉." "흑!" 결구 또다시 울음이 터지고 말앗다. 그런 여화가 눈물을 그친 것은 담비가 오고 나서 2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훌쩍!" 담비와 묘, 윈디아는 염화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묘와 윈다아의 경우 염화가 운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섣불리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런 건 눈치 없는 담비가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과연'이라고 해야 할지, '역시나'라고 해야 할지 우리의 담비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 울었어?" 담비의 질문을 들은 염화는 또다시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지 눈물부터 글썽 거렸다. 하지만 이미 많이 울었기 때문에 곧바로 눈물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오빠가 울어서." "......!" 대답을 들은 3명의 정령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염화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현민은 절대로 눈물을 보일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민은 염화가 슬프다 판단햇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자연의 일부라 할수 있는 정령들에게 죽음이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장인하거나, 그 수가 많다고 해도 우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이 염화라 해도 말이다. "정말 우리 오빠가 운 거 맞아?" 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물었다. 그들 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현민과 함께한 그녀조차도 현민의 눈물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많이 울고 다닌(?)현민이었으나, 정령들에게 들킨 적은 한 번도 없었나 보다. 끄덕. 염화의 고개가 끄덕여졌고, 이번에는 윈디아가 물었다. "왜?" "몰라. 불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울었어." 움찔! 염화의 대답을 들은 담비가 눈에 띄게 긴장했다. 불타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조금 전(?) 담비가 장난감을 빼앗아온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장난감을 줍고 있을 때 오빠가 자신을 봤다면 엄청 혼날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며칠 동안 정령석 금지령(?)이 떨어질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담비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담비의 눈에는)묘와 윈디아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담비는 평소 사용하지 않던 머리를 굴리며 지금 상황을 빠져나가기(?)위해서는 자신도 화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화를 냈다. "어떤 삐~ 하고, 삐~~ 해서 삐~ 삐~ 할 삐~ 가 우리 오빠 울려?! 이 삐~~~~~~! 훌쩍!" 묘한 정적이 그곳에 내려앉았다. "담, 담비야, 너 그말 누구한테... 누군한테 배운 거야?" "앙? 훌쩍! 옆집 언니가 자기 주인이 찝쩍 거린다면서 말하던데...... 발음이 틀렸엉?" 순진한(?) 담비는 엉뚱한 것에 걱정하고 있었다. 한편, 담비를 따라 이동한 여인과 노인은 폭풍(?)과 같은 담비의 욕설에 말을 잇지 못했다. "...담비가 말하는 옆집 언니가 땅의 정령인 노리스를 말하는 건가요?" "이 근처에 있는 거라곤 그 아이뿐이니......" "알아서 교육 시키세요." "넵!" 노인은 이제 갓 군대에 들어간 이등병처럼 빠릿빠릿하게 굴었다. 양쪽 눈가가 파랗게 물들어 있는 것을 뵌, 이곳에 오기전 무슨 일(?)을 당한 것 같았다. 지저분해진 정장이 그 상황을 짐작케 하고 있었다. "그 말... 오빠 앞에서는 절대 하지 마." "우웅. 알았어." 장난기 심한 묘가 담비를 말릴 정도로 조금 전의 욕은 대단(?)했다.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 됐을 때 윈디아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오빠가 울었다면 복수를 해야 할 텐데." 번쩍! 움찔! 한순간에 염화의 방에 6개의 불(?)이 번쩍였고, 깜짝 놀란 염화는 온몸을 움츠렸다. 3명의 정령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견제했다. 이처럼 좋은 핑계를 그냥 넘길순 없었다. "내가 말한 거야." "한 번쯤은 양보하지?" "이번엔 나도 할 거야. 훌쩍!"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접전 속에서 그들의 주먹이 하나로 모였다. "가위 바위 보!" 창 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인과 노인은 그들의 주인이 되는 현민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제102장 두 번째 전쟁의 시작 『싸울아비』에 접속한 현민은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눈을 떳다. 어제만 해도 푸른 들판이었던 곳이 현민의 전쟁으로 인하여 이렇게 변한 것이다. 황폐해진 그곳에는 먼지바람만 불고 있었다. "......" 현민은 그러한 주변을 둘러보며 마녀의 빗자루를 꺼냈다.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현민의 시야가 미치는 곳에는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으나, 그의 감각이 기묘한 위화감에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으음, 이럴 줄 알았으면 페튜니아 누나에게 부탁이라도 해놓는 건데." 운영자로서 유저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현민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 하며 부탁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지금의 상황이 그만큼 안 좋았기 때문이다. 메모라이즈는 하지도 못했고, 루인아츠나 마녀의 빗자루도 봉인을 푸는 데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문제는 그정도의 시간이라면 그가 죽기에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현민의 예상이 맞다면 그는 지금 어제와 비슷한 숫자의 유저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중이었다. "누나, 나중에 뽀뽀해드릴게요~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돼요?" 현민은 아무도 없는 곳에 조용히 부탁햇다. 모든 시선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으니, 운영자 중 한명은 보리라 생각 한 것이다. 그의 기도(?)가 통했음인가. 현민의 양쪽 시야에 일부의 마법이 목록으로 나타났다. 메모라이즈를 했다는 표시다. 대충 살펴본 현민은 그것이 어제 했던 메모라이즈와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족한 감은 있지만 이거라면 충분했다. "고마워요, 누나. 그럼~" 팟! 마녀의 복장을 하고 있던 현민의 아이템이 순식간에 어릿광대의 아이템으로 바뀌었다. 어제의 싸움에서 산산조각 난 모자는 없었지만, 양팔에는 루인아츠가 허리와 허벅지에는 4개의 단검이 착용되어 있었다. "시작해볼까요?" 콰콰콰콰쾅! 현민의 말이 기폭제라도 된 것처럼 그가 서 있던 장소의 일대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켯다. 그리고 공간이 무너지며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4개의 기둥이 드러났다. 누구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둥이 독립된 '공간'을 만들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역시." 무언으로 절대 방어 마법을 사용하여 폭발의 피해를 피할수 있었던 현민은 먼지들 사이로 드러나는 유저들을 보며 한숨부터 내 뱉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시간 맞춰 온 것은 현민 이었으니, 그들이 먼저 와서 준비 해놓았다 해도 그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현민은 오늘의 전쟁이 어제만큼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유저들은 현민과 상당한 거리를 둔 채 일정한 대형을 갖추고 둥근 모양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활을 쏘기에는 가장 안성맞춤인 모습이었다. "시작은 화살인가요?" 피피피피핑-! 현민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으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청난 양의 화살이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화살 하나하라늬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깃 날리는 소리가 전쟁터를 시끄럽게 했다. 가장 앞쪽에 있던 유저들의 화살은 지면과 수평을 이루며 현민에게 날아왔고, 그뒤로 갈수록 지면과 각도가 높아졌다. 다양한 각도를 이루고 있는 화살은 사방팔방에서 날아들며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위기라면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현민은 여유로웠다. "디그." 지면에 있던 현민의 신형은 한순간에 땅속으로 사라졌다. 옆으로도 피할 수 없고 위로도 피할 수 없으니, 아래로 피한 것이다. 구멍의 크기가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였고 그 깊이도 어느정도 되었기에, 수직에서 떨어져 내리는 화살이 아닌이상 현민이 맞을 일은 없었다. 절대 방어를 사용하여 막을 수도 있었지만, 현민의 마법은 그 충격까지 흡수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볼까요?" 화살에 맞을 일도 없어진 현민은 위에 있는 유저들을 어떻게 상대할지에 대해서 천천히 생각했다.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화살들을 보니 한동안은 계속될 것 같았다. "일단 지금의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 인데... 어떤게 좋을까?" 현민은 고민했다. 그중 하나의 방법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연속기(?)로 들어가며 커다란 피해를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가지 방법에 이어질 수 있는 공격들은 하나같이 그 피해가 미미했다. "그냥 세 개 다 쓰는 게 낫겠군." 결국 현민이 내릴 결론은 하나로 부족하니 3개를 다 쓰는 것이었다. "일단 루인아츠부터 깨우고." 최르르르륵!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현민이 착용하는 순간부터 대기하고 있던 루인아츠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전투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오늘 하루도 신나게 놀아보자고." -네! "분노하라, 강인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여. 파괴 속에 울부짖는 어둠과 같이 모든 존재를 저주하며 분노를 터트려라. 나의 몸이 너의 몸이 되고, 너의 힘이 나의 힘이되니. 우리 영혼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며 둘인 존재." 촤르륵! 출렁! 현민의 주문이 절반쯤 완성되자 루인아츠가 거대하게 부풀며 또 다른 모습으로의 변신을 준비 했다. "피의 진혼곡을 위해 어둠 속에 숨어있는 진실의 눈을 떠라...... 루인아츠." 촤르르르륵! 팔에서 시작된 비늘은 현민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갔고, 그의 상체를 빈틈없이 감싸며 하나의 갑주가 되었다. 날카로운 비늘과 뿔, 그리고 기다란 꼬리는 발로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모든 변화가 끝났을 때, 4개의 눈이 조용히 떠졌다. "윽! 조금 더 크게 만들 걸 그랬나?" 콰드득! 눈을 뜬 현민은 불평부터 내뱉었다. 루인아츠를 깨우기에는 지금의 장소가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 못했기 때문이다. 루인아츠로 인해 덩치가 커진 현민은 스스로가 만든 구멍에 끼여있는 상태였다. 현민은 하는 수 없이 마법을 사용했다. "디그." 그의 앞으로 터널이 생겨낫고, 현민은 위쪽을 둘러보며 유저들의 위치를 살폈다. 루인아츠 역시 투시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흙을 꿰뚫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 그럼 가볼까?" 유저들과의 거리를 파악한 현민은 어두운 터널을 빠르게 달려갔다. 유저들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공격이 끝나기 전에 그들의 근처까지 다가가야만 했다. 현민 본래의 몸놀림도 빠른데 모든 스텟이 300 증가되고 헤이스트까지 지속되자, 그는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유저들의 중심으로 이동할수 있었다. "여기쯤이 좋을까? 조금 더?" 기다란 터널의 중간에서 발걸음을 멈춘 현민은 위쪽의 유저들을 살피며 신주우하게 자리를 정했다. 똑같은 범위의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유저들이 밀집된 지역에 사용한다면 더 많은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화끈하게 시작해 볼까요?" 좌우로 양손을 펼친 현민은 각각의 벽면에 동일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민이 자주 사용하는 증폭 마법진 이었다. 장신구를 착용하지 않아 정신력이 부족(?)한 현민은 마법진을 이용해 정신력의 소모를 줄이려는 것이었다. 마법진이 완성되는 순간, 그 중앙에 손을 가져간 현민이 즐거운 표정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디~ 그(2서클)!" 파팟! 현민의 외침과 할께 그의 양손이 닿아 있던 벽면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휑하니 뚫려 있는 그곳으로는 푸른 하늘과 할께 떨어지고 있는 유저들의 모습이 보였다. 현민은 그의 손바닥이 닿아 있는 부분부터 시작되는 엄청난 크기의 구멍을 뚫은 것이다. 크기 뿐만 아니라 깊이도 상당했기에 그냥 떨어져도 살아남기는 힘들엇지만. 조금의 가능성도 남겨 놓을 수 없었던 현민은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또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대지의 심판(5서클)!" 양쪽으로 생겨난 거대한 구멍의 밑바닥에 대지의 심판이 사용되면서 그들의 죽음은 확실해 졌다. 날지 않는 이상, 이높이에서 뾰족한 그것들 위로 떨어지는데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크억!" "꺄아아...욱!" 구멍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현민의 마법이 사용되고도 한참 후에야 죽음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현민은 그것을 보며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스스슥! 조금 전에 사용했던 증폭 마법진이 다시 한 번 그려졌고, 그것의 완성과 동시에 현민의 입이 열렸다. "어스퀘이크(5서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대지의 진동은 현민이 만들어놓은 구멍의 주변을 일순간 무너 트렸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공격 범위에 현민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가 디디고 있던 땅도 대지의 진동에 영향을 받아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웃챠!" 상황이 이렇게 될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던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를 꺼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 보는 주변의 모습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현민이 있던 일대는 구멍이 뚫리고 무너지기까지 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정도라면 생각 보다 더 많이 죽었겠는데?" 원채 구멍이 커다랗고 깊어서 그런지 마법으로 무너져 내린 범위가 현민의 생각 이상으로 넓었다. 살상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유저가 죽었다 생각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당장 전투 불능 상태가 된 것은 틀림 없었다. "여기서 한번 더 하면 위험 하겠지?" 절대 방어나 대지의손, 그 외의 마법들을 이용하면 지금 이상으로 상당한 피해를 줄수 있을 것은 분명햇지만, 점점 좁혀지는 포위망을 보며 현민은 도망을 선택했다. 어제의 경험을 생각해볼 때, 한자리에 묶여 있는 것은 유저들에게 유리함을 주기 때문이다. 어차피 유저들은 많았으니, 한자리에 메여 있을 필요는 없엇다. "자~ 그럼 다음 목표를 찾아볼까?" 현민은 날았다. 이 근처는 밑에 보이는 유저들이 점령한 것인지, 어제처럼 허공을 메우고 있는 유저들이 보이지 않았다. 현민의 싸움은 처음의 예상과 다르게 어제보다 쉬웠다. 끼이익! "쉽게 보내줄 순 없다는 건가?" 그가 막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 했을 때, 지면에서 와이번들이 날아올랐다. 정확히 1천마리를 채우고 있는 와이번들은 2명의 유저를 등에 태운 채 현민의 뒤를 쫓아 왔다. 나는 탈것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것이 와이번 이라지만, 현민이 가지고 있는 마녀의 빗자루도 속도에서는 지지 않았다. 한편의 추격전이 공중에서 벌어졌다. 화륵! 팡! 현민의 뒤에서 갑자기 날아온 불꽃이 그를 스쳐 지나가 앞쪽에서 폭발했다. 그 충격으로 현민의 몸이 날아갔지만, 마녀의 빗자루가 스스로 움직이며 그의 몸으 받쳐 주었다. 마녀의 빗자루가 아니었다면 떨어졌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와이번의 입가에 불꽃이 묻어 있었다. 아무래도 평범함 와이번은 아닌 것 같았다. "윽! 속성 와이번인가?" 현민은 인상을 찡그렸다. 속성 와이번 이란 일반 마법 처럼 불덩어리, 물덩어리, 뇌전덩어리, 독덩어리와 같은 각종 덩어리(?)들을 입으로 쏠 수 잇는 와이번을 말했다. 수가 많지 않아 와이번 중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존재하여 테이밍 하기가 쉽지 않은 몬스터였기에, 설마 이곳에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와이번이라면 저의 위압감이 통하지 않을까요? "흠, 글쎄." 각종 덩어리들을 피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던 현민은 루인아츠의 의견에 고개를 갸울거렸다. 본능대로 움직이는 몬스터라면 외부의 위압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테지만, 그 위압감이 길들여진 몬스터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잠깐 고민하기는 했으나, 현민의 고개는 끄덕여졌다. 딱히 위압감을 드러낸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것은 없었다. 현민의 허락이 떨어진 루인아츠는 감추고 있던 존재감을 사방으로 뿌어냈다. 끼, 끼익! 끼익! 캬르르륵! 갑자기 드러나는 존재감에 깜짝 놀란 와이번들은 당황한 울부짖음을 내빝으며 제자리에 멈취려고 했다. 앞쪽에 있는 와이번들이 느끼는 위압감이 뒤쪽에 있는 와이번들보다 강해서 그런지, 그 반응은 앞쪽이 더욱 심했다. 현민을 쫓아 빠른 속도로 날고 있던 와이번들이 앞에서 부터 갑자기 멈췁렸으니, 그 결과는 뻔했다. "피, 피해!" "으악!" "안 돼!" 퍽! 퍼퍽! 퍽!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강하게 부딪친 와이번들은 정신을 잃어 버리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통하네?" -그러게요. 생각보다 훈련이 덜 된 상태였나 봐요. 정말로 통할 것이라 생각지 않았던 한 사람과 한 아이템(?)은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떨어져 내리는 와이번들을 구경했다. 현민과 루인아츠는 와이번의 교육이 덜 되었다고 했지만, 현민의 정령석을 만들어낸 것처럼 특수한 방법으로 태어나 처음부터 유저의 손에 길러진 와이번들이 덜 교육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루인아츠의 위압감은 강렬햇다. "기왕 떨어지는거 조금만 더 떨어졌으면 좋앗을 텐데." 현민은 남아있는 800여 마리의 와이번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저었다. 위압감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5분의1에 해당하는 와이번을 줄일 수 있었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어차피 땅에서의 공격은 닿지 않는 높이인데 처리하고 갈까?" -그게 낫겠어요, 어머니. 팟! "실드(1서클), 실드, 실드......" 루인아츠와 생각이 일치한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를 손에 잡으며 실드를 밟고 허공을 달렸다. 당황하고 있는 와이번들의 무리가 현민의 눈앞에 다가왔고, 현민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와이번의 유저들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마녀의 빗자루로 그들의 목 언저리를 감쌌다. 현재 『싸울아비』에서 최고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는 마녀의 빗자루 였기에, 동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슨?!" "어느새?" 서걱! 마녀의 빗자루 안에 있던 2개의 머리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주인을 잃은 와이번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고, 현민은 그런 와이번을 밟으며 다음 목표를 향했다. 루인아츠의 위압감으로 모든 와이번이 모여 있는 상태 였기에, 굳이 실드를 밟을 필요도 없었다. "마, 막아!" "모두 서둘러서 대열을 정비하라! 거리를 벌려!!" 그들은 누군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둘러 거리를 벌리며 현민의 이동을 방해했다. 일정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 그들은 확실히 노련했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주변의 시야와 각자의 공간을 확보했다. 하지만 게임속에서는 현민이 한 수 위엿다. 어느새 소리 지른 유저의 뒤로 이동한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로 그의 목을 감쌌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건 죽여 달라는 의미죠?" 서걱! "너......" "잘 가요~" 현민은 대장으로 보이던 존재를 먼저 죽여 버린 후, 나머지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와이번을 달래며 진형을 바로잡은 그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현민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상당한 연습을 한 것인지 거리를 벌리고 있음에도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공간만을 보며 도망간다면 숨어 있는 공격에 당할 것 같은 위험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도망갈 때의 얘기 이고, 그들과 싸우기로 결정한 현민에게는 해당 없는 이야기 였다. 씨익. 이럴 때는 그냥 눈앞에 있는 유저부터 차근차근 없애버리면 그만이었다. 파파팟! 세번의 도약으로 위쪽에 있는 와이번의 근처까지 다가간 현민은 기다란 꼬리를 움직여 와이번의 목음 감쌌다. 와이번은 본증적으로 자신의 목에 감긴 무언가를 떨어트리려 했으나, 와이번의 입이 그곳을 향했을 때 현민의 신형은 이미 와이번의 등 위로 이동한 상태였다. 기다란 꼬리를 이용하는 모습이 꼭 나무를 타는 원숭이 같았다. 스륵! "바이~바이~" 와이번이라는 발판을 구한 현민은 꼬리를 끌어당겻다. 목을 잃은 와이번은 잠시 하늘을 머무르다 땅으로 떨어졌고, 현민은 그 찰나의 순간 다른 와이번으로 몸을 날렸다. 와이번의 등에 타고 있는 유저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강한 이유는 와이번과 함께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와이번이 없는 그들의 공격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생각보다 쉬운데?" -그러게요 이 정도라면 어머니의 마법만으로도 충분하겠어요. 현민과 루인아츠가 주변에 있는 와이번과 유저들이 약하다 판단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만약 현민이 와이번, 아니 그리폰 정도만 타고 있어도 그런 소리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민의 눈앞에 있는 그들은 그런 상대를 전문으로 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현민에게 약해 보이는 이유는 순전히 전투 방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와이번을 타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그들과 실드를 밟으며 '뛰어' 다니는 현민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어서 정리하자. 나머지 유저들까지 전부 죽이려면 시간이 모자라겟어." -네. 고오오오! 루인아츠가 다시 한번 위압감을 드러냈다. 유저들을 상대로 할때는 커다란 효과를 바라기 힘들지만, 와이번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미 그 효과를 확인 했으니 현민의 말대로 시간을 줄일수 있는 방법이리라. 현민과 루인아츠는 하나가 되어 허공을 누볐다. 제103장 본격적인 시작 2월 11일(금)7시 33분. 특별히 마련된 가상현실의 운영실에서 페튜니아는 초조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했다. 전쟁의 주인공이라 할수 있는 현민이 아직까지 안 나타났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까지는 한참이나 남았으나, 그녀는 몇 시간을 기다린 연인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아직인가요?" "네에." "하아! 왜 이렇게 늦는 거야." 그녀의 말투에서 얼핏 짜증까지 느껴졌기에 운영자들은 알아서 침묵했다. 페튜니아의 친구이자 홍보 팀장님 성희는 손으로 턱을 괴고 과자를 먹으며 그런 그녀를 구경했다. 혼자서 다양한 반응을 보여줬기에 질리지 않았다. "흐응~ 사랑에 빠진 여자는 저렇게 변하는구나." "쿡!" "킥!" "크큭!" "으윽!' 성희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기에 듣지 못한 존재는 없었다. 화면을 바라보며 대가하고 있던 운영자들은 웃음을 터트렸고, 그 주인공인 페튜니아는 붉어진 얼굴로 성큼성큼 성희에게 다가갔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부정하지 않았어.' '은근슬쩍 넘어갔다.' '인정했군.' '인정햇어.' 딱히 부정하지 않는 페튜니아를 보며 운영실에 있던 남성운영자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너 은근히 잔인하다." 성희가 그런 페튜니아를 보며 한마디 했으나, 머리속이 온통 현민의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페튜니아에게 들리지 않았다. "화면 안보여? 이번엔 군대라고! 현민이 로그아웃한 자리를 정확히 찾아서 함정을 준비하는데, 내가 걱정 안하게 생겻어?" 페튜니아가 초조해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몇 시간 일찍 나타난 유저들이 그 일대를 점령한 후 함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현민이 로그아웃한 자리를 정확히 찾아서 말이다. 일부의 유저들은 눈치를 채고 달라붙었으나, 웬만한 유저들은 그들 중 한명의 공격을 3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그런 유저들 몇십만이 하나의 진을 이루며 현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체계적인 움직임과 확실한 명령체계, 특유의 분위기로 봤을때 평범한 유저들은 절대 아니였다. "어제 봤잖아? 그 정도 실력이라면 쉽게 죽지는 않을 거야." "하, 하지만......" "걱정되는 건 알겟는데, 이럴 때 믿어주는 것도 여자의 역할이야." 성희의 말에 페튜니아의 입이 다물어졌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녀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현민이라면 어떠한 방법이 있을 것이고, 아무리 불리하다 해도 현민 이라면 이겨낼 것이다. 여자로서의 역할 떄문이 아니라(정말?),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페튜니아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빛이 차분해지는 것을 보니 마음을 진정시킨 것 같았다. "후우......" '역시 대단해. 그 정도로 빠르게 마음을 다잡다니.' 화난 사람이 화를 참기 힘들고, 슬픈 사람이 슬픔을 잊기 힘들 것처럼 스스로의 감정을 다시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는 일이었고, 그녀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멀쩡하던 애를 괴물(?)로 만들다니... 과연 어릿광대 인가?' 사랑을 하는 여자는 괴물(?)이 된다지만, 이건 다른 의미에서의 괴물이었다.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익숙해 지지 않았다. 자신의 친구가 맞는지 의심이 갔다. 성희가 페튜니아를 보며 감탄하고 있을 동안, 마음을 진정시킨 페튜니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했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으니 주변의 감시를 철저히 하세요. 무언가 트집거리를 찾는 겁니다. 그리고 외곽 쪽에 위치한 사이버 운영자들에게 몬스터를 몰아오도록 하세요. 중앙 까지는 힘들겠지만. 외곽에 있는 유저들에게는 혼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페튜니아가 지시한 것은 운영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들뿐이었다. 그렇기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어릿광대가 몬스터를 다룬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몰이하는 모습을 직접 들키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릿광대 편들어준 게 한두 번이가요?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으니 그냥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세요." 마치 모범(?)을 보여 주듯 페튜니아는 막 나가고 있었다. 페튜니아의 지시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며 전쟁의 외곽이 시끄러워졌을 때,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던 현민이 『싸울아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팀장님! 어릿광대가 로그인 했습니다!" 허공에 있던 거대한 화면들이 작게 축소되어 한쪽으로 내려갓고, 그 자리에 현민을 비추고 있는 화면이 새롭게 생겨났다. "아!"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페튜니아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음을 다잡았다고는 하지만, 적의 함정 한가운데 잇는 현민을 보니 또다시 걱정이 든 것이다. 이제 막 로그인한 현민은 폐튜니아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으음... 이럴 줄 알았으면 페튜니아 누나에게 부탁이라도 해놓는 건데,> "아차!" 페튜니아는 현민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그가 '마법사'였다는 것을 말이다. 어제의 전투에서 마녀와 정령사, 그리고 루인아츠로 인한 근접 전투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가 마법사 였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현민에 대한 걱정도 그 이유였고 말이다. "마법사, 마법사... 월 도와줘야 하는 거지?" 유저들의 함정이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 한데, 그것까지 생각하려 하니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페튜니아뿐만 아니라 나머지 운영자들도 발을 동동 굴렀다. 1초가 1분처럼 지나가고 있을 때, 페튜니아의 머리가 반짝 했다. "어제 사용했던 메모......" <누나, 나중에 뽀뽀해드릴게요~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돼요?> "강한데?" 절묘한 타이밍으로 조건을 거는 현민 때문에, 안 그래도 도와주려 하던 페튜니아는 난감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 여기에서 도와준다면 현민의 뽀뽀를 받게 되는 것이다. 페튜니아의 생각은 옆길로 빠졌다. "어~이! 여기 운영자 '누나'들 전부 어디 갔나? 지현이만 보고 있으면 어떻해?" 흠칫! 그제서야 자신들도 후보에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은 여성 운영자들이 서둘러 두 손을 움직였으나, 그들보다 한발 앞선 누군가가 이미 현민을 도와준 후 였다. <고마워, 누나.> "누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페튜니아도 의문 어린 표정으로 운영자들을 둘러 보았다. 툭- "이런 일에 굼뜨면 사랑받기 힘들다, 너. 뽀뽀는 양보할 테니깐 걱정 마." 성희의 부름에 뒤로 돌아선 페튜니아는 저산을 걱정(?)하는 친구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붉어진 얼굴만이 그녀의 마음을 짐작케 했다. 현민의 농담 반, 진담반(?)으로 인하여 운영실 내부의 긴장이 풀어졌을 때, 성희의 도움으로 메모라이즈할 수 있었던 현민이 드디어 움직이이 시작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콰콰콰콰쾅!! 하지만 현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엄청난 폭발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유저들의 함정이 발동된 것이다. 살짝 풀어졌던 긴장감이 다시금 운영실을 감쌋다. "상태는?!" "절대 방어 사용! 피해는 없습니다." 어제 한 번의 전쟁을 경험해서 그런지 페튜니아도 그렇고 운영자들도 그렇고 많이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현민의 모습과 상태, 사용되는 마법을 파악하여 빠르게 보고했다. "시작은 화살인가요?" <시작은 화살인가요?> 페튜니아와 현민이 동시에 말했고, 이내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 숫자만으로도 엄청 났으나, 어느 것 하나 약해 보이지 않았다. "막으면 위험해." 페튜니아의 마음이 통했을인가. 화면 속의 현민은 절대 방어가 아닌 디그를 사용하여 화살을 피했다. 그가 있던 자리로 화살들이 떨어져 내렸고, 폭발과 함께 피어오른 먼지가 현민이 있던 자리를 가려 주었다. "역시......" 다른 운영자들과 다르게 구경만 하고 있는 성희는 현민의 마법을 보며 감탄했다. 다른 것은 볼라도 마법의 사용에 관해서는 따라올 자가 없을 것 같았다. 똑같은 마법이었지만 현민은 그것을 언제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현민을 평가하고 있을 때 화면속의 현민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운영자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주문이었다. 어제 너무 놀랐기에 잊을 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피의 진혼곡을 위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의 눈을 떠라, 루인아츠.> 촤르르르륵! 팔을 감싸고 있던 루인아츠가 현민의 상체 전부를 뒤덮었고, 그곳에는 더 이상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가 잇었다. 날카로운 비늘, 4개의 눈, 기다란 꼬리, 게다가 뿔까지, 악마라고 하는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성희는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현민이 하고 있는 전쟁은 웬만한 영화보다 더욱 재미있었다. "자. 이제는 어떻게 할 거지?" 절반으로 나누어진 거대한 화면은 화살이 날아다니고 있는 지상과 현민이 이동하고 있는 지하를 동시에 보여 주었다. <화끈하게 시작해볼까요?> 성희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듯한 현민은 양팔을 펼치며 각각의 벽에 마법진을 그렸다. 바쁘게 손을 움직인 운영자들이 그것을 분석했다. "증폭 마법진 입니다." <디~ 그!> 운영자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마법진을 완성한 현민이 곧 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거대한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며 그가 사용한 마법의 결과가 나타났다. "정말이지......" "놀랍다니깐." 운영자들은 화면의 결과를 보며 감탄했다. 아무리 증폭 마법진을 사용했다지만 화면 속의 결과는 엄청났다. 현민이 있던 조금의 공간을 제외하고 유저들이 있던 땅 자체가 사라져 있었다. 현민이 상ㅇ한 마법은 디그였으나. 그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사라진 것처럼 보인 것이다. 디디고 있을 장소를 잃어버린 유저들은 현민이 만들어놓은 구멍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웬만한 높이도 아니고 아파트의 20,30층에 해당하는 곳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는 그들의 죽음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화면 속의 현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또 다른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지의 심판! 방법은 간단했으나 지옥이 만들어졌다. 그냥 당해도 위험한 것이 대지의 심판이었다. 그런데 살아 남는 게 불 가능하다 생각되는 높이세어 그 위로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방어력이 높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준이 아니었다. 떨어져 내리는 유저들의 끔찍한 비명이 운영실에 메아리 쳤다. "현민." 페튜니아는 나직이 현민의 이름을 불렀다. 이렇게 잔인한 현민의 모습을 볼 때 마다 그 원인이 자신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다. 페튜니아와 성희를 제외한 운영자들은 현민이 어서 이동하기만을 바랏다. 그래야 지금의 끔찍한 장면을 안 볼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보았던 장면들보다는 확실히 덜 잔인했으나 잔인한 장면에 정도란 것은 없었고,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운영자들의 마음과 다르게 현민의 마법은 계속 됐다. 이번에는 현민이 딛고 있는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리고 사용된 것은 지진, 어스퀘이크 였다. 대지의 떨림은 현민이 만들어놓은 2개의 구멍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며 구멍 주변의 땅을 무너트렸다. 구멍의 크기와 깊이만큼 무너지는 범위도 넓었기에, 물러나 있던 유저들뿐만 아니라 훨씬 뒤에 있던 유저들도 현민의 마법에 휩쓸리고 있었다. 단 세 번의 마법으로 현민을 감싸고 있던 포위망이 무너진 것이다. 그 과정은 잔인했으나 현민이란 존재는 확실히 대단햇다. 주변을 비추던 화면이 바뀌면서 허공을 날고 있는 현민이 나타났다. <자~ 그럼 다음 목표를 찾아볼까?> 일대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버린 현민은 다른 곳을 찾아 이동하려 했다. 끼이익! <쉽게 보내줄 수는 없다는 건가?> 갑자기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현민의 주변에 울려 퍼졌고, 이내 1천 마리의 와이번이 그의 뒤를 쫓았다. "저건?" 화륵! 펑! 페튜니아의 의문과 동시에 와이번의 입에서 불꽃이 나갔고,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싸늘해졌다. 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 되지 않았지만, 그 수가 1천 마리나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제재를 가하지 않았나요?" "하, 하긴 했습니다만......" 그들을 담당했던 운영자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평소라면 다시 한번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었으나 지금은 전쟁, 그것도 상대가 현민을 노리며 공격하는 중이었기에 일이 심각했다. 잠시 고민하던 페튜니아는 강하게 결정을 내렸다. "지금 당장 저들의 공격력을 없애세요." "네?!" "그러면 항의가 들어올 수......" "유저의 공격력이 아니라 와이번의 공격력을 말한 겁니다. 우리가 한 번 재재를 가했는데 또 했다면 강압적으로 나가도 아무 소리 못할 겁니다." 페튜니아의 지시가 떨어지자 운영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싸울아비』에서 커다란 힘이 없는 그들은 몬스터나 유저의 공격력을 줄이기 위해서, 그 세계의 신이나 다른 존재들에게 '부탁'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유저같은 경우는 직접 아이템을 뺏는 것으로도 공격력을 줄일 수 있었지만, 그 대상이 몬스터라면 그들이 나서기 어려웠다. "와~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성희는 카리스마 넘치는 페튜니아의 모습에 묘한 탄성을 내뱉었다. 운영자들이 1천 마리나 되는 와이번을 바탁하기위해 이곳저좃 을 알아보고 있을 때 거대한 울림이 스크린을 통해 퍼져 나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기에 모두의 시선은 스크림으로 집중되었다. 고오오오오! 끼, 끼익! 끼익! 캬르르륵! 화면에 비치는 몬스터들은 무엇인가에 놀란 것 같았다. 당황한 와이번들은 허공에서 급 정지했고, 예상한 것처럼 다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어째서?" "누가 벌써 부탁한 거야?" 아직까지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운영자들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현민의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그 상태였을 것이다. <통하네?> 운영자들은 울림과 함께 들려오는 현민의 목소리를 들으며 화면 속의 상황을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현민이 와이번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이것으로 시간을 벌었다. 생각한 운영자들은 멈추었던 일을 서둘렀다. <어차피 땅에서의 공격은 닿지 않는 높이인데 처리하고 갈까?> 잠깐의 중얼거림과 함께 현민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팟! 회피가 아닌 공격 으로 말이다. 현민은 실드를 밟고 허공을 이동하며 남아 있던 유저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아도 그 차이가 엄청났기 때문에 페튜니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쉴수 있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타고 날아다니는 유저만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던 조직이라서 그런지, 하늘을 '뛰어'다니고 있는 현민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유저가 죽었고, 리더로 보이는 유저가 죽었다. 마치 호랑이를 포위하고 있는 토끼처럼 그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페튜니아는 더 이상의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며 운영자들이 하고 있던 일을 취소했다. 그들이 부탁하는 것보다 현민에 의해 전멸되는 게 더 바를 것 같았다. 페튜니아는 이번에 실수한 운영자를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의 일은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실점 처리하겠습니다." "...네." 그의 머리속으로 수많은 말이 스쳐 지나갔지만, 막상 나온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현민을 감싸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이번의 전쟁이 그만큼 중요하기 떄문에 그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점이라는 것이 틀벽히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페튜니아의 처벌을 받아들였다. 한펀, 성희는 누가 혼나든가 말든가 거대한 스크린의 현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는 현민은 루인아츠와 하나가 되어 허공을 누비고 있었다. "확실히 반할 만하네, 저렇게 멋있게 싸운다면 나라도 반했을 거야." 성희는 괜스레 페튜니아가 부러웠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귀여운(?) 성격과 마법 솜씨, 그리고 뛰어난 싸움 실력을 가지고 있는 현민이 탐스럽게(?) 느껴졌다. 나이만 따져도 햇과일(?)이 따로 없었다. "어디 저런 남자 하나 더 없나?" 점점 살벌해지는 페튜니아를 보며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성희였다. 1천마리의 와이번들을 어렵지 않게 정리할 수 있었던 현민은 원래의 계획대로 유저들이 가장 많은 지역을 찾아 돌아다녔다. 오늘 하루 만에 전쟁을 끝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할수도 있지만, 그렇게 할 경우 한 번에 많은 유저들을 죽일 수 있고 그 자신도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질수 있기 때문이다. 단 하루의 전쟁이었으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현민은 전쟁에 익숙해져 있었다. "찾았다." 한참을 이동해서 현민이 찾은 장소를 하늘이 비어있고, 땅 위는 유저를로 빽빽한 그런 곳이었다. 현민은 스스로가 공중전에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장소를 찾은 것이다. 앞으로 사용될 마법이 땅 위주라는 것도 그 이유였고 말이다. "어릿광대다!!" "어릿광대가 나타났다!" 현민이 그들을 찾은 것처럼 그들도 현민을 발견했다. 자신을 보며 소리부터 치는 그들의 순진한(?) 반응을 보며 현민은 미소 지었따. "네네. 어릿광대 맞답니다. 제 정체를 아셨으면 공격부터 해야죠~ 그렇지 않으니 이렇게......" 마녀의 빗자루에 앉아 있던 현민의 신형이 그들의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당하는 거랍니다." 촤악! 무언(無言)으로 블링크를 사용하여 유저들의 한복판으로 이동한 현민은 기다란 꼬리를 움직여 그들의 몸을 산산조각 냈다. 그의 꼬리가 길었기 때문에 반경 4미터 정도의 공간에는 더 이상 서 있는 유저가 존재하지 않았다. "자, 오세요 제가 어릿광대랍니다." 현민은 그들을 유혹(?)했다. "S, S급아이템!" "어릿광대만 잡으면!!" 그들의 눈에는 현민이 한장의 로또 복권으로 보였다. 그것도 사상 최대의 금액에서 1등에 당첨된 것으로 말이다. 현민을 잡는 것은 로또 복권1등에 당첨되는 것보다 희박 했지만, 그 대상이 눈앞에 보인다는 사실에 있어서 로또 복권보다 가능성이 있게 느껴졌다. "얌전히 죽어!" "내가 먼저다!" "흐아압!!" "단(斷)!" 욕심에 눈이 먼 유저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현민을 죽이기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생각대로 움직이는 유저들을 보며 현민은 준비된 마법을 사용했다. "절대 방어, 절대 방어, 절대 방어......" 하나의 절대 방어가 현민을 감쌌고, 수십 개의 절대 방어가 그런 현민의 주변에 떨어졌다. 근처에서 현민을 공격하고 있던 유저들은 엄청난 무게의 절대 방어에 짓눌리며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운이 좋아 절대 방어의 틈새에서 살아남은 유저도 있었지만, 그들은 빼곡히 쌓이는 절대 방어에 끼어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겹겹이 포개진 엄청난 무게의 절대 방어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 현민의 마법은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위쪽이라면 몰라도 정면에서라면 그 어떤 공격도 뚫지 못하는 철벽 방어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민의 마법은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절대 방어, 절대 방어, 절대 방어, 절대 방어......" 현민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절대 방어 속에 또 하나의 절대 방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절대 방어를 만들며 방어를 더욱 단단히 했ㄷ사. 3개의 절대방어가 하나를 이루며 현민의 주변을 둘러싼 것이다. 현민의 방어를 뚫을 수 없다고 판단한 유저들이 공격을 멈추었다. 씨익- 이제는 현민의 차례다. "스핀(2서클), 스핀, 스핀, 스핀, 스핀!" 현민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절대 방어 하나하나에 스필을 걸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세 겹으로 이루어진 절대 방어중 가장 안쪽에 있는 절대 방어였다. 틈이 없이 맞춰진 상태에서 안쪽의 절대 방어가 움직이니, 중간에 있는 것과 바깥쪽에 있는 것도 조금씩 움직임을 보였다. 현민의 두 번째, 세 번째 마법은 그런 절대 방어를 움직이게 했다. 3개의 절대 방어는 하나의 축, 하나의 방향으로 회전했다. 하나가 움직일 떄는 그 속도가 미약했으나, 3개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절대 방어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현민은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나머지 절대 방어들도 굴러가게 만들었다. 회전축이 달라짐으로써 절대 방어가 굴러가는 것, 커다란 원을 그리며 굴러가는 것, 현민의 주변음 맴도는 것, 직선으로 곧게 뻗어 가는것 등 수십 개의 절대 방어가 복잡한 규칠을 이루었다. 스핀 만으로 굴러가는 절대 방어의 속도는 확실히 빨랐으나, 현민의 생각 만큼 빠르지는 않았다. 현민은 기존에 계산했던 것에 두 가지 마법을 추가했다. "헤이스트(4서클), 헤이스트, 헤이스트, 헤이스트... 가속(2서클), 가속, 가속...!" 겉에 있는 절대 방어가 가속화 되면서 그 내부에 있던 절대 방어들도 움직임이 빨라졌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데 2개를 사용하니 결과는 화려했다. 콰콰콰콰콱! 절대 방어는 자신의 무게를 잊어버리고 미친 듯이(?) 굴러 갔다. 모든 것을 부수며 말이다. -편리한데요? "후후! 그렇지?" 루인아츠는 현민의 마법이 만들어낸 결과를 보며 감탄했다.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유저들은 절대 방어에 짓눌리며 죽어버린지 오래였다. 복잡하지만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굴러가는 절대 방어는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고, 설사 하나를 피한다 해도 다른 하나가 공격하며 완벽함을 자랑했다. 대충 사용한 듯한 마법이었으나, 실제로는 일주일의 시간을 투자해 만들어낸 특별한 마법 조합이었다. 중간에 추가된 2개의 마법으로 그 완벽함을 깨졌지만, 이리저리 부딪치며 튕겨 다니는 절대 방어는 나름대로의 변칙성이 있어 효과적이었다. "이제 슬슬...응?" 현민의 마법이 완벽함을 자랑한다고는 하지만 살아남은 유저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민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남아 있는 유저들을 정리하려 했으나,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디그! 디그! 디그!" 마법사가 분명해 보이는 한 명의 유저가 디그를 사용하여 그의 절대 방어를 땅 속에 가두고 있던 것이다. 현민이 그것을 얌전히 봐줄 리 없었다. "일단 저거(?)부터 혼 좀 내고." 순식간에 공간을 이동한 현민은 마법사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나타난 현민을 보며 깜짝 놀란 그가 현민과 같은 방법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그의 말보다 현민의 손이 훨씬 빨랐다. 애초부터 입을 막을 생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블리... 쿠!" "이런, 이런. 그렇게 방해 하시고 도망가겠다고요? 안되죠~ 법이라는게 괜히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으!" 현민의 손에 입이 막힌 유저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화면으로 보았을 때는 왜 저렇게 떨고 있는지 답답하게 느껴졌으나, 직접 마주하니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눈앞의 존재가 풍기는 기운은 사람에게서 느껴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에 게임할 때는 즐기면서 하세요. 알았죠?" 싱긋. "파이어볼." 펑! 그를 향해 미소까지 지어준 현민은 입을 막고 있던 오른손에 파이어볼을 만들었다. 당연한 애기지만, 입속에서 만들어진 파이어볼은 그의 머리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루인아츠가 한마디 했다. -어머니는 너무 잔인하세요. "쿡! 너도 마찬가지잖아?" -저야 어머니로부터 태어났으니까요. 루인아츠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무리암울(?)해도 말이다. "일단 저것부터 원래대로 되돌리고 유저들을 상대하자." -네 현민이 가리킨 것은 마법사로 인해 땅속에 박혀 있는 절대 방어들이었다. "디그, 디그, 디그." 디그라는 것은 땅을 파는 마법, 약간 복잡하기는 했으나 현민은 수직이 아닌 대각선으로 구멍을 만들었다. 땅속에 있던 절대 방어는 현민이 만든 구멍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왔다. 쿵! 콰콰콰콰! 기존에 있던 마법을 원래대로 되돌린 현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살아남은 유저들을 정리할 차례였다. 하지만 막상 움직이려던 현민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리에 멈춰 섰다. 멈칫! "으음......" -왜요? 현민의 갑작스런 행동에 궁금해진 루인아츠가 물었다. "막상 움직이려니까 귀찮아서." -...... 루인아츠는 말이 없어졌다. 어제의 전쟁에서 그렇게 멋지던 자신의 어머니가 맞는지 의문까지 들었다. "처리할까? 그냥 기다릴까? 다른 데로 갈까?" -차라리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낫겠어요, 어머니 말씀대로 직접 움직이기에는 살아남은 유저들이 너무 적으니까요. 기다리기도 뭐하고 말이죠. "그치?" 현민은 칭찬받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범위는 반경 400킬로미터, 위치는 랜덤으로~ 텔레포트!" 현민은 주변을 파괴하는 절대 방어를 내버려 둔 채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절대 방어가 유지형 마법이기는 했으나, 지금 당장에 부담 갈 정도는 아니었다. 전쟁터의 외곽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하이에나 처럼 뭐 하나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유저 중 하나가 자신의 동료들에게 무식하게 생긱 검을 꺼내들며 자랑했다. 이번에 새롭게 구입한 무기인지 검면에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반짝 했다. "어릿광대가 나타나면 내가 이 검으로 이렇......" 쾅! "윽?!" "뭐, 뭐야?" 막 검을 휘두르고 있던 유저는 갑자기 나타난 무언가에 검이 부딪히자 깜짝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의 검이 부러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 어, 어, 어......" "크으! 인사 한번 거창 하네요." "어릿광대다~!" 그의 커다란 목소리가 전쟁터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편, 이동하자 마자 누군가의 검에 머리를 얻어맞은(?) 현민은 생각 이상으로 강한 고통에 정신을 차리리 못했다. 눈앞에 있는 유저로서는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머리가 아닌 다른 곳이 맞았다면 그는 지금 살아 있지 못햇을 것이다. 사내의 고함에 정신을 차린 동료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며 현민은 공격했으나, 그들의 어설픈 공격에 맞아줄 정도로 현민은 착하지 못했다. 살기를 느끼는 순간 자세를 낮추며 기다란 꼬리로 주변을 휩쓸었다. 머리가 울린다고 해서 싸우지 못할 현민이 아니었다. 대충 주변을 정리한 현민은 절대 방어를 사용한 후 머리를 문질렀다. 루인아츠의 방어력으로 인해 반으로 갈라지는 처참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으나, 머리에서 느껴지는 아픔은 상상을 초월했다. 책의 모서리 부분으로 맞아본 사람은 현민의 느낌을 대충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으... 생각 이상으로 아프네." -자꾸 장난치려 하니까 벌 받은 거에요 현민은 루인아츠의 잔소리에 할 말이 없었다. 절대 방어를 사용하여 유저들을 공격한 후 , 괜히 장소를 고른다고 몇 번더 이동하다가 지금 처럼 당한 것이다. (이전?)이나 이전 전, 이전 전 전에 그냥 싸웠다면 이러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알았으니깐 그만해. 일단 여기부터 정리하고 다시 이동하면 되지?" -잘 생각 하셨어요. 누가 주인이고, 누가 아이템인지 헷갈리는 모습이었다. "마법의 공간(5서클), 아쿠아(1서클)." 마법의공간(5서클) 지속성:3분 능력:범위 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경우 이 공간 안에서만 발현되며, 단일 계열의 마법을 사용한 경우 이 공간 전체에서 발현된다. 현재 단계:5 주문:새롭게 이어진 하나의 공간에서...... 현민은 자신의 발밑부터 지하 50미터 까지 마법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 크기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곳으로 하고 말이다. 이 마법 하나로 인해 상당량의 정신력이 빠져 나갔으나, 어차피 정신력 하나는 남아도는 현민이었다. 땅 위도 아니고, 땅속에 마법의 공간을 만든 현민이 무엇을 할지 무척이나 궁금했으나, 막상 현민이 사용한 마법은 너무나 간단한 1서클의 아쿠아 였다. 그 넓은 공간에 물을 생성한 것이다. 건조했던 흙은 마법으로 생겨난 물과 섞이며 물렁하게 변해갔다. 가라앉고 있는 절대 방어를 해제 하며 공중으로 날아오른 현민은 기다렸다. 발밑에 있는 땅이 적당히 반죽(?)되기를...... 현민을 공격하던 유저들은 지면이 물렁해지면서 조금씩 빠져 들자 서둘러 도망갔다. 하지만 그 누구도 10걸음 이상을 떼지 못하고 자리에 멈춰 버렸다. 그들이 뛰는 것보다 진흙탕에 빠지는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기에 여기까지 찾아온 존재들이었으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실력이고 뭐고 필요가 없었다. "무후훗!" -이상한 웃음. 루인아츠가 한마디 했으나 현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상에 있는 유저들이 욕하는 것에 비하면 루인아츠는 애교 수준이었다. 순식간에 가라앉기 시작한 유저들은 이제 머리만 남겨 놓은 상태였다. 마법의공간이 가지고 있는 3분의 지속시간이 끝나기 전, 이제 어느정도 버무려(?)졌다. 생각한 현민은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사용했다. "대지의 족쇄(3서클)!" 마법의 공간과 대지의 족쇄가 어우러지며, 진흙탕(?)에 있던 모든 유저들이 땅속 깊은 곳으로 끌려 내려갔다. 원래 지면에서 사용되는 것이 대지의 족쇄 였으나, 바닥의 상태가 지면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했기 때문에 마법의 공간이 끝나는 지하50미터의 부분에서 시작된 것이다. 모든 것이 현민의 예상대로 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녀의 빗자루로 아슬아슬하게 지면까지 내려온 현민은 진흙탕 위에 손을 대며 또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도 평범하게 사용하는것이 아니라, 묘한 박자를 맞추며 남들 보기 민망한 모습으로 말이다. "어스퀘이크! 하나, 둘, 어스퀘이크! 하나, 둘, 어스퀘이크!" 겨우 세 번의 마법이었으나, 크게 출렁거린 진흙탕은 거대한 해일로 변해버렸다. 어스퀘이크 각각의 파장이 일치하면서 그 진폭이 커졌기 때문이다. -어머니, 해일은 어째서? 확실히 대단한 능력이기는 했으나 루인아츠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해일 그 자체가 살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일의 진원지가 되는 진흙탕도 50미터 정도로 낮았으니, 그것이 뭉쳐서 땅 위로 쏟아진다 해도 누군가가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 할수 없었다. "해일? 저건 그냥 넓게 퍼지도록 하기 위해서 만든거야. 내가 아까 진흙탕 위에 손을 가져간 건 알지?" -네/ "그떄 마녀의 씨앗을 퍼트렸거든." 부르르르! 루인아츠는 몸을 떨었다. 마녀의 씨앗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종류도, 용도도 다양하지만, 일단 하나만 퍼지면 일대의 생명은 모조리 사라지는 것이 마녀의 씨앗이었다. -어, 어머니도 마녀의 씨앗을 만들 수 있으셨나요? 그건 시약 계열의 마녀들만 가능한 걸로...... "아아, 나도 일단은 마녀니깐, 독한 맛(?)은 만들지 못해도 순한 맛(?) 정도는 제작할 수 있어, 게다가 나랑 살고 있는 린이 시약 계열의 마녀잖아. 그녀가 연구하는 걸 어깨너머로 몇 번 본적 있지." 주르륵! 루인아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마녀의 씨앗에 독한 맛은 무엇이고, 순한맛은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연구를 도와준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한 번 쳐다봤을 뿐이란다. 시약 계열의 마녀와 함께 살고 있다면 그녀가 만든 것이나 가져와야지, 왜 직접 만든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거야말로 무면허 약사(藥師)였다. 루인아츠는 그가 만든 씨앗의 효능이 걱정되었다. -효과는요? "버서커. 입으로 물면 전염도 시킬 수 있어." 만들어도 딱 저 같은 것만 만드는 현민 이었다. "우리가 전쟁을 시작한 지도 벌써 한 시간이 지났지?" -네. 유저와 부딪친 것은 네 차례밖에 되지 않았으나, 겨우 그들을 상대한 것만으로도 한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현민 스스로가 즐기며 돌아다녔기에 그 시간은 더욱 빨리 지나간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슬슬 몸도 풀렸으니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Yes, my mother! 이제 더 이상의 장난은 필요 없었다. 오면 베어버릴 뿐, 막으면 부숴버린 뿐. 그것이 현민이고, 그것이 어릿광대다. 제104장 그녀(?)에 대한 그녀의 마음 "저기에서 시작하는 건가?" "응." 페튜니아는 현민의 모습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어제와 다른 현민의 모습이 자꾸만 눈길을 끌었기 대문이다. 시작부터 느껴 오던 건데, 오늘의 현민은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얼굴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페튜니아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현민의 기분에 동화된 페튜니아가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화면 속에서 또 한 번의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어릿광대다-!> <어릿광대가 나타났다!> 현민을 발견한 유저들이 크게 소리치자, 근처 모든 유저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이는 게 보였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들의 반응을 보며 성희가 투덜거렸다. "어떻게 전부 다 똑같은 반응일까? 차라리 공격을 먼저 하지." "쿡!" "크큭!"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걱정할 일이었으나 페튜니아를 포함한 운영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도 동의한 것이다. 어제의 전투도 그렇고, 오늘의 전투도 그렇고, 현민을 만나는 유저는 무조건 외치기 부터 하고 있었다. <네네, 어릿광대 맞답니다. 제 정체를 아셨으면 공격부터 해야죠~ 그렇지 않으니 이렇게......> 하늘을 비추고 있던 스크린에 갑자기 지면이 나타났다. <...당하는 거랍니다.> 촤악!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성희는 기분 좋은 미소를 만들었다. 화면 속의 현민이 마음에 쏙! 드는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성희는 기대 어린 말투로 페튜니아에게 물었다. "쟤 나랑 뭔가 통하는데? 지현아, 나안테 양보하면 안돼?" "안돼." "칫!"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단칼에 잘라버리는 페튜니아를 보며 성희는 삐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현민을 혼자 독점 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놀려도 반응을 보이 않았기 때문이다. 달라져 가는 그녀의 모습이 재미있기는 했지만, 예전의 순진했던 그녀가 내심 그리워지는 성희였다. 그때 화면 속의 현민이 양팔을 벌렸다. <자, 오세요. 제가 어릿광대랍니다.> "너한테 고백하는 거 아냐?" "......" 성희는 지나가는 말로 툭! 던졌을 뿐인데 페튜니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씨익~ 성희는 파악했다. 변했다 생각했던 페튜니아가 현민이 직접 관련된 일이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이다. 그녀의 재미(?)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현민이 봤으면 '악마2(?)다!' 라고 할 만한 표정이 성희의 얼굴에 떠올랐다. 성희는 기분좋은 얼굴로 스크린에 시선을 돌려싿. 거대한 화면에는 수많은 유저들이 현민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제막 공격을 시작하는 찰나였다. <흐아압!> <단(斷)!> 비어있는 공간을 제외하고 가장 앞쪽에서 현민을 포위하고 있던 유저가 얼추 40여 명. 누구 한 사람을 시작으로 그들 모두가 현민에게 달려들었다. 스킬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검으로 직접 베려는 사람도 있었다. <절대 방어.> 챙! 쾅! 퍼퍼펑! 하나의 절대 방어가 현민을 감싸며 유저들의 공격을 막았다. <절대 방억.> 두번째 절대 방어는 현민에게서 약간 떨어진 '허공'에 생겨나, 공격을 하고 있던 유저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쿵! 콰직! 묵직한 소리와 함께 가히 기분 좋지 못한 소리가 운영실에 퍼졌다. <절대 방어, 절대 방어, 절대방어......>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현민의 주변에 계속해서 떨어지는 절대 방어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공격하고 있던 유저들 두셋을 깔아뭉겠다. 깜짝 놀란 유저들이 피한다고 피하고 있었지만, 밀집된 지역이라는 점과 현민의 마법 시전이 빠르다는 이유가 그들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었다. "와!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었어?" 성희는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민은 '방어'라는 목적으로 만든 마법을 가지고 '공격'을 하고 있었다. 가끔가다 응용하는 것은 보았지만 저렇게 직접적으로 사용할 줄은 몰랐다. 현민의 주변에 절대 방어가 많아지면서 유저들의 접근도 힘들어졌다. 정면으로 수많은 절대 방어를 뚫고 현민에게 갈 수 없었기에 위를 노리고 움직이는 유저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시 한번 떨어져 내리는 절대 방어로 인해 가장 처참한 모습의 시체가 되었다. 짓이겨지는 것은 똑같았지만, 절대 방어와 절대 방어 사이에서 짓이겨지다 보니 그 시체가 그대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들의 끔찍한 모습이 유저들의 접근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무거워서 치우지도 못하고, 단단해서 부수지도 못하자 화면 속의 유저들은 공격을 멈췄다. 쓸데없이 기운을 소비하는 것보다 무언가 방법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 그때 현민의 마법이 시작됐다. <스핀, 스핀, 스핀, 스핀, 스핀!> 현민은 일일이 그 대상을 지정하며 주변에 있는 모든 절대 방어에 마법을 걸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안에 들어 있는 절대 방어까지 전부 말이다. 페튜니아와 성희를 비롯한 모든 운영자들은 현민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쿠득! 가장자리에 있던 절대 방어가 현민의 마법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속도가 느렸으나, 점점 탄력을 받는 것인지 거대한 바위가 절벽을 구르듯 거침없이 굴러나갔다. 외곽 쪽에서 부터 하나하나 움직이던 절대 방어는 어느새 현민을 감싸고 있던 것만 남기고 전부 움직였다. 똑같은 마법이 사용된 절대 방어였으나 그것들이 움직이는 모양은 하나같이 달랐다. 같은 길을 지나가는 절대 방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듯한 절대 방어가 서로의 움직임에 방해를 하지 않고 잇다는 것이었다. 머리좋은 사람들답게 그것을 발견한 운영자들은 입을 벌리며 말을 하지 못했다. "우연인가? 아니면 계획?" 성희는 너무나 절묘하게 움직이고 있는 절대 방어를 보며 깊이 생각했다. <헤이스트, 헤이스트, 헤이스트, 헤이스트... 가속, 가속, 가속!> 현민의 다음 마법이 사용되었을 때 그들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콰콰콰콰콱! 안 그래도 무섭게 움직이고 있던 절대 방어가 미쳐 버렸기(?)때문이다. 현민의 절대 방어는 브레이크 고장 난 기관차 처럼 모든 것을 부수며 굴러 다녔다. 이전의 완벽함이 사라져 버리며, 절대 방어끼리 부딪치는 것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미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응?" 그러한 절대 방어를 뚫어지게 보고 있던 페튜니아는 아무런 피해가 없어 보이는 일부의 지역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중간에 현민의 절대 방어가 사라진 듯이 보엿다. 페튜니아는 그 원인이 한 명의 마법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었다. <이제 슬슬... 응?> 화면 속의 현민도 그것을 발견 했는지 페튜니아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일단 저거(?)부터 혼 좀 내고.> 마치 동네 꼬마를 혼내 준다는 느낌의 말투 때문에 페튜니아와 성희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화면 속의 현민이 공간을 이동한 듯 거대한 스크린의 화면이 갑자기 바뀌었다. <블리...쿠!> <이런, 이런. 그렇게 방해하시고 도망가겠다고요? 안 되죠~ 법이라는게 괜히 있는게 아니잖아요?> 현민은 자신이 어떠한 모습인지도 잊어버리고 훈계를 하고 있었다. 악마가 착한 일 하라고 하는 것 같은 모순된 모습에 운영자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우으!> <다음에 게임할 때는 즐기면서 하세요. 알았죠?> 싱긋. <파이어볼.> 펑! 그리고 그러한 표정은 현민이 유저를 죽여 버렸을 때 절정에 도달했다. 법까지 들먹이며 훈계를 해놓고, 정작 자신이 어기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법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은 그들이 하고 싶었다. <디그, 디그, 디그.> 현민은 땅속에 있던 절대 방어를 원래대로 되돌렷다. 현민으로 인해 자유로워진 절대 방어는 그동안 못 움직인 것을 풀려는 것인지, 기준보다 더 미쳐 보이는(?) 움직임으로 원래의 궤도에 돌아갔다. <으음......> 모든것을 정리한 현민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태세 였으나, 무엇인가 이상이 생긴 듯 갑자기 신음을 배뱉으며 자리에 멈춰 섰다. "무슨 이상이라도 생긴 건가요? 주변에 살아 있는 유저가 있나 확인 하시고, 현민의 상태도 한번......" 중간에 들려온 현민의 말이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 <막상 움직이려니까 귀찮아서.> 멈칫! "풉! 킥킥!" 페튜니아는 자신을 걱정시킨 현민보다 옆에서 웃고 있는 성희가 더 얄미웠다. <처리할까? 그냥 기다릴까? 다른 데로 갈까?> 다양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현민은 환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험악한 얼굴로 저렇게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범위는 400킬로미터, 위치는 랜덤으로~ 텔레포트!> 현민의 말과 함께 화면이 바뀌었다. 처참했던 주변은 돈데간데없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대신했다. <으음... 여긴 하늘에 유저가 너무 많아.> 현민은 놀란표증을 짓고 있는 주변의 유저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불평을 터트렸다. <다른 장소로 가볼까? 범위는 반경 200킬뢰터, 위치는 랜덤으로~ 텔레포트!> 현민이 마법을 사용하려 하자 정신을 차린 유저들이 서둘러 달려들었으나, 그들의 행동보다는 현민의 말이 빨랐다. 현민은 이미 다른 장소로 사라지고 없었다. <웃차! 어라?> "윽! 하필 저기를......" "이런!" 화면을 보고 있던 운영자들은 현민 주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필 이동을 해도 최악의 장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현민이 도착한 천막의 안에는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게 갖가지 물건들이 있었고, 그 주인으로 짐작되는 여성(?)이 갑옷을 입고 있었다.ㅏ 붉어진 얼굴로 보아 그녀도 당황한 것 같았다.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민이 말했다. <도와드릴까요?> "네 짝사랑은 TV도 안보냐?" "......" 페튜니아는 성희의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 현민이 태연하게 말을 건 존재는 『싸울아비』에서 전체 랭킹3위를 차지하고 있는 오우거 레베카 였다.웬만한 남자 허벅지만한 팔뚝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생긴 것처럼 힘쓰는 것을 좋아하여 오우거란 호칭으로 불려지는 여성이기도 했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현실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직업은 군인이었다. 그것도 일반 병사가 아니라 중령이었다. 현민의 적이라는 소리다. 그런 적을 앞에 두고 친절하게 '도와드릴까요?' 라고 말하고 있으니, 보고 있는 운영자들은 심장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조마조마 하고 있는데 현민이 대답했다. <쿡! 맞아요. 제가 어릿광대랍니다. 당신의 적이죠.> 흠칫! "뭐야?" "응?" 운영자들은 현민의 갑작스러운 대답에 어리둥절해했다. 대답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질문을 하는 것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리를 키우고, 디지털로 해석해보아도 질문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스킬을 사용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으나, 레베카의 반응을 볼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갑작스러운 대답에 놀라고 있었다. 저벅저벅. 현민은 기다란 꼬리를 살랑거리며 레베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태연스럽게 그녀가 갑옷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이템을 직접 입는 것을 보니 그녀도 싸움을 알고 있었다. 『싸울아비』에서 아이테을 '직접 착용'하는 것과 '사용'하는 것은 달랐다. '착용'을 할 경우 자신의 신체에 맞추어 적당한 조절이 가능했지만, '사용'할 경우 시스템에서 정해진 위치에 강제로 덮어 써지는 것이기에 움직임이 불편하거나 동장에 한계가 있었다. <무슨......> <우연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웬만한 질문 정도는 알 수 있답니다.> 흠칫! 레베카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고, 운영자들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지금 저 말...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거야?" 성희의 질문에 페튜니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도 어제 같은 착각을 하였기에 알고 있었다. "상황을 유추해서 비슷하게 말하는거야." "...그래?" 페튜니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성희는 놀랐다. 읽는 것은 아니라고 했으나, 레베카의 반응을 봤을때 거의 읽은 것과 마찬가지의 수준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의 생각을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유추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안 돼요. 하지 마세요.> <......> <당신보다는 제가 빠르답니다. 그리고 겨우 그 정도의 무기가 저의 방어를 뚫을 수 있을 거라고 보나요?> 살랑~ 레베카는현민의 말을 들으며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아마도 그가 방심하고 있는 찰나 검을 뽑아들려던 것 같았다. 그 행동을 미리 읽혔으니, 믿을 수 없으면서도 받아들인 것이다. <어떻게 알았지?> <훗! 비밀 입니다.> 현민은 대답하지 않은 채 그녀의 갑옷을 조여 주었다. <그보다 현실과 다른 육체를 사용하면 불편하지 않나요?> <나에 대해서 알고 온 거냐?> <아까 말했죠? 우연이라고.> <그럼 어떻게?> <몸에 비해서 얼굴이 너무 예쁘다고 할까요?> 현민의 말이 스크린은 통해 올려 퍼지자 모든 운영자의 시선이 페튜니아에게 모아졌다. 톡톡! "지현아, 네 짝사랑이 다른 여자한테 작업 거는데?" 우득! 페튜니아의 손에 있던 다용도 터치펜이 ㄱ자로 구부러졌다. "성희야" "으, 으응?" "자꾸 짝사랑, 짝사랑 하는데 그 말 좀 그만 해줄래?" "으응." 성희는 침묵했다. 페튜니아의 얼굴은 웃고 있었으나,그것은 진정으로 웃는 모습이 아니었다. 조용한 사람이 화내면 더욱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성희는 더 이상 그녀를 놀리지 않았다. <기회를 드릴게요. 돌아가세요> <그럴 순 없다.> <그럼 죽어요.> <어차피 게임이다.> <피식!> 현민은 웃었다. 그것은 너무나 싸늘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레베카가 순간 움찔 했으나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그래요, 게임. 이런 게임에 무슨 욕심이 있어서 이곳에 있는거죠?> 화면 속의 레베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돌아가세요. 만약 전장에서 나와 마주친다면 당신은 악마를 볼거에요.> 그렇게 말한 현민은 무방비 상태로 돌아섰다. 그리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계산을 했다. <범위는 300킬로미터, 위치는 랜덤.> 마법의 시동어만 남겨 놓고 현민이 말했다. <아 참! 당신보다 우리 누나가 더 예뻐요.> 그렇게 말한 현민은 운영자들이 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텔레포트!> 거대한 스크린 속에서 현민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 스크린의 화면은 바뀌지 않았다. 그것을 담당하고 있는 운영자가 페튜니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운영자 뿐만 아니라 모든 운영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모아져 있었다. "... 귀여운데?" 펑! 페튜니아의 얼굴이 폭발(?)해버렸다. "쿡쿡!" 성희는 페튜니아의 그런 반응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 운영자 들이 소리 죽여 웃고있었다. 남자 운영자들도 무언가 반응은 보였으나, 그 분위기가 암울하다는 것만 말하겠다. 시간이 지나며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거대한 스크린에 다시 한 번 현민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유저가 아닌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래도 세 번째 이동은 실패한것 같았다. 방향을 다잡은 현민이 좌표를 계산하여 다시 한번 이동했다. 쾅! <윽?!> <뭐, 뭐야?> "뭐지?" "어떻게 된거야?" 현민의 이동과 동시에 화면이 바뀌었으나, 그 찰나의 순간이 너무 빨라 재대로 볼수 있었던 운영자는 아무도 없었다. 영상을 돌려 보아도 얻어맞는 소리만 들릴 뿐,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얻어 맞았다?" 그렇게 생각한 성희는 불쌍하다는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던 장소에 현민이 이동한 것 같았다. 그녀의 예상은 정확했다. 화면 속의 현민은 그 충격이 꽤 커다랬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 어, 어, 어......> "또냐?" 놀란 표정으로 입을뻥긋 거리는 유저를 보며 성희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다음의 반응은 뻔할 것이다. <크으! 인사한번 거창하네요.> <어릿광대다!!!> 역시나 공격보다 외침이 먼저 나왔다. 현민은 비틀거렸으나 페튜니아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현민은 이 정도에 쓰러질 만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민의 기다란 꼬기라 주변 유저를 학살했다. <으......생각 이상으로 아프네.> 현민은 절대 방어를 사용한 후, 그 안에서 머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현민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조금 전의 공격이 꽤나 아팠던 것 같았다. "나중에 호~ 해줘." "무, 무, 무슨 소리야?" 페튜니아는 성희의 말을 모른척 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화면 속의 현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의공간, 아쿠아> 스크린의 화면이 나누어지며 한쪽에는 마법의 설명이, 다른 한쪽에는 마법의 범위가 나타났다. "설마." 설마라고 할 것도 없었다. 현민의 마법이 사용된 공간은 이미 진흙탕으로 변해 있었다. 차라리 물이라면 벗어날 수 있으련만, 그건 물도 아니고 흙도 아니었다. 그 위에 존재하던 수십만 명의 유저들은 도망가지도 못한채 그 속으로 가라않았다. " '과연' 이라고 해야 하나?" 현민의 마법은 조용했지만 효과적이었다. 이런 마법이라면 하늘을 날 수 있는 유저도 도망가기 힘들 것이다. 진흙이 라는 것은 한번 묻어나면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부피에 비례해서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성희는 보면 볼수록 현민이 마음에 들었다. <무후훗!> "윽!" 갑작스러운 웃음이 아니었으면 말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턱을 괴고 있던 성희의 손이 미끄러졌다. <대지의 족쇄!> 성희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미 끝나가는 상황이 분명 하기에 마법을 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민은 대지의 족쇄에서 끝내지 않고 또 다른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녀의 빗자루에 매달려 손을 진흙탕위에 가져가는 꼴사나운 자세로 말이다. 모두가 기대(?)하는 가운데 ㅎ현민이 마법을 사용했다. <어스퀘이크!하나, 둘, 어스퀘이크!하나, 둘, 어스퀘이그!> 묘한 구령 때문에 웃음이 나왔으나, 그 결과를 보면서 웃음은 사라졌다. 출렁! 출렁! 출렁! 한번의 마법이 사용될 떄마다 점점 커지기 시작한 물결(?)은 세 번째에 해당하는 순간 해일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해일은 점점 크기를 불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툭- "저런 것도 가능해?" 운영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수백 미터나 되는 해일은 아니었으나 해일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만들어진 마법이라면 '신기하구나' 라고 할텐데 현민은 공통 마법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이건 신기 수준을 넘어간 상태였다. 성희는 그러한 해일을 보며 현민이 왜 대지의 족쇄를 사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대지의 족쇄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바닥에 가라앉았던 유저들도 같이 해일에 실려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그때 마녀의 씨앗을 퍼트렸거든.> 흠칫! 마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몇명 운영자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마녀의 씨앗은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밸런스의 파괴 문제까지 있어서 유저에게 다양한 제한이 붙어 있는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섬뜩 하기 그지없는 물건이다. 그들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해 하고 있을때 화면 속의 현민이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아아. 나도 일단은 마녀니깐, 독한 맛(?)은 만들지 못해도 순한 맛(?) 정도는 제작할 수 있어. 게다가 나랑 살고 있는 린이 시약계열 마녀잖아, 그녀가 연구하는 걸 어깨너머로 몇 번 본적 있지.> 운영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둘로 나눠진 스크린에 마녀의 씨앗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순한 맛, 독한 맛 에 대한 설명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깨너머로 몇 번 본 적 있다는 현민의 말은 씨앗이 제대로 만들어진 것인지 의심이 가게 만들었다. 운영자 중 한 명이 그가 만든 씨앗의 정보를 검색했다. 이름:광기의 씨앗 분류:마녀의 씨앗 확산 한도:3 확산 횟수:10 능력:육체에 대한 제어불가, 광기의 폭주 하지만 너무 간단한 정보라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명 없었다. "저게 무슨 말이죠?" 다른 운영자들과 마찬가지로 해석하지 못한 페튜니아는 알고 있는 사람에게 질문했다. "에... 능력은 일단 보이는 대로 버서커 입니다. 확산 한도라는 것은 하나의 씨앗이 한번에 몇명의 감염자를 만들수 있는지 말하는 것이고, 확산 횟수는 그 확산이 최대 몇번까지 일어날수 있는 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씨앗 하나로 나오는 피해가 얼마나 되는거죠?" 계산은 간단했으나 그 수가 복잡해지다보니 페튜니아로서는 암산이 되지 않았다. 그런 페튜니아를 위해서 누군가가 계산기를(?) 두드려 주었다. "씨앗 하나로 나올 수 있는 최대의 감염잔ㄴ 88,573명 입니다." 약9만명, 현민이 말한 순한 맛 치고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 운영자들의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도 순한 맛이 이정도면 독한 맛은 어느 정도 인가 하는 것이다. "보통 씨앗은 하나씩 만들어지나요?" "아, 아뇨. 씨앗 바로 이전의 단계가 액체 인데, 그것의 방울 수만큼 나올 수 있습니다." "방울 수?" "그러니깐 스포이트 같은 걸로 한 방울씩 떨어트리면 그거 하나하나가 씨앗이 되는 겁니다." 운영자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버렸다. 일반적인 물 한컵에 몇천 개의 물방울이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현민이 만든 씨앗의 개수도 엄청난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다 해도 비커의 표준 크기가 있으니 몇백 개는 나올 것이 예상됐다. "보통 얼마 정도 만들어지죠?" "음... 각오하고(?) 만들지 않으면 대략 200~300개 정도 입니다." 운영자들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씨앗 하나로 나올수 있는 미친놈(버서커)이 9만 명이나 되는데, 그런 씨앗이 몇백 개 있다면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뻔했다. 그런 운영자들에게 현민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입으로 물면 전염도 시킬 수 있어.> 이로써 예상되는 피해의 수는 기하학적으로 늘어났다. <이제 슬슬 몸도 풀렸으니 분격적으로 시작해볼까?> 운영자들의 (야근)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면 속의 현민은 밝은 목소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제 105장 그분(?)의 등장 -우히! 우히! 우히히히! 흑흑흑! 현민은 전쟁터의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마녀의 빗자루를 잠에서 깨운 채 살기 등등한 모습으로 말이다. 오른손에 들려 있는 마녀의 빗자루는 파란색의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미친 듯이 울고 있었다. 쩌저적! 마녀의 빗자루가 가지고 있는 메두사 효과가 발동되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유저들이 얼음 조각으로 변해버렸다. 현민이 나타나자마자 그 일대의 모든 유저들이 죽은 것이다.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마녀의 빗자루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 없는 유저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S급이자 최강의 아이템이라고 알려진 마녀의 빗자루는 현민 이상으로 만만히 볼 상태가 아니었다. "자, 시작합니다." 그렇게 말한 현민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했다. "속성 변화(3서클), 샤프니스(2서클), 염력(2서클), 진실된 거짓(5서클), 디스펠 배리어(4서클), 마법의 공간(5서클), 인비저빌리티(5서클)." 현민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강하고 날카롭게 만든 다음, 염력을 사용하여 움직이기 쉽게 설정했다. 그런 후 자신에게 진실된 거짓을 사용하여 어제와 같이 모든 능력치를 비정상적으로 올렸고, 샨에게 배운 디스펠 배리어를 사용하여 후에 있을 마법의 효과를 없에버렸다. 그리고 높이 300미터, 가로세로 500킬로미터에 해당하는 마법의 공간을 만들어 그 안의 모든 것들을 투명하게 했다. 유저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쾅! 하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유저들은 달려들었다. 현민 하나만 잡으면 그의 모든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점점 왜곡된 진실은 유저들을 불나방으로 만들었다. '루인아츠, 기운을 드러내.' -네. 고오오오오! 파삭! 현민의 명령을 받은 루인아츠가 감춰오던 기운을 사방에 드러냈고, 유저들의 발걸음은 거기서 멈춰버렸다. 작게 진동하고 있는 땅과 산산이 부서지는 근처의 돌이 루인아츠의 위압감이 어떠한지를 간접적으로 알려 줬기 때문이다. 일종의 스킬로 분류되는 것이 위압감이었기에, 현민의 근처에서 싸운다면 제 실력을 전부 발휘할 수 없을 거라는 게 모든 유저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당신들이 안 오면 제가 갈 수밖에요." 쾅! 그말과 함께 현민의 신형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산산조각 난 유저들의 시체와 얼어붙은 유저들의 시체였다. 현민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유저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있긴 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없었다. 유저들은 살기위해 발악했다. "아아악!" "크억!" "꺄악!" 엄청난 폭발이 사방에서 일어났고, 온갖 비명이 전쟁터를 가득 채웠다. 점점 많아지는 유저들의 시체가 그곳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주인아, 주인님, 주인 놈아, 저도 싸우고 싶어, 흑흑 크크큭! 현민의 손에 있던 마녀의 빗자루가 그를 향해 부탁했으나,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를 풀어주지 않았다. 마녀의 빗자루가 엄청난 것은 사실이지만, 피에 취해버리는 특성 때문에 많은 적을 상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신이 직접 사용하는게 훨씬 많은 유저들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졸라도 현민이 놓아주지 않자 마녀의 빗자루가 반항(?)하기 시작했다. -아~ 응 그대의 손길이 나를 애무하네~ 날카로운 비늘로 눈알을 찌르며 그대가 나의 몸을 애무하네~ 아~ 응 "크, 크어억!" "으윽!!" "꺄, 꺄악! 싫어!!" -아아아아악!!! "윽?!" 처녀 귀신이 한 맺힌 노래를 부르는 듯한(?) 섬뜩하기 그지 없는 마녀의 빗자루 노랫소리에 현민의 근처에서 짜증 섞인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노래가사가 야하고 어쩌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루인아츠는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온몸의 비늘이 일어서 있었다. -던져 버리세요! 어서요! 저따위 빗자루 개한테 줘버려요!! 현민은 잔뜩 흥분한 루인아츠의 말이 아니더라도 마녀의 빗자루를 놓아버릴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이 괴로운 것처럼 그도 괴로웠기 때문이다. 참 가지가지 하는 마녀의 빗자루 였다. -흑흑흑흑! 자유다, 자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자유! 오늘도 맛있게 먹어주겠어. 크크크! 정신없는 마녀의 빗자루는 현민의 손에서 해방되자마자 크게 울부짖으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평번한 그였다면 절대로 볼 수 없는 움직임이었으나, 상체를 감싸고 있는 루인아츠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렇게 문제아(?)를 처리해버린 두 존재는 다시금 주변의 유저들을 학살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산산조각 난 유저들의 시체만 남아 있었다. 한참을 움직이던 현민이 자리에 멈춘 것은 주문을 외워 진실된 거짓을 사용한 것이 34번을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아직까지도 투명화 마법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안 보이는 것은 분명한데, 일부의 집단이 그럼에도 안정된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변의 유저들을 조용히 처리하며 현민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군인인가......" 현민은 이전에 만났던 레베카를 떠올리며 그들의 정체를 예상했다. 지금 현민을 둘러싸고 있는 유저들은 레베카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사람의 분위기를 잘 읽는 현민이었기에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며 이런 전쟁터 한복판에서 막사를 설치할 사람들은 군인 밖에 없었다. "아주 대놓고 욕심을 부리는 군요." 현민은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속한 나라가 싫었다.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임 속에 군대를 만들어놓았다는 것이 현민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제 곧 포위망이 완성돼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기다릴 거야. 그리고 죽일꺼야. 저들이 나를 노린다면 난 저들을 노리겠어." 지금 당장이라도 저들을 노릴 수 있었다. 마법 몇 개만 사용하면 저들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민은 그들이 포위망을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자신이 그들과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기 위해 현민이 택한 방법이다 "일단 주변의 유저들부터 정리하자." 현민의 꼬리에 감겨 있던 유저가 산산조각 나며 정면으로 던져졌고, 유저들이 시체를 피하기 위해 움직이는 순간 빠르게 달려 나간 현민이 그들의 목을 잡아 뜯었다. 3시간 가까이 피를 보면서 현민의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사라져 있었다. 찌릿! 멈칫! 한참 유저들을 죽이고 있던 현민은 온몸을 압박하는 기운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특수한 느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기운이 섞이며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우 압박감이었다. 포위망이완성된 것이다. "와라."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 현민은 풀어놓았던 마녀의 빗자루를 불렀다. -으히히히! 딸꾸! 주인 새끼님~ 저 한 잔 밖에 안했어요! 흑흑흑! 3시간 동안 돌아다닌 것에 비해서는 상당히 멀쩡(?)해 보이는 마녀의 빗자루였다. 준비를 끝낸 현민은 우저들의 투면화를 풀어버렸다. 있으면 유리했지만, 그 결과를 직접 보여 주기 위해서 였다. "블링크." 팟! 갑자기 사라진 현민의 신형은 유저들의 앞에 나타났다. 챙! 광! 파파팟! '과연'이라고 해야할지 그들은 평범한 유저들과 달랐다. 말보다 먼저 무기가 날아왔다. 현민은 목을 노리는 거대한 대검을 반으로 갈라버리고, 기다란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현민의 꼬리는 그들 중 한 명의 방패에 막히며 실패해 버렸다. 현민의 꼬리를 막은 유저는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멀리 날아갔지만, 일단은 살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찰나의 순간 뭉쳐 있던 유저들이 거리를 벌리며 움직이기에 적당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들도 빠르다고는 했지만 스피드 면에서는 현민이 앞섰다. 한순각 유저의 뒤를 잡은 현민은 그의 머리를 바닥에찍어 눌렀다. 콰직!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한 명의 유저가 죽어버렸다. 스악! 챙! 위에서 내려처진 검이 현민을 비켜지나 바닥에 틀어박혔고, 은밀하게 찔러 들어오던 단검이 루인아츠에 부딪히며 잘려 나갔다. 웬만한 공격으로 뚫릴 만한 루인아츠가 아니었다. 기다란 꼬리가 출렁이며 한 명의 유저를 휘감으려는 순간, 아무 말 없이 사용된 누군가의 기술이 현민의 배로 날아왔다. 펑! 다급히 막기는 했으나 그의 몸이 뒤로 날아가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현민은 착지할 장소를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망치를 무기로 사용하는 유저가 대기하고 있었다. 완벽한 팀플레이, 그들은 이러한 싸움에 익숙한 것인지 공격의 연계가 확실했다. 하지만 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지금의 현민은 인간이 아니었다. 현민의 기다란 꼬리가 그보다 먼저 유저를 감싸 안았다. 톱날과도 같은 현민의 꼬리는 유저의 몸에 파고들며 그의 몸을 두 동강 냈다. 팟! 촤악! 쓰러지는 유저의 몸을 지나 바닥으로 내려선 현민은 자신에게 스킬을 사용한 유저의 앞으로 곧장 다가갔다. "스킬도 무언(無言)으로 사용할수 있나보죠?" 질문은 했지만 대답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현민은 그의 가슴에 박혀있는 자신의 손을 뽑았다. "이익!" 통! 그가 마지막 힘을 짜내며 현민의 몸을 베려 했으나,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벨 수 없는 루인아츠가 힘없는 손길에 베일 리 없었다. "버닝 핸드(3서클)." 현민의 두 발이 불타올랐고, 남아 있는 유저들은 긴장했다. 몇분만 기다리면 지원군이 올텐데, 그 몇분 동안 살아 있을 자신이 없었다.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3명이나 죽었다.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1분이 1시간 처럼 느껴졌다. 그런 유저들을 절망하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실된 거짓(5서클)."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 생각했던 현민은 '진실된 거짓도'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마법을 사용한 전과 후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가 보세요" 쾅! 한 번의 도약에 땅이 폭발했고, 유저들의 시간은 거기서 정지했다. "이, 이게......" "이게 바로 어릿광대 랍니다." 투투툭! 촤아아아악!! 남아있던 유저들의 머리가 동시에 떨어지며 흰색의 아름다운 가루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당신들은 실수했어요. 이 세상에 나를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한명 밖에 없답니다." 그렇게 말한 현민은 다른 유저들을 찾아자리를 옮겼다. 루인아츠를 통해 보이는 주변의 정보에 자신을 위협할 만한 존재는 담겨 있지 않았다. 현민은 남아있는 정신력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직접 몸을 움직였다. -까꿍! 쩌저적! -나를 잊지 말아요. 개XX놈아, 흑흑! 감고 있던 눈을 갑자기 뜨며 현 명의 유저를 얼음 덩어리로 만든 마녀의 빗자루는 자신의 방식에 즐거운지 기분좋은 목소시로 울었(?)다. 현민은 그런 마녀의 빗자루를 뒤로 돌리며 가까이 다가오고 있던 유저의 목을 감쌌다. -잘! 먹! 겠! 습! 니!다! 콰득! 마녀의 빗자루 특유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고, 둥그런 날에 끼어 있던 유저의 머리가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이미 몇 차례나 겪은 일이기에 주변의 유저들은 움츠리지 않았다. 쉬리릭! 기다란 꼬리가 뱀처럼 움직이며 주변의 유저들을 꿰뚫었다. 치명적인 상처가 아니었기에 모두가 살아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꼬리를 앞으로 가져온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 날에 유저들의 머리를 차례차례 가져다 댔다. -아그작! 아그작! 아그작! 한번 씹히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한 명의 유저가 죽어나갔다. 순식간에 몇십 명의 유저들을 게 눈 감추듯 먹어버린 마녀의 빗자루는 주변을 향해 특유의 외침을 터트렸다. -꺼어억!! 히히히히!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으흐흐흐흐흑! 배고파서 배가 터질 것 같아. 현민은 그런 마녀의 빗자루를 한 바퀴 돌려 자신의 뒤로 가져갔다. 쩌저적! 막공격을 하고 있던 유저가 마녀의 빗자루와 눈이 마주치며 얼어붙었고, 원래대로 위치로 돌아가던 그의 꼬리가 그 얼음 덩어리를 산산조각 냈다. 마녀의 빗자루가 가지고 있는 얼음으로서의 능력은 일시적인 상태 이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17번째 군대를 상대하면서 현민도 지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움직임에는 영향이 없지만, 그의 호흡은 처음과 비교했을 때 매우 거칠어져 있었다. 대략 6시간을 육체로 싸운것이다. 발록의 특훈이 아니었다면 진작 죽는 것은 현민이었을 것이다. 쾅! 쾅! 쾅! 쾅! 시끄러운 소리가 전쟁터에 울려 퍼졌고, 현민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 -...... -...... 현민에게서 말이 사라졌다. 시끄럽던 마녀의 빗자루도, 현민에게 충고를 하던 루인아츠도 현민과 같은 것을 보며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 대단하네요." -우힛? 고철이 움직이네? 주인아. 주인님. 주인 새끼님, 저것도 먹을 수 있는 거유? -뭔가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 같아요. 전쟁터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은 남자의 로망(?) 중 하나인 로봇이었다. 밟히고(?)있는 유저들이 정강이쯤에 오는 것으로 보아, 전체적인 크기가 대략 15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파트 5,6층에 해당하는 높이다. 외형은 풀 플레이트 갑옷이 커다랗게 확대된 모습이었고, 색깔은 은색, 군청색, 붉은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루인아츠의 정보로 흝어보니 그런 것이 각각 1백 대나 있었다. 전쟁터의 소리가 사라지고 육중한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현민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서둘러 물러나며 그들을 중심으로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네가 어릿광대냐? "당신은 러시아 군인인가 보군요." 끄억. 가슴 한복판에 러시아 국기가 그려져 있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를 집어던졌다. 마녀의 빗자루가 최강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형태가 로봇과의 싸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로봇을 상대로 싸울수 없다면 그 시간 동안 유저라도 죽일 생각 이었다. "마음껏 날뛰어" -흑흑흑! 그동안 감사했어요. 그럼 바이~ 바이~ 아! 죽으면 루인아츠 내~ 꺼! 현민의 손을 벗어난 마녀의 빗자루는 그렇게 인사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현민의 죽음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설마 그러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현민과 루인아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중에 혼내줘요. "그래야 겠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혼자 도망(?)간 마녀의 빗자루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거대한 로봇이었다. -싸우겠다는 거냐? "훗! 싸워야지요." 현민은 상황에 맞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어릿광대, 세상을 조롱하고, 나 자신을 비웃는 자랍니다." 화륵! 현민의 양팔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콰쾅! 쾅! 한 대의 로봇과 현민이 움직이자 그들이 있던 자리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거대한 로봇은 덩치에 맞지 않게 무척이나 민첩했다. 거짓된 진실로 상태 강화를 하고 있는 현민과 비슷할 정도였다. 쾅! "윽!" 처음의 부딪침은 주먹이었다. 순식간에 앞으로 뛰어나왔던 두 존재는 그 중앙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충격파라고 할수 있는 울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것만 본다면 대등하다고 할 수 있는 싸움이었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현민과 주먹을 부딪친 로봇은 다섯걸음만 물러난 반면, 현민은 덩치에서 밀리며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누가 유리한지 나타났다. 로봇에서 부터 튕겨 나간 현민은 유저들에게 부딪치면서도 쉽사리 멈추지 못했다. 유저들에게만 날벼락이었다. 콰가가가각! 팟! 두 팔과 기다란 꼬리를 땅에 박아 넣고도 한참을 가고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던 현민은 곧장 마법을 사용하여 로봇의 뒤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손을 박아 넣었다. 마녀의 빗자루만큼은 아니지만, 비교될 만큼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루인아츠는 로봇의 등판을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현민의 오른손이 막 커지려던 찰나, 또 다른 로봇이 현민에게로 다가왔다. 붉은색의 그 로봇은 거대한 대검ㅇ로 현민을 노렸다. 눈뜨고 맞아줄 수 없었던 현민은 그곳에서 벗어나며 처음 부딪쳤던 은색 로봇의 어깨로 올라갔다. 끼긱! 거대한 대검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은색 로봇의 등판을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세밀한 검 놀림이었다. 은색 로봇이 왼손을 들어올리며 현민을 잡으려는 순간 현민의 기다란 꼬리가 움직였다. 빠르게 움직인 현민의 꼬리는 은색 로봇의 왼쪽 손목을 잘라버리고, 오른쪽 어깨를 갈랐다. 덩치에서는 밀릴지 몰라도 공격력과 방어력은 현민의 루인아츠가 위였다. 깜짝 놀란 붉은색 로봇의 현민을 향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으나, 현민은 이미 은색 로봇의 머리를 잘라버린 후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쿵! 거대한 로봇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쓰러졌다.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바닥에 내려선 현민은 붉은색 로봇을 올려다보았다. "자만하지 말아요. 당신들 전부가 덤벼도 이길 수 없는 게 나랍니다." 현민은 그들을 도발했다. 쾅! 현민의 도발에 넘어간 것인지 붉은색 로봇의 검이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사라지는 듯한 움직임으로 자리를 피한 현민은 붉은색 로봇의 목을 노렸다. 머리가 잘린 후 움직이지 않는 은색의 로봇을 보며 그곳이 약점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민의 꼬리보다 먼저 몸을 돌린 붉은색의 로봇이 그런 현민을 검으로 내려쳤다. 스륵- 쾅! 묵직한 소리를 내면서 현민의 신형은 바닥에 떨어졌다. 일반적이라면 죽는 게 당연한 일격이었으나, 루인아츠의 방어력이 현민을 살렸다. 현민은 두 팔의 고통을 참으며 붉은 색 로봇에게로 달려갔다. 붉은 색의 로봇은 그런 현민을 향해 검을 움직였다. 현민의 크기가 붉은 로봇의 8분의1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맞히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지만,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검은 현민의 신형을 정확히 쫒아가고 있었다. 쾅! 쾅! 콰쾅! 검과 주먹이 부딪쳤고, 주먹과 주먹이 부딪쳤으며, 꼬리와 방패가 부딪쳤다. 두 존재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대등한 싸움을 보여 주었다. 은색의 로봇과 주먹이 부딪쳤을 때는 날아갔던 현민 이었지만, 지금은 어떤 공격을 주고 받더라도 뒤로 밀려나거나 하지 않았다. 거인과 소인의 싸움을 보느느듯한 그들의 싸움은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오고 있었다. 상황이 불리하다 여긴 것인지 10대의 은색 로봇이 앞으로 나왔다. 11대의 로봇을 상대로 전투를 하는 현민은 정신이 없었다. 루인아츠로 인해 공격과 방어의 차이는 있다고 하지만, 그외의 조건들은 비슷했기 때문이다.ㅏ 현민은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군청색의 기체가 10대, 붉은색의 기체가 4대 합류했다. 이로써 현민은 25대의 로봇과 싸우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마법을 아낄 때가 아니없다. 현민은 마법 뿐만 아니라 마법진까지 사용하여 그들을 상대했다. 싸움이 길어지고, 상대하는 로봇의 수가 많아질수록 그들이 싸우는 장소도 넓어져 갔다. 주변에 있던 유저들은 그들의 싸움에 휘말리며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해요. 마법을 이용한 전투 방식으로 그들의 수를 꾸준히 줄여 나가기는 했으나, 그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부숴도, 부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과 동등한 움직임의 로봇을 상대로 싸우다 보니 현민도 슬슬 지치고 있었다ㅣ. 루인아츠의 말처럼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했다. 비틀. 생각이 많이졌음인가. 현민이 그답지 않은 실수를 했다. 땅으로 내려서서 도약을 하는 순간 균형을 잘못잡아 미끄러진 것이다 하나의 검이 그를 노리며 날아오고 있는 중이었기에 이대로 가다가는 목숨이 위험했다. '블링크.' 팟! 쾅! 아슬아슬한 차이로 로봇의 검은 현민의 잔상만을 배었다. 자신을 공격하고있던 로봇의 등 뒤로 이동한 현민은 양팔을 거대하게 만들며 깍지를 꼈다. 이대로 내려쳐 버릴 생각 이었다. 머리위로 올라간 손이 절반쯤 내려왔을 때 군청색 로봇의 창이 현민을 노렸다. 내려치기 직전이라면 몰라도, 이미 움직이고 있던 중이었기에 현민은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메모라이즈 해놓은 블링크도 조금 전의 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죽지 않아-!" 쉬릭! 현민의 기다란 꼬리가 용수철처럼 말리며 군청색 로봇의 창을 잡아냈다. 그리고 창끝이 머리에 닿으려는 아슬아슬한 순간, 창을 파고든 현민의 꼬리가 그것을 잘라버렸다. 창의 중간 부분은 땅으로 떨어졌고, 아주 작은 부분만이 현민의 머리를 때렸다. 순간의 위험을 넘기고 현민의 양손은 붉은색의 로봇 위로 떨어졌다. 쾅! 그것에 맞은 로봇은 다리부터 산산조각 나며 그 키가 작아졌다. 하나의 로봇을 부수고 자리를 이동하려는 순간 에상치 못한 공격이 현민에게로 날아왔다. -어머니-! 쾅! "컥?!" 군청색의 로봇이 창끝을 잘리고도 멈추지 않고 돌진해, 창의 자루 부분으로 기어이 현민을 찌른 것이다. 창의 자루 부분이라지만 그 크기가 있다 보니 현민은 온몸을 얻어맞고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콰드드드득! "쿨럭! 컥!" '제길!' 한참을 굴러가고서야 멈출 수 있엇던 현민은 얻어맞은 충격으로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루인아츠의 방어력이 높다고는 하지만 모든 충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서 일어나셔야 해요! 7초 후면 유저들이 와요! 얼마나 멀리까지 날아온 것인지, 뛰어난 이동속도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 이곳까지 오는 데 7초나 걸린다고 했다. 날아가자마자 움직였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날아온 거리는 예상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아아... 그래. 쿨럭!" 대답을 하거는 했으나 현민의 상태는 안 좋아 보였다. 기침을 할 때마다 흰색의 가루가 흘러내렸다. '...3초, 2초, 1초,' "디그." 쿵! 피를 토하면서도 시간을 계산하고 있던 현민은 정확한 타이미에 디그를 사용하여 하나의 로봇을 땅 속에 박아 넣었다. 로봇의 크기에 딱 맞추어 만들었기 때문에 밑으로 들어간 로봇은 쉽게 나오지 못했다. "다음은?" -위! "리플...렉션(6서클)." 퉁! 콰직! 붉은색 로봇의 검은 현민의 목에 정확히 닿았으나 그의 마법으로 인하여 빠르게 튕겨 나갔다. 리플렉션 마법은 말 그대로 대상이 받은 충격을 상대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로봇의 유저는 되돌아오는 검을 제어하지 못하고 몸(로봇)으로 받았다. 그것도 머리로 말이다. 검에 부서진 로봇은 힘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쉬, 쉽게 죽어줄 수는 없지요. 쿨럭!" 하지만 현민의 반항도 거기까지였다. 어느새 남은 120여대의 로봇이 그를 둘러싼 것이다. -네가 졌다. "제가요? 크크큭! 콜록콜록!" 현민은 심각한 상태임에도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었다. "저한텐 아직도 정령이 남았어요." 후웅! 현민의 한마디에 어제의 일이 떠오른 그들은 서둘러 검을 뽑아 그에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 보다 현민의 뜻이 빨랐다.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그들 중 약한 존재는 없으니 곧바로 정령화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최악의 '패'가 선택되었다.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 현민이 몸으로 싸우기 시작한 지도 벌써 6시간이 지났다. 운영실에 있던 운영자들은 그런 현민을 보며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웬만한 운동도 6시간 하면 지치는 것은 당연한데, 현민은 6시간 동안 싸움을 하고도 지친 것 같지 않았다. 호흡만 약간 거칠어져 있었다. '괴물'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모습에 성희가 페튜니아를 바라보았다. "너도 저런 게 가능해?" "응?" "오래 싸우는거." 페튜니아는 잠시 생각하는 듯햇다. "현민 만큼은 아니지만 대략 8시간정도는 싸울 수 있어." "......" 성희는 말을 잃었다. 도대체 어떻게 배웠기에 그런 게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쾅! 쾅! 쾅! 쾅! 그때,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운영자들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모아졌다. "... 하필!" "저건?" "세상에!"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던 운영자들은 페튜니아로부터 시선을 피했고, 오늘 처음 본 운영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SF영화도 아니고 로봇이 등장한 것이다. 페튜니아는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저는 저런 아이템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받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이죠?" "저희가 마지막으로 확인 했을 때는 아직 미개발이었습니다. 그래서 보고을 안하고 있던 것인데......" "그게 언제죠?" "이틀 전... 입니다." 페튜니아는 인상을 찡그렸다. 루인아츠를 깨우고, 진실된 거짓을 사용하고 있는 현민과 동등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이틀 전까지 움직이지도 않았던것이 저렇게 매끄러운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었다. 기분이 안 좋아지자 페튜니아에게서 기세가 흘러 나왔다. 살기 까지는 아니고 적의였다.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지만 이것은 성희도 말릴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일을 하지 않았거나, 해서는 안 될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렇게 커다랗고 위험한 물건이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징계부에 감사를 신청 하겟습니다. 아무래도 썩은 부분이 있는 것 같군요." 페튜니아의 시선이 운영자들을 훑었다. 성희가 그녀의 손을 잡지 않았다면 페튜니아는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린 페튜니아는 은색의 로봇이 쓰러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만하지 말아요. 당신들 전부가 덤벼도 이길 수 없는 게 나랍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현민을 보며 페튜니아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라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붉은색 로봇과 현민의 사움이 시작되면서 운영실 안에도 긴장감이 흘렀다. 화면 속의 현민은 확실히 대단했다. 처음에는 밀리는 듯 했으나, 싸움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 보일 정도로 급격히 변하면서 나중에는 대등한 싸움을 펼쳤다. 로봇의 숫자가 늘어나며 25대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비틀. "아?!" 화면 속의 현민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미끄러지자, 운영자들의 입에서 안타까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싸움은 모른다 할지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한 번의 실수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있었다. 바닥에 넘어지려 하는 현민을 향해서 로봇의 대검이 떨어지고 있었다. 팟! 쾅! 일부의 운영자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에 두 눈을 감았지만, 페튜니아와 성희는 현민으로부터 일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현민은 로봇의 뒤편으로 이동하여 곧바로 공격하고 있었다. 거대한 스크린에 새로운 로봇이 등장하여 그러한 현민을 공격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타이밍이 었기 때문에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죽지 않아-! "아!" "대단......" "휴!" 거대한 창이 조각나고, 한 대의 로봇이 부서지는 장면을 보며 운영자들은 감탄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빠져 들 정도로 현민의 싸움은 멋졌다. 하지만 그들의 감탄이 끝나기도 전에 커다란 소리가 들리며 현민의 신형이 날아갔다. 쾅! 현민을 따라 움직이는 스크린은 그 주위 배경이 빠르게 바뀌었고, 그 시간도 한참이나 지속됐다. 제대로 맞은 탓에 엄청난 거리를 날아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던 페튜니아의 두 눈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루인아츠라고 하지만, 지금의 공격은 상당한 충격이 있을 것같았다. "5,102의 데미지! 지속적으로 초당 20의 생명력 감소! 현재 생명력 1.288 남았습니다!" <쿨럭! 컥!> 현민의 남아있는 생명력을 듣고 운영자들 모두가 걱정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수치였지만, 현민의 상태가 얼마나 안좋은지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현민이 날아오는 동안 5초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의영광'이 쓸모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페튜니아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런 현민을 향해 한대의 로봇이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모두가 스크린으로부터 시선을 돌렸을 때 다 죽어가는 현민의 음성이 그들의 귓가를 간질였따. <디그.> 쿵! "세상에!" 성희는 놀랐다. 이제는 죽으리라 생각했던 현민이 그 상태를 해가지고도 하나의 로봇을 무력화 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희는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스크린의 끝 족에서 달려오고 있는 한 대의 로봇이 공중으로 높이 뛰어 부게까지 싫어가며 내려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곧장 현민이 있는 장소로 떨어지고 있었기에 디그를 사용해도 소용없다 생각했다. <리플... 렉션.> "반사?" 현민의 작은 음성이 들려왔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펼쳐졌다. 퉁! 콰직! 현민을 내려친 로봇의 검이 내려쳐진 속도 그래도 올라가면서 로봇의 머리에 박혀 버린 것이다. 설마 또 한대의 로봇을 부수리라고는 페투니아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쉬, 쉽게 죽어줄 수는 없지요. 쿨럭!> "현민......" 현민의 목소리에서는 고집이 느껴졌다. -제가 졌다. <제가요? 크크큭! 콜록콜록!> 루인아츠로 인해 표정을 알 수 없지만 현민의 목소리에선 여유가 느껴졌다. <저한텐 아직 정령이 남아 있어요.> 후웅! ".....!" ".....?!" 운영자들은 현민의 목소리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다. 그에게는 정령화가 있었던 것이다. 정신력은 절반 이상이 남아 있으니 생명력이 없는 것은 문제 되지 않았다. "어서, 어서, 어서!" 페튜니아는 현민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검을 보며 다급히 소리쳤다. 그녀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성희도 간절히 빌고 있었고, 다른 운영자들도 어서 나타나기만을 기도했다. 그렇게 모두의 기도를 받으며 그분(?)이 도착했다.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 제106장 담비+정령화=? 콰콰콰콰쾅!! 폭발과 더불어 대지가 갈라졋다. 현민이나 로봇들도 많이 부수기는 했으나 그들이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파괴였다. 지각변동이라도 일어난 듯 조각난 대지가 울퉁불퉁하게 솟아 있었다. 현민은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그 원인을 불렀다. "담, 담비......" "응? 훌쩍! 나 불렀엉?" 단 한 번의 주먹질(?)로 근처에 있던 모든 로봇을 넘어트린 담비는 천역덕 스러운 얼굴로 현민을 돌아보았다. "어, 어째서 네가......" 현민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담비 같은 위험한(?) 존재 앞에서 마냥 누워 있을 수 없었다. 공격력이 강한 윈디아나 치료가 가능한 묘가 나타나기를 빌고 있었던 현민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예상외의 존재를 보며 전쟁 이상으로 긴장했다. "염화가~ 오빠 울었대! 그래서~ 내가 때찌! 해주려고, 헤헤!" 담비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담비의 대답을 듣고 있는 현민은 지끈거리는 머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서 돌려보내지 않으면 평범한 사고도 아니고 대형 사고를 칠것 같았다. "담, 담비야, 오...빠가 사탕 줄게. 쿨럭! 묘 좀 불러줄래?" 로봇들이 일어나고 있었기에 서둘러 부탁했지만 우리의 담비가 현민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싫어!" 담비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다 죽어가는 현민의 복부에 박치기를 넣었다. 퍽! "담, 담비 너......." 현민은 생각 했다. 이건 아니라고, 이건 안된다고. 하지만 현민은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담비를 말릴 수는 없었다. 서 있는 것도 힘든 상태에서 담비에게 얻어 맞기 때문인지 더 이상 말할 기력도 없었다. 그렇게 현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담비와의 정령화가 시작 되었다. 땅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흙들이 현민의 발을 감싸고, 무릎을 감싸고, 허리를 감사며 점점 올라왔다. 쓰러질듯 말듯하던 현민의 신형은 그 흙들로 인해 바로 세워졌고, 이내 머리끝까지 흙으로 뒤덮여졌다. 물에 젖은 듯 황토색을 띠고 있던 흙들은 갈색으로 변하며 빠르게 굳어갔다. 마치 만들다 만 점토 인형이 굳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 막 자리에서 일어난 로봇들이 그것에 가까이 갔다. 그 안에 들어 있을 현민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최종 확인 하려는 것이었다. 그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을때 현민을 감싼 흙덩어리가 알이 깨지듯 조금씩 금이 갔다. -설마? 좋은 징조는 아니라고 판단한 그들은 각자의 무기로 현민이 있을 흙덩어리를 베었다. 깡! 분명히 흙과 쇠의 만남 이었으나, 그 사이에서 있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겉에 있던 흙이 반으로 쪼개지면서 그 원인이 나타났다. "와~! 정령화다! 정령화!" 모두의 관심 속에서 흙을 뚫고 나온 존재는 어릿광대도, 그렇다고 잠깐 보았던 꼬마도 아니었다. 갈색의 생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있는 그녀는 그들이 보아온 어떤 존재보다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큼지막한 눈에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순수함(?)이 담겨 있었고, 작고 붉은 입술에는 천진 난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얼굴은 갸름하면서도 선이 뚜렸했고, 코는 오뚝하면서도 작아 얼굴이 귀여우면서도 예쁘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잘빠진 몸매는 당연했다. 시원스러운(?) 옷을 입고 있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헤에~ 이런 느낌이구나." 뭉클뭉클. 주변의 시선도 무시한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그여성은 자신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몸 이곳저곳을 살펴 보고 있었다. "아 참! 이럴 때가 아니지." 그녀는 볼일이 생각난 듯 박수를 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유저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겨누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모습과 달랐지만, 눈 앞의 존재가 현민의 정령화한 모습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저씨들! 우리 오빠 괴롭혔죠?" -아. 아저씨? -오빠? "아까 다 봤어요!" 크게 소리친 담비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우리 오빠가 얼마나 착한데 왜 괴롭혀요?! 담비한테 사탕도 준다고요! 그것도 두개!" 담비는 외형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만성 비염으로 인한 훌쩍 거림도 들리지 않았고. 손가락도 제대로(?) 2개를 펼쳤다. "우리 오빠 괴롭히는 사람은 내가 모두 혼내줄 거에요!" 담비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장난감을 빼얏겼을 때의 표정과 같았다. 정말로 화난 것이다. ----------------------- 이름:룬 Lv:929 직업:땅의 정령 정령력(精靈力):735,268 ----------------------- 분노한 담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뭐, 뭐야?" "정령?" 현민의 정령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운영자들은 갑자기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에 깜짝 놀랐다. 웬만한 마법이 터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운영자들은 멍한 귀를 문지르며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 "말도 안돼." "마법?" "하, 하하......." 운영자들은 화면에 나타나는 주위의 배경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다. 그 결과가 너무나 허황됐기에 눈으로 보고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화면의 각도를 바꾸어 위에서 내려다보니 반경 1킬로미터안에 있는 대지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 이러한 일을 하급 정령이 한 것이다. <어, 어째서 네가.......> 운영자들은 현민의 심정이 이해갔다. 자신이라도 저 같은 상황이라면 그런 말이 나올것 같았다. 페튜니아는 안타까운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의 현민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일어나고 있었다. <담, 담비야, 오빠가 사탕 줄게, 쿨럭! 묘 좀 불러줄래?> <싫어!> 담비라는 꼬마 정령이 반항하면서 현민의 배를 들이 받는 모습에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저 정도의 공격(?)을 받는다면 죽을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담, 담비 너......> 당황해하는 현민의 음성이 들려왔다. 담비라는 꼬마 정령은 현민의 몸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운영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조금(?) 독특했지만 정령화 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현민의 신체가 흙으로 완전히 뒤덮였을 때 로봇들이 일어나며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것이 보였다. "지금 현민의 상태는?" "정령화는 끝났습니다. 근데 뭔가 좀......" 페튜니아의 질문에 대답하던 운영자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왜요?" "아, 아닙니다." 조금 전의 페튜니아를 떠올리며 겁먹은 운영자는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정상적으로 정령화도 되었으니, 이름의 색깔이 붉은색으로 나온다는 것 정도는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민과 담비의 정령화가 이상하다는 것을 말이다. 단순히 현민의 정령력만 보아도 기존의 2배이상 늘어나 있었다. 그때, 화면 속의 흙덩이가 반으로 갈라지며 새로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정령화다! 정령화!> "현민?" "저게 어릿광대?" 페튜니아와 성희는 너무나 예쁜 현민의 정령화 모습을 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은근히 자신들의 가슴과 몸매를 살피는 것을 보면 스스로와 비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헤에~ 이런 느낌이구나.> 화면 속의 존재가 가슴을 만지는 것을 보며 두 여성은 '졌다' 하는 표정이 되었다. 왜 그런 표정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아 참! 이럴 때가 아니지. 아저씨들! 우리 오빠 괴롭혔죠?> - 아. 아저씨? - 오빠? <아까 다 봤어요!> 여인의 모습과 다르게 아이 같은 말투가 운영자들의 입가에 미소를 만들었다. <우리 오빠가 얼마나 착한데 왜 괴롭혀요?! 담비한테 사탕도 준다고요! 그것도 두개!> "풉!" 왠지 현민의 생활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아 페튜니아가 웃음을 흘렸다. <우리 오빠 괴롭히는 사람은 내가 모두 혼내줄 거에요!> 말투는 변하지 않았지만 운영자들은 느낄 수 있었다. 화면 속에 있는 존재가 화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한편, 담비와 하나가 된 현민은 속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담비와의 정령화는 다른 정령들과 느낌이 달랐다. 다른 정령들과의 정령화가 공존의 느낌이라면 담비와의 정령화는 복속의 느낌 이었다. '담비 너 어떻게 된 거야?!' 현민은 계속해서 말을 걸었으나 담비는 끝까지 무시했다. 현민이 마법을 쓰듯이 땅을 통해 공간을 이동한 담비는 자신의 앞에 있는 로봇의 다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쾅! 퍼퍼펑! 맨손으로 때렸다고는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로봇의 다리는 몸통에서 떨어지며 앞쪽에 있던 다른 로봇3대를 관통했다. 한 번의 공격으로 4대의 로봇을 부숴버린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은 담비는 남아있는 한쪽 다리를 집어 들며 로봇들이 뭉쳐있는 장소로 집어던졌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움직임이 빠른 로봇들도 피하지 못했다. 펑! 담비가 던진 로봇이 다른 로봇과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켰다. 살아있는 유저들은 그런 담비를 보며 난감해했다. 도망갈 수도 없고, 덤빌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돈으로 한 대당 몇억 달러에 해당하는 로봇을 계속해서 잃고 있으니 그들은 속이 쓰렸다. 담비의 주먹질 한 방에 또 한대의 로봇이 허공을 날았고, 잇따라 부딪치며 8대의 로봇을 산산조각 냈다. 이로써 피해는 더욱 커졌다. 그들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후퇴하는 것으로 말이다. 지금이라도 후퇴하면 100여대의 로봇은 유지할 수 있었다. 명령은 떨어졌고, 뒤에 있는 로봇부터 전쟁터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우씨! 어딜 도망가!" 땅의 정령 답게 그들의 발걸음을 통해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담비는 본래의 성격(?)을 드러내며 장소를 이동했다. 쾅! 한 대의 로봇에 한번의 주먹질이면 충분했다. 담비의 주먹에 맞은 로봇은 팔다리, 머리가 나누어지며 화려하게 폭발했다. 담비의 공간이동이 계속될 때마다 한대씩의 로봇이 사라져 가자 유저들도 태도를 바꾸었다. 어차피 죽을 거, 어차피 부서질 거 담비라는 존재만은 죽이기로 한것이다. 마음이 바뀌자 그들의 기세도 달라졌다. "우웅-!" 담비의 두 볼이 부풀어 올랐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나타나는 그녀의 버릇이었다. 유저들은 선택지 중에서도 최악의 답을 고른 것이다. "아직 늦진 않았겠지?" "... 걱정돼. "괜히 혼자 보냈어." 담비가 나타나고 한참 후에 모습을 드러낸 3명의 정령은 불안 섞인 목소리로 담비부터 찾았다. 괜히 정령화에 욕심 내다가 담비가 혼자 나가버리는 엄청난(?)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오래 지내왔기 때문에 담비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들은 담비가 사고 치지 않기만을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콰콰쾅! "저기......" "응?" "저기 있네." 담비의 위치를 찾기는 찾았으나, 세 정령의 얼굴은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에 더욱 불안해졌다. 윈디아의 능력으로 그들의 몸이 떠올랐고, 세 정령은 담비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저게 담비?" "담비 맞아?" "담비?" 3명의 정령이 담비를 봤을 때 나온 말은 비슷비슷했다. 그만큼 달라져 있었기에 담비 같은 모습(?)을 보면서도 존재를 의심했다. 그들과 현민의 정령화가 여인과 소녀의 사이라면 담비가 정령화한 모습은 완변한 여인이었다. 묘보다 키가 컸고, 윈디아 보다 가슴이 컸으며, 염화보다 미인이었다. 3명의 정령은 의외의 존재에게 패배감(?)을 느꼈다. "...무기?" "헉?!" "설마?!"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담비를 바라보고 있던 염화는 그녀가 무기를 꺼내드는 모습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염화의 말에 고개를 돌린 묘와 윈디아도 담비의 그 모습을 보며 하얗게 질려 버렸다. 담비는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스르륵~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평범한 봉이었다. 두께가 조금 두껍고, 길이가 많이 길기는 했지만 일단 보이는 모습만 따지면 그것은 봉이었다. 바닥에서 솟아나온 기다란 봉은 담비가 잡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덥석! 담비는 봉을 잡았다. 하지만 그 자세가 이상했다. 허리를 숙익고 봉을 거꾸로 잡은 것이 마치 무엇인가를 들어올리려는 것 같았다. 로봇 안에 있는 유저들도 그러한 담비의 모습을 지켜보며 의아한 표정을 했다. "흐아아아아압!!" 담비는 우렁찬 비명을 내지르며 그 봉을 들기 시작했다. 쩌저적! 들썩! -뭐, 뭐지? 담비의 봉이 기울어지자 그들이 서 있던 대지도 크게 들썩이며 기울어졌다. 담비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위험하다 판단한 유저들은 서둘러 공격을 시도했다. 깡! 까가강! -윽! 하지만 여태 해도 안됐던 공격이 갑자기 될 리 없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대검은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담비의 몸과 정확히 부딪쳤으나, 그들이 어떠한 기술을 쓴다 한들 담비에게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담비의 '무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안될까요? -괴물, -이 작전은 실패다. 저런 걸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들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담비가 꺼내들 무기에 의해서 였다. 아직 그 모습을 절반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들이 있던 눈앞으로 거대한 절벽이 솟아났다. 담비의 무기는 그들이 절벽이라고 생각할 만큼 거대했다. "으쌰!" 툭- 투투툭- 담비의 무기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남아있던 로봇들은 자신의 무기를 놓쳤다. 그들은 전쟁이라고 생각했으나 이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자신들은 어릿광대 말대로 조롱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산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나왔다." "뿅망치." "어쩌다가 저걸 들게 만든 거지?" 세 정령은 하늘 전부를 가릴 것 같은 담비의 무기를 보며 서둘러 도망갔다. 그 크기가 워낙에 크다 보니 가만히 있다가는 휩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담비의 성격상 100퍼센트 휩쓸릴 것이다. 담비의 무기는 그 생김새가 간단했다. 흔히 알려져 있는 뿅망치와 비슷했다. 문제가 있다면 크기. 손잡이 부분은 담비가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늘었으나, 그 끝에 달려 있는 망치 부분은 웬만한 산을 보는 것처럼 너무나 거대햇다. 아니, 그냥 산을 들었다고 보는 게 옳았다. -모두 피해! -어디로요?! -아, 아무데든!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유저 자신도 정작 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있던 곳은 허허벌판이라 엄폐물 같은 것은 존재 하지도 않았다. 무작정 달려 나가는 로봇도 있었지만, 머리위의 그것으로 부터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 화났어요. 뿅망치로 때려 줄 거야." 자신들의 죽음에 대해서 보고서를 내야 하는 그들은 담비의 말을 듣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뿅망치에 맞아서 사망.' 저게 어디를 봐서 뿅망치라는 것인지 단어 선택을 바로 해주고 싶은 군인들이었다. 그들이 멍하니 서서 담비를 바라보고 있을 때 담비의 무기가 그들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다. -현실에서 보자. 콰아앙-! 단 한번의 휘드름으로 땅 위에 있던 모든 로봇이 사라져 버렸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모든 로봇들을 정리해버린 담비는 이제 유저들을 향해 망치를 휘드르고 있었다. 한 번의 망치가 휘둘러질 때마다 몇십만에 해당하는 유저가 고기 조각으로 변해버렸다. 유저들이라고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어떠한 공격도 담비와 담비의 무기에 흠집만을 냈을 뿐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 못했다. "저기... 위험하지 않을까?" "누가? 담비가? 푸훗! 염화가 농담을......" "아니, 오빠가......." "......" 묘와 윈디아가 굳어버렸다. 이제야 생각난 것 같았다. 눈앞의 존재가 담비의 성향이 강해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담비는 현민과 정령화한 상태였다. 그들은 서둘러 담비에게 다가갔다. 이대로 담비가 모든 정령력을 소모한다면 현민은 위험해질 것이다. 그들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의 담비는 망치를 휘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령화의 묘한 기분이 담비의 감정을 들뜨게 하고 있었다. "담비야. 멈춰!" "안돼!" "담비!" 담비의 망치가 또 한번 들려지려는 순간 묘가 소리쳤고, 염화와 윈디아가 각자의 속성을 사용해 담비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 어떤 유저의 공격도 통하지 않던 담비였으나, 비슷한 수준의 같은 정령이라서 그런지 염화와 윈디아의 능력은 그녀에게 통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말리자 인상을 스던 담비는 그 존재가 자신의 친구들인 것을 보며 얼굴을 풀었다. "헤헤! 나 잘했지?" "하아!" "......" "휴우......" 그들은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너 어떻게 된거야? 오라버니는?" 윈디아의 질문을 받은 담비는 망치의 손잡이를 내려놓으며 착실하게 대답했다. 유저들에게 평화(?)가 찾아왔따. "안에." "어디 안?" "가슴 안." 담비의 대답을 들은 윈디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가슴을 처자보았고, 이내 절망(?)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요. 어차피 오라버니는 가슴 큰 여자가 좋아 이거죠? 흥! 저도 아직 성장기(?)라고요! 얼마든지, 얼마든지......" 윈디아의 시선이 담비의 가슴으로 향했다. "으아앙!!" 처음으로 울음을 터트린 윈디아는 그대로 정령계에 돌아갔다. "응?" "하아!" 담비는 어리둥절해했고, 묘와 염화는 고개를 흔들었다. 설명할 사람이 없어지자 맏언지(?)인 묘가 이야기를 대신했다. "담비 너 정령력은 확인 하면서 움직이는 거야? 그게 남아 있지 않으면 나중에 오빠가 위험해." "우웅!" 담비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지금 9,391 남았는데, 한 번 더 안될까?" "안! 돼!" 도리도리. "칫!" 두 정령 모두가 강하게 그녀를 말렸고, 담비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현민의 몸에서 빠져 나왔다. [정령화 상태가 풀립니다.] [레벨이 10감소합니다.] 익숙한 메시지가 들려오면서 현민은 육체의 제어권을 돌려 받자마자 쓰러졌다. 털썩! 담비와 정령화를 하기 전에 당했던 심각한 부상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염화는 눈물을 글썽거렸고, 묘는 가까이 다가갔다. "잠시만요" 묘는 남아 있는 정신력에 신경 쓰며 현민의 상처와 생명력을 치료해주었다. 하급정령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것은 묘에게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현민의 부상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담비를 바라보았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 "응! 헤헤! 훌쩍!" 담비는 현민의 마음도 모른 채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분명히 감각은 존재 하는데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정말로 답답햇다. 동조,동화 하려고 해도 담비쪽에서 거절하니, 현민은 그 시간동안 고함만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능력은 엄청났지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정령화였다. "이제부터는 오빠가 할게, 너희들은 정령계로 돌아가 있어." "괜찮아요?" 글썽글썽. 묘는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어쏙, 소심한 염화는 눈물부터 글썽거렸다. 담비는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현민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안아주었다. "당연하지, 우리 귀여운 꼬마 정령들만 남겨두고 떠나지 않을 거야." 묘와 윈디아는 현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생명은 단 하나, 지금 이 생명이 마지막이었다. 처음의 어이없는 죽음 이후, 또 한번의 죽음을 맞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 번만 더 죽는다면 그들과 현민은 이별이었다. 하지만 묘와 염화는 현민의 말을 믿고 정령계에 돌아갔다. 불안함보다는 현민에 대한 믿음의 감정이 더욱 컸기 때문이다. 무사히 그들을 돌려보낸 현민은 루인아츠를 깨웠다. 현민이 정령화되기 이전까지 봉인을 풀고 있던 루인아츠는 정령화가 되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일어나." 촤르륵! 현민의 손에 착용된 건틀릿이 변화하였고, 루인아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랐어요. 설마 그런 방식으로 정령화를 할 줄은...... "네가 그 정도먄 당사자인 나는 어떻겟냐?" 현민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한순간, 현민도 자신의 죽음을 의심했다. 그만큼 담비의 공격(?)은 강렬했다. "슬슬 준비하자." 현민은 다시 한번 주문을 외우며 루인아츠의 봉인을 풀었다. "분노하라. 강인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여, 파괴 속에 울부짖는 어둠과 같이 모든 존재를 저주하며 분노를 터트려라, 나의 몸이 너의 몸이 되고, 너의 힘이 나의 힘이 된, 우리 영혼,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며 둘인 존재, 피의 진혼곡을 위해 어둠 속에 숨어있는 진실의 눈을 떠라. 루인아츠." 촤르르르륵! 이제는 변화에 익숙한 루인아츠도 변신하면서 드러났던 존재감을 감추고있었다. 현민은 남아있는 정신력을 점검하며 마지막준비를 했다. "그보다......" 현민은 옆을 돌아보았다. "이건 치우라고 할걸 그랬나?" 그곳에는 담비가 놓고 같 뿅망치가 있었다. 현민이 슬쩍 들어봤지만 움직이기는 커녕 미세한 떨림조차 보이지 않앗다. 현민은 그것을 내버려 둔채 주변을 둘러봤다. 담비와 관련된 일은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낭비(?)였다. "처참하구나." 담비의 안에서도 보기는 했으나 직접 바라본 주변의 풍경은 더욱 처참했다. 바닥은 이곳저곳이 쩍쩍 갈라져 끝이 없을 듯한 틈새가 만들어져 있었고, 거대한 망치가 내려앉았던 곳은 현민이 처음에 사용했던 디그 마법을 그대로 보는것만 같았다. 그만큼 크고 깊은 구멍이 이곳저곳에 뚫려 있었다. "그래도 유저들은 많이......." 현민은 중간에 마을 멈췄다. 루인아츠로 볼 수 있는 유저들의 수가 몇시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민도 많이 죽였고, 담비도 많이 죽였으나 사람의 숫자는 오히려 약간 늘어나 있었다. "세상에... 루인아츠의 범위 안에 있는 유저만 2억?아직도?" 현민은 몰랐지만 지금 접속해 있는 거의 모든 유저가 그곳에 모여 있었다. 거리가 멀다고 오지 않은 존재는 없었고, 대륙이 다르다고 해서 찾아오지 않은 존재도 없었다. 모든 손해를 감수할만큼 현민의 소문이 거창했기 때문이다. 막상 움직이려던 현민은 그 숫자를 보고 다시 생각했다. 지금의 정신력으로는 절대 그들을 상대할수 없었다. "정신력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마법진?" 현민은 계산해보았다. 마법진을 그려서 전부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3시간, 그냥 가만히 앉아서 정신력이 가득 차는데 걸리는 시간이 5시간이었다. 둘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전에 달이 떠오를 테니 몬스터를 부르는게 더 빨랐다. "담비만 아니었어도......" 담비가 상당수의 유저들을 죽인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숫자에 비해 사용한 정신력이 너무나 많았기에 현민은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마녀의 능력과 루인아츠만 가지고 2억이 가능할까?" 현민은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그의 몸은 지쳐있었다. 이 상태로는 진실된 거짓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몇십만을 죽이는게 고작이었다. 그것도 아무런 방해가 없을때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현민은 슬슬 잊혀 가는 존재를 불렀다. "이리 와." -딸꾹! 헤헤헤~ 주임 새끼앙. 안뇽하세요~~ 현민의 앞에 나타난 마녀의 빗자루는 얼마나 많은 유저들을 학살 한 것인지 일자로 날지도 못하고 있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완전히 정신 나간 모습이었다. "하아... 마녀의 빗자루도 쓰지 못하는 건가?"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현민은 역시나의 상황이 되자 한숨밖에 안 나왔다. 눈동자가 풀려 있을 것을 보니 유저들과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할 것 같았다. 현민의 고민이 계속 되고 있을 때 루인아츠의 비명이 들려왔다. -왼쪽! 피육! 흠칫! 현민은 생각을 멈추고 즉시 움직였으나, 날아오는 무언가의 속도가 너무 빨라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루인아츠를 뚫고, 현민의 오른팔을 관통하여 땅 속으로 들어갔다. "크윽! 이,이건...?" 현민은 팔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에 신음을 내뱉었다. 화살이 지나간 것 같은 상처에서부터 현민의 팔이 돌로 변하고 있었다. "루인아츠!" 현민의 외침을 들은 루인아츠가 오른 팔의 비늘을 없앴고, 현민은 기다란 꼬리로 서둘러 자신의 어깨를 잘랐다. 가만히 있다가는 팔에서 시작된 석화가 몸 전체로 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루인아츠의 공격력과 빠른 속도 덕분에 아픔은 크지 않았다. "어디야?" 현민은 공격해온 위치를 물었다. -담비가 놓고 간 망치의 꼭대기예요. 현민은 루인아츠가 알려준 부분으로 시선을 돌렸다. 망치의 꼭대기까지는 상당한 거리였으나, 루인아츠의 능력으로 인해 코앞에서 보는 것처럼 상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명은 붉은색의 머리를하고 있는 남성이었고, 다른 한명은 검은색의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뭐라는 거지?" 망치의 꼭대기에 있는 두 존재는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입을 움직이는 것만 보일 뿐 그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루인아츠가 그들의 입모양을 해석해주었다. -대단하군요! -이걸로는 놀라지마, 이 아이템이 가지고 있는 '심판'이라는 스킬은 더 대단하다. 흠칫! 루인아츠의 해석을 듣고 있던 현민이 몸을 궅혔다. 들어서는 안될 무언가를 들었기 때문이다. 차갑게 표정이 궅은 현민은 바닥에누워버린 마녀의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블링크." 현민은 그들의 뒤로 이동했다. 핑! 현민이 이동한 장소로 갑자기 한 대의 화살이 날아왔지만, 현민은 미리 짐작하고 있던 것처럼 마녀의 빗자루를 들어서 그것을 막았다. 아무리 그 무기가 관통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하여도 마녀의 빗자루는 뚫지 못했다. -아~ 응! 어떤 주인 같은 놈이세요? 아파 뒤지겠잖아. 이 고마운 자식들아.~! 그것에 거대한 눈을 정확히 맞은 마녀의 빗자루는 발광을 했지만 말이ㅏㄷ. "당신, 어디에서 그걸 구했죠?" "역시......." 현민의 질문을 들은 유저는 자신의 활을 쳐다보며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러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마녀는 이 세상에서 하나뿐이지. 그렇지 않나, 어릿광대?" 블링크 대신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공간을 이동한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를 휘둘렀다. 쾅! 하지만 마녀의 빗자루는 마녀의 활에 가로막히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가 걸어두었던 내구력 무한의 마법진 때문이었다. "장난 말고 대답을 해주세요." "부탁을 할 때는 정중하게 고개 숙여서 하는 거다." 스팟! 현민의 꼬리가 그의 뒤를 노리며 날아들었지만, 그 길이가 짧아져 아슬아슬한 차이로 빗나가 버렸다. 그는 오른쪽에 드러난 현민 본래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안쓰럽군, 한쪽 팔이 없어지면서 그 갑옷의 능력도 절반으로 줄어든 것인가?" 쾅! 팟! 현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무언으로 진실된 거짓을 사용하여 그를 공격했다. 하지만 민첩과 반사 신경을 중심으로 키운 궁수 계열의 유저라 그런지, 현민은 좀처럼 그의 신형을 잡지 못했다. 현민은 방법을 바꾸어 그가 밟을 장소에 거미줄을 사용했다. 'Cobweb(2서클).' "윽?" 그 유저는 거미줄을 제대로 밟으며 움직이지 못했다. 현민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달려 갔으나, 돌아서서 화살을 쏘는 그로 인해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유저의 화살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현민을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핑!핑!핑! "그렇게 알고 싶나?" 그는 화살을 쏘며 말했다. "우리는 전쟁을 연습하기 위해 북쪽의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다크 엘프 마을이 있던군." 허공으로 높이 뛰어오르는 현민을 향해 3대의 화살이 날아왔다. 현민은 몸을 옆으로 틀면서 하나의 화살을 피해냈고 , 마녀의 빗자루로 정면을 막으며 두번째 화살을 피햇다. 그리고 그 반발력을 이용하여 세 번째의 화살을 피했다. "전쟁을 연습하려는 우리에게 아주 안성 맞춤인 상대였다. 몇남 며칠 동안 그들을 분석하고 작전을 짰지, 그리고 전쟁을 시작했다." 급히 발걸음을 멈추며 하나의 화살을 흘려보낸 현민은 기울어지는 자세에서 한바퀴 회전하며 두 번째 화살도 피해냈다. "우리는 우리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그 전쟁도 단순히 장난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한 사람이 등장하면서 우리의 생각은 바뀌었다. 그... 아니 그녀였나? 그녀 혼자서 우리의 절반을 죽였기 때문이다." 현민은 조금씩이지만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 거리가 미약했으나, 지금의ㅡ 속도라면 금방 다가갈 수 있었다. "그녀의 화살이 지나가면 반드시 한명의 동료가 죽었다. 엄청났지. 우리는 작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정면 대결로는 무리이니 인질을 잡는 것으로, 마침 그녀에게 아이도 있엇기에 더 없이 좋았지." 흠칫! 현민은 그가 말하는 아이가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자신이 정령석을 준 아이, 그의 기억이 맞다면 세피아 였다. '루나!' '나 정령과 계약 했다! 요기' 조그마한 불의 새와 계약을 맺고 환하게 웃었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핑! "당신......" 자리에 멈춰 선 현민이 마녀의 빗자루로 화살을 막았다. "그 아이를 어떻게 한 건가요?" 오싹! 이야기를 하고 있던 남자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살기. 전쟁터에서 가끔씩 느껴왔던 그 기운이 그의 온몸을 조여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죽였다." 한순간 현민의 모습이 사라졌고, 그는 본능적으로 오른쪽을 막았다. 파앙! "큭!" 엄청난 충격이 팔을 타고 전해오면서 그의 몸이 날아갔다. 현민의 거미줄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현민은 한 바퀴 회전하며 꼬리로 그의 머리를 노렸고, 그것이 빗나가자 왼손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숙여지는 허리, 앞으로 나아가는 오른발, 순식간에 그의 등 뒤로 이동한 현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그의 팔을 위쪽으로 높이 들었다. 그의 어깨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뿌득! "큭!" 그는 자신의 오른팔이 골절된 것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움직이며 현민의 품을 벗어났다. 앞으로 돌아오는 그의 꼬리가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ㅏㄷ. 위에서 내려오는 현민의 팔이 그의 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현민이 다시금 공격하려는 순간 멀리서 지켜보던 여성이 마법을 사용했다. "텔레포트!" "6서클?" 쓰러져 있던 유저의 신형이 그녀의 옆으로 옮겨졌다. 단순한 마법도 아닌 텔레포트였기에 현민의 시선이 돌아갔다. "여신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치유를!" "성직자?" 현민은 긴장했다. 그녀가 마법뿐만 아니라 치유 주문까지 사용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회복되는 남성유저를 보아 그 실력도 낮다고 할 수 없었다. "대, 대단하군." 여성의 도움으로 부상을 고칠 수 있었던 유저는 놀랍다는 얼굴로 현민을 보았다. 한순간 보였던 그의 움직임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래서... 어떻게 됬죠?" "응?" "그 다음." 현민은 물었다. 세피아의 죽음에 화가 나기는 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것이 아니었다. "아아. 그녀는 나왔다. 당당하게 혼자 나왔지 그리고 무기를 내려 놓았다. 현민은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라면 충분히 그럴 것이다. 남자보다 더 강하고, 그누구보다 자식 사랑이 커다란 그녀였다. "그리고 약속대로 딸을 보여주었다." "응? 아까는......" "우리의 약속은 딸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 꼬마가 '살아있고','죽어있고'는 약속 내용에 들어있지 않았지." 오싹오싹! 현민에게서 또다시 살기가 흘러나왔으나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도 너처럼 반응 하더군, 미친년처럼 난리를 피우기에 죽여버렸다." "정말... 인가요?" "훗! 내가 장난이라도 하는 것 같나?" 그는 자신의 인벤토리를 뒤적거리며 무엇인가를 그에게 던졌다. 툭- "이것이 그 증거다." 그것은 팔잉엇다. 얼핏 보더라도 여성의 오른팔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이것이 세피로스의 팔이라는 것은 확인 할수 없었지만, 그손에 끼어 있는 반지는 현민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세피로스의것이었다. 현민은 그것을 주워들었다. "묘." 샤르륵! 현민의 부름에 조용히 나타난 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붙여 줘" 골격도, 크기도 달랐지만 묘는 그것을 현민의 팔에 붙여 주었다. 썩어가고 있던 팔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현민의 피가 순환되며 본래의 색을 찾았다. 현민은 가냘파 보이는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꾸욱! "아하하하하하하하-!' 현민은 오른팔을 감싸 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여성유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남성 유저를 바라보았다. 마치 잘못 건드린것은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설마 이러한 짓을 할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햇던 남성 유저는 현민의 섬뜩한 모습을 보며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언제든지 움직일수 있도로 긴장했다. 현민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 3명밖에 없던 공간에는 언제 사람이 모여든 것인지 수많은 유저들이 눈치를 보며 구경하고 있었다. 현민의 시선이 정면에 있는 유저에게로 돌아갓다. 그는 조심스럽게 활을 올리고 있었다. "나를 건들지 마." 두근! 그렇게 말하고 있는 현민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잇었다. "나를 몰아넣지 마." 두근! 그렇게 말하고 있는 현민의 얼굴은 미소 짓고 있었다. "나를... 깨우지 마." 촤르르르르륵!! 쇠사슬이 부딪치는 시끄러운 소리가 현민의 귀에 울려 퍼졌다. 마음속에서 내면의 현민이 고함을 질렀다. 현민은 울면서 미소 지었따. "이미... 늦었어." 팟! 현민의 인격이 가라앉으며 육체의 주도권이 내면의 현민에게로 넘어갔ㄷ다. "젠장! 하필 여기서-! 모두 물러나! 죽고 싶지 않다면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다.-!" 내면의 현민은 소리쳤다. 주변의 유저들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에 있는 '그'가 깨어나서 살육을 시작한다면, 이제 더 이상 그들은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안 그러면 진짜......!"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말리기 위해 소리치고 있을 때, 현민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움직임을 멈추었다. "악마가 깨어나니깐. 크크큭!" 그리고 진정한 악마가 눈을 떳다. 제107장 악마 콰득! 트드드드드득! 주변에 있는 대지와 대기가 몸을 떨었고, 점점 짙어져 가는 검은색의 안개가 현민의 모습을 일그러트렸다. 유형화되어가는 살기 그자체가 빛조차 거부하여 주변 유저들의 시야를 흩트린 것이다.본능적인 공포가 그들의 온몸을 뒤덮었다. 털썩! 덜덜덜! "이, 이게... '악마'?" 마녀의 활을 들고 있던 유저는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잇는 모든 유저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현민의 살기는 그들이 버티고 있을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살기 속에서 현민을 도발했던 유저의 얼굴에 '후회'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현민의 이러한 모습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의 모습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고 잇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한명의 인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악마'였다. 현민의 모든 것을 보고 싶었던 그의 욕심이 악마를 불러낸 것이다. 그의 몸은 의지와 다르게 떨림이 멈처지 않았고, 주변의 공기가 사라진 듯 말하는 것도, 숨 쉬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는 모든 의지를 모아 자신의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는 혼자서 어찌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가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살기로 뒤덮여진 현민은 루인아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호오? 거부하는 게냐? 내가 어떤 존재인지 눈치 챈 것 같구나." 최종 형태를 갖추고 잇던 루인아츠는 현민의 살기가 깨어나면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엇다. 전투 형태의 루인아츠가 그의 살기를 아슬아슬하게 견뎌낸 적이 있었으니, 최종형태의 루인아츠가 그의 살기를 견뎌내지 못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인격을 가지고 있는 루인아츠가 현민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현민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차가운 눈으로 루인아츠를 바라보았다. "너 따위가 없다고 해서 내가 약한 것은 아니다." 현민은 착용하고 잇떤 루인아츠를 벗어서 바닥에 집어 던졌다. 본래의 현민... 아니, 그 누가 보았더라도 난리를 피울만한 장면이었다. S급의 아이템을 쓰레기 버리듯 내팽개쳤으니 말이다. 모든 유저가 노리고 있는 물건 중의 하나가 루인아츠였으나, 지금 이 자리에 루인아츠를 주울 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멀쩡히 서 있는 존재는 현민, 그 하나뿐이었다. 우둑! 뚜둑! "하아... 좋구나." 루인아츠를 대신하여 양손에 2개의 단검을 착용한 현민은 기지개를 펴며 몸을 풀었다.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은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비록 현실은 아니라고 하나, 이 또한 현실과 다름없는 세상." 샤르륵. 한참 몸을 풁던 현민이 움직임을 멈추었을 때, 그의 신형은 신기루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런 현민이 다시금 나타난 장소는 공포로 인해 주저앉은 유저들의 뒤쪽. 갑자기 나타난 현민은 무기가 들린 손으로 그들의 목에 팔을 둘렀다. "너희들에게는 감사해야겠구나. 너희로 인해 내가 깨어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서걱! 온화한 얼굴에 온화한 말투였으나, 그 결과만은 온화하지 않았다. 현민의 손목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그들의 목을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단검의 날카로움이 현민의 부족한 근력을 메워주었다. 현민이 가지고 잇는 다른 무기들과 다르게 B급의 단검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격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현민이 뛰어난 무기를 가지고 잇어서 하찮아 보일 뿐, 웬만한 유저들도 구하기 힘든 것이 B급의 무기였다. "으, 으으......." 가까운 고셍서 2명의 유저가 맥없이 죽었으나, 그 주번에 있던 유저들은 반항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게 옳았다. 현민이 다가온 것만으로도 괴로운 것인지 자신의 목이나 심장을 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현민은 온몸을 피로 물들인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갔다. 게임상의 피로 하얗게 물들어 있는 현민의 손이 그들 중 한 명의 볼을 쓰다듬었다. 시험인 것인지, 배려인 것인지 현민의 손이 닿아 있는 여성 유저는 남들보다 그 살기의 정도가 미약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볼을 쓰다듬고 있던 현민의 손이 그녀의 머리로 옮겨졌다. "한심하구나. 이 정도의 살기조차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냐?" 파삭! 현민의 한마디와 함께 유저의 머리가 부서졌다. 그녀의 머리를 잡고 있던 현민의 손이 그대로 파고들어가며 유저의 머리를 부순 것이다. 현민의 힘을 생각해본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지금의 그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현민은 유저의 머리를 지나 땅속까지 파고들어간 자신의 손을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다. 어느 정도의 재미를 위해서는 적단한 것이 좋겠지." 스르륵. 곧 현민을 감싸고 있던 안개의 범위가 줄어들었고, 그 농도가 옅어졌다. 그리고 그와 비례하여 유저들의 압박도 줄어들었다.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유저들은 서둘러 현민으로부터 도망갔다. 대부분의 유저가 도망갔지만, 전부가 도망가지는 않았다. 끔찍한 공포를 경험하고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 몇몇의 유저가 끝까지 남아 현민을 노렸다. 현민은 남아 있는 유저들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리석어도 너무 어리석구나." 흠칫!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는 뻔히 느껴졌기에 남아 있던 유저들은 긴장했다. 파파팟! "음?" 그때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몇몇의 유저들이 현민의 주변을 둘러쌌다.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현민의 살기가 만만치 않은 것은 분명함에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유저들에게서는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과 규칙을 이루고 있는 그들의 움직임을 보며 현민은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그가 기다리던 '먹이'가 드디어 다가온 것이다. 쾅! 커다란 소음과 함께 현민의 신형이 빠르게 튕겨져 나갔다. 챙! 스악! 순식간에 유저의 앞에 도착한 현민은 상대방의 미간을 행햐 단검을 찔러 넣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그 속도도 빨랐으나, 그 대상인 유저는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그의 무기를 내리쳤다. 현민은 그 힘을 거스르지 않으며 자연스레 몸을 기울였고, 그 상태에서 회전하여 반대편의 단검으로 상대방의 목을 노렸다. 내려쳐지는 것과 동시에 움직였기에 그 속도는 빨랐다. 원래대로라면 하나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라야 했으나, 아쉽게도 지금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왼쪽에 잇는 동료가 그를 대신하여 현민의 단검을 막아주었고, 오른쪽에 있는 유저가 현민을 공격했다.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강력한 스킬이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순간에 이루어진 빠른 공격은 스킬 이상의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그의 검에 현민의 목이 잘려 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쉽게 죽어줄 현민이 아니었다. 붙어 있던 현민의 양발이 크게 벌어지면서 그의 신형이 낮아졌고, 공격하던 유저의 검은 허공만을 가르고 지나갔다. 다리가 벌어지며 현민의 회전이 커졌지만, 한쪽 손이 내려와 벌어진 발을 대신하여 그의 회전은 다시금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숙여진 허리를 따라 그의 발이 높이 들렸고, 막 공격을 하고 있던 유저의 손을 강하게 차올렸다. 생각 이상으로 강한 현민의 발차기에 유저의 무기가 하늘높에 솟아올랐다. 팟! 목표를 종확히 때린 현민의 발은 원래의 위치로 빠르게 돌아왔다. 숙여졌던 허리가 펴지며 바닥을 짚고 잇던 현민의 손이 유저의 가슴을 노리고 위로 솟아 올랐다. 단단해 보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현민은 자신의 무기를 의심하지 않았다. 푹! 스아악! 복부에 절반쯤 박힌 단검은 현민의 믿음(?)대로 그의 갑옷을 가르며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 상황에 깜짝 놀란 오른쪽의 유저는 서둘러 현민의 거믈 찍어 눌렀다. 조금만 늦었으면 현민의 단검이 동료의 머리를 가르고 지나갈 뻔했다. 지금도 충분히 위험한 상처였으나, 당장에 죽을 만한 상처는 아니었다. 힐끗! 왼쪽의 유저는 한 번 막음으로써 무기의 힘을 잃어버렸고, 오른쪽의 유저는 무기를 날려 버림으로써 완벽한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던 현민은 예상외의 상황에 오른쪽을 쳐다봤다. 어느새 바뀐 것인지, 그의 오른쪽에는 무기를 잃어버린 유저가 아닌 다른 유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스윽- 그로 인해 자신의 공격이 막혔다는 것을 깨달은 현민은 빠르게 손목을 꺾으며 그의 무기를 스쳐 지나갔다. 상대가 하연이라면 스쳐지나간 검이 다시금 그를 노리며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었으나,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가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현민은 회전을 멈추이 않은 채 3명의 유저를 동시해 공격했다. 채챙! 챙! 가장 집중적으로 노린 것은 역시 부상을 당한 정명의 유저였으나, 양쪽의 유저들이 생각 이상으로 강하여 더 이상의 공격은 성공할 수 없었다. 더욱이 부상을 당한 유저가 뒤로 빠지고 그 자리를 다른 유저가 대신하면서 잠깐 생겼던 빈틈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현민에게는 나름대로 위기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의 움직임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현민은 빠르게 회전하며 공격하고 방어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안개로 인해 검은색의 바람이 공격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차릉! 챙! 채챙! 끊임 없이 들려오는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한 곡의 음악처럼 들렸다. 현민의 단검이 왼쪽 유저의 목을 노렸고, 정면에 있던 유저의 검이 현민의 다리를 노렸다. 오른쪽에 있던 유저는 이전에 현민의 공격을 막느라 움직임이 멈춰 있는 상태였다. 현민은 공격하고 있던 오른손의 단검을 놓고 허공에 떠 있는 송곳 모양의 뾰족한 단검을 잡았다. 왼쪽의 유저를 노리고 있던 단검은 현민의 손을 떠나고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챙! 핑! 현민의 오른손에 쥐어진 단검이 수직으로 내려가며 정면에 있던 유저의 검을 꿰뚫어 바닥에 꽂았고, 그와 동시에 왼쪽의 유저가 날아오는 단검을 튕겨냈다. 충돌하는 힘이 생각보다 적었던 그의 검은 방어에서 공격으로 바로 이어졌다. 흠칫! 하지만 막상 공격하고 있던 유저는 현민의 눈을 보며 긴장했다. 우연히 마주친 그의 눈이 자신을 비웃고 잇었다. 챙! "윽!" 그와 현민의 무기가 부딪쳣고, 다른 곳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가 날려 보냈던 단검이 우연인지, 계획된 것인지 오른쪽 유저의 어깨에 정확히 박힌 것이다. 뼈와 뼈 사이에 박힌 단검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무기를 놓쳐 버렸다. 더 이상의 전투가 불가능해진 정면의 유저와 오른쪽의 유저는 예정된 것처럼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한 번에 2명이 움직였기 때문인지 그들의 진(陣)에 틈이 생겼다. 이제 막 몸을 돌리고 있던 현민을 떨어지고 있던 유저의 검을 잡으며 그들의 틈으로 움직였다. 살랑~ 그것으로 끝이었다.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았던 검의 연주회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비어버린 두 자리를 대신하여 들어온 유저들도, 처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왼쪽의 유저도 더이상 움직임은 없었다. 단지 그들의 검이 현민의 몸에 꽂혀 있었다. 바깥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동료들은 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 주변만 모든 것이 멈춰 있어서 어떤 결말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현민의 죽음이 확실했으나, 다른 누구도 아니고 어릿광대였기 때문에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유저는 없었다. "죽... 은 건가?" "제길! 그 '악마'가 죽었다고? 어림없는 소리! 그는 지금 놀리고 있는 거다. 정신 차리고 주변을 확인해-!" 그의 예상이 정확히 들어 맞으며 현민의 목소리가 곧바로 뒤를 이었다. "아아, 인간은 너무 나약해. 이렇게 쉽게 다치고, 이렇게 쉽게 죽어버리니 말이야." 투두두둑! 철퍽! 현민을 둘러싸고 있던 유저들의 신형이 산산조각 나며 바닥으로 흩어졌고, 그 중심에 있던 현민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안 그래?" 덜덜덜! 아직까지도 마녀의 활을 들고 있던 유저는 현민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언제 어떻게 자신의 뒤에 다가왔는지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빨을 떨지 않도록 어금니를 꽉 물고 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현민의 살기를 직접 경험한 그에게는 현민의 존재 자체가 공포로 다가왔다. 반항할 생각 따위는 할 수도 없었다. "아으......." 옆에 있던 여성도 그와 마찬가지인지 현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주저 앉아 버렸다. 그들이 공포에 질려 있을 때, 나머지 동료들이 빠른 동작으로 현민을 포위했다. 그들 두 사람이 있었기에 바로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현민을 생대함에 있어서 주저함을 보이지않았다. 그들은 동료의 부름으로 중간에 왔기 때문에 현민의 공포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몸을 다룰지도 모르지. 이렇게 멍청한 종족은 이 세상에서 하나뿐일 거다." 현민은 살짝 허리를 숙여 바닥에 주저 앉은 여성을 껴안았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손길로 그녀를 을으켜 세웠다.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놓고 그 안에 안주하며, 그 이상의 능력은 발휘하지도, 알려고도 하지도 않아." 움찔! 여인은 귓가에 들려오는 현민의 숨결에 몸을 움찔거렸다. 공포와 부끄러움이 참을수 없는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현민의 손이 그녀의 몸을 쓰다듬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현민의 모습은 치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너희들이 왜 나보다 느리다고 생각하는 거지? 너희들은 스탯이라는 것을 찍고도 자신의 몸을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 어째서..." - 22 , 23 페이지는 화질 깨짐. - 스윽- "아ㅡ 아아악-! 아악! 아, 으... 윽! 크흑! 흑!" 살을 벤 것도 아니고 살짝 찔렀을 뿐인데도 그녀는 엄청난 고통을 느낀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순간적인 고통에 그녀의 움직임이 거칠어져서 현민이 잡고 있던 손을 놓칠 정도였다. "나를 깨운 보답이다. 조금 더 재미있게 해주지." "으아아악! 아악!! 사, 살려... 살려 주세... 아아악-!" 현민의 칼이 몇 번 더 그녀의 몸을 스쳐 지나갔고, 엄청난 비명이 그곳에 메아리쳤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유저들은 서둘러 결정을 내려야했다. 마녀의 활을 들고 있던 유저는 이미 돌조각으로 변한 지 오래였고, 바닥을 뒹굴고 있는 여성 유저도 더 이상 제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파파팟! 그들과 현민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며 공격이 시작되었다. 챙! 서걱! "응?" 현민은 가까이 다가온 살기를 느끼고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으나, 바닥을 뒹굴고 있던 여성 유저는 순식간에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다. 설마 동료를 죽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현민의 방심 탓이었다. 만약 본래의 현민이었다면 동료이기 때문에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도록 죽일 거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잔인한 일을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주변 유저들의 공격으로 그제야 적개심을 읽은 듯한 현민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즐거운 듯 미소를 지었다. "잊고 있었구나. 이것은 전쟁. 너희들은 전쟁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스스스슷! 현민 그 자체는 변한 것이 없었으나, 그를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가 현민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쳤다. 나도 너희들의 마음에 답하며 본격적으로 놀아주마." 살랑~ 너무 빨라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현민의 움직임이 다시 한 번 나타났다. 유저에게서 빼앗은 대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현민은 춤을 추듯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그들의 사이를 돌아다녔다. 동작은 확실히 부드러웠으나, 그 속도는 절대로 느리지 않았다. 살짝 비켜선 현민의 옆으로 하나의 단검이 지나갔고, 돌아서던 움직임을 잠깐 멈추자 거대한 도끼가 눈앞을 지나갔다. 3명의 유저가 현민을 둘러싸고 공격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상대하는 유저가 끊임없이 바뀌었다. 공격을 실패할 때마다 한명의 유저가 죽었기 때문이다. 현민의 손에 들린 검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주변 유저들의 몸을 산산조각 냈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흘렀을 때, 1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존재하던 담비의 망치 위에는 단 두 사람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단검과 곡도를 무기로 하고 있는 그녀들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유저들이 모두 죽는 순간에도 그녀들만은 상처 하나 없었다. 일부러 자신들만을 살려 둔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온갖 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현민은 그녀들을 향해서 발을 옮겼다. 저벅저벅. 주춤! 어느새 다가온 현민이 코앞에 있는데도 그녀는 무기를 휘두르지 못했다. 그저 안개 속에서 빛나는 현민의 눈동자에 놀라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을 뿐이었다. 의지하고자 하는 대상을 찾아 시선을 돌렸으나, 유일하게 남아 있던 다른 여성은 다리가 풀린 것인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현민은 그녀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현민이 두르고 있는 검은 안개 속에서도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궁금하더냐? 어째서 너희들을 살려 두었는지?" 그녀의 시선은 현민의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시선을 돌린다면 죽음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경험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왜 자신이 주저앉지 않았는지,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지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 그러한 생각은 현민의 질문을 받으며 더욱 커졌다. 그다음에 어떤 말이 이어질지 두려웠다. "여자의 비명만큼 아름다운 소리는 없기 때문이다." 푸욱! "크억! 쿨럭!"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현민의 손이 그녀의 배를 뚫었다. 체감도가 낮기 때문에 커다란 고통은 아니었으나, 다른 이물질이 자신의 배 안에 느껴진다는 것은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 이물질인 현민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점점 더 커졌다. "크크큭! 여자의 신음 소리도 나름대로 아름답군.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건 '비명'이야. 페인." 고통을 증가시키는 마법이 사용되면서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갑자기 퍼져 나가는 고통을 참을 수 없는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녀의 비명은 한참이 지나고서야 터져 나왔다. 처절한 비명이 그곳에 메아리쳤다. "으, 으, 으... 으아아아아아악-!" "아아, 당신의 속은 너무나 따뜻해. 그 느낌도 부드럽고, 두근거리는 심장도 직접 느껴져서 너무 기분이 좋아." 현민의 목소리는 몽롱했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 취해 있었다. 현민을 죽이기에는 가장 완벽한 기회였으나, 아쉽게도 근처에 멀쩡한 유저는 존재하지 않았다. "저, 저게 현민?!" 지혜는 물웅덩이를 통해 보이는 현민을 보며 경악했다. 그 곳에는 현민의 탈을 쓰고 있는 다른 존재가 있었다. "아, 아니야! 저건 현민이 아니야!" 지혜는 부정했지만, 물웅덩이 속의 현민은 바뀌지 않았다. 현민이 악마가 되는 건 그녀도 예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잔인하고 섬뜩한 '능력'이었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현민은 타인의 '고통'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변해버린 현민의 모습에 지혜는 다급해졌다. "도와줘요! 지금 당장 말려야 해요!" 물웅덩이를 통해 보이는 현민은 이미 그녀가 말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혜는 간절한 눈으로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불가능하더라도 그라면 지금의 현민을 가볍게 말려 줄 수 있을 것이다. 드래곤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지혜를 바라보았다. "안 된다." "왜요!?" "언령으로 맹세했다. 그의 일에는 관련하지 않기로, 나뿐만 아니라 모든 드래곤이 맹세한 것이다. 네가 아무리 나의 대리자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럼 저만이라도 가겠어요!" 지혜는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언련으로 맹세를 했으니 더 이상 그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현민을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생각하지 못했지만 일단은 부딪칠 작정이었다. 이대로 있을 경우 예상되는 현민의 미래가 너무나 끔찍했다. "그것도 안 된다." "그건 또 왜요?!" 지혜는 흥분한 표정으로 드래곤을 돌아보았다. "너는 나의 대리자. 너의 이름 또한 맹세에 포함되어 있다." "맹약을 어기면 어떻게 되죠?" "사라진다." 흠칫! 두서가 없었지만 지혜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이,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영혼이 사라진다는 것,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은 더이상 『싸울아비』를 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캐릭터의 삭제뿐만 아니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성 권한까지 사라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세상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고민할 만했으나, 지혜의 입에서는 바로 대답이 나왔다. "그레ㅐ도... 가겠어요." "......!" 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지혜는 절대로 이런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4일 전만 하더라도 탐욕으로 물들어 있던 그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제가 계획했던 일이에요. 진즉에 알고도 말리지 않았어요."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인가?" 끄덕. "그의 저런 모습은 보기 싫어요. 그것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더욱 싫고요. 설사 죽는다고 해도, 다시는 이 세상에 올 수 없다고 해도 그를 말릴 거에요. 이제야 친구가 되었는데, 이따위 일로 갈라질 수는 없어요." 드래곤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지혜를 바라보았다. "변했군." 자신도 그것을 느끼고 있는지, 지혜가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그렇다면 나도 한 가지 알려 주지." "응?" "그가 변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게 무슨 밀이죠?" 지혜가 의아해했으나 그의 입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지혜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물웅덩이 속의 현민만을 바라보았다. 저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장면이 비춰졌지만, 그의 반응은 이존보다 미약했다.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인지 무관심에 가까웠다. 현민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비명은 더욱 처절해졌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ㅇ드나,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이기에 그녀의 목숨을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느끼는 고통과는 별개로 줄어드는 생명력은 일정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침으로 인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어때? 기분은?" 뻐끔뻐끔.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입만 벙긋거렸다. 복부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으로 인해 그녀의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이봐, 여기에서 무너지지 마. 그럼 재미없잖아? 내가 왜 '악마'인지 확실히 경험해봐." 이리저리 움직이던 현민의 손이 그녀의 장기 중 하나를 파괴했다. 또 다른 고통이 그녀의 정신을 깨웠다. 내부의 장기가 부서진다는 것은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비명을 지르기보다 혀닌을 향해 애원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 현실 이상의 고통으로 인해 그녀의 정신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주, 죽여... 제발." "크큭! 두려운가? 괴로운가?" 현민은 그녀가 어떠한 상태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즐거워했다. 조금만 더 하면 그녀의 정신이 무너져 버린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푸욱! "끄, 끄어억!" "크하하하하! 그래그래! 계속해서 울부짖어라!" "꺄아아아악! 아아악!" 현민의 계속되는 고문으로 인해 그녀의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 그녀가 죽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현민은 그 강도까지 조절하며 최대한 오래, 철저히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녀의 비명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현민의 고문이 꼐속되는데도 그녀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악! 아, 흑! 흑흑! 크큭! 키키키킥!" 현민에 의해 서 있던 그녀는 고개를 젖히며 풀린 눈동자로 하늘을 바라 보았다. "세상에는......." "응?" "귀... 여운 악마... 가 있다네." 처음에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너무나 작은 목소리에 음률까지 섞여 있다 보니 웅얼거림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현민은 청각을 집중하고서야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수가 있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처럼 장난스러운 귀여운 악마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죽이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죽이고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눈물을 짓네. 갈기갈기 찢겨진 그들을 보며 환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네.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현민의 어떠한 행동에도 그녀의 노래는 멈춰지지 않았다. 나른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지혜의 노래는 온몸의 감각을 불퀘하게 만드는 섬뜩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현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비명도 지르지않는데 불퀘하기까지 하니 그의 인상은 절로 찡그려졌다. "페튜니아 누나인가?" 자신의 마법이 취소된 것뿐만 아니라, 페인이라는 마법 자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며 현민은 그 범인을 짐작했다. 그녀가 아니고서야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현민은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감춰왔던 살기를 전부 드러냈다. "아무리 누나라도 나를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콰드드드득! 사방으로 퍼져 가는 검은색의 안개와 광포한 기운에 그가 디디고 있던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또 다른 제가 그것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흥!" 그렇게 말한 현민은 드려냈던 살기를 다시 감추었다. 더 이상 남아 있는 유저는 없었지만, 혹시라도 접근하는 유저들을 윗한 배려(?)였다. 스윽- 털썩! 현민은 유저의 몸 안에 들어가 있던 자신의 손을 빼냈다. 비명도, 반응도 없었기에 그의 흥미는 사라진 상태였다. 기댈 곳을 잃어버린 그녀의 몸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뭐, 고통으로 인한 재미는 막을 수 있어도 살인으로 인한 재미는 막을 수 없겠지." 으득! 어깨를 으쓱거린 현민은 그녀의 목을 밟아 으스러트렸다. "그리고 장난감은 아직 하나 더 남았으니깐. 크크큭!" 현민의 시선이 돌아간 곳에는 또 다ㅣ른 여성 유저가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현민으로부터 도망가려던 것 같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멀리 가지는 못한 상태였다. 현민은 그녀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며 그녀의 발목을 잡아 올렸다. 두 다리가 벌어져 있어 상당히 민망한 모습이었으나 잡고 있는 현민도, 잡혀 있는 여성도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이느냐'와 '어떻게 사느냐' 였다. "자~ 너는 어떻게 죽여줄까?" "시, 싫어! 싫어!" "응?" 그녀는 현민의 손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쳤다. 현민의 잔인한 모습을 보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반응이었으나, 현민은 그것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목을 잡고 있던 현민의 손이 풀리며 그녀의 신형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털썩! "윽!" "호오~?" 움찔! 무엇을 발견한 것인지 현민에게서 특유의 이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인격이 달라졌음에도 이러한 것에는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현민의 이상한 감탄사에 여성의 몸이 움찔했다. 현민은 그녀의 반응을 보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속이려 하다니... 멋진 배짱이구나." "무, 무슨......." 그녀는 현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떨리고 있는 몸과 흔들리는 눈빛은 현민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녀의 어디에서도 거짓이라는 느낌은 들지않았다. 현민은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두 사람의 코가 서로 맞닿을 정도였다. "신기하구나. 지금의 상황이라면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당연한데, 자신의 상황을 뒤로하고 나의 정보를 궁금해하니 말이다. 너희 군인이란 존재는 전부 그러하더냐?" "몰라요! 앞으로, 앞으로 절대 접속하지 않을게요! 제발 보내주세요!" 그녀는 현민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두려워하며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현민이다. 그것도 각성한 내면의 현미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현민이었다. 본래의 현민이 마음을 예상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타인의 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어설픈 거짓말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크크큭! 너는 정말로 마음에 드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 주고 있으니 말이다." 온몬을 따끔하게 하는 현민의 살기에 그녀의 숨결이 불규칙해졌다. 할고 있느냐? 네가 방금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부탁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 "너는 실수했다. 그럴때는 '접속하지 않을게요, 보내주세요'가 아니라 '죽여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어설픈 모습으로 두려워하는 척이라니... 내가 너무 자애로웠던 모양이구나." 덜덜덜! 현민의 살기가 집중되면서 그녀의 몸이 사시나무 떨 듯 했다. 남들 이상의 훈련과 노력으로 자신에게 두려운 것은 없다고 믿었으나, 눈앞의 현민이 잊고 있던 감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알고 싶더냐?" 움찔! 갑작스러운 현민의 말에 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조금 전의 그 움직임, 아리라는 여자를 따라 한 것이다. 싸울아비로 유명한 아리의 검술은 강인한 손목, 그리고 무게중심의 자유로운 변화로 인해 만들어지지. 이제는 만족하느냐? 응? 어떻게 가능하냐고? 한 번 본 이상 흉내 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오싹! 그녀는 지혜와 마찬가지로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의 연기가 들켰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악마'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정도로 자세하게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크크크! 이제야 두려워지는 것이냐?" 그녀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뿐만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현민의 손이 자신의 팔을 잡는데도 반항할 수가 없었다. "나를 깨우게 만든 너희들의 실수... 두고두고 후회하라." 우득! 찌이익! "꺄아아악-!" 천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꼐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양팔을 붙잡고 있던 현민이 강하게 잡아당기며 그녀의 팔을 뜯어낸 것이다. 아무리 체감도가 낮다고 하더라도 그 아픔은 상당했다. 주저앉아 있던 그녀의 허리가 절로 수그러졌다. "이번엔 다리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은 현민은 그녀의 두 발을 붙잡았다. 발목이 붙잡힌 그녀는 두 팔의 아픔도 잊은 채 현민의 손을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으나, 현민의 발이 그녀의 배를 찍어 눌렀다. "이런 게 오채분시겠지?" 우드득! 찌익! "으, 으아아아악! 아아악!" 뼈 빠지는 소리가 먼져 들렸고, 인대와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두 다리는 천천히, 조금씩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푸욱! 촤아아악! 그녀의 다리가 완전히 뽑히고, 다리가 떨어진 부분에서 흰색의 가루가 피를 대신하여 뿜어져 나왔다. 현민은 두 다리를 집어던지며 그녀의 목을 잡아들었다. "운영자들에게 고마워해라. 너는 이전의 여자보다 덜 고통스러웠으니 말이다." "너, 너는... '악마' 인가?" 현민은 그녀의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아, 그래. 내가 바로 악마다." 그 한마디와 함꼐 그녀의 목이 떨어졌다. 제108장 또 다른 현민 그녀를 마지막으로 주변의 모든 유저를 죽일 수 있었던 현민은 크게 웃었다.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살기가 그의 웃음에 맞추어 소용돌이쳤다. "아직 장난감은 많아. 처음으로 나온 만큼 확실하게 즐겨주겠어." 현민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 세상에서만 가능한 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현민 이상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그가 이 정도로 집중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진질된 거짓(5써클)." 자신에게 사용되는 환상 마법. 그 방법은 같았으나 결과는 달랐다.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현민은 담비의 망치 위를 가득채운 것으로도 모자라, 망치의 옆 부분까지 빈틈없이 메웠다. 현민은 자기 자신을 속이며 본래의 육체를 여러 개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육체을 뿐, 갑자기 생겨난 현민들에게 자아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움직이는 정신은 살기로 이루어진 현만, 그 하나뿐이었다. 하나의 정신이 여러 개의 육체를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유가 적당할지는 모르나,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게임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1백 개라고 한다면, 한 사람이 1백 개의 다양한 게임들을 1백 개의 모니터를 보며, 1백 개의 조이스틱으로 진행하는 것과 같았다. 아무리 간단한 게임이라 하더라도 쉽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지금의 현민은 그러한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무리라고 생각되는 게 당연했으나, 망치 위에 있던 현민들은 조금씩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현민은 제자리에서 뛰었고, 어떤 현민은 주저앉았다. 무기를 뽑아서 휘두르는 현민도 있었고, 주변에 떨어져 있는 무기를 줍는 현민도 있었다. 마치 독립된 존재처럼 수많은 현민들이 서로 다른 행동을 보였다. 현민은 그 많은 육치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었다. 인간의 뇌가 어느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 주는 일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수백만 명의 현민이 동시에 말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면 세상을 죽여라!" 그들은 외쳤다. 자신의 광기와 살기를 드러내며 세상의 모든 것을 위협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서 세상마저 죽여 버리는 거다-!" 갖가가 뿐어내는 살기가 어우러지며 검은색의 안개가 망치의 주변을 뒤덮었다. '죽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기운으로 인해 바람이 멈추었고, 대지가 흔들렸다. 그들은 남아있는 유저들을 죽이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페튜니아는 현민의 싸움을 지켜보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현민이 한쪽 팔을 잃어버린 것은 크게 걱정되지 않았으나, 그 상태에서 분노하고 있다는 게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면서 딱 한 번 보았던 '그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뭐가 그렇게 위험해? 잘 싸우고 있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성희는 화면 속의 결과만 받아들이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아무런 기청 없이 움직이기 시작한 현민은 거친 기세로 상대 유저를 몰아치고 있었다. 한쪽 팔이 없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강한 모습이었다. "아니야. 내가 말한 위험은......." <묘, 붙여 줘.> "세상에......." 페튜니아가 막 그 이유를 말하려고 하는 찰나, 화면 속의 현민이 다른 존재의 팔을 자신에게 붙였다. 옆에서 같이 지켜보고 있던 성희는 정상적이지 못한 현민의 행동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아하하하하하!> 현민의 웃음이 내부에 울려 퍼졌고, 운영자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어째서 페튜니아가 위험하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평소 엉뚱한 짓을 많이 하던 현민이었으나, 지금의 모습은 엉뚱하다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현민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현민의 웃음과 함께 화면 속의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나를 건들지 마.> 오른쪽에 드러나 있는 현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를 몰아넣지 마.> 너무나도 슬픈 얼굴인데 그의 입은 웃고 있었다. 울면서 웃고 있는 모습. 어릿광대 가면과 똑같은 현민의 얼굴을 보며 페튜니아는 신음을 참지 못했다. "현민......." <이미... 늦었어.> 화면 속의 현민은 그녀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젠장! 하필 여기서-! 모두 물러나! 죽고 싶지 않다면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다-!> 현민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고, 커다란 고함이 스크린에서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그의 변화에 운영자들은 당황스러워했다. <안 그러면 진짜......!> 운영자들의 당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현민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변했다. <악마가 깨어나니깐. 크크큭!> 흠칫! 페튜니아가 깜짝 놀람과 동시에 갑자기 생겨난 검은색의 안개가 현민의 주변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 규모와 농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뭐, 뭐야... 저건? 안개? 아냐. 저건 안개 따위가 아냐." 성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화면을 가득 메운 검은색의 안개를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일렁거리는 안개가 악마로 보였다. 단순한 착시 현상일 수도 있었지만, 섬뜩한 느낌이 그녀를 오싹하게 했다. "도대체 뭐야? 저거 어릿광대가 한 것 맞지? 마법? 마법진? 정령? 스킬? 어째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어째서 냐고!" 그녀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인지 정신없이 소리쳤다. 일부를 제외한 운영자들은 그러한 성희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면을 바라보며 두려움을 느낀 것은 극히 소수일 뿐, 전부가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의 시선에 당황한 성희가 페튜니아를 바라보았다. "지현이 너도 뭐라 말 좀 해봐!" 당황한 성희와 다르게 페튜니아는 침착했다. "...살기." "뭐?" "저게 바로 '살기'야." 사방이 조용했기에 페튜니아의 음성은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운영자들은 검게 물들어 있는 화면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많은 직업들이 '살기'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어떠한 직업도 저러한 현상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운영자들은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것이다. "...스킬?" "저건 스킬이 아니야. 말 그대로 살기(殺氣). 죽이고자 하는 의지야." "너......." 성희는 그제야 페튜니아의 이상함을 발견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굳이 말하자면 시원하다고 할 수 있는 운영실에서 그녀의 옷이 흠뻑 젖어 있었던 것이다. 페튜니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스크린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미안, 지금은 나도 좀 위험해." 차라리 평범했다면 아무것도 모르련만, 발록과의 수련으로 감각이 예민해진 페튜니아에게 현민의 살기는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직접 마주하는 것도 아님에도 자신의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한심하구나. 이 정도의 살기조차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냐?> 마지 자신을 향하는 듯한 현민의 말에 페튜니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대상이 현민임에도 분했다. 그녀가 전사(戰士)라 말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좋다. 어느 정도의 재미를 위해서는 적당한 것이 좋겠지.> 현민을 감싸고 있던 안개의 범위가 줄어들며 그곳의 상황이 화면에 나타났다. 수많은 유저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도망갔다. 현민이 어떠한 짓을 해도 달려들던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도망? 가상현실에서?" 성희는 믿을 수 없었다. 세 번째의 죽음이 아니라면 죽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싸울아비』에서 유저들이 도망을 가고 잇었다. 페튜니아가 말한 살기 속에서 그들이 무엇을 경험했는지가 궁금했다. "저들은......." "또 군인?" 성희와 페튜니아가 동시에 말했다.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 그들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현민의 살기를 직접 느꼈음에도 끝까지 덤비는 그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삼재진을 이용한 차륜전인가?" 페튜니아는 무림 쪽에도 경험이 있는지 그들의 진형을 간단히 분석했다. 현민을 둘러싸고 있는 세 사람과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었다. 치고 빠지는 그들의 움직임이 매끄러웠다. 여기까지는 감탄할 만했으나 상대가 현민이었다. 현민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는 페튜니아는 오히려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한숨을 놓았다. 저렇게 직접적인 공격이라면 현민이 당할 가능성은 없었다. 순수한 기량으로 그 누구보다 오래 싸울수 있는 존재가 현민이었다. 그녀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공격 불능이 된 2명의 유저가 동시에 물러났다. 돌아서고 있는 현민은 그중 한명의 무기를 잡고 있었다. 살랑~ "응?" "안 돼!" 페튜니아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성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운영자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화면속의 현민이 3명의 유저들에게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기가 현민의 몸에 꽂혀 있었다. "어릿광대의 상태는?!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확인하세요!" 아직 목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고, 치명상은 입었을지언정 출혈은 없었기 때문에 성희는 한 가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때, 가만히 있던 페튜니아가 입을 열었다.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조금 전의 화면을 느리게 재생하세요." "뭐?" 페튜니아의 말에 가장 놀란 것은 역시 성희였다. "너 지금 정신 나갔어? 잘못하면 어릿광대가, 네 짝사랑이 죽어버린다고!" "잘 봐. 그가 어릿광대라면 이 정도로 죽지 않아." 아무도 그녀의 말을 따르지 않자 페튜니아가 직접 두 손을 움직였다. 과연 팀장이라고 해야 할지 그녀의 손은 무척이나 빨랐다. "1:10... 1:25... 1:50." 처음 1:10으로 줄였을 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적어도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페튜니아는 1:25로 조금 더 느리게 재생했고, 그제야 희뿌연 무언가가 현민의 신형으로부터 빠져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 페튜니아는 좀 더 자세히 볼수 있도록 1:50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아......!"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운영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상대의 검을 집어든 현민은 그들의 틈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현민의 검은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부드럽게 움직이며 유저들의 몸을 이리저리 통과했다. 혼자서 움직이는 현민과 그들을 통과하는 검날로 인해, 마치 시간과 공간이 어긋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죽은 건 현민이 아니야. 그를 상대하던 유저지." 성희는 진정으로 감탄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해." 이렇게 빠른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바라본 페튜니아에게 하는 말이다. "뭐, 뭐가 사랑의 힘이야? 너도 훈련만 한다면 현민이 피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볼 수 있어!" 성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정말로 그러냐는,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페튜니아는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흐응~ 사랑하지 않는구나? 어릿광대는 단순한 장난감이었어. 불쌍해~" "내가 언제?!" 페튜니아는 성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리쳤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이전보다 더욱 붉어진 얼굴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속마음은 모두에게 들켜 버린 상태였다. '이번에도 인정했다.' '또 부정하지 않았어.' '아아, 우리 팀장님이... 청순하디청순한 우리 팀장님이!' 현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그들은 화면속의 현민보다 그들과 같이 잇는 페튜니아를 신경 썼다. 현민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위험 속에서도 현민은 죽지 않는다'는 광신도적인 믿음이 자리 잡혀 있었다. 페튜니아의 사랑(?)으로 인해 내부가 시끄러워지려 하자, 그 원인인 페튜니아가 상황을 정리했다. 자신들의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부끄러운 것을 감추기 위해서는 절대로 아니었다. 아마도. "영훈 씨, 화면의 영상을 어릿광대에게로 돌려 주세요." "네!" 스크린의 영상이 바뀌며 2명의 유저와 대치하는 현민의 모습이 나타났다. 시기적절하게도 현민이 여성 유저에게 떨어진 바로 다음이었다. 만약 페튜니아가 보았다면 또 하나의 터치 펜이 구부러졌을 것이다. 한 명의 여성 유저가 현민에게 붙잡혀 있었고, 그의 등 뒤로 돌이 되어가는 남성 유저가 보였다. <마법이란 은밀하게,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사용해야 효과적이다.> <으읍-!> 화면 속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운영자들의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감각을 귿대화시키는 마법이 있다면 가상현실이라도 '고문'을 할 수 있지> "설마?" "...위험해." 성희는 혹시나 하는 얼굴을 했지만 페튜니아는 긴장했다. 현민이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격이 바뀌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행동을 실천하기에 앞서 반드시 설멍을헤준다는 것은 잘알고 있었다. 페튜니아의 예상대로 '고문'을 할 수 있는 마법이 사용되었다. <페인(Pain).> 미리 준비하고 있던 페튜니아는 그 누구보다 먼저 현민의 마법을 찾아냈다. 페인(pain:4써클) 능력:대상이 느끼는 아픔을 증가시킨다. 현재 단계:10 주문:??? "증가? 어느 정도로?" 페튜니아가 그것을 보며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대상의 아픔을 어느 정도까지 증가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녀의 의문은 화면 속의 여성이 대답해주었다. 너무나 처절하게 느껴지는 비명으로 말이다. <아, 아아악-! 아악! 아, 으... 윽! 크흑! 흑!> 바늘에 찔린 상처처럼 한 발울의 피만 송골송골 맺히는데, 그녀는 팔 하나가 통째로 잘린 것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단순히 체감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현민의 마법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나를 깨운 보답이다. 조금 더 재미있게 해주지> <으아아악-! 아악!! 사, 살려... 살려 주세... 아아악-!> 다시 한 번 울려 퍼지는 그녀의 비명을 들으면 페튜니아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타나는 정보와 겉모습. 실력 등은 현민이 분명했으나, 화면 속의 현민이 현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으나, 그녀에게는 마치 다른 존재가 그의 탈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존재?'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사건들이 떠올랐다. '예전에 발록이 껴안았을 때도 확실히 현민이라고 하기는 너무 다정해 보였어. 토너먼트에서 키, 키... 하여튼 그걸(?) 할 뻔했던 때는 아이처럼 장난스러웠고, 조금 전과 같이 섬뜩했고... 설마?' 그녀는 혹시나 하는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이게 무슨 순정 만화나 소설도 아니고, 그런 일이 있을 리는 없어.'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했다. '성희의 말대로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그런 걸 거야. 편안한 분위기의 현민만을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잔인한 현민을 발견해서 낯설어 보일 뿐이야.' 과연 여자의 감이라고 해야 할지 그녀의 생각에는 틀린 것은 없었으나,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애써 무시하며 스스로에게 세뇌(?)를 걸었다. "현민은 다정하고 귀엽다. 현민은 다정하고 귀엽다. 현민은 다정하고 귀엽다......." 알면 알아갈수록 귀여워 보이는 페튜니아였다. 그녀의 옆에 있던 성희는 웅얼거리는 페튜니아의 말을 확인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도 너희들의 마음에 답하며 본격적으로 놀아주마.> "응?" 페튜니아는 현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고문을 당하던 여성은 죽어 있었고, 현민은 다른 유저의 무기를 든 채 주변 유저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페튜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멋지다." 춤을 추듯 움직이는 현민의 동작은 확실히 멋있었다. 하지만 페튜니아가 놀란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화면 속의 현민, 그가 보여주는 동작이 싸울아비인 아리와 닮아 있었다. 발록에게 배웠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눈'을 가지고 있는 페튜니아는 그의 움직임을 단번에 알아봤다. 현민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유저들의 시체만이 남아 있었다. 현민의 압도적인 실력으로 인해 화면속의 공간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이제 살아남아 있는 유저는 일부러 남겨 놓은 듯한 2명의 여성 유저밖에 없었다. 화면 속의 현민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한 명은 주저 앉아 있었고, 한 명은 뒷걸음질 쳤다. <궁금하더냐? 어째서 너희들을 살려 두었는지.> 현민은 뒷걸음질 치던 유저의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안개 속으로 보이는 현민의 표정이 너무나 살벌하여 그것을 바라보는 운영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자의 비명만큼 아름다운 소리는 없기 때문이다.> 푸욱! <크억! 쿨럭!> "세상에!" "뭐야?!" "어째서-!"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운영자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치도 않았던 현민의 손이 여성 유저의 복부에 들어간 것이다. 가장 놀란 것은 역시나 페튜니아였다. <크크큭! 여자의 신음 소리도 나름대로 아름답군.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건 '비명'이야. 페인.> <으, 으, 으... 으아아아아아악-!> <아아, 당신의 속은 너무나 따뜻해. 그 느낌도 부드럽고, 두근거리는 심장도 직접 느껴져서 너무 기분이 좋아.> 오싹! 온몸의 잔털이 일어나는 느낌과 함께 뒷목이 서늘했다. 한겨울(?)에 공동묘지에서 귀신과 맞선을 본다 하더라도 이보다 오싹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화면 속의 현민은 그들이 알고 있던 현민이 아니었다. <아아악-! 아으, 아, 아... 아아아아악-!> 계속해서 들려오는 여인의 비명이 그들을 더욱 섬뜩하게 만들었다. <어때? 기분은?> <.......> <이봐, 여기에서 무너지지 마. 그럼 재미없잖아? 내가 왜 '악마'인지 확실히 경험해봐.> 현민의 고문이 다시금 시작됐고, 모두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현민에게 잔인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그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일정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당장 마법읅 삭제하세요! 현민의 마법부터 없앤 다음, 유저에게 걸린 마법을 해제하세요!" 더 이상 참지 못한 페튜니아가 모두에게 명령했다. 그냥 놔두기에는 현민의 마법이 너무나 위험해 보였다. 본래대로라면 마법의 소스를 분석하여 좀 더 자세한 능력을 알아내고 그것을 조절하거나 적단한 재재를 가해야 했으나, 지금 당장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주, 죽여... 제발.> <크큭! 두려운가? 괴로운가?> 그들이 작업하고 있는 동안에도 현민의 고문은 계속되었다. 그들로서도 지금 당장 지워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마법이나 스킬을 강제로 지운다는 것은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Delete 키를 누른다고 해서 가볍게 지워지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 화면을 담당하는 한 명의 운영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운영자가 달려들어 현민의 마법을 지웠다. 푸욱! <끄, 끄어억!> <크하하하하! 그래그래1 계속해서 울부짖어라!> <꺄아아아악! 아아악!> 끔찍한 비명 속에서 작업을 하려고 하니, 모두의 실력은 평소만큼 나오지 않았다. 페튜니아는 초조한 얼굴로 화면속을 응시했다. 현민에게 당하고 있는 그녀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됐습니다!" 탁! 현민의 마법이 삭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페튜니아는, 운영자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그녀에게 걸려 있는 마법을 해제했다. 그녀의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가면서 끔찍했던 비명이 사라졌다. "된 건가?" "휴우~" 운영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끔찍한 사고는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그들은 이미 늦은 상태였다. <아, 흑! 흑흑! 크큭! 키키키킥!> 화면 속의 그녀는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세상에는.......> "응?" <귀... 여운 악마... 가 있다네.> 자장가를 부르는 듯한 몽롱한 목소리가 운영실의 내부에 흘러들었다. 얼핏 들으면 웅얼거림과 다름없었지만, 그것은 노래였다. 아이처럼 장난스러운 귀여운 악마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죽이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죽이고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눈물을 짓네. 갈기갈기 찢겨진 그들을 보며 환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네. 그 노래는 그들도 한 번쯤 들어본 것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퍼진 현민의 노래였다. 하지만 미처 버린 듯한 여인이 몽롱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섬뜩함이 담겨 있었다. 등 뒤를 서늘하게 하는 오싹함이 또다시 느껴졌다. 그때 화면속의 현민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누나라도 나를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콰드드드득! 검은색의 안개가 스크린을 가득 매웠지만, 페튜니아는 그 속으로 현민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냉장고 문이라도 연 듯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고, 온몸이 붕 뜨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비틀! 균형을 잃어버린 그녀의 몸이 흔들렸다. <또 다른 제가 그것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흥!> 옆에서 잡아주는 성희로 인해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페튜니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확신했다. 화면 속의 현민은 그녀가 알고있던 현민이 아니었다. "괜찮아?" "그는......." "응?" "...현민이 아니야." 성희는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맞아. 그는 어릿광대가 아니야."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스크린에는 살인을 즐기고있는 '악마'가 있었다.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여성 쥬너는 현민의 발에 밟혀 목이 꺾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은 '악마'는 또다른 제물을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알고 싶더냐?> 침묵 속에서 화면을 보고 있던 운영자들은 현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의 그 움직임, 아리라는 여자를 따라 한 것이다. 싸울아비로 유명한 아리의 검술은 강인한 손목, 그리고 무게중심의 자유로운 변화로 인해 만들어지지. 이제 만족하느냐? 응? 어떻게 가능하냐고? 한 번 본 이상 흉내 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화면 속 유저의 얼굴이 굳어졌고, 그것을 보고 있던 페튜니아와 성희의 얼굴도 굳어졌다. 그들의 대화는 눈에 띄게 이상했다. 현민은 그녀의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말하고 있었고, 그녀는 현민의 말에 아무런 부정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현아, 정말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게 맞아?" "...이젠 나도 모르겠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으로 인해 그녀의 정신은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전쟁을 시작할 당시 현민이 했던 장난스러운 한마디가 남아 잇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현민은 그렇게 귀엽고(?) 다정한(?) 존재였다. <크크크! 이제야 두려워지는 것이냐? 나를 깨우게 만든 너희들의 실수... 두고두고 후회하라.> 우득! 찌이익! <까아아악-!> "아......!" 유저의 두 팔이 몬에서 떨어졌고,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운영자들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상습적인 PK(player Kill)범처럼 지금의 현민에게서는 광기가 보이고 있었다. <이번엔 다리다.> 일부의 여성 운영자들은 스크린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연출이 아닌 실제 상황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볼 수 있을 만한 비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런 게 오체분시겠지?> 우드득! 찌익! <으, 으아아아악! 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꼐 그녀의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현민에게 당한 유저중 팔다리가 잘리자 않은 존재는 없었으나, 힘으로 인해 강제로 뜯겨졌다는 점이 그녀의 모습을 처참하다 생각하게 만들었다. <운영자들에게 고마워해라. 너는 이전의 여자보다 덜 고통스어웠으니 말이다.> <너, 너는... '악마'인가?> 현민은 느녀의 질문에 미소 짓고 있었다. <아, 그래. 내가 바로 악마다.> 그들은 악마가 무엇이고, 무엇을 악마라 부르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아직 장난감은 많아. 처음으로 나온 만큼 확실하게 즐겨주겠어. 진실된 거짓.> 현민의 환상 마법이 사용되면서 수백만 명은 되어 보이는 현민이 그곳을 가득 매웠다. "환상?" 페튜니아는 그의 마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진신된 거짓이라는 것이 뛰어난 환상마법이기는 했으나, 그것으로 만들어진 환상은 직접적인 데미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데미지도 줄 수 없는 허상을 저렇게 많이 만든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수백만 명의 현민이 동시에 말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면 세상을 죽여라!> 수백만 명의 현민에게서 뿐어져 나온 살기가 하나로 뭉쳐지며 소용돌이쳤다. 땅이 흔들리고, 바람이 사라졌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서 세상마저 죽여 버리는 거다-!> 현민들은 그렇게 외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많은 인원수가 움직이다 보니 엄청난 광격이 연출되었다. "뭘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지?" 운영자들뿐만 아니라 성희와 페튜니아도 현민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어릿광대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세요. 일단은 어릿광대를 중심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저... 그게......." "응?" 영상을 담당하고 있던 운영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화면에 잇는 모든 어릿광대를 비춥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설마 컴퓨터가 환영에 속고 있다는 건가요?"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나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말한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 그들이 대상을 직접 찾는 것이 아니라, 입력된 정보를 가지고 그에 해당하는 존재를 컴퓨터가 찾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가지고 잇지 않을 환상을 컴퓨터가 검색할 리 없었다. 페튜니아가 막 화를 내려는 순간, 성희의 한마디가 운영자를 살렸다. "그는 잘못 없어." "뭐?" "이것 좀 봐봐. 화면에 있는 모든 존재가 정보를 가지고 있어." "버그?" 페튜니아는 작은 스크린에 정리된 현민의 절보를 보며 버그를 먼저 떠올렸다. 이전에도 한 번 이와 비슷한 일이 잇었다. 똑같은 캐릭터가 본래의 캐릭터 주번에 생겨나 같은 움직임을 보였던 그때와 흡사해 보였다. 하지만 성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성희도 이미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고 다른 방향에서 확인해본 상태였다. "버그는 아닌 것 같아. 여기 보이지? 이쪽에 있는 어릿광대랑 이쪽에 있는 어릿광내는 서로 다른 동작을 하고 있어. 그리고 이쪽이랑 이쪽도 서로 다르고. 전부를 살필수는 없지만, 적어도 버그가 아니야." 페튜니아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설명을 하고 있는 성희의 말투가 모든 현민이 진짜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녀 스스로도 그것 말고는 예상되는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이 심각한 얼굴로 생각을 정리하고 잇을 때, 운영자의 다급한 외침이 그들의 정신을 깨웠다. "팀장님! 누군가가 버려진 루인아츠에게 접근합니다!" "아차!" 페튜니아는 그제야 루인아츠에 대해 떠올렸다. 함부로 다룰 만한 물건이 아니기에 서둘러 회수해야 했건만,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화면을 바라보니 2명의 존재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루인아츠를 향하고 있었다. "일단 저들이 누군지 파악하세요. 저는 즉시 들어가겠습니다. 성희야, 뒤좀." 그녀는 명령을 내린 후 『싸울아비』로 들어가려 했다. 아마 중간에 들려온 운영자의 한마디가 아니었으면 들어갔을 것이다. "확인했습니다! 저 두 사람은......." 멈칫! "뭐라고?" 제109장 아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유저의 시체와 흰색의 가루가 바닥을 뒤덮고 있는 장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2명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산책 나온 것처럼 여유롭기 그지없는 두 사람은 루인아츠를 가운데 두고 서로를 마주 봤다. 한 명은 꼬마 정령들과 비슷한 또래(5살)로 보이는 소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페튜니아와 비슷한 또래(20대 중반)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젖살이 빠지지 않아 포동포동(?)한 꼬마 아이는 과연 어린 아이라고 해야 할지 무척이나 귀여웠다. 그런 꼬마와 마추하고 있는 여인도 남자들이 뒤돌아볼 만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눈매가 약간 날카로웠으나,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매력적이었다. "풋! 꼴이 그게 뭐야?" "훗! 그러는 너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부터 터뜨렸다. "이렇게 되리란 걸 예상한 거야?" 여인은 자신의 앞에 있는 꼬마를 안아들었다. "응, 네가 말했잖아. 거의 정확하게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내 마음이라고 해서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어. 약간 어설프긴 해도 지혜를 흉내 내서 내 행동을 계산했고." "쿡쿡! 잘했어요~ 잘했어요~" 여인은 칭찬해달라고 말하는 듯한 어린아이의 눈빛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꼬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비부비. "내 품이지만 기분 좋다." 꼬마 아이는 여인의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그녀의 가슴에서는 따뜻함과 포근함이 섞여 있는 달콤한 냄새가 났다. 7세 미만의 특권(?)이라고 하지만 부럽기 짝이 없었다. "일단 앉자. 언제까지 서서 있을 수는 없잖아? 대지의 손(3써클)." 여인은 그런 꼬마 아이를 토닥이며 마법을 사용했다. 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그녀의 뒤에 나타나며 의자 모양을 만들었다. 그녀는 편안한 자세를 잡으며 꼬마 아이를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혔다. "현민아... 음... 내가 내 이름 부르려니까 이상하네." "쿠쿡!" 현민이라 불려진 여성이 작게 웃었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신경 쓰는 또 다른 자신이 너무나 귀여웠다. 외형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왔다. "일단 별명부터 짓자." "별명? 이름이 아니라?" 꼬마 현민의 말에 그녀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꼬마 현민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왜 이름을 다시 지어? '내' 이름은 현민이잖아. 이름은 이미 있으니깐 별명만 만들면 돼." "아......!"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내면의 현민은 떨리는 눈으로 눈앞의 현민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 인격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을 거리낌 없이 받아주는 현민이 새삼스레 고마웠다. 그녀(?)는 눈앞의 현민을 끌어안았다. "욱! 숨 막혀~" 토닥토닥. 품 안에서 작은 손이 두드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면의 현민은 너무나 작아진 자신의 손을 느끼며 두 팔을 풀었다. 꽤 답답했던 것인지, 두 눈이 붉어진 꼬마 현민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다시 한 번 웃음이 나왔다. "쿡! 뽀뽀해줄까?" "베~ 나는 정상이네요. 아무리 여성의 모습이라지만 나한테 뽀뽀 받고 싶을까 봐?" 꼬마 현민은 작은 혓바닥을 내밀며 강하게 거부했다. 내면의 현민은 그런 꼬마 현민의 볼을 잡아당겼다. "나르시시즘이라도 좋아. 지금 내 눞앞에 있는 '내' 모습은 너무나 귀여운걸. 쪽!" 고마 현민은 또 다른 자신의 행동에 굳어졌다. 내면의 현민은 무엇인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트야. 이건 노카운트야. 이건 노카운트야." 꼬마 현민은 절망(?)하고 있었다. "아하하하하!" 즐거운 목소리가 그곳에 울려 퍼졌다. 한동안 삐쳐 있던 현민은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린 것인지 내면의 현민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모습이야?"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아무리 다른 인격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은 기본적으로 멀쩡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를 무서워하기는 했지만, 여자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내면의 현민은 자신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네가 싫어하던 것, 네가 원하지 않던 부분을 내가 가져왔으니깐." "응?" "지금의 내 모습은 마녀로서의 모습이야. 네가 싫어했던 부분이지." "하지만 여자잖아. 마녀의 내 모습은 여자 같기는 해도 여자는 아니었는데." 그녀의 손가락이 꼬마 현민의 이마를 건드렸다. 톡- "여자는 아니었지만, 너는 여자라고 생각했잖아?" "우윽!" 꼬마 현민은 할 말이 없었다. 내면의 현민은 또 다른 자신답게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원하지 않던 것, 지금 어려진 만큼의 나이를 가져오면서 이렇게 성숙해졌지." 꼬마 현민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겉모습이 대략 대여섯 살이니깐, 원래의 내 나이를 생각해보면 열두세 살 차이가 난다는 건데... 열 여덟 살에 그 나이를 더한다면 더 늙은 모습이어야 하는 거 아냐?" 내면의 현민은 그의 눈앞에 집게손가락을 세웠다. "그래서 여자의 나이는 비밀이라고 하는 거야." 꼬마 현민은 뭔가 복잡한(?) 것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이제 3분 남았어." "그러네. 얼마나 남았을까?" "그만한 인원이 움직였으니 절반 이하겠지." 꼬마 현민은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실수한 걸까?" 그의 목소리에는 후회가 담겨 있었다. 내면의 현민은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괜찮은 생각이었어." "하지만! 하지만......." "사람의 정신은 생각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아. 지금 당장은 고생하겠지만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그들이 말하고 있는 대상은 마지막에 정신이 무너져 버린 듯한 군인이었다. 각오한 일이기는 했으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현민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나 지금 너무너무 괴로워.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는데, 그 느낌이 너무 기분 나빠." "죄책감... 느껴?" "응. 내 자신이 너무너무 싫어." 내면의 현민은 그를 돌려 앉히며 얼굴을 마주했다. "그건 너이지만, 네가 아냐. 여기 이 자리에서 너와 내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전혀 다른 존재야." "하지만 그가 나한테서 갈라진 것도, 그가 나의 또 다른 모습이란 것도 사실이잖아." 내면의 현민은 그의 볼을 잡아당겼다. "그런 건 생각하지 마. 설사 그렇다고 해도 너는 친구들의 복수를 했을 뿐이야."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꼬마 현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이 많은가 봐." 푹! "그걸 이제 알았어?" 내면의 현민은 그를 껴안았다. "넌 역시 '나' 야." "응?" "껴안는 걸 너무 좋아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꼬마 현민의 얼굴은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풋! 그러는 너도 역시 '나' 야." "......."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는 걸 너무 부끄러워해." 내면의 현민은 환하게 웃으며 품 안의 현민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서로가 하나의 존재였기에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다. "네 별명... 생각났어." "뭔데?" "아현." "아현?" "현명한[賢] 나[我]. 나의[我] 현민[賢]." 꼬마 현민을 껴안고 있던 (내면의) 현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누가 보았다면 고백(?)받았다고 착각할 만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지금 기뻐하고 있었다. "...고마워." "응?" "훗! 아냐. 네가 너무 따뜻하다고." "우왓! 하, 하지 마! 하지 마! 아하, 아하하하하!" 내면의 현민은 꼬마 현민의 볼에 얼굴을 비볐고, 꼬마 현민은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묘하게 닮아 있는 얼굴 때문인지, 부모(?)와 자식(?)을 보는 것 같았다. 지혜는 물웅덩이를 응시했다. 어디를 쳐다봐도 현민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환상?"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환상 마법을 사용한 것인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그녀 또한 환상 마법이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협용으로 쓸 것도 아닌 이상 저렇게 많이 만들 까닭은 없었다. 그녀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옆에서 들려왔다. "그것들 모두가 실체다." 지혜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말도 안 된다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옆의 존재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믿었지만 그녀의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확실히 모두가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같은 존재가 둘 이상 존재할 수는 없지 않나요?" "흐음......." 드래곤의 대답은 잠시 늦어졌다. 그녀에게 설명해줄 내용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환상 마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육체를 여러 개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정신을 쪼개어 각각의 육체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과연 마법의 지존(?) 드래곤답게 그의 설명은 정확했다. 하지만 설명이 정확하다고 해서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드래곤에게는 어떤지 몰라도 인간에게 저런 게 가능한가요? 아니, 할 것 같아요?!" 하나 둘이라면 지혜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물웅덩이를 통해 보이는 현민의 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몇십만이었다. 손가락, 발가락을 합친 수보다 많았다. 사람의 전신이 그렇게 많이 쪼개지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대가 보고 있는 존재는 의심할 여지도 없는 완벽한 인간이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되는군." 드래곤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자신의 잣대로 불가능하다 해서 눈앞의 현실마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해는 할 수 없어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보이는가? 그는 다른 존재를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 물웅덩이 속의 현민들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유저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하지만 환상 마법이잖아요? 어떻게......." "환상 마법이란 게 무엇인가." "아-!" 단 하나의 질문이었으나 지혜는 이해했다. 환상 마법이란 것은 누군가를 속이는 것.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으나 속고 있는 자에게는 진실로 받아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속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환상에 따라 다르지만 피해를 받지 않는 존재는 환상에 걸린 존재뿐이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환상이란 악몽이고, 현민은 꿈을 꾸는 사람, 주변의 유저들은 같이 자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악몽 속에서 휘두른 주먹에 같이 자고 있던 옆 사람이 얻어맞는 경우였다. "그가 속이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이제는 드래곤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물웅덩이는 원래의 장소를 비추고 있었다. 물웅덩이 속으로 낯선 존재 2명이 나타났다. "누구지?" "외형은 다르지만 저 느낌은 현민이란 존재군." "현민?" 다른 존재를 눈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 구별하는 드래곤이었기에, 그는 모습이 바뀐 2명의 현민을 한번에 알아보았다. 지혜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물웅덩이를 바라보았다. 한 명은 꼬마였고, 한 명은 여인이었다. 얼굴이 앳되고, 가슴이 볼록했기에 햇갈린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두 사람 다 현민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정말로 현민인가요?" "확실하다." 지혜의 시선이 한쪽에 고정됐다. 꼬마 현민이었다.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현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아, 음! 이,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머리로는 유저들을 학살하고 있는 현민의 상태를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그녀의 마음은 꼬마 현민에게서 떨어지려 하지를 않았다. 지혜의 두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너무 귀여워~~!" 드래곤은 그런 지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혜는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으흠!" "저런 인형, 아니 저런 동생 하나만 있었으면~" 드래곤이 나름대로 눈치를 주었으나 지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물웅덩이에 얼굴을 바짝 대고 꼬마 현민의 모습을 훔쳐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헤의 입에 침이(?) 고였다. "엄마한테 낳아달라고 할까? 그럴까? 졸라볼까?" 꼬마 현민이 자란 존재가 현재의 현민이었으나, 그녀의 머리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꼬마 현민이 너무나 귀여웠다. "껴안고 싶어~~!" 스르륵- 더 이상 참지 못한 드래곤이 보이는 장소를 바꾸었다. 꼬마 현민과 아현의 모습이 사라지고, 또 다른 현민이 살육하는 장소가 나타났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현민들은 말 그대로 학살을 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주변을 뒤덮고 있는 살기로 인해 원거리의 공격은 맞지 않았고, 근거리의 공격은 현민이 너무 강해 성공하는 존재가 없었다. 하지만 막지 못하는 존재는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중 화면(?)!" "훗!" 잔뜩 흥분한 지혜는 지금의 상황도 잊어버리고, 최강의 존재인 드래곤에게 황당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민 이상으로 강했다. 드래곤은 그녀의 태도에 작은 미소를 만들며 그녀가 원하는 대로 2개의 장소를 동시에 보여 주었다. 건방지다면 건방지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그가 계약을 맺은 이유는 지혜의 이러한 모습이 나름대로 신선했기 때문이다.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에서 떼쓰는 모습이 갓 태어난 해츨링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도 있었다. "아앗!" "응?" 현민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드래곤은 갑자기 들려오는 지혜의 탄성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커다란 싸움이라도 벌어진 것은 아닌지 의아해했으나, 지혜가 보고 있던 장소에는 여성체가 꼬마를 안아들고 있을 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금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가 드래곤의 관심을 끌었다. <이렇게 되리란 걸 예상한 거야?> <응. 네가 말했잖아. 거의 정확하게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내 마음이라고 해서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어. 약간 어설프긴 해도 지혜를 흉내 내서 내 행동을 계산했고.> "그런 거였나." 드래곤은 무엇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도 로드의 부탁에 언령으로 맹세했을 뿐, 그 자세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지금 물웅덩이를 통해 그의 말을 듣고서야 로드가 왜 그런 말을 했고, 그런 부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가상현실이라지만 '연륜'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 로드는 현민이란 존재에 대해서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저, 저게 나도 아직 못 안아본 것을! 으~ 나도 안아보고 싶어~" <내 품이지만 기분 좋다.> 현민의 한마디가 그녀를 분노케 했다. "까득! 언젠간 죽여주마." 그 현민(아현)이 그 현민(꼬마 현민)이었지만 지혜는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지혜에게는 질투의 화신이 강림(?) 중이었다. "모습은 달라도 같은 현민인데 뭘 신경 쓰는 것이지?" "그래서 더 싫어요! 현민이 나보다 더 예쁘잖아요!" "그런가? 그렇군." 전혀 설득력 없는 말이었으나 드래곤은 이해(?)했다. 드래곤은 이를 까득까득 갈며 분노하고 있는 지혜를 내버려두고, 현민이 싸우고 있는 장소에 집중했다. 현민이 싸우고 있는 모습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그들은 상대를 죽이고 무기를 빼앗았다. 그리고 그렇게 빼앗은 무기로 상대의 방식을 흉내 내며 또 다른 유저를 죽였다. 칼을 주우면 칼로 죽였고, 활을 주우면 활로 죽였다. 누군가가 검기를 날린다면 그는 날카로운 바람을 날려 그것을 막았고, 누군가가 은신을 한다면 그 자신도 기척을 없애며 모습을 감췄다. 그 모든 움직임이 인간의 육체적 능력으로만 이루어졌기에 어떠한 상대가 나타나더라도 질리지가 않았다. 그가 현민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우리의 지혜는 그의 옆에서 물웅덩이 속의 두 존재에게 사랑과 질투의 감정을 분출하고 있었다. 특히 아현이 꼬마 현민을 터질 듯이 끌어안았을 때는 옆에 있던 드래곤이 슬쩍 자리를 피했을 정도였다. <윽! 숨 막혀~> "귀여워~!" <쿡! 뽀뽀해줄까?> 지혜에게서 푸익고 있던 사랑의 오로라가 아현의 한마디에 죽음의 오로라로 바뀌었다. "하기만 해봐. 현실에서 아주 밟아줄 테니깐." 말을 하는 와중에도 지혜의 입에서는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베~ 나는 정상이네요. 아무리 여성의 모습이라지만 나한테 뽀뽀 받고 싶을까 봐?> "그래. 절대로 하면 안 돼! 설사 당하더라도 나를 피하던 것처럼 잽싸게......." <나르시시즘이라도 좋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내' 모습은 너무나 귀여운걸. 쪽!> 물웅덩이 속의 꼬마 현민과 함꼐 지혜의 얼굴도 굳어졌다. 꼬마 현민에게 뽀뽀를 한 아현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거... 둘 다 현민 맞지?" 지혜의 머리가 차가워졌다. 정신을 쪼개었다는 드래곤의 말을 비유적으로 생각하여 하나의 정신이 2개 이상의 육체를 다룬다고 했으나, 아무리 살펴봐도 두 사람의 행동은 그렇지가 않았다. 타인을 대하는 듯한 두 사람이 정말로 같은 현민인지 궁금했다. <네가 싫어하던 것, 네가 원하지 않던 부분은 내가 가져왔으니깐.> <응?> <지금의 내 모습은 마녀로서의 내 모습이야. 네가 싫어했던 부분이지.> <하지만 여자잖아. 마녀의 내 모습은 여자 같기는 해도 여자는 아니었는데.> 지혜는 이전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지운 채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얼굴은 복잡하게 변해갔다. '정말로 정신을 쪼갠 것인가? 어덯게? 아니, 정신을 쪼갠 것은 아니야. 정신을 쪼갠다는 것은 인격을 나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지금 당장 현민의 행동은 설명할 수 있어도, 쪼개진 숫자가 너무 많아. 얼핏 보아도 십만이나 백만 단위. 사람의 인격이 그렇게 많이 갈라질 수는 없어.' 그녀가 고민하는 중에도 그들의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실수한 걸까?> <아니, 괜찮은 생각이었어.> <하지만! 하지만.......> <사람의 정신은 생각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아. 지금 당장은 고생하겠지만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을 거야.> 지혜는 그녀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잔인했던 장면이기에 잊히지가 않았다. 그 기억과 함꼐 그녀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그때 보았던 잔인한 현민이 다른 유저들을 죽이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내용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건 너이지만, 네가 아냐. 여기 이 자리에서 너와 내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전혀 다른 존재야.> "설마?!" <하지만 그가 나한테서 갈라진 것도, 그가 나의 또 다른 모습이란 것도 사실이잖아.> 이어지고 있는 꼬마 현민의 말이 그녀의 생각에 확신을 주었다. 지혜의 머리는 빠르게 정리되었다. "다중인격... 게다가 그중 하나는 악마." 지혜가 예상한 현민의 인격은 셋이었다. 다른 둘의 인격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으나, 나머지 하나는 인격이 그녀의 마음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악마였다. 지혜는 공포란 것이 무엇인지 그를 보고 알 수 있었다. 단순한 괴물이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괴물에게 생각이란 없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물웅덩이를 통해 본 현민은 자신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천재성과 잔인함. 절대로 같이 있으면 안 되는 두 가지를 하나의 인격이 가지고 있었다. 지혜는 새롭게 알게 된 사실로 인해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이중인격도 아니고 다중인격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현민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2년 가까이 알고 지내면서도 진즉에 알아차리지 못한 자기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앞으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때 꼬마 현민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이 많은가 봐.> <그걸 이제야 알았어?> 푹! 꼬마 현민을 안고 있는 아현의 얼굴이 너무나 편안했다. 지혜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넌 역시 '나'야.> <응?> <껴 안는 걸 너무 좋아해.> <풋! 그러는 너도 역시 '나'야.> <.......>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는 걸 너무 부끄러워해.> 지혜는 미소 지었다. 그들이 현민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현민은 그들 중 어느 하나가 아니었다. 그들 모두였다. 그들에게서 평소 보았던 현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변한 것은 없어." 지혜는 원래의 밝은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한편, 다른 장소의 현민을 바라보는 드래곤의 얼굴은 심각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일 줄이야." 현민의 몸이 불어난 지 3분도 되지 않았건만, 거의 모든 유저가 죽어 있었다. 마법으로 인해 장소의 이동이 자유로운 그들은 전쟁터 곳곳에 나타나며 유저들을 상대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죽는다 하여도 다른 현민이 그 자리를 메웠기 때문에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끝이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인상을 심각하게 만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근처의 유저를 전부 죽인 현민들이 서로를 노리며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같은 존재하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싸움에는 광기와 살기가 난무했다. 잠깐 장난을 치던 두 사람은 본래의 내용으로 돌아와 있었다. 진실된 거짓의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예상이 맞다면 잠시 후 모든 싸움을 끝낸 또 하나의 현민이 그들 앞에 나타날 것이었다. 마지막 남은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환상을 다루는 것에 정신이 팔렸는지, 본체는 내가 차지할 수 있었거든." "그 말은......." "응. 이게 본체야. 나만 죽으면 저 모든 것들이 죽어버리는 거지." 꼬마 현민은 그녀의 품에서 벗어났다. 작은 몸으로 아장거리는 게 귀여웠다. 탁! 바닥으로 내려선 꼬마 현민은 2개의 단도를 허리에 착용했다. 나머지 4개의 단검은 그 길이가 길었기 때문에 착용할 수 없었다. 허리에 착용한 단검도 현민의 몸집에 비해 너무나 거대하여 허벅지까지 내려와 있었다. 꼬마 현민은 어릿광대의 가면을 머리 뒤로 가져가며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본래대로라면 얼굴에 착용해야 했으나, 몸의 크기가 크기니만큼 어른 사이즈의 가면은 착용이 불가능했다. "이제... 끝낼 생각이야." "뭐?" 스릉! 작은 몸집에 맞이 않게 부드러운 동작으로 허리의 단검을 뽑아든 꼬마 현민은 그 끝을 자신의 심장쯤에 가져다대었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보이지 않고 있는 꼬마 현민의 표정은 어린아이의 모습과 다르게 세상을 다 산 것 같았다. "내 심장에 칼을 꽂아... 그대의 목을 베리라." "멈춰-!" 챙! 금방이라도 심장을 꿰뚫을 것 같았던 순간, 크게 소리친 아현이 꼬마 현민의 행동을 막았다. 대지의 손을 만들자마자 해체하여 그곳에 흙이 솟구치게 만든 다음, 그것을 염력으로 움직여 앏은 판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검과 꼬마 현민의 심장 사이에 넣으며 속성 변화로 철과 같이 만들었다. 염력이 해제된 흙은 땅으로 떨어졌지만, 한순간 꼬마 현민의 검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현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마법 속도였다. 그렇게 급한 상황을 모면한 아현은 서둘러 꼬마 현민에게 다가갔다. "윽! 뭐야?! 멋지게 죽으려고 폼까지 잡았는데-!" 아현의 주먹이 현민의 머리를 때렸다. 콩! "아얏!" "너 지금 어린애 몸으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아현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화를 냈다. 나중에는 짐승(?)으로 진화(?)한다고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나라의 보배라고 할 수 있는 귀여운 어린아이가 자살을 하려고 했으니 아현, 아니 현민의 입장에서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꼬마 현민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오히려 아현에게 고함을 질렀다. "보면 몰라? 죽으려는 거잖아!" "지금 죽으면 내일의 싸움은? 현실에서의 정신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어?" 아현은 가장 커다란 두 가지 문제를 들먹이며 꼬마 현민에게 잔소리했다. "내일의 싸움은 지혜한테 부탁하면 돼. 지혜라면 음...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꺼야. 아마도." 콩! "아얏! 히잉~" 또 한 대 맞은 현민은 그녀(?)의 품에서 머리를 문질렀다. 얼마나 아팠는지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아마도가 아니잖아. 아마도가-!" 아현에게서는 평소 볼 수 있었던 냉정함과 침착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내심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현 수준의 미모가 냉정하고 침착하다면 누군가(?)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잡설은 그만두고, 아현에게 혼나고 있는 꼬마 현민의 모습은 엄마(?)에게 혼나는 말썽꾸러기 그 이상도 이하로도 보이지 않았다. 아현의 외모가 아이 엄마라고 보기에는 무척이나 화려했으나, 나이만을 본다면 그렇게 비유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일단은 비밀이라고 말할 수준이니깐. 꼬마 현민은 아현의 잔소리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아이의 모습 때문인지 잔소리를 하고 있던 아현이 뜨끔할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지키려고 했던 이 세상이 '소멸'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단 말이야." "잠깐! 너 '나'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냐? 이 세상도 현실만큼이나 넓어! 이렇게 넓은 세상이 겨우 한 사람에게 무너진다고? 거만한 소리 하지 마!" 꼬마 현민은 담비처럼 두 볼을 부풀렸다. "잔소리꾼. 모습이 바뀌더니 잔소리가 늘었어." "넌 모습이 바뀌더니 생각이 어려졌어-!" "칫!" 고개를 돌리는 현민의 모습은 삐쳐 버린 어린아이와 다를게 없었다. 아현은 그런 현민을 강제로 붙잡아 만들어놓은 의자로 갔다. 현민을 안고 있기에는 앉아 있는 게 편했다. "너는 '나'에 대해서 착각하고 있어. 네가 볼 때 우리가 대단하다고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기본은 너야. 아무리 한계가 없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현실에서의 해킹이나 테러가 아니라면, 아현의 말대로 이 거대한 세상을 한 사람이 무너트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게 당연했다. 이 세상의 땅덩어리는 현실만큼, 어쩌면 현실보다 더 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꼬마 현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잊었어? 이곳은 가상현실이야. 마법이라는 신기한 힘이 있는 세상이라고. 최대 접속 시산은 현실로 24시간. 내가 지금 가상현실에서 10시간? 하여튼 그 정도 활동했으니, 못해도 20시간은 접속할 수 있어. 이곳의 시간으로 3일하고 반나절이지." 꼬마 현민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아현의 얼굴은 굳어져 갔다. 그가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능력. 너도 '나'이니깐 잘 알고 있을 거야. 내가 알고 있는 마법진과 모든 정신력을 소모하면 지금 이 전쟁터의 4분의 1 정도는 날려 버릴 수 있어. 하지만......." "극히 비효율적이지." "맞아. 지금보다 한 단계만 더 높은 7써클의 마법을 사용해도 절반의 정신력으로 이 전쟁터 전부를 날려 버릴 수 있으니깐." 그것이 마법이었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은 힘들지만, 일단 한 써클이 올라가면 그 공격력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내가 걱정하는 게 그거야. 그가 만약 작정하고 8써클 마법서를 푼다면?" "......." "단 1단계만 올려도 되는 거니깐, 모르긴 몰라도 3일이면 충분히 가능할걸?"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현민의 말대로 이 세상은 소멸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정신력이라면 반 무한으로 마법을 쓰고 다닐 수 있었다. 겨우 반나절이라도 세상을 날려 버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최후의 방법만 사용해도......." "그건 못 쓸 거야. 그 인격은 우리와 같은 존재가 아니니깐." "음... 그런가?" 그 최후의 방법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꼬마 현민은 아현의 말에 동의했다. "여하튼 이 세상이 소멸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지. 내일의 싸움이나 현실에서의 상태가 걱정되긴 하지만, 나는 지혜랑 '나'를 믿으니깐." 아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꼬마 현민을 끌어안았다. 한동안 그녀의 따뜻함을 즐기고 있던 현민이 입을 열었다. "느꼈어?" "응. 드디어 모든 싸움이 끝났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하지 않던 손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허락은?" "......." 아현은 꼬마 현민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꼬마 현민은 다시 한 번 물었다. "허락은?" "...역시 안 돼." 잠시 고민하던 아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약간 힘들겠지만 예전의 방법으로 가자." "나 몰라." "아......." 아현은 그제야 기억났다. 본래의 현민은 마음 깊은 곳에서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 "하아! 내가 말한 방법은 우리 둘이서 그 인격을 가두는 거야. 약간 힘들겠지만, 한 번 해봤으니 두 번도 가능하겠지." "음... 그냥 죽이면 되는 거지?" "응" 어린아이가 할 만한 말은 아니었으나, 여기에서 그것을 꾸짖을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슬슬 몸을 바꾸어야 하지 않아?" "아~ 괜찮아. 리치(Reach)는 짧아졌지만, 근력이나 다른 것은 변한 게 없거든." 그렇게 말하며 제자리에서 풀짝폴짝 뛰고 있는 꼬마 현민은 그녀의 허리 높이를 가볍게 넘기고 있었다. 현민의 말대로 싸움에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진실된 거짓의 남은 시간은 1분. 아슬아슬했다. "돌아와." 슈슉! - 어레렝~? 현민의 부름과 함꼐 도망갔던 마녀의 빗자루가 강제로 소환되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마녀의 빗자루는 하나밖에 없는 거대한 눈으로 꼬마 현민과 아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나만 있어도 세상이 미쳐 가는데, 그런 놈이 둘? 우히히히! 너무 슬퍼서 웃음이 나네. 크케케케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피(?)가 깬 것인지, 마녀의 빗자루는 생각보다 정상적(?)이었다. 뚝! - 장난하지 마라. 내가 아무리 정신 나갔어도 우리 주인새끼님이 하나라는 건 알고 있다. 너는 뭐지?! 찌릿찌릿! 갑자기 웃음을 멈춘 마녀의 빗자루는 꼬마현민을 향해 살기를 뿜어냈다. 현민만큼은 아니었지만 온몸이 따끔할 정도였다. 커다란 눈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눈동자가 현민을 주시했다. 그런 마녀의 빗자루를 위한 현민의 행동은 지극히 단순했다. 꼬마 현민은 손가락을 똑바로 세우며 조금의 망설임 없이 커다란 눈을 찔렀다. 푹! - 끼아아악! 이 자식 놈은 주인이 맞네. 우리 주인 말고 저런 싸가지는 흔치 않지. 그럼 이쪽이 가짜구나! 흑흑! 주인놈을 위해 먹어버....... 팍! 움찍! 막 아현을 향해 돌진하던 마녀의 빗자루는 목적을 이루지도 못한 채 그녀의 손에 잡혔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상황이 마녀의 빗자루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용광로에서 헤엄치고 싶니?" 싱긋. 아현의 미소는 무척이나 상큼(?)했다. 제110장 현민 vs 현민 vs 현민 흠칫! 흠칫! 마녀의 빗자루와 장난(?)을 치고 있던 두 사람이 긴장된 얼굴로 굳어졌다. 짙은 피 냄새가 가까이서 느껴졌다. 저벅저벅. "크크크! 너희들이 마지막이다." 유저들을 사냥하러 나갔던 현민이 온몸을 하얗게 물들인채 돌아왔다. 아현은 서둘러 루인아츠를 착용했다. 외형은 달랐지만 그는 '현민'이었다. 루인아츠는 아현이란 존재를 받아들이며 전투 형태로 모습을 바꿨다. 촤르르륵! "설마 너희들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특히 너." 현민의 시선이 꼬마 현민을 향했다. "나에게 육체를 넘기고 잠들었다 생각했는데... 이런 꼼수를 노리고 있었군." "헤헤! 쑥스럽게." 꼬마 현민은 칭찬이라도 받은 것처럼 얼굴을 붉혔다. - 주인 새끼 1호님. 칭찬한 거 아니거든요? 너 바보? 설마 바보? 혹시 바보? 마녀의 빗자루가 그런 현민에게 딴죽을 걸었다. 이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잇을 꼬마 현민이 아니었다. "나 체인점(?) 아니거든? 나도 알고 있거든? 바보라고 하는사람이 버보거든?" 푹! 푹! 푹! - 끼에에엑! "크큭!" "푸훗!" 마녀의 빗자루는 비명을 내질렀고, 현민솨 아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싸움을 앞둔 사람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진실된 거짓의 남은 시간이 20초를 약간 넘기고 있었으나 세 사람은 여유로웠다. 그들이 싸움을 시작한다면 어차피 20초를 넘기지 않아 결판이 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떄문이다. 그 20초도 최대한 오래 잡았을 경우였다. "기다려 주지. 너도 준비해라.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존재가 육체를 가진다." "나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배려야. 루인아츠." 스르륵- 쾅! 시작은 아현이 먼저였다. 아현은 루인아츠의 마지막 글자를 말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곧바로 들려오는 굉음이 어떠한 상황인지 짐작케 했다. 아쉽게도 첫 번째 공격은 실패였다. 나름대로 기습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녀의 공격에 대한 현민의 반응이 신속했다. 목표를 놓친 아현의 발은 바닥에 꽂혀 있었다. 현민이 있던 자리에 잠깐 나타난 아현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붉은색의 비늘이 상채를 뒤덮고 있어 아름다운 곡선이 드러났다. 본래의 현민하고는 약간 다른 느낌. 본래의 현민이 강해보였다면, 지금의 아현은 날렵해 보였다. 샥! 톡~ 쉭! 공격이 실패했다는 것을 느낀 아현은 곧바로 발을 뺐다. 그녀의 예상처럼 현민의 검이 떨어지고 있었다. 빠르게 내려온 현민의 검은 아현의 다리를 자르지 못하고 바닥을 향했다. 일반적이라면 박히는 게 당연했으나, 현민의 검은 바닥에 살짝 닿은 채로 급격히 방향을 바꾸며 아현의 뒤를 쫒았다. 비스듬히 들어가는 현민의 발과 함께 강력한 찌르기가 되었다. 물러서고 있던 아현은 현민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의 검은 단전이 있다는 부위를 노리고 있었다. 몸의 줌김이 되는 부분이었기에 하제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루인아츠로 인해 죽을 일은 없었지만, 어느 정도의 고통은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싸움은 그들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연과 현민의 사이에 마녀의 빗자루가 나타났다. 현민의 검은 동그랗게 구부러진 날의 중앙을 지나고 있었다. 현민의 시선이 마녀의 빗자루를 따라 옮겨졌다. 어느새 다가온 꼬마 현민이 그의 왼쪽에서 마녀의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꼬마 현미느이 귀여운 미소가 재수 없게 다가왔다. 현민은 꼬마 현민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꼬마 현민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무기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뒤로 빼기엔 이미 늦었고, 오른쪽은 막혀 있어서 불가, 왼쪽은 자신의 왼발이 나아가 있어서 역시 불가능했다. 왼발을 앞으로 한 채 왼쪽으로 움직이기에는 한꼐가 있었다. 현민은 무기를 놓고 자리를 옮겼다. 스악! 그 찰나의 순간, 마녀의 빗자루가 현민의 무기를 잘랐고, 아현의 기다란 꼬리가 현민을 노렸다. 하지만 현민의 신형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두 사람은 현민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공격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었다. 검을 놓은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를 들어 아현에게 다가갔다. 위치상 꼬마 현민을 노리는 게 빨랐으나, 키가 작은 고마 현민은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현민의 본래의 단검이 뽑히며 두 사람이 부딪혔다, 채애앵! 회전하는 현민과 양손을 바삐 움직이는 아현으로 인해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부딪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 것인지,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길게 늘어졌다. 현민의 왼손에 들린 단검이 아현의 눈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아현은 손을들어 그것을 막은 다음, 손목을 꺾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현민의 팔은 그녀의 손을 빠져나갔고, 밑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단검이 그녀의 목을 노렸다. 루인아츠로 인해 죽을 일은 없다지만, 맞으면 아픈 것은 다연한 사실. 아현은 솟아오르는 단검을 직접 잡으려 했다. 멈칫! 빙글. 현민의 단검이 아현의 손에 들어가기 직전, 올라가던 현민의 손이 갑자기 멈추면서 위를 향하고 있던 단검이 날이 아래쪽으로 바뀌었다. 현민의 손이 부드럽게 돌아가며 그녀의 명치를 찔렀다. 스슷! 노린 것은 명치였으나, 현민의 단검은 그녀의 가슴을 스쳐지나갔다. 현민이 공격을 하고 있는 동안 아현도 공격을 하고 잇엇기 때문이다. 아현은 기다란 꼬리고 그의 목을 노린 다음, 몸을 옆으로 돌리며 현민의 옆구리를 향해 발을 날렸다. 그녀를 향해 찌느는 중이었기에 현민의 왼쪽 옆구리는 훤히 드러나 있었다. 기다란 꼬리로 공격한 것은 현민의 단검이 찌르는 도중이었고, 발이 옆구리를 노린 것은 공격을 당하는 동시였다. 목을 노리고 날아든 기다한 꼬리는 고개를 숙임으로써 피할 수 있었지만, 옆구리를 노리는 아현의 발은 이전의 아현과 마찬가지 이유로 피하기 곤란했다. 현민은 오른손의 무기를 자신의 옆구리 쪽으로 가져갔다. 팟! 팍! 아현은 무기에 발이 닿기 지ㅓㄴ 공격을 멈추며 원래의 자세로 돌아왔다. 발이 돌아오고 허리가 돌아가며 그녀의 상체가 정면을 향했다. 현민의 왼팔이 그녀의 왼팔에 끼였다. 그녀의 팔과 옆구리에는 루인아츠의 비늘이 있었기에 강제로 뺄 수가 없었다. 만약 강제로 뺸다면 자신의 발은 잘려 나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잇을 수도 없었다. 두 사람 다 오른손이 자유로웠지만 자신은 왼팔이 붙잡혀 있는 상태였고, 아현은 왼팔을 붙잡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움직임의 자유로움을 따졌을 때 아현이 좀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현민은 팔을 접으며 아현의 왼쪽으로 돌아갔다. 그의 목표는 왼쪽 옆구리의 뒤, 루인아츠의 비늘이 끝나는 부분이었다. 그의 생각을 눈치 챈 아현은 기다란 꼬리를 자신의 주변에 감았다. 현민이 자신을 찌르기 전에 그녀가 현민을 토막 낼 생각이었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싸움이었다. 현민의 절체절명이라 할 수 있는 순간이었으나, 이런 걸로 쉽게 죽을 현민이 아니었다. 크아아악-! 콰득! 그동안 드러내지 않고 있던 살기가 한 번에 터져 나왔다. 대기가 떨리며 울부짖음을 만들 정도였다. 현민은 그러한 살기를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아현에게 집중했다. 아무리 아현이라도 한순간 터져 나온 현민의 살기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녀를 보호하고 있던 루인아츠도 갑작스러운 살기를 버텨내지 못하고 한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현민은 아현의 팔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자신의 팔을 뺐다. 아현을 죽이기에는 더없는 기회였으나, 지금 중요한 것은 자신의 팔이었다. 그가 상대가호 있는 존재는 아현 하나만이 아니었다. 꼬마 현민이 들고 있는 마녀의 낫이 그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현민의 신형은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난 후였다. 아현과 현민의 부딪침이 상당히 오랜 시간 이루어진 것 같았으나, 실제로 이 모든 동작은 꼬마 현민이 움직이는 그 잠깐의 찰나에 이루어졌다. 꼬마 현민은 현민의 뒤를 쫓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없이 현민 쪽에서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꼬마 현민도 현민을 향해 달려 나갔다. 서로가 달려가다 보니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어느 정도의 거리가 됐을 때, 현민과 꼬마 현민이 몸을 회전했다. 꼬마 현민의 몸을 따라 크게 회전한 마녀의 빗자루가 현민의 목에 걸쳐졌다. 꼬마 현민은 마녀의 빗자루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S자 모양의 자루가 현민의 손을 타고 미끄러지면서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대한 날이 현민의 목을 노렸다. 현민은 회전하는 상태에서 다리를 크게 벌리며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어차피 꼬마 현민의 키가 허리보다 낮아서 정상적인 공격은 불가능했다. 그의 상체는 자연히 낮아졌고, 마녀의 빗자루는 그의 머리위를 지나갔다. 현민의 다리는 커다란 원을 그리며 꼬마 현민의 머리를 노렸다. 팟! 꼬마 현민은 제자리에서 높이 뛰었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둘렀던 마녀의 빗자루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한 번 휘둘렀다. 아리 특유의 동작이 섞여 들어가며 마녀의 빗자루는 조금의 느려짐 없이 현민의 머리를 노렸다. 굳이 벨 필요 없이 일단 걸리기만 한다면 마녀의 빗자루가 알아서 먹어치울 터였다. 현민은 나머지 하나의 다리를 허공에 띄우며 두 팔로 몸을 지탱했다. 두 다리가 원을 그림에 따라 현민의 상체가 지면과 수평이 됐고, 마녀의 빗자루는 다시 한 번 현민의 신형을 놓쳤다. 현민의 다리는 자연스럽게 허공의 꼬마 현민을 향하고 있었다. 꼬마 현민은 그의 다리를 따라 몸을 회전하며 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이 루인아츠의 기다란 꼬리가 현민의 다리를 방해했다. 아현의 손이 그의 심장을 노리며 위에서 내려왔다. 현민은 회전을 빨리하며 그녀의 공격을 피했고, 카포에라처럼 화려한 발동작으로 그녀에게 반격했다. 아현은 팔을 들어 그의 발을 막았다. 그리고 그의 발이 닿는 순간 자신의 팔을 아래로 내렸다. 그대로 당한다면 루인아츠의 비늘로 인해 그의 발은 찢어질 것이 분명했다. 현민은 페튜니아 특유의 움직임으로 빠르게 발을 당겼다. 아현이 어제 새벽 본래의 현민을 상대할 때, 그리고 조금 전 그를 상대할 때도 보여 주었던 움직임이었다. 현민의 발은 아현의 팔에서 강한 충격을 준 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싿. 아현의 행동뿐만 아니라, 꼬마 현민의 공격도 피하기 위해서였다.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한 꼬마 현민이 마녀의 빗자루로 그의 허리를 노리고 있었다. 팍! 스르륵- 팟! 현민은 두 다리를 내리며 땅을 박찼다. 아현과 꼬마 현민이 그런 현민의 뒤를 쫓았다. 그들로부터 벗어나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4개의 단검을 허공에 띄웠다. 본격적으로 부딪치려는 것이다. 현민을 행해 다가가고 있떤 두 사람은 한층 더 속도를 올렸다. 이제는 부딪칠 시간이었다. 챙! 처음의 부딪침은 아현의 꼬리와 현민의 단검이었다. 현민은 아현의 꼬리를 쳐내며 그녀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반 바퀴 회전한 상태에서 왼손에 들린 송곡 모양의 단검이 아현의 목을 노렸다. 아현은 왼팔을 들어올리며 그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송곳 모양의 단검이 아니라 한쪽에만 날이 있는 단도였다. 현민이 자신의 왼팔오 시야를 가리며 오른손으로 공격을 한 것이다. 가까이 있던 왼손보다 뒤에서 움직였던 오른손이 먼저 날아왔다. 오른손을 움직이기에는 눈치 채는 것이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왼손을 움직이자니 목을 노리고 있는 단검이 너무나 위험했다. 결국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아현은 방법을 바꾸었다. 현민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것으로 말이다. 그 자신도 현민이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발록에게 꾸중을 들은 적도 있었다. 회전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했다. 그 거리가 무너진다면 더 이상의 공격은 불가능했다. 설사 공격을 하더라도 그것이 마지막 공격이기 때문이다. 회전할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공격을 한다면 몸이 기울어져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발록에게 꾸중을 들은 만큼 현민도 그 대처법을 알고 있었다. 현민은 공격하던 자세 그대로 아현의 가슴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한순간 온몸의 체중을 실어 강하게 부딪쳤다. 아현의 몸이 밀려나며 현민과 그녀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뒤로 밀려나는 아현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생각대로였다. 때마침 꼬마 현민의 공격도 시작되고 있었다. 현민은 멀어져 가는 아현을 노리기보다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꼬마 현민을 상대했다. 손에 들린 무기를 단검으로 바꾸며 다가오는 마녀의 빗자루를 먼저 막았다. 챙! 한 자루라면 엇비슷한 힘으로 버틸 수 있었으나, 두 자루가 동시에 부딪히면서 마녀의 빗자루가 튕겨져 나갔다. 현민은 그때를 노리고 꼬마 현민에게 접근 했다. 싱긋. 마녀의 빗자루가 튕겨져 나가면서 자신의 몸이 훤히 드러났으나 꼬마 현민은 미소를 지었다.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낀 현민이 공격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행동과 동시에 분명히 튕겨져 나갔던 마녀의 빗자루가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꼬마 현민이 귀엽게 미소 짓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현민은 꼬마 현민의 손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부딪치기 전에 방향을 바꾸었다면 아리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손에서 느껴진 감각은 튕겨져 나간 것이 분명했다. 아리의 움직임으로 돌아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살짝 뒤를 향하고 있는 현민의 손을 따라 마녀의 빗자루가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현민은 꼬마 현민의 방법을 알 수 있었다. 꼬마 현민은 자루의 끝부분을 잡고 싸우다가, 상대가 안으로 들어오거나 자루가 바깥쪽으로 튕겨져 나갔을 때 순간적으로 손목을 강하게 꺾으며 마녀의 빗자루 안쪽 부분을 잡았다. 이때 현민의 손을 타고 미끄러지는 마녀의 빗자루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꺾이는 것이다. 자루 부분이 S자 모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마녀의 빗자루를 피할 수 있었던 현민은 서둘러 다가갔다. 마녀의 빗자루는 뒤에서 앞으로밖에 공격할 수 없었기에, 날이 자신의 앞에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하지만 그가 현민이라면 꼬마 현민도 현민이었다. 꼬마 현민은 작은 몸을 회전했다. 마녀의 빗자루가 그와 같이 회전했고, 자루 끝부분이 현민의 목을 향했다. 공격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단 한 걸음만을 남기고 현민의 발걸음이 멈췄다. 꼬마 현민의 찌르기가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핏! 현민은 가까스로 목을 꺾을 수 있었다. 뾰족한 끝부분이 그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만약 그대로 움직였거나, 조금이라도 반응이 느렸더라면 마녀의 빗자루에 목이 꿰였을 것이다. 스쳐 지나간 자리에서 한 줄기의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처음으로 생긴 상처였으나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느새 아현까지 다가와 있었다. 현민은 양손의 단검을 빠르게 바꾸며 두 사람을 상대했다. 꼬마 현민과 아현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공격하다 보니 현민의 몸은 자연스레 회전했다. 그렇게 어릿광대의 춤이 시작되었다. 6개의 단검을 이리저리 바꾸며 공격하고 있는 현민의 모습은 하나의 작은 돌개바람이었다. 아현과 꼬마 현민은 그런 현민에게 이동할 공간을 주지 않았다. 현민의 움직임이 자유롭다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사방에서 몰아붙이면서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아현의 공격 방식은 강력한 타격기와 잡기였다. 손, 발, 어깨, 무릎, 꼬리 등 온몸을 이용한 공격방식은 현민의 공격만큼이나 빠르고 강렬했다. 아현은 페튜니아의 동작에 자신의 동작까지 섞어 화려한 연계기를 쏟아 부었다. 현민만큼이나 강한 마람이 그녀의 몸을 통해 재현됐다. 그러한 움직임은 꼬마 현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꼬마 현민은 봉술과 낫질이 합쳐진(?) 기묘한 모습으로 싸우고 있었다. 마녀의 빗자루가 그 정신만큼이나 이상한 모양이다 보니 그것을 다루는 움직임엗 한계가 있었지만, 꼬마 현민은 그 한꼐란 것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중간 중간 사용되는 단검은 현민의 목숨을 위협했다. 만약 꼬마 현민에게 2개의 단검만 더 있었다면 그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즉석에서 펼쳐지는 움직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에 아현은 놀랐고, 현민은 긴장했다. 아현과 꼬마 현민은 현민과 마찬가지로 작은 돌개바람이 되어 그를 압박했다. 평벙한 시각으로 보면 3개의 돌개바람이 서로 부딪치는 모습이었다. 진실된 거짓의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때까지 그들의 부딪침은 계속됐다. 3명의 현민 모두 자잘한 상처로 인해 엉망인 모습이었지만, 그 누구도 물러설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멈추거나 물러선다면 죽는 것은 그 사람이 될 것이다. 3명의 현민은 이를 악물었다. 채챙! 챙! 그때 실수가 나왔다. 현민이 쳐낸 아현의 꼬리가 꼬마 현민에게로 날아간 것이다. 현민을 공격하던 꼬마 현민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꼬리에 얻어맞아 튕겨져 나갔다. 현민에게는 더없는 기회였다. 하지만 막상 공격하려던 현민은 깜짝 놀랐다. 눈앞의 존재가 아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형은 바뀐 것이 없었지만, 그 안의 내용물(?)은 달라져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절대로 아현이 아니었다. 현민의 눈동자가 허공을 향했다. 어느새 날아오른 것인지, 그가 가지고 있던 6개의 단검 말고도 또 다른 6개의 단검이 허공에 떠 있었다. 흔들- "넌 아민(我泯)이다. 이 망할[泯] 놈[我]아!" 아현의 몸이 흔들리고, 그 한마디가 들렸을 때 그들의 싸움이 끝났다. 잠깐 사라졌던 아현(현민)은 아민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아민과 등을 맞대고 있었다. "수고했어." 촤아아악! 현민의 한마디와 함꼐 아민의 몸 이곳저곳이 갈라졌다. 팔, 다리, 몸 할 것 없이 머리를 제외한 모든 부위에 칼자국이 나 있었다. 하얀색의 가루가 피를 대신하여 뿜어져 나왔다. "너......." 사르르륵- 현민은 마지막 한마디를 하지 못한 채 허공으로 사라졌다. 싸움에서 이긴 아현의 신형도 현민과 함께 허공으로 사라졌다. 멀리서 지켜보던 꼬마 현민(아현)의 신형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진실된 거짓이 끝난 것이다. 현민에게 있어서는 가장 길게 느껴진 5분이었다. 털썩! "하아! 하아! 하아! X팔. 이, 이런 게... 하아! 전쟁이지." 단 3초 동안 자신의 모든 능력을 드러낸 현민은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나지를 못했다. 세 사람분의 피곤이 한 번에 몰려와서인지도 모른다. 완벽한 무방비 상태. 만약 누군가가 다가온다면 현민으로서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지금 당장은 로그아웃도 불가능했다. 현민은 다 죽어가는 음성으로 한마디 했다. "누나~ 나 죽을 것 같아요." 제111장 현민이 강한 이유 운영자들은 3명의 싸움을 보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발보고 있느 거대한 스크린에는 붉은색과 흰색, 검은색의 돌개바람이 서로 부딪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는 변함없었다. "...지금 저게 싸우고 있는 거야?" "아마도." 질문을 하고 있는 성희의 얼굴은 넋이 나가 있었다. 어떻게 움직여야 저런 모습이 나오는지 무척 궁금했다. 마치 영화 마X크의 주인공 스탠리 입키스(짐 캐리)를 보는 것 같았다. 진실된 거짓의 남은 시간이 3초로 넘어가려 할 때, 검은색의 돌개바람이 바깥쪽으로 튕겨저 나갔다. <넌 아민(我泯)이다. 이 망할[泯] 놈[我]아!> 그 한마디가 들렸을 때는 붉은색의 돌개바람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루인아츠를 뒤집어쓰고 있는 현민이 하얀 돌개바람의 반대편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했어.> 촤아아악! 현민의 몸에 수많은 상처가 생겨나며 하얀색의 가루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을 바라보던 운영자들의 얼굴이 다양해졌다. 셋 중 누가 본래의 현민인지는 몰라도, (외형상) 가장 현민과 가까운 존재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싸움은 끝났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너.......> 피를 뿜어내던 현민과 함께 루인아츠를 뒤집어쓰고 있던 또 다른 현민도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대로 돌아간 루인아츠만이 떨어져 있었다. "현민은?!" 둘 다 사라질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운영자들은 서둘러 현민의 신형을 찾았다. 본래 싸우던 장소와 한참 떨어진 곳에서 바닥에 엎어져 있는 현민의 모습이 발견됐다. 그 모습을 보고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나 페튜니아였다. 그녀는 성희에게 뒷정리를 맡기고 『싸울아비』에 접속했다. "모든 건 어릿광대가 처리했으니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전쟁에서 봤던 몇몇 유저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황 정리해서 보고서로 제출하시고, 제2, 제3운영실 운영자들에게는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숨겨진 군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조사하라고 하세요. 오늘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네." 부서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말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곳의 팀장을 맡고 있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여자라고 해서, 다른 곳의 팀장이라고 해서 무시할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뒷마무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부탁드립니다. 저도 잠시 『싸울아비』에 접속할게요. 어릿광대를 한번 만나보고 싶거든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정리해보린 성희는 페튜니아의 뒤를 따라 『싸울아비』에 접속했다. 같은 가상현실의 공간이기에 좌표를 떠올리고 의지를 갖는다면 접속하는 것쯤이야 순식간이었다. 성희마저 사라진 운영실의 내부는 시끄러워졌다. 어릿광대란 존재의 싸움 때움이었다. "오늘의 싸움, 아니 전쟁도 역시나 대단했죠?" "대단하다기보다... 오싹했지." 아무도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앉았다. 그들은 오늘의 싸음을 보고 무엇을 잔인하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전까지 보아왔던 현민의 모습은 잔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태껏 잔인하다고 했던 그 모습이 사실은 배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수백만 명의 현민이 날뛰던 전쟁터는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난 어릿광대에 대해서 좀 더 조사해보려고. 마지막의 그 모습, 팀장님들은 아니라고 했지만 버그 말고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니깐." "확실히... 마지막은 이상했어." "맞아요. 자신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자신이라니." 그들은 현민이 이상하다고 여겼으나, 그 자세한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중인격, 다중인격이라는 것 자체가 말로만 들어봤을 뿐 실제로 본 적도 없었고, 어떤 증상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민의 모습을 단순한 『싸울아비』의 버그로 생각했다. 시스템을 다루는 운영자들이었기에 그런 생각만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나~ 나 죽을 것 같아요." 페튜니아가 접속했을 때 처음으로 들은 한마디였다. 페튜니아는 다급한 표정이 되어서 재빨리 현민에게로 달려갔다. 핑계를 대고 나왔던 루인아츠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음......." 현민은 페튜니아의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온몸의 감각이 없고, 왠지 붕 뜬 것 같은 기분이라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본래대로 돌아왓으나, 아현과 아민이 어떻게 됐는지도 궁금했다. 현민은 마음속으로 아현을 불러보았다. '아현?' '괜찮다. 모든 게 원래대로다.' 갸날픈 목소리가 아닌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그들의 도박은 성공이었다. 또 다른 현민과의 싸움부터 마지막에 육체를 바꾼 것까지 그 모든 것이 도박이었다. "괜찮은 것 같아요." 현민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대답했다. 페튜니아는 그런 현민을 똑바로 눕혀 주었다. 머리를 받쳐 줄 것이 없었기에 무릎베개를 해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평소라면 어떻게 해서든 피했을 현민이 오늘은 그녀의 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렇게 숨이 찰 때는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지 말고, 자연스럽게 기다리는 게 가장 빨라요.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대단하거든요." 현민은 숨쉬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페튜니아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현민이 했던 말. 그것은 자신의 마슴속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현민의 웃음이 그녀의 질문을 막았다. "헤, 헤헤! 비밀." "하여튼." 페튜니아는 무리하게 질문하지 않았다. 궁금한 것보다는 그냥 이렇게 현민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게 좋았다.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그들을 방해할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잠시 동안은 그랬다. "상태는 어때?" 그들이 분홍빛(?) 분위기를 만들고 있을 때, 성희가 루인아츠를 들고 나타났다. 잊고 있었던 것을 챙겨 줬다는 점에서는 고맙다고 할 수 있었지만, 왠지 방해를 받은것 같아 상짤 기분이 안 좋아진 페튜니아였다. "특별한 이상은 없어. 무리한 움직임으로 인한 상태 이상정도?" "그래? 다행이네." 성희는 현민의 머리 위에 쪼그려 앉았다. 페튜니아가 아차 했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헤에~ 진짜 평범하게 생겼구나." 한두 번 만난 적은 있었으나, 얼굴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성희는 두 눈을 번뜩이며 현민을 관찰했다. 페튜니아의 말대로 평범한 고등학생 그 이상도 이하로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을 생각으로 가면을 썼어요. 그게 어릿광대 가면. 호칭은 가면을 따라 지었죠." 현민은 몽롱한 목소리로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렸다. 아직 거친 감은 있었지만, 현민의 숨소리는 어느새 차분해져 있었다. "가면에 맞추어 내 자신을 숨겼어요. 밝고 유쾌하게, 차분하고 침착하게, '나' 이면서도 내가 아닌 모습으로. 그 덕에 누구도 알지 못했죠. 가면을 벗은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둥학생 중 하나이니까요." 성희와 페튜니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현민만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듣는 어릿광대의 이야기였다. 두 사람은 점점 그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어릿광대하면 독ㅌㄱ한 마법 조합이라고 하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그런 것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요." 두 사람은 현민의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현재 그는 6써클의 마법사였다. 천재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수준이다. 농담이나 겸손이라고 생각했으나, 현민의 얼굴은 그런 기색이 아니었다. "3써클까지는 샤이나라는 NPC에게 배웠어요. 그녀가 천재였죠. 내가 모르던 공식. 생각하지 못한 것을 세세하게 가르쳐 줬어요. 그녀가 어릿광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그들이 현민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존재는 페드로 제국의 마법사인 샤이나 였다. NPC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8써클 까지 올라가 운영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현민을 가르쳤다고 하니, 현민의 말도 어느정도는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고, 저는 다른 선생님을 찾아야 했어요. 그렇게 찾은 존재가 마녀. 저에게 또 다른 모습을 만들어준 존재죠." 그들은 마녀로서의 현민을 떠올렸다. 성희가 알고 있는 현민의 모습은 은색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때의 모습이 너무 강렬하여 다른 모습은 기억나지 않았다. 반대로 페튜니아가 알고 있는 마녀의 모습은 얼굴이 절로 찡그려지는 최악의 모습이었다. 처음의 만남에서 당한 일(팬티 사건(?)&봉인)이 너무 충격적이다 보니, 마녀의 모습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법만 배울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고, 그녀들도 제가 한 명의 마녀가 되기를 원했죠. 달의 마녀가 되는 건 그녀들도, 저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지만요." 그가 들의 마녀가 된 것은 그들뿐만 아니라 운영자들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운영자들은 그러한 호칭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독보적인 기술로 현실과 별 차이가 없는 『싸울아비』였기에, 그들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찾을 수 있었지만,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녀들로 인해 정령을 만났고, 좀 더 많은 NPC들과 친분을 쌓았죠. 마녀의 활이나 루인아츠, 마녀의 빗자루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만든 아이템이에요. 페튜니아 누나는 알고 있죠?" 끄덕. 드워프가 형태를, 다크 엘프와 마녀가 재료를, 현민이 마법진을 그려서 만들어진 무기가 그 3개라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대장장이도 아닌 현민이 무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강한 이유는 직업이 좋아서, 무기가 좋아서도 아니에요." 현민은 자신의 이마에 올려진 페튜니아의 손에 자신의 손을 덮었다. 잠깐 움찔했으나 피아지는 않았다. 차가운그녀의 손이 그분 좋았다. "『싸울아비』에 접속해 있는 시간만큼은 이 세계에 녹아들어서 그들의 '친구'라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내가 그들을 위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위해줘요. 그렇게 때문에 지금도 난... 어릿광대로 있을 수 있는 거에요." 현민은 두 눈을 감았다.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그동안의 추억이 떠올랐다. 언제나 똑같은 하루였으나, 뭐가 좋은 것인지 추억 속의 자신은 웃고 있었다. 현민의 입가에 추억 속과 똑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왠지... 대단한 걸 들은 것 같아." 끄덕. 별로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었으나, 성희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했다. 페튜니아도 마찬가지인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설명은 아니었지만, 그가 강한 이유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자는 줄 알았던 현민이 성희를 향해 손싯했다. 페튜니아도 아니고, 자신에게 용건이 있다는 현민의 행동에 성희의 얼굴이 의아해졌다. 그녀는 조금 더 현민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으나, 현민의 손짓은 멈춰지지 않았다. 성희의 머리카락이 현민의 얼굴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그제야 손을 멈춘 현민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돌렸다. 자연스럽게 속삭이는 듯한 자세가 나왔다. 그제야 현민의 의도를 파악한 성희가 자신의 귀를 현민의 입가에 가까이 가져갔다. "누나, 가끔가다가는 남자들한테 연약한 모습도 보이세요. 혼자서 끙끙거리지 말고요. 그러면 남자한테 차이는 일은 절대 없을 거에요. 깜짝 놀란 성희가 고개를 들려 했으나, 현민의 두 팔이 그녀의 머리를 잡았다. "처음에 고마웠어요." 쪽! 현민의 입술이 그녀의 볼에 닿았다. 남자와 처음으로 한 것도 아니었고, 입술도 아닌 볼이었으나 성희는 왠지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동생이 없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동생에게 뽀뽀를 받는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성희의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흠칫! 그렇게 웃고 있던 성희가 한순간 굳어졌다. 여자의 감이 심상치 않은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니 페튜니아가 쳐다보고 있었다. 성희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스윽-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녀를 물러나게 한 페튜니아는 현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에게 물었다. "뽀뽀?" "응." "볼? 입술?" "볼." 성희는 눈치를 봤다. 현민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페튜니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잠꼬대 같은 현민의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한동안 삐쳐서 말도 안 했을 것이다. "페튜니아 누나도 아닌데 입술은 그래요." 그렇다는 말은 페튜니아였다면 입술에 뽀뽀했을 것이라는 소리였다. 페튜니아의 얼굴이 한순간 붉어졌다. 설마 이런 말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성희도 놀란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반응을 모를 리가 없건만 현민의 태도는 여전했다. 현민은 페튜니아의 다리를 벤재 천천히 잠들어갔다. "진실... 된 거짓." 커졌던 현민의 신체가 또다시 어려졌다. 조몰락거리는 손을 보니 작아진 자신의 모습에 재미 들린 것 같았다. "덮치면... 안 돼요......." 장난 같은 한마디를 남기며 현민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가상현실의 육체가 피곤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커다란 이유는 그의 정신이 아직까지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육체에 3개의 인격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현민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 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2월 11일(금) 11시 38분> 현민의 부탁에 따라 『싸울아비』에 접속하지 않은 현진과 수진 자매는 자신들의 집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제 곧 '그날' 이네?" "응. 너무 특별해서 잊히지가 않았다니깐." 그녀들이 바라보고 있는 작은 탁상용 달력에는 13일에 커다란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발렌타인데이도 아닌 13일에 하트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그녀들에게 무언가 특별한 날인 것 같았다. "장소는 우리 잡으로 하자." "친구들은 전부 부르고." "부르는 것 토요일이 좋겠지? 12시를 막 넘기자마자 축하해주는 거야." "다음 날 휴일이니깐 전부 자고 가라고 하자." 씨익- "신나게 놀아보자고~" "신나게 놀아보자!" 짝! 두 사람의 손바닥이 강하게 부딪쳤다. 역시 쌍둥이라고 해야 할지, 두 사람의 호흡은 척척 맞았다. "그런데... 남자 애들이 자고 가려고 할까?" "응?" 현진의 걱정 어린 소리에 수진의 머리가 기울어졌다. 잠잘 자리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여자둘만 있는 자리에 누구 한 사람만 자고 가라 하는 것도 아니니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현진이 이해 못하는 수진을 위해 한마디 추가했다. "잊었어? 현민." "아~!" 수진은 그 한마디로 현진의 걱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순걸의 위험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잠자고 있는 현민에게 다가가지 마라." "순걸의 위험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잠자고 있는 현민에게 다가가지 마라."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중학교 수학여행 이후 만들어진 절대 금기(?)였다. 한동안 무수한 소문을 만들었었기에 잊히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아하하! 그때 정말 웃기지 않았어?" "맞아. 시하가 난처한 표정으로 울려고 했잖아. 키킥!" 그녀들은 남의 일이기에 웃을 수 있었지만, 당사자인 시하에게는 내 인생 최악의 날 베스트 10에 넣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 한동안 현민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움찔했을 정도였다. 잠자고 있는 현민은 그만큼 끔찍(?)했다. 극도의 무방비함. 평소의 현민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기에 더욱 몸서리쳐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히 피하겠지, 하고 생각하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당한다. 이미 지혜도 한 번 당해본 적이 있는 일이었다. 우연일까? 같은 시각 『싸울아비』에서 그녀들이 말한 절대 금기를 범하려 하는 존재가 있었다. 잠꼬대 같은 현민의 한마디에 성희의 고개가 돌아갔다. 페튜니아 앞에서 크게 웃을 수는 없었다. 페튜니아는 작아진 현민을 보며 복잡한 얼굴이었다. 한참을 키득거리던 성희는 페튜니아의 곁에 주저앉았다. 조용한 침묵 속에 페튜니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뒷정리는?" "잘하고 왔어." "바쁘지 않아?" "나? 아니면 운영자들?" "둘 다." "운영자들은 어제와 똑같이 야근 대기 모드(?)고, 나는 약간 한가하다고나 할까?" 성희의 대답에 페튜니아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전쟁이 끝난 이후 가장 바쁜 사람은 운영팀이 아닌 홍보팀, 그것도 홍보팀장이었기 때문이다. 현민이 싸운 반나절의 시간을 몇 분짜리 동영상으로 편집해야 하니 일분일초가 모자라야 정상이었다. 그녀가 질문을 하려는 찰나, 성희가 먼저 말했다. "아아, 상황을 유추해서 비슷하게 맞추는 게 이런 의미구나." "응?" "네 얼굴에 '어째서?' 라고 쓰여 있어." "그, 그렇게 티나?" "응." 페튜니아는 자신의 상객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성희의 말에 얼굴이 빨개졌다. 이렇게 단순한 궁금증도 드러나는데. 현민을 좋아하는 것을 티내지는 않았는지 걱정이었다. 성희가 봤다면 한바탕 놀렸을 테지만, 슬슬 저녘놀이 지고 있었기에 그녀의 붉어진 얼굴은 들키지 않았다. "그, 그보다 어째서 한가해? 내일 아침까지 완성하려면 아슬아슬할 텐데." "오늘 봤던 어릿광대의 전쟁... 확실히 대단하기는 했지만, 너무 잔인해서 편집한 동영상이 얼마 없거든." "......." 페튜니아는 그제야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릴수 있었다. 어제 있었던 현민의 전쟁이 '놀랍다', '대단하다'였다면, 오늘 있었던 현민의 싸움은 '무섭다', '잔인하다'였다. 성희의 말처럼 함부로 공개할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페튜니아는 시선을 내려 현민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는 존재가 그러한 일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한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페튜니아는 현민의 손을 잡기 위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움찔! 페튜니아의 손가락이 살짝 닿았을 뿐인데 현민의 손이 오므라들었다. 작디작은 손이 그녀의 손가락을 움켜잡았다. 혹시나 놓칠까 봐 힘까지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흠칫! 잠자고 있는 현민과 장난치며 한참을 웃고 있던 페튜니아가 무엇인가 떠올린 듯 몸을 굳혔다. 살짝 돌아간 그녀의 시선에는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성희가 있었다. "아, 안가?" "나 가면 덮치려고?" 찌릿! 내심 찔린(?) 페튜니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크크큭! 정말 귀여운 꼬마야. 네가 반한 것도 이해가 간다." "안 가냐니깐?" "아쉽게도 네 짝사랑한테 물어볼 말이 있답니다. 아, 이제는 짝사랑이 아닌가?" 성희는 끝까지 페튜니아를 놀렸다. 그녀가 엄청나기는 했지만, 지금은 현민이라는 우리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언성을 높이거나 기운을 내뿜는다면 자고 있는 현민이 일어날 테니 페튜니아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성희의 놀림을 묵묵히 참아내던 페튜니아가 갑자기 질문했다. "그런데 마녀의 빗자루랑 마녀의 활은 챙겼어?" "아?!" 가장 위험한 2개의 무기를 이제야 떠올린 성희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인아츠야 주인을 선택한다고 하지만, 미쳐 있는 마녀의 빗자루와 평범(?)한 무기인 마녀의 활은 누군가에게 들어갈 경우 상당히 위헙했다. 성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것을 찾아 나섰다. "휴우~ 갔다." 성희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페튜니아는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페튜니아는 알고 있었다. 그 두 가지 아이템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마녀의 빗자루는 현민만이 다룰 수 있는 아이템이었고, 마녀의 활에는 그 능력만큼이나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성희의 생각만큼 위험한 물건은 절대로 아니었다. "도망갈까?" 막상 저지르기는 했으나 뒷일이 난감했다. 성희라면 돌아와서 자신에게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의심할 것이다. 자신이 현민을 덮친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냥 단둘이 있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이 '도망'이었으나, 성희는 도망간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벗어날 수 있어도 현실에서 마주칠 것이 분명했다. 페튜니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아무리 보아도 계획보다는 기분에 충실한 페튜니아였다. 그러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페튜니아는 조심스럽게 현민을 품에 안았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게 안고 있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아이를 안아본 사람이라면 그 느낌을 알 것이다. 품 안에서 묘한 만족감이 퍼져 나갔다. "귀엽다." 가까이서 보는 현민의 얼굴은 더욱 귀여웠다. 그들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등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콕콕 찔러보기도 하고, 볼 살을 잡아당겨 보기도 했다. 현민은 귀찮아했으나 그녀는 재미있었다. 자꾸만 보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입술이 다가갔다. 어른들이 말하는 깨물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멈칫! "내, 내가 무슨 짓을......!" 페튜니아는 현민의 입술과 아슬아슬한 차이를 남겨 두고 정신을 차렸다. 눈앞의 아이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정신 차리는 게 조금만 늦었으면 정말로 덮친 게 될 뻔했다. 평소라면 스스로의 행동에 쑥스러워하며 멈출 페튜니아였지만, 오늘의 그녀는 달랐다. "하지만 한 번쯤은......." 이전의 뽀뽀 시도에서는 사심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사심이 넘쳐흘렀다. 그것도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사심이 있었기에 그녀는 망설였다. 사심이 커다란 만큼 부끄러움도 컸다. 누가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스레 쑥스러웠다. 그때 현민의 마법이 풀렸다. 어린아이였던 모습이 사라지고, 현민 본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문제는 현민의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는 것에 있었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현민이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닿지 않을 리가 없었다. 쪼옥! "아!"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페튜니아의 입이 벌어졌다. 털썩! 현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페튜니아는 그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상당한 충격이 있엇을 텐데도 그녀는 움직임이 없었다. 입술에서 느껴졌던 감촉 때문에 등이 아픈 것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깊이 잠들어서인지, 푹신한 그녀의 가슴 때문인지 현민도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성희가 보면... "다행이다. 성공했구나!" "...뭐, 뭐가?" 미처 설명을 하기도 전에 나타나는 성희였다. 그녀는 겹쳐져 있는두 사람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덮치면~ 안 돼요~" "이익!" 성희의 놀림에 얼굴이 붉어진 페튜니아가 서둘러 일어나려고 했으나, 찰싹 달라붙어 있는 현민은 좀초럼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움직일수록 더욱 안겨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 그냥 누워 있기에는 조금 그런가?" 그들이 누워 있는 장소는 맨땅이었다. 시산혈해를 이루었던 유저들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냥 누워 있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성희는 그들이 누워 있는 장소를 깔끔한 모양의 바닥으로 바꾸었다. 운영자로서 이 종도는 가능했다. "그러지 말고 좀 도와줘." "보기 좋은데, 뭘." 성희는 페튜니아의 부탁을 무시하며 그들의 곁에 주저앉았다. 페튜니아는 붉어진 얼굴로 좋아하지도, 화를 내지도 못했다. "어때?" "응?" 성희는 손가락으로 현민을 가리켰다. "처음으로 안긴 거잖아. 느낌이 어떠냐고." 안겼다고 말하기엔 2퍼센트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상황만 놓고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약간 진정되어가던 페튜니아의 얼굴이 또다시 붉어졌다. "...따뜻해." 들릿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를 들으며 성희는 미소 지었다. 페튜니아가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고, 확인하고, 키워나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천천히 사랑을 키워나가는 페튜니아가 부럽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밤하늘만 바라봤다. 성희는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페튜니아는 지금의 상황이 쑥스러워서였다. 스르륵. 그녀의 품에서 미끄러진 현민의 머리가 팔 쪽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팔베개를 해주는 모양이었다. 무릎베개에서 가슴베개(?), 그리고 팔베개까지 다양한 베개 경험(?)을 하는 페튜니아였다. 현민이 미끄러지는 소리를 들었는지 성희가 고개를 돌렸다. "그림 나오네." "그만 좀 놀려!" 가슴베개보다 빠져나가기 쉬운 자세라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았지만, 현민의 손이 그녀의 옷을 꽉 잡고 있어서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특히 그녀의 배 위를 가로지르고 있는 현민의 왼손은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강하게 끌어당겼다. "너도 이제 그만 좀 해라. 어차피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냥 있으면 어때?" "하, 하지만 네가......." "이미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사이에 뭐가 쑥스러워?" 상당히 오랜 시간을 같이 지냈기에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과 이것은 별개(?)였다. "너, 너, 너는 다름 사람 앞에서 포옹하고 있을 수 있어?" "응." 성희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즉시 대답했다. 그녀의 당당한 반응에 오히려 페튜니아의 말이 없어졌다. "팔짱을 끼는 것도 이미 절반은 안긴 거야. 절반도 안기는데 전부 안기지 못할 이유는 없잖아?" 남들 앞에서 안기는 것은 그녀에게도 쑥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런다면 페튜니아는 당장에 도망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눈앞의 존재는 연애 경험 제로의 순수한 처녀였다. 그녀를 속이기는 무척이나 쉬웠다. 성희의 예상대로 페튜니아는 더 이상 현민의 손길(?)에 반항하지 않았다. 하늘이 어두어지고 달이 떠오르자, 현민의 머리가 길어지며 미약한 빛을 뿌렸다. 그의 머리카락은 달빛을 흡수하고, 반사했다. "아......!" 그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성희는 놀란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겨우 머리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평범했던 현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째서 유저들이 어릿광대의 성별을 햇갈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러한 모습에 마녀의 차림을 하고 있다면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아도 여성으로 보일 것 같았다. 혼자 보게에 아까운 모습이었기에 성희는 페튜니아의 고개를 직접(?) 돌려 주었다. "지현아, 이거 봐. 보여?" "뭐, 뭐야? 갑자기!" 힐끔힐끔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던 소심한 페튜니아는 갑작스런 친구의 도움(?)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너무 가깝게 붙어 있다 보니 그녀의 턱 아래 현민의 머리가 있었다. 안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세히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금 마... 읏!" 페튜니아는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질문을 하려 했으나, 자신을 당기는 강한 손길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똑바로 누워 있던 그녀의 신형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품 안에 현민이 안겨서 자고 있는 그런 자세였다. '위, 위험해!' 그녀는 코피가 나온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온몸의 피라는 피는 전부 머리로 몰리는 느낌이었다. 성희고 뭐고 주변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크게 울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만 들렸다. 허리에 둘러진 현민의 팔 때문에 더 이상 멀어지지도 못하게 된 페튜니아는 석고상처럼 단단히 굳어버렸다. 갈 곳을 잃은 오른팔은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다. 성희가 그런 페튜니아를 꾸짖었다. "또,또! 그렇게 쑥스러워하지 말라니깐." 성희는 허공에 있는 페튜니아의 손을 현민의 허리에 올려주었다. 옷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민의 감촉에 결국 터지고 말았다. 순진한 페튜니아에게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과도한 흥분으로 초당 1의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정말 현실성있는 게임이 아닐 수 없었다. "남자들은 보기보다도 둔해서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여자의 마음은 절대로 모른다고~!" 왠지 한이 담긴 듯한 성희의 말 때문에 페튜니아는 반항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성희의 도움으로 인해 겉으로 보기에는 사랑이 넘치는 자세가 만들어졌다. 날이 어두워 흘러내리는 코피가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긴장하던 페튜니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머리까지 쓰다듬어주며 얼굴을 바라보는 여유도 보이고 있었다. 막상 도와주기는 했으나, 그들을 바라보는 성희의 표정은 약간 애매했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연인이 아니라 자매 같네." 사랑은 사랑인데, 그들의 사랑은 연인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 가족 사이의 사랑처럼 보였다. 그것도 누나의 동생이 아니라 언니와 동생이였다. 너무나 어울려서 오히려 불쾌한,이상한 기분이었다. 휘이잉! 펄럭! "응?" 그때 세찬 바람과 함께 무언가 휘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희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흠칫! 그리고 굳어졌다. 수천만 마리는 가뿐히 넘어 보이는 비행몬스터들이 그들의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살짝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까지 올라온 지상 몬스터들도 있었다. 지상 몬스터들의 경우 고레벨의 존재들만 모여들었기에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한 것이었다. '어째.........' 성희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는 마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현민이 있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그들을 부른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한마리의 몬스터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스륵. 꿀꺽! 운영자라는 존재는 적으로도 먹이로도 인식되어 있지 않기에 안전했으나. 성희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자신의 몇 배에 해당하는 몬스터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긴장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했다. 화면을 통해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에 많은 차이가 느껴졌다. 쿵, 쿵! 미약한 진동을 만들며 가까이 다가오던 몬스터는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몬스터의 목표는 그녀가 아니었다. 현민과 페튜니아의 겉에 멈춰 선 몬스터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엎드렸다. 털썩!스르륵. 그것은 다른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최대한 조용히 다가와 현민의 곁에 자리 잡았다. 먼저 온 순서대로 현민의 곁을 차지했다. 레벨이 높다고 해서, 훨씬 강하다고 해서 자리를 비켜 주거나 싸움을 하는 일은 없었다. 몬스터라는 존재가 어떠한지를 잘 알고 있는 성희에게는 그저 신기한 일이었다. "지현아, 지현아." 성희는 조용한 목소리로 페튜니아를 불렀다. 운영자인 그들에게 위험을 없지만 일단은 알려 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그러한 마음은 페튜니아를 보는 순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너 지금 뭐 하는데?" "으, 으응?!" 주변의 상황도 모르는 채 현민의 몸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페튜니아는 성희의 말에 깜짝 놀라며 손을 얼른 꺼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급히 나온 손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허공을 떠 있었다. 페튜니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성희의 얼굴이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대충 상상이 갔다. "서, 성희야. 이건 절대로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일단 손이나 내리시지?" 그렇게 내려온 손은 자연스럽게 현민의 허리 위로 올라갔다. "흐응~" 움찔! 딱히 내릴곳이 없었기에 원래 있던 곳으로 가져갔을 뿐인데 성희에게서 묘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왠지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았기에 페튜니아의 어깨가 움찔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 참. 사이즈는 어떻게 해줄까?" "무.....슨 사이즈?" "브로마이드." "설, 설마?!" "우후훗! 이래 봬도 홍보팀장인데. 그 정도 못 만들까 봐?" "서, 성희......." 크르릉! 페튜니아의 목소리가 커지려고 하자. 근천에 있던 몬스터가 낮게 울부짖었다. 경고를 한 것이다. 그제야 현민이 자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 페튜니아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정말로 하려는 건 아니지? 응?" "기념이야. 기념." '그런 기념 필요 없어!' 그녀는 속으로 외쳤다. 고함이 절로 터져 나오려 했으나, 눈앞에 현민이 보여 참을 수 있었다. "그냥 추억으로 남겨 놓을래." "사진이 있다면 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거야." "성희야~" 사진이나 브로마이드를 만들어준다는 것은 그녀로서도 환영이었지만, 성희가 한 장만 만들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었기에 반드시 말려야 했다. 그 브로마이드로 운영실을 도배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까지 떠올랐다. 페튜니아가 움직이지도 못한 채 간절히 빌고 있을 때, 그녀의 품 안에 있던 현민이 갑자기 일어났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현민은 나사가 살짝 풀려있었다. 그는 자신을 따라 일어나는 페튜니아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오른팔로 허리를 감쌌고, 왼팔은 가슴 위를 감쌌다. 페튜니아의 등이 현민의 가슴에 닿으며 뒤에서 안은 듯한 자세가 됐다. 현민은 그녀의 어깨에 턱을 기대며 눈도 뜨지 않고 말했다. "으음~ 우리 누나 그만 놀려요."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성희도, 페튜니아도 말을 잃었다. 그가 일어난 것은 둘째 치고, 지금의 자세를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분명히 현민을 바라보며 일어났는데 어째서 이렇게 안긴 것인지 의문이었다. '안겨? 안......겨?" "꺄... 읍!" 페튜니아의 비명이 터져 나오기 직전, 현민의 손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안 돼요~ 아이들이 자고 있어요." 나른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다른 존재들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듯한 말투 때문에 페튜니아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들에게 눈앞에 있는 성희는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의 말에 따라 가만히 있는 페튜니아가 마음에 든 것인지, 현민이 그녀에게 얼굴을 비볐다. 부비부비. "흐응~" "아웃!" 한순간 짜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페튜이나는 현민 쪽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 목소리와 행동이 너무나 외설적이라 성희의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페튜니아도 갑자기 튀어나온 자신의 목소리에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현민의 행동은 멈춰지지 않았고, 중간 중간 페튜니아의 비명이 새어나왔다. 성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솔로 부대라는 존재가 왜 생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존재들을 척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점점 심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비켜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현민이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현민은 페튜니아의 귀를 막으며 성희에게 말했다. "만약 아직도 남자 친구를 좋아한다면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보고 싶어'라고 한마디만 하세요. 그러면 이전보다 더욱 가까워질 거예요." "너...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지현이한테도 말 안 한 건데." "오늘의 나는 '악마'니까요." 살짝 떠진 현민의 두 눈이 초승달을 그리고 있었다. 성희는 그가 신비하게 느껴져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이제 비켜 주세요." "응?" "누나랑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요." "아응~" 성희는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온몸이 풀려 있는 페튜니아가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 페튜니아는 반항조차 하지 않은 채 현민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오늘은 안 돼!" 성희는 현민의 품에서 페튜니아를 빼앗았다. 이대로 계속 놔두었다가는 자신의 친구가 위험해질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맺어지는 것은 환영이었지만 지금 이렇게는 아니었다. "칫!" 현민의 입에서 아쉬워하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성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엇다. 볼 때마다 다른 현민의 성격 때문에 어느 장단을 맞춰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성희는 자신에게 고민을 안겨 준 문젯거리를 쳐다봤다. "얘는 코피도 흘렸었네. 하아! 정말." 가까이서 보는 페튜니아의 처참한 모습에 성희의 입에서 또 한 번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주 좋아 죽어라, 죽어." "미안......"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는지 페튜니아가 성희에게 사과했다. "일단 돌아가서 여자끼리 대화하자." 성희는 페튜니아를 뒤에 숨기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내일 마지막 하루....." "오늘 같은 일은 없을 거예요." "........" 성희는 자신의 질문보다 먼저 나오는 현민의 대답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럴 경우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현민은 난처해하는 성희의 모습에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낀 성희는 현민에게 인사를 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기분 좋았는데, 아쉽네." 그들을 돌려보낸 현민은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난 탓에 두 달이 비틀거렸으나, 용케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들이 사라지고 혼자 남은 현민은 주변의 푹신해 보이는 몬스터에게 다가가 등을 기댔다. 잠깐 고개를 든 몬스터는 그 대상이 현민인 것을 확인하고 다시금 두 눈을 감았다. 현민의 손이 그런 몬스터를 쓰다듬었다. 이전까지의 행동은 장난이었는지, 현민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잘자라, 우리 아가. 앞들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 양도 다들 자는데, 달님은 영창으로 금 구슬 은 구슬을 보내는 이 한밤 잘자라, 우리 아가. 잘 자거라. 달빛 아래 들려오는 현민의 목소리는 생각 이상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담비의 망치 위에 있던 모든 몬스터가 들을 정도였다. 게다가 울려 퍼지는 목소리도 너무 맑아 현민 스스로가 놀랄 정도였다. 현민이 불렀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노랫소리. 그것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호칭의 또 다른 능력이었다. 씨익. 별다른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현민은 새롭게 발견한 호칭의 능력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 때 편리할 것 같았다. 몬스터의 숨소리조차 잠잠해지며 그가 있는 장소에 소리가 사라졌다. 현민은 두 눈을 감고 지금의 고요함을 즐겼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편안함이었다. 아현은 괜찮다고 했으나, 아민이 그렇게 미쳐 날뛰었는데 괜찮다면 그것이 이상했다. 현민은 스스로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신의 불안함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그러한 모습을 보이며 그녀들을 쫓아낸 것이다. 모든 게 잠꼬대 같았으나, 현민은 페튜니아의 첫 번째 비명이 울렸을 때 이미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그 이후로는 연극이었다. 조금 전 페튜니아를 안고 있을 때 기분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분이 좋다고 해서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편안함을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현민은 침욱속에서 그것을 느꼈다. 사방이 조용하니 또다시 졸음이 쏟아졌다. 현민은 천천히 잠에 빠졌다. 아직은 휴식이 필요했다. 제112장 현민의 능력 "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요?" 물웅덩이에 비치고 있던 3명의 현민이 싸움을 시작했으나, 지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웅덩이 속의 장소만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을 뿐, 현민의 모습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지혜가 볼 수 있을 정도로 물웅덩이 속의 영상을 느리게 만들어주었다. 영상을 기억하고 다시 재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마법의 본주라 할 수 있는 드래곤에게 그러한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물웅덩이 속의 영상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지혜는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 세 사람의 싸움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이 정말고 인간인지, 자신의 친구인 현민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녀도 가끔가다 위성 방송으로 격투기 프로그램을 보곤했다. 하지만 그 어떤 시합에도 물웅덩이 속의 현민처럼 움직이는 존재는 없었다. 그들의 싸움은 화려한 효과로 포장된 영화와 다름없었다. 물웅덩이를 통해 보이는 그들의 싸움을 한참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그들이 얼마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려 주었다. 한데 어우러져 있는 세 사람은 서로의 급소만을 노리고 있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낸 사실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거침없었기에 특정 부위를 노린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상처가 나는 부분을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지혜는 그것을 보며 현민이 오전에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어떤 수련을 했는지, 어떻게 배워왔는지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발록의 총애를 받고 있단느 소문이 거짓은 아니었군." "네?" "너는 모르겠지만, 그의 움직임에는 발록의 행동이 그대로 녹아 있다. 발록에게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되지는 않지. 발록이 특별히 신경 썼다는 증거다." 지혜는 드래곤의 말을 들으며 이상한 표정이 됐다. "저.... 혹시... 발록이 여성체인가요?" "음? 아니다." "휴우~" 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래곤이 말한 '총애'라는 단어에 한순간 불안한 마음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총애'의 뜻이 '남달리 귀여워하고 사랑함'이었으니 그녀의 걱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면 중성이다. 상대에 따라서 여성체도, 남성체도 될 수 있다더군." 그 한마디에 현민의 과거가 예상됐다. 발록은 (때리기 위해) 쫓아가고, 현민은 (피하기 위해)도망갔을 것이다. 아마도 (맞기)싫다며 버티는 현민을 강제로 덮쳤(때렸)겠지. 그녀의 거친 손길(주먹질)에 현민의 옷은 넝마가 되고, 살(주먹)과 살(얼굴)이 맞닿으며 뜨거운 열기(마찰열)가 피어올랐을 것이다. 땀과 (고통에 찬)신음이 난무하다가, 결국에는 (피가)팟~! 격한 감각(타격감&고통)에 둘 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딱히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이상한 쪽으로 상상이 되는 지혜의 표현이었다. 괄호 안의 말을 빼고 읽으면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깐 복귀했던 질투의 여신이 또다시 강림하고 있었다. 애인도 아닌 친구를 다른 여자에게 빼앗겼다고 해서 이렇게 분해하는 존재는 지혜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새 현민의 싸움을 지켜본 지도 14분이 넘어갔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그들의 균형에 변화가 생겼다. 현민의 심장을 노리고 있던 아현의 꼬리가 그의 검에 빗맞으면서 꼬마 현민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막 현민의 다리를 베어가고 있던 꼬마 현민은 그녀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나마 왼손을 들어올려 마녀의 빗자루로 막을 수 있었을 뿐이다. 루인아츠의 꼬리와 마녀의 빗자루가 정확히 부딪치면서 꼬마 현민은 불안정한 자세로 날아가 버렸다. 둘의 싸움으로 동수를 이뤘는데 그중 한 명이 빠졌으니 그들의 싸움은 승부가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혜의 눈에 비치는 현민의 얼굴에서는 절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혜가 의아해할 때 아현의 몸이 흔들린 것처럼 보였다. 흔들~ <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속도가 속도이다 보니 아현의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답답했던 지혜가 드래곤에게 다시 한 번 부탁했다. "원래대로요!" <...언 아민이다. 이 망할 놈아!> 그들의 움직임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아현이 뭐라 하는지는 들을 수 있었다. 대신 그녀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현민의 움직임은 흐니색의 돌개바람으로 나타났으나, 현민은 잔상이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원래 있던 곳 반대편에서 아현의 모습이 나타났다. <수고했어.> 촤아아악! 현민의 몸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고, 길고 길었던 싸움이 끝을 맺었다. 지혜로서는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드래곤은 조금 전의 그 영상만 다시 보여 주었다. 이전에 보던 영상보다 더욱 느린 속도였다. 처음 봤을 때는 흔들렸다 생각했으나, 물웅덩이 속의 아현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한 박자 늦게 움직이기 시작한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던 단검을 오른손은 역수로, 오니손은 똑바로 잡으며 현민의 왼쪽으로 돌아갔다. 반걸음 움직이고 한 걸음 나아간 후, 살짝 몸을 돌리며 반걸음 움직였다. 딱 세 번 걸었을 뿐인데 아현의 신형은 현민의 왼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의 부딪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현이 반걸음 나아갔을 때, 아현의 왼손에 있던 단검과 현민의 단검이 처음으로 부딪쳤다. 현민은 단검을 허공에 띄우며 다른 것으로 바꾸었고, 반대편의 손으로 아현의 눈을 노렸다. 아현이 반걸음을 나아갔다면 치명상이었지만, 한 걸음을 움직이며 현민의 공격은 그녀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현민의 공격은 실패였지만, 아현의 공격마저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아현은 한 걸음 이동하며 오른손의 단검으로 현민의 허리를 훓었고, 이어 반걸음 나아간 후 회전을 하여 현민의 왼쪽 어깨를 찔렀다. 아현과 반대로 회전을 하고 있던 현민은 그녀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뒤늦게 도착한 현민의 팔꿈치가 아현의 목 부분을 노렸으나, 그의 공격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아현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것도 원래 생각했던 타격점보다 훨씬 앞에서였다. 아현이 현민을 공격한 후, 또다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아현은 현민의 팔꿈치가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오른발이 미끄러지며 현민의 왼쪽을 향했고, 뒤따라온 왼발은 또다시 대각선으로 미끄러지며 현민의 오른쪽을 밟았다. 현민이 회전하고 있었기에 오른쪽이지, 실제로는 이전에 있던 곳의 반대편(편의상 동쪽 방향)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이 동작으로 인해 현민의 왼팔이 그녀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발을 꼬며 회전했으니 상체자 낮아졌던 것이다. 아현이 현민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현은 손안의 단검을 현민에게 날리며 허공의 단도를 붙잡았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회전하며 현민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정신없는 움직임 때문에 여태 당했으나, 정면으로 맞붙은 이상 그가 밀릴 이유는 없었다. 현민과 그녀의 두 손이 빠르게 부딪쳤다. 그 부딪침에 다섯 번째를 넘기고 있을 때 현민이 다급히 오른손을 움직였다. 아현이 이전의 위치에서 날려 보낸 단검이 그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기 때문이다. 시간차를 이용한 절묘한 공격이었다. 눈으로 본 것도 아니고 감각으로, 그것도 두 손이 아닌 한손으로 막았으나, 그 잠깐 신경이 분산된 사이에 눈앞에 있던 아현은 모습을 감췄다. 아현이 들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단검만이 현민을 공격하고 있었다. 채챙! 현민은 2개의 단검을 막은 후, 즉시 허리를 비틀며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깔끔한 돌려차기였다. 현민의 발은 아현의 머리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현민이 날아오는 단검을 쳐내는 사이, 아현은 서쪽 방향으로 돌아가며 그의 다리를 손으로 할퀴었다. 그 감각 때문에 현민이 아현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아현은 왼손을 들어올리며 그의 발을 잡으려 했다. 현민은 아현의 왼손이 자신의 발을 잡으려 한 것을 눈치 챈 것 같았으나, 그 왼손 밑에 오른손의 비수가 있단느 것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현민의 발은 아현의 손을 정확히 타격하며 재빠르게 물러났다. 그 행동으로 인하여 현민의 다리에는 또 하나의 상처가 생겼다. 아현이 만들어내느 상처 하나하나가 치명상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계속되다 보면 현민이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현민의 단검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며 아현의 명치 부분을 노렸다. 루인아츠로 인해 제대로 된 공격은 불가능하다보니 비늘을 거슬러 올라가며 아현의 급소를 노린 것이다. 명치보다 심장을 노리는 게 더욱 확실했으나, 그러기에는 아현의 가슴이 너무 컸다. 아현이라면 살을 뚫고 심장에 닿기 전에 도망갈 것이 분명했다. 아현은 올라오는 단검을 바깥쪽으로 튕겨 내며 왼손의 송곳으로 현민의 목을 찔렀다. 직선의 움직임이었기에 현민은 그것의 궤도만 살짝 바꾼 다음 곧바로 반격했다. 아현의 오른손에 있던 단검이 현민의 단검을 튕겨 냈고, 이어지는 공격을 현민의 단검이 튕겨 냈다. 서로 다른 인격이라 해도 그 근본은 하나이기 때문인지 그들의 움직임은 닮아 있었다. 아현은 현민의 공격을 거두며 또다시 자리를 바꾸었다. 처음의 위치인 남쪽 방향으로 가서 한 번의 공격을 하고, 서쪽, 북쪽 방향을 경유하여 동쪽 방향으로 가서 다시 한 번 공격했다. 중간의 이동 동작에서 공격을 한 것은 당연했다. 동쪽 방향으로 이동한 아현은 다시 한 번 현민과 부딪쳤고, 북쪽 방향으로 한 번 간 다음, 다시 동쪽 방향을 경유하여 남쪽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움직임은 빠르고 불규칙했다. 6개의 단검이 사방에서 날아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현의 손길이 그의 몸을 훓고 지나갔다. 현민은 아현의 빠른 회전을 따라가지 못했다. 어릿광대춤이라고 하던 그 움직임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 중간 끊어졌다. 느리게 보고 있는데도 아현의 움직임을 놓치기 일쑤였다. 지혜는 그런 아현을 상대로 아직까지 쓰러지지 않는 현민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는 정신을 약 280만으로 나누어 수억 명의 유저들과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스스로를 죽이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정신적인 피로가 상당할 것은 분명했다. 현민의 육체를 차지하고 있는 인격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그 능력만은 감탄할 만했다. 두 사람만의 싸움이 된 지도 4분이 다 되어갔다. 이제 슬슬 승패가 나타났다. 루인아츠로 인해 특별한 상처가 보이지 않는 아현과 달리, 현민의 온몸에는 붉은색의 실선이 그려져 있었다. 피만 나오지 않았을 뿐, 모두가 배인 상처였다. 현민의 등 뒤로 이동한 아현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기다란 그녀의 꼬리가 현민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스스슷! 빠르게 움직인 그녀의 꼬리가 현민의 몸을 훓고 지나가면서 그들의 싸움은 끝이 났다. <수고했어.> 지혜에게 익숙해진 드래곤이 영상을 원래의 속도로 되돌렸다. 아현의 한마디와 함께 피분수가 뿜어졌다. "이런 게 가능하다니......" 현민과 아현의 신형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지혜의 얼굴이 풀어졌다. 믿을수가 없었다. 이전의 싸움도 놀라웠지만, 지금 바라본 싸움은 엄청났다. 4분 동안 바라본 영상. 아현과 현민의 움직임이 단 3초 동안 이루어졌다는 게 신기했다. 상대가 드래곤이 아니었다면 의심부터 했을 것이다. 드래곤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음? 알고 있었던 것 아니었나? 이전에도 자랑하지 않았던가?" 확실히 자랑은 했었다. 그를 만날 때마다 현민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싸우는지에 대해서 언제나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사람으로서 가능할 수도 있는 행동들이었지, 지금과 같이 사람인지 의심 가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능력치가 높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움직임이 가능하다면, 애초에 현민이 전쟁에서 이길 확률은 없었을 것이다. 지혜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저도 자세히 몰랐나 봐요. 설마 저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네가 생각하지 못했다니 신기하군. 아니, 저 인간이 대단한 것인가?" 그는 지혜를 높게 보고 있었다. 현실과 다르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는 지혜는 드래곤인 그가 인정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런 지혜를 속였다고 하니, 현민의 가치도 뜻하지 않게 높아진 것이다. "일단은 저도 인간이니까요." "의미 있는 말이군." "말 그대로일 뿐이에요. 후훗!" 드래곤이 그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영상 속의 현민도 대단한 존재인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지혜와 다른 의미로 인간의 한계를 보여 준 존재였다. "오늘도 다녀올 생각인가?" 그가 말한 곳은 현민이 있는 장소였다. 4일 전(게임 속)과 같이 그의 승리를 축하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지혜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이미 가봤자 늦었을 거예요. 싸움이 끝난 지도 벌써 20분 가까이 되어가니까요." "그런가." 현민으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지혜가 현민의 싸움을 보느라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못브을 들켰다면 꽤 오랫동안 시달렸을 것이다. 드래곤은 현민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끝을 맺었다. 『싸울아비』를 종료한 현민이 현실에서 눈을 뜨자 한순간 엄청난 살기가 터져 나왔다. 파칭! 펑! 이중으로 되어 있는 현민의 방 유리창이 산산조각으로 깨져 나갔고, 그가 누워 있던 접속기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터졌다. 불이 나지는 않았지만 이곳저곳에 금이 가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 그 모든 사건의 원인인 현민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바라보았다. "실수했다." 얼핏 느껴지는 소란을 보니 윗집과 아랫집도 유리창이 부서진 것 같았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대형 사고였다. 새벽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인지 가족 모두가 현민의 방으로 들이닥쳤다. 이미 상당한 전과가 있었던지라 모두가 걱정 어린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냐?!"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형, 괜찮아?!"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들을 보며 현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웃는 것뿐이었다. "바람.... 때문인가 봐요. 윗집과 아랫집도 깨진 것 같아요.' 정말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엇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것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 모두가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보아왔던 현민인데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알고 있는 현민이라 하기에는 말투와 행동이 너무나 부드러웠다. "왜요?" "아, 아니다." 역시나 낯설게 느껴졌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는 분명 자신의 아들이고, 형인 현민의 모습이 맞았다. 외계인이 나타나서 납치라도 해가지 않은 이상 낯선 존재는 아닐 것이다. "저는 괜찮아요. 방이 조금 지저분해지긴 했지만, 다치지는 않았어요. 그러니 두 분은 들어가서 주무세요. 형웅이도." 유리창이 바깥쪽으로 깨져 나갔기 때문에 현민의 방은 나름 깔끔했다. 어지럽혀진 것도 현민이 대충 사용해서 지저분한 것이지, 조금 전의 일로 어지럽혀진 것은 아니었다. 현민에게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좀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여기는 추울 테니 거실, 아니. 안방에서 자거라." "아니에요. 그냥 거실에서 잘게요." "그래도....." "괜찮아요. 거실도 따뜻한데요, 뭐." 계절 감각이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겨울이었다. 창문이 뻥 뚫린 방에서 그냥 자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는 계절이었다. 게다가 께진 창문의 크기가 현민의 방 한쪽 벽면의 절반이상 될 정도로 커다랬기에, 창문이 없는 지금은 약간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현민은 아버지와 타협해서 거실에서 자는 것으로 결정했다. 거실의 유리창도 금이 가 있는 것을 보며 아버지가 다시 한 번 말렸지만, 금만 갔을 뿐 바람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기에 오히려 현민이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렇게 간신히 상황을 정리하고 잠을 청하려 할 때, 아파트의 경비 아저씨가 초인종을 눌렀다. 현민의 집을 중심으로 위, 아랫집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으니 무슨 위험한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확인하러 올라온 것이다. 현민의 방을 대충 살핀 경비 아저씨는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그렇게 물러갔다. 자세히 살피는 것은 밤이 늦었기 때문에 다음 날 하기로 햇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현민이 잠자리에 들 수 있었던 시간은 『싸울아비』를 종료하고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현재 시각 3시 23분.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현민에게는 잠자기 약간 애매한 시간이었다. 현민은 잠자는 것보다 지금의 상태를 생각했다. 잠이야 『싸울아비』에서 많이 잤기 때문에 정신적인 피로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으음.... 싸우고 난 뒤에 부작용이 없어서 좋긴 한데, 왠지 어색하네.' 현민은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히 느끼고 있었다. 아현과 아민, 그리고 현민의 일부분이 기묘하게 섞여 있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아민이라는 인격을 아현이라는 인격이 감싸고 있고, 그 인격을 다시 현민의 인격이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셋이면서 하나이고, 그가 부드럽게 느겨졌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뭐, 아침까지는 해결되니 걱정할 필요 없지. 이제 전쟁도 하루 남았고... 오늘만 버티면 끝이다.' 내심 여유를 보이는 듯했으나 현민은 긴장하고 있었다. 이틀 동안의 전쟁으로 죽어나간 유저가 10억 가까이 되니, 이제 앞으로 남은 유저는 10억 정도였다. 전 세계 70억 인구 중『싸울아비』를 하고 있는 사람은 20억 명 정도라고 했다. 잠수 타거나 부활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숫자에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이다. 현민이 고민하는 것은 그들 모두가 자신을 노릴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지혜의 계획은 그들 모두가 자신을 노리고, 자신이 그들 모두를 죽임으로써 『싸울아비』의 모든 유저들을 정당한 방법으로 초기화시키는 것이었다. 전부 안 와도 문제였지만, 전부 와도 문제였다. 첫날은 유저들의 방심으로, 둘째 날은 아민을 깨움으로써 겨우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유저들은 방심하지 않고, 아민도 깨울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첫날과 둘째 날을 합한 수만큼의 유저들을 상대해야 하니, 현민에게는 힘든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몬스터들까지 풀어놓았지만, 그들이 줄일 수 있는 유저의 수는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이 땅은 현실 그 이상으로 넓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명 피해가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모든 존재가 과도한 욕심을 가지고 있다고는 볼 수 없었다. 자신처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상당히 힘든 싸움이 분명했으나 현민은 그들이 다가와 주기만을 빌었다.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그' 능력을 드러내서라도 이길 생각이랍니다.' '그' 능력은 현민도 상상만 했을 뿐 실제로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능력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전부를 죽일 수 있을지도 자신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절반 이상의 유저들은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마지막이니만큼 현민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현민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부스럭. "으음~"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4시가 되어서야 잠들 수 있었던 현민은 잠든 지 채 2시간이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졸리면 개(犬)가 되는 현민이 었기에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현민은 비몽사몽 상태로 이불에 얼굴을 비볐다. "...싫다." 주어, 동사가 빠져 있었지만, 그것이 일어나기 싫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전의 현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투정이었다.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는지 현민의 인격은 아직 나눠지지 않은 상태였다. "일어나긴 해야 하는데..." 현민이 일어난 것은 그 한마디를 하고 10분 정도가 지난 후였다.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습관처럼 화장실로 들어갔다. "후아~ 개운하긴 한데 왠지 찜찜하다."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현민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작게 투덜거렸다. 아침부터 샤워를 한 탓에 졸음도 가시고 몸도 개운했지만, 나눠지지 않은 인격 때문에 평소의 자신이 아닌 것 같아 답답한 느낌이었다. 치지직! "이크! 조심조심."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살기로 인해 TV의 화면이 흔들리자 당황한 현민이 서둘러 살기를 거두었다. 나오는 것은 멋대로여도 거두는 것은 현민의 뜻대로 할 수 있었다. 어제처럼 강하게 나오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엣취!" 치지직! 재채기에도 화면이 흔들리자 현민의 인상이 안 좋아졌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살기를 신경 써야 한다는 게 불만인 것 같았다. 아무리 막장 현민이라지만, 방전된 건전지처럼 아무 데서나 살기르 흘리고 다닐 수는 없었다. "이럼 곤란한데." 말은 곤란하다고 했으나, 표정이나 행동은 전혀 상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왠지 불량스러워진 현민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현민은 평소보다 약간 늦은, 그러나 남들보다는 빠른 시간에 학교를 향했다. 방학이라 늦게 가도 상관없지만, 일찍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현민이었다. 일찍 가면 일찍 가는 대로 잠자면 그만이다. "하아~ 암!" 푸드득! 하품을 하는 동안 흘러나온 살기로 인해 주변의 새가 하늘로 날아올랐으나, 현민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흘러나오는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이제 슬슬 인격이 나눠지고 있었기에 그냥 놔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서 사라졌다.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털레털레 걸어가고 있을 때, 예정된 것처럼 2명의 인물이 현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お早よう(오하요)~" "음, 그럼 나는 こんにちは(곤니찌와)~" 어설픈 인사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발걸음을 맞추며 함께 등교했다. 또 한 명의 인물인 치우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치우는 현민의 입장에서 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을뿐더러,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지혜를 만나러 온 것이기 때문에 굳이 인사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지혜가 그런 현민에게 안겨 붙었다. 현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심한 접촉은 삼가고 손만 살짝 붙잡았다. 말 그대로 '살짝'이라 피하지는 않았지만, 현민의 얼굴은 의아해졌다. 자신은 살짝 손만 잡았을 뿐이지만, 옆에 있는 치우에게는 다르게 보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현민은 치우가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지혜에게 속삭였다. "뭐야? 어제 네 마음도 확인시켜 주지 않았어?" "확인이야 했지, 아주 실감나게." "근데?" "후훗! 그냥 삐뚤어진 애정이라고나 할까?" 의아해하던 현민의 얼굴이 어이없어졌다. 자신과는 다른 의미에서 악마가 따로 없엇다. 괜스레 치우가 불상했다. "적당히 해둬, 그러다 정말 도망간다?" "그럴 것 같아?" "에휴!" 그녀는 물론이고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대답이었기에 현민의 입에서는 한숨이 대신 나왔다. 그런 현민을 보며 미소 짓던 지혜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그보다 너 어떻게 된 거야? 분위기가 전혀 다른데." "에, 음, 그게..." "...?" 의외로 날카로운 지혜의 질문에 현민의 대답이 늦어졌다. 대답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너무 복잡해." 아현의 인격과 하나가 되어 있는 현민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전부 설명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간단히 말해서 귀찮았던 것이다. 현민의 표정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었던 지혜는 정말 달라진 현민을 보며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굳이 그의 대답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예상됐다. "그보다..." "그건 나중에. 지금은 치우도 있고, 대화도 길어질 테니깐." 현민은 그녀의 말이 시작도 하기 전에 잘라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서 정확히 대답했다. 지혜는 그러한 현민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나, 이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대답하는 현민을 보며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어제도 설명했잖아." "또, 또." "또, 또."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말 때문에 지혜가 태클을 걸었으나, 현민은 정확한 타이밍으로 그녀의 태클까지 따라 했다. 지혜는 현민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너... 내가 예상한 너의 미래를 말해주지, 너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평생을 외롭게 독! 신! 으로 살아갈 거야." "풋! 정말 그럴까?" 현민은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아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지혜는 현민의 손을 뿌리치며 치우에게로 다가갔다. "너는 저렇게 되면 안 돼." "응? 으응." "풋!" 자신의 미래보다 그들의 미래가 머릿속에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나왔다. 만약, 아니 이후에 두 사람이 맺어진다면 치우는 지혜에게 잡혀 살 것이 분명했다. 지혜가 마음을 정한 이상, 그는 도망가지도 못할 것이다. "자, 그럼 점심시간에 보자고, 지혜 너는 꼬리 조심해." 어느새 그들은 교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현민은 지혜에게 경고를 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지혜라면 이해했을 것이다. 아직 바깥이 어두워 환하게 불이 켜진 교실에는 그보다 먼저 도착한 반장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대충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현민은 순순하게 감탄했다. "대단하네. 너라면 가능하겠다." "응? 뭐가?" "꿈." "꿈?" 어떻게 생각해도 뜬금없는 말이었기에 반장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현민이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현민은 어색해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며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꿈이 있기에 노력하는 거잖아? 그런 노력이라면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을 거야." "아, 고마워." "아니야, 괜히 방해해서 미안." 현민은 책가방을 내리며 자신의 책상 위에 머리를 박았다. 매직 보드는 부서졌고, 정신은 불안정한 상태였기에 그냥 잠이나 자려는 것이었다. 반장은 그런 현민을 보며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꿈이 뭔지 아나? 딱히 내 꿈이 뭐라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반장은 무언가 이상한 것만 느꼈을 뿐,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알아내지 못햇다. 더 이상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책상 위로 시선을 돌리며 하던 것을 계속했다. 반장의 팬 굴리는 소리와 함께 학교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언제까지고 계속 잘 것 같았던 현민이 눈을 뜬 것은 1교시 시작하는 종이 울리자마자였다. 딱히 수업을 듣기 위해 눈을 뜬 것이 아니라 혼나지 않기 위해 눈을 뜬 것이다. 1교시 언어를 맡고 있는 선생님은 수업도 착실히 나가고, 잠자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졸리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딴 짓을 할 뿐이다. 연습장을 꺼내든 현민은 오늘의 전쟁에서 어떤 마법진을 사용할지 계획했다. 자신이 원하는능력의 마법진을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제대로 실현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루한 현민에게는 나름대로의 시간 때우기가 될 수 있었다. 톡, 톡, 톡. '어떤 능력이 좋을까? 흐음.' 현민은 습관처럼 연습장을 건드리며 고민했다. 하나의 마법진을 제대로 만드는 데 5시간 정도 걸리니, 그가 만들 수 있는 마법진은 실패하든 아니든 하나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시간 때우기라지만 신중하게 고를 필요는 있었다. '아!' 현민은 그 능력을 정했는지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현민의 샤프가 경쾌하게 움직이며 연습장 위를 돌아다녔다. 마녀의 글자와 이상한 도형이 연습장에 정리되었다. 원을 이루는 마법진을 시작과 끝이 일치하며 그 구별이 없어야 하기에 단어를 고르고, 도형을 맞추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후우~" 현민이 팬을 멈춘 것은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시작 할 때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공부, 자세히 바라보면 낙서처럼 보였기에 현민을 건드린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한참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으나, 지혜와의 약속이 있어 옥상부터 올라가야 했다. 철컹! 현민이 일찍 온 것인지 옥상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현민은 입구 바로 옆에 주저앉아, 가지고 온 연습장에 마법진을 이어 그렸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급한 발소리가 들이고 옥상의 문이 빠르게 열렸다. "헉, 헉, 헉." "수고했어." 그녀가 어째서 늦었는지를 잘 알고 있는 현민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한마디 하긴 했다. "그러기에 담배 좀 그만 피우라니깐. 몸에도 나쁜 걸 왜 자꾸 피워?" 툭툭 건드리는 한마디에 지혜가 심숨을 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혜는 현민의 위로 몸을 던졌다. 현민의 무릎과 가슴 사이의 공간에 그녀의 몸이 정확히 들어갔다. 털썩! "윽!" 체중을 실은 지혜의 공격에 현민의 입에서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복부에 느껴지는 압박감이 상당했으나, 몸에서 밀리 현민이 아니었다. 현민은 오히려 반격했다. "그래서 어쩔 건데? 응? 어쩔 건데?" "꺄아악! 아하! 아하하하! 그, 그만! 그만~!" 오른손으로 그녀의 등을 찍어 눌러 도망가지 못하게 한 현민은 지혜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간지럽게 했다. 담비를 다루던 기술이 있어서 능숙하기 그지없었다. 천하의 담비도 꼼짝 못하는 기술을 그녀가 당해낼 리 없었다. 그녀의 입에서 연신 항복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현민의 공격이 멈췄을 때 지혜는 그의 다리 위에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웃다가 지친 것이다. 현민은 별달리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의 등을 책상 삼아 연습장의 마법진을 정리했다. 한 명은 앉아 있고, 다른 한 명은 그의 다리 위에 배를 걸치고 있었다. 참으로 기묘한 자세가 아닐 수 없었다. "현민아." 호흡을 가다듬은 지혜가 움직이지 않은 채 현민을 불렀다. "왜?" "내가 여자로 보이기는 해?" "내가 너를 남자로 보는 것 같아?" "보통 이럴 때는 여자 치마도 슬쩍 들어보고, 은근슬쩍 가슴도 만지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만져 줄까?" "..." 원한다면 해주겠다는 현민의 말투에 지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대하는 현민의 태도가 어제 이후로 약간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쁜 쪽은 아니었다. 이전과 같은 현민인데도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럴 때 밉상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지헤는 현민을 놀리기 위해 다시 한 번 투덜거렸다. "너 여자의 옆구리가 얼마나 예민한지 모르지?" "응." "..." 스스로도 현민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왠지 모르게 울분이 치솟아 올랐다. "덮쳐 버릴 거야." "다 끝나면 울면서 치우한테 달려갈게." "..." 댕댕댕~ K.O. 의외로 강하게 나오는 현민이었다. 지혜는 세 번의 공격이 전부 실패하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삐친 것이다. 현민도 그것을 느꼈으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걸 것이 분명했다. "마법진?" 역시나 현민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혜였다. 물론 그만큼 서로를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응." "어떤 능력인데?" "버서커 마법을 기초로 하고 있는 신체 강화, 생명력 강화 마법진." "그런 마법진도 있어?" 지혜는 현민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마법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현민이 말한 능력의 마법진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법진은 마법과 다르게 스킬처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냥 외치면 그려지고, 많이 사용하면 숙련도가 올라간다는 소리다. 직접 마법진을 그려서 사용하는 현민이 이상한 것이었다. "만드는 거야." "마법진도 가능해?" 지혜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어디에서도 마법진을 만들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현민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마법진도 NPC들에게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응. 가능하긴 한데 무척이나 까다로워. 만든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능력이 나오는 것도 아니야. 나 같은 경우에는 린이 도와주니깐 가능한거지." "린? 네가 말했던 세 번째 천재?" 지혜는 현민이 말한 린이라는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다. 현민이 인정한 천재였기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현민은 지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런데 어째서 여자한테만 배우는 거야?" "글쎄... 가까이 있던 천재들이 전부 여자였을 뿐이야. 너부터 시작해서 말이지." "그냥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는 건 아니고?" 현민은 지혜의 말을 들으며 왼팔에 샨과 린을, 오른팔에 지혜와 채리플랑을 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풋!" 그리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절대로 불가능했다. 샨과 지혜는 자신의 친구였고, 채리플랑은 타인이었다. 린 같은 경우에는 안겨 온다 하더라도 현민 쪽에서 사양하고 싶었다. 그녀의 얼굴이 예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얼굴하고 몸매만 착하지 마음까지 착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저분한 성격도 현민의 결정에 한몫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걸?" 현민은 왼손으로 팬을 잡으며 오른손을 지헤의 머리 위에 올려놨다. "천재는 남자가 많을 것 같아? 여자가 많을 것 같아?" "남자가 많지 않나?" 대부분의 위인전이 남자인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정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하다면 현민은 질문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는 남자보다 여자들 중에 천재가 많아." "하지만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천재들은 대부분이 남자잖아? 다빈치, 아이슈타인, 에디슨, 모차르트, 미켈란젤로, 그밖에 다른 천대들도 대부분이 남자 아냐?" 도리도리. 현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이 천재라 불리는 이유는 본래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야.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상이 어떤지 알고 있지? 사실 여자가 남자와 평등해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아. 그때의 여성들은 배움의 기회를 전혀 갖기 못하거나, 배울 수 있다 해도 그 정도가 한정되어 있었지." "그게 왜?" "너는 아무것도 배운 적 없는 꼬마가 나중에 자라서 일반인의 수준이 되는 거랑, 공부를 통해 지식을 쌓은 꼬마가 나중에 자라서 천재가 되는 거랑 어느게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 "글쎄... 아무래도 천재인 후자가 아닐까?" "아니야." 간단하게 생각하면 천재가 대단한 게 당연했으나, 현민은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에는 천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쌓여 있어. 그만큼의 시간을 알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실수나 생각을 배운다면 발전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하지만 여인들은? 그들은 그것들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어. 약간 심한 말이지만 밥 짓고, 빨래하고, 애 낳는 것밖에 모르는 바보였지. 그런 그들이 일반인 정도의 지식을 가졌다면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아?" "글쎄?" "남자들은 몇천 년의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배우고, 그들의 실수를 찾아내거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야. 하지만 여인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몇천 년이 걸려서 알아낸 사실이나 일을 일생 동안에 알아낸 것이지." "아하! 그들의 배움이 갖고 있는 시간적 의미가 다르다는 말이구나?" 지혜는 그제야 현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재라 불리는 남성들보다 남자 못지않은 여성들이 더 많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그것을 생각해본다면 현민의 말대로 천재는 여자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쉽게 생각해서 역사 속에 현모양처라 하는 존재들은 전부 천재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들이 현모양처라 불릴 수 있었던 까닭은 남편을 '보좌'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보좌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전혀 몰랐어." "자신도 여자면서 생각해본 적도 없는 거야?" "난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으니까. 세 살 때까지 모든 아이들이 나랑 같은 줄 알았다고." "잘났다." 너무나 당당해서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할 거야? 지금 어떤 상황인 줄은 알지?" "최악이지." 어제의 싸움은 그 전날의 싸우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것과 별개로, 지금 남아 있는 모든 유저들이 현민의 전쟁터로 모여들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지하 세계는 물론이고, 숨겨진 조직이나 국가, 기업들까지 있었다. 오늘이 현민이 말한 마지막 날이기 때문인지 그들의 움직임은 소란스러웠다.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상황이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현민은 그 원인을 바라보았다. "너 때문에." "헤헷!" 지혜는 현민의 불평 어린 말에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현민의 불행은 그녀의 행복이었다. 악마가 괜히 악마는 아니다. "들었어?" "아주 멋지게 했더구나. 혹시나 유저들이 모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했던 내가 한심할 정도로 말이야." "이 악마... 아니, 이 누님께서 맡은 일인데 이 정도야 당연하지." 현민의 말은 칭찬이 아니었지만 지혜는 칭찬을 받은 것 처럼 기뻐했다. 현민이 어이없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죽어나가는 건 이 몸인데 말입니다?" "괜찮아! 설마 죽겠어?" 현민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가 두 번째 전쟁을 끝마친 후 홈페이지에 올라온 하나의 게시판 때문이었다. 제목 : 오늘이 마지막 기회다. 두려운가? 조건을 추가했다. 작성자 : 어릿광대 나를 죽이는 자, 내가 가지고 있는 S급의 아이템 2개 중 하나를 주겠다. 설사 내가 죽어서 그중 하나를 떨어트리더라도 다른 하나마저 건네주겠다. 나를 구속하는 자, 내가 가지고 있는 S급의 아이템 2개를 모두 주겠다. 실력이 있다면 내가 저항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보아라. 나는 어릿광대, 세상을 조롱하고 나 자신을 비웃는 자. 조롱당할 것인가, 처단할 것인가. 아직도 믿지 못하는 너희들을 위해 운영자에게 부탁했다. 설사 내가 거부한다 할지라도 운영자들이 건네줄 것이다. 운영자 페튜니아 : 그의 조건을 수락하여 죽음 이후의 아이템은 저희가 처분합니다. 살아 있을 경우 그에게 돌아가며, 그렇지 않을 경우 위에 쓰인 대로 처리합니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페튜니아 누나의 확인까지 달려 있다고 했다. 현민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침부터 시끄럽게 떠드는 반 학생들을 통해서였다. 모두가 그 얘기 중이었기에 듣지 않으려야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자세한 설명에 자신이 직접 본 것은 아닌지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제야 안 올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 "왠지 오늘은 그 설마 같은데?" "훗! 걱정하지 마시라. 마지막은 이 몸께서 도와줄 테니."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음직한 지혜라면 분명 도움이 될 테지만, 현민의 얼굴은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 지혜가 어떤 얼굴로 이런 말을 하는지 뻔히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현민은 그녀의 머리에 손가락을 튕겼다. 딱! "아야!" "네가 친구냐? 싸움 끝나면 뒤치기 하려고?" "쳇!" 가볍게 혀를 차는 것을 보니 정말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현민의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너... 웬만하면 이번 축제에서 치우한테 져 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응?" "치우는 절대로 이길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저질러주마. 치우와의 내기 알고 있지?" "윽!" 현민의 한마디에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치우는 더 이상 자신의 곁에 다가올 수 없기 때문이다. 지혜가 바라본 치우는 마음을 포기할 줄 모르니 다가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너 지금 나랑 사생결단 내보자는 거야?" 지혜는 현민의 다리에서 일어나며 무서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누가 이길 것 같아?" "..." "봐.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으나, 현민의 말에 인상이 찡그려지는 것을 보면 딱히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자신에게 가망이 없다 판단한 지혜는 작전을 바꿨다. "너... 정말로 할 거야? 내가 이렇게 빌어도?" 지혜는 평소답지 않게 약한 모습을 내비쳤다.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무시하면 정말 남자도 아니었다. 다행히 그녀의 이러한 태도가 현민에게도 살짝 통한 것 같았다. "글쎄... 너 나 믿어?" "그야 물론... 아니지. 세상에 믿을 사람이 따로 있지. 널 어떻게 믿냐?" 지혜는 현민을 향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고 있는 현민이 힘이 빠질 정도였다. "호오~? 지금 네 처지를 잊었나 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 넌 비밀이 너무 많아." "그럼 넌 믿지 마. 난 이번 축제에서 치우를 이길 생각이니깐." "야!" 지혜는 자신의 뜻을 꺾지 않는 현민 때문에 고함이 절로 나왔다. 오늘 있을 현민의 마지막 전쟁 다위, 이제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지혜에게 있어서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현민의 축제엿다. "자, 그럼 계산해보실가요? 당신의 미래는 어떠한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지혜는 정말로 화가 났는지 현민에게서 시선을 돌렷다. 그녀가 보고 있지 않는 곳에서 현민은 미소 지었다. 현민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다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자, 그럼 난 먼저 내려가 볼게. 네 생각이나 계획은 알았으니깐." 현민이 일어나려고 하자 뒤돌아 있던 지혜가 다급히 그의 옷깃을 잡았다. "너 내가 이렇게 도와주는데 정말 이럴 거야?" "네가 도와주는 조건은 축제의 참여였을 텐데?"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잖아. 축제의 참가도 네가 먼저 제안하지 않았어? 나는 네 말대로 참가하는 것뿐이고, 기왕 참가하는거 우승할 생각을 가졌을 뿐이야. 너도 처음에 그걸 바랐잖아?" 지혜는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현민의 말에 틀린 것이 없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억지를 부려서 참가하는 현민에게 또 한 번의 억지를 부릴 수는 없었다. 막상 나가려 하던 현민은 그녀를 돌아보았다. "좀 더 냉정하게 나를 계산해봐. 너는 내가 바라본 천재잖아?" "..." "일단 오후수업은 땡땡이 칠 생각이야. 네 계획대로 전부가 몰려올 테니 나도 준비를 해야지." 지혜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현민은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옥상에서 내려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이미 그의 정신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번거로운 짓을 하는구나.' '친구니깐.' 현민은 꾸중하는 듯한 아현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아현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민은 나중의 그녀를 위해서 지금 당장 욕먹을 짓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현민이 했던 말, 행동, 앞으로의 계획까지 그 모든 것은 지혜를 위해서였다. '지금 당장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지혜의 마음을 읽은 이상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마음이 '분노'라면 지혜의 마음은 '허무'였다.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그녀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녀가 꾸미지 않은 채 살아가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 게 친구잖아?" 현민의 미소는 따뜻했다. 제113장 마녀의 도시 "지금쯤 선생님 식사도 끝났겠다. 한번 가볼까?" 지혜에게 말한 대로 조퇴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현민은 담임선생님이 계실 교무실로 향햇다. 현민의 생각이 맞는다면 지금쯤 식사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가는 중일 것이다. "아하하! 그래요?" "이번에는 정말 다행이었다니까요." 현민의 예상대로 담임선생님은 교무실의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현민은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서둘러 다가갔다. 다른 선생님들이 계신 교무실에서 얘기를 한다면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현민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자 선생님들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선생님, 드릴 말슴이 있는데요." "응? 아, 먼저 들어가세요." "네." 다른 선생님은 안으로 들어갔고, 담임선생님만 그의 앞에 남았다. "선생님, 오늘 조퇴시켜 주시면 안 될까요? 내일 마법 검사도 있으니 조금이라도 더 준비하고 싶어서요." "아, 벌써 내일이구나. 음... 어쩔까?" 그녀는 뒤늦게 약속을 떠올리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수업이 끝났다면 모르지만, 아직 남아 있는 수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도 중요하지만 진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녀의 고민은 꽤 오래 지속됐다. "그런데 꼭 지금 가야 하니? 최소한 수업이라도 끝나고 가면 안 될까?" 그녀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현민도 전쟁만 하지 않았더라면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분일초가 아까운 때였다.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선생님에게는 죄송스런 마음이었지만 반드시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어릿광대가 전쟁을 하고 있어서 그동안 접속하지 못했거든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한동안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갓 들어갔을 때 마법을 사용하기가 힘들다는 거. 내일 선생님한테 검사받으려면 능숙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그게 걱정되어서 연습을 하려고요." 현민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이렇게 변명했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은 현민의 말을 들으며 다시 한 번 고민했다. "알았어. 나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니깐 이번만 특별히 보내줄게." "아!" 그녀의 허락에 현민의 얼굴이 밝아졌다. "내일 얼마나 잘하나 볼 테니깐, 연습 많이 해야 한다?" "네!" 큰 소리로 대답하고 돌아서려던 현민은 무엇이 기억난 것인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응?" "선생님, 아직도 루카 왕국의 토와 마을이세요?" "아니. 지금은 요센 왕국의 하르센 도시인데." 이름이 익숙한 것을 보면 언젠가 한 번 가본 것 같았으나, 지금 현민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 하르센요? 지금 여관에 계신 거예요?" "응. 왜?" "아뇨. 어디 계신지 알아야 찾아가니까요. 여관 이름이 뭐 예요?" 자세하게 물어보는 현민이 의아하기는 했으나 일단은 대답해주었다. "바람이 머무는 곳." "그럼 제가 그곳으로 내일 오후에 찾아뵐게요, 5시... 였죠?" "그렇긴 한데, 굳이 안 와도 괜찮아. 선생님이 찾아가면 되니깐." "아, 아니에요. 저도 가까운 곳에 있으니깐 괜찮아요." 현민은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그녀를 말렸다.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선생님, 내일 그 시간까지는 절대로 접속하시면 안 돼요. 선생님도 소문은 알고 계시죠? 몬스터들이 유저를 죽이고 있다는 거,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어릿광대의 전쟁으로 인해 모든 유저들에게 비상이 걸려 있는 상태니깐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그가 걱정하는 게 이것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현민 본인이 몬스터들에게 유저를 죽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접속하다가는 운 나쁘게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었다. "훗! 걱정해주는 거야?" "네에..."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기에 현민의 고개는 더욱 낮아졌다. "알았다. 그럼 내일 오후5시?" "혹시 3시도 가능하세요? 5시면 『싸울아비』에서는 한밤중이잖아요." 시간, 장소 바라는 게 많았지만 현민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 5시면 『싸울아비』에서는 저년 8시였다. 달이 떠 있는 시간이다. 달이 뜨면 마녀의 모습으로 변하는 현민이 그 시간대에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네. 알았어. 그럼 내일 오후 3시에 '바람이 머무는 곳'에서 기다릴게." "네."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원하던 것은 전부 이뤘다. 현민은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약속까지 했으니 절대 죽을 수 없겠군.' '당연하지, 죽어도 죽으면 안 돼.' 현민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내일 약속을 한 이상 오늘은 절대로 죽을 수 없었다. 이제 남은 목숨은 하나, 이번에 죽으면 끝이었다. '그런데 접소기는 어쩔 생각이냐.' 멈칫! 기분 좋은 걸음으로 가방을 둘러매던 현민은 아현의 말에 움직임을 멈췄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새벽 살기로 인해 터져 버렸으니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것은 분명했다. 캡슐 방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그곳은 정체를 들킬 위험이 있어서 찾아갈 수가 없었다. 남들은 다 죽고 빠져 나오는데 자신만 끝까지 남아 있다면, 호기심이 생긴 누군가가 그의 접속기를 통해 영상을 공유할지도 모른다. 잠시 고민하던 현민은 어렵지 않게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친구라는 존재를 통해서 말이다. 차마 학교에서 전화를 할 수는 없었기에 서둘러 밖으로 나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여보세요?) "현진아, 데이트 하자~" (...) 갑작스러운 현민의 말에 당황한 것인지 핸드폰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가 없다고 알지 못할 현민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지어져 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너 지금 뜻밖에 좋은 것 들었다고 입 가리며 웃음 참고 있지? 설마 내가 너희들 목소리를 헷갈렸을 것 같아? 응? 정말 그렇게 생각한 거야? 임! 수! 진! 양?" (목소리도 구별 못하는 사람이랑은 데이트하기 싫어.) "미안." 정말로 화가 난 것인지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현민은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만들어진 미소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현진이한테 데이트 신청했거든." (...) 핸드폰의 소리가 다시 한 번 사라졌다. 현민은 그녀가 어떤 얼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눈에 보였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현민은 조금 더 정겨운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수진아." (왜에?!) "내가 좋아?" 띠- 띠- 띠- 결국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현민은 주변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은 채 허리를 숙였다. 이래서 현민이 수진을 귀여워 하는 것이다. 현민은 같은 번호로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 아마 이번에는 현진이 받을 것이다. 현민은 신호음이 끊어지자마자 현진에게 말했다. "수진이한테 미안하다고 해줘." (또. 놀린거야?) 현민이 현진인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현진도 현민인 것을 알고 있었다. 전화를 받는 중에 수진의 얼굴이 빨갛게 변하면 백중백은 현민의 전화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현진이었다. "쿠쿡! 너무 귀여워서." (혀아간.) 현진은 현민의 장난에 한숨을 내쉬었다. 현진도 많이 당하기는 하지만 수진과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민의 장난이 얼마나 짓궂은지를 잘 알고 있으니, 맨날 당하기만 하는 수진은 울화가 치솟을 것이다. (그보다 무슨 일이야?) "아, 나 오늘 너희 집에서 자도 될까?" (뭐?)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현진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오늘 새벽에 우리 집 접속기가 고장 났거든, 괜찮으면 너희 집에 있는 걸 빌릴 수 있을까 해서." (아아, 전쟁 때문에?) "응. 다른 애들은 접속기가 있는지도 모르고, 여기에서 너무 멀어가지고." (으음......) 현진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알았어. 언제 오게?) "지금 당장. 한 5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은데?" 현민은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대답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민은 이미 그녀의 집 근처까지 도착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현민의 대답에 다급해지는 것은 현진이었다. (자, 잠깐! 잠깐! 조금만 더 늦게 들어와라, 응?) "속옷만 걷어놔. 아직 마르지도 않았을 텐데 굳이 걷을 필요 없잖아?" (......) 직접 바라보는 듯한 현민의 말에 현진의 말이 사라졌다. (나 정말로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너 우리 집에 도청기나 감시 카메라라도 설치한 거야?) "풋! 정말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전화기를 들고 움직일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라면 일단 집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수진이라면 몰라도 현진이 네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고,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무언가를 숨겨야 한다는 건데... 오늘처럼 햇빛이 강한 날 오후라면 빨래가 널려 있는 게 보통이잖아? 당연히 네가 숨길 만한 것은 속옷밖에 없는 거지." (알고 있으면 늦게 와.) 현진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곧장 찾아오려 하는 현민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완전 악동이 따로 없었다. "현진아, 나 지금 입구 도착했어. 좀 있다 봐." (야, 야! 현민아! 혀......) 수진, 현진과 전화를 하는 사이에 그녀들의 집에 도착한 현민은 다급히 외치는 현진의 목소리를 그냥 무시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못 들은 말은 직접 찾아가서 들으면 그만이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그녀의 집에 올라가기까지 2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현민은 기대 어린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현민은 한 걸음 물러나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오빠~!" "웃차!" 현민은 빠르게 안겨드는 예진을 번쩍 들어올려 자신의 품에 안았다. 예진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니 현진과 수진은 없고, 수빈이 맞이해주었다. "어서 오세요, 형." "잘 지냈어? 누나들은?" "둘 다 방 안에 있어요." 현민은 예진을 안은 채 곧장 그녀들의 방으로 갔다. 두 사람 다 뭘 하고 있을지 뻔히 예상되었다. 현민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입가에 손가락을 세웠다. 현민의 뜻을 알아차린 수빈과 예진도 입가에 손가락을 세우며 조용히 했다. "누나, 뭐 도와줄까?" 현민의 입에서 수빈과 비슷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수빈과 예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민을 바라보았다. "현민이 온 거 아니야?" 문 안쪽에서 현진으로 생각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민은 어색하지 않게 대답하며 방문을 열었다. 수진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현진은 문 쪽에 등을 돌린 채 무엇인가를 열심히 개고 있었다. "형 아직 안 왔어. 옆집 아주머니가 반찬 좀 나눠주신다고 해서." "그래? 오면 절대로 문 열어주지 마. 알았지?" "응." 수빈과 예진은 현민이 등 뒤에 있는 것도 모르고 속옷을 개는 현진을 보며 입을 막고 웃었다. 조용히 예진을 내려놓은 현민은 현진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수진에게 다가갔다. 애초부터 목표는 현진이 아니라 수진이었다. 현민은 수진이 누워있는 침대에 기대며 그녀를 불렀다. "언니. 나 심심해." 이번에는 예진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예진과 직접 비교해보면 확실히 달랐지만, 얼핏 듣기에는 그 구별이 애매했다. "언니, 언니~" "예진아, 현진이한테 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던 수진은 현민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그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한 수빈과 예진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계속해서 부르는 현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들켰을 것이다. "언니, 언니, 언니, 언니~" "하아! 알았어, 알았... 어?" 수진은 계속해서 부르는 예진(현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굳어졌다. 살짝 눈을 뜬 그녀의 눈앞에 예진의 얼굴이 아닌 현민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진은 손안에 있던 베개를 집어던지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뭐, 뭐야? 응? 꺄악!" 현민은 갑작스런 수진의 비명에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현민을 발견했다. 현진은 수진과 같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앞에 있던 옷을 몸으로 덮었다. "아하하하!" "푸히히!" 현민은 수진이 집어던진 베개를 껴안은 채 바닥을 뒹굴었고, 수빈과 예진도 참고 있던 웃음을 크게 내뱉었다. 수진과 현진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재미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침대에 있던 수진과 속옷을 덮고 있던 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에 자주 부딪치기는 했으나 이때만큼은 둘의 마음이 하나였다. 수진은 자신이 들고 있던 2개의 베개 중 하나를 현진에게 넘겨주었다. 그녀들은 살벌한 분위기를 피우며 현민에게 다가갔다.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에 현민의 웃음이 뚝 사라졌다. "아하, 하......" "죽어!" "죽어!" 퍼퍽! 퍽! 퍼퍼퍽! 현민의 맞는 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이제 그만 화 풀어라, 응? 내가 점심까지 차려 줬잖아." "흥!" 한참이나 맞아준 것으로도 모자라서 점심까지 만들어주었건만, 그녀들의 분노는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하긴 자신의 속옷을 훤히 보여 주고, 외간 남자에게 순결을 잃을 뻔 했으니 그녀들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현민이 만들어준 음식을 깔끔히 비워놓고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약간 그랬지만 말이다. "오빠, 잘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형." "다행이네." 그녀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한 위로인 것인지, 수빈과 예진은 환한 얼굴로 현민에게 인사했다. 냉장고에 있던 재료만 가지고 만든 볶음밥이었으나, 평소 수진과 현진이 해주던 음식이 아니라서 그런지 더욱 맛있게 느껴지던 식사였다. 단단히 삐쳐 있던 수진과 현진도 현민의 요리 실력에 감탄할 정도였다. 현민은 식탁 위의 식기까지 말끔히 정리한 후 아직도 삐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나 이제 『싸울아비』시작할 생각인데." "......" "......" 현민이 무슨 말을 하건 그녀들은 무시했다. 자신의 장난이 심했다는 것은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녀들의 화가 풀릴 때까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현민은 조금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현민은 현진의 얼굴을 꼭 붙잡은 다음 코와 코가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서로의 호흡이 그대로 느껴지고, 상대방의 눈동자에 자신의 눈동자가 비치는 낯부끄러운 상황에, 당하고 있는 현진뿐만 아니라 보고 있던 그녀의 가족들도 얼굴이 빨개졌다. "화낼 거야? 안 낼 거야?" "우윽!" "자, 대답." 현진은 현민의 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강하게 잡고 있는 현민의 손은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졌기 때문에 현진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 "안 들려." "안 낼게." 그녀의 대답은 입 안에서만 맴도는 것처럼 매우 작았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던 현민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현진은 현민에게서 도망치듯 떨어져 수진의 품에 안겼다. "수진아, 나 지금 당한 거지? 응? 그렇지?"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기에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수진은 지금 현진을 위로해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현진을 처리한 현민이 자신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움찔! "나 화 안 났어!" 수진은 가까이 다가오는 현민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멈칫! 현민은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자리에서 멈추며 환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다행이다." 누가 다행인 것인지 정말 궁금한 현민의 한마디였다. "오늘은 상대할 유저가 조금 많아서 준비할 게 많거든." "아, 괜히 우리 때문에 늦어진 것 아냐?" "괜찮아, 괜찮아. 오랜만에 찾아온 건데 『싸울아비』만 할 생각은 없었으니깐." 현민은 수진의 걱정 어린 말에 여유로운 태도를 내비쳤다. 아직 오후 2시를 넘기지 않았으니, 『싸울아비』에서는 약 하루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현민은 그녀들과 함께 접속기가 있는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무거나 사용해도 되지?" "응" 두 사람의 허락을 받은 현민은 가까이 있는 접속기에 자리 잡았다. 똑같은 접속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사용하는 접속기라 그런지 집에 있던 자신의 접속기와는 느낌이 달랐다. 현민은 혹시나 하고 질문했다. "이거 수진이 거야?" "응? 응. 어떻게 알았어?" 현진은 현민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가 신기했다. "수진이의 향기가 느껴져요." "변태. 나가 죽어." 숨을 깊게 들이쉬는 현민을 보며 수진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부모님한테는?" "연락해놨어, 오늘 밤 친구 집에서 자고 간다고." 이제 현실에서의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게임 속의 준비였다. 현재 시간 2시 17분. 『싸울아비』에서는 약 하루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충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시간이다. "잘해." "잘하고 와. 절대로 죽지 말고. 키운 게 아깝잖아." "오빠, 파이팅!" "형, 저녁에 봬요." 현진과 수진, 수빈과 예진이 현민을 응원했다. 이로써 현민이 죽지 못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그 이유가 많아질수록 현민은 강해져야 했다. "쿡! 잊었어? 내가 바로 어릿광대야." 현민은 모두에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주며 들어갈 준비를 했다. 서서히 접속기의 커버가 닫혔다. "아 참! 심심할 텐데 외부에서 시야 공유하고, 내가 전쟁하는 모습이나 보고 있어. 조금 잔인할 수도 있으니깐 수빈이랑 예진이는 보지 못하게 하고." "응." 현민은 현진과 수진이 대답을 들으며 게임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마지막이다. -접속하기 [캐릭터 룬, Lv 482. 접속하시겠습니까?] "응." 현민의 정신은 또 다른 세계로 옮겨졌다. "후아~ 사람 참 많다." 『싸울아비』에 들어간 현민이 가장 먼저 본 것은 땅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엄청난 숫자의 유저들이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현민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진영을 구축하는 유저들도 있었고, 함정을 설치하는 유저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유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 누구도 현민이 근처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현민은 방심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덮쳐 버릴까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덮친다 하더라도 자신의 실력으로는 그 피해가 미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원래의 계획대로 움직였다. "자, 일단 적당한 장소부터 찾아볼까?" 현민은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면서도 마법진을 그릴 수 있고, 웬만해서는 부서지지 않을 만한 공간을 찾아다녔다. 이동과 관련된 마법진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많은 준비를 할 수 없기에 마녀의 마을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여기가 좋겠다." 현민이 멈춰 선 자리는 무언가의 폭발로 거대한 크리에이터가 생긴 곳이었다. 지형이 안 좋다 보니 사람도 없었고, 흙 색깔이 전체적으로 어두워 작은 구멍이 있다 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디그." 현민은 망설임 없이 밑으로 내려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지하 깊숙한 곳에 공간을 만든 현민은 허공에 불빛을 만들고,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의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니었고, 상당히 복잡하였기에 그것을 그리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런 일을 위해 정령이 있는 것이었으나, 담비를 시키느니 차라리 스스로 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한 현민이었다. "후우! 다 했다. 이제 이곳을 기억시킨 다음에 마을로 귀환하면 끝!"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현민의 신형이 사라졌다. 더 이상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민의 신형은 공간을 뛰어넘어 린이 있는 마녀의 마을로 이동됐다. "응? 어라?" 주변을 둘러본 현민은 의문 어린 말을 내뱉었다. 평소 보았던 자신의 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귀환이라는 것은 스킬이었기에 자신의 이동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현민은 일단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달칵! "아?" "으악!" 쾅! 살짝 열렸던 방문은 믿겨지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닫혔다. 열리는 소리와 닫히는 소리가 동시에 들릴 정도였다. 잔뜩 흥분한 현민은 붉어진 얼굴로 밖에 있던 존재에게 소리쳤다. "리인~!! 당장 옷 입어~!" "괜찮아. 봐도 안 닳아." 린의 대답은 태평스러웠다. 현민의 입에서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실에 있던 린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체였다. 살짝 열린 문으로 그녀의 새하얀 등이 먼저 보였기에 다행이지, 잘못했으면 대형 사고 치를 뻔한 현민이었다. "도대체 왜 옷을 벗고 있었던 거야?" 린에게 억지로 옷을 입게 하고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현민은 잔소리부터 퍼부었다. 만약 걸렸다면 변태가 되는 것은 린이 아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벗고 있는 것을 남자가 봐도, 남자가 벗고 있는 것을 여자가 봐도 변태 소리를 듣는 것은 남자뿐이다. 이것이 남자의 비애였다. 린은 현민이 잔소리를 퍼붓건 말건 탁자 위에 축 늘어졌다. "더워서......" "더워?" 현민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집 안이 시원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게 덥게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따뜻한 지역에 있던 현민이기에 그런 것이었다. 숲 속 깊은 곳의 서늘한 지역에 있던 린은 찜통과 같은 더위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더우면 마법진이라도 하나 그리지 그랬어?" 린은 현민의 그 한마디에 억울하다는 듯 대답했다. "여기는 마법진의 사용이 제한되어 있단 말이야. 함부로 사용하면 잡혀가 버린다고." "잡혀가? 어디로?" "원로 할머니들한테. 일단 잡혀가면 죽었다고 생각해야해." 도대체 어떤 분들인지 린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며 끔찍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린이 유로시아 이외에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는 현민이었다. "처벌이 그렇게 심해?" "기본이 3시간." "응?" "기본이 잔소리 3시간이야. 같은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하고 하고 또 하고, 그것도 무릎 꿇고 앉아서 절대로 움직이면 안 돼. 만약 자세가 흐트러지면 마녀로서의 마음 가짐이 부족하다고 잔소리 2시간 추가. 힘만 믿고 사용했던 유로시아 언니도 결국에 잡혀가서 눈물을 흘렸지." 현민은 자신의 상상을 벗어날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유로시아가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 그대로 마녀 위에 마녀가 있었다. 생전 보지도 못한 원로 할머니들이 두렵게 느껴졌다. "왜, 왠지 나도 무서워졌어." "그치?" 린은 동료라도 얻은 듯이 기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지금 한창 다른 존재들하고 싸우는 중 아니었어? 여기까지 소문이 나 있던데." "아, 맞다." 현민은 한동안 잊고 있던 자신의 목적을 떠올렸다. 린의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잠시 까먹고 있었다. "마법진. 내 몸에 마법진을 그리고 싶어." 린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더위 먹었구나?" 린은 현민의 말을 헛소리로 취급했다. 몸에 마법진을 그린 다는 것은 더 이상의 삻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마법진을 새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법진을 새길 때 끔직한 고통을 견뎌 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죽어버리는 존재가 대부분이었다. 설사 견뎌 냈다고 해도 몸에 있는 마법진을 사용할 때마다 똑같은 고통을 견뎌야 했다. 만약 마법진이 지속형이라면 고통으로 죽든가, 고통에 미치든가 둘 중 하나였다. 린의 이러한 반응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 "......" 린은 한참 동안이나 현민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진심이었다. "정말이야." 끄덕. 현민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보며 린은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골치가 아팠다. 시약 계열이나 저주 계열이 아닌 공격 계열의 현민이, 타인도 아니고 자신의 몸에 그린다고 했기에 더욱 그랬다. "너 그게 마녀로서 금지된 행동이라는 건 기억하고 있어?" "응." 그 해동이 금지된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이 부탁하고도 고통을 참지 못한 대상이 마법진을 그려 준 마녀에게 저주를 걸며 죽어가기 때문이다. 고통으로 인한 커다란 원한은 저주 같은 것에 민감한 마녀들에게 치명적이었다. "도와줄 거야?" "......" 린은 현민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마녀로서도, 친구로서도 그것만은 피해주길 바랐다. "다른 방법은 없어? 저번처럼 악세서리에 마법진을 새길 수도 있잖아." "액세서리로는 안 돼. 지금 있는 것도 착용하지 못하는 걸." "왜?" "싸우는 데 방해되니깐. 그래서 몸에 직접 새기려고 하는 거야." "옷은?" "찢어져." "종이에 적어서 스크롤처럼......" "너무 많이 필요해." "그럼 철판에......" "무거워. 그리고 양도 많지만 종류도 많아." "하아......" 그 밖에도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해보았으나, 현민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현민이 이렇게까지 마음먹었다면 바꾸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걱정하지 마. 고통 따위는 걱정할 필요 없어. 너도 알잖아? 내 두 번째 죽음이 어떠했는지." 린은 현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현민의 두 번째 죽음에는 그녀도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법진의 고통은 견딜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네가 무리라고 한다면 다른 마녀들한테 부탁할게. 어차피 너는 시약 계열이니깐 공격 계열들에게 부탁하면 조금은 더 안전할 거야." "확실히, 굳이 할 생각이라면 네 말대로 나한테 받는 것보다 공격 계열에게 받는 게 안전하겠지. 성공할 확률도 올라가고 말이야." 린은 더 이상 현민을 말리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확실하게 그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최소한 현민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유로시아 누나한테 가봐야겠다." 현민이 알고 있는 공격 계열 중 가장 강한 마녀가 바로 유로시아였다. 그녀라면 어느 정도의 친분도 있으니, 이런 부탁이라도 들어줄 것이 분명했다. 린이 그런 현민을 보며 다급히 말했다. "너 미쳤어? 여긴 마녀의 마을이 아니야. 마녀의 도시라고!" "응?" "나갔다간 바로 잡아먹힐걸?!" 오싹! 처음에는 그녀가 왜 자신을 말리나 어리둥절했으나, 너무나 이해되는 그녀의 한마디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본 마녀들은 굶주려 있었다. 그런 마녀들이 우글거리는 도시라면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아니 무조건 발생할 것이다. 현민은 지금 여우도 그냥 여우가 아니고, 구미호들의 소굴에 떨어진 한 마리의 어린 토끼였다. 한입 거리란 소리다. "시, 실수할 뻔했다." "알았으면 가만히 있어. 내가 우리 마을의 공격 계열 마녀들만 부를 테니깐." 자리에서 일어난 린이 현민을 대신하여 현관문 앞에 섰다. 이제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그녀는 문만 열 수 있었을 뿐, 나갈 수는 없었다. 그녀의 집 앞에 웬일로 유로시아가 찾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찾아온 그녀는 열려진 현관문의 사이로 뒤에 보이는 현민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너무나 직설적인 그녀의 눈빛에 현민과 린의 몸이 움찔했다. "무, 무슨 일이에요?" 유로시아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원로 할머니들께서 부르신다." 철렁! 두 사람은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여긴... 가요?" 유로시아의 뒤를 따라 현민이 들어간 곳은 마을 회관, 또는 노인장의 티를 팍팍 내고 있는 한 건물이었다. 그래도 도시이기에 어느 정도 기대는 했으나, 마녀의 마을에 있던 유로시아의 집보다 못해 보였다.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니 여러 명의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즐기고 있었다. 린이 말했던 원로 할머니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유로시아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리자, 모든 아주머니들이 하던 말을 멈추고 그들을 돌아보았다. 전쟁터 이상으로 섬뜩한 기운이 현민의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유로시아와 린은 이미 돌처럼 굳어 있는 상태였다. 묘한 정적이 그곳에 내려앉았다. 침묵에 부담을 느낀 현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원로 '할머니'들은 어디 계세요?" "풋!" "호호호!" 린과 유로시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고, 그곳에 있던 아주머니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현민만이 그들의 반응을 이해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린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현민에게 말했다. "저분들이 원로 '할머니'야." "아?" 현민은 다시 한 번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30대, 많아야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였다. '할머니'라는 호칭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말 그대로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던 현민은 정말이냐는 눈빛으로 유로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가까이 와보련?" 주춤! 자신을 부르는 손짓에 움찔한 현민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딱히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마녀에게 겉모습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은 현민에게는 책 이상으로 무서운 존재들이 아닐 수 없었다.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생각보다도 더 귀여운 아이네." 움찔! 누군가의 손이 머리로 다가오자 현민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겁먹을 필요 없단다. 우리는 너를 미워하지 않으니깐 말이다." 유로시아와 린은 가만히 있는 현민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원로 할머니들의 말이 마치 현민이 미움 받기 싫어서 겁을 먹고 있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민이 어떠한 성격인지를 잘 알고 있던 그녀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런 방법을 네가 찾아냈다며?" 스르륵- 할머니 한 분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건드렸다. 작은 웅덩이에 물결이 퍼져 나가듯 허공이 흔들리며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렇게 생겨난 마법진은 허공을 움직이며 또 다른 마법진을 그려 냈다. 현민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다양한 마법진도 만들어내고 말이야." 톡- 톡- 톡- 또 다른 할머니가 허공을 건드리자, 이번에는 그동안 현민이 만들어왔던 마법진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증폭, 변화, 회복, 석화, 봉인의 마법진은 물론, 심판과 천벌의 마법진까지 있었다. 그 위력을 잘 알고 있는 현민은 혹시나 발현되지는 않을까 초조한 마음이었다. 흔들~ 현민의 그런 마음을 눈치 챈 것인지, 할머니는 가벼운 동작으로 허공의 마법진을 없앴다. 그들을 시작으로 여러 명의 할머니들이 현민의 곁에 모여들었다. "정력석이라는 것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드워프들조차 너와 함께 만든 물건을 당당히 자랑하더구나." "엘프들은 우리에게 찾아와 용서를 빌었단다." "다크 엘프들에게 선물이 들어온 적도 있지." 그녀들은 현민을 둘러싼 채 한참 동안이나 칭찬했다. 린을 씻게 한다는 별것 아닌 것까지 칭찬을 하였기에 현민의 머리가 숙여질 정도였다. "너로 인해 우리 마녀들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더구나. 이 얘기는 비밀이지만, 최근에 드래곤 로드께서 찾아뵌 적도 있단다." 흠칫! 보통 드래곤도 아니고 드래곤 로드까지 찾아왔다는 소리에 현민의 몸이 절로 굳어졌다. '달'이라는 호칭을 받으면서 보았던 로드의 기운과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몸이 먼저 긴장한 것이다. 그것을 알아본 할머니 한 분이 현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외모는 아주머니였지만, 그 손길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길과 다르지 않았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정(精)이 손길 가득히 느껴졌다. "응?" 그렇게 쓰다듬던 할머니의 손길이 현민의 귀를 타고 내려와 짧은 머리끝에 멈췄다. 무언가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몇몇 할머니들이 현민의 주변에 마법진을 그리며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실력이 실력이니만큼 그들의 검사는 금방 끝났다. "흠~ 아직 완벽하지는 않은 것 같군." "어찌 된 것이냐? 명색이 한 마을의 큰언니란 애가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이 상태로 방치하다니!" 모두의 시선은 유로시아에게 모아져 있었다. "이전 '달'이란 호칭에 가장 근접했던 존재가 기운의 일부를 영혼과 함께 가져간 것 같아요. 제 능력으로 어느 정도 알아보기는 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힘이 너무 강해 자세한 위치는 찾을 수 없었답니다." 유로시아는 나름대로 변명을 하였으나, 할머니들은 더욱 무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들이 바라본 현민의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현민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지금 그의 능력은 능력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였다. 달이 뜨면 몬스터가 '부탁'을 받아줄 정도로 친근해한다는 것뿐, 그 이상의 능력은 보이지 않았다. "에구에구~ 기운이 아주 줄줄 새는구나, 줄줄 새." "봉인구라도 만들어주었으면 됐지 않니?!" 할머니들은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쓸대없이 힘을 흘리고 다니는데 마녀로서의 능력이 강할 리 없었다. 그 기운 덕에 몬스터들이 모여드는 것 같았지만, 다른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기운이 그 정도 일에 사용된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이 할머니들이 도와주마. 우리들이 나선다면 그까짓 영혼 하나쯤은 금방 찾을 수 있단다." "네가 모든 기운을 되찾고 잃어버렸던 능력이 생겨난다면 지금 하고 있는 전쟁 같지 않은 전쟁 따위는 금방 끝날 거란다." 할머니들은 현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직접 나서려고 했다. 어떤 능력인지는 몰라도, 그녀들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대단한 능력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민은 고개를 흔들며 정중히 사양했다. "죄송해요. 이번의 전쟁... 반드시 저 혼자만의 능력으로 해야 해요." "그것도 너의 능력이란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할머니의 말에 현민은 또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제 호칭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는 것, 어찌 되었든 몬스터와 관련되어 있겠죠? 제가 전쟁을 하는 이유는 저와 같은 존재들이 저 하나만을 두려워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호칭의 능력을 사용해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죠." 고집이 느껴지는 현민의 말이었기에 할머니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제가 지금 이 도시에 온 것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고요." "네가 말한 준비가 몸에 마멉진을 새기는 것이냐?" "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녀들답게 현민의 의도는 금방 들통났다. 마법진을 사용하는 것도, 그것을 몸에 새기는 것도 금지된 행동이었으나, 현민은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들의 실력을 확인하였기에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민의 이러한 태도에 할머니들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아! 기왕 해야 한다면 우리가 도와주마. 어수룩한 마녀들에게 맡기는 것보다 우리가 해주는 게 너도 훨씬 나을 거다." 확실히 그녀들이 도와준다면 현민도 조금 더 안전할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유로시아와 린의 눈이 동그레졌다. "무슨 마법진을 새길 생각이냐?" 현민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전부 말했다. "정신력을 빠르게 회복시켜 주는 마법진과 정신력의 소모를 줄여 주는 마법진, 몸을 단단하게 해주는 마법진, 일시적으로 근력을 상승시켜 주는 마법진, 다른 사람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마법진, 블링크 마법진이요." 그의 입에서 마법진이 하나 나올 때마다 주변에 있던 마녀들의 효정이 점점 굳어져 갔다. 현민이 원한 것은 단 6개였으나, 그녀들에게는 '6개씩이나'였다. 현민은 하나도 버티기 힘든 마법진을 6개씩이나 새기려 하고 있었다. "그 마법진을 전부 새기겠다는 말이냐?" "네." "네 몸에 전부?" "네." "네가 어느 정도의 각오를 하고 있는 것은 알겠다만... 그렇게 많은 마법진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구나." 모두가 말리고 나섰지만 현민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린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있기에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거랍니다." "다른 일이라면 걱정하지 않겠지만, 이것은 목숨과 관련된 일이란다. 잘못되면 죽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너야." "괜찮아요. 저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존재니까요." 현민은 미묘한 말로 그들을 설득했다. 아슬아슬하던 그녀들의 마음은 현민의 이 한마디에 넘어가 버렸다. 정확히는 말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의지가 그녀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네 생각이 변함없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자." "네." "겉옷을 벗고 그 자리에 서 있으련." "저기... 전부 다요?" "그래. 옷을 입고 마법진을 그릴 수는 없잖니?" 현민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상체를 벗는 것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설마 다 벗으라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같은 남자도 아니고, 할머니라고는 하지만 젊은 미모를 하고 있는 그녀들 앞에서 쉽사리 옷을 벗을 수는 없었다. "호호! 그렇게 쑥스러워할 필요 없단다. 우리들의 외모가 이렇다 하지만, 대충 네 나이의 30배니깐 말이다. 보시다시피 모두가 한 미모 하다 보니 남자 경험도 수두룩하지." 너무나 현실성 없는 나이 때문에 오히려 더욱 벗기가 싫어진 현민이었다. 린은 현민의 그러한 마음을 눈치 채고 조용히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나중에 울면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벗는 게 좋아." 흠칫! 그냥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울면서 후회한다는 린의 말에 현민의 몸이 굳어졌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린이 그렇다고 한다면 빗나갈 확률은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잠깐 잊고 있었으나, 눈앞의 그녀들은 마녀였다. 현민은 입고 있던 옷을 조심스레 벗기 시작했다. 어느새 소문이 난 것인지, 창문 밖으로 수많은 마녀들이 현민의 몸을 훔쳐보고 있었다. 꿀꺽! 어디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현민은 애써 무시했다. 이곳은 바닷가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최면을 걸며, 속옷 한 장만을 남겨 놓고 전부 벗었다. "자, 그럼 시작......" "잠깐만요." 현민은 잠시 그녀들을 말렸다. 본격적으로 마법진을 그리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고통 억제." 고통 억제(4서클) 능력:대상의 감각을 제한하여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현재 단계:10 주문:??? 현민이 사용한 마법은 고통을 증가시키는 폐인 마법과 반대되는 능력이었다. 애초에 폐인 마법이 이 마법을 반대로 하여 만들어진 마법이다. 폐인 마법이 대상의 고통을 엄청나게 증가시키는 만큼 고통 억제 마법은 대상의 고통을 완벽하게 제한했다. 두 눈 뜨고 다른 이에게 잡아먹혀도 모를 정도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원로들은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만큼 그들의 작업은 느리고 신중했다. 모든 마녀들이 현민의 몸에서 시선을 빼지 못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고, 달이 기울어져 가는 시간이었다. 하나도 아니고, 6개의 마법진이었기에 이 정도로 오래 걸린 것이다.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하며 마을 회관을 나서고 있는 현민의 모습은 처음 들어설 때와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외형은 그랬다. "미안하구나, 노력한다고 하긴 했는데, 하나의 마법진은 실패로 끝나서....."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지쳐 있었다. 몇십 년을 늙어 보이는 그녀의 목소리에 현민은 더욱 미안해졌다. "아니에요. 이렇게까지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죄송스러워요." 비록 하나의 마법진이 실패로 끝났지만 그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마법진이었다. 나머지 5개의 마법진은 성공했으니, 현민의 목적은 충분히 이룬 셈이었다. 이제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모든 마녀가 모여 있는 가운데 할머니들이 현민을 품에 안았다. "네가 비록 남자고, 우리와 다른 존재라 할지라도 너는 훌륭한 '마녀'다. 언제든지 찾아오너라." "네."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린과 유로시아, 같은 마을의 마녀들에게도 모두 인사를 건넨 현민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어떠세요?" 현민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유로시아가 할머니들을 돌아보았다. 이번의 소개는 할머니들이 먼저 나선 것이 아니라 유로시아가 먼저 계획한 것이었다. 마녀이자 마녀가 아닌 현민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려 하자, 유로시아가 현민을 그들에게 내보이며 미리 선수 친 것이다. 모든 마녀들이 마녀의 도시로 모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장점은 강조하고, 단점은 감추었다. 생각보다 장점이 많은 현민이었기에 그녀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착하고 괜찮은 아이더구나, 린에게 아까울 정도야." "내가 한 백 살만 젊었어도 덮쳐 버렸을 텐데." 상당히 위험한 눈빛이었지만, 그만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이었기에 유로시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린만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만을 내비칠 뿐이었다. "그럼?" "그래, 우리도 움직이기 시작하자꾸나." "드디어!" 할머니들이 허락이 떨어지자 주변에 있던 마녀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일이 흔한 것은 아니었기에 모두가 소풍 가는 것처럼 들뜬 얼굴로 전쟁을 준비했다. 그 후 도시에 있던 마녀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114장 마지막 전쟁 스륵! 잠자고 있던 현민의 눈이 떠졌다. 벌써 전쟁을 시작할 시간이 된 것이다. 마녀의 도시에서 돌아오고 난 이후에 한참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준비를 하느라 잠들었던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충분한 휴식을 가졌기 때문인지 그의 몸 상태는 최상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꾸욱! "오늘만 버티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야." 이틀의 전쟁으로 인해 현민의 정신도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육체의 피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풀린다고 하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육체의 피로만큼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었다. 현민은 강한 '척'을 하고 있을 뿐, 첫날만큼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들다고 할지라도 지금 당장 쓰러질 수는 없었다. 작은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늘의 하루를 버텨야 했다. "자~ 오늘도 한번 시작해볼까요?" 루인아츠의 기다란 꼬리가 그의 기분에 맞추어 보기 좋게 살랑거렸다. "텔레포트." 현민은 마법을 사용하여 준비된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땅 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틈이 없을 정도였고, 하늘은 구름이라도 잔뜩 끼어 있는 것처럼 빛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어제처럼 대열을 갖추고 있는 유저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열을 갖추기에는 장소가 너무 비좁았기 때문이다. 첫째날처럼 모두가 뒤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라서 그런지 현민의 입가에 미소가 생겨났다. "캔슬, 파이어볼." 현민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사용했던 마법을 취소하며 양손에 파이어볼 마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등장에 당황하고 있는 주변의 유저들에게 직접 가져갔다. 쿠쿠쿵! 콰쾅! 땅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고 시끄러운 폭음이 뒤를 이었다. 처음의 소리는 현민이 땅속에 만들어두었던 절대방어가 일순간 사라지면서 그 위의 흙들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땅속에 묻혀 있던 절대 방어의 크기가 사람 5명 정도는 가뿐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기에 무너진 범위가 넓긴 했지만, 넘어진 사람만 몇몇 있을 뿐 특별히 다치거나 죽은 존재는 없었다. 다만 땅속에 묻혀 있던 절대 방어가 하나는 아니었는지, 무너진 땅이 현민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나를 죽이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세요. 물론." 현민의 기다란 꼬리가 원을 그렸다. 촤아악!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면 말이지요." 폭발에 휩쓸리며 절반이 원 밖으로 밀려났고, 현민의 꼬리로 인해 나머지 절반이 원 안에서 사라졌다. 이제 원 안에 멀쩡히 서 있는 존재는 현민뿐이었다. 상당히 커다란 원이었기에 현민의 존재는 손쉽게 드러났다. "우오오오~!" "와아아~!" 근처에 있던 수백 명의 유저들이 그런 현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눈은 욕망으로 인해 번들거렸다. 이제 퀘스트 따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현민의 목숨,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채챙! 푸확! "아아악!" "꺄악!" 너 나 할 것 없이 기술을 사용했고 현민의 근처에 있는 다른 유저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무기 부딪치는 소리와 시끄러운 폭음, 온갖 비명 소리가 현민의 주변에 난무했다. 현민은 유저들의 그런 공격을 적당히 이용하며 그들을 상대했다. 누군가의 공격이 날아오면 주변 유저들의 틈으로 몸을 숨겼고, 그럴 생각이 안 된다면 다른 유저를 방패삼아 공격을 막았다. 비겁하고 치사하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이 정도의 숫자를 상대하는 데 비겁하고 치사고 따질 여유는 없었다. 챙!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었기에 마법을 사용할 틈조차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루인아츠가 없었다면 진작 죽었을 만한 상황이다. 싸움의 내비게이션이라 할 수 있는 루인아츠는 현민이 움직여야 하는 장소와 주변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세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이렇듯 현민의 감각과 루인아츠의 능력이 합쳐졌기에 유저들의 다양한 공격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현민은 하늘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벌을 두 손으로 잡아 찢어버리고 앞에서 날아오는 조(爪)를 다른 유저들에게로 흘려보냈다. 막는 것보다 피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고, 죽이는 것보다 죽이도록 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여러 사람이 뒤섞여 있었기에 조금만 빗나가도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원 안에서 죽어간 유저들도 상당했으나, 원 안에 있는 유저들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자리가 비면 비는 만큼 또 다른 유저들이 그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었기에 현민은 원 밖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 팟! 루인아츠의 외침과 함께 바닥에서 무엇인가를 느낀 현민은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다. 전쟁을 시작하면서 감각이 예민해져 있었기에 바닥이 들썩이는 순간, 그 위험을 알아차린 것이다. 현민이 날아오르는 것과 동시에 끝이 날카로운 대지의 창이 그의 발끝을 쫓아갔다. 푸푸푸푹! "으악!" "크억!" "컥?!" 미리 뛰었던 현민은 그것으로부터 안전했지만, 현민만큼 뛰어난 조력자가 없는 다른 유저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현민이 가지고 있는 대지의 심판처럼 넓은 범위에서 솟아난 대지의 창은 원 안에 있던 유저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유저들까지도 전부 죽였다.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사뿐. 공중에 떠 있떤 현민은 허리를 틀며 한 바퀴 회전해 높이 솟아 있는 대지의 창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고양이 같은 몸놀림이었다. "마법. 그것도 나를 흉내 낸 마법이라......" 현미은 4개의 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살폈다. 루인아츠로 인해 상대방의 능력과 직업까지 알아볼 수 있으니, 누군지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역시나'라고 해야 할지 현민도 알고 있는 존재'들'이 있었다. "...현자 길드." 근처에 채리플랑은 보이지 않았지만, 수만은 되어 보이는 마법사들이 현민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등장이었다. 그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행동했을지 뻔히 보였기 때문에 현미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즐거워서 웃는것이 아니라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현자 길드란 곳도 천재들만 모인 것은 아니군요." 파지직! 화륵! 한 줄기의 뇌전과 파이어볼이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으나, 그것들은 현민을 맞히지 못한 채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대지의 창에 올라서 있던 현민이 디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디그란 땅을 파는 마법. 날카롭다고는 하지만 흙으로 이루어진 대지의 창은 현민의 마법으로 인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자신을 중심으로 발밑의 땅을 없앴기 때문에 특별한 공식을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탁. 주변에 있는 대지의 창을 없애고 바닥에 내려서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마법의 폭풍이 현민을 향해 강하게 몰아쳤다. 공격 마법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파이어볼부터 콜 라이트닝, 파이어 스톰, 토네이도, 인탱글 등 그 밖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마법들이 현민을 노렸다. 하지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현민이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확실한 방어부터 만들었다. "수중 호흡(2서클), 수중 감옥(3서클), 큐어 포이즌(2서클), 절대 방어(3서클), 대지의 손(3서클), 속성 변화(3서클), 절대 방어, 절대 방어, 스핀(2서클), 스핀, 가속(2서클), 헤이스트(4서클). 현민은 연속기라는 게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 주었다. 가장 먼저 날아온 파이어볼들은 현민의 수중 감옥에 부딪히며 맥없이 사라져 버렸다. 곧이어 절대 방어가 현민의 수중 감옥을 감쌌고, 파이어 스톰이 그 위를 덮쳤다. 현민의 마법은 계속해서 이어지며 거대한 대지의 손이 절대 방어의 위를 덮었고, 단단하게 변한 대지의 손 위를 거대해진 나무 넝쿨이 다시 한 번 감쌌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사용된 2개의 절대 방어는 그 위를 빠르게 회전하며 다가오는 마법들을 튕겨 내거나 막아냈다. 약간은 무식하다 할 정도의 방어였다. 하지만 현민이 이렇게 방어를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들의 공격을 그대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마법을 뚫고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는 현민은 현자 길드의 마법사가 있는 최대의 범위에 마법의 공간을 사용하였다. 마법의 공간(5서클) 지속성:3분 능력:범위 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경우 이 공간 안에서만 발현되며, 단일 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경우 이 공간 전체에서 발현된다. 현재 단계:6 주문:새롭게 이어진 하나의 공간에서...... 현민을 향하던 마법의 폭풍이 전쟁터 전체로 확산되었다. 곧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모든 유저들이 짜릿한 뇌전에 치명상을 입었다. 뜨거운 바람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고, 차디찬 눈보라와 우박이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흔들리는 대지와 솟아나는 대지의 창이 혼란에 빠져 있는 유저들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그것은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마법을 사용함과 동시에 그 효과가 똑같이 일어나다 보니 가장 무방비한 상태로 공격을 당한 존재가 마법사였다. 그들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현민에게는 다행이었다. 하찮은 마법이었다면 이런 방법은 사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의 마법 효과가 없는 것을 확인한 현민은 마법의 공간을 취소하며 블링크를 사용했다. 왼쪽 손등에서부터 등까지가 뜨거워지며 그가 있던 장소가 바뀌었다. 어둠만이 존재했던 곳에 빛이 생겨나며 현민의 눈앞으로 한 명의 유저가 보였다. 마법의 폭풍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마법사 중 한 명이었다. "정말 현자 길드의 마법사가 맞으세요?" 현민은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자리에서 들어올렸다. 육체적인 능력이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마법사는 루인아츠로 강해진 현민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법을 쓴다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말이다. 채리플랑은 무언(無言)으로 마법 사용하는 법을 길드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현민에게는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채리플랑에게 제 뜻은 충분히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우우울! 우웁!! 우우우읍!!" 입이 막혀 있는 관계로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으나, 현민은 그의 말을 이해했는지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이런, 이런~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시나요? 지금 당장 죽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당신이에요." 콰직! 현민은 더 이상 물어볼 가치도 없다는 듯이 잡고 있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머리를 잃어버린 그의 몸은 기댈 곳을 찾지 못한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뭐, 당신 말고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니까요." 현민의 왼쪽 팔 부분이 또다시 뜨거워지더니 그의 몸은 또 다른 장소로 이동되었다. "블링...쿱!" 현민의 등장을 눈치 챈 마법사가 서둘러 도망가려고 했으나, 현민의 손이 먼저 그의 입을 막았다. "자, 당신은 말해주시겠죠?" "우웁?!" "저는 채리플랑에게 제 뜻을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던 거죠?" "우웁! 우우웁 우웁?!" 대충 '내가 말할 것 같아?!'라는 의미였다. 현민은 그 대답을 들으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저를 너무 얕보시는 것 같네요." 가늘게 떠진 4개의 눈동자가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이미 당신의 마음을 읽었으니까요." 흠칫! 현민의 손에 잡혀 있던 유저는 한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현민의 눈빛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못 믿으시나요?" "......" "그렇군요, 그럼 조금 전의 질문에 대해 당신이 생각했던 것을 말해드리죠."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으나 현민은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상당히 넓은 범위에 마법이 펼쳐졌기 때문에 다른 유저들이 오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저한테 원한을 가지고 있는 루얀이라는 마법사가 다른 마법사들을 선동하여 부길드마스터인 하얀하늘에게 항의했고, 그들로부터 폭동의 위험을 느낀 느녀가 채리플랑에게 허락을 요구했다. 틀린가요?" 덜덜덜. 현민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그의 떨림이 심해졌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질문을 확인할 때에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현민의 말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었으나, 정말로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엇비슷한 내용이었다. 천재라 불리고 천재로서 생황해온 그에게 이 같은 일은 처음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잇는 초능력자도 있다지만 그러한 사람이 실제로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었기에 두려웠다. 눈앞에 있는 존재가 같은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틀렸어요." 그를 들고 있던 현민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기다란 은빛 머리카락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찰랑거렸다. "당신들의 눈에만 악마로 '보일' 뿐, 내가 악마인 것은 아니에요, 나는 거울. 당신들을 비추는 거울이랍니다." 그를 바라보고 있던 현민의 눈이 곡선을 그렸다. "이제 알겠죠? 진정한 '악마'가 누구인지." 콰득! 또 한 명의 유저를 그렇게 보내버린 현민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음속으로 루인아츠가 질문했기 때문이다. 루인아츠도 마음을 읽는 듯한 현민의 능력을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니." -그럼 어떻게 된 거예요?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놈 싸가지가 보통이 아니었거든." -...... 루인아츠는 겨우 그런 이유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는 현민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을 만들어준 부모였지만, 루인아츠도 현민을 이해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런데 계속 있을... 어머니! "마법의 공간." 현민은 루인아츠가 무엇 때문에 경고를 보낸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외침과 동시에 마법의 공간을 사용했다. 가로, 세로, 높이 10미터의 단순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마법의 공간이 현민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생겨났다. 모양이 단순한 만큼 그것이 만들어지는 속도도 빨랐다. 팟! 현민이 만든 공간으로 하얀색의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뭐였죠? "누가 내 근처로 블링크를 사용한 모양이야." -그런데 어째서? 현민은 루인아츠를 위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마법의 공간이 어떤 마법인지는 조금 전에 확인했지? 하나였던 몸이 마법의 공간 안에서 전부 나올 수는 없다 보니, 마법의 공간 전부로 흩어진 거야. 누구인지는 몰라도 재수더럽게 없는 거지." 그 누구가 루얀인 것을 알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너무나 뻔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자 길드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루얀치고는 어이없는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계속 있으실 생각이세요? "응? 응. 이 원이 중심이니깐." 현민은 자신의 밭밑에 있는 동그란 원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동그랗게 파여 있는 땅은 단순히 선을 긋자고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효과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현민이 마법을 사용할 리가 없었다. -무슨 중심이요? 루인아츠가 혹시나 하고 물어봤으나, 현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좀 더 키울 뿐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비~ 밀. 일단 많은 유저가 모이기를 기다리자고." 하지만 현민이 기다리는 유저들은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에 있는 유저들도 현민의 근처만 머물고 있을 뿐 절대로 내려오지 않았다. 지루해진 현민이 참다못해 루인아츠에게 물었다. "왜 안 오지?" -조금 전 어머니의 마법으로 인해 상당한 범위가 초토화 되었으니까요. 아마도 눈치를 보고 있는 거겠죠. 정확히는 현민의 마법이 아니라 현자 길드의 마법 때문이었으나, 유저들이 그러한 것을 알 리 없었다. 조금 전에 보았던 마법 폭풍의 파괴력이 상당했기에 그져 알아서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한심하다니간, 남들이 덤비면 같이 덤비고, 남드리 가만히 있으면 눈치나 보고 있으니......, 여자는 없으니깐 뭐라고 할 수 없다지만, 남자들은 거시기를 뜯어버려야 해."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남의 거시기를 뜯으라 마라 참견하는 현민이었다. -어머니 말슴히 들렸나 봐요, 저기 거시기 떼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몰려오네요. 루인아츠의 말에 따라 주변을 둘러보니 일련의 기마병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로 볼 때 전문가, 또는 군인인 것 같았다. 현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이 오는데 앉아서 맞이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푸르릉! 얼추 3천은 되어 보이는 기마병들이 현민을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쌌다. 그들 하나하나와 현민의 거리는 대략 300미터. 움직임이 빠른 그들에게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다. "차징(Charging)을 하려는 모양이군요." -어머니, 위에도 있어요. "응?" 하늘로 시선을 돌린 현민은 흰색의 페가수스들이 지상의 기마병들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설마 이러한 방법으로 포위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현민이었다. "이거 재미있겠는데요?" 스윽. 현민은 언제든 그들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온몸을 긴장시키며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마법을 계산했다. 굳이 복잡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마법. 그것이 현민의 방식이었다. "자, 준비는 끝났답니다. 어서오세요." 현민의 말이 들렸음인가, 지상에 대기하고 있던 기마병들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처음에는 그렇게 빠르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으나, 그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들의 움직임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얼마나 빠른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루인아츠가 아너있다면 원인도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스륵, 팟! 현민이 부드러운 동작으로 한 명의 기마병을 피하자 다른 방향에서 또 다른 기마병이 그런 현민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몸을 멈추며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현민의 등골은 서늘해졌다. 마치 어느 한 방향으로 피하도록 유인하는 듯한 그들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세 번째 공격을 피하고 네 번째 공격마저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현민의 이러한 생각은 확실해졌다. 그들은 자신이 특정한 방향으로 피하도록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이는 숫자가 많아질수록 현민의 움직임도 더욱 빨라졌다. 스윽, 스륵. 하늘에 있던 페가수스들까지 공격에 가세하면서 현민의 주변으로 흰색과 검은색의 바람이 몰아쳤으나,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그들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공격하듯이 현민은 현민의 방식대로 회피했기 때문이다. 현민은 아무리 위험해도 절대 세 걸을을 벗어나지 않았다. 발록이 가르쳐 준 방법이다. 적은 움직임으로 피하기 대문에 회피 후 만들어지는 빈틈이 적고, 다음의 공격에 대치하기도 쉬웠다. -어머니는 정말 괴물이에요. 루인아츠는 점점 매끄러워지는 현민의 움직임을 보며 감탄했다. 현민은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한 현민은 공격을 시작했다. "시작한다." -네! 스륵! 콰드드드득! 쿵! 현민의 기다란 꼬리가 가벼운 출렁거림을 보이자, 가가이 있던 말의 다리가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다리를 잃어버린 말은 기수와 함께 바닥으로 파고들었고, 다른 말에 부딪치며 처참한 상황을 만들었다. 현민이 피하던 지역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그들이 돌진하는 자리도 한정되어 하나의 말이 쓰러짐으로써 연속적인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현민은 쓰러져 있는 말과 기수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대지의 심판." 푸푸푹! 땅에서 솟아난 대지의 창들이 그들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현민이 만든 대지의 창은 솟아난 자리에서 또다시 솟아나며 대상을 처참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현민 주변의 땅이 엉망으로 변하면서 더 이상의 돌진을 할 수 없게 된 지상의 기마병들은 처음의 거리를 유지하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공중의 기마병들도 그들을 따라 움직임을 멈추었다. "누구 맘대로 쉬는 거죠? 절대 방어, 절대 방어. 절대 방어... Cobweb of Queen." 현민은 하늘 높은 곳에 절대 방어를 만들고 그것들을 여왕의 거미줄로 이으며 거대한 그물을 만들었다. 허공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절대 방어는 빠르게 떨어져 내렸고, 그 끝에 매달린 여왕의 거미줄이 하늘에 있던 페가수스를 감쌌다. 페가수스는 끈적거리는 여왕의 거미줄을 벗어나지 못했다. 쿠웅! 한데 어우러진 기마병들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뻔히 보지 않아도 어떠한 상태인지가 예상됐다. 현민은 남아 있는 유저들에게 손짓했으나, 그들은 더 이상 현민의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렇게 어이없게 당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자가 배짱이 없어." -그러게요. 전부 뜯어버려야 해요. 현민에게 물들어가고 있는 루인아츠였다. 일단의 무리가 움직임을 멈추자 이번에는 다른 무리가 현민을 향해 다가왔다. 얼핏 보아도 수천, 차림새가 굉장히 지저분해 보이는 유저들이었다. 현민은 설마 하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거 설마 개방?" 전쟁 중에도 흔히 볼 수 없었던 무림의 존재들이 말 그대로 떼거리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그 선두는 당연 개방이었고 말이다. 그들은 여왕의 거미줄에 흙을 뿌리며 조금씩 다가왔다. 아마도 거미줄의 점성을 없애려는 것 같았다. 나름대로 신선한 방밥이었지만, 허리를 쪼그리고 열심히 흙을 뿌리는 그들의 모습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현민은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림의 합격진이 굉장하다고 하던데, 부디 그 소문이 진실이기를 바랍니다." 살랑~ "안 그러면 여기서 죽는 존재들은 당신들이 될 테니까요." 핐! 현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살랑거리던 꼬리가 빠르게 움직였다. 아무것도 없던 현민의 꼬리에는 어느새 16명의 유저가 꿰어 있었다. 온몸을 검은색으로 도배하고 있는 차림새로 보아 무림에서 암살자로 활동하고 있는 유저들 같았다. 그들을 시작으로 하여 현민과 암살자들의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또르륵, 펑! 그들 중 한 명의 손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한눈에 보아도 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검은색의 연기가 현민의 주변을 에워쌌다. 잠시 호흡을 멈춘 현민은 무언(無言)으로 에어 브레스(2서클)를 사용했다.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독안개가 현민의 숨결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는 사이 현민의 틈을 노리고 유저들의 공격이 날아왔다. 도대체 몇 명이나 숨어 있는 것인지, 현민의 주변으로 요란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은 스킬조차 사용하지 않으며 현민을 노렸다. "방심하도록 하기 위해서? 아니면 본래 직업이 암살자인 건가?" 현민은 그것에 이상함을 느끼며 잔뜩 긴장했다. 전자든 후자든, 어느 쪽이든 위험했다. 현민은 최대한 빠르게 주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지의 심판, Cobweb of Queen, 인챈트 아이스." 처음 기마병들에게 사용했던 것의 배가 되는 범위까지 대지의 창이 솟아났다. 여왕의 거미줄이 그 위를 덮었고, 그곳에 있는 거미줄에 얼음의 속성이 추가되었다. 3개의 마법 모두 같은 범위였기 때문에 한 번의 계산으로 끝낼 수 있었다. 현민의 마법으로 인해 움직일 공간을 제한당한 암살자 유저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민의 거미줄에 묶인 채 꽁꽁 얼어가고 있었다. -6시, 그리고 2시 방향! 채챙! 쾅-! 뒤에서 다가오던 2개의 단검은 별다른 이상 없이 막아낼 수 있었으나, 정면의 화살을 막으면서 현민의 두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충격을 분산시키기 위해 일부러 몸을 띄운 것이다. 화살은 몸을 띄우지 않았다면 관통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야?" 지금 같은 위력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위험하다고 판단한 현민이 루인아츠에게 위치를 물었다. 루인아츠는 모든 감각을 집중하며 화살의 주인을 찾아나갔다. 활을 쏘고 난 직후 이동하고 있어서 찾아내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10시 방향에 있어요, 무슨 방법을 사용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동속도가 마법만큼이나 빨라요. 현민은 루인아츠의 설명을 들으며 긴장했다. 루인아츠가 마법만큼 빠르다고 한다면 그의 이동 수준은 블링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마법이거나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먼저 처리하고 싶기는 한데, 지금 당장은 안 될 것 같아." 주변에 있던 암살자들은 전부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다가온 무림 유저들로 인해 지금 당장 움직일 만한 여유가 없었다. 저렇게 빠른 움직임이라면 쫓아 가는 것도 일일진대, 중간에 방해가 들어온다면 놓칠 것은 분명했다. 차라리 주변의 유저들을 정리하고 그를 쫓아가는게 나았다. 이미 상당수의 유저들이 여왕의 거미줄을 없애며 다가와 있었다. 한눈에 거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지저분한 유저들이 현민을 둘러쌌다. 그들의 손에는 60센티 정도 되어 보이는 단봉이 들려 있었다. "개진(開陳)!" "하!" 쿵! 수천 명이 동시에 기합을 내뱉으며 발을 구르자 커다란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그 누구보다도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현민은 대지의 심판 위에 올라서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상당한 거리에서부터 현민이 만들어놓은 대지의 심판을 부수며 다가왔다. 중간에 암살자들이 걸려 있다고 해서 몽둥이를 멈추지는 않았다. 암살자가 있다면 있는 데로 암살자와 함께 대지의 심판을 부쉈다. 그들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졌지만 현민은 자신의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저런 게 진법이란 건가?" 생전 처음으로 진법을 보게 된 현민은 그 장엄함에 할 말을 잃었다. 무림에서 진법, 진법 하기에 어느 정도인가 봤더니, 이건 정말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한 사람만 공격하는 것도 아니었고, 여러 사람이 공격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규칙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상대하기 까다로움엔 분명했다. 현민은 그들과 부딪치기도 전에 온몸이 긴장하고 잇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발록이 말했던 '적당한 긴장은 몸을 더욱 강하게 해준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원 안에 들어오는 순간 움직일 거야. 혹시라도 내가 놓치는 존재가 있다면 알려 줘." -네. 현민은 어서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들과 부딪쳐 보고 싶었다. 자신이 그들의 진법을 부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7시 방향. 쾅! 루인아츠가 원 안에 들어온 유저의 위치를 말하는 순간, 커다란 폭음과 함께 현민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는 공간을 건너뛰는 듯한 움직임으로 유저의 코앞에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등장이었으나 유저는 당황하지 않고 현민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 혼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유저들도 현민을 공격했다. 바깥쪽에 있던 유저들은 자연스런 동작으로 현민의 뒤를 막았고, 또 다른 유저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현민이 나타나고 포위망이 만들어지기까지 순식간이었다. 콰콰쾅! 쿠득! 공격을 하기도 전, 순식간에 세 방을 얻어맞은 현민은 두 발이 땅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의 손에 있는 것은 나무막대기가 분명할진대, 마치 쇠몽둥이에라도 맞은 듯 묵직한 느낌이 전해졌다. -괜찮으세요? "아직... 은." 콰콰콰콰콰쾅!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민은 지금 복날 개 맞듯이 얻어맞고 있었다. 연속적으로 쏟아지는 몽둥이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몸에 그려 놓은 마법진이 아니었다면 진작 무너졌을 것이다. 스륵. 하지만 계속 당하고 있을 현민이 아니다. 현민은 날아오는 몽둥이를 하나 둘씩 빗겨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수가 많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몸에 맞는 막대기의 수가 줄어들었다. 어느 정도 상황에 여유가 생기자 이제는 막으면서 피하기까지 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넓지 않았지만, 몇 걸음의 공간이라면 유저들의 공격을 피하기에 충분했다. 현민의 몸이 자연스럽게 회전하면서 특유의 동작이 만들어졌다. 유저들은 공격했고, 현민은 방어했다. 그들의 상황은 한참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공격과 방어 하나하나가 아슬아슬하여 보고 있는 데 질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유저들이 보는 시선이고, 루인아츠는 현민의 움직임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공격할 기회가 있는데도 공격하지 않는 것이 의아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현민은 그들을 상대로 몸놀림을 연습하고 있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점점 능숙해져 가는 현민의 움직임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분들이 불쌍하게 느껴지네요. "무슨 소리, 당하고 있는 건 나라고." 태탱! 콰콰쾅! 2개의 몽둥이가 현민의 손을 타고 미끄러지며 다른 유저의 몽둥이와 부딪쳤고, 또 다른 몽둥이는 현민의 몸을 스쳐지나가며 빗나가버렸다. 누가 봐도 당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탱~ 현민은 다가오는 몽둥이를 튕겨 내고 공격하던 유저의 손목을 잡아챘다. 잡혀 있는 유저뿐만 아니라 주변의 유저들도 현민의 손을 풀려고 했으나, 현민이 먼저 그 손목을 잡아당기며 진각을 밟았다. 진각과 동시에 내밀어진 현민의 주먹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펑!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상체가 사라졌다. "언제까지 당하고 있을 수만도 없지." 현민은 그를 시작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더 이상의 장난은 없었다. 막고, 피하고, 죽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주변에 시체가 쌓여 갔다. 현미은 움직이지 않고 그들이 몰려오다 보니 시체의 높이만 점점 높아진 것이다. 현민은 지금도 유저의 시체를 밟으며 다른 존재들을 죽이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막지 못해." 콰득! 쾅! 서걱. 스악! "아악!" "컥!" "젠장!" 현민은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부쉈고, 몸에 닿는 모든 것을 찢어발겼다. 꼬리를 쉼 없이 움직이며 모든 것을 베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도 유저들의 포위망은 풀리지 않았지만, 현민의 말처럼 그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시끄러운 비명 소리만 울려 퍼졌다. "나는 어릿광대." 현민의 동작이 한층 더 빨라지며 그의 이동 범위가 넓어졌다. 이제는 유저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먼저 유저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부딪친다는 사실에 있어서 달라진 것은 없지만, 현민이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포위망의 의미가 사라져 버렸다. 유저들은 그런 현민은 막기 위해서 더욱 복잡하고 단단한 포위망을 만들었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현민은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말이다. 현미은 자신이 왜 싸우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잊고 있었기에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기 위해 떠올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사람들......' -와아~ -이놈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타인을 배려하고 내 친인들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그런 존재들!' -피 좀 얻어갈 수 있을까요? 스릉. -주겠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싸울아비의 뜻입니다.' 그래. 그것이 내 생각이지. 그렇기에 싸우고 있는 거야.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모두가 안전해지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현민은 외쳤다. "내가 바로 싸울아비 룬이다-!" 콰앙! 그의 외침과 함께 루인아츠의 기운이 드러나면서 가까이 있던 유저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현민의 살기만큼은 아니지만 루인아츠의 기운도 사람을 날려 버릴 정도의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현민의 주변에 남아 있는 유저가 없어지면서 그들의 싸움은 잠시 중단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방의 존재들이 현민과 대등하게 싸우는 것을 보고, 혹시나 하는 기회를 노리며 다가와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모였다고 생각한 현민은 준비해뒀던 건을 시작했다. 조용한 전쟁터에 기도하는 듯한 현민의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하늘의 눈으로 대지를 바라보는 진실된 존재여, 모든 죄를 판단하는 것에는 기준이란 것이 존재치 아니하나, 나의 존재가 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타인의 죄를 평(評)하오니... 그 죄의 크기를 결정하여 여기에 심판을 내리소서!" 쿠르릉-!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면서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구름이 그들의 머리 위를 덮었다. 너무나 낮익어 보이는 상황. 모두의 머릿속에 현민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마법이 떠올랐다. 현민은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하늘을 가리켰다. "천..." "으아악! 피해!" "도,도망가야 돼-!" 뒤늦게 기억해낸 유저들이 현민으로부터 떨어지기 위해 발악했으나, 그의 마법으로부터 도망가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벌." 현민의 손이 땅으로 내려오며 온 세상이 빛으로 물들었다. 빛이 사라지고 시력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루인아츠는 감탄사부터 내뱉었다. 유저들로 가득했던 땅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거대한 벼락이 떨어진 것인지, 루인아츠의 시야로도 유저가 보이지 않았다. -굉장하군요. 어머니가 준비했던 게 이것인가요? "응. 내가 가지고 있는 최강의 마법. 준비하는 데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일단 사용하면 막을 수 있는 존재가 드물지." 이번의 마법은 정말로 많은 신경을 쏟아 부은 것인지 범위도 범위이지만, 그 위력이 딱 적당할 정도였다. 이전처럼 땅까지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땅 위에 있던 것들만, 유저들만 사라진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제 어쩌실 생각이세요? "아직 전쟁은 끝난 게 아니야.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계속해야지." 현미은 그 말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아직가지 특별한 문제는 없지?" "응. 이렇게만 가준다면 좋겠는데......" 천벌이란 마법으로 일대의 유저를 전부 죽이고 다른 장소로 이동한 현민은 조금 전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많은 유저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기에 마법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루인아츠의 몸을 이용하여 그들을 상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림이 없는 현민의 모습은 정말로 마법사인지가 의심스러웠다. "아! 이번에는 어디죠?" "화산파입니다." 한참 싸우고 있던 현민의 발걸음이 또다시 묶여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무림 유저였다. 인원수는 조금 전 개방에 비해 반의반도 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이전의 개방과 다르지 않았다. 만만치 않음이 분명했다. 그들의 검진에 갇혀 있는 현민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화산의 검이 화려하고 변칙적이다 보니 그들의 검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약간을 아슬아슬한 모습이었으나, 루인아츠가 있는 이상 커다란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저들의 검진은 어떤 능력이죠?" 사람들로 이루어진 진에는 각각의 문파마다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소림의 항마진 같은 경우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에게 5배의 데미지를 주고, 조금 전 보았던 개방의 타구진은 근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페튜니아는 그것을 물어본 것이다. "내력의 상승입니다. 유저 개인의 기본 내공에 따라서 최소 3배, 최대 5배까지 늘어납니다." 운영자의 대답을 들은 페튜니아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떠올랐다. 내력이 상승한다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림에서 내공은 일종의 곱하기 개념으로 본래의 능력이 어떠냐에 따라 커다란 차이를 나타내기도 했다. 힘이 100인 유저가 1갑자의 내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200의 힘과 동일한 능력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내력은 어느 한곳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니, 현민을 상대하고 있는 유저는 평소보다 몇 배 더 강한 상태라고 보는 게 옳았다. "하지만....." 화면 속의 현민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유저들의 검을 차례차례 빗겨 냈다. 처음에는 하나 둘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많아졌다. 이전의 구타진과 같은 모습이다. 그다음 몸을 움직이는 것까지도 차이가 없었으나, 현민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조금 더 발전하여 그들의 검을 흉내 내고 있었다. 꼬리를 뻣뻣이 세운 채 그것을 검 삼아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했다. 내력이란 것은 담겨 있지 않았지만, 육체적인 능력으로 그것을 커버했다. "그라면 이길 수 있어." 그녀는 현민을 믿었다. 채채채채챙! "이제 대충 알 것 같아." -어머니에겐 이게 대충인가요? 루인아츠는 현민의 손에서 움직이는 기다란 꼬리를 보며 어이없어 했다. 특별한 이펙트나 화려한 효과는 담겨 있지 않았지만, 현민의 검은 그들과 똑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굳이 검만이 아니었다. 그의 몸도 유저들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며 그들의 속으로 녹아들어가고 있었다. 진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진을 이루는 존재가 되면서 유저들의 검이 꼬이기 시작했다.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진인데, 그것을 억지로 비틀어 진을 이루고 있는 존재를 해(害)하려 하니 진 전체가 삐걱거린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현민이 날뛰면서 그것은 더욱 심해졌다. 현민 주변뿐만 아니라, 진에 있던 모든 유저가 자신의 검을 멈추지 못하고 근처에 있던 동료를 공격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속담을 몸으로 보여 주고 있는 현민이었다. "아하하하! 뭐 하는 거죠? 나를 죽이려 했던 게 아닌가요?" 채챙! 현민의 말에 분노한 유저들이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정작 현민에게 닿은 검은 2개를 넘지 않았다.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혀민이 진에서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공격했기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오히려 그들 자신이었다. 동료의 검에 몸을 던지거나, 동료의 몸에 검이 꽂혔다. 더 이상 진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해(解)!" 파파팟! 그들은 이루고 있던 진을 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현민을 대상으로 하는 진을 다시 이룰 생각이었다. 그런 유저들을 바라보고 있는 현민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만화 영화 속의 악당처럼 당신들이 만들기를 기다려 줄 것 같나요? 진실된 거짓." 파삭! 돌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현민의 신형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유저들의 움직임이 하나 둘씩 멈추기 시작했고, 더 이상 움직이는 유저가 없을 때 현민의 모습이 다시금 나타났다. "나는 마음씨 착한 악당이 아니에요." 촤아아악! 투두두둑. 물풍선이 갑자기 터진 것처럼 하얀색의 피가 쏟아져 내리며 유저들의 몸이 잘게 조각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을 이루고 있던 그들이라면 현민의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겠지만, 진이 풀린 지금은 현민의 모습을 눈으로 쫓지도 못했다. 진을 이루고 있을 때는 고수일지 몰라도, 그들의 근본은 허접에 불과했다. 순식간에 그들을 처리한 현민은 또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진실된 거짓까지 사용했으니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유저를 죽여야 했다. 붉은색의 바람이 그곳에 몰아쳤다. "후우, 후우, 후우......" 5분이란 시간이 지나고 모습을 드러낸 현민은 거칠어진 호흡부터 가다듬었다. 전쟁을 시작한 지도 오래되다 보니 슬슬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자, 다음은 누구인가요." 쿠웅! "큭!" 오만하게 서 있던 현민은 갑자기 느껴지는 거대한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새로운 존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무림 쪽 우저였다. 그들에게서는 현민의 살기와 비슷한 검은색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현민의 기운처럼 섬뜩함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쾌한 감정을 만드는 기운이었다. 현민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소속을 알 수 있었다. "마교......" 현민의 생각이 정답인지,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뽑아들었다. 현민을 짓누르고 있던 압력은 더욱 거세졌고, 상태 이상을 알리는 메세지가 현민의 귀에 울렸다. [모든 능력이 50%로 제한됩니다.] 현미은 투덜거렸다. 이 정도의 압력에서 50퍼센트라면 평소의 30퍼센트도 안 될 것이라는 게 현민의 생각이었다. 이대로 죽어줄 수 없는 현민은 루인아츠를 불렀다. 기운에는 기운이었다. "루인아츠." -네. 고오오오-! 그들의 기운만큼이나 거대한 기운이 현민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2개의 기운이 부딪치는 장소에서는 스파크까지 일어났다. 설마 자신들과 대등한 기운을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현민을 둘러싸고 있던 유저들의 얼굴에 일순간 당황이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통제로 빠르게 사라지기는 했으나, 현민은 이미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뒤였다. 씨익. 이 정도면 해볼 만했다. 현민은 처음부터 강하게 나갔다. "진실된 거짓." 스르륵. 파파파팟! 현민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고, 유저들은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았다. 모든 능력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은 어찌 보면 별것 아니었으나, 그 차이는 분명히 거대했다. 평소 100미터를 10초에 뛰던 사람이 20초가 되어서야 골인한다고 생각해보면 그 속도가 얼마나 느려진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민 같은 경우에는 진실된 거짓을 사용하고도 잔상이 남았다는 게 그 증거였다. 채챙! 쾅! 생각보다 느린 움직임 때문에 그들을 벗어나지 못한 현민은 자리에 멈춰서며 그들을 상대했다. 이미 개방과 화산의 진을 경험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수세에 몰리는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진실된 거짓까지 사용한 것치고는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밀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압도하지도 못했다. 이 상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현민이었다. 공격을 당하고 있는 현민부터 공격을 하고 있는 유저들까지 수백 명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으나,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존재는 드물었다. 그들이 있는 곳 바깥쪽으로 많은 유저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만큼 빠르고 위험해 보이는 싸움이었다. 양쪽 다 아무런 피해가 없는 무의미한 싸움도 5분이 되어가며 진실된 거짓이 끝나려 하고 있을 때, 그들의 싸움에 끼어드는 겁 없는 존재가 나타났다.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 누구도 그가 현민에게 다가가기 전까지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힘들어 보이네, 도와줄까?" "뭐?" 푸욱! 현민은 친근한 목소리에 고개도 돌리기 전에 누군가의 손이 가슴을 뚫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현민의 가슴이 아니라, 그를 공격하던 유저의 가슴이었다. 가슴이 꿰뚫린 유저는 더 이상 서 있지 못한 채 바닥으로 쓰러졌고, 그 손의 주인이 얼굴을 드러냈다. 8개의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는 그녀는 미호였다. "하이루~ 방가방가." 미호는 두 손을 죔죔하며 귀엽게 인사했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등장에 현민의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서걱! 쾅! 화르르륵! "뭐야? 갑자기 움직이지 않으면 위험하잖아!" "어이, 놀지 말라고!" 현민이 위험에 빠진 순간, 그를 도와주는 또 다른 존재가 나타났다. 그들 역시 현민이 알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시호, 진혁, 민우... 현민의 친구들이었다. "너희들 어째서?!" 툭. "어째서긴 뭐가 어째서야? 도와주러 온 거지." 가슴을 톡 치는 느낌에 고개를 돌리니 은혜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은혜는 자신의 무기를 들고 그의 옆을 지켰다. 비단 은혜뿐만이 아니었다. 재영, 준호, 현훈, 동길 등 많은 친구들이 갑자기 나타나며 현민의 곁을 둘러쌌다. 현민을 공격하던 유저들은 갑자기 나타난 그들을 보며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이루고 있던 진은 깨진 지 오래였다. 더 이상 방해되는 것이 없다고 판단한 현민은 일단 움직이고 보았다. 그동안의 방해를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마법까지 사용하며 마음껏 날뛰었다. 콰콰콰콰쾅! 현민의 친구들이 합류하면서 전쟁터는 더욱 시끄러워졌다. 현민의 싸움과는 달리 화려한 기술이 난무했다. 확실히 혼자 싸우는 것보다는 여유로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현민의 친구들은 나름 노력하긴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한계가 드러났다.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몇 날 며칠을 싸워본 적이 있는 현민과 달리 그들은 몇 시간밖에 싸워본 적이 없었다. 그런 경험으로 다른 유저와 싸움을 했으니 그들의 체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몬스터보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힘든 것은 당연했다. 서로가 힘들다 보니 그들은 한곳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현민이 그들을 보호했다. 현민은 그들을 감싸고도 남을 정도의 거대한 절대 방어를 만든 후, 그 안에 있던 다른 유저를 순식간에 죽여버렸다. "후아, 후아, 후아......" 무리한 움직임 때문인지 그의 호흡은 매우 거칠어져 있었다. 무언으로 5개의 절대 방어를 더 만들고서야 자리에 주저앉은 현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현민의 친구들은 이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존경스럽다는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하루 동안의 전쟁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기껏 도와주러 와서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었다. 얼마 되지 않아 호흡을 회복할 수 있었던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들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현민이 손을 흔들며 그들을 말렸다. 그들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쉬어, 어중간하게 회복된 상태로 싸우면 더 빨리 지치니깐." 현민은 그렇게 말하며 그들과 자신의 사이에 절대 방어를 만들었다. 그가 나가기 위해서는 바깥쪽의 절대방어를 없애야 하는데, 그냥 나갈 경우 안에서 쉬고 있는 친구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여러 겹의 절대 방어가 그들을 보호했고, 현민은 바깥쪽의 절대 방어를 없앴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저들이 현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현민은 마법으로 그들을 상대했다. 처음은 가슴 정도까지 차오른 수영장(4서클)이었다. 넓은 범위에 퍼져 있는 수영장은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몇몇 존재들은 현민의 아이스 마법을 두려워하여 공중으로 날아올랐으나, 이번에 사용할 마법은 그것이 아니었다. 현민의 손에 만들어진 뇌전 덩어리가 그들의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아아아악-!" "꺄아악!" 현민이 사용한 것은 평범한 라이트닝 마법이 아니었다. 6서클의 체인 라이트닝. 퍼지는 범위는 좁지만 데미지에 있어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뇌전 덩어리는 물속에서 갈라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의 마법으로 인해 상당수의 유저들이 죽어나갔지만, 현민은 마법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죽은 것보다 많은 수의 유저들이 물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민은 정면의 수영장을 향해 인첸트 아이스를 사용했다. 쩌저적! 현민이 만든 물 자체는 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물과 닿아 있는 유저들은 몸은 어떻게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얼어붙었다. 허공으로 뛰어 올랐던 유저들도 결국에는 떨어저 내렸고, 다른 사람들과 마낯ㄴ가지로 얼음 조각이 되어버렸다. 현민은 수영장을 없애며 대지의 심판을 사용했다. 물론 정면의 유저가 아니라 후면의 유저를 향해서였다. 현민에게 기습 공격을 하려던 유저들은 땅에서 솟아나는 대지의 창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하며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운 좋게 피하는 유저도 있었으나, 다음에 이어지는 현민의 마법으로 인하여 결국에는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 "여신의 발걸음."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발이 그 일대를 찍어 눌렀다. 얼어버린 유저들은 부서져 버렸고, 대지의 심판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유저들은 다른 유저들처럼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다. 여신의 발걸음에 눌린 것은 현민과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으나, 현민 같은 경우에는 마법을 사용한 당사자이기에 멀쩡했고, 그의 친구들은 절대 방어와 함께 땅속으로 파고든 상태였다. 마법사란 게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 주는 현민의 모습에 안에서 지켜보던 그의 친구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루인아츠를 뒤집어쓰고 마법을 사용하는 현민의 모습은 확실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악마의 모습이었다. 어째서 현민을 두려워하는 유저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현민의 친구들이 있는 절대 방어를 없애주었다. 조금 더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다가오고 있는 존재 중에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그들이 현민을 무시하고 절대 방어 안으로 들어간다면 친구들은 반항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위험하다면 자신이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밖이 좀 더 안전했다. "조심해. 이번에 오는 유저들 중에는 위험해 보이는 사람도 있어." "응? 어떤?" "FK수가 3만 단위야." "헉!" "와~ 완전 악질이다." 현민은 네 자릿수를 뛰어넘은 지가 오래였지만, 일반 유저에게 3만이라면 확실히 대단한 숫자였다. 그만큼 능력도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기에 현민의 친구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왔다." 팟! 콰앙! 현민의 친구들은 빠르게 흩어졌고, 현민만이 남아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상대가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에 그가 자신만을 주목하도록 만든기 위해서였다. 묵직한 느낌이 전해지면서 현민의 신형은 땅으로 파고들었다. "현민!" "오지 마!" 당황한 미호가 그를 향해 달려가려 했으나, 현민의 다급한 외침이 그녀의 발을 묶었다. 미호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하다 할 수 있는 존재가 그녀였기 때문이다. 현민은 기다란 꼬리로 그의 손목을 잡아챈 후 바닥에 내려쳤다. 본래는 그의 손목을 잘라버릴 생각이었으나, 무엇을 차고 있는지 루인아츠로도 잘리지가 않았다. 쿠드득! 자리에서 일어난 현민은 상대를 노려보았다. 상대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현민을 노려보았다. 현민은 느끼고 있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미호가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군인, 그것도 이전까지와는 비교가 안 되는 분이시군요." "대단하군. 그 주먹질 한 방으로 내 정체를 알아본 건가?" 상대는 감탄하는 표정이었으나, 현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이유가 틀렸기 때문이다. "아저씨한테서 군바리 냄내가 진동을 한답니다. 그것도 최고참만이 풍길 수 있는 기묘한 냄새가......" 그랬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아~'저 사람 군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현민도 처음 맡아보는 군바리의 냄새였다. 평소 비슷한 경험이 있던 것인지 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반드시 죽여주마." "훗! 노력해보세요." 파팟! 쾅~! 두 사람의 신형은 사라지고 시끄러운 소리가 전쟁터를 가득 메웠다. 다른 장소에서도 폭팔하는 소리는 간간이 들렸지만, 그 어떤 소리도 그들이 부딪침보다 크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존재들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둘만의 싸움으로 빠져 들었다. 쾅! 콰콰쾅! 현민은 그와 싸우면서 절실히 느꼈다. 만약 본래의 능력, 진실된 거짓을 사용하지 않고 싸웠다면 절대로 위험했을 것이다. 그는 현민이 자신에게 진실된 거짓을 사용한 것과 같은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싸움 실력 또한 크게 차이가 없었다. 발록 이외에 자신을 이 정도로 몰아붙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내심 놀라고 있는 현민이었다. 챙! 쾅! 그가 착용하고 있는 건틀렛이 평범한 건틀렛은 아닌 모양인지 루인아츠에 부딪쳐도 부서지지 않았다. 단 한 쌍의 건틀렛이었으나, 그 물건이 현민의 싸움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겁에 질린 강아지 같구나.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생각이나?!" 쾅! 현민의 주먹과 그의 주먹이 부딪치며 거대한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이렇게 간간이 대응은 해주고 있었지만, 현민은 그의 말대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가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확실한 기회를 잡아야 했다. 덥석. "자,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그는 현민의 왼손을 잡아채고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자신이 손을 놓지 않는 한 현민은 도망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와 손을 잡고 싸우는 것은 그의 특기이기도 했다. 씨익. 그의 행동에 미소를 보인 현민은 그의 손목을 마주 잡았다. 상대가 다가온다면 자신도 다가가면 그만이다. 콰콰콰콰콰콰쾅! 현민과 그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두 발을 땅에 붙인 채 오로지 오른손만 움직이며 공격을 주고받았다. 묵직한 주먹으로 인해 생명력이 뚝뚝 떨어졌지만. 두 사람은 잡고 있는 손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 쾅! "하악, 하악, 하악......" "겨우 이 정도인가요?" 공격력의 차이는 없었다. 방어력의 차이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체력의 차이가 보인 것도 아니었다. 동등한 조건. 아니, 어찌 보면 현민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었으나, 먼저 무릎을 꿇은 존재는 현민이 아니라 그를 상대하고 있던 군인이었다. "으아아아아~!" 군인은 현민의 도발에 고함을 내지르며 그의 몸을 껴안았다. 루인아츠의 비늘로 인해 온몸에서 피가 흘렀으나, 절대로 양손을 풀지 않았다. "이렇게 된다면 같이 죽을 뿐이다." 현민은 차분히 고개를 흔들었다. "잊으셨어요? 저한테는 꼬리도 있답니다." 쉬리릭! 순식간에 움직인 현민의 꼬리는 방심하고 있던 그의 몸을 강하게 휘말았다. 군인의 두 손은 본능적으로 목을 조르는 현민의 꼬리를 붙잡았고, 자유의 몸이 된 현민은 그의 신형을 들어올렸다. "컥! 커컥!" 버둥버둥. 그는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고통을 참지 못하고 보기흉하게 발버둥 쳤다. "목도 안 잘릴까요?" "아, 안 돼!" 스팟! 털썩! 머리를 잃어버린 그의 몸은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현미은 꼬리에 묻은 피를 털며 그를 향해 사과했다. "미안해요. 저 반칙 쓰고 있었어요." 현민이 쓰러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그린 마법진 중에 생명력을 흡수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은 현민에게 맞아서 깎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맞아서 깎이는 것보다 현민이 흡수하는 양이 훨씬 많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그를 죽일 수 있었던 현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죽어 있는 친구는 없었다. 모두들 고생은 하고 있지만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다. 현민은 주변의 유저를 상대하기보다 그들부터 도와줬다. 스팟! 챙! "조심." "고마워." 서걱! "다른 애들이랑 붙어." "응." 이번에는 나름대로 요령을 부렸기에 좀 더 오래 싸울 수 있었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채 한 시간이 되기 전에 그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현민은 그들을 모이게 하고 다시 한 번 쉼터를 만들어주려고 했다. 그때 그들을 도와주는 또 다른 존재가 나타났다. 어디선가 날아온 여러 대의 화살이 현민을 적대시하는 유저만 정확히 노리며 그들의 머리에 박혔다. 단 한 대도 빗나가는 화살이 없었다. 현민의 일대가 순식간에 정리되면서 그들의 싸움은 잠시 멈춰버렸다. 현민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뜻밖의 존재가 있었다. "세피로스? 세피로스!" 현민은 빠르게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 갑작스러운 현민의 행동에 당황하기는 했으나, 세피로스도 하나 남은 팔로 그런 현민을 안아주었다. 현민의 친구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나타난 그가 누구고, 현민이 왜 저렇게 좋아 하는지가 궁금했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미안하다. 마을을 위해 네가 건네준 무기를 다른 존재에게 바쳤다." "괜찮아요. 그게 내가 바라본 다크 엘프니까요." 현민은 알고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무기를 준 것은 그들 스스로를 지키게 하기 위한 마음도 있었지만, 적이 거대할 경우 타협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어제는 그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의심하여 폭주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오신 거예요? 여기까지 오는 것도 상당히 힘들었을 텐데." 세피로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 그가 바라본 하늘 위에는 수천 명의 마녀들이 빗자루를 타고 있었다. 린은 하늘에서 내려와 현민의 곁에 섰다. "로로 아저씨네는 텔레포트가 불가능해서 올 수 없었어,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대." "할아버지도 참." 현민은 드워프 할아버지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생생했기 때문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마 얼굴이 벌겋게 변한 채 짧은 다리로 통통 뛰었을 것이다. "루나, 우리만 믿어! 이 땅에 있는 존재들만 죽이면 되는 거지?" "귀염둥이를 위해서라는데 이 정도야 환영이지." "스트레...아니, 루나를 풀기 위해서!" 너무나 속보이는 표정들이었으나, 현민은 고마웠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서 이곳에 왔든 그 결과가 자신을 위한 것임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다크 엘프들이 아니더라도 눈앞의 마녀들만 있따면 이번의 전쟁은 시간문제였다. 스르륵. 현민은 상체를 감싸고 있던 루인아츠를 전투 형태로 바꾸며 어릿광대 가면을 착용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딸랑~ 12권에 계속 싸울아비 룬 12권 차례 제 115장 최강의 파트너 제 116장 그들의 실력 제 117장 메테오 제 118장 네크로맨서 제 119장 너를 비추는 모습 제 120장 계약의 조건은? 제 121장 샨의 죽음 제 122장 신(神) 제 123장 생일 에필로그 제 115장 최강의 파트너 다크 엘프뿐만 아니라 마녀들까지 나타났으니 현민으로서는 거칠 것이 없었다. 어설프게 흉내(?) 내는 자신이 이 정도이니 그녀들의 본 실력이라면 이 정도 전쟁터쯤은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됬다. 현민은 발걸음을 돌려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들은 이만 돌아가줘." "뭐?" 갑작스러운 현민의 말에 친구들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비록 상당수의 NPC들이 도와주러 왔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이 돌아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이 많으면 유리한 것이 당연했다. 그들과 있으면 이전의 성격으로 돌아가는 현민이었지만, 그의 생각만큼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현민의 친구들은 그의 생각을 쉽사리 짐작하지 못했다. 현민은 머뭇거리고 있는 그들을 보며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만약 끝까지 남는다면 나는 내 손으로 너희들을 죽여야해." 흠칫!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현민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이유였다. 현민의 친구들인 만큼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어째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미호였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그를 발견하고 그가 변하지 않았다고 믿었기 때문 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앞까지 다가간 현민은 두 눈을 마주하며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내가 싸워야 하는 존재들이 모든 '유저'이기 때문이야. 너희들이 유저인 이상 아무리 친구라 해도 넘어갈 수는 없어."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현민에게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이 전쟁터에 현민 이외의 유저가 살아 있다면 그동안 쌓아온 잔인한 이미지 가 무너질 수 있었다. NPC들을 위해 움직이며 유저들에게 자비가 없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민이었다. 만일 예외를 둔다면 그동안 두려 워하던 마음에 틈이 생길 것이다. 예외를 둠으로써 틈을 만들기보다는 틈을 없애기 위해서 예외를 없애야 했다. "난 변하지 않았어." "너 벼..." 그녀의 질문보다 현민의 대답이 먼저 나왔다. "내가 변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그 누구보다도 '이곳'을 게임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야. 게임이기 때문에 '가면'을 쓰고 있 는 거지." 현민은 손가락을 세우며 자신의 가면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물리적인 것이었으나, 그가 가리키고자 하는 것이 눈에 보 이는 가면이 아니라는 것은 그들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익명성'이었다. 현민은 자신이 『싸울아비』 속에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면이 바뀌지는 않는 거냐?" 현민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이해한 시호가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 너희들만 있었다면 가면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겠지." 스륵. 현민은 미호를 통과하듯 스쳐 지나며 시호의 앞까지 순식간에 다가갔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너희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 현민의 말을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들이 있는 바깥쪽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현민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NP C들 덕분에 안전한 것일 뿐,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유저들이 존재하는 이상 나는 '가면'을 쓰고 있을 수밖에 없어. 이제는 내 상징이나 다름없는 거니깐." "하지만...!" 현민은 시호의 등 뒤로 돌아가 그의 목을 껴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걱정해주는 건 고마워. 하지만 이제는 인정할 때도 되지 않았어?" 순식간에 뒤를 빼앗긴 시호는 생각했던 말을 내뱉지 못했다. 아무리 방심했다고는 하지만 근접 계열이 아닌 현민의 신형조차 보지 못 했다는 것에 놀랐기 때문이다. 현민은 두 손을 풀며 그의 등을 살며시 밀었다. 그리고 조금 전과 마찬가지의 움직임으로 다른 친구에게 다가갔다. 떨어져서 봤을 때는 조금 빠르다 싶은 움직임이었으나, 직접 겪어보는 현민의 움직임은 그것과 달랐다. 재영은 갑자기 나타나는 현민의 신형에 깜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해." 톡. 그의 이마를 건드린 현민은 또다시 자리를 옮기며 다른 장소, 다른 친구의 앞으로 다가갔다. "나는 어릿광대. 세상을 조롱하며 나 자신을 비웃는 사람이야." 은혜의 앞에 나타난 현민은 그녀의 목을 쓰다듬었고,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당당하게 '싸울아비'라 말할 수 있는 존재지." 그녀 외에도 순식간에 7명의 친구들을 건드리고 지나간 현민은 처음의 자리로 돌아와 미호와 마주했다. "이곳에서의 나는 너희들 전부가 덤벼도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아." 너무나 건방진 말이었지만 현민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레벨이 높은 것도 스탯이 높은 것도 분명할진대, 미호는 갑자기 나타난 현민의 모습을 볼 수도 기척을 느낄 수도 없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지금도 두 눈을 감으면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에 마법까지 사용한다면 현민의 말대로 상처 하나 만들지 못하리라. "우리들의 행동이...." "도움이 되지 않았던 건 아니야." 현민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도와줘서 고마워." 너무나 부드러운 현민의 손길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언뜻 보면 쑥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했다. 퍽! "크윽?!" "그렇게 말하면 화낼 수도 없잖아!" 미호의 발이 현민의 정강이를 강타했다. 충분히 화를 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화를 내지 않는다고 말하는 미호였다. 모순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현민은 혼란스러워 했다. 미호는 그런 현민을 놔둔 채 등을 돌렸다. "가자!" "아아,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은아의 성질을 건드렸는지 몰라." "흠! 현민아, 수고해." "네가 그렇다면 나중에 보자." "나도 화났으니깐 각오해라~" 그녀를 시작으로 돌아서기 시작한 현민의 친구들은 한마디씩 말을 남기며 그자리에서 사라졌다. 로그아웃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원래 의 장소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그들은 현민의 뜻을 이해했다. 모두가 돌아가고 마지막으로 시호가 남았다. 그는 현민의 앞으로 다가갔다. "조금 전, 너는 변하지 않았다고 했지?" 툭. 시호는 주먹으로 현민의 가슴을 두드렸다. "너는 변했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멋있다." 현민은 시호의 인정에 미소를 지었다. 비록 얼굴에 쓰인 가면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미소는 쑥스러워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누구보다 멋있다고 생각하던 시호에게서 이러한 말을 들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이겨라." 짧은 한마디였으나 현민은 그 어떤 때보다 힘이 났다. "물론! 그보다 다른 애들한테 당분간 접속하지 말라고 전해줘." "그래." 시호는 그 한마디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가는 시호였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현민을 믿었고 그의 말을 믿 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시호도 사라졌으니 본격적으로 움직일 시간이었다. 이미 대부분의 NPC들이 유저들을 상대하러 떠났기에 현민과 친분 이 있는 몇몇 NPC들만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친구들인가?" "네." 현민의 대답은 짧았지만 그들은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현민인 만큼 그들 역시 소중히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 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친구들을 보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현민의 친구들은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으나, 이 전쟁에서 유저들의 동료는 현민을 제외한 전부가 아니라 그들 각자일 뿐이다. 현민의 친구들이 다른 유저들을 죽이고 다닌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현민과 연관시킬 만한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현민의 말대로 그들이 끝까지 남는다면 싸워야 하지만, 그것도 그들이 먼저 도망간다면 해결될 문제였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다크 엘프들과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는 마녀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보다 죄송해요." "응?" "이 팔... 세피로스의 것인데 제가 생각도 없이 붙여 버렸어요." "아아, 그러고 보니..." 세피로스의 시선이 현민의 오른팔로 향했다. 왼쪽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현민의 오른팔은 그녀가 언제나 보아오던 자신의 팔이 었다. 남의 팔이 되어버린 자신의 오른팔과 비어 있는 소맷자락을 보는 그녀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으나, 현민이 걱정하는 것을 염려하 며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예상할 수 있는 현민에게 그녀의 이러한 행동이 통할 리 없었다. 현민은 그녀의 생각을 예상하며 묘를 불렀다. 현민의 머리 위쪽으로 물방울이 뭉치며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묘는 현민의 어깨 위에서 목마를 타고 있었다. "왜요, 오빠?" "세피로스의 팔을 만들어주지 않을래?" "으음~" 팔이 없는 존재는 세피로스 하나였기 때문에 그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묘는 그녀의 팔을 보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 "저분의 팔, 이미 나아서 지금의 상태로는 원래대로 만들기가 힘들어요." "그럼?" "어깨 부분을 잘라서 새로운 절단면을 만들어야 해요." 움찔! 묘의 요구 조건을 들은 다크 엘프들이 몸을 움찔했다. 현민을 믿고 있었으나 그 방법이 평범함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긴장한 채로 현민의 입을 바라보았으나 그의 대답은 그들이 기운 빠질 정도로 쉽사리 흘러나왔다. "그래? 알았어." "아!" 너무나 쉽사리 나오는 대답에 탄성을 내뱉는 다크 엘프도 있을 정도였다. "아프지는 않을 거예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 테지만 가만히 있어주세요. 고통 억제." 고통 억제(4서클) 능력 : 대상의 감각을 제한하여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현재 단계 : 10 주문 : ??? 현민은 그녀를 대상으로 하여 마법을 사용했다. 묘의 대답을 듣는 순간 이 마법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머뭇거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효과는 자신이 직접 확인했기에 걱정 따위는 생기지도 않았다. 현민은 루인아츠가 껴진 손을 세피로스의 오른쪽 어깨 위에 올렸다. 그리고 두부를 뭉개듯 그녀의 어깨 자체를 없애버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해 보이는 상처에 모두가 경악했으나, 정작 세피로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자 신의 어깨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묘." 굳이 현민이 부르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묘였다. 묘는 뼈가 드러나 있는 세피로스의 어깨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팔을 새로이 만들었다. "재생?!" 묘의 능력을 본 다크 엘프들이 다시 한 번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남들의 시선에 뒤늦게 눈치 챈 세피로스도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자신의 팔을 보며 그들과 마찬가지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재생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물의 정령왕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정령왕과는 거리가 있는 외모였기 때문에 그들의 놀람은 더욱 컸다. "고마워." 모두가 놀라건 말건 그 대상이 되는 묘와 현민은 태평스러운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도 안 끝난 거예요?" "오늘이 마지막이야." "언제 끝나는데요? 우리 심심한데...." 역시나 묘가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묘는 현민의 전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놀아주지 않는 것에 불만스러워하고 있었 다. 그 누구보다 노는 것을 좋아했기에 이러한 반응은 당연했다. 오히려 이제까지 가만히 있었던게 신기할 정도다. 묘는 현민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헝클어뜨리며 그에게 투정 부렸다. "늦게 끝날 수도, 일찍 끝날 수도...." 푹! "대답이 성의 없어요~" "쿠쿡!" 묘는 현민의 머리에 턱을 괴었다. 너무나 귀여운 묘의 행동에 현민의 입에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빨리 끝내고 놀아줄게, 조금만 더 기다려." "네에~" "언제까지 놀고 있을 거야? 나도 날뛰고 싶어 죽겠단 말이야!" 현민이 묘를 달래고 있을 때 또 한 명의 어린이(?)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어린이는 어린이가 어린이인 만큼 현민의 고개가 절 로 저어졌다. "루나! 너 지금 나 때문에 고개 흔드는 거지?!" "그래그래." 화를 내고 있는 린을 사뿐히(?) 무시한 현민은 묘의 손을 붙잡았다. "묘는 정령계에 돌아가 있어. 오빠가 나중에 부를게." "네." "너 자꾸 무시할 거야?!" 린의 고함을 배경음으로 하며 묘가 사라졌고, 현민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세피로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현민의 이러한 태도에 린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지만 중간에 끼어든 유로시아로 인해 다시금 조용해졌다. "캔슬. 어떠세요?" 현민은 그녀에게 걸어놓았던 고통 억제 마법을 해제하며 새롭게 만들어진 팔의 상태를 물었다. 유저에게 건네받은 그녀의 팔과 완전히 아물어 있던 그녀의 어깨를 보며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감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한 것이다. 세피로스는 그런 현민의 걱정이 기우라는 것을 보여 주려 는 듯 허리춤의 단검을 빠른 속도로 꺼내어 그의 눈앞에 가져갔다. 감각을 잃어버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발검이었다. 현민은 그녀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에요." 가벼운 끄덕임으로 현민의 대답을 받아넘긴 세피로스는 궁금하게 여기던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새롭게 생긴 자신의 팔보다 그것을 만 든 현민의 정령에게 관심이 갔다. "조금 전의 정령은?" "저와 계약한 물의 정령이에요?" "하급 정령이 맞는 건가?" "물론이죠. 벌써... 몇 년이나 되었네요." "대단하군.' 그들의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뒤쪽에서 누군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만 어린 린의 시선은 현민의 살기만큼(?) 날 카로웠다. 현민은 애써 무시하고 있었지만 세피로스는 그러지 못했다. "훗, 귀여운 친구군." 서로 나이가 대강 비슷(?)하다 보니 세피로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친구란 말이 나왔다. 린을 철없는 아가씨, 또는 어린아이(?)로 여 기고 있던 현민에게는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미안해요." 그 철없는 모습 때문인지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사과했다. 말썽 부리는 자식 때문에 고개 숙이는 어머니와 다름없었지만, 세피로스는 그런 현민의 행동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사실이니깐." "그래요. 너무 오래 있었나 봐요." 가면을 추켜올린 현민이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콰득! 허공을 향해 뻗어진 현민의 손이 움츠려지자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검은색의 덩어리가 그 자리에 생겨났다. "겁 없이 다가오는 존재도 있네요." 그것은 머리가 사라진 유저의 몸이었다. 은신에 있어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던 존재가 그들의 곁까지 다가왔던 것이다.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 존재였기에 주변에 있던 다크엘프들은 물론, 마녀들의 두 눈이 날카로워졌다. 현민은 손에 묻은 조각들을 가볍게 털어버리고 그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도 슬슬 움직이죠." "아아, 그 말만 기다렸어. 낄낄낄!" 현민의 말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의외로 유로시아였다. 그녀는 마녀다운(?)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현민의 앞에서 웬만큼 자제하던 유로시아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도 시에서의 생활에 쌓인 것이 조금 많았던 것 같다. "이건 돌려 드릴게요." "어떻게?!" 현민이 꺼낸 것은 마녀의 활이었다. 다시는 찾을 수 없을거라 생각하던 물건이었기에 세피로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현민은 놀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가면으로 인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글쎄요. 물건이 주인을 찾아온 것은 아닐까요?" 순간 눈을 반짝인 세피로스가 현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다른 존재라면 웃어넘길 만한 내용이었으나, 말한 존재가 현민이다 보니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만든 물건 이라면 특별한 능력이 아니더라도 그러할 것 같았다. 무기를 받아든 세피로스는 등을 돌렸고, 현민도 마녀의 빗자루를 꺼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자, 그럼 모두 마음껏 날뛰어주시기 바랍니다." 현민의 한마디가 아니어도 모두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녀들은 현민과 같이 날아올랐고, 다크 엘프들은 각자의 정령을 부르며 공격을 준비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정령들이 그들의 곁에 나타났다. 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코끼리부터 뇌전으로 이루어진 평범한(?) 인간의 모습까지 다양한 속성, 다양한 모습 이었다. 가까이에 있는 세피로스의 정령만 해도 와이번 하나를 가볍게 뜯어 먹을 듯한(?) 거대한 크기의 불새[火鳥]였다. 세피로스가 마녀의 활을 들고 그 정령과 함께 공격을 한다면 일대일로 맞붙어서 이길 수 있는 유저는 없을 것 같았다.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던 다크 엘프들이 유저에게 밀렸다는 게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현민은 그들의 생활을 떠올리며 그들이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지금 이 자리에는 10만을 넘기는 다 크 엘프들이 있다지만, 그들의 마을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현민이 본 다크 엘프들의 마을은 1천이 조금 넘는 숫자였으니, 쪽수로 밀어붙였다면 지는 것이 당연했으리라. 현민은 쪽수로 밀어붙이는 유저들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펄럭! 콰드드득! 쿵! 쿵! 각자의 정령들이 그들과 함께 움직이자 자연 그 자체가 움직이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민이 그들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기쁜 음성이 들려왔다. "찾았다!" "누구?" 적의보다 반가움이 깃들어 있는 음성에 현민의 고개가 돌아갔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달라붙는 존재로 인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덥석! 현민은 혹시나 하는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샨?" "그래그래." 설마 그녀가 나타날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현민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샨은 그런 현민을 보며 미소 지었다. "기다려 준 거야?" "샨." 현민은 땅으로 내려와 그녀와 마주 섰다. "도와주러 왔어." "일은? 그보다 여기 있어도 괜찮겠어?" 현민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샨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반가운 것은 현민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녀가 유저들에게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공포도 이겨 내지 못했을 그녀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 걱정되는 이유였다. 하지만 현민과 비슷한 성격인 만큼 샨은 그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강했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아. 너의 제자이기 이전에 스승이라고~" 스륵. "그리고...." 샨의 두 팔이 현민의 목을 감쌌다. 톡. "너와 함께 있으니깐." 샨은 현민의 어릿광대 가면에 이마를 맞대며 조용히 속삭였다. 린이 보았다면 당장에 마법진을 그릴 만한 장면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유저들을 향해 스트레스를 푸느라 정신 없는 상태였다. "못 말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게다가 지금은 전쟁 중이야." 현민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팔을 빠져나왔다. 다정한 목소리에도, 다정한 행동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이기에 보일 수 있는 모습이 다. 비록 사는 세계가 다르지만 서로를 가장 많이 닮은 두 사람이었기에 이런 행동도 자연스러웠다. "상관없어." 샨은 그런 현민을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화르륵! "으아악!" 그녀의 뒤로 거대한 불꽃이 피어오르며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그 존재는 온몸에 붙은 검은 불꽃을 끄지 못한 채 괴로움에 발버둥 쳤다. "'우리'를 이길 존재는 없으니깐." 역시라고 해야 할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샨의 마법 실력은 현민 그 이상이었다. 현민은 그녀의 당당함에 고개를 흔들었다. 불꽃을 끄지 못한 유저가 아직도 그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지만, 샨도 현민도 그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크 엘프에 마녀, 그리고 너까지 동시에 나타나다니. 무슨 약속이라도 한 거야?" "응." "....." 거침없이 나오는 샨의 대답을 들으며 현민은 언뜻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너를 흉내 내던 못된 여자가 알려 줬어." 자신을 흉내 내는 못.된. 여자라면 지혜밖에 없었다. '설마' 했던 것이 '역시나'가 된 것이다. '설마'란 놈이 있으면 그놈의 멱살을 잡고 한바탕 욕설을 퍼부어 주고 싶은 심정의 현민이었다. 지혜의 모든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지혜는 현민이 생각하던 것보다 한 발자국 이상 앞서고 있었다. 과연 천재는 천재였다. "왜 그래? 혹시 적이야?" "아, 아냐. 적은 아니지만...." 현민은 뚱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샨을 바라보았다. "역시 너랑 나랑은 종족(?)이 달라." "....?" 괜히 샨에게 화풀이하는 현민이었다. "뭐가 다르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해." "그러네." 움직일 만하면 하나씩 나타나는 친구들 탓에 아직까지 자리에서 이동하지 못하고 있던 현민의 주변으로 어느새 유저들이 다가와 있었 다. 수많은 다크 엘프들과 마녀를 뚫고 여기까지 다가왔다는 사실만으로 현민은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샨은 현민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알아서 모습을 바꾸는 루인아츠 덕에 그녀의 팔이 찢겨져 나간다거나 하는 끔찍한 일은 없었다. "오랜만이네, 같이 싸우는 건." "정말. 벌써 육 년, 아니 칠 년이나 지난 건가?" 두 사람은 서로 호흡을 맞추며 사냥하던 그때를 떠올렸다. 씽긋.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두 사람의 미소는 닮아 있었다. "가볍게 시작해볼까?" "그럼 나부터. 파이어볼(3서클)." 먼저 시작한 것은 샨이었다. 마법도 평범했고 그녀의 어투도 가벼웠으나, 그 결과는 예사롭지 않았다. 대기가 순식간에 달아오를 정도로 엄청난 양의 파이어볼들이 그들의 주변에 만들어졌다. "인비저빌러티(Invisibility:5서클)" 샨의 파이어볼들이 날아가기 직전, 현민의 마법이 타이밍을 맞추어 그것들을 뒤덮었다. 샨이 지혜를 상대하면서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성격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닮아가는 두 사람이다 보니 그들의 호흡은 환상이었다. 콰콰콰콰쾅! 수백 개는 되어 보이던 파이어볼이 유저. 또는 지면에 부딪히면서 거대한 소음을 만들었다. 다른 곳에서 피어오르고 잇는 불꽃보다는 미약했으나, 그들이 있는 장소도 지옥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변해버렸다. 실력이 실력이니만큼 파이어볼 한 방에 죽어버리는 유저는 없었지만, 그들의 정신을 빼놓기에는 충분했다. "역시 룬. 그럼 바로 이어서 대지의 심판(5서클)." "여왕의 거미줄(5서클)." 갑자기 솟아나는 대지의 창들이 그들의 발밑을 꿰뚫었고, 운 좋게 도망칠 수 있었던 유저들은 여왕의 거미줄에 묶여 버렸다. 여왕의 거미줄이 열에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인벤토리의 횃불을 꺼내려 했으나, 그들의 행동보다 현민과 샨의 마법이 빨랐 다. 두 사람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마법을 연이어갔다. "샤프니스(2서클)." "어스퀘이트(5서클)." 여왕의 거미줄이 하나의 칼날처럼 날카롭게 변했고, 흔들리는 대지의 심판과 함께 물결치며 유저들을 공격했다. 탄성과 예리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거미줄이다 보니 유저들의 생명력은 쭉쭉 떨어졌다. 이전의 파이어볼과 겹쳐져 이미 죽은 유저도 있었다. 샨과 현민은 유저들이 뒤엉켜 있는 그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그들의 발걸음은 주변을 구경 나온 연 인들 같았다. "절대 방어(3서클)." "리플렉션(6서클)." "파이어볼." 펑! 콰드드득! 누군가의 공격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나의 절대 방어가 그들의 앞에 만들어졌다. 샨은 약간의 공간을 만든 채 현민의 마법 가까이 리플렉션(반사) 마법을 사용했고, 이어진 현민의 파이어볼이 그 약간의 공간 사이에 서 폭발을 일으켰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야 하는 충격이 절대 방어 쪽으로 모아지며 육중한 그것을 날려 버렸다. 절대 방어는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대지의 심판과 부딪치며, 그들의 앞으로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샨과 현민은 그 길을 걸어가며 마법을 이었다. 현민이 마지막으로 파이어볼을 사용했으니 다음 마법은 샨이 이어야 했으나, 현민이 먼저 인탱글 마법을 사용했다. 갑자기 바뀐 순서 에 당황할 만도 하건만, 샨은 예상했다는 듯이 마법을 사용하며 현민의 마법을 보조했다. "인탱글(2서클)." "마법의 공간(5서클)." 어느새 그려졌는지 모를 마법진과 함께 사용된 인탱글로 인해 기다란 나무줄기가 사방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렇게 솟아난 나무줄기는 특정한 대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감아버렸다. 살아 있는 유저, 죽어버린 유저, 대지의 심판 등등 예외 는 없었다. 샨이 사용한 마법의 공간이 그렇게 솟아난 나무줄기들을 감쌌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제외한 터널 모양이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그녀의 마법을 보며, 현민도 준비했던 다음 마법을 사용했다. 현민은 물론이고 샨 역시도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들의 연계되는 마법을 서로 번갈아 사용하며 상대 방에게 다음 마법을 계산할 시간적 여유를 만들었다. 서로의 마법이 이어지지 않으면 쓸모없는 행동이었으나, 그들에게 그런 일은 일 어나지 않았다.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3서클)." 우직! 우득! 콰드득! 커지기 시작한 나무줄기들이 안쪽뿐만 아니라 바깥쪽으로도 커지며 안팎의 모든 공간을 메웠다. 대지의 심판은 물론 나무와 나무가 부 딪치며 으스러질 정도였으니,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유저들의 상태는 안 봐도 뻔했다. 레벨이 레벨이니 만큼 이전처럼 나무에 끼어 죽 는 유저는 드물었으나, 강한 압박으로 인해 움직일 수 있는 유저들도 드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은 샨이 곧바로 마법을 이었다. "아이스볼(3서클)." 파칭! 그들을 도와주렴인가. 그녀가 날린 아이스 볼은 마법의 공간 안에서 수천수만 개로 늘어나며 거대해진 나무줄기와 부딪쳤다. 차갑게 얼어붙은 나무줄기들은 그 크기가 무색하게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누가 봐도 유저들에게 유리한 상황이었으나, 현민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가면 속에는 샨과 마찬가지로 미소가 지어져 있었 다. "속성 변화(3서클)." "텔레포트(6서클)." "마법의 공간."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나무줄기가 부서지고 난 후 곧바로 이어지는 4개의 마법에 그나마 살아 있던 유저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무 언가가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생명력을 순식간에 깎아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민이 속성 변화로 강화시키고, 샨이 하늘 높이 옮겨 놓았던 나뭇조각들이었다. 현민은 샨이 만들어놓은 마법의 공간에 속성 변화를 사용하여 모든 나뭇조각들을 강화시켰고, 샨은 그런 나뭇조각들을 텔레포트시켜 하늘 높이 옮겼다. 마법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일일이 대상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대상만 정해주면 됐다. 다음은 현민의 차례. 현민은 그녀가 나뭇조각들을 올린 것보다 조금 낮은 높이에 범위가 넓고 높이가 낮은 판자 모양의 '마법의 공간'을 만들었다. 적절한 타이밍으로 나뭇조각들이 마법의 공간에 들어왔을 때 샨의 마법이 사용된 것이다. 단단하고 거대해진 나뭇조각들이 한동안 비처럼 쏟아졌다. 타타타타탁!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샨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이겼지?" "고서클이라고 치사하게!" 그녀가 이겼다고 말하는 이유는 현민의 마법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여야 할 존재가 없으니 마법을 사용할 이유가 없 는 것이 당연햇지만, 그것이 현민의 차례에서 끊겼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현민이 억울해 하는 이유. 원래는 텔레포트가 아니라 허리케인으로 날려 버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성 변화를 사용하여 나뭇조각들을 단단하게 만들면, 샨이 그 나뭇조각들에 날카로운 성질을 부여(샤프니스)하고, 이제 자신 의 차례에서 허리케인(5서클)으로 나뭇조각들을 날려 버린다는 것이 현민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샨이 중간에 마법을 바꾸어 텔레포트로 나뭇조각들을 허공에 띄운 것이다. 다음에 사용된 마법의 공간이 그녀와 같은 위치가 아니라 그 밑에 생성된 것도 갑자기 바뀐 그녀의 마법에 준비했던 마법을 바꿔야 했 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실력의 지혜와 채리플랑이라도 둘 중 누구 한 사람과의 이런 호흡은 보여 주지 못했을 것이다. 주변의 모든 유저들을 죽일 수 있었지만, 지금 현민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녀와의 내기 아닌 내기에서 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당 연하게 해오던 거라 시작을 안 했다고 발뺌할 수도 없었다. 현민은 6서클의 마법을 사용한 것에 대해 투덜거렸으나, 샨은 그의 불만 어린 목소리를 모르쇠로 일관했다. "안 들려, 안 들려~" 그 모습이 너무나 건성이었기에 더욱 얄미운 현민이었다. "으음~ 무슨 부탁을 할까?" "크윽!" 내기가 있었다면 조건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 그들의 내기 조건은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서로를 배 려하는 마음으로 심각한 일은 없었지만, 과연 오늘도 그러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현민이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샨이 원하는 것을 차례대로(?) 말했다. "뽀뽀? 목욕 시중? 잠자리?" 서로를 닮을 만큼 같이 있었던 샨이었기에 현민을 괴롭히는 방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샨은 점점 굳어가는 현민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중에서 골라봐." 고르라고 해봤자 고를 수 있는 게 있을 리 없었다. 쉽게 고를 수 없었던 현민은 자리에서 멈춘 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잠자리." "...정말?!" 왠지 기뻐하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눈의 착각일까? "아직 가을이 아니라 드물겠지만, 다른 대륙을 가더라도 잡아다 줄게." "루운~!" "다 큰 처녀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다 컸으니깐 하는 소리지! 언제까지 혼자 놔둘 거야?" "...아?" 예상치 못한 샨의 반격(?)에 현민의 머리가 굳어버렸다. "저기...우리 친구거든? 친구 알지?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결혼이라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주변에 적이 없다 보니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옆길로 샜다. "주변에 남자 없어?" "남자야 많지. 하지만 너 같은 남자는 없는걸." 차기 황궁 마법사에게 달라붙는 남자가 없을 리 없었다. 나라를 겨우 수복한 지금도 수많은 남자들이 달라붙고 있었다. 젊고 아름다우 며 권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신붓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남자 중에서 샨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외모가 뛰어나도, 말발이 좋아도 그녀의 마음에 설렘은 없었다. 오히려 불편함만 가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민과 비교가 됐다. 그렇 게 해서 내려진 결론이 지금의 생각이다. 차라리 현민을 잡는 것. 같이 있으면 재미있고, 마음 편하고, 그 누구보다 능력도 있으며, 길들이기(?)만 하면 바람 피울 걱정도 없었으니, 그가 친구라는 것 만 제외하면 정말 최고의 신랑감이라 할 수 있었다. 추가로 점점 예뻐지고(?) 있는 현민의 얼굴도 그녀의 결정에 한몫 거들었다. 세상 이 다르다고 하나 대세는 미소년(?)이었다. 그녀의 이러한 생각을 파악한 현민은 두 눈이 가늘어졌다. "너도 사악한 사람이냐?" "...무슨 소리야?" 현민의 과거(?)를 모르는 샨은 의미 모를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야. 일단 이 얘기는 다음에 하자.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몇몇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으니깐." "응?" 이해할 수 없는 현민의 말에 또다시 고개를 갸웃하는 샨이었다. 현민은 그런 샨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무리 유저가 없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여기에서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자. 텔레포트." 샨의 손이 현민의 손과 겹쳐지는 순간 그들의 신형은 사라져 버렸다. 제 116장 그들의 실력 지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물웅덩이를 통해 전장을 보고 있었다. 현민의 싸움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물웅덩이 속의 싸움은 평소보다 더욱 치열했다. 그러던 중 특이한 모양의 가면을 착용한 존재들이 현민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현민의 친구들인가?" 현민을 돕는다고 하기에는 아직 그 의도가 명확하지 않았으나, 지혜는 그들의 정체를 현민의 친구라고 단정 지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 다는 점과 그들 중 비전투 인원이 있다는 것, 그리고 현민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으로 추측한 것이다. 나름대로 아슬아슬한 순간에 나타났기에 지혜의 얼굴이 잠시 환해졌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잠시였다. 채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지쳐 버리는 그들을 보며 지혜의 얼굴은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뭐 하자는 거야? 저런 실력으로 현민을 도운다고? 차라리 나서지를 말든가!" 지혜는 현민의 움직임에 제한을 만드는 그들을 보며 짜증을 참지 못했따. 유저들을 상대로 장기간 싸워본 적이 없다보니 그들이 얼마 나 힘든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루 반나절을 내내 싸우고도 지치지 않는 현민을 보다 보니 그것이 당연하다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저자는 위험하군." 지혜의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드래곤이 무엇을 발견한 것인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몇 시간 동안 바라보면서 처음으로 나온 한마디였기에 지혜의 시선도 물웅덩이 속의 그를 향했다. 콰앙! 그와 현민이 부딪치면서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대등해 보이는 두 사람의 부딪침에 지혜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생겼다. <군인, 그것도 이전까지와는 비교가 안 되는 분이시군요.> <대닿나군. 그 주먹질 한 방으로 내 정체를 알아본 건가?> "군인!" 군인이라는 말에 지혜의 얼굴이 현민의 친구들을 보는 것 이상으로 일그러졌다. 군인이라는 것 자체 때문이 아니라, 군인이라고는 믿 겨지지 않는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카롭게 번들거리는 그의 눈은 군인이라기보다 살인마라고 하는 게 옳았다. 한동안의 대화가 이루어지다가 그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지혜는 숨조차 멈춘 채 물웅덩이에 집중했다. 파팟! 쾅!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물웅덩이에서는 시끄러운 소음이 멈추지 않았다. 붉은색의 선으로 보이는 현민과 회색의 선으로 보이는 군인 이 한 번씩 얽힐 때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부서져 나갔다. 그들의 싸움으로 인해 주변의 유저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을 때, 현민의 손이 군인에게 붙잡혔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군인의 말을 들으며 지혜도 긴장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할거야? 지혜는 군인의 말을 따라 했다. 물웅덩이 속의 영상이 커지며 현민의 얼굴이 나타났다. 가까이서 보는 4개의 눈과 날카로운 이빨은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훨씬 공포스러 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민의 얼굴. 현민은 자신의 손목이 잡힌 상황에서 웃고 있었다. 현민이 상대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 단순한 행동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콰콰콰콰콰콰쾅! 방어는 없었다. 오로지 공격이었다.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거대한 폭음만 들릴 뿐, 지혜의 눈에는 두 사람의 손이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였다. "무, 무식해...." 쿠득!쿠득!콰드득! 부딪침이 계속될수록 그들의 신형이 땅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인간들이 자주 말하는 화끈한 싸움이군." 지혜와 같이 물웅덩이를 바라보고 있던 드래곤은 그녀의 기분도 모르고 즐거운 듯한 음성이었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의 대결은 작은 크레이터를 만들고서야 멈췄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는 충격파로 이러한 모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완벽한 기회가 있었는데도 주변의 유저들이 다가가지 못한 것은 이러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마법을 사용하면 되는데 어째서....?" 한참 동안 주먹을 교환하고서야 승부를 결정지은 현민을 보며 지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면 지 금 상대하고 있는 존재 정도야 순식간에 없애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녀의 빗자루로 한 번만 휘둘러도 끝이다. 굳이 무리한 주먹질을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의문에 대답한 사람은 의외로 가까운 데서 들려왔다.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서겠지." 지혜의 시선이 드래곤에게로 돌아갔다. 그녀의 두 눈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고 있었다. "잊었나? 네가 말한 이유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단순한 주먹질이 어째서 공포를 자극하느냐는 거예요." 지혜의 물음을 들은 드래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것을 모르냐는 얼굴이었다. 드래곤의 그 얼굴에 울컥했지만 이유가 궁금해서 참을 수 밖에 없었던 지혜였다. 안 참아도 소용없었지만 말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잊었나? 그는 마법사다. 마녀다. 정령사다. 그가 아무리 훈련을 했다고 해도, 아이템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육체적인 능력은 근접 계열의 존재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존재가 자신과 대등...아니. 그 이상의 실력을 보였 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나?" "믿을 수가 없겠죠." 이것은 지혜도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공포심을 자극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이지 않았나요?" 드래곤은 손가락으로 물웅덩이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기다란 꼬리로 유저의 목을 조르는 현민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정말 같다고 생각하나?" "....." "조금 전의 싸움은 정면 대결이었다. 피하지도 막지도 않고 누가 먼저 쓰러지는가를 결정하는 거였지. 아이템이 뛰어나다고 해서 버틸 수 있는 싸움이었다고 생각하나?" 지혜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서로의 몸이 땅으로 파고 들고, 충격파로 인해 크레이터까지 만들어질 정도의 싸움을 단순히 아이템 발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상대들은 룬이라는 인간의 능력만을 생각하며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한 능력자들 대부분은 육체적인 방어력과 생명 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번의 싸움으로 그 추측이 불확실해졌다. 한 번에 땅이 파일 정도의 공격이 었다. 그러한 것을 수백 번이나 주고받았지. 그러고 살아남았다. 그의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나, 인간은 모든 생각을 부정적으로 하지. 그의 멀쩡한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드래곤의 말처럼 물웅덩이 속의 현민은 너무나 멀쩡해 보였다. 바로 조금 전에 심각한 싸움을 한 사람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을 정도 로 말이다. "그들의 생각은 점점 바뀔 것이다. 죽이기 힘들다. 죽일 수 없다. 죽지 않는다. 너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처럼 '개사기(?)' 존재가 되는 거다." 드래곤은 적절한(?) 표현으로 지혜의 이해를 도왔다. "때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공포도 될 수 있다." 사설이 길었지만, 결론은 그거였다. 죽지 않는다는 것도 공포가 된다는 것. 지혜는 그제야 드래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보다 몇몇 종족들이 도우기로 한 모양이군."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물웅덩이 속에 새로운 존재들이 나타났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존재와 엘프 비슷한 외모에 검은색의 피부 를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마녀와 다크 엘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정도의 인원으로 도울 수 있을까요?" 그들이 오는 것은 지혜도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 그들이 오도록 만든 사람이 지혜였다. 하지만 물웅덩이 속으로 보이는 그들의 수는 지혜의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기껏해야 몇만, 그것도 마녀들을 포함해서다. 유저들에 비할 때 턱없이 작은 숫자였다. 지혜의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실망감이 떠올랐다. 물웅덩이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드래곤이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것을 느꼈는지 어이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하? 다크 엘프가 10만 2,895명이며, 마녀들이 1,341명이다." "현민의 상대는 6억이고 말이죠. 10만 명의 다크 엘프들이 1인당 6천 명의 유저들을 죽여야 한다고요." 퉁명스러운 지혜의 말에 드래곤의 시선이 돌아갔다. 두 존재는 한동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먼저 입이 열린 것은 드래곤이었다. "어리석군." "....." 생각지도 못한 말에 지혜의 두 눈이 흔들렸다. 드래곤은 그녀의 반응을 무시하며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네가 기준으로 잡아야 하는 존재가 잘못되었다." "...무슨 소리죠?" "10만의 다크 엘프들이 얼마만큼 활약할 것이 아니라, 1천의 마녀들이 어떻게 활약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마녀를 단순히 NPC로, 그것도 몬스터 쪽으로 분류하던 지혜는 드래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마녀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위험한지를 자세히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런 상태를 눈치 챈 것인지 드래곤의 설명을 이었다. "다른 존재도 아니고 마녀들이다. 단 한 명만 있어도 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일천 명이나 모였는데, 겨우 6억명의 존재들이 그 들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다섯 명의 마녀들은 한 명의 드래곤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이다." 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드래곤의 말만 믿기에는 그들의 능력이 너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드래곤과 맞붙은 적이 있는 그녀이기에 마녀들의 강함을 더욱 실감할 수 없었다. 하나의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해서 5명의 마녀가 필요 하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비교되는 드래곤의 힘이 너무 강했다. "움직이는군." 지혜는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물웅덩이를 바라보았다. 현민을 둘러싸고 있던 마녀들이 일부를 제외하고 날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움직이자 전쟁터 곳곳에서 현민이 싸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폭음은 물론이고, 온갖 비명 소리가 지혜 의 귀를 시끄럽게 했다. "잘 봐둬라. 저것이 바로 마녀의 능력이다." 지혜는 물웅덩이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녀 하나하나의 능력이 현민과 비슷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현민을 웃돌고 있었다. 가벼운 동작으로 수백 수천의 유저들이 죽어나갔으며, 장난스러운 그들의 외침에 대지조차 썩어버렸다. 다크 엘프들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10만의 다크 엘프들이 죽이는 수보다 1천의 마녀들이 죽이는 수가 더욱 많았다. "네가 8서클의 마법사라 하더라도 그녀들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혜는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들의 능력을 바라본 순간부터 여러 가지를 계산해보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막막함이었다. "진정한 마녀. 그들은 너와 같은 존재들이 수십 명 있어야 겨우 맞먹을 정도의 존재다." 지혜는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8서클에 오르면서 드래곤을 제외하고 그 누구보다 강하다 생각했던 자신이 실제로는 그리 강 하지 않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이다. 세상에 무관심하고, 적당히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녀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생각이 현민에게로 향했다. 마녀들이 그렇게 강하다면 마녀들에게 배운 현민도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현민이 강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마녀로서 강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물웅덩이 속의 마녀들은 이길 자신이 없어도 현민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에 대한 드래곤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과 달랐다. "현민이란 인간이 얼마나 강하냐고? 저기 있는 마녀들 중 그 누구보다 강한 존재가 현민이다." 지혜는 경악했다. 그가 마녀보다 강하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 아니라, 아직도 숨기고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어제 보았던 정령사의 능력 말고 또 다른 능력을 감추고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 여겼건만 그것이 일부일 뿐이라니..... 지혜는 현민이 숨기고있는 강함이 어디까지인지 추측할 수 없었다. 자신을 전부 드러내지 않고도 이 정도로 강한 존재가 현민이라면, 과연 그 누가 그를 이길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아주 오래전 한 명의 마녀가 있었다." 그녀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드래곤이 입을 열었다. "그 마녀가 제국 하나를 지워버리는 데 겨우 두 시간이 걸렸지." "그게 가능해요?!" 지혜는 '제국'이 얼마나 거대한 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놀란 것이다. 제국 자체를 지워버린 것은 대수롭지 않았으나 (?),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인간들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이지." "그 마녀가..." "네가 말하는 현민이란 인간 이전에 나왔던 '달의 마녀'다. 현민이란 존재보다 불완전한 그녀가 그 정도의 능력이었지. 이제 그의 실 력이 이해되나?" 끄덕.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의 마녀라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얼핏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였으나, 현민이 그녀의 능력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능력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도 말이다. 지혜는 처음의 차분한 눈으로 돌아와 물웅덩이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혜의 두 눈에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저게 어디서?" 샨이 현민에게 포오한 것이다.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주제에 현민을 욕심내고 있는 지혜였다. "흐음." 도리도리.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드래곤은 샨과 지혜의 전신을 비교한 후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보기에도 너무나 뻔한 승부(?)였다. <일은? 그보다 여기 있어도 괜찮겠어?>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아. 너의 제자이기 이전에 스승이라고~ 그리고....> 샨의 두 팔이 현민의 목을 감쌌다. 지혜가 그것을 보고 날뛴 것은 당연한 얘기다. 톡- <너와 함께 있으니깐.> 멈칫. 길길이 날뛰고 있던 지혜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시끄럽던 그녀가 조용해졌으니 기뻐해야 옳았으나, 드래곤은 신음을 내뱉으며 한 걸음 물러났다. 미약하게나마 지혜의 몸에서 투기가 흘러나왔다.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덥석!' "자, 잠깐!" "...왜요?" 방긋. 한 박자 늦긴 했지만, 지혜는 자신을 붙잡는 드래곤의 손길에 환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그녀는 분명히 웃고 있었으나 드래곤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지혜는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조, 조금만 더 지켜봐라." "일단 다녀와서 보면 안 될까요?" 드래곤은 오랜만에 식은땀이 흘렀다. 질투에 눈이 먼 여자의 눈은 드래곤이 당황할 만큼 살벌했다. <못 말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게다가 지금은 전쟁 중이야.> <상관없어.> 화르륵! <으아악!> 묘한 대치 상황 속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고, 두 존재의 시선이 자연스레 물웅덩이 쪽으로 옮겨졌다.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던 지혜의 움직임은 이미 멈춘 상태였다. 방금 보았던 샨의 마법이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다. 현민이 천재라고 극찬하던 샨의 마법은 그녀보다 빠르고 은밀했다. 며칠 전 그녀와 싸웠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현민과 마찬가지로 그 녀도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이길 존재는 없으니깐.> "흥! '우리' 좋아하네." 음흉한(?) 마음조차 꼭 닮은 두 사람을 보며 지혜는 코웃음쳤다. 하지만 이전의 살벌한 기세는 사라져 있었다. 드래곤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지혜의 팔을 놓았다. 그녀가 전쟁터에 끼어드는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크 엘프에 마녀에 너까지 동시에 나타나다니.... 무슨 약속이라도 한 거야?> <응.> <.....> <너를 흉내 내던 못된 여자가 알려 줬어.> 드래곤의 시선이 지혜에게로 돌아갔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이었다.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되는 것 아닌가? 어째서 스스로 가르쳐 주고 화를 내는 거지?" "현민에게 도움이 되니깐 가르쳐 준 거고, 현민에게 달라붙으니깐 화를 내는 것뿐이에요. 저번에 경고까지 했는데 무시하잖아요." 지혜는 억울하다는 듯이 변명했다. 아직까지 몰랐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의 경고 때문에 샨이 변한 것을 알았다면, 억울해 하기보다 화를 냈을 것이다. 물론 샨이 현민에게 작업(?) 걸기 시작한 이 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해도 말이다. 드래곤은 지혜의 투덜거림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지혜란 존재는 평범한 인간들보다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니, 그녀 하나만 이해할 수 있다면 모든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물웅덩이 속의 현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같이 싸우는 건.> <정말. 벌써 6년. 아니 7년이나 지난 건가?> 서로를 다정(?)하게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지혜의 눈초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녀 스스로는 아니라고 할지 모르나, 지금 그녀 의 모습은 질투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질투의 끝(?)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물웅덩이 속에서는 지혜가 걱정할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가볍게 시작해볼까?> <그럼 나부터. 파이어볼.> 자세한 수는 알 수 없었지만, 3서클의 파이어볼이 그들의 화면을 가득 채웠다. 두 존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고, 그들의 싸움에 시선을 집중했다. <인비저빌러티.> 지혜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파이어볼을 투명화 마법으로 숨기는 것은 샨이 그녀와 싸울 때 사용했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사 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그들의 연계를 보며 또다시 기분이 안 좋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마법이 이어질수록 지혜의 표정이 변해갔다. 드래곤도 마찬가지였다. 두 존재의 얼굴에 처음으로 같은 감정이 드러 났다. 그것은 '놀람' 이었다. 지혜는 전혀 별개의 두 사람이 이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보일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드래곤은 그 하나로 완 벽하다고 생각했던 마법이 서로 섞이는 듯한 그들의 마법을 보며 놀랐다. 순식간에 이어지는 그들의 마법으로 인해 주변의 유저들이 죽어나가는 데는 1분이라는 시간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재미있군. 네가 말하던 '대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도 놀랐어요. 그들 각자가 뛰어난 것은 알았지만, 저런 식으로 연계할 수 있다는 건 말이에요." 지혜는 한 사람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잠깐의 틈조차 보이지 않는 그들의 마법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보일 수 있는 두 사람이 내심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서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으면 불가 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혜가 유독 샨에게 질투의 감정을 내비치는 이유가 이러한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으음~ 무슨 부탁을 할까?> "응?" <뽀뽀? 목욕 시중? 잠자리?> 화륵! 순간, 옆에 있던 드래곤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환청을 들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보니 지혜에게서 언제 감탄했냐는 듯 살벌한 오 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일일이 반응하는 지혜를 보며 드래곤이 한마디 했다. "저들이 저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건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드래곤은 전쟁이 주는 정신적 피로를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전쟁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과 같이 장난스러운 대화를 하는 것이 정신적 피로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잘못된 방향이지만 전쟁 중에 살인을 줄기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드래곤의 설득으로 그녀의 기운이 가라앉았으나, 그것은 잠시였다. <다 큰 처녀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다 컸으니깐 하는 소리지! 언제까지 혼자 놔둘 거야?> 지혜는 느낄 수 있었다. 장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마음이 담겨 있는 고백이었다. 현민도 그것을 느꼈는지 당황하는 모습이었 다. 그것을 보는 지혜의 두 눈에 불이 들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드래곤은 또다시 고개를 흔들며 나름대로 준비했다. 그녀가 전쟁터에 난입하는 것을 막을 준비 말이다. 이제는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드래곤이 걱정하는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혜는 그저 입술을 깨문 채로 물웅덩이 속의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받아들이면 안 돼. 현실을 버릴 생각이야?" 지혜는 현민에 대해서 샨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친구들보다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게임을 하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현민은 이 세계 자체를 즐겼다. 이 세상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지 않는 것은 그를 구속하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그녀를 받아들인다면 그는 현실과 환상을 혼동할 것이고, 그 혼동을 없애기 위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것 이 현민이었다. 하지만 현민은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그녀가 걱정할만한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 <너도 사악한 사람이냐?> <...무슨 소리야?> <아니야. 일단 이 얘기는 다음에 하자.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몇몇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으니깐.> "...하여튼 이런 건 귀신같이 알아요." 지혜는 긴장했던 마음을 풀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금의 현민이라면 그녀가 걱정하던 최악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의 생각마저 예상했을 테니 말이다. 옆에 있던 드래곤은 헷갈린다는 얼굴로 지혜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 얘기는 우리를 두고 한 말인가?" "예. 현민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귀신같이 예상하거든요." "그건...." 무언가를 말하려던 드래곤은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지혜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쳐다보았으나, 한번 닫힌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정말 예상하는 건가? 읽는 것이 아니라?' 드래곤은 못다 한 말을 마음속으로 이었다. 지혜에게 숨겨야 할 만큼 특별한 질문은 아닌 것 같았으나, 그의 질문에 무엇이 담겨 있는 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실드." 샨은 현민과 같이 이동하자마자 자신의 발밑으로 실드를 만들었다. 그가 어디로 이동할지를 예상했던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법을 이은 것이다. 땅이라면 상관없지만 땅이 아닐 수도 있었기에 가장 적절한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허공의 한가운데에서 나타난 두 사람은 실드를 밟고 서서 아래의 전쟁터를 바라보았다. 곳곳에 보이는 마녀들과 다크 엘프들은 하나하나의 존재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며 유저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실력은 압도적 이었다. "아하하하! 십만의 정령사에, 일천의 마녀, 그리고 한 명의 마법사라니. 나를 죽일 수 있는 존재가 내 편에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현민은 웃을을 참을 수 없었다. 이 무슨 우연이란 말인가. 마치 그가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그를 이길 수 있는 존재와 죽일 수 있는 존재, 모든 것을 뺏어갈 수 있는 존재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유저들에게 불행한 점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 오히려 현민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존재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너를 죽이는 장소는 침대로 충분해~" 샨은 현민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뭔가 자세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것은 일단(?) 넘어가고, 현민은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발언 약간 위험했어." 정작 위험(?)했던 건 조금 전의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던 것 같았으나,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뭐 어때? 그곳 아니면 내가 너를 죽일 이유도 없는데." "훗! 그건 그래." 현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민의 친구들이 보았으면 입을 벌렸을 만한 모습이었다. 아니, 이미 입을 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를 지켜보고 있는 존재들은 많 았으니깐. 웃음으로 대화를 멈춘 두 사람은 다시금 전쟁터로 시선을 돌렸다. "으음~ 우리가 가장 뒤처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게. 다들 적당히 좀 하지." 그들도 상당수의 유저들을 죽이기는 했지만, 마녀들과 다크 엘프들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 수준이었다. 그들은 천이 물을 흡수하듯 빠 른 속도로 전쟁터에서 유저들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샨이 조금 적극적으로 나섰다. "으음...나도 강한 거 한번 써볼까?" "응? 어떤 거?" "다른 곳에 머무르고 있는 생명의 싹이여, 나의 부름을 듣고 이곳에 나타나 너희들의 존재를 증명하라. 이곳은 시간의 흐름이 어긋난 나만의 공간. 그대들은 이곳에서 수많은 시간을...." "저기... 아가씨? 무엇을 하려고 주문을 외우시는지..." 주르륵. 현민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8서클의 마법사가 주문을 외운다면 그것은 8서클, 못해도 7서클로 봐야 했다. 내심 아니기만을 빌었으나, 그녀의 영창이 3분을 넘어갔다. 8서클이라는 소리다. 『싸울아비』를 한 번쯤은 해본 사람이라면 이 세계의 수도들이 얼마나 거대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왕궁조차도 그 크 기가 다른 영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 수도인데, 샨은 그런 평범한 왕국의 수도도 아니고 제국의 수도를 한 방에 날려 버릴 만한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메테오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최소 그것과 동급, 어쩌면 그 이상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이 이곳에서 사용되려 하고 있었다. 현민은 자신의 옆에서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샨이 걱정되었다. 무슨 오기가 생겼는지 그녀는 지금 무리하고 있었다. 유저도 아닌 NPC 가 8서클의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 후유증은 상당할 것이다. 그 자신만 해도 일순간 정신력이 소모되는 느낌을 참지 못할 정도이니, 샨 이 느끼는 기분은 더욱 커다랄 것이 분명했다. 그런 현민의 걱정을 뒤로한 채 샨의 마법이 발현되었다. "자연의 창조(8서클)." 샨을 바라보고 있던 현민은 일순간 눈을 감았다. 샨에게서 녹색의 빛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들 같았으면 깜짝 놀라서 물 러났을 테지만, 현민은 오히려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를 부축하기 위해서였다. 털썩!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를 잡을 수 있었다. 샨은 온몸에 힘이 빠진 것인지 자신의 몸을 추스르지 못했다. "하여튼 못 말려. 이렇게 될 걸 뻔히 알면서 왜 그리 무리했어?" "너한테... 안길 수 있으니깐." 샨은 현민의 꾸중 어린 목소리에 힘겹게 대답했다. 이 상황에서도 집착(?)을 보이는 샨의 태도에 현민의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졌다, 졌어. 절대 방어, 인비저빌러티." 그녀가 만든 실드조차 감쌀 정도로 커다란 절대 방어를 만든 현민은 그 절대 방어에 투명화 마법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숨겼다. 샨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혹시나 다가올지 모르는 유저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들만의 공간을 만든 현민은 샨의 소원대로 조심스럽게 안아줬다. 아니, 안아줬다기보다는 인간 의자가 되어줬다는게 옳아 보였다. 현민은 샨을 자신의 앞에 앉힌 후, 그녀의 등을 가슴으로 받쳐 주었다. "불편해. 조금 더 허리 좀 눕혀 봐." "...바라는 것도 많다." 그러면서도 등을 좀 더 뒤로 기울이는 현민이었다. 현민의 등이 뒤로 기울자 샨의 몸이 자연스럽게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나, 그들의 모습은 서로 안고 있 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밑에 봤어? 어때?" "그러고 보니...." 자신의 마법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는 샨의 말에 현민은 잊고 있던 그녀의 마법이 떠올랐다. 너무나 조용하다 보니 마법이 이루어진 것도 몰랐다. 다급히 전쟁터를 확인하려 했으나, 현민은 원하던 것처럼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동시에 울리는 마녀들의 목소리에 두 귀를 틀어막아 야 했기 때문이다. "뭐 하는 거야? 놀 거면 다른 데 가서 놀아!" "여기는 내 자리라고~ 자꾸 넘어오지 말라니깐!" "저, 저기... 자꾸 이렇게 넘보시면 저, 저는...저는...흑!" "윽!" 샨이 사용했던 마법의 범위 안에 있던 마녀들이 그녀의 마법을 현민의 마법으로 알아보고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민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뭐라 할 수는 없었으니, 현민은 샨을 대신해서 그녀들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미안! 도대체 어떤 마법이기에 그러는 거지?" 마녀들의 분노를 잠재우고 겨우겨우 시선을 돌린 현미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들의 발밑으로 조금 전까지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숲이 만들어져 있었다. 제 117장 메테오 "샨." "응?" "그 마법 8서클짜리지?" "응." "능력은?" "숲을 만드는 거지." "좀 더 자세히." "범위 안에 있는 대상의 생명력을 양분으로 하여, 하나의 대상에 하나 이상의 나무가 만들어지는 거야." "그 결과가...." "숲이지. 어때?" 샨은 자랑하듯이 말했다. 현민은 그녀의 마법을 확인하고서야 왜 마녀들이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저 멀리까지 초록색의 숲이 이어져 있었다. 그 안에 있던 유저들은 전부 사망했다는 소리다. 현민은 그녀의 마법을 보며 '역시 샨이다' 하는 생각을 가졌다. 쓸데없는 파괴가 없으면서도 그 위력이 확실한 게 그녀의 성향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뒷일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현민은 샨의 마법이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놀랐어." "후훗! 당연하지. 누구의 마법인데." "나도 한번 해볼까?" 조금 전 샨이 마녀들에게 자극받았다면, 이번에는 현민이 샨에게 자극을 받은 듯했다. "어떻게 하게?" "일단 자리부터 옮기고." 현민은 품 안의 샨과 함께 또다시 자리를 옮겼다. 장소에 영향을 받는 마법도 아니었고, 숲에서 싸우는 것이 편하긴 했지만, 아무도 없는 공간에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근처에는 마녀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전쟁터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되도록 멀리 이동했다. "실드." 두 사람이 나타난 곳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허공이었다. 하지만 무성했던 숲을 대신해서 엄청난 수의 유저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제 대로 골라잡은(?) 것이다. "일단 유저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지면의 바로 위로 마법의 공간을 널~~ 찍하게 만들고." 현민은 설명과 함께 마법을 사용했다. 특히 '널' 다음의 '~~'에서 상당량의 정신력을 소모하여 샨의 마법만큼이나 그 범위를 넓게 했 다. 높이가 5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모되는 정신력이 몇천을 넘길 정도였다. "그곳에 아쿠아를 사용하는 거야." 현민은 그렇게 만들어진 마법의 공간에 1서클의 아쿠아 마법을 사용했다. 서클이 서클이니만큼 아무런 공격력이 없고, 그저 물을 모으 는 단순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의 공간을 순식간에 가득 채운 것으로도 모자라 마법의 공간 밖으로 넘쳐흘렀다. 마법의 공간은 멈추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계속해서 물을 흘려보내며 일대의 지면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이것은 현민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늘 높은 곳에 잇는 현민이 이러한 일을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의 눈이 독수리처럼 좋 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민은 소란스러워진 유저들을 보며 그저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다음 마법을 이어나갔다. "아 참, 마법의 공간은 기본 지속 시간이 3분밖에 되지 않으니 조금 서두르는 것도 잊지 말고."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마법을 설명했다. 이전에 같이하던 버릇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들이 함께 있을 때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이었기 에 샨도 그의 설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다음은?" "물을 만들었으니 얼려야지." "흐응~" 쩌저적! 현민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며 무언으로 아이스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의 이름처럼 대상을 순식간에 얼려 버리는 그 마법은 유저들의 발밑을 빙판으로 만들었다. 땅 위에 있던 유저들은 갑자기 생겨난 물이 순식간에 얼어붙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물만 얼어붙는 것이 아니라 약간이긴 하지만 그들 의 발까지 묶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혹시나 모를 일을 위해 서둘러 발을 뽑았다. 하지만 현민은 그들의 발을 묶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던듯, 마법의 공간이 남은 시간 동안 샨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얼음판 위에 대지의 심판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너 지금 흙으로 된 게 아니라 얼음으로 된 게 솟아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 않을까?" "아니라고 봐. 대지의 심판 자체가 땅에 있던 흙을 대상으로 만든 거잖아? 만약 솟아나면 내가 뽀뽀해주고, 목욕 시중 들어주고, 마지 막에 잠자리까지 풀코스로 들어줄게. 반대면 알지?" 샨은 현민의 말이 아니라는 것에 자신하는 것인지 매우 강한 조건을 걸고 나왔다. 그녀가 이렇게 나오자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은 현민 이었다. "...너 너무 강하게 나오는 거 아냐? 그리고 이기든 지든 내가 불리하잖아!" 불리하다고 하기보다 남자로서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일이었지만,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할 말은 없다. 샨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면서 현민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불만이야?" 샨은 불만이 있어도 무시해버리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를 보며 현민은 서글프게 우는 '척'을 했다. "아아, 착하던 우리 샨이 어쩌다 이렇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샨은 현민을 상대하기보다 그를 대신하여 마법을 사용했다. 얼어붙은 대지 위에 반투명한 모양의 반짝이는 창들이 솟아나며 유저들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흙으로 이루어진 창과는 다르게 한 번 꿰뚫은 얼음의 창은 산산히 부서져 나갔으나, 웬만한 방어구도 가볍게 뚫어버리는 날카로움으로 보아 위력 면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샨은 피를 대신하여 하얗게 물들어가는 대지를 보며 스스로의 마법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되네?" 툭- "'대지'라는 게 대자연의 넓은 땅을 말하는 것이니 안 될 이유는 없지." "으윽!" 현민은 그녀의 머리에 턱을 괴며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마치 지금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조금 전의 자신 없던 모습이 연극처럼 느껴질 만큼 여유로운 모습이었기에 샨은 자연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알고 있었지?" "아니." "그럼 어떻게 예상한 거야? 대지의 심판이라는 마법. 애초에 흙을 대상으로 삼는 거잖아." 샨 그녀 자신도 마법사이니만큼 현민이 건네준 마법서의 분석은 이미 끝낸 상태였다. 그녀가 알고 있는 대지의 마법은 분명 '땅'의 구성 요소, 즉 흙을 대상으로 사용되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현민은 고개를 흔들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다른 존재도 아닌 현민이 만든 마법이었기에 그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고 있었 다. "아니지, 아니지. 너도 해석해봐서 알잖아? 정확히 땅을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야. '땅=흙' 이라는 공식이 반드시 적용되는 것이 아니 라고. 흙이 있으면 흙으로, 바위가 있으면 바위로." "그렇긴 하지만... 얼음을 땅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잖아." 샨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또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남극하고 북극도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땅'이라고 표현하는 건?" "'땅'이라고 표현한다 해서 땅이 되는 건 아니잖아?" "글쎄~ 일단 얼음으로 된 대지의 심판이 만들어졌으니 땅으로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데?" "으음... 나중에 돌아가면 연구해봐야겠어." 그들의 토론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추론을 하기보다는 의제를 나중으로 미 루고 확실히 하는 게 나았다. "자, 이걸로 비긴 거지? 서로의 부탁은...." 스윽- 현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돌아선 샨이 그의 가면을 들추었기 때문이다.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 샨의 입술이 현민의 입술과 맞 닿았다. 쪽! "아...!" 현민은 갑작스러운 입술의 감촉에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물러났다. 만약 그가 물러나지 않았다면 입술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평 소에는 그 어떤 공격(?)이라도 피할 수 있는 현민이었지만, 이번에는 친구라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다. "무, 무, 무슨 짓을!" 물러나던 현민은 자연스레 쓰러졌고, 그의 위에 올라타는 자세가 되어버린 샨은 승자(?)의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목욕 시중이랑 잠자리는 전쟁이 끝나고 해줄게." "샨!" 현민은 지금의 상황도 잊은 채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만큼 당황한 것이다. 하늘을 날고 있던 몇몇 유저들이 현민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그들의 주변을 주시했다. 그가 실드에 걸어놓은 투명화 마법이 아니었 다면 진즉에 걸렸을 것이다. 현민이 그녀를 밀치고 일어나려 했지만, 샨이 오히려 그를 찍어 눌렀다. 그녀는 현민의 얼굴을 붙잡고 코와 이마를 맞대었다. 현민이 수진에게 했던 것과 똑같았다. 누가 닮은 꼴 아니랄까 봐 이것까지 똑같이 하는 두 사람이었다. "미안하지만 난 진짜라고. 고백하는 거야." 샨의 진지한 모습에 현민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더 이상 당황하는 표정은 없었다. "나는 '거울'이야. 상대의 마음을 그대로 비추기는 하지만. 다가와서 손을 잡을 수는 없어. 무리하게 다가오려 하면 '거울'은 깨질 뿐 이야. 그걸 원해? 깨진 유리 조각에 서로가 상처 입는 걸." 현민은 이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미움 받은 이유를. 거창하게 천살성도 아니었고, 세상 그 자체가 미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 신의 마음이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연약한 '거울'이 깨져 나가며 서로에게 상처를 줬을 뿐이다. 샨은 슬프게 느껴지는 현민의 눈동자를 보며 조심스레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잊었어? 나도 '거울'이야. '거울'과 '거울'은 서로를 비추며 무한히 이루어지지. 서로 만날 수는 없지만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어. 우리는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나는...." "네가 어느 세상에 있든지 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 알았지?" 쪽! 샨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방심하고 있던 현민은 얼떨결에 또 한 번 당하고 말았다. 이로써 뽀뽀 경험은 네 번. 첫 번째(현진)는 사고였고, 두 번째는 도둑 키스(페튜니아), 세 번째, 네 번째(샨)는 덮쳤다. 남자로서 참 으로 한심한(?) 인간이 아닐 수 없었다. "너 자꾸..." "하지만 자꾸 하다보니 또 하고 싶은걸?" "윽!" "지금도 네가 싫어해서 참고 있는 거야." 샨이 이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은 현민이었다. 만약 그녀가 강제로 나온다면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다. 비슷한 마법 사용에 서클은 더욱 높으니, 현민이 이길 확률은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예전의 샨은 착하고 순진했는데...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못된 여자." 거침없이 나오는 샨의 대답에 현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세상에 못된 여자는 넘치고 넘치겠지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혜, 또 너냐.' 너무나 뻔해서 말하기도 싫은 현민이었다. "자, 이제 침(?)도 발랐으니깐 계속해야지?" "하아...." 먼저 일어난 샨이 현민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현민의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늘은 어떻게 정리할까?" 샨은 현민에게 가면을 건네며 가벼운 태도로 주변을 훑었다. 첫날 보았던 것처럼 하늘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눈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유저들이 그들의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다시 가면을 착용한 현민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제대로 한번 해볼래?" "어떻게?" '제대로'라는 현민의 말에 샨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메테오 가능하지? 메테오를 사용해줘. 뒤는 내가 알아서 할게." "좋아! 장소는?" "아무 곳이나 상관없어. 이 전쟁터 위에만 떨어지면 돼." "OK~!" 조금 전 8서클 마법을 사용한 샨에게는 약간 무리한 부탁일 수 있었으나, 현민은 그것을 알면서도 굳이 그 마법을 부탁했다. 그가 생 각하기에 그것보다 좋은 마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민이 무작정 부탁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의 부담을 덜어줄 생각이었기에 가능한 부탁이었다. 샨은 현민의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내려가자." "텔레포트?" "아니, 여신의 발걸음(3서클)." 현민은 자신의 바로 밑에 마법을 사용하며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샨의 적절한 보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샨은 현민이 마법을 사용하자마자 감싸고 있던 실드를 해제하며 그와 함께 지상으로 떨어졌다. 쿠우웅! 그들이 지상에 도착할 때쯤, 묵직한 소리가 퍼져 나가며 그들이 만들어놓은 얼음의 창들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짓눌러졌다. 샨과 현민은 깔끔하게 정리된 대지의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떨어지는 동안 샨이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였기에 피떡(?)이 되어버리는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절대 방어." 땅으로 내려선 현민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주변을 둘러쌀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방어막을 만드는 것이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동안 샨이 무방비가 되고, 자신 역시 그녀를 보조하는 동안 무방비가 되기 때문이다. 현민의 뜻을 짐작한 샨이 절대 방어에 일루전 마법을사용하면서 그들의 존재는 있으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이 정도라면 당분간 시간은 끌 수 있을 것이다. "시작하자." "응." 샨은 대답과 즉시 메테오의 주문을 외웠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현민은 마녀의 복장과 함께 모든 장신구를 착용했다. 수준이 수준이니만큼 아이템의 보조가 반드시 필요 했다. 그의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나며 현민의 모습이 현민이면서도 현민 같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마녀의 모습이었다. "그럼 나도 가볼까? 진실된 거짓." 시작은 환상 마법이었다. 현민은 스스로에게 진실된 거짓을 사용하며 자신 이외의 자신을 30명 만들었다. 어제 보았던 또 다른 자신의 능력을 흉내 낸 것이다. 아민처럼 30며의 존재가 정신적으로 독립된 개체는 아니었지만, 현민이 지금부터 할 일은 거기까지 필요 없었다. 본래 현민은 중앙에서 눈을 감았고, 30명의 현민이 그를 중심으로 넓게 흩어졌다. 5명의 현민이 본래의 현민을 둘러쌌고, 나머지 25명의 현민이 그런 현민들을 둘러쌌다.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25명의 현민들은 5명이 하나가 되어, 본래의 현민을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현민처럼 다섯 방향에서 둘러쌌다. 단순히 서 있는 것만으로 주변의 소리가 사라지며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현민이 만들어낸 기운을 느낀 것인지 몇 명의 마녀가 그의 주변으로 찾아왔다. 현민이 만들어놓은 방어막이 있었지만, 마녀들에게 그 정도는 가벼웠다. 그녀들은 소리 소문 없이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현민을 구경했다. "뭘 하려고 저렇게 복잡한 오망성을 그리는 거지?" 현민이 사용하는 것이 마녀의 능력이다 보니, 같은 마녀들은 현민의 위치가 오망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민들이 5명씩 짝을 이루어 오망성을 그렸고 5개의 오망성이 꼭짓점을 이루며 또 다른 오망성을 그리고 있 었다. 그렇게 그려진 오망성은 현민ㅇ르 감싸고 있는 또 다른 오망성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온 것이다. "언니, 지금 루나가 그리고 있는 마법진이 뭐예요?" 현민이 그리려고 하고 있는 마법진은 그 구조가 복잡했기에, 같은 공격 계열(마법진)이 아니라면 해석하기가 힘들었다. 시약 게열과 저주 계열이 주를 이루고 있는 마녀들의 시선이 유로시아에게로 모아졌다. "음... 지금으로 봐서는 증폭 계열 같은데?" "증폭?" 과연 유로시아라고 해야 할지 그녀는 현민의 마법진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아마 커다란 걸 한 방 터트리려나 봐." "에에엑!" 유로시아의 대답을 들은 마녀들이 내숭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저...언니, 루나가 크게 터트린다면 저희는 도망가야 되지 않나요?" 그녀들은 같은 마을의 마녀로서 현민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그가 진짜 마음먹고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라면,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 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모든 마녀들의 생각이었다. "훗! 너희들은 아직 멀었어. 그렇게 남자를 몰라서 언제 시집갈래?" "윽!" "루나가 우리를 다치게 할 것 같아?" 뭘 믿고 그렇게 자신하는지 모르겠지만, 유로시아의 얼굴에는 조금의 걱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시작했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가만히있던 현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앙에 있던 현민은 조금의 미동조차 없었으나, 그를 둘러싼 나머지 30 명의 현민들이 각자의 앞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들은 손끝이면 시선까지 작은 동작 하나하나도 완벽한 일체를 이루며 보기 좋은 장관 을 연출했다. 아직 마법진은 그려지지도 않았으나, 마녀들의 입은 다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잘 봐둬.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마법진일 테니깐." 그렇게 현민의 마법진이 시작되었다. 처음은 평범했다. 손바닥 정도 크기의 작은 원 안에 하나의 글자가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원을 그리며 또 하나의 마법진을 그 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려진 마법진이 또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 냈다. 살을 불려 가듯 점점 거대해지던 마법진은 순식간에 현민의 몸을 넘어섰다. 현민들은 그것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스윽- 마법진을 따라 오라갔던 그들의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오자, 머리 위에 있던 마법진도 그들의 손가락을 따라 바닥으로 내려왔다. 지면 을 약간 남기고 자리에 멈춘 마법진들은 붉은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그것으로 어느 정도의 준비가 되었다 생각한 현민은 팔을 들어올려 또 다른 현민을 가리켰다. 각자의 밑에 있던 마법진들은 그들의 손 에 따라 또 다른 현민에게로 옮겨졌다. 마법진이 지나간 자리에 붉은색의 기운이 남으며 또 다른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나의 별이 그려지고, 그것을 둘러싸는 원이 그려졌으며, 각자의 마법진이 그 별의 꼭짓점에 멈추었다. 이 모든 것이 현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그들의 중심에 있는 현민은 두 눈을 감은 채 조금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법진을 이루고 있는 현민들은 하나 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며 마법진에 글자를 새겨 넣었다. 남자라 생각하기에는 낭랑하고, 여자 라 생각하기에는 약간 낮은 듯한 목소리가 조용해진 전쟁터에 진혼곡처럼 울렸다. - 그대와 나 하나가 되어 심연의 깊은 어둠으로 돌아가, 그 근원이 하나인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는바. 우리 두 개의 육체를 지닌 하나 의 존재. 갈라져 있어도 갈라져 있지 않으니 우리의 의지 역시 하나를 이루리라. 우웅! 우웅! 우웅! 새겨지는 글자가 많아질수록, 현민의 주문이 계속될수록 마법진에서 울리는소리와 붉은 기운이 더욱 선명해져 갔다. 그 거대한 크기와 기운에 대기의 흐름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 하나로 이어진 그대와 나의 혈흔이여, 섞일 수 없되 섞이는 생명의 근원이여, 그대들의 존재로서 우리들 하나 되니, 그 무엇도 다르 지 않으리라. 그 주문을 마지막으로 모든 글자가 새겨지자 붉은색의 마법진이 은색으로 바뀌었다. 현민을 감싸고 있는 마법진이 하나, 그 마법진을 감싸고 있는 마법진이 5개였으나, 현민이 그리려 하는 마법진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 었다. 가장자리에 있던 25명의 현민들은 원래의 주문에 이어 또 다른 주문을 외웠다. - 그대들의 뜻을 받아들여 우리 역시 어둠으로 들어가니, 우리의 의지 역시 그대들과 하나 되는바. 25명의 현민이 그렇게 말하며 한 손을 들어올리니, 은색으로 빛나던 마법진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5명을 이루고 있던 현민들은 또 다른 그룹의 현민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던 다섯 무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꼬 링레 꼬리를 물고 얽혀들었다. - 하나로 이어진 우리들의 혈흔이여, 섞일 수 없되 섞이는 생명의 근원이요. 그들의 발치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이 그 한마디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천천히 움직이며, 그들의 시선이 도착 하고 있는 또 다른 현민의 무리에게로 옮겨졌다. 그 마법진의 빈자리에는 다른 무리의 마법진이 옮겨져 왔고 말이다. 마법진이 지나간 자리에 붉은 잔상이 남으며 이전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거대한 붉은색의 선이 하나의 마법진을 이루었다. - 그대들의 존재로서 우리 역시 하나 되니, 그 무엇도 다르지 않으리라. 이것은 맹세의 외침이요 의지의 선언이니, 그 누구도 거역하 지 못하리라. 조금 전이 5명이라면, 이번에는 25명의 현민이 마법진에 글자를 새겨 넣었다. 사람 수는 이전보다 5배나 많아졌으나, 마법진의 크기는 그 이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모든 글자를 새겨 넣는 것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었다. 마침내 마법진의 모양이 완성되었으나, 아직 제대로 된 완성은 아니었던 듯했다. 마법진은 아직까지도 붉은색의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 이때, 중앙에서 가만히 있던 5명의 현민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양손을 가슴까지 들어올렸다. 그들의 동작에 맞추어 바닥에 있던 마법 진이 그들의 가슴 부분까지 올라왔다. 그들이 다시 손을 내리자 가슴까지 올라왔던 마법진이 아래로 내려가며 6개로 갈라졌다. 하나의 마법진을 제외한 나머지 5개의 마법진은 각자의 현민에게로 옮겨졌다. 그들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마법진을 확인하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현민의 무리들에게로 돌아섰다. 그들의 시선과 손길에 따라 머리 위의 마법진이 별의 빈 공간에 채워졌다. 새로운 자리에 옮겨진 마법진은 본랜의 색깔을 잃어버리며 붉은색으로 돌아갔고, 가장자리에 있던 현민들이 그런 마법진에 새로운 문자를 추가했다. 그러는 동안, 중앙에 있던 현민들은 별을 이루는 선과 선이 만나는 접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각형을 이루는 접점의 꼭짓점에 그들이 위치했다. 중앙에 있던 마법진은 그들의 뒤를 따라 이동하며 중앙을 가득 채울 만큼 커져 버렸다.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5명의 현민은 조금 전과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양손을 가슴까지 들어올려 마법진을 띄웠고, 두 손을 다시 내 리며 그 마법진을 나눴다. 그리고 그렇게 나누어진 마법진을 별 모양의 뾰족한 부분 사이로 옮겼다. 두 번째로 옮겨진 마법진은 거대한 마법진의 별을 감싸고 있는 선(원 모양)의 중앙 부분에 놓여졌다. 2개의 마법진이 포개지며 서로의 선이 얽혀들었으나, 물에 잉크가 떨어진 것처럼 자연스럽게 섞이며 하나의 마법진으로 이어졌다. 사라진 부분을 대신하여 새로운 문 자가 마법진의 주변에 나타났다. 그것을 보고 있던 마녀들의 미간은 절로 찡그려졌다. "도대체 몇 개의 마법진이 얽혀 있는 거지?" "으으! 언니, 머리가 너무 아파요. 설명 좀 해주시면 안 돼요?" 가장 먼저 그렸던 손바닥만 한 크기의 마법진만 해도 30개이고, 그것이 살을 불려 가며 기아학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마녀들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단순히 숫마나 세는 것이라면 그녀들의 머리로도 충부했지만, 마법진이라는 것은 하나로 보여도 하나가 아니고, 어떤 것은 글자 그 자 체로도 마법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공격 계열의 마녀가 아닌 그들에게 마법진의 숫자를 세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로시아에게 부탁한 것이었으나, 그녀 는 지금 현민의 마법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두 개의 마법진이 합쳐지고 모자라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어디에 이런 사용이 적혀 있는 거지? 아, 저긴가? 흠... 저 한 글 자를 저기에 넣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효과가 나타나다니... 역시 재미있어. 근데 저 부분은 왜 들어간 거지? 풀어진다? 섞인다는 말이 따로 들어가 있으니 무언가 다른 능력을 가졌다는 말인데...." 도리도리. 자기만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유로시아를 보며 주변의 마녀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들도 마녀이기에 이렇듯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 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현민의 마법진을 빠르게 훑어보던 유로시아가 돌연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웬만하면 놀라지 않는 그녀였기에 모두의 시선이 현민 쪽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는 그녀들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이한 방법으로 마법 진이 그려지고 있었다. 마법진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붉은색의 기운이 중앙의 현민에게 모여들며 소용돌이쳤다. 그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으나, 그녀들이 놀란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가장자리에 있던 현민들이 갑자기 폭사(爆死)하면서 하 나의 마법진을 이룬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법진은 커다란 마법진의 빈 공간을 메워갔다. 붉은색으로 빛나던 마법진이 은새긍로 바뀌어가며 중앙에 있던 현민과 샨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확인한 5명의 현민은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 흔들리고, 흔들리고, 흔들려서 보낼의 형태가 무너지니, 그대들 여러 개로 갈라져 나에게로 오라. 완성되었다 생각했던 마법진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또 한 번 갈라졌다. 이번의 마법진은 그 크기만큼이나 갈라진 수가 많았다. 13개. 하나에서 13개로 갈라진 마법진은 지금 이상으로 그 크기가 거대해졌다. 5명의 현민은 그러한 마법진을 향해 주문을 외웠다. - 준비된 그대들이여,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라. 현민의 말이 끝을 맺자 허공에 떠 있던 마법진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녀들은 허공을 날아가는 거대한 마법진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거 정말 대박인데? 할머니들이 보셨다면 난리 났겠어." 오직 유로시아 한 명만이 허공의 마법진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양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하나의 마법진을 그 렸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양손을 사용해야 할 만큼 복잡한 마법진이었다. 허공에 떠 있던 그녀의 마법진이 물과 같은 상태로 변하며 그들이 있는 전쟁터 전부가 비춰졌다. "저게 그 마법진이에요?" 현민이 그린 마법진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전쟁터가 작게 보이는 화면 안에서 마법진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었다. 유로시아의 주변으로 모여든 마녀들은 처음으로 보는 거대한 마법진에 눈을 떼지 못했다. 하나의 마법진이 멈추었고, 또 다른 마법진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나 둘 멈추기 시작한 마법진은 넓게 흩어져 전쟁터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자리 잡은 마법진들이 태엽 풀리듯 풀어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 새로운 형태의 마법진을 만들었다. 그것은 그 일대만을 뒤덮는 것이 아니라 다른 12개의 마법진과 하나로 이어지며 전쟁터 전부를 뒤덮었다. 첫째 날 보았던 마법진도 거대했지만, 지금 만들어진 마법진은 그것을 뛰어넘고 있었다. 파삭! 모든 마법진이 하나로 이어지며 그 완성을 눈앞에 두자, 5명의 분시들이 폭사하며 현민의 주변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것은 전쟁터의 거대한 마법진을 현민에게로 이어주었다. 현민의 마법진을 보고 있던 마녀들은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라면 아주 작은 마법이라도 이 전쟁터 전부를 뒤덮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마법이든 엄청날 것 임은 분명했다. 소용돌이치는 기운 속에서 현민의 눈이 떠졌다. 옆에 있던 샨도 때맞추어 주문이 끝났다. 현민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올지 기대되었다. 모두의 기대 어린 관심 속에서 현민의 마법이 사용되었다. "마법의 공간." 현민이 사용한 것은 그 어떤 공격 마법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민 혼자 마법을 사용했을 때의 얘기이다. 샨의 마법과 어우러지 며 현민의 마법은 그 어떤 것보다 위험한 마법이 되었다. "메테오." 전쟁터 전부를 뒤덮고 있는 마법의 공간 안에서 메테오가 사용되었다. 후우웅! 공기가 떨리는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하늘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이전에 루얀에 사용한 메테오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수백 수천 개나 되어 보이는 운석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타깃...." 잠시 말을 멈춘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시선을 맞추었다. "유저." "유저." 그 짧은 한마디로 죽게 되는 존재가 정해졌다. "아...."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운영자들은 그 한마디만 내뱉었다. 아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보니 그 한마디만 흘러나왔다. 화면 속에서 여신이 춤을 추고 있었다. 여신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남자인 것을 알고 있었으나, 화면 속의 현민은 남자라 하기엔 그 움직임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붉은 잔 상이 남으며 움직임의 여운을 만들었고, 여러 명이 같은 동작으로 움직였기에 그러한 아름다움이 더욱 강조되어 보였다. 남성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는 그의 목소리도 그들의 이러한 착각에 한몫했다. 현민의 움직임에 빠져 버린 운영자들은 그가 어떠한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페튜니아와 성희마저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 었으니, 나머지 운영자들이야 뻔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정신을 차린 것은 가장자리에 있던 25명의 분신이 폭사하며 마법진을 이루었을 때였다. 아름답게 춤을 추던 존재가 사라지면서 주위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화면을 바라보자 몰랐던 것이 이상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어느새 저런 게....?!" 그 크기가 상당했기에 운영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모두가 그의 마법진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현민의 마법진이 다시 한 번 변했다. 하나였던 것이 13개로 갈라졌고, 그 크기도 더욱 커다래진 것이다. 그렇게 변한 마법진이 전쟁터 곳곳으 로 흩어지고 있었다. "뭐야? 설마 저번처럼?" 하나에서 갈라진 마법진이 곳곳으로 흩어지며 위치하는 지금의 상황이 왠지 낯익게 느껴지던 운영자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화면에 집중했다. 그들의 예상처럼 모든 마법진이 하나를 이룬다면 그것은 전쟁터 전부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할 것이 분명했다. 어떠한 것이 든 위험한 것이다. 모두의 기대 어린(?) 관심 속에서 현민의 마법진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과 껍질 벗겨지듯 길게 늘어지며 다른 마법진과 하나 둘 이어 졌고, 그들의 예상처럼 전쟁터 전부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그 어떤 것보다도 화려한 현민의 마법진을 보며 운영자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평범한 유저... 그것도 이제 겨우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는 어린애(?)가 저런 걸 할 수 있다고? 도대체 얼마나 천재(?)인 거야?' 화면으로 보았던 지금까지의 동작이 스킬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성희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모든 운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스킬을 만들 수 있는 게 『싸울아비』의 시스템이라고는 하지 만, 이것은 그 수준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마법진에서만이라지만 『싸울아비』를 관리하는 자신들보다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현민을 보며 운영자들은 복잡한 표정이 되 었다. "멍하니 있지 말고 무슨 능력인지 알아보세요!"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던 페튜니아가 운영자들을 다그쳤다. 하지만 운영자들의 손이 움직이기도 전에 화면 속의 현민이 마법을 사 용했다. <마법의 공간.> "뭐?" '어째서?'라는 생각도 하기 전에 샨의 말이 뒤를 이었다. <메테오.> "헉!" 곧바로 떠오르는 끔찍한 상황에 운영자들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그동안의 전쟁으로 인해 운영자들 역시 현민의 마법에 대해 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마법의 공간 안에서 메테오가 사용되었다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따로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예상대로 엄청난 수의 운석들이 전쟁터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티, 팀장님, 저거...." 운영자들은 곧 있을 끔찍한 상황에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현민의 싸움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싸움 이후 전쟁터를 복구할 것이 걱정되었다. 전쟁터 전 지역에서 떨어지고 있는 만큼 그들이 복구할 영역 역시 전쟁터 전 지역이 되었다. 이전과 같으면 대륙 전체를 걱정했겠지만, 이제 현민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그러나 보다~' 하고 넘어가게 된 운영자들이었다. "저런 게....마법사."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운영자들은 화면에 가득 찬 운석을 바라보며 진실로 감탄했다. 현민의 마법은 그 누구의 마법과도 달랐다. 아직 6서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가 마법을 다루는 능력은 세계적인 천재 채리플랑을 뛰 어넘고 있었다. 만약 현민이 8서클이라면 어떨까? 운영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떨었다. 모르긴 몰라도 집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을 것이 다. "팀장님, 이번 유저 전쟁이 끝나면 다른 나라의 압박도 줄어들겠죠?" 누군가의 질문에 페튜니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가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정도면 이미 리셋(Reset)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휘유~ 고등학생 한 명이 전 세계의 유저를 상대로 이겨버리다니. 이게 소설이라면 그가 먼치킨 주인공이겠죠?"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으나, 운영자들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 비록 며칠 동안 철야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여태껏처럼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야 작업을 하면 했지, 사람을 상대하기는 싫었다. 제 118장 네크로맨서 현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거나 다른 존재와 싸우고 있던 유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밑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늬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불안감을 느낀 몇몇 유저가 그것을 지우려고 노력했으나, 은색으로 반짝이는 그것은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그때, 엄청난 소리가 전쟁터에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그 근원을 찾아 하늘로 옮겨졌다. "...젠장!" 몸든 이들의 싸움이 멈춰졌다.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붉게 타오르는 거대한 돌덩어리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 다. 이제는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메테오를 보며 유저들의 행동은 다양했다. 도망가는 유저도 있었고, 뭉치는 유저도 있었다. 과연 그들 중 몇 명이 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모두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차에 하늘에서 떨어지던 운석이 지면에 부딪혔다. 그러자 거대한 폭음과 폭발이 일어나며 일대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러한 운석이 하나로 끝나지 않고 연속해서 떨어지며 전쟁터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러한 일을 벌인 현민과 샨은 자신들만의 안전한 보호막을 만든 채 그러한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네 말대로 '제대로'인 것은 맞는데... 이건 약간 심한 것 아냐?" 샨은 미간을 찡그리며 현민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의 파괴력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의 수와 그 범위였다. 그녀도 마법을 사용하며 어느 정 도 수준을 예상하기는 했으나,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전혀 다르다고 해야 할 정도로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마치 세상 의 종말이라는 아마겟돈을 보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떨어지는 유성은 없었지만, 유성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파괴될 것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한 마법 속에서 과연 살아남은 존재가 있을지 의심되었다. "괜찮아. 이 정도에 죽을 존재들이 아니거든." 현민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샨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운석이 가지고 있는 무게와 중력이라는 거대한 힘이 작용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게 메테오이다. 그것 자체로만 해도 버틸 수 있는 존재가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는데 살아남은 존재가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현민은 그런 샨의 의심을 무시한 채 정작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마녀들의 잔소리야." "루나~!" "봐." 현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린의 외침이 그의 근처에 울려퍼졌다. 현민은 샨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후,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린이 현민에게로 다가왔다. "너 대체...!" "뽀뽀." "무슨 헛소리야?" 퍽! 성난 그녀를 향해 겁 없이 입술을 내밀던 현민은 그녀의 강한 주먹에 복부를 얻어맞고 허리를 꺾었다. 샨은 현민의 어이없는 행동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배를 부여잡고 있던 현민은 힘겨운 표정으로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아하하! 화났어?" "당연하지! 너 혼자 그 많은 적들을 다 처리하면 어쩌자는 거야?! 한참 재미있었는데 찝찝(?)하잖아!" 그녀의 높은 목소리에 현민은 조용히 자신의 옆을 가리켰다. "같이했는데...." "응?" 그제야 린의 시선이 샨에게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치며 불꽃이 튄 것은 착각일까?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마녀들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왠지 묘한 분위기에 현민이 볼을 긁적였다. "누구야?" 먼저 입을 연 것은 린이었다. 샨 역시 그런 질문을 담은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은 린이고, 이쪽은 샤이나." 두 사람의 얼굴에 비슷한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네가?'라는 것 같았다. 현민의 팔을 잡아챈 린이 옆으로 자리를 옮겨 모두가 들을수 있도록 속삭(?)였다. "8서클이라며? 나이가 많다며?" 울컥! 그녀의 한마디에 샨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은 당연했다. 이전의 황녀 사건도 그렇고, 이제 곧 서른이라는 압박감(?)에 예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라이벌이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린에게 이러한 말을 들었기에 더욱 분노하는 샨이었다. 샨은 살벌한 표정으로 다가와 린을 한 차례 노려본 후, 현민의 팔을 잡아채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린과 마찬가지로 모두 가 들을 수 있게끔 속삭(?)였다. "이제 곧 300살이라며? 늙다리라며?" 울컥! 마녀로서는 한창의(?) 나이라 할 수 있었으나, 여자로서 나이가 신경 쓰이는 것은 린도 마찬가지였다. 린은 조금 전의 샨과 비슷한 표 정이 되었다. "누구보고 늙다리래?" "나도 아직 20대거든?"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금 부딪치며 또 한 번 붉꽃이 피어올랐다. "좋은 말로 할 때 내놓으시지? 나이도 어린것이." 휙! 린은 샨에게서 현민을 빼앗아 자신의 품에 안았다.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만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재미(?)를 뺏어간 현민에게 화를 내기 위해 찾아온 린이었으나,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것에 대한 내용이 남아 있지 않았다 . 그저 어떻게 해야 현민이 자신의 것(?)인 지를 강조할 수 있는지만 생각했다. "내가 벌써 침 발라놨으니 관심 끊으시죠, 어르신." 휙!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우리는 이미 같이 살면서 못 볼 것(?) 다 본 사이인데." 휙! 샨이 린의 품에서 현민을 빼앗았으나, 그녀가 빼앗기 무섭게 린이 다시 현민을 빼앗아 품에 안았다. 서로가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끔찍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피곤했다. 중간에 끼어 있는 현민은 두 사람의 유치 한 싸움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신을 좋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라면 기분이라도 좋았겠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단순히 지는 게 싫어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주인공만의 특권(?)인 삼각관계가 아닌 것이다. 누가 말려 주기만을 기다렸지만, 멀리서 웃고 있는 마녀들을 보니 직접 움직이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았다. "아잉~" 주춤. 현민의 애교 어린 목소리에 린의 움직임이 멈췄고, 가까이있던 샨이 두 걸음 물러났다. 정말 극단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싸움을 멈추고 차가운 얼굴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반응에 당황한 것은 현민이었다. "왜, 왜?" "...미쳤구나?" "...미쳤구나?" 누가 현민의 친구 아니랄까 봐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정말 완벽한 호흡이 아닐 수 없었다. 애초에 현민이 원했던 것처럼 두 사람의 싸움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지만, 현민은 또 다른 이유로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 조금 전 두 사람의 표정이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은(?) 것 때문에 고민하는 소심한(?) 현민이었다. 한 편의 희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민의 행동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던 마녀들은 어느 순간 느껴진 수상한 기운에 시선을 돌 렸다. 흠칫! "이 정도로 강력한 사기(死氣)라니...." "네크로맨서인가?" 그들이 있는 장소와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으나, 마녀들은 멀리서 느껴지는 기운에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그 만큼 거대한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 어머니, 적이에요.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던 마녀들이 하나 둘 현민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심각한 표정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현민의 얼굴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강한가 봐요?" "느껴지는 기운으로 봤을 때는." 다른 누구도 아닌 마녀 중의 마녀, 유로시아의 이야기였기에 현민은 가라앉았던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혹시나 있을 기습, 또는 은신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착용하고 있던 장신구는 최소한만 남겨 놓았고, 쓰고 있던 가면은 어릿광대 가면으로 바꾸었다. 장난이 아닌 실질적인 전투를 위해서 였다. 루인아츠 또한 봉인된 모습을 풀며 전투 상태가 되었다. "아아, 혹시 언데드한테도 저주가 통하나요?" 기운이 느껴지던 방향을 잠시 쳐다보던 현민은 마녀들을 향해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기운이 다가오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 기 때문이다. "몇 개 통하는 게 있긴 하지만, 좀비한테나 통하지 스켈레톤한테는 안 통해." 그가 무엇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지 어림짐작한 유로시아는 힘들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약 계열은요?" "시약 계열도 직접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어. 저주든 시약이든 기본적으로 생명체에만 반응하니깐. 그나마 몇 명이 묶어둘 수 있을 정도?" 최강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마녀들이었지만, 그런 그녀들에게도 약점은 존재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생명체에만 작용한다는 것이다. 공격 계열의 마법진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지만, 시약 계열과 저주 계열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네크로맨서는 마녀들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좀비에게 통하는 저주는요?" "움직임을 늦추는 것과 빠르게 부패시키는 것 정도, 시약 계열은 구속하는 정도뿐이야." "하아...." 현민은 유로시아의 대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런 상황이라면 커다란 마법을 하나 준비해야 하는데, 조금 전의 마법으로 인해 잠시 동안은 마법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 문이다. 마법진의 능력이 어마어마했던 만큼 그 반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일단 지금 다가오는 네크로맨서는 제가 상대할게요. 마녀분들은 다크 엘프 분들과 함께 남아 있는 유저들을 상대해 주세요." "헤에~? 조금 전의 공격에 남아 있는 유저가 있을까?" 세상을 부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마법이었기 때문에 마녀들은 살아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애초 에 유저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을 뿐, 현민의 마법은 그녀들조차 저항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엄청났던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능력을 보고 비교했을 때, 현민 이상의 능력을 가진 존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만큼 살아남은 존재들도 많은 것이다. 현민은 주변을 전부 훑어본 후 주위 사람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150만 명이나 남아 있네요." "호오~?" "그중 무리가 여덟이고, 나머지는 파티, 또는 개인이라네요." 이전의 유저 수에 비하면 확실히 적은 숫자였으나, 150만명이라는 숫자는 결단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녀들은 그만큼이나 남아 있다는 사실에 환한 얼굴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현민이 유저를 처리하는 바람에 말은 안 했지만 약간 찝찝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격 급한 마녀들은 이미 날아올랐고, 그나마 차분한 마녀들도 빗자루를 들고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마녀들의 재촉 어린 표정에 유로시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알았다, 알았어. 그럼 루나, 네크로맨서 좀 부탁할게." "네." 유로시아가 날아오르고 모든 마녀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린을 제외한 마녀들은 네크로맨서가 있는 방향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끝내지 못한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떠나고 세 사람만 남게 되자 현민이 린을 돌아보았다. 그가 알고 있는 린은 이런 자리에 빠질 만한 마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는 안 가?" "그, 그냥 여기 있을래." 린은 현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이 이제야 떠올랐기 때문이다. 약간(?)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 슬슬 여자로서 자각하기 시작한 린이었다. 유로시아가 보았다면 만족했을 것이다. 샨은 그런 린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이 못된 여자와 싸우고 난 이후 현민을 노리기 시작한 것처럼, 그녀가 자신과 싸우고 난 이후 현민에 대한 감정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독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긴다 생각하면 아쉽기 그지없는 게 현민이었다. 분홍빛을 풀풀 풍기고 있는 린과 살벌하기 그지없는 샨의 마음을 대략 느낄 수 있었던 현민은 그들을 상대하는 대 조심스러워졌다. 여기에서 조심하 지 않으면 모두가 상처 입기 때문이다. 이전에 얘기했듯이 그의 마음은 연약하기 그지없는 '거울'이었다. "린." "...응." 현민은 그녀의 팔을 잡아 자신의 앞으로 이끌었다. 현민의 손길에 힘없이 끌려온 린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현민은 그녀의 목에 팔을 두르며 이마를 맞대었다. 이전에 했던 것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샨의 표정이 뾰로통해졌다. 그가 어떤 마음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러한 행동은 자신에게만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지 알지?" "...."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으니깐 너도 이제 알고 있을 거야." 현민은 시선을 돌려 샨을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온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붙어 있던 것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 지만, 그런 그녀도 현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다가갈 수 있다면 금세 알 수 있는 존재가 현민이었고,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는 존재가 현민이었다. 린이 그런 현민을 알지 못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네가 없다고 다른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아." 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코와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으나, 현민의 가면으로 인해 입술이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녀는 가만히 서서 현민의 눈을 바라보았다. 가면을 통해 보이는 현민의 눈은 그녀가 알고 있는 현민의 눈이었다. 단지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부끄럽던 감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니깐 마음껏 놀다와." 현민은 팔을 풀며 한 걸음 물러났다.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린에게는 현민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웃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잠깐 이상했던 것 같았다. 린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샨은 기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런 샨이 너무 얄밉게 느 껴졌으나, 그녀는 어른이었다. 린은 도도한 표정으로 깔끔히 무시했다. "조심해, 다치지 말고." "으응." 하지만 그런 린의 표정도 현민의 다정한 말에 잠시 무너졌다. 현민의 눈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여겼으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막 을 수 없었다. 린은 이전보다 더욱 붉어진 얼굴을 들키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에휴~ 완전 어린애라니깐." 린을 떠나보낸 현민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룬, 너...." "응?" "여자 다루는 게 너무 능숙한 것 아냐?" "뭐?" 현민의 표정에 어이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나도 그렇고, 린이라는 마녀도 그렇고 은근슬쩍 꿰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데? 혹시 나도 이렇게 작업(?) 걸린 거야?" "농담하고는." "난 농담이 아닌데요?" 정말로 농담이 아닌지 샨의 얼굴은 진지하기만 했다. 현민이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면 분명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민은 기운이 느 껴지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녀의 진담을 받아주지 못했다. "그만.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야." 현민의 그런 태도에 샨의 입술이 살짝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를 향해서 직접적으로 뭐라 하지는 않았다. 현민의 말처럼 멀리서 느껴지던 기운이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 불길에 섞여 검은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아 있는 정신력이 대략 8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까지 10분 정도... 아슬아슬한가?" 현민은 자신의 상태를 계산한 후 슬쩍 옆에 있는 샨을 바라보았다. '내가 도와줬다고는 하지만 8서클 마법만 두 번이야. 첫 번째 마법을 사용하고 난 후 샨의 상태를 생각해 본다면 하루에 두 번이 한계 . 나랑 샨이 함께한다고 해도 오랜 시간을 기대할 수는 없어.' 8만이라는 정신력이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고, 남아 있는 정신력이 적다 해도 8서클의 마법사였으나, 현민은 지금의 상황을 유리하다 보지 않았다. 앞의 앞을 계산해보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모를 일까지 전부 생각한다면 지금의 상태는 오히려 위험하다 할 수 있었다. "샨, 절대로 죽으면 안 돼. 여차하면 무조건 도망가는 거야. 알았지?" "갑자기 왜 그래?" "일단 그렇게만 알아둬." 현민은 샨을 자신의 뒤로 보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몸을 움직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호흡이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현민의 숨소리는 이내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기묘한 정적이 현민의 주변을 감쌌다. '생각보다 빠른걸.' 현민이 호흡을 가다듬는 그 몇 분의 시간 만에 아지랑이로 보이던 기운이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생각보다 빠른 움 직임이었다. 지평선의 전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그것은 유저들의 시체로 추정되는 좀비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죽은 것인지 그 외양 이 하나같이 끔찍했다. "저게 다 좀비야?" "그런 것 같은데?" 샨은 시작도 하기 전에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좀비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네크로맨서만 잡으면 알아서 사라지는 것이 좀비였으나, 과연 저만큼의 좀비를 뚫고서 네크로맨서를 잡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 두 사람은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렸다. 최대한 빠르게 네크로맨서를 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이 준비하던 타이밍이 오기도 전에, 모든 좀비들이 어느 정도의 거리를 남겨 두고 자리에 멈추었다. 예상치 못한 그들의 움직임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지?" "글쎄." 처음에는 자신들을 유혹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뚜렷한 움직임이나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이 좀비의 움직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많은 수의 좀비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상상도 못한 상황에 현민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가장 처음 만들어진 것은 머리로 추정되는 덩어리였다. 좀비와 좀비가 달라붙으며 둥그스름한 형체를 이루었고, 부분부분을 채우고 비 우며 눈, 코, 입, 귀로 추정되는 것이 만들어졌다. 윗부분에서 하나하나 이어지고 있는 좀비들은 머리카락으로 추정됐다. 그렇게 하나의 얼굴이 만들어지고, 그 머리에 목이 만들어졌다. 계속해서 달라붙는 좀비들은 목에 이어 어깨, 가슴, 팔, 허리 순서로 형체를 이루었다. 좀비의 형체 그대로 얽히고설키며 만들어진 것이라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좀비 킹...." 샨의 입에서 그것의 정체가 흘러나왔다. 현민으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으나, 그런 그도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시체 덩어리가 웬만한 보스 몬스터 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아직 절반밖에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그 크기가 63빌딩과 맞먹어 보였다. "위험한 것 같은데?" "아주." 대답을 하고 있는 샨에게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 겨우 상체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시체 덩어리가 벌써부터 거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두 팔로 지탱하며 허리를 들어올리자 인간의 형체를 이루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상체가 만들어지는 시간의 절반도 되지 않아 두 다 리가 완전한 모습을 이루었다. 무릎 꿇은 자세로 앉아 있던 좀비 킹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은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처음으로 막막 함을 느꼈다. 어제 싸웠던 로봇? 그런 것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어제 보았던 그 로봇은 좀비 킹의 발가락보다 약간 커다란 정도였을 뿐이다. 세계 에서 그 높이가 손꼽히는 대만의 타이베이가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는 좀비 킹의 크기에 현민은 할 말을 잃었다. 지금만으로도 심각한데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었다. 하나의 좀비 킹을 이루고 남겨진 수많은 좀비들이 또 다른 좀비 킹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진흙 속에서 거인이 일어나는 것처 럼 2마리의 좀비 킹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샨." 현민은 낮은 목소리로 샨을 불렀다. "역시 넌 도망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싫어." 샨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좋아하는 남자를 남겨 두고 도망가는 허약한 여자가 아니야." "그게 짐이라고~" 투덜거리고 있는 현민의 목소리가 작은 것은 아니었으나, 샨은 못 들은 척 깔끔하게 무시해버렸다. 현민의 입에서 자연스레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의 주변에는 어째서 이렇게 고집 센 여자들만 있는지 의아했다. "하아! 방법은 있고?" "일단 토네이도를 생각하고 있어." "좀비에 비할 때 너무 작지 않아?" 마법으로 만들어지는 토네이도는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토네이도와 그 크기가 달랐다.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토네이도가 하늘과 대지를 연결한다면, 마법으로 만들어지는 토네이도는 허공과 대지를 연결하는 수준이었다. 위력은 비슷할지 몰라도 규모는 확연히 달랐다. "그게 문제야. 어떻게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샨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현민이라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처음부터 마법을 다시 만들지 않는 이상 토네이도 마법의 크기만 늘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 묻지 마." 토네이도를 대신하여 정령화라는 또 다른 수단이 있었지만, 현민은 지금 당장 그것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담비가 아닌 윈디아와의 정령화라고는 하지만, 8만의 정신력만으로는 정령화의 모든 능력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여기에서 정령화를 한다면 나머지 유저들에 대한 대응이 불가능해질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은..." 두 사람은 모든 마법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 적절한 방법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좀비 킹의 성질과 크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도 소용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는 사이 3마리의 좀비 킹이 그들을 둘러쌌다. 그들의 크기 때문에 둘러쌌다고 하기에는 빈틈이 이곳저곳 보였지만, 현민과 샨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수십 겹의 절대 방어가 그들을 둘러쌌다. 특별한 방법이 없다 보니 직접적으로 그들을 공격하기보다 그들의 공격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어떤 공격이든 움직이다 보면 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고오오오오! 3마리의 좀비 킹이 비명을 토해내자 듣기에 거북한 소리가 주변을 뒤흔들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의 몸을 이루고 있는 좀비들이 좀비 킹의 외침에 맞추어 같은 말을 내뱉었다. 죽어!죽어!죽어! 강력한 의지는 하나의 힘이 되어 현민을 압박했다. 그 압박에는 몇 겹의 절대 방어도 소용없었다. 현민은 재빨리 샨을 감싸 안았다. "쿨럭!" 현민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단순한 외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강렬한 의지가 현민의 생명력을 깎아내린 것이다. 아직 공격 이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현민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현민은 고개를 들었다. "거.절.한.다." 쿠웅! 존재 같지 않은 존재와 현민의 기운이 부딪치면서 그들 사이에 공기의 흐름이 멈췄다. 현민은 스스로의 의지로 살기를 다루고 있었다. 비록 그 살기가 또 다른 존재인 아민처럼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 할 살기는 현민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억누르고 있었다. "룬." 낯선 현민의 모습에 샨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하라, 강인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여, 파괴 속에 울부짖는 어둠과 같이 모든 존재를 저주하며 분노를 터트려라. 나의 몸이 너의 몸이 되고, 너의 힘이 나의 힘이 되니. 우리 영혼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며 둘인 존재. 피의 진혼곡을 위해 어둠 속에 숨어 있 는 진실의 눈을 떠라. 루인아츠." 꿈틀. 촤르륵! 현민은 감추고 있던 루인아츠의 또 다른 모습을 깨웠다. 차가운 촉감과 살벌한 기운에 샨의 몸이 움찔했다. 살짝 고개를 들어 현민을 바라본 샨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그녀의 앞에는 더 이상 현민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가 서 있었다. 조금 전의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살기가 주변을 억눌렀다. 루인아츠와 어우러진 현민의 기운이 붉은색으로 나타나며 그의 주변 에 소용돌이 쳤다. 그런 현민의 모습은 발록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현민은 3마리의 좀비 킹을 다시 한 번 위협했다. "꿇.어.라." 그오오오! 쿠웅! 울부짖음과 같은 현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좀비 킹의 무릎이 땅에 닿았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샨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아마 어디에선가 보고 있을 좀비 킹의 주인도 그녀와 같은 상태일 것이다. 현민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롭게 발견한 능력이 아니었다면 위험할 뻔했다. 좀비의 의지가 힘을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의 의지도 힘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의 도박이 성공한 것이다. "샨." 현민은 재빨리 샨을 불렀다. 처음으로 사용하는 능력이라 컨트롤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언제 좀비 킹이 덤벼들지 예상할 수 없었다. 일반인의 손 정도로 작게 줄어든 현민의 손이 샨의 손과 포개졌다. 활짝 펴진 샨의 손을 손등쪽에서 깍지 낀 상태였다. 멜로 영화를 찍어도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그들의 자세에 샨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등 뒤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떠나 서 그녀도 여자였다. 지금만 해도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데, 현민이 그녀를 다시 한 번 자극했다. 귓가에 대고 속삭인 것이다. 샨의 몸이 움찔했다 . "좀비들을 향해서 플레임." "플레임(5서클)." 한 박자 늦긴 했지만, 앞으로 내밀어진 그녀의 손 앞에 3개의 플레임이 만들어졌다. 플레임의 외형은 파이어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 파이어볼이 닿는 순간 폭발을 일으킨다면 플레임은 단순히 타오를 뿐이다. 그런 마법이 5서클인 이유는 한번 타오르면 대상이 소멸할 때까지 꺼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범위는 좁을지 몰라도 위력에서는 밀리지 않는 것이다. 그녀의 마법이 좀비들에게 날아가기 직전. 현민의 마법이 곧이어 사용되었다. "인첸트 라이트닝." 인첸트는 많이 다루었으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상에 속성을 추가하는 게 인첸트 마법이다. 현민은 샨이 만든 플레임에 라이트닝의 속성을 추가했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아직 모른다. 좀비 킹을 향해 날아가는 3개의 플레임을 보며 샨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현민이 그녀의 움직임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라이트닝 계열의 가장 큰 특징이 뭐지?" "...확산?" "정답~" 현민의 설명은 간단했지만 샨은 이해할 수 있었다. 현민의 설명대로 진행된다면 놀라운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좀비 킹이 움직이기 시작했따.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현민의 억압이 약해진 것이다. 거대한 좀비 킹은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그들을 향해 돌진해왔다. "잘 봐." 그들이 움직였다고 하지만 샨의 플레임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마법을 피하기에는 그들의 몸이 너무 거대했다. 애초에 노렸던 가슴 부위는 아니지만 그들의 다리에 샨의 플레임이 부딪쳤다. 그들의 크기에 비할 때 샨의 마법은 너무나 작았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발가락의 때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였다. 그러가 그 작은 크기의 불꽃이 그들의 몸에 닿았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작은 불꽃이 아니었다. 화륵! 순식간에 퍼져 나간 불꽃은 좀비 킹의 온몸을 뒤덮었다. 그어어어! 불타오르는 좀비 킹이 그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크기 때문인지 주먹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위험하게 느껴졌 다. 텔레포트나 블링크, 그 밖의 다른 마법을 사용한다면 쉽게 피할 수 있었으나, 현민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저 여유로운 태도로 가까이 다가온 좀비 킹들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이겼어." 좀비 킹의 주먹이 그들에게 닿기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좀비 킹의 주먹이 내질러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주 먹을 이루고 있던 좀비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한 현상이 좀비 킹의 온몸에서 일어났다. 온몸에 불이 붙은 좀비들이 좀비 킹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 속도가 빠르다보니 거대 한 흙더미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좀비 킹의 주먹을 대신하여 좀비로 이루어진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쿠쿠쿠쿠쿵! 좀비 킹의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그것에서 떨어진 좀비의 숫자도 어마어마했다. 3개의 좀비 파도(?)에 휩쓸린 절대 방어는 한동안 자 리를 찾지 못했다. "으으으....!" "괜찮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절대 방어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샨은 자신의 머리부터 붙잡았다. 현민의 품에 안겨 있어 다친 곳은 없었지만, 절대 방어와 함께 이리저리 튕겨 다녀 정신을 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발록에게 차이며 허공을 날아다니던(?) 경험 덕에 어느 정도의 내성을 가지고 있던 현민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품 안의 샨을 바라보았 다. 좀비들에게 파묻혀 있는 탓에 한 점의 빛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루인아츠를 뒤집어쓰고 있는 현민에게 그러한 장애는 없었다. "너 이번에는 예상하고 있었지?" "쿡! 만약 그랬다면?" 현민은 장난스럽게 응대했다. 그와 친구라 할 수 있는 샨은 그의 대답이 긍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잘 때 조심해. 언젠가 네 옆에 나체로 누워 있을 테니깐." 흠칫! 이번의 충격은 약간 심했던 것인지 이를 갈며 말하는 샨이었다. 진심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그녀의 말에 현민의 몸이 굳어버렸다. 과 연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한 명의 마법사다웠다. "저기... 진담은 아니지?" "농담으로 들렸어? 걱정하지 마. 반드시 실천해줄 테니깐." "...봐주세요." "어림없어. 그러니깐 어서 네크로맨서나 찾아." 현민이 뒤늦게 고개를 숙였으나, 이번에는 잘못 걸린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벼르고 있던 샨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이제 정말로 잠자 리를 조심해야 됐다. "어서 찾으라니깐." 샨이 다시 한 번 재촉했다. 아무래도 지금 이 상황을 만든 네크로맨서에게 한이 맺힌 것 같았다. 샨에게 약점을 잡힌 현민은 그녀의 말을 따라야 했다. 현민은 4개의 눈을 번뜩이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네크로맨서를 발견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유저라고는 그 하나였기 때문에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좌표 x17. Y1482.7 Z-23.3" "텔레포트." 현민이 불러주는 좌표에 맞추어 샨이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그들이 새로운 장소에 이동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누군가의 등이 있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좀비 킹을 다루던 네크로맨서의 등이었 다. 재빨리 꼬리를 움직인 현민이 그의 신형을 구속했다. "잘했어요." 샨은 어린애 칭찬하듯 현민의 볼을 어루만지며 그의 품을 빠져나왔다. 현민의 품을 빠져나오기 전까지 화기애애하던 그녀의 분위기는 네크로맨서를 앞에 두는 순간 백팔십도로 변했다. 여자 현민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살벌함이 엿보였다. 그녀의 표정은 변함없이 웃고 있었으나, 그것은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시작하기 전에 하나 말해둘게요." "우웁!" "난 유저란 존재가 가장 싫어요." 살기가 담겨 있지는 않았으나 샨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살아날 수 있기를 빌게요. Cobweb. 텔레포트." 발목과 지면이 거미줄에 연결된 채로 그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제 119장 너를 비추는 모습 네크로맨서를 붙잡고 있던 현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 된 거야?" 현민은 기다란 꼬리로 하늘과 연결된 거미줄을 가리켰다. 그의 예상이 맞다면 이 거미줄의 끝에는 네크로맨서의 발목이 있을 것이다. 샨은 이전의 현민처럼 마법을 설명해주었다. "텔레포트라는 마법은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개념이야. 책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왼쪽 면에 껌을 붙여 놓고 잠깐 덮은 다음 다시 펼치는 것과 같은 결과이지." "...무슨 소리야?" 예까지 들어 설명했지만, 현민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왼쪽 면에 껌을 붙여 놓고 책을 덮었다 펼치면 어떻게 되있겠어? 왼쪽 면하고 오른쪽 면이 껌으로 이어져 있겠지?" "응." "그 상태에서 왼쪽에 붙어 있던 껌이 떨어져 나가며 오른쪽에만 껌이 붙어 있는 거야. 그게 텔레포트의 개념이라는 거지." "아...!" 현민은 그녀의 추가 설명을 듣고 나셔야 텔레포트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의 양쪽 페이지가 공간이고, 붙어있던 껌이 텔레포트 하는 대상인 것이다. 설명을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참으로 적절한 비유인 것 같았다. "여기에서 문제. 껌의 접착력은 무엇을 비유한 걸까~요?" "글쎄...." 샨의 설명으로 텔레포트의 개념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현민의 수준은 거기에서 그쳤다. 그는 천재를 흉내낼 수 있을 뿐,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터득하는 진짜 천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마음을 예상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지식이 따라가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비교 대상이 잘못돼서 이해할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껌의 접착력은 대상과 연결된 것이라 할 수 있어. 접착력이 강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떨어저야 하는 껌이 떨어지지 않아서 양쪽 면 모두 달라붙어 있겠지? 이처럼 대상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텔레포트되지 않고 한쪽에 남아 있게 되는 거야." "하지만 거미줄은 끊어지지 않았잖아?" 샨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자신의 말을 이해했다면 이러한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굳이 껌에 비유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껌의 접착력은 그렇다 치고, 껌의 탄력은 뭐라 생각해?" 샨은 현민의 이해를 돕기 위함인지 손바닥을 붙인 상태에서 천천히 벌렸다. "양쪽 면에 껌이 붙은 채로 책이 펼쳐지면 껌이 길게 늘어나는 것을 알고 있을 거야. 그렇게 늘어난 껌은 웬만해서는 끊어지지 않고 양쪽을 연결하지. 대상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다른 위치에 존재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지?" "...." 현민에게서 대답이 나오지 않자 샨은 질문을 바꾸었다. "하아! 그럼 반대로 껌의 연결이 끊어지는 경우는 왜 그럴거라고 생각해?"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으니깐?" "맞아. 껌의 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물건도 마찬가지야. 그 대상에 탄력이 없기 때문에 껌이 중간에서 끈헝지는 것처럼 물건도 중 간이 잘려나가는 거지." "거미줄은 그 반대의 경우고?" "이제야 이해한 거예요?" 샨은 현민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끈적끈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건 또 무슨 흉내야?" "'아내의 비밀'에 나오는 여주인공 흉내." 새삼스레 그녀의 책장이 궁금해지는 현민이었다. "...빨간책은 적당히 봐." "예습(?)한 것뿐이다. 뭐." 샨은 소녀 같은 표정을 지으며 현민에게 팔짱을 꼈다. 루인아츠의 비늘이 날카로웠지만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루인아츠가 알아서 예리함을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의 팔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객관적인 그들의 모습은 한 명의 악마와 그에게 납치당한 공주(?)였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다정해 보였다. 현민과 샨이 자리를 옮기려고 할 때, 그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에 맞추어 네크로맨서의 신형이 땅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들려오는 소리 가 예사롭지 않았으나 두 사람은 돌아보지 않았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 결과가 뻔했다. 상당한 높이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진 네크로맨서의 시체는 그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의외로 쉬운 상대였어." - 어머니가 너무 강한 거예요. "네가 너무 강한 거야." 현민의 한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두 존재가 말을 이었다. 그들의 음성에는 어이없다는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두 존재의 의견이 공통되는 것을 보면 현민이 괜히 현민은 아닌 것 같았다. "블링크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개념이고, 워프는 나와 대상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블링크가 가장 하위, 텔레포트가 일반, 워프가 고위 마법인 거야."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그들은 조금 전의 강의를 계속하고 있었다. 전쟁 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 하지만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현민의 귓가에 루인아츠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 어머니, 적이에요. 멈칫. 제자리에 멈춰 선 현민은 루인아츠의 안내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뒤편으로 좀비들의 시체 더미 위에 한 명의 유저가 있었다. 그의 능력을 확인한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거친 말이 나왔다. "젠장!" "왜 그래?" 좀비들의 시체 더미 위에 있던 유저의 직업은 성직자였다. 레벨은 420. 상당히 높은 레벨이었으나,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직접적인 공 격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스킬이었다. 그의 스킬 중에 유저를 부활시킬 수 있는 것이 보였다. [기적 Lv.3 46.8%] 레벨 1을 소모하여 반경 300m에 죽어 있는 모든 유저를 부활시킨다. 레벨을 추가로 소모한 경우 소모된 레벨만큼의 거리가 늘어난다. 300m X 소모된 레벨. 부활 가능한 범위는 스킬의 레벨에 따라 증가한다.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알려져 있던 부활 스킬이었다. 그 능력도 정령화한 현민이 사용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별한 조건만 맞다면 최소한의 대가로 최대한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는 좀비가 되어버린 유저들의 시체 한 가운데에서 그 스킬을 사용했다. "기적."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그의 등에서 펼쳐졌다. 염화와 정령화했을 때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화려해 보이는 한 쌍의 날개였다. 그를 중 심으로 빛기둥이 솟아오르며, 그것에서부터 흘러나온 일부의 빛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나선의 움직임을 보이며 넓게 퍼져 나가고 있는 그것들은 빛이 춤추는 것 같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샨은 그것을 바라보며 몽롱한 표정이 되었으나, 같이 보고있던 현민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여간 개사기들이 널리고 널렸다니깐." 현민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으나 그것을 따질 만한 존재는 없었다. 스르륵. 현민은 샨을 놔둔 채 이동했다. 그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유저의 앞이었다. 잠시 후의 결과를 뻔히 알고 있으면 서 가만히 기다려 줄 정도의 마음 착한 악당은 아니었다. 현민의 기다란 꼬리가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팅! "뭐?" 현민은 당황한 음성을 내뱉었다. 그의 꼬리가 빛기둥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온 것이다. 루인아츠의 비늘을 세우며 다시 한 번 시도해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현민은 당황했다. 그 짧은 순간에 마법과 마법진도 사용해보았으나, 어떠한 것도 빛기둥을 뚫지는 못했다. 일반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다 보니 현민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기운을 드러냈다. "멈.춰." "쿨럭!"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현민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아낸 유저가 피를 토해냈다. 하지만 현민의 목적을 생각했을 때 그것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줄어드는 생명력으로 안색이 창백해진 상태에서도 그의 스킬은 멈춰지 지 않았다. 현민은 방법을 바꾸었다. 그의 스킬을 멈출 수 없다면 그의 스킬이 완성되기 전에 그를 죽이면 그만이다. 현민은 다시 한 번 기운을 실어 입을 열었다. "죽.어.라." "크윽!" 빛기둥 안에 있던 유저가 입술을 깨물었다. 충격과 다름없는 현민의 의지를 거부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저항하면서 현민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장시간 기운을 드러내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직 미숙해서 그 런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기운자체가 사라졌다. 현민은 지금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눈앞의 존재에게로 기운을 집중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으로 기운을 드러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저에 게 향하는 기운의 농도가 증가했다. 두 사람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스킬이 사용되면 유저의 승리였고, 그가 죽으면 현민의 승리였다.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들의 대결이 어느 정도 진행된 순간이었다. 스르륵. "젠장!" 팟! 현민은 거칠게 소리치며 재빨리 샨에게로 이동했다. 샨의 마법으로 인해 아직까지 불타고 있던 유저들의 시체가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부활하기 직전의 상태이다. 현민의 이동이 이루어지기 무섭게 하늘 높이 솟아 있던 빛 기둥이 폭발했다. 쩡! 하늘에서 은색의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뭐, 뭐야?" "뭐긴, 아픔으로 힘들어지는 것을 축하하는 폭죽이지." 현민은 당황하는 샨의 손을 잡았다. 전쟁 중에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부활을 마친 유저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나."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현민이 중얼거렸다. 네크로맨서가 전쟁터의 시체를 이끌고 온 것부터 계획의 시작이었던 것 이다. 좀비 킹을 만들었던 것은 밑져야 본전, 혹은 페인트(Feint)였을 것이다. 현민은 수백 개의 결계가 일대에 만들어지는 것을 눈 뜨고 당했다. "룬...." 샨도 지금의 상황에 위험을 느꼈다. 설마 유저들이 일어나자마자 스킬을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 는 결계가 어떠한 종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결계를 뚫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툭- 스악! 현민이 발치에 있는 돌을 허공으로 띄웠다. 빠르게 움직인 현민의 손이 그것을 반으로 갈랐고, 기다란 꼬리가 그렇게 갈라진 돌을 다 시 한 번 갈랐다. 별다른 의도가 보이지 않는 행동이었으나, 현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간단한 마법진을 그리며 무언으로 마법을 사 용했다. 화륵! 지잉~ 작은 불꽃이 현민의 앞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아직까지 허공에 떠 있던 돌이 미약한 진동음을 만들었다. 현민의 행동은 여기까지 였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샨을 바라보았다. "도망가기에는 이미 늦었어." "....?" "텔레포트, 블링크 등 공간 이동 계열의 마법 사용 불가. 마법은 5서클로 제한. 5서클 미만. 1서클은 50%, 2서클은 60퍼센트, 3서클은 70퍼센트, 4서클은 80퍼센트, 5서클은 90퍼센트의 확률로 마법 실패. 물리적 데미지 절반으로 감소. 정령 소환 불가." 의미 없어 보이던 행동으로 현민이 알아낸 사실이었다. 이밖에도 더 있을 수 있었으나, 일단은 이 정도였다. 최악이다. 8서클의 마법사인 샨이 평범한 여인이 되었다는 소리다. 현민은 이제 그녀를 지켜야 했다. "이렇게까지 환영해주다니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도망을 갈 수도,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었지만 현민은 여유로운 태도를 잃지 않았다. 여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유저들의 사기를 올릴지도 모른다. 허세를 부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막아야 한다. 그는 단체전에서 사기라는 것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 고 있었다.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겠네.' 현민은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상했다. 마법을 쓸 수도, 정령화를 할 수도 없었다. 마법진은 시간이 걸리니 기대할 수 없었고, 호 칭의 능력을 사용하려고 해도 달이 뜨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지금 믿을 것이라고는 순수한 육체의 능력 뿐이었다. 몸에 새겨진 마법진과 아이템이 있으니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먼저 죽을지, 현민이 먼저 지칠지의 지구력 싸움이었다. "오세요." "이야아압!" 현민의 한마디에 싸움이 시작됐다. 현민은 샨을 감싸 안으며 유저들을 향해 등을 보였다. 어찌 보면 무방비했으나, 그것은 공격을 위한 동작이었다. 현민의 기다란 꼬리가 원을 그리며 가까이 다가오는 유저들을 반으로 갈랐다. 뻔히 예상되는 공격이었으나 유저들은 막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현민의 꼬리가 그들의 생각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현민은 한쪽 팔로 샨을 안으며 돌아섰다. 그런 그의 꼬리에는 방금 죽은 유저의 무기가 매달려 있었다. "샨, 움직이지 마." 현민은 꼬리의 무기를 손에 쥐었다. 원하던 모양은 아니었지만, 원하던 것과 가장 비슷하게 생긴 레이피어였다. 검을 손에 쥐는 순간 4개의 눈이 번뜩였다. 현민은 샨의 주변을 맴돌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니, 그 움직임이 너무 부드러워 춤처럼 보였을 뿐이다. 사방에서 유저들의 공격이 날아왔으나, 그 어느 것 하나도 샨의 몸에 닿지 않았다. 일반적인 공격은 흘려보내거나 회피했고, 그럴 수 없는 범위 공격 같은 것은 몸으로 직접 때웠다. 루인아츠의 방어력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민은 자신보다 샨의 안전에 신경 쓰며 유저들을 상대했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평소와 다른 그의 움직임이 눙에 익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눈치 챈 존재가 드물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모두가 이 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같은 움직임이 계속되다 보니 모르는 사람도 알게 되었다. 그때, 특히나 익숙하게 느끼고 있던 몇몇 유저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무당의 태극검?" 무협 소설에서든 게임 속에서든 무당하면 떠오르는 것이 태극권이다. 하지만 대세가 검이라는 이유(?)로 수십 명의 NPC들이 모여 만든 검법이 있었으니, 그것이 태극검이었다.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현민은 그런 태극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본래의 스킬이 가지고 있는 화려한 이펙트는 없었지만, 그 형(形)은 태극검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작은 틈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현민의 움직임은 완벽에 가까웠다. 문제라면 그것이 너무 완벽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태극검이라는 것 자체가 유(柔)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방어 위주의 검법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도 주변의 유저들은 줄어들 생각을 하 지 않았다. 현민은 움직임을 바꿨다. 조금 전이 부드러웠다면, 이번에는 현란했다. 좌로 가는 듯하면서 우로 날아갔고, 찌르는가 싶으면 베기를 했다. 쉽게 파악할 수 없는 현민의 검에 죽어가는 유저의 수가 늘어갔다. 더 이상 안 된다고 생각한 유저들이 방법을 바꾸었다. 현재 붙어 있던 유저들이 일제히 물러났고, 갑옷으로 전신을 감싼 일부의 유저 들이 방패를 앞세워 현민을 둘러쌌다. 현민의 검을 피할 수 없다면 막아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강한 방어력에는 현민의 검도 소용없었다. 푹! 여직 들고 싸우던 레이피어를 정면으로 던져 유저의 머리를 꼬치처럼 꿰어버린 현민은 양손을 본래의 크기로 만들며 주먹을 말아 쥐었 다. 그들이 방식을 바꿨다면 자신도 바꾸면 그만이었다. "힘은 힘으로!" 쾅! 현민의 주먹 한 방에 유저의 방패가 음푹 파였다. 그 정도면 다행이다. 현민의 꼬리를 막아야 했던 유저는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방 패와 함께 뒤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생겨난 그들의 빈자리를 또 다른 유저들이 대신 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신속하기 그지없었으나, 현민은 이미 계획했던 목표 를 달성한 상태였다. 그의 기다란 꼬리에는 조금 전 날아간 유저의 투핸드 소드가 들려 있었다. 현민은 가볍게 흔들어보았다. 그 움직임만으로도 육중한 무게가 느껴졌다. 이것을 가지고 있던 존재는 어떻게 한 손으로 움직였는지 신기했다. 스윽- 현민은 다시 일반인의 수준으로 팔을 줄였다. 그의 거대해진 팔은 무기를 들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현민이 손에 무기를 쥐자 멈춰 있던 유저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방패와 방패 사이가 벌어지며 온갖 무기와 스킬이 날아왔다. 현민은 꼬리로 샨을 들었다. 그리고 달렸다. 정면에 있던 유저들이 방패로 막았으나 현민에게도 생각은 있었다. "근력 상승." [10초간 근력이 500 상승합니다.] 마녀들이 새겨 주었던 마법진의 능력이다. 현민의 등에 은색의 선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쾅! 검과 방패가 부딪쳤으나, 그 소리는 폭발이 일어난 것과 다르지 않았다. 현민의 대검을 막은 유저는 처참한 상태가 되어 뒤로 날아갔다. 그의 뒤로 대기하던 유저들도 같이 밀려났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수습하기 힘든 빈틈이 생겨났다. 현민은 그들의 틈으로 들어가 포악한 늑대가 되었다. 현민의 공격에 당황하고 있는 유저들은 어린양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그들이 혼자였다면 상황은 오히려 나았을 것이다. 주변의 유저들을 신경 쓰느라 마음대로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들은 평소의 실력을 절반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었다. 현민은 대검을 지면과 수평으로 맞추었다. 그리고 빠르게 검면을 훑었다. "검의 속도가 5m/s를 넘으면 중력을 두 배로." 기이잉! 현민의 손이 지나간 자리에 마법진이 새겨지며 한차례 붉은 섬광이 흘러나왔다. 직접 새긴 것이 아니라 지속 시간은 짧았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만약 만족하기 전에 지워진다면 다시 그리면 그만이었다. "흐아아아압!" 콰콰콰콰쾅! 현민의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부채꼴 모양으로 정면이 뻥 뚫렸다. 중력이 강해진다는 건 무게가 늘어난다는 것과 같았다. 무게가 늘어나면 파괴력도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현민의 팔이 버틸 수 있어 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대검의 순간 데미지는 기존의 2배가 되었다. 몇 명이 뒤를 받쳐 막아보려 했으나, 그들의 노력도 현민의 검 앞에 소용없었다. 오히려 피해만 늘렸을 뿐이다. 현민은 유저들이 뒤엉켜 있는 그곳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단순히 넘어져 있던 유저들이 그의 검을 피하지 못하고 맥없이 죽어버렸 다. 기술, 능력, 실력, 그 어느 것 하나 뒤떨어진다 할 수 없는 유저들이었으나, 그들의 싸움은 현민의 일방적인 우세였다. 현민의 검은 가로막는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민을 둘러싸는 유저들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이번에는 방어 위주가 아닌 공격 위주의 빠르고 민첩한 존재들이었 다. 그 동작이 단순하고 느리다 할 수 있는 현민의 검은 더 이상 그들의 몸에 닿지 않았다. 콰콰쾅! 핑! 현민은 꼬리의 샨을 품에 감쌌다. 유저들의 숫자가 많고, 공격이 빨라 모든 공격을 방어할 수 없었다. 위험한 공격은 피하고, 웬만한 것은 몸으로 때우며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밀리고 밀리던 현민은 처음의 장소로 돌아왔다. 어느새 그의 등 뒤로 유저들이 펼친 결계가 있었다. "나 때문에..." "힘든 건 없어." 현민은 손안의 대검을 정면으로 집어던졌다. 현민과 대치를 이루고 있던 유저들은 그의 대검을 가볍게 피했으나, 뒤쪽에 있던 유저들 은 가려진 시야에 날아오는 대검을 뒤늦게 발견하고 치명상을 피하지 못했다. 말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유저들을 상대해야 할 정도로 바쁜 상황이었으나, 현민의 목소리는 그의 말처럼 잔잔하기만 했다. 목소리만 들었다면 싸우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놀아준 것뿐이니깐." 팍! 쾅! "쿨럭!" 공격하고 있는 유저의 무기를 손과 함께 잡아버린 현민은 그 상태 그대로 바닥에 내리쳤다. 바닥이 음푹 파인 것으로 보아 그 데미지 가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현민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가벼운 동작으로 손안의 유저를 던져 버렸다. 유저들끼리 뒤엉키기를 바랐지만, 이미 당해본 적이 있는 유저들은 그 한 명을 희생해버렸다. 그의 신형은 유저들이 아닌 땅바닥에 부 딪히며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어갔다. 도저히 살아 있다고 생각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 명을 처리해버린 현민은 가만히 서서 그들을 기다렸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현민이 그들을 잡아챌 정도의 움직임을 보 였기 때문인지 주변의 유저들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개방의 기술을 사용하려면 봉이 있어야 하는데... 봉은커녕 봉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네요." 촤르르륵! 현민이 말하는 동안 빈틈이 생긴 것인지 몇 명의 유저들이 덤벼들었지만, 그들의 무기와 스킬은 루인아츠에 부딪히며 듣기 싫은 소리 만 만들었다. 공격을 받은 현민의 입장에서는 움찔할 만도 하건만, 그는 별달리 신경 쓰지 않은 채 봉과 비슷해 보이는 무기를 찾기에 바빴다. 사람이 많다 보니 특이해 보이는 무기는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무기의 어떠한 부분에서도 봉으로 대처할 만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 창이라도 들고 있었다면 그 창의 자루 부분을 누렸겠지만, 가장 인기 없는 무기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창을 찾아보기란 힘들었 다. "어쩔 수 없죠. 본 실력으로 싸우는 수밖에." "헛소리!" 현민의 무슨 말을 하건 묵묵히 공격하던 유저들이 처음으로 입을 모아 소리쳤다. 상당한 제재를 받고 있는 지금도 약하다 할 수 없는 현민이 실력을 감추고 있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당은 유(柔), 화산은 변(變), 마교는 강(强), 개방은 속(速), 무협 소설을 기본으로 해서 그런지 다르지 않더군요." "그럼 지금까지의 움직임이..." "네, 그들을 흉내 낸 것이죠. 아쉽게도 개방의 움직임은 보여 주지 못했지만 말이에요." "마, 말도 안 돼!" 유저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들은 상상할 수 없었다. 평범한 움직임이 아닌 스킬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미 여러 차례 확인했지만 무시하고 있던 사실이 이번만큼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유저들의 초조한 마음은 그들의 공격을 무디게 만들었다. 채챙! 퍽! 빠르게 날아온 하나의 화살이 본래의 목표인 눈을 맞히지 못하고 현민의 뿔에 맞아 튕겨 나왔다. 샨을 밀치고 허리를 숙여 날아오는 스킬을 피한 현민은 회전하던 힘을 그대로 실어 가까이 있던 유저의 턱을 향해 발을 날렸다. 깔끔 하게 들어간 현민의 발차기가 유저의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런 유저를 향해서 현민의 기다란 꼬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걱! 가슴 부분에 하나의 선이 생기며 유저의 상체가 떨어졌다. 그의 시체로 시야를 가리고 공격하는 유저가 있었으나, 그는 한 걸음 내디 며 내지르는 현민의 주먹에 맞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현민의 손이 그의 머리를 잡았다. "나는 거울."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현민의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울렸다. 현민이 말하는 와중에 공격하는 유저가 있었으나, 현민은 잡고 있던 유저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유저의 몸을 뚫고 현민의 손이 그의 팔을 잡았다. 콰득! 현민의 손에 이끌려 빠르게 날아간 유저는 그와 비슷하게 공격하고 있던 유저의 무기에 가슴이 꿰뚫렸다. "이곳이 진실된 거짓 속이기에 나는 당신들을 흉내 낼 수 있답니다." 흠칫! 계속해서 이어지던 그들의 공격이 멈췄다. 현민의 말속에 무시할 수 없는 단어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된 거짓. 그것은 현민이 가지고 있는 최강의 마법 중 하나라 알려진 것이었다. 현민이 말한 것은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마법이 아니었으나, 유저들이 그러한 것을 알 리 없었다. 그저 이것이 진실인지, 환상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눈에 띄는 그들의 행동을 보며 현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이 어떠한 착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상현실도 현실은 현실. 따라 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그제야 자신의 착각을 깨달은 유저들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인 현민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어디..." 서걱! 한 명의 유저가 어디서 날아오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현민의 꼬리에 목이 잘렸다. 깜짝 놀란 유저들이 서둘러 물러났으나, 그 잠깐 사이에 이미 2명의 유저들이 더 당했다. 한 명의 유저는 현민의 손에 가슴이 으스러졌고, 또 한 명은 그에게 목이 잡힌 위험한 상태였다. 일부의 유저가 사라진 현민을 대신하여 멀뚱히 서 있는 샨을 노렸으나, 그들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현민의 기다란 꼬리가 샨을 감싸며, 그들의 공격이 이루어지는 부분만 정확히 가로막은 것이다. 현민은 자신의 손에 있던 유저를 그들에게 던졌다. 유저들은 날아오는 존재를 잡아주지 않았다. 허공을 날아간 유저는 그들의 신형을 지나 결계에 부딪혔다. 파지지직! 화륵! "끄아아악!" 몸속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뼈다귀가 보이면서(?) 유저의 몸에 불이 붙었다. 이것으로 한 가지 더 알 수 있었다. 들어오는 것은 모르나,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현민은 꼬리에 감싸인 샨을 자신 쪽으로 데려왔다. 결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그곳에 놔둘 수는 없었다. 그가 샨을 돌아보는 잠깐의 순간. 완벽한 기회를 잡은 유저가 현민을 향해 이동했다. 그의 단검이 곧장 현민의 목을 향했다. 목이라고 해서 루인아츠가 없는 것도, 얇은 것도 아니었으나, 그 나름대로 믿고 있는 것이 있었다. 30퍼센트의 확률로 상대방의 방어력 무시. 30퍼센트라는 게 높은 수치는 아니었으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기대해볼 만한 수치이기는 했다. 운이 좋으면 말 그대로 억만장자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 구매자만 잘 만나면 3대가 놀고먹을 정도의 돈을 얻을지도 모른다. 아슬아슬한 순간. 모두가 현민의 죽음을 확신했으나, 그들의 생각만큼 쉽게 죽어줄 현민이 아니었다. 현민의 의식보다 그의 본능이, 그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핏! 유저의 검은 현민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루인아츠의 비늘이 갈라지고, 한 줄기의 핏물이 허공으로 튀었다. 30퍼센트의 확률이 성공한 것이다. 현민이 피하지 못했다면 완벽한 죽음이었기에 더욱 아쉬워지는 공격이었다.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모두의 입에서 아쉬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유저의 단검을 피한 후. 어깨를 강하게 튕겨 몸통 박치기를 한 현민은 뒤로 튕겨 나가는 유저의 팔을 잡아챘다. 현민의 손길에 이끌린 유저의 신형이 그의 품 안에 갇혔다. 교차된 상태로 양팔이 붙잡혀 반항조차 못하고 있었다. "아가씨에게 이런 건 어울리지 않답니다." 움찔! 품 안에 있던 유저의 몸이 움찔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민의 말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유저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현민은 두 사람을 신경 쓰며 유저들의 공격을 피해 다녔다. "세계적인 스타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신 거죠?"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놀랐죠." 현민뿐만 아니라 품 안의 그녀와 꼬리의 샨을 노리는 공격도 있었으나, 그 어떤 공격도 그들에게 상처를 만들지 못했다. 두 사람을 책 임지고(?) 있는 현민이 모든 이들의 공격을 완벽히 회피했기 때문이다. 따라잡았다 싶으면 사라지고, 멀리 있다 생각하면 어느새 자신의 곁에 있어 제대로 공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현민으로 인해 유저들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그들의 대상인 현민은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째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냐고요? 나를 너무 얕보고 있네요. 채리플랑이 아무 말도 하지 않던가요? 이 정도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고." 그녀의 몸이 다시 한 번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현민의 말에 놀란 것이다. 현민의 말대로 그녀는 채리플랑을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 유명한 두 사람이었기에 자주 부딪쳤고, 지금은 언니 동생하는 사이였다. 이 번의 말도 안 되는 싸움에 대해서 단단히 경고를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안고 있는 어릿광대는 채리플랑과 같은 분류였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이 느낌을 설명할 수 없었다. "아쉽게도 틀렸어요." 흠칫! "채리플랑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어떤 존재인지." 현민은 그 한마디와 함께 그녀를 풀어주었다. 더 이상의 구속이 없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현민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누구였어?" 현민이 다른 유저들을 상대하고 있는 사이, 궁금함을 느낀 샨이 질문을 던졌다. 막 한 명의 유저를 산산조각 내어버린 현민은 대수롭 지 않은 목소리로 알려 주었다.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알고 있는 사람." "타인?" "그렇게도 말할 수 있지." 푸확! 유저의 가슴에 파고들어간 손이 밖으로 빠져나오며 그의 얼굴로 피가 튀겼다. 루인아츠로 감싸인 현민의 흉측한 손에는 그의 심장으로 생각되는 덩어리가 쥐어져 있었다. 현민은 겁 없이 다가오는 유저를 향해 그것을 집어던졌다. 기겁을 하고 피하는 유저의 머리를 현민의 꼬리가 가로질렀다. 하나의 선이 생기며 머리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잔인한 모습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응?" "네가 살인을 줄기는 게 아니라서." 멈칫. 쾅! 생각지도 못한 말에 멈칫하는 순간 거대한 충격이 현민을 뒤흔들었다. 데미지가 크지는 않았지만, 현민의 신형이 허공을 날았다. 샨을 왼팔에 안고 있어서 다행이지, 꼬리로 안고 있었다면 치명상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날아가는 와중 현민이 샨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너무나 뜬금없어서 그녀의 마음을 예상하는 게 한 박자 늦었다. 샨은 자신의 잔인한 모습을 낯설어하고 있었다. "풋! 나는 변하지 않았어. 비추는 대상이 다를 뿐이지." 한 바퀴 회전하여 몸을 똑바로 한 현민은 유저들을 밟으며 바닥으로 내려섰다. 유저들의 방해가 있던 것은 당연했으나, 교묘하게 움직 이는 현민과 그의 기다란 꼬리로 인해 제대로 된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잘 봐." 현민이 정면으로 손을 내밀었다. "실드(1서클). 실드." 퍽! "매직 미사일(1서클)." 자신을 향해 공격하고 있던 유저의 팔 쪽으로 실드를 만들어 그의 공격이 이뤄지기 전에 막아버린 현민은 당황하고 있는 유저의 복부 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사용된 매직 미사일이 그의 복부에 또 한 번의 충격을 주었다. 1서클의 마법이 실현되는 확률은 50퍼센트였지만, 결과는 어차피 '된다, 안 된다'뿐이다. 마법이 실패할 때도 있다고 생각하고 마법이 실현될 때까지 사용하면 그만이다. 한 명의 유저를 그렇게 주저앉혀 버린 현민은 또 다른 유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이제 막 자신을 향해 스킬을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실드. 스핀(1서클). 스핀. 스핀." 그의 발밑으로 반원 모양의 실드가 생겼다.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그것이 회전했다. 현민을 노리고 날아가야 하는 스킬이 본래의 목표가 아닌 주변의 유저들에게로 날아갔다. "아아악!" "꺄악!" 애초에 강한 공격인데 현민에게만 소용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뜻하지 않은 공격을 당해서 그런지 제법 많은 피해가 있었다. 현민은 품 안의 샨을 꼬리로 옮겼다. "너도 할 수 있어. 인탱글(1서클). 실드." 허공으로 뛰어오르려던 유저가 현민의 인탱글에 발목을 잡히며 꼴사나운 모습으로 바닥에 뒹굴었다. 현민은 그를 감싸는 실드를 만들어 사뿐히 짓밟아주었다. u 모양으로 현민을 감싼 게 아니라, n 모양으로 유저를 감싸는 형태였기에 밑에 깔린 유저는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탁 트인 장소에 현민이 가만히 있자 3명의 유저가 달려들었다. 현민은 예상하고 있던 것처럼 마법을 사용했다. "아쿠아(1서클). 아쿠아. 아쿠아." 철퍽! 철퍽! 세 번의 아쿠아 마법을 사용했으나, 나타난 것은 단 2개였다. 갑자기 생겨난 물은 현민을 향해 달려들고 있던 유저들의 얼굴에 무딪혔다. 유저들은 코와 입으로 들어가는 물에 호흡이 끊어지며 달 려가는 중간에 넘어져 버렸다. 이전의 유저와 마찬가지로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실드. 실드. 실드. 실드. 실드." 2개의 실드가 그런 유저를 똑같은 방법으로 구속했고, 또 하나의 실드는 달려오고 있던 유저의 얼굴 앞에 생겼다. 깡! 깡통 차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유저의 다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어린이 영화에서나 볼 만한 모습이었다. 현민을 향해 달려들던 유저들이 전부 이상한 몰골로 쓰러지자, 다가가는 유저의 수가 줄어들었다. 이전이라면 멀리서 스킬이라도 날렸을 테지만, 그것을 사용한 결과가 어떠했는지 조금 전 확인했기 때문인지 함부로 스킬을 사용하는 유저도 없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다가가는 유저의 수가 줄어든 것뿐이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민은 그 몇 명의 유저에게 친절히(?) 마법을 사용해 주었다. "파이어." 화륵! 유저의 머리카락에 불이 붙으며 오징어 굽는 듯한 냄새가 퍼졌다. 타오르는 불길의 높이가 장난 아니었으나, 별다른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지 유저의 공격은 멈춰지지 않았다. 가벼운 동작으로 첫 번째 공격을 피한 현민은 다시 한 번 마법을 사용했다. "댄싱 라이트(1서클). 댄싱 라이트." 번쩍! 너무나도 신경 쓰이는 붉은 빛이 현민의 손끝을 따라 움직이며 유저의 눈에 정확히 적중했다. 조금의 공격력도 가지고 있지 않는 마법 이었으나, 그 속성이 속성인지라 유저는 일순간 시각을 잃어버렸다. 머리가 불타는 채로 두 눈을 감싸고 비명을 지르는 그의 모습은 웃기면서도 웃을 수 없는 기묘함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한 명의 유저를 무력화 시킨 현민은 다른 유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스핀. 스핀. 매직 미사일." 텅! 퍽! 현민이 고개를 돌렸을 때 유저의 검은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상태였다. 남들 같으면 두 눈을 질끈 감을 만한 상황이었으나, 현민 은 침착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유저의 무기가 그의 손에서 빙글 회전하며 날이 없는 부분이 현민의 머리를 강타했다. 날이 없는 부분으로 맞았다고 해서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샨에게 시범을 보여 주는 상황이었기에 이렇게 해서 치명상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의도였다. 유저의 무기가 현민의 머리에 부딪히고 난 후. 그의 주먹이 밑에서부터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의 주먹이 유저의 턱에 부딪히는 순간 이번에도 역시 매직 미사일이 사용되었다. 현민의 경우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것도 샨에게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사 용한 것이었다. 기존의 타격에 또 한 번의 타격이 이루어지며 그가 받는 데미지는 배가 되었다. 쿵! 하늘 높이 날아오른 유저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잠깐의 찰나에 유저들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말이다. "인탱글."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한 명의 유저가 현민이 만든 나무뿌리에 발이 걸리며 그의 곁을 지나 한참을 굴러갔다. "홀드. 홀드. 홀드." 막 무기를 휘두르려던 유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멈춰버리는 팔 때문에 몸이 대신하여 돌아갔고, 허공에 높이 뛰어 공격하고 있 던 유저는 갑자기 고정되는 발목 때문에 무엇인가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몸 전체가 고정되었다면 차라리 손쉽게 빠져나갈 수도 있으련만, 일부만 고정시킨 현민의 마법은 그들의 중심점을 교묘하게 바꿔놓았 다.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2개의 매직 미사일이 현민의 양손에 각각 만들어졌다. 현민은 그것을 움켜잡으며 다가오는 유저를 향해 상체를 틀었다. 그의 눈앞으로 날카로운 세검이 보였다. 챙! 스윽- 현민의 왼손에 있던 매직 미사일과 유저의 무기가 부딪쳤다. 그 힘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찌르기였고, 스킬을 사용한 듯 무기까지 반짝였으나, 그러한 공격이 현민의 매직 미사일을 뚫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었다. 매직 미사일에 가로막힌 무기를 뒤쪽으로 흘려보낸 현민은 오른손을 유저의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빵~!" 퍽! 매직 미사일을 잡고 있던 현민의 손이 놓이자, 갑자기 튀어나간 매직 미사일이 유저의 얼굴을 강타했다. 짧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코 가 절로 아파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민은 마저 하나의 매직 미사일을 들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리를 높이 들어 한껏 자세를 잡은 후, 빠른 속도로 그것을 집어던졌다 . 현민의 힘에 매직 미사일의 속도가 합쳐지며 잔상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퍽! "컥?" 현민의 손을 떠난 매직 미사일은 묵직한 소음을 내며 누군가의 배에 부딪혔다. 날아올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날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유저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샨은 이 황당한 사태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매직 미사일이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방어구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그것을 그렇게 사용하는 현민에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마법만을 사용하여 유저들을 무력화시키는 모습이 처음 접속했을 때의 현민을 보는 것 같았다. 현민이 사용하고 있는 마법 모두가 1서클이라 뛰어난 살상력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주변의 유저들을 상대하는 것에 부족함은 없어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민의 주변에 쓰러져 있는 유저들의 수가 많아졌다. 다시 일어나는 유저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유저가 더욱 많아 그 수가 늘어난 것이다. 그들의 위에 올라서 있는 현민이 샨을 돌아보았다. "이게 너를 비추는 나의 모습이야." "거울...." "그래. 우리는 '거울'이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 현민의 손이 샨의 볼에 닿았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응." 현민은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 샨을 비췄다면 이제는 다시 유저들을 비출 차례다. "당신들을 비추는 나의 모습은 자비롭지 않을 거예요." 제120장 계약의 조건은? 촤악! 탁! 현민의 기다란 꼬리가 마법과 함께 유저들을 갈랐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유저가 사망하며 맡아질 리 없는 피 냄새가 진득하게 퍼져 나갔다. 그의 주위에 있는 유저들은 그 누구보다 그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구 하나를 시작으로 모든 유저들이 현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광기마저 엿볼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은 모순되게도 공포를 잊기 위해 발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현민은 이전까지의 싸움과 다르게 다가오는 유저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잡히면 부쉈고, 걸리면 찢었다. 꼬리에 있던 샨도 바닥으로 내려선 상태였기에,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어도 그의 움직임 자체를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현민의 주변에 유저들의 시체가 쌓여져 갔다. 루인아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나, 현민의 실력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유저들과 상당한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현민은 그들과 대등한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아이템은 내 차지다." 챙! 유저의 무기를 막아가던 현민이 중얼거렸다. "왼쪽, 검기, 소드 임팩트." "검기! 소드 임팩트!" 유저의 스킬은 허무할 정도로 어이없이 비켜 나갔다. 그가 스킬을 사용하려고 하는 순간 현민은 이미 옆으로 피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의 목이 잘려 나갔다. 이후로도 현민의 중얼거림은 계속됐다. "지금이야 말, 죽였, 어떻, 뭐라는, 말도 안...." 채챙! 스윽! 챙! 서걱! 단어도, 문장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이상한 것은 현민과 검을 마주친 상대가 흠칫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횟수가 많은 유저일수록 더 심했다. 샨이 무엇인가 눈치 챈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기에 알아채는 게 늦었다. "너 지금 생각을...." 파파팟! 가까이 있던 유저들이 현민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그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가까이 가는 것이 꺼려졌다. 아무도 그의 곁으로 다가가려 하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경계가 생겼다. 현민은 잠깐의 여유를 이용하여 그녀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생각이 아니라 마음이야." 주변의 유저들이 한 걸음 더 물러났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은 가까이 있던 샨도 마찬가지였다. "믿든 안 믿든 그것은 자유지.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현민은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신기하지 않았나요? 이상하지 않았나요? 움직임도 느린 내가 어떻게 당신들의 공격을 피했는지." "그. 그따위 말을 믿을 것 같아?" 누군가가 현민을 향해 소리쳤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였다. 중학생들도 가능한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설마 다른 존재를 '죽여야 하는' 싸움에 끼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현민은 자신도 모 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 누구보다 믿고 있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뭐죠?" 팟! 현민의 말에 정곡을 찔린 것인지, 아니면 도발이라 생각한 것인지 꼬마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루인아츠의 시선으로도 보이지 않은 것을 보면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특수한 스킬을 사용한 것 같았다. 모두가 꼬마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현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당신들의 움직임이 빨라도...." 현민은 자세를 풀며 모든 눈을 감았다. 완벽한 무방비의 상태.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더 없는 기회인 것은 확실했다.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퍽! 말을 하고 있는 도중 현민의 손이 갑자기 움직였다. 무엇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을 때는 이미 현민의 손에 조금 전 사라진 유저의 머리가 잡혀 있었다. 머리가 잡힌 유저가 비명과 함께 발버둥 쳤으나 현민의 손은 결코 풀리지 않았다. "죽이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랍니다." 콰직! 손에 잡힌 유저가 꼬마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민의 행동에 머뭇거림은 없었다. 쉽게 들을 수 없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 지며 유저의 머리가 수박 깨지듯 부서져 버렸다. 그는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용서는 없었다. 이곳에 있는 것 그 자체로 그들은 이미 현민의 '적'이었다. 현민에 대한 소문과 그들의 경험이 겹쳐지면서 근본적인 공포가 그들을 뒤덮었다. 남들이 '두렵다, 무섭다' 했을 때 비웃던 그들이었 으나, 막상 눈앞에서 경험하니 두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눈앞에 있는 존재가 정말로 유저인지, 자신들과 같은 인간인지 의심이 갔다. 조금 전까지 현민을 죽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여겼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현민은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며 샨에게 속삭였다. "샨, 상상해." "응?" "내 몸이 여러 개 있는 걸 상상해." "진실된 거짓?" 끄덕. 현민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여러 명 있는 게 아니야. 내 몸이 여러 개 있는 거야." "응." 샨은 그가 원하는 요구를 정확히 파악했다. 딱히 다른 게 없는 것 같은 조건이었으나, 그 2가지는 확실히 달랐다. 전자의 경우는 피해 를 입히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것이 가능했다. 샨은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녀가 괜히 천재는 아닌 것이다. 샨은 현민을 향해 손을 뻗고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했다. 3서클의 마법은 구현될 확률이 10퍼센트로 제한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한두 번 으로는 실현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법의 주문을 말하는 것만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상상을 하면서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NPC와 유저의 차이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샨의 마법이 성공한 것인지 하나였던 현민의 신형이 그들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촤악! 현민은 가장 먼저 꼬리를 움직였다. 현민을 감고 있던 꼬리가 바깥쪽으로 크게 한 번 출렁이며 가까이 있던 유저들을 조각냈다. 현민과 현민의 틈새에 끼어 있었기에 사방에서 출렁거리는 꼬리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현민이 둘러싸고 있는 부분에서는 유저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원했던 대로 모든 현민이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현민 하나였지만 말이다. "미안. 30초가 한계인 것 같아." 현민이 모르는 특별함이 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존재가 NPC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샨의 마법은 그 지속 시간마저 10퍼센트로 줄어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현민은 즉각 자세를 잡았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서둘러야 했다. 모든 현민이 같은 동작을 취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민은 자신의 시야를 다른 육체의 시야로 바꿨다. 이번이 두 번째라 그런지 이전만큼의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쿵! 모든 현민이 발을 굴리며 주먹질을 했다. 무협지에서 흔히(?) 나오는 발경의 묘리였다. 정면에 있던 유저들과 현민이 부딪쳤다. 모든 현민의 동작은 같았으나, 그 결과마저 일치하지는 않았다. 유저를 꿰뚫어버리는 현민도 있었고, 날려 보내는 현민도 있었으며, 허공에 손질하는 현민도 있었다. 현민의 능력으로는 2개 이상의 몸을 독립된 존재처럼 움직이 지 못했기에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현민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었다. 그는 처음의 움직임에 다른 동작을 연이었다. 발경이 바로 있은 직후, 현민의 왼발이 허공을 갈랐다. 뒤돌려 차기이다. 루인아츠로 감 싸인 부분이 아니기에 웬만하면 발 공격을 하지 않는 현민이었으나, 안쪽에 있는 본체만 무사하면 환상으로 만들어진 육체의 데미지 따위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현민의 발이 땅으로 내려섰을 때, 그는 허리를 비틀며 왼손을 휘둘렀다. 발차기의 동작으로 원을 그리고 있던 현민의 팔을 기존의 움 직임에 허리의 움직임까지 더해지며 빠르고 강하게 허공을 훑었다. 물론 현민이 바라보고 있는 시야의 육체만이 허공을 갈랐을 뿐이지, 다른 곳에서는 유저가 찢겨져 나갔다. 현민은 연이어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허공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뒤를 향해 던져버렸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현민의 손에 따라 뒤쪽 으로 날아가는 유저가 눈에 띄었다. 그들이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안 그래도 만만치 않던 현민이 그 수마저 늘어나자, 모든 유저들이 현민과의 거리를 벌렸다.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올 때까지 이렇 게 해서라도 시간을 벌 생각인 것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30초 정도밖에 마법을 유지할 수 없는 현민에게는 적절한 대처가 아닐 수 없었다. 현민은 유저들을 향해 달렸다. 이런 것으로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이. 일루전...응?" 갑자기 다가오는 현민을 보며 깜짝 놀란 유저가 스킬을 사용하려 했으나, 이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현민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정면에 있던 다른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비슷한 표정으로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현민을 바라보았다. 공격하는 유저도 무시한 채 한참을 달려 나간 현민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현민의 목표가 된 존재는 그 쓰임새가 의심스럽게 느껴지는 티슈(?)를 들고 있는 유저였다. 현민이 자신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유저는 손안의 티슈를 빠르게 뽑았다. 하늘거리며 허공에 떠 있던 티슈가 현민을 향해 달라붙었다. 그의 스킬을 볼 수 있었던 현민은 그가 스킬을 사용하기 전에 서둘렀다. 휙! 현민의 손이 그의 팔을 노렸으나, 유저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빨랐다. 상대는 현민의 손을 피해 옆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변화, 돌." 콰득! 먼저 스킬을 사용한 것은 유저였다. 하지만 막상 죽은 것도 유저였다. 현민의 곁에 있던 또 다른 현민이 그의 머리를 부숴버린 것이다 . 현민의 몸을 감사고 있던 티슈는 본래의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다른 곳의 사정도 비슷했다. 눈앞에 있는 현민을 피했다 싶으면, 다른 곳에 있는 현민의 공격을 피하지 못해 죽어가는 유저가 대부분 이었다. 이것이 현민의 방식이었다. 현민의 움직임은 누구 하나만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고 있었다. 유일하게 살아 있는 존재가 있다면 현민의 본체에게 안겨 있는 샨뿐이었다. 이제 겨우 10초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20분의 1에 해당하는 유저가 죽었다. '겨우?' 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숫자였으나, 전체의 유저 를 생각해보면 그러한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현민의 주변은 전쟁터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듯 유저들의 시체가 땅을 뒤덮고 있었다.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민의 살육이 그 절정에 치달았을 때, 하늘에서 하나의 빛기둥이 땅으로 내려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그 기운에 현민조차 움직임을 멈췄다. 펄럭! "젠장!" 빛기둥에서 6장의 날개가 펼쳐졌고, 현민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지금의 골치 아픈 상황을 만든 성직자 한 명이 천족을 소환한 것이다. 성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으나, 현민의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팡! "크윽!" 빛기둥이 사라지면서 강렬한 기운이 현민을 밀어냈다. 현민은 천족을 바라보았다. 빛기둥이 사라지며 모습을 드러낸 천족은 모든 것이 새하얬다. 흰색의 옷에, 하얀 피부,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으며, 눈동자조차 흰색인지 뚜렷한 동공이 보이지 않았다. 마주 보고 있기에 꺼림칙한 눈이다. 현민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천족이 고개를 돌렸다. "저기 있는 쓰레기가 나의 상대인가?" 천족의 말투에는 오만함이 넘쳐났다. 하지만 단순히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 힘이 느껴졌기에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하는 존재는 없었다. "저따위 쓰레기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면서 나를 소환하다니." 자신을 과시하기 위함인지 견디기 힘든 압박감이 현민을 짓눌렀다. 그의 기운에 대항하기 위해 현민도 기운을 드러냈다. "하.찮.은. 천.족. 주.제.에. 누.구.보.고. 쓰.레.기.라.는. 것.이.지? 너.야.말.로. 인.간.들.의. 일.에. 나.서.지. 마.라." 움찔! 누구 하나가 아닌 모든 현민이 기운을 드러내자 대기가 울부짖으며, 대지가 진동했다. 그 기운이 순수한 살기는 아니었으나, 기운의 양만큼은 전날 아민(또 하나의 현민)이 사용한 살기와 커다란 차이가 없었다. 현민의 기운이 천족의 기운을 넘어선 것은 당연했다. 모든 힘을 드러낸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의 기운을 완전히 뒤덮어버린 현민의 기운에 천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천족은 단번에 현민의 진신(眞身)을 알아보았다. 본래의 육체로 바라보는 시선과 천족의 시선이 마주쳤다. 스윽- '뭐....?' 팍! 루인아츠조차 느끼지 못했다. 잔뜩 민감해진 감각으로 무엇인가가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는 것을 느끼며 도망가기도 전에 그 무엇인가 가 현민의 목을 부여잡았다. "인간이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어리석군. 내가 힘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만만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파앗! "커억! 쿨럭!" 아주 짧은 시간 느껴진 기운이었으나, 현민은 그것을 참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유저들과 싸우면서도 가득했던 생명력은 급격히 하락 하며 아슬아슬한 양만 남았다. 누가 봐도 일부러 살려 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팟! 파파파팍! 현민은 환상으로 이루어진 육체로 천족을 공격했다. 손, 발, 머리에 꼬리까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부위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천족에게 통하지 않았다. 천족은 현민을 잡고 있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그의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펑! 파리를 내쫓는 듯한 가벼운 손짓이었다. 그러한 손짓에 현민의 상체가 사라져버렸다. 지금까지 유저들을 상대하던 것과 비교했을 때 허무하기 그지없는 죽음이었다. 천족이 현민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현민은 또 다른 육체로 천족을 공격했다. 처음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특유의 움직임에 발록의 움직임, 그리고 전쟁에서 보았던 유저들의 움직임까지 사용하며 자신의 모든 능력으로 천족을 공격했다. 달라진 것은 잠시 후였다. 잔상이 보일 정도의 움직임으로 공격하고 있던 현민이 갑자기 멈춘다 싶더니, 반대편에서 또 다른 현민의 육체가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웠기에 천족도 움찔할 정도였다. 펑! 천족의 다급한 움직임에 또 하나의 거짓된 육체가 죽음을 맞이했다. 현민이 한 것이라고는 천족의 얼굴에 피를 몇 방울 묻힌 것뿐이었 으나, 천족은 자신이 놀랐다는 것에 불쾌해했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현민의 육체가 천족을 공격했다. 완벽한 연계기. 2개의 육체를 동시에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러한 움직임 은 가능했다. 퍼퍼퍼퍼펑! 현민의 공격이 이곳저곳에서 들어오자 천족도 더 이상 봐주지 않았다. 그는 현민의 공격을 막는 게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렸 다. 그들의 주변으로 피를 의미하는 하얀색 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단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현민의 공격에 천족의 표정도 굳어져 가고 있을 때, 공격하고 있던 현민과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현민의 신형이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버렸다. 샨이 걸어준 마법의 지속 시간이 끝난 것이다. 천족의 표정이 잠시 여유로워졌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잠시'였을 뿐이다. 어느새 꺼내든 것인지 그의 손에 잡혀 있던 마녀의 빗자루로 그의 팔을 자르고 있었다. 서걱! "크악!" 펑! 천족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현민은 꼬리로 바닥을 치며 샨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네놈!!" 우르르릉!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날카로운 기운이 현민에게로 쏟아졌다. 단순한 기운이멩도 불구하고 현민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사라졌 다. 마녀의 빗자루로 가르지 않았다면 샨은 물론이고, 현민 본인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민은 서둘러 다음을 준비했다. 그가 지금의 상황에서 천족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밖에 없었다. 그중 하나인 봉인 마법진 을 사용할까도 생각해보았으나, 현민은 좀더 안전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스킬 사용. 구현, 발록 소환 마법진." 현민은 처음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2가지 모두 마녀로서의 능력이다. 마녀란 종족과 직업에 대한 별다른 제재가 없던 것이 다행이었다 . [구현] 하루에 한 번, 터득하고 있는 마법진을 레벨과 숙련도에 상관없이 즉시 그린다. [발록 소환 마법진 Lv.1 0.3%] 마계로부터 발록을 소환한다. 현민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마법진은 현민과 닮은 검붉은 색의 기운을 뿜어내며 그 안에 있던 천족을 튕겨 내버렸다. 그 마법진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던 천족은 다급한 얼굴이 되었다. 공간이 깨져 나갔다. 마치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허공에 금이 가며, 어둠으로 뒤덮여 있는 또 다른 장소가 나타났다.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귀곡성에 유저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었지만,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 알 수 있었다. 어 둠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은 그곳이 마계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공간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바깥쪽을 향하고 있는 손가락은 지금의 깨져 버린 공간을 더욱 벌렸다. 쩡!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공간이 깨져 나가며 발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몸에서는 검은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크기부터 기운까지 천족과는 차원이 달랐다. 공간을 부수고 현민의 앞에 나타난 발록은 단 한 번 보여주었던 위압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현민을 제외한 모든 유저가 그 위 압감에 무릎 꿇고 숨을 쉬지 못했다. 전날 현민이 살기를 뿜어내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이러한 위압감 속에서 서 있는 존재는 샨과 현민, 그리고 천족이 유일했다. 샨과 현민이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발록 나름대로의 배 려 덕분이었다. 쿠오오오오오! 크게 울부짖은 발록이 현민을 돌아보았다. "무엇을 원하는가?" 발록의 목소리에는 진득함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쉽사리 휴앤 낼 수 없는 피의 향기였다. "저기 보이는 천족의 죽음이에요." "계약의 조건은?" 천천히 올라온 현민의 손가락이 입술을 가리켰다. "나의 입술." 씨익- "받아들인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말도 안 되는 계약이 성립됐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유저들은 물론이고 천족의 입마저 크게 벌어졌다. 천족이 성직자의 목숨으로 소환된 것에 비할 때 너무나 가치 없는(?) 계약이었다. "무슨 짓이냐? 발록이 이계의 존재 따위에게 소환되다니!" "크르르! 엄연한 계약이다. 그러는 너야말로 계약 없이 강림했으니 성마조항을 어긴 것이 아닌가." "나에게 은총을 받고 있는 인간을 도와줄 뿐이다!" "그것이 위반이라는 것이다." 천족과 발록의 기운이 부딪치면서 주변의 압력이 강해졌다. 발록의 뒤에 있던 현민은 발록이 막아주어 안전할 수 있었으나, 천족과 발 록의 틈새에 끼어 있는 유저들은 그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천족이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록의 힘이 생각보다 강해 긴장한 탓이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유저들은 그동안 상상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천족의 모습에 실망, 또는 분노할 뿐이었 다. "거치적거리는 결계는 치워줄 테니 너도 마음껏 날뛰어봐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중에 혼날 각오하는 게 좋을거다." "물론이죠. 내가 누구한테 배웠는데요." 현민은 샨을 한쪽으로 물러 세우며 가벼운 움직임으로 몸을 풀었다. 발록이 보고 있는 이상 전력으로 싸워야 했다. 촤르르륵! 기다란 꼬리가 출렁이며 보기 좋은 움직임을 만들었다. 발록이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하는 습관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진실된 거짓으로 자신의 몸을 강화한 현민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팟!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드러내며 싸우기 시작한 현민은 그동안 당했던 울분을 모조리 풀어냈다. 마법에 육체적 인 능력, 주변의 무기까지 사용하며 유저들을 학살했다. 안 그래도 생명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는 상태였기에 스치기만 해도 속속들 이 죽어나갔다. 생명력만 보고 따지자면 현민도 마찬가지였으나, 현민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는 존재만 있을 뿐 제대로 공격하는 존재는 단 한 명도 없 었다. 현민의 신형이 잔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이 계속된다면 현민이 먼저 지쳐 나가겠지만, 나름대로 믿는 것이 있었기에 뒷일은 걱정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몸이라도 팔아서(?) 발록에게 부탁하면 그만이다. 애초에 대상이 되던 현민이 자리에서 사라지자 천족이 뒤를 쫓았다 하지만 중간에 끼어드는 발록으로 인해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어디를 가는 거냐? 네 상대는 나다." "방해하지 마라!" 쾅! 갑자기 나타난 천족의 무기와 발록의 주먹이 부딪치면서 반경 50미터에 달하는 대지가 본래의 형체를 잃어버렸다. '과연'이라고 해야 할지 유저들끼리의 싸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격으로 인해 발록과 거리를 벌릴 수 있었던 천족은 다시금 현민을 노리고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타난 발록이 또다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를 벗어날 수 있다고 보나?" "죽.여.주.마." 천족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현민보다 발록을 먼저 죽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발록을 떨치지 않는 이상 현민은 죽이는 것은 불가 능할 것 같았다. 두 존재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자 유저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아무리 여벌의 목숨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래 싸움에 새 우 등 터지는 것처럼 허무하게 죽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흰색과 검은색의 기운이 부딪칠 때마다 일대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들의 기운을 버틸 수 없는 것은 현민도 마찬가지였다. 현민은 발록의 전투 스타일을 잘 알고 있기에 남들보다 더욱 멀리 떨어졌다. "마계의 존재를 불러도 괜찮은 거야?" 현민과 같이 이동한 샨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마계의 존재를 부르는 것은 절대로 행해선 안 되 는 금계(禁戒)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환된 존재도 마왕이라 부를 수 있는 발록이었기에 더욱 걱정되는 샨이었다. "그들은 생각만큼 사악하지 않아." 발록만을 바라본 현민의 편견이었으나, 다른 마족이 나타난 것도 아니니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의 말이 틀렸다 할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발록과 천족의 싸움에 집중했다. 기운과 기운이 부딪치며 또 한 차례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들의 싸움을 보고 있던 현민은 이전에 발록이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천족이 우리 마족과 다른 점은 하나밖에 없다. 거짓말을 할 수 있냐, 없냐의 차이지.' 발록의 말대로였다. 그의 눈앞에서 싸우고 있는 천족은 천족이라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처음에 느 꼈던 성스러운 기운이 아니라면 하얀 날개를 눈으로 보면서도 마족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언뜻 보면 막상막하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직접 당해본 현민은 발록과 천족의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가지고 놀고 있네.' 발록의 얼굴은 여유로운 데 반해, 천족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두 존재의 싸움은 처음부터 그 승패가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소환 방식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유저의 몸으로 강림한 천족은 본래 힘의 30퍼센트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전신으로 강림한 발록은 본래의 힘을 그대로 사용 하고 있었다. 천족이 발악한다 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둘 다 100퍼센트의 능력을 사용한다 해도 이기는 것은 발록이었을 것이다. 현민이 만들어준 아이템은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움찔! 한참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현민이 은근슬쩍 고개를 돌렸다. 우연히 마주친 발록의 시선이 묻고 있었다. '혼나고 싶나?' 눈빛만으로 대화를 나누는 깊은 사이는 아니었으나, 그 뜻이 너무나 강렬하여 눈치 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샨은 갑자기 긴장하는 현민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샨. 나는 다시 싸우러 갈게." "응." 샨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녀의 무심한 대답에 현민은 발걸음을 돌렸다. 쭈욱~ "아으으으읏!" 현민에게 볼이 잡힌 샨이 비명과 함께 발버둥 쳤다. "대답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므아?(뭐가?)" "'응'이 아니라 '나는 피해 있을게'라는 말이 나와야지~!" 쭈~욱! 현민은 샨의 볼을 더욱 강하게 잡아당겼다. 얼마나 아픈 것인지 샨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살짝 젖은 눈으로 애처롭게 바라보는 샨의 표정에 움찔할 만도 하건만, 현민은 단호한 얼굴로 그녀의 볼을 놓아주지 않았다. 만약 그 녀를 내버려 두고 떠났다면 그녀가 죽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현민이었지만, 유저들의 실력도 잘 알고 있었기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브(바보)." 차분한 그녀의 한마디에 현민의 손이 풀렸다. 샨은 아픈지 볼을 문지르며 현민을 바라보았다. "나는 너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스승이기도 한 존재라고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것 같아?" 알수 없는 불길한 느낌에 피해주기를 바랐으나 샨의 의지는 단호했다. 그녀의 마음은 단호했다.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현민은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스스로보다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죽지 마." "응." 샨은 미소 지었다. 그 어떤 때보다 아름다워 보여 더욱 걱정스럽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콰콰콰콰쾅! 어마어마한 폭음이 가까이서 들리며, 맞으면 위험해 보이는 돌덩어리들이 그들에게로 날아왔다.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 발록과 천족이 그들의 근처까지 다가온 것이다. 샨과 현민은 그들의 싸움을 피해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다급한 상황에서 움직였기 때문인지 서로 다른 위치였다. 어차피 떨어질 생각이었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곁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안전을 빌었다 . 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졌다. 스륵- 현민은 유저들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루인아츠가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아도 그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현민이 나타난 그 장소에는 기존의 장소에서 피해 있던 유저들이 천족과 발록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당신들이 구경이나 할 만큼 여유로운가요?" 콰득! 촤아아악! 퍽! 현민의 양손에 마주 잡히며 그 사이에 끼어있던 유저의 머리가 으스러졌다. 기다란 꼬리가 주변을 휩쓸며 유저들의 허리를 갈랐고, 몇 걸음의 이동과 함께 내질렀던 현민의 주먹이 유저의 가슴을 뚫었다. 갑자기 나타난 현민의 공격에 유저들은 당황했다. 그들이 당황한 틈을 타 몇 명의 유저를 죽일 수 있었으나, 그 숫자는 현민의 생각보 다 적었다. 실력에 비례하여 많은 것을 경험한 유저들은 파티 단위로 빠르게 뭉치며 현민을 둘러쌌다. 촤르르륵! "반응 좋은데요?" 그들은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수준만 따지자면 이전과 별 차이 없는 유저들이었으나,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수의 파티를 이룬다는 것이 어찌 보면 불리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단 한명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호흡을 맞 추기 쉽다는 점에서 소수의 파티가 더욱 유리했다. "당신들이 오지 않으면 제가 가죠." 진실된 거짓의 남은 시간은 이러는 순간에도 줄어들고 있었기에 현민은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발을 강하게 튕긴 현민은 정면이 아닌 후면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허리가 돌아가며 루인아츠의 날카로운 손톱이 유저의 목을 노렸다. 나름대로 완벽한 기습이라 할 수 있었으나 그의 공격은 빗나갔다.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유저의 움직임이 현민의 움직임을 뛰어넘 었기 때문이다. 현민은 루인아츠를 통해 그의 스킬을 살폈다. 스스로도 당황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의도한 움직임은 아닌 것 같았다. '회피인가?' [회피 Lv.7 64.8% 패시브] 35% 확률로 기습을 회피한다. 회피 이후 공격 시 적의 방어력을 무시하며 회피의 확률에 따라 치명타 적중률이 증가한다. 35퍼센트라는 어정쩡한 확률을 가지고 회피에 성공한 유저의 입장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피한 것으로도 모자라 방어력 무시라는 뜻하지 않은 행운까지 얻을 수 있었으나, 이미 그의 스킬을 알고 있는 현민에게 그의 공격이 통할 리 없었다. 유저의 공격보다 먼저 움직인 현민의 꼬리가 그의 목을 휘감았다. "마음을 읽는 나에게 통할 거라 생각하지 마요." 퍼퍼퍼퍽! 현민이 노리던 유저의 동료가 현민을 향해서 무엇인가를 던졌다. 하지만 그것은 루인아츠에 부딪히기도 전에 현민의 꼬리에 있는 그들 의 동료에게 부딪쳤다. 묵직한 소음이 들리며 유저의 몸은 무엇인가 파먹은 것처럼 일부가 사라져 버렸다. 현민은 꼬리의 시체를 방금 공격한 유저에게 던졌다. 시체가 그의 시야를 가리는 순간 기다란 꼬리가 유저의 다리를 스쳐 지나갔다. 서걱! 너무나 순식간이라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단지 기울어지는 시야에 어리둥절해하고 있었을 뿐이다. 현민의 팔이 조금 전 던진 시체 의 몸을 꿰뚫고 그런 유저의 머리를 잡았다. 콰득!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이 느껴졌다. 그들을 시작으로 현민도 날뛰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는 현민의 모습은 마치 작은 발록을 보는 듯했다. 발록과 현민. 그들 두 존재로 인해 전쟁터에 있던 유저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하아, 하아, 쿨럭! 컥!" 4장의 날개가 찢겨지고, 남아 있는 2장으로 간신히 허공을 날고 있는 천족의 모습은 이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새하얗던 몸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발록과 다르게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유저나 일반 NPC들과 다르게 붉은색의 피라 더욱 처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인간보다도 더욱 한심하구나. 힘의 차이조차 느끼지 못하다니." "우리 천족은... 쿨럭! 하아, 하아, 더러운 마족을 눈앞에 두고 도망가지 않는다." "크큭!" 발록은 천족의 한마디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다 죽어가는 상태에서도 자존심만 내세우는 게 우스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웃음이 갖고 있는 의미를 눈치 챈 천족이 발끈했으나, 그에게는 더 이상 움직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발록의 꼬리가 그의 목을 감았다. 이제 마무리할 생각인 것이다. 여태껏 가만히 있던 천족이 그제야 발악했다. "편히 죽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번쩍! 어차피 본신이 아니기에 천계로 돌아가면 회복되는 상처였으나, 발록으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천족은 영혼까지 불태우며 신성 력을 내뿜었다. 평범한 영혼도 아닌 천족의 영혼을 대가로 하는 신성력은 현민이 전쟁터라 정한 땅을 훨씬 넘어서 멀리까지 퍼져 나갔 다. 이 정도로 강력한 신성력을 코앞에서 견뎌야 했다면 발록이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빛이 사라지며 천족과 발록이 있던 장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록의 전신은 검은색의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처음 보았던 아지랑이와 비슷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민이 다루는 살기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그 기운에서 느껴지는 어둠으로 보아 살기가 아닌 마기임이 분명했다. 안개가 사라지고 드러난 발록의 몸은 상처 하나 없었다. 천족의 희생만 덧없었던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넘어서는 힘 이었지만, 그 정도의 힘으로도 발록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부족했던 것 같았다. 발록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현민을 찾았다. 자신이기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이지, 현민이라면 목숨을 건지기도 힘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하지만 발록이 찾고 있는 현민은 그의 예상과 다르게 팔팔한 모습으로 유저들을 죽이고 있었다. "어떻게...아!" 발록은 뒤늦게 그 이유를 눈치 챘다. 자신이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민은 발록이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존재이기는 했으나, 엄 연히 마계에 속한 마족은 아니었다. 천족의 신성력에 데미지를 입는 일 따위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천족에게 받은 데미지가 말끔히 회복된 것 같았다. 이것은 현민만이 아니었다. 천족이 뿜어낸 신성력이 발록에게는 소용없었지만 유저들에게까지 소용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천족의 신성력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금까지 죽었던 유저들이 부활하고 있었다. 죽어버린 이후 로그아웃해서 사라지는 존재도 있었지만 , 그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수의 유저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족으로 인해 모든 싸움이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현민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8!" 현민은 천족의 행동에 화를 참지 못했다. 어차피 죽을 거 곱게 죽을 것이지, 괜히 자폭하여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지만, 현민이 메모라이즈해놓은 마법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또다시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피하기 위해 준비했던 것이었으나, 그런 현민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었다. 제121장 샨의 죽음 "뭐 때문에 화난 것이지?" 흠칫! 촤륵!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현민은 반대편으로 몸을 날리면서 꼬리를 이용 해 공격했다. 짐승과 같은(?) 반응 수준이었다. 하지만 공격을 하고 나서 바라본 장소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푹신.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푹신함에 현민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이 누구에게 부딪쳤다는 것을 떠나 이번에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꼬리는 정면으로 날아가고 있었기에 등 뒤의 존재를 공격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괜찮은 움직임이다. 이번의 전쟁으로 인해 감각이 예민해진 모양이지?" "...발록?" "그럼 누군지 알았느냐?" 발록은 품 안의 현민을 똑바로 세워주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현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발록이라면 자신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반기는 듯한 현민의 얼굴을 보며 발록의 표정은 의아해졌다. 자신이 무엇을 하러 왓는지를 알고 있다면 당황하 거나 도망가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흠...." 그런 현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바록의 두 팔이 현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아마도 일을 치를 때(?) 도망가는 것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현민의 도망치는 솜씨는 발록도 인정하고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한 발록은 천천히 다가갔다. "그럼 이제 계약을...." 스윽- 현민의 손가락이 발록의 입술을 막았다. "이건 무슨 짓이지?" 발록의 눈가가 살짝 찡그려졌다. 도망가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막는 현민의 행동이 불쾌했던 것이다. 그녀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는 현민은 조심스런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도리도리. 발록은 고개를 저었다. "너와 나의 계약은 '천족의 죽음'이었으니깐." "다시 한 번 계약한다면?" "한 번의 소환에 하나의 계약만 가능하다. 부탁을 하고 싶다면 다시 한 번 소환하면 되는 거지. 그때의 조건은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 오싹! 현민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처음부터 입술을 내걸었으니, 다음에 부탁할 때는 입술 그 이상을 걸어야만하는 것이다. 아무 리 생각해보아도 입술 이상으로 떠오르는 것은 몸밖에 없었다. 굳이 몸이 아니더라도 재물이나 물건으로 계약할 수 있었으나, 과연 발록이 그것만으로 만족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제 말 끝났으면 루인아츠를 벗어라." 발록은 현민을 재촉했다. 어린아이가 선물을 받는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발록의 얼굴도 잔뜩 들떠 있었다. 현민은 루인아츠를 전투 형태로 바꿨다. 상체 전부를 감싸고 있던 루인아츠가 사라지면서 현민의 얼굴이 드러났다. 발록은 계약을 이행하기에 앞서 마기로 그들의 주변을 뒤덮었다. 누군가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약을 이행하는 과정은 딱히 보여 주어도 상관없었으나, 계약 이후에 나타나는 현민의 표정을 혼자만 바라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녀가 계약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계약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계약 이후에 나타날 현민의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악마가 괜히 악마는 아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들을 감싸고 있는 검은 안개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몇 분(?)이 지나고 안개가 사라지며 두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자세는 안개로 감싸이기 전과 똑같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두 존재의 입을 연결하는 타액이 길게 늘어져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비밀(?)이다. 현민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발록의 팔이 풀렸다. 지탱해주는 힘을 잃어버린 현민은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흔히 말하는 다리가 풀 린 것이다. 남자로서 하체가 부실(?)하다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이 것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우우, 우우, 우우...." 얼굴이 잔뜩 붉어진 현민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단순한 키스라고 하기에는 꽤나 충격적(?)이었던 것 같았다. 아무리 스스로 한 계약이라지만 제대로 당한(?) 현민이었다. 발록은 허리를 숙여 현민의 턱을 들어올렸다. 흔히 말하는 여왕님(?)의 자세다. "흥분햇나? 여자에게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몸은 정직한가 보군." 현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 게 귀여워(?) 보였다. 이 표정이었다. 특별한 성욕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발록이 과도할 정도로 현민에게 집착한 이유는 이러한 표정을 보기 위해서였다. 결 국에 해낸 것이다. 발록은 만족스럽다는 얼굴이었다. "더 해줄까?" "돼, 돼, 됐어요!" 현민은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 이상 무슨 일을 겪었다가는 심장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았다. 누구보다 강한 현민이지 만 그런 그도 아직은 소년이었다. 발록은 그런 현민을 어린애 다루듯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높이 들어올렸다. "크큭! 벌써부터 다음 소환이 기다려지는구나."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현민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는게 고작이었다. 쿠드득! 쾅! 문득 현민의 발밑이 출렁거리며 무엇인가가 빠르게 솟구쳤다. 하지만 그것은 형체를 채 파악하기도 전에 발록의 눈초리가 가볍게 찡그 려지는 순간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버렸다. 천천히 땅으로 내려온 현민은 발록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알고 있는 발록의 지금 모습은 상당히 위험했다. "땅속이라면 무사할 줄 알았나?" 콰득! 쿠웅! 지면이 약간 내려간다 싶었을 때, 현민은 지상에서 떨어지는 기이한 경험을 겪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남자라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 갑작스러운 낙하에 또 한 번 다리가 풀렸다. 인간이 날 수 없는 이상, 이것은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아...." 발록에게 기대어 쓰러지는 것을 면할 수 있었던 현민은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무런 기운도,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건만 그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메테오가 떨어진다 할지라도 이 정도 까지는 아니리라. 완벽한 반구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힘으로 찍어 누른 것 같았다. 현민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발록을 바라보았다. "한 번 더?" "아니요." 현민은 고개를 돌렸다. 한 번 더 하느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다. 즉시 반응하는 현민을 보며 발록은 웃음 지었다. 여직 싸움 이외에는 재밌는 게 없다고 여겼으나, 현민을 놀리면 놀릴수록 그 재미가 쏠쏠했다. 이러다 중독(?)되는 건 아닌지 걱정 될 정도였다. 발록은 다정한 연인처럼 현민의 볼을 꼬집으며 대답해주었다. "훗! 의지다." 그녀의 의지 하나만으로 반경 1킬로미터 안에 있던 모든 유저가 사라진 것이다. 현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었다.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발록만큼의 힘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것의 100분의 1이라도 흉내 낼 수 있다면 만족이었다. "음... 몇 번 죽으면서 배우면 가능해질지도." 발록은 한껏 진지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너무나 진지한 그녀의 대답에 현민은 소름이 돋았다. 현민이 발록에게 싸움을 처음 배울 때 들었던 말이 '죽기 직전까지만 한다'는 것 이었다. 그 말을 듣고 그 고생을 했는데, 죽기 직전도 아니고 몇 번 죽어야 한다면 그 고생이 어떠할지는 뻔했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배우는 것도 쉽지 않았기에 현민은 포기했다. "마음을 정했으면 이제 얼굴을 가려라. 남들에게 얼굴을 들키기 싫어했지?" 끄덕. 발록의 도움으로 시간을 벌 수 있었던 현민은 또다시 루인아츠를 깨웠다. 마음 같아서는 어릿광대 가면을 착용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착용할 경우 자신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촤르르륵! 작은 발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현민을 보며 발록은 다시 한 번 웃음을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했다. 발록은 가벼운 손짓으로 공간을 찢었다. "이제 우리의 계약도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다. 하찮은 존재들에게 죽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라." 발록은 공간을 건너가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마계와 연결 해주던 공간은 그녀가 지나간 이후 닫히기 시작했다. 남은 부분이 손가락 한마디 정도 되었을 때, 현민은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발록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아니, 죽어도 상관없겠군. 만약 죽는다면 너의 영혼은 내가 거두어주마." 흠칫! 절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아 더욱 무서운 발록의 한마디였다. -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동안 존재감이 없던(?) 루인아츠가 현민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샨에게 가볼 생각이야.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샨만 생각하면 무엇인가 불안해." - 흐음...그건..... "아니야." - 그, 그래요. 루인아츠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오는 현민의 단호한 대답에 멋도 모르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인정하고도 뭘 인정했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것은 루인아츠만의 비밀이다. - 그런데 어디 있는지는 아세요? 현민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저기." 현민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샨이 만들었던 숲이 존재했다. 하지만 루인아츠의 능력으로도 숲의 끝자락만을 확인했을 뿐, 샨의 존재 를 느낄 수는 없었다. 루인아츠는 현민의 이러한 확신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 어떻게 알고 있는 거예요? 만날 장소를 정해놓은 것도 아니잖아요. "샨이라면 저곳으로 갔을 것 같아." 단순한 예감일 뿐 현민의 말에 근거는 없었다. - 그러니까 그건.... "아니라니깐." - 네에... 또 한 번 듣는 현민의 단호한 부정에 루인아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루인아츠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루인아츠와 현민 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현민은 길고 긴 주문을 외워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메모라이즈해놓은 마법도 있었으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에 되도록이면 아껴 야 했다. - 이게 아까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나무죠? 정말 대단한 마법이네요. 루인아츠는 가까이서 바라보는 나무를 보며 연신 감탄했다. 사람을 양분으로 하여 만들어진 나무였으나, 그것들은 숲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나무들과 다르지 않았다. 종류도 다양했고, 크기도 엄청났다. "감탄은 나중에 하고 샨부터 찾아줘." - 네. 과연이라고 해야 할지 루인아츠는 곧바로 대답했다. - 예상외로 범위가 넓어서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10시 방향과 1시 방향에서 누군가가 싸우고 있는 것이 느껴 져요. "어디가 가까워?" - 10시 방향요. 현민은 가까운 곳을 먼저 향했다. 나무를 타고 이동하는 현민의 모습은 엘프 뺨 칠 정도였다. 일반인이 평지를 달린다 하더라도 이보다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탁- 현민은 유저들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서 멈춰섰다. 굳이 부딪칠 게 아니라 일단은 확인만 하려는 의도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아직 현민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샨은 아닌 것 같지?" 현민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많은 수의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었 다. 혹시나 하고 빠르게 살펴보았으나 마법을 사용하는 존재도, 샨으로 의심되는 존재도 보이지 않았다. -네. 하지만 저둘이 싸우는 이유가 아무래도 샨 때문인것 같아요. 가끔 들리는 그들의 대화(?)에 '마법사 년'이라는 말이 자주... 콰득! 루인아츠는 현민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나무를 짚고 있던 현민의 손이 어느새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 있었다. "처리하고 가자. 어차피 적이니 기회가 있을 때 죽여야겠지." 현민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무에서 손을 뽑으며 말했다. 하지만 현민에게 만들어지고, 현민과 함께 전투를 겪어보았던 루인아츠 는 느낄 수 있었다. 현민은 지금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자체 검열(?)을 했다고는 하지만 유저들의 오고가는 대화(라 쓰고 욕이라 읽는다) 소에 음담패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들 킨 것은 아닌지, 있지도 않은 심장이 두근 거렸다. 현민의 태도를 볼 때 루인아츠의 예상이 정확했다. 그렇지 않다면 분노할 여유가 없었다. "마법의 공간." 길고 긴 주문을 마치고 마법의 공간을 사용한 현민은 다음 마법을 잇기 전에 품 안의 무엇인가를 유저들의 머리 위로 집어던졌다. "자이언트 오브 플랜츠, 그레비티, 대지의 족쇄, 인탱글." 현민이 던진 게 식물의 일부닝 것인지 그의 마법이 사용되며 거대해졌다. 중력이 그것들을 빠른 속도로 떨어트렸고, 이어서 사용된 대지의 족쇄와 인탱글은 그것을 보고 도망가려하던 유저들의 발을 일순간 묶어버렸다. 쿠쿠쿠쿠쿠쿠쿵! 집어던진 무언가와 유저들이 부딪치며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저, 저건! "맞아. 밤송이야." - 으윽! 루인아츠는 자신이 맞은 것처럼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작은 걸로 맞아도 비명이 절로 나오는 밤송이를 흔들바퀴 크기의 수준으로 맞 은 유저들의 고통이 절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템 주제에 별걸 다 알고 있는 루인아츠였다. 물론 그런 문제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 확실히 처리하지 않는 거예요? 루인아츠는 발걸음을 돌리는 현민에게 의아해졌다. 많은 유저들이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운이 좋게 살아 있는 유저도 있었기 때문이 다. 그동안 보았던 현민이라면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일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샨이니깐." - 어머니. 루인아츠가 한껏 진지한 목소리로 현민을 불렀다. "응?" - 정말 조.... "아니야." - .... 자꾸만 부정하는 현민 때문에 오히려 의심이 생기는 루인아츠였다. 현민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루인아츠는 진심(?)을 밝히기 위해 있 지도 않은 두 눈을 불태우고 있었다. "다음 위치는 어디야?" - ...네? 아, 네. 여기서 2시 방향이에요. 현민은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엉뚱한 곳을 먼저 향하는 바람에 소비한 시간만큼 서둘러야 했다. 지금 달려가는 것만 해도 웬만한 유저들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낀 것인지 현민은 마법을 사용했다. "진실된 거짓." 팡~! 디디고 있던 나뭇가지가 곡선을 그리며 현민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콰콰콰콰쾅! 현민이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거대한 폭음이 귀를 울렸다. 수십 그루의 나무가 동시에 쓰러지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는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 찾았어요! 현민의 예상은 정확했다. 샨을 발견한 루인아츠가 위치를 알려 주었다. 현민은 주저할 것 없이 곧장 마법을 사용했다. "블링크." 현민의 신형이 공간을 건너뛰었다. 콰드드드드득!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던 중에 공간을 건너뛰었기에 현민의 신형은 한참을 미끄러져 나갔다. 하지만 애초에 그것을 생각하고 있던 것인지, 미끄러지는 와중에 몸을 회전하며 근처에 있는 유저의 숫자를 착실히 줄여 나갔다. 촤아아악! 마지막 회전이 끝나면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갑자기 나타난 현민으로 인해 주위가 조용해졌다. 피어오르는 먼지로 인해 그 정체조차 알 수 없다 보니 공격을 하는 유저도 없었다. 현민은 정면을 바라보았다. 마른땅이다 보니 생각보다 먼지가 짙었지만, 코앞에 있는 사람을 확인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앞에는 샨이 있었다. 심각한 상처는 눈에 띄지 않았으나, 잔 상처가 많아 곳곳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불안해서 따라와 봤더니 이게 뭐야? 벌써 다쳐 있고." "...미안." 샨은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현민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녀도 방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유저들 속에서 이 정도까지 버텨 낸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녀도 전력으로 싸운 것이 분명했다. 여직 유저들을 상대해온 현민이기에 그것을 더욱 잘 알고 있었다. 만약 현민에게 루인아츠가 없었다면 이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할게. 너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건데, 네가 다치면 어떡해?" 숙여진 샨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모든 여자들이 한 번 쯤 듣고 싶어하는 '너를 위해서야'와 별 차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작 현민은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지만, 사심 없이 이렇게 느끼한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대단했다. 먼지구름이 가라앉으며 현민과 샨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현민의 또 다른 모습이었기에 잔뜩 긴장한 것이 눈에 보였다. 태태태탱! 한 뼘 정도 되는 작은 화살과 비수, 각종 암기들이 현민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빠르게 움직인 현민의 꼬리가 샨과 그를 감싸며 공격이 이루어지는 그 부분만을 정확히 막아냈다. 그동안의 싸움으로 이제는 능숙하게 꼬리를 다루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할게요. 나는 샨처럼 자비롭지 않아요." 현민은 말을 하고 있는 와중 마법을 계산했다. 몇 개의 마법을 거의 동시에 펼치기 위해서 그 답을 미리 구해놓으려는 것이다. 모든 마법의 계산이 끝났을 때, 현민은 무언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순간 현민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뭐, 뭐지?" 변화가 있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현민의 옆에 있던 샨의 신형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없어져 있었다. 무언가 기미가 있던 것도 아닌 갑작스러운 변화였기에 다들 당황했다.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진실된 거짓." 하나였던 현민의 신형이 여럿으로 늘어났다. 5분이란 시간 동안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이 방법을 택한 것이다. 현민은 유저들보다 먼 저 공격을 시작했다. 유저들과 현민의 신형이 엉켜들면서 숲 속은 난장판이 되었다. 한 사람 앞에 한 명의 현민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도와준다거나 파 티를 이루는 것도 불가능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명의 유저를 죽인 현민은 자리에서 사라진 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 면 유저들은 진작 전멸했을 것이다. 현민과 유저들이 싸우고 있을 때, 현민의 옆에서 사라졌던 샨은 근처의 나무 위에 숨어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샨을 껴안고 블링크로 자리를 이동한 현민이 몇겹의 절대 방어로 샨을 보호한 후, 사일런스와 투명화 마법을 사용하여 안전하면서도 확실하 게 숨겼던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무언(無言)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이루었기에 잠깐이지만 현민의 신형이 흐려졌던 것이었다. 샨은 현민의 싸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언으로 마법의 사용이 가능하다고?" 신기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몸을 여러 개로 나누는 것도, 그 육체가 다른 존재를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진실된 거짓'은 그녀도 배웠기에 잘 알고 있었다. 완벽한 환상 마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그 마법이었다. 하지만 환상은 환상. 환상 마법의 특성상 다른 존재에게 피해를 줄 수 없는 게 정상이다. 그것을 어기고 있는 현민의 마법을 환상 마 법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고민됐다. 그렇게 생각한 샨이 자신의 눈을 비볐다. 무엇인가 잘못 본 듯했기 때문이다. 두 눈에 힘을 주고 아래를 살피던 샨은 어느 순간 탄성 을 내뱉었다. "환상!" 실체라 생각했던 현민의 신형이 모두 환상이었다. 현민은 진실된 거짓으로 자신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환상을 보여 주며 모두 를 속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아마 그 속에 숨어 있는 현민이 실제로 죽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샨은 적당한 때 나온 현민의 '거짓'에 감탄했다.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늘리고, 자신의 몸을 여러 개로 만드는 데 사용해서 그런지 아 무도 환상 마법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유저들이 환상과 싸우기 위해 허공에 칼질하는 동안, 현민은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그들의 사이를 돌아다니며 유저들의 수를 빠르게 줄 였다. 5분이라는 시간도 되기 전에 상황은 끝났다. 모든 유저가 사라졌고, 근처를 가득 메우고 있던 현민의 신형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본래의 현민만이 만들어진 환상 속에 숨어있었다. 아이템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자신과는 너무 차이 나는 현민의 실력에 샨의 입이 벌어졌다. 모든 실력을 드러낸다 는 조건에서 마법만은 자신이 이길 수 있을거라 여겼건만, 단순히 자신의 착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마법의 사용은 자신이 뛰어날지 몰라도 마법의 이해는 현민이 뛰어났다. 자신도 '거울'이었기에 그를 흉내 낼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흉내 그 이전의 본질 문제로 느껴졌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서 로를 마주하고 있는 거울이 상대의 틀을 비출 수는 있어도, 자신의 틀을 바꿀 수는 없는 것과 같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꺄악!" 현민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샨은 갑자기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녀를 찾아올 사람이라곤 현민밖에 없었으나, 깊이 고민하다 보니 그것을 잊었던 것이다. 샨은 나이에 맞지 않게(?) 귀여운 비명을 내지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 언제 온거야?" "네가 '여직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거야?'라고 생각할때쯤." 샨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때가 언젠데?' "음? 모르는 거야? 내 마법이 환상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쯤 그렇게 생각했잖아." "그랬...." 멈칫. 말을 하던 샨이 움직임을 멈췄다.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현민의 대답에 자신이 입으로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헷갈렸기 때문 이다. 아니, 그보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이전의 장소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정말로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현민의 말이 그녀의 질문을 잘랐다. "알고 싶은 거야? 따라 하고 싶은 거야?" "...." 갑자기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에 샨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흔한 말로 말문이 막힌 것이다. 현민은 그런 샨을 보며 미소 지었다. 루인아츠가 얼굴을 감싸고 있어 웃는 게 웃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가끔가다 느끼는 건데, 샨은 나보다 어린 것 같아." 여태껏 잘못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샨은 현민보다 연상이었다. 가상현실 속의 시간이 빠른 것 때문이 아니라 처음 만났을 그때에 도 분명히 나이가 많았다. 그 당시 현민이 17살, 샨이 21살이었다. 결혼할 때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였다. 그 이유 때문에 두 사 람이 사이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로 이제는 해가 바뀌어 현민이 19살, 샨이 29살이지만 말이다. 혹시나 맺어진다면 범죄 성립(?)이다. 그만큼 현민이 샨을 어리다고 생각하기에는 샨의 나이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듣고 있는 샨이 기분 좋아하고 있으니, 그것에 대해 태클 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걸로 질투나 하고." 확실히 자신의 능력은 대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읽는 것은 아니나 읽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민은 타인의 마음을 예상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있어서는 안 될 능력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의 '거리'가 없다면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미 지혜와 부딪친 경험이 있기에 알고 있었다. 상처를받는 것은 마음을 읽힌 사람뿐만 아니라 읽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현민은 샨이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런 걸로 질투할 필요 없어.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다른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이니깐. 너는 이전의 나처럼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고 살아가면 돼." 현민은 이렇게 말해주는 게 최선이었다. "살아갈 날이 남았다면 말이지." 사각! 현민의 꼬리가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현민의 꼬리는 절대 방어만을 절반으로 갈랐을 뿐 목소리의 주인공을 가르지 도, 눈앞에서 사라지는 샨을 구하지도 못했다. 콰득! 파삭! 현민은 기운을 드러냈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검붉은 색의 아지랑이가 몸에서 피어올랐고, 주변의 나무가 스스로 으스러졌다. "호오~? 이게 소문의 '악마'인가?" 유저는 샨의 입에 칼을 물린 채 흥미롭다는 어조로 말했다. 『가우리』에서 현민과 관련된 정보를 완벽히 통제하는 바람에 입소문만 들었을 뿐, 그 능력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나무 위에 있던 현민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후웅! 어디선가 바람이 분다고 느껴졌을 때, 나무 위에 서 있던 현민은 그의 정면으로 이동해 있었다. 공포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처럼 중간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움직임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현민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 유저가 반사적으로 순안의 검을 휘둘렀다. 다급한 움직임이라 제대로 된 타격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기대를 넘어서 부딪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의 검은 환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현민의 머리를 통하여 지나갔다. 그가 놀라 주춤할 때 현민이 입을 열었다. "더.러.운. 손. 치.워.라." 움찔! 온몸이 따끔했고,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으며, 흘러내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식은땀이 났다. 점점 크게 보이는 현민을 피해 움직이려고 해봤지만, 그의 몸은 의지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가위 눌림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상상할 수 없는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굳어버렸다. 현민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며 샨을 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샨의 몸에 닿기도 전에 눈앞에 있던 두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현민이 보여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간 과정이 생 략되어 있는 움직임이었다. 현민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두 번. 예의상 세 번까지만 참아주겠어." 현민에게서 존댓말이 사라졌다. 얼마만큼 화나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으면 좋았으련만, 그들은 현민이 존 댓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초조하다고, 자신들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착각했다. 그러한 생각은 거만함으로 나타났다. "풋! 세 번이라고? 그렇다면 목을 잘라도 용서해주겠네?" 스릉! 현민에게서 샨과 유저를 데려간 존재가 날이 선 단검을 샨의 목에 들이댔다. 한 줄기의 핏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현민은 인벤토리에서 마녀의 빗자루를 꺼냈다. "이제 참는 건 끝났어. 너희들에게 남은 기회는 한 번. 너희가 '악마'를 원하는 거라면 나는 기꺼이 '악마'가 되어주겠어." 무엇인가 하나의 감정이 극에 이르면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다. 지금 현민이 그런 상태였다. 여기서 터진 다면 현민은 진짜 그 스스로의 의지로 '악마'가 될지도 모른다. 내면의 현민인 아현이 그를 말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유저들이 그런 아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아하하! 근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영원히 참아주셔야 할 것 같은데." 그의 자신 있는 웃음소리와 함께 반대편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현민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마음을 예상하는 것에 비하 면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누군가가 유저들의 손에 이끌려 오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로 보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루인아츠가 그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뒤늦게 현민의 고개가 돌아갔다. 현민이 바라보는 그곳에는 2명의 마녀와 11명의 다크 엘프들이 유저의 손에 구속되어 있었다. 루인아츠가 말해준 것처럼 처참한 상태 였다. 팔다리 제대로 붙어 있는 존재가 없었고, 입과 눈은 그 기능을 상실한 것 같았다. 현민의 눈길은 그들 중 한 명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다른 존재들은 만난 적도 없었지만, 2명의 마녀 중 1명은 현민과 같은 마을에 있 던 마녀였다. 현민이 오기 전까지 막내였던 존재였다. 언제나 언니들에게 밀려 좋은 옷이나 장신구를 고르지 못했기에 현민이 따로 챙 겨 준 적까지 있던 마녀였다. 현민은 다시 유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모여든 것인지 가뿐히 천 단위를 넘어 보이는 존재가 나무 위 아래로 현민을 둘러싼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대들이....원.한.다.면." 현민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몸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검붉은 색의 아지랑이가 그의 몸을 가렸다. 그 색이 짙어질수록, 그 범위가 넓 어질수록 보이지 않는 압력이 그들을 짓눌렀다. 팟! 한순간 현민의 신형이 사라졌다. 진실된 거짓으로 자신을 강화한 현민이 한계 이상으로 이동하는 것은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누구도 움직임은 물론이고, 잔상조차 보지 못했다. 그런 유저들이 현민의 공격을 막는다는 것은 말도 안됐다. 일정한 규칙도 없이 주변에 있던 유저들의 머리가 목에서 떨어졌다. 가장 먼저 죽은 것은 샨과 마녀, 그리고 다크 엘프를 인질로 잡고 있던 유저였다. 그 들은 다른 유저들과 다르게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상상을 뛰어넘는 현민의 움직임에 당황한 것은 유저들이었다. 현민의 공격에는 방어도 통하지 않았다. 막으면 막는대로 그것도 함께 잘려나갔다. 대책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샨에게 다가갔다. 현민이 그의 접근을 보고 있었을 리 없었으나, 그도 나름대로의 기술이 있었다. 마녀의 빗자루조차 자르지 못하는 투명한 막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자신이 몇 차례나 위험했다는 것도 모른 채 그가 소 리쳤다. "여, 여길 봐! 이 여자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냐?" 그의 말이 통한 것일까? 현민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왜 그랬어?" "뭐?" 현민의 갑작스런 질문에 유저는 당황했다. 하지만 현민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가 아니었다. 현민은 그의 품 안에 있는 샨을 바라보 고 있었다. "룬...." 현민은 그 한마디로 샨의 마음을 예상했다. "바보처럼 왜 또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이들은 죽어 마땅한 존재라고!" 살기가 넘실거리는 현민의 외침에 유저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들의 얼굴에서 더 이상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넌. 닥.쳐." 샨을 잡고 있는 유저가 인질을 믿고 큰소리쳤지만, 집중되는 기운을 참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실전을 통해 경험을 쌓 았기 때문인지 의지에 대한 제어가 능숙해져 있었다. "룬도 틀릴 때가 있네?" "....?" "난 이들을 걱정하는게 아니야. 너를 걱정하는 거야." 유저의 떨리는 손길로 인해 파고든 칼날이 그녀의 목에 상처를 만들었으나, 샨의 목소리는 차분하기만 했다. 그녀는 지금 스스로의 의 지로 잡혀 있었다. 현민처럼 유저들을 학살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벗어나고자 한다면 못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현민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질문한 것이었다. 샨은 천천히 다음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네가 약해질 뿐이니깐." "...뭐?" 현민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보이고 있는 힘과 능력, 방식은 내면에 묶여 있는 살기 덩어리, 아민과 다르지 않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니다. 강하면 강하지, 약해질 리는 없는 것이다. 샨은 자신의 말에 고민하는 현민을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난 당신을 믿어요." 털썩. 샨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여태까지 시끄러웠던 루인아츠도, 아현도 지금 순간만큼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한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샨을 인질로 잡고 있던 유저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현민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현민의 중얼거림이 계속될수록 몸에 두르고 있는 검붉은 색 안개가 거친 움직임을 보였다. 정신이 살짝 나가 있다고(?) 해도 될 만한 현민의 모습을 보면서도 유저들이 꼼짝하지 않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들쑥날쑥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기운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이 폭발할 경우 어떤 피해를 입을지 몰랐기에 유저 들의 움직임은 조심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죽.여. 버.리.겠.다." 쿠웅! 폭발적으로 퍼져 나간 현민의 기운이 그 일대를 짓눌렀다. 거센 압력을 버티지 못한 유저들은 무릎을 꿇었다. 아무리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기운만으로 자신들을 압박하는 현민의 능력에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실보다 과장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 하더라도 현민의 능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현민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접어들었을 때.... "...라고 할 줄 알았나요?" "에?" 현민의 한마디와 함께 사납던 기운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기운 자체가 일순간 사라지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한 유저들은 자신이 착각한 것은 아닌지 애매해하는 모습이었다. "당신들은 그녀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해야 할 거예요." 몇천에 해당하는 유저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누구 하나도 입을 열지 못했다. 몸이 자유로운 것을 보면 더 이상의 압력이 없는 것은 분 명했지만, 그들의 가슴은 무엇인가 막힌 것처럼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현민은 유저들의 틈새에 있는 다크엘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를 믿나요?" "으으으...." "나를 믿나요?" 끄덕. 눈은 물론이고 귀까지 잘려 나간 상태이기에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없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다크 엘프들은 현민의 처음 질문에 무엇 인가 말하려는 것처럼 신음을 내뱉었고, 두 번째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현민의 손이 그들에게로 뻗어졌다. "윈드 커터(2서클)." 바람의 칼날이 그들의 목을 지나갔다. 하나의 칼날에 한 명이었다. 자신이 믿고 있던 존재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었으나, 다크 엘프들 은 자신의 죽음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현민은 열한 번의 마법을 마치고서야 손을 내렸다. 그는 마녀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를 믿지?" 끄덕. 그녀들은 앞선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 역시 귀가 없으면서도 현민의 말을 듣고 있었다. 현민은 손을 들어올리려 했으나 그녀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의 힘을 그대에게." "나의 힘을 그대에게." 입 자체가 망가져 있고 막혀 있어 말을 할 수 없음이 분명한데, 그들은 소리를 내어 현민을 축복했다. 한 사람의 축복으로 인해 소모 되었던 정신력의 3분의 2가 회복되었고, 또 한 명의 축복으로 인해 그의 정신력이 가득 찼다. 현민은 그들의 힘을 건네준 두 마녀는 먼지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졌다. 설마 이러한 행동을 취할지 상상도 하지 못한 유저들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어, 어째서?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나요?" 살아남은 여성 유저 중 한 명이 현민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을 위해 분노할 수 있는 존재가 그들 을 죽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모순되는 행동을 하는 것도 그렇고, 죽어가는 존재가 웃을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감정이 섬 세한 여성이기에 느끼는 사실이다. 현민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현민의 눈동자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모든 걸 죽일 수 있답니다. 나 자신까지도...." 제122장 신(神) "과연 '악마'로군. 인질이라 해도 가차 없이 죽인다는 건가?" 저벅저벅. 모두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현민을 향해 다가갔다. 그동안 숨어 있던 존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현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현민도 알고 있는 존재였다.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았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미치겠네. 당신들은 무슨 만화 주인공이라도 되는 건가요?" 현민은 투덜거렸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존재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루인아츠의 능력을 통해 바라보지 않아도 그 분위기 자체가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이면 죽일수록 더욱 강해지게." 까득! 현민의 한마디가 그의 성질을 건든 것인지 이빨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런 것에 움찔할 현민이 아니다. 현민은 그를 깔끔하게 무시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며칠 전 싸웠던 랭커 중 또 한 명이 있었다. "당신은 어째서 여기 있는 거죠?" 그는 5명의 랭커 중 마지막으로 죽었던 유저였다. 현민이 가장 약하다고 놀렸던 유저이기도 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설마하니 나를 도와주려고 왔다 말하려고요?" "...." 그는 현민의 질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모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큭!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큰소리를 친 건가요? 나라를 위한다고? 아하하하하!" 현민은 참을 수 없다는 듯 허리를 숙여 가며 크게 웃었다. 유저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시당하는 것이 불쾌할 만도 하건만 유저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새 그들의 곁으로 1만에 가까운 존재들이 나타나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팡! 묵직한 공기가 자신의 몸에 부딪히는 것을 느끼고서야 현민은 고개를 들었다. "그래, 당신은 몇 위인가요?" "3,261위다." "풋!"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린 현민은 동물을 다루던 유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공식, 비공식 포함 전 세계 일만 위까지의 랭커들이라.... 생각 외로 능력 있는데요?" 랭커라는 게 딱지치기로 따먹는 게 아닌 이상 만만한 존재들이 아님은 분명하나, 현민은 여유로운 태도를 지우지 않았다.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나요?" "내가 했던 말은 기억하나?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고." 팟! 하늘은 현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현민의 질문을 그대로 질문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단지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하늘은 이전보다 강해져 있었다. 그것은 외형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이전에는 어떤 동물로 변했는지 알 수 있었던 하늘이 지금은 그 동물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여 있었다. 여러 동물의 장점이 섞여 있는 만큼 그 능력 또한 몇 배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상대가 현민이다. 그가 이전보다 강해진 상태로 나타났다고는 하지만, 현민도 루인아츠의 봉인을 풀고 있는 상태였다. 아직 누 가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신형이 중앙에서 맞붙었다. 서로의 주먹에 튕겨 나가버린 두 사람은 주변의 나무를 발판 삼아 또다시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 그들의 부딪침이 계속될수록 근처에 있던 나무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그야말로 괴물과 괴수의 싸움이었다. 나무 위에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유저들은 지금보다 더욱 거리를 벌렸다. 공격할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 같았다.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현민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급하기도 하셔라. 내가 그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보세요." "그딴 것 모른다!" "이런~ 지금 멍청하다고 자랑하시는 거죠?" "크아아아앙!!" 그의 스킬에 제대로 걸린 현민은 움직임의 속도가 반으로 줄었다. "죽여 버리겠다!!!" "당신이 그럴 수 있을까요?" 콰앙! 두 사람이 부딪친 장소를 기준으로 하여 주변의 땅이 움푹 파였다. 하늘의 스킬과 현민의 주먹이 부딪친 결과이다. 그 충격이 어떠했 을지 짐작이 가지만 하늘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현민은 이 정도에 죽을 위인이 아니다. 현민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땅에서 솟아난 기다란 꼬리가 하늘의 발목을 감았다. 휘익! 하늘은 현민의 꼬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현민이 그를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손을 날개로 바꾸어 날아올라도 보았으나, 다시 끌어내리는 현민의 꼬리로인해 보기 흉한 모습으로 땅바닥을 뒹굴었다. 후웅! "하이~" 현민의 꼬리가 그런 하늘을 잡아당겼다. 현민의 꼬리에 하늘이 이끌린 곳은 현민의 정면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현민은 상큼한(?) 인사 와 함께 그의 안면으로 주먹을 꽂았다. 쾅! "컥!" 현민의 주먹에 맞은 하늘은 빠르게 튕겨 나갔다. 하지만 놓아주지 않는 현민의 꼬리로 인해 제자리로 돌아갔다. 쾅! 쾅! 쾅! 쾅! 쾅! 부딪치고 튕겨 나가고의 반복이었다. 현민은 치사하게 같은 곳만 때렸다. 대낮에 별이 보인다는 게 어떤 건지 체감할 정도로 하늘은 정신이 없었다. 악어와 코끼리, 그리고 갑각류의 딱딱한 피부로 변하여 웬만한 방어구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 하고 현민의 주먹 한 방에 생명력이 뚝뚝 떨어졌다. 이러다간 복수는커녕 마지막 남은 목숨도 현민에 의해 없어질 판이었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하늘은 현민의 주먹에 얻어맞는 순간 다리를 산양과 같이 만들어 그의 꼬리를 빠져나갔다. 콰드드드드득! 콰앙! 땅에 튕기며 한참을 굴러간 하늘은 커다란 나무에 반짬 파묻히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나무를 부수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늘의 얼굴은 야차와 다름없었다. 비록 그 자신의 피라지만, 얼굴 가득 묻어있는 피가 그의 얼굴을 더욱 험악하게 만들었다. "죽어도 상관없다. 너를 죽일 수만 있다면 내 마지막 남은 목숨을 거마." "풋! 당신의 목숨 따위로 나를 죽일 수 있을까요?" 현민은 비웃었다. 잠깐의 시간 동안 부딪친 것만 생각해도 누가 압도하고 있는지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며칠 사이 그가 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본래의 실력을 드러내고 있는 현민에게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 대답, 너의 목숨으로 알 수 있겠지." 하늘의 몸이 전체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매끄러운 몸채, 단단한 뿔에 현민과 같은 꼬리가 있었고, 멋진 황금색 갈기를 가 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전에가 여러 동물이 뒤섞여 있어 정의할 수 없었다면, 이번에는 그 종류를 알 수 없어 정의할 수 없었다. "목숨을 대가로 하는 스킬이라.... 그것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쾅! "크윽!" "...이다." 루인아츠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자리에서 이동한 하늘은 현민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나름대로의 복수다. 그가 대답하는 사이, 현민은 이미 하늘의 공격을 허용한채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흠칫! 콱! 뒤에서 들려오는 현민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하늘은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현민을 공격했다. 공격하는 하늘의 손을 현민이 마주 잡았다.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은 힘 대결에 들어갔다. "샨이 죽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아세요?" 한 치의 실수로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 현민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말을 함으로써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상대를 실수하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을 죽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예요." 흠칫! 콰드득! 현민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며 하늘의 신형이 약간 밀려들어갔다. 다급히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그의 신형은 땅으로 파고들어갔을 것이다. 운이 좋아 버틴 하늘을 보며 현민은 계속 말을 이었다. "만약 그때의 움직임으로 당신들을 상대했다면 못해도 세 시간은 싸워야 했겠죠. 아무리 나라 해도 그건 무리랍니다. 그것을 예상한 샨이 경고를 한 것입니다. 다른 능력으로 싸우라고 말이죠. 자신의 죽음을 보이면서." 콰득! 콰드득! 이번에는 흔들린 것이 아니었다. 현민의 힘이 늘어난 것이다. 도대체 얼마만큼 감춰놓은 힘이 있는 것인지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그 한 계를 예측할 수 없었다. 하늘은 자세를 바꿔야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현민의 힘에 땅속으로 파고들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양손을 아래로 내린 하늘은 현민의 힘을 이용했다. 버티던 힘이 사라진 현민은 그의 손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팔이 따라갔다. 그 위치가 낮다 보니 상체가 숙여진 것은 당연했다. 현민의 손을 놓아버린 하늘이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날카로운 손톱으로는 상처 하나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배를 맞은 현민의 몸이 들썩거렸고, 하늘은 그런 그의 등을 꼬리로 내려찍었다. 현민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꼬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있으나 마나 한 꼬리는 만들지도 않았으리라. 텅! 가죽(?)과 가죽(?)이 부딪치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소리가 들리며 현민의 신형이 땅으로 파고들려 했다. 하지만 기회를 잡은 하늘이 현민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솟구치는 하늘의 무릎이 현민의 머리를 강타했다.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강타했다 믿었다. 하지만 직접 공격한 당사자는 무릎에서 느껴지는 애매한 충격에 안색을 굳혔다. 그의 예상대로 싸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현민이 이 정도의 공격에 정신 차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무릎을 짚고 상체를 회전한 현민이 발을 높게 들어 하늘의 턱을 강타했다. 누구의 뼈에서 들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현민의 뒤꿈치와 하늘의 턱이 부딪치며 '우득!'도 아닌 '뽀각!' 소리가 났다. 둘 중 한 명이 심각한 데미지를 받은 것은 분명했다. 땅에 넘어진 두 사람은 동시에 일어났다. 그들의 동작만으로는 누가 부상당한 것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호오? 가벼운(?) 뇌진탕이 있을 텐데 그냥 누워 있지 그러세요?" "이따위 공격에...." 비틀. 하늘은 말하는 중간 비틀거렸다. 기회라 할 수 있는 순간이었으나, 현민은 웃는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게는 그 웃음 이 비웃음처럼 보였다. "죽.여. 버.리.겠.다." "그 말만 몇 번 했는지 아세요?" 쾅! 두 사람의 신형이 다시금 부딪쳤다. 동물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하늘과 발록에게 싸움을 배운 현민의 싸움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싸움은 어느새 반나절을 넘어 달이 떠오를 때까지 계속 되고 있었다. "헉, 헉, 헉." 시간이 시간인지라 하늘의 호흡은 거칠어져 있었다. 그것이 정상이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현민이 괴물인 것이다. "지쳤나요?" "우, 웃기지 마." 말은 그렇게 했으나 하늘은 지금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하늘의 그런 상태를 보며 현민은 미소 지었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뭐가... 말이냐?" "훗! 정말로 바보네요. 저번에 당하고도 지금까지 눈치 채지 못하다니." 흠칫! "서, 서, 설마...." 하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현민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챘기 때문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현실을 부정하 고 싶었지만, 깨지고 있는 공간은 그의 의지를 따라주지 않았다. 파칭! 이곳저곳 망가져 있는 주변의 풍경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으나, 하늘 높이 솟아 있던 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언제 달이 떠 있었냐는 듯 태양이 그 위치를 대신하고 있었다. "제 환상 마법이 시간을 속이지는 못할 거라 예상했나요?" "너 이 자식...." 하늘뿐만 아니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랭커들이 현민의 환상 마법에 빠져 있었다. 서로의 환상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유저들이 현민을 보며 이를 갈았다. 생각 같아서는 주먹이라도 한 방 날리고 싶었지만, 그들에 게는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다. 짧게는 3시간, 많게는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 동안 움직일 것을 5분 만에 모두 움직였으니, 그 피로도나 신체의 무리가 버티기 힘들 정 도인 게 당연했다. 현민이 자신에게 진실된 거짓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발록과의 수련으로 최대 하루 반나절 동안 싸울 수 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해제한 채 움직인다면 많이 잡아야 반나절, 기껏해야 네다섯 시간 밖에 움직일 수 없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유저들을 사뿐히(?) 밟고 지나간 현민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하늘을 향해 질문했다. "자, 다시 한 번 물어볼게요. 제가 저번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죽...여 버리겠다." "이런, 이런. 정말 기억 안 나시나 보네. 괜찮아요. 당신이 바보라는 건 절대 소문내지 않을게요." "너어.....!" 하늘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할 정도로 똑같은 방법에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쳐 버린 그의 목소리는 소리쳤 다고 하기에 너무 작았다. "내가 말했었죠? 안 그래도 모든 유저들을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고." 움찔! 하늘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불안함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때는 말도 안 된다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가능 할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그 이전에 했던 말은 기억하세요? 아 참, 당신은 바보지?" 현민은 허리를 숙여 하늘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가면 속에 있는 현민의 눈과 하늘의 눈이 마주쳤다. "그럼 다시 한 번 말해드릴게요. 내가 정령사의 능력을 사용한다면 당신들을 정리하는 데 3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는 답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4명의 정령들이 현민의 곁에 나타났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있었다. "이제 끝내겠어요." 현민은 허리를 세웠다. "염화, 묘, 윈디아, 담비. 이리 오렴." 4명의 정령이 현민에게로 안겨들었다. 그들을 마주 안은 현민은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그만 전쟁을 끝내자." 4명의 정령이 현민에게로 스며들었다. 정령화. 현민은 누구 하나가 아닌 네 존재 모두와 정령화했다. [정령화(정령 마법)] 설명 : 정령과 하나가 되어 그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지혜의 예상처럼 '신'이 나타났다. ---------------------- 이름 : 룬 Lv : 2,426 직업 : 정령 정력력(精靈力) : 5,882,144 ---------------------- 현민의 외형은 전날 보았던 아현의 모습과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형상이 뚜렷하지 못하고 반투명하다는 것뿐이었다. [이게 우리가 생각하던 궁극의 상태.] 그의 목소리는 현민이나 다른 정령들 누구의 목소리와도 닮아 있지 않았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분위기, 외형 그 밖의 많은 것들이 달 랐다. 지금까지의 정령화와는 다르게 새로운 존재가 만들어졌다는 느낌이었다. 현민, 아니 이제 현민이라고 칭할 수도 없는 존재는 양손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온몸을 살폈다. [유령? 아니, 진실한 정령(精靈).] '그'는 시험 삼아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길이 끝나는 곳부터 시작된 거대한 바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던 유저들의 신형을 들어올 렸다. 그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 높은 곳까지 솟아올랐다. '그'는 유저들의 뒤를 따라 하늘 높이 올라갔다. [당신들이 시작입니다.] 움직임조차 없었다. '그'의 의지만으로 그의 양옆에 거대한 토네이도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마법으로 만들어지는 토네이도와 차원이 달랐다. 크기부터 높이까지 압도적이었다. 허공에 떠 있던 유저들이 토네이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빠르게 회전하는 바람 소리로 인해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날카로운 바람에 찢겨 본래의 형체를 잃어갔다. 아무리 대단한 유저도 자연 앞에서는 저항하지 못했다. 그러한 토네이도가 전쟁터 곳곳에 만들어졌다. 그 피해가 어떠할지는 뻔했다. 단순한(?) 바람만으로 이 정도의 피해를 만들었으나,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머리 위로 먹구름이 만들어졌다. 처음은 단순한 빗방울이었다. 하지만 채 1분이라는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 빗방울은 얼음으로 변해 쏟아져 내렸다. 우박만 해도 골칫 덩이인데 천둥 번개까지 쳤다. 어느 것 하나만으로도 심각한 자연재해가 한꺼번에 몰린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하늘과 관련된 재해였다면 이번에는 지상과 관련된 재해였다. 거대한 지진이 전쟁터를 뒤흔들었다. 땅을 딛고 싸워야하는 유저들이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여기서 그쳤다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갈라진 틈에서 용암이 흘러나와 유저들이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제한했다. 도저 히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 속에 유저들은 당황할 뿐이었다. [이게 나의 힘.] '그'는 하늘 높은 곳에서 자신이 이룬 일을 바라보았다. 거리 따위는 상관없었다. 의지만으로 또 하나의 눈이 생겨 어떤 곳이라도 살필 수 있었다. "이게...'신'?" 지혜는 웃었다. 현민이 능력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러한 능력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단순한 비유로 '신'이 아니라 정말 현세에 강림한 '신'의 모습이었다. '역시군. 이것으로 확률은 높아졌다.' 옆에서 같이 지켜보고 있는 드래곤도 지혜만큼이나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현민이 숨겨 왔던 능력을 확인함으로써 그들이 세우고 있는 가설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저렇게 강한 힘을 어째서 사용하지 않은 거지?" 지혜는 이해하지 못했다. 현민에게 이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면 굳이 삼일전쟁을 하지 않아도 모든 유저들을 죽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민은 지혜의 계획으로 삼일전쟁을 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현민의 미래를 예상한 지혜가 그의 생각을 앞당겨 주었을 뿐이다. 지혜가 말해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민은 삼일전쟁을 했을 것이다. 지혜의 중얼거림을 들은 드래곤이 그녀의 생각을 바로잡아주었다. "강하다고? 아니다. 지금의 그는 마법을 쓸 때보다도 약하다. 마법이란 것 자체가 자연을 흉내 내고, 자연을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 이기 때문이다." "저게 마법보다 약한 거라고요?" 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 말했다. 마법이고 무엇이고를 떠나서 절대로 '약하다' 할 수 있는 성질의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드래곤의 말을 인정했다. 자연과 마법의 결정적인 차이, 그것은 파괴력이었다. "마법에 비할 때 파괴력이 낮다는 거죠?" 마법의 경우 아무리 거대한 바위라도 일순간 부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자연 같은 경우에는 바위를 부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한계 이 상을 넘지 않으면 안 됐다. 드래곤의 말처럼 '힘'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자연이 약한 것이다. "그런데 왜 저런 능력을 사용하죠?" "네가 말하고 잊었나? 마법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자연은 신이 만들었다. 신을 흉내 낸다는 그에게 가장 적당한 힘이지." "흐음...." 지혜는 현민을 계산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혜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점점 짙어져만 갔다. 찰랑! "앗! 차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지혜는 볼에 닿는 차가운 감각에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에는 전쟁터 위에 있어야 하는 현민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혜는 눈을 돌려 전쟁터를 확인했다. 그곳에 있는 현민이 지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셨습니까?" 그 누구보다 오만하다고 알려진 드래곤이 '그'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2명의 현민을 보며 경악하고 있던 지혜는 믿을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 자신의 눈 자체를 의심했다. [무릎 꿇을 필요 없다. 나는 아직 완벽한 신이 아니니깐.] '아직?' 지혜는 '그'의 말에 담겨 있는 의미를 생각했다. 스윽- '그'의 손이 지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에 다리가 풀려 버리려는 순간. [자꾸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가까운 날에 혼날지도 모르겠구나.] 흠칫! 지혜의 몸이 한순간 굳어졌다. '그'를 현민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지혜는 그의 말이 협박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예상할 수 있는 현민이 자신에게 복수(?)한다고 생각하자 포근함이 사라지고 오싹함이 느껴졌다. "조심...할게." 지금 당장은 피해볼 게 많아 조심스러워진 지혜였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드래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희들이 숨기고 있던 것이냐?] "저희의 일족으로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질문을 하는 '그'도, 대답을 하는 드래곤도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그'의 협박(?)에 창백해진 안색으로 무언가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너희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의 신형은 나타나던 것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중에 떠 있는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이의 비명을 들었고, 모든 이의 죽음을 보았다. 아이템이 좋다고 해서, 레벨이 높다고 해서 살아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금속제 갑옷을 입고 있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높이 있던 유저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에 맞고 즉사했다. 방어력이 약한 존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우박을 맞아 죽어가고 있었으며, 흔들리는 땅에 발을 잘못디딘 존재는 용암에 빠져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어느 정도의 한계를 넘은 자연의 파괴력은 마법의 파괴력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였다. 현민이 정령화한 지 몇 분의 시간도 되지 않았건만, 유저들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이것은 나의 경고.] 성별의 구분을 뛰어넘어 투명함만이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가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도 유저들의 귀에 울려 퍼졌다. [이 세상은 당신들의 전쟁터가 아닙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계속 싸우겠다면 나는 나의 욕심을 위해 당신들을 죽이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지가 흔들렸다. 태풍, 지진, 화산, 우박, 천둥 번개 등 '그'가 만들어낸 자연재해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데도 정령력은 여유가 있었다. 모든 유저가 확실히 죽을 때 싸지 그는 자신의 힘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마무리만 하면 끝인가?] 단 한 명의 유저도 살아남지 않았을 때, 자연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얀 구름이 떠다니고, 기분 좋은 바람 이 머리를 식혀주었다. 지상의 외형은 흉측했으나, 하늘만은 변함없었다. 현민이 하려고 하는 일은 그런 지상을 원래대로 복구하는 것이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한 번에 짠~! 하고 복구할 수는 없지만, 대지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가능했다. 곳곳이 파이고 튀어나와 보기 흉했던 땅이 고르게 펴졌다. 당장에는 잡초 한 뿌리 보이지도 않았지만, 촉촉하게 젖어있는 대지는 그 어떤 식물이라도 금방 자랄 것만 같았다. [당신들의 삶...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파앗! '그'의 등에 날개가 펼쳐졌다. 하늘 전부를 덮을 만큼 거대한 10장의 날개. 반투명한 날개를 통과한 달빛이 아름다운 색으로 변하여 지상에 내리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세요.] 기적이 일어났다.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NPC들은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동안 유저에게 당해 죽어야 했던 NPC들이 모두 되 살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 세계 어느 한 곳도 예외가 없었다. [971,165,283명의 부활에 성공하셨습니다. 레벨이 586 감소합니다. 경험치가 98.7% 감소합니다.] 현민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어차피 유저들과의 전쟁으로 올린 경험치, 사라진다 해도 후회는 없었다. 레 벨이 1이 된다 하더라도 실력이 차이 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의 날개가 가루로 변하며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가루는 달빛을 그대로 반사하며 아름다운 색을 만들었다. 온 세상이 반짝거 리고 있어 별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그러한 빛 속에서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사뿐.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땅에 내려서는 '그'의 모습은 동화속에서나 등장하는 선녀를 보는 듯 했다.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해 보였 고, 움직임은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그'는 허리를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팡! '그'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터져 나오며 4명의 꼬마 정령이 튀어나왔다. 허공에 둥실 떠 있는 4명의 꼬마 정령은 각자의 성격에 맞추 어 땅으로 내려섰다. "우음~ 뭔가 엄청났어요." "...기묘한 느낌." "저는 오라버니와 하나만 될 수 있다면 뭐든 좋아요." "재미있었어!" 그들은 한마디씩 하며 현민에게로 달라붙었다. 언제나 보아왔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과는 다르게 처음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그들을 보며 현민은 미소 지었다. 그들의 억지로 이루어진 계약이었으나, 지금 생 각해보면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러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러한 감정이 너무 지나쳐서 현민은 해선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앞으로는 자주 놀아줄게." "정말요?!" "우후후훗!" 꼼지락. "아싸~!" 그들의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고서야 현민은 현실을 직시했다. 자신도 모르게 터무니없는 약속을 해버린 것이다. 한번 놀아줄 때마다 집이 날아갔던(?) 지금까지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 현민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약속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너무나 좋아하는 그들을 보며 포기해버 렸다. 현민이 조금 전 생각했던 것처럼 아직 어린아이인 것이다. "그럼 우리는 정령계에 가서 기다릴게요." "응? 어째서?" 현민은 고개를 기울였다. 평소 나오기만 하면 이곳저곳에 놀러 다니느라 정령계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하는 존재가 그들이었기 때문이 다. 그들이 자진해서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현민의 놀람은 더욱 컸다. "이때쯤 되면 오빠는 항상 돌려보내잖아요." 패턴이 너무 뻔했던 것인지 현민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묘였다. 당황한 현민이 어정쩡한 얼굴로 굳어 있을 때, 묘가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우리도 알 건 다 아는데." "맞아." "...." "응? 뭘 알아? 오빠 사탕 숨겨 놓는 곳?" 현민은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이냐고.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담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알고 있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 순진하다고 생각한 염화마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과연 이들이 순진하기는 한 걸까? 현민은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해보았다. 그들은 긴 여운(?)을 남기며 정령계로 사라졌다. 조용한 밤하늘 아래 현민 혼자만이 남았다. 그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정령화를 해제한 직후라 그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현민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신들이 졌어요." 개인, 파티, 길드, 기업, 국가 그 모두를 상대하고 살아남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 모두를 죽였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 그 것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약속했던 3일은 지났고, 전쟁의 승자는 현민이 되었다. "나는 어릿광대. 세상을 조롱하고 나 자신을 비웃는 자랍니다." 현민은 천천히 가면을 쓰며 돌아섰다. 운영자들의 말이 사라진 지도 한참이 지났다. 그들은 현민이 인질을 죽이는 순간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만 일어났기 때문이다. 시스템 조차 알아내지 못한 능력으로 유저들을 압박했고, 단 하나의 마법으로 모든 랭커들을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4명의 정 령과 동시에 정령화하며 '신'이 되었다. 정령을 통해 자연의 힘을 다루는 것이 정령사의 능력이라고는 하지만, 현민의 능력은 그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아무리 편견을 가지고 (?) 바라보아도 현민은 '자연' 그 자체를 다루고 있었다. 순수한 자연의 힘 앞에 유저들의 강함은 소용없었다. 시간의 차이만 있었을 뿐, 그 어디를 비춰도 죽어가는 유저만 보였다. 화면이 바뀌며 허공에 서 있는 현민이 나타났다. [이제 마무리만 하면 끝인가?] 운영자들은 그 말의 뜻을 손쉽게 알아챘다. 전쟁터 위에 남아 있는 유저의 수를 가리키는 숫자가 1로 되어 있었다. 살아남은 한 명이 누구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현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전쟁터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솟구쳐 오르던 용암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갔고, 이곳 저곳 갈라져 있던 대지도 매끄럽게 합쳐졌다. 유저들의 시체와 소환수의 흔적들은 땅으로 스며들었다. 풀이 없어 들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의 모습 그대로였다. 운영자들이 몇 날 며칠을 밤새워야 복구 가능할 것을 순식간에 이뤄낸 것이다. 그들은 소리 없는 환호성을 내뱉었다. 일을 안 한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당신들의 삶...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파앗! 현민의 등에 생겨난 날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투명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그의 날개를 보며 운영자들의 두 눈이 몽롱해졌다. 그들의 장비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이 아니었다면 정신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삐삑! 삐삑! 삐삑! [남겨진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세요.] 현민의 말과 동시에 경고음이 사라졌다. 운영자들의 손가락이 바빠졌다. 더 이상의 경고음은 사라졌지만, 시스템에 에러가 난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직위에 걸맞게 그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페튜니아가 그 원인에 근접한 메시지를 찾아냈다. [971,165,283명의 부활에 성공하셨습니다. 레베이 586 감소합니다. 경험치가 98.7% 감소합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성희가 입을 벌렸다. 그 숫자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9, 9억?" 어제 오늘 싸웠던 모든 유저들을 부활시켰다고 보면 옳았다. 이렇게 많은 수의 NPC들이 부활한다면 문제 생기는 게 당연했으나, 그것 에 대해서는 운영자들 중 누구 하나 걱정하지 않았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이뤄낸 것이기 때문이다. 한쪽에 보이는 현민의 레벨은 1이 되어 있었다. 성희가 평범하지 않은 현민의 능력을 보며 한마디 했다. "쟤 우리 쪽 사람(운영자) 아냐? 아무리 생각해봐도 평범한 유저가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 확실히 수긍 가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능력을 얻어 가는지 직접 관찰했기 때문에 그의 강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운영자들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민의 거대한 날개가 가루라 할 만큼 작게 조각나며 흩어지는 모 습이 나왔다. 내심 마음에 들어 하던 날개였기에 모두가 아쉬워하는 분위기였으나, 그것이 만들어내는 꿈같은 장면을 보며 또다시 몽 롱한 눈빛이 되었다. 약간 각도를 내려서 보니 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뿐. 하늘에 있던 현민이 땅으로 내려섰다. 은은한 빛이 터져나오며 그의 정령화가 풀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4명의 꼬마 정령이 현민에게로 달라붙었다. 운영자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부러운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4명의 정령은 운영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전 세계의 그 어떤 아역 배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엽고 깜찍했기 때문이 다. 한번 사고치면 몇 날 며칠이 피곤했지만, 어차피 어린애 장난이기에 진심으로 화를 내는 존재는 없었다. 현민과 인사를 나눈 정령들이 사라지는 장면이 보였다. 홀로 남은 현민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움찔했 지만, 달을 등지고 있었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당신들이 졌어요.> 자신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민의 그 한마디는 운영자들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언제나 지켜보았던 현민이 결국 그것 을 해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이는 어리지만 외적으로, 내적으로 그 누구보다 강한 현민에게 존경심이 생겨났 다. <나는 어릿광대. 세상을 조롱하고 나 자신을 비웃는 자랍니다.> 성희의 두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였다. 영상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잔뜩 흥분해 있는 것이었 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편집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끝나 있었다. 성희는 응원하는 눈으로 지현(페튜니아)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현민 이상의 남자는 없는 것 같았다. 영계에 돈 많지, 싸 움 잘하지, 예쁘지, 순진하지, 다정하지. 전부 늘어놓으면 자랑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남자가 현민이었다. 요주의 인물이라 오랜 시간 관찰했기에 모두가 인정할 만한 사실(?)들이었다. 전쟁터에 있는 유저들의 수를 가리키는 숫자가 0이 되었다. 모든 것을 끝낸 현민이 로그아웃한 것이다. 마치 몇 달 동안 계속되었던 것 같은 전쟁이 드디어 끝났다. 한 명의 유저가 만들어낸 이벤트치고는 성공적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었 다. 제123장 생일 『싸울아비』를 종료한 현민은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접속기에서 일어났다. 방 안은 이상할 정도로 어두웠다. 조금의 빛조차 통하지 않아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는 방 안을 보며 현민은 미소 지었다. "흑! 흐흐흑!" 움찔! 현민은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작게 흐느꼈다. 어디선가 누군가 흠칫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민의 입가에 있던 미소가 짙어졌다. 현민은 다시 한 번 구슬프게 흐느꼈다. "으흐흐흐흑!" 오싹!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더욱 섬뜩했다. 현민이 스스로의 목소리에 놀랄 정도였다. "야, 지금 이거 누구야?" 작은 속삭임이 현민의 귀에 들렸다. 제대로 걸린 것이다. 방 안에는 현민의 예상처럼 그 말고 다른 누군가가 숨어 있었다. "몰라. 여자 중 한 명 아냐?" "우리 쪽에서 소리 나지 않았어. 너희들이야말로 괜히 장난치지 마. 현민이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래?"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목소리로 볼 때 한두 명이 아니었다. 현민은 다시 한 번 미끼(?)를 던졌다. "설마 귀신이 있는 건 아니겠지?" "....." 현민의 한마디에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너무나 조용한 주변의 상황에, 현민은 자신의 행동이 들킨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방 안에 숨어 있는 존재들은 정말로 귀신이 나타난 것은 아닌지 무서워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문을 열어준다 면 바로 뛰쳐나갈 생각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수, 숫자를 세어보는 건 어때?" 현민은 공포에 질린 듯 목소리를 떨며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그는 지금 전쟁의 피곤도 잊고 놀리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그럼 나부터, 하나." "...둘." "셋." 그들은 하나하나 숫자를 늘려 갔다. 겹치는 숫자가 나온다면 누군가 한 사람이 다음 숫자를 말했다. "스물둘." "스물셋...." 스물셋에서 숫자가 멈췄다. 방 안에 있던 존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원수가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안심은 너무 빨랐다. 털썩! "흑!" "뭐, 뭐야? 누구야?" 누군가 주저앉으면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전과 목소리는 달랐지만 흐느낀다는 점에서 그들의 공포를 자극했다. "나 현영이...." "뭐야, 놀랐잖아. 갑자기 왜 울고 그래?" "나 숫자 말 안했는데... 그랬는데.. 흑! 흑흑!" 오싹!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과 함께 두껍게 껴입은 셔츠 안으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현영이 말을 하지 않았는데 숫자가 맞았다면 누군가 현영을 대신하여 숫자를 말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들말고 말할 사람이 없다는 점에 있었다. 처음에는 현민을 의심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우아아아아아악!!" "꺄아악!!" "아아아아악!" "엄마야!!!"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참고 있던 비명을 지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여러 명이 동시에 나가려다 보니 방 안은 난장판이 되었고, 현민은 다급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훗! 아하하하하!" "....?" 다른 사람들은 도망가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도망가지도 못한 현영은 낯익은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 앞에 현민이 있었다. 현민은 공주님 안기로 현영을 안아들었다. "너희들이 나를 놀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현민은 방문을 나서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적(?)의 계책(?)을 이용하여 상대를 물리치는 뛰어난 병법(?)을 선보인 자신의 머리에 스 스로 만족하고 있었다. 현민을 보고서야 당했다고 생각한 친구들의 얼굴은 점점 험악하게 변해갔다. "언제 나온 거야?" "시연이가 코딱지 파고 있을 때." "에~ 엑?!" "드러!!" 시연의 근처에 있던 친구들이 서둘러 물러났다. 가까운 곳에 위험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시연은 황급히 양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야! 그냥 코를 긁었을 뿐이야!" "변명은 손톱에 낀 코딱지나 빼고 말하시지." 시연은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봐! 없잖....아." 시연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바라보고 있는 친구들의 시선이 좋지 않았다. 시연은 그제야 깨달았다. 정말로 코를 파지 않았다면 손가락을 확인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을 말이다. 제 무덤 제가 판 거니 이해해줄 수도 있다. 현민은 품 안의 현영을 자리에 앉혀 주었다. 어느새 차려진 것인지 거실에는 과자와 음료, 캔 맥주가 가득했다. "고마워." 현민은 친구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어째서 모인 것인지 알고 있었다. 2월 13일. 현민의 생일이었다. 이제 막 날이 바뀌었으니 오늘인 것이다. "자, 그럼 맞아야지?" 희광이가 주먹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생일빵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희광이의 뒤를 이어 재영이도 일어났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 몸을 풀었다. 조금 전 현민의 장난이 있다 보니, 몸을 푸는 친구들 중에는 무기를 들고 있는(?) 여학생도 있었다. 그 누구도 봐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의 살벌한 분위기에 현민의 미소가 어색해졌다. "적당히 하면 안 될까? 거기 당신, 무기는 내려놓으시죠?" 현민은 사정했으나, 누구도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생일 축하한다!!!" 집이 울릴 정도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그들의 구타(?)가 시작되었다. "으으윽! 두고 보자." 친구들끼리의 장난이었기에 심각한 상처가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엉망으로 변해버린 현민의 몰골이 얼마나 심한 일을 당했는지 간 접적으로 알려 주었다. "자, 그럼 케이크의 촛불을 꺼야겠지?" 주방으로 들어갔던 시하가 큼지막한 케이크를 들고 나왔다. 현민의 생일이라서 큰 걸 사온 것은 아니었다. 모인 사람이 많다 보니 각자가 케이크 맛을 보기 위해 큰 걸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민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커다란 케이크를 받았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의 축하 속에서 현민은 19개의 촛불을 껐다. 기본적인 순서를 마치고,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잡담을 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졸리다고 자리에 눕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어린 그들에게 하룻밤 정도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늘의 주인공인 현민의 양옆에는 현진과 수진이, 품 안에는 그들의 동생인 예진이 있었다. 양손에 꽃을 듣 것도 모자라 품에까지 안고 있는(?) 모습이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무척이나 부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객관적인(?) 것이었고, 당사자인 현민은 어떻게든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양쪽의 두 사람이 연 신 추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예진이도 있고 하니 떠보는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대답을 듣기 위해 직설적으로 물어보고 있었다. "너 아까 발록하고 키스한 거 맞지? 그치?" "아...." 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현민은 삶은 문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현민이 버티기에는 너무나 끈적끈적한(?) 입맞춤이었기 때문에 잊으려야 잊히지가 않았다. 아마도 당분간은 키스란 말만 들어도 떠오를 것이다. 현민의 얼굴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던 두 자매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아닌 이상(?) 그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을 거라 생 각했던 현민이 예상과 다르게 입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특종이었다. "얘...엡?! 퉤, 퉤!" "얘...우웁?!" 두 자매는 큰 소리로 친구들을 불러 모으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움직인 현민의 손이 그녀들의 입을 막았다. 물론 예진을 안고 있기 에 두 손 다 움직이지는 않았다. 현민은 수진의 입 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뺀 후, 현진의 입을 틀어막았다. 무술 영화 뺨치는 현민의 움직임에 예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말하면 너희들 미워할 거야." "미워하든지." 현진과 다르게 현민의 손가락을 맛봐야 했던(?) 수진은 날카로운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협박이 통하지 않는 것을 깨달은 현민은 조금 더 강하게 나갔다. "어차피 버린 몸.... 같이 죽어버릴 거야." 흠칫! 흠칫! 예진은 현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지만, 수진과 현진은 석화 마법에 걸린 듯 단단히 굳어버렸다. 현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 지금 우리한테도 입맞춤하겠다는 거야?" 끄덕. 현민도 그들 못지않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나이다운 각오가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와~ 언니, 오빠 뽀...읍?" 아직 어린 탓에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그들만의 암거래(?)를 발설하려던 예진의 입을 아슬아슬한 차이로 수진이 틀어막았다. 몇몇 친 구들이 이상한 자세로 있는 그들을 발견하고 한 번 눈길을 보냈으나, 이내 관심 없다는 듯 본래의 관심사로 돌아갔다. 현민과 수진, 현진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들의 시선 사이에 무엇인가 있다면 불타오를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짧은 대치 상황 뒤에 두 자매가 고개를 숙였다. "...졌다." "...졌다." 여기서 순결을 잃을 수는 없었다. 그녀들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물러났고, 다른 친구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조금 전 현민의 장난에 대한 것이 화제였다. "그런데 현민아, 아까 두 번 말했어?" "응?" "우리가 방에서 숫자 셀 때 말이야." "아니, 한 번. 왜?" "그게... 나도 말 안 했는데 어째서 스물세 명인지 궁금해서." "...."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시끄럽던 집 안에 정적이 흘렀다. 재미있는 경험이었기에 말하려던 찬스를 노리고 있던 차라 모두가 듣고 있 었던 것이다. 갑자기 모든 말소리가 끊어져 더욱 무서워졌다. 그런 분위기 속에 현민이 입을 열었다. 그 장난의 주범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착각한 거 아냐? 내가 느낀 기척은 분명히 스물세 명 맞았어." "마, 맞아! 만약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가 두 번 말한 거겠지." "흠... 지금 여기서 다시 한 번 숫자를 세보면 알겠지. 맨 처음 하나라고 말한 게 나야." "내가 둘." "내가 셋이라고 했어." "난 넷." 시호를 시작으로 하여 모두가 대화를 멈추고 각자 말했던 숫자를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장난을 쳤던 현민도 여덟이라는 숫자를 말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계속해서 올라가는 숫자는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모두가 안심하고 있을 그때, 열다섯에서 숫자가 멈췄다. "열여섯 누구야?" "나 다음 여자 목소리였는데." 거실에 있던 여자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누가 말했는지 자수하라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범인은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열여섯을 제외하고 남아 있는 사람 모두 말했다. 이전에 방에서 느꼈던 오싹함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그들의 분위기에 겁먹은 예진이가 눈물을 글썽거릴 때 현민이 손을 들었다. "열여섯." 현민의 입에서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제야 자신들이 또 한 번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친구들은 이전 이상으로 험악한 얼굴이 되어 현민을 둘러쌌다. "아하하! 봐주면 안 돼?" "나가 죽어!!!" 어느새 베개를 가져온 수진이 현민의 얼굴을 후려쳤다. 귀신 소동은 그것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현민은 등골이 오싹한 감각을 아직도 느끼고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두 번 말했다고 했지만, 그 자신은 정말로 한 번 밖에 말하 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현민에게 시호가 다가갔다. "정말 두 번 말했냐?" 시호는 남들이 들을 수 없도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현민이 숨기고 있는 사실을 눈치 챈 것 같았다. 현민은 미약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열여섯이라고 말한 목소리는 내 옆에서 났다. 참고로 그쪽에는 태산이가 있었고 말이야." "하지만 태산이 목소리는..." "분명히 여자 목소리였지." 두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공포가 그들에게 동질감을 만들었다. 그들의 침묵으로 집 안의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띵동~ 띵동~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지금 시간이 새벽 2시이니 평범한 손님은 아닌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집주인에게로 모였다. "현민, 나가봐." "으윽!" 이 시간에 찾아올 손님이 없는 것은 그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진은 가장 만만한 현민을 내보냈다. "누구세..." "아, 아, 아, 안녕하세요!!!!!" 현민이 문을 열기 무섭게 누군가의 인사 소리가 집 안을 울려 퍼지는 것도 모자라, 복도까지 메아리치며 주변의 모든 소리를 먹어치웠 다. 현민은 재빨리 그녀를 잡아당기고 문을 닫았다. 모두가 잠자고 있을 시간에 고함을 질렀으니 잡히면 큰일이었다. 지금 집 안에 어른이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현민은 자신에게 손이 잡힌 채 얼굴을 붉히고 있는 문제아를 바라보았다. "채리플랑?" "네에...엡!" 현민이 재빨리 입을 막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또 한 번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 소란스런 인사에 호기심을 느낀 현민의 친구드링 문가로 나와 그들을 살폈다. "채, 채, 채, 채리... 우웁?!!" 채리플랑을 알아본 태산이 소리를 지르려 했다. 희광의 큼지막한 손이 아니었다면 또 한 번 시끄러웠을 것이다. 이미 다른 집으로부터 한 번 경고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 이 이상은 조심해야 했다. 채리플랑은 현민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대화를 멈춘 채 그녀만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현민과 그녀가 어떤 관계일지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나돌아 다니고 있 었다. 그들의 호기심은 뒤로한 채 현민은 그녀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인지 궁금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정보를 샀어요." 채리플랑은 두 눈을 반짝이며 곧바로 대답했다. 현민은 이전에 만났을 때와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에 당황했다. "이번에 새로 만든 백신 프로그램의 판권으로." 그녀의 추가 대답을 들은 현민의 눈초리가 미미하게 떨렸다. 그 범인이 누군지 예상됐기 때문이다. '또 너냐, 윤지혜!' 너무나 뻔해서 다른 사람을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저, 저기... 저번에 보내주신 옷은 잘 받았어요.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사이즈도 꼭 맞아서 항상 입고 다니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던 현민은 채리플랑의 말에 정신이 돌아왔다. 부드러운 그의 미소에 채리플랑의 두 볼은 붉게 물들었다.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은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어째서?'라는 것 같기도 했고, '이건 말도 안 돼!'라는 것 같기도 했 다. 하지만 굳이 고르자면 '믿을 숫 없어! 이건 꿈이야!!' 하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민이 좋아요?" "...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였으나, 그녀의 대답은 분명했다. 채리플랑의 고백 아닌 고백에 현민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디가 좋아요?" "예쁘잖아요!" "푸흡!!!!!" 채리플랑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은아는 생각지도 못한 채리플랑의 대답에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액체를 시호의 얼굴에 내뱉었다. 확산되는 범위 가 넓어 그의 주위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차마 말하지 못할 지저분한 상태가 되었다. 한국말을 잘하고, 평범한 여고생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채리플랑의 모습에 현민의 친구들은 쉽사리 친해졌다. 그들은 현민을 주제 로 하여 대화의 장을 열었다. 채리플랑이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초인종이 울리며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수진, 현진뿐만 아니라 모두의 시선 이 현민에게로 모아졌다. 자신들은 대화를 계속할 테니 네가 나가보라는 눈빛이었다. 현민은 예진을 안은 채 현관으로 나갔다. 철컥! "생일 축하드립니다." 현민은 문을 연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의 눈앞에는 생각지도 않은 존재가 생각지도 않은 차림으로 꽃을 들고 있었다. 현민의 품 에서 잠자고 있던 예진이가 차가운 바람에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계속해서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드,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런 몸짓으로 집 안에 들어섰다. 현민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입구로 들어선 그녀를 태산이 발견했다. "싸울아비?!" 이번에는 태산의 입을 막아주는 존재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목소리가 생각만큼 커다랗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태산의 시선을 따라 현관으로 모였다. "안녕하십니까." 하연은 경악하는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친구들의 시선은 현민에게로 옮겨졌다. 그들은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끌려갈 듯한(?) 그들의 눈빛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그를 도와주는 존재가 나타났다. 띵동~ 이번에는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았건만 현민이 문을 열러 나갔다. "안녕~" "너!!!" 현민에게 인사를 한 존재는 지혜였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 찾아온 것이다. 현민의 허락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그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집 안으로 들어간 지혜는 현민의 친구들을 향해 정겹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번 손님은 평.범.하네?" 웃고 있는 지혜의 얼굴에 혈관 마크가 생겼다. 태산은 평범하게 말했지만, 지혜에게는 '평범'이란 한 단어가 강조되어 들렸기 때문이 다. 그가 말하는 평범이 앞서 들어온 두 사람의 외모에 비견된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울컥하는 지혜였다. 처음에는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 시끌벅적하고, 모두가 공통된 주제(현민)를 갖고 있다 보니 그들은 금세 친해 졌다. 그들이 친해지기까지 같이 어울리던 현민은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은근슬쩍 몸을 뺐다. 현민은 주방에서 요리를 했다. 군것질거리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밤에 먹기에 조금 그렇지만 마땅히 할 게 없어 야채 튀김을 준비했다. "흐응~ 그런 식으로도 써먹을 수 있구나?" "으앗! 뭐, 뭐야, 갑자기?!" 현민은 귓가에 느껴지는 낯선 이의 숨결에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은 눈치 챘지만, 설마 이런 짓(?)을 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누군지 살피니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지혜가 있었다. "음식을 신기하게 만들기에." "신기한 건 아니야. 모든 어머니들이 이런 식으로 음식을 만든다고." 현민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요리를 계속했다. "정말?" "굳이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오랜 주부 경험만 있다면 어느 정도의 양을 넣었을 때 어떤 맛이 나올지 예상할 수 있어." "네가 흉내 내는 게 그들은 아니잖아?" "...비슷한 거야. 먹어보지 않고 맛을 알아낸다는 점에서." "어쩐지 요리를 잘한다 했다. 지혜의 마지막 말에 현민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걸 어떻게 알아? 언제 내가 요리한 것 먹어봤어?" 지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거실을 가리켰다. 그 행동이 뭘 말하는지는 뻔했다. "수진이 저건 입이 너무 싸." 지혜는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그 범인을 정확히 집어내는 현민이었다. 툭- "야!" "그럼 수고~" 한 손에 튀겨 놓은 튀김을 챙긴 지혜는 현민의 엉덩이를 툭 치며 거실로 돌아갔다. 지혜가 왔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호가 다가왔다. "내가 할게. 넌 이거라도 마셔." "술?" 시호가 건네준 것은 냉장고에서 갓 꺼낸 듯한 차가운 맥주였다. "아직 한 모금도 안 마셨지?" "나 술 약한 거 알잖아." "이거 한 잔이야. 설마 취하겠어?" 시호에게 설득당한 현민은 머뭇거리며 술잔을 건네받았다. 미리 약속이라도 되어 있던 것인지 거실에서 그를 부르는소리가 들렸다. "자, 앉아, 앉아." 현민이 앉은 위치는 채리플랑과 하연의 사이였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눴기에 자신이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이고,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내용은 뻔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시작으로 대화를 나눴다. 즐거운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현민의 술잔에 담긴 맥주의 양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가 대화에 참여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았다. 현민의 고개가 앞으로 쓰러졌다. "됐다." 현민의 볼을 꼬집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은아가 모두에게 말했다. 끼리끼리 모여 있던 친구들이 한자리로 뭉쳤다. "진짜 잠자는 중에 물어보면 전부 대답해?" "물론이죠! 언니도 한번 경험하면 중독될 거예요." 이제는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된 은아의 말에 채리플랑의 두 눈에도 기대가 생겼다. 옆에 있는 하연도, 친구들의 사이에 끼어 있는 지혜도 흥미롭다는 눈으로 현민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질문은 수진이 했다. "현민아, 우리 중에서 누가 제~ 일 예뻐?" "...예진이." "헤헷! 현민 오빠가 나 제일 예쁘대." 맛있는 냄새를 맡고 잠에서 깨어 있던 예진이가 현민의 선택에 방긋 웃었다. "아차~ 현민이가 어린애 좋아한다는(?) 걸 깜빡했네." "..말이 좀 이상해." 좀이라기보다 많이 이상하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버렸다. "현민아, 예진이 말고 여기에서 제~ 일 예쁜 사람이 누구야?" 예쁜 사람 가려내기에 포기하지 않은 그녀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현민에게 질문했다. "...으음." 꿀꺽! 현민의 입에서 무언가 말이 나오려 하자, 그때까지도 관심 없어 하던 여성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연....하연." "으윽!" "윽!" 하연의 얼굴은 빨개졌고, 채리플랑은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현민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야?" "...채리플랑." "....." "....." 현민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같은 마법사이기에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이러한 생각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채리플랑 의 얼굴만 붉게 타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조,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 중에 나올 줄 알았는데." 두 번째 질문마저 다른 사람에게 밀려 버린 현민의 (여자)친구들은 허탈한 표정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과연 현민의 친구인지 그녀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났다. "아무래도 사심(?)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 하연이랑 채리플랑 빼고 다시 하자!" 끄덕끄덕. 두 사람을 제외하고 뭉친 여성들은 긴장 어린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질문했다. "현민아, 예진이랑 하연이랑 채리플랑 빼고 누가 가장 예뻐?" "현..." 꿀꺽! 무거운 정적과 함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현'으로 시작하는 3명의 여성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을 붙잡았다. "...진." "말도 안 돼!" 현진이 가장 예쁘다는 말에 크게 고함을 지른 것은 당연히 수진이었다.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현진이만 예쁘다고 했으니 열 받 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현민아, 수진이는 안 예뻐?" 누군가가 그녀를 대신하여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수진이는....귀여워. 헤헤!" "...아." "......" 말하면서 좋은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취한 것인지, 현민은 말끝에 헤픈 웃음을 보이며 모든 사람들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재영은 고개를 흔들며 한마디 했다. "난 저걸 볼 때마다 한 편의 동화가 생각나." "응? 무슨 동화?" "백설공주." "아~" "아~" 모두가 재영의 말에 동의하는지 긍정적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현민이 백설공주란 이야기가 아니다. "현민이 무슨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법 거울이야?" "크큭!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 일 예쁘니?" 여자 애들이 현민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 때 같이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현민이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염화." "....." "....." 사심(?)이 들어가 있는 현민의 대답이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모두가 현민과 같이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의 전쟁에서 어이없이 죽은 루얀이 그중 한 사 람이었다. "제길! 제길! 제길!!" 로그아웃되는 바람에 접속기에서 나와야 했던 루얀은 화를 참지 못하고 접속기를 걷어찼다. "어째서 죽이지 못한 거지?! 도대체 어째서냐고!!!" 루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채리플랑을 제외한 현자 길드의 모든 인원이었다. 웬만한 제국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릴 만큼의 화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존재들이 단 한 명을 죽이지 못하고 자신들의 특기인 마법에 전멸당했다면 그 누구라도 비웃을 것이 분명했 다. 루얀은 자신의 무능력함보다 타인의 무능력함을 비난했다. 지금이라도 접속해서 어릿광대를 죽이고 싶은 게 루얀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캐릭터 사망의 하루 제한이 풀린다 할지라도 루얀은 당장 에 복수를 할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세 번의 생명 중 2개를 현민으로 인해 잃어버렸다. 자존심이 강한 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다!" 루얀의 두 눈에서 광기(狂氣)가 내비쳤다. 현민의 생일이었던 일요일. 페튜니아의 도움을 받아 담임선생님께 서클을 확인받은 현민은 S대로의 진학이 결정됐다. 처음의 목표를 이룬 것이다. 현민의 부모님 이 기뻐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현민 이외에 기쁜 일을 겪은 존재가 있었다. 우연히 따라갔던 진하와 현민의 선생님이 그 주인공이다. 서로 첫눈 에 반한 두 사람이 현민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덕에 현민의 담임선생님은 언제나 싱글벙글이었다. 그날 저녁, 현민은 그동안 미뤄오던 하연 할아버지 댁에도 다녀왔다. 하연이 새벽에 찾아온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기에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잔뜩 긴장했으나, 하연의 할아버지에게서 느껴지는 포근한 기운이 현민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그곳에서 특별한 일은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검에 대해서 할아버지와 논하고, 그동안 어떻게 훈련했는지에 대한 간단한 시범을 보 였을 뿐이다. 마지막에 보여 주었던 할아버지의 미소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으나, 그 뜻을 파악할 수 없었기에 깊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 며칠 뒤에 있었던 축제는 학교 축제답지 않게 뜨거운 열기를 피워냈다. 현민과 대결하기로 한 치우가 근래에 인기 있는 S.S(Sexy Smil e)를 초대한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뜨거운 열기를 피워냈다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치우의 도발을 받아들인 현민이 그녀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그 열기가 정점에 다다랐다. 그렇게 한바탕 무대를 뒤흔든 후, 현민의 무대가 있었다. 현민은 그곳에서 북을 쳤다. 하지만 단순히 북을 치는 것만으로 학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민은 조금 독특하게 북을 멀리 떨어트려 놓고, 흔히 말하는 얌체공을 때려 그것으로 북을 쳤다. 한 번에 3개의 북을 치기 위해서 빠른 움직임을 보여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릿광대의 춤을 추었다. 빠르고 경쾌하기까지 한 그의 동작에 학생들이 빠져들었음은 당연하다. 승부의 결과는 확연히 나왔다. 축제에서 우승을 놓친 치우는 지혜의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현민은 그런 그에게 등을 돌린채 지혜를 껴안고 그녀를 흉내 냈다. "네가 좋아." 현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지혜가 놀란 것은 당연했다. 그녀는 머리를 쓰다듬는 현민의 손길을 느끼고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치우와 지혜는 학교의 공식 커플이 되었다.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붙어 다니니 소문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 다. 물론 지혜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것이지만 말이다. 현실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면 『싸울아비』에서는 딱 한 가지의 일밖에 없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완료하지 못했던 마녀의 퀘스트 를 드디어 해결한 것이다. 그 덕에 현민은 지금 아직 말도 못하는 헤츨링을 돌보고 있었다. 캬아아앙! 캬아아아아앙! "자, 자, 착하지? 안아줄게. 뚝!" 흔들흔들. 헤츨링의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풀고 있던 마법서도 집어 던지고 재빨리 달려온 현민은 능숙한 솜씨로 헤츨링을 안아 들고 달래기 시작 했다. 그가 헤츨링을 돌보기 시작한 것도 벌써 현실로 2개월. 이제는 능숙해질 만도 했다. 현민의 품에 안긴 헤츨링은 울음을 그치고 그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헤츨링을 처음으로 키워보는 현민은 헤츨링이 자신을 너무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엇다. 누구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아는 드래곤 하나 없고, 헤츨링의 부모 되시는 분은 띵까띵까 놀기 바빴기 때문에 혼자서 고민해야 했다. "현민아!" "응?" 현민이 있는 장소는 드래곤의 레어였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을 손쉽게 들어와 자신의 이름을 외 칠 만한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지현이 누나?" 현민이 페튜니아의 이름을 불렀다. 아직 여보 당신까지는 아니었지만, 누나 동생 하는 사이까지 발전한 두 사람이었다. 이들의 지금 관계에 성희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운영자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페튜니아는 다급한 얼굴이었다. "도와줘!" "네?" 아무리 현민이라지만 두서없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현민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마음이 급한 페튜니아는 무작정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아, 자, 잠깐!" 현민은 헤츨링을 품에 안은 채 페튜니아와 함께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벽도 바닥도 땅도 없었으며, 사물은 보이는데 빛은 존재하지 않았다. 절대로 평범하다 할 수 없는 공간이었기에 현민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곳은...? "여긴 '창조의 방'이야." 현민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곳이 이름과 걸맞아 그의 예상이 맞다면, 자신은 이곳에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을 읽은 페튜니아가 지금의 문제를 알려 줬다. "혹시 로그아웃해봤어?" "네? 아뇨. 해볼까요?" 끄덕. 현민은 그녀가 바라는 대로 로그아웃하려 했다. 하지만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인지 아무리 로그아웃을 말해도 현실로 돌아가지지 않았다 . "음... 이 공간에서는 로그아웃을 못하나요?" 현민은 혹시나 하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페튜니아의 대답은 무정이었다. 페튜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제야 현민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로그아웃을 할 수 있는 공간에서 로그아웃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갇혔다는 말과 다르 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튜니아가 어째서 심각한 얼굴이었는지 이해됐다. "어떻게 된 일이죠?" 현민은 그 경위부터 물었다. "루얀이라는 마법사가 시스템을 해킹해서 주인공 지능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어." "그게 돼요?"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엇다. 그동안 페튜니아에게 들은 것이 있었기에 현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싸울아비』는 데이터이 면서 데이터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킹이란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쉽게 말해서 돈에 관련된 데이터를 훔치더라도 그것은 데이 터일 뿐, 가상현실 속의 돈을 훔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페튜니아의 말대로 그가 정말 해킹했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로그아웃이 되지 않는 것처럼 모든 시스 템을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접속해 있는 모든 유저들의 목숨이 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명의 천재가 그예 사고 쳤다. "제가 뭘 해야 하죠?"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놔 주세요." 현민의 대답은 뒤쪽에서 들려왔다. 그가 누구인지를 확인한 페튜니아는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회장님!!" 현민은 페튜니아의 대답을 통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제가 가능한가요?" "당신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현민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공간 안에 있는 두 사람의 마음이 봇물처럼 쏟아지며 현민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지키고 싶다는 마음.' '현민....' '가능할까?' 현민은 아현에게 물었다. 그녀의 마음을 예상하고 생각해보았으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현은 그런 현민의 불안감에 웃음을 터트렸다. '풋! 정말 그렇게 생각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근질거리지 않아?' 싱긋. "맞아. 그녀의 마음에서 읽었듯이 이곳은 제한이라는 게 사라져 있으니깐." 현민은 환하게 웃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은 한 걸음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시작하자." '응.' 가장 먼저 변화가 시작된 것은 다리였다. 현민의 두 다리는 산양의 다리처럼 발굽이 달리고, 뛰어오르기 좋은 형태가 되었다. 그다음은 꼬리이다. 마치 루인아츠의 봉인을 해제했을 때처럼 그의 몸에 맞지 않는 기다란 꼬리가 생겼다. 다음은 가슴. 나름대로 탄탄하다고는 하지만, 선명한 근육이 없었던 현민의 가슴에 과하지 않으면서도 보기 좋은 근육들이 생겨났다. 현민의 두 팔은 짐승과 같이 털이 수북하여 그 끝이 무릎까지 내려왔고, 입술 안에 있던 이빨이 날카롭게 솟아오르며 밖으로 튀어나왔 다. 두 귀는 엘프 못지않게 뾰족해졌으며, 기존에 있던 눈의 위아래로 또 다른 눈이 만들어져 6개의 눈이 되었다. 모든 변화를 마친 현민의 키는 3미터를 넘어섰다. 어느 모로 봐도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날개가 솟아나며 그의 몸을 감쌌다. "이제 돌아가세요." "하, 하지만 로그아웃이..." 쩡! 현민의 모든 변화를 눈앞에서 지켜봤음에도 페튜니아는 두려움을 참지 못했다. 그 두려움조차 현민이 원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가볍게 휘둘러지는 현민의 손이 공간을 부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루얀이 떨어졌다. "로그아웃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크하하하하! 이제 『싸울아비』는 끝이다! 너희들 따위가 복구할 수 있을 것 같나? 모든 신들이 사라졌다. 모든 정보를 뒤섞었지! 인 간은 개가 되고, 오크는 참새로 변했으며, 땅은 하늘로, 하늘은 물로 바뀌었다!" "들으셨죠? 『싸울아비』의 모든 정보가 뒤섞였습니다. 처음이 어려운 것이지, 그다음부터는 손쉬웠다. 시간의 흐름부터 뒤틀어놓은 루얀은 현민이 이곳에 오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모든 것 을 바꿔놓은 상태였다. 그의 말대로 더 이상의 게임은 불가능했다. "아...." 페튜니아가 회장님이라 불렀던 중년의 여성은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공간의 힘을 빌려 그녀의 마음과 기억을 '읽을' 수 있었던 현민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당신이 이곳을 지키고자 원한다면 이곳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팟! 현민은 남아 있던 두 사람을 강제로 로그아웃시켰다. 그들뿐만 아니었다. 뒤틀려 버린 『싸울아비』의 공간에서 헤매고 있는 모든 유 저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존재가 사라지고 이제 남은 것은 현민과 루얀, 그 둘뿐이었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그도 『싸울아비』의 시스템을 다루어봤기에 현민이 벌인 일을 알 수 있었다. 혹시나 이곳에 자신만 남겨 놓고 떠나는 것은 아닌지 루 얀은 긴장했다. 현민은 그의 마음을 읽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깐." "저, 정말로..." "대신." 현민은 그를 들어올렸다. "저와 함께 영원을 살아주셔야겠습니다." 콰드드드드드득! 종이가 구겨지는 것처럼 공간이 압축됏다. 현민이 있던 '창조의 방'뿐만 아니라 『싸울아비』의 모든 공간이었다. 그렇게 압축된 공간은 루얀의 머리만 했다. 현민은 그것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루얀조차 흡수했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킨 것이다. 현민은 날개로 자신을 감싸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마치 알과 같은 모습. 현민은 그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어떻게 된 거예요?!" 접속기에서 일어난 페튜니아는 운영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든 유저들의 접속이 종료되고 서버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뭐?" 페튜니아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현민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서버가 사라졌다면 그 결과는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나 하는 얼굴로 성희를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아...." 페튜니아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절규했다. 그녀의 울음소리로 인해 운영실 전체가 가라앉았다. 뒤늦게 들어온 회장님도 그녀의 눈물을 보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너무나 어이없 게 한 사람이 죽은 것이다. 『싸울아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발생한 일이기에 모두가 슬퍼했다. "티, 팀장님!!" "....?" "여기. 빨리 여기로 와보세요!" 누군가가 다급히 페튜니아를 찾았다. 그 목소리에서 희망이 느껴졌기에 페튜니아는 서둘러 달려갔다. "현민이에요? 네?" "이걸..." 화면에 나타난 건 작은 빛이었다. 아니, 너무나 거대한 빛이었다. 공간 자체가 없는 곳에서 단 하나의 빛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미했다. 하지만 화면으로 모여드는 운영자들이 많아질수록 빛의 크기가 거대해졌다. 두근! 착각인가? 그들은 빛에게서 심장이 뛰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두근! 두근! 두근! 점점 빨라지는 심장 소리와 함께 빛의 움직임도 불안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빛이 폭발했다. "아, 이, 이런!" 화면을 보고 있던 운영자의 손이 갑자기 바빠졌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1kbyte였던 데이터가 어느세 500terabyte를 뛰어넘어 1petabyte 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보조 기억장치로 메모리를 확장해야 했다. 가상현실이란 것을 이루기 위해 「가우리」에 있는 하이퍼 컴퓨터의 기억 공간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빠르게 늘어나는 빛의 용량은 그 공간마저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더 이상의 기억 공간이 없었기에 운영자들은 걱정했다. 그러 나 화면 속의 빛은 스스로 LAN선을 타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이상 그 컴퓨터의 하드를 점령하여 멋대 로 여유 공간을 사용했따. "이런 말도 안 되는..." 페튜니아는 남아 있는 눈물을 닦아내고 화면에 집중했다. 어느 정도 확장한 빛들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밝지는 않지만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던 그것들의 색깔이 점점 탁해졌다. 검은색은 아니었으나 회색에 가까워졌다. "도대체 저게 뭐지?" 모든 운영자들이 달라붙어 그것에 대해 조사했으나, 나오는 단어라고는 딱 하나였다. Light 보이는 그대로 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한 빛들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마치 화면의 줌을 당기는 것처럼 그 속도가 엄청났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빛의 성분이 바뀌어 있었다. The Earth 말 그대로 대지(大地)이다. 운영자들은 지금 화면 속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창조." 새로운 차원이 창조되고 있었다. 그 방식이 진짜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화면 속의 과정은 분명한 차원의 창조였다. 우주가 생겨 나고 행성이 생겨났으며, 그 행성에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화면에 어느 하나의 행성이 비쳐졌다. 푸른색이 아름다운, 마치 옛날의 지구와 같은 행성이었다. 화면은 더 이상 행성이 아닌 지상을 비추었다. 인간이 탄생하고, 문명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나타났다. 화면 속의 시간은 빠르게 지 나갔다. "지금 이거.. 이전에 저희가 관리하던 서버의 모양인데요?" 그의 말을 확인이라도 시켜 주려는 듯 전 세계의 하드디스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용량들이 압축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압축되는 용 량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 빨랐다. "말..도 안 돼. 모든 시스템이 원래대로 복구되었습니다. "소멸되었던 신들의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저희가 처리하지 못했던 균열들도 전부 처리되어 있습니다." "다른 차원과의 연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운영자들은 전체적인 시스템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확인할수록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은 그들이 관리하던 이전의 세상보다 더욱 완벽했다. 조금의 버그도, 조금의 설정도 균열이 없었다. 완벽한 세상. 너무 완벽해서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혀, 현민은? 현민은 찾았나요?" 페튜니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운영자들에게 물었다. 그녀 스스로도 찾을 수 있지만, 아직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보드를 만 질 수가 없었다. 운영자들이 그녀를 대신하여 현민을 찾기 시작했다. 모두가 찾고 있는 현민은 새롭게 만들어진 '창조의 방'에 있었다. "역시 당신이었군." 현민의 앞으로 어릿광대 가면이 생겨났다. 그가 언제나 쓰고 다니던 바로 그 가면이다. 하지만 지금 그 가면을 쓰고 있는 존재는 현민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이전의 세상을 만든 존재, 현재 「가우리」를 이끌어가고 있 는 회장님의 죽은 아들, 윤진하였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이네." 믿을 수 없는 만남이었으나 현민은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의심스러웠다. 토너먼트에서 다른 존재들이 공격을 피하던 그때에는 아직 나의 존재가 만들어지지도 않았으니깐." "맞아. 그때 네 몸을 움직인 것이 나야." 현민의 모든 시작은 그가 어릿광대 가면을 구하면서였다. 스탯도 올리지 않은 주제에 다른 유저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독특한 정령을 만나게 된 것도, '루나'라는 마녀의 이름 을 받게 된 것도 모두 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인격, 그것이 바로 아현이었다. "어떻게 알았어?" "거울이란 비추는 대상 없이 형상을 만들지 못하니깐." "그러네. 너는 거울이니깐." 진하는 현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곳에서 신이 될 수도 있어." 현민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나의 인격을 죽일 생각이다." "뭐?" "나란 인격은 애초에 나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진 인격이다. 지금처럼 살기로 이루어진 인격을 죽일 수 있다면 나란 인격은 있 을 필요가 없다." "어떻게 그런...!" 진하는 현민의 단호한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이것은 내가 가기 전에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자, 잠깐!" 현민의 몸은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나타난 존재. 그 사람은 진하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존재였다. "어, 엄마....." "진하야."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안았다. 이곳이 가상현실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두 사람은 행복했다. 접속기에서 일어난 현민은 양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막아도, 막아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그의 슬픔은 가 슴이 욱신거릴 정도였다. 에필로그 갑작스러운 접속 종료 사건이 있은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싸울아비』를 경험하지 못한 유저들은 기대 어린 표정을 지 으며 접속기에 몸을 뉘었다. [싸워라! 당신의 소중한 존재를 위하여!!] 이전에는 없던 강인한 멘트가 나오며 눈앞의 시야가 바뀌었다. 쿵! 쿵! 쿵! 그들이 나타난 장소는 전쟁터였다. 현민의 경우처럼 일 대 다수가 아닌 다수와 다수의 싸움이었다. 그들의 눈앞으로 거대한 공간의 문 이 열려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추고 밀집해 있는 가운데, 앞에 있는 지휘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무기를 들었는가!" "타인을 위해!!" 쿵! 쿵! 그들의 외침에 대지가 흔들리고, 공기가 떨렸다. 묘한 두근거림이 유저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친우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우리들이야말로 진정한 싸울아비들이다!!" 쿵! 유저들도 NPC와 같이 발을 굴렀다. 단순히 발을 맞추는 것뿐인데, 단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동료애가 느껴졌다. "가라! 싸울아비들이여!! 눈앞의 적들을 없애어 소중한 것을 지켜 내라!!" "와아아아아아!!!!" 모두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돌진했다. 광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인가 지키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 유저들은 그들의 열망에 전염되 어 눈앞의 적들에게로 달려나갔다. 이것이 바로 전쟁이다. "가족과 친우가 슬퍼하지 않도록 절대 죽지 마라." 룬은 나무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고, 샨은 그의 다리를 벤 채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책을 덮은 현민이 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행복해?" "응." "다행이야." "....?" 샨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룬은 그 이유를 물었다. "왜?" "이상해." "뭐가?" "지금의 룬은 마치... 처음 만났을 때의 룬을 보는 것 같아." 그녀의 대답에 룬은 웃음 지었다. "쿡쿡! 그래서 싫어?" "아니. 영원히 좋아해." 두 사람은 짧지만 달콤한 입맞춤을 나누었다. 황궁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 룬은 황녀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었다. 황녀는 그러한 현민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행복해?" 룬은 다른 곳에 있는 또 다른 룬이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황녀는 그의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룬." "응?" "나를 사랑하기 이전의 룬." 무엇인가 눈치 챈 듯 황녀의 두 손이 현민의 볼을 감쌌다. "하지만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룬." 쪽! 샨과 마찬가지로 이들 두 사람도 짧지만 달콤한 입맞춤을 나눴다. "루나야~ 점심 아직 멀었어?" 침대에서 기어 나온 듯한 린이 루나의 등에 달라붙었다. 린은 루나의 목을 껴안으며 그의 귓가에 투정 부렸다. "린. 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야 일어나는 거야?! 그리고 아무리 집이라지만 잠옷 좀 입으라고! 나한테 부끄럽지도 않아?!" "우훗! 이제는 내 건데 뭐가 부끄러워?" 쪽! 린은 당당하게 말하며 현민의 고개를 돌리고 달콤한 입맞춤을 해줬다. 물론 린의 입장에서 달콤했지, 현민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찜 찜했다. 현민이 남겨 놓은 흔적, 마법사로서의 현민, 정령사로서의 현민, 마녀로서의 현민은 본래의 자신을 잊어버린 채 NPC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끝 happy ending(?)(해디 엔딩) no! harem ending!(하렘 엔딩)-